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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계사) 二日 癸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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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갑오) 三日 甲午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율곡이 우계에게 답한 설'을 보고 기록한다.또 말하기를 "이기는 원래 불상리(不相離)로 일물(一物) 같지만, 그 다른 까닭은 이(理)는 무형(無形)이고 기는 유형(有形)이며 이는 무위(無爲)이고 기는 유위(有爲)이기 때문이다. 무형무위이지만 유형유위의 주인인 되는 것은 이이고, 유형유위이지만 무형무위의 기(器)가 되는 것은 기(氣)이다. 이는 무형이지만 기는 유형이기 때문에 이는 통(通)하고 기는 국한(局限)되며,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기 때문에 기가 발하면 이가 타게 된다. 이가 통(通)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는 본말이 없고 선후가 없다. 본말이 없고 선후가 없기 때문에 응하기 전에는 앞이 없고 이미 응하면 뒤가 없게 된다. -정자설(程子說)-이런 까닭에 기를 타고 유행하는 것은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지만, 그 본연의 묘는 있지 않음이 없다. 기가 치우치면 이 또한 치우치지만 치우친 것은 이가 아니라 기이다. 기가 온전하면 이 또한 온전하지만 온전한 것은 이가 아니라 기이다. 청탁(淸濁)・수박(粹駁)・조박(糟粕)・외신(煨燼)・분양(糞壤)・오예(汚穢) 가운데 이르러서도 이가 있지 않음이 없어서 각각 그의 성(性)이 되지만 그 본연의 묘인 즉 각각의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이가 통한다고 한다.기가 국한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기가 이미 지나온 형적이 있기 때문에 본말이 있고 선후가 있게 된다. 기의 근본은 담일(湛一)하고 허청(虛淸)할 뿐이니, 어찌 일찍이 조박・외신・분양・오예의 기가 있겠는가? 오르고 내리고 날아오르고 하여 일찍이 그치고 쉰 적이 없으므로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아서 만 가지 변화가 그곳에서 생겨난다. 이에 기가 유행함에 그 본연을 잃지 않는 것이 있고 그 본연을 잃은 것이 있다. 이미 본연을 잃었다면 기의 본연이라는 것은 이미 있지 않게 된다.치우친 것은 치우친 기이지 온전한 기가 아니고, 깨끗한 것은 깨끗한 기이지 탁한 기가 아니다. 조박・외신의 기이지 담일・청허한 기가 아니다. 이것은 이가 만물 가운데에 본연의 묘가 있지 않은 데가 없다는 것과 같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기가 국한된다'고 하는 것이다.'기가 발하여 이가 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음(陰)이 정(靜)하고 양(陽)이 동(動)한 것은 기(機)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 그것을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양이 동하면 이가 동에 타는 것이지 이가 동하는 것이 아니다. 음이 정하면 이가 정에 타는 것이지 이가 정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태극이라는 것은 본연의 묘이고 동정이라는 것은 타는 기이다."라고 하였다. 음은 정하고 양이 동한 것은 그 기틀이 절로 그러할 뿐이지만, 음이 정하고 양이 동하게 하는 것은 이이기 때문에 주자(周子)가 말하기를 "태극이 움직이면 양을 낳고 정하면 음을 낳는다."라고 하였다.대저 '동하여 양을 낳고 정하여 음을 낳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 미연(未然)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고, '동정이 타는 바의 기틀'이라는 것은 이연(已然)을 보고 말한 것이다. 동정이 단서가 없고 음양이 시작이 없으면서도 이기가 유행하는 것은 모두 이연(已然)일 따름이니, 어찌 미연(未然)의 때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천지의 변화와 내 마음이 발하는 것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 아님이 없는 것이다.이른바 '기가 발하여 이가 탄다'는 것은 기가 이보다 먼저라는 것이 아니다. 기는 유위하고 이는 무위하니, 그 말은 부득이해서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대저 이에는 한 글자도 더할 수가 없으며, 털끝만큼의 닦음도 더할 수 없다. 이는 본래 선하니, 무슨 닦음이 필요하겠는가. 성현의 수많은 말씀이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기(氣)를 단속하여 그 기의 본연을 회복하게 할 따름이니, 기의 본연이란 호연(浩然)한 기운이다. 호연한 기운이 천지에 가득 차면 본래 선한 이(理)가 조금도 가리어진 것이 없으니, 이것은 맹자의 양기론(養氣論)이 성문(聖門)에 공로가 있는 까닭이다.만약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 하나의 길이 아니어서 이(理) 또한 별도로 작용한다면, 이(理)를 무위(無爲)라고 말할 수 없다. 공자께서 무엇 때문에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겠는가? 이와 같이 간파한다면 기가 발하면 이가 타는 하나의 길[氣發理乘一途]이 분명하고 환해질 것이다.우암(尤菴, 송시열)이 말하길, "퇴계는 '칠정(七情)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氣發而理乘]이고, 사단(四端)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理發而氣隨]이다.'고 하였으니, 퇴계의 병통은 오로지 '이발(理發)' 두 글자에 있는 것이다. 대개 이는 정의(情意)나 조작(造作)이 없는 물건이니, 어찌 기보다 먼저 움직일 이치가 있겠는가? 대개 그 근본으로 말한다면 이가 있고 나서 기가 있기는 하나, 이는 기 가운데 있어서 본디 서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유행할 때는 기가 항상 용사(用事)를 하고, 이는 기를 따라 유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朱子)가 ≪중용≫의 '천명지성(天命之性)'을 해석하면서, '하늘이 음양 · 오행으로 만물을 화생시키되, 기로 형체를 이루고, 이 또한 부여된다.'고 하였고, 또 태극도의 '묘합이응(妙合而凝)'을 해석하면서, '태극과 이오(二五, 음양과 오행)는 본디 혼융(混融)하여 간격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이가 기 가운데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 '응(凝)이란 기가 모여서 형체를 이룬 것이다.'고 한 것은 바로 ≪중용≫의 주(註)에서 말한바, 기로써 형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기를 타되 기는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이 어찌 분명하지 않겠는가? '이기' 두 글자는 알기도 어렵고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한갓 이가 기 가운데 있는 줄만 알고, 이는 이대로 존재하고 기는 기대로 존재함을 알지 못하면 이와 기를 일물(一物)로 보는 병통이 있게 되고, 한갓 이가 스스로 일물이 되는 줄만 알고, 기와 더불어 원래부터 분리되지 않은 것임을 알지 못한다면, 허공에 매달로 홀로 서있는 잘못이 있게 되니, 모름지기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임을 안 다음에야 폐단이 없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집에 돌아왔다. 날마다 가뭄이 더욱 심하다. 看聖學十圖。 至栗谷答牛溪說。 記之。又曰。 "理氣元不相離。 似是一物。 而其所以異者。 理無形也。 氣有(形)也。 理無爲也。 氣有爲也。無形無爲。 而爲有形有爲之主者。 理也。 有形有爲而爲無形無爲之器者。 氣也。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 理無爲而氣有爲。 故氣發而理乘。理通者。 何謂也? 理者。 無本末也。 無先後也。 無本末無先後。 故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程子說】是故乘氣流行。 參差不齊。 而其本然之妙。 無乎不在。氣之偏則理亦偏。 而所偏非理也氣也。 氣之全則理亦全。 而所全非理也氣也。至於淸濁粹駁糟粕煨燼糞壤汚穢之中。 理無所不在。各爲其性。 而其本然之妙。 則不害其自若也。 此之謂理之通也。氣局者何謂也? 氣已涉形迹。 故有本末也。 有先後也。氣之本。 則湛一虛淸而已。 曷嘗有糟粕煨燼糞壤汚穢之氣哉? 惟其升降飛揚。 未嘗止息。 故參差不齊。 而萬變生焉。於是氣之流行也。 有不失其本然者。有失其本然者。 旣失其本然。 則氣之本然者。 已無所在。偏者偏氣也。 非全氣也。 淸者淸氣也。 非濁氣也。糟粕煨燼之氣也。 非湛一淸虛之氣也。非若理於萬物本然之妙。 無乎不在也。 此所謂氣之局也。氣發而理乘者。 何謂也? 陰靜陽動。 機自爾也。 非有使之者也。陽之動則理乘於動。 非理動也。 陰之靜則理乘於靜。 非理靜也。 故朱子曰 "太極者。 本然之妙也。 動靜者。 所乘之機也。" 陰靜陽動。 其機自爾。 而其所以陰靜陽動者理也。 故周子曰 "太極動而生陽。 靜而生陰。" 夫所謂動而生陽。 靜而生陰者。 原其未然而言也。 動靜所乘之機者。 見其已然而言也。動靜無端。 陰陽無始。 則理氣之流行。 皆已然而已。 安有未然之時乎? 是故天地之化。 吾心之發。 無非氣發而理乘之也。所謂氣發而理乘者。 非氣先於理也。氣有爲而理無爲。 則其言不得不爾也。夫理上。 不可加一字。 不可加一毫修爲之力。理本善也。 何可修爲乎? 聖賢之千言萬言。 只使人檢束其氣。 使復其氣之本然而已。氣之本然者。 浩然之氣也。浩然之氣。 充塞天地。 則本善之理。 無少掩蔽。 此孟子養氣之論。 所以有功於聖門也。若非氣發理乘一途。 而理亦別有作用。 則不可謂理無爲也。孔子何以曰。 "人能弘道。 非道弘人乎?" 如是看破。 則氣發理乘一途。 明白坦然矣。尤菴曰。 "退溪云。 '七情氣發而理乘之。 四端理發而氣隨之。' 退溪之病。 專在於理發二字矣。蓋理是無情意造作之物。 寧有先氣而動之理乎? 大槩原其本初而言。 則有理而後有氣。 然理在氣中。 元不相離。 故其流行之時。 氣常用事。 而理則隨之而流行矣。故朱子釋 ≪中庸≫天命之性曰。 '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 氣以成形而理亦賦焉' 又釋太極圖妙合而凝曰。 '太極二五。 本混融而無間'。 此言理在氣中也。其曰'凝者氣聚而成形也者'。 正庸註氣以成形也。然則理之乘氣。 而氣不隨理者。 豈不較然乎。理氣二字。 知之難而言之尤難。徒知理在氣中。 而不知理自理氣自氣。 則有理氣一物之病。 徒知理之自爲一物。 而不知與氣元不相離。 則有懸空獨立之誤。 須知一而二。 二而一。 然後可無弊也。"還巢。日旱滋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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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경진) 十九日 庚辰 흐리고 비. 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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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신사) 二十日 辛巳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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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임오) 二十一日 壬午 흐리다 맑음. 陰而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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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계미) 二十二日 癸未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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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계축) 二十四日 癸丑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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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갑인) 二十五日 甲寅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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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갑인) 二十六日 甲寅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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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을묘) 二十七日 乙卯 흐림. 들에서 아이들이 그의 이모부를 전송하는 것을 보고는 시경에 "제비와 제비의 낢이여, 오르내리도다. 저 사람이 돌아가매, 멀리 전송하노라.[燕燕于飛 頡之頏之, 之子于歸, 遠送于歸]"10)라는 뜻을 알겠다. 陰。見兒曺之送渠姨夫之於野。 知詩之"燕燕于飛。 頡之頏之。 之子于歸。 遠送于歸"之意。 제비와 …… 전송하노라 《시경》 〈패풍(邶風)·연연(燕燕)〉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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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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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을축) 十七日 乙丑 맑음. 장동(獐洞)에 사는 이희채(李熙采)가 내방하여 춘부(椿府)의 편액인 죽천재기(竹泉齋記)를 청하였다. 그러므로 기록한다.〈죽천재기(竹泉齋記)〉호남(湖南)의 담양(潭陽)에 거사 이근옥(李根沃)공이 있는데, 평생을 대나무와 샘을 좋아하여 '죽천(竹泉)'이란 이름으로 집에 편액하였다. 집의 사면으로 보이는 물사(物事)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니, 오동나무에 비친 깨끗한 달빛, 버드나무에 부는 맑은 바람, 하얀 바위와 붉은 벼랑, 산의 구름과 시냇물 등 모두가 수양을 돕는 도구들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도 어찌 다만 이 양물(兩物)만을 편애한 것은 과연 어떠해서인 것인가?대저 대나무와 샘이란 물건은 청청한 높은 절개가 변하지 않고, 사시(四時)가 일관되게 끊임없이 솟아나고 흘러 구덩이를 가득 채우고 사해(四海)에 도달하니, 진덕수업(進德修業)의 공부를 타물(他物)과 비견할 수 없다. 《파경(葩經)》26)에 이르기를 "푸른 대가 아름답고 무성하도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위 무공(衛武公)이 스스로 도학을 닦은 것을 찬미한 것이다.27) 맹자가 "근원이 있는 샘물은 용솟아 흐른다."28)라고 하였으니, 후학에게 공부가 단계를 밟아 성취되는 것을 열어준 것으로, 그 뜻을 상상할 수 있다.대저 이 주인옹(主人翁)은 이 양물을 사랑하여 항상 수양에 도움이 되고 일심이 환해져서 자수하여 위 무공이 되기를 기약하였고, 진학한 것은 추(鄒)의 아성(亞聖, 맹자)을 배운 것이었다. 그가 성덕(成德)하여 군자의 절개를 세울 수 있었으니, 또한 도학(道學)의 근원을 아는 것이로다.도유협흡(屠維協洽, 기미(己未)년)29) 가을 9월 17일에 영윤(令胤) 희채가 나에게 기문(記文) 써주길 청하기에 감히 나무꾼의 문체로 이와 같이 정을 묘사하였다. 이어서 시를 지었다.주인옹(主人翁)이 사랑한 물건 많지 않아(主翁愛物不爲多)푸른 대나무와 근원이 있는 샘물에 초가 한 채뿐이네(綠竹源泉草一家)성긴 그림자와 함께 초저녁 달이 나란히 나타나고(踈影齊頭初夜月)차가운 물 흐르는 곳에 봄꽃이 다시 피었네(寒流淙處復春花)의관이 대대로 이어진 것은 시례(詩禮)로 인함이니(衣冠繼世因詩禮)충효(忠孝)의 여풍(餘風)이 아직도 노래되네(忠孝餘風尙詠歌)자손들은 토구(菟裘)30)의 업을 지키리니(子孫能守菟裘業)계승하고 복응(服膺)하여 잃지 않는 것이 어떠한가(承以服膺勿失何) 陽。獐洞李熙采來訪。 請其椿府扁。 其竹泉齋記。故記之。竹泉齋記湖之南。 潭之陽。 有居士李公根沃。生平愛竹與泉。 以竹泉扁其第。第之四面。 所管領物事。 靡不爲多。 梧桐霽月。 楊柳光風。 白石丹崖。 山雲溪河。 皆可爲助養之具矣。奚特偏愛此兩物者。 果何如哉? 夫竹泉之爲物。 靑靑高節。 不變而貫四時。 混混逝流。 盈科而達四海。 進修之功。 不可以他物比肩也。《葩經》云。 "綠竹猗猗"。 贊衛武公之道學自修。孟子曰。 "源泉混混"。 開來學者之工程階梯。 則其意可想也已。大抵斯翁。 愛此兩物。 常常助養。 而一心瑩然自修期衛武公。進學學鄒亞聖歟。 其於成德。 能立君子之節。 亦知道學之源矣夫。屠維協洽。秋九月。十七日。令胤熙采請余爲記。 敢以蕘辭寫情如右。繼以詩曰。主翁愛物不爲多。 綠竹源泉草一家。 踈影齊頭初夜月。 寒流淙處復春花。 衣冠繼世因詩禮。 忠孝餘風尙詠歌。 子孫能守菟裘業。 承以服膺勿失何。 파경(葩經) 《시경》을 가리킨다.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서 "《시경》은 바르고 꽃봉오리와 같다.[詩正而葩]"라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위 무공(衛武公)이 …… 것이다 《시경》 〈위풍(衛風)·기욱(淇奧)〉에, "저 기수가의 언덕을 보니, 푸른 대가 아름답고 무성하도다. 문채 빛나는 우리 님이여, 짐승의 골각(骨角)을 끊고 갈듯, 옥석(玉石)을 쪼고 갈듯 하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본디 위 무공(衛武公)의 높은 학문과 덕행을 칭찬하여 노래한 것인데, 전하여 여기서는 곧 학문과 덕행을 절차탁마하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가 …… 흐른다 서자(徐子)가 맹자에게, 공자가 자주 물을 칭탄(稱歎)한 데 대하여 묻자, 맹자가 이르기를 "근원 있는 샘물이 콸콸 솟아 나와서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구덩이를 채운 다음에야 나가서 사해에 이르나니, 근본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라, 이것을 취하신 것이다.[源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맹자》 〈이루 하(離婁下)〉). 군자가 단계를 밟아 부단히 노력해야 도(道)에 이를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도유협흡(屠維協洽) 도유와 협흡은 고간지(古干支)로, 도유는 기(己)이고 협흡은 미(未)로, 여기서는 1919년이다. 토구(菟裘) 토구(菟裘)는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있던 지명인데, 뒷날 은거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노나라 은공(隱公)이 환공(桓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서 "내 장차 토구 땅에 집을 짓고 그곳에서 늙으리라."라고 하였다.(《춘추좌씨전》 은공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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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을사) 二十六日 乙巳 남원(南原) 진효(鎭斆)가 와서 광주(光州) 고광선(高光善)이 김종곤(金棕坤)에게 준 글을 전해주어서 이를 기록해 둔다.대저 해파리는 눈이 없는 것으로, 부침(浮沈)과 동정(動靜)을 하나같이 새우떼의 인도(引導)에 따릅니다. 소길(璅蛣)25)은 창자가 없는 것으로, 호흡(呼吸)과 토납(吐納, 들이마시며 내뿜음)을 게(蟹)의 껍질에 일임합니다. 그러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눈이 없는 해파리도 아니요, 창자가 없는 소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날마다 선성의 글을 보아 자기의 눈을 짓는 것이 해파리가 새우 눈을 통하는 것 같고, 날마다 선성의 말씀을 읽어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이 소길이 게의 창자를 통한 것과 같으니, 눈이 없다 해서 무슨 근심이며 창자가 없다 해서 무슨 걱정이겠습니까?마치 그 길가에 고인 빗물이 바다로 흘러가려 하지만 중간에 말라버리고, 노둔한 말을 타고서 빨리 달려주기를 바라나 중도에 피곤하면 이것은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종곤(棕坤)씨께서는 혹시 사람이 보잘 것 없다 하여 말을 폐하지는 않겠지요?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광선(光善) 저는 나이가 육십을 넘어 병으로 세상 밖 운산(雲山)에 누워있으니, 오직 자잘한 고통의 한탄만 간절할 뿐입니다. 그런데 종곤씨가 간장(汗醬)을 가지고 방문하였으니 그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침내 눈을 비비고 지렁이 같은 글씨로 이와 같이 씁니다.무(戊)년 7월 19일에 광선 씀. 南原鎭斆來傳。 光州高光善贈金棕坤書。 記之。夫水母無目者也。 而浮沈動靜。 一遵衆鰕之導。璅蛣無腹者也。 而呼吸吐納。 一任蟹之甲。 則竊念。 吾輩非無目之水母。 无腹之璅蛣乎。然則日看先聖書。 作自己之目。 如水母之目鰕。 日讀先聖語。 充自己之腹。 如璅蛣之腹蟹。 則何患乎毋目。 亦何患乎无腹哉? 若謂其行潦之水。 願朝宗而中渴。 駑蹇之乘希逸足而中疲。 則是未免自畫者也。何殊之有? 惟吾棕坤。 倘不以人微而廢言歟。勉之哉。光善年踰六旬。 病臥于世外雲山。 只切微苦之歎。而棕坤甫汗醬來訪。 謬恩爲感。遂拭翳而蚯蚓如右云爾。戊七月十九日。光善。 소길(璅蛣) 〈한서〉 지리지(漢書地理志)의 회계군 길기정(會稽郡銡埼亭) 주(注)에서, 사고(師古)가 이르기를, "길(蛣)은 길이 한 치, 너비 두 푼이며 한 마리의 작은 게가 그 배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이것인데, 쇄길(璅蛣) 또는 해경(海鏡)이라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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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무인) 晦 戊寅 흐렸다가 맑음. 《율곡선생전서》권 13, 〈잡기(雜記)〉를 보고 기록한다.〈잡기(雜記)〉자고(子固, 윤근수(尹根壽))가 나에게 들려 조용히 담화하다가 말이 심(心)ㆍ성(性)ㆍ정(情)에 미쳤다. 내가 말하기를, "공(公)은 이 세 글자에 대해 다 이해하는가?"라고 하니, 자고가 말하기를, "못합니다. 성이 발하여 정이 되고, 심이 발하여 의(意)가 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공이 이것에 대하여 깨닫기 어려워한다면 심ㆍ성ㆍ정에 대해 거의 견해가 있는 것이다. 선유(先儒)의 이 말은 따로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고 직접 심성(心性)을 논한 것이 아닌데, 지금 학자들은 이 말을 잘못 알고 심과 성을 나누어 두 개의 작용이 있고 정과 의(意)가 두 가지가 있는 줄 생각하니, 내가 가장 딱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이제 공이 여기에 의심을 가지니 참으로 아는 바가 있는 것 같다.성은 바로 심(心)의 이(理)요, 정은 바로 심(心)의 동(動)이니, 정(情)이 동한 후에 정으로 인하여 계교하는 것이 의(意)가 된다. 만일 심과 성이 둘이라면 도(道)와 기(器)가 서로 떠날 수도 있을 것이며, 정과 의가 둘이라면 사람의 마음에도 두 가지 근원이 있는 것이니, 어찌 크게 잘못된 이론이 아니겠는가? 반드시 성ㆍ심ㆍ정ㆍ의가 한 길이면서 각각 경계가 있는 것임을 안 연후에야 어긋남이 없다 할 것이다. 어째서 한 길이라 하는가? 심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는 성이요, 이미 발하면 정이며, 정이 발한 후에 헤아리는 것이 의가 되니, 이것이 한 길인데, 어째서 각각 경계가 있다고 하는가. 심이 고요히 동하지 않을 때가 성의 경계요, 심이 감촉하여 통할 때는 정의 경계이며, 느끼는 바에 따라 이리저리 생각을 찾아내고 헤아리는 것은 의의 경계가 되는 것이니, 다만 이것은 일심(一心)에 각각 여러 가지 경계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김장생(金長生)과 이배달(李培達)이 묻기를, "부모가 자애(慈愛)하고 자식이 효도하는 것은 떳떳한 이치인데, 무슨 까닭으로 자애한 자는 많은데 효도하는 자는 적습니까? 동물의 경우에도 제 새끼는 사랑할 줄 알면서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이(理)로 말하자면 말(末)이 본(本)을 중(重)히 여기고, 기(氣)로 말하면 구(舊)가 신(新)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 기는 낳고 낳아 쉼이 없으니 묵은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이 계속된다. 갈 것이 시들면 오는 것은 새롭기 때문에 이치에 밝은 자는 근본을 소중히 여겨 어버이를 사랑한다. 기가 하는 대로 맡겨 두는 자들은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고 자식만 귀하게 여긴다. 대개 이와 같으니 다만 스스로 궁리하여 깨닫는 데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내가 갑자년(1564, 명종19) 겨울에 강릉(江陵)을 향해 가다가 태화역(太和驛)에서 묵었는데, 망중(望中) 최운원(崔雲遠)과 만나 같이 자면서 밤에 대화를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지금 세상 선비들은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망중이 말하기를, "퇴계는 '배우는 자가 자기의 허물은 살피지 않고 먼저 남의 허물을 살피니 이것이 공통된 근심거리이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매우 좋다."라고 하였다.〈삼가 석호재에 차운하다(謹次石湖齋)〉-족숙 성현의 재실이다-편액이 석호인데 이곳에 집을 지으니(扁是石湖宅是所)훌륭하고 준수한 선비들 이웃하기 좋네(好其俊彦接芳隣)어찌 나루터에서 길이 은거하는 자를 배우랴(寧學津頭長往者)반드시 기수에서 노래하며 돌아오는 사람 그리워하리(必懷沂上詠歸人)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에 어찌 도라 따르랴(不然凡事何從道)그런 까닭에 평생 스스로 몸을 깨끗히 했네(所以平生自潔身)정순함은 옥 같고 밝은 지혜는 거울 같아(精純如玉明如鏡)명분과 실제 모두 같으니 덕도 새로우리라(名實俱同德與新) 陰而陽。看《栗谷先生全書》卷之十三〈雜記〉。 而記之。雜記子固歷見余談話。 從容語及心性情。 余曰。 "公於此三字。 能一一理會否?" 子固曰。 "未也。性發爲情。 心發爲意云者。 殊未曉得。" 余曰。 "公於此難曉。 則庶幾有見於心性情矣。先儒此說。 意有所在。 非直論心性。 而今之學者。 爲此說所誤。分心性爲有二用。 分情意爲有二岐。 余甚苦之。今公自謂於此有疑。 則庶幾有眞知矣。性是心之理也。 情是心之動也。 情動後緣情計較者爲意。若心性分二。 則道器可相離也。 情意分二。 則人心有二本矣。 豈不大差乎? 須知性心情意只是一路。 而各有境界。 然後可謂不差矣。 何謂一路? 心之未發爲性。 已發爲情。 發後商量爲意。 此一路也。 何謂各有境界? 心之寂然不動時。 是性境界。 感而遂通時。 是情境界。 因所感而紬繹商量。 爲意境界。 只是一心。 各有境界。"金長生ㆍ李培達問曰。 "父慈子孝。 常理也。 何故。 慈者衆而孝者甚鮮乎? 至於禽獸。 皆愛其子而不愛其親。 亦何故耶?" 余曰。 "以理言之。 末以本爲重。以氣言之。 舊以新爲貴。氣生生不息。 而往者過。 來者續。往者以謝。來者方新。 而理明者。 重本而愛親。任氣之所爲者。 則不愛親而只貴其子矣。大槪如此。 只在自窮得。"余甲子冬。 向江陵宿太和驛。 遇崔雲遠望中同宿夜話。余曰。 "今世之士。 不患不能言。 只患不能行耳。" 望中曰。 "退溪有言曰。 '學者不省己過。 先省人過。 此是通患'。 此言甚好。"謹次石湖齋【族叔盛鉉】扁是石湖宅是所。 好其俊彦接芳隣。 寧學津頭長往者。 必懷沂上詠歸人。 不然凡事何從道。 所以平生自潔身。 精純如玉明如鏡。 名實俱同德與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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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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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기축) 十一日 己丑 흐림. 참봉(參奉) 김용순(金容珣)과 동행하여 화개산(華蓋山)에 들어가 머물렀다. 다음날 장성(長城) 약수정(弱水亭)에 도착해 술을 시켜 함께 마시고는 달빛을 따라 궐전(蕨田) 김길령(金吉寧) 집에 도착해 유숙했다. 다음날 하만리(河晩里)에 들어가 여러 벗들의 상(喪)을 위문하고, 또 그 다음날 저물녘에는 곽한풍(郭漢豊)의 사랑(舍廊)에 들러 유숙했다. 또 그 다음날 아침에는 딸집에 도착했다. 그날 모현(茅峴)의 신석휴(申錫休)씨를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고, 유상춘(柳相春)씨 댁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질녘에 만무정(晩舞亭) 공학원(孔學源) 댁에 도착해 며칠을 머물렀다. 돌아오는 길에 세곡(細谷) 왕림(旺林) 댁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공학원(孔學源)과 이기(理氣)를 논하였다. 학원이 말하기를, "저는 '이(理) 밖에 기(氣)가 없고 이는 기 가운데 있다.[理外無氣, 理在氣中]'라는 8글자로 해결하였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응하여 말하기를, "옳습니다. 이것은 이기를 합해서 말한 것입니다. 이기는 합해져 있으면서도 떨어져 있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합해져 있습니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라는 것을 선유(先儒)들이 이미 말했습니다."라고 했다.또 말하기를,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31)이 경연(經筵)에서 이기를 논하면서 율곡(栗谷) 선생의 말을 인용하여, '발하는 것은 기(氣)이고 발하게 하는 소이(所以)는 이(理)이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할 곳이 없다. 선후(先後)도 없고 이합(離合)도 없다. 나누어 말할 것 같으면 이는 무위(無爲)하지만 기는 유위(有爲)하고, 이는 무형(無形)이지만 기는 유형(有形)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라고 했다.〈서암기(棲巖記)〉선비가 고심(苦心)하여 힘써 학문하는 것은 세상에 쓰일만한 인재가 되는 것에 뜻이 없을 수 없지만, 이미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자취를 감추고 학문에 힘써 홀로 그의 자신을 선하게 할 따름이다. 또 그럴 수 없다면 빈곤하고 궁박할 것이니 바닷가 절도(絶島)가 아니라면 반드시 궁벽한 산의 암혈(巖穴)에 거처하게 될 것이다. 선비가 이런 지경에 이르면 한탄하고 슬퍼하지 않겠는가?김영찬(金永粲)씨는 담양(潭陽)의 고사(高士)이다. 젊어서는 부지런히 학문을 하여 능히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도리를 다 하였다. 늙어서는 또 부지런히 힘써서 곁으로 강마(講磨)의 이익을 구하였다. 그러나 유사(有司)가 그의 성명을 천거하지 않아 과거시험에 떨어졌다. 그러자 강의실 한 칸을 지어 향리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를 받아 오로지 위기지학(爲己之學)에만 힘썼다. 머리를 굽혀 자취를 감추고 이에 거처하면서 마치 장차 몸을 마칠 듯이 하였다.그러나 세상이 더럽혀지고 풍속이 경박한 것을 숭상하게 되어 유학자가 가진 것은 선천구물(先天舊物)에 속해버리게 되었다. 몇 칸의 건물도 거의 지탱하기 어려워서, 나가면 의지거나 기댈 가망도 없고 들어오면 무릎을 허용할 땅도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앙앙(怏怏不樂)하며, 구림(邱林)에서 소요하고 집안에서 움추리고 지내니, 그 힘들고 곤고함은 시대가 그렇게 한 것인지라 누구를 탓하겠는가?집 주변에는 쌍암(雙巖)이 벽처럼 우뚝 서 있어서 때때로 오르내리며 소요하고 걸터앉기도 하면서 이끼를 긁적이고 새의 발자국을 지우기도 했다. 높고 험하여 그 완고함을 사랑하였고, 두드리고 밀어보아 그 견고함에 압도되었으며, 굽어보고 쳐다보거나 누웠다 일어나는 것을 오직 바위에만 의지하였다. 그것을 인하여 문미에 '서암(棲巖)'이라고 편액 하였으니, 옹(翁)은 바위에 대해서는 계획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다만 생각건대 '바위에 깃들어 살며 은미한 효험 바라노라[巖棲冀微效]'32)는 고정 부자(考亭夫子, 주자)가 지은 것인데, 그 귀의처는 유(劉) 병산(屛山)33)이 말한 '회(晦)'에 있다. 지금 옹의 '회적(晦跡, 자취를 감춤)'은 이미 서암 이전에 있으니, 어찌 암서한 이후에 그 은미한 효험을 바랐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령 '봄의 자태가 찬란히 펴지고, 신명이 안에서 넉넉하다.[春容燁敷, 神明內腴]'34)는 것은 도체(道體)를 다 설명하였고, 정묘함을 철저히 발용(發用)한 것이다. 비록 고정(考亭)과 같은 학문으로도 오히려 평생에 힘을 들였는데, 궁벽한 시골의 만생(晩生, 선배에 대한 후배의 겸칭)이 어찌 감히 갑자기 의의(擬議)할 수 있겠는가? 바로 원하는 바는 곧 주자를 배우는 것이니, 옹의 품은 뜻[志尙]은 여기에 근거해 대강을 볼 수 있다.나 학원은 사산사(泗山祠)의 제사를 대개 창주정사(滄洲精舍)35)에서 행한 예(例)를 본받았는데, 옹이 자주 찾아 주었으니 또한 (주자의) '좋은 날에 꽃을 찾아 사수 가를 찾는다.[勝日尋芳泗水濱]'36)는 뜻을 본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이를 잊고 함께 놀며 계합(契合)이 매우 친밀하니, 문미에 걸 기문에 대한 요청을 감히 어리석고 비루하다는 이유로 끝내 사양할 수가 없었다.기미년(1919) 10월 하순, 곡부(曲阜) 공학원(孔學源)이 삼가 짓는다. 陰。與金參奉容珣同行。 入華蓋山。 留連。再明到長城弱水亭。 招酒相飮。 隨月色。 至蕨田金吉寧家留宿。翌日入河晩里。 慰問諸友喪。 又明日薄暮轉於郭漢豊舍廊留宿。又明朝。 到女婿家。卽日訪茅峴申錫休氏。 不遇而午飯於柳相春宅。夕陽到晩舞亭孔學源宅。 留數漢回。回路午飯於細谷旺林宅以還。與孔學源論理氣。 學源曰。 "余以'理外無氣。 理在氣中'八字打開。余應之曰 "是也。 是合理氣言。 理氣合而離。 離而合。 一而二。 二而一。 先儒已言之。" 又曰。 "韓南塘經筵論理氣。 引栗谷先生言。 發之者氣也。 所以發者。非氣不能發。 非理無所發。無先後無離合。若分而言之。 理無爲而氣有爲。 理無形而氣有形也。"棲巖記士苦心力學。 不能無意於需世。 而旣不可得。 則晦跡藏修。 獨善其身而已。又不可得。 則厄窮矣。 如非瀕海絶島。 必也窮山巖穴。士而至此。 可不於邑長唏。金永粲氏潭之高士。少而勤學。 克盡修齊之道。老且矻矻。 旁求講磨之益。 有司不擧聲名。 不利於場屋。營講室一屋。 納鄕里之願學者。 專務爲己。屈首屛跡。 爰居爰處。 若將終身而已。世級汚下。 俗尙偸薄。 儒者所有。 屬之先天舊物。 數間棟宇。 殆不支吾。 出無依靠之望。 入無容膝之地。由是焉。 怏怏不樂。 婆娑邱林。 跼蹐戶庭。 其所厄窮。 時也誰尤? 宅邊有雙巖壁立。 時復登降。 盤旋箕坐。搔苔髮而浴鳥跡。 崚嶒而愛其頑。 敲推而服其堅。偃仰臥起。 惟巖是依。 因以棲巖扁其楣。 翁之於巖。 可謂得計。第念'巖棲冀微效'。 考亭夫子所作。 而其歸重在於劉屛山所示之晦。今翁之晦跡。 已在棲巖之前。 豈可謂巖棲然後。 冀其效也? 至若'春容燁敷。 神明內腴'。 說盡道體。 發用精妙到底。 雖以考亭之學。 猶爲平生用力。 寒鄕晩出。 豈敢遽爾擬議? 乃所願。 則學朱子者。 翁之志尙。 卽此而可見梗槪矣。學源俎豆泗山。 放滄洲精舍已例。 而翁頻賜筇屐。 亦效 '勝日尋芳泗水濱'之意。是以忘年相謔。 契合甚蜜。 記楣之請。 不敢以愚陋終辭。歲己未陽月下澣。 曲阜孔學源謹述。 한원진(韓元震, 1682~1751)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 본관은 청주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이며,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호론(湖論)인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성삼층설에 입각하여 성을 인간과 사물이 같은 초형기(超形氣)의 성, 인간과 사물이 다른 인기질(因氣質)의 성, 인간과 인간이 서로 다른 잡기질(雜氣質)의 성으로 구분하여 파악하였다. 또한 성은 이(理)가 기질 속에 내재된 뒤에 말해질 수 있는 개념이라는 이이(李珥)의 생각을 계승하여, 인성과 물성은 기질을 관련시키는 인기질의 차원에서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와 같은 사고를 바탕으로 인성과 물성은 다르다는 주장을 전개하였다. 그는 미발심체(未發心體)의 문제에 관한 논쟁에서도 미발의 심체는 본래부터 선하다고 주장하는 이간(李柬)과는 달리, 미발의 심체에도 선악의 가능성이 공재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미발심체유선악설(未發心體有善惡說)을 주장하였다. 바위에 …… 바라노라 주자의 〈회암(晦菴)〉시에 "오랫동안 자신하지 못하니 바위에 깃들여 은미한 효험 바라노라.[自信久未能, 巖棲冀微效]"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후 산속에 기거하며 학문에만 정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도산에 있는 퇴계의 암서헌(巖棲軒)과 화양동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암서재(巖棲齋)가 널리 알려져 있다. 유병산(劉屛山) 유자휘(劉子翬, 1101~1147). 자는 언충(彦沖), 호는 병산(屛山), 시호는 문정(文靖)이며, 복건성 숭안(崇安) 사람이다. 주희(朱熹)의 스승이다. 그는 1127년에 금(金)나라가 송나라의 수도 변경(卞京)을 함락시키고 흠종(欽宗)과 휘종(徽宗)을 포로로 끌고 간 정강(靖康)의 난리에서 아버지 유겹(劉韐)이 전사하자, 금나라에 대한 원한의 칼을 품은 채 평생 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무이산(武夷山)으로 들어가 강학에만 힘을 쏟았다.(《송사(宋史)》 권434 유자휘열전(劉子翬列傳)) 봄의 …… 넉넉하다 유자휘가 주희의 자(字)를 원회(元晦)라 지어 주며 남긴 축사에 "나무는 뿌리에 감추어야 봄의 자태가 찬란히 펴지고, 사람은 몸에 감추어야 신명이 안에서 넉넉하다.[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라고 하였다. 주자의 자인 원회(元晦)ㆍ중회(仲晦)와 호인 회암(晦菴)ㆍ회옹(晦翁)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창주정사(滄洲精舍) 주희가 복건성(福建省) 건양현(建陽縣)에 지은 정사이다. 주희가 그곳에서 기거하자 많은 제자가 그리로 모여들어 세상에서 그들을 일러 고정학파(考亭學派)라고 하였다.(《복건통지(福建通志)》) 좋은 …… 찾는다 주희의 〈춘일(春日)〉 시에 "좋은 날에 꽃을 찾아 사수 가를 찾으니, 가없는 봄 풍경이 한때에 싱그러워라. 심상하게 동풍이 얼굴 스친 줄만 알았더니, 붉고 검붉은 수많은 꽃이 모두 봄이로구나.[勝日尋芳泗水濱, 無邊光景一時新. 尋常識得東風面, 萬紫千紅總是春.]"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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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정해) 二十四日 丁亥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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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병자) 十四日 丙子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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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무인) 十六日 戊寅 맑음.〈동지에게 보이다〉천지가 처음으로 갈라진 후로 백왕(百王)이 흥하고 망하였으니, 소인(所因)한 것은 삼강(三綱)81)과 오상(五常)82)이요, 손익(損益)83)한 것은 문질(文質)84)과 삼통(三統)85)이다. 소인한 것은 하늘이 지은 것이고, 손익한 것은 사람이 지은 것이다. 하늘이 지은 것은 만고토록 바꿀 수 없으나 사람이 지은 것은 때에 따라 변해간다. 마치 진나라가 주나라의 유약함을 보고 강포함을 더하였고, 한나라가 진나라의 강포함을 보고 관대함을 더한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이 지어서 끝내 변하는 것으로써는 하늘이 지은 것을 얻을 수 없다. 이후의 제왕으로 손익의 타당성을 얻은 자는 해가 지날수록 장구할 것이고, 타당함을 얻지 못한 자는 해가 지날수록 촉박해질 것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삼강과 오상의 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삼강과 오상의 도로 처한 자는 거의 얻음이 있을 것이다. 이 뜻은 노논(魯論)86)에서 '자장이 십 대 후의 일을 알 수 있을지를 묻다[子張問十世可知也]'장에 밝게 드러난다. 우리 동지들은 더욱 힘쓸 것이니, 삼강과 오상의 도로써 중화의 문화를 사용할지어다. 陽。示同志天地肇判后。 百王興亡。 而所因者三綱五常。 損益者文質三統。所因者天做底。 損益者人做底。天做底萬古不易。 人做底隨時變易。如秦見周之柔弱。 而加之强戾。 漢見秦之强戾。 加以寬大。然以人做底終變。 不得天做底。此後帝王損益之得當者。 歷年長久。 未得當者。 歷年短促。至于今三綱五常之道不墜。 以三綱五常之道處之。 有庶幾得矣。此義昭著於魯論子張問十世可知也章。惟吾同志勉旃愼旃。 以三綱五常之道。 用夏焉。 삼강(三綱) 유교 도덕의 기본이 되는 세 가지 도리. 즉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을 말한다. 오상(五常) 오륜(五倫). 유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즉 인・의・예・지・신을 말한다. 손익(損益) 시대의 상황에 맞도록 조화하는 것을 말한다. 문질(文質) 강상(綱常)과 제도문물(制度文物). 하나라는 충(忠)을 숭상하고, 상나라는 질(質)을 숭상하며, 주나라는 문(文)을 숭상한 것과 같다. 삼통(三統) 하(夏)・상(商)・주(周) 삼대(三代)의 정삭(正朔)을 말한다. 하(夏)나라는 인월(寅月)로 세수(歲首)를 삼아 인통(人統)이 되고, 은(殷)나라는 축월(丑月)로 세수를 삼아 지통(地統)이 되고, 주(周)나라는 자월(子月)로 세수를 삼아 천통(天統)이 된다. 노논(魯論) ≪논어≫를 말한다. 위 글은 〈위정편〉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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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기묘) 十七日 己卯 맑음. 호씨(胡氏, 호인(胡寅))는 말하길, "대저 수신(修身)에서부터 천하(天下)에 이르기까지 하루라도 예가 없을 수 없다. 하늘이 펴고 하늘이 세운 질서는 사람이 공유한 바이니, 예의 근본이다."87)라고 하였고, 신안 예씨(新安倪氏, 예사의(倪士毅))는 이르길, "≪서경≫에 이르길 '하늘이 펼쳐서 법전을 두시고 하늘이 질서를 세워 예를 두었다.'라고 하였으니, 삼강과 오상은 곧 하늘이 펼친 법전이고 하늘이 세운 질서의 예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고 문득 느낌이 있으니, 향촌선생(香村先生) 영숙(永璹)88)은 매양 예학과 수학을 말할 때는 천질(天秩)의 학문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기록한다. 가만히 생각건대 향촌(香村)이 말한 예학이란 곡례(曲禮)의 말절(末節)과 번문(繁文)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陽。胡氏曰。 "夫自修身。 以至於天下。 不可一日而無禮。天敍天秩。 人所共由。 禮之本也。" 新安倪氏曰。 "書曰 '天敍有典。 天秩有禮'。 三綱五常。 卽天敍之典。 天秩之禮也。" 看此忽感。 香村先生永璹。 每道禮學與數學。 莫如天秩之學之言。 故記之。竊想香村所謂禮學者。 指曲禮之末節繁文而言也。 호씨(胡氏)는 말하길 …… 근본이다 ≪논어≫ 〈위정편〉 제23장에 나온 말이다. 향촌선생(香村先生) 김영숙(金永璹, 1827~?)을 말함. 자는(貫一), 호는 향촌(香村), 본관은 광산이다. 노사 기정진의 제자이며, 담양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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