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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7월 七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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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3일(임진) 十三日 壬辰 맑음. 입추(立秋)이다. 어머님 산소에 일이 있어 신안(新安)을 지나가다 주영묵(朱永黙) 댁을 방문해서 점심을 먹었다. 〈주부자세계(朱夫子世系)〉를 보고 그것을 기록한다.〈신안주씨세보(新安朱氏世譜)〉시조(始祖)는 주괴(朱瓌)로 다원공(茶院公)이다. 2세는 정준(廷雋)이다. 3세는 소원(昭元)으로, 송나라 건륭(建隆)23)연간의 진사(進士)이며, 행동남도종사시대리평사(行東南道從事試大理評事)이다. 4세는 유보(惟甫) 염계군(歛溪君)이다. 5세는 진(振) 노촌군(蘆村君)이다. 6세는 순(絢) 옥교군(玉矯君), 7세는 삼(森) 승사랑(承仕郞)으로 추증(追贈)되었다. 8세는 송(松) 좌승의랑(左承議郞)이며 호(號)는 위재(衛齋)이다. 9세는 희(熹)로서 호는 회암(晦菴)이며, 태사휘국공(太師徽國公)으로 추증되었고 시호(諡號)는 문공(文公)이다. 묘(墓)는 건양(建陽) 가목리(嘉木里) 당석(唐石)의 대림곡(大林谷) 구돈봉(九頓峯) 아래 있는데 풍취나대형(風吹羅帶形)24)이다. 10세는 맏이가 숙(塾), 둘째가 야(埜)이다. 둘째에게 딸이 있는데, 큰 딸은 유학고(劉學古)에게, 다음은 황간(黃幹)에게, 다음은 범원유(范元裕)에게 시집갔다. 陽。立秋也。有事于先妣山。 過新安。 訪朱永黙宅。 午飯。看〈朱夫子世系〉。 記之。新安朱氏世譜始祖朱瓌。 是爲茶院公。二世廷雋。三世昭元。 宋建隆進士。 行東南道從事試大理評事。四世惟甫。 歛溪君。五世振。 蘆村君。六世絢。 玉矯君。七世森。 贈承仕郞。八世松。 左承議郞。 號韦齋。九世熹。 號晦菴。 贈太師徽國公。 諡文公。墓在建陽嘉木里唐石之大林谷。 九頓峯下風吹羅帶形。十世長塾次埜。 次在女。 劉學古。 次黃幹。 次范元裕。 건륭(建隆) 북송의 태조인 조광윤의 치세에 쓰였던 송나라 최초의 연호로서 960년에서 963년까지 쓰였다. 풍취나대형(風吹羅帶形)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처 중 하나로 꼽히는 형태로, 바람에 날리는 비단 띠와 같은 형국을 가리킨다. 조정의 귀인이 관복을 입고 그 위에 걸친 띠가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이다. 띠는 중요한 제사를 지내거나 의례행사를 할 때 두르는 것으로, 풍취나대형에는 자손들이 높은 벼슬에 올라 부귀공명을 누린다고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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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임자) 二十一日 壬子 -현익곤돈(玄黓困敦)-. 맑음. 【玄黓困敦】。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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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계축) 二十二日 癸丑 -소양적분약(昭陽赤奮若)-. 맑음. 【昭陽赤奮若】。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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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갑인) 二十三日 甲寅 -알봉섭제(閼逢攝提)-. 맑음. 【閼逢攝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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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을묘) 二十四日 乙卯 -전몽단알(旃蒙單閼)-. 맑음. 밤에 비가 옴. 【旃蒙單閼】。陽。夜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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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기유) 十九日 己酉 -도유작악(屠維作噩)-. 흐림. 【屠維作噩】。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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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임신) 十一日 壬申 맑음. 맥추(麥秋)155)가 점점 다해가고 이앙 또한 늦은지라 백성들이 모두 비를 기다린다. 〈계사전〉의 '길흉과 회린(悔吝)156)은 동함에서 생겨나는 것이다.[吉凶悔吝, 生乎動者也]'를 보았는데, 시씨(柴氏)157)는 '정(情, 참)과 위(僞, 거짓)가 서로 감응한다[情僞相感]'는 말을 주석하면서 '정(情, 성정)이 참이란 것을 알겠으니, 참됨은 바르고 거짓됨은 바르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거짓됨[僞]은 어느 곳에서 생기는 것인가? 陽。麥秋漸盡。 移秧且晩。 民咸待雨。看繫辭'吉凶悔吝。 生乎動者也'。 柴氏註'情僞相感'之語。 '知情之眞。 而眞是正僞是邪'。 然則僞自何而生乎? 맥추(麥秋) 보리가 익어서 거둘 만하게 된 때를 말한다. 회린(悔吝) 우려하는 모양. 회(悔)는 현실을 걱정하고 고민하며 길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린(吝)은 현실에 만족하며 흉한 데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시씨(柴氏) 시중항(柴中行)을 말한다. 자가 여지(與之)로, 1190년에 진사에 합격하여 무주 군사추관(撫州軍事推官)에 임명되었다. 송나라 영종(寧宗) 때 한탁주(韓侂胄)가 정권을 잡고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려고 하면서 도학(道學)을 인정(人情)에 어긋나는 위학(僞學)으로 지목하여 금지시키고, 도학의 주요 인물인 주희(朱熹)의 관작을 삭탈하고, 채원정(蔡元定)을 좌천시키는 등 조정의 정사(正士)들을 모두 축출시키자, 이에 시중항이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정씨의 ≪주역≫을 배웠으니 만일 위학이라고 한다면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自幼習易, 讀程氏易傳, 未委是與不是偽學, 如以爲偽, 不願考校.]"라고 하니, 사론(士論)이 그의 말을 장하게 여겼다."라고 했다.(≪송사전문(宋史全文)≫ 권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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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신사) 二十日 辛巳 맑음. 오랫동안 가물고 비가 오지 않자 영천산(靈泉山)158)의 기우단(祈雨壇)에 범장(犯葬)159)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온 면민이 모두 모여서 무덤을 파냈는데, 일본사람이 무덤 주인을 두호(斗護)하여 서너 명을 구타하였다고 한다. 陽。久旱不雨。 民以靈泉山祈雨壇。 犯葬所致。 一面齊會掘移。 日人斗護塚主。 驅打數三人云。 영천산(靈泉山) 담양군 무정면 오봉리에 있는 산 이름이다. 범장(犯葬) 장사(葬事)를 지내지 않아야 할 곳에 장사를 지낸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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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정미) 二十日 丁未 맑음.열흘 중 갑자(甲子)부터 을축(乙丑)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계산하면, 무진(戊辰)・기사(己巳)를 만난다. 때문에 묘을진손 사병오(卯乙辰巽巳丙午)는 용 아래 진사의 자리[龍下辰巳坐]이니 무기(戊己)를 범하게 된다. 나머지도 이와 같다. 사용할 것은 다만 병정(丙丁)・경신(庚辛)뿐이다. 陽。戊己卯乙辰巽巳丙午 龍坐 甲子旬中酉辛戌乾亥壬子 甲午旬中午丁未坤 甲申旬中子癸丑艮 甲寅旬中坤申庚酉 甲辰旬中艮寅甲卯 甲戌旬中自旬中甲子至乙丑。 次次計之。 逢戊辰己巳。 故卯乙辰巽巳丙午。 龍下辰巳坐。 則犯戊己云。餘放此。所用者。 只丙丁庚辛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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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병진) 二十九日 丙辰 맑음. 오늘은 입춘(立春)이다.199) 陽。是日立(春)。 일기원문에는 '是日立'만 기록되어 있는데, 음력 29일은 양력 1913년 2월 4일로 입춘이었다. 따라서 원문에 '春'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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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무오) 初一日 戊午 맑음. 술방(戌方, 서북쪽)에서 메마른 바람이 차갑게 쏘아댔다. 癸丑。正月初一日。戊午。陽。戌乾風冷射。 일기원문에 1913년 1월 1일부터 1월 14일까지 중복 기재되어 있는데, 약간 다른 부분이 있어 원문과 같이 중복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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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계묘) 十四日 癸卯 갬. 근래 눈이 강산에 가득히 내리고 추위가 매서우니, 문 닫고 홀로 앉아 서적을 열람하다가 석년(昔年)에 지은 〈대학암(大學岩)〉122) 시가 있는 것을 보고 기록한다.일개 산에 대학암이 생긴 까닭 들어보니(聞一山巖所以然)아름다운 이름 없어지지 않아 운무가 의지하네(佳名不泯倚雲烟)선생의 심학은 천년을 밝혔으며(先生心學明千載)증자의 대학 종지를 전한지 또 몇 년이었던가(曾氏傳宗又幾年)우뚝 빼어남이 인의(仁義)의 바위와 같으니(驀地秀如仁義石)훗날에는 남전(藍田)의 옥123)으로 만들리라(後來做得玉藍田)누가 능히 이곳에 살며 작은 공효라도 바랄까(孰能棲此冀微效)머리 돌려 가슴에 새기며 잠 이루지 못하네(回首服膺也未眠) 晴。近日。 雪滿江山。 寒威甚嚴。 閉門獨坐。 看閱書籍。 見昔年所著〈大學岩〉韻。 記之。聞一山巖所以然。 佳名不泯倚雲烟。 先生心學明千載。 曾氏傳宗又幾年。 驀地秀如仁義石。 後來做得玉藍田。 孰能棲此冀微效。 回首服膺也未眠。 대학암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의 훈몽재(訓蒙齋)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1548년에 순창 점암촌에서 기거하면서 세운 강학당 앞 물가에 이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송강 정철 등이 대학을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남전(藍田)의 옥 남전은 중국에서 좋은 옥(玉)이 생산되기로 이름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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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갑진) 十五日 甲辰 밤에 온 눈이 낮의 햇빛에 녹았다. 夜雪消於晝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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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을사) 十六日 乙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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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정유) 九日 丁酉 약간 맑음. 《사계선생유고(沙溪先生遺稿)》 몇 마디를 기록한다.성인이 도를 닦고 가르침을 세우는 것은 삼강오상(三綱五常)일 뿐이다. 절의(節義)는 이 물을 부식(扶植)하는 것이다. 믿음[信]이란 군주의 큰 보물이니, 공자께서 '병사와 먹을 것은 제거할 수 있지만 믿음은 버릴 수 없다'고 하였다.7) 그러므로 국가가 장차 망하려 함에 있어서는 신의(信義)가 먼저 망하는 것이다. 퇴계 선생께서 말하기를 "학교는 풍화(風化)의 근원이요, 선(善)을 솔선하는 터전이고, 선비는 예의(禮義)의 종주(宗主)요 원기가 간직된 자이다."라고 하였다. 율곡 선생은 "반궁(泮宮)8)은 선을 솔선하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陽微。記《沙溪先生遺稿》數言。聖人之修道立敎者。 三綱五常而已。節義者。 所以扶植此物也。信者。 人君之大寶。 聖人以兵食可去而信不可去。故自故國家將亡。 信義先亡也。退溪先生曰 "學校風化之原。 首善之地。 而士子禮義之宗。 元氣之寓也。" 栗谷先生曰 "泮宮首善之地。" 공자께서 …… 하였다 《논어》 〈자공(子貢)〉에, 자공이 정사에 대해 물으니 공자가 "양식과 군대를 충실히 하면 백성들이 믿을 것이다.[足食足兵, 民信之矣.]"라고 하였다. 자공이 부득이하여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버려야 한다.[去兵]"라고 하였고, 다시 같은 질문을 하자 공자는 "양식을 버려야 하니, 자고로 사람은 모두 죽음이 있지만 백성들은 믿음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라고 하였다. 반궁(泮宮) 원래 주대(周代) 제후의 학궁(學宮)을 말하는데, 그 제도는 동서의 문 남쪽으로 물이 둘러 있어 그 형상이 반벽(半璧)과 같고 그 규모는 천자의 학궁인 벽옹(辟雍)의 반인 까닭으로 반궁이라 한다. 조선조의 성균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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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무술) 十日 戊戌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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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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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장성(長城) 사위 집에 도착했다. 己未。二月。二十九日。到長城女婿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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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선평(仙坪)2)의 유(劉) 송고(松皐)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물러나서 조병채(曺秉彩)3)의 집에서 묵었다. 다음 날 울산 김씨(蔚山金氏) 선산(先山)인 복부등(覆釜嶝)4)에 올랐는데, 산수가 뛰어났다. 사면(四面)이 둥글게 에워싸고 공읍(拱揖)하는 것 같아, 마치 덕이 있는 군자가 깊은 궁 안에 있는 것과 같았다. 사방을 돌아보고 흠앙(欽仰)하며 진실로 하서선생(河西先生)을 느끼게 되었다. 곧 선평(仙坪)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사산(泗山) 부자묘(夫子廟)로 향하다가 명정(明亭)5)에 사는 김희(金熺)의 사랑(舍廊)에서 유숙하였다. 다음 날 사산에 도착하여 부자묘에 헌관(獻官)으로 참여하였다. 5일 돌아오는 길에 공봉원(孔奉源)이 나에게 가은재(可隱齋) 시를 지어주기를 청하기에 귀가하여 완성했다.알맞은 곳 택했으니 세월 보낼만 하고(云爲擇可送時年)독선(獨善)6)하니 심기(心機)가 눈앞에 드러나네(獨善心機著目前)처한 상황 순리로 받아들이니7) 그 밖의 것 원치 않고(素位常行無慕外)영과(盈科) 이후의 나아감도 원천에서부터네8)(盈科工進自源泉)속진이 어찌 심산유곡의 경계를 더럽힐까(俗塵何染深幽境)권세와 이익에 놀라지 않고 돌아와 취해 잠드네(勢利不驚歸醉眠)부자(夫子)를 향사한 사당 항상 가까이 모시니(夫子先祠長近侍)몸은 비록 숨었으나 도는 오히려 전해지리(身雖隱也道猶傳)〈또(又)〉은거할 만한 시절에 가은재를 이루고(可隱齋成可隱年)산 뒤에 숨다가 산 앞에서 더부네(隱於山後與山前)문전에 기대 버들 심으니 봄에는 제비 쫓고(門柳倚㘽春逐鷰)그늘진 벼랑 가까우니 밤에도 샘물소리 들리네(陰崖近隔夜淙泉)귀 씻은9) 경륜으로 속세를 벗어나고(洗耳經綸塵世外)진리를 기른 의미로 한낮의 창가에서 잠드네(養眞意味午窓眠)주인옹 심사는 세상을 저버리는 것 아니라(主翁心事非長往)출처가 분명한 것이 도가 전해진 것이네(出處分明是道傳) 訪仙坪劉松皐。 不遇退宿於曺秉彩家。翌日登蔚山金氏先山覆釜嶝。 山水絶勝。四面環抱拱揖。 如有德君子在深宮也。四顧欽仰。 固感河西先生。卽下仙坪午飯。 向泗山夫子廟。 留宿於明亭金熺舍廊。翌日到泗山參夫子廟獻官。五日回程。 孔奉源請余可隱齋韻。 歸家以成。云爲擇可送時年。 獨善心機著目前。 素位常行無慕外。 盈科工進自源泉。 俗塵何染深幽境。 勢利不驚歸醉眠。 夫子先祠長近侍。 身雖隱也道猶傳。又可隱齋成可隱年。 隱於山後與山前。 門柳倚㘽春逐鷰。 陰崖近隔夜淙泉。 洗耳經綸塵世外。 養眞意味午窓眠。 主翁心事非長往。 出處分明是道傳。 선평(仙坪)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마령리 선평마을을 말한다. 조병채(曺秉彩) 경은(耕隱) 조희유(曺喜有 1742∼1814)의 후손으로 조희유신도비(曺喜有神道碑)의 비문을 썼으며, 조희유의 시문집인 경은집(耕隱集)의 발문을 썼다. 복부등(覆釜嶝) 김인후의 5대조 김온(金穩, 1348~1413,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에 그의 부조묘가 있다.)은 태종(太宗)조 왕위계승 정쟁에 휘말려 화를 입자 정부인(貞夫人) 여흥 민씨(驪興 閔氏)가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솔가(率家)하여 전라도 장성(長城)으로 내려와 새 본거지로 삼았다. 여흥 민씨의 묘소가 복부혈 명당이라고 하는데,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명정리에 복부혈 유적지가 있다. 명정(明亭)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명정리를 말한다. 독선(獨善)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곤궁해지면 자기의 몸 하나만이라도 선하게 하고, 뜻을 펴게 되면 온 천하 사람들과 그 선을 함께 나눈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라고 하였다. 처한 …… 받아들이니 '素其位而行'에서 유래한 말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순리대로 받아들임을 말하는 것으로,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4장에 "군자는 현재의 위치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라고 하였다. 영과 …… 원천에서부터네 맹자가 〈이루 하(離婁下)에서 "근원 있는 샘물이 퐁퐁 솟아나서 밤낮으로 쉬지 않는지라, 구덩이를 가득 채운 뒤에 전진하여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라고 한 말과 관련이 있다. 귀 씻은 은사 요(堯) 임금 당시 은사인 허유(許由)가, 천하를 물려받아 다스려달라는 요 임금의 요구를 거절하고 영수(潁水) 남쪽에 은거하던 중에 요 임금이 또 불러 구주장(九州長)이 되어달라고 하자,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 하여 영수 물에 귀를 씻었다는 데서 인용한 것이다.(《고사전(高士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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