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문이 글은 통지하여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효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고, 열(㤠)은 삼강(三綱) 중의 하나로 만년토록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림들이 천양하고 나라에서 포상하는 은전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본 군의 세지면(細枝面) 오봉리(五峰里) 효열부(孝烈婦) 박씨는 본적이 밀양이고 밀성군(密城君) 언침(彦忱)의 후손이며, 학생 유삼(有三)의 딸입니다. 밀양 박씨는 법도 있는 집안에서 생장하여 옛 가르침을 따랐는데, 방년 18세에 나주 망족 사인 나득수(羅得洙)에게 시집갔습니다. 남편은 금호공(錦湖公) 사침(士忱)의 후손이고 종기(鍾基)의 아들입니다. 나씨에게 시집가서는 몸소 부도(婦道)를 행하여 시부모를 효로써 봉양하고 남편을 공경함으로 받들어 향리와 족척(族戚)이 칭찬해 마지않았습니다.얼마 지난 뒤에 남편이 기이한 질병에 걸렸는데 병석에서 누워 있는 10여 년 동안 침과 콧물, 오줌과 똥을 재빨리 치워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의복은 깨끗이 세탁하여 냄새가 나지 않게 하였고, 몸소 죽을 쑤고 약을 끓였으며, 하늘에 빌고 북두에 빌면서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어 마침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밀양 박씨는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맹세하고 3일 동안 밥을 먹지 않다가 집안사람에게 들켜 시부모님이 울면서 타이르고 종족들이 위로하자, 마침내 돌연히 깨닫고는 강한 의지로 일을 처리하여 죽은 이를 전송하는 모든 절차를 조금도 여한이 없게 하였습니다.삼 년 동안 치전하고 곡하는 것을 옛 법도대로 따랐고 두 뺨에 눈물이 흘러도 구슬픈 곡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시부모가 마음이 상할 것을 걱정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의 도를 더욱 부지런히 하였으며, 변변치 않은 음식을 힘써 제공하여 남편이 살아있을 때보다 배나 흡족하게 하였습니다. 항상 미망인으로 자처하고 빗질하지 않으며 평생을 살았고 고아를 가르치고 기르면서 가문의 명성을 보전하였으니, 옛사람의 이른바 고아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진정으로 부인이 실천하였습니다. 아, 훌륭합니다. 아들 상옥(相玉)·상교(相敎)가 옛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편모를 잘 봉양하였는데, 예천(醴泉)과 영지(靈芝)가 근원이 있다는 것1)은 참으로 실제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저희는 동향에 살면서 이와 같은 탁월한 행실과 아름다운 덕행을 자세히 듣고 알아서 끝내 사라지게 할 수 없기에 이처럼 우러러 고하는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여러 군의 여러 군자께서는 한목소리로 찬양하여 후세에 풍교를 세우기를 몹시 바랍니다. 이 글은 여러 군의 향교 유림 여러분께 공경히 통지한 것입니다.단군 4288년(1955) 모월 모일에 나주군 향교 전교 오대선(吳大善), 유도회장 이계두(李啓斗)·이종석(李鍾奭)·이우규(李禹圭), 임인규(林麟圭)·김봉수(金奉洙)·진상수(陳相洙)·김동현(金東賢)·정병호(鄭昺浩)·이교창(李敎昶)·이병두(李丙斗)·나갑운(羅甲運)·정태림(鄭太林)·허종(許鐘)·정동채(鄭東采)·이태형(李泰炯)·임민호(林珉鎬)·이양신(李良信)·이동범(李東範)·류제봉(柳濟鳳)·나갑운(羅甲運)·이병두(李丙斗), 다사(多士) 홍동희(洪東憙)·류재수(柳在洙)·오판근(吳判根) 류영오(柳永五)·오승수(吳昇洙)·나도인(羅燾仁)·홍조근(洪肇植)·윤승의(尹承義)·나기보(羅基寶)·오남선(吳南善)·홍승천(洪承天)·임선규(林璿圭)·이규봉(李圭逢)·나종성(羅鍾聲)·이민선(李敏璿)·나종근(羅鍾瑾) 예천(醴泉)과 영지(靈芝) 영지는 전설상의 신비한 약초인 지초(芝草)이고, 예천은 감미로운 물이 솟아난다는 신비한 샘으로, 모두 뛰어난 인재를 말한다. 通文右謹爲通告事 孝是百行之源 烈爲三綱之一 亘萬古而不易者也 是故有士林之闡揚 國朝褒貤之典也 今本郡細枝五峰里孝烈婦朴氏籍密陽 密城君彦忱后 學生有三女 生長法家 克遵古訓 芳年十八 㱕于羅州望族士人羅得洙 寔錦湖公士忱后鍾基之子也 及歸羅氏 躬執婦道 養舅姑以孝 奉君子以敬 鄕里族戚莫不稱嘆 居無何夫嬰奇疾 委牀十餘年 唾洟尿糞 亟爲刷除 不令人見 衾?衣服務其凈潔 不欲其臭 煎粥湯藥 躬親爲之 禱天祝斗 願以身代 命數有定 竟至城崩 矢欲下從 不食三日 乃被家人所覺舅姑泣諭 宗族慰憐 遂幡然改悟 强忍視事 送終凡百少無餘憾 三年奠哭 式遵古制 淚泗交頤 不出哀哭聲 恐傷其舅姑之志 尤勤定省之道 務適菽水之供 旨倍於夫在之日 常以未亡人自處 不櫛不梳 度了平生 教養幼孤克保家聲 古人所謂立孤難者 實夫人爲之 嗚乎韙哉 胤子相玉相教不違古訓 善養偏慈 醴芝根源 寔實際語也 鄙等居在同鄕 如此卓行懿德聞之悉知之詳 不可終㱕於泯沒 故如是仰告 惟願列郡 僉君子同聲讃揚 樹風聲於來後 千萬辛甚 右敬通于列郡 鄕校 儒牀 僉 座下檀紀四千二百八十八年 月 日[羅州鄕校]羅州郡鄕校典校 吳大善[羅州鄕校典校之印] 儒道會長 李啓斗 副會長 李鍾奭 李禹圭 掌議 林仁圭 金奉洙陳相洙 金東賢 鄭昺浩 李敎昶 李丙斗 羅甲運鄭太林 許 鐘 鄭東采 李泰炯 林珉鎬 李良信李東範 柳濟鳳 羅甲運 李丙斗多士 洪東憙 柳在洙 吳判根 柳永五 吳昇洙 羅燾仁 洪肇植 尹承義羅基寶 吳南善 洪承天 林璿圭 李圭逢 羅鍾聲 李敏璿 羅鍾瑾[皮封] (背面) 羅州鄕校 敬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