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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안효각(安孝珏)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安孝珏 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자년 2월 6일에 신랑측인 안효각이 신부측인 정생원 댁에 보낸 혼서 갑자년 2월 6일에 신랑측인 안효각이 신부측인 정생원 댁에 보낸 혼서이다. 주요내용은 성첩(星帖)을 보낸다는 내용인데, 성첩은 사주단자를 말한다. 혼인하기로 결정하면 신랑측에서 사주와 예단을 신부 집에 보내는데 이를 납채(納采)라고 한다. 성첩, 즉 사주단자는 신랑의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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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伏承華翰謹審菊秋尊體動止萬安仰慰區區親事旣承月日欣幸衣製依敎錄呈耳餘謹狀伏惟尊察 謹拜謝上狀癸未九月十六日寧越辛國輔 再拜(皮封)謹拜謝上狀李生員 執事 [着名]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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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謝候上阻久常悵 書到稍慰 况審維夏靜體萬護 伏慰區區 語失先後令從叔母夫人喪事 出於夢外 而且貴嬌之慘 尤不勝驚愕 衰境逆理之慟 實所難堪 寸寸猿腸 可想穿斷爲之悲溸切切 弟慈省長時欠損 焦灼難道 而且室憂婦病 鱗生不絶 還用懊惱 只爲促老 悶憐奈何 茅坪之說 係在緣數 何以强合也 示說此處所貴 百信於那邊 且弟之出入甚狹有何開喙處耶 秖切遠莫之歎而已 星從徒涉遠訪 欣握之餘 留且無幾 遽作把別 悵黯倍耳 餘擾不備謝禮己未四月十四日 弟金極永拜拜【피봉】仁叟兄執事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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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隔一嶺, 歲又迫新,久未承顔, 瞻仰與時俱深矣. 謹未審新元侍餘體候隨序萬旺,寶眷均迪, 幷溯仰慰祝.弟姑依前樣, 是爲私幸耳. 就悚風聞則潭陽水北面所有土地, 因於小作人過失, 今年度小作地移定云云, 是果的然耶?此去高君之父兄, 則水北面開東里年旧居住中, 曾得世界固眞補号也. 而年來至願 貴小作地, 故玆以替恳, 參酌形便, 期於多小間特以鄙私情勿恝, 千萬大望耳.餘日後面叙, 不備禮.再昨年夏間, 不肖家豚의 所關条을 尙今未呈, 未安莫甚者也로다.兄倘照省, 如何如何.乙亥元月念三日, 弟 李㝢老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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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里盧軫永 氏親展(피봉_뒷면)蓮堤里李㝢老謹.(簡紙)懸際, 便人忽到, 袖致 惠存, 新年喜消息, 孰過於此. 承審春意尙煖體度迓新萬祉, 慰溸滿千. 弟家嚴, 近以老症, 六七日欠攝, 爲子之道,焦煎之心, 以筆難喩. 第 惠書中示意, 滿幅辭意, 無非繾惓, 不覺惺汗也. 已作人中保証者數人, 有脫退之意,拒絶書到此矣. 不得已因於事勢, 有此移定, 以是改作之說紛挐也. 他人則因旧仍置矣. 如是仰 告, 則以是 諒下如何.慙負實多. 餘在便人口悉, 不備謝禮.卽武, 弟 盧軫永 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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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진천사(眞泉祠)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眞泉祠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4월 20일, 진천사의 이계종 등 9인이 노진영에게 진천사 유허비 수립 기념식에 참가해 줄 것과 압운대로 시를 지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5년 4월 20일, 진천사(眞泉祠)의 이계종(李啓琮) 등 9인이 노진영에게 진천사 유허비(遺墟碑) 수립 기념식에 참가해 줄 것과 압운대로 시(詩)를 지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4월의 상대방 안부를 간단히 묻고 자신들은 전과 같이 지내어서 분수에 다행이라고 인사했다. 진천사의 유허비 세우는 일이 여러분의 후사(厚賜)에 힙입어 좋은 재료를 얻고 거장(巨匠)의 공역(工役)으로 이제 완성되니 사림의 다행이라고 했다. 다음달 단오날에 옛 터에 유허비를 세울 것이니 광림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 또 '진(眞), 친(親), 신(辰), 린(隣), 신(新)'이란 압운자에 맞추어 시를 지어 투고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발신인으로 적힌 사람은 총9인으로 이계종(李啓琮), 기종섭(奇琮燮), 고유상(高維相), 정우원(鄭友源), 양일묵(梁鎰黙), 김기수(金錡洙), 이재춘(李載春), 고광찬(高光瓚), 유사(有司) 박로선(朴魯宣)이 적혀 있다. 진천사(眞泉祠)는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에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 1655~1723)을 배향하여 세워졌던 사우이다. 박광일은 본관이 순천(順天), 자가 사원(士元), 호가 손재(遜齋), 시호가 문숙(文肅)이며, 송시열(宋時烈)에게 사사하였다. 숙종 때 천거되어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익위(翊衛)·왕자사부(王子師傳)·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산수를 즐기다가 영조 때 죽었다. 숙종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광주 진천사에 제향되었다. 진천사의 건립 연도는 확실하지 않지만 『광주읍지』에 의하면 원생(院生) 20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현재는 두 기의 유허비만 남아 있다. 진천사 유허비의 초건 시기는 1635년으로 추정되며, 1935년 김동수가 찬하여 새로 유허비를 세워 옛것과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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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春數宵行誨 殆若夢境 而逢秋懷事 尤切耿頌 謹未審比來靜中棣候連護 大都均穩耶 區區溸仰 實勞遠忱 弟省節長時欠寧 焦煎難狀 而兒輩姑無頉是幸 今年農形到處被荒 而聞貴鄕尤甚云 爲之代悶 咸氏兄會事 聞見屈云爲之代憤 而伯氏丈垂暮之境 春秋科事 未見其成 尤爲憤歎而已 從侄婚事 姑無定處 是悶那處云事 已至發說云 近果快諾耶 婚節已届 須更爲通奇以未寒前成事如何 雖留此漢數日 以爲詳探回示 切企切企 令允婚事有定處耶 弟亦發說於一處矣尙無回報 是悶是悶 餘撓甚不備禮戊午陽月初吉 弟金極永拜木花十五斤送上 助用於寒具如何【피봉】玉山 靜座 執事入納坪城謹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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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정도상(鄭燾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燾相 內洞齋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진년 11월 24일에 수각리에 거주하는 정도상이 내동제 선생에게 타일러주심에 너무 황송하여 사례할 바를 모르겠지만 감히 한말씀 드리겠으니 듣고서 받아들여 주시겠느냐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병진년 11월 24일에 수각리(水閣里)에 거주하는 문하생 정도상이 내동제(內洞齊) 선생에게 타일러주심에 너무 황송하여 사례할 바를 모르겠지만 감히 한말씀 드리겠으니 듣고서 받아들여 주시겠느냐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선생이 이 말할 만한 가치도 없는 자신에게 만나서 타이르고 편지를 통해서도 말씀해주시니 너무 황송하여 어떻게 사례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우선 참람함을 내버려 두고 감히 한마디 올리려고 하니 듣고서 받아들여 주시겠느냐는 내용, 자신은 이런 말세에 반드시 올바른 도리를 지키며 사심을 없애는 경지에 뜻을 두고 선생을 따랐다는 내용, 독서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지만 몰입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정밀하지 못하여 황폐하게 될까 두렵다는 내용, 조부모와 부모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 한편으로는 세상을 근심하는 탄식이 있으나 말류(末流)의 폐단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물 한잔이 있더라도 수레의 뗄감에 붙은 불을 끄는데 하물며 허황된 말인들 못하겠느냐는 내용, 나머지 사연은 내일 만나서 말씀 드리겠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 편지와 함께 눈 내리는 밤에 명을 어기고 상대방에게 가지 못하여 섣달 밤에 지은 5언 절구시 한 편을 동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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種種便人 緣於忙擾 一未修候 懷仰益切 春盡夏届 未審此際靜中棣候 連衛萬重允兄安侍篤課 渾節均宜耶 並切溸仰 不任勞祝 朞服弟劣狀依昨 而踽涼之懷 愈久愈深 奈何所幸者兒曹與家內 姑無頉耳 令從彧看益奇愛 頗有大進之望 非但自家之賣 不勝柏悅也 何間或有奉晤之道耶 切企切企餘懮不備書禮星皓家亦平安耶 忙未有書 此意傳致如何癸亥四月初六日 服弟 金極永拜拜【피봉】査丈前謹再拜上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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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禮白尊伯嫂氏夫人奄忽違世 承訃驚愕不能已已伏惟友愛加隆 悲慟沈痛 何可堪勝 孟春尙寒 不審服體何似 伏乞深自寬抑無至自損也 初終諸節 想已預具 而但荐遭大故 事多罔措 仰爲之悲念不已 從侄女尙支存云幸也 而其光景常在心頭 時時思想 傷憶欲斷且當此喪變 其痛折想必尤倍 更不欲忍說 弟衰鑠添齒轉深 何足仰塵 餘不備狀禮乙丑正月十五日 弟金極永拜手【피봉】玉山服座執事坪城謹候狀 省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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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송익로(宋益老)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宋益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미년 6월 22일에 송익로가 안부와 함께 상대방의 친족이 자신을 방문하여 상대방의 근래 안부를 들었으나 만날 기약이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정미년 6월 22일에 송익로가 안부와 함께 상대방의 친족이 자신을 방문하여 상대방의 근래 안부를 들었으나 만날 기약이 없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들에 서늘한 가을이 오니 이슬맺힌 갈대의 회포가 절실한 중에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받고서 어버이 모시며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되고 축하한다는 내용, 자신의 어버이가 그새 많이 편찮으셔서 말할 수 없이 걱정스러우며, 그밖에 시름겹고 어수선한 일은 들려주고 싶지 않다는 내용, 매번 그립지만 편지로 안부를 묻는 것도 쉽지 않아 매우 참담하다는 내용, 지금 상대방의 친족이 자신을 방문하여 상대방의 근래 안부를 자세히 들었으나 만나 뵐 기약이 없으니 호수와 교산(嶠山)이 막고 있어 한스럽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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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秋涼入郊 方切葭露之懷 卽拜崇翰 就審侍候萬重 何等慰賀之至益老親節 間多愆損 悶何容喩 外它愁擾之端不欲提陳於○崇聽也每有懷仰之心 而以書探候 亦不容易 尤切悵黯 今因○貴族之來訪 細承○近節 我心爲降 而逢際則無期 只恨湖水嶠山 間其間而遏遞也 餘適撓 略伸謝儀 不備 謹候狀丁未流月念二 宋益老 拜(皮封)謹謝上[着名]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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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박윤상(朴胤相)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胤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37_001 1932년 12월 14일, 제 박윤상이 노진영에게 도조 문제와 아들의 혼례를 전한 내용의 서간. 1932년 12월 14일, 제(弟) 박윤상(朴胤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도조(賭租) 문제와 아들의 혼례를 전한 내용의 서간(書簡)이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에 대해 한탄하고 송구하고 슬프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바람 불고 얼음 어는 날씨에 상대의 아버지 및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아우인 자신은 가솔들이 별로 다른 일이 없고, 자신만 일로 백가지 근심이 총집해 있다고 했다. 또 자신의 병증도 지금까지 쭉 다 낫지 못하고 있다며 고민스럽다고 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 머지않았다며 금년에는 죽지 않은 듯 하다며 이는 하늘의 도움이요, 인명(人命)은 운수에 달려 있다고 했다. 도조(賭租)에 관한 일은 이미 전 편지에서 말씀드렸다며 재곡(財穀)을 청산하는 일은 형세에 그 탓을 돌리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1차 만남이 어르러졌으니 마음에 무안함이 있으면서 겉으로는 가벼운 듯 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비록 용도(用道)의 긴중(緊重)에 부응하고 있지 못하지만 곧 결말을 짓는 날이 올 것이라며 그때까지 너그럽게 마음먹고 성내지 말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 자신의 아들이 장가드는 날이 거의 다가왔다며 범절(凡節)은 논할 것도 없고, 약간의 용비(冗費)도 계책이 없다며 이 또한 가슴 막히는 부분이라고 했다. 다시금 한층 헤아려 주어 자신을 멀리 버리지 말라며 부탁하고 오래지 않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협지(夾紙)에는 지난달 병(病)으로 혼미한 중에 편지를 올렸는데 조격(調格)도 갖추지 않았고 문후와 체면도 많이 빠뜨린 것 같다며 그 후에 자기만 알게 써 놓았던 초고(草稿)를 자세히 살펴보니 한 행을 빠뜨리고, 몇 글자가 오류가 있었다며 미안한 마음에 다시 베껴 올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연 그러했느냐고 물었다. 1932년 11월 1일에 박윤상이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이 본 피봉에 합봉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새로 베껴 올린 편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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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박윤상(朴胤相)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胤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37_001 1932년 11월 1일, 제 박윤상이 노진영에게 도조의 연기 문제를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2년 11월 1일에 제(弟) 박윤상(朴胤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도조(賭租)의 연기 문제를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학사(鶴社)에서 뵌 것은 실로 쉽지 않은 만남이었다며 곧 이별하게 되어 슬펐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요즈음 당상(堂上)의 기력이 어떠하신지, 모시고 있는 당신과 여러 가족들이 모두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궁벽한 마을에 칩거하며 나무꾼과 목동의 일을 하며 지낸지가 오십 평생 동안 한 일로써 '자기(自棄)' 2자를 얻었을 뿐이라며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겸언하였다. 최근에는 점점 주변머리가 없어지는 것이 바다를 항해하던 중 방향키를 잃고 여러 차례 배가 뒤집혀 빠질 뻔한 형세였다고 말하고 지금은 풍랑이 잠깐 조용해 진 것인지 다행히 상어 뱃속에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표현했다.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하면 아직까지 기한이 없다며 통탄했다. 또 최근 감기로 연일 고생중이고 음식을 등한히 하고, 바람을 맞는 것을 조금도 꺼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갈수록 헐떡거리는 증세가 심해져서 이불을 껴안고 누워 아파한다는 것, 곡기는 밤낮으로 거의 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심히 말라서 호흡의 기운이 통하기 어려워 거의 죽을 뻔한 지가 여러 차례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아직 관례를 치른 아들 하나라고 한탄했다. 상대의 논에 도조(賭租)를 기한내로 납부하지 못한 일을 말하며 임시로 쓸 곳이 있고, 자신의 집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며 조금 낫기를 기다려서 마땅히 직접 당신의 집에 찾아가 좌우간에 조치를 취하겠다며 용서해 줄 것을 청했다. 당신 아버님의 평소 애호해 주신 덕택으로 살면서 조금도 보답하고 있지 못하다며 인정(人情)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충 마음을 써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해서라며 갚게 될 날을 기다려 달라고 청하였다. 발신자 박윤상은 장성군(長城郡) 남면(南面) 삼태리(三台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삼태리에는 진원(珍原) 박윤상의 처소였던 망운정(望雲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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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文 豆原右文爲回諭事彼船三隻無弊越境不幸中幸也而許多所入皆是公錢則上納有限趁今居賣乃已故玆以回諭望須僉君子今來初三日齊會于本所以爲爛商議處之地千萬幸甚豆原鄕中各宅癸未八月二十七日出文宋啓日金漢傑宋獜輔張錫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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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通右敬通事蘭生幽谷其馨必聞珠蔵深淵其輝自著人之懿行實蹟則豈特若蘭之馨珠之輝哉本道內故敦寧都正李圭行系出慶州麗朝文魁評理公諱仁挺后野隱先生進士諱永祐十一代孫 贈承旨諱仁㤠曾孫 贈兵參諱時濬孫 贈戶參諱普升子也斯人也簪纓世族詩禮古家自在孩提性賦純至動止言黙異於群兒年甫七歲遭內艱稍長恒以未能盡誠於母喪恨之見人老而衰麻者輒不覺潜然涕下事其嚴定省甘旨克敬克誠侍疾殫誠調藥祝天祈壽及其丁憂執喪之禮一遵古制葬祭盡誠豈不猗歟其他恤窮濟貧之道信友敦族之義鄕黨莫不稱善生等其在同省聞不可含默故玆以所通惟願僉尊使此實行實蹟亟爲闡揚無至湮沒之地千萬幸甚 [羅州郡羅州文廟直員]右 敬 通 于慕 聖 公 會 僉尊閣下乙丑十月 日 羅州鄕校發文多士 羅燾線 羅縯集 鄭遇慶 吳東洙 李炳植 鄭得采 羅鳳運 洪祐瓚 吳根厚 朴熏陽 羅燾佑 林世圭 李敏璿 朴魯庠 柳珵夏 李芳奎 金琪淑 李鍾錫[羅州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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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 芝山面 日谷盧 斯文 軫永 氏(피봉_뒷면)全南 光州郡 飛鴉面 月桂里 武陽書院 內開城杜門洞司院刱建所全羅南北道分事務所(簡紙)謹詢經體萬相, 間接開城本所公函內, 槩祠院建築事, 已自四月望沿木以五月晦內廟宇竣功豫定, 間自貴所解事員選送, 保爲董役之地, 仰告云云. 故爲其協商本月五日任員會開催于本事務所, 揚萬 枉臨之地, 幸甚.此亦中, 依其形便, 當日散會爲料. 則早朝登程午前九時出席之地, 切要.癸酉五月一日[開城杜門洞祠院刱建所全羅南北道分事務所印]開城司院全南分事務所常務 李載春崔鍾涉李玩相崔光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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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忍, 更已無益之寒喧, 點黑紙面, 而大抵洞轍之勢, 一酌之水, 猶爲其難. 况欲渡東海達西江之意, 鄙生之已知其妄也. 然當哀其窮,而將大其聲, 而疾呼則孰不爲知狂泉國人乎. 且靦顔忍恥哀求於衆人, 不若歸命投誠控告吾 丈前, 設有不得底意, 將任其責矣. 况窮不知告哀去不爲反顧, 則又豈可免小丈夫悻悻者之所爲也. 今生之事勢, 租之一石可通東海, 而以吾 丈言之, 則不過杯水之衝, 可不爲之 惠, 而早不至結魚之市耶. 一石租, 倘 惠及, 則異日當準數備報矣. 千萬伏冀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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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盧軫永 殿(피봉_뒷면)井邑郡 七寶面 二里 院誌重刊所內金成基(簡紙)前日惠答, 旣感且賀. 謹更請菊令,春府先生氣候康寗, 而侍中棣體萬旺, 寶節亦爲均吉, 仰頌且祝. 弟依劣, 而方以院誌校正事, 汨沒擾惱中, 困於刊費, 實難進行, 而來月末日內入刊粧冊爲計矣, 然此將奈何奈何. 向 兄書中, 多數補費云者, 未嘗不歎鬱者也. 所爲十円金 令春府先生四件單金猶爲大不足中裵漢道三許旣爲盜難, 而此条咎實, 在我不必煩隙, 是亦弟之擔當見困也. 又爲拾円金, 仁兄幷單金也. 有何爲助耶. 比於他人, 則十分五条未及也. 蔽一言, 依記載件一金拾円金, 今月二十日內惠送, 如何如何.海諒持念此漢之情形, 大望大望耳. 餘立竢, 不備候禮.甲戌菊月九日, 弟 金成基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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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성기(金成基)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成基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5_001 1934년 2월 26일, 제 김성기가 노진영에게 원지 값의 도난 사건과 자신이 상대의 편지에 답장하지 못했던 사유 등을 전한 서간. 1934년 2월 26일, 제(弟) 김성기(金成基)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원지(院誌) 값의 도난 사건과 자신이 상대의 편지에 답장하지 못했던 사유 등을 전한 서간(書簡)이다. 봄 날씨에 상대의 아버님인 선생님, 상대, 그리고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다고 했다. 바야흐로 원지(院誌)를 교정하는 일에 골몰 중이어서 겨를이 없다고 한 후 작년 12월 상대에게 도(道)의 장의(掌議)를 부처 드렸는데 다만 구원지(舊院誌)만 도착하고 회답이 없기에 배도(裵道)란 놈에게 물었더니 형과 소실(小室) 부인이 광주읍에 사는데 대답이 오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기에 그 뒤로 형에게 여러 차례 다시 편지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배(裵) 한(漢)이 단자 비용를 거두러 흥덕과 고창의 3~4 곳을 가서는 40엔(円) 돈을 횡령하고는 밤에 몰래 가솔을 데리고 도주했음을 전하고, 자신이 즉시 관할 주재소에 고소하고 그 집을 경관(警官)이 수색했다는 것, 수색중에 5~6인의 답장편지 중에 형의 편지를 발견했다는 것, 그 중에는 단금(單金) 10엔과 단자(單子)만이 있었지 봉안운(奉安韻)이 없었다는 것, 때문에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그 놈에게 분통이 터져 남쪽 북쪽 도(道)를 대 수색했다고 말하며 어찌 감히 용서를 바라겠느냐고 말했다. 아우의 편지에 형이 읽고 답하였지만 그 때는 추적을 당해 도망중이거나 아니면 감옥에 갇혔을 때라서 답장을 할 수 없었다고 사정을 전했다. 또한 배가 놈에게 50엔이 넘는 돈을 손실 본 뒤에 원지 비용으로 인한 갈등으로 우선 간행을 정지하고 있으며, 자신도 그로 인하여 한 달간 병이 생겨 죽을 지경이었고, 지금에야 겨우 일어났다고 말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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