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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기묘) 二十四日 己卯 -도유단알(屠維單閼)-. 맑음. 【屠維單閼】。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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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경진) 二十五日 庚辰 -상장집서(上章執徐)-. 흐림. 눈 온 흔적이 있었다. 오늘은 입춘(立春)이다. 사람들이 충재(虫災)를 걱정한다. 【上章執徐】。陰。有雪痕。是日立春也。人憂虫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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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정사) 八日 丁巳 -강어대황락(疆圉大荒落)-. 맑음. 용주(容周)가 갔다. 【疆圉大荒落】。陽。容周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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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무오) 九日 戊午 -저옹돈장(著雍敦牂)-. 맑음. 【著雍敦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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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무자) 三日 戊子 -저옹곤돈(著雍困敦)-. 흐림. 눈이 온 산야에 가득하고 매우 추웠다. 새벽에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아들이 횡역(橫逆)의 화를 당해 광주(光州)에 들어갔는데, 두 손자가 따라가서 종일토록 검사국(檢査局) 밖에 서 있다가 한밤중에 돌아왔다. 【著雍困敦】。陰。雪滿山野酷寒。晨風凜凜。子被橫逆之禍。 入光州。 二孫隨之。 終日竟夕。 立於檢査局外。 乘夜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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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기축) 四日 己丑 -도유적분약(屠維赤奮若)-. 맑음. 【屠維赤奮若】。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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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경인) 五日 庚寅 -상장섭제(上章攝提)-. 맑음. 【上章攝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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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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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을유) 初一日 乙酉 -전몽작악(旃蒙作噩)-. 맑음. 이날은 죽은 아내의 기일이라서 애통한 마음을 그만 둘 수 없다. 【旃蒙作噩】。陽。是日亡室忌日也。 悲悼不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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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병술) 初二日 丙戌 -유조엄무(柔兆閹茂)-. 흐리고 비. 【柔兆閹茂】。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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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정해) 初三日 丁亥 -강어대연헌(彊圉大淵獻)-. 갬. 【彊圉大淵獻】。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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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신사) 二十六日 辛巳 -중광대황락(重光大荒落)-. 흐림. 새벽에 눈이 왔다. 【重光大荒落】。陰。晨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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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갑술) 二十日 甲戌 -알봉엄무(閼逢閹茂)-. 맑음. 【閼逢閹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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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을해) 二十一日 乙亥 -전몽대연헌(旃蒙大淵獻)-. 맑음. 하릴없이 검단리(檢丹里)에 이르러 청련(靑蓮)16)의 후예 이정균(李正均) 집에서 머물러 잤다. 【旃蒙大淵獻】。陽。無聊至檢丹里。 靑蓮后裔李正均家留宿。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의 호(號)이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1555년(명종10)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이조 판서에 올랐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강진 서봉서원(瑞峰書院)과 함안(咸安)의 문회서원(文會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에 《청련집((靑蓮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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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을해) 二十二日 乙亥 -전몽대연헌(旃蒙大淵獻)-.17) 맑음. 광주(光州) 매월리(梅月里)18)에 위문(慰問)하러 가다가 그 길을 잃어버려 이산동(泥山洞)19)에 이르렀다. 돌아서 매월리로 가는데, 길 앞에 날아갈 듯 한 모양의 기와집이 있어 들어가 보니 고(高) 제봉(霽峰)선생의 포충사(褒忠祠)20)였다. 원지기[院直]를 불러 장의(掌議)21)와 색장(色掌)22)이 있는지 없는지 물었다. 원지기가 답하기를, "오시지 않아서 원문(院門)을 닫아놓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원지기에게 명해서 문을 열어 봉심(奉審)하고 물러나와 압산(鴨山)23)에 이르렀다. 개동촌(開東村)24) 고창석(高昌錫)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현와(弦窩)25) 봉산정사(鳳山精舍)26)에 이르러 머물러 잤다. 【旃蒙大淵獻】。陽。作光州梅月里。 慰問之行。 迷其途。 至於泥山洞。回行梅月里。 前路有翼然之瓦家。 入見。 乃高霽峰先生褒忠祠也。呼院直。 問掌議色掌之存否。 院直答。 "不來。 固閉院門." 命直啓門。 奉審以退。 至鴨山。到開東村高昌錫家點心。 至弦窩鳳山精舍留宿。 을해 -전몽대연헌- 순서로 보아 '병자 –유조곤돈-'이라야 한다. 착오는 이후 25일까지 계속된다. 광주(光州) 매월리(梅月里) 현재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관할 하의 매월동을 가리킨다. 니산동(泥山洞) 현재 광주광역시 서구 대촌동 관할 하의 이장동으로 추정된다. 포충사(褒忠祠) 임진왜란 초기 호남 지방에서 의병 7천명을 모집하여 금산성 전투 및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 · 고종후 · 고인후 3부자와 유팽로 · 안영 등 5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액 사당이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손되지 않은 전라도 지방의 2개 서원 중 하나이다. 장의(掌議) 성균관(成均館)이나 향교(鄕校) 재임(齋任)의 으뜸자리를 부르는 말이다. 색장(色掌) 성균관(成均館), 향교(鄕校), 사학(四學) 등에 거처하던 역원(役員)을 가리킨다. 압산(鴨山)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압촌마을을 가리킨다. 개동촌(開東村)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관할 하의 이장동으로 추정된다.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의 호(號)이다. 고광선은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후손으로 광주(光州)에서 태어나 나도규(羅燾圭, 1826~1885),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광주 서창 봉산(鳳山)에 은거하였고, 1906년 엄이재(掩耳齋)를 세우고 후진교육에 정진하였다. 1919년 봉산정사를 건립하였다. 봉산정사(鳳山精舍) 고광선(高光善)이 세운 정자로,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봉황산 중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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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임오) 二十九日 壬午 -현익돈장(玄黓敦牂)-. 맑음. 【玄黓敦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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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경진) 二十七日 庚辰 -상장집서(上章執徐)-. 맑음. 일전에 술자리에서 써준 작별시를 기록한다.〈삼가 후석 오준선56) 선생이 이별할 때 준 시에 차운하다〉(謹次吳後石先生贈別韻)도를 꾀하며 벗을 우러러보지만,(謀道仰知舊)용진산의 그윽한 곳에 이르기 어렵네.(難到湧珍幽)삼산(三山)57)에서 계를 묻은 정의로 인해,(修契三山誼)물가에서 이별하며 시를 주네.(贈別一水頭)오늘날 윤리를 싫증내는 것 근심하며,(憂今斁倫理)나에게 훈계하며 세상의 도에 신중하라네.(戒我愼世道)다른 날 서로 만나길 약속하니,(他日相逢約)서글픈 감회 끝이 없네.(悵懷正悠悠)후석 오준선의 증별시이다.〈서암재 김옹과 이별하며 주다〉(贈別棲岩齋金翁)삼산에서 옛날에 짝이 되어 놀았는데,(三山舊遊伴)용진산의 그윽함을 찾아 방문해주었네.(訪到湧珍幽)나를 보고 웃으면서 이제 늙은이 되었다고 하는데,(笑我今黃耈)그대를 보아도 또한 흰머리가 되었군.(看君亦白頭)서암과 하는 말마다 흥미로운데,(滿說棲岩興)세간에선 대부분 말하기 두려운 것이네.(世間多畏道)두 늙은이 다시 이별을 애석해하니,(兩衰還惜別)그리움은 갈수록 끝이 없으리.(懷思轉悠悠)용진병생 오준선이 남을 시켜 씀.또 전북 고창군 부안면 검곡리의 지포(芝圃) 김도병(金道炳) -자는 덕중- 에게 준 지포 원운시를 기록한다.지초를 모종함에 어찌 다만 석전의 모래일거나.(蒔芝奚特石田沙)구름 속 신령한 뿌리 찬란하게 비껴있네.(雲裏靈根燁燁斜)인간 세상에서도 신선의 약 지을 만하니,(可作人間仙子藥)천상의 벽도화를 구하지 않네.(不求天上碧桃花)노래 전한 사호(四皓)58)는 낙지를 꺼려했고,(歌傳四皓嫌樂地)술서로 십황(十黃) 얻은 이 장수가에 합당하네.(術得十黃合壽家)동행(董杏)59)이 숲 이루기 어려운 일 아니니,(成林董杏非難事)음덕이 우선하여 끝없는 복 얻으리. (蔭德爲先獲福遐) 【上章執徐】。陽。記日前所酬酌贈別韻。〈謹次吳後石先生贈別韻〉謀道仰知舊。難到湧珍幽.修契三山誼。贈別一水頭.憂今斁倫理。戒我愼世道.他日相逢約。悵懷正悠悠.後石贈別詩。〈贈別棲岩齋金翁〉三山舊遊伴。訪到湧珍幽.笑我今黃耈。看君亦白頭.滿說棲岩興。世間多畏道.兩衰還惜別。懷思轉悠悠.湧珍病生 吳駿善 倩草又記。 贈全北高敞郡富安面檢谷里。 金道炳字德中芝圃原韻。蒔芝奚特石田沙.雲裏靈根燁燁斜.可作人間仙子藥。不求天上碧桃花.歌傳四皓嫌樂地。術得十黃合壽家.成林董杏非難事。蔭德爲先獲福遐. 오준선(吳駿善, 1851~1931) 자는 덕행(德行), 호는 후석(後石), 본관은 나주이다. 오하규(吳夏圭)의 아들로 오항규(吳恒圭)에게 입양되었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임헌회·송근수·최익현·송병선·송병순 등과도 폭넓게 종유하였다. 1917년에 용진산에 용진정사를 지어 후학을 가르쳤으며, 유집으로 《후석유고(後石遺稿)》가 있다. 삼산(三山) 송사 기우만(奇宇萬)이 1896년에 은거하던 장성 삼성산의 삼산재(三山齋)를 말한다. 사호(四皓) 상산사호(商山四皓), 즉 진(秦)나라 말기에 폭정(暴政)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어 살았던 네 명의 노인을 말하는데, 후세에 나이도 많고 덕도 높은 은사(隱士)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한고조 유방은 황제에 오른 뒤 상산사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초청했으나 상산사호는 '자지가(紫芝歌)'를 부르며 거절했다고 한다. 동행(董杏) 동봉(董奉)의 살구란 뜻인데, 행림(杏林)이란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삼국(三國) 시대 오(吳)나라 동봉이 여산(廬山)에 은거하면서 사람의 병을 치료해 주고 치료비 대신 중환자는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경환자는 살구나무 한 그루를 심도록 하였는데,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울창한 숲이 되었다.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이 행림을 양의(良醫)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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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신사) 二十八日 辛巳 -중광대황락(重光大荒落)-. 맑음. 《주역ㆍ계사전(繫辭傳)》 4장을 보았는데, '신은 일정한 방소가 없고 역은 일정한 체가 없다.[神無方易無體]'에서 불쑥 '태극이면서 무극'이라는 이치가 보였다. 【重光大荒落】。陽。看繫辭四章。 '神無方易無體'。 闖然見乎太極而無極之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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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五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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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일(계미) 初一日 癸未 -소양협흡(昭陽協洽)-. 맑음. 【昭陽協洽】。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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