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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한규(金漢奎)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漢奎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6년 8월 21일, 김한규가 노진영을 부친의 회갑연에 초대하면서 보낸 서간. 1936년 8월 21일, 김한규(金漢奎)가 노진영(盧軫永)을 부친의 회갑연에 초대하면서 보낸 서간이다. 8월의 날씨에 상대가 안녕하시리라 생각한다며 인사하고 이달 27일이 가친(家親: 자신의 아버지)의 60세 생신이니 작은 연석에 오후 1시에 와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편지 내용은 간단하지만 발신인 이름자를 적은 후 뒷공간에 '압운(押韻) 량(涼)'이라는 글자를 적어, 수연시를 지어주실 분들에게 압운자를 안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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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병종(盧柄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柄琮 蘇海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12일, 생 노병종이 소해정 여러분에게 소해 선생 졸곡제에 자신의 참석이 어렵겠다고 전한 서간. 1940년 7월 12일, 생(生) 노병종(盧柄琮)이 소해정(蘇海亭) 여러분들께 졸곡제(卒哭祭)에 자신이 참석하기 어렵다고 전한 서간이다.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 1856~1940)선생의 죽음은 친구간의 예로 본뜰 사람을 잃은 아픔일 뿐만 아니라, 동종(同宗)이었으므로 더욱 통탄스러웠다며, 자신이 부고를 듣고 곧바로 위문가지 못한 것은 자신의 병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지금 졸곡제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경황이 없음뿐만 아니라 숙병을 아직 떨어내지 못하여 뜻을 받들 수 없다며 조금 나아지면 영연(靈筵)에 가서 곡을 할 테니 용서해달라고 했다. 더운 날씨에 여러분들이 보중(保重)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하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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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병래(盧秉來)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秉來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29일, 족말 노병래가 노진영에게 그의 아버지 상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 편지. 1940년 7월 29일, 족말(族末) 노병래(盧秉來)가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盧種龍, 1856~1940) 상(喪)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편지이다. 상대 아버지의 죽음에 애통함과 작년 가을에 직접 뵈 온 뒤 편지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되었다고 한스러움을 토로했다. 상대의 효심은 알지만 예제(禮制)를 잘 따라서 몸 상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위문하고, 자신은 지난 2월 초부터 같은 군(郡) 내 교정면(交井面) 신씨(愼氏) 집에서 살면서 6~7명의 관동(冠童)들과 보내고 있다는 것, 본 집과의 왕래는 수개월에 한 번 정도라는 것, 그래서 자신이 예절을 못 차리게 되었다며 미안해했다. 또 길어 멀어 즉시 달려가서 곡하지 못하고 이렇게 위장(慰狀)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장지는 어디로 정했는지, 상대의 아이들은 아버지 모시고 공부 잘하고 있는지 등을 묻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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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진옥(盧鎭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鎭玉 盧永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4일, 생 노진옥이 노영기에게 부탁 받은 내용에 답변을 전한 서간. 1940년 7월 4일, 생(生) 노진옥(盧鎭玉)이 노영기(盧永淇)에게 부탁 받은 내용에 답변을 전한 서간이다. 상대가 보내준 편지에 감사를 전하고 7월의 늦더위가 더욱 심한데 상대가 잘 있음에 감사하다는 것, 자신은 어른 모시고 그럭저럭 지낸다고 안부를 묻고 전했다. 주 내용은 상대가 편지로 말한 뜻은 잘 알지만 같은 가문이 되어 저 쪽을 대략 볼 수 없다며 곧 직접 가서 잔을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훗날 만나서 하자고 말하며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고재연(高在淵) 선생과 박주상(朴柱庠) 선생에게 바빠서 각기 편지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시기상으로 보아 광주군 지산면 일곡리에 거주하던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에 위문을 가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푸른색으로 찍은 '삼릉괘지(三菱罫紙)' 1장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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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정선채(鄭選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選采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7년 7월 29일, 소제 정선채가 노진영에게 부탁받은 암소의 구입 건으로 살만한 소의 정보를 보내며 그 의사를 타진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7년 7월 29일, 소제(少弟) 정선채(鄭選采)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부탁받은 빈우(牝牛) 구입건으로 살만한 소의 정보를 보내며 그 의사를 타진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일전에 영근(永根)이가 와서 대략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고 그 뒤로 어찌 지내시는지 댁내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족들 모두 별 탈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 내용은 자신이 사는 화면(火面) 성덕리(聖德里)의 윤덕홍(尹德洪)이 4~5일 전에 와서 당신이 있는 곳에서 왔다며 말하기를, 당신의 마굿간에 기를 소를 구입하는 일로 부탁을 해왔다고 했다. 암소로 살만한 것은 자신이 사는 면(面) 가곡리(柯谷里) 이동근(李東根) 집에서 기르는 암소 한마리가 털색이 순황색이고, 뿔이 매우 힘이 있다는 것, 그 소는 먹는 것과 밭을 가는 힘이 상당하고 나이가 6세인데다 10일전에 송아지를 낳았다고 하며 이상의 여러 일들은 자신이 평소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구입할 뜻이 있다면 금액은 100원 가량이라고 전했다. 추신에는 신유선(辛有善) 집에서는 암소를 금년 봄에 150원에 사들여 기르는 중이라고 하며 만약 매매하고 싶다면 이번 봄의 시세(市勢)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고 하고, 두 군데 소를 매입할지에 대하여 어찌할지 속히 회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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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상호(盧相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相鎬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8월 7일, 종계 노상호가 노진영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 상을 위로하며 보낸 위문 서간. 1940년 8월 7일, 종계(宗契) 노상호(盧相鎬)가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그 아들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위문 서간이다. 위장(慰狀)의 투식을 따라 쓴 위문편지로 뜻밖에 상대 아버지의 상을 만났다며 그 슬픔을 위로하고, 어른 모시고 잘 있는지 안부를 묻고, 종중(宗中)에서 모두 무고한지 묻고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종제(從弟)인 자신은 형제들과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 한 마을의 여러 종형제와 여러 족속들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것, 이번 여름에 있었던 일로 즉시 포복하여 가서 위문하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과 슬품 등을 전하고 돈(金貨) 3원(圓)을 올리니 얕은 정이나마 받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노상호의 거주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화전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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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순(李鎔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鎔淳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용순(李鎔淳)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며 지난번 지은 시에 대해 의견을 말한 간찰 모년 6월 14일에 이용순(李鎔淳)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담제(禫制) 중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와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지난번에 지은 〈소해정(蘇海亭)〉이란 시 가운데 초연(初聯)은 바쁜 가운데 잘못 쓴 것이라서 그렇다며 '원량(元亮)' 두 글자를 '연명(淵明)'으로 고치는 것이 보기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자신은 더위를 먹었는지 수마(睡魔)를 벗 삼아 지낸다고 하였다. 이용순이 지은 〈소해정〉 시는 《蘇海遺稿附錄續集》에 실려 있는데, '원량' 두 글자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실려 있다. 시의 전문은 "主翁亭子適成時, 三角山高必式宜. 滿庭趣癖元亮宅, 聯壁眞圖摩詰詩. 完蘇無恙安身策, 觀海爲工涉世期. 不市經綸開前業, 以淸養德恐人知."이다. 담제는 삼년상을 마친 그 다음다음 달 하순에 탈상(脫喪)하면서 지내는 제사인 담제(禫祭)를 지낼 때까지를 가리킨다. 소해정은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이 1930년에 세웠으며 그의 아호에 따라 이름을 지은 정자다. 노종용은 원풍정(願豊亭) 건립자인 농암(聾岩) 노재규(盧在奎 1836~1920)의 아들로서, 그의 선조인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행적을 본받아 은둔소요(隱遁逍遙) 하였다. 노종용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등 한말 우국지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송병선이 자결하고 최익현이 일제에 잡혀 대마도에서 순절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광주 일곡동에 내려와 도의의 교를 맺어 학문을 논하고 전념하며 후진양성에 힘쓴 인물이고, 《소해유고(蘇海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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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과 관련하여 진행 상황을 전하는 간찰 1944년 1월 3일에 정읍 칠보에 거주하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편지를 막 쓰려던 차에 먼저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어 매우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다. 지난번에는 전주의 박 주사(朴主事) 형과 잠시 술자리를 갖고 빨리 돌아왔는데 차가 이미 출발해서 매우 안타까웠다고 심경을 전하고, 자신은 임실과 전주, 부안을 돌아 섣달 그믐날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근황을 전했다. 새해 들어 얻은 것이라고는 나이 한 살 뿐이니 한탄스럽다고 하고, 이전에 말했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武城書院)에 추배(追配)하는 문제에 대한 진행 경과를 전하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 도강김씨(道康金氏) 몇 명이 호응하지 않은 일은 원장(院掌)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환상(煥相) 형이 주선하였고, 논의를 어긴 송씨(宋氏) 몇 명은 자신이 움직이는 데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서원 향사(享祀)의 제수 비용 몫으로 2백원을 내서 승낙을 받는 일은 금전만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유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니 범범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상대방이 4닢[葉]을 빌려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고, 이는 손자의 병 때문이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또 노진영의 이웃인 정완표(鄭玩杓) 형에게 원지(院誌) 간행비 20원을 속히 부쳐달라고 전해달라는 당부도 하였다. 그리고 다른 여러 형들은 새해 들어 편안한지 묻고, 자신이 바빠서 각자 안부 편지를 하지 못하니 이 편지로 안부 인사를 대신 전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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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欲裁書之際 先承惠緘悚感萬萬 而向者更未拜別后他全州朴主事兄 一杯酒暫飮 故速往速來矣 南車已發只自向風悵歎而已 咎實在我 安敢望厚恕否 謹從審新元兄體萬旺 大少寶節均慶仰頌慰祝 弟功服人 自任實全州扶安 除夕歸家 而新年所得者 只添一齒 浩歎奈何奈何就先生之事 至於道康金氏數人不應事 在於院掌 故煥相兄周旋 其他宋氏數人違議事 亦在於弟之運動怎 兄院享需費二百円承諾條 日間速付於心松兄然後 以那意到底爲書 如何如何 無論某大事 非徒金錢主張也 先買其心 則勿泛勿泛 而事若終境已成自道押圖計耳 勿慮焉惠施四葉貸感謝感謝 善用於孫兒病故矣 貴隣鄭玩杓兄許 院誌剞劂費二十円到底爲言速付 如何如何 鄭友言內 那條則與仁兄商議付送云則無異仁兄惠給於我矣尤極感激者耳 餘立俟回示 不備上謝甲申元月三日曉 弟功服人金成基拜諸兄新歲泰安否 忙未各候以此雷照如何如何【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番地斯文軫永兄〈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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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환(曺正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曺正煥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인제(姻弟) 조정환(曺正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목재 운송에 관하여 보낸 간찰 모년 4월 29일에 인제(姻弟) 조정환(曺正煥)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일전에 말했던 주목(株木)에 대하여 운송인의 말이 광주 경양까지 운송하는 것은 40전(戔)이면 운송을 하겠지만, 삼각리(三角里)까지는 주목 하나당 50전씩이라도 도로 문제로 운송하지 못하겠다고 한다고 전하였다. 동복(同福) 상가리(上佳里)의 김국일(金國日)에게 두 차례 왕래했더니 그곳에 주목 1개, 연목(椽木) 104개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춘서목(春西木) 1개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격을 주어야 할 것이며, 경양까지 40전씩이면 운송할 것이니 이를 헤아려서 가부간에 빨리 회답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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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에 대해 진행 상황 등을 알리는 내용의 간찰 1944년 2월 8일에 정읍 칠보면에 사는 김성기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에 편지를 받고 답장을 바로 보내지 못했던 것은 집안에 일이 있었기 때문이며, 근래 장인어른의 상(喪)을 당해서 5일만에 집에 돌아와 일에 두서가 없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상대방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성서원 유림들의 마음을 사야 하므로 제수 비용 몫으로 200원을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김성기의 의견이었는데 이때 노진영이 아마도 돈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김성기는 그 돈 200원을 김환상(金煥相)에게 주었더니 매우 감사하다는 언급을 했다고 전하고, 이 돈은 춘제(春享)의 제수비용으로 쓸 계획이라고 하였다. 선생을 추배하는 일은 거의 희망이 보이므로 적극 도모하고 있다고 하였다. 통장(通狀)은 잘 썼다고 하는데 더 정리한 뒤에 자신이 직접 길을 나설 계획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고, 자신은 감기에 걸려 앓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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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열(高光說)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說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고광열(高光說)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토지 매도를 주선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6월 25일에 장성군 동화면 송계리에 사는 고광열(高光說)이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달에 이별한 뒤로 마음이 울적한데 생활은 편안한지 묻고, 자신은 근래 여름감기에 걸려 며칠간 고생하다가 요즘에야 조금 회복 중이라고 안부를 전하였다. 노진영 측에서 먼저 토지 매입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고, 그에 대해 고광열이 매도할만한 토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자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5마지기의 땅이 나왔는데 토지 가격은 745원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매입할 의향이 있으면 다음 달 초순 사이에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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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계해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사돈어른과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의 간찰 계해년 4월 6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사돈어른에게 보낸 간찰이다. 종종 인편이 있었는데 바쁘고 어수선하여 한 번도 서신을 보내지 못하여 몹시 그리운데, 생활은 편안하시고 아드님도 어른 잘 모시며 공부 잘하고 있는지, 집안 식구들도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예전 그대로 지내지만 외롭고 쓸쓸한 심정이 갈수록 깊어지는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과 집안이 무탈하다는 점이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조카 욱(彧)은 볼수록 더욱 기특하고 사랑스러우며 자못 앞으로 크게 될 가망이 보인다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언제 한번 만나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성호(星皓) 집도 평안한지 묻고, 바빠서 따로 편지를 하지 못하니 이러한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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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을축년 1월 15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의 큰형수 상(喪)을 위로하며 보낸 간찰 을축년 1월 15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큰형수님의 갑작스런 부고를 받고 몹시 놀랐고, 서로 우애가 좋았는데 비통함을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위로하면서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계절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마음을 가라앉혀 몸이 축나지 않도록 하시라고 당부하였다. 장례에 필요한 것들은 미리 준비했겠지만 큰 변고를 거듭 당하여 일이 많고 경황이 없을 것을 생각하면 슬픈 심정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와중에도 종질녀(從侄女)가 잘 버티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그 광경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심정을 전하였다. 자신은 기력은 쇠해가고 나이는 더 먹어가니 족히 말할 것이 없다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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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김직(金{土+畟})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畟}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미년에 김직(金{土+畟})이 옥계(玉溪)의 누군가에게 아들 상을 당한 일을 위로한 간찰 정미년 12월 14일에 김직(金{土+畟})이 옥계(玉溪)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치를 거슬러 아들이 먼저 죽는 일을 당한 옛 현인인 자하(子夏)가 심하게 울다가 실명을 했던 고사를 먼저 말하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당한 형님을 위로하였다. 더구나 더욱 아끼고 사랑했을 부인께서는 슬픔을 어찌 감당하고 계신지 위로하며 모쪼록 몸이 상하지 않도록 절제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래 상변(喪變)을 많이 거치다보니 마음이 단단해져서 망(忘) 자 한 글자에 부쳐버리는 것도 한 가지 방도가 되는 것 같다고 하고, 기력이 쇠해가는 마당에 이것이 병의 빌미가 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면서 형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슬프고 가여울 뿐이라고 하였다. 소식이 막혔던 차에 계씨(季氏) 형을 만나서 위로가 되었는데 바로 작별해서 섭섭하고, 백씨(伯氏) 형님이 평안하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바빠서 각각 서신을 쓰지 못하니 이 뜻을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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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처행(車處行)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車處行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에 차처행(車處行)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성 대원사(大原寺) 산판(山阪) 건으로 보낸 간찰 모년 10월 10일에 차처행(車處行)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소식이 오래 막히고 안부를 알지 못해 몹시 그립다고 인사하고, 겨울 추위에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모두 편안하고 식구들 고루 경사스러운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객지로 나와 지내다 보니 고생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다고 하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보성 대원사(大原寺) 산판(山阪)에 마침 좋은 재목이 있어서 알려드린다며, 형의 마음에 든다면 서신을 보는 즉시 대원사로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면 바로 그날 회답 서신을 주고받을 때 자신이 나가보려고 한다고 하고,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만났을 때에 하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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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김흡(金{土+翕})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翕}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2_001 계묘년에 김흡(金{土+翕})이 옥계(玉溪)의 이생원 댁에 안부를 묻고, 보내준 새해선물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면서 오는 봄 향사(享祀) 때에는 참석할 생각이라는 내용의 간찰 계묘년 12월 22일에 김흡(金{土+翕})이 옥계(玉溪)의 이생원 댁에 보낸 간찰이다. 국상(國喪)으로 다 같이 슬퍼하는데 보내준 편지를 받고 직접 만나 뵌 듯 반가웠고, 또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고 가족 모두 잘 지내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노환(老患)이 날로 생겨나서 문 닫아 걸고 신음하느라 만 가지 생각이 다 식어서 가련한데 동생마저 병이 낫지 않아 일마다 걱정스러우니 좋은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보내준 새해 선물은 잘 받았는데 한번 나아가 인사드리지 못하고 앉아서 받기만하니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병이 더 심해지지 않는다면 봄 향사(享祀) 때에는 반드시 참석하려고 생각중이지만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가는 통장(通章)은 매강서원이 보낸 것이니 우리 쪽 각 서원에 보내주고, 봉안할 때는 반드시 왕림해달라고 하였다. 인산서원은 그곳에서 전송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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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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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병인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종씨(從氏)의 상(喪)을 위로하고 서원의 향사(享祀)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병인년 8월 10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갑작스런 종씨(從氏)의 상(喪)에 너무 놀랐는데, 서늘한 가을이 시작될 즈음에 고인의 서신을 받고서 얼굴을 뵌듯했다고 하면서 고모부와 형님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쓸쓸하고 무료하게 날을 보내며 어린 손자들을 벗 삼아 지낸다고 하였다. 홍역이 아직 집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염려스럽다고도 하였다. 숙부와 종씨의 병환 소식에 몹시 걱정스러운데 무슨 증세냐고 묻고, 이런 노년에 병환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고 하면서 자신도 동갑인 까닭에 더욱 우려가 크다고 하였다. 그간 손부(孫婦)를 맞아들였는지도 물었다. 과시(科時)에 형과 노여(老汝) 형이 나란히 갔다고 해서 날마다 소망하였는데 이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니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성호(星皓)의 집안도 평안한지 묻고, 바닷가의 여러 고을이 농사가 좋지 않다고 들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사는 근처는 가뭄 피해가 커서 흉년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전하였다. 장산서원(章山書院)의 향사(享祀) 때 원장(院長)이 자리에 나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자신은 몸을 빼기 어렵거니와 기고(忌故) 때문에 단념했다고 전하였다. 상대가 미역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성호에게는 바빠서 따로 서찰을 쓰지 못하므로 안부를 전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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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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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김천수(金千洙)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千洙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80_001 을미년에 김천수(金千洙)가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매형의 준수함을 칭찬하며 오는 20일 뒤에 다시 초대할 계획임을 전하는 간찰 을미년 12월 6일에 김천수(金千洙)가 사돈어른에게 보낸 간찰이다. 어제 못 가게 만류했는데도 사돈어른이 갑자기 떠나서 몹시 섭섭했었다고 하면서 밤사이 체후는 편안하고, 대소가(大小家) 모두 고루 잘 지내고 계신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편안하게 지내고 있고 어른 모시는 생활도 예전 그대로이며 집안 식구들이 별탈이 없는 것 외에 별다른 소식은 없다고 하였다. 매형은 지극히 어질고 준수해서 한미한 집안의 큰 행운이라고 인사하였다. 오는 20일 뒤에 다시 초대할 계획이니 헤아려달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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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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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박천흠(朴天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天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01_001 임진년에 박천흠(朴天欽)이 옥산(玉山)의 누군가에게 아들 상(喪)을 당한 것을 위로하고 자신의 아이가 가는 것은 마을의 돌림병이 물러나면 형세를 봐서 보내겠다는 간찰 임진년 12월 26일에 박천흠(朴天欽)이 옥산(玉山)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아들 상(喪)을 당한 상대방에게 애도를 표하고, 어른 모시면서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물었다. 부음을 받고부터 가슴이 서늘하고 뼈가 시려서 차마 남에게 말도 할 수 없었다며 모쪼록 마음을 편안히 하고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것이 다행이고 다른 특별한 일은 없다고 하였고, 아이의 행차는 마을의 돌림병이 물러나면 형세를 봐서 보낼 것이라고 하였으며, 빠르고 늦는 것은 무슨 상관이겠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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