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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재24) 박 선생【영주】께 올림 上無邪齋朴先生【永柱】 삼가 심한 추위에 기체후가 손상되지는 않으셨습니까. 집안이 사람들이 흩어지고 상사가 매우 참혹하여 만년의 상황은 사람으로 하여금 목이 메게 합니다. 하늘이 화락한 군자를 수고롭게 함이 어찌 마땅히 이와 같단 말입니까. 삼가 바라건대 이치로 다스려 스스로 너그럽게 하여 부디 보중하소서. 문생(門生)은 이사한 나머지에 어수선하여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버이와 형제가 오래도록 떨어져 있다가 지금 백발이 된 나이에 단란하게 모였으니 자식의 정리에 너무나 위로되고 기쁩니다. 다만 소생의 나이가 장차 30세가 되려 하는데, 일찍이 부모님을 대신하여 열심히 일하여 하루의 봉양도 바친 적이 없습니다. 학문하는 것이 부모님의 바람이었는데 전례만을 답습한 채 세월만 보내며 또한 조금도 마음에 들게 한 곳이 없으니, 생각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납니다. 삼가 바라건대, 한마디 가르침을 아끼지 말고 어리석은 이를 깨우쳐 주십시오. 伏未審寒沍氣體候。不有損節。室家分散。喪威孔慘。晩暮情境。令人哽塞。天勞愷悌。豈宜若是。伏乞坦理自寬。千萬保重。門生搬移餘撓。迄未妥帖。但家親兄弟分離之久。今見白首團聚。人子之情。慰悅多矣。第以賤年將至三十。未嘗代親執勞。以供一日之養。惟學問是親情所欲。而因循玩愒。亦未有一分可意處。念念不覺背汗。伏乞不吝一言之敎。以開蒙蔽。 무사재(無邪齋) 박영주(朴永柱, 1803~1874)의 호이다. 정의림이 어렸을 적에 그에게 사서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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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 화일182)【영만】의 총계정사에 적다 題趙友和一【泳萬】叢桂精舍 벗이 사는 곳에 한 초가집이 이루어지니 (故人棲息一茅成)날아가는 기러기가 구름 밖에서 우는 듯 아득하네 (邈若冥鴻雲外鳴)엉성하게 엮으니 넓은 안택임을 알겠고 (拙構認看安宅廣)새로 집 지으니 어버이 사모하는 정성 더욱 간절하네183) (肯堂彌切慕親誠)우뚝 솟은 통명산184)에 높은 바람이 불고 (通明山立高風動)맑은 순자강185)에는 밝은 달이 비치네 (鶉子江淸皓月生)세상 사람들 총계정사의 은자를 부르지 말라 (世莫相招叢桂隱)한겨울에도 지조를 지키기를 함께 맹세하였으니 (歲寒松柏是同盟) 故人棲息一茅成。邈若冥鴻雲外鳴。拙構認看安宅廣。肯堂彌切慕親誠。通明山立高風動。鶉子江清皓月生。世莫相招叢桂隱。歲寒松柏是同盟。 조우 화일(趙友和一) 조영만(趙泳萬, 1846~?)이다.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화일, 호는 소산(小山)이다. 집을……간절하네 『서경』「대고(大誥)」에 "만약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 작정하여 이미 그 규모를 정했는데도 그 아들이 기꺼이 당의 터도 마련하지 않는데 하물며 기꺼이 집을 지으랴.[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弗肯堂, 矧肯構.]" 하였다. 자손이 선대의 유업을 잘 계승한다는 뜻이다. 통명산(通明山)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에 있다. 순자강(鶉子江) 현재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과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그리고 옥과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섬진강의 일부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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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에게 올림 上伯父 백부님의 곁을 떠난 지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깊어 가는 봄에 삼가 기체후는 편안하시며, 종제는 전일하게 독서하는지요? 그리워하는 저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종자(從子)가 재숙에 온 뒤에 우연히 체증을 앓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기에 정신이 맑지 않으니, 책을 보는 데 매우 방해가 되는 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어영부영 시간만 허비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것이 어찌 처음 온 뜻이겠습니까. 우리 가문이 쇠락한 지 오래인지라 백부님께서 매우 통한으로 여겨 구구한 바람을 소자에게 부친 것이 돌아보면 얼마나 진중하였습니까. 매양 노둔한 재주를 다하여 만분의 일이나마 부응하고자 하였지만 목전에 닥친 난관으로 뜻대로 되지 않는 점이 많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어제 우변인(右邊人)이 방문하여 사문(師門)이 근래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계부(季父)께서는 근래 석정(石亭)에서 돌아오셨습니까? 부모님을 뵙는 것은 다음 달 초쯤에 있을 듯합니다. 집안사람에게 말하여 미리 봄옷을 준비하게 해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離側有日。春序向深。伏未審氣體候康寧。從弟專一讀書否。伏慕不任下誠。從子就齋以後。偶患挾滯之證。飮啖不化精神不暢。其於看書。甚有所礙。是以多不免因循廢日之端。此豈始來之意哉。吾家之零替。久矣。伯父深加痛恨而爲寄區區之望於小子者。顧何等珍重。每欲勉竭駑力。以副其萬一。而目前撞着。多有不得自由處。奈何奈何。昨日得右邊人之過。知師門近節安寧爲幸。季父近自石亭返次否。趨庭似在開月初間。戒家中。使之預治春服伏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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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견에게 보냄 與李光見 서로 만나지 못한 것이 꽤 오래되었으니 서글픈 마음이 어찌 그치겠습니까. 경서를 공부하며 지내는 안부가 줄곧 편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궁금한 마음이 더욱 지극합니다. 의림(義林)은 줄곧 병이 물러나지 않고 갈수록 더욱 심합니다. 형세를 어찌하겠습니까. 오늘 나아가 뵙기로 마음먹고 세수를 하고 두건을 썼지만, 조금 뒤 갑자기 두통이 생겨 도로 그만두었습니다. 일전에 경성(京城)의 태극교(太極敎)에서 강사(講師)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무슨 곡절(曲折)인지 모르겠습니다. 괴이한 일입니다. 일의 체모로 볼 때 또 전혀 말이 없어서는 안 되겠기에 병 때문에 거행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편지를 갖추어 우체(郵遞)로 부쳤습니다. 어제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의 종형제가 보낸 서찰을 받았는데 자세하게 면려하고 신칙한 뜻이 사람을 감탄하게 하였습니다. 이 서찰을 형이 계신 곳으로 보내서 함께 살피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한 번 왕림하시고 겸해서 다소간 회포를 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노사집(蘆沙集)》은 수백 년 후의 위대한 문장입니다. 천만 갈래로 분열되어 어디로 향할지 모르던 제가(諸家)의 논의가 선사(先師)에 이르러 비로소 공정하고 합당하게 절충되어 귀일(歸一)할 수 있었으니, 이것은 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책입니다. 모쪼록 서헌(瑞軒)과 서로 의논하여 책 한 질을 사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不相見頗久矣。悵懷曷已。未審經體起居。連護貞謐。仰溯罙至。義林一疾不退。去益甚焉。勢也何爲。今日準爲造穩。而洗手着巾。已而頭痛旋作。還爲停止耳。日前自京城太極敎。有差送講師之擧。未知此何曲折耶。怪事怪事。揆以事體。又不可全然無語。故以病未擧行之意。修書而寄于郵遞耳。昨得艾山從昆季書。其縷縷勉飭之意。令人感歎。切欲送此書於兄所。與之相觀而未果焉。幸爲從近一枉。兼暢多少懷緖。切企切企。蘆沙集此是數百年後大文字也。諸家議論。千分萬裂。莫適所向者。至先師而始得稱停折衷而歸于一。此學者所不可無之書也。須與瑞軒相議。一帙書買以置之。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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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사과【서진】에게 답함 答孫司果【瑞鎭】 뜻하지 않게 영랑(令郞)이 저를 찾아오고 화함(華函 상대방의 편지)이 함께 따라와서 펼쳐 놓고 거듭 읽으니 크게 위안이 됩니다. 서한을 통하여 체후(體候)가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더욱 기원하던 마음이 흡족합니다. 둘째 자제에게 먼 곳으로 가서 공부하도록 분부하셨는데, 모든 것을 계획하고 운영하자면 매우 힘에 부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평범한 사람이 논의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둘째 자제도 반드시 각고의 노력으로 학문을 이루어 집안에서 기대하는 뜻에 부응하리라 생각하니 매번 위안이 됩니다. 의림(義林)이 노쇠하고 뒤처진 것은 얘기할만한 것이 못 됩니다. 서 병사(徐兵使)의 〈결계시(結契詩)〉와 그동안의 문장을 받들어 읽으니 고상한 풍의(風義)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다만 한마디 말로 저의 보잘것없는 마음을 의탁하고자 합니다. 김두흡(金斗洽), 이 사람이 화약고(火藥庫)에서 절의를 위해 죽은 사람입니까? 매번 절절하게 탄식하며 흠모했지만 여지껏 그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이제 서한으로 알려주시는 은혜를 입었으니 매우 고맙고 다행스럽습니다. 謂外。令郞枉顧。華函隨之。披玩圭復。慰浣萬萬。仍審體節衛重。尤愜頂祝分付二郞百里讀書。其凡百經紀。備極勤勞。此豈常調人所可議到者哉。想二郞亦必刻苦成學。以副家庭責望之意也。慰仰每至。義林衰索頹塌無足云喩。徐兵使結契詩及前後文蹟。奉以讀之。有以見風義之高。感仰萬萬。第當有一言以寓區區之意也。金斗洽此是火藥庫死節人乎。每切歎慕。而未知其名。今荷書示。感幸多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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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전일에 들으니 그대가 간촌(澗村)에 거주한다고 하였는데 분명한 것인지 몰랐으나 그대의 편지를 받고 과연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사이 객지에서의 상황은 어떠하신지요? 가솔(家率)이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여력이 있으면 독서를 하면서 반드시 여유로움을 생각하십시오. 부디 이러한 상황을 계기로 십분 노력하신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일상생활에서의 공부와 존양(存養)과 궁격(窮格)의 공부는 진실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존양(存養)은 또한 궁격(窮格)의 근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니 모름지기 때와 장소에 따라 항상 신중히 검속(檢束)하고 조금도 게으르고 나태한 때가 없도록 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집에 거처하면 여러 가지 일이 많을 터이니 진실로 온 힘을 쏟아 가며 책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재에서 거처하더라도 식솔이 많으면 또한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솔이 번거롭지 않다고 하였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만약 이러한데도 온 힘을 쏟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책을 볼 수 있겠습니까? 부디 힘쓰십시오. 日前聞賢住澗村。未知的然。書來始認果爾也。日間旅節何如。聞蒙率無多云。餘力讀書。想必綽綽矣。幸因此際。十分加力如何。日用功夫。存養窮格。固當倂進。而存養又爲窮格之本。須隨時隨處。常令收斂檢束。勿使少有懈散時節如何居家多務。固難專力看書。居齋多率。亦且如此。而今蒙率不繁云。幸事幸事。若不於此而專力。則更於何處。可以看書耶。勉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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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직【영하】에게 답함 答閔子直【泳夏】 한 통의 편지가 어디에서 왔는가? 벗이 돌보아주는 두터움에 항상 감사 감사하네. 인하여 어버이를 모시는 근래의 절도가 또한 다시 어떠한지를 알았네. 밝은 창가 책상에서 조용히 연구하여 진보가 끝이 없는 점이 있는가? 이경(而敬)은 생각건대 또한 함께 책상을 나란히 하여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토론하고 있을 것이네. 체천(遞遷)96)할 때 묘소에 고한다는 설은 아마 그렇지 않은 듯하네. 비록 신주가 없더라도 기제(忌祭)나 절천(節薦)으로 인하여 체천의 뜻을 고해야 하네. 만일 기제나 절천의 때가 아니라면 별도로 지방을 갖추어 고하여 행하는 것이 가하니, 어찌 집을 놓아두고 묘소에 가는 일이 있겠는가? 일위(一位)를 실전(失傳)하여 일위만 제사 지낸다면 인정에 과연 편치 못하니, 함께 설위하는 것이 정과 예에 합할 듯하네. 그러나 반드시 먼저 고유를 하고 행하는 것이 가할 듯하네. 돌아가신 달을 알고 돌아가신 날짜를 모르면 고인이 날짜를 점쳤던 방법으로 통용하는 것이 가하네. 고인은 대상과 소상에 기일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이 달 안에 날짜를 점쳐 행하였으니, 후세에 기일을 사용하는 것은 간편한 것을 따른 것이네. 그렇다면 이것은 돌아가신 달 안에 하루를 점쳐서 사용하는 것이 어찌 불가하겠는가? 이미 날짜를 점쳤다면 반드시 해마다 정할 것은 없을 듯하네. 집에서 제사지내지 않고 묘소에서 제사지내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네.이것은 모두 견문이 적은 사람의 말이라 믿을 것이 못되니, 부디 더 상세히 살펴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一書自何而來。故人傾眷之厚。尋常感惻。因審侍省近節。亦復何如。明窓棐几。從容硏究。有進進不已者否。而敬。想亦與之聯丌對討。昕夕孜孜也。遞遷吿墓之說。恐不然。雖無神主。因其忌祭。或節薦。而告以遞遷之意。如非忌祭節薦之時。則別具紙榜。告以行之可也。豈舍家適墓之有哉。一位失傳。但祭一位。則於人情果未安。倂設恐合情禮。然必先告由而行之。似可。知亡月而不知亡日。則以古人筮日之法。通用之爲可。古人於大小祥。不用忌日。只於此月內。筮日行之。後世之用忌日。從簡便也。然則此於亡月內。筮一日用之。豈不可乎旣筮日。則恐不必爲年年元定也。不祭於家而祭於墓。則不然矣。此皆寡聞謏見。不足取信。幸加詳之。如何。 체천(遞遷) 봉사손(奉祀孫)이 대수(代數)가 다한 신주(神主)를 최장방(最長房)으로 옮겨 제사를 받들게 하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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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범【찬진】에게 답함 答黃允範【瓚鎭】 영랑(令郞)이 문으로 들어오면서 보내신 서신도 뒤따라왔으니 위안을 얻고 시름을 더는 것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서신을 받고서 내의(萊衣)90)를 입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체후가 매우 복되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욱 듣기를 바라던 바였습니다. 아우의 쇠약하고 정체됨은 번거롭게 얘기하기 부족하고 망령된 생각이나 잡다한 염려는 어찌 구구하게 나누겠습니까. 우리는 나이와 기력이 이미 늘그막에 접어들었습니다. 두루 섭렵하고 애써 기억하며 탐색에 힘을 쏟더라도 장차 모두 조금씩 사라지게 됩니다. 오직 조용히 심신을 조섭(調攝)하고 보양(保養)하는 것이 궁극의 계책입니다. 이것은 만년에 몸을 지키는 요체일 뿐만이 아니라, 망령된 생각이나 잡다한 염려라는 것도 또 이로 말미암아 물러나지 않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시험 삼아 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令郞入門。惠幅隨之。慰豁何量。仍審萊衣趨歡。體節百福。尤叶願聞。弟衰索淟滯。無足煩提。妄思雜慮。何用區區除爲也。吾輩年力。已屬遲暮。如博涉疆記。力探古索。且皆逐些裁減。惟靜攝身心。從容怡養。此是一副究竟計。此不惟爲晩年保嗇之要。而所謂妄思雜慮者。又安知不因此而退聽也。試而爲之如何。 내의(萊衣) 노래자(老萊子)의 옷이라는 말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인 노래자는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어, 일흔 살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의 놀이를 하며 어버이를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小學 稽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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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규【관식】에게 답함 答魏瑞圭【權植】 영랑(令郞)이 매번 이렇게 저를 찾아오고 또 존함(尊函)도 가끔 미치니, 스스로 생각건대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존문(尊門)의 부자(父子)에게 이런 후대를 받는단 말입니까. 감사하고도 송구스러워 사사로운 마음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편지를 통하여 늦가을에 체후와 동정(動靜)이 시절에 맞추어 평안하시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로 듣고 싶었던 소식입니다. 의림(義林)은 갯버들 같은 연약한 체질이라 나이에 앞서 노쇠하고 온갖 일이 잘못되어 궁벽한 골목에서 흙덩이처럼 칩거하면서 죽기만 기다릴 뿐입니다. 사문(師門)이 무함을 당한 것은 역시 세도(世道)의 변고이니 울분을 품는 마음은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황과 저 무리의 정황을 설파하신 것 역시 제 마음을 먼저 알아채셨다고 이를 만합니다. 궁벽하고 먼 지역에 외로이 떨어져 있어 자리를 함께하고 책상을 마주하여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존덕(尊德)을 흠모하는 서글픈 마음만 절실할 뿐입니다. 이번 일의 궁극적인 결안(結案)은 미리 헤아릴 수 없으니 그저 저 하늘의 처분만 기다릴 뿐입니다. 令郞每此枉顧。又有尊函種種及之。自惟何人。而荷此眷遇之至於尊門父子間若是。且感且悚。情私難在。仍審秋暮德候動止。對時衛重。實叶願聞。義林蒲柳先衰。百事敗缺。塊蟄窮巷。只俟溘然而已。師門受誣。此亦世道之變。憤鬱之心。相應一般矣。而所以說破今日爻象。及彼輩情狀者。亦可謂先獲我心也。落落涯角。末由合席對床。以益聞其所未聞。向風只切於悒。此事之究竟結案。有不可預算。只待彼蒼處分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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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여【채동】에게 보냄 與朴亮汝【采東】 근래 며칠 동안 가을 기운이 더욱 높아졌는데 고상한 운치를 그리워하려니 더욱 견디기 어렵습니다. 뜻하지 않게 박우(朴友) 편으로 인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안부를 물었더니 한결같이 평안하시다고 하여 실로 간절한 저의 마음에 부합하였습니다. 의림(義林)은 구차하기가 예전과 같고 속사정도 한결같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퇴락하여 장차 마무리할 방도가 없습니다. 저를 버리지 않은 형들의 마음을 저버린 것이 부끄럽습니다. 평소에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던 자리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니 어찌 유독 저 유 형주(劉荊州)를 책망하겠습니까.83) "세월이 말 달리듯 흘러가니 곤궁한 집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충무후(忠武侯 제갈량(諸葛亮))가 나를 위해 한 말입니다. 회합하는 날이 머지않았고 서로 만나기를 기약했는데 성숙(性淑) 등 여러 벗은 혹시 저를 찾아올 수 있을까요.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近日秋氣益高。懷想風致。尤難勝堪。料外朴友便因叩侍奉節宣。一視貞適。實副懇情。義林淟涊如故。而裏面一着。日頹月落。將無以收殺。愧負兄輩不棄之意。平生坐談。未進一步。彼劉荊州何獨責哉。時馳歲去。枯落窮廬。忠武侯爲我道矣。會日不遠。相逢有期。性淑諸友。惝可見顧否。企企。 평소에……책망하겠습니까 유 형주는 주자의 스승인 병산(屛山) 유자우(劉子羽)의 아들인 유공(劉珙, 1122~1178)으로, 자가 공보(共甫)인데 형호남로(荊湖南路)와 형호북로(荊湖北路)의 안무사(安撫使)를 지내면서 형주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칭하였다. 《朱子大全 別集 卷4 劉共甫》 주자는 〈여유공보(與劉共甫)〉에서 "형주(荊州)에는 함께 담소를 나눌 만한 훌륭한 사대부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위태로운 것이므로 오래도록 흘러가게 내버려 두면 다시 수습하기 어렵습니다. 날마다 옛 책을 가져다가 자세히 읽고 깊이 생각하여 물욕의 가림을 떨쳐내시기 바랍니다.【朱先生又言, 荊州無賢士大夫可奉談燕. 人心至危, 恐久流放, 難復收拾. 願日取古書, 熟讀深思, 以祛物慾之蔽.】"라고 충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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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화【병현】에게 답함 答尹致化【秉鉉】 우러러 연모하던 상황에서 보내주신 편지를 받으니 참으로 위안이 됩니다. 인하여 경서(經書)를 공부하시는 체후와 일상이 순조롭고 더욱 복되다는 것을 알았으니 제 마음이 위로를 받고 후련하여 더욱 듣고자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의림(義林)은 병으로 궁색한 침상에 엎드려 신음하지 않는 시절이 없으니 헛되이 살다가 헛되이 죽어 천지 간에 한 마리 좀 벌레〔天地間一蠹〕109)가 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정좌(靜坐)를 하면 혈기가 혼란스럽지 않고 정신이 들뜨지 않는다."라는 말씀은 학문의 지극히 긴요하고 지극히 간략한 곳으로 맹자가 말한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110)의 본의를 잘 이해한 것입니다. 강서(講書)에 마음을 다하여 날로 훌륭한 경지로 나아가시니 벗에게 좋은 소식이 이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매우 부럽습니다. 瞻戀之際。得承惠幅。良慰良慰。因審經體動止。順序增休。區區慰豁。尤叶願聞。義林病伏窮榻。無非呻吟時節。只恨虛生虛死。爲天地間一蠹而已。示意靜坐。則血氣不亂。精神不浮。此是學問至要至約處。甚得孟子求放心之本意也。講書鑽硏。日就佳境。朋知好消息。此外何有。甚羨甚羨 천지……벌레 송(宋)나라 학자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일찍이 말하기를 "농부가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오곡을 농사지으니 내가 그것을 먹고, 백공(百工)이 기물(器物)을 만드니 내가 그것을 사용하고, 군사들이 갑옷에 무기를 들고 나라를 지키니 내가 편안히 지낸다. 나는 사람들에게 혜택도 주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천지간에 한 마리 좀과 같은 존재이다. 다만 성인(聖人)이 남기신 글을 모아 엮어서 보충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하였다. 《二程遺書 卷17》 잃어버린……것 맹자가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고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孟子 告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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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양공【두묵】에게 답함 答小隱梁公【斗黙】 세초(歲初)에 공이 있는 곳을 찾아갔지만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돌이켜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공의 조카는 제가 살고 있는 곳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 매양 찾아와 주시니, 그 뜻은 매우 감사할 만합니다. 지금 또 이렇게 뜻밖에 공의 편지를 받으니, 이 사람이 존문(尊門)의 숙질간에 사랑을 받음이 이처럼 끈끈하단 말입니까. 감사한 마음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소생은 접때 우리 어른과 이웃에 살았습니다. 비록 아침저녁으로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은연중에 의지한 것은 실로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시련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또 이렇게 노년에 이별할 줄 알았겠습니까. 외진 산골에 칩거하자니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여 고개 들어 그리워하며 그저 슬퍼할 따름입니다. 공의 조카가 학문에 분발하여 스승과 벗을 찾아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해마다 찾아오니, 그 갸륵한 정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앙망하게 합니다. 저와 같은 자는 쇠락하고 곤궁함이 새장 속의 새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신세와 같을 뿐만이 아니니, 무슨 말할 말한 훈계가 있겠습니까. 구구한 저의 배우고 싶은 소원은 위험한 때라고 하여 줄어들지 않습니다. 歲初。歷扣仙扄。適値駕言。未得拜穩而歸。追念悵穎。念咸不鄙索居。每賜枉屈。其意極可感惻。今者。又此奉致尊函出於料外。此生之見愛於尊門叔侄間。若是綢繆耶。感不可言。生之曩與吾丈接隣也。雖不能朝夕趨從。而其所以隱然倚仰。實有不細者。豈知風浪未定。又作此衰暮別離哉。來蟄窮山。踽涼殊甚。矯首瞻望。只庸忉怛。令咸發憤力學。從師取友。千里程途。年例茇涉。其誠力之壯。令人可仰如生者。廢落困滯。不啻若籠禽之望雲翼也。有何誨責之可言。區區從逐之願。當不以夷險而有替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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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인에게 보냄 與宋子仁 수년 동안 단란하게 모이다가 갑자기 서로 이별하였으니, 아름다운 의금(衣襟)과 그대의 얼굴이 항상 마음과 눈앞에 가물거리고 있는 듯하여, 멀리 계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운 마음이 일어나 실로 제 마음이 괴롭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정황이 근래에 더욱 평안하고 좋으며, 학업은 그대로 놓아버리는 데 이르지는 않고 과정에 진척이 있는지요? 매번 자인(子仁)의 재주와 품성을 생각하건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음이 없으나, 의사(意思)가 끝내 흐지부지하여 부축하여도 오르지 않고, 끌어당겨도 일어나지 않으니, 이는 근래 공부가 나아가지 않는 까닭입니다. 자인은 또한 마땅히 여기에 이르러 성찰하여 스스로 빠져나오기를 생각해 보았는지요? 어버이의 독려를 저버려서는 안 되며 그대와 집안의 이어오던 업(業)을 잃어서도 안 됩니다. 천 번 만 번 힘써 주십시오. 백헌(柏軒) · 송헌(松軒) · 경헌(敬軒)의 여러 어른이 모두 몸소 집안의 사업을 맡아서 백발의 노인이 될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서로 모여 날마다 작업을 하셨습니다. 저와 같이 게으르고 산만한 자가 곁에 있었다면 또한 1~2할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구구한 세상 일에 어찌 연연할 필요 있겠습니까마는, 오직 이 한 가지 일은 가장 좋은 최고의 방법이니 어떠합니까? 문목(問目) 한 장은 일찍이 삼가 답을 하였으나, 아직 책상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간 재차 얼굴을 마주하였는데 잊어버리고 아직 보여드리지 못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한스럽습니다. 數年圑聚之餘。遽此離闊。蘭襟芝宇。常若有在於心目黯黯之間。而不知人之在遠也。馳戀興念。實勞我心。未詢侍節近益佳裕。居業不至放過。有以趲趁課程耶。每念子仁才性非不可嘉。而意思終是悠泛。扶之不上。提之不起。此近年功夫所以不長進也。未知子仁亦當循省及此。而思有以自拔者否。親庭責勉。不可孤也。身家計業。不可失也。千萬勉旃。柏軒松軒敬軒諸丈。皆身當幹家。年又老蒼。而晨夕相聚。課日作業。如我懶散者在傍。亦可以感動得一二分矣。區區世事。何足顧戀。而惟此一着。是太上究竟法。如何。問目一紙。早已奉答。留在丌上。其間有再次相而。而忘未相示。追以爲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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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장【인동】에게 답함 答朴善長【仁東】 그대 조부의 상기(祥期)가 갑자기 이미 지난달에 지났던가? 나는 웅크리고 막혀 있어 정신이 혼미하여 전혀 기억하지 못하여, 결국 달려가 위로하는 의식도 빠뜨렸으니, 이것이 어찌 서로 두터이 지내던 사이의 정의이겠는가? 매우 부끄럽고 부끄럽네. 모르겠으나 춘부장의 기력은 상을 당한 슬픔 속에 손상됨은 없으신가? 그리운 마음 감당할 수 없네. 그대는 《서경》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고, 즉이재(則以齋)121)에서 종유하고 있어, 이른바 방도가 있고 일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니, 어찌 매우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고인이 말하기를 "우물을 아홉 길을 팠더라도 샘물에 미치지 못하면 오히려 우물을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122) 선장(善長)은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힘써 우물을 판 날이 아님이 없었네. 만약 원천이 솟아나는데 미치지 못하고서 퍼먹는 것을 남이 사용하도록 맡겨둔다면 전날의 공이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물을 판 것이 아홉 길이라면 원천이 솟아나는 것은 또한 한 길이나 반 길에 불과하여 반드시 장차 원천이 솟아나는 것을 볼 것이니, 힘쓰고 힘쓰시게. 목마를 때 임하여 우물을 파려고 하지 말고, 또 남의 문을 두드려 구하려 하지 말게. 尊王庭祥期。遽已經過於去月中耶。跧滯昏妄。都不記得。竟闕趨慰之儀。此豈相厚之誼耶。愧愧負負。未審春府氣力慨廓之中。不有損節。馳溯不任。盛課在書經云。而遊從於則以齋。所謂有方有業者此也。曷不慰慰。古人有言曰。掘井九仞而不及泉。猶爲棄井。善長自童丱以後。孜孜矻矻。無非所以掘井之日也。若不得源泉湧出。酌之挹之。任人所用則前日之功。豈不可惜。然所掘者九仞。則源泉之出。亦不過一仞半仞。而必將見之矣。勉之勉之。勿爲臨渴而掘之。又勿爲叩人之門而求之也。 즉이재(則以齋)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이 강학하던 재사이다. 박인진의 자는 학중(學仲), 호는 우인당(愚忍堂), 본관은 밀성(密城)이다. 저서로는 《우인당유고》가 있다. 고인이……하였으니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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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칙【성휴】에게 답함 答文元則【性休】 전번에 믿을 확실한 인편이 있는 것을 알았지만 상황이 너무나 촉박하여 새해 문안 인사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뒤미쳐 생각하니 잊히지 않은 채 아쉽기만 하였습니다. 뜻밖에 보내신 서찰을 받을 수 있었으니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노형(老兄)의 마음은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정도 이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하여 경서를 익히는 일상과 지내는 안부가 더욱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참으로 궁금하고 그립던 마음에 부합하였습니다. 치관(緇冠) 1건(件)을 이미 선물로 보내기는 했지만 갑작스럽게 만들어 양식이나 생김새가 매우 치밀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보내신 편지에 이르기를, "머리에 얹고 거울을 비춰보니 완연히 학문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상고(上古) 시대에 삿갓이 없고 이 같은 치관만 있을 때는 치관을 쓴 사람들이 모두 학문을 하는 사람이었겠습니까. 껄껄 웃을 일입니다. "유자의 관을 쓰고 유자의 학문을 익힌다."라는 말씀 역시 좋았습니다. "선왕(先王)의 법복(法服)이 아니면 감히 입지를 않고 선왕의 법행(法行)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는다."114)라는 것은 평생에 걸쳐 몸에 지니면서 잠시라도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노형께서 관(冠) 하나를 보고 감복하여 미루어 말씀하시는 것이 이런 경지에 이르렀으니 의(義)에 밝은 군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매우 훌륭합니다. 向也見有的便。而倥偬太劇。未修新歲之問。追念耿缺。謂外得承辱訊。其與人不較之意。非夷所思感感。因審經體震艮增康。允符懸仰。緇冠一件。雖已呈似。而忽卒裁作。制度體格。不甚詳緻。不安不安。來喩云。加頭照鏡。宛是學問人樣子。然則上古無笠子。只有此冠時。人人皆是學問者耶。奉呵奉呵。冠其冠。學其學。此語亦好非先王之法服。不敢服。非先王之法行。不敢行。此是終身佩服。不容頃刻放捨者也。老兄見一冠。而感誠推諭。至於如此。可見君子之喩於義也。甚盛甚盛。 선왕(先王)의 ……않는다 《효경(孝經)》 〈경대부장(卿大夫章)〉에 나오는 말이다. 다만 '비선왕지법행(非先王之法行)'이 《효경》에는 '비선왕지덕행(非先王之德行)'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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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여【병헌】에게 답함 答趙平汝【秉憲】 서한을 받고 기억이 아득하여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연월이 적힌 행을 읽고 평여(平汝) 두 자를 보고서야 나도 모르게 병든 눈이 갑자기 떠졌습니다. 아, 평여(平汝)이십니까. 젊은 나이 혈기가 왕성하던 시절에 시문(詩文)과 술로 얼마나 가까이 어울렸건만 강호(江湖)에서 서로를 잊고 지낸 것이 몇 년이었습니까. 늙어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야 비로소 서한 한 장을 볼 수 있었으니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한편으로는 기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취정(翠亭)에서 학문을 닦고 송사(松寺)에서 잔치를 벌이던 것이 옛날 언제였습니까. 백현(柏峴)과 호산(虎山)에서 함께 하던 노성한 유덕자들은 모두 이미 아득한 옛날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벗들도 모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모두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온갖 고난과 세상의 두려움이 또 뒤따라 사람을 어지럽혀 생각할 때마다 마치 선천(先天)의 뜬구름같이 아득하여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따금 남쪽을 바라보면 그저 멍하니 탄식만 나올 뿐입니다. 서한을 통해 형께서는 여전히 부모님을 모시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커다란 복입니다. 다만 그사이 공부는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살아온 과정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형을 향해 치닫는 그리움이 끊이지 않아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아우의 처지는 서로 만났던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와 판이(判異)합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떠돌아다니며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만년에 이르러서도 남은 재앙이 다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렇게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참혹한 상황을 만나니 차라리 잠들어 깨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탄식만 간절할 뿐입니다. 得書茫然。不知爲誰。讀到年月。行見平汝二字。不覺病眼忽醒。嗚呼。乃平汝耶。少年盛時。文酒遊從。何等密勿。而江湖相忘爲幾年耶。至於老白首。而乃始得見其一紙心劃。一悲一喜。不知所以措辭也。豈惟是也。翠亭絃誦。松寺樽俎。昔何時矣。柏峴虎山諸芒長德。皆已千古。而其餘知舊。亦皆落落。都不知存沒與否。風霜世㥘。又從而撓攘。每念之。如先天浮雲。冥漠不可爲象也。有時南望。只有曠然發唏。因審兄尙在侍省之下。洪福拱福。但未知其間盛課造諸何如。調度經過何如。馳溯懸懸。不在遠情。弟狀與少壯相見時。辦若二人。風樹孤露。流離貪病。至於晩暮。餘殃未盡。又遭此窮獨之悿。只切尙寐之歎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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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언【상봉】에게 답함 答金聖彦【相奉】 고질병으로 폐인이 되어 이웃 마을의 친구도 만날 수 없는데, 오직 어진 그대가 나를 버리지 않고, 시절마다 안부 편지를 계속해서 보내주시니, 지극한 마음에 매우 감사하나 우러러 인사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귀댁의 아들 형제가 영광스럽게 찾아줬는데 그대의 편지를 전해줘서 더욱더 감사했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일상생활에 연이어 잘 계시고, 둘째 아들의 길례(吉禮)가 잘 행해졌음을 알았습니다. 집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화락한 군자를 천지신명이 돕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러러 부러워하는 마음이 그지없습니다. 저는 항상 질병이 오래 계속되어 날마다 숨이 끊어질 듯하나, 형편이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친한 벗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외로움은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번 그대의 거처를 찾아가 마주보고 울적한 감회를 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마음을 따르지 못해서 아직 실행하지 못했는데, 병마【二竪子】115)가 끝내 관용을 베풀어줄지 모르겠습니다. 貞疾自廢。隣里知舊。猶不可得以見之。惟賢爲之不棄時節存訊。種種不置。感感至意。不知所以仰謝令郞兄弟賁然入門。袖致華函。尤極感感。因審體度連膺休謐。二郞吉禮利行。人家所望。此外何有。愷弟神相。固應如此。爲之艶仰不已。義林一病支離。日就奄奄。勢也何爲。朋知零散。踽凉難狀。而尋常一念。切欲一就仙庄。對敍積鬱之懷。而脚不從心。因仍未就。未知二竪子終有以寬恕否也。 병마【二竪子】 《春秋左傳》 成公 10년 조에,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꿈에 질병이 두 명의 어린 아이로 변해 고황(膏肓) 사이로 숨어들었다는 고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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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립에게 보냄 與朴景立 일전에 자인(子仁)과 여러 사람들이 우봉(牛峯)에서 와서 그대가 근래 자춘(子春)의 낙상(落傷)하는 우환32)을 겪었다는데 과연 그러한지요? 놀랍고 큰 걱정이 됩니다. 듣자하니 간행하는 사업은 끝내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면치 못하였다고 하는데, 이후를 도모하는 약속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아직 한 집안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천하와 국가의 일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이는 옛날부터 지사(志士)들이 뜻을 품고 커다란 탄식을 하였던 부분입니다. 다만 저의 분수 상으로 자신에게 말미암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일단의 일이 있습니다. 힘쓸 수 있는 것은 단지 이것 뿐입니다. 자신의 한 마음이 만약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뜻을 말미암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이 따르지 않는 것은 나의 성의(誠意)에 따른 감동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 있음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것이 옛 사람이 감히 다른 이에게 허물을 탓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바라건대 나의 벗께서는 우선 이 일을 제쳐 두고, 앞으로 예전에 배운 학업에 대해 날마다 과정을 세워 힘쓰십시오. 의림(義林)은 날마다 쓸데없이 분주하게 지내고 있어서 조금의 겨를도 없습니다. 다만 밤중에 촛불 아래에서 이처럼 적은 글자를 볼 수 있는데 이것으로 어찌 충분히 보충하겠습니까? 가련하고 또 가소롭습니다. 경립(景立)은 시간을 잘 도모하여 이 사람과 같이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日昨子仁諸人。自牛峯來。爲傳左右近有子春下堂之憂。果爾否。驚慮爲多。聞刊事且未免終見緯繣。未知有後圖之期耶。此是何等好事。而尙未能見行於一門之內。況於天下國家之事乎。此自古志士所以齎志浩歎處也。但於吾分上。有由已而不由人一段事。所可勉者。只此而已自家一箇心。若不由自家。則何望其他人由自家意乎。又安知人不見從者。非我誠意之感。有未至乎。此古人所以不敢尤人者。願吾友姑爲倚閣此事。將來舊業。逐日作課程也。義林日日紛冗。無些少暇隙。只於夜中燭下。看得些少文字。此何足有補。可憐又可笑。願景立及時圖之。勿有後悔如此漢也。 자춘(子春)의 낙상(落傷)하는 우환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나오는 말로, 증자(曾子)의 제자인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당(堂)을 내려가다가 발을 다쳤다.【下堂而傷其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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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69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巳八月二十二日 安榏 金碩士 己巳八月二十二日 1869 安榏 金碩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9년 8월 22일에 안익이 김석사에게 보낸 편지. 1869년 8월 22일에 안익(安榏)이 부안(扶安)에 사는 김석사(金碩士)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피봉(皮封)에 '대효애(大孝哀)'라고 적은 것은 당시 김석사가 부친상(父親喪)을 당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고 있었던 안익은 마땅히 상가로 달려가 문상을 하여야 하지만, 자식 둘을 잃은 처지여서 위로조차 드리지 못해 한스럽다고 하였다. 대신 상주(喪主)께서 어머님을 모시고 평안하시길 빌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드님에게 따로 보낸 편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었다고 하였다. 같은 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안익이 이달 초에 천연두(天然痘)로 여섯 살 난 딸과 두 살 난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천연두는 홍역(紅疫)과 함께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대표적인 역병(疫病)이었다. 조선시대에 유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의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뭏든 이로 미루어 보면 안익은 연장자인 김석사의 아들과 깊은 교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서간에는 작성연대가 기사로만 되어 있지만, 안익이 작성한 다른 편지에 이재원(李載元, 1831-1891) 대감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69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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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55년 김명하(金命河)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命河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命河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아버지 김명하(金命河)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의 관직을 내리면서 발급한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자 그의 아버지도 증직(贈職)되었다. 즉, 이 문서의 맨 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考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기록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이는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가 증직된 사유이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가 종2품 가선대부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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