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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오동수(吳東洙)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吳東洙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 11월 8일에 오동수가 노종룡에게 대전간행 동참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서간. 1926년 11월 8일, 오동수(吳東洙)가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에 사는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대전(大全) 간행 동참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서간(書簡)이다. 항상 한번 당신의 집에 찾아가고자 했지만 수년전에 한번 와 주신 것에 감사해하고 개인적으로 가슴속에 맺힌 마음을 말씀드렸을 뿐이라고 인사했다. 자신은 강촌(江村)의 사면(四面)에 살면서 초월(楚越)사람처럼 계획도 세우지 않고 출신(出身)하는 일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청화(淸和)한 요즘에 고요히 지내시는 당신과 가족이 안녕한지 물었다. 자신은 좋았던 기력이 오랫동안 좋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하고 내 자신은 별로 고통스러운 일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대전(大全)을 중간(重刊)하는 일은 그 일이 범위가 넓고 복잡해서 일의 착수를 고하는 것조차 기약할 수 없어 간절히 마음을 쓸 뿐이라고 했다. 당신이 사는 광주군의 정득채(鄭得采)의 말을 들으니 월초에 당신이 소제(蘇堤)에 왔고, 이 형과 약속을 하고는 당장 소식을 전했다고 했다는 것, 그래서 소식을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영향이 없어 마음으로만 그리워했다는 것, 그 때 당신께서 교남(嶠南)으로 행차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은거지로 돌아오지 않았느냐는 물음, 대전 간행의 일은 본도(本道)와 영남의 유생들 용진(聳珍)에서 설간(設刊)한 것이므로 본도의 일은 본도에서 하겠지만, 이 일은 한번 함으로써 두 곳이 함께 얻는 일이라고 하며 이 형과 약속을 했다고 하면서 나로 하여금 편지를 써서 물어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기에 이렇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 당신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이미 함께 참여하기로 도장을 찍었으므로 함께 간행하는 것으로서 본도(本道)의 금(金)과 같은 혜택을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회답을 기다리겠다며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오동수(1878~1945)는 후석 오준선(吳駿善,1851~1931)의 아들로 자(字)는 자춘(子春), 호(號)는 도호(道湖)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기우만의 문인으로, 『도호집(道湖集)』을 남겼다. 당시 편지 봉투에서와 같이 나주군 본량면(本良面) 북창리(北倉里)에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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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蘇海丈之宅(피봉_뒷면)谷城郡 火面 蒲坪鄭淳黙(簡紙)日前自內間送人時, 因醫家之行, 未及上椷仰候, 而家奴回恭承下函, 仰服不較之 盛意, 悚甚感甚. 伏問日來,經體度連享萬康, 胤兄晏勝,令曾抱已經輪症, 今爲安健拱賀大萬. 査生 老慈氣息, 常時奄奄, 外他無顯警, 伏切私幸. 况煥喆孫之一經危症,今則夬愈, 尤切喜幸者乎. 每到此等, 預爲憂懼, 實難堪遣也.尊先碑事, 承已了役, 伏想有獨賢之勞矣. 矧又往返于嶠南者乎. 從玆日益寒矣. 一者 下顧之敎, 雖極感鑴, 而隆冬 命駕, 何可易也.餘只伏禱爲經自愛, 以慰瞻仰. 不備上謝書.丙寅十一月初八日, 査生 鄭淳黙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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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令氏(피봉_뒷면)本鄕校謹函(簡紙)謹詢正元,體度迓新增祉, 仰溸不任區區. 第來月初一日行釋奠春享祭, 祭官以貴啣選定. 玆以書函,望須 諒存後, 期前一日, 致齋來臨于本校堂如何. 惟企面晤, 餘都閣, 不備禮.丁卯正之望翌,弟 高彦柱,宋在根,崔洙華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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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 逆理之慽 雖以古人之賢 尙未免喪其明 况吾兄無他抱玉 而慈愛偏隆於弄瓦 則於其慘折之地寸寸猿腸 豈下於西河之淚而已哉 雖然贏博之禮 聖人猶與之 則焉用慘慘慽慽 自損其天和耶 望須千萬節哀 無徒爲無益之悲也 弟自近年來 閱了無限喪變 心頑情固 都付諸一忘字 亦果爲一道而衰鑠之致 安知不祟此耶 以是推兄自不覺悲憐而已 卽問冬寒侍節晏重 區區慰仰 實愜勞祝 弟劣狀依遣耳 季氏兄獲奉於阻餘庶慰寂寥 而旋入作別 悵懷何旣伯氏老兄平安可慰 而忙未各候 恨意仰達如何 餘不備狀禮丁未十二月十四日 弟金{土+畟}拜狀【피봉】玉溪服座入納坪城候狀 省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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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府 大正町盧軫永 氏【石工所前】(피봉_뒷면)珍島郡 鳥島面 昌柳里鄭基福方朴泰慶ヨリ.(簡紙)謹未審新年孝中體候萬安, 而幼兒들도 充實乎.仰賀之至. 弟 客中無故耳.就前年度光州을ᄯᅥ 故鄕으로 移去ᄒᆞᆫ 時 自心的舊意上으로 小作參斗落만는 動情的 動情ᄒᆞ샨쥴 밋어던바 今月인 壬午年을 當ᄒᆞ와亦是未忘不已ᄒᆞ오이다. 未忘者余, 則多小을不拘印望, 回示若何. 餘不備白.壬午旧一月十七日, 弟 朴泰慶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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斯文不幸 惟我六峯李先生奄棄 後學吾黨之痛 復有加於此哉 嗚呼 先生遺文藏在巾衍 欲其不朽 今將正草 此是斯文大事 不敢造次 玆以仰通于有文僉尊 望須從速以本稿來準 俾無後悔之地 千萬 雖涉賢勞此意 或可輪照于隣近有文各家否壬午復月 日 寧光郡大馬面南山里小南齋內正草所追而待正草完濟 仰官許印行計 今春門生契會時 已有選定任員者 故玆記于左以供 尊覽監董李秉柱 李載敏 李起南 姜冏欽 李乘總務李玹常務李興杓 羅玉允 金洪彬 李龍洙 金寧鎬金東瑾 鄭時濬幹事李鎔聖 丁琇 李鶴洙 姜聖元 丁在奎掌財李東範【피봉】〈前面〉光山郡■■〔瑞坊〕芝山面日谷里▣…▣軫永氏▣…▣龍〈後面〉靈光郡大馬面南山里李龍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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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別尙悵矣 謹請勞攘之餘兄體萬旺 寶節均休 仰頌且祝 弟功服人依劣而已 就言先考先生追配事 儒本孫間庶爲熟言 而本孫二人許 姑不受承諾 則掌色言內 仁兄一次惠枉 然後可決云 來月十日內掃萬惠枉 如何如何 兄先奉審後成事 可好可好 道理上體面上當然事也 兄若入院則先幣金限二百円後卽買本孫之心矣 深諒而先金院春秋爲先享需金也 當日儒本孫幾人會飮料代 亦爲不無也 又爲諒裁焉 餘立俟不備上癸未十一月卅日 弟金成基二拜【피봉】〈前面〉光州府大正町一一二番▣…▣軫永殿〈後面〉井邑郡七寶面二里 金成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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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김성기(金成基)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904_001 1944년 1월에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의 선고(先考)인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사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내용의 간찰 1944년 1월 9일에 정읍군 칠보면에 거주하는 김성기(金成基)가 광주에 사는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전에 부친 서신은 잘 받아보았는지 묻고, 본인은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선고(先考) 선생을 무성서원에 추배(追配)하는 일은 진행방침이 거의 섰다고 하면서, 서원 주벽(主壁) 이하 칠현(七賢)의 자손 중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과 영천(靈川) 신잠(申潛)의 자손에게는 부탁할 필요 없고, 눌암(訥菴) 송세림(宋世琳) 집안은 그 집안에 유력한 권리인이 있으므로 책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성재(誠齋) 김약묵(金若默)과 명천(鳴川) 김관(金灌),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과 묵재(默齋) 정언충(鄭彦忠) 집안도 부탁을 하면 수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군경(郡警) 두 청(廳)의 일은 자신이 유림들과 담당하여 책임을 지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일이 어렵긴 하지만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액서원에 배향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승낙하는 비용으로 2백원을 이 서신을 보는 즉시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돈은 추향(秋享)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원답(院畓) 개축비(改築費)로 쓸 계획이니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형의 이웃인 정완표(鄭玩杓) 형에게는 자신에게 원지(院誌)의 판각비용으로 20원을 빨리 보내주라는 뜻으로 권유해주기를 몹시 바란다고 하였다. 《무성서원지(武城書院誌》에 의하면 김성기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정읍에 거주하였으며, 1932년에 무성서원의 색장(色掌)을 맡은 적이 있는 인물로 나온다. 노진영의 선고는 소해(蘇海) 노종용(盧種龍, 1856~1940)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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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復)▣▣(尊体)萬康하시며 營事에 奔走하시옵지요. 遠外에서 想像하며 仰祝하옵나이다. 宗生은 無事히十一月一日부터 通勤中이오니 大幸千萬耳.就拜告, 同封中 成績記入表에 記入하여 가지고地燮便에 付送하시와 擔任宋先生께 傳하도록 하시압.成績記入은 形式的으로 事務■(만)〔오〕에만 手續하고 極秘裏에 宋先生에게 特別付託하엿슴니다. 安心하시고光州尊敎에 가셔셔 中五學年 成績記入하여 주도록交涉하시여 期日內에 到着爲計하시압.宋先生과는 約束한배 有하오니 絶對安心을 仰望. 餘不備, 申書.十一月十八日, 承鉉 拜上.盧軫永 氏 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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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山郡 芝山面 日谷里盧軫永 氏(피봉_뒷면)武城書院內 金煥相謹答(簡紙)省禮拜言.芝宇信宿, 蘭香尙襲.謹請比令,孝體支嗇, 覃儀鴻禧,幷溯且禱. 弟無撓抵巢, 劣狀粗保耳. 就曩臨 錦地, 厚蒙淸誨, 滌盡備腔. 産蟾何感如之. 爲探 近節,玆呈尺索, 恕燭若何.餘謹不備疏禮.壬午三月念八日,弟 金煥相權寧祚 拜疏.令從氏春岡兄, 孝體保重否?此意雷告仰企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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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정순묵(鄭淳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默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6월 29일에 사생 정순묵이 사돈댁에 안부를 묻기 위해 노종룡에게 보낸 서간. 1912년 6월 29일, 사생(査生) 정순묵(鄭淳默)이 광주(光州) 일곡(日谷)에 사는 사돈 노종룡(盧鍾龍)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서간이다. 초여름에 와 주셨던 것이 아직까지 감사하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그 뒤로 갈수록 그리워졌는데 사람을 보내시어 편지를 주시니 마치 음성을 듣고 있는 듯 하고 함께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극렬한 더위에 사돈댁 어르신의 건강이 편치 않으시다니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경서를 읽으시는 사돈도 아드님과 가족들과 모두 평안하신지 묻고 자신집의 노인은 그럭저럭 지내시고, 아주 작은 우려로는 더운 계절의 예사스런 증세이니 어찌 하겠느냐고 했다. 금년의 농사는 자신의 농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큰 흉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가뭄으로 시작해서 병충해로 끝날 것이니 앞으로의 걱정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이 결정해주는 일을 말해서 무엇 하겠느냐고 탄식했다. 상대가 편지로 말한 것은 잘 알았다며 조금 서늘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찾아뵙겠다고 했다. 중부(仲父)께서 성묘 행차를 가시어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며 오시면 하나하나 말씀드려 물을 계획이라고 했다. 선(選) 아이의 다리에 조그마한 종기가 난 것은 아직 씻은 듯이 낫지 않았다고 말하며 자애(自愛)하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본 간찰이 들어 있던 피봉의 뒷면에는 갑인년 12월 23일로 기록되어 있어 1912년(임자)과는 다른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발신자 정순묵은 ?승정원일기?에, 어의(御醫), 화순현감(和順縣監), 수안군수(遂安郡守), 나주영장(羅州營將), 내금위(內禁衛) 등에 임명된 사람으로 나온다. 간찰 피봉에 의하면 포평(蒲坪)에 살고 있었다. 수신자 소해(蘇海)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은 최익현(崔益鉉), 송병선(宋秉璿, 1836~1905) 등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구한말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면서 을사오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보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고향인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으로 와서 교육과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1930년에 본인의 아호를 딴 소해정을 지었다. 소해정은 이후 1965년 그의 아들인 노진영이 같은 공간에 있는 만주사(晩州祠)의 강당으로 헌납하면서 경의재(敬義齋)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만주사는 한말 문신이자 우국지사인 송병선과 노종룡을 배향한 사당으로 노종룡의 문인들과 고을 유림들이 송병선의 유풍을 추모해 1944년에 세운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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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薄投轄 遽爾旋旆 悵缺無已 伏未審宵回棣床氣體候 以時萬重 大小家節宣均慶否 伏溸區區無任下誠之至 査下生猶候粗寧侍狀姑依 渾集無恙外 何煩達 玉允妹兄 極爲賢秀 寒楣之幸 孰大於是 娓娓不已而今且旋歸 悵薪悵薪 再邀以念後爲計 以此下諒如何 餘不備伏惟尊察乙未十二月初六日 査下生 金千洙再拜【피봉】謹再拜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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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自姻後 今至歲暮 瞻詠政切 伏未審臘冱棣床氣體候 連衛萬重 家間大小節均安 玉允妹兄亦穩侍篤課否 伏慕區區無任下誠之至 査下生慈候粗寧 亞庭免添 妹阿亦蒙庇善度以是伏幸耳 答儀凡百 特荷盛念 愧赧中心 於今始覺妹兄貌範 森然在目 尙不弛于中 而今纔送伻 卽爲命送 千萬伏企耳 餘不備狀禮乙未十二月二十四日 査下生金千洙再拜【피봉】謹再拜上候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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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盡秋届 潦熱尙爾懷仰方此耿耿 意中卽拜惠書 欣荷之極 如得良覿 第審湯候彌留 旋不勝貢慮 記末身病萬憂 無峕可已 實用苦悶 而家弟所愼尙未復常 這間憂煎如何盡道 春享時旣不能進參 恒用悚仄矣今番則必欲遂誠 駈從趂期 命送如何 享禮若退以中丁 則此亦無相碍 尤可幸也 示意未審來人立促 故忙手胡草 不備謝禮 尊照 謹候書癸卯八月十日 記末金{土+翕}拜謝送來諸種 依件記謹受耳【피봉】章山齋案 執事 回納中坪謝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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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신흥수(辛興洙)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興洙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11월 6일에 신흥수가 사돈에게 18냥으로 담배 40포(抱)를 사느라 돈이 1냥도 없어서 판목(板木)을 매매하는 일은 타파해야 할 것 같아 매우 죄송하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무진년 11월 6일에 신흥수가 사돈에게 18냥으로 담배 40포(抱)를 사느라 돈이 1냥도 없어서 판목(板木)을 매매하는 일은 타파해야 할 것 같아 매우 죄송하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어제 상대방과 헤어진 뒤로 남은 서운함이 아직까지 간절하다는 내용, 진흙탕 길에 집에 잘 도착하였으며 남은 피로는 없는지, 안사돈의 병은 근래 완쾌 되었는지 묻는 내용, 자신은 여전하니 다행이라는 내용, 이틀 전에 외종 사촌이 와서 40포의 담배가 있다고 해서 값 18냥을 지불하고 사느라 여분이 1냥도 없어서 판목을 매매하는 일은 형세상 장차 타파해야 할 것 같다. 이 때문에 심부름꾼을 보내 편지로 알리니 신의가 없다는 책망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매우 죄송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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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昨日拜別後 餘悵尙切 伏不審泥濘行旆利稅而無餘憊閤患近臻勿藥 伏不任區區下誠 査下生依偏 如昨日樣 伏幸伏幸耳 存堂一節聞益婉淑 無逡巡而結之似好耳 再昨表從來到云有四十抱南茗 故買得価文十八兩 餘分更無一貫錢兩板木賣買之事 勢將打破 玆以委伻書告 ■■(日後)無信之責 烏可免也 罪悚罪悚耳戊辰十一月六日 査下生 辛興洙 再拜(皮封)謹再拜上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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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최세휘(崔世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世徽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029_001 경신년 1월 5일에 석동에 사는 최세휘가 옥계의 사돈 형제들에게 지금 역병이 돌고 있는데 사돈의 외손은 매우 잘 넘겼으며, 가까운 시일에 자신을 방문하여 회포를 풀기를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경신년 1월 5일에 석동(石洞)에 사는 최세휘가 옥계(玉溪)의 사돈 형제들에게 지금 역병(疫病)이 돌고 있는데 사돈의 외손은 매우 잘 넘겼으며, 가까운 시일에 자신을 방문하여 회포를 풀기를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지난번에 잠깐 만날 것은 이미 지난해의 일이니 그뒤에 서글픈 마음 더욱 간절하다는 내용, 새 추위에 형제분들의 생활이 새해를 맞이하여 복이 증대하고 다른 가족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겨우 졸렬한 모습을 보전하고 있는데 지금 역병을 만나 8, 9명의 아아 가운데 잘 넘긴 아이가 이미 절반이 넘었으며, 상대방의 외손은 더욱 순순히 넘겼으니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라는 내용, 나머지는 가까운 시일 내에 왕림하여 회포를 푸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 인편이 바빠 이만 줄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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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山)郡 芝山面 日谷里蘇海亭 僉尊座 回納(피봉_뒷면)羅州郡 文平面 德山里盧柄琮 呈謝謹封.(簡紙)蘇海先生喪事, 在於知舊例, 生安倣之痛, 難以自抑.柄琮則尤在同宗之地, 其痛嘆如何. 承訃當日卽地趨慰, 情與禮當然, 而身與病添, 未遂此誠. 雖曰勢也,惶悚無地矣. 際承卒哭參赴之 命, 尤不勝驚遑, 然而宿疴未祛,未副 盛敎, 此將奈何.第待少淸赴哭靈筵,或可寬容耶. 餘更祝庚炎衛道保重, 不備謝禮. 庚辰七月十二日, 生盧柄琮 拜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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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換春仲 方切瞻咏得拜吾兄 欣倒可量 而兼承惠書 矧審峭寒侍餘兄候萬重 尤何等仰溸 自冬以來 荐遭堂內喪變 慘切已無可言 日前又遭若木申友之夭 錯惡懷緖 尙不能鎭定也 惟以大小家他故爲幸耳 蓬谷云說 彼家七十老親之下似難待秋也 允玉婚處 若有可合處 安得不指示耶多少在季氏足口傳 不備狀禮 再從甚拘於祀故 享禮時未得出坐耳壬辰二月十八日 弟金錫禮拜【피봉】玉溪侍案執事坪湖謹謝狀 省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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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退有日 伏不審其間靜養調候 快得復常 而凡節亦如何 舍妹與兒少三昆季 俱如前樣耶 幷切伏溸十分 査侍生三宿返棲間關憊苶之狀 難以盡達舍仲之病 間得添劇近又小差 未知日後症勢之何如 慮憂不可量也云說通于彼家 果無歧貳之意 須從速送人 受許回 以未寒前成禮如何餘不備上候書壬辰九月十一日 査侍生金錫禮拜手【피봉】玉溪靜几下執事坪湖上候狀 省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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