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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41년(영조1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41년(영조17) 강진현에서 신유년(1741)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38세이고 직역은 수군(水軍)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양인(良人)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구전(九全)으로 모두 양인이다. 외조부는 업무(業武)로 본관이 김해인 김선안(金善安)이다. 처 김소사(金召史)는 38세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소사(召史)는 주로 양인 신분의 여성에 붙여 일종의 직역처럼 신분을 드러내는 용어로 쓰인다. 한자어는 아니며 한글 고문서 등을 참고해보면 당시인들이 '조이, 조리, 죠이, 됴이' 등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김소사의 아버지는 김애연(金愛延),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83세이고, 아들 금생(今生)은 8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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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3년(정조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3년(정조7) 강진현에서 계묘년(1783)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34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34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秋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계철(張啓哲)은 10세인데, 장대운의 호구 문서에 처음 등장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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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장대운(張大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雲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4년(영조5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雲)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74년(영조50) 강진현에서 갑오년(1774)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24세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다. 처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으로 보아 혼인하지 않고 분가한 것으로 보인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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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장재풍(張載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載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3년(순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載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3년(순조13) 강진현에서 계유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32세로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행현감의 압 아랫부분 여백이 도할(刀割)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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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장지성(張指誠)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指誠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순조19) 장지성(張指誠)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819년(순조19)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指誠)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원래의 호주였던 장득철(張得哲)이 사망하여 동성(同姓) 사촌인 장지성이 대신 호주가 되었으며, 현재 나이는 31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다. 아버지는 한량(閑良)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아내가 없는 홀아비로서 다섯 살인 딸 아지(阿只)만 기재되어 있고 처(妻)에 대한 정보는 없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因),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은 없이 하단에 '서(書)'라고 쓰여 있어 확인 후 다른 대장(大帳)에 올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문서는 기묘식년의 호적대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실제 작성은 반년 전인 무인년(1818)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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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0년(정조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0년(정조4) 강진현에서 경자년(1780)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31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31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金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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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7년(정조1)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77년(정조1) 강진현에서 갑오년(1777)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74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0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선(鄭武善)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선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현(鄭武賢)으로 기재되어 있어 오자(誤字)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3세인데, 장대윤의 호구 문서에 처음 등장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는데 흐릿하여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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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득철(張得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得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득철(張得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득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47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언(張大彦)은 현재 69세로 동거하고 있으며, 조부는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최경천(崔敬天)으로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장득철의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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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계철(張啓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철(張啓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철은 현재 37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된 장대운(張大運)으로 61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1세이다. 장계철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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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장인오(張仁五)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張仁五 張文守 □…□ 4顆 (적색, 원형, 1.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묘년 장인오(張仁五)가 장문수(張文守)에게 105냥을 받고, 받은 사실을 명시한 수표 계묘년 12월 초6일에 장인오(張仁五)가 장문수(張文守)에게 받을 150냥 가운데 105냥을 우선 받고 그 사실을 명시한 영수증 성격의 수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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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장득철(張得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得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득철(張得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득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득철은 현재 57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언(張大彦)은 76세로 사망하였으며, 조부는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최경천(崔敬天)으로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데리고 사는 식구는 15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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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장만순(張蔓純)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張蔓純 黃雲仲 □…□ 2顆 (적색, 원형, 2.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만순(張蔓純)이 황운중(黃雲仲)에게 발급한 자문 신축년 장만순(張蔓純)이 황운중(黃雲仲)에게 160냥을 전해 받은 것을 확인해주는 영수증 성격의 척문이다. 피봉에 있는 황운중의 주소는 신지면(薪智面) 대평리(大平里)이다. 이 돈은 신축년에 족보 발간을 위해 족보 책값을 수금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문서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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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童蒙敎官 朴載彬(63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1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童蒙敎官 朴載彬(63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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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4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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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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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박재빈(朴載彬)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광무 2) 전라남도 강진군수 신성휴가 작성한 강진군 고군내면 약산리 4통 3호에 거주한 유학 밀양 박재빈의 70세 당시 호적표. 1898년(광무 2) 전라남도 강진군 고군내면(故郡內面) 약산리(樂山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밀양 박재빈(朴載彬)의 70세 당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조선왕조의 구호적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작성하게 된 대한 제국의 호적부 양식으로 광무 연간 직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광무연간에 주로 시행되었으므로 광무호적이라고 한다. 한 호에 한 장의 '호적표'를 작성하여 그것을 지역단위로 묶어서 책자로 편철하였다. 본 문서는 그 중 일부인 전남 강진군 고군내면 약산리 제4통 제3호에 거주했던 박재빈(본관 밀양)의 70세 당시 호적표이다. 그의 직업은 유업(儒業)이다. 생부, 조, 증조, 외조의 란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동거친속으로는 처 김씨, 아들 장현(章鉉), 그의 부인 김씨, 손자 윤원(潤瑗)과 그의 부인 김씨, 차손 윤통(潤統)과 윤성(潤成), 윤옥(潤玉)과 딸 1명(이름이 기재되지 않음)이 기재되어 있다. 고용하고 있던 사람으로는 남자 1명이 있었기에 총 인구가 남7, 여4, 합계 11로 기재되어 있다. 살고 있던 집은 자신의 소유 초가 3칸과, 빌린 초가 5칸으로 총 초가 8칸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지막줄에는 광무 2년 2월에 군수 신성휴(申性休)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寄口: 男 口 女 口 雇傭: 男1口 女 口 現存人口: 男七口 女四口, 共合: 十一口 家宅 : 己有 瓦 間 草 三間, 借有 瓦 間 草五間, 共合: 八間 光武二年二月 日 郡守 申性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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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박씨(朴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34 谷城縣監 朴氏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34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34년(순조 34)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寡婦)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박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6통 1호이다. 올해 나이는 62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가족으로 아들 유학 환부(鰥夫) 최종득(崔宗得)은 나이 38세 정사생(丁巳生)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 상원(尙元)은 나이 51세 갑진생(甲辰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관인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31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신묘식상준자(辛卯式相凖者)'가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박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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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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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4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34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 34)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호주 김재우는 김상우(金相祐)에서 개명(改名)했으며,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37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연령 37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75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상채(相彩)의 개명 재영(在榮)은 나이 24세 신미생(辛未生)이며,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33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31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신묘호구상준인(辛卯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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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46년 장지성(張至誠)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至誠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6년(헌종12) 장지성(張至誠)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846년(헌종12)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장지성은 현재 나이는 58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아내가 없는 홀아비이고, 딸 아지(阿只)는 21세로 출가하였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因),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이 없다. 이 문서는 병오식년의 호적대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실제 작성은 반년 전인 을사년(1845) 9월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16년 장철봉(張哲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哲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哲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3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7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7세이고, 딸 아지(阿只)는 10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3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3년(정조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3년(정조7) 강진현에서 계묘년(1783)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9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사망하여 고(故)로 표시되어 있고,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9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현(鄭武賢)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현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선(鄭武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일인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9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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