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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3년(영조2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53년(영조29) 강진현에서 계유년(1753)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50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장구전(張九田), 외조부는 김선안(金善安)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김해김씨(金海金氏)는 50세이다. 김해김씨의 아버지는 김애련(金愛連),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95세이고, 아들 대언(大彦)은 12세, 성언(聖彦)은 8세이다. 장무량의 관련 호구문서인 1744년과 1747년 준호구에는 첫째 아들 태언(泰彦)이 있었는데 이 문서에는 빠져있다. 혼인하여 분가하였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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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7년(헌종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37년(헌종3)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9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으로 21세 딸이 있으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장지성의 3년 전에 작성된 호구문서와 비교하면 딸의 나이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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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9년(영조3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59년(영조35) 강진현에서 기묘년(175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5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장구전(張九田), 외조부는 김선안(金善安)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김해김씨(金海金氏)는 56세이다. 김해김씨의 아버지는 김애련(金愛連),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사망하여 고(故)로 표시하였고, 아들 대언(大彦)은 분가하여 각호(各戶)로 표시되어 있다. 둘째 아들 성언(聖彦)이 14세로 함께 살고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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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9년(정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9년(정조13) 강진현에서 기유년(178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42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40세로 기재되어 있으나 관련문서로 보아 42세의 오기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秋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매철(張賣哲)은 16세이다. 장매철은 관련 호구문서로 보아 장계철(張啓哲)의 오기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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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0년(헌종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40년(헌종6)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52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홀아비로서 동거인으로 15세 딸이 있다. 문서의 첫 행에 도광 18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장지성의 일련의 호구문서를 통해 볼 때 오류로 보인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기해년(1839) 8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기해년의 다음 해인 경자년(1840)으로 추정하였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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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2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0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2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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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1년(순조31)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31년(순조31)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3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인 18세 딸인 아지(阿只)는 출가하였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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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장천익(張天翼)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天翼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천익(張天翼)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천익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張大允)에서 개명한 장천익은 현재 42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이고,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42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현(鄭武賢)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현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선(鄭武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일인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22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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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장용이(張龍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1년(순조31)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이(張龍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31년(순조31) 강진현에서 신묘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이는 현재 52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가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14세인 딸 하나가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경인년(1830)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경인년의 다음 해인 신묘년(1831)이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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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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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박재영(朴載榮)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榮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榮(38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58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榮(38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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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박재영(朴載榮)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榮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5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榮(35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55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榮(35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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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영규(朴榮圭)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榮圭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榮圭(2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0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榮圭(2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載熹 祖 學生 麟洙 曾祖 學生 碓俊 外祖 學生 任直權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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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최동룡(崔東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10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10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10년(순조 10)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10통 1호이다. 최동룡은 양인(良人)이고 올해 나이는 62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贈通政大夫工曹叅議)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63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아기(阿只)가 있으며, 그의 나이는 9세 계해생(癸亥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현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07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묘식상준인(丁卯式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동룡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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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토지전당명문(土地典當明文) 고문서-증빙류-전당문기 張明化 張明化<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논 4두락지를 전당 잡히고 100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전당문기 1902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급한 용처가 있어서 전당잡히게 되었는데, 서면(西面) 대평리(大坪里) 방하교(防下橋)에 있는 려자(麗字) 논 2두락지는 70냥에, 그리고 다른 2두락지의 논은 30냥으로 값을 쳐서 100냥을 빌렸다. 전당 기한은 다음해 12월 말일까지로 하였고, 그 안에 갚지 못하고 기한을 넘기게 되면 상대방이 그대로 차지하는 것으로 하였다. 다만 그 논에서 도조(賭租)로 받는 곡식은 전례대로 주고받으며, 훗날 다른 이야기를 할 경우 이 문서가 증빙자료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다른 증인이나 필집(筆執)은 참석하지 않고 장명화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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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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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장지성(張指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指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순조1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指誠)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9년(순조19) 강진현에서 기묘년(181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지성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지성은 현재 31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이다. 처(妻)에 대한 정보는 없으며, 5살이 된 딸 아지(阿只)가 기재되어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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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22년 장철봉(張哲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哲奉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2년(순조22)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哲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22년(순조22) 강진현에서 임오 식년의 호적단자를 확인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9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철봉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73세이다. 장철봉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장녀 아지(阿只)는 출가하였고, 대신하여 호구에 올린 차녀 아지는 11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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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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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최성규(崔成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崔成奎 風憲 趙 風憲 趙 [着名] [着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인년 9월 사동 오리에 거주하는 유학 전주 최성규의 준호구 경인년 9월 사동(巳洞) 오리(五里)에 거주하던 유학(幼學) 최성규(崔成奎)의 78세(갑술생) 당시 준호구이다. 그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지낸 최학(崔㶅)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낸 득인(得仁), 증조(曾祖)는 증병조참의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인 처렴(處濂)이다. 외조(外祖)는 학생(學生) 임광록(林光祿)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처(妻) 김씨(金氏)는 나이 78로 호주와 같은 나이이며 본적은 김해(金海)이다. 처부(妻父)는 학생 지민(志珉), 처조(妻祖)는 통훈대부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을 지낸 김후(金后)이며, 처증조는 학생 치옥(致玉), 처의 외조는 학생 황천추(黃千秋)로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거느리던 식솔로는 아들 유학(幼學) 광훈(光爋, 41세), 그의 아내인 나주 임씨(林氏, 46세), 조카 유학 광룡(光龍, 30세), 조카의 아내 진주 하씨(河氏, 26세)이다. 거느리던 노비로는 노1구와 죽은 여종 1구를 기록했다. 관의 서압과 문서를 기록한 사람으로 보이는 풍헌(風憲) 조(趙)의 착명(着名)이 있다. 관에서 통계를 낸 기록으로 붉은 글자로 14통(統) 4호(戶)가 적혀 있다. 합철되었던 흔적이 구멍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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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張太興 張太興<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장태흥(張太興)이 도내(島內) 서면(西面) 방하교(防下橋)에 있는 자신의 논 2두락지를 누군가에게 전당(典當) 잡히고 전문(錢文) 40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수기 1904년 장태흥(張太興)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논을 전당 잡히면서 작성한 수기이다. 장태흥은 도내(島內) 서면(西面) 방하교(防下橋)에 있는 여자(如字) 자호의 논 2두락지를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왔는데, 금년 겨울에 긴히 쓸 곳이 생겨서 부득이 이 논을 전당 잡히고 전문(錢文) 40냥을 빌렸다. 전당 기한은 다음해인 을사년(1905) 7월까지로 하였다. 이 기한 안에 돈을 갚지 못하면 그대로 방매한다는 뜻으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증인이나 필집 없이 장태흥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04년 최동룡(崔東龍)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1804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04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 1804년(순조 4)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곡리(雲臥谷里) 13통 1호이다. 최동룡은 양인(良人)으로 올해 나이는 56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贈通政大夫工曹叅議)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는 본관이 동복(同福)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57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최동룡이 모시고 살던 어머니 오씨(吳氏)는 사망하였으며, 아들 덕련(德連)의 나이는 16세 기유생(己酉生)이다. 이 문서는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등이 찍혀있지는 않으나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외조 오태위에 대한 주기(註記)가 있어 1801년에 작성한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 최덕련에게 다시 돌려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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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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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13년 최덕련(崔德連)의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崔德連 谷城縣監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13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의 준호구 1813년(순조 13)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것이다.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2통 1호이다. 호주 최동룡(崔東龍)이 죽어 그를 대신해 아들 최덕련이 호주가 되었다. 최덕련의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25세 기유생(己酉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할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증조(曾祖)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외조(外祖) 학생 황경하(黃慶河)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최덕련의 아내 박씨(朴氏)는 나이 26세 무신생(戊申生)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그녀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소유 노비는 여종 상원(尙元)이고 나이는 24세 경술생(庚戌生)이다. 이 문서는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등이 찍혀있지는 않으나 문서 하단에 '경오식상준인(庚午式相凖印)'이 기재되어 있어 경오년인 1810년에 작성한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 최덕련에게 다시 돌려준 준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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