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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오늘도 몹시 추웠다. 주동(鑄洞)과 차동(車洞)에 사내종을 보내면서 화살처럼 빨리 돌아오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날씨가 추운 데다가 종기는 빠른 시일 안에 회복될 가망이 없고, 추운 날씨에 길을 떠나 바람에 상할까 염려스러워 덩그러니 여막(旅幕)에 앉아 있으니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마음이 매우 답답하여 큰 병이 될 것만 같으니, 이를 장차 어찌할꼬. 又極寒。 送奴於鑄洞及車洞, 而還歸思如矢, 而日寒如此, 且瘇氣無時日快復之望, 當寒作行傷風, 可慮。 塊坐旅幕, 此何景色。 思之鬱鬱, 若成大病, 此將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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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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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四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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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매월당집》에 있는 시를 적다.〈무도〉1) (舞蹈)이미 정밀하게2) 의리를 궁구하며,((旣精)究義理)내 덕성을 함양하고,(涵養吾德性)오래오래 스스로 젖어들며,(久久自浹洽)동정(動靜)에 항상 경(敬)을 위주로 하네.(動靜常主敬)환연(渙然)3)히 얼음이 볕에 풀어지듯,(渙然氷釋陽)이연(怡然)4)히 이치가 순정(順正)해지고,(怡然理順正)흔연히 생의(生意)가 있어서,(欣然有生意)온몸이 내 명령을 따르리라.(百體從吾令)이 같은 일을 어찌 그만두겠는가?(若此惡可已)자연히 노래와 시가 되고,(自然形歌詠)자기도 모르게 춤추고 발을 구르며, (不知舞且蹈)대화(大化)의 성인과 함께 돌아가리.(同歸大化聖) 《梅月堂集》文詩。〈舞蹈〉(旣精)究義理。涵養吾德性。久久自浹洽。動靜常主敬。渙然氷釋陽。怡然理順正。欣然有生意。百體從吾令。若此惡可已。自然形歌詠。不知舞且蹈。同歸大化聖。 《매월당시집(梅月堂詩集)》 권13 〈무도(舞蹈)〉에 수록되어 있다. 《매월당시집》의 원문에는 들어있으나, 김영찬의 일기에는 글자가 빠져 있어 추가하였다. 환연(渙然) 얼음 같은 것이 풀리는 모양을 말한다. 이연(怡然) 즐겁고 기쁜 모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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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신묘) 三十日 辛卯 -중광단알(重光單閼)-. 오늘은 동지(冬至)이다. 날씨가 흐리고 서풍이 크게 불었으며 밤에 눈이 내렸다. 〈동지〉시를 읊었다. 일양(一陽)5)이 처음 움직이는 해의 벽두,(一陽初動歲之頭)그것의 유래는 박이 떨어지는 때부터지.(其漸由來剥落秋)집집마다 팥죽 끓여먹으니 좋은 계절이고,(豆粥家家時節好)곳곳이 폐관하니 나그네 수심이로다.(閉關處處旅人愁)재계하고 의관 갖춰 엄숙히 제사 받들며,(齊明盛服嚴承祭)목욕하고 몸 가린 후 고요히 그윽한 곳 마주하네.(沐浴掩身靜對幽)기화(氣化) 유행(流行)이 이로부터 시작되니,(氣化流行從此始)춘풍(春風)이 머지않아 신주(神州)6)에 당도하리라.(春風不遠到神州)석진(奭鎭)이 맹자(孟子)가 말한 '성선(性善)'이라는 말에 대하여 물었다. (내가) 답하여 말하길, "《집주(集註)》에서 이미 말하기를, '성(性)이란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아 생겨나는 이(理)로서, 혼연(渾然)하고 지극히 선하여 일찍이 악(惡)이 있지 않았다.'고 했고,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성은 곧 이[性卽理]이다.' 고 했으니, 대개 성은 본래 성탕(成湯)7)의, '황상제(皇上帝)가 아랫사람들에게 충(衷)을 내려주시어, 항성(恒性)이 있게 되었다.8)'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 후 공자(孔子)가 《역(易)》〈문언(文言)〉전에서 말하기를, '일음일양(一陰一陽)을 도(道)라 하고, 그것을 잇는 것이 선(善)이요 그것을 이루는 것이 성(性)이다.'고 했고,《논어[魯論]》에서 또 말하기를, '성은 서로 가깝지만 습관에 의해 항상 멀어진다.'9)고 했으며, 한(韓) 퇴지(退之)는 말하기를, '성에는 3품이 있으니, 순자(荀子)10)와 양웅(楊雄)11)이 혹은 악한 것이라고 하고 혹은 선악이 섞인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횡거선생(橫渠先生)은 '본연과 기질의 구분이 있다.'고 했다. 이것과 저것을 절충해보면, 맹자가 '성선'이라고 말한 것은 《주역》〈문언〉의 '그것을 잇는 것이 선이요, 그것을 이루는 것이 성이다'에서 근본하였고, 그 본연인 것을 가리킨 것이니, 그것이 크게 성문(聖門)에 공이 있는 것을 믿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重光單閼】 是日卽冬至也。日氣陰陰。 西風大吹。 夜雪。冬至吟。一陽初動歲之頭。其漸由來剥落秋。豆粥家家時節好。閉關處處旅人愁。齊明盛服嚴承祭。沐浴掩身靜對幽。氣化流行從此始。春風不遠到神州。奭鎭問。 孟子道性善之言。答曰。 "《集註》旣曰。 '性者。 人所稟於天。 以生之理也。 渾然至善。 未嘗有惡。' 程子曰。 '性卽理也。' 盖性本出於成湯。 惟皇上帝降衷于下民。 若有恒性之言。 而其後孔子《易》〈文言〉曰。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 成之者性。' 《魯論》又云。 '性相近也。 習常遠。' 退之曰。 '性有三品。 荀與楊也。 或云惡或云善惡混。' 橫渠先生。 '有本然氣質之分'。 以此以彼折衷焉。 則孟子'性善'之言。 盖本於《易》〈文言〉。 '繼之者善。 成之者性'。 而指其本然者也。 其大有功於聖門也。 信矣。 일양(一陽) 음력 10월에 음(陰)이 다하고 11월 동지(冬至)에 생긴다는 일양(一陽)을 말한다. 신주(神州) 도성을 가리킨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중원(中原) 지방을 '신주적현(神州赤縣)'이라고 일컬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성탕(成湯) 중국 은(殷)나라의 탕왕(湯王). 신하의 신분으로 임금이었던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을 정벌하고 나라를 세웠다.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성탕이 걸왕을 남소에 유폐시키고는 마음속으로 부끄럽게 느끼면서 말하기를 '나는 후세에 나를 구실로 삼아서 신하가 제멋대로 임금을 정벌할까 두렵다.'라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황상제가 …… 되었다 《서경》 〈탕고(湯誥)〉에 "황상제가 아랫사람들에게 충(衷)을 내려주어, 항성(恒性)이 있게 되었다.[惟皇上帝, 降衷于下民, 若有恒性.]"를 가리킨다. 성(性)은 …… 멀어진다 원문 '性相近也, 習常遠'은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나오는 '性相近也, 習相遠也.'를 가리키는 것으로, '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으로 인하여 서로 멀어진다.' 라는 뜻이다. 순자(荀子) 중국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유학자 순황(荀況)이다. 그의 사상서도 《순자(荀子)》로 20권인데, 예치주의(禮治主義)를 강조하고 성악설(性惡說)을 담고 있어 유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후에 한비자(韓非子) 등이 계승하여 법가(法家) 사상을 낳았다. 양웅(楊雄) 양웅은 한(漢)나라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字)는 자운(子雲). 성제(成帝) 때에 경전(經典)의 장귀(章句)에 훈고(訓詁)를 찍어 훈고학의 길을 열었다.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에 대하여 양웅은 사람의 본성은 선과 악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서에 《태현경(太玄經)》, 《양자법언(楊子法言)》, 《방언(方言)》, 《훈찬(訓纂)》 등이 있음. 뒤에 신(新)나라의 왕망(王莾) 밑에서 벼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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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十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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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경인) 二十九日 庚寅 -상장섭제(上章攝提)-. 맑음. 문득 임술년(壬戌年, 1922)에 야정(野亭)에서 지었던 시가 생각나 기록해 둔다.공부하는 작은 정자가 들을 끼고 세워지니,(爲學小亭夾野成)올라보면 가슴이 확연하게 밝아지네.(登臨胸次廓然明)추위 끝 술 기운에 봄도 따뜻해지려는데,(寒餘酒氣春將暖)바람결에 시심은 달과 함께 맑아지네.(風便詩心月與淸)주역 가운데 성경(誠敬) 글자 즐거이 말하고,(肯道易中誠敬字)세상의 시비 소리는 듣기 꺼려하네.(厭聞世上是非聲)이곳에 온 남아는 무슨 한 있어서,(到此男兒何恨有)눈물 흘리며 한양성을 씻으려 하나. (淚流欲洗漢陽城) 【上章攝提】。陽。輒思壬戌二月野亭詩。 記之。爲學小亭夾野成。登臨胸次廓然明.寒餘酒氣春將暖。風便詩心月與淸.肯道易中誠敬字。厭聞世上是非聲.到此男兒何恨有。淚流欲洗漢陽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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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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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신묘) 初一日 辛卯 -중광단알(重光單閼)-. 맑음. 비괘(比卦) 육삼(六三)효의 '비지비인(比之匪人, 좋지 못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을 얻었다. 상(象)에 이르기를 "좋지 못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니 또한 해롭지 않겠는가?"라고 했는데, 그 주석에 "좋지 못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니 그 잘못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나란하게 지내면 편안함을 구하는 것이 길하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좋지 못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니 또한 해롭지 않겠는가? 【重光單閼】。陽。得比卦六三。 '比之匪人。' 象曰。 "比之匪人。 不亦傷乎? 註。 "比之匪人。 其失可知。人之相比。 求安吉也。" 比之匪人。 不亦傷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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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정유) 初七日 丁酉 -강어작악(强圉作噩)-. 맑음. 이른 아침에 어제 저녁 온 객동이 나갔다. 정오에 또 왔는데, 거의 죽어가려고 하자, 재지기[齋直]를 붙여서 경찰서 옆 약국에 보냈다. 이준영(李俊榮) -호 농암(聾菴)- 노인과 담화했다. 【强圉作噩】。陽。早朝。 昨暮客童出去。晌午又來。 幾死命。齋直付送警察所傍藥局。與李俊榮號聾菴老人談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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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신묘) 初二日 辛卯 -중광단알(重光單閼)-. 맑음. 나씨(羅氏)42)에게 시집간 딸이 급히 달려와서 소렴(小斂)43) 할 때 도착했다. 【重光單閼】。陽。羅氏女奔到小斂。 나씨(羅氏) 금성인 나기주(羅碁柱)에게 시집간 둘째 딸을 말함. 소렴(小斂) 시체에 옷을 입혀 이불로 싸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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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임진) 初三日 壬辰 -현익집서(玄黓執徐)-. 이씨(李氏)44)에게 시집간 딸이 급히 와 대렴(大斂)45)할 때 도착했다. 이날 후원(後園)에 장사지냈다. 【玄黓執徐】。陽。李氏女奔到大斂。是日葬于後園。 이씨(李氏) 함평인 이대수(李大洙)에게 시집간 첫째딸을 말함. 대렴(大斂) 소렴이 끝난 다음 날 이불로 싸서 베로 묶는 일, 또는 그 의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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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계사) 四日 癸巳 -소양대황락(昭陽大荒落)-. 맑음. 【昭陽大荒落】。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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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비가 개었다. 아침을 먹으니 해가 높이 떴다. 일행이 끝내 오지 않아 몹시 괴로웠다. 또 시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일행을 애타게 기다려도 끝내 오지 않고(苦待同行終不來)언제쯤 이 노정을 함께 떠날지 모르겠네(未知何日此笻偕)나는 그대와 단란했던 만남을 떠올리는데(吾想君所團欒會)그대는 나의 적막한 마음을 저버리는구나(君却吾邊寂寞懷)밤새도록 울며 냇물은 쉬지 않고 흘러가고(達夜鳴川流不息)하늘 가득 안개처럼 낀 수심 걷히지 않네(滿天愁霧結無開)출발하려고 했는데 장차 비가 내릴 것 같아(欲爲前進天將雨)우선 머물러 지켜보며 이따금 머리를 드네(姑留望眼有時擡)아주 늦게서야 일행이 모두 왔길래 그길로 출발하였다. 나는 기동(基洞)의 이 좌수(李座首) 집에 들러 그 아들 좌수 효근(孝根)의 상에 조문하였다. 그대로 요기를 하고 나와 정문등 주막에서 일행과 출발하였다. 중도에 비를 만나 옷이 몽땅 젖었다. 간신히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밤새 비가 내렸다. ○雨霽。 仍朝飯, 日上三竿。 同行終不來, 苦哉苦哉。 又吟一首: "苦待同行終不來, 未知何日此笻偕。 吾想君所團欒會, 君却吾邊寂寞懷。 達夜鳴川流不息, 滿天愁霧結無開。 欲爲前進天將雨, 姑留望眼有時擡。 " 最晩同行偕來, 仍爲登程。 余則入基洞李座首家, 慰其子座首孝根之喪。 仍爲療飢出來旌門登酒幕, 與同行發程。 中路逢雨, 衣服盡濕。 艱到舞童亭留。 達夜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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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아침 전에 각교(㰌橋)로 가서 판서 면재(冕載) 씨를 만났다. 오는 길에 차동(車洞)44)에 들러 민치항(閔致恒) 형제를 만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고 곧바로 야현의 족보 간행소로 가서 단자를 고준하였다. 음식을 준비하여 배불리 먹고 하서(夏瑞)와 행랑에서 머물렀다. 저녁을 먹은 후 사랑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 거처로 왔다. 날이 저물고 나서 만재 형제와 젊은이 대여섯 명과 나와서, 깊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유숙하였다. ○朝前往㰌橋, 見判書冕載氏。 來路入車洞見閔致恒兄弟, 還來主人家。 朝飯, 卽往冶峴譜所, 考準單子。 備飮食相飽, 與夏瑞同留行廊。 夕食後, 入舍廊談話出來所留處。 昏後晩載兄弟及年少五六人出來, 深夜談話, 仍爲飮喫而留。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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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단자(單子)와 약간의 물건을 가지고 족보 간행소로 가니 임실의 일가 연태(延泰)와 몇몇 사람이 먼저 자리에 있었다. 물어보니 어제 왔다고 하였다. 또 하서가 왔는지 물으니, 오늘 왔다고 하였다. 단자를 고준(考準, 원본과 대조)할 생각으로 내일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임실 일가와 함께 나와 남문 밖 하서의 주인집으로 와서 함께 묵었다. ○持單子及略干物往譜所, 則任實宗人延泰數人先在座矣。 問之, 則昨日入來。 又問夏瑞來否, 則今日入來云矣。 以考準單子之意, 明日更爲入來之意相約, 而與任實宗人同爲出來南門外夏瑞主人家, 仍爲同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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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어제 날씨가 몹시 추웠기 때문에 일찍 출발하는 데에 겁이 났다. 닭이 울자 말에게 꼴을 먹였다. 평산(平山) 읍내까지 25리를 가니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응봉(鷹峯) 주막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청석동점(靑石洞店)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05리 길을 갔다. 以昨日極寒, 㥘於早發。 鷄鳴秣馬。 至平山邑內二十五里, 日始明矣。 至鷹峯幕, 朝飯秣馬。 至靑石洞店留宿。 是日行一百五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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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닭이 울자 출발하여 오정문(五井門)에서 송경(松京)까지 25리를 가서 아침밥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시종 혼(混)과 춘백(春白)이 송경(松京)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 한참 지체되었는데, 일이 제때에 처리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나만 먼저 출발하였다. 청파(靑坡)까지 3리쯤 못 가서, 우연히 흥양(興陽) 사람 신막금(申莫金)을 만났다. 천 리 밖 길에서 고향(故鄕) 사람을 만났으니, 그 기쁘고 다행스러움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있겠는가.날이 저문 까닭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고 즉시 동파여점(東坡旅店)으로 향하였다. 해가 다 넘어가서 더 길을 갈 수 없을 듯했는데, 임진강(臨津江)이 반쯤 얼어붙어 무사히 건너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얼음을 깨서 운항하는 배가 있다고 하므로 급히 서둘러 나룻가에 달려가니 해가 뉘엿뉘엿 어두워지고 있었다. 즉시 강을 건너 임진점(臨津店)에 머물렀다. 이날 95리를 갔다. 鷄鳴發行, 自五井門入至松京二十五里, 朝飯秣馬。 盖以混傔及春白, 有松京處置事, 移時遲滯, 而事不趁時區處, 故不得已, 余獨先發。 至靑坡未及三里許, 忽逢興陽人申莫金。 千里之外路, 逢故鄕人, 其喜幸勝言? 以日暮之故, 不得久話, 卽向東坡旅店, 則日力似不可前進, 而聞臨津半氷, 利涉極難矣。 特以敲氷行船云, 故急急馳至津頭, 日將黃昏矣。 卽爲渡江, 留臨津店。 是日行九十五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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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내일 출발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내간(內間, 안채)에서 만류하고 심지어 기다리기까지 하였다. 이날 또 보전(譜錢) 10냥을 보내면서 그대로 머무는 것으로 정하였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화살 같고 답답함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決以明日發行矣, 自內間挽止, 甚至且有所待者。 是日又送譜錢十兩, 因留爲定。 歸思如矢之中, 鬱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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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을축) 三日 乙丑 맑음. 갠 하늘이 명랑했는데, 오늘이 곧 상사(上巳, 삼짇날)49)이다.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화순하여 온갖 생령들이 즐거워하고 초목들도 활짝 피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 못하였다. 陽。霽天明朗。 是日卽上巳也。日暖風和。 群生得樂。 草木敷榮。 我心不獲也〭〭 상사(上巳) 음력으로 3월 초사흗날로 삼짇날을 말한다. 이날은 들판에 나가서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밟으며 봄을 즐기기 때문에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하였다. 이날은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하고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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