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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만당형장399)을 그리워하며 病中懷晩棠兄丈 지난해 단양에서 이별할 때 去歲端陽拜別時나중에 만나자는 말씀이 간절하였네 丁寧一語後逢期반년의 풍진 세상은 어찌 그리 분란한가 風塵半載何紛擾초겨울에 앓은 질병은 몹시 위독했다오 疾病初冬亦篤危아픔을 남의 일처럼 여긴다는 걸400) 듣지 못하였고 不聞痛痒歸越視정담 중에 〈귀거래사〉401)를 외운 걸 기쁘게 생각하네 思悅情談誦陶辭형은 팔순의 고령이고 나는 일어나기 어려운데 兄年八耋吾難起동서로 외로이 떨어져 있어 그지없이 서글퍼라 落落東西絶可悲 去歲端陽拜別時, 丁寧一語後逢期.風塵半載何紛擾, 疾病初冬亦篤危.不聞痛痒歸越視, 思悅情談誦陶辭.兄年八耋吾難起, 落落東西絶可悲. 만당형장(晩棠兄丈) 김희현(金熺鉉, 1872~1951)으로, 만당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정오(定五)이다. 후창의 외종형(外從兄)이다. 후창이 일찍이 그를 위해 〈만당시고서(晩棠詩稿序)〉를 썼다. 《後滄集 卷20 晩棠詩稿序》 남의……걸 원문의 월시(越視)는 '월시진척(越視秦瘠)'의 줄임말로, 월(越)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의 수척한 모습을 무심하게 보는 것처럼 어떤 일에 대해 자신과는 무관한 남의 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 원문의 도사(陶辭)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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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송생원(宋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八年戊午八月二十八日 權琦瑞 宋生員 咸豐八年戊午八月二十八日 權琦瑞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8년(철종 9) 8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산지와 송추를 전문 4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 9) 8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산지와 송추를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권기서는 소유한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전록(前麓) 고당산(高堂山)에 있는 친산(親山)의 용미(龍尾) 아래와 송추를 전문 4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이곳에 대한 구문기를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문서만으로 거래한다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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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견【상백】에게 답함 答李光見【常白】 생각지 않게 서한을 받았는데 하시는 말씀과 꾸짖는 뜻이 사람의 눈과 마음을 모두 깨어나게 하였습니다. 대체로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지 이제 몇 년입니까. 매번 풍의(風義)가 단정하고 동정(動靜)이 점잖은 것을 보았지만 고상하고 우아함에 대해서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눈이 부끄럽습니다. 이러한 형이 있고 이러한 아우가 있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저의 부러움이 전보다 배로 늘었습니다. 의림(義林)의 노쇠한 정경과 병들어 칩거하는 처지는 참으로 비루하여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영백씨(令伯氏 상대방의 백부(伯父)) 만이 가까이 있어 날마다 서로 어울리면서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또 고명(高明 상대방)께서 저를 멀리하지 않으시고 교제를 이어가는 것이 이처럼 진중하시니, 지극한 고마움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계산(溪山)의 적막한 물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를 하며 밭을 갈고 소를 키우는 여가에 형제분이 나란히 서안(書案)을 마주하고 화목한 모습으로 경전(經典)을 연구하니 이것이 얼마나 보기 좋은 광경이겠습니까. 저에게도 종종 나누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科外獲承德音。其措辭遺意。令人心目俱醒。大抵吾兩人相知。今幾年矣。而每見其風義端飭。動止安詳。而至於文雅之贍邃。今日而後。乃始知之。可愧其眼不識人也。有是兄有是弟。豈是偶然。區區艶仰。有倍於前。義林衰索病蟄。固陋難狀。而惟是令伯氏在邇。日月相從。僅且支過矣。今又得高明之不遐。而托契定交。若是珍重感感之極。不知云喩。溪山涔寂之濱。漁樵耕牧之餘。伯兮叔兮。對床聯榻。怡怡講究於詩禮墳典之間。此何等勝致耶。爲之種種波及。是望是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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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견에게 답함 答李光見 왕림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또 정함(情函 상대방의 편지)을 받았습니다. 아, 저를 아끼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역시 지극하십니다. 하물며 이렇게 밤새도록 비바람이 몰아쳐 문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적막하게 칩거하면서 의지할 곳 없이 무료하게 지내고 있으니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 벗이 가까이에 있어 서로를 따르면서 강학과 토론이 이처럼 끊이지 않으니 위안을 받고 고마움을 느끼는 심정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주역(周易)》은 근래 과연 눈앞에 두고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했지만 매운 고추를 통째로 삼킨다는 비난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끝내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부끄럽습니다. 《맹자(孟子)》 공부는 근래 몇 권에 이르렀습니까? 노년에도 학문을 좋아하여 남모르게 날마다 성취를 이루는 것이 오늘날 누가 우리 벗과 같겠습니까. 매번 앙모하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하루 동안 유람하는 일은 중지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이겠습니까. 유람 같은 무익한 일을 하여 스스로 허물을 초래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承枉未幾。又獲情函。其愛我惠我。吁亦至矣。況此風雨長夜。行不得門外一步。跧蟄踽凉。無聊無賴。而惟有吾友在邇。從逐講討。源源若此。慰慰感感。何以容喩耶。羲經近果爲遮眼消日計。而亦未免辣椒皮呑之譏。畢竟何益之有。愧愧。盛課近在鄒傳何卷耶。老而嗜學。闇然日就者。在今日。孰有如吾友哉。每切馳仰。一日之遊。停之似宜耳。此時何時。恐不必爲遊衍無益之擧。以自招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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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문【계창】에게 답함 答魏岐文【啓昌】 그대의 아들이 보잘것없는 나를 하찮게 여기지 않고 두 번이나 찾아와 주셨으니, 이것은 사사로운 정에 있어서 이미 매우 감사할 일인데, 다시 또 편지를 부탁해 보내서 곡진한 뜻을 보여 주시니, 이것이 어찌 저처럼 천박한 자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이 뜻이 없지는 않았으나 기질에 얽매이고 질병이 간간이 생겨 끊임없이 오가다가 하나의 쓸데없는 물건이 되었고 지금은 백발이 성성하니 매우 아득히 끝없는 한이 있을 뿐입니다. 상황이 이와 같으니 그대가 보잘것없는 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비록 무성한 관용에서 나왔더라도 또한 그대의 밝은 식견에 누가 됨을 면치 못할까 두렵습니다. 관산(冠山)은 옛날에 문명(文明)의 고을이라고 일컬어졌는데 근래에 더욱 번성했습니다. 게다가 그대의 아들은 단아하고 신중하며 깨달음이 있어서 함께 큰일을 할 만하니, 그에게 오가며 영향을 받게 하고 좌우에서 보살핀다면 어찌 성취할 가망이 없다고 근심하겠습니까? 보잘 것 없이 살아온 저 같은 처지는 지난일에 부치더라도 여파에 젖어 노년에 만분의 일이라도 거두려는 계획으로 삼을 계획이 없지는 않습니다. 令郞不鄙無狀。再度垂訪。此在私分。己極感荷。而又且委賜寵翰。示意繾綣。此豈淺淺者所可承膺耶。義林小少非無此志。而氣質局之。疾病間之。捱去捱來。成就得一箇無用之物。至今白髮紛如。只切悠悠無窮之恨而已。然則執事之寄意於鄙生者。雖出於包含之盛而亦恐未免爲明見之一累也。冠山古稱文明之鄕。而近來尤蔚然焉。且令郞端詳開悟。可與有爲。以之出入擩染左右扶將。何患無成立之望。區區衰散如此生者。雖屬過境。而不能無思霑餘波。以爲收楡萬一計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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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석주】에게 답함 答金宗一【錫柱】 "병이 많아 옛 벗도 멀어지네."142)라고 하였으니 옛 사람도 오히려 그러하였거늘 하물며 오늘날임에랴. 어진 그대는 내가 병이 많다고 해서 소원(疎遠)하게 대하지 않고 편지 한 통을 뜻밖에 보내주니, 이는 옛사람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봉투를 열어 낮게 읊조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병세가 풀리는 것 같네. 부모를 모시면서 평안하다는 소식을 지면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한 달 전쯤의 소식이니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네. 신령이 단정한 군자를 위로하여 응당 보답을 받을 때이네. 그렇다면 마음에 위안됨이 어찌 다하겠는가. 공부가 이전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겸손한 말이네. 그러나 마음이 있지 않으면 어찌 이전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겠는가. 다름이 없는 것을 보고 더욱 더 노력하여 다름이 있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학문이 발전하는 방법이네. 시속(時俗)의 말들이 어지럽다고 하였는데, 비록 지극히 두렵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어찌 한 집안 한 사람의 재앙에 그치겠는가. 최종적인 처분은 하늘에 달렸으니,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한 뒤에 기다릴 뿐이네. 의리를 강론하고 밝혀서 추향을 헤매지 않게 하며 심지(心志)를 완전하게 함양하여 지킨 바를 흔들리지 않게 하여야 하니, 이것이 사문(斯文)의 요결이며 나아가 오늘날의 급선무이네. 더욱 깊이 노력하게나. 多病故人疎。古人猶然。況今日乎。賢不以多病而見疎。委存一書。出於料外。此其非過於古人者耶。披玩沈吟。不覺病情釋然也。侍省平安之報。得於紙面。而以一月之信。又未知見作何狀也。神勞愷弟。定應如見報時矣。慰仰曷已。工夫之無差殊處。此固撝譕之語。然心不存。則安能見其無差殊處也。見其無差殊而益加勉焉。使之至於有差殊者。此進乾之方也。時說紛紜之示。雖極可畏。然此豈一家一人之厄耶。究竟處分。有天翁在焉。惟盡其在我者以待之而已。講明義理。使所向不迷。完養心志。使所守不撓。此是斯門要旨。而尤爲今日之急事也。千萬勉㫋。 병이……멀어지네 맹호연(孟浩然)의 시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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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중27) 【찬호】에게 보냄 與李美中【燦鎬】 우리 두 사람이 종유하면서 모여 강론한 지 전후로 20년이나 오래 되지만 스스로 생각하건대 보잘것없는 나는 평소 멸렬하여 하나를 알고 반이라도 이해하여 그대에게 유익함을 도울 수 있은 것이 없음을 근심하였네. 지금 비록 병에 걸려 조석에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일찍이 나의 일념은 이것을 잊은 적이 없었네. 그대가 일전에 와서 유익한 한 마디를 청하였으니, 그대의 뜻은 또한 반드시 전날의 학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여겨 더욱 힘쓸 수 있기를 생각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대의 후회 또한 늦었다고 할 만하네. 그대는 오늘날 또한 청양(靑陽, 봄)한 시절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 이른바 늦었다는 것은 늦은 것이 아니네. 다만 미적거리며 등한히 기다리기를 전날과 같이 한다면 후일에 또한 오늘 같은 후회가 없다고 어찌 보장하겠는가? 격물(格物) 궁리(窮理)하여 그 뜻을 밝히고 수심(收心) 양성(養性)하여 그 실상을 실천 하는 것 이것이 학문하는 제일의 공부이니, 지역을 가려서 할 것이 아니고 또 때를 기다려 행할 것이 아니네. 밥 먹고 옷 입는 것이 이 공부가 아님이 없고, 물 긷고 땔나무하는 것이 이 공부가 아님이 없는데, 백성이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하네. 단지 내가 뜻을 두는 것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니, 원컨대 그대는 힘쓰시게. 吾兩人遊從講聚。爲前後二十年之久。而自惟無狀。素患滅裂。無一知半解。有以資益於賢者。今雖賤疾。朝夕俟盡。而未嘗無區區一念耿耿乎此也。賢者日者來。請一言之益。賢者之意。亦必以前日之業爲未足。而思有以增勉之也。然則賢者之悔。亦云晩矣。賢於今日。亦不可謂非靑陽時節。則所謂晩者非晩也。但因循等待如前日。則安知後日亦無今日之悔也。格物窮理以明其義。收心養性以踐其實。此是學文第一功夫。非擇地可爲。又非待時可行。喫飯着衣。無非此功夫也。運水搬柴。無非此功夫也。百姓日用而不知焉。只在乎吾加之意如何耳。願賢者勉乎哉。 이미중(李美中) 이찬호(李燦鎬, 1879~?)를 말한다. 자는 미중, 호는 죽헌(竹軒),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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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형신【대량】에게 답함 答魏亨信【大良】 헤어진 뒤에 하염없이 시간은 흘러 이미 한 해가 지났으니, 그리운 마음은 더욱 암담해져 지나간 날만큼 쌓이네. 문득 편지를 받으니 음이 꽉 찬데서 하나의 양을 보는 것 같아 그 위안과 고마움이 어떻겠는가.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기쁜 일이 많고 신령이 도와 건강하며, 부모를 봉양하고 남은 힘으로 공부하여 날마다 과정을 따른다고 하니, 붕우의 좋은 소식이 어찌 이보다 좋으랴! 더욱 듣고 싶었던 바라네. 나는 노쇠함이 날로 심하여 지팡이를 짚을 힘도 없으니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죽은 귀신이 됨을 면치 못할까 두렵네. 다만 나를 따르는 사우(士友) 가운데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들의 기대에 만분의 일도 부응하지 못하니, 생각하면 항상 대단히 두렵다네. 잘 모르겠네만 우리 벗처럼 빼어난 젊은이는 나를 보고서 감계(鑑戒)로 삼는가. 그대가 〈외필(猥筆)〉에 운운한 것은 말하자면 매우 길고 현재 이러한 상황은 그 유래가 또한 오래 되었네. 유자 기풍의 쇠퇴와 선비 추향의 분열을 지나간 역사책에서 찾아보아도 또한 이런 일이 있는가. 사람으로 하여금 분격에 개탄하게 만드니 차라리 말 하고 싶지 않네. 다만 푸른 하늘이 저 위에 있으니, 백 대 이후에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옴을 기다릴 뿐이네. 別後荏苒。已易一寒暑。懷思悵黯。與日俱積。忽承惠書。怳然若窮陰之見陽。其慰沃感豁。爲何如耶。仍審侍省歡慶。神相百福。餘力佔畢。日趲程曆。朋知好音。曷踰於此尤叶願聞。義林衰索日深。策理無力。恐未免爲無聞之鬼而已。但遊從士友多少年。未有以塞其相期萬一之意。念之每切悚然。未知少年英秀如吾友者。視之爲鑑戒否。猥筆云云。言之甚長。且今日爻象。其來亦已久矣。儒風之衰薄。士趨之分裂。求之往牒。亦有是耶。令人憤歎。寧欲無言。但蒼天在上。只俟百世必反之常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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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재집(日新齋集) 21권 12책 日新齋集 日新齋集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문집 국역 日新齋集 丁卯 丁卯 [1927] 鄭義林 목활자본 『일신재집(日新齋集)』 12 有界 10行22字 註雙行 한자 內向3葉花紋魚尾 전남대학교도서관_불명처1 전남대학교도서관 1927년에 간행한 조선 말기의 학자 정의림(1845~1910)의 시문집. 『일신재집(日新齋集)』은 21권 12책으로 문인 박준기(朴準基), 홍승환(洪承渙) 등과 족인(族人) 정병해(鄭炳海) 등이 유고를 모아 1927년 간행했으며,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1은 시 175제가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사우들을 만나고 지은 교제시가 대부분이며, 뒷부분은 만시가 많다. 그는 노문삼자로 불리웠던 정재규와 특별한 교분이 있어서 서로 영호남을 방문하고 시를 남겼으며, 1902년에는 『노사선생문집(蘆沙先生文集)』중간을 위해 단성의 신안정사를 방문하고 이어 최익현(崔益鉉), 기우만(奇宇萬), 정재규(鄭載圭), 최숙민(崔琡民) 등과 칠불사(七佛寺)에서 함께 지은 시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시로는 「서석창수운(瑞石唱酬韻)」10수를 들 수 있다. 정의림은 이 시의 서문에서 1887년 8월 17일부터 8월 23일까지 7일간 친구나 문인들과 함께 화순에서 무등산의 광석대(廣石臺), 상봉(上峯), 증심사(澄心寺)를 거쳐 다시 화순의 만연사선정암(萬淵寺禪定庵), 능주의 영벽정(映碧亭)과 동귀봉(東歸峯)을 다녀오면서 지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방문한 곳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그 곳의 풍광을 잘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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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열228)【계학】이 어머니를 위해 축수한 시에 차운하다 次魏士悅【啓學】壽母詩 미세한 양이 동할 때 주렴과 휘장 깨끗하니 (簾幃蕭灑動微陽)무리 지어 색동옷 입고 춤을 추며 북당을 에워쌌네 (舞綵相群繞北堂)정치한 강릉은 삼수와 벗을 맺고229) (鼎峙岡陵三壽作)태평의 연월 속에 백 년토록 강건하였네 (泰平煙月百年康)사람이 어지니 과연 큰 복이 있을 것이고 (人仁果有應胡福)물이 푸르니 어찌 각로방을 배우리오230) (水碧奚爲却老方)이날 관산에서 일제히 모인 자리에 (是日冠山齊會席)내 가지 못하고 궁벽한 곳에 은거함이 부끄럽네 (愧余未赴僻隅藏) 簾幃蕭灑動微陽。舞綵相群繞北堂。鼎峙岡陵三壽作。泰平烟月百年康。人仁果有膺胡福。水碧奚爲却老方。是日冠山齊會席。愧余未赴僻隅藏。 위사열(魏士悅) 위계학(魏啓學, 1868~1919)이다. 자는 사열(士悅), 호는 청계(淸溪)이다. 삼수와 벗을 맺고 『시경』「비궁(閟宮)」에 "삼수(三壽)로 벗을 맺어 산과 같고 구릉과 같으소서.[三壽作朋, 如岡如陵.]"라고 하였다. 물이……배우리오 각로방(却老方)은 선가(仙家)에서 불로장생하는 방법을 이른다. 한무제(漢武帝)가 방사(方士)인 이소군(李少君)으로부터 각로방을 전수받고는 이소군을 극진히 대우하였다.『漢書 郊祀志』 이곳이 선계와 같아서 달리 신선의 방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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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은【수근】에게 보냄 與李明恩【守桹】 전일에 돌아오는 행차는 편안하였는지요? 이어서 겨울이 장차 끝나가니, 경체(經體)의 기거하심에 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몹시 그리워하는 심정을 멀리서 가눌 길이 없습니다. 여러 번 돌보아주심이, 어찌 이리도 친절하고 은근하십니까. 그러나 기구하고 험난한 상황에서 온갖 사정에 묶여 있기에, 사례하는 뜻을 표하기 위해 한 번도 가지 못하였습니다. 감사하기도 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 간절합니다. 생각건대 남파선생(南坡先生)게서 후학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신 뒤로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는데, 유고(遺稿)가 다소 있으나 아직도 간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실로 유림(儒林)들의 잘못이니 개탄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듣자하니 존문(尊門)의 여러 군자들이 성대하게 생각을 말하여 미처 마치지 못한 일을 맡아주었다니, 참으로 문헌(文獻)의 고가(古家)에서 일을 처리하고 의(義)를 지키는 방법이 과연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사문(斯文)을 지키고 후학에게 은혜를 끼치는 일은 어떠합니까? 이미 일을 시작하였고, 권질(卷帙)이 많으니, 널리 전파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염려되는 마음이 절실할 따름입니다. 의림(義林)은 이른 봄 즈음에 한 번 직접 판각하는 곳을 찾아가서 하루 정도 연참(鉛槧)4)의 일을 돕고자 합니다만 이 몸의 상황을 말씀드리기 어려우니, 끝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曩也返次無撓。繼而冬令將暮。經體動止。茂納崇祉。馳溯耿耿。不任遠情累荷枉顧。何等鄭重。而惟此崎嶇險戲。局束百故。未得有一者回謝之行。感戢之餘。旋切主臣。伏惟南坡先生棄後學。日月已多。而多少遺稿。尙稽刊行。此實儒林之責。而不能無慨歎之私。仄聞尊門諸君子。蔚然發慮。營此未遑之擧。信知文獻古家。處事制義之方。果有以異於人也。其所以衛斯文惠後學爲何如耶。旣爲設始。則多其秩。可以廣其布。但未知事力爲何如耶。只切馳慮而已。義林第擬以開春。一番躬造於剞劂之所。以相一日鉛槧之役。但身故難狀。未知竟作如何也。 연참(鉛槧) 참(槧)은 목판이요, 연(鉛)은 연분필을 말한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양자운(揚子雲)이 항상 연필을 품고 목판을 들고 다녔다." 하였다. 여기에서는 목판에 문집을 새기는 작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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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백150)【창섭】이 관례를 행하는 날 적어서 주다 安慶伯【昌燮】加冠日題贈 안씨의 아들 태어나 십오 세가 되었으니 (安氏子生十五年)풍모는 속유의 모습에서 멀리 벗어났네 (風儀逈出俗儒邊)총각 머리 사랑스러움 가문으로 말미암고 (丱髦婉變由房戶)별 고깔 높게 쓰고 객연에서 술 따르네 (星弁頍峨醮客筵)간곡하게 네 가지 행실을 요구함은151) 그 덕을 이루기 위함이고 (責四諄諄成厥德)정연하게 세 가지 절차를 행함은152) 하늘에 근본한 것이네 (加三秩秩本於天)이름이 창섭이고 자가 경백인 것 무슨 뜻인가 (名昌字慶知何意)심은 것 북돋아 주는 이치 실로 당연히 이치라네 (栽者培之理固然) 安氏子生十五年。風儀逈出俗儒邊。卯髦婉變由房戶。星弁頍峨醮客筵。責四諄諄成厥德。加三秩秩本於天。名昌字慶知何意。栽者培之理固然。 안경백(安慶伯) 안창섭(安昌燮, 1874~?)이다.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경백이다. 네……요구함은 『소학』「가언(嘉言)」에 "성인이란 장차 아들이 되며 동생이 되며 신하가 되며 젊은이가 된 자의 행실을 요구하는 것이다. 네 가지의 행실을 사람에게 요구하려 하니, 그 예를 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成人者, 將責爲人子, 爲人弟, 爲人臣, 爲人少者之行也. 將責四者之行於人, 其禮可不重與?]"라고 하였다. 세……행함은 관례에서 행하는, 관을 세 차례 갈아 씌우는 의식을 말한다. 맨 처음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씌우고 다음에는 피변(皮弁)을 씌우고 마지막에는 작변(爵弁)을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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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도【종국】에게 답함 答邊致道【鎭國】 그대가 날 찾아온 이후로 세월이 벌써 많이 흘렀는데, 벗의 우아한 몸가짐이 항상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는 마음이 이처럼 지극함에 이르게 하는가. 한 마디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는데, 다만 이별한 이후로 병도 많고 일도 많아 조금도편안한 시절이 없어서 벗의 근후한 뜻을 저버린 것이 많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많은 책과 많은 경전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은 도를 밝히는 요점과 덕에 들어가는 문이 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침상 위에 침상을 놓고 지붕 위에 지붕을 이는 것처럼 이를 버리고 다른 방법을 구하려고 하는가. 대저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을 우선해야 하니, 이른바 뜻을 세운다는 것은 반드시 성인이 되는 것으로 기대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신을 작다고 여기거나 물러나 핑계를 대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네. 대저 그러한 연후에 큰일을 담당하여 용감하게 곧장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이른바 경(敬)을 주장하여 근본을 세우는 것이나 이치를 궁구하여 선을 밝히는 것 등은 모두 그 다음의 일이네. 뜻이 참으로 서지 않으면 비록 성인의 훌륭한 말씀이라도 오히려 어찌 내치지 않겠는가. 더구나 나처럼 어리석고 비루한 자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나 쓸 데 없이 덧붙인 말임에랴. 무거운 병을 앓고 난 뒤라 정신이 몽롱하여 붓 가는 대로 대충 쓰다 보니 글이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네. 깊이 헤아려주기 바라네. 自蒙枉願。日月非不久矣。而故人雅儀。未嘗不常常往來於心目之間。何令人致思一至於是耶。旦有一言之託。而別離以來。多病多故。無霎時妥帖時節。以負故人勤厚之意多矣。然旋念群書群經。千言萬言。無非明道之要。入德之門。何必舍此而別求方法。如床上之床屋上之屋乎。大抵學問。以立志爲先。所謂立志者。必以聖人期待。不可有一毫自小退托之念。夫然後可以擔當大任。勇往直前。所謂主敬而立本。窮理而明善。皆其次第事。志苟不立。雖聖人格言。尙且奈何不下。況如愚陋者瞽說贅言乎。重病之餘。精神矇矇。信筆胡草。言不達意。惟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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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출발하여 사동(蛇洞)11)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도중에 밤사이 지은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이날 저물녘 운교에 투숙하였는데(雲橋此日暮投身)낡은 주막은 쓸쓸하여 이웃이 적네(廢幕蕭條小結隣)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을 꿈꾸니(就寢不成鄕里夢)빈대가 우리 두세 사람을 물어대네(蝎虫侵我兩三人)윤경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만물 가운데 너는 몸이 가지고 있는데도(萬物之中爾有身)평생 미워하며 가까이 이웃하지 못하였네(平生可憎不近鄰)그놈은 살갗도 피도 없고 부르기도 더러운데(渠無膚血喚亦醜)아무 때나 품속에 들어와 몰래 사람을 무네(時入懷中暗噬人)이찬은 병으로 화답하지 못하였다. 국평(菊坪)12) 앞에 이르러 서울에서 내려오는 배덕손(裵德孫)을 만났다. 서서 몇 마디 나누고, 다만 입으로 소식을 전하였다. 평당(坪塘)13) 앞에 이르러 일행은 곧바로 객점으로 가고, 나는 평당의 일가 송필동(宋必東) 씨 집에 들러 잠시 얘기를 나누고 거기서 요기를 하였다. 하서(夏瑞)가 사는 마을을 상세히 묻고 객점으로 나와 일행과 출발하였다. 두치(斗峙)14)를 넘다 중도에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다.세 사람 중에 나만 유독 쫓아갈 수 없어서(三人我獨不能從)번번이 일행과 뒤처져 지팡이 하나만 짚고 가네(每後行裝但一笻)천천히 걸어서 오르고 올라 두치에 이르니(緩步登登臨斗峙)눈앞에 천만 개의 산봉우리가 펼쳐져 있네(眼前羅列萬千峰)굴암(屈岩)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도마교(逃馬橋)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날 60리를 갔다. 이날 밤에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發抵蛇洞店朝飯。 路吟夜間韻曰: "雲橋此日暮投身, 廢幕蕭條小結隣。 就寢不成鄕里夢, 蝎虫侵我兩三人。" 允卿次曰: "萬物之中爾有身, 平生可憎不近鄰。 渠無膚血喚亦醜, 時入懷中暗噬人。" 而贊病未和。 抵菊坪前, 逢裵德孫之自京下來。 立談數語, 只傳口傳消息。 抵坪塘前, 同行直往酒店, 余則入坪塘宗人必東氏家暫話, 仍爲療飢。 詳問夏瑞所居村名出來酒店, 與同行發程。 越斗峙, 路中吟一絶曰: "三人我獨不能從, 每後行裝但一笻。 緩步登登臨斗峙, 眼前羅列萬千峰。" 抵屈岩暫憩。 抵逃馬橋留宿。 是日行六十里。 是夜雨達夜。 사동(蛇洞) 전라남도 곡성군 고달면 대사리이다. 국평(菊坪)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국평 마을이다. 평당(坪塘)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군평리 평당 마을이다.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길로 '말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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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부사 박공【재원】에게 답함 答同樞朴公【在源】 책상 아래에서 인사드린 지 이미 한 해가 지난 듯하니, 늘 마음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뜻밖에 공의 손자께서 상중에 찾아와 주시고, 공의 편지를 또 소매에서 내어 전해 주었으니 너무나 감사하고 또 너무나 송구하였습니다. 많은 연세에 절선(節宣)하고 부지하는 모든 일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긋나고 형편없는 사람을 잊지 않고 굽어살펴 주심이 이처럼 정성스럽단 말입니까. 성대한 도량으로 감싸 주시는 것이 과연 상정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하여 수체(壽體)를 보양하여 신상(神相)이 편안하시다고 하니, 너무나 듣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가을부터 기침하는 증상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심해지기만 하고 차도가 없으니, 죽을 날이 필시 멀지 않았을 것이기에 다만 조용히 기다릴 따름입니다. 아, 가슴에 가득 쌓인 회포를 하소연할 곳이 없었는데 하소연할 수 있는 대상이 어른이 아니면 누구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정신은 혼미하고 숨은 가빠 한 자를 적는 것이 바둑알을 아홉 개 쌓는 것보다 어려우니 어찌합니까. 우선 남겨 두었다가 후일을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또 남은 날이 다시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로 보나 저로 보나 정신이 손상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어른에 비해 나이가 비록 적지만 노년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마땅히 많이 드시고 잘 조섭하여 영위(營爲)함이 없이 행동을 살펴보아 길흉을 상고하는 터전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도 궁극적으로는 또한 여기에 마음을 써야 하지만 박복한 천한 소생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拜違床下。洽已周歲。懷仰耿耿。昕宵無間。謂外賢抱棘人。委辱枉顧。尊函又自其袖中出。感感之至。旋切悚悚。大耋之年。節宣扶持。凡百爲難。而何以不忘醜差無狀之物。爲垂俯存。若是懇惻耶。盛度所包。果非常情可涯也。因審頤養壽體。神相康謐。尤協願聞之至。生自去秋。得咳喘之證。至于今日。有加無減。其爲溘然。必無多日。只當待之而已。嗚乎。滿腔積懷。無可告訴。而所可告訴者。非丈氏而誰耶。然而神昏氣促。作一字。艱於累九棊。奈何。姑且留之以待後日耶。又未知後日能復幾何。以彼以此。無非傷神處也。生之於丈氏。年紀雖不同。而其爲晩景則一也。只宜加餐善攝。無營無爲。以爲視履考祥之地。如何。生之究竟。亦未始不在於此。而賤生薄命。未知果爾否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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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윤에게 답함 答鄭周允 10년이 지나도록 서로를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활별(濶別 오랫동안 만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활별이 이와 같다면 거의 서로를 잊었으련만 잊지 못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하루라도 형 옆에 있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정이 본래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늘그막에 남겨진 시간이 거의 없건마는 앞으로의 활별은 더 심할 듯합니다. 우리 둘이 다시는 살아 있는 세상에서는 서로 볼 수 없겠지요. 형이 말씀하시는 "흙이 아니고 나무가 아니니 어떻게 마음을 가누겠는가."라는 것은 애초에 아우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지난가을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호)가 형의 편지를 보내주어 인하여 형이 근래 머리 아픈 일 없이 지내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험난한 세상에 어찌 이것보다 좋은 소식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당시에 앓았던 병환은 과연 일찌감치 일상을 회복하여 줄곧 평안하신지요? 형제가 책상을 마주하고 노년에 덕을 닦아나가는 것이 더욱 정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우는 노쇠한 징후가 갑자기 이르고 기침이 잦고 숨이 가쁜 증상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베개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으니 단지 아직 식지 않은 시체일 뿐입니다. 보내신 편지에 자세하게 의리(義理)를 죄다 말씀하셨는데 아주 명명백백하여 덕으로 사람을 아끼는 군자의 지극한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유종(儒宗)의 말에 관해서는 이보다 앞서 참으로 이미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옳은 듯하지만 그릇된 것입니다. 옳은 듯하기 때문에 사람을 미혹하기가 쉽습니다. 하물며 한 시대의 명망을 짊어진 입장에서 옳은 듯한 말을 하여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에 호응해준다면 어느 누가 그를 흠모하면서 기꺼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혀를 찰 괴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十年不相見。此非濶別耶。濶別如此。幾乎相忘。而心心念念。無一日不在於兄邊。此人情之所固然耶。葉楡殘景。所餘無幾。而前頭之濶似復甚焉。吾兩人。其不得復以陽界相見耶。兄所謂非土非木。何以爲心者。未始非弟之語也。前秋松沙送兄書。因審兄近來經過無撓。險世好消息。何踰於此。但其是有所愼之節。果能趁早復常。一味泰平否。聯棣對床。老年進德。想益邃密也。弟衰徵驟至。咳嗽喘促。日甚一日。伏枕叫囈。特一未冷尸耳示喩縷縷。說盡義理。十分明白。可見君子愛人以德之至意也。所謂儒宗之言。前此固己聞之矣。天下最可畏者。似是之非。似是故惑人易。況以一時負望之地。而持似是之說。以中其嗜利之心。則孰不欣慕而樂從之哉。可謂咄咄怪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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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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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55년 김덕렴(金德濂)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德濂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德濂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金德濂)을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 추증(追贈)하며 내린 교지(敎旨)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은 증직(贈職)되었다. 즉, 이 문서의 맨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曾祖考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바로 그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 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의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김응상은 종2품 가선대부로 임명되었고 그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은 정3품의 통훈대부로 봉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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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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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97년 김영술(金永述) 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酉巳月十七日 丁酉巳月十七日 金永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97년에 김영술 등이 척숙에게 보낸 서간 1897년(고종 34) 4월 17일에 김영술(金永述)과 김영달(金永達)이 척숙(戚叔)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상중(喪中)에 보낸 편지로, 봄에 표숙(表叔 고모부)이 돌아가는 편에 부친 편지는 받아 보았을 것이라며, 다가오는 여름철에 상대방의 건강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봄에 일어난 산변(山變)은 지금까지도 떨리는 패악한 일이라며 장사 지낼 곳을 어디로 정할지도 걱정이라고 하였다. 고애자(孤哀子)인 자신들은 종상(終祥)이 목전에 닥치니 슬프고 우울한데, 거기에 어린 누이가 방광(膀胱)의 습담(濕痰)으로 종기가 생겨 여러 차례 위험은 넘겼지만 낫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흉년을 만나 살길이 더욱 막막하니 당장 구렁텅이에 뒹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하늘의 공도(公道)를 의지하여 연명할 뿐이라며 다음 달 초로 임박한 종상에 제수와 변제(變制)를 자식된 자로서 그만둘 수 없어 여러 번 생각 끝에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하였다. 이번에 가는 도(都) 노인은 선인(先人)때 부터 한 집안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니 편지를 가지고 가서 대신 자세히 말할 것이니 딱한 사정을 잘 물어보라고 하였다. 숙부가 염치가 없다고 물리치면 제사를 지내지 못할 것이니 아무쪼록 조처해 달라고 거듭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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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여주에게 답함 答吳汝周 보내주신 편지에 운운하였는데, 사람이 타고난 자품(姿稟)은 대개 온전히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기 마련이니, 마치 강경(强勁)한 사람은 너그러움이 부족하고 온화(溫和)한 사람은 엄숙하고 굳센 의지가 부족하고, 박실(朴實)한 사람은 총기와 민첩함이 부족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중지(中智) 이하는 면할 수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성현(聖賢)이 지은 여러 책과 경전이 모두 기질(氣質)을 바로잡는 방책이 아님이 없는 까닭입니다. 하늘과 사람은 한 가지이니, 그 체(體)는 본래 한량이 없고, 그 용(用)은 본래 쉼이 없는데, 다만 사람은 형질(形質)에 국한되고 물욕(物欲)에 구애됩니다. 지극히 커지게 되면 작아지고 지극한 건도(乾道)에 이르면 쉬게 됩니다. 작아지기 때문에 사물과 내가 가로막혀서 극벌원욕(克伐怨慾)81)의 사사로움이 있고, 쉬게 되기 때문에 도(道)와 기(器)가 서로 어긋나서 나태하고 방만하게 되는 잘못이 있게 됩니다. 무지몽매하여 마치 취한 듯, 꿈꾸는 듯 합니다. 그러나 반성하는 방법을 구하여 본다면 과연 '관(寬)'과 '경(敬)' 두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거듭 상세하게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示喩云云。人生姿稟。蓋難全備。有所長則必有所短。如强勁者欠寬裕。溫和者欠嚴毅。朴實者欠警敏。此中智以下所不免。是以聖賢所著羣書羣經。無非所以矯捄氣質之方也。天與人一也。其體本無限量其用。本無停息。但人爲形質所局。物欲所拘。至大者小。至乾者息。小故物我橫隔。而有克伐怨欲之私。息故道器相悖。而有怠惰放慢之失。貿貿蚩蚩。如醉如夢。然求其所以反省之方。則果不外乎寬敬二字矣。更爲詳之。 극벌원욕(克伐怨慾) 《논어》 〈헌문(憲問)〉에 나오는 말로, 각각 호승심(好勝心)과 자긍심(自矜心)과 원망하는 마음과 욕심내는 마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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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중숙71) 【시묵】에게 답함 答梁仲淑【時默】 금옥같은 형제가 말채찍을 나란히 하여 방문해 주어 누추한 방에서 촛불을 밝힌 것이 많았을 뿐만이 아니었네. 스스로 생각건대 비천하고 용렬한 내가 조금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능히 자주 그대 집안의 여러 장덕(長德)에게 달려가 안부를 묻지도 못했는데, 도리어 그대 형제가 배척하여 버리지 않는 대우를 받음이 이와 같으니, 매우 두렵고 부끄럽네. 뜻밖에 거듭 보내준 편지를 받고 이에 조모와 모친께서 강녕하신 줄 알았으나 다만 백씨(伯氏)의 오랜 병이 근래 다시 심해졌으니, 매우 염려가 된다네. 화락한 군자를 신명이 위로하여 온갖 상서가 모일 것이니, 어찌 별것도 아닌 병마가 감히 스스로 그 기량을 부리기를 이 같이 지루하게 함이 있겠는가? 가만히 보건대, 자질이 아름답고 뜻이 두터워, 삼가고 신칙함은 넉넉하고 학문하여 강론한 공은 더욱 계속 진보할 것인데, 무단히 잘못 없이 생긴 병으로 고뇌하게 되어 시일을 허비한 것이 적지 않으니 매우 애석하고 애석하네. 오직 바라건대 심기를 평안히 하여 때에 맞게 약을 먹으면서 해로운 것은 통렬히 끊고 빠른 효험을 바라지 않되, 시일이 지나면 절로 온전해 질 날이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의리상 마땅히 몸소 나아가 조리하는 절도를 살펴보아야 하지만 한결같이 골몰하여 떨쳐 일어날 길이 없으니, 평소 서로 향하는 정의가 아닌 것을 어찌하고 어찌하겠는가? 金昆玉季。聯鞭左顧。陋室燭跋。不啻多矣。自惟淺劣居在數喚地。未能種種趨省於尊門長德諸位之下。而反蒙賢昆季所以不相擯棄者如此。悚慙萬萬。謂外荐承惠幅。仍審雙幃康寧。而但伯氏美痾。近復添劇。奉慮奉慮。愷悌神勞。百祥攸集。而豈有幺麽竪子。敢自騁其伎倆。若是支離耶。竊覸質美意厚。謹勅有餘。而學問講修之功。益進進無端爲無妄所惱。曠廢時日不少。可惜可惜。惟願安心平氣。時進藥餌痛絶忌害勿求速效而時去日來自當有全勝之日矣。如何。理合躬造。省視調劑之節。而一味滾汨。末由振作。其非平日相向之誼。奈何奈何。 양중숙(梁仲淑) 양시묵(梁時默, 1869~?)을 말한다. 자는 중숙,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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