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병오년 평산신씨(平山申氏) 연길단자(涓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平山申氏 郭生員 平山申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73_001 병오년 10월 26일 신부측 신의균(申義均)이 신랑측인 곽생원에게 보낸 연길 병오년 10월 26일 신부측 신의균(申義均)이 신랑측인 곽생원에게 보낸 연길이다. 혼인 날짜는 11월 19일이다. 이 연길을 보내면서 같이 보낸 혼례 관련 간찰이 함께 전한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元吉十一月十九日際丙午十月念六日平山申[着名](皮封)涓吉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5년 임이택(林二澤)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林二澤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5월 23일에 시생 임이택이 노진영에게 경성 유학생활의 안부와 포부를 전한 국한문 혼용 서간. 1935년 5월 23일, 시생(侍生) 임이택(林二澤)이 존장(尊丈)이신 노진영(盧軫永)에게 경성 유학생활의 안부와 포부를 전한 국한문 혼용 서간이다. 남쪽에서 훈풍이 부는 이때 농촌은 이앙으로 분주할 것인데 가뭄이 심하여 걱정이 많으실 것이라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즈음 상대와 집안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자신은 객지에서 먹고 지냄이 여전하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드릴 말씀은 상경을 하면서 의당 찾아가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편지도 드리지 못하고 2개월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편지 한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객지를 떠나 지내니 부모의 은혜가 바다와 산과 같음을 알겠다며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은 고시에서 말한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 관학(關學)을 함에 성공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돌아가지 않고, 뼈도 묻지 않는다. 인간세상 도처에는 청산(靑山)이 있다.'라고 한 대로 자신이 성공을 하지 않는다면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로 맹세 했다며 자신의 빈약한 집안 형편은 당신이 잘 살펴서 부조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발신자 임이택이 당시 거주했던 곳은 경성부 계동(桂洞) 15-11을 주소로 하는 극동연예공론사(極東硏藝公論社)였다. 그곳에서 발행한 세로줄 규격편지지 2장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피봉_앞면)全南 光州郡 芝山面 日谷里…▣軫永氏宅 入納(피봉_뒷면)京城府 桂洞一五ノ一. 一極東硏藝公論社林二澤 上書昭和拾年六月貳拾參日(簡紙)(1)薰風南來에 至於一草一木이 方流陰濃하니 正是伸夏之節이오이다.此時農村은 移秧에 奔走할 것인대 旱魃에 甚하니 農軍의 煩腦가 不能無耳.玆際에侍體候 一向萬康하압시며 閤內諸節이均安하압시잇가. 伏慕區區不任下誠之至로소이다. 侍生은 客裡眠食이 如一하니是爲伏幸伏幸이로소이다.就伏白 上京之時에 宜當進拜謁이어늘時間의 餘有가 無하와 不如意하와 一片之紙札이라도 失禮之事올 記告코저 하얏드니其도 亦遲滯하와 勿趨二箇月한 至於今애僅僅問候하오니 罪悚不已오이다. 然而客裡애 拘於諸事하야 抽身無暇하니無所逃罪나 不避之事로소이다.父母膝下에서 不羨之事하야 無意識으로 一日一日을 浪遊消日이러니 自離膝下로 當則困難하니 父母之恩이 如山如海함을 今覺不已애 欲報罔極(2)이로소이다. 男兒當當하 如此之境遇을 當하야야만 眞人間이 됨을 今悟에 人間味가此處에서 發하나이다.古詩에 「男兒立志出鄕關學, 若不成, 死不還.埋骨, 豈唯墳墓地. 人間到處有靑山.」이라하니 男兒處世上에 碌碌히 塵土에 뭇처 썩어지고 말이요 分骨碎身하야도 不成功이면不下鄕키로 盟山誓海하앗스니 若不成功이면 何面目으로 故鄕의 山川을 對하며 父母와友人을 對하리요.貧弱한 侍生의 家形便을 잘 視察하와 扶助함에 益益甚타하오니 不然이라 善知할바이오니家事는 尊丈主게심을 밋고 侍生의 所關事만 熱中이 하리오니 何日何時에 頭戴月桂冠하고 錦衣還鄕하야 諸尊丈과 友人을 對하리요.茫茫하오니다.餘萬은 益益康健하심을 伏祝하옵고 不備上白하압나니다.昭和十年五月二十三日, 侍生 林二澤 頓首再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0년대 김성기(金成基)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0년대 金成基 盧軫永 金成基(1.0×1.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0년 음력 8월 4일, 제 김성기가 무성서원 재장인 노진영에게 정읍 무성서원 원지 소식과 비용 등의 문제로 보낸 서간. 1930년 음력 8월 4일, 제(弟) 김성기(金成基)가 무성서원 재장(齋長)인 노진영(盧軫永)에게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 원지(院誌) 간행 관련 소식과 비용을 청구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적조했던 소식과 가을이 함께 깊어지고 있다며 음력 8월의 상대 아버지, 상대,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3년 전부터 무성서원 원지 중간 교정일로 골몰하고 있다며 이제야 교정을 마치고 남북도 사람들에게 800여질을 찍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겠냐고 했다. 상대방 댁의 원지 건수 및 고운선생(孤雲先生) 영정을 봉안한 것, 형의 건수 등이 합쳐서 9단(單) 이라며 이를 잘 기록해 놓았다고 했다. 1단(單)의 값은 3엔씩 경찰서에서 정하였으므로 형이 낼 돈은 27엔이라는 것, 그러나 배씨에게 횡령당한 돈 10엔을 제하면 17엔이라는 것, 만약 기서발 등에 1장을 덧붙일 경우 한 사람당 10엔 씩으로 정하였다고 했다. 결론으로 17엔을 내 줄 것을 청하면서 만약 내지 않는다면 다음에 새로 만드는 원지는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그 뜻을 아버지께 전해 줄 것을 청했다. 또한 법제(法製)한 소합환(蘇合丸) 30개를 함께 보내니 필요한 상황에서 사용하길 바란다고 했다. 제관(祭官)의 망첩(望帖)도 함께 보내니 이번 추향제에 참석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며 편지를 마쳤다. 원지의 중간(重刊) 교정소(校正所)는 정읍군 칠보면 2리에 있는 무성서원에 있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06년 의인이씨(宜人李氏) 분급문기(分給文記) 2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宜人李氏 羅晩命 羅斗冬<着名>, 金珝<着名>, 金瓚<着名>, 金珽<着名>, 羅晩運<着名> 宜人李氏(4.5×4.8), □…□ 3顆(6.0×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37_001 1706년 2월 27일에 계모(繼母)인 의인이씨(宜人李氏)가 죽기 전에 나만명(羅晩命) 등 3남매(男妹)에게 노비(奴婢)와 전답(田畓)을 상속해 주면서 작성한 분급명문(分給明文). *사유: 목숨도 얼마 남지 않고 남편의 遺言이 있어서 *대상: 家翁考妣祭位條(奴婢 2口, 田畓 약32斗落), 家翁內外祭位條(奴婢 1口, 田畓 약18斗), 翁前室亡子晩復祭位條(田畓 4斗5卜5束), 長女婿學生高璟衿(奴婢 2口, 田畓 약12斗), 次女婿幼學金壽益衿(奴婢 1口, 田畓 약13斗), 子晩命衿(奴婢 6口, 田畓 약25斗) *참여자: 財主 繼母 宜人李氏, 證 家翁同姓八寸弟 生員 羅斗冬, 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珝, 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瓚, 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珽, 筆 家翁同姓七寸姪 幼學 羅晩運 *背面: 1751년 2월에 務安縣에서 高益晉이 외가에서 받은 奴 好生의 良妻 소생 奴婢 2口와 그 後所生을 魯行三에게 7냥을 받고 방매한 사실을 증빙하는 背頉斜給立案이 표기 *상태: 앞부분 일부 결락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06년 의인이씨(宜人李氏) 분급문기(分給文記) 1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宜人李氏 羅晩命 羅斗冬<着名>, 金珝<着名>, 金瓚<着名>, 金珽<着名>, 羅晩運<着名> □…□(4.5×4.8), □…□ 2顆(5.3×5.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37_001 1706년 2월 27일에 재주인 계모 의인이씨가 가옹의 대상을 마친 뒤에 가옹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재산 등을 가옹의 유지에 따라 가옹의 부모·가옹 내외·전처에게서 낳은 죽은 아들의 제위조 및 전처에게서 낳은 두 딸과 양자에게 각 몫을 나누어 지급하면서 작성한 재산상속 문서 1706년(숙종 32) 2월 27일에 재주(財主)인 계모(繼母) 의인이씨(宜人李氏)가 가옹(家翁)의 대상(大祥)을 마친 뒤에 가옹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재산 등을 가옹의 유지(遺旨)에 따라 가옹의 부모·가옹 내외·전처(前妻)에게서 낳은 죽은 아들의 제위조(祭位條) 및 전처에게서 낳은 두 딸과 양자에게 각 몫을 나누어 지급하면서 작성한 재산상속 문서이다. 의인이씨의 가옹이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흘러 이제 막 대상까지 끝나 차마 말할 수 없이 비통하였다. 가옹에게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만 있고 후사(後嗣)가 없었는데 늦은 나이에 양자(養子)를 얻어 선조(先祖)의 제사를 의탁할 곳이 있게 되었으나 미처 집안 일을 다 처리하지 못하였다. 가옹이 임종할 때에 제위조 및 자녀에게 나누어 줄 땅과 노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누이의 아들인 김찬(金瓚)에게 글자를 쓰게 하게 하여 조목별로 열거해 놓았다. 이에 한결같이 가옹이 남긴 뜻에 따라 각 자녀에게 몫을 나누어 상속하고 분재기를 작성하였는데, 전처에게서 낳은 죽은 아들인 만복(晩復) 또한 제위조가 없어서는 안되기에 그의 제위조를 후록(後錄) 하였다. 각 제위조와 각 자녀별 상속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옹 부모의 제위조는 여종 1구, 종 1구, 논 15마지기 68짐, 밭 21마지기 등 97짐 9뭇이다. 이 제위조는 전에 이미 구획하여 정해 놓았으나 문서로 작성하지 않아 이 문서에 함께 기록해 두었다. 가옹 부부의 제위조는 종 1구, 논 21마지기 88짐 5뭇이며, 전처에게서 낳은 죽은 아들 만복의 제위조는 논 2마지기이다. 장녀의 남편 학생 고경(高璟)의 몫은 여종 1구, 종 1구, 논 10마지기 30짐 9뭇, 밭 3말 5되지기, 차녀 남편 유학 김수익(金壽益)의 몫은 여종 덕이(德伊) 1구, 논 10마지기 25짐 7뭇, 밭 4말 2되지기 7짐 6뭇이다. 이중 여종 덕이는 사위 이름으로 산 것이지만 가옹이 살아있을 때에 값을 지급하여 사게 한 것이므로 지금 이 몫 안에 기록하니 나중에 의심하지 말 것을 추록하였다. 양자 만명(晩命)의 몫은 종 4구, 여종 2구, 논 28마지기 등 54짐 1뭇이다. 이중에 가옹 남매가 몫으로 받은 전답과 노비는 모두 가옹의 어머니가 처분한 것을 따라 나눈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세월만 보내다가 미처 문서를 작성하지 못하여 지금 이 문서를 작성할 때에 강옹의 여러 누이의 아들들이 함께 참여하여 착명(着名)하므로 마땅히 이 문서로 훗날의 증거로 삼을 것을 추록하였다. 또 도망 노비는 소명(小名)으로 문서 왼쪽 아래에 열거해서 적어두므로 내외 자손 중에서 추심한 자가 반을 갖고 그 나머지 반은 손자에게 갖도록 하되 1구만을 추심한 경우에는 모두 손자가 갖도록 하였다. 도망 노비의 수는 종 4구, 여종 2구이며, 이노곡(伊老谷)에 있는 약간의 전답은 몫으로 나누기에는 양이 너무 적고, 죽은 아들 만복의 장지는 너무 먼 곳에 있어 영원히 외로운 혼으로 만들었으므로 너무 불쌍하다. 이에 장차 선산의 산기슭으로 묘를 옮길 계획이므로 그때 이장 비용으로 이노곡을 팔아서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을 문서 끝에 기재하였다. 이 문서를 작성할 때 참여한 사람은 재주인 계모 의인이씨를 비롯하여 증인으로 가옹의 동성(同姓) 8촌 동생인 생원 나두동(羅斗冬), 이성(異姓) 3촌 조카인 유학 김후(金珝), 유학 김찬(金瓚), 유학 김정(金珽) 등 4인 및 이 문서를 작성한 필집 가옹의 동성 7촌 조카 유학 나만운(羅晩運)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康熙四十五年丙戌二月二十七日 子女等處 衿給明文右文爲區處事 顧余命道窮簿 家翁謝世 而日月荏苒 再朞此過 罔極之▣(痛) ▣▣▣(不忍言)是在果 家翁只有前室所生兩女 而不幸無嗣是如可 晩得繼子▣使先祀有托 而未及處置家事 ▣▣▣幽明之憾 尤如何哉 家翁臨終之時祭位條及子女處分給田民曲折 使甥姪金瓚執筆條列爲有如乎 一依家翁遺意 子女處衿給成文是在果 前室亡子晩復段置 亦不無祭位 故其位畓後錄爲去乎 日後如有雜談之弊 則持此卞正事家翁考妣祭位條婢己化二所生婢次香年十八己巳 三所生奴次生年十三甲戌 大安路下黃字畓六斗落二十六卜九束 東門外冬字畓路下七斗落 路上二斗落 並四十一卜一束 南門外閏字田太六斗落二作 並三十四卜八束 川越淡字田牟九斗落十四卜二束 家垈地字田三作 並四十四卜八束 南山底天字田三卜三束 印 此祭位条 則家翁先妣 曾已區處定出 而無成文之事乙仍于 並錄於此文中家翁內外祭位條婢己化一所生奴仁生年二十六辛酉 伏巖己字畓七斗落三十五卜七束 能字畓三斗落十一卜五束 得字畓四斗落十四卜七束 欲字畓七斗落二十六卜六束 印家翁前室亡子晩復祭位條曲江松亭坪松字畓十二斗落三十二卜五束內西邊■■■■■■■(二斗落五卜五束) 南平德谷面萬淵坊築底字畓七斗落內下邊二斗落 印 ■■■■■■■■■■■■■■■■■■■■■■■■■■■■■■■■■■■■■■■■■■■■■■■■■■■■■■■■■■■■■■■■■■■■■(此南平畓二斗落段 余之同生兄克梅請以 桃川畓二斗落隨便相換 故先以南平畓成文以給 而桃川畓 則尙未及捧相換明文是置 從後捧明文次知 故如許曲折 並爲載錄事長女婿學生高璟衿買得婢好禮年二十五壬戌 同婢一所生奴好生年四癸未 曲江面松亭坪事字畓五斗落十七卜四束 同坪松字畓十二斗落三十二卜五束內東邊五斗落十三卜五束豆叱洞髮字田二斗落七卜六束 松亭坪○字田一斗五升落 印 院後洞牟奴 ○字畓四斗落段 買得時 以渠之谷物給價 故特爲加給事次女婿幼學金壽益衿買得婢德伊年二十四癸亥 曲江面松亭坪松字畓五斗落十二卜二束 同坪松字畓十二斗落三十二卜五束內中邊五斗落十三卜五束 松亭舊基前田二斗落七卜六束 松亭坪○字田一斗五升落 印 此婢德伊段 雖以女婿名買得 而家翁生時 備給婢價 使之買得 故今爲載錄於分衿中 日後子孫中 勿以此致疑事子晩命衿買得奴武鶴年二十九戊午 婢金德一所生奴萬伊年五十一丙申 婢得香二所生奴牟老年三十三甲寅 買得婢桂月年四十八己亥 同婢一所生奴非里年十一丙子 二所生婢淡禮年八己卯 曲江面松亭坪■■■■■■■■■■■■■■■■■■■■■■■(事字畓二斗落 豆叱洞髮字畓十斗落四作 幷五十卜七束) 南平德谷面鐵冶坪雙橋下暑字畓七斗落二作 幷三十一卜四束 登乃村前洪字畓五斗落二十一卜七束 南平石面城基洞○字畓九斗落 堡坪文字畓七斗落二十九卜 印此亦中 家翁娚妹衿得田民 一遵家翁先妣處置分執已久 而遷延歲月 未及成文爲有如乎 今此成文時 家翁之諸甥姪 同參着名 則亦當以此後考事又此亦中 逃亡奴婢小名列書左下爲去乎 內外子孫中 推尋者 一半執持爲遣 其餘一半 則使孫執持 而一口叱分推尋 則都執宜當事逃奴婢買得奴禮奉年五十一丙申 買得婢接上年七十三甲戌 同婢一所生奴忠老年五十二乙未 買得奴夢立年五十丁酉 婢延西非一所生奴日龍六十九戊寅 二所生婢近介年三十八己酉 印又此亦中 伊老谷略干田畓 極爲零星乙仍于 不得分給於各衿是去乎 家翁前室亡子晩復 旣葬遠地 永作孤魂 情所可矜是在果 來頭將欲移葬於先壠之麓 其時賣用宜當事際財主 繼母 宜人李氏[圖署]證 家翁同姓八寸弟 生員 羅斗冬[着名]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珝[着名]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瓚[着名]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珽[着名]筆 家翁同姓七寸姪 幼學 羅晩運[着名]○ 연결문서1706년 의인이씨(宜人李氏) 분급문기(分給文記) 11706년 의인이씨(宜人李氏) 분급문기(分給文記) 2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康熙四十五年丙戌二月二十七日 子女等處 衿給明文右文爲區處事 顧余命道窮簿 家翁謝世而 日月荏苒 再朞此過 罔極之痛 有不忍言是在果 家翁只有嫡室所生兩女 而不幸無嗣是如可 晩得繼子 可使先祀有托 而未及處置 家翁人事倏變 幽明之憾 尤如何哉 家翁臨終之時 祭位條及子女處 分給田民曲折 使甥姪金瓚執筆條列爲有如乎 一依家翁遺意 子女處衿給成文是在果 前室亡子晩服段置 亦不無祭位 故其位畓後錄爲去乎日後如有雜談之弊 則持此卞正事家翁考妣祭位條婢己化二所生婢次香年十八己巳 三所生奴次生年十三甲戌 大安路下黃字畓六斗落二十六卜九束東 門外冬字畓路下五斗落路上二斗落並四十一卜一束 南門外閏字田太六斗落二作並三十四卜八束 川越淡字田牟九斗落十四卜二束 家垈地字田三作並四十四卜八束 南山底天字田三卜三束 印此祭位条 則家翁先妣曾己區處定出 而無成文之事乙仍于 並錄於此文中家翁內外祭位條婢己化一所生奴仁生年二十六辛酉 伏巖己字畓七斗落三十五卜七束 能字畓三斗落十一卜五束 得字畓四斗落十四卜七束 欲字畓七斗落二十六卜六束 印家翁前室亡子晩復祭位條曲江松亭坪松字畓十二斗落三十二卜五束內西邊二斗落五卜五束 南平德谷面萬淵坊築底 字畓七斗落內下邊二斗落 印如許曲折並爲載錄事長女婿學生高璟衿買得婢好禮年二十五壬戌 同婢一所生奴好生年四癸未 曲江面松亭坪事字畓五斗落十七卜四束 同坪松字畓十二斗落三十二卜五束內東邊五斗落十三卜五束 豆叱洞髮字田二斗落七卜六束 松亭坪 字田一斗五升落 印院後洞牟奴 字畓四斗落段 買得時 以渠之谷物給價 故特爲加給事次女婿幼學金壽益衿買得婢德伊年二十四癸亥 曲江面松亭坪松字畓五斗落十二卜二束 同坪松字畓十二斗落三十二卜五束內中邊五斗落十三卜五束 松亭舊基前田二斗落七卜六束 松亭坪 字田一斗五升落 印此婢德伊段 雖以女婿名買得 而家翁生時 備給婢價使之買得 故今爲載錄於分衿中 後子孫中勿以此致疑事子晩命衿買得奴武鶴年二十九戊午 婢金德一所生奴萬伊年五十一丙申 婢得香二所生奴牟老年三十三甲寅 買得婢桂月年四十八己亥 同婢一所生奴非里年十一丙子二所生婢淡禮年八己卯 曲江面松亭坪事字畓二斗落 豆叱洞髮字畓十斗落四作幷五十卜七束 南平德谷面鐵冶坪雙橋下暑字畓七斗落二作幷三十一卜四束 登乃村前洪字畓五斗落二十一卜七束 南平石面城基洞 字畓九斗落 堡坪文字畓七斗落二十九卜 印此亦中 家翁娚妹衿得田民 一遵家翁先妣處置分執已久 而遷延歲月 未及成文爲有如乎 今此成文時家翁之諸甥姪同參着名 則亦當以此後考事又此亦中 逃亡奴婢小名列書左下爲去乎 內外子孫中推尋者 一半執爲遣 其餘一半 則使孫執持 而一口叱分推尋 則都執宜當事逃奴婢買得奴禮奉年五十一丙申 買得婢接上年七十三甲戌 同婢一所生奴忠老年五十二乙未 買得奴夢立年五十丁酉 婢延西非一所生奴日龍六十九戊寅 二所生婢延介年三十八己酉 印又此亦中 伊老谷略干田畓 極爲零星乙仍于 不得分給於各衿是去乎 家翁前室亡子晩復旣葬遠地 永作孤魂 情所可矜是在果 來頭將欲移葬於先壠之麓 其時賣用宜當事際財主 繼母宜人李氏[印]證 家翁同姓八寸弟 生員 羅斗冬[手決]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珝[手決]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瓚[手決]家翁異姓三寸姪 幼學 金珽[手決]筆 家翁同姓七寸姪 幼學 羅晩運[手決]○ 연결문서1706년 의인이씨(宜人李氏) 분급문기(分給文記) 11706년 의인이씨(宜人李氏) 분급문기(分給文記) 2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李時濬贈通政大夫丞政院左副丞旨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李圭行爲通政大夫敦寧府都正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李普升贈嘉善大夫戶曺參判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李仁烈贈通政大夫兵曺參議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崔氏贈淑夫人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依法典從夫職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朴氏 贈淑夫人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依法典從夫職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姜氏 贈淑夫人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依法典從夫職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徐氏 贈貞夫人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依法典從夫職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爲通政大夫行敦寧府都正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贈通政大夫承政院左副承旨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通政大夫行敦寧府都正 祖考依法典追 贈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贈通政大夫兵曹參議者光緖十八年十月 日[施命之寶]通政大夫行敦寧府都正 曾祖考依法典追 贈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