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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김형진(金炯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炯鎭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에 김형진(金炯鎭)이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과 식구들의 안부를 전하며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 내용의 간찰 을미년 12월 24일에 김형진(金炯鎭)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니 그리움 더욱 간절한데 요즈음 섣달 추위에 생활은 편안하고 대소가 식구들 고루 좋으며, 아드님은 어른 잘 모시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마을도 청정한지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고 식구들도 무탈하며 조카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하면서 다만 세상이 어지러워 모든 일이 두서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상대가 왕림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가능할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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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이창호(李昌浩)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昌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이창호(李昌浩)가 상대방이 부탁했던 미투리 두 켤레를 사 놓았으니 상대방이 방문하면 찾아드리겠다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윤 7월 17일에 이창호(李昌浩)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부모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지내는 상대방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고, 자신은 부모를 모시며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상대방이 전에 부탁했던 미투리[麻鞋] 두 켤레를 이미 사 두었는데 마침 인편이 없어서 바로 보내드리지 못했으니, 하루 이틀 사이에 방문해주시면 그때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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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성기(金成基)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5_001 1934년 9월 9일, 제 김성기가 노진영에게 원지의 간행 중 미리 언급했던 보충 후원비를 보내주기를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4년 9월 9일, 제(弟) 김성기(金成基)가 원지(院誌)의 간행 일정을 전하고 전의 편지에서 언급했던 보충 후원비를 보내주기를 청하는 내용으로 노진영(盧軫永)에게 전한 편지이다. 지난번의 답장에 감사하다고 전한 후 9월인 지금의 선생 되시는 아버님과 상대 및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여전히 못난 모습으로 지낸다며 인사하고 현재 원지(院誌)를 교정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간비(刊費)로 곤란을 겪어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다음 달 말일내로 간행에 들어가 장책(粧冊)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번 형의 편지에서 많은 금액을 보충해 주겠다고 했던 것을 언급하며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10엔(円)의 돈을 이달 20일 내로 보내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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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노도기(盧道基)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道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 3월 21일, 종생 노도기가 노진영에게 약을 보내면서 안부를 전한 서간. 1938년 3월 21일, 종생(宗生) 노도기(盧道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약(藥)을 보내면서 안부 를 전한 서간이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서 상대의 편지를 받았다며 아프신데가 아직 완쾌하지 않았다고 하여 걱정이 매우 심하다고 했다. 자신의 뜻대로 주제통성산(酒製通聖散)을 지었으니 즉시 시복해 보시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어떤 상황에서는 좋지 않으니 조금씩 맛보고 시험하다가 만약 맞지 않는다면 아버지께 올려도 좋을 듯 하다고 했다. 보름에 여러 종씨가 모여서 제향(祭享) 드린다고 하니 매우 축하한다고 전하고 각 분들께 편지 쓰지 못하니 문안드린다는 뜻을 전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한 약을 시험해보고 나서 즉시 회답해 주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주제통성산은 구성 약재를 모두 술로 법제하여 만든 처방으로 오늘날의 뇌출혈, 고혈압, 동맥경화증, 변비증, 주사비, 치질, 피부병, 축농증, 안병, 당뇨병, 천식, 비만증 및 각기, 단독, 지방심, 만성신염 등에 적용하는 약재이다. 발신자 노도기의 본관은 광주(光州), 호는 남오(南塢)이다. 노도기는 하의도 인근에 있는 비금도(飛禽島)의 유림으로 1921년 대동사문회(大同斯文會) 지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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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송조헌(宋祖憲)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宋祖憲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 4월 2일, 송조헌이 노진영에게 경현사 출향 문제로 보낸 서간. 1938년 4월 2일, 송조헌(宋祖憲)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경현사(景賢祠) 출향(黜享)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4월의 날씨에 상대가 안녕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다고 했다. 주요 내용은 지난달 10일에 상대가 경현사(景賢祠)의 여러 사람들 중에서, 출향(黜享)하는 일로 원지(院誌)를 복판(覆板)할 뜻에 서명을 하여 본래의 후예 되는 각 집들에 발표했는데,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고 말하고, 자신과 더불어 별로 큰 혐의가 없었는데, 무슨 일이냐며 상세히 대답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출향은 경현사에 모신 위패를 거두어 들여 제향을 철회하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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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이문량(李文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文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월 27일, 형 이문량이 노진영에게 이거한 거주지에 땅을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8년 1월 27일에 형(兄) 이문량(李文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이거한 거주지에 땅을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오랫동안 막힌 회포를 풀지 못하고 또 한해가 지났다며 최근 혹심하게 추운 봄에 상대가 안녕한지, 가족도 모두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근래 감기와 치통으로 여러날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반세상을 살았기 때문이냐며 한탄했다. 그리고 새로 우거하는 곳에 한 마디의 농토도 없어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살기가 실로 어렵다고 했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염치가 없지만 다시 말한다며 아우가 특별히 전에 없던 규정으로라도 논 5두락을 옮겨 주어서 외롭게 사는 자신이 살아가는 업(業)로 삼도록 해 달라고 했다. 자신의 몸이 회복되는 날 즉시 만나러 가겠다고 하고 박 형(朴兄)이 말로 다 전해줄 것이라고 했다. 협지에는 옥(玉)으로 짠 자리 1립을 보낸다며 정으로 받아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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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박태경(朴泰慶)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泰慶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3월 9일에 제 박태경이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29년 3월 9일에 제(弟) 박태경(朴泰慶)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小作)문제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우선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드릴 말씀은 봉납조(奉納條)가 막대한 것은 매우 황공하여 말로 할 수 없다는 것, 그 토지가 폐답(廢畓)이라고 말한 것은 잠시 유감스런 말이며, 가뭄으로 폐답이 되었다고 한 것은 미리 재앙이 있을 것을 예상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안심하시라는 내용이다. 상대가 여러 가지를 이유로 주지 못하는 논에 대하여 자신이 경작해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규격지에 국한문혼용으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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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1월, 스승님 장사를 지낸 다음날에 봉산정사의 임언재 등 5명이 노진영에게 봉산정사 후원금에 관해 전한 서간. 1935년 1월, 스승님 장사를 지낸 다음날에 봉상정사(鳳山精舍)의 임언재(任漹宰) 등 5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봉산정사(鳳山精舍) 후원금에 관해 전한 서간이다. 여기서 스승님은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을 말한다. 지난번의 공부하다가 갑자기 이별하게 되어 슬펐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당후(堂候)가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고 본론을 이야기 했다. 편지의 본론은 이번에 우리 선생님의 장례를 다행히 여러 분들이 스승을 존경하고 정성(精誠)을 다한 덕분에 잘 치렀다고 인사한 후 장례비용으로 부족하여 빌려준 돈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번 장례비용은 우리 문도들이 제공한 것으로 부족한 액 300여 엔을 마련하기 위해 각자 돈을 50엔에서 70엔에 이르기까지 빌렸다며 이것을 설명하고 귀 문중에서 빌려온 돈 70엔을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다. 장례를 치른 다음날짜로 편지를 썼으며 편지의 발신인은 인언재(任漹宰), 이재춘(李載春), 유병구(劉秉龜), 나종우(羅鍾宇), 윤경혁(尹璟赫) 5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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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정순문(鄭淳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文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8월 5일, 정순문이 노종룡에게 부의금과 부의품에 감사한다는 내용을 전한 서간. 1934년 8월 5일, 정순문(鄭淳文)이 노종룡(盧鍾龍)에게 부의금(賻儀金)과 부의품(賻儀品)에 감사를 전하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정순문이 자신의 족형(族兄) 뇌연공(雷淵公)이 돌아가심에 상대가 돈 2원과, 초 2갑, 북어 1대(隊)를 내려준데 대하여 감사를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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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최상현(崔相鉉)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鉉 盧軫永 崔相鉉(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월 15일, 소생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도평의원 선거에서 본인을 선정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 1927년 1월 15일, 소생(小生) 최상현(崔相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도평의원(道評議員) 선거에서 본인을 선정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書簡)이다. 광주군 광주면 양림리 157번지에 사는 최상현은 세로줄이 그어진 편지지를 이용하여 편지를 작성했다. 요즈음 귀하가 평안하실거라 생각한다며 송축한다 인사하고 자신은 상대의 애호를 받아 여전히 지낸다고 했다. 드릴 말씀은 도평의원 선거 시에 자신의 이름에 투표하여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훗날 직접 뵙고자 한다고 적고 편지를 마쳤다. 한자와 한글이 병기된 자신의 이름자를 인쇄한 명함 1장을 동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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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박해열(朴海烈)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朴海烈 南原鄕校 □…□ (흑색, 직방형, 7.8×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 7월 20일에 모 향교의 장의 박해열·서지열과 재임 김규석·안종윤이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만리 후손 천성일이 교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에 답한 통문 1898년(광무 2) 7월 20일에 모 향교의 장의(掌議) 박해열·서지열(徐之烈)과 재임(齋任) 김규석(金奎錫)·안종윤(安宗潤)이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만리 후손 천성일(千成日)이 교안(校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南原鄕校)에 답한 통문이다. 남원향교에서 보낸 통문을 받았는데 명장(名將) 화산군(花山君) 천만리(千萬里, 1543~?)의 큰 공훈을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흠모하고 열성조의 수교(受敎) 또한 뚜렷하게 있어서 그의 후손들이 우리 고을에 타향살이를 했더라도 떳떳한 본성이 있는 곳이라 돌보고 보호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 향교의 유생으로 들어온 것은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되고 오물로 떨어진 꽃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하면서 통문이 도착하면 바로 천성일이 교안에서 나가는 것을 허락하겠으니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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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김희도(金熙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熙道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2월 1일에 척제 김희도가 자신의 일본 유학 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28년 12월 1일에 척제(戚弟) 김희도(金熙道)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의 일본 유학 생활의 안부를 전한 서간(書簡)이다. 금년 봄에 서로 답장한 후에 소식을 오랫동안 전하지 모했다며 슬픔이 심해진다고 인사 했다.눈 내리는 추위에 상대의 안부와 손자가 별고 없는지, 집안은 모두 잘 계신지 물었다. 자신은 멀리서 생각해주시는 덕택으로 객지에서 별 탈 없이 지낸다고 인사하고는 이곳에 도착한 일은 남아의 청춘을 밝게 하려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학식을 닦으려는 목적도 있다며 객지의 형편이 좋지 못해 매사 모든 것에 낭패를 보더라도 너무 책망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또한 이 편지에 즉시 회답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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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박자신(朴子新)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子新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2월 27일에 박자신이 노진영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2월 27일, 생(生) 박자신(朴子新)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소작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소식은 때때로 들을 수 있지만 서로 만나는 것이 적조하여 쌓인 회포가 많다고 인사하며 연말에 상대의 아버지, 상대 분 및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집에서 칩거하며 못난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작년에 부탁했던 소작할 논에 대해 언급하며 이웃에게서 누군가 일본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 사람이 짓던 소작을 누구에게 부칠 것이냐고 물으며 이쪽 구역 대리점에 주어서 십수명의 사람들이 생활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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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1월 18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노진영 자손의 학교 수속 문제로 보낸 서간. 11월 18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자손의 학교 수속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경성공립공업전수학교(京城公立工業專修學校)가 찍힌 세로줄 인찰지 1장을 이용하여 펜으로 작성하였다. 노진영의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은 11월 1일부터 무사 통근 중이라고 했다. 경성공립공업전수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내용은 동봉하여 보낸 성적기입표에 기록을 하여 지섭(地燮) 편에 보내어 담임선생께 전하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성적기입은 형식적으로 사무에만 사용하는 것이니 담임인 송(宋) 선생께 극비리로 취급해 달라고 특별해 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주(光州)에 있는 학교에 가서 중5학년 성적을 기입해 달라고 부탁하여 일자 내로 도착되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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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鳳山精舍(흑색, 4.5×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3월 23일, 봉산정사의 고선주 등 3인이 노진영에게 봉산정사의 재실 중수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4월 5일에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 1941년 3월 23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고선주(高善柱) 등 3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봉산정사의 재실 중수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4월 5일에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이다. 간단히 상대의 상중 안부를 물은 후 본론을 시작했다. 봉산(鳳山)의 지붕을 묶고, 재실을 중수하는 일에 대하여 이미 하기로 결정한 일인데, 까닭 없이 미루어서는 안된다며 작년 9월에 한번 모였으나 일을 진해하기 어려웠고, 음력 4월 보름 내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며 정확히 4월 5일에 봉산(鳳山)에 왕림해 주시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작성년 부분에 '봉산정사(鳳山精舍)'라는 도장을 붉은색 인주로 찍었고, 발신자로 고선주(高善柱), 유병구(劉秉龜), 윤경혁(尹璟赫) 3인의 이름을 적었다. 추신에는 만약 비가 오면 15일로 연기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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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안병현(安秉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9 安秉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80_001 1939년 5월 10일, 제 안병현이 노진영에게 그의 손자 노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안함을 전하고 공작금 일부를 돌려주며 쓴 사과 서간. 1939년 5월 10일, 제(弟) 안병현(安秉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손자 노지섭의 중학교 입학 문제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안함을 전하고 공작금 일부를 돌려주며 쓴 사과 편지이다. 입학 기한이 끝나는 오늘까지 결국 이루어지지 않자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다며 이러한 일은 자신이 태어난 후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탄하며 미안함을 전했다. 자신은 3개월 간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며 제1회 400엔, 제2회 100엔, 제3회 50엔, 합계 550엔 중 제3회분은 되든 안 되든 들어가는 돈으로 양해를 구한 것이니 제하고 나머지 500엔을 돌려준다고 했다. 지섭의 학교 일은 제2학기 초에는 반드시 책임지고 성사할 사람이 있음을 전하며, 세상일은 어찌 될 줄 모르기 때문에 일을 종료하기 위해 처리한다고 했다. 후반에는 3회분도 형의 명령이 있다면 보충해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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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양회택(梁會澤)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梁會澤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에 양회택이 노진영에게 안부 등을 전한 서간. 1938년에 양회택(梁會澤)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 등을 전한 서간이다. 발급일자와 작성자가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피봉을 통해 양회득이 작성한 편지임을 추측하였다. 요즈음 그리움이 평소의 배나 된다며 최근 아버님과 상대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현재 장성군 김용식(金龍植) 씨의 집에서 머물며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집이 아닌 곳이지만 그럭저럭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우선 드릴 말씀은 자신이 올 들어 경영하는 일이 많고, 내일은 형의 족속인 영수(永洙) 씨와 좋은 땅을 돌며 어느 곳 어느 산을 점지할지 세 곳 정도 정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다만 시국의 상황으로 볼 때 시간이 금새 흐를까 걱정되므로 정신을 차리고 일이 낭패에 이르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전에 보냈던 것은 한 번의 웃음에 부쳐 버리고 다시 한 번 만나기를 바란다며 상대의 생각이 어떠한지 물었다. 편지의 내용은 여기에서 끊기며, 같은 면에 펜글씨로 적힌 작은 글자는 별도의 편지로 여정(旅程) 중인 상대의 안부를 묻고 상대가 근래에 가산(佳山)과 여수(驪水)를 살펴보시던데 몇 곳을 점지(占地) 했는지 묻는 내용이다. 자신은 근래 종사(宗事)를 경영하느라 산수(山水)가 있는 곳에 도착해 있다고 하며, 언제 또 상대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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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우영(金雨英) 서간초(書簡草)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雨英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50_001 1935년 노진영이 김우영에게 보낸 서간의 초본. 1935년 생(生) 모(某)가 김우영(金雨英)에게 보낸 서간의 초안본이다. 본 편지는 김우영(金雨英)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내온 1935년 3월 27일자 서간과 한 봉투에 들어 있었으므로 시기상 당시 노진영이 김우영에게 답장을 쓰기 위해 작성한 편지로 보인다. 내용은 정사를 돌보고 있는 상대에게 3월의 안부를 묻고 자신[生]은 집안 노인이 평안하시어 다행이라고 인사한 후 상대방의 종씨(從氏)가 경영하는 일이 진실로 활발하게 널리 은혜를 펴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 말을 누가 따르지 않겠느냐며, 자신의 알선이 도리어 병통이 될 것이라며 겸양하면서도 관청에 들어가는 때에 잘 말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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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全南 光州府 大正町 一一二,盧軫永 氏 回鑒(피봉_뒷면)京城府 內需町 七0.ノ七七安秉鉉謹.(簡紙)歲葉旣未修謝, 荐奉垂問, 感悚之私, 實難自裁焦. 謹審徂玆大寒益肆其威,大庭壽韻益享難老,侍餘靜候連護, 寶節均裕, 何等慰喜滿萬. 弟寓味一直辛酸, 無足煩溷, 而惟以鄕候之間間承安, 餘累之免警爲幸耳. 賢彧衝寒回京, 而小無困憊之狀, 伊後逐日登校, 孜孜勤勉,漸進竿步, 可知其平日家庭之敎,已宿於趍過之時, 何待如我者之謹飭督勵乎, 良賀良賀. 兩奇雅亦善做, 以是 下諒, 如何如何. 在挾留. 姑此不備謝上.戊之至月晦日, 第 安秉鉉 拜拜.(別紙)俯囑轉學一事는 前於面晤時에 未能相陳其事情者, 盖因近來學界風紀가 頹靡極甚, 有浮於韓末科試之時. 此等內容을 粗知體面者不可洩漏曝露故也.貴地想不無厥弊, 而至若京師則其弊可謂公行. 兄亦必稔悉矣. 今承書,喩自上■(京)〔司〕囑託, 尤非可能之事. 雖得其便, 此不過於反撥, 其當務之憾情, 故左査右探僅得一路於第二高普. 然有兩個難如何, 玆以記呈于左, 兄須滲諒處之, 如何如何. 以愚意論之 賢彧之現籍某校, 不必多轉也. 學科則豈非無公私之別者乎. 期欲多籍이어든 以陽今月二十七日內一賜枉顧面議, 如何如何. 若過右日, 則事無及矣. 滲諒切企切企耳.一. 府內轉學은 絶對禁則也. 故不得已新學期第一年生試驗을 經하여야될 것.二. 校長及算術, 囯語, 身体檢査等,各當務者의ᄭᅴ 充分한 交涉이 有하여야 될 것.已上諸件에 對하야 兄意以爲如何. 若欲强行此事, 則費容이 小不下四百餘円也. 地方之遊學於京中者, 擧行此等手段, 至費有一二千円者, 故此弊가 儼成慣例, 而每年益甚, 良覺寒心耳. 兄其滲量하야 不入於俗流, 似好似好耳. 覽後卽火燒, 切仰切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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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5년 박하청(朴夏淸) 등 6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夏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9_001 1935년 6월 6일에 박하청 등 6명이 노진영에게 영화재 수행안 개정 담당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서간. 1935년 6월 6일, 박하청(朴夏淸) 등 6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영화재(永和齋) 수행안 개정 담당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서간이다. 가물고 더운 지금의 상대 안부를 간단히 물었다. 주요 내용은 본향(本鄕, 光州를 가리킴)의 이번 수행안(隨行案)을 개정(改整)하는 일에 귀하의 이름이 향의(鄕議)의 일치로 선출되었다며 오는 10일에 소촌(素村) 박씨영당(朴氏影堂)에 왕림하시어 함께 관광(觀光)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발신자의 이름은 박하청(朴夏淸), 기종섭(奇琮燮), 유영선(柳永善), 고광우(高光雨), 최종우(崔鍾宇), 이계만(李啓萬)이다. 작성자의 실수로 고광우(高光雨)의 이름을 두 번 쓴 것이 특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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