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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 선생이 외재에 답한 편지 尤庵宋先生答畏齋書 정 평사의 일은 어렸을 때 일찍이 그가 지은 임진년 격문을 읽어보고 그 사람됨을 상상하였으나, 그가 이룬 사업이 이와 같은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네. 옛날 책에 '큰 난리에 항쟁한 사람에게 제사 지낸다.'10)는 글이 있으니, 지금 처음 의병을 일으킨 지역에 제사 지내는 것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나의 견해가 이와 같은데, 잘 모르겠네만 여론은 어떠한가. 鄭評事事, 兒時嘗讀其壬辰檄文, 想像其爲人矣, 不料其事業如此也。古書有抗大難則祀之之文, 今以此俎豆於首事之地, 何疑何疑。鄙見如此, 未知輿情如何也。 큰……지낸다 우암의 이 말은 전고에 보이지 않고 다만 《예기》 〈제법(祭法)〉에서 "큰 환란을 막은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낸다.[能捍大患則祀之]"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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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렬사 이광좌 彰烈祠 李光佐 누가 이곳을 먼 변방81)으로 보겠는가구름처럼 모인 열사 사방에 진동하네청자82)는 무능하니 누가 다시 기억하랴고명한 이름 만고에 임금 곁에 있으리 孰將玆土視要荒烈士如雲動四方靑紫無能誰復記高名萬古北辰傍 먼 변방 원문의 '요황(要荒)'은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합칭으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지역을 가리킨다. 청자(靑紫) 한대(漢代)에 구경(九卿)은 푸른색 인끈을, 공후(公侯)는 자주색 인끈을 사용했기에 공경(公卿)의 지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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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약의 시에 차운하다 次審藥韻 오랫동안 병중에 있어 좋은 약 필요하니연인 이어진 술자리에서 큰 잔을 겁냈노라흰머리가 점점 방초 따라 자라나니노쇠한 얼굴 활짝 핀 예쁜 꽃 마주하기 부끄러워라진령에 구름 비껴 있는데 석양이 다 저물고호산에 눈 그치자 봄물이 흘러오네저물녘 외로운 성에서 자주 서글피 바라보니향수는 술로도 달랠 수 없구나 經年病裏須良藥連日樽前怯大盃華髮漸隨芳草長衰顏羞對好花開雲橫秦嶺夕陽盡雪罷胡山春水來日暮孤城頻悵望鄕愁無賴酌金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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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장수의 시에 차운하다 공주 목사로 있을 때 짓다 次唐將韻 公州時作。 장군 재기는 문무를 겸비했으니무예와 시를 논하는 것 모두 특출나도다옥 부절170) 지니고 멀리 요동 달을 가르며 와서금 채찍 잡고 곧바로 금강 구름으로 향했네황실은 먼 백성 위무하여 안팎 없이 인을 베풀고왜구는 병력을 남용하여 스스로를 불태우는 형세라진나라 군대 물리친 것은 세 치 혀이니171)구중궁궐에 돌아가 성명한 임금께 아뢰리 將軍才調武兼文說釰論詩兩絶羣玉節遙分遼塞月金鞭直指錦江雲皇家柔遠仁無外海寇窮兵勢自焚退却秦軍三寸舌九重歸奏聖明君 옥 부절 임금이 사신에게 주는 신표로, 여기서는 명나라 황제가 준 신표를 말한다. 진나라……혀이니 장량(張良)이 지략으로서 적군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것을 말한다. 장량은 한 고조(漢高祖)의 모신(謀臣)으로 한 고조를 도와 진(秦)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었는데, 나중에 유후(留侯)에 봉해진 뒤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지금 세 치의 혀로 제왕의 스승이 되어[今以三寸舌, 爲帝子師] 만호에 봉해지고 열후가 되었으니, 이는 포의에게 극도의 영광으로서 나에게는 더없이 만족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史記 留侯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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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길 북도평사를 보내다 送隆吉北道評事 예전에 내가 마천령 밖으로 갔었는데돌아오니 칼집 속 노룡이 우네군영에 본래 변방을 다스리는 계책 있는데막부에 부질없이 좌막의 이름 걸었네관새는 지금 행락하는 곳 되었으니장부가 어찌 이별의 정 느끼랴다만 장백산은 예전 그대로일 것이니이르노니, 구태여 오랑캐 병사에게 보낼 것 없네 昔我磨天嶺外行歸來鞘釰老龍鳴柳營自有籌邊手蓮府空題佐幕名關塞今爲行樂地丈夫那作別離情祗應長白山依舊寄語無勞送虜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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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립이 생선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다 謝李中立饋魚 그대 용흥강가에 살다가멀리 와서 나에게 한 쌍의 잉어를 주누나칼날에 가볍게 눈이 날리는 것257)을 점차 알겠고도마 위에 가늘게 은을 부수는 걸258) 바야흐로 보누나천고에 남긴 한 초나라 혼백을 묻고259)삼추에 돌아갈 흥 오나라 사람을 흔드누나산에 사니 동산의 채소 맛에 오랫동안 질려하였는데집을 옮겨서 이웃에 함께 사는 것이 어떠하신가 君在龍興江水濱遠來遺我一雙鱗刀頭漸覺輕翻雪机上方看細斫銀千古遺冤埋楚魄三秋歸興動吳人山居久厭園蔬味肯許移家共卜鄰 눈이 날리는 걸 물고기를 가늘게 떠서 쟁반에 담은 것이 마치 하얀 눈이 쌓인 듯하다는 말이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관타어가(觀打魚歌)〉에 "요리사가 좌우로 서리 같은 칼을 휘두르니, 회가 금반에 날아들며 흰 눈이 높이 쌓이는 듯하다.[饔子左右揮霜刀, 鱠飛金盤白雪高.]"라고 하였다. 은을 부수는 걸 은빛의 물고기를 잡아 회를 뜬 것을 말한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배정광문유하장군산림(陪鄭廣文游何將軍山林)〉에서 "은 실 같은 신선한 붕어 회, 골짝 푸른 물로 끓인 향기로운 미나리 국.[鮮鯽銀絲鱠, 香芹碧澗羹.]"라고 하였다. 천고에……묻고 굴원의 《초사》 〈어부사(漁父辭)〉에서 "차라리 상강에 빠져 죽어서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이 깨끗한 몸으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는가.[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라고 하였다. 초나라 사람들이 굴원의 투신자살을 슬퍼하여, 물고기한테 굴원의 시체를 뜯어 먹지 말라고 대통에다 쌀을 넣어 물에 던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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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복원에 대한 만사 車復元輓 한양은 대단히 성대하고 송경은 기가 쇠했으니왕기가 비록 옮겨갔지만 산의 기운은 남아 있어라284)천보산의 지령에 인걸이 거처하니285)한 집안 세 준재 중의 차오산이라286)흉금의 도골에는 신선의 풍모가 있으며시격은 교룡이 솟구쳐 오르고 봉황이 나는 듯벗이 조정에 가득해도 자신의 운명은 기박하여겨우 한직인 사도로 추천되었을 뿐이구나 漢京全盛松京古王氣雖移嶽氣餘天寶地靈人傑處一家三秀五山車襟期道骨仙風在詩格騰蛟起鳳如相識滿朝身命薄冷官司導費吹噓 산의……있어라 차천로는 시에 능해 한호의 글씨, 최립(崔岦)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일컬어졌다. 천보산의……거처하니 당나라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걸출한 인물이 나오는 것은 그 땅이 신령스럽기 때문이다.[人傑地靈]"라는 말이 나온다. 한……차오산이라 차천로는 아버지 식(軾), 아우 운로(雲輅)와 함께 세인(世人)으로부터 '3소(三蘇)'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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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포도 발문 이득화 雙浦圖跋 【李得華】 옛날 임진(壬辰), 계사(癸巳)의 액운을 어찌 차마 말하리요. 이 한 폭의 그림은 바로 농포(農圃) 정공과 그리고 우리 선조 창주공(滄洲公)이 의병을 규합하여 옛 길주성에서 섬 오랑캐를 무찌른 유물이다. 내가 죄를 지엇 남쪽에 귀양 갔다가 이것을 농포공 후손 정게(鄭垍)씨의 집에서 얻었으니, 아! 참담한 그림의 모습을 보면 완연히 오랑캐가 눈앞에 있는 것같이 보인다.아득한 옛 성은 음산한 구름이 아직도 가리었고 끊임없는 바닷물에는 뿌려진 핏방울에 여전히 비린내가 나는 듯하다. 그때에 왜놈들이 혹은 울며 혹은 아우성치고 달아나기도 하다가 엎어지기도 하며 죽은 시체가 서로 베고 쌓여서 한 대의 수레도 돌아가지 못하였으니, 그날의 열렬했던 충성과 당당했던 기상은 늠름히 바람과 천둥을 타고 해와 달을 육박하는 듯하여 지금도 한 폭의 종이 위에 빛나고 빛난다.불초한 후생이 두 분 어른을 뵈는 듯한 마음47)에 손을 씻고 눈물을 닦는데, 더구나 이 해가 마침 다시 돌아오니 절로 슬퍼진다. 아! 관북의 높고 위대한 공열은 이미 역사가의 표창하는 기록에 갖추어져 벼슬과 시호를 내리고 제향을 지내 융숭하게 보답하니, 어찌 감히 내 의견을 붙여 스스로 참람한 죄를 범하겠는가. 다만 두 집안 후손들이 백 대를 두고 서로 우의를 다졌던 것은 여태껏 저 만시 한 편에서 거울로 삼을 수 있으리라. 往昔龍蛇之厄, 尙忍言哉。今玆一幅之繪, 卽農圃鄭公曁吾先祖滄洲公, 糾集義旅, 勦破島夷於古吉州遺蹟也。不侫以罪南遷, 得此於農圃公後垍氏家藏, 噫, 慘憺意匠, 宛然如虜在目中矣。莽蒼古壘, 陰雲尙曀, 不盡滄溟, 臊血猶腥。于斯時也, 倭奴之或啼或號, 且奔且蹶, 僵屍相枕, 隻輪不返, 則伊當日, 烈烈之忠, 堂堂之氣, 凜然若駕風霆薄日月, 至今炳炳於尺紙上矣。不肖後生, 盥手抆涕於羹墻之感, 而重自悲斯歲之適回也。烏呼, 關北之豐功偉烈, 旣備於太史氏表揚之筆, 贈以爵諡, 享以崇報, 則更何敢竊附已意, 自速僭越之誅哉。惟兩家後承之百世相好者, 尙可鑑於輓詩一篇矣夫。 뵈는 듯한 마음 '갱장(羹墻)'은 죽은 사람에 대한 간절한 추모의 정을 말한다. 요(堯)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이 3년 동안 사모하는 정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밥을 먹을 때에는 요 임금의 얼굴이 국그릇 속[羹中]에 비치는 듯하고, 앉아 있을 때에는 담장[墻]에 요 임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했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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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초당122)의 〈무후묘〉 시123)에 차운하여 삼가 창렬사 벽에 쓰다 족증손 사성 광운 次杜草堂〈武侯廟〉詩 敬題彰烈祠壁上 族曾孫 司成廣運 위대한 자취 믿을 만한 사적에서 찾았으니위풍당당한 충렬 눈앞에 환하게 펼쳐지네산하는 아직도 우뚝한데 경관124)은 쌓여 있고원학도 여전히 들판의 곡소리에 애처로워하네의리 사모하여 지금까지 향기로운 제수 올리니돌아보건대 그날 공훈 결코 마음에 두지 않았네변방 백성도 스스로 울음 삼키며 지나가는데나라고 어찌 눈물이 옷소매 적시지 않겠는가 壯蹟曾從信史尋堂堂忠烈眼中森山河尙屹京觀築猿鶴猶哀野哭音薦苾于今由慕義顧勳當日定非心邊氓亦自呑聲過我淚如何不滿襟 두 초당(杜草堂) 당(唐)나라 두보(杜甫)를 말하는 것으로, 두보가 성도(成都)의 완화계(浣花溪) 가에 초당을 짓고 살았던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무후묘시(武侯廟詩) 두보의 〈무후묘(武侯廟)〉 시가 《전당시(全唐詩)》 권229에 실려 있는데, 이 시는 오언절구이고 운자도 맞지 않아 착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보의 〈촉상(蜀相)〉 시가 《어정전당시(御定全唐詩)》 권226에 실려 있는데, 이 시가 칠언율시이고 원문의 운자와도 맞다. 경관(京觀) 전공(戰功)을 과시하기 위해 전쟁이 끝난 뒤에 적의 시체(屍體)를 쌓아 올리고 흙을 덮은 큰 무덤을 말한다. 경구(京丘)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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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 山海關 뛰어난 지형 예로부터 가장 명성 독차지했으니요동과 연경의 옛 경계 여기서 서로 부딪쳤지하늘은 삼천 리 발해에 닿아 있고땅은 일만 겹 음산에 접해 있네태평성대엔 진시황처럼 원망 쌓을 것 없고204)뛰어난 공업은 도리어 한 무제 등봉을 비루하게 여기네205)관문 방비할 자 지금 누구일꼬듣건대 수만 군대가 소범의 흉중에 있었다지206) 形勝從來最擅雄遼燕舊界此交衝天連渤海三千里地接陰山一萬重聖代不勞秦築怨豐功還陋漢登封關門鎖鑰今誰是見說兵藏小范胸 태평성대엔……없고 진 시황(秦始皇)처럼 굳이 만리장성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진 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느라 백성들을 고된 부역에 동원하자 이를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뛰어난……여기네 등봉(登封)은 황제가 산에 올라가 봉선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한 무제(漢武帝)가 봉선(封禪) 많이 행한 것을 비루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한 무제는 거액의 비용을 들여 태산(泰山)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그밖에도 사방 여러 곳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했다. 《漢書 卷6 武帝紀》 수만……있었다지 소범(小范)은 송나라 인종(仁宗) 때의 명신 범중엄(范仲淹)을 일컫는다. 범중엄이 지연주(知延州)에 제수되어 서하(西夏)를 방비할 계책을 갖추자, 서하 사람들이 "연주에 뜻을 두지 말라. 지금 소범노자(小范老子)의 가슴속에는 수만의 군대가 있으니[胸中自有數萬甲兵], 대범노자(大范老子) 범옹(范雍)처럼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경계했다고 한다. 《宋史 范仲淹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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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루. 서장관의 시에 차운하다 觀海樓 次書狀韻 만리장성 앞 백 척 높이 누대객이 올라 바라보니 아득하여 시름을 더하는구나요동과 연경이 할거하니 산하는 그대로 있고진나라 한나라가 경영했으니 세월 아득하여라넓은 바다 저 먼 끝에 오직 태양 떠오르고푸른 하늘 나직한 곳에 더이상 모래섬 없네취기 올라 갑자기 일어서니 추사에 슬퍼지고서풍에 고개 돌리니 흘러가는 강 보이네 萬里城頭百尺樓客來登眺逈添愁遼燕割據山河在秦漢經營歲月悠滄海窮邊惟日出碧天低處更無洲酒酣忽起悲秋思回首西風見水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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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의 계축에 제하다 題寧邊契軸 관서는 멀리 오랑캐 땅과 이웃하고 있으니장성은 예로부터 사람에게 달렸어라장군은 절로 흉중에 철갑이 있고막객은 항상 좌상의 봄이 되누나한가한 날 계산에서 두루 유상하나니훗날 그 모습 그림으로 볼 수 있으리강주의 늙은 수령 어찌 그리 늦게 왔는고노둔하여 후배들에게 낄 수가 없구나 西土遙將虜境鄰長城從古在於人將軍自有胸中甲幕客常爲座上春暇日溪山遊賞遍他年面目畵圖新江洲老守來何暮駑劣無由仄後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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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에서 경차관에게 주다 江界贈敬差官 근래 술에 젖어 해가 늦도록 잠을 자는데일어나 봄 경치 찾았으니 분수 넘어 드문 일이라네밤비는 방초에 흔적을 남기고저물녘 바람은 낙화를 하늘거리며 떨어지게 하누나경차관은 웃으며 말하니 따뜻한 옥과 같고곱게 단장한 기녀는 걸음걸음 연꽃 같아라다시 백 잔 술 들어 한 번 취하니내가 노강309)가에 있는 줄을 알지 못하겠구나 近來中酒日高眠起訪韶華分外鮮夜雨餘痕芳草地晩風新態落花天繡衣笑語溫溫玉粉面梳粧步步蓮更擧百杯成一醉不知身在魯江邊 노강 강계에 있는 독노강(禿魯江)을 가리킨다. 봄철의 유흥을 즐기니 변방에 와 있는 줄 알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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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직되어 경사로 돌아가는 부백 정자허와 작별하다 송계 장세경 奉別府伯鄭子虛遞歸京師【松溪 張世經】 예전에 연방을 함께 하고47)지금 이곳에서 다시 만났네용성48) 천 리 길에 달 뜨니봄에 산장서 술 한잔 하세나어찌 생각이나 했겠나 만난 곳에서되려 석별하는 사람 될 줄을습지49)에 저녁 해 기울어가니희끗희끗한 머리에 시 멈추오 疇昔同蓮榜如今更見眞龍城千里月山舘一盃春豈意相逢地翻成惜別人習池斜日暮吟斷鬢絲新 예전에……하고 연방(蓮榜)은 소과(小科), 즉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를 뽑던 과거 시험의 합격자 명단을 말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연보(年譜)〉를 보면, 정문부는 1584년(선조17)에 생원·진사의 초시에 모두 합격하였고, 장세경은 1585년(선조18)에 생원시에 합격한 것으로 나온다. 용성(龍城) 함경북도 경성(鏡城)의 옛 별호이다. 습지(習池) 습가지(習家池)의 준말로, 진(晉)나라 산간(山簡)이 양양(襄陽)에 있을 적에 항상 그곳에 찾아가 만취(滿醉)했다고 한다. 《世說新語 任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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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대나무를 읊다 詠松竹 왕대12)는 오늘의 소무13)이고 苦竹今蘇武장송은 옛날의 백이네 長松古伯夷그윽한 집에 나보다 뛰어난 것이 많으니 幽軒多勝己어찌 선현들 뒤좇아 따르는데 마음을 쓰랴 何用費追隨 苦竹今蘇武, 長松古伯夷.幽軒多勝己, 何用費追隨. 왕대 원문의 '고죽(苦竹)'은 참대 혹은 왕대라고도 하는데, 중국이 원산지이다. 죽순의 맛이 쓰다고 해서 고죽이라 한다. 소무 한 무제 때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흉노의 임금 선우(單于)에게 억류되었으나, 북해(北海) 가에서 양을 치며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절개를 지키다가 19년 만에 한나라로 돌아와서 전속국(典屬國)이란 벼슬에 임명되었다. 《漢書 卷54 蘇武傳》 《史略 卷2 西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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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에게 부치다 寄舍弟 관문의 구름은 아득하고 기러기도 무정하니 關雲迢遞雁無情외로운 성 어느 곳인들 부모 형제 생각나네 何處孤城憶父兄꺼져가는 촛불 밤 깊은데 서리 맞은 잎 울리니 殘燭夜深霜葉響꿈속에서도 연못의 풀은 자랄 수가 없구나 夢中池草不能生 關雲迢遞雁無情, 何處孤城憶父兄.殘燭夜深霜葉響, 夢中池草不能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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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백 영공 임윤신의 시에 차운하여 【정해년(1587) 6월에 지었다.】 次牧伯任令公允臣韻 【丁亥六月】 병들고 졸렬한 나를 누가 찾을까 病拙誰相問숨어사는 곳이 바위틈처럼 깊은데 幽居巖石間연못 맑아 물고기들 팔딱거리고 池淸魚潑潑숲 우거져 새들은 한가롭네 樹密鳥閑閑백골들도 외람되이 은혜 바라며 朽骨叨恩款모든 백성 너그러운 다스림 입었네 齊民荷政寬영광스럽게 와주시니 산 빛깔 변하고 榮臨山動色이마에 손을 얹어 가시는 말 바라봅니다 加額望征鞍 病拙誰相問, 幽居巖石間.池淸魚潑潑, 樹密鳥閑閑.朽骨叨恩款, 齊民荷政寬.榮臨山動色, 加額望征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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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서장관이 요동에서 의주 부윤에게 부친 시에 차운하다 2수 追記 次書狀在遼東寄義尹韻【二首】 삼하262)에 물 불어나 얕은 물굽이 사라지니말안장 풀어놓고 하루종일 배를 저어가네아침에 집에 보내는 편지 부쳤는데오히려 내 가는 길 매우 편하다고 말했노라취중에 용이하게 배 떠나 보냈으니말 타고 길에 올라 다시 채찍 재촉하네술 깬 뒤에 돌아보자 사람들 이미 멀어졌으니모르겠구나, 누가 방긋 웃었는가 積漲三河失淺灣撑舟盡日卸征鞍朝來寄與家書去猶道吾行萬萬安醉中容易解離船跨馬登途更促鞭醒後回頭人已遠不知誰爲作嫣然 삼하(三河) 하북성(河北省)의 삼하현(三河縣)으로 북경의 동쪽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에서 북경으로 갈 때 거쳐 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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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요동성에서 감회가 일어 追記 遼城有感 한 조각 외로운 성에 석양이 비추니지금 남겨진 성첩에 나는 까마귀만 보이네만약 선학을 다시 찾아오게 한다면사람이 변했을 뿐 아니라 성도 또한 변했네263)-성첩(城堞)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一片孤城當落暉只今殘堞見烏飛若令仙鶴重來訪不獨人非城亦非 선학이……변했네 정령위의 고사를 끌어와 쓴 것이다. 한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인 정 영위(丁令威)가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 떠난 지 천년 만에 학으로 변하여 돌아와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은 모두 옛사람 아니구나, 어찌 신선술 안 배우고 무덤만 이리도 즐비한고.[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라고 하였다. 《搜神後記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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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가 답한 편지 畏齋答書 북방에서 조정으로 돌아와서 상사(上舍) 첨윤(僉胤)의 내방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그대의 소식을 알았습니다. 비록 몸씨 기쁘고 위로가 될지라도 영남은 멀고 막혀서 찾아가서 회포를 펴지 못하니 한이 됩니다. 뜻밖에 멀리서 외람되이 보낸 긴 편지를 받아 보니 사의(辭意)가 진중하여 받들어 반복해 읽어 보니 마치 의범(儀範)을 마주하여 간곡한 정을 펴는 것 같습니다. 구구한 기쁨을 마음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고루한 저에 대해 칭송한 것을 감당하지 못하니 대단히 부끄럽습니다.선친께선 당론이 분분하던 시대에 태어나셨는데 공론을 채집하여 한 시대의 참된 시비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마음속에 생각한 것이니, 선 상국(先相國)의 공렬에 대해 힘써 기술한 것도 또한 이 때문입니다. 그 두어 종이에 기록한 문자는 화재를 당하여 유실되고 남은 것인데, 제가 북관에 가지고 들어간 것은 자못 하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그 뜻을 계승하여 세상에 드러내어 알리지 않았다면 이는 곧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으로 그만두지 못할 것이지, 단하가 특별히 선한 것이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들으니 교대할 때 여군(呂君)이 조정에 돌아와서 임금의 앞에서 아뢰어 또한 사당에 사액이 있었다고 하니, 사람들이 의열을 좋아함이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제가 전 달에 고향에 돌아온 뒤로 보내준 편지가 인편을 통해 이르렀으나 안타깝게도 돌아가는 인편이 없어 답서가 오랫동안 지연되었습니다. 이제 답서를 보내는데 마침 병으로 인하여 짧은 폭 어지러운 초서로 회포의 만분의 일도 다 펼 수 없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그대는 존양에 힘쓰고 선열을 계승하여 멀리서 기대하는 저의 마음에 부응하여 주십시오. 삼가 바라건대 첨하(僉下)는 살펴주십시오. 自北還朝, 獲荷僉胤上舍來訪, 憑諳高居消息, 雖切欣慰, 而恨嶺嶠脩阻, 無因拜敍, 不圖遠辱長牋, 寄意珍重, 奉讀以還, 怳如奉接儀範, 款曲披展。區區欣浣, 不容于中, 第於淺陋所以稱道之者, 有不敢承當焉者, 深用愧怍。先人生於黨論之世, 採輯公議, 以定一代之眞是非者, 卽平生之所存, 其於先相國之功烈, 力加記述, 亦爲此也。其數紙文字, 見漏於回祿之餘, 而爲端夏携入北關者, 此殆天意有存, 端夏若不繼其志而有所表章, 卽非人也。此自人之常情, 有所不能已者, 非端夏特有善狀而然也。今聞交代, 呂君歸奏榻前, 又賜廟額云, 亦可見人心有同好於義烈也。僕前月下還松楸, 來書傳至, 而苦無歸便, 久稽奉謝。今始修敬, 而適因病困, 短幅胡草, 不能盡所懷之萬一。只祈僉尊, 遵養珍勉, 以紹先烈, 以副遐企。伏惟僉下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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