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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조진익(趙鎭翊)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卯 十二月 三日 趙鎭翊 辛卯 十二月 三日 趙鎭翊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1년 12월 3일에 조진익(趙鎭翊)이 사돈 될 사람에게 연길 날짜와 의복 치수 등을 전하는 간찰(簡札) 1891년 12월 3일에 조진익(趙鎭翊)이 성명 미상의 사돈이 될 사람에게 혼례에 관한 내용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지를 받고서 겨울비로 평소와 다른 때에 정양하시는 안부가 한결같이 좋으심을 알았으니 위안되고 하례 드림으로 제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연길의 날짜가 장애가 없어서 다행이고 옷의 치수는 말씀하신 대로 써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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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이면용(李冕用)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未 十二月 二十六日 李冕用 二拜 乙未 十二月 二十六日 李冕用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5년 12월 26일에 이면용(李冕用)이 사돈이 될 사람에게 안부를 물으며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895년 12월 26일에 이면용(李冕用)이 성명 미상의 사돈이 될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대의 소식을 항상 그리워하였는데 지난번에 저의 동생이 당신을 뵙고 소식을 전하여 지금까지 위안이 됩니다. 삼가 요즈음에 존장의 안부는 만복하신지요? 우러러 그리운 마음 지극합니다. 다만 사돈이 되는 일은 성대한 허락을 입어서 스스로 분수에 되돌아보니 매우 감사합니다. 사주단자를 편지로 보내주시는 것이 어떠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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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1년 김계영(金啓英)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豊 元年十二月二十四日 金啓英 玉暹 咸豊 元年十二月二十四日 金啓英 玉暹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1년 12월 24일에 답주 김계영(金啓英)이 안씨 노(奴) 옥섬(玉暹)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1년 12월 24일에 답주 김계영(金啓英)이 안씨 노(奴) 옥섬(玉暹)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전래해오던 답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긴요하게 쓸 일로 보성 문전면 아랫길의 덕봉촌 앞 학자(學字) 2두락지 부수 12복(卜)5속(束) 1야미(夜味)를 전문 65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김계영이며, 증필은 김계오(金啓五)이다. 이름 아래에는 수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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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0년 이우용(李瑀容) 입안(立案) 고문서-증빙류-입안 光武四年十一月日 掌禮院 光武四年十一月日 掌禮院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0년(광무 4) 11월에 이우용(李瑀容)의 입후(立後) 허락 청원에 장례원(掌禮院)에서 이를 승인하면서 발급한 입안(立案) 1900년(광무 4) 11월에 이우용(李瑀容)의 입후(立後) 허락 요청에 장례원(掌禮院)에서 이를 승인하면서 발급한 입안(立案)으로 계후(繼後)를 승인하는 문서이다. 장례원경 조정희(趙定熙)의 명의로 발급되었는데, 보성 유학 이면용(李冕容)의 적첩(嫡妾)이 모두 자식이 없어 그의 동생제(同生弟) 우용의 아들 교성(敎成)을 후사로 삼고자 하는 청원을 승인한 것이다. 보성 유학 이우용은 그 가문의 문장(門長) 진사 이병용(李秉容)과 함께 올린 소사(訴辭)가 모두 적실하고, 경국대전 입후조를 상고하니 관련 규정이 수록되어 있어 그 허락을 요청하였더니 광무 4년 11월 28일에 아뢴 대로 하라고 하여 입안을 발급한다고 하였다. 왼쪽의 상중하단에는 담당자들인 경(卿), 장례(掌禮), 주사(主事) 2명의 날인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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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사주를 기록한 별지(別紙) 고문서-시문류-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두 사람의 사주(四柱)가 기록된 별지(別紙) 무오년생의 사주 앞에는 부모 생존 여부와 얼굴색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사주 다음에는 운세를 점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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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98년 임창준(林昌俊)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三年 ▣…▣日 畓主 林昌俊 林順白 處明文 嘉慶三年 ▣…▣日 林昌俊 林順白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98년에 임창준(林昌俊)이 임순백(林順白)에게 논 1두락을 3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798년에 임창준(林昌俊)이 임순백(林順白)에게 여러 해 갈아먹던 논 1두락을 3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3년 모월 모일 임순백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내가 스스로 매득(買得)한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필요한 일이 있어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앞들에 있는 부(夫) 자(字) 논 1두락(4부 6속)을 35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 만일 잡담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임창준(林昌俊)[착명]. 증인 이정채(李丁采)[착명]. 작성자 선한재(宣漢載)[착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_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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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제갈량의 장원(將苑)과 유신(兪莘) 글의 사본 고문서-시문류-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제갈공명(諸葛孔明) 선생과 중국 당나라 유신(兪莘) 등의 글 3편을 베껴놓은 잡기 제갈공명(諸葛孔明) 선생의 글은 사람을 알 수 있는 일곱 가지를 온량공검(溫良恭儉)의 성(性)과 관련지어 설명한 「장원(將苑)」 지인성(知人性)편이며, 유신의 글은 천지오행(天地五行)의 빼어난 존재인 사람의 인의(仁義)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또 하나는 작자를 알 수 없지만, 역시 인의예지에 대한 간단한 의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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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九月念三日 再從姪 李鐺 李敎成 辛丑九月念三日 李鐺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025 1921년 9월 23일에 재종질(再從姪) 이당(李鐺)이 자금(資金) 200원을 임시로 차송해 주시면 빚을 갚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숙부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남평(南平)으로 여행중인 몸이 왕성하심을 알았다. 재종질인 자신은 동서로 분주하게 다니며 하나도 이루는 것이 없고 양식이 떨어져 죽으려고 해도 죽을 곳이 없고, 집안 식구들도 어깨를 움츠리면서 지내니 만약 집안에 자금(資金) 200원을 임시로 차송해 주시면 빚을 갚을 수 있다. 이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어려운 듯하다. 그믐날 안에 집에 있으면 왕림해 주시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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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 十月初七日 再從姪 李鐺 李敎成 辛丑 十月初七日 李鐺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10월 7일에 재종질(再從姪) 이당(李鐺)이 곡식값의 폭등과 토지가격의 추락, 금전(金錢)의 예조(預兆) 등에 관한 내용으로 숙부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이미 찾아와 주시고 또 이렇게 안부까지 물어주심에 연성(鍊成)이 간절하다고 하고 행패(行斾, 행차)가 순조롭기를 빌었다. 재종조부, 조모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러 번 음식이 자주 비어 슬픈데다가 며느리도 잘 먹지 못하여 오래도록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보낸다고 하였다. 시세(時勢)는 곡식값이 다음 달 사이에 폭등할 것이니 기일을 잃지 말아야 하고 토지가격은 이후에 매우 떨어질 것이다. 금전(金錢)이 도로 막힐 기미가 있어 은행에서 이미 거둬들인 예조(預兆)가 있었다고 하였다, 쌀의 시세는 이 달부터 다음 달까지 좋거나 좋지 않거나 할 것이라고 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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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이정호(李禎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之菊秋重陽 李禎鎬 李喪制敎成氏 庚之菊秋重陽 李禎鎬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40년 음력 9월 9일 이정호(李禎鎬)가 이교성(李敎成)에게 연죽의 금액 및 선불의 필요성을 알리는 간찰(簡札) 1940년 음력 9월 9일 이정호(李禎鎬)가 정읍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상중의 안부를 묻고 부탁한 연죽의 금액 및 선불의 필요성을 알리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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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이교영(李敎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戌 九月 二十九日 弟 李敎永 戊戌 九月 二十九日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015 1898년 9월 29일에 동생 이교영(李敎永)이 산림계(山林契)와 판술(判述) 조카와의 의논이 후회막급이라는 등의 내용으로 형에게 보내는 간찰(簡札)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동생인 자신은 어제 행산(杏山) 신기(新基)에 저녁에 도착하여 밥을 재촉하여 먹을 때 의논한 것이 어두워서 걷기에 어렵다고 하고, 다만 산림계(山林契) 운운한 말은 중지하는 것이 어떻겠는지를 물었다. 이는 진실로 세상의 인심과 사물의 균형을 조제(調濟)하지 못해 중심을 잃은 소치이니 편하지 못하며, 어제 판술(判述)의 조카와 돌아가는 길에 의논한 것은 후회막급이라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중지(中紙, 품질이 중간치인 배지)를 얻었으나 또한 기록하여 답하기 어려워 일봉의 미지(尾紙)를 태정(胎呈)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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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이교영(李敎永) 협지(夾紙)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戌 九月 二十九日 李敎永 戊戌 九月 二十九日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015 1898년 9월 29일 이교영(李敎永)이 보낸 간찰에 동봉하여 어제 저녁 들은 말을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한 모양의 같은 형세라 후회가 그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판술(判述) 조카에게 유시(喩示)한 협지(夾紙) 어제 저녁 들은 말을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한 모양의 같은 형세라 후회가 그치지 않는다. 이는 스스로 재촉하여 모최(某崔) 모이(某李)에게 우리 계제(階梯)를 잃게 한 것이니 스스로 땔나무를 지고 불에 들어가 석상을 세우는 것과 같고, 김도직(金道直)이 보증한 말과 더욱 잘못된 것이다. 이번의 거조(擧措)를 모두 그치는 것이 어떠하냐는 것과 뒤에 다시 얼굴을 보고 상세히 말하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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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동식(金東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丑絲卄四日 弟 金東植 李敎成 氏 丁丑絲卄四日 金東植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5년 12월 24일에 사생(査生) 김동식(金東植)이 모양(牟陽)의 김씨 집안의 세덕(世德)을 탐문해 보았다는 내용으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5년 12월 24일에 사생(査生) 김동식(金東植)이 이교성(李敎成)씨에게 연양[牟陽 高敞]의 김씨 집안의 세덕(世德)을 수처에 탐문해 보라고 부탁하셔서 알아보았다는 내용으로, 안부를 여쭙고 난 후,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다만 부탁하신 연양의 김씨 집안의 세덕을 수처에 탐문하니 화평부원군(化平府院君)이 본조에 들어와 누에치고 길쌈하는 것도 끊이지 않았고, 황룡(黃龍)이 화평형제에게서 분파되었으며, 그 선대는 본 고을 북쪽에서 현 사는 곳으로 이주하였고, 다른 단서는 없다고 하였다. 현재 그 마을 이름은 법주(法珠)인데 또한 다 믿을 수 없으니, 다시 자세히 탐문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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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유학 이기두(李箕斗) 준호구(準戶口)(72세) 고문서-증빙류-호적 己卯 李箕斗 己卯 李箕斗 전라남도 보성군 周挾改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09 1879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유학 이기두에게 보성군에서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79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유학 이기두에게 보성군에서 발급한 준호구(準戶口)이다. 내용은 호주와 그의 처의 가족구성 그리고 천구질(노비 명단)로 구성되어 있다. 호주와 그의 처의 사조(四祖)는 동거 가족이 아니라, 당시의 호적제도에 따라 기재한 것이다. 문전면은 보성군에 속한 면이다. 리명과 통호수의 기재는 생략하였다. 호주는 이기두인데, 직역이 유학(幼學)이며, 나이가 72세(무진생)이고 본관이 성주이다. 그의 사조는 부(父)가 유원, 조가 국진, 증조가 규명이며, 직역이 모두 학생이다. 외조는 나상좌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금성이다. 호주의 처는 이씨인데, 나이가 68세(임신생)이며 본관이 전의이다. 그의 사조는 부가 승식, 조가 의현, 증조가 지찬이며, 직역이 모두 학생이다. 외조는 윤범은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함안이다. 호주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규용이다. 직역이 유학이고 나이가 31세(기유생)이다. 며느리는 조씨인데, 나이가 36세(갑진생)이며 본관이 한양이다. 천구질에는 비 1명만이 기재되어 있는데, 곧 둑덕(32세)이다. 왼쪽 끝에는 보성군수의 서압(署押)이 있으며, 하단에는 장방형의 '주협개인(周挾改印)'의 묵인(墨印)을 뉘어서 찍었다. 주협개인은 주협과 개인 사이에 '자(字)' 혹은 무(無)'자를 써넣어 호주가 제출한 단자에 수정이 가해졌는지의 여부를 증명해주어야 하나 이를 생략했다.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 아래에는 큰 글씨로 붉은색의 '준(準)'자를 썼으며 그 위에 관인을 찍었다. 끝의 기묘식(己卯式)은 기묘식년의 호적대장을 가리키며, 이를 근거로 호구단자의 사실 여부를 증명하였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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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田面 第里 可川村 第統第戶幼學 李箕斗 年七十二戊辰 本星州 父 學生 有源 祖 學生 國鎭 曾祖 學生 奎明 外祖 學生 羅商佐 本錦城 妻 李氏 齡六十八壬申 籍全義 父 學生 承植 祖 學生 懿鉉 曾祖 學生 志粲 外祖 學生 尹範殷 本咸安 子 幼學 圭容 年三十一己酉 婦 趙氏 齡三十六甲辰 籍漢陽賤口秩 婢 㪲德 年三十二己卯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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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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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유학 이기두(李箕斗) 준호구(準戶口)(75세) 고문서-증빙류-호적 壬午 李箕斗 壬午 李箕斗 전라남도 보성군 周挾改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09 1882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유학 이기두에게 보성군에서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82년 문전면 가천촌에 사는 유학 이기두에게 보성군에서 발급한 준호구(準戶口)이다. 내용은 호주와 그의 처의 가족구성 그리고 천구질(노비 명단)로 구성되어 있다. 호주와 그의 처의 사조(四祖)는 동거 가족이 아니라, 당시의 호적제도에 따라 기재한 것이다. 문전면은 보성군에 속한 면이다. 리명은 생략하고 통호수는 붉은색으로 8통 4호라 썼다. 호주는 이기두인데, 직역이 유학(幼學)이며, 나이가 75세(무진생)이고 본관이 성주이다. 그의 사조는 부(父)가 유원, 조가 국진, 증조가 규명이며, 직역이 모두 학생이다. 외조는 나상좌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금성이다. 호주의 처는 이씨인데, 나이가 71세(임신생)이며 본관이 전의이다. 그의 사조는 부가 승식, 조가 의현, 증조가 지찬이며, 직역이 모두 학생이다. 외조는 윤범은인데, 직역이 학생이며 본관이 함안이다. 호주에게 아들 둘이 있는데, 장자가 규용이다. 직역이 유학이고 나이가 34세(기유생)이다. 맏며느리는 조씨인데, 나이가 39세(갑진생)이며 본관이 한양이다. 차자는 우용인데, 직역이 유학이며 나이가 25세(무오생)이다. 둘째며느리는 나씨인데, 나이가 29세(갑인생)이며 본관이 금성이다. 천구질에는 비 2명과 노 1명이 기재되어 있다. 비는 둑덕(35세)과 분심(21세)이며, 노는 부문(15세)이다.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는 장방형의 '주협개인(周挾改印)'의 묵인(墨印)을 거꾸로 찍었다. 주협개인은 주협과 개인 사이에 '자(字)' 혹은 무(無)'자를 써넣어 호주가 제출한 단자에 수정이 가해졌는지의 여부를 증명해주어야 하나 이를 생략했다. 하단에는 큰 글씨로 붉은색의 '준(準)'자를 썼으며 그 위에 관인을 찍었다. 끝의 임오식(壬午式)은 임오식년의 호적대장을 가리키며, 이를 근거로 호구단자의 사실 여부를 증명하였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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