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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아침을 먹은 뒤 송함(宋涵)의 궤연에 조문하였다. 시조의 산소 동지향사(冬至享祀)에 참석하기 위해 사동(沙洞)의 제각(祭閣)으로 올라가니 경빈(敬賓) 씨가 참사원(參祀員)으로 올라왔다. 각처의 참사원이 예전에 비해 많이 모인 것은 산송(山訟) 때문이었다. 경빈 씨에게 집안 소식을 자세히 들었다. 조금 쉬고 나서 여러 일가와 읍으로 내려가 송정(訟庭)51)으로 들어갔는데, 주관(主官)의 의향은 전적으로 이회종(李會宗)이 다짐(考音)을 받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서 몹시 분했다. 곧바로 올라와 제각에서 묵었다. ○朝飯後, 吊宋涵几筵。 爲參始祖山所冬至享祀, 上去沙洞祭閣, 則敬賓氏以參祀員上來。 各處參祀員比前多會者, 以山訟之意故也。 與敬賓氏詳聞家中消息。 少憩後, 與諸宗下去邑中, 仍入訟庭, 則主官意向, 全爲李會宗不捧考音, 可憤可憤。 卽爲上來, 留祭閣。 송정(訟庭) 송사를 판결하는 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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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신해) 二十二日 辛亥 –중광대연무(重光大淵獻)-. 흐림. 상왕(上王)이 계묘년에 '식소구헌(式昭舊憲)' 네 글자를 써서 함경도(咸鏡道) 향약소(鄕約所)에 하사한 글을 살펴보았다.함경도는 곧 우리 가문이 터를 잡아 왕조를 일으킨 땅이다.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친히 향헌(鄕憲) 41조를 지었으며, 효령대군(孝寧大君)은 성지를 받들어 헌목(憲目) 56조를 기술했고, 세종대왕(世宗大王) 10년에는 다시 유향소(留鄕所)를 설치하여 절목(節目) 12조를 마련했으며, 정조(正祖) 21년에는 향약(鄕約) 윤음(綸音)을 반포하였으니, 아름답고 성대하도다.열성조(列聖朝)께서 근본을 돈독히 하고 세속을 교화하려는 지극한 뜻은 실로 만 대에 떳떳한 법이다. 금년에 친히 '식소구헌(式昭舊憲)' 네 글자를 써서 내림은 선대의 뜻을 밝히고 또한 사민(士民)을 면려(勉勵)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혹시 오래되면 폐단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증보해서 바로 잡는 것이 옳다. 장례원(掌隷院)으로 하여금 시의(時宜)를 참작해 절목(節目)을 만든 다음 간행하여 남북도(南北道) 관찰부(觀察府)에 반포하고 여러 군의 향교에 두어 춘추로 강마(講磨)하게 하여 공경히 옛 법을 지키도록 하라. 【重光大淵獻】。陰。奉審上王癸卯書。 '式昭舊憲'四字。 賜咸鏡道鄕約所。咸鏡道卽。 我家肇基龍興之地也。太祖高皇帝。 親製鄕憲四十一條。 孝寧大君奉旨述憲目五十六條。 世宗大王十年。 復設留鄕所。 磨鍊節目十二條。 正祖二十一年頒下鄕約綸音。猗歟盛矣。 列聖朝敦本化俗之至意。 寔是萬世常憲也。今年親書'式昭舊憲'四字以下。 式昭先旨。 亦勉勵士民者。 而其或久未必無弊。 今可以增補而矯救者。令掌隷院。 參酌時宜成給節目。 刊模頒下南北道觀察府。 使之置諸列郡鄕校。 春秋講磨。 欽守舊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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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임자) 二十三日 壬子 -현익곤돈(玄黓困敦)-. 맑음. 【玄黓困敦】。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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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지난번 동학사(東學祠)에 들어갔을 때 우리 두 사람 노자를 주인에게 맡겨두었다. 그런데 주인이 이번 재회(齋會)와 감영에 보낼 편지를 올리는 데에다 경비를 미리 써버렸다. 그래서 노자를 마련할 생각으로 그대로 전당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김상규(金相奎)가 혼자 찾아와서 그와 함께 유숙하였다. ○頃入東學祠時, 吾兩人路資留置主人矣。 主人推用於今番齋會及營門呈書所入。 故以行資辦備之意, 仍留錢塘。 午後金相奎專訪而來, 與之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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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아침을 먹은 뒤 김상규와 작별하였다. 길보(吉甫)와 함께 사교(沙橋)로 가서 작별하였다. 황화정(皇華亭)34)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저물녘 탄현(炭峴)35)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朝飯後, 與金相奎作別。 與吉甫偕往沙橋作別。 抵皇華亭療飢。 暮抵炭峴留宿。 황화정(皇華亭)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의 북쪽 11리에 있다. 전라도와 충정도의 경계에 있는 전라도의 관문으로 전라도 신구 관찰사가 교대하던 곳이었다. 탄현(炭峴) '쑥고개' 또는 '숯고개'라고 하며,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와 왕궁면 용화리를 잇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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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을미) 初四日 乙未 –전몽협흡(旃蒙協洽)-. 흐림. 비가 조금 뿌렸다. 【旃蒙協洽】。陰。雨小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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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기미) 三日 己未 -도유협흡(屠維協洽)-. 흐림. 종일 비가 개지 않았다. 【屠維協洽】。陰。終日不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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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경신) 四日 庚申 -상장군탄(上章涒灘)-. 흐림. 비가 오려다 오지 않았다. 【上章涒灘】。陰。欲雨未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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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신유) 五日 辛酉 -중광작악(重光作噩)-. 맑음. 【重光作噩】。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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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임술) 六日 壬戌 -현익엄무(玄黓閹茂)-. 흐림. 비가 오려다 오지 않았다. 【玄黓閹茂】。陰。欲雨未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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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에 출발하여 염암(鹽岩)54)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운암(雲岩)55) 객점에 이르렀다. 일행과 임실 범오리(凡五里)에 사는 송철재(宋喆載) 경지(敬之) 집으로 들어가니 꿀물을 내왔다. 조금 있다가 또 메밀탕에 꿀을 타서 내왔다. 추위에 부대끼고 노정에 시달린 끝이라 족히 추위를 막아 주었다. 거기에서 유숙하였다. ○朝發, 抵鹽岩朝飯。 抵雲岩店, 與同行入任實凡五里居宋喆載敬之家, 則進蜜水。 少頃, 又爲木麥湯和蜜以進。 觸寒行役之餘, 足爲禦寒。 仍爲留宿。 염암(鹽岩)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 염암 마을이다. 마을 안쪽 계곡을 따라 임실 신덕면 삼길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큰 바위가 있는데 모습이 소금 결정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소금바우"라고도 하였다. 운암(雲岩)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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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일찍 밥을 먹고 출발하였다. 강을 따라 30리를 가다, 덕산(德山) 앞에 이르러 대로로 나왔다. 노령(蘆嶺)56)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순창(淳昌) 읍내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날 몹시 추웠다. 올라오는 행로객(行路客)들 모두 얼굴빛이 푸르뎅뎅하였다. ○早飯卽發。 緣江三十里, 抵德山前出大路。 抵蘆嶺店午飯。 抵淳昌邑內留宿。 是日極寒。 上來行路之人, 皆屍色矣。 노령(蘆嶺) 전라남ㆍ북도를 경계 짓는 전북 정읍시와 전남 장성군 북이면 사이의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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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일찌감치 사헌부 유사를 보내 경주인(京主人)34)과 흥양(興陽) 호장(戶長)을 불러오게 했는데, 유사가 그들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가 애초에 부르러 가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분통이 터졌다.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에 갔다. 오는 길에 군택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오후에 경주인이 와서 말하기를, "호리(戶吏)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니 괴이하고 괴이하다. 早送憲府司有, 招來京主人及興陽 戶長, 而司有者, 以不來爲言, 可知其初不往招, 憤憤。 食後往鑄洞。 來路逢君澤, 立談而來。 午後京主人來言, "戶吏不來"云, 可怪可怪。 경주인(京主人) 중앙과 지방의 연락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지방에서 서울에 파견된 향리를 말한다. 경주인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어, 상경하는 지방민 및 하급관리 등에게 잠자리와 식사의 편의를 제공하고, 공무 또는 군역 복무를 위해 서울에 올라온 관리ㆍ군인들이 각 관청에 배치되어 종사할 때 그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책임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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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갑자) 一日 甲子 임자일기(壬子日記). 개국 521년(1912). -고갑자는 현익곤돈-흐림. 삼양(三陽)1)에 오는 눈이 밤부터 아침까지 내렸다. 신수를 점쳤는데 괘가 〈중수감괘(重水坎卦)〉2)이다. 구이(九二) 효사(爻辭)에 "감(坎)에 험함이 있으나 구함을 조금 얻으리라.[坎, 有險, 求小得]"라고 했다. 상전(象傳)에서는 "구함을 조금 얻음은 험한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求小得, 未出中也]"라고 했고, 대상전(大象傳)에서는 "군자가 보고서 덕행을 항상 하며 가르치는 일을 익힌다.[君子以常德行習敎事]"라고 했다. 연일 세배 온 사람들을 응접했다. 壬子日記。開國五百二十一年。【古甲子。 玄黓困敦】春王正。甲子。陰。三陽雪。 自夜終朝而來。索身數卦。 則重坎水。二爻辭。 "坎。 有險。 求小得。" 象曰。 "求小得。 未出中也。" 大象傳曰。 "君子以常德行習敎事。" 連日應接歲拜人。 삼양(三陽) ≪주역≫에 의하면 11월 복괘(復卦)에 일양(一陽)이 처음 생기고, 12월 임괘(臨卦)에 이양(二陽)이 생기고, 1월 태괘(泰卦)에 삼양(三陽)이 생기므로 삼양은 곧 정월, 또는 입춘(立春) 절기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에서는 1월 1일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중수감괘(重水坎卦) 주역의 29번째 괘사로, "습감(習坎, 거듭 험함)은 믿음이 있어서 오직 마음이 형통하리니, 행하면 숭상함이 있으리라[習坎, 有孚, 維心亨, 行有尙.]"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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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병인) 八日 丙寅 -유조섭제(柔兆攝提)-. 맑음. 【柔兆攝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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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서원의 회답 東學回通 위의 글을 통지해 왔기에, 서재(西齋) 송 선생(宋先生)의 탁행(卓行)과 고절(高節)은 부녀자나 어린애도 다 아는 것인데 본원의 추향(追享)에 관한 논의가 또한 늦었음을 상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두 사람이 함부로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형세 상 장차 모여서 의논하여 여러 사람의 의론을 따른 뒤에야 의론이 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이번 달 12일 회의를 구성하니, 바라건대 꼭 모두 와서 참석해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상 돈암서원 여러 재임(齋任)께 삼가 통지합니다.신묘년(1831, 순조31) 10월 4일, 동학서원 재임(齋任) 송여규(宋如圭), 정규흠(鄭圭欽) 右文爲來通, 備審西齋宋先生卓行高節, 婦孺共知, 本院追享之論, 亦云晩矣。 而此非一二人所可擅議者, 勢將聚議, 僉論從後, 可以議定。 故玆以今月十二日成會, 望須濟濟來參, 幸甚。 遯院僉齋7), 右敬通于。辛卯十月初四日。 學院齋任宋如圭、鄭圭欽。 齋 저본에는 '齊'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따라 '齋'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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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임진년(1832, 순조32) 윤(潤) 9월 22일. 우리 종중의 족보 일로 오후에 출발하였다. 정암(鼎岩) 주점에 이르러 무열(武說) 씨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열 씨가 와서 함께 유숙하였다. ○壬辰閏九月二十二日。 以吾宗譜牒事, 午後發程。 抵鼎岩酒店, 留待武說氏矣。 不移時踵至1) 仍與同留宿。 至 저본에는 '止'로 되어있으나, 다수의 용례와 문맥에 따라 '至'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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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새벽에 출발하여 매치(埋峙)에 이르렀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찬바람이 아주 매서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주막집 일꾼을 불러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비로소 동이 텄다. 다시 출발하여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렀는데 아침을 먹기엔 너무 일러, 조막(造幕)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장수동(長壽洞)으로 들어가려고 구암(龜岩)61) 앞에 이르러 작은 길로 들어섰다. 알룡치(謁龍峙)의 최정환(崔正煥) 집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고개를 넘어 수동(壽洞)에 이르니 경달(敬達)의 어머니가 감기로 인해 큰 병이 나서 몹시 걱정되었다. 그대로 유숙하였다. ○曉發, 抵埋峙。 日未明, 而寒風極酷, 不得前進。 招幕漢開門入房。 移時始爲開東。 又爲發行, 抵舞童亭, 則朝飯尙早, 抵造幕朝飯。 欲入長壽洞, 抵龜岩前入小路。 抵謁龍峙崔正煥家療飢。 越嶺, 抵壽洞, 則敬達之母以感氣, 仍爲大病, 悶悶。 仍爲留宿。 구암(龜岩)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구강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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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택촌(宅村)의 계윤(季允) 씨가 와서 달원(達元) 집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밥을 먹은 뒤 보러 가니 산송 일 때문에 와서 며칠 머물렀고, 오늘은 산처(山處)로 곧 출발한다고 하였다. 잠시 회포를 풀고 나서 곧바로 출발하였다. 주로치(周老峙)를 넘어 고읍촌(古邑村) 앞에 이르렀다. 도중에 오서 객이 '환(還')자 운을 불렀으므로 내가 다음과 같이 읊었다.더디고 더딘 여행길 삼 개월 만에 돌아오니(遲遲行李月三還)시내와 골짜기 얼어붙어 옛 모습이 바뀌었네(澗壑成凍變舊顔)점점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고향은 절로 가까워지니(漸遠京城鄕自近)달리 나를 위로하는 건 없어도 평안하다는 소식있네(別無慰我報平安)벌교(筏橋)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은 별 탈이 없어서 매우 다행이었다. 대곡(大谷) 형님과 택촌(宅村)의 옥과(玉果) 객이 마침 와서 머물렀다. ○聞宅村季允氏來留達元家, 食後往見, 則以其山訟事來留數日, 而今日則往山處臨發云矣。 暫敍後卽發。 越周老峙, 抵古邑村前。 路中烏栖客呼"還"字韻, 故余拙吟曰: "遲遲行李月三還, 澗壑成凍變舊顔。 漸遠京城鄕自近, 別無慰我報平安。" 抵筏橋療飢。 乘暮還家。 家中別無故 幸幸耳。 大谷兄主及宅村玉果客適來留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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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차종손이 16일에 별세를 했는데, 오늘에야 삼가 만사에 차운한다.우리 종인의 품성은 온전하니,(吾宗稟性全)젊어서부터 효가 우선이었네.(自少孝爲先)예절은 추정(趨庭)13)한 날에 이미 섰고,(禮立趨庭日)덕은 장국(杖國)14)의 해에 이미 높았네.(德尊杖國年)어찌하여 세상을 싫어하여,(何以其厭世)홀연히 속세 떠나 선경으로 올라갔나.(忽焉去上僊)차마 해로가15)를 들으면서,(忍聞歌薤露)뇌사를 쓰니 눈물이 샘물처럼 솟네.(寫誄淚如泉) 次宗孫。 十六日別世。 今日謹次挽詞。吾宗稟性全。自少孝爲先.禮立趨庭日。德尊杖國年.何以其厭世。忽焉去上僊.忍聞歌薤露。寫誄淚如泉. 추정(趨庭) 아들이 어버이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뜰에 혼자 서 있을 때, 아들 백어(伯魚)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공자가 그에게 시(詩)와 예(禮)를 배웠는지 물었던 데서 유래한다.(《논어》 〈계씨(季氏)〉) 장국(杖國) 노인을 말한다. 《예기》에 나이 70이면 국도(國道)에서 지팡이를 짚는다고 하였다. 또 옛날에 70세가 된 대신에게는 나라에서 궤(几)와 장(杖)을 하사하여 치사(致仕)를 만류하고 계속 일을 보게 하였다. 해로가(薤露歌) 부추 위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이 지는 인생을 슬퍼하는 노래로, 초상 때 부르던 만가이다. 한 고조(漢高祖)에게 반기를 들다 패망한 전횡(田橫)의 죽음을 두고 그 무리가 지은 만가 2장 중 1장에 "부추 위에 맺힌 이슬 어이 쉽게 마르나. 이슬은 말라도 내일이면 다시 내리지만, 사람은 죽어 한번 가면 언제나 돌아오나.[薤上朝露何易晞, 露晞明朝更復落, 人死一去何時歸]"라고 하였다.( 《고금주(古今注)》 〈음악(音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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