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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신미) 九日 辛未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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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임신) 九日 壬申 맑음. 이태천(李泰川) 군수의 〈문천(問天)〉시를 기록하였다.듣건대 도가 고명하면 조화옹이 시기하여(聞道高明猜造翁)문장이 곤액을 겪고 대유가 궁해진다네(文章困厄大儒窮)아름다운 꽃은 핀 뒤에 열매 맺기 어렵고(好花開後難成實)큰 나무가 빼어날 때는 바람 맞기 쉽다네(喬木秀時易受風)육유17)의 절개와 문천상18)의 충정을 하늘이 돕지 않았고(陸節文忠天不佑)원빈19)은 가난하고 안회는 요절했으니 선에 공이 없구나(原貧顔夭善無功)만약 이 설을 가지고 조물주에게 묻는다면(若將此說問眞宰)조물주 역시 응당 대답하지 못하리(眞宰亦應答未通)천지 사이에 조화옹이 함께하니(天地之間造化翁)만수일본20)의 도가 어찌 끝이 있으랴(萬殊一本道何窮)봄에 낳고 가을에 숙살하며 우로가 윤택케 하고(春生秋殺潤之雨)추위 가고 더위 오며 풍화가 열리네(寒往暑來啓以風)맑거나 탁한 사물 각기 성명이 정해졌으니(各定性命淸濁物)공적의 유무가 그것을 만남에 달려있네(適逢其會有無功)형적이 분명하니 어찌 번거롭게 물을 것인가(昭然形迹何煩問)기는 본래 막히거나 트이고 이는 본래 통한다네(氣自局泰理自通) 陽。記李泰川郡守〈問天〉詩。聞道高明猜造翁。 文章困厄大儒窮。 好花開後難成實。 喬木秀時易受風。 陸節文忠天不佑。 原貧顔夭善無功。 若將此說問眞宰。 眞宰亦應答未通。天地之間造化翁。 萬殊一本道何窮。 春生秋殺潤之雨。 寒往暑來啓以風。 各定性命淸濁物。 適逢其會有無功。 昭然形迹何煩問。 氣自局泰理自通。 육유(陸游, 1125~1210) 남송의 시인. 자는 무관(務觀)이고 호는 방옹(放翁), 월주(越州) 산음현(山陰縣) 사람이다. 북송이 망하자, 금에 대한 화친책을 반대하고 항전과 실지(失地)의 회복을 주장하였다. 중국의 대표적인 우국시인(憂國詩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문천상(文天祥, 1236~1283) 남송의 정치가. 자는 이선(履善), 호는 문산(文山), 길주(吉州) 여릉(廬陵) 사람이다. 원과 맞서 항전하다가 붙잡혀 원나라 대도에 이송되었으나, 3년 동안 굴복하지 않아서 사형되었다. 옥중에서 지은 정기가(正氣歌)가 유명하다. 원빈(原貧) 원헌(原憲)의 가난함으로, 청고(淸苦)하고 빈한(貧寒)하게 사는 선비를 가리킨다. 원헌은 공자(孔子)의 제자로, 노(魯) 땅에서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화려한 차림을 하고 원헌을 찾아가자, 원헌이 지팡이를 짚고 문에 나와 맞이하였다. 이에 자로가 "선생께서는 병이 들었습니까?" 하자, 원헌이 말하기를,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하다고 하고, 배우고서도 능히 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이 아니다." 하니, 자로가 부끄러운 기색을 띠었다.(≪장자≫ 〈양왕(讓王)〉) 만수일본(萬殊一本) 만물은 작용과 외양이 각각 다르지만 모두 일리(一理)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정이(程頤)가 이 말을 처음으로 하였고, 이어 주자가 계승하여 확립시킨 개념이다.(≪주자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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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병인) 十三日 丙寅 맑음. 장동(獐洞)에 도착했다. 안양동(安陽 -養- 洞)74) 조승종(曺承鍾) 댁에서 보기를 청하기에 몸소 나아가서 술을 마셨다. 陽。到獐洞。安陽【養】洞曺承鍾宅請見。 躬晉飮酒。 안양동(安陽洞 또는 安養洞) 현재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獐山里) 장동(獐洞)마을에 해당된다. 평강채씨가 개척하여 안양동이라 부르다가 1471년 대곡리로 개칭하고 1624년경 구화동으로 불렀으나 마을 뒷산이 노루형상이라 하여 장동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장동 윗마을을 '노루골'이라 하고, 아랫마을을 '안양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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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기사) 六日 己巳 맑음. 모모에게 유혹되어 나가서 놀다가 돌아왔다. 陽。誘於□□。 出遊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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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경오) 七日 庚午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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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신미) 八日 辛未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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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갑인) 二十三日 甲寅 흐림. 밤에 가랑비가 내렸다. ≪향음주례홀기고증(鄕飮酒禮笏記考證)≫111)을 보고 의심나는 글자를 기록한다. 계(戒)는 고(告)이다. 개(介)의 음은 계(界)이다. 일치(一觶)는 작(爵)의 큰 것으로 4승(四升)을 받는다. 영(榮)은 집의 처마이다. 조(阼)는 동쪽 계단이다. 진(陳)은 당도(堂塗)112)이다. 구(胊)는 가운데를 접은 포(脯)이다. 노(臑)는 비절(臂節)이다. 후(後)는 질골(腟骨)이다. 엽(厭)의 음은 엽(葉)이다. 손을 미는 것을 읍(揖)이라 하고 안으로 당기는 것을 엽(厭)이라 한다. 의(疑)는 음이 얼(臬)이니, 바르게 서서 스스로 안정한 모양이다. 쵀(啐)는 음이 채(蔡)인데 뜻은 상(甞)이다. 陰。夜小雨。看 ≪鄕飮酒禮笏記考證≫。 記疑難字。戒告也。介音界。一觶爵之大受四升。榮屋翼也。阼東階也。陳堂塗也。眗中屈脯也。臑臂節也。後眰骨也。厭音葉。推手曰揖。引手曰厭。疑音臬。正立自定之貌。啐音蔡甞也。僎音遵。 遵法而助主人者。 ≪향음주례홀기고증(鄕飮酒禮笏記考證)≫ 이준(李埈, 1812~1853)이 향음주례에 대한 〈홀기(笏記)〉들을 모아, ≪의례≫의 〈사관례(士冠禮)〉・〈향사례(鄕射禮)〉・〈대기(戴記)〉 등을 참고하여 주석과 해석을 덧붙인 책이다. 당도(堂塗) ≪이아(爾雅)≫에 "진(陳)은 당도(堂塗)이다"라고 했는데, 당도는 당 아래에서 당의 문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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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을묘) 二十四日 乙卯 반쯤 흐리고 반쯤 맑음.〈향음주례인원〉빈(賓) -빈을 세워서 하늘을 형상하니 그것을 높이는 까닭이다.- 주(主) -주를 세워서 땅을 상징하니 그것을 기르는 까닭이다.- 개(介) -개(介)에는 강변(剛辨)의 뜻이 있고, 양(陽)을 형상하며 빈(賓)을 돕는다.- 준(僎) -준에는 손입(巽入)의 뜻이 있고 음(陰)을 형상하며 주인을 돕는다. 준(僎)의 음은 준(遵)으로, 법을 따라서 주인을 돕는 자이다. - 일빈장・이빈장・삼빈장은 삼광(三光)113)이 천지를 돕는 것과 같다.집사자는 삼인으로, 주준(主尊)을 씻고 설한 것을 천조(薦俎)한다. 빈주와 제자는 개준(介僎)114)으로, 제자는 중빈(衆賓)115)이 20이상이면 당상(堂上)에 자리하고, 중빈이 50이하이면 당하(堂下)에 위치하게 한다. 여러 대부의 준은 1인으로 하고, 그 외 여러 대부의 요좌(僚佐, 보좌관)・현승(縣丞, 현령)・주부(主簿)・전사((典史) 등의 부류는 의례를 돕는다. 한 사람이 홀기(笏記)를 읽는다. 찬인(贊引, 의식의 진행 절차를 돕고 인도하는 사람)은 5인, 빈주・개준・빈장은 각기 사정 1인을 둔다. 추대 받은 자로써 상(相)을 삼고, 숙례자(熟禮者)로써 거치자(擧觶者, 술잔을 올리는 사람)를 삼는다. 가공(歌工)은 2인, 슬공(瑟工)은 2인, 생공(笙工)은 1인, 경공(磬工)은 1인, 고공(鼓工)은 1인이다. 半陰半陽。鄕飮酒禮人員賓【立賓。 以象天。 所以尊之也。】 主【立主。 以象地。 所以養之也。】 介【介有剛辨之義。 象陽以輔賓。】 僎【僎有巽入之義。 象陰以輔主人。僎音遵。遵法而助主人者。】 一賓長二賓長三賓長。 猶三光之輔于天地。執事者三人。 主尊所洗所設薦俎。賓主弟子介僎。 弟子衆賓二十以上。 席于堂上。 衆賓五十以下。 位于堂下。諸大夫僎一人。 外諸大夫僚佐縣丞主簿典史之類贊禮。一人唱笏記。贊引五人。賓主介僔賓長。 各有司正一人。以所推者爲之相。 以熟禮者爲之擧觶者。歌工二人。 瑟工二人。 笙工一人。 磬工一人。 鼓工一人。 삼광(三光) 삼광은 해, 달, 별을 말한다. 개준(介僎) 향음주례(鄕飮酒禮) 때 행사를 도와 주선하는 자. 주인을 돕는 자를 준(僎), 빈(賓)을 돕는 자를 개(介)라 한다. 중빈(衆賓) 손님 중 제일 윗자리에 모실 분을 빈(賓), 그 다음을 개(介), 기타를 중빈(衆賓)이라 한다. 옛날에는 연회의 모임에서 빈이 그 좌석의 법도를 주관하고, 개가 빈을 보좌하여 직접 실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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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을축) 四日 乙丑 흐리고 비가 온 흔적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陰雨痕。還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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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八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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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신사) 二十一日 辛巳 문암리 생가에 도착하였다. 到門岩里生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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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경술) 十九日 庚戌 흐림. 간간이 비가 내렸다. 옥전으로 돌아왔다. 陰。間間雨。還玉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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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계해) 初一日 癸亥 맑음.54) 陽。 1일부터 4월 4일까지는 일기가 중복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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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갑자) 二日 甲子 맑음. 집으로 돌아왔다. 길을 돌아 연화동(蓮花洞)의 이승희(李承熙)댁에 들어갔다. ≪주서백선(朱書百選)≫을 보았는데, 부자가 양지인(楊志仁)에게 보낸 편지에 "요컨대 이(理)라는 글자는 유무(有無)로 논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 있어서, 기록한다. 그날 집으로 돌아왔다. 陽。歸巢。四月二日。甲子。歸巢。路轉入於蓮花洞李承熙宅。覽 ≪朱書百選≫。 夫子與楊志仁書。 曰 "要之理之一字。 不可以有無論。"。 記之。卽日歸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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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을축) 三日 乙丑 맑음. 계속해서 머물렀다. 陽。留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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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기미) 二十八日 己未 공자는 '존성(存誠)'이라고 하였고, 자사는 '사성(思誠)이라'고 하였다. 또한 자사는 말하기를 "천지의 도는 한마디 말로써 다할 수 있으니 성일 뿐이다.[天地之道, 可一言而盡, 誠而已]"라고 하였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진실무망(眞實无妄)을 일러 성(誠)이라 하고, 주일무적(主一無適)을 일러 경(敬)이라 한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천덕과 왕도는 단지 근독(謹篤)에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근독이 곧 경이고, 천덕이 곧 성실이다. 그렇다면 경은 요컨대 진실한 이치를 부여잡는 것이니, 성이 곧 진실한 이치이고, 경은 학문하는 요체이다. 동정・상하・종시・본말에 경하지 않음이 없으니, 잠깐이라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孔子曰'存誠'。 子思曰'思誠'。又曰。 "天地之道。 可一言而盡。 誠而已。" 程子曰。 "眞實无妄之謂誠。 主一無適之謂敬。" 又曰。 "天德王道。 只在謹獨。" 謹獨者卽敬也。 天德者誠也。然則敬要扶持眞實之理。 誠卽眞實之理也。 敬爲學之要也。動靜上下終始本末無不敬。 不可須臾離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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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경신) 二十九日 庚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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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신유) 三十日 辛酉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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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몹시 추웠다. 재회(齋會)에 많은 선비가 차례로 들어왔다. 윤경과 이찬이 도포를 입고 서원 마당에서 배알하고, 그길로 들어가 봉심하였다. 곧 목은(牧隱, 이색(李穡))을 수위(首位)에 두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ㆍ야은(冶隱, 길재(吉再))ㆍ황보 선생(황보인(皇甫仁))ㆍ김 선생(김종서(金宗瑞))ㆍ정 선생(정분(鄭苯))ㆍ성 선생(성삼문(成三問))ㆍ박 선생(박팽년(朴彭年))ㆍ하 선생(하위지(河緯地))ㆍ이 선생(이개(李塏))ㆍ유 선생(유성원(柳誠源))ㆍ유 선생(유응부(兪應孚))ㆍ계림 백(鷄林伯) 박 선생(朴先生)23)이 배향되어 있었다. 사우(祠宇)는 5량 5칸으로 새로 지어서 단청이 선명하였다. 강당은 4칸만 겨우 세워지고 아직 기와를 올리지 않았다. 동재와 서재가 모두 정갈하였다. 많은 선비가 해가 질 때까지 많이 모여들었다. ○極寒。 齋4)會多士次次入來矣。 與允卿及而贊着道袍, 參謁院庭, 仍入奉審。 則以牧隱首位, 圃隱、冶隱、皇甫先生、金先生、鄭先生、成先生、朴先生、河先生、李先生、柳先生、兪先生、鷄林伯朴先生則曲配。 而祠宇, 則五樑五間新造, 丹靑鮮明。 講堂, 則四間纔立, 而尙未盖瓦。 東、西齋, 皆精灑矣。 多士限日暮多會。 박 선생(朴先生) 신라 제19대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이다.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눌지왕의 동생을 왜와 고구려에서 구하였다. 齋 저본에는 '齊'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따라 '齋'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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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內院庵【自神興三里】 洞靄漸收林日透出扶笻入一小庵房竈庭砌爽然無一點纖埃數三老衲坐與玄談暫得浮生之半刻情趣楣上揭楓岳禪室絳葉重重間碧梢穿巖架壑有僧巢忽看楣額題風岳欲學詩仙月下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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