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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병신) 五日 丙申 -유조군탄(柔兆涒灘)-. 흐림. 【柔兆涒灘】。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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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정유) 六日 丁酉 -강어작악(疆圉作噩)-. 맑음. 【疆圉作噩】。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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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무술) 七日 戊戌 -저옹엄무(著雍閹茂)-. 맑음. 【著雍閹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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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을묘) 三十日 乙卯 -전몽단알(旃蒙單閼)-. 맑음. 【旃蒙單閼】。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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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十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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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갑인) 二十九日 甲寅 -알봉섭제(閼逢攝提)-. 맑음. 【閼逢攝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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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병진) 初一日 丙辰 -유조집서(柔兆執徐)-. 맑음. 【柔兆執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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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을유) 二十三日 乙酉 맑음. 정준원(鄭俊源)의 점차(苫次)76)에 들어가서 만사(挽辭)77)를 열람하였다. 녹실장이 손녀 근친78)으로 술을 성대하게 차렸다고 하므로, 얼른 녹실댁에 이르러서 술을 마셨다. 녹실장을 따라서 함께 계당(溪堂)79)에 임하여 하루를 보내고, 정종원(鄭琮源)이 저녁밥을 이바지한다고 하기에 정종원의 집에 들어갔다. 밤이 깊어지자 돌아와 참봉의 우사에서 묵었다. 陽。入鄭俊源苫次。 考閱挽辭。綠室丈以孫女近親酒盛。 速到綠室宅。 飮酒。隨綠室丈。 同臨溪堂竟日。 而鄭琮源供夕飯。 入琮源宅。夜深而歸。 宿于參奉寓舍。 점차(苫次) 거적자리로, 상주가 거주하는 여막을 말한다. 만사(挽辭) 만사(挽詞).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지은 글. 근친 원문에서의 '근친(近親)'은 근친(覲親)의 오기로 보인다. 근친은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와서 친부모를 뵙는 것을 말한다. 계당(溪堂) 정철(鄭澈)의 4남인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1582~1650)이 1616년에 낙향하여 지은 집으로,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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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정해) 卄五日 丁亥 흐림. 가는 비가 내렸다.〈정저암의 육십 회갑 잔치시에 차운하다(次鄭樗菴六十華甲晬宴韻)〉육십년의 세월을 지낸 저하당이라(六十光陰樗下堂)지나온 자취로 상서로움을 살핀다는 명성 향기롭네(考祥素履以名香)【맑은 이름 퍼진 곳에 말하는 사람마다 향기롭네.】(淸名播處口先香)누대 위에는 성옹(醒翁)께서 한결같이 덕을 닦고(坮上醒翁修一德)뜰 앞에는 보배 나무가 삼광80)에 응하네(庭前寶樹應三光)많은 선비 축하하는 마음 시축에 가득하고(多士賀情詩滿軸)여러 손자들 헌수하는 마음 술잔에 가득하네(衆孫上壽酒盈觴)문청공의 남은 음덕이 이에 증험되니(文淸餘蔭於時驗)처음 회복된 일양이 점점 자라는 것 보겠네(初復一陽漸看長) 陰。微雨。次鄭樗菴六十華甲晬宴韻六十光陰樗下堂。考祥素履以名香。淸名播處口先香。坮上醒翁修一德。庭前寶樹應三光。多士賀情詩滿軸。衆孫上壽酒盈觴。文淸餘蔭於時驗。初復一陽漸看長。 삼광(三光) 해, 달, 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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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신축)179) 十三日 辛丑 맑음. 김경헌(金景憲)의 친상(親喪)을 위문하였다. 옛 법도를 따랐다[率由舊章]180)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았다. 陽。慰問金景憲親喪。以率由舊章。 受嘲於傍人。 신축 원문에는 '庚子'라고 했으나, 10월 12일이 경자일이므로 10월 13일은 신축일이다. 옛 법도를 따랐다[率由舊章] ≪시경≫ 〈가락(假樂)〉에 '어기지 않고 잊지도 않아서, 모두 옛 법을 따랐네.[不愆不忘, 率由舊章]'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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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임인)181) 十四日 壬寅 맑음. 다시 장성으로 갔다. 陽。復出長城。 임인 원문에는 '辛丑'이라고 했으나 10월 13일이 신축일이므로 10월 14일은 임인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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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1일(계사) 初一日 癸巳 맑음. 당촌(堂村)91)을 지나가다가 이문안(李文案)을 방문했다. 앞서 다만 얼굴만 알았는데, 지금 자세히 물어보니, 바로 가정(稼亭) 이곡(李穀)선생의 19세손이고,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의 18세손이다. 이름은 한직(漢稙)이고, 문안은 그 관직명이니, 바로 군부(軍部)의 초사(初仕)직이다. 반나절을 지체하였다. 陽。過堂村。 訪李文案。先時。 但知面。 今詳問。 乃稼亭先生十九世孫。 牧隱先生十八世孫。名漢稙。 文案其官也。 卽軍部之初仕也。遲滯半日。 당촌(堂村) 담양군 대덕면 금산리 당촌마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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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임신) 九日 壬申 반은 흐리고 반은 맑음. 동틀 무렵에 일어나 ≪주역≫ 〈계사전〉을 보다가 복희(伏羲) 선천도(先天圖)5)의 위차는 건남곤북(乾南坤北), 리동감서(離東坎西)로 하고, 문왕(文王) 후천도(後天圖)의 위차는 진동태서(震東兌西), 리남감북(離南坎北)으로 한다는 의미를 황홀하게 깨달았다. 대체로 복희 8괘는 대대(待對)의 수로 괘를 만들어 방소를 정한 것이고, 문왕의 8괘는 때때로 유행(流行)하는 기로 괘를 만들어 방소를 정한 것이다. 그런 즉 복희의 대대정위(待對定位)의 체(體)가 없으면 문왕의 유행변화(流行變化)의 용(用)을 헤아리기 어렵고, 문왕의 유행변화의 용이 없으면 복희의 대대배위(待對配位)의 체를 알기 어렵다. 체가 있으면 용이 있고 용이 있으면 체가 있으니 천리(天理)는 동일하지만 선천, 후천으로 달라진 것은 복희와 문왕 시대의 차례 때문이다. 나의 좁은 소견에서 보건대 선천과 후천이 동일하지 않다는 설은 실로 밝게 깨닫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半陰半陽。黎明起觀易翫辭。 恍然知得伏羲先天位次。 乾南坤北。 離東坎西。 文王後天。 震東兌西。 離南坎北之義。大抵伏羲八卦。 以生卦待對底數定方也。 文王八卦。 以卦時流行底氣定方也。然則無伏羲底待對定位之體。 則難測文王底流行變化之用。 無文王底流行變化之用。 則難見伏羲底對對配位之体也。有体有用。 有用有体。 同一天理。 而先後之異。 以伏羲文王時代之序也。於今管見之。 先後天不同之說。 實不曉得也。 固矣。 선천도(先天圖) ≪주역≫의 원리를 그림으로 해설한 것으로 복희씨(伏羲氏)의 〈선천도〉와 문왕(文王)의 〈후천도(後天圖)〉가 있었는데, 소옹은 복희씨의 〈선천도〉를 바탕으로 선천상수학(先天象數學)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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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갑술) 十一日 甲戌 흐리고 간혹 가랑비 옴. 지나온 자취를 보며 상서로움을 살폈다.6) 박모(薄暮, 저물녘)부터 평명(平明, 새벽)까지 비가 내렸다. 陰而或微雨。視履考祥。自薄暮至平明而雨。 시리고상(視履考祥) ≪주역≫ 〈이괘(履卦)〉 상구(上九)에 "행동을 살펴보아 길흉을 상고하되, 주선한 것이 완벽하면 크게 길하리라.[視履考祥, 其旋元吉]"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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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임술) 三十日 壬戌 맑음. 아침밥을 먹은 뒤에 화석(火石)86)을 지나다가 정봉현(鄭鳳鉉)을 방문하여 잠시 얼굴을 대했다. 청단리(靑丹里)87)에 이르러서 주영묵과 기약대로 만나 함께 연실촌(蓮實村)88)으로 갔다. 점심을 김석오(金石五) 집에서 먹고 고개를 넘으면서 앵무봉(鸚鵡峯)89)을 완상하고, 침치협(砧峙峽)을 거쳐 학동(學洞)90)의 종인 희천(希天)을 방문했으며, 주영묵의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주영묵에게 주부자 영당을 지어 사문의 맥을 부지하라고 권하였다. 陽。朝飯後。 過火石。 訪鄭鳳鉉。 暫面。到靑丹里。 與朱永默。 會期。 同行蓮實村。午飯於金石五家。 踰嶺翫鸚鵡峯。 歷砧峙峽。 而訪學洞宗人希天。 到朱永黙家留宿。勸永黙。 建朱夫子影堂。 以扶斯文之脈。 화석(火石) 옥과 화석면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곡성군 오산면에 해당된다. 청단리(靑丹里) 현재 곡성군 오산면 청단리에 해당된다. 연실촌(蓮實村)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앵무봉(鸚鵡峯) 담양군 대덕면 용대리에 있는 꾀꼬리봉을 말한 듯하다. 학동(學洞)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 학동마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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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경술) 二十五日 庚戌 -상장엄무(上章閹茂)-. 맑음. 【上章閹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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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병오) 二十二日 丙午 -유조돈장(柔兆敦牂)-. 맑음. 【柔兆敦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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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정미) 二十三日 丁未 -강어협흡(强圉協洽)-. 맑음. 【强圉協洽】。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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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무신) 二十四日 戊申 -저옹군탄(著雍涒灘)-. 광주(光州) 서창면(西倉面)의 봉산정사(鳳山精舍)에 갔다.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 선생, 안강현령(安康縣令)의 손자 대석(大錫)과 윤석(允錫), 안강현령이 마침 방축 안에 있었다. 삼산(三山) 이계종(李啓琮)씨, 남평(南平)의 야산(夜山) 이홍수(李洪洙), 금구동(金龜洞)의 문정기(文正基)가 와서 참여하였다.들은 것을 기록한다.옛적 포증(包拯)31)은 합비(合肥) 사람인데, 본군의 수령으로 왔다. 조금도 법을 굽혀서 고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아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속에서 서로 비방하니, 공이 이에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보여 주었다. 그 중에 일련(一聯)에 이르기를 , "곧은 가지는 마침내 동량(棟樑)이 될 수 있고, 진실로 강한 것은 갈고리로 만들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 정도를 지키고 굽히지 않음이 이와 같다.책을 보면 곧 잊어버리지만, 마치 성긴 체에 물을 걸러 아직 습기는 남아 있는 같다.음덕은 마치 귀가 우는 것과 같아서 남은 알지 못하는데 자기 홀로 그것을 아는 것과 같다. -수나라 이사겸(李士謙)32)- 【著雍涒灘】。作光州西倉面鳳山精舍之行。 高弦窩先生光善氏。 安康令抱大錫允錫。 安倅。 適有防築內。李三山啓琮氏。 南平夜山李洪洙。 金龜洞文正基來參。記所聞。昔包拯。 合肥人。 出守本郡。不肯少屈法。 以阿鄕曲之好。故流俗相謗議。 公乃爲詩。 以見意。其間一聯云 "直幹終爲棟。 眞剛不作鉤。" 其守正不回。 如此。看書旋忘。 如疏篩漉水。 猶有濕氣。陰德。 如耳鳴。 人不知。 而已獨知之。【隋李士謙】 포증(包拯, 999~1062) 송 인종(宋仁宗) 때 사람으로 자는 희인(希仁),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벼슬은 천장각 대제(天章閣待制)ㆍ개봉지부(開封知府)ㆍ추밀부사(樞密副使)ㆍ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지냈다.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송사(宋史)》 권316 〈포증열전(包拯列傳)〉) 이사겸(李士謙) 자는 자약(子約)으로, 수나라 조군(趙郡) 평극(平棘) 사람이다. 선행을 즐기고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위 글은 《수서(隋書)》 열전(列傳) 42, 이사겸전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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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갑신) 八日 甲申 흐림. 한 사람의 붓 장사가 왔는데 그의 성을 물으니 선(宣)씨였다. 본관은 보성(寶城)이고, 그의 선조는 퇴휴당(退休堂) 윤지(允止)로, 명나라 때 순찰로 와서 정도를 붙들어 세우고 사특한 것을 물리쳤다.[扶正斥邪] 그 뒤에 수사(水使) 약해(若海)가 있는데, 심양공신(潯陽功臣)에 들어 당시에 '삼소무열(三蘇武列)'이라고 칭해졌다고 한다. 陰。有一笔商來。 問其姓。 乃宣氏也。貫則寶城。 其先祖退休堂。 諱允止。 大明時以巡察來。 扶正斥邪。其後有水使諱若海。 潯陽功臣參。 於時。 稱三蘇武列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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