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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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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노양서원에 관한 칠언절구의 시 2수 고문서-시문류-시 心山 李敎永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노양서원에 관한 칠언절구의 시 2수 시제가 '노양서원봉안후시제유자경(魯陽書院奉安後示諸儒自警)'이며, 노양서원에 봉안한 후 제 유생에게 써서 보여주는 자경(自警)에 관한 시 1수이다. 이 시는 171번의 시와 같다. 칠언절구인데, 많은 수정 흔적이 있다. 중화의 동쪽 나라에서 양맥(陽脈)의 한 줄기가 널리 퍼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시이다. 어느 유학자로 인해 유교가 다시 흥기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쓴 시일 수 있다. 또 하나는 심산(心山) 이교영(李敎永)이 지은 노양서원(魯陽書院)이라는 제하의 칠언절구의 시이다. 이 시는 169번의 시와 같다. 여러 군데 수정한 흔적이 있다. 노양서원은 전라북도 정읍시 흑암동에 있는 서원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과 두남 박세경(朴世經)을 모시고 있는데, 우암의 위패 봉안은 제주로 유배된 송시열이 한양으로 압송되는 길에 정읍에서 사약을 받은 사실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송시열을 기리기 위해 고암서원(考巖書院)이 세워졌으나, 1871년(고종 8)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지방 유림들의 발의로 1958년 사우(祠宇)를 재건하고 노양서원이라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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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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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창렬사에 사액을 내린다116)는 소식을 듣고 느낌을 읊다 장손 유정 聞彰烈祠宣額感題【長孫 有禎】 공렬 기리는 은장 궁궐에서 내리니네 분의 배향117) 모두 선조를 빛나게 하였네삼천 리 외진 변방에 내린 글선왕 계시던 팔십 년 전 일이었네118)당시 정벌하시던 자취 하나하나 되집어보며평소 잊지 못한 마음 시가 지어 읊어보네어찌 몸소 사당에 나가 배알하는 것만 하랴북쪽 관산 바라보니 다시 눈물만 줄줄 흐르네 褒烈恩章自九天四人從祀儘光前書回絶塞三千里事在先朝八十年歷歷當時征討跡依依平日詠歌篇何當祠廟躬趨拜北望關山涕更漣 창렬사에 사액을 내린다 정미년(1667, 헌종8) 10월 6일에 사당 이름을 창렬(彰烈)이라 하사하고, 예관을 보내 제사를 지냈다. 《農圃集 年譜》 네 분의 배향 을미년(1665) 9월 25일에 정문부 선생의 위패를 주벽(主壁)에 모시고, 이붕수(李鵬壽)·최배천(崔配天)·강문우(姜文佑)·지달원(池達源) 네 분을 배향하였다. 《農圃集 年譜》 삼천……일이었네 정문부가 신묘년(1591, 선조24)에 함경북도 병마평사에 임명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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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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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영장사 시축에 읊다 題靈藏師詩軸 사람들은 영장이라고 나는 대사라고 하는데 人曰靈藏我曰師십년 전부터 해마다32) 글을 지어 주고받았네 十年前歲以書隨속세와 떨어진 산사의 창가에 달이 비추니 風埃一隔山寮月흰 얼굴과 푸른 눈썹을 꿈에서 보네 雪面靑眉夢見之 人曰靈藏我曰師, 十年前歲以書隨.風埃一隔山寮月, 雪面靑眉夢見之. 해마다 원문에는 '세(歲)' 아래에 "아마도 일(日) 자의 오류인 듯하다.〔恐日字之誤〕"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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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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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법천사33)에 도착해서 태수에 부치다 到法泉寺寄太守 바다의 객 자연스레 놀다가34) 사찰에 오니 海客天遊到梵宮만 겹의 붉은 비단이 앞산을 에워쌌네 萬重紅錦擁前峰풍류스러운 태수는 아름다운 계절 만나 風流太守佳期在계수나무 우거진 속에서 생각이 무궁하리 桂樹叢中思不窮 海客天遊到梵宮, 萬重紅錦擁前峰.風流太守佳期在, 桂樹叢中思不窮. 법천사 전남 무안군 몽탄면 승달산에 있는 사찰이다. 725년 서아시아 금지국(金地國)에서 온 정명(淨明)이 창건하였다. 1030년에 불에 탄 뒤 약 100년 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1031년에 원나라 임천사(臨川寺)에서 온원명(圓明)이 중창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자 불상 등을 산내 암자인 목우암(牧牛庵)으로옮겼다. 1662년 영욱(靈旭)이 중창하였으나, 1896년 다시 폐허가되었으며 1913년 나주에서 온 정병우(丁丙愚)가 암자를 짓고, 1964년 활연(活然)이 법당을 짓는 등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연스레 놀다가 원문의 '천유(天遊)'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노니는 것을 뜻하는 말로, 《장자》 〈외물(外物)〉에 "사람의 몸 안에는 텅 빈 공간이 있어 마음이 그 속에서 천리(天理)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닌다.[胞有重閬, 心有天遊.]"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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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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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다시 칠언사운에 차운하여 又次七言四韻 관중과 포숙이 함께 살지 않음을 꺼렸거늘 曾嫌管鮑未同居오히려 아름다운 명성 만대에 성하구나 猶自流芳萬代餘수년 동안 자리를 함께했던 그대와 나 連席數年君共我굳은 우정 훗날까지 변치 않으리 斷金他日子兼余강에 막혀 삼 년이나 이별했건만 隔江謾作三秋別아득히 사월 초에 만나기를 기약하네 會面遙期四月初서울의 수십 만 집을 돌아보지만 回首長安家十萬타향의 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羈懷鬱鬱向誰攄 曾嫌管鮑未同居, 猶自流芳萬代餘.連席數年君共我, 斷金他日子兼余.隔江謾作三秋別, 會面遙期四月初.回首長安家十萬, 羈懷鬱鬱向誰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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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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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6년 연길단자(涓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李敎成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6년 혼인 때 각 절차의 길흉을 점쳐 정한 날짜를 적어놓은 연길단자(涓吉單子) 건곤(乾坤)은 신랑과 신부를 가리키며 생년을 적어놓았다. 혼인식인 대례(大禮), 전안(奠雁)과 납폐(納幣)의 날짜가 적혀있다. 납폐에는 치함(置函)과 좌처(坐處)의 방향, 주당(周堂)과 태백(太白)의 살(煞), 옥녀(玉女)의 방향 등을 적어놓았다. 주당살은 혼사에서 귀신을 노하게 하여 발생하는 살로서, 이 살이 시부모와 신랑, 신부에게 있는 날은 불길하다. 뇌호(雷虎)와 차착(差錯)의 대살도 들어있으면 흉하다고 보았으나, 여기서는 모두 기휘(忌諱)가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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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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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차운한 시와 평론 낙장본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차운한 시와 평론 등을 기록한 낙장본의 잡문 성명 미상의 저자가 차운한 시, 평론 등을 기록한 낙장본의 잡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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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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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7년 이맹선(李孟先)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參年 丁丑 正月十七日 畓主 幼學 李孟先 光緖參年 丁丑 正月十七日 李孟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7년 4월 26일에 이맹선(李孟先)이 아무개에게 논 1두 3승락을 6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77년 4월 26일에 이맹선(李孟先)이 아무개에게 조상으로부터 전래된 논 1두 3승락을 6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서(光瑞) 3년 정축 10월 24일 유학 아무개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내가 조상으로부터 전래된 논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형세가 부득이해서 요긴하게 쓸 일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장동(長洞) 들에 있는 화(和) 자(字) 논 1두 3승락(5부 9속)을 60냥에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신·구문기(新·舊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일 서로 어긋나는 단서가 있거든 이 문기로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이맹선(李孟先)[상중으로 착명하지 않음]. 증인 유학 이흥렬(李興烈)[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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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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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2년 양원용(梁元用) 가사매매명문(家舍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明治四十五年 六月二十八日 家垈主 文田面加川里 梁元用 可川里 李敎成 殿 明治四十五年 六月二十八日 梁元用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2년 6월 28일에 양원용(梁元用)이 이교성(李敎成)에게 가대(家垈) 1승락을 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912년 6월 28일에 양원용(梁元用)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스스로 매득하여 여러 해 거주하던 가대(家垈) 1승락을 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일제강점기 초기라서 전통적인 문서 양식에다가 이두는 한글로 토를 달아서 작성하였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치(明治) 15년 6월 28일 아무개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스스로 매득한 집터를 여러 해 동안 거주하다가 요긴하게 사용할 일로 보성군(寶城郡) 문전면(文田面) 가천리(可川里) 본리(本里) 들에 있는 1두락(1負)을 17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과 함께 위 사람에게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서로 어긋나는 일이 있거든 이 문기로서 증빙할 것이라. 가대주(家垈主) 문전면 가천리 양원용(梁元用)[인]. 증인 동면 동리 김수돌(金水乭)[인]. 가천리 이교성(李敎成) 앞. 추가로 구문기(舊文記)는 명치(明治) 44년(1911년) 3월 16일에 확고히 잃어버렸으므로 주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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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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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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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0년 임성렬(林成烈)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拾六年 庚寅 十一月十二日 畓主 林成烈 李始瑞 前明文 光緖拾六年 庚寅 十一月十二日 林成烈 李始瑞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0년 11월 12일에 임성렬(林成烈)이 이시서(李始瑞)에게 논 7두락을 14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90년 11월 12일에 임성렬(林成烈)이 이시서(李始瑞)에게 본인이 매득하여 갈아먹던 논 7승락을 14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서(光緖) 16년 경인 11월 12일 이시서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본인이 스스로 매득하여 여러 해 갈아먹다가 형세가 부득이하여 요긴하게 쓸 일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교촌(校村) 앞들 수(隨) 자(字) 논 7승락(2부)을 14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과 함께 위 사람 앞으로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서로 어긋나는 단서가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유학 임성렬(林成烈)[착명]. 증인 유학 황창석(黃昌錫)[착명]. 작성자 유학 김현국(金顯國)[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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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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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5년 손종각(孫宗珏)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元年 乙亥 十二月十四日 畓主 自筆 幼學 孫宗珏 前明文 光緖元年 乙亥 十二月十四日 孫宗珏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5년 12월 14일에 손종각(孫宗珏)이 아무개에게 논 5두락을 25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75년 12월 14일에 손종각(孫宗珏)이 아무개에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논 5두락을 25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답주, 증인의 착명(着名)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서(光緖) 원년 을해 12월 14일 아무개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논을 간직하고 있다가 요긴하게 사용할 목적으로 봉덕면(鳳德面) 내 판교(板橋) 초장동(草長洞) 장(帳) 자(字) 논 5두락 3배미(25부)를 210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구문기(舊文記)는 도문기(都文記, 상속문서 같은 원문서)에 실려 있어서 내줄 수 없고 신문기(新文記) 한 장으로 위 사람에게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일 서로 어긋나는 단서가 있거든 이 문기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자필(自筆) 유학 손종각(孫宗珏). 증인 유학 이봉호(李鵬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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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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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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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01년 주지승(住持僧) 민승(敏性)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一〖六〗年 辛酉 十一月二十日 畓主 住持僧 敏性 李生員宅奴 太三 嘉慶一〖六〗年 辛酉 十一月二十日 住持僧 敏性 太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01년 11월 20일에 모 사찰 주지승 민승(敏性)이 이생원(李生員) 댁 노비 태삼(太三)에게 논 2두락을 1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01년 11월 20일에 모 사찰 주지승 민승(敏性)이 사찰의 형편이 어려워 이생원댁(李生員) 댁 노비 태삼(太三)에게 논 2두락을 1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사찰에서 매도하는 문서로 주지승이 주도하고 도감승(都監僧)과 전 주지가 참여했다. 문서에는 가경(嘉慶) 1년(一年)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가경 6년(六年)의 오기이다. 고문서에서 중국 연호를 표기할 때에 간혹 1년 정도의 차이로 오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5년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6년 신유 11월 20일 이생원(李生員) 댁 노비 태삼(太三)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放賣)하는 것이라. 민고전(民庫錢)을 납부할 자금이 어렵기 때문에 형세가 부득이하여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후동(後洞) 들판에 있는 논 창(昌) 자(字) 3작(作) 2두락(12부 2속)을 17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영영 방매(放賣)하되 본문기(本文記)는 중간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서 내줄 수가 없으며 이후로 사찰에 있는 승려 중에 혹 잡담하는 이가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주지승 민승(敏性)[착명]. 도감승(都監僧) 문신(文信)[착명]. 작성자 전 주지 광현(廣玄)[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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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13년 김생원(金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十八年 癸酉 正月十五日 田主 自筆 幼學 金生員 喪人不着 廉成得 處明文 嘉慶十八年 癸酉 正月十五日 金生員 廉城得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13년 정월 15일에 김생원(金生員)이 염성득(廉成得)에게 밭 5두락과 논 1배미(夜味)를 11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13년 정월 15일에 김생원(金生員)이 염성득(廉成得)에게 조상으로부터 전래받은 밭 5두락과 논 1배미(夜味)를 11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18년 계유 정월 15일 염성득(廉成得)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니. 조상으로부터 유래된 밭으로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위 욕옥동(欲玉洞)에 있는 콩밭(太種) 5두락과 논 1배미를 요긴하게 쓰기 위해서 11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本文記)는 없기에 신문기(新文記) 한 장과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일 잡담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가서 바로잡을 것이라. 전주(田主) 자필(自筆) 유학 김생원(金生員)[상중으로 착명하지 않음]. 증인 한량 박덕관(朴德寬)[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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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06년 안생원노(安生員奴) 보음쇠(甫音金)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十一年 丙寅 十二月二十四日 畓主 安生員奴 甫音金 金應喆 前明文 嘉慶十一年 丙寅 十二月二十四日 甫音金 金應喆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06년 12월 24일에 안생원(安生員) 댁 노비 보음쇠(甫音金)가 김응철(金應喆)에게 논 3두락을 9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06년 12월 24일에 안생원(安生員) 댁 노비 보음쇠(甫音金)가 주인의 위임장인 패자(牌子)에 의거해서 김응철(金應喆)에게 논 3두락을 9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11년 병인 12월 24일 김응철(金應喆) 앞 명문. 이 명문을 작성하니. 내 상전댁에서 매득한 전답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요긴하게 쓸 일이 있어서 패자(牌子)에 의거해서 부득이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위 탑사동(塔寺洞) 들에 있는 부(婦) 자(字) 논 금종(今種) 3두락(13부 9속)을 90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 앞으로 내 상전의 패자(牌子)에 의거해서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만약 잡담을 도모함이 있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관청에 고하여 증빙을 삼을 것이라. 답주(畓主) 안생원 노비 보음쇠(甫音金)[左寸]. 증인 및 작성자 노인(老人) 김세표(金世杓)[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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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행정·사법문서

한천(寒泉) 등 소재 전답의 지세명기장(地稅名寄帳) 고문서-치부기록류-수세문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한천(寒泉) 등 소재 전답의 지세(地稅) 부과를 위해 토지 소재지와 면적, 소유주 등을 기재해 놓은 지세명기장(地稅名寄帳) 지세명기장의 공문서 용지를 사용하였고, 양식은 동리명(洞里名), 지번(地番), 지목(地目), 지적(地積), 지가(地價), 세액(稅額), 납기구분(納期區分), 적요(摘要) 등의 항목이 종렬로 구분되어 각 해당사항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동리명은 한천(寒泉), 용암(龍岩), 덕치(德峙) 등이 보이고, 지목은 전(田)과 답(畓)으로 구분되었다. 세액과 납기구분은 기재된 사항이 없다. 적요에는 토지소유주로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교섭(李敎燮), 이종률(李鍾嵂)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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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행정·사법문서

한천(寒泉) 등 소재 전답의 지세명기장(地稅名寄帳) 고문서-치부기록류-수세문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한천(寒泉) 등 소재 전답의 지세(地稅) 부과를 위해 토지 소재지와 면적, 소유주 등을 기재해 놓은 지세명기장(地稅名寄帳) 지세명기장의 공문서 용지를 사용하였고, 양식은 동리명(洞里名), 지번(地番), 지목(地目), 지적(地積), 지가(地價), 세액(稅額), 납기구분(納期區分), 적요(摘要) 등의 항목이 종렬로 구분되어 각 해당사항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동리명은 한천(寒泉), 용암(龍岩), 덕치(德峙) 등이 보이고, 지목은 전(田)과 답(畓)으로 구분되었다. 세액과 납기구분은 기재된 사항이 없다. 적요에는 토지소유주로 보이는 사람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교섭(李敎燮)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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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부령 객사에서 차운하다 次富寧客舍韻 음산 북쪽에 눈보라 몰아치고발해 가에 풍파가 이네북방 하늘은 끝이 없는데고향 달은 몇 번이나 보름달 되었는가나그네 꿈에 넋 오히려 괴로우니향수로 뚫어져라 바라보노라해가 지나도 말 위의 객인데오늘은 술을 마시는 신선이구나 雨雪陰山北風濤渤海邊胡天無盡處漢月幾回圓旅夢魂猶苦鄕愁眼欲穿經年馬上客今日飮中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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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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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덕재의 원운을 부기하다 附德哉韻 어가는 하늘 서쪽 끝에 있고외로운 신하는 북쪽 변방에 있네티끌이 맑아지니 나라가 다시 일어서고바다가 넓어지니 달이 다시 둥글어지네칼을 던지니 뜬구름 걷히고안장에 오르니 허벅지 살 쓸리는구나공 이루어져도 만호를 사양하고적송자의 신선술을 배워야 하리 鳳駕天西極孤臣地北邊塵淸邦再造海闊月重圓擲釰浮雲決跨鞍脾肉穿功成辭萬戶須學赤松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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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회포를 적다 抱川道中 書懷 장정 비바람 부는 저녁에돌아가는 길 동서 방향을 잃었네내려온 기러기 갈대 물가에서 방황하고굶주린 까마귀는 버들 둑에서 우네안개가 외로운 주막에 피어나 습하고하늘이 먼 산에 닿아 낮아지누나자리 가득 고향 떠난 객들이니시름겨운 얼굴 마주하며 슬퍼하누나 長亭風雨夕歸路失東西落鴈迷蘆渚飢烏噪柳隄烟生孤店濕天接遠山低滿座離鄕客愁顔對慘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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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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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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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賢良科傅旨 王若曰爲國之務人才最先薦賢之責唯在宰輔旁求俊又吐哺握髮古之良相咸以是爲急求之有道世豈無入予之臨政願治求賢如渴一紀于今然而治效末著賢才或遺注擬之際每有乏人之嘆豈不深可嘅哉欲頼羣哲之輔庶臻治理北道咨爾政府其體予懐廣詢博訪以副子仄席之意事下議政府議政府禮曺同議啓目云云歷代取士之法䂓制各異難以編舉西漢孝廉賢良等科最爲近古又其選擧之方考諸史可見元朔元年詔郡國縣官有文學敬長上肅政敎順鄕里出入不悖所聞令上長承上所屬二千石二千石謹察可者令與計偕建武十二年詔三公光祿勳監察御史司隷州牧歳擧茂才四行各一人四行謂淳厚質撲謙遜節儉也郡國茂才偕計到京師天子臨軒親策云云選取節目詳悉備具今依倣此才行兼僃可行之人令京外審覈名實廣薦京中則四舘專掌勿論儒生朝士薦報成均館轉報禮曺中樞府六曺漢城府弘文館亦擧所知移文禮曺外方則留鄕所報本邑守令守令報監司監司更謹察移文禮曺禮曺合取京外所薦聞其姓名行實報政府啓聞殿策諸事臨時啓禀間有名實乖戾謬擧之弊亦爲可慮擧主姓名並錄以憑後考何如啓依允上御勤政殿命題策問京外所薦一百二十人策取金湜等二十八而公居丙科第十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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