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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병자) 十八日 丙子 -유조곤돈(柔兆困敦)-. 맑음. 《두율(杜律)》50)에서 '감회를 써서 친우에게 올린 시' 몇 구를 보고 기록해 둔다.옷자락을 잡아당겨 위(魏)의 문제(文帝)를 경계하니,51)(牽裾警魏帝)천록각에서 투신하여52) 유흠(劉歆)53)처럼 될 뻔하였구나.( 投閣爲劉歆)- 위나라 사람 신비(辛毗)가 나아가 간언을 하였는데, 문제(文帝)가 노하여 일어나자 신비가 옷자락을 잡아당겨 간하였다. 양(楊) 자운(子雲)의 말이 유흠(劉歆)의 죄에 연루되어 그를 잡으려 하니 천록각(天祿閣) 아래로 투신하였다.54)-십년을 민산(岷山)55)에서 갈포옷 입고,(十暑岷山葛)삼년 동안 초호(楚戶)의 다듬이 소리 들었네.(三霜楚戶砧)-이것은 두보(杜甫)가 십년간 민산(岷山)에 살면서 갈옷을 입었고, 삼년동안 초나라에 살면서 다듬이 소리를 들은 것을 말한다.-몇 개의 쌀알 먹는 것에 응당 불과한데,() 應過數粒食사지금(四知金)56)을 가까이 할 수 있으랴.() 得近四知金-장화(張華)의 〈초료부(鷦鷯賦)〉에 "매양 먹을 때면 몇 개의 쌀알에 불과한데, 왕밀(王密)이 금을 보내니 양진(楊震)이 물리쳤다는 내용이 있다."57) -비틀비틀 엎어지며 한단의 걸음걸이 배우지만,(蹉跎飜學步)참된 친구 있어 감격스럽네.(感激在知音)-《장자(莊子)》에 "수릉(壽陵) 땅의 여자(餘子)가 한단(邯鄲)에 가서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본래의 자기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엉금엉금 기어 올 수밖에 없었다."58)는 이야기가 있다. 지음은 지기(知己)를 말한다. -천리 밖에서 남이 우물물 마실까 두려워하고,(畏人千里井)풍속을 물어 구주잠을 지었네.(問俗九州箴)-옛날 어떤 사람이 떠나기에 앞서 말 먹이고 남은 풀을 우물에 쏟아버렸다. 다시 와서 이 우물의 물을 마시자 잔초(殘草)가 목구멍을 찔러 죽게 되었다. 양웅(楊雄)59)이 구주잠(九州箴)을 지었고 두보가 이를 인용한 것이다.- 【柔兆困敦】。陽。看《杜律》書懷呈親友詩數句。 記之。牽裾警魏帝。投閣爲劉歆.【魏人辛毗進諫。 文帝怒起。 毗牽裾而諫。楊子雲辭連劉歆之罪。 有欲捕之。 投天祿閣而下。】十暑岷山葛。三霜楚戶砧.【此言甫十年在岷而着葛。 三年在楚而聞砧。】【張華〈鷦鷯賦〉。 "每食不過數粒。 沃王密遣金。 楊震却。"】蹉跎飜學步。感激在知音.【《莊子》 壽陵餘子學步於邯鄲。 失其古步。 匍匐而還。知音卽知己。】畏人千里井。問俗九州箴.【古有人臨行。 瀉馬殘草於井中。 復來飮此井。 爲殘草所刺喉而死。楊雄作九州箴。 甫引之。】 두율(杜律) 당(唐)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칠언율시를 모아놓은 책이다. 옷자락을 …… 경계하니 위(魏)나라의 시중(侍中) 신비(辛毗)가 간언을 듣지 않고 내전으로 들어가려는 위 문제(魏文帝)의 옷자락을 끌어당겨 간한 고사(《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신비전(辛毗傳)〉)를 비유한 것이다. 천록각에서 투신하여 한(漢) 나라 양자운(揚子雲,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하며 숨어 살면서. "적막(寂寞)으로 덕을 지킨다."고 자칭하더니. 뒤에 왕망(王莽)에게 벼슬하다가 죄에 걸려 체포를 당하게 되자 높은 누각에서 몸을 던져 떨어졌다. 사람들이. "적막(寂寞)은 투각(投閣)이로다."라고 하였다. 유흠(劉歆, 기원전 53?~25) 유흠의 자는 자준(子駿)이었으나, 나중에 이름을 수(秀).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 아버지 유향(劉向)과 궁정의 장서(藏書)를 정리하고 육예(六藝)의 군서(群書)를 7종으로 분류하여 최초의 서적 목록인 《칠략(七略)》을 저술하였다. 후에 왕망(王莽)이 한왕조(漢王朝)를 찬탈하자 국사(國師)가 되어 국정에 협력하였으나. 만년에 왕망의 포악함에 반대하여 모반을 기도하다가 자살하였다. 양자운이 …… 투신하였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고사인데,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에는 유흠이 아니라 유분(劉棻)과 관련된 고사로 기록되어 있다. 즉 '양웅이 천록각(天祿閣)에서 책을 교정하고 있을 때 유분(劉棻)이 양웅에게 기이한 글자를 배운 일이 있었다. 후에 유분이 왕망(王莽)에게 죄를 받게 되었을 때 양웅이 이에 함께 연좌되어 옥리가 양웅을 잡으러 가자 양웅이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천록각 위에서 뛰어내려 거의 죽을 뻔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민산(岷山) 중국 촉 지방에 위치한 산이다. 사물의 시초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강이 처음 민산에서 시작될 때 그 근원은 잔에 넘칠 만큼이다.[江始出於岷山, 其源可以濫觴]"란 말이 있다.(《공자가어(孔子家語)》 〈삼서(三恕)〉) 사지금(四知金) 후한(後漢) 때의 학자 양진(楊震)이 일찍이 동래 태수(東萊太守)로 부임하던 도중 창읍(昌邑)에 이르렀을 때, 일찍이 양진에게서 무재(茂才)로 천거를 받았던 창읍 영(昌邑令) 왕밀(王密)이 밤중에 양진을 찾아가서 금(金) 10근을 바치자, 양진이 말하기를, "그대의 친구인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故人知君, 君不知故人, 何也?]"라고 하니, 왕밀이 말하기를, "밤이라 아무도 알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므로, 양진이 말하기를,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알거니, 어찌 알 자가 없다고 하는가.[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라고 하고 금을 물리쳤던 데서 온 말이다. 장화(張華)의 …… 있다 진(晉)나라 장화(張華)의 〈초료부(鷦鷯賦)〉에 "숲 속에 둥지를 틀어도 하나의 가지에 불과하고. 매양 먹을 때면 몇 개의 쌀알에 불과하다.[巢林不過一枝, 每食不過數粒]"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전서(晉書)》 권36 〈장화열전(張華列傳)〉) 수릉(壽陵) …… 없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나오는 '한단학보(邯鄲學步)'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양웅(楊雄, 기원전 53~18)) 한(漢)나라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는 자운(子雲)이다.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태현경》과 《법언》 등의 저서를 남겼다.(《한서(漢書)》 권87 〈양웅전(楊雄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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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정축) 十九日 丁丑 -강어적분약(彊圉赤奮若)-. 안개가 자욱하여 산촌(山村)이 가리워졌다. 【彊圉赤奮若】。霧擁失山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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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을해) 十七日 乙亥 -전몽대연헌(旃蒙大淵獻)-. 맑음. 【旃蒙大淵獻】。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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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무인) 二十日 戊寅 -저옹섭제(著雍攝提)-. 맑음. 【著雍攝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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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신미) 十三日 辛未 -중광협흡(重光協洽)-. 맑음. 저녁에 흐렸다.증손주의 사주는 2월 17일 미시(未時)이니, 즉 무진, 을묘, 정미, 정미이다. 손자 육남박인섭(朴寅燮)이 "성학(聖學)과 이단(異端)을 왜 방패와 창[盾矛], 얼음과 숯[氷炭]49)과 같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답하여 말하기를, "전시대 사람들이 말한 것이 있으니, 이단(異端)의 화(禍)는 홍수(洪水)보다도 심하다. 홍수의 화는 사람의 몸을 빠지게 하지만, 이단의 화는 사람의 마음을 빠지게 한다. 사람의 몸이 빠지면 혹시 구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 빠진 것은 구할 수 없다."라고 했다.어떤 사람이 묻기를, "경전에서 혹 명(命)을 말하고, 혹 성(性)을 말하고, 혹 교(敎)를 말하고, 혹 덕(德)을 말하고, 혹 도(道)를 말하고, 혹 이(理)를 말하고, 혹 성(誠)을 말하고, 혹 경(敬)을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물었다.답하여 가로되, "다 하나의 이치이다. 하늘이 부여한 것을 명(命)이라 하고, 인(人)과 물(物)이 품수받은 것을 성(性)이라 하며, 각기 그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그 도를 닦아가는 것을 교(敎)라 하며, 인과 물이 천리(天理)를 얻은 것을 덕(德)이라 한다. 만물에 있는 것을 이(理)라 하는데, 이(理)는 실(實)을 근본으로 하는 까닭에 성(誠)이라고 하고, 이 이(理)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을 경(敬)이라 한다. 말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는 하나이다."라고 했다.어떤 사람이 묻기를,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했다. 답하기를, "앞 시대의 사람들이 이미 말했으니, 초계(草溪) 정씨(鄭氏) -이름은 문(文)이고, 호(號)는 삼두(三斗)- 가 〈군위민천부(君爲民天賦)〉에서 말하기를, '만물이 만약 초췌하면 나는 곧 우로(雨露)의 은혜를 베풀 것이고, 풍속이 만일 완흉(頑兇)하면 나는 곧 뇌정(雷霆)의 노여움을 펼칠 것이다.'라고 했다."라고 대답했다. 【重光協洽】。陽。夕陰。(六男)의 사주는 무진년 8월 18일 사시(巳時)이다.曾孫四柱。 二月十七日。 未時。戊辰。 乙卯。 丁未。 丁未。孫六男。 戊辰。 八月十八日。 巳時。朴寅燮問。 "聖學與異端。 何謂如盾矛氷炭也?" 答曰。 "前輩有言曰。 異端之禍。 甚於洪水。洪水之禍。 溺人之身。 異端之禍。 溺人之心。溺人之身。 或可救也。 溺人之心。 不可救也。"或問。 "經傳。 或言命。 或言性。 或言敎。 或言德。 或言道。 或言理。 或言誠。 或言敬。 何也?"答曰。 "皆一理也。以天賦予謂命。 以人物稟受謂性。 以各率其性謂道。 以修其道謂敎。 以人物所得天理謂德。在物謂理。 理本實故謂誠。 恐失此理謂敬也。言雖殊。 理則一也。"或問。 "君爲民天。 何也?" 答曰。 "前輩已言之。 草溪鄭氏。 諱文號三斗。 〈君爲民天賦〉曰。 '物如憔悴。 我則加雨露之恩。 俗若頑兇。 我則布雷霆之怒。' " 얼음과 석탄[氷炭] 얼음과 숯이라는 뜻으로, 둘이 서로 조화(調和)를 이루지 못하거나 화합(和合)하지 못하는 관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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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갑술) 十四日 甲戌 -알봉엄무(閼逢閹茂)-. 맑음. 【閼逢閹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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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정묘) 九日 丁卯 -강어단알(疆圉單閼)-. 맑음. 【疆圉單閼】。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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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무진) 十日 戊辰 -저옹집서(著雍執徐)-. 맑음.두보(杜甫)의 시를 보다가 〈겨울날 낙성 북쪽에서 현원황제묘를 참배하다[冬日洛城北, 謁玄元皇帝廟]〉에 이르렀다. -두보는 자주(自註)에서, "묘에 오(吳) 도자(道子)가 그린 오성도(五聖圖)가 있다."고 하였다. 오성이란 곧 고조ㆍ태종ㆍ고종ㆍ중종ㆍ예종으로, 묘에 그려져 있다.- 끝 구절의 "곡신이 만일 죽지 않았다면, 졸박함을 기르며 또 어느 곳에 가 있을까[谷神如不死, 養拙更何鄕]"에 이르렀는데, "《노자(老子)》에 '곡신불사(谷神不死)'46)라 하였으니, 곡(谷)은 허(虛)이니, 사람의 신(神)이 허중(虛中)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항상 존재하여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향(何鄕)은 하방(何方)과 같은 말이니, 곡신불사가 진실로 노자의 말과 같다면 내가 졸박함을 기르는 것을 다시 어느 곳에서 하리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마땅히 노자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르기를 '장자(莊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47)이 있다.'고 하고, 주(註)에 '지극한 도 가운데 가히 즐길만한 곳이 있다.'라고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논하여 말하기를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노자라는 사람이여. 허(虛)는 알지만 실(實)은 모르며, 무(無)는 알지만 유(有)는 알지 못하고, 편(偏)은 알지만 주(周)는 알지 못하는구나. 스스로 '사람의 태어남은 허중(虛中)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곡신은 죽지 않는다.'라고 말했으니, 인간의 일을 버린 것이다.어리석고 어리석도다! 지극히 빈 곳[至虛] 가운데 지극히 찬 것[至實]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태어남에 실리(實理)를 품부 받아 실리를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로지 허무를 위주로 하고 윤리를 모두 폐하니, 슬프도다!"자신의 생겨남도 또 비어있는 가운데에서 나온 것이다. 실심으로 주(周)나라 주하사(柱下史)48)가 되어 만체(萬體)에 밝았는데, 어찌하여 한쪽으로 빠져들어 곡신불사(谷神不死)라고 하면서 청우를 타고 가게 되었는가?옛 성인들은 가까운 몸에서 취했으니, 온갖 이치가 모두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어서, 비어있지만 능히 느낄 수 있고, 없지만 능히 있을 수 있어서 유무를 하나로 삼고 허실을 하나로 삼았다.오성이 발하여 중절(中節)하고, 생사에 이르러서도 살면 살고 죽으면 죽는다. 생사를 천리의 공도(公道)에 부쳐두고 천리를 따른다. 어찌 다만 생사를 둘로 보고 허실을 둘로 보며 유무를 둘로 보고, 치우쳐서 허로 주를 삼고, 곡신불사로 후세에 전하여 천리를 거역할 것인가? 【著雍執徐】。陽。看杜至律。 至〈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甫自註 "廟有吳道子ㅣ 畵五聖圖니라 五聖卽高祖ㆍ太宗ㆍ高宗ㆍ中宗ㆍ睿宗像於廟"】至於末句。 "谷神如不死。 養拙更何鄕。" "《老子》애 谷神不死ㅣ라니 谷은 虛也ㅣ니 言人之神이 自虛中而出故로 常存不死ㅣ니라 何鄕은 猶云何方이니 言谷神不死 信如老子之言 則吾之養拙을 更向何方이리요 當依老子之敎也ㅣ라 一云'莊子有無何有之鄕'ᄒᆞ니 註云'至道之中에 有可樂之地也' "論曰。 "愚哉愚哉。 老子之爲人也! 知虛而不知實。 知無而不知有。 知偏而不知周。自言曰。 '人之生自虛中出來。 故谷神不死'。 棄人間事。愚哉愚哉。至虛之中。 有至實者存焉。 故人之生也。 稟實理而行實理也。 全以虛無爲主。 全廢倫理。 哀哉!"自家之生。 亦自虛中出來。實心爲周柱下史。 明於萬體。 如何淪爲一偏。 謂其谷神不死。 飜乘靑牛? 古之聖人。 近取諸身。 萬理具於心中。 虛而能感。 無而能有。 以有無爲一。 以虛實爲一。五性發而中節。 至於死生。 生則生。 死則死。以死生付於天理之公道。 以順天理也。奚獨以死生爲二。 虛實爲二。 有無爲二。 偏以虛爲主。 以谷神不死。 傳於後世。 以逆天理也? 곡신불사(谷神不死) 《노자(老子)》 제6장에 이르기를, "곡신은 죽지 않는데, 이것을 일러 현빈이라고 한다.[谷神不死, 是謂玄牝.]"라고 하였다.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지금 자네가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쓸모가 없다고 걱정한다면, 어찌하여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無何有之鄕]의 광막한 들판에다 심어 놓으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하사(柱下史) 중국 주(周)나라 때 장서실(藏書室)을 맡아보던 관리, 여기에서는 노자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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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기사) 十一日 己巳 -도유대황락(屠維大荒落)-. 맑음. 【屠維大荒落】。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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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경오) 十二日 庚午 -상장돈장(上章敦牂)-. 맑음. 【上章敦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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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날이 밝기 전에 출발하였다. 애치(艾峙)24)에 이르자 날이 비로소 밝았다. 저소(詆所) 앞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완서(完西, 전주 서문)의 전종백(全宗伯) 집에 도착하였다. 세포(細布, 올이 가늘고 고운 삼베) 1필, 참빗 20개, 전복 20개를 사고, 노원을 만나려고 서문 밖 그의 소가(小家)로 갔다. 소동을 불러 내가 왔다는 기별을 전하고 다시 주인집으로 왔다. 오후에 노원이 영동(永同)의 일가 경순(敬純)과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산에서 발생한 송사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갔다. 그러므로 일행과 그대로 유숙하였다. ○未明發程。 抵艾峙, 日始明矣。 至詆所前幕朝飯。 得達完西全宗伯家。 貿細布一匹、眞梳二十介、全卜二十介, 欲見魯源, 往西門外其小家。 呼小童傳余來之奇, 還來主人家矣。 午後魯源與永同宗人敬純偕來, 仍與談話。 詳說礪山起訟事, 且來日更來而去。 故與同行, 仍留宿。 애치(艾峙) 전라북도 임실군 신덕면과 완주군 상관면을 잇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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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내기가 당두에서 내려왔다. 노량(露梁)의 충렬사(忠烈祠)를 보려고 주인 김종순(金宗順)과 동행하여 출발하였다. 선교(船橋)를 지나 세진(細津) 앞에 이르러, 내기가 그 처남 김방영(金邦營)을 만나려고 세진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마을 앞 주막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곧바로 나왔다. 김방영이 광양(光陽) 땅에 간 바람에 만나지 못하고 왔다며 그길로 출발하였다. 저물녘 노량 나룻가 객점에 이르렀다. 40리를 갔다. ○乃記自唐頭下來。 欲見露梁忠烈祠, 與主人金宗順同行發程。 歷船橋, 抵細津前, 乃記欲見其妻男金邦營, 入去細津。 同行則稍待於村前酒幕矣, 卽出來。 而邦營出去光陽地, 不見而來, 仍爲登程。 暮抵露梁津頭店留宿。 行四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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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새벽 비가 그치지 않았다. 비 내리는 기세가 장난이 아닐뿐더러 나룻배가 해안을 건너오지 못한 관계로 거기서 아침을 먹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파리 떼가 어찌나 달라붙는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몹시 괴로웠다. 오후에 비가 맑게 개었다. 나룻배가 건너왔지만, 남해 저자 장사꾼들이 앞 다투어 모두 올라가 무거운 짐을 싣는 바람에 배를 못 탔다. 저녁때 다시 나룻배가 건너와 비로소 배를 타고 건넜다. 육지에 내리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곧바로 충렬사로 올라가니 번을 서는[守番] 승려가 이미 저녁을 먹고 있었다. 다시 번거롭게 말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나룻가 주막으로 내려와 밥을 사서 도로 서원으로 올라갔다. 번을 서는 승방에서 묵으며 그 승려에게 물으니, 그는 남해 화방사(華芳寺)에서 이곳으로 와 번을 선다고 하였다. ○曉雨不止。 非但雨勢之所戱, 津船係越岸不來, 故仍朝飯仍留。 而以蒼蠅多侵, 不得就寢, 苦哉苦哉。 午後雨勢快晴。 津船越來, 而南海市商賈, 爭先多登, 以卜重之致, 不得登船矣。 夕時更爲越來, 始爲登船利涉。 下陸, 則日已昏矣。 直上忠烈祠, 則守番僧徒, 已夕飯矣。 不得更煩爲言, 故不得已下來津頭酒幕買食, 還爲上去書院。 留守番僧房, 問其僧徒, 則渠自南海華芳寺來此守番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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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갑신) 二十一日 甲申 맑음. 먼저 소나무 종자를 뿌린 후에 남새밭을 가꾸었다. 날이 저물 무렵 이서방12) -본관은 수성- 이 재최(齊衰)13)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이사문(李士文)의 집에 머무르면서 기별을 전해 왔다. 陽。先種松後治圃。日暮水城李婿郞。 以身有齊衰服。 次于李士文家傳奇。 이서방 서암의 사위인 이대수(李大洙)를 말한다. 재최(齊衰) 흔히 '자최'라고도 한다. 재최의 재(齊)는 옷자락을 꿰매어 마름질한다는 뜻으로, 재최는 옷의 끝단을 꿰맨 상복, 즉 재최복을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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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출발하여 벌교(筏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서령(西嶺)1)을 넘어 정문등(旌門登)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다음과 같이 절구 1수를 읊었다.다행히 우리 일가붙이 예닐곱 사람이(幸我同宗六七人)함께 천릿길을 가 조상을 극진히 섬기네(聯笻千里別親親)때는 9월 노란 국화 피는 시절로(時維九月黃花節)붉은 단풍으로 단장한 산이 면면이 새롭네(紅葉粧山面面新) ○發程, 抵筏橋朝飯。 越西嶺, 抵旌門登午飯。 抵舞童亭留宿。 吟一絶曰: "幸我同宗六七人, 聯笻千里別親親。 時維九月黃花節, 紅葉粧山面面新。 " 서령(西嶺)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추동리 석거리재이다. 벌교에서 서울 방향으로 갈 때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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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노비의 짐이 무거워서 족손 일호에게 짐을 나누었다. 새 주막에 이르니 비가 시작되어 그대로 아침을 먹었다. 점심때가 되도록 비가 그치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비가 개자 출발하였다. 증산(甑山) 객점에 이르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그러나 일행이 먼저 출발하였기 때문에 뒤쫓아 가려면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에 가고 또 가도 날은 저물고 길은 진창이라 행색이 몹시 곤고하였다. 밤이 깊어서야 간신히 사동(蛇洞) 객점에 도착하니 일행은 과연 이곳 주막에 있었다. 그들과 이곳 주막에서 묵었다. 밥값은 5푼이었다. ○以奴子之卜重, 分卜於族孫一浩。 抵新酒幕, 則雨作。 仍爲朝飯。 雨不止而至午, 故仍午飯。 午後開霽發程。 抵甑山店, 日已暮矣。 而以同行之先行, 欲爲追及, 不得遲滯。 仍爲行行 而日暮泥濘, 行色甚困。 深夜後, 艱抵蛇洞店, 則同行果留此幕矣。 與之同留此幕。 烟價五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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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기해년(1839, 헌종 5) 3월 12일. 영남으로 가려고 내기(乃記), 학윤(學允)과 짝을 지어 출발하였다. 벌교(筏橋)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저물녘 순천(順天) 수덕(修德)1) 마을의 정생(丁生) 집에 이르렀다. 정생은 성리(城里)에서 이 마을로 이거한 사람이다. 정생이 출타하여 주인이 없는 바람에, 물리치고 들이지 않아서 나왔다. 안채에서 우리가 간 것을 알고 다시 들어오라고 청하였으므로 도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쫓겨나올 때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저물녘 수덕 마을에 도착하였는데(暮到村修德)주인은 가장 인정 없는 사람이네(主人最不仁)온 마을이 다 물리쳐 쫓아내니(一里皆揮却)응당 좋은 손님이 적게 모이겠네(應少會佳賓) ○己亥三月十二日。 作嶺行, 與乃記及學允作伴發程。 抵筏橋療飢。 暮抵順天修德村丁生家。 丁生卽自城里移居于此村者也。 丁生出去他以無主之致, 退却不納, 故出來矣。 自內間知吾行, 更爲請入, 故還入仍留宿。 行六十里。 退出之際, 吟一絶曰: "暮到村修德, 主人最不仁。 一里皆揮却, 應少會佳賓。" 수덕(修德)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수덕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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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병술) 二十三日 丙戌 맑음. 천도교인(天道敎人)이 월보(月報)14)를 보내서 풍자하였는데, 잠시 보고도 그 대강을 알 수 있어 바로 보냈다. 울타리를 치고 집에서 한가하게 지냈다. 사돈 서아(徐雅)가 왔다가 갔다. 陽。天道敎人送月報而諷之。 霎見知其類槩卽送。結籬而閑家。査生徐雅來而去。 월보(月報) ≪천도교회보(天道敎會報)≫를 말한다. 천도교의 기관지로 1910년 8월에 창간되어 1938년 3월 통권 315호로 종간되었다. 교리부・학술부・기예부(技藝部)・물가부(物價部)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학술부에는 지리・역사・물리화학・경제・농업 등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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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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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계축) 二十一日 癸丑 맑음. 나규운(羅奎運)의 처상(妻喪)을 위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망종(芒種)117)이다. 陽。慰問羅奎運妻喪。 還巢。是日芒種。 망종(芒種) 소만과 하지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양력 6월 6일 무렵이다. 망종은 논보리나 벼 등 씨앗에 수염이 달린 곡식을 파종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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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기유) 十七日 己酉 맑음. 알성(謁聖)을 하기 위해 장성(長城)에 도착해서 세곡(細谷)103)의 김내평(金乃平) 집에 들어갔다. 곧바로 모정(慕亭)에 이르러 사산성묘(泗山聖廟)104) 강당으로 들어가니 한 단정한 선비가 나와 맞이했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서로 알게 됐는데, 곧 공창렬(孔昌烈)이다. 그는 제자 6~7인과 이곳에서 강학하고 있었다. 인하여 유숙했다. 陽。謁聖次。 到長城。 入細谷金乃平家。直抵慕亭。 入泗山聖廟講堂。 有一端士出迎。敍未。 相識。 乃孔昌烈也。與弟子六七人。 講學于此。因留宿。 세곡(細谷) 현재 장성군 북하면 성암리(星岩里) 용동 마을에 해당한다. 사산성묘(泗山聖廟)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만무리 505번지 율정마을에 있는 사산사(泗山祠)를 말한다. 공자와 맹자, 주자를 배향하는 사당으로, 공씨가 입향한 뒤에 가묘(家廟)를 세워 향사(享祀)해 오다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후손 공언진(孔彦鎭)과 공학원(孔學源)이 짓기 시작하여 1911년에 완성하였다. 1957년에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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