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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천일관(千鎰冠)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冠 城主 □…□ (적색, 정방형, 2.4), □…□ (적색, 정방형, 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7년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은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허물어져 자금을 모아 정비하기 위해 이미 1896년 9월에 입지(立旨)를 발급해 달라고 정소하였다. 이 상서에서는 자금은 적고 공역(工役)은 허다하여 많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분묘에 떼를 입히고 정비하는 봉축(封築) 작업을 끝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호소하고, 분묘 부근의 금안방(金岸坊)과 기지방(機池坊)에 부역을 명하는 전령을 내려 묘소 정비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군수는 2월 22일에 면임(面任)에게 '정소한 대로 시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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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김재규(金在珪) 단자(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在珪 城主 城主<着名> □…□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 10월에 김재규가 제 고을 수령에게 자신이 맡은 성묘의 직임을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이임해줄 것을 청원한 단자 을미년 10월에 김재규가 제 고을 수령에게 자신이 맡은 성묘(聖廟)의 직임을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이임(移任)해줄 것을 청원한 단자이다. 자신은 평소 가난한 탓에 근래 농사짓고 사느라 동서로 분주한 미천한 몸으로 막중한 성묘의 직임을 외람되게 맡아 분수에 지나치니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신하여 직임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단아하고 민첩한 사람에게 직임을 맡겨주실 것을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아뢴다는 내용이다. 이 단자에 대해 본관(本官)은 10월 16일에 '단자로 아뢴 바가 이와 같더라도 하는 수 없으니 부응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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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貫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897년 1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에 세울 신도비를 운반할 때 묘소 부근에 있는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1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 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에 세울 신도비(神道碑)를 운반할 때 묘소 부근에 있는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의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남원군 금안방(金岸坊) 환봉(環峯) 위에 있는데 오랫동안 의물(儀物)을 갖추지 못하다가 지금 겨우 신도비를 창건하기 위해 장수(長水) 등지에서 비석을 만들어 마련하였다. 하지만 자금은 적고 공역은 상당하여 많은 사람의 힘이 아니면 필시 신도비를 운반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분묘 부근의 상·하반암방(上下番[磻]巖坊), 갈치방(葛[乫]峙坊), 왕지전방(王之田坊), 이언방(伊彦坊), 금안방(金岸坊), 기지방(機池坊)에 전령을 내려 비석을 운반하는 데에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 군수는 12월 7일에 각 방(坊) 사수(社首)들에게 '가까운 방(坊)의 경계 지역에서부터 즉시 신도비 운반을 완료하여 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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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貫 城主 城主<着押> 谷城郡守之章 (적색, 정방형, 2.5), □…□ 3顆 (적색, 정방형, 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74_001 1900년 3월에 곡성군 예산면 장선리에 사는 천일관·천일권·천일표가 곡성군수에게 동임 이치현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전령을 내려줄 것을 청원한 상서 1900년(광무 4) 3월에 곡성군(谷城郡) 예산면(曳山面) 장선리(長善里)에 사는 천일관·천일권(千鎰權)·천일표(千鎰杓)가 곡성군수에게 동임(洞任) 이치현(李致鉉)이 침해하지 못하도록 전령(傳令)을 내려 후폐(後弊)를 막아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의 선조 천만리(千萬里)는 임진왜란의 공신(功臣)으로 열성조에서 그의 충의(忠義)를 애석하게 여기고 그의 공렬(功烈)을 밝혀 특별히 화산군(花山君)에 봉하였다. 그리고 그의 얼자(孽子) 천손(賤孫)을 막론하고 잡역을 면제시키라는 전교(傳敎)와 완문(完文)을 내려서 거주하는 곳에서 별 폐단없이 혜택을 받아왔다. 그러나 천일관 등이 근래 우거하고 있는 곡성군의 임장(任掌)이 간혹 침해하여 여러 차례 정소(呈訴)하여 은택을 입었다. 그런데 동학란 이후로 인심이 전과 같지 않아 동임 이치현이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고 관령(官令)을 거역하여 내정(內庭)에 당돌하게 들어와 밥솥을 거둬 갔다. 이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정소하여 동임에게 전령을 내려 뒷날에 생길 폐단을 막아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곡성군수는 3월 11일에 형리(刑吏)에게 '동임에게 전령을 내려 금지시키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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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최남두(崔南斗)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南斗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6년 9월 11일에 생 최남두가 노진영에게 자신이 상대의 거처에 찾아가지 못했던 사유를 전하고 제2기 호쇄 세금 수취와 관련하여 현 상황을 전하는 내용으로 쓴 서간. 1936년 9월 11일, 생(生) 최남두(崔南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이 상대의 선헌(仙軒)에 가지 못했던 사유를 전하고 자신이 하는 일로 연락을 드리지 못할 것 같다는 내용으로 쓴 편지이다. 상대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층층 어른들이 모두 전과 같이 지내신다고 인사했다. 드릴 말씀은 어제 선헌(仙軒)으로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지만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며 매우 민망하다고 했다. 이번 2기 호쇄(戶刷) 세금은 귀하의 몫은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다며 그 날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지역 내무주임의 징수(徵收) 계획안을 보니 첫째는 면서기의 출장근무 성적을 본다는 것, 둘째는 각 부락의 호쇄 세금납부원중에 일자를 경과한 분량을 일일이 기재하여 복명(復命)하도록 했다고 한다며 모든 출장원이 면소(面所)에 매일 있어야 해서 소식을 전하기가 어렵다며 양해 해 주기를 청했다. 나머지 이야기는 조만간 만나 뵙고 하겠다며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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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全南 光山郡 芝山面 日谷里盧 軫永 殿(피봉_뒷면)黃海 甕津郡 西面內 錢山里貞峴洞盧秉來 疏上敬.(중봉_앞면)疏上盧 碩士 大孝 苫前盧秉來 謹封(簡紙)頓首再拜. 禮書之外, 復有何言.患候雖云沈重, 意謂以若淸粹之氣節, 溫潤之德行, 百歲康寧, 以待此生之一晋門屛, 復承德音矣. 遽至於此, 今焉已矣. 何痛如之, 何恨如之. 秉來自前秋拜辭之後, 常欲上書者久, 而於焉未遂于今. 雖有莫及之嘆, 奈何. 伏惟尊哀孝心純至, 哀慕諭節, 想必毁瘠矣. 伏願俯從禮制, 勿犯古人傷孝之戒, 如何. 秉來 自二月初客居於同郡交井面愼氏家, 與六七冠童, 以爲消遣法也. 而本第去來, 則數月一番, 故前者 貴從前上禮書式, 不免怱遽失節,惶恐惶恐. 今又以道途之遠, 不卽奔哭, 只以一紙替唁, 是豈百世宗誼深知之道乎. 忉恒不已. 想應誠敬之所占得何處, 牛眠之地否. 德門百靈所助自副, 古人所云吉人逢吉矣. 來惟以此仰祝而已. 令允諸玉無瑕善侍善課否. 此總是急於情私哀遑中, 敢此仰煩 恕諒焉. 封中誄詞一首, 以文短意拙不能道 先德之萬一, 伏悚伏悚耳. 餘姑此, 不備疏上.庚辰七月二十九日, 族末 秉來 再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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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병래(盧秉來)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秉來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7월 29일, 노병래가 노종룡의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그 아들 노진영에게 보낸 위장. 1940년 7월 29일, 노병래(盧秉來)가 동족 친척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을 위문하는 내용으로 그 아들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위문편지이다. 위장의 투식으로 작은 글자로 적은 위장(慰狀)으로 상대가 뜻하지 않게 흉변을 당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심에 자신이 놀랐다는 것, 효심 많은 상대가 얼마나 마음 아프며 어떻게 견디고 있느냐는 것, 어느덧 10일 정도가 지났는데 애통함이 어떠하냐는 것, 억지로 죽을 먹는 등의 예제(禮制)를 잘 따르도록 하라는 것, 자신은 길이 멀어 끝내 위문을 가지 못했다며 죄송한 마음을 전하는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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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劣한 姻弟를 사랑ᄒᆞ여주시난 우리兄임이시여 千萬意外ᄋᆡ 만지정찰을 밧자오니깁분마음충양할수업사오며 감격한바는 일필난기로소이다 光陰이 如流함이여 사정업시도라가난디 구은발서五六年이라하는 名稱을부르게되오니 그므엇이라고ᄒᆞ오며 엇더타고 仰達ᄒᆞ오릿가 兄임의書中ᄋᆡ하신말삼엇지아니情海오며 엇지아니感謝하오릿가 天下기술家와 絶代미술家의기관으로도 이不順不孝를지은 寅燮事實은 能히 그와가치 화유치못ᄒᆞ리로다 ᄃᆡ저우충비열한姻弟는 지식도 물질도 경제도 아모것도 상관업시 풍조ᄋᆡ 쏘여 海外낭유지인이 되얏사오니 얼마ᄶᅳᆷ用恕ᄒᆞ여주시기를 바람이다거번ᄋᆡ 인제의 소관사로 촌향을 나가서 근이ᄀᆡ월만ᄋᆡ 도라오니 귀중하신 형임의 정찰을ᄇᆡ견켸 되엿슴이다 근심추량ᄋᆡ기체후만강하시고 가ᄂᆡ제절이다ᄐᆡ평하시온지 원ᄋᆈ봉축무이로소이다 姻弟은 旅劣이므량하오니 시위복ᄒᆡᆼ이오며從此이후난 여차우둔비열도覺今是而昨非를 사량하것사오니 될수인난ᄃᆡ로 종속키환국하기를 하계오며 餘은복축형임기체후 ᄂᆡᆯ강건하시기상서舊十月 日姻弟奇寅燮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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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山君 芝山面 日谷里▣軫永氏殿(피봉_뒷면)潭陽君 大德面 聲谷里金 連 洙(簡紙)盧生員丈氏前 上書.拜謁後日富하오니 下懷伏悵이로소이다. 伏未審臘寒侍餘氣體候萬康하시며 大小家도 均安하심을멀니 伏慕區區, 下誠之至로소이다. 小生은 丈氏으惠澤을 받어 丈氏으 孫兒地燮과 熱心으로 工夫하다가 小生은 放學을 當하와 無撓而歸省하■(와)〔야〕보니祖母主氣力도 建康하시고 父母氣力도 康健하시고大小家內가 다 無頉하옵니다. 丈氏으 遠念之德澤으로 思想함니다. 그러고 小生으 父親께서도 如此한時期에 地燮과 함깨 熱心으로 工夫하라고 命令하옵시니 德澤과 命令을 生覺하고볼지라도 永久熱心으로 工夫하라고 注意함니다.地燮이도 丈氏指導下에서 熱心으로 工夫할줄로 생각함니다. 사뢸말쌈만흐오나 上學日字臨迫하엿기로 躬進拜辞키로 不備上白是.昭和拾參年壹月五日, 小生 金 連洙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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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노호용(盧灝容)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灝容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0년 9월 20일, 족생 노호용이 노진영에게 아버지 노종룡의 장례를 위문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편지. 1940년 9월 20일, 족생(族生) 노호용(盧灝容)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아버지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장례를 위로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편지이다. 자신의 가문 사람인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상에 장례가 끝난 뒤 위문하는 내용으로 상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예제를 잘 따라서 효자의 몸을 보전할 것과, 자신이 직접 갔어야 하지만 길이 멀어 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위장의 투식에 따라 작은 글자로 얇은 종이를 이용하여 썼으며 노호용이 거주하던 곳은 경남 합천군 초계면(草溪面) 유하리(柳下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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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섭(奇寅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奇寅燮 姻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10월에 인제(姻弟) 기인섭(奇寅燮)이 처형(妻兄)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10월에 인제(姻弟) 기인섭(奇寅燮)이 처형(妻兄)에게 보낸 간찰이다. 처형이 보내준 편지를 받고 몹시 기뻤던 심경으로 인사를 시작하였다. 편지에서 하신 처형의 말씀이 매우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자신이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효도하지 못한 사실은 세상 최고의 기술자나 미술가라 하더라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라 자책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세상 풍조에 휩쓸려 고향을 나가 해외로 유랑하는 사람이 된 것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달라고 하였고, 서늘한 가을 날씨에 처형의 건강을 축원하였으며, 자신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본국에 돌아갈 계획임을 전하였다. 편지는 국한문혼용으로 작성되었고, 피봉이 없어서 기인섭이 어느 나라에서 보내온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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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付郵書 仰想入覽矣 謹更請經體萬旺 寶節均休 仰頌無射 弟功服人 方以寒感見苦 自憐自㭗耳 就先生事 庶有進行之方針 而自院主僻以下七賢子孫中孤雲靈川子孫 不必委託 宋訥菴家 則其門內有力權利人 何負於責任 兩金氏丁鄭家 亦如右委託 受諾 郡警兩廳事 鄙弟與儒林 擔當責任爲意 則事雖難矣 似爲圖謀 而大抵千秋血食賜額院配享事 豈可容易耶哉 非人揚解事者 不能者矣 至於武城院配享通章 則自貴邊善文之人許 全?碍眼文字 只以道德文章辭意善述抄件惠送 如何如何 且承諾二百円金 覽此書卽時速惠 如何如何 秋享費未堪中 因於院畓改築費 悉用計耳 諒哉 如何如何 貴隣鄭玩杓兄許 我二十円剞劂費速送之意勸言 亦爲大望 那兄言內 與仁兄協議付送云矣 然則受賜大矣 餘立俟不備上甲申正月九日 弟功服金成基拜拜【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三一▣…▣軫永兄殿〈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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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에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하는 사안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해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1944년에 정읍 칠보에 사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이 거의 가닥이 잡혀갈 희망이 생겼지만, 서원 유림들이 '서원 향사(享祀)의 제수 비용으로 200원을 받고 승낙하려는데 거사를 벌이기 전에 시일을 끄는 것은 신뢰할 수 없으니 큰일을 어떻게 도모하겠는가.'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고, 자신도 그 말을 듣고서 창피하였다고 심경을 전하였다. 어떠한 일을 막론하고 사람 마음을 먼저 산 뒤에야 큰일을 이룰 수 있는데 천추(千秋)토록 혈식(血食)을 올려 제사지내는 일이 어찌 쉽겠냐고 설득하였다. 자신은 선생을 추배하는 일로 열과 성을 다하여 입술이 닳도록 설득하고 있으니, 형이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돈을 속히 부쳐주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다시 당부하였다. 그리고 돈을 부치는 방법을 설명하기를, 10원을 편지봉투에 같이 넣어서 단단히 봉하고 문자를 표기하여 서류로 부쳐달라고 하였으며, 이는 천인저금(天引貯金)에 관계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너그럽게 양해해달라고 하면서 회신을 기다리겠다고 하였다. 천인(天引)은 대금 중에서 미리 이자 또는 일정액을 제하는 것으로 오늘날 공제저축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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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지(鄭性志)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性志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척제(戚弟) 정성지(鄭性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혼사 문제로 보낸 간찰 모년 11월 20일에 척제(戚弟) 정성지(鄭性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헤어진 뒤로 마음이 쓸쓸했는데 요즘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지난번에 부탁했던 혼사(婚事) 때문에 어제 여형(呂兄)이 자신이 있는 곳에 왕림했기에 당일에 가서 뵙고 인사드리려고 했지만, 며칠 전부터 감기에 걸려 앓고 있어서 뵙지 못했다고 하였다. 여형을 적극 권유해서 보내니 이러한 사정을 헤아려서 서로 잘 합의해서 도모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전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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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재(鄭炯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炯才 盧軫永 炯才(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에 정형재(鄭炯才)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부탁한 약값에 관해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알리는 내용의 간찰 광주(光州) 성저리(城底里)에 사는 정형재(鄭炯才)가 본촌면(本村面) 일곡리(日谷里)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국한문 혼용 간찰이다. 근래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모두 편안하고 가내 여러 식구들도 모두 경사스러운지 물었다. 부탁했던 약값은 6원인데, 약 주인에게 먼저 지불하고 남은 돈이 4원이며, 약 주인이 지금 자신이 있는 광주로 와서 형편이 군색하다고 운운해서 이 돈을 보내려고 했더니 여행 중 부득이한 사용처라고 하기에 김정기(金正基)를 보냈으니 이러한 상황을 너그러이 살펴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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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기사년 3월 20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옥산(玉山)의 노형(老兄)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감기로 찾아뵙지 못하는 상황을 전하는 간찰 기사년 3월 20일에 김극영(金極永)이 보낸 간찰이다. 작별하고 해가 바뀌어 몹시 그리운데 생활은 편안하신지, 아드님은 어른 잘 모시며 집안 식구들 모두 두루 평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달포 전에 화산(花山)을 다니러 갔다가 감기에 걸려 돌아왔고, 이후 더욱 심해져서 십여 일 앓아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가련한 것은 우선하더라도 쇠잔함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종질녀(從姪女)가 이제야 돌아갔지만 그 정경이 차마 보고 싶지 않았는데 노형(老兄)께서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자주자주 타일러서 그 마음을 가라앉혀 줄 것을 당부하였다. 처음에는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면서 늘그막에 한번 만나는 것이 운수에 달렸는가보다고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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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두(崔南斗)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南斗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광주군 지산면사무소의 최남두(崔南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학교의 평의원 선거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6월 30일에 최남두(崔南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먼저 상대방에 대한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염려해주신 덕분에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모시며 사는 생활이 예전 그대로라서 다행이라고 근황을 전하였다. 그리고 내일 7월 1일에 본 학교의 평의원(評議員) 선거가 있는데 그때 본면(本面)의 협의회원도 한 사람도 결석하지 않으니 상대방도 왕림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많은 일로 바쁘더라도 꼭 참석해주기를 당부하면서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하였다. 최남두는 광주군(光州郡) 지산면(芝山面) 면사무소 소속이다. 상대방이 계신 곳에 다시 찾아뵙는 일이 바빠서 겨를이 없었다면서 양해를 바랐고, 왕림할 때 노석림(盧錫琳) 씨를 비롯하여 누구라도 같이 동반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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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배(崔相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培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최상배(崔相培)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의 부친 생신에 초대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6월 9일에 최상배(崔相培)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무더위에 건강은 좋은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이번 달 10일이 자신의 부친 생신이라서 작은 술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니 당일 오후 4시까지 자신의 집으로 왕림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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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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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정묘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자부(子婦)의 상(喪)을 당한 것을 위로하는 내용의 간찰 정묘년 8월 14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고모부의 자부(子婦) 부고를 받고 너무 놀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였고, 평소 자애가 돈독하였는데 이런 역리(逆理)를 당했으니 슬픔과 상념으로 건강에 손상은 없는지 물었다. 가을 날씨가 점점 싸늘해지는데 상중의 생활은 편안하시고 아드님은 잘 견디고 있는지, 그리고 고모님의 근력은 갈수록 쇠약해질 텐데 이런 일들을 자주 겪고 계시니 매우 염려스럽다고 인사하였다. 함종(咸從)이 편안히 모신다니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고, 종질녀가 실낱같은 목숨이 겨우 붙어서 다시 평성(坪城)으로 걸음을 한다고 하니 차마 그 모양을 보고 싶지 않거니와 더욱 가련하여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자신은 마침 산지 문제로 분란이 있어서 분주히 길을 다니느라 고통스러운데 아이들이 무탈해서 다행이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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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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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45_001 기미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인수(仁叟) 형에게 종숙모의 초상과 딸의 죽음을 애도하며 보낸 간찰 기미년 4월 14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인수(仁叟) 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래 소식이 막혀 서운하던 차에 서신이 도착하여 조금 위로가 되었다고 인사하였고, 종숙모(從叔母)의 상(喪)도 천만 뜻밖인데 거기에 따님까지 참혹한 일을 당했으니 너무 놀랍다고 하였다. 노쇠한 연세에 젊은 사람이 이치를 거슬러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마디마디 애간장이 끊어지는 슬픔을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위로하였다. 자신은 모친이 오랜 시간 건강이 좋지 못하여 속이 타들어 가는데 거기에 아내까지 병을 앓고 있어 골치를 썩느라 늙음을 재촉한다고 한탄하였다. 모평(茅坪)의 이야기는 운수에 달렸으니 어떻게 억지로 합하겠냐고 하였다. 성호(星皓) 사촌이 멀리서 찾아와 기뻤는데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작별하게 되어 서운함이 더욱 크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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