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5640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行狀 私姓朴氏諱公達字大觀其先系出新羅中移江陵爲江陵府人新羅功臣大阿飡堤上之後曾祖諱自儉端川郡事祖諱中信永興判官考諱始行司諫院司諫妣英陽南氏生員邁之女生二男公其季也公以成化庚夤生公稟性醇謹端慤孝友篤至雖隆寒盛暑整服危坐擇言而發鄉黨稱爲善士焉中乙卯生員之後修身飭行堅㘴讀書不復治擧子業金冲菴雅聞公及公之堂侄遂良公之名丙子秋自楓岳來訪曾無一面之素各言姓名始相親款留數日而歸贈詩以别之有曰相逢捿隱䖏此地卽蓬瀛江海扁舟月飄浮一客星趣添皆骨遠眼入鏡湖青分手又千里馬前霜葉零盖以隱逸許公也及還朝力薦之中廟十四年正德己卯朝廷選孝廉時京外所薦一百二十人上御勤政殿命題策問取金湜等二十八人而公居丙科第十八是年拜弘文著作歴兵曺佐卽及士林嬰禍羣小指以薦科爲非公而罷之公退居江陵卜築沙月與三可結爲道義之交朝夕來徃講劘經學樂以忘世家下海口有岸斗起二公日遊其上樹以松栢世號曰雙閒亭兩家隔溪時或水漲不能揭厲則各於岸上隔水對㘴舉杯相勸興盡乃已三可堂先公而卒公作文以哭之有雙閒亭月萬古長明之句公廢處二十餘年至仁廟元年嘉靖乙巳命復薦科除承文校撿而辭不就明廟卽位之初李芑仁鏡等啓罷薦科宣廟元年隆慶戊辰李公浚慶等以雷霆之變啓復薦科還公本職先媤尚領相震巡按關東就訪之退而語人曰斯人如玉壺秋水其推重如此公初號江湖晚號四止堂又號四休嘗自解四止之義曰坐止髙陰下歩止蓽門裏所食止園葵大懽止穉子其閒淡自適之趣可見公贈沈漁村詩曰不堪眼軟思君淚雖處江湖之遠而愛君忠國之誠末甞少渝也年八十餘而卒鄉入立祠于社以鄕七賢享祠焉公卽其一也其後朴醫俗軒民獻按莭關東追慕两先生遨遊自得之趣親訪古迹溪山幽閴松檜隱暎雙閒亭宛然如昨乃嘆賞不已使畫師啚其形勝而歸公天資甚髙慕道希賢出而爲一世之所宗處而爲一鄕之矜式非有力學篤行也實能如是乎四休先生遺稿終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聾軒事蹟【附】 公韓億秋字德叟江陵人也三可先生之從子四休先生之族孫生扵成化癸丑性至孝又承家庭之訓薫陶旣摯觀感甚敏父有七年之病聞野鴨可醫號泣禱天至誠求之忽有一雙鴨飛下扵門前小井公以石投之兩鴨墜取以供進病郞蘇快後又以病氣絶公呼天㫁指以進而卽甦孝感上聞明廟朝㫌閭遂擧孝廉官至清風郡守號聾軒卒于嘉靖庚申享年六才八 右出家乗朴億秋江陵人也誠孝出天父有七年之病聞野鴨可醫至誠求之一日有两鴨坐井氷上投石俱獲以進父嘗之病愈後又以病氣絶公呼天㫁指以進郞甦恭憲大王朝以孝㫌閭 右出三綱行實揚蓬萊士彦撰進士李宗孫碑文曰朴允良之子億秋擧孝廉監清河縣云公爲司瓮院參奉時有院中契會帖啚而荷衣公題詩曰末試殷鼎調羹手聊向天厨妙割烹我亦曾爲太官長強題詩句汚丹青今其帖啚傅寳于子孫之家公諱億秋字德叟自幼孝友根柱事親至誠父訓導公允良病而思鴨時値冬月廣求不得公號泣禱天適有两鴨飛下前井舉石一投兩鴨並墜取以供進病乃卽甦人以比王祥云明廟朝㫌閭補郡官清風郡守英宗己卯鄕人共議配享鄕賢祠右出新增臨瀛誌聾軒事蹟終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한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혼사 날짜 등을 전하는 한글 간찰(簡札) 동한이네와 삼남매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용건은 혼인에 관한 것인데, 혼인이 정해졌으니 날짜는 동짓달 열아흐레로 하고 신행은 섣달 열이틀 날이라 하였다. 이면에는 한문으로 쓴 간찰이 있는데, 날짜나 발신자·수신자 등의 정보는 기재되지 않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67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명복(命福) 패자(牌子)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丁亥 臘月卄二日 上典 李 奴命福處 丁亥 臘月卄二日 李氏 命福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227 1767년 12월 22일에 이씨댁(李氏宅) 상전(上典)이 노비 명복(命福)에 발급해 준 패자(牌子) 1767년 12월 22일에 이씨댁(李氏宅) 상전(上典)이 노비 명복(命福)에게 토지 매도를 위해 발급해 준 위임장이다. 명복는 이 패자를 가지고 사흘 뒤인 25일에 김별제댁(金別提宅)에 논 6두락을 95냥으로 받고 팔게 된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비 명복에게. 다름 아니라 이집 전답은 5대에 걸쳐 승중한 제위답으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석동촌(席洞村) 들에 있는 훈(訓) 자(字) 6두락(29부)에 대하여 거리가 너무 멀어서 거두어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금방 이매(移買)를 도모하기 위하여 네가 모처로 매도하되, 이 패자(牌子)에 따라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 정해년 12월 22일, 상전(上典) 이(李)[서압(署押)].'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4년 이교선(李敎先)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大正三年 甲寅 二月二十二日 契約主 本郡 文德面 可川里 李敎先 大正三年 甲寅 二月二十二日 李敎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4년 2월 22일에 계약주 이교선(李敎先)이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1914년에 논주인 이교선이 논을 매매할 때 발급한 계약서이다. 용지는 인쇄 편지지이나 기재방식은 전통의 체제를 따랐다. 자기가 매득한 논을 긴요하게 쓸 일로 본군 문덕면 가천리 수반평의 답을 가격 122원에 증명서를 만들 때 영영 방매하며, 보증인과 이장이 연대 서명하고 날인한다고 하였다. 계약주 이교선과 증인 이종열, 토지소재 이장 이정의 주소와 이름, 날인이 있다. 이정은 날인하지 않았으며, 매득자 관련 정보는 없다. 끝에는 사방의 지목을 기록한 것이 특징인데, 동쪽은 길이고 서쪽은 도랑이며 남쪽은 이종욱의 논이고 북쪽은 이현의 논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51년 최성민(崔聖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豐元年 辛亥 三月二十日 畓主 自筆 墓所守護人 崔聖民 寶城 李生員宅奴 月梅 前明文 咸豐元年 辛亥 三月二十日 崔聖民 月梅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1년 3월 20일에 답주 최성민(崔聖民)이 이생원댁 노(奴) 월매(月梅)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1년 3월 20일에 답주 최성민(崔聖民)이 이생원댁 노(奴) 월매(月梅)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매매 사유는 이매(移買)이다. 이매는 자기 땅을 팔아서 남의 땅을 사는 것을 말한다. 토지는 안산 초산면 물항동 황사우에 있는 담자답(淡字畓)이다. 토지 규모는 697분답 2야미 2두5승락지 부수(負數) 6부5속이다. 이 토지를 전문 60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최성민인데 자필(自筆)하고 이름 아래에 수결하였다. 증인은 동성사촌 성홍명(成鴻鳴)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7년 종길(鍾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武元〖二〗年 戊戌 十二月 日 畓主 喪人 鍾吉 右 前明文 光武元〖二〗年 戊戌 十二月 日 鍾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7년 12월에 답주 종길(鍾吉)이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7년에 논 주인 종길이 논을 매매할 때 발급한 일종의 계약서이다. 유래해 온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이사해 살 일로 문전면 가천촌 앞 수반평의 육자답(陸字畓) 2두락지 4야미, 부수 9복(卜)1속(束)을 전문 350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상인(喪人) 종길이며 착압하였다. 필집이나 매수자 등의 기록이 없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94년 육해(六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五十九年 甲寅 元月初八日 畓主 山人 六海 安生員宅奴 甫音金 處明文 乾隆五十九年 甲寅 元月初八日 六海 甫音金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94년 정월 8일에 답주 육해(六海)가 안생원댁 노(奴) 보음쇠(甫音金)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4년에 논주인 육해가 안생원댁 노 보음쇠에게 논을 매매할 때 발급한 일종의 계약서이다. 매득한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이매(移買)할 일로 보성 문전면 가천촌 수내의 목자(睦字) 2두락지, 부수 9복(卜)을 전문 45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육해, 필(筆)은 육성(六性)이며 착압하였다. 직역은 모두 산인(山人)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9년 이생원댁 노(奴) 귀손(貴孫)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道光十九年 己亥 十月二十日 畓主 李生員奴 貴孫 崔聖民 處明文 道光十九年 己亥 十月二十日 貴孫 崔聖民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39년 10월 20일에 답주 이생원댁 노(奴) 귀손(貴孫)이 최성민(崔聖民)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안산 초산면 물항동의 담자(淡字) 697분답 3부(負) 2두락지를 전문 30냥을 받고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이생원댁 노 귀손이며, 증인은 장복재(張福재)이고, 필집은 김일재(金日在)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9년 이생원 패자(牌子)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己亥 十月 日 上典 李 奴貴孫處 己亥 十月 日 李氏 貴孫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39년 10월에 상전 이생원이 노(奴) 귀손(貴孫)에게 토지 매매를 위임하면서 발급한 패자(牌子) 안산 초산면 물항동의 담자(淡字) 697분답 3부(負) 정종자(正種子) 2두락을 부득이하게 방매할 생각이니, 가격에 맞게 상전댁에 바치고 이 패자를 가지고 문기를 만들라고 하였다. 답주는 이생원이며 성씨 아래에 수결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성주이씨 문중 사문계(私門稧)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성주이씨 문중의 사문계(私門稧) 계는 계원의 상호부조·친목·통합·공동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운영되는 모임이다. 계의 종류는 매우 많은데, 이 계는 구체적으로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 문서에는 석성댁(石城宅), 동지댁(同知宅), 효치댁(孝峙宅) 등 많은 택호가 열거되고 그 아래에 4냥, 1냥8전, 7전5푼, 4전7푼 등 금액이 기재되었다. 금액 아래에는 금액 내에서 일부 금액을 자봉(自捧)했다는 등의 추기가 있기도 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886년 대여곡(貸與穀) 사문계(私門稧)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丙戌 四月 丙戌 四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276 1886년 4월에 대여곡(貸與穀)에 대한 수납 내역을 적은 사문계(私門稧) 처음에 '추봉조(秋捧租) 17석 14두'라고 적었는데, 이는 가을에 받은 조세의 합계액이다. 따라서 이 계는 식리계(殖利契)인 것으로 보인다. 납부자는 백사인(白沙人), 하진사댁(下進士宅), 백돌(白乭), 막개(莫介) 등 택호나 노명(奴名) 등 다양한 것으로 보아 문중의 종인인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차인명(借人名)과 대여곡 수량, 납세현황 등을 적었다. 납세현황은 일례로 1석(石)에 대해 '6냥 4월 24일에 받음, 5냥 12월 20일에 받음, 2냥5전 정해 정월 그믐날에 받음'이라 적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유일명(劉一明) 학선오도(學仙吾道) 시문(詩文) 사본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유일명(劉一明)이 지은 학선오도(學仙吾道)라는 시를 베껴놓은 사본 유일명(劉一明)이 지은 학선오도(學仙吾道)라는 시를 베껴놓은 문서이다. 문서의 끝에 이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작자와 시제(詩題)를 소개하고 있다. 그중 무통(無痛)이라는 것을 채택해서 뽑아 같은 뜻임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유일명(1734~1821)은 청나라 때의 저명한 도사(道士)이며, 호가 오원자(悟元子), 별호가 소박산인(素朴散人)이다. 전진도 용문파의 제10대 종사로 유명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공문서

1914년 이의용(李宜容) 토지소유권 보존증명 신청서 고문서-소차계장류-신청서 大正三年 七月 卅一日 李宜容 始興郡守 大正三年 七月 卅一日 李宜容 始興郡守 경기도 부천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4년 7월에 이의용이 토지소유권 보존에 관한 증명을 시흥군청에 신청한 문서 1914년 7월에 이의용이 토지소유권 보존에 관한 증명을 시흥군청에 신청한 문서이다. 먼저 토지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동산을 표시하였다. 소재지는 모두 4곳인데, 하나는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 담자 697-1의 택지 940평, 부동산가격 60원이다. 둘째는 같은 곳의 담자 697-2의 전지 286평2홉, 부동산가격 10원이며, 셋째는 같은 곳의 담자 698의 전지 118평5홉2석, 부동산가격 6원이다. 넷째는 같은 곳의 인자 64와 641의 답지 1095평1홉3석, 부동산가격 200원이다. 이를 증명할 목적의 소유권보존을 신청한 것인데, 소유자의 주소와 씨명은 부천군 소래면 무지동 3통9호 거주자인 이의용이다. 부동산가격은 총 276원이다. 이 토지는 자기 소유임을 보존 증명하고자 다른 지면에 첨부하여 신청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 신청에 대해 시흥군청의 증명 관리인 시흥군수 윤필영이 이를 증명한다고 하는 증명서를 발급하였다. 증명 사실을 '증명제(證明濟)'라 하여 신청서의 말미에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이 신청서에는 첨부문서가 여러 장인데,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평 담자 대지 평면도와 담자 전(田) 평면도, 인자 답 평면도 등이다. 이 평면도는 1913년에 측량자 이우승(李宇承)이 측량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다시 양포268)의 시에 차운하다 再次楊浦韻 강 위의 푸른 산, 산 위의 누대누대 앞에 달이 나와 강물에 비추누나사람은 오호의 일엽편주 타고 떠나는 객과 같고돛배는 강동 만 리 가을을 찾아가는 듯하네몸은 명성의 굴레에 얽어 묶여 있는 천리마와 같은데꿈에서 진세의 그물 벗어나 모래밭 갈매기 좇누나만약 향기로운 봄 술을 가져올 수 있다면흉중 만고의 근심을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을 텐데 江上靑山山上樓樓前月出見江流人如五湖扁舟客帆似江東萬里秋身絆名韁同縶驥夢超塵網逐沙鷗若爲換得芳春酒滌盡胸中萬古愁 양포 최전(崔澱, 1567~1588)의 호이다. 어려서부터 이이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 불렸으며, 학문의 진도가 남달리 빨라 스승으로부터 크게 총애를 받았다. 1585년(선조18) 18세에 진사시에 입격하여 시문과 박학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크게 모았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21세에 요절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양황269)의 서당 梁榥書堂 양군의 식감으로 하늘이 숨겨 놓은 장소를 찾아내어깊은 숲에 자리 잡아 초당을 지었어라천 년의 구름과 이내는 학을 타던 곳이요한 지역 산수는 와룡의 집이라겹겹의 띠집이라 성난 가을바람 두렵지 않고푸른 나무라 긴긴 여름날에 정말 좋아라독서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나니제비의 진흙이 텅 빈 들보에서 떨어지는 것을 때로 보노라 梁君眼力破天藏爲卜林幽作草堂千載雲煙乘鶴地一區山水臥龍庄重茅不怕秋風怒綠樹偏宜夏日長除却讀書無一事燕泥時見落空樑 양황 1575~1597.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학기(學器)이고, 호는 진우재(眞愚齋)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양홍주(梁弘澍)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8세의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경상도의 의병장 정인홍(鄭仁弘)에게로 가서 힘을 합하여 왜적을 물리치려고 했으나, 그는 몽진한 왕을 호종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임을 역설하여 의주행재소에 가서 왕에게 가져간 곡식과 물품을 바쳤다. 이후 경상도초유사 김성일(金誠一) 휘하에서 공을 세웠으며, 가재를 팔아 많은 화살을 준비하여 군비확충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청암사의 사액을 청하는 글을 올릴 때 순찰사 이공 시원의 제사 靑巖祠請額呈狀時巡察使李公【是遠】題辭 삼가 《창렬지(彰烈誌)》와 《채순록(採詢錄)》을 펼쳐 그 당시의 승전보(勝戰譜)과 계문(啓聞)을 읽고서 제현이 절개를 위하여 생명을 버린 것을 상상하니 마땅히 천 년 뒤에도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머리털이 관을 찌를 것이다. 더구나 청암(靑巖)은 맨 먼저 창의를 도모한 땅인데, 이미 조두(俎豆)와 시축(尸祝)을 지낸 곳이 있었으나 사액을 베풀어 주는 은전을 입지 못하였다. 만약 노봉(老峰) 민정중(閔鼎重)과 택당(澤堂) 이식(李植)으로 하여금 오늘날 다시 태어나게 한다면, 어찌 숨겨진 공덕과 업적을 가려둔 체로 놔두고서 드러내지 않겠는가.전 순찰사의 제사에서도 또한 '성세(聖世)의 은전에 흠결이 되니 반드시 공의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비문을 휴대하고 간 일은 즉 아마도 제공(諸公) 사이에 찬양받아 마땅한데, 노봉과 택당이 마치지 못한 안(案)을 마치려고 하는 것 같으니, 이른바 '일단 기다린다.[姑俟]'라는 두 글자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謹按《彰烈誌》《採詢錄》, 讀其時奏捷與啓聞, 想諸賢立慬之節, 當使千載之下, 淚滿襟而髮衝冠。況靑巖, 首謀之地, 旣有俎豆尸祝之所, 而未蒙宣額之典, 若使老峰澤堂, 復作於今日, 則豈使潛德幽光, 揜翳而不彰乎。前使之題, 亦以爲'聖世之欠典, 必有公議,' 至有碑文攜去之事, 則似當揄揚於諸公間, 以卒老峰澤堂未了之案, 則其所謂姑俟二字, 似不偶然向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암행어사의 제사 繡使題辭 부령(富寧)의 여러 의사의 공렬이 어찌 경성과 회령의 의사들보다 못하겠는가마는 사액을 내려주는 은전을 한쪽은 베풀어 주고 한쪽은 내려주지 않으니, 사림의 품은 한이 마땅히 어떻겠습니까. 조정에 있어서도 은전에 한 가지 흠결이 될 것이다. 富之諸義士之功之烈, 顧何間於鏡會義士, 而宣額之典, 一施一否, 士林齎恨, 當作如何。在朝家, 亦一欠典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또 유항주 又【兪恒柱】 전장 깊숙한 곳의 저 고요한 사당끊임없는 모래바람에 잣나무 빽빽하네백면서생 본래 장수의 기백 날렸고충의로 용맹한 의병의 마음에 미쁨 받았네오랑캐 모두 소탕한 공 세상에 드문 일이라도마 위 어육 면한 은택이 지금까지 미쳤네백 년 지난 옛 성루 임명 바다에때때로 우레 울리니 용이 한번 포효하는 듯하네 侐彼靈宮戰地深風沙澒洞栢森森書生自有鷹揚氣忠義能孚虎旅心掃盡蠻胡勳不世免夫魚肉惠于今百年古壘臨溟渤雷雨時時龍一吟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연평 이동(李侗)의 희노애락 미발 기상에 관한 글의 사본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연평 이동(李侗)의 서신 중 희노애락 미발 때의 기상에 관한 내용의 일부를 기록한 잡문 성명 미상의 필자가 연평 이동(李侗) 선생이 주자에게 보낸 서신 가운데 정좌하여 희노애락 미발 때의 기상을 살펴보게 한 내용의 일부를 기록한 잡문이다.

상세정보
56403건입니다.
/2821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