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성명은 전하지 않는다. 1592년 5월 일, 부령32) 유배지에 있을 때.】 與人書 【姓名不傳. ○壬辰五月日, 在富寧謫所時.】 지난번 한 통의 편지는 진실로 그리워하던 차에 받았습니다. 봉함을 뜯고 반복하여 읽어보니33) 마치 맑은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근래 무더운 여름 날씨가 되었으니 정신을 굳게 하며 서로 의지하고 있는지요? 비록 한창 무더울 때를 마주하여 쉽게 그대 계시는 곳으로 의리상 달려갈 수 없으니 단지 그리움만 더할 뿐입니다. 아름다운 봄날에 객지에서 시름으로 한결같이 초조하고 애가 타니 정신이 어지럽고 산란합니다. 지난날 학문을 헤아려 보니 아직 평생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조금 얻은 것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떠하겠습니까? 남쪽 지방은 왜적의 변란으로 사람들이 놀랐다고 하니 부모와 형제가 어떻게 몸을 보전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음식을 먹어도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고 잠자리에 나아가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당당했던 나라로 다시 안정되어야 할 텐데 이와 같은 일이 있으니 차라리 죽어 인간 세상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귀댁의 하인이 돌아와서 도성의 소식들을 어떻게 말하였는지요? 바닷가에서 가졌던 아름다운 만남을 다시 마련할 수는 없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頃紆一札, 實値想際. 開緘圭復, 若承淸誨. 卽日夏熱爲況, 神介相須. 雖殷際晤, 未易向風馳義, 只增悠悠. 三春佳節. 客裡愁過, 一向焦枯, 神精昏憒. 商量舊學, 亦未爲平生之志, 些子之得, 到此如何? 南方賊變, 令人驚瞻, 父母兄弟, 想何保全, 食不下咽, 寢不能寐. 堂堂國家更安, 有如此事, 寧欲一死而不願聞人間消息也. 貴奚入來, 洛中諸奇, 何以云. 然海上佳會, 更未謀做乎. 以爲如何. 부령(富寧) 함경북도의 부령군 지역이다. 본래 본래 경성군(鏡城郡)의 석막성(石幕城) 지역이었는데, 1449년에 부거현(富居縣)과 회령부(會寧府)의 땅을 떼어 붙여 부령 도호부(富寧都護府)로 삼았다. 반복하여 읽으니 원문의 '규복(圭復)'은 《논어》 〈선진(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거늘,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상대방의 시문을 정성스럽게 읽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