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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0년(정조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0년(정조4) 강진현에서 경자년(1780)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77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6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현(鄭武賢)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현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현(鄭武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6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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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재풍(張載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載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載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장재풍은 본래 홀아비였던 장계득(張啓得)의 사망으로 인하여 대신 호주가 되었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29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홀아비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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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장철봉(張喆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喆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3년(순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喆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3년(순조13) 강진현에서 계유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0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4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4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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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장재풍(張再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再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순조1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再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9년(순조19) 강진현에서 기묘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38세로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앞의 준호구들에 나온 '장재풍(張載豊)'과 동일인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한량(閑良)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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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계중(稧中) 토지전당명문(土地典當明文) 고문서-증빙류-전당문기 張明化 張明化<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0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밭 2두락지를 계중(稧中)에 전당을 잡히며 작성한 전당문기 1900년 장명화가 서계전(書稧錢) 14냥 3전을 마련할 길이 없어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상자(霜字) 밭 2두락지를 계중에 전당을 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이다. 전당 기한은 절월(節月)을 기한으로 하였으며, 이 기한을 넘기게 되면 밭을 팔아서 보태도 좋다는 약속을 하였다. 다른 증인이나 필집은 없이 장명화가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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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박장현(朴章鉉)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章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광무 3) 2월에 강진군수 신성휴가 기록한 고군내면 약산리 4통 3호에 거주했던 박장현의 46세 당시 호적표. 1899년(광무 3) 2월에 강진군수(康津郡守) 신성휴(申性休)가 46세 박장현(朴章鉉)에게 발급한 호적표이다. 같은 집의 전년도 호적표에는 호주가 박장현의 아버지 박재빈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호주가 바뀐 것으로 보아 그 사이 박재빈이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박장현이 살았던 주소는 전라남도 강진군 고군내면(故郡內面) 약산리(樂山里) 제4통 제3호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아버지는 재빈(載彬), 할아버지는 천익(千益), 증조는 웅준( 碓俊), 외조는 김쾌갑(金快甲)이다. 이전 구호적과 다른 점은 외조 및 자신의 처, 어머니 등의 본관을 기록하지 않은 점과 처의 4조(祖)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함께 살던 식솔로는 어머니 김씨, 아내 김씨, 아들 윤원(潤瑗), 윤원의 처 김씨, 둘째아들 윤통(潤統), 셋째아들 윤성(潤成), 넷째아들(潤玉)이다. 딸 1명도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현존인구는 남7명, 여4명, 도합 11명이다. 집은 자신의 소유 초가 3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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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康津郡守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樂山里 4統 1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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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37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37년(헌종 3)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재우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0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연령 40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78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재영(在榮)은 나이 27세 신미생(辛未生)이다. 제수[嫂] 박씨는 연령 27세 신미생(辛未生)이고 본적은 밀양(密陽)이며, 아들 용탁(龍鐸)은 나이 19세 기묘생(己卯生)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36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호구상준인(甲午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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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박씨(朴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37 谷城縣監 朴氏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37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37년(헌종 3)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寡婦)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박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4통 1호이다. 올해 나이는 65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가족으로 아들 유학 최종득(崔宗得)은 나이 41세 정사생(丁巳生)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 상원(尙元)은 나이 54세 갑진생(甲辰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관인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상준인(甲午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박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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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장대은(張大銀)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銀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9년(정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은(張大銀)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9년(정조13) 강진현에서 기유년(178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은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은은 현재 38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처(妻) 한씨(韓氏)는 34세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처의 아버지는 한덕영(韓德永), 조부는 한신재(韓信載), 증조부는 한득계(韓得戒), 외조부는 김상원(金尙元)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솔녀(率女)로는 올해 6세인 딸 금상(今相)이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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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9년(영조3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59년(영조35) 강진현에서 기묘년(175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18세이고 직역은 업무(業武)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밀양최씨(密陽崔氏)는 20세이다. 밀양최씨의 사조는 칸이 비어있다. 장대언의 아버지인 장무량의 같은 해 호구단자를 보면 장대언이 분가하였다고 적혀 있는데, 이로써 장대언이 혼인하여 따로 호주가 되어 첫 번째로 작성된 호구단자임을 알 수 있다. 장대언의 다른 준호구에는 아내 최씨의 본관이 초계(草溪)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밀양은 오류인 것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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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장대은(張大銀)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銀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2년(정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은(張大銀)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2년(정조16) 강진현에서 임자년(1792)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은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은은 현재 41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처(妻) 한씨(韓氏)는 37세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처의 아버지는 한덕영(韓德永), 조부는 한신재(韓信載), 증조부는 한득계(韓得戒), 외조부는 김상원(金尙元)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솔녀(率女)로는 두 딸이 올라 있는데, 9세 금상(今相)과 6세 아지(阿只)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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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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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8년(영조4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68년(영조44) 강진현에서 무자년(1768)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27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최씨(崔氏)는 29세이고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최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최경천(崔擎天), 조부는 최효남(崔孝男), 증조는 최학수(崔鶴壽), 외조부는 김수성(金守星)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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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47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47년(영조2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47년(영조23) 강진현에서 정묘년(1747)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44세이고 직역은 군관(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장구전(張九田), 외조부는 김선안(金善安)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김소사(金召史)는 44세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김소사의 아버지는 김애련(金愛連),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89세이고, 아들 태언(泰彦)은 14세, 둘째 아들 대언(大彦)은 6세, 셋째 아들 성언(聖彦)은 2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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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6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37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37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金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계철(張啓哲)은 13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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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6년(영조32)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56년(영조32) 강진현에서 병자년(175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5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장구전(張九田), 외조부는 김선안(金善安)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김해김씨(金海金氏)는 53세이다. 김해김씨의 아버지는 김애련(金愛連),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사망하여 고(故)로 표시하였고, 아들 대언(大彦)은 15세, 성언(聖彦)은 11세이다. 장무량의 관련 호구문서인 1744년과 1747년 준호구에는 첫째 아들 태언(泰彦)이 있었는데 이 문서에는 빠져있다. 혼인하여 분가하였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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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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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89년 장계득(張啓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9년(정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啓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9년(정조13) 강진현에서 기유년(178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직역이 대변군관(待變軍官)인 장태익(張泰翼)의 사망으로 인하여 아들로서 대신 호주를 이었는데, 현재 25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태익,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이다. 어머니인 김씨도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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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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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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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40년 장용(張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0년(헌종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張龍)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40년(헌종6) 강진현에서 경자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61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데리고 살던 누이는 출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기해년(1839) 8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기해년의 다음 해인 경자년(1840)이다. 그러므로 1행의 도광(道光) 18년은 도광 20년의 오기로 봐야 한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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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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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0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은 15세 딸인 아지(阿只)가 있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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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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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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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86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이씨(李氏)는 46세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이중이(李重伊), 조부는 이선용(李善用), 증조는 이봉하(李奉夏), 외조부는 김연분(金延分)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딸 아지(阿只)는 14세이고 둘째 아들 연금(延金)은 11세이다. 장대언의 이전 준호구에는 처가 초계최씨(草溪崔氏)로 되어 있다. 경주이씨는 초계최씨가 사망한 뒤에 두 번째로 얻은 부인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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