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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뜻밖에 한 통의 소중한 편지가 인편을 따라왔기에, 펼쳐 읽어보니 고맙고 후련하여 완연히 마치 몸이 갠 달 속에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사특한 학문이 날마다 치성하여 그러하지 않은 곳이 없는 지경입니다. 그러나 도깨비나 괴이한 물건들은 반드시 태양 아래에서 형체를 갖출 수가 없으니, 단지 바른 것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대는 의관(衣冠)과 시례(詩禮)가 있는 집안의 후손이니 어찌 오늘날 또한 이러한 것이 있다는 것을 면치 못하게 됨을 짐작하였겠습니까? 듣고서 놀랍고 두려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웃의 도가 있음에 비록 일반적인 잘못이라도 오히려 서로 경계하여야 할 것인데, 하물며 이러한 일에 있어서 어찌 차마 분명하지 않게 숨기면서 구해주려는 계책을 생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는 바꿀 수 있는 도가 아닙니다. 중화와 오랑캐, 그리고 사람과 짐승에 대해서는 그 향배가 두려워할 만한 구분이 있으니, 이해(利害)와 화복(禍福)에 이르러서 뚜렷하게 알기 쉬운 말로 상세하게 깨우쳐 주면서 마음을 바꾸게 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살면서 일부의 사람을 구해내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니 사증(士拯)은 천번 만번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실(講室)의 일은 아직 분열의 단초가 있다고 하니 우울합니다.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생토록 좋은 벗과 함께 한가롭고 적막한 물가에서 묻고 답하며 잘못되는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일이 희롱하고 사물이 시기하여 종종 방해하니 한스럽습니다. 또한 이후로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意外一幅珍緘。隨風而至。披玩感豁。完然若身在於霽月之中也。目今邪學日熾。無處不然。然魑魅怪物。必不能售形於太陽之下。但守正不撓以待之可也。貴邊乃是衣冠詩禮之社。而豈料今日亦不免有此耶。聞之驚懼。心膽墮落。然在隣里之道。雖尋常過失。猶能相規。況於此等事。豈可隱忍含胡。不思所以救拔之策乎。以天理民彛。不可移易之道。華夷人獸。向背可畏之分。及利害禍福。較然易知之語。詳細曉喩。使之革面如何。居今之世。救得一箇半箇人。亦非小事。願士拯千萬留意也。講室事。尙有携貳之端。可鬱。居今之世。與平生好友。講聚問辨於幽閒寂寞之濱。無至淪胥之地。未嘗不是好事。而事戲物猜。種種間之。可恨。又未知從此而作何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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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보【수학】에게 답함 答廉景甫【洙學】 은혜로운 편지를 얻어본 뒤로 세월이 이미 반년이나 흘렀습니다. 인편을 찾을 길이 없어 오랫동안 답례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50리 떨어진 길이 이다지도 멀단 말입니까?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여름과 가을 이후로 어버이를 모시는 모든 상황이 충만하고 평온하신지요. 책을 보고5) 이치를 따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일취월장하는 과정이 분명하게 있는지요? 그리운 마음에 못내 말씀을 청합니다. 의림(義林)은 신세가 퇴락(頹落)하여 참으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예전부터 하던 일은 사라져버리고, 이전에 힘쓸 만하던 것에는 또한 다소 생각할만한 부분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하문하신 여러 조목에 대하여 감히 저의 뜻을 소략하게나마 답한 것이 오래입니다. 다만 인편이 없어 아직 드리지 못하였으니, 지금 이렇게 함께 보내드립니다. 그러나 이는 저의 억견(臆見)이자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니, 어찌 과실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재차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自得惠函。日月已過半年。而覓便無階。久稽謝答。五十里程途。若是其迂遠耶。歉愧無已。夏秋以來。侍省凡節。一視沖謐。尋數溫理。步步就將。的有科程否。區區馳仰。不任願言。義林身事頹落。固無可言。只有一副舊業。是溘然前所可着力者。而亦未見多少可意處。奈何奈何。俯詢諸條敢以鄙意。略略奉答者久矣。而無便未呈。今玆胎去耳。然此是臆見瞽說。安得保無差失耶。幸再敎之也。 책을 보고 원문은 '심수(尋數)'인데, 이는 심항수묵(尋行數墨)의 준말이다. 글을 읽기만 하고 그 뜻을 제대로 모른다는 의미의 겸사인데, 여기에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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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백순【효동】에게 답함 答朴伯順【孝東】 서울로 간 뒤에 비록 조용히 찾아가지 못하였는데 인편으로 온 소식이 여러 가지로 자못 위로됩니다. 하물며 천 리 먼길을 왕래하면서 사문(斯文)의 장덕(長德)을 만나보고 돌아왔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며 친구의 정으로서도 또한 영광입니다. 대저 그대는 자질이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나며 나이가 젊고 힘이 있습니다. 위로는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시고, 아래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한 먹고 입을 것에 대한 계책과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령(使令)이 대략 있어 비록 스스로의 힘이 아니더라도 어른을 봉양하고 아랫사람들을 양육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매번 그대가 일하는 데는 부지런하지만 책을 읽는 데는 느릿느릿하여 평소 밝지 못한 것을 볼 때마다, 생각건대 부자와 형제 사이에 분명히 일부의 정해진 계획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지요. 구구하게 서로 사랑하는 심정으로 늘 한 번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바치고 싶었지만 미처 결행하지 못했는데, 지금 온 편지를 보니 그 간절히 후회하는 뜻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으니 참으로 치하할 만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백 리 마다 한 번씩 쉬면서99) 이처럼 고생스럽게 스승을 찾는 일을 하겠습니까. 덕 있는 집안에 어진 선비가 많아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洛行後。雖違造穩。便頭消息。不啻種種。頗用爲慰。況千里宿糧。得見斯文長德而歸。此何等好事。朋友之情。亦榮矣。大抵。伯順質美才悟。年富力强。上有俱存之慶。下有無故之樂。且粗有衣食之計。使令之任。雖非自力足以爲上奉下育。而每見伯順勤於幹務。而緩於讀書。尋常未瑩。意謂其父子兄弟之間。必有一副定算。非傍人所可知者。區區相愛之情。常欲一番貢愚而未果矣。今見來書。其縷縷悔悟之意。不一而足。可賀可賀。不然。其何以百舍重趼。判此從師之行哉。爲德門賀其賢士之多也。 백사(百舍) 백 리마다 한 번씩 쉰다는 뜻으로, 고생고생을 하며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장자》 천도(天道)에, "사성기(士成綺) 노자(老子)를 찾아뵙고는 말하기를, '백 리마다 한 번씩 쉬면서 발에 물집이 겹으로 생겼어도 쉬지 않고 왔습니다.【百舍重趼而不敢息.】' 하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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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두【덕흥】에게 주다 答方錫斗【德興】 한 통의 귀한 편지가 생각지도 않게 왔는데, 상쾌한 사람의 상쾌한 글자가 사람을 깨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대가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은 전부터 들어 알고 있어서, 항상 이 때문에 안타깝고 답답했는데, 지금 병이 나은 지 여러 날이 되었다는 소식을 받드니, 몹시 위로되고 기쁩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젊고 건강한 날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세상의 일은 복잡다단하여 그저 지나치기에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가령 이 한 때의 좋은 시절을 인식하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쉽게 놓쳐버리게 된다면,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양기가 돌아와 천지가 온화해진 이후에 새로운 정신을 정돈해 추슬러서 예전의 학업을 익히고 정리해서, 날마다 높고 깊은 경지에 나아가 참으로 조리가 있도록 계획해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그대는 타고난 자질이 온화하고 뜻이 고상해서 얽매이지 않으며, 근래에 유가의 덕이 높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많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우러러 바라며 감탄하고 축하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一角珍緘。謂外來到。欣豁人欣豁字。令人十分提醒。美痾之報。前此聞知。而常庸悶鬱。今承勿藥有日慰悅多矣。人生世間少壯幾何。世故多門。着遇無常。而使此一片好時節。易致蹉失於不知不覺之頃。豈可不懼。計應陽回天和之餘。整頓得新精神。溫理舊業。日就崇深。綽有條緖也。況乎天姿溫雅。志尙不拘。而近多從逐於儒門長德之間哉。瞻望區區。不任贊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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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중【치균】에게 답함 答柳子中【稚均】 재작년에 그대의 형제가 죽는 아픔을 겪었다는 말을 듣고, 정중하게 여러 글자를 거론해서 위로와 문안의 편지를 썼으나, 뒤늦게 중도에 편지가 분실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을 텐데, 인편을 통해 그대의 편지를 받으니 감사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아울러 생겨나니,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지나간 일을 뒤늦게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부모님을 모시며 지내는 상황이 근래에는 어떠하며 남은 힘으로 학업을 익히는 일이 스스로 위로할 만한 것이 있는지, 조심스레 묻습니다. 이때는 우리들이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강인하게 하면서 열심히 갈고 닦으며 노력해야 하는 날입니다. 앞으로 닥칠 굴곡은 미리 헤아릴 바가 아니니, 어찌 구차하게 얽매이겠습니까? 현인이 세상을 걱정하는 뜻이 비록 매우 간절하더라도, 분수를 편안하게 여기고 천리(天理)를 즐거워하는 뜻도 그 마음에 나란히 유행하도록 하여야 비로소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 리 먼 곳에서 서로 그리워하니 그 마음을 이루다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학문이 아직 진보하지 않았는데 늙음이 벌써 왔으니, 눈앞의 천만 가지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어찌 떠맡아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습니까? 저의 쇠퇴한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그대와 같이 현명한 이가 나를 먼 관계라고 여기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니, 이따금씩 나를 바르게 경계해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前前年。聞座右遭終鮮之痛。謹擧數字。以修慰存之儀。追聞喬沈中路。而想今未達矣。便頭得承惠訊。感與愧倂。不知攸謝。過境不須追說。謹請侍省候節。邇來何如。餘力溫業。有可以自慰者否。此是吾儕動心忍性。琢磨淬礪之日。前頭夷險。有非豫算。何須區區也。賢人憂世之志。雖極切至。而要使安分樂天之意。竝行於其中。方爲不偏。如何如何。千里相向。不勝情緖。義林學未進而老已至。目下千怪萬驚。其何以擔擡得一半分耶。其頹缺之狀。不言可想。幸賢如吾友。爲之不遐者久矣。時惠規警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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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중에게 답함 答李善仲 그대의 동생이 와서 편지를 볼 수 있었으니 위로됨이 끝이 없습니다. 편지를 통해 부모님의 건강도 좋으시다는 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듣고 싶은 소식이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오래 앓던 병이 아직도 쾌차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더욱 오래된 나머지 병세가 이와 같으니 더욱 잘 조섭하여 자그마한 남은 증세도 확실하게 안개가 걷히듯 하시길 바랍니다. 매양 우리 선중이 독노(篤老)98)를 모시고 있는데 집안의 재력에 대한 계책이 없으니, 어찌 고인(古人)이 슬퍼한 탄식99)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얻거나 잃음과 모으고 흩어짐은 본디 천지 사이에 없을 수 없는 이치입니다. 마치 더위와 추위, 낮과 밤이 앞에서 번갈아 오는 것 같으니 마땅히 허심탄회하게 이치로써 추스르고 그 사이에서 구구하게 꽉 막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군자가 의(義)에 거처하는 도이니 해로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병을 조섭하는 방법에도 큰 손해가 있을 것이니 천만번 마음을 편안히 가지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令季來。得見惠訊。慰豁無涯。因審庭候康寧。何等願聞。但宿愼。尙未快復云。彌久之餘。勢應如此。惟益加攝理。使小小餘證霍然霧除也。每念吾善仲在篤老之下。家力無以爲計。安得無古人傷哉之歎也。然得失聚散。固天地間所不無之理。如寒暑晝夜之相代乎前。當廣衿坦懷。以理遣之。不必區區窒塞於其間也。此於君子處義之道。不惟有害。而於養病之方。甚有所損。千萬安心如何。 독노(篤老) 70세 이상의 노인을 가리킨다. 고인(古人)이 슬퍼한 탄식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 下)〉에, "자로(子路)가 '슬픈 일이다. 가난함이여! 살아 계실 적에는 봉양할 것이 없고 돌아가신 뒤로는 예를 행할 수 없네.'"라고 한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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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장104) 【병규】에게 답함 答朴德璋【炳圭】 서늘해진 기운이 사람에게 마땅하니, 정히 서생이 휘장을 치고 독서하기 좋은 날인데, 덕장(德璋)은 집에서 근래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가? 덕장의 올해 공부는 여름부터 이래로 착실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으니, 질병으로 학업을 폐하는 것은 실로 어찌할 수 없네. 시속의 사무와 번잡한 일에 이르러서는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고 끊을 수 있는 것은 끊어야 하는데, 더구나 집안에 시킬 사람이 절로 모자라지 않음에야 어떠하겠는가?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작은 이익을 도모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원컨대 덕장은 대소와 취사의 구분을 살펴서 우뚝이 뜻을 세워 단연히 공부하고, 눈앞의 허다하고 자잘한 속무에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이네. 매번 보건대 덕장은 온후하고 개오(開悟)하여 학문하는 자질에 매우 합당하니, 항상 아끼고 바라서 기대하는 것이 적지 않은데, 덕장은 스스로 기대하는 것이 어떠한가? 세월은 빨리 흐르니, 인생의 호시절이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힘쓰고 힘쓰시게. 新涼宜人。正是書生下帷之日。未知德璋在家。近作何業耶。德璋今年之功。自夏以來。可謂不實矣。疾病廢業。固無奈何。至於俗務冗幹。可省者省之。可絶者絶之。況宅中使令自不乏人乎。孔子曰謀小利則大事不成。願德璋審其大小取舍之分。卓然立志。斷然下功。勿爲眼前俗冗許多瑣瑣所惹絆也。每覸德璋溫厚開悟。甚合學問上姿質。尋常愛仰。期望不細。未知德璋所以自期則何如耶。日月如流。人生好時節。豈不可惜勉之勉之。 박덕장(朴德璋) 박병규(朴炳圭, 1869~?)를 말한다. 자는 덕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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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성에게 답함. 答文子惺 그대가 기질지심(氣質之心)에 대해 논한 것은 말과 뜻이 참으로 온당하지 못한 부분이 있네.대저 성은 곧 리(理)이네. 그러므로 기질지성(氣質之性)이란 말이 있게 된 것이네. 대저 심(心)의 경우 그 본체는 참으로 기(氣)이지만, 또한 기질지심이라 이르겠는가. 심(心)이란 형(形)과 기(氣)와 신(神)과 리(理)를 포함하여 말한 것이네. 그러나 형은 기의 집이요, 기란 신의 집이며, 신이란 리의 집이네. 서로 필요로 하여 하나로 합치하였으니, 뒤섞이어 간극이 없네. 그런데 지금 심의 체단에 나아가 형과 기를 분리하여 기질지심이라고 하고, 신과 리를 나눠 본연지심이라고 한다면 옳겠는가? 옳지 않겠는가? 한편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은 마음이 발용하여 사물에 대응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어찌 이것이 심의 본체 상에서 리를 나누고 기를 나눈 것을 이르겠는가. 심은 성의 주재가 되고 성은 심의 주재가 된다는 말도 또한 온당하지 못하네. 만약 이 말과 같다면 원두에는 리가 주재가 되고 유행에는 심이 주재가 되어 두 개의 주재가 있는 것이네. 애산(艾山, 정재규)이 '이 리는 같지만 주재하여 항상 정하는 것은 심이며, 발출함에 같지 않은 것은 성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거의 합당하니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氣質之心云云。語意誠有未穩處。夫性卽理也。故有氣質之性之說。若夫心則其當體。固氣分也。而又謂氣質之心乎。心之爲物。包形氣神理而言之。然形者氣之宅。氣者神之宅。神者理之宅。相須爲一。混合無間。今乃就心之體段。析形氣爲氣質之心。分神理爲本然之心。可乎不可乎。且人心道心。是指發用應接上說。豈是心體上分理分氣之謂乎。心爲性宰性爲心宰之語。亦覺未穩。若如此說。則源頭也理爲主宰。流行也心爲主宰。而有兩主宰矣。艾山所謂同是理。而主宰常定者心也。發出不同者性也。此言庶幾近之。更加詳細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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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42) 양 어른【상정】께 올림 上心學梁丈【相鼎】 삼가 생각건대, 오장(吾丈)께서 80의 연세에 예사롭지 않은 참상(慘喪)을 만나 끝내 무슨 기력으로 부지하고 계십니까. 구구한 저의 사모하는 마음은 평소에도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광장(光長)에서 돌아와 찾아뵙고 책상 아래에서 절하였습니다. 삼가 신관(神觀)이 담연하고 정력이 쇠하지 않아 종일 심신을 가다듬고 응접함에 게으르지 않은 것을 보고 실로 군자가 평소 수양하여 동요되지 않는 힘은 일반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들의 기대에 위로됨이 어떠하겠습니까. 소생은 십수∨년 동안 온갖 재앙을 두루 겪은 탓에 순식간에 이미 지는 해와 같은 신세입니다. 병마가 고황(膏肓) 사이에 숨어서 여러 해 동안 틈을 노리다가 지금 모두 차례대로 드러나니, 스스로 생각건대 실낱같은 목숨 연약한 몸은 지탱하지 못할 듯합니다. 다만 구구한 이의 옛 학업이 따라서 퇴락하여 향당의 숙덕(宿德)과 평소 교유하는 곳에서 기대하고 면려한 뜻에 조금도 부응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伏念吾丈以大耋之年。遭非常之慘。而未知其氣力扶持。竟作何狀。區區慕慮。尋常不置。向自光長還。歷拜床下。伏見神觀澹然。精力不衰。終日斂束。應接不倦。固知君子素養定力。有非尋常人所能測度。其所以慰塞吾黨之望爲何如。生十數年備經百罹。而轉眄之頃。已是夕陽景色。二竪子之隱伏於膏肓間而積年伺隙者。今皆次第發露自惟殘喘弱骨。恐不足以抵敵。惟是區區舊業。隨以頹以落。而於鄕黨宿德。平日遊從之地。未副一分期勉之意。是爲悚悚。 심학(心學) 양상정(梁相鼎)의 호이다. 전라남도 화순 능주(綾州) 출신으로 가선대부 부호군을 거쳐 1893년 호군을 역임하였다. 또 다른 호는 심학헌(心學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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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겸【익섭】에게 답함 答姜子謙【益變】 새 봄이 되었는데 벗을 보지 못하니, 그리는 마음이 잊히지 않네. 그런데 뜻밖에 존부장의 편지를 받아보았으며, 왼쪽으로 돌아보니 또한 한 통의 소중한 편지가 있었네. 차례대로 손에 들고 읽어보니 고마운 마음은 평범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 게다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데 부모를 모시면서 모든 것이 더욱 좋으며, 그 남은 힘으로 책을 읽으면서 또한 전념하여 발전한다고 하니, 새해 기쁜 소식이 어찌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보내준 편지의 길고 자세히 말한 내용에서 마음을 쓰는 자세가 조금도 허투루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네. 대개 이 일은 다만 치지(致知)와 거경(居敬) 두 가지에 달려 있을 뿐이네. 이른바 수레바퀴나 새의 양 날개는 참으로 좋은 비유라네. 그러나 보내준 편지에서 말한 것이 존양(存養)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이 없으나, 사색하고 문변(問辯)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한두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네. 잘 모르겠네만 날마다 한 가지 이치를 궁리하는 것에 대해 과정을 세워 실천하지 못하고서 포기하여 버리는 것이 많이 있는가. 이는 안타까운 일이네. 또한 휴양하면서 정신을 한가롭게 펼치는 것은 반드시 동정(動靜)을 나눠서 말할 필요는 없으며, 욕심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것은 반드시 이 마음이 평담한 뒤에 보이는 것은 아니네. 한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매번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공부를 하는 자네를 보면 그에 비할 자도 드무니 마음에 기대하는 바가 작지 않네. 그런데 최근 들어 독실하게 마음먹고 맹렬하게 나아가는 뜻을 볼 수가 없고 한가롭게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구덩이에 빠진 것이 많으니, 이와 같이 하고서 어찌 집안 어른이 기대하는 지극한 마음과 벗들이 고대하는 중망에 부합하겠는가. 더욱 깊이 생각하여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힘쓰고 또 힘쓰시게. 이를 깊이 바라네. 見新春。不見友生。瞻想耿耿。謂外得尊院府文左顧。又有一角珍函。隨以入手。感豁之私。有非尋常可況。矧詢侍省凡百。俄迓加宜。餘力讀書。亦且一味向上。新年喜消息。曷以喩此。示喩縷縷。足以見用心之容。有不草草。大抵此事。只在致知居敬兩端而已。所謂車輪鳥翼。眞善喩也。然於來喩云云。無非存養邊說話。而於思索問辨之方。未有一二語示及焉。未知於日格一理者。或未能趁趲課程。而多有所廢墜者耶。此則可鬱耳。且休養發舒。不必分動靜說。遏欲存理。不必於此心平淡後見之。試思之如何。每見子謙實心實學。少有其比。而期望於心者。有不淺淺。比年以來。不見其有篤着猛進之意。而多涉於悠泛因循之科。如此而安能副家庭期望之至。朋友佇待之重哉.千萬加意。晨夜勉勉。是企是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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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윤【유흠】에게 답함 答鄭道允【瑜欽】 주경(主敬)은 실로 학문하는 큰 근본이네. 그러나 강구가 아니면 그 이치를 밝힐 수 없고, 성찰이 아니면 그 실제를 실천할 수 없네. 이것은 실로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니, 과연 보내온 편지에서 말한 것과 같네. 경(敬) 자에 대해 주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다만 정의관(正衣冠), 존첨시(尊瞻視), 동용모(動容貌), 정사려(整思慮), 엄위(嚴威), 엄숙(儼肅) 등 이런 몇 단어를 익숙히 음미하여 실제로 공력(功力)을 들인다면, 이른바 '주일(主一)'과 '직내(直內)'는 자연히 심목(心目)의 사이에 분명해 진다."라고 하였으니,116) 생각건대 그대 또한 이미 보았을 것이네. 보내온 편지에서 이른바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그 계신(戒愼)과 공구(恐懼)의 뜻을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한 것이 이런 뜻이 아닌가? 부디 힘써 노력하여 빈 말과 한가한 이야기에 이르지 않도록 하게. 主敬。固爲學之大本。然非講究。無以明其理。非省察。無以踐其實。此固不可闕一。果如來書之云也。敬字。朱夫子不云乎。但熟味正衣冠。尊瞻視。動容貌。整思慮。嚴威儼肅。此等數語。而實加功焉。則所謂主一。所謂直內。自暸然於心目之間。想吾友亦已見了。來喩所謂時無處。不致其戒愼恐懼之意者。非此義耶。千萬勉力。無至空言閒說。 경(敬)……하였으니 《주자대전》 권45 〈양자직에게 답함[答楊子直]〉에 나오는 데, 내용에 출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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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에게 답함 答李光彬 보여주신 내용은 삼가 잘 알겠습니다. "사물이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다른 것은 본연(本然)의 분수(分殊)에서 나온다."라고 하고 또 "통함과 막힘, 치우침과 올바름12)은 본연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그렇지 않을 듯합니다. 사물이 형형색색으로 다른 것이 통함과 막힘, 치우침과 올바름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아래에서 위로 곧바로 자라고 금수가 옆으로 자라고 초목이 거꾸로 자라는 것, 이것은 모두 본연의 분수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장수하거나 요절하고 살이 찌거나 마르는 것, 금수가 날거나 달리고 태어나기 전에 죽는 것, 초목이 말라 죽거나 부러지는 것은 본연의 분수라고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형이 말씀하신 "어찌 본연의 이치에 교정의 힘을 가할 것이 있겠는가?"라는 것은 참으로 그렇습니다. "명(命)에는 분수(分殊)가 있지만 성(性)에는 분수가 없다."라는 것은 더욱 온당하지 못합니다. 하늘에 있으면 명(命)이 되고 사람에게 있으면 성(性)이 되니, 어찌 명에는 분수가 있고 성에는 분수가 없겠습니까. 대체로 '이동기이(理同氣異이는 같지만 기는 다르다)' 4자는 노형(老兄)의 숙견(宿見)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우선 그대로 두었다가 조만간 토론하여 확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下示謹悉。旣曰形形色色。自本然分殊來。又曰通塞偏正。非本然所爲。此言恐不然。形形色色。非通塞偏正。而何人之正生。禽獸之橫生。草木之倒生。此皆本然分數也。若人之長短肥瘠。禽獸之獝狘殰殈。草木之菑翳嶊折。則恐不可謂本然分殊。兄所謂安有以本然之理而加矯揉之力者。誠然。命有分殊。性無分殊。此則尤爲未安。在天爲命。在人爲性。安有命有分殊而性無分殊者乎。大抵理同氣異四字。爲老兄宿見久矣。姑置之爲早晩商確。如何。 통함과…… 올바름 《대학혹문》 경 1장에 "그 이(理)를 가지고 말하면 만물은 하나의 근본이어서 진실로 인(人)과 물(物), 귀(貴)와 천(賤)의 차이가 없지만, 그 기(氣)를 가지고 말하면 그 바르고 통한 기를 얻은 것이 인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기를 얻은 것이 물이 되니, 이 때문에 귀하기도 하고 천하기도 하여 가지런하지 못한 것이다.【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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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기휴】에게 주다 與李士溫【基休】 벽산(碧山)을 향해 돌아오면서 처음에는 찾아뵐까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동행한 사람들에게 구애되어 그냥 지나치고 말았으니, 돌이켜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뜻밖에 이경(而敬)이 방문하였는데, 인하여 부모님이 만복하시고 모든 일이 고루 좋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만 합우(閤憂)105)가 아직까지 낫지 않으셨다고 하니 실로 간절히 염려가 됩니다. 처방에 따라 조리하면 효험을 볼 수 있을 터인데 어찌 이처럼 병세에 차도가 없단 말입니까. 부친께 가르침을 받고106) 집안일을 주관하는107) 여가에 의원을 찾고 약을 조제하는 일을 필시 다방면으로 할 터이니, 그대를 위해 대신 걱정합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편히 하고 생각을 안정시키고서 간간이 문자(文字)에 힘쓰고 계신지요.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니 바라건대 더욱 십분 유념하여 주십시오. 저희 집안에는 우선 문제가 없고 어린 손자가 글자를 제법 읽는 것이 위로가 될 뿐입니다. 向自碧山還。初擬歷穩。繼爲同行人所牽連。未免戞過。追念未安。謂外而敬見訪。因聞雙闈百福。諸節均宜。而但閤憂尙爾彌留。實切爲慮。隨方調理。計有見效。而何其若是不退也。趨庭幹蠱之餘。尋醫合藥。想必多端。爲之代悶。然更須安心定慮。間間着力於文字否。此非小事。願加十分留念也。義林家中。姑無見頉。而稚孫頗能讀字爲慰耳。 합우(閤憂) 상대방 부인의 병환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부친께 가르침을 받고 원문은 '추정(趨庭)'인데,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오는 구절로,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가 종종걸음으로 뜨락을 지날 때에 공자가 시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집안일을 주관하는 원문은 '간고(幹蠱)'인데 간부지고(幹父之蠱)의 준말로, 아들이 부친의 뜻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周易 蠱卦 初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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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한후251)【치조】를 모시고 향음례를 행하다 陪知州韓侯【致肇】行鄕飮禮 본연의 질서는 고금에 통하니 (本然敍秩古今通)예를 손익함에 어찌 같지 않음이 있었으랴 (損益何嘗有不同)선왕의 제도는 천하에 고루 미치고 (先王制作均天下)열성의 돈숭252)은 해동에서 도를 창도하였네 (列聖敦崇倡海東)삼년 동안 다스린 치적은 바야흐로 즐거움을 일으키고 (三年治蹟方興樂)하루 의를 행함은 크게 풍속을 변화시켰네 (一日行儀丕變風)법주는 풍악이 울리자마자 다 비웠으니 (法酒纔傾絲管歇)정자에 올라 들을 보며 다시 풍년을 점치네 (臨亭瞻野更占豐) 本然叙秩古今通。損益何嘗有不同。先王制作坸天下。列聖敦崇倡海東。三年治蹟方興樂。一日行儀丕變風。法酒纔傾絲管歇。臨亭瞻野更占豊。 한후(韓候) 한치조(韓致肇, 1808~1889)를 이른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긍숙(肯叔), 호는 자애(紫崖)이다. 능주 목사(綾州牧使)로 있으면서 소실된 영벽정(映碧亭)을 1873년(고종10)에 중건하였다. 돈숭(敦崇) 『중용장구』 27장에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문학을 말미암으니, 광대함을 지극히 하고 정미함을 다하며, 고명함을 다하고 중용을 따르며, 옛것을 잊지 않고 새로운 것을 알며, 후함을 도타이 하고 예를 숭상한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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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윤홍에게 답함【계횡】 答魏允弘【啓宖】 멀지 않은 이웃에 고가의 유풍이 계속 세속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노형보다 앞서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생각건대 막다른 길에서 보잘것없는 자취가 매달린 박과 같아 여러 해 동안 스스로 단절을 초래하였는데, 오직 노형께서 격려해 주시는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종종 외진 산속 적막한 가운데에 있는 제게 안부를 물어주셨습니다. 이 뜻은 몹시 우연이 아니니, 어찌 저처럼 형편없는 자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편지를 읽은 뒤에 남극성(南極星)이 상서로움을 바쳐47)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며 기쁘게 해드렸음을 알았습니다. 하늘은 화락한 사람을 돕는 법이니, 남은 복록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뜻과 공업은 이룬 것이 없고 늙고 힘이 쇠하였으니, 구구한 이의 슬프고 한탄스러움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현랑(賢郞 상대방의 아들)이 부지런히 찾아온 뜻은 얼마나 진중합니까. 하지만 매양 답장 없이 헛되이 돌아가게 할 수밖에 없었으니,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우리들이 각각 만년이 되었기에 평생 진 빚은 정히 결실을 거둘 때이니, 《주역(周易)》의 이른바 "평소의 행실 살펴보고 뒤의 복록 징험해 본다.[視履考祥]"라는 말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오직 더욱더 힘써서 저의 바람에 부응해 주십시오. 在隣壤不遠之地。其古家風範。可以源源擩染。孰有先於老兄哉。自以窮途賤迹。如瓠有繫。曠歲曠年。自貽伊阻。而惟老兄不憚鞭策之勞。種種致問於窮山寂寞之中。此意極不偶然。豈無狀如弟者所可堪膺耶。承審南極呈祥。萊衣趨歡。天相愷悌。餘祿曷量。弟志業未就。年力告替。區區悲歎。有難爲狀。賢郞勤顧之意。何等珍重。而每不免使之虛歸。尤極愧愧。吾輩各是晩節。平生債業。正是結窠之日易所謂視履考祥者也。惟願益加勉力以資相望。 남극성(南極星)이 상서로움을 바쳐 남극성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이다 정재훈(鄭在勳)이 부모님을 위해 축수연을 열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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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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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열부(烈婦) 오씨실기(吳氏實記) 고문서-증빙류-행장 정치/행정-조직/운영-행장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양상용의 처 나주오씨의 효열 행적을 기록한 실기. 모년에 양상용(梁相龍)의 처 나주오씨(羅州吳氏)가 효행(孝行)과 미덕(美德)을 굳게 지키면서 살아온 내용을 작성한 실기이다. 오씨는 나주오씨 양평공(襄平公) 오자치(吳自治)의 후예인 오경철(吳敬喆)의 딸이다. 오씨는 어릴 때부터 천성이 착하여 지극한 효행과 여자가 지켜야 할 도덕심이 남들보다 일찍이 뛰어났다. 19세에 양상용과 혼인하여 그의 아내가 되었고, 이후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함은 물론이고 데리고 사는 비복들에게도 은혜롭게 대하여 모든 이웃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살았다. 한편 친정어머니의 상(喪)을 당해서도 정성을 다하여 장례를 치르기도 하였다. 또 남편이 병들자 손가락을 잘라서 수혈하며 간호하였지만 결국 사망하게 되자 곧바로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하였지만 주변의 만루에 실행하지 못하고, 남편의 시신을 며칠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여 장례를 치르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여자로서는 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일들을 치르는데 감히 여장부다운 용감한 행동으로 처리하여 사람들의 찬사를 많이 받았다. 오씨의 정려(旌閭) 포창을 관에 요청하기 위하여 소지와 함께 작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지은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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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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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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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양순집에게 답함 答梁順集 《대학(大學)》의 뜻을 하문하셨는데 강론과 연마에 관한 벗의 의리로 볼 때 말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바로잡아 회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물(物)과 사(事)는 본래 하나의 뜻입니다. 그러나 '물(物)' 자는 체단(體段 본체)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이고 '사(事)' 자는 시용(施用 작용)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체단의 측면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본말(本末)'로 말하고 시용의 측면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종시(終始)'로 말합니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은 남과 자신이 대립하는 것이니 '물(物)'로 말할 수 있고 지지(知止 지선(至善)에 도달하는 것을 앎)와 능득(能得)45)은 지(知)와 행(行)이 서로 의존하는 것이니 '사(事)'로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만 형의 의견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俯詢大學義。在朋友講磨之義。不容無言。幸加訂砭而回示也。夫物與事固一意。然物字是體段邊說。事字是施用邊說。體段邊說故以本末言。施用邊說故以終始言。明德新民。是人已對待。可以物言。知止能得。是知行相須。可以事言。愚意如此。未知兄意以爲如何。 능득(能得) 《대학장구》 경(經) 1장의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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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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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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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안공삼【규용】에게 보냄 與安公三【圭容】 한 해가 저물어 새해가 되고 계절에 따라 경물(景物)도 바뀌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효성이 천성에서 비롯되었으니 슬픔과 사모하는 마음을 어떻게 견디십니까. 멀리서 애타는 마음 견딜 수 없습니다. 삼가 보건대 세상의 형편은 재앙이 천하에 가득하여 아침에 저녁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두렵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우리 동방에 복을 내려 황제의 조서가 반포되었으니 깊은 산 궁벽한 골짜기의 어리석은 백성들조차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병이(秉彝)가 추락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고 또 우리나라의 보록(寶籙)이 무궁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 한관(漢官)의 위엄32)을 오늘 다시 볼 수 있으니 우리는 과연 예전처럼 태평 세계를 뒤따르겠지요. 위안이 됩니다. 송사 선생(松沙先生 기우만(奇宇萬))의 봉함 상소는 역시 한 도의 바람을 채워주고 천하에 할 말이 있게 되었습니다. 세초(歲初)에 송사 등 여러 벗과 나아가 우리 벗을 조문하고 이로 인하여 중흥동(中興洞)으로 가서 한 번 서로 만날 계획이었지만, 곧 사사로운 일에 매여서 잠시 그만두었습니다. 몸을 잘 보중하시어 세상이 어려워졌을 때 서로에게 바라는 뜻에 부응하시기 바랍니다. 歲色飜改。時物變嬗。伏惟孝思根天。哀慕何堪。遠外區區不任。竊覵時象滔天。凜凜若不俟朝夕。天祚我東。溫綸渙發。雖深山窮峽。愚夫愚婦。無不感激流涕。此可見秉彛之不墜。又可見我國家寶籙爲無窮也。嗚乎。漢官威儀。今可復覩。而吾儕果爾追逐於昇平世界如前日耶。可慰可慰。松沙先生封章。亦可以塞一路之望。而有辭於天下矣。歲初與松下諸友。晉弔吾友。因往中興洞爲一番相觀計矣。旋爲私故所縻。姑且見停。更冀加愛。以副歲寒相望之意。 한관(漢官)의 위엄 지금은 없어진 옛날의 제도와 문물을 말한다. 신망(新莽) 말년에 유수(劉秀) 즉 광무제(光武帝)가 회양왕(淮陽王) 유현(劉玄)에 의해 사예교위(司隷校尉)에 발탁되었을 때, 그동안 왕망(王莽)에 의해 폐기된 한나라의 복식(服飾) 등 옛 제도를 모두 복구시키자, 늙은 관리들이 눈물을 흘리며 "오늘에 다시 한관의 위의를 보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하였다.【不圖今日復見漢官威儀.】"라고 탄식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1上 光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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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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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8년 송생원(宋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八年戊午七月二十八日 權琦瑞 宋生員 咸豐八年戊午七月二十八日 權琦瑞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8년(철종 9) 7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산지 60여보와 송추를 전문 8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 9) 7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산지와 송추를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권기서는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의 전록(前麓)에 있는 산지를 여러 해 동안 수호해 오다가 지난 5월에 전주에 사는 송생원이 친산을 쓰면서 누차 소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서로 간의 합의하여 용미 근처 청룡 60여보의 땅과 여간의 송추를 매매하게 되었고, 송생원은 그 값으로 전문 7냥을 지불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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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63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亥十月 日 宋鎭澤 山在兼官 癸亥十月 日 宋鎭澤 泰仁兼監 전라북도 태인군 山在兼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이동희 편, 『조선시대 전라도의 감사·수령명단』,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5.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63년(철종 14) 10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겸관(泰仁兼官)에게 올린 소지(所志). 1863년(철종 14) 10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겸관(泰仁兼官)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는 태인 남면(南面) 반룡촌(盤龍村)에 있는데 9월 26일에 태인에 사는 김가(金哥)가 묘소 가까운 곳에 투장(偸葬)을 하여 관에 정소(呈訴)하였다. 태인겸관은 자세히 조사하고 적간(摘奸)한 뒤에 김가를 잡아 가두고 보고하라고 유향소(留鄕所)에게 지시하였다. 관련문서 '1864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1'을 참고하면 당시 태인겸관은 정읍현감(井邑縣監) 윤영보(尹榮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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