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34년 박동환(朴東煥)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東煥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에 康津縣監이 童蒙 朴東煥(1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34년에 康津縣監이 童蒙 朴東煥(1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6년 김재정(金在廷)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廷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46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정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46년(헌종 12)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정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환부(鰥夫) 김재우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9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5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9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가족 구성원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87세 경진생(庚辰生)이다. 아들 기옥(祺玉)은 나이 28세 기묘생(己卯生)이며, 며느리 유씨(兪氏)는 연령 26세 신사생(辛巳生)이고 본적은 기계(杞溪)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로 나이 45세 임술생(壬戌生) 여종 악춘(惡春)이 있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4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묘호구상준인(癸卯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76년 최수갑(崔秀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76 谷城縣監 崔秀甲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76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수갑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76년(고종 13)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수갑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수갑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오가작통 순번은 4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0세 정유생(丁酉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수갑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종득(宗得), 할아버지 학생 덕연(德延), 증조(曾祖) 학생 동룡(東龍), 외조(外祖) 학생 정대익(鄭大益)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최수갑의 아내 이씨(李氏)는 나이 40세 정유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 사고참봉(史庫參奉) 용갑(龍甲), 할아버지 학생 동방(東芳), 증조 학생 광언(光彦), 외조 학생 김영욱(金永郁)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가족으로 아들 동몽(童蒙) 정국(楨國)은 나이 15세 임술생(壬戌生)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는 상원(上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적단자(戶籍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 방식으로 쓰여 있으나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187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유상준인(癸酉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수갑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79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적색, 직방형,12.3×5.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9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82년 박이충(朴以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以忠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2년에 康津縣監이 鰥夫 幼學 朴以忠(5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82년에 康津縣監이 鰥夫 幼學 朴以忠(5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信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子雲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22년 김계현(金啓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啓鉉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22년 호주 김계현의 요청으로 화순현에서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해 준 준호구 1822년(순조 22) 호주 김계현의 요청으로 화순현에서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계현의 거주지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1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6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63세 경진생(庚辰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계현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할아버지 학생 석삼(錫三), 증조(曾祖) 학생 자광(自光), 외조(外祖) 학생 박인삼(朴仁森)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계현의 아내 이씨(李氏)는 연령 63세 경진생(庚辰生)이며, 본적은 전주(全州)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만영(萬榮), 할아버지 학생 우춘(遇春), 증조 진사(進士) 욱(旭), 외조 학생 김대백(金大白)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가족으로 어머니 박씨(朴氏)는 연령 82세 신유생(辛酉生)이고, 아들 동학(東學)은 개명(改名)하여 재우(在宇)이고 나이는 25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며느리 김씨(金氏)는 연령 25세 무오생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21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19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기묘호구상준인(己卯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16년 최덕련(崔德連)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16 谷城縣監 崔德連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16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16년(순조 16)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덕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8통 4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28세 기유생(己酉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덕련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할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증조(曾祖)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외조(外祖) 학생 황경하(黃慶河)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최덕련의 아내 박씨(朴氏)는 나이 29세 무신생(戊申生)이며, 본관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외 소유하고 있는 여종 상원(尙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1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유상준인(癸酉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덕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92년 장계득(張戒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戎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2년(정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戒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2년(정조16) 강진현에서 임자년(1792)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현재 28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천익(張天翼),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올해 8세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3년 장용(張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3년(헌종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張龍)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43년(헌종9) 강진현에서 계묘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64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데리고 살던 27세 딸은 출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임인년(1842)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임인년의 다음 해인 계묘년(1843)이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73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5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3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5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76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8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6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8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95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5년(정조1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5년(정조19) 강진현에서 을묘년(1795)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46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秋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계철(張啓哲)은 22세로 기재되어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68년 장대윤(張大胤)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胤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8년(영조4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胤)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68년(영조44) 강진현에서 무자년(1768)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2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65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모시고 사는 어머니 김씨는 65세이고, 아내인 이천서씨(利川徐氏)는 23세이다. 이어서 이천서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서일태(徐日泰), 조부는 서원적(徐元迪), 증조부는 서계축(徐啓丑), 외조부는 이암극(李諳極)으로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함께 살고 있는 아우 장대운(張大雲)은 현재 19세이다. 호주인 장대윤의 이름자 '胤'은 장대윤의 일련의 호구문서로 보아 '允' 자의 오기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9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9년(헌종1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49년(헌종15)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61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홀아비이고, 동거인은 23세 딸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무신년(1848)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1849년이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시(詩)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谷城居幼學徐永修右謹陳所志寃痛事段本縣曳山面沿江十餘里有一帶柴塲壬子爲始自面中定爲巡山衆力守護每年發賣補用民役以其餘剩買置田土落只數石是加尼昨冬良中奸鄕鄭仁國張啓宇奸校呂善黙訐告官家▣▣(柴塲)及田土並爲奪入屬公於雇馬廳而上有司趙允命柳邦鎭以鄕所之挾告決罪放送爲旀金弼玉金裕玉以貧寒放送爲乎矣矣身段謂有饒名多般威脅氷租六十石及進上所用蔵氷價一百二十兩使矣身白地擔當又稱罰贖錢六十兩公然責納於矣身用之何處是喩此何事理節節可寃最所極痛者非他矣身先塋在於巡山之內龍虎六谷如干松楸所植處納土七斗庫及錢三十兩於面中成文卷買得禁養矣同畓土既入於雇廳而松楸之地渾歸屬公故累次呼訴久未决正是如可舊官臨歸時更呈所志始得許題而所志忽失去處方事推尋之際舊官座首鄭仁國邀請矣身好言誘說曰官家許題吾與有力七十兩錢即今備納則所志當出給亦爲去乙矣身初既切憎於渠輩貽害之事及聞此言峻責其蠧民之害棄置而歸家則夜間兵房軍官吕善黙假托官令私出捉去矣身而出示所志曰所志在吾手錢文三十田〖兩〗速速備來亦爲去乙矣身笑曰所志題辞豈有價直雖三文錢吾無可給之義是如叱退而此寃情呈于 營門則題音內詳査來歷且考本券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是乎旀又呈訴于長水遞歸官家則題音內淸溪一洞已屬民庫而汝矣葬親之地既有買賣文券則不當混入於此中界限之後某至某按券看審後從文券劃給事是乎旀又呈則題音更考事實詳細事是乎矣不顧官題而奸鄕奸校奪其矣身山地發賣年草一百六十五田〖兩〗而六十田〖兩〗皆爲肥己私用餘錢一百兩?稱用雇廳■(而)是乎所自壬子以後發賣文券昭昭是如乎同田土付諸雇馬廳則山地之渾奪萬無其理從文券出給之題下明査是乎旀許多錢穀之無端見失亦豈非其奸鄕奸校之橫政乎並爲實還徵俾免殘氓徹天之寃事 參商處分爲只爲御使道 處分壬申十一月 日〈題辭〉果如所訴則鄭仁[馬牌]暗行御史[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谷城幼學徐永修右謹言事段伏望依完文永久遵行事 參商題給焉去辛未年冬本縣北面巡山與田畓幷爲屬▣(公)於雇廳之際矣身先山塋域當初納畓買得於面中 而畓土旣入於雇廳則山地之混同屬公事理不當是遣巡山有司五六人中以矣身之孤單獨被奸鄕之誣訐 進上所用氷丁錢一百二十兩租六十石及罰續錢六十兩白地徵納事極冤痛故徃呈巡營則題內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所謂徵給者卽指錢穀也推給者卽指山地也昨冬又呈于 使道閤下則題音內果如所訴則鄭仁國張啓宇等事極爲痛惡呂善黙前以此事入於按廉已爲懲治是在果詳査委折取考本券一一推給事行下故到付新縣監則新縣監以法令爲法令取考前後來歷而洞燭徵穀徵錢果如其數山地之給價見奪亦爲的實是遣以爲錢穀已盡民庫今無可推之道山地段龍虎六谷依當初買得本文永久遵行事完文成給是乎所使道以 堯舜之心爲心新縣監以法令爲法令而今則矣身幸蒙 使道明政之澤又蒙官家恤民之惠是如乎矣身買山文券昭然以官家完文明白伏乞參商敎是後依完文永久遵行事題下以杜日後奸鄕中亂法橫侵之習俾無殘氓向隅之怨望只爲 行下向敎是事御使道 處分癸酉三月 日〈題辭〉本官旣已成完文以給今此呈訴可謂衍文事十一日[馬牌]暗行御史[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矣身山地事成完▣…▣內矣身所居北面私自壬子定巡山發賣▣…▣於面中大有功焉再昨冬奸鄕鄭仁國輩誣訐▣▣之山及面中田畓幷爲奪付民庫各年▣…▣所謂以饒居氷租六十石進上所用藏氷價一百二十兩罰錢六十兩公然責納是遣去己巳年分矣身定父山於巡▣…▣錢三十兩於面中成文買得禁養松楸矣以此山地又稱法外廣占不給本價奪付雇廳盖許多錢穀之白地▣…▣項錢穀與山地明査推給亦呈▣▣▣則 巡使道題音內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是乎旀又呈 御使道▣…▣痛惡 兵校呂善黙則前以此事入於按廉已爲懲治是▣▣▣(在果詳)査委折取考本券一一推給宜當事題▣…▣後來歷則狀者之徵穀徵錢果如其數是遣山地之給價見奪亦▣(爲)的實是如乎錢穀與山地出給事分付則▣…▣道山地?依當初定界成完文以給亦爲置依狀者所願▣▣龍虎六谷依本文永永出給之意玆以▣…▣心以法令爲法令切定成給是如乎今則矣身幸蒙特恤之澤推尋山地也更不煩訴是乎矣梧枝面▣…▣武斷鄕曲威脅民財因爲致富爲旀一邑事曰左則左曰右則▣(右)鄕民之畏趙鈒如畏虎傷人害物比比有▣…▣納續昨冬又入於暗行 御使道按廉已被刑杖之境然足水未淸不悛前習更爲出入校院指揮隨從群▣…▣議擧事驩呶臆奪矣身之山地付於雇廳爲計是何用心是何事理乎用山之法入葬者爲主禁養當然而▣…▣前後所呈所志議送完文與本券九張幷以帖連仰訴伏乞▣…▣鈒乱法之習俾無矣身山地已決之下作梗橫侵之地千萬望只爲▣…▣▣(癸)酉三月 日〈題辭〉自本邑査實論報以處向事本官 初四日[官印]▣[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谷城居幼學徐永修右謹陳事段本縣曳山面沿江十餘里有一帶柴塲壬子爲始自面中定爲巡山衆力守護每年發賣補用於民役以其餘剩買置田畓數石落是加尼昨冬良▣(中)有司數人不善擧行是如奸鄕輩訐告官家柴塲及田畓並爲奪入属公於雇馬廳而諸有司決罪放送矣身段謂有饒名多般威脅該面氷丁租六十石及 進上所用價一百二十兩使矣身白地擔當又稱罰贖錢六十兩公然責納於矣身此何事理節節可寃最所極痛者非它矣身先塋在於巡山之內龍虎六谷如干松楸所植處納畓七斗庫及錢三十兩於面中 成文卷買得禁養矣同畓土既入於雇馬廳而松楸之地渾歸属公故屢次呼訴久未决正是如可舊官臨歸時更呈所志始得許題而所志忽失去處方事推尋之際舊官座首鄭仁國邀請矣身好言誘說曰官家許題吾與有力七十兩錢即今備納則所志當出給亦爲去乙矣身初既切憎於渠輩貽害之事及聞此言越添肚氣峻責其誤官蠧民之習棄置而歸家則當日夜間兵房軍官吕善黙假托官令送將校捉去矣身出示所志曰所志在吾手錢文三十兩速速備來亦爲去乙矣身大笑曰所志題辞豈有價直雖三文錢吾無可給之義是如據理叱退舊官發行後徃推所志則吕善黙諉以還納於舊官終不出給爲臥乎所右項凶〖區〗地當初買得既已明白所志有無無甚係關畓土付諸雇馬廳則山地之渾奪萬無其理從文券出給之意 論題行下敎是遣許多錢穀之無端見失亦豈非橫政乎 並爲査實還徵俾免殘氓徹天之怨事 參商處分爲只爲行下向敎是事巡使道 處分壬申六月 日〈題辭〉詳査來歷且考本券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兼官 卄四日[官印]都巡使[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임술년 서경순(徐璟淳)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璟淳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 2월에 곡성현 예산면 신기리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 임술년 2월에 곡성현(谷城縣) 예산면(曳山面) 신기리(新基里)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堂姪)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京主人)에게 전령(傳令)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서경순은 전임 수령의 자손으로 신기리에 세거(世居)하고 있으나 가문이 쇠퇴하고 복이 없어 십 수호도 되지 않은 친족이 모두 가난하게 근근이 사는 처지였다. 올봄 정월에 서울 사람에게 진 빚으로 패가망신한 평지촌(平地村)에 사는 이기무(李基茂)가 노점(路店) 술자리에서 서경순의 당질 연국(延國)을 불러서 이번 한성시(漢城試)에 함께 가자고 하자 당질이 자신은 집이 가난하여 노잣돈이 없어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이기무는 웃으며 자기와 서울로 올라가면 서울 빚 5, 600전을 얻을 수 있고 무과 선달(武科先達)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하였으나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농담으로만 알았더니 이달 12일에 당질 연국과 이기무가 함께 서울로 떠나버렸다. 이에 서경순은 절박한 마음으로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서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청원서에 대해 곡성 수령은 2월 10일에 '경저리(京邸吏)에 전령을 내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