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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1월 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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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갑술) 十二日 甲戌 흐림. ≪학포양선생문집(學圃梁先生文集)≫56)의 〈우부(愚賦)〉를 보고 기록한다.하늘이 성품을 사람에게 주심이여(皇賦則而畀人)어찌 성인에게는 후하고 우인에게는 박하게 했으랴(胡聖豊而愚嗇)기품의 청탁으로 인연하여(緣氣稟之淸濁)혼명(昏明)의 구별이 있는 것이라(有昏明之區別)밝은이는 진실로 상지(上智)가 되니(明固造乎上智)이 혼우(昏愚)함을 홀로 슬퍼하는구나(竊獨悲此昏愚)조수의 발톱과 어금니도 없으면서(無鳥獸之爪牙)성현과 같은 두로(頭顱)57)를 지녔구나(同□□之頭顱)당우를 짓고 편히 살면서(構堂宇而安居)곡식을 먹고58) 비단옷을 입는구나59)(知食粟而衣帛)엄연한 구규(九竅)60)를 갖춘 형체를 지녀(儼九竅以成形)하늘과 땅 사이에 명을 받고 서있구나(命兩間而中立)그 타고난 덕이 같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非厥德之不若)총명한 본 바탕을 잃는구나(喪聰明之良質)시청과 언동으로부터(自視聽與言動)행기와 접물에 이르기까지(曁行己與接物)옳지 아니한 부류를 따라서 쫓으니(非義類焉是從)인기(人紀)61)가 없어져도 걱정하지 않는구나(蔑人紀而不恤)임금으로는 하나라 걸과 상나라 수요(君之夏桀商受)신하로는 비렴과 악래62)가 그랬다(臣之飛廉惡來)재앙이 있는데도 어리석음이 너무 심하여(愚已甚於禍稔)집과 나라가 망해도 슬퍼하지 않았다(家國敗而莫哀)아! 사람의 성품은 본래 착하여(嗟人性之本善)이물(異物)처럼 치우치고 막히지 않는 것이다(異物類之偏塞)- 아마 한 구절이 빠진 것 같다. -혹시라도 사사로움 극복하고 반성을 한다면(儻克己而反求)어리석어도 고명으로 나아가는 법(愚可進乎高明)시(柴)63)는 어리석었어도 능히 효도를 하였고(柴由愚而克孝)삼(參)64)은 노둔하였어도 덕을 이루었다(參由魯而德成)저 영무자의 지우(智愚)와(彼智愚之寗武)안자의 예우(睿愚)65)여(與睿愚之顔子)참으로 우(愚)의 특출한 분으로서(信其愚之卓立)고산을 우러르나66) 기대하기 어렵구나(仰高山而難企)슬프다 나의 기질이 못났음이여(悵余質之淟涊)학문이 누추하고 행실도 삐뚤어졌다(學凡陋而行乖)군자에게 버림받아67)(爲君子之所棄)소인의 무리될까 두렵도다(恐小人之同儕)그러나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라68)는 교훈을(然學問思辨之訓)가만히 자사의 글에서 복응하였다(竊服膺乎思書)마땅히 백배의 공부를 하며 쉬지 않아(當百功而不措)성(誠)을 간직하여 처음대로 회복하리라(庶存誠而復初)어찌 자포자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여(詎同暴棄之愚)벌레와 물고기처럼 될 수가 있겠는가69)(甘若蟲而若魚)이처럼 마음이 굳지 못할까 염려하여(慮玆心之不固)잠(箴)을 지어 나를 깨우치노라(因作箴而警余)잠에 이른다(箴曰)마음은 본시 비어있는 것(心兮本虛)들어가고 나가고 방향이 없구나(出入無鄕)어쩌다가 형체에 부려지면(一爲形役)방자하고 미치고 하는구나(乃肆乃狂)공자는 이를 잡아 간직하라70) 하셨고(孔稱操存)맹자는 이를 해치면 성을 잃는다71)고 하셨다(孟稱梏亡)경(敬)하여 이를 지키고(敬而守之)성(誠)으로서 독실히 공부하라(誠以篤功)그런 뒤에야 우(愚)를 깨고서(然後破愚)부딪히는 곳마다 훤히 트이리라(觸處皆通)-선생의 휘는 팽손(彭孫)으로, 기묘 명인이다. 정암선생(靜菴先生, 조광조)을 염빈(斂殯, 입관하여 안치하는 것)하였다. 시호는 혜강으로, 부지런히 베풀고 사사로움이 없는 것[施勤無私]을 '혜(惠)'라 하고, 연원이 두루 통하는 것을 '강(康)'이라 한다.- 陰。看 ≪學圃梁先生文集≫ 〈愚賦〉。 記之。皇賦則而畀人。 胡聖豊而愚嗇。 緣氣稟之淸濁。 有昏明之區別。 明固造乎上智。 竊獨悲此昏愚。 無鳥獸之爪牙。 同□□之頭顱。 構堂宇而安居。 知食粟而衣帛。 儼九竅以成形。 命兩間而中立。 非厥德之不若。 喪聰明之良質。 自視聽與言動。 曁行己與接物。 非義類焉是從。 蔑人紀而不恤。 君之夏桀商受。 臣之飛廉惡來。 愚已甚於禍稔。 家國敗而莫哀。 嗟人性之本善。 異物類之偏塞。 【恐脫一句】。 儻克己而反求。 愚可進乎高明。 柴由愚而克孝。 參由魯而德成。 彼智愚之寗武。 與睿愚之顔子。 信其愚之卓立。 仰高山而難企。 悵余質之淟涊。 學凡陋而行乖。 爲君子之所棄。 恐小人之同儕。 然學問思辨之訓。 竊服膺乎思書。 當百功而不措。 庶存誠而復初。 詎同暴棄之愚。 甘若蟲而若魚。 慮玆心之不固。 因作箴而警余。 箴曰。 心兮本虛。 出入無鄕。 一爲形役。 乃肆乃狂。 孔稱操存。 孟稱梏亡。 敬而守之。 誠以篤功。 然後破愚。 觸處皆通。【先生諱彭孫。 己卯名人。斂殯靜菴先生。諡惠康。 施勤無私曰惠。 淵源流通曰康。】 학포양선생문집(學圃梁先生文集)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문집인 ≪학포집(學圃集)≫을 말한다. 양팽손의 자는 대춘(大春)이고, 호는 학포(學圃), 본관은 제주(濟州)로, 능성(綾城)에서 태어났다. 1510년(중종 5)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6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며, 또 현량과(賢良科)에 발탁되었다. 1519년 10월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김정 등을 위해 소두(疏頭)로서 항소하였다. 이 일로 인해 삭직되어 고향인 능주로 돌아와, 중조산(中條山) 아래 쌍봉리(雙鳳里)에 작은 집을 지어 '학포당(學圃堂)'이라 이름하고 독서로 소일하였다. 1630년(인조 8) 김장생(金長生) 등의 청으로 능주 죽수서원(竹樹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818년(순조 18) 순천의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추향되었다. 저서로는 ≪학포유집≫ 2책이 전한다. 시호는 혜강(惠康)이다. 두로(頭顱) 백발의 쇠한 머리를 말한다. 곡식을 먹고(食粟) 식속(食粟)은 별로 하는 일 없이 곡식만 축내는 인간이라는 뜻인데, 조교(曹交)가 맹자에게 "나도 문왕(文王)처럼 키가 큰데 어째서 문왕이 못 되고 곡식만 먹습니까?"라고 물은 데서 나온 말이다.(≪맹자≫ 〈고자 하(告子下)〉) 곡식을 …… 입는구나 원문에는 '知食粟衣帛'이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知食粟而衣帛'라고 되어 있다. 구규(九竅) 눈・코・입 등 인체(人體)의 모든 구멍으로 된 부분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인기(人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비렴과 악래 비렴(飛廉)・악래(惡來)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간신(奸臣)이다. 시(柴) 공자의 제자 고시(高柴)를 말한다. 자는 자고(子皐)이며, 어버이 상에 삼 년 동안 울고 웃지 않았다.(≪예기≫ 〈단궁 상(檀弓上)〉) 삼(參)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을 말한다. 자는 자여(子輿)이고 학문을 함에 성실하고 돈독하게 하여 마침내 공자의 학문을 전수했는데, ≪논어≫ 선진(先進)에 "증삼은 노둔하다.[參也魯]"고 한 말이 있다. 영무자의 …… 예우(睿愚) 유종원(柳宗元)의 〈우계시서(愚溪詩序)〉에 의하면 "공자가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했으니, 그는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체했던 사람이요, 또 공자가 안자(顔子)를 일러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말을 했으되, 어기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 같다.' 했으니, 안자는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은 체했던 사람이라,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도가 있는 세상을 만나서 도리에 어긋나고 일에 거슬렸다. 그러므로 모든 어리석은 이 중에 나만큼 어리석은 이는 없는 것이다.[甯武子邦無道則愚, 智而爲愚者也. 顔子終日不違如愚, 睿而爲愚者也. 皆不得爲眞愚. 今余遭有道, 而違於理, 悖於事. 故凡爲愚者莫我若也.]"라고 하였다.(≪유하동집(柳河東集)≫) 고산을 우러르나 ≪시경(詩經)≫ 〈소아(小雅)·차할(車舝)〉의 "높은 뫼를 우러르며 큰길을 따라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군자에게 버림받아 원문에는 '爲君子所棄'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爲君子之所棄'라고 되어 있다. 배우고 …… 분별하라[學問思辨] ≪중용장구≫의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벌레와 …… 있겠는가 원문에는 '甘若蟲若魚'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甘若蟲而若魚'라고 되어 있다. 이를 잡아 간직하라[操存] 조즉존(操則存)의 준말로, 마음을 다스려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孔子)께서 이르기를 '잡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하셨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이를 …… 잃는다[梏亡] 물욕의 구속을 받아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말로,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인의의 마음이 없겠는가. …… 낮과 밤에 자라나는 것과 새벽녘의 기운이 그 호오가 남들과 서로 가까운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낮에 하는 소행이 이것을 제어하여 사라지게 한다.[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라고 하였다. 새벽녘 사물과 접하지 않아 기운이 청명할 때에 발현되는 미약한 양심(良心)이 낮에 행하는 불선한 행위에 의해 없어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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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을해) 十三日 乙亥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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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정묘) 六日 丁卯 맑음. 〈성학도(聖學圖)〉를 보았다.사계(沙溪)101)가 일찍이 한밤중에 그[송시열]를 불러 가로되, "너는 심성정의(心性情意) 등의 글자를 아느냐?"라고 했다. (송시열이)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다만 주설(註說)에서 몽롱하게 보고 지나쳤으니, 어찌 분명하게 알겠습니까?"라고 했다.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심(心)은 그릇과 같고, 성(性)은 그릇 속에 있는 물과 같다. 정(情)은 물을 쏟아내는 것과 같다. 이 물을 저장하고 때때로 쏟아내는 것이 기(器)이다. 이 성을 함양하고 이 정을 발하는 것이 심(心)이니, 이것이 심과 정의 구별이다. 이 정이 이미 발한 뒤에 경영하고 기획하는 것은 의(意)이다. 한 가지 일을 지향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지(志)이다. 사와 지는 서로 가깝지만, 다만 지는 크고 사는 작다. 염려(念慮)는 사에 속하는 것이지만, 려(慮)에는 근심하고 헤아린다는 뜻이 있다."라고 했다.또 말씀하시기를, "정(情)이란 부지불식간에 불쑥 나타나는 것이요, 자기에게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나타난 것을 경영하고 꾀하는 것이 의(意)이다. 여기에 이른 연후에야 비로소 자신에게서 말미암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성정(誠情)이라 하지 않고 성의(誠意)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陽。看〈聖學圖〉。沙溪。 嘗於夜裏呼之曰。 "爾知心性情意等字乎?" 對曰。 "尤庵只於註說。 朦朧看過。 豈得分明識破乎?" 曰。 "心如器。 性如器中之水。情如水之瀉出者。貯此水而有時瀉出者器也。涵此性而發此情者心也。 此心情之別也。此情旣發之後。 經營謀劃者意也。指向一事而欲之者志也。思與志相近。 但志則大。 而思則小也。念慮則思之屬。 而慮有虞度之意矣。" 又曰。 "情是不知不覺闖然發出。 不由自家者也。 以此發出者。 經營謀劃者。 意也。至此然後。 始由自家。 故 ≪大學≫不曰誠情。 而曰誠意也。"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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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무진) 七日 戊辰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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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기사) 八日 己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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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임오) 二十二日 壬午 맑음. 덕진동 생부 묘에 성묘를 갔다. 옥전으로 가다가 남계당(南溪堂) 조카를 방문했는데 만나지 못했다. 오서방(吳書房) 집에서 점심을 먹고 석양 무렵에 옥전에 도착했다. 陽。德振洞生父墓省行。向玉田。 過訪南溪堂姪而不遇。午飯於吳書房家。 夕陽到玉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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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서 만노문(萬弩門, 철옹성의 정문인 남문)을 나와 수종(水宗)까지 40리를 가서 여막(旅幕)에서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오후에 길을 떠났다. 소착(蘇鑿)이 반쯤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강물을 거슬러 내려가 청천강(淸川江)을 건너고, 안주(安州) 읍내에서 머물렀다. 이날 70리를 갔다. 未明登程, 出萬弩門, 至水宗四十里旅幕, 中火秣馬。 午後發程, 以蘇鑿之半氷, 挾流而下, 渡淸川江, 留安州邑內。 是日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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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기】 14일(정미) 【同人記】 十四日 丁未 맑음.36) 장성의 사돈집에 도착했다. 陽。到長城査家。 원문에 2월 14일이 두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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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임인) 九日 壬寅 흐리고 비. ≪중용≫의 〈귀신장(鬼神章)〉을 보았는데, 정자(程子)의 설을 유양(游楊)34)이 얻었다고 하는 설은 옳지 않다. 노담(老聃, 노자)의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장수라고 한다.[死而不亡曰壽]'35)라는 설은 더욱 불가하다. 陰雨。看 ≪中庸≫鬼神章。 程子之說爲得游楊之說。 不可。老聃死而不亡曰壽之說。 尤不可。 유양(游楊) 유씨와 양씨.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의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유작(游酢, 1053~1123)과 양시(楊時, 1053~1135)를 아울러 부른 말이다. 유작의 자는 정부(定夫), 호는 광평(廣平), 시호는 문숙(文肅)이며 건양(建陽) 사람이다. 양시의 자는 중립(中立), 호는 구산(龜山), 시호는 문정(文靖)이며 검남(劍南) 사람이다. 그의 학문은 나종언(羅從彦)과 이동(李侗) 등을 거쳐 주자에게로 이어져 이학(理學)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죽어도 …… 장수라고 한다 ≪노자≫ 제33장에 나온 것으로, 원래는 '死而不亡者壽'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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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을묘) 二十五日 乙卯 맑음. 황충(蝗虫)162)을 잡았다. 陽。捕蝗。 황충(蝗虫) 메뚜기. 몸길이가 약 5센티미터인 황충과의 곤충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 널리 서식한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집단으로 이동하며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다. 메뚜기 떼가 지나간 곳에는 초목이나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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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갑술) 十四日 甲戌 맑음. 이한직(李漢稙)과 국기용(鞠基瑢)이 내방하였기에 함께 정자 위에 올라서 담론하였는데 마치지 못하고 돌아왔었다. 달 뜨는 밤에 답례하기 위해 이한직의 처소에 가서 국기용과 노인(魯認)163)의 ≪금계일기(錦溪日記)≫를 열람하였는데, 그 책에 "중원 사람들과 함께 일본에서 오는데, 파도가 맹렬하게 솟구쳤다. 중원 사람들이 그걸 보고 서로 말하기를 '중원의 경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 까닭을 물어보니, '큰 고래는 햇볕을 따라 올라와 물이 낮은 곳에서 논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陽。李漢稙・鞠基瑢來訪。 共上亭上談論。 未了而歸。月夕。 以回謝次。 到李漢稙寓舍。 基瑢覽魯錦溪日記。 有曰。 "與中原人。 自日本而來。 波濤洶聳。中原人見而相謂曰。 '中原界漸近'。問其故。 '長鯨承陽而上。 水淺之處遊也'云"。 노인(魯認, 1566~1624) 자는 공식(公識), 호는 금계(錦溪), 본관은 함풍(咸豐)으로, 나주 출신의 무관이다.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서 3년간 억류되었으나, 중국의 차관(差官) 임진혁(林震虩)의 배편으로 명나라로 탈출하였으며, 무이서원(武夷書院)에서 정주학(程朱學)을 강론하다가 1599년 귀국하였다. 저술로 일본에 억류되어 있을 때 지은 〈피부동고록(被俘同苦錄)〉・〈거왜수록(居倭隨錄)〉・〈왜국지도(倭國地圖)〉가 있고, 유집으로 ≪금계집(錦溪集)≫ 6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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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신묘) 初二日 辛卯 맑음. 문암리(門岩里)로 생부(生父)의 제사169)를 지내러 갔다. 陽。作門岩里生庭親祭之行。 생부의 제사 생부 김진현(金珍鉉)은 1896년 8월 3일에 졸하였다. 묘는 담양군 금성면 덕진동 안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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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기해) 十二日 己亥 맑음. 광주(光州) 장자동(長子洞)35)의 이희용(李熙容)36) -자(字)가 국서(國瑞)이며, 본관이 전의(全義)이다.- 이 와서 함께 묵으며 두 밤을 보냈다. 陽。光州長子洞李熙容國瑞全義人來。 同宿再經宵。 장자동(長子洞)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을 말한다. 장자동의 유래는 세종조의 명신 필문 이선제(李先齊)의 다섯 아들인 시원(始元)・조원(調元)・한원(翰元)・찬원(贊元)・형원(亨元)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을 '오원(五元)'이라 불렀는데, 오원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자, '학덕이 높은 장자가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들이 살았던 곳을 '장자동(長子洞)'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희용(李熙容, 1853~1931) 자는 국서(國瑞), 호는 쌍석(雙石),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광주 흑석동에서 출생했다. 1874년 약관에 노사(蘆沙)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노사선생 사후에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모셨다. 문집으로 ≪쌍석유고(雙石遺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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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병오) 十九日 丙午 맑음. 시정(時政, 당시 정책)에 공동묘지를 정했는데,37) 근래에 민심이 소란한 것은 매장하는 일 때문이다. 나도 생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가 옥과에 있는데, 봉축(封築, 무덤을 만들 때 흙을 쌓아 올림)을 잘 하지 못하였고, 사초(莎草)38)를 경영한 지가 여러 해였다. 그러나 가도(家道, 집안 살림)가 넉넉지 못하여 뜻은 있어도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제 묘지의 일에 기한을 넘길 수 없어서 이웃인 유희적(柳羲迪)에게 간청하자 25민(緡)의 돈을 주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묘지의 일을) 완성할 것을 도모했다. 陽。時政定共同墓地。 近日民心騷動。 以葬埋爲事。余亦生庭先妣山所。 在玉果。 封築不謹。 經營莎草者數年。 而家道不贍。 有意未就。今此墓事有限不得。 而懇隣人柳羲迪。 惠以二十伍緡文。 故還巢圖成。 시정 …… 정했는데 일제는 1912년에 묘지규칙을 제정하고 묘지를 공동묘지에 한정하였는데, 반발·시위 등으로 1919년에 거의 포기되었다. 사초(莎草) 무덤에 떼[잔디]를 입히고 다듬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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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정묘) 十六日 丁卯 맑음. 아름다운 산천을 찾아다니다 순창읍(淳昌邑)에 이르렀다. 다음날 아침 구항(龜項)16)으로 향했으나, 비가 와서 강창원(姜昌遠) 도유(道猷) 댁에서 머물렀다. 노사(蘆沙, 기정진)의 〈외필(猥筆)〉17)을 보았다. 陽。訪佳山麗水。 至淳昌邑。翌朝向龜項。 滯雨於姜昌遠道猷宅。看蘆沙〈猥筆〉。 구항(龜項) 현재 전북 순창군 팔덕면 구항마을을 가리킨다. 구항마을은 맨 처음 진주 강씨가 마을 터를 잡았으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거북이 목터라 하여 '구항'이라 칭했다 한다. 외필(猥筆) 기정진(奇正鎭)이 81세(1878)에 이기론(理氣論)에 대하여 지은 글로서, 당시 지식인들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수작(秀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정진(1798~1879)은 1798년 6월 3일에 전북 순창군 복흥면 구수동(九水洞)에서 기재우(奇在祐)와 안동권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字)는 대중(大中)이요, 호(號)는 노사(蘆沙)이며, 본관(本貫)은 행주(幸州)이다. 성리학에 대한 독자적인 궁리와 사색을 통하여 이일분수(理一分殊) 이론에 의한 독창적인 이(理)의 철학을 수립하였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손자인 우만(宇萬)과 김녹휴(金錄休)・조성가(趙性家)・정재규(鄭載圭)・이희석(李僖錫)・이최선(李最善)・기삼연(奇參衍) 등의 제자에게 전수되었으며, 많은 학자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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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무신) 十六日 戊申 흐리고 비. 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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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기유) 十七日 己酉 맑다가 밤에 비가 왔다. 陽夜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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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기해) 八日 己亥 흐리다가 저녁에 비 옴. 陰夕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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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9일(경자) 九日 庚子 흐리고 비. 우레소리가 크게 진동하였다. 陰雨。雷聲大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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