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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심【동일】에게 보냄 與奇道心【東一】 얼마 전 감사하게도 좋은 과일을 보내서 병중에 있는 사람의 입맛을 돋우어 주시고 뒤이어 얼마 되지 않아서 친히 왕림하여 병상(病狀)을 물으셨습니다. 이러한 성의는 절대 우연이 아니니 감사한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댁에서 지난번에 겪은 일은 실로 사람의 도리로는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찢어질 듯한 심정을 어떻게 견디고 계십니까. 정경(情景)을 생각하면 사람을 눈물짓게 합니다. 그러나 장수와 요절은 천명(天命)에 달려 있고 서참(舒慘)35)은 운수(運數)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어찌 인력(人力)이 용납되겠습니까. 바라건대 모름지기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많이 드시면서 잘 조섭하여 만년(晩年)의 옥체를 보호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사를 잇는 일36)은 우리 형이 당장 치러야 하는 큰일이고 만년의 급선무입니다. 늦추지도 말고 서두르지도 말아 사의(事宜)에 알맞게 하십시오. 日者。惠送佳果以助病味。繼而未幾。親自枉屈。以問病狀。此意極不偶然。感感何喩。宅上曩者所遭。實是人理所不忍當之事。其如割之情。何以堪遣。言念情景。令人動涕。然脩短有命。敍悿有數。此豈人力可容之地耶。望須寬心坦懷。加餐善攝。以爲珍葆晩景之地。如何。繼後一節。此是吾兄今日之大事。晩年之急務。無緩無速。以適其宜也。 서참(舒慘) 《문선(文選)》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사람이 봄과 여름에는 쾌활하고 즐거우며, 가을과 겨울에는 근심에 젖고 슬퍼한다.【夫人在陽時則舒, 在陰時則慘.】"라고 하였는데 복(福)과 화(禍), 상(賞)과 벌(罰), 낙(樂)과 고(苦), 청(晴)과 음(陰), 풍(豐)과 겸(歉) 등 두 개의 대립되는 개념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 후사를 잇는 일 직계의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여 가계(家系)를 잇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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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준【도흠】에게 답함 答鄭士遵【道欽】 세월이 덧없이 흘러서 가을도 이제 저물어가고 있네. 이러한 때에 뜻하지 않게 편지 한 통을 받게 되니 고마운 마음 그지없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근래에 매우 좋다고 하며, 남은 힘으로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배워 날로 훌륭한 경지에 나아간다고 하니, 더욱 듣기 원하는 바라네. 그대의 조카92)는 잘 자라는가. 풍골이 장대하니 반드시 큰 그릇이 될 것이네. 바라건대 잘 인도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대 사촌의 건강도 또한 편안하신가. 항상 깊이 그리워하네. 공자는 "제자는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공손하며 행동을 조심하고 믿음을 주며 널리 대중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깝게 해야 하니, 이렇게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곧 글을 배워야 한다."93)라고 하였네. 이 말은 실로 집에서 거처할 때 일상생활에서의 제일가는 말이니, 모름지기 이에 의거하여 과정을 만들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간단(間斷)이 없어야 하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인의 말은 비록 매우 평이하지만 그 포함하는 의미는 다하지 않음이 없으니, 시험 삼아 몇 년간 힘을 쓴다면 그 말이 나를 속이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네。편지 말미에 한 마디 해 달라고 하니, 그러므로 삼가 이런 말을 하였네. 流光荏苒。秋令垂暮。際玆一書。獲之不意。感豁之至。不能名喻。仍審侍省候度。邇來崇適。而餘力溫知。日就佳境。尢副願聞。令咸善茁否。風骨峻茂。必成偉器。辛善爲提引如何。令從氏諸節。亦安迪耶。每切馳戀。孔子曰。弟子入則孝。出則弟。謹以信。泛愛衆而親仁。行有餘力。則以學文。此一語。寶爲居家日用第一語。須依此作課程。勿令少有間斷如何。聖人之言。雖甚平易。而其包涵無所不盡。試用幾年之力。則可知其不我欺也。紙未有一言之云。故謹此及之耳。 조카 '영함(令咸)'은 남의 조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완적(阮籍)의 조카 완함(阮咸)이 재명(才名)이 있었으므로, 남의 조카를 아함(阿咸)이라 부르게 되었다. 제자는……한다 《논어》 〈학이〉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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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 전에 또 비가 내렸다. 그러므로 이에 아침밥을 먹고 출발하여 원동(院洞) 앞에 이르렀다. 일행은 곧바로 광청(廣淸)6) 객점에 이르고, 나는 원동 이 상인(李喪人) 집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담제(禫祭) 중이었다. 먼저 제때 와서 위로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잠시 얘기를 나눈 뒤에 나와 객점으로 왔다. 거기서 요기를 하고 출발하였다. 용계(龍溪)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밤에 다음과 같이 절구 1수를 읊었다.집 떠난 지 나흘 만에 용계에 도착하였으니(離家四日到龍溪)채찍질 바투 해 말을 몰아도 해는 이미 서산이네(促鞭長驅日已西)주인집엔 특별히 천하절색의 인물이 있으니(主家別有奇觀物)아름답고 교태로운 자태의 출가하지 않은 처자라네(美貌嬌態年未笄)이찬이 〈초하루〉 시에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일이 의심나는 부분이 있어 묻고자 출발하였으니(事逢疑處問發程)세 사람 중 반드시 내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네(三人必有我師行)호남 유현은 다행히 우리 선조의 아름다움 천명하였는데(湖儒幸闡吾先美)언제쯤 동학서원에 배향될 수 있으려나(東學何時享禮成)윤경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예전에 우리 동지가 앞서 노정을 떠난 적 있으니(昔我同志有前程)지금 사람은 그에 힘입어 이런 행차가 있는 게지(今人賴力在斯行)곧은 절개는 오랜 세월 응당 사라지지 않을 테니(苦節千秋應不昧)제현과 더불어 예를 반드시 이루리라 기약하네(期與諸賢禮必成)윤경이 '계(溪)' 자 운에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어둑어둑 찬 기운이 날 즈음 용계에 도착하였으니(冥色生寒到龍溪)사람은 수척하고 말도 지치고 해는 벌써 서산이네(人瘦馬困日已西)우리 종중에 애타는 어린 처자가 하나가 있으니(吾宗斷腸一少娥)나이 열여섯이 되도록 아직 비녀를 꽂지 않았네(年可二八未爲笄)이찬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맑은 시내 건너 용계에 이르렀으니(淸溪果渡到龍溪)며칠 만에 우리 행차 호서로 들어섰네(幾日吾行入湖西)꽃을 보고 어찌 나비가 향기를 탐하지 않겠는가만(看花孰非探香蝶)자기 마음속에 먼저 혼인할 뜻이 있어야지(自家心中先有笄) ○朝前亦雨。 故仍朝飯發程, 抵院洞前。 同行則直抵廣淸店, 余則入院洞李喪人家, 尙在禫中矣。 先謝其趁未來慰, 暫話後出來酒店。 仍爲療飢發程。 抵龍溪留宿。 行六十里。 夜吟一絶曰: "離家四日到龍溪, 促鞭長驅日已西。 主家別有奇觀物, 美貌嬌態年未笄。" 而贊次《初一日》韻曰: "事逢疑處問發程, 三人必有我師行。 湖儒幸闡吾先美, 東學何時享禮成。" 允卿次曰: "昔1)我同志有前程, 今人賴力在斯行。 苦節千秋應不昧, 期與諸賢禮必成。" 允卿次溪字韻曰: "冥色生寒到龍溪, 人瘦馬困日已西。 吾宗斷腸一少娥, 年可二八2)未爲笄。" 而贊次曰: "淸溪果渡到龍溪, 幾日吾行入湖西。 看花孰非探香蝶, 自家心中先有笄。" 광청(廣淸)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昔 저본은 '借'로 되어있으나 앞뒤 문장의 호응과 문맥의 흐름에 따라 '昔'으로 수정하였다. 八 저본은 '人'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따라 '八'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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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에게 답함 答李光彬 지허(至虛)하면서도 지실(至實)하고 지무(至無)하면서도 지유(至有)하고 지일(至一)하면서도 지만(至萬)한 것이 보존되고 지동(至同)하면서도 지이(至異)한 것이 보존되는 것이 이(理)의 본래 체단(體段)입니다. 기(氣)는 단지 이 모든 것을 싣는 지반(地盤)일 뿐입니다. 운행의 수단이 어찌 이(理)와 대치하고 병립하며 동(同)과 이(異)로 형태가 나뉘고 체(體)와 용(用)으로 각각 유지되겠습니까. 세상에서 기를 위주로 여기는 자들은 으레 허(虛)를 이(理)라고 하고 실(實)을 기(氣)라고 하며 무(無)를 이라고 하고 유(有)를 기라고 하며 지일(至一)을 이라고 하고 지만(至萬)을 기라고 하며 지동(至同)을 이라고 하고 지리(至理)를 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모호하고 분별이 없는 사물로 간주하여 주도하고 재제(栽制)하는 권한을 오로지 기로 돌리는데 이것이 근래의 폐단입니다. 형의 이러한 논의는 지난번 서신과 조금 다르지만 역시 지난번 서신의 뜻이 없지는 않습니다. "탕(湯), 무(武)가 본래의 성품을 회복30)하기 이전이 곧 기질(氣質)의 성(性)이다."라고 하고, 또 "같은 것은 이이고 다른 것은 기이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전날에 펼쳤던 기를 위주로 여기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깊이 성찰하여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至虛而至實。至無而至有。至一而有至萬者存。至同而有至異者存。此理之本來體段也。氣只是該載之地盤也。運行之手脚。何嘗與理對峙竝立。而同異分態。體用各持哉。世之主氣者。例以虛爲理。而實爲氣。以無爲理。而有爲氣。以至一爲理。而至萬爲氣。以至同爲理。而至異爲氣。使理爲一箇儱侗無分無別底物事。而主張栽制之權專。歸於氣。此近日之敝也。兄之此論。與前書差殊。而亦不無前書之意。其曰湯武反之之前。便是氣質之性。又曰同者理而異者氣。此非前日之主氣之意乎。千萬猛省而反之。 탕(湯)……회복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요순은 성품대로 한 분이고, 탕무는 돌이킨 사람이다.【尭舜性者也, 湯武反之也.】"라고 한 것을 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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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검【계온】에게 답함 答魏致儉【啓溫】 찾아와 주신 것이 계속되었는데 거듭 편지를 받았으니, 벗의 지성스러운 마음이 이렇게까지 지극하단 말입니까. 감사함이 마음에 새겨져 잊을 수가 없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부모님을 모시며 지내는 차에 정황이 더욱 평안한고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매우 듣기를 원했던 것에 부합하였습니다. 보내신 편지에서 "백년의 인간사에 한가한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하고, 또 "고요한 곳에서 독서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나, 한단지보(邯鄲之步)114)가 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읽으니 끝없이 감개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만일 성찰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道)는 잠시라도 멀리해서는 안 되고 마음은 잠시라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진실로 이것에서, 깊이 체득해 깨닫고 독실하게 지킬 수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깨닫게 되지 않음을 없을 것입니다. 어찌 반드시 한가한 날을 기다리고 고요한 곳을 가리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垂枉屬耳。荐被心畵。故人繾綣。一至是耶。感刻心頭不容忘己。仍審侍省之餘。震艮節宣增至。尤叶願聞來喩百年人事。閒日幾何。又曰非不欲就靜看書而恐不免爲邯鄲之步。讀之令人有感慨不盡之意。如非循省。說不得到此也。然道不可須臾離。心不可須臾放。苟能於此。體認之深。持字之篤。則無時無處而不自得焉。何必等待閒日。揀擇靜處耶。試思之如何。 한단지보(邯鄲之步) 자기의 본분을 버리고 남을 흉내 내면 두 가지를 모두 잃게 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 "그대는 수릉(壽陵)의 청년이 한단(邯鄲 趙나라 수도)에서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운 것에 대해 듣지 못하였는가? 한단의 걸음을 습득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걸음걸이까지도 잊어버리고 기어서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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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백에게 답함 答金毅伯 내 아이가 와서 그대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고 어버이를 기쁘게 모시는 절도가 더욱 복된 줄 갖추어 알았으니, 위안 되는 마음 실로 많았네. 편지에서 이른바 "뜻을 세움이 견고하지 못하여 게으름과 졸음이 함께 이른다."라고 한 이것은 경험하여 체득한 말이네. 무릇 지(志)는 기(氣)의 장수이니, 장수가 능히 기를 거느림에 절제와 호령이 확실하여 어지럽지 않으면 자잘한 졸병이 어찌 능히 그 사이에서 야유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른바 뜻을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상량(商量)한 곳이 있어야 하고, 대충 보아 넘겨 내 뜻이 이미 세워졌다고 여겨서는 불가하니, 어떻게 여기는가? 주자가 말하기를 "이 이치의 편안한 곳에는 많은 설이 필요 없거늘 어찌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라고 하였으니,38) 천년 뒤에 이 말을 음미해도 감발하여 탄식할 만하네. 《백파집(白波集)》39)은 아직 착수하지 못하였으니, 남겨두어 한가한 틈을 기다리고 있네. 家兒來。承惠幅。備審侍省怡愉。節宣益福。慰釋實多。示諭所謂立志不固。惰睡交至。此是經歷體認語。夫志者氣之帥。帥能率氣。其節制號令。截然不亂。則區區卒徒。安能揶揄於其間耶。然所謂立志。儘有商量處。不可草草看過。以爲吾志已立也。如何如何。朱子曰。此理安處。無多說話。如何如何。人自不曉。千載之下。諷味此語。可以感發悲歎也。白波集尙未下手。留俟閒隙矣。 주자가……하였으니 주자가 면재(勉齋) 황간(黃榦)에게 답한 편지의 내용인데, "이 이치의 중요한 곳에는 많은 설이 필요 없거늘 어찌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此理要處, 無多說話, 不知如何人自不曉.]"라고 되어 있다. 저본과는 글자의 출입이 있다. 《주자대전》속집 권1 〈황직경에게 답함[答黃直卿]〉에 나온다. 백파집(白波集) 백파(白波) 김재탁(金再鐸, 1776~1846)의 시문집으로, 2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1910년 손자 김홍기(金弘基), 김영조(金榮祚)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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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에게 답함 答黃景涵 접때 보여준 주자의 설 한 조목을 다시 생각해 보니, 그대가 말한 "비록 악[慝]이라 할지라도 또한 선[淑]에 뿌리를 두고 생겨난 것이다.……"라고 한 것은 주자의 본의가 아닌 듯하네. 내 생각으로는, 기질로 보면 기질은 부여받아 태어날 때 함께 생겨나는 것이라 때에 따라 있고 없는 것은 불가하니, 비록 발하지 않더라도 기질의 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불가하며, 성에 나아가 보면 순수하고 지선하니 기질의 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하네. 정자(程子)가 이른바 "사람이 태어나면서 기를 품부 받으면 이치상 선악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 가운데에 원래 이 선과 악이 있어서 상대하여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아마 이 뜻을 설파한 것이니, 어떻게 여기는가? 또 주자가 말한 "본연과 기질, 만수와 일본(本然氣質萬殊一本)"의 설에 대한 것은 그대의 설 또한 그렇지 않는 듯하네. 이 기질의 성을 만약 본연의 분수로 본다면 미발일 때 기질의 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그대는 그것을 의심하는가? 이미 "본연지묘(本然之妙)"라고 하고 또 "교운이생(交運而生)"이라 하였으니, 천하 만물의 본연의 분수는 실로 이미 '본연' 두 글자 속에 본디 정해져 있는 것이고 이른바 "교운이생"이라는 것은 기질의 분수가 만 가지로 다른 것이네. 기질의 분수가 만 가지로 다른 것 또한 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다만 이의 본연은 아니네. 어떻게 여기는가? 向日所示朱子說一條。更思之。賢所云。雖慝亦根於淑而生云云者。似非朱子本意也。愚意以氣質觀之。則氣質與生俱生。不可以隨時有無。雖未發。不可謂無氣質之性也。就性上觀之。則純粹至善。不可謂有氣質之性也。程子所謂人生氣稟。理有善惡。然不是性中元不此兩物相對而生者。恐是說破此義也。如何。且朱子所云本然氣質萬殊一本之說。賢說亦恐未然。此氣質之性。若作本然分數而看。則未發時。有氣質之性。固也。而賢其疑之耶。旣曰本然之妙。又曰交運而生。則天下萬物本然之分。固已素定於本然二字之中。而所謂交運而生者。是氣分之萬殊也。氣分萬殊。亦不可謂非理。而但非理之本然也。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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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 원세에게 권면하다 勉吳君源世 학문의 참된 도리는 하늘로부터 받나니 學問眞詮受上天공부는 결단코 지체해서는 안 된다네 下工斷可莫遷延치평174)은 결국 공효가 성대하기 그지없고 治平究竟功爲大효제는 원래 최우선으로 힘써야 한다오175) 孝悌由來務在先노친 봉양하고 밭 가느라 비록 겨를 없다 해도 養老服田雖不暇책 읽고 이치 궁구하는 데 어찌 인연이 없으랴 讀書究理豈無緣천리 밖에서 종유하지만 우의를 잊기 어려우니 相從千里難忘誼새 시를 가져다 준 건 우연한 뜻이 아니라네 持贈新詩匪偶然 學問眞詮受上天, 下工斷可莫遷延.治平究竟功爲大, 孝悌由來務在先.養老服田雖不暇, 讀書究理豈無緣?相從千里難忘誼, 持贈新詩匪偶然. 치평(治平) 《대학장구(大學章句)》의 팔조목(八條目) 가운데 마지막 완성 단계인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합칭한 말이다. 팔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 평천하를 이른다. 효제(孝悌)는……한다오 《논어》 〈학이(學而)〉에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무니,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서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다.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생기는 것이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것은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하였는데, 이를 차용한 것이다. '제(弟)'는 '제(悌)'와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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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생일을 만났는데 이때 나이 육십 세였다 旅中逢生朝 時年六十 마음에 허물과 후회가 숲처럼 어지러우니 心頭咎悔亂如林모두 중간에 촌음을 아끼지 않은 탓이네 總在中間不惜陰끝났구나 신령한 단약은 소식 없는데 已矣靈丹無信息외구가 괴롭게 침범하니 어이하랴 其如外寇苦侵尋육십 세의 장부 나이는 꽉 찼고 丈夫六十年光滿곡례 삼천 가지169)는 의리가 깊구나 曲禮三千理義深억 시의 경계170)로도 고인의 자취 찾을 수 있으니 抑戒猶堪追古蹟객창에서 생일날 부질없이 시를 읊조리네 旅窓弧日謾成吟 心頭咎悔亂如林, 總在中間不惜陰.已矣靈丹無信息, 其如外寇苦侵尋.丈夫六十年光滿, 曲禮三千理義深.抑戒猶堪追古蹟, 旅窓弧日謾成吟. 곡례(曲禮) 삼천 가지 곡례는 세세한 절목의 예절을 말한다. 《예기》 〈예기(禮器)〉에 "큰 절목의 예의가 3백 가지요, 세세한 절목의 예절이 3천 가지인데, 그 정신은 하나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其致一也.]"라고 하였다. 또 《중용장구》 제27장에도 "크고 넉넉하도다. 예의가 3백 가지요, 위의가 3천 가지로다.[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라고 하였다. 억(抑) 시의 경계 〈억〉은 《시경》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위 무공(衛武公)이 95세가 되었는데도 이 시를 지어 악공(樂工)에게 날마다 곁에서 노래하게 하여 스스로 위의(威儀)와 공경(恭敬)을 다하여 조금이라도 방심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경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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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으로 가는 중에 길을 헤매다 益山行迷路 반일 동안 녹음이 무성한 숲을 뚫고 가다 半日行穿翠密間갈림길에서 길 헤매니 마음이 괴롭구나 臨岐迷失惱心官사람 만나면 번번이 번다한 일을 물으니 逢人輒問飜多事그림자 돌아보고 탄식하며 잠시도 한가롭지 못하네 顧影相歎暫不閒문자는 세 번 생각하면 도리어 의혹이 생기고384) 文子三思歸反惑정현은 두 번 헤아리고는 처음이 진실임을 알았네385) 程賢再數覺初眞도맥을 찾기 어려움도 이와 같으니 難尋道脈亦如此오로지 정밀히 밝혀 이치를 연구함으로 돌아오는 데 있네 亶在精明格致還 半日行穿翠密間, 臨岐迷失惱心官.逢人輒問飜多事, 顧影相歎暫不閒.文子三思歸反惑, 程賢再數覺初眞.難尋道脈亦如此, 亶在精明格致還. 문자는……생기고 세 번 생각함은 아주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계문자가 세 번 생각하고 행하였다.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두 번이면 가하다고 하였다.[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再斯可矣.]"라고 하였다. 정현(程賢)은……알았네 정현은 어진 정자(程子)를 말하는 것으로, 명도(明道) 정호(程顥)를 가리킨다. 《근사록(近思錄)》 〈존양(存養)〉에 "백순(정호)이 예전에 장안의 창고 안에 한가로이 앉아서 긴 행랑의 기둥을 보고 마음속으로 세었다. 이미 의심이 없었으나 다시 세어 보니 맞지 않자 사람으로 하여금 일일이 소리 내어 세어 보게 하였는데, 결국 처음 세었던 것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한즉 마음을 두어 잡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안정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伯淳昔在長安倉中閑坐, 見長廊柱, 以意數之. 已尙不疑, 再數之, 不合, 不免令人一一聲言數之, 乃與初數者無差, 則知越著心把捉, 越不定.]"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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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윤【익모】에게 보냄 與具德允【翼謨】 새봄이 온 지 이미 오래이건만 아직도 벗과 서로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겨를 없이 분주하였고 이와 더불어 차질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영정(詠亭)에 머물 때부터 또한 이따금 서신이 있었지만 길이 어긋나는 것으로 말미암기도 하고 복잡한 일에 연루되기도 하여 여전히 문안을 여쭙는 의절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인편이 이르러, 삼가 부모를 모시고 지내는 체후가 한없이 큰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윤(賢胤 상대방의 맏아들)과 영함(令咸 상대방의 조카)은 잘 자라고 학과에 열중하여 조부모님과 부모님에게 기쁨을 드리는지요? 간절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의림(義林)의 고달프고 퇴락한 처지는 얘기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신암유고(愼庵遺稿)》56)는 한 차례 정리하였지만 제대로 교정을 하지 못하였으니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한 번 가지고 와 저와 함께 평가하면 어떻겠습니까. 서문(序文)은 감히 인색하게 굴려는 것이 아니라 삼가 대방 거수(大方巨手)를 구하여 조금이라도 널리 알리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벗께서 운운하신 것이 있다고 들었으니 힘이 닿는 대로 글을 지으셔야 할 따름입니다.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見新春已久。而尙未與故人相見。莫非奔汨無逞而與之差池故也。自住詠亭。亦不無種種便紙。而或因迂違。或坐悤撓。尙未有候問之儀。尋常未安。便到。謹審省候茂納崇嘏。賢胤令咸。善茁善課。爲重庭供悅否。馳溯不在。義林勞碌頹塌。無可言者。愼庵遺稿櫛過一番。編校未善。想不無多少礙眼。幸一者携來與之對評。如何。序文非敢斳惜。竊欲得大方巨手。以揄揚其萬一也。聞吾友有所云云。第當隨力下筆。諒之如何。 신암유고(愼庵遺稿) 하석홍(河錫洪, 1786~1834)의 문집이다. 하석홍의 자는 성칙(聖則), 호는 신암(愼庵), 본관은 진양(晋陽)이다.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1819년(순조19)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에 임명되고, 박사와 전적을 거쳐서 1825년(순조25)에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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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민75)【승호】에게 답함 答李道敏【承灝】 세변(世變)이 있은 이래로 차라리 잠들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아울러 쇠병이 오래되어 인사(人事)가 전부 멈춰버렸습니다. 심지어 일반적인 안부조차 백에 하나도 묻지 못하는 지경입니다. 그런데 매번 우리 형께서 저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먼저 안부를 물으시니 그때마다 놀라서 스스로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옛날에 종유(從遊)를 했던 즐거움과 오늘날 천지를 뒤덮는 변고에 대한 탄식에 대해서, 보내주신 서한을 여러 번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목메어 울었습니다. 천하의 이치 가운데 혼란을 겪고도 다스려지지 않고 가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논의는 없습니다. 강직하고 정대하며 정직하고 방정한 기운은 또한 충분하고 넉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충고와 책임 운운하신 일이야 어찌 저같이 우매한 자가 감히 맡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나의 학문을 더욱 강구하고 나의 뜻을 더욱 굳게 하여 세상이 어려울 때 서로를 기약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 이것이 저의 보잘것없는 바람입니다. 自世變以來。寧寐無訛。兼以衰病支離。人事都廢。至於尋常問訊。百不修一。每承吾兄不較先施。輒瞿然自疚。昔時遊從之樂。今日懷襄之歎。三復惠狀。不覺嗚咽。天下之理。未有亂而不治。往而不復之論。其剛大直方之氣。亦可以七分約綽矣。規責云云。豈昏昏所敢當。惟益講吾學。益堅吾志。無負歲寒相期之意。是所區區。 이도민(李道敏) 도민은 이승호(李承灝, 1836~1886)의 자이다. 본관은 광주(光州), 호는 취호(醉湖)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선생문집》 권37에 〈취호이공묘갈명(醉湖李公墓碣銘)〉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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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삼【기태】에게 답함 答朴允三【淇台】 반년 사이에 두 차례나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이것은 전에 없던 일입니다. 여풍(餘風)을 그대로 이어가 이제부터 끊임없이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받은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경전(經典)을 익히며 지내는 안부가 평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합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일생이 이미 저물었다는 것이 마음 아프고 뜻한 일을 이루기 어려운 것이 서글프다."라는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읊조리려니 저로 하여금 끝없이 서글픈 감회가 일어나게 합니다. 아, 이것은 고금에 걸쳐 모두의 근심거리였으니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좌우(左右 상대방을 가리킴)의 입장에서 이 사람과 견준다면 한창 솟아오르는 해와 같습니다. 어찌 늦음이 있겠습니까. 저를 전철(前轍)로 삼아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농은기(農隱記)〉는 이처럼 글이 서툰 사람이 어찌 감히 손을 대겠습니까. 다만 간절한 뜻을 저버리기 어려워 대략 이렇게 추태를 보였습니다. 半歲之間。得再往復。此是前未所有。未知因仍餘風。從此源源否。未審書后有日。經履衛重。遠溯彌至。來喩感年華之已晏。悼志業之難成。此一句三復諷詠。令人有悵然不盡之懷。嗚呼。此是古今通患。其能脫然於此者。有幾人哉。然以左右而視此漢。則猶爲方升之日也。夫何晏之有。視作車鑑。俾不至靡逮之地。如何如何。農隱記。以若不文。何敢下手。但勤意難孤。略此露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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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중【진휴】에게 보냄 與李善仲【進休】 봄이 한창인 요즘 몸은 편안한지요?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칠 수가 없습니다. 의림(義林)은 한결같이 병에 신음하는 것이 날마다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理)란 무엇입니까? 매양 선중(善仲)이 빈손으로 힘써 일하면 살아갈 이치가 조금씩 모여들 것이니 이것이 위로될 만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사업은 스스로 있는 것이니 어떻게 구구하게 입고 먹는 계책에만 그칠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고요한 한 칸 방에서 토론하고 다소의 글을 저술하고 몸소 밭을 간 뒤에 여력이 있으면 매양 깊은 이치를 완미하는 공을 더하여 조용히 수양하며 암장(闇章)97)의 실질이 있도록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대와 그대의 집에 있어 첫 번째 계책이 될 것입니다. 만약 자신과 자신의 집에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일체 쓸어버려 그만두고 함께 교유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이 오늘의 효상(爻象)에 있어서 더욱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卽惟春殷。體事佳迪。瞻溯無已。義林一病沈綿。日以甚焉。理也何爲。每念善仲赤手拮据。生理稍集。此可慰慰。然人生事業。自有所在。豈止於區區喫着之計而已也。須討靜室一間。蓄多少文字。躬耕餘力。每加沈玩溫理之功。俾有潛修闇章之實。此是身家第一策。若其無關於身事家事者。一切掃斥。不與之交涉。如何。此在今日爻象。尤宜留念也。 암장(闇章) 《중용(中庸)》 33장에 나오는, '암연이일장(闇然而日章)'의 준말이다. 군자는 도덕이 심원하여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지만 도덕이 속에 있기 때문에 날로 그 빛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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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아침 전에 출발하여 묘치(猫峙)7)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곡성 읍내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중주원(中周院)을 넘어 나루터 객점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였다. 도중에 절구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이제 가서 배를 기다리지 않기를 어찌 바라겠는가(幸何今行不待舟)뱃사공이 나를 강 가운데로 떨어뜨려 놓았네(梢工敎我阻中流)순강8)을 건너 다급하게 객점을 빌렸으니(蓴江利涉蒼店借)제날짜에 동학서원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겠지(趁日可參學院遊)이찬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가는 길 재촉하여 작은 배에 올랐으니(促我征鞭登小舟)남쪽 회수(淮水) 한 줄기 동방으로 흐르네(南淮一帶大東流)용성 북쪽에는 계룡산이 우뚝 서 있으니(鷄山屹立龍城北)제현과 함께 단란하게 모여 유람하길 기약하네(期與諸賢欒會遊)운경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빛나는 모래섬으로 달려가 배를 타고 건너(馳入光渚利涉舟)한낮에 순강에서 중류로 내려갔네(蓴江日午下中流)우리 선조의 일을 꼭 이루리라는 뜻을 가지면(有志必成吾先事)호서로 나선 오늘 행차가 헛된 유람이 아니리라(西出今行非浪遊)창화(昌華)에 이르러 길에서 유둔(油屯)9) 시장 변두리 사는 오재권(吳在權)이 전주에서 내려오는 편에 만났다. 길 가는 도중인 관계로 집에 편지를 부칠 수가 없어서 다만 말로 소식을 전하였다. 저물녘에 운교(雲橋)10)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밤에 빈대[蝎]가 많을까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 없어 몹시 짜증이 났다. ○朝前發程, 抵猫峙店朝飯。 抵谷城邑內暫憩。 越中周院, 中火于津頭酒店發程。 路中吟一絶曰: "幸何今行不待舟, 梢工敎我阻中流。 蓴江利涉蒼店借, 趁日可參學院遊。" 而贊次曰: "促我征鞭登小舟, 南淮一帶大東流。 鷄山屹立龍城北, 期與諸賢欒會遊。" 允卿次曰: "馳入光渚利涉舟, 蓴江日午下中流。 有志必成吾先事, 西出今行非浪遊。" 抵昌華, 路上逢油屯市邊吳在權之自全州下來便, 以路中之致, 不得付書于家中, 只傳口傳消息。 暮抵雲橋店留宿。 行六十里。 夜多蝎患, 不能秪枕, 憤憤。 묘치(猫峙)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에서 곡성읍으로 가는 고개로 '괘재'라고도 부른다. 순강(蓴江) 전라남도 곡성 일대를 흐르는 섬진강의 옛 이름으로 순자강(鶉子江)을 말한다. 저자는 '순강(蓴江)' 혹은 '순자강(蓴子江)'으로 썼다. 유둔(油屯)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유둔리이다. 옛날 동강 장터가 있던 마을로 벌교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운교(雲橋)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운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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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소27)【봉현】에게 답함 答權應韶【鳳鉉】 동쪽과 서쪽으로 천애(天涯)와 지각(地角)처럼 동떨어져 있어 우체편이 드물고 비록 있다고 해도 거개가 불시에 간다고 하여 우체 편에 따라 안부를 전하지 못한 것이 오래 되었네. 보통의 정으로 헤아려보면 마땅히 배척을 당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또 따지지 않고 간곡하게 안부편지를 보내주는 것이 이와 같이 끊임이 없으니,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에 부끄러움과 송구함이 아울러 지극하네. 더구나 나에 대해 일컬으며 장려하는 것이 실제에 너무 지나치니, 그대 같은 밝음으로 남을 위해 도모하는 충(忠)이 어찌 이러한 것인가? 의림(義林)은 젊어서는 노력하지 못하였고 늙어서는 알려진 것이 없이 좀먹어 떨어진 옷에 병충이 든 곡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어, 목거사(木居士)28)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멀다네. 그러나 내가 노년에 수습하려는 생각은 혹 무너져 벗겨지고 가려 고질이 된 가운데에서 종종 틈발(闖發)함이 없지 않아 어진 사우의 뒤에 인연을 맺으려 생각한 것이 어찌 끝이 있었겠는가? 오직 바라건대 그대는 힘써 더욱 자중자애 하시게. 東西厓角。便遞闊然。雖或有之。而擧皆不時吿行。未得隨便致候者。久矣。揆以常情。宜若見斥。而猶且不較。繾綣垂訊。若是源源感戢之至。愧悚傡至。況稱道奬借。過浮實際。以若左右之明。謀人之忠。何其乃爾耶。義林少而不力。老而無聞。蠹衣蝗粟。其不及木居士遠矣。然區區收桑之念。或不無種種闖發於頹剝蔽痼之中。思欲寅緣於賢士友之後者。豈有窮已哉。惟左右勉加自愛。 권응소(權應韶) 권봉현(權鳳鉉, 1872~?)을 말한다. 자는 응소, 호는 오강(梧岡),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목거사(木居士) 고목(古木)이 자연적으로 인형(人形)처럼 생긴 것을 사찰(寺刹)에 안치해 둔 것을 이르는데, 한유(韓愈)의 〈제목거사(題木居士)〉에 "물불에 타고 씻긴 게 몇 해인지 알 수 없는데, 밑동은 두면 같고 중동은 몸통과 같구나. 우연히 목거사라 적어 놓으니, 문득 복을 구하는 사람이 한도 없구려.[火透波穿不計春, 根如頭面榦如身. 偶然題作木居士, 便有無窮求福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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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에게 보냄 與黃景涵 주재(主宰)는 심(心)이고 주재하는 것은 성(性)이라는 것 이것은 나의 창견(創見)이 아니고 바로 주자의 말이네. 이것은 심성의 경계를 절단한 것이 지극히 분명하니, 어찌 입언(立言)의 본의를 궁구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지적하는 것이 가하겠는가? 보내온 편지에서 "심과 이로 말하면 구분이 없다고 이르는 것은 불가하지만 겨우 주재(主宰)라고 말하면 문득 심과 이가 합일한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한 단락은 명백하지 못한 점이 많네. 심이라는 것은 본래 주재의 이름이니, 주재 두 글자를 놓아두고 다시 따로 심이 없네. 지금 심과 이는 구분이 있다고 하면서 주재는 구분이 없다고 하였네. 그렇다면 이 심 자는 어떤 심이며, 이 주재는 어떤 주재인가? 또 "겨우 주재라고 말하면 문득 심과 이가 합일한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미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면 유독 나누어 둘로 만드는 것이 불가한가? 대저 심이 주재가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신령하기 때문인가, 이가 있기 때문인가? 그 근본을 근원해 보면 이이지만 당체(當體, 실체) 말하면 신령하기 때문이네. 바야흐로 당체에 나아가 말하면서 잘못 원두(原頭)의 설로 섞으니, 이것이 지루하여 귀숙할 곳이 없는 까닭이네. "묘용(妙用)의 행(行)이 이발(已發)이 된다.……"라고 한 것은 아마 그렇지 않을 듯하네. 심으로 말하면 실로 동정이 있지만 이로 말하면 일동(一動)과 일정(一靜)이 모두 유행하는 것이 되니, 다시 생각해 보시게. 主宰者心也。主宰底性也。此非愚之創見。而卽朱子之語也。此是截斷得心性界至。極其端的。豈可不究其立言之本意。而曲加指摘耶。來喩以心與理言。不可謂無分。而才曰主宰。便是心理合一處。此一段多未瑩。心者。本是主宰之名。舍主宰二字。更別無心。今曰心與理則有分。而曰主宰則無分。然則此心字。是何心。而此主宰是何主宰耶。且曰才說主宰。便是心理合一云云。旣合而一之。則獨不可分而二之耶。大抵心之爲主宰。是何故。以其靈故耶。以其有理故耶。原其本則理也。而言其當體則是靈故也。方就當體語。而枉以原頭說。混之。此所以支離而無歸宿也。妙用之行。爲已發云云。恐不然。以心言之。固有動靜。而以理言之。一動一靜。均之爲流行也。更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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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낙범【홍량】에게 답함 答魏洛範【洪良】 봄 사이에 이별하고서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도 그리워하는 마음 깊어 2~3년의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하네. 그런데 뜻밖에도 그대 사촌과 여러 공들이 지나가다가 들렀는데, 삼가 그대의 정성스러운 편지를 받들게 되었으니 그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네. 더구나 부모를 모시면서 기쁘고 화락하며 신령이 도와 건강하다고 함에랴. 남은 힘으로 공부를 함에도 또한 응당 멈추지 않고 부지런하여 날로 높고 깊게 발전할 것이네. 보낸 편지 가운데 '게으른 본성이 돌연 다시 싹터서 그 동안의 공이 흩어져 이전처럼 어리석게 되었다.'는 등의 말은 참으로 겸손함에서 나온 것임을 알겠으니, 어찌 고명 같은 자가 이런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일찍이 들으니, 선각의 말에 "학자는 기질에 지거나 습관에 마음을 빼앗기니 다만 그 뜻을 책망해야 한다."108)라고 하였으니, 잘 모르겠네만 이런 말을 일찍이 본 적이 있는가. '뜻을 책망한다.[責志]'는 두 글자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법으로 진전요결(眞詮要訣)이 되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春間分離。日月無多。而懹想之積。濶然若數三年之久。料外令從氏及諸公委過。謹承惠訊之勤。其爲感豁。無容言喩。矧審侍省怡愉。神相萬祉者乎。餘力居業。亦應慥慥不住。日就崇深也。示中閒懶本色。遽然復萠渙散。依舊阿蒙等語。固知其出於撝謙也。豈以高明而有是哉。然嘗聞先覺之言有曰。學者爲氣所勝習所奪。只可責志。未知會見此語乎。責志二字。此是衆人通法眞詮要訣如何。 학자는……한다 《근사록》 〈위학(爲學)〉에서 정자(程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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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정에서 제생들에게 주어 작별하다【5수】 詠歸亭贈別諸生【五首】 지금 수많은 현자들 전현을 배우고 (今賢濟濟學前賢)가을바람 부는 팔월에 서로 전송하네 (相送西風八月天)뜰의 잣나무 한 가지 꺾어 주어 보내니 (庭柏一枝持贈去)세한에 시들지 않는 푸른빛을 보리로다 (歲寒觀取色蒼然)영귀정에서 팔월에 뭇 현자들을 전송하니 (詠亭八月送群賢)갈대 무성하고 이슬 내리는 때에 각자 떠나네 (各去蒼葭白露天)앞길에는 말을 매어 놓을 곳 많지 않으니 (前程繫馬無多處)만 가닥 버들 가을에 놀라 모두 시들었으리 (萬柳驚秋摠薾然)공부하면 성현이 될 수 있거니와 (功夫爲聖可爲賢)부귀는 사람에 달렸고 또 하늘에 달렸네 (富貴在人又在天)무엇을 가볍게 여기고 무엇을 중시해야 할지 (何者爲輕何者重)그대들은 여기에서 환하게 볼 수 있으리라 (諸君於此見昭然)지혜와 어짊보다 아름답고 귀한 것이 없으니 (莫美於知莫貴賢)단지 나의 마음이 바로 현묘한 하늘이라네 (只吾方寸是玄天)다만 마땅히 힘써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니 (但當勉力求諸己)학문이 쌓이면 비로소 시원스레 관통함을 볼 수 있으리 (積累方能見脫然)무슨 까닭으로 어리석고 무슨 까닭으로 어질게 되는가 (何故爲愚何故賢)헤아려 보니 자기 때문이지 하늘 때문이 아니네 (算來由己不由天)그대 상자 안의 거울을 가져다 보라 (請君看取匣中鏡)보얀 먼지 닦아내면 다시 밝아지네 (磨去纖塵復瞭然) 今賢濟濟學前賢。相送西風八月天。庭柏一枝持贈去。歲寒觀取色蒼然。詠亭八月送群賢。各去蒼葭白露天。前程繫馬無多處。萬柳驚秋摠苶然。功夫爲聖可爲賢。富貴在人又在天。何者爲輕何者重。諸君於此見昭然。莫美於知莫貴賢。只吾方寸是玄天。但當勉力求諸己。積累方能見脫然。何故爲愚何故賢。算來由己不由天。請君看取匣中鏡。磨去纖塵復瞭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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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寅七月日 宋鎭澤 山在官 丙寅七月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山在官[着押] 4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66년(고종 3) 7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66년(고종 3) 7월에 전주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태인현 남면(南面) 반룡촌(盤龍村)에 있는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 근처에 그간 투장(偸葬)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의리(義理)로써 모두 파내었다. 그런데 뜻밖에 지난 4월에 투장이 또 발생했지만 지금껏 총주(塚主)를 못찾았다. 투총(偸塚)의 둘레를 파고 가시를 둘러치면 총주가 자발적으로 나타날 것이니, 이런 이유로 투총의 둘레를 파고 가시를 둘러치겠다고 송진택은 관에 탄원하였다. 이에 태인현감은 널리 총주를 찾아 법대로 처단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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