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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亞獻禮 謁者引亞獻官詣盥洗位 北向立 盥手 帨手引詣尊所 北向立 執尊者擧羃酌酒 引詣神位前 跪 執事者以爵授亞獻官 亞獻官執爵 獻爵 以爵授執事者 奠于神位 前 俯伏 興 引降復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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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享定日 每年 寒食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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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需目錄 幣帛【或紬或苧】 牲【或牛或豕】 祭酒【一斗】 稻米【五升】 黍米【五升】黃栗【或銀杏或乾棗】 鹿脯 鹿醢 魚脯 魚醢 菁葅韭菹 黃燭【三封】 油紙 黃筆【一柄】 眞墨【一丁】祝紙【二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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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원주 목사 화보 순 에 대한 만사 權原州和甫 淳 輓 황천에서는 사귀던 때를 묻지 말라덧없는 세상의 애환은 다만 한 순간일 뿐그대와 나 나이는 곧 예순 살인데제비와 기러기처럼 돌아갈 날은 서로 다르구나290)가르침 받던291) 선친의 묘소는 지척에 있고새 무덤에 칼을 건 가지292)는 막 자라나누나응당 알겠어라, 평소 은거하려는 뜻293)을 지녔으니남은 경사는 자손에게 남겨진 것을. 休於泉路問交期浮世悲歡只片時甲乙生年將六十鷰鴻歸日有參差先塋已窄趨庭地新壠初長掛釰枝應識平生攀桂志慶餘留待子孫爲 제비와……다르구나 제비는 여름 철새이고 기러기는 겨울 철새여서 서로 만날 수가 없는 것처럼 죽을 날이 다르다는 뜻이다. 가르침 받던 '추정(趨庭)'은 자식이 부친을 뵙고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홀로 서 있을 때에 아들 백어(伯魚)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趨而過庭], 공자가 그를 불러 세우고서 시(詩)와 예(禮)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침을 내렸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季氏》 새……가지 오(吳)나라의 계찰(季札)이 왕자로 있을 때 여러 나라를 사행하는 도중 서(徐)나라에 들르게 되었다. 서나라의 왕은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고, 계찰 역시 그가 검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행의 도중이라 주지 못하고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주리라 마음먹었다. 나중에 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나라에 들렀지만 이미 서나라의 왕이 죽은 뒤였다. 이에 계찰은 스스로 약속한 대로 검을 왕의 무덤가에 걸어 두고 왔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여기서는 별다른 뜻은 없고 무덤가 나무의 가지가 자랐다는 것을 말한다. 은거하려는 뜻 '반계(攀桂)'는 은자가 사는 곳을 상징한다.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에 "계수나무 가지 부여잡으며 애오라지 머무른다오.[攀援桂枝兮聊淹留.]"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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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함294)이 추향 후에 봉은사에서 노닐려고 배로 오가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 4수 次李汝涵秋享後遊奉恩寺舟行往還韻【四首】 진세의 일이 사람을 얽어매어 한가롭지 못해 괴로우니근심을 견디지 못하고 추향의 반열을 바라보노라두 왕릉에 제 올리고서 절을 찾으니삼복의 찌는 더위에 억지로 성문 나서네-원문 1자 결락- 은 온통 흰 돌인 낮은 여울을 내달리고강기슭은 길게 펼쳐진 갯벌을 끼고서 반쯤은 높다란 산이어라오늘은 물길 거슬러 -원문 1자 결락- 저어 나가고내일은 물살 타고서 노 젓지 않고 돌아오리라백 길 높이로 배를 끌어올려도 나는 절로 한가로우니강기슭에 누워서 울긋불긋한 화초를 바라보노라진세 벗어나니 바야흐로 탕 임금 그물 벗어난 듯295) 상쾌하고벼슬의 굴레는 무관에 갇힌 듯296) 근심스럽구나어젯밤 가을바람 하늘에서 불기 시작하더니옅은 가을색이 숲속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어라밝은 달이 이지러지기 시작함을 싫어하지 말라인간 세상에서 임술년297)을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성을 나왔다고 어찌 이 몸이 한가로울까시구는 마음을 억눌러 머리카락 새려 하네선유(船遊)는 끝이 없으니 읊조림도 멈추지 않고모래톱 새 쌍쌍이 나니 〈관저〉편298)을 읊조리누나가까운 방초, 먼 숲이 어여쁘며맑을 제 고운 모래밭 비 올 제 숲이 사랑스러워라경치는 사람을 홀려 수응을 다하지 못하니이곳에 와서 노닐어 돌아갈 줄 모르누나태평시대 무능하여 절로 한가로우니어찌 노심초사하며 억지로 반열을 넘겨볼까벼슬길은 나에게서 삼천 리 떨어져 있고세상길은 백이관299)보다 어렵구나좋은 벗과 만나 승경을 찾아가니파란 강, 푸른 산 대단히 아름다워라소선의 적벽이 이와 어떠한가일엽편주 띄워 한번 오가는구나 塵事牽人苦未閒不禁愁鬢望秋班二陵灑掃仍尋寺三伏炎蒸強出關【缺】走淺灘渾白石岸臨長浦半危巒今辰逆浪撑【缺】去明日乘流弭棹還百丈拖船我自閒臥看江岸草花班出塵方快開湯網羈宦曾愁閉武關昨夜商颷動閶闔一分秋色在林巒莫嫌明月初生魄人世難逢壬戌還出城那得此身閒詩句關心鬢欲班不盡江流吟滾滾作雙洲鳥詠關關近憐芳草遙憐樹晴愛明沙雨愛巒物色惱人酬未了來遊此地不知還昭代無能也自閒肯勞心目強窺班名場遠我三千里世路難於百二關良友相逢仍勝地碧江殊好又蒼巒蘇仙赤壁何如此欲駕偏舟一往還 이여함 이정(李瀞, 1541~1613)의 자로 그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안군수 유숭인(柳崇仁)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활약하였다. 의병을 모아 진해, 창원 등지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에서는 의령현감으로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와 함께 왜군을 격파하였다. 탕……듯 옛날에 탕 임금이 밖에 나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들판에다 사면으로 그물을 쳐 놓고 축원하기를 "하늘로부터 사방에 이르기까지 모두 내 그물 안으로 들어오라."라고 하였다. 탕 임금이 "세상이 다 되었구나."라고 하고 삼면의 그물을 제거하고 나서 축원하기를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쪽으로 가되, 나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만 나의 그물로 들어오라."라고 하였는데, 제후들이 이 말을 듣고 "탕의 덕이 지극하여 금수에까지 미쳤다."라고 하였다. 《史記 殷本紀》 진 소왕(秦昭王)이 초 회왕에게 국서를 보내어 말하기를, "진나라와 초나라가 화합하지 않으면 제후를 호령할 수 없으니, 무관(武關)에서 만나 맹약을 체결하였으면 합니다."라고 하니, 초 회왕이 사기를 당할까 봐 망설였다. 초 회왕의 아들 자란(子蘭)이 말하기를, "왜 진나라의 환심을 잃으려고 합니까?"라고 하자, 초 회왕이 무관에 가서 회합하기로 하였다. 진 소왕이 장수 한 명을 무관에 매복시켰다가 초 회왕이 도착하자, 체포하여 함양(咸陽)으로 데리고 갔다. 초 회왕이 장대(章臺)에서 진 소왕을 알현하니, 번신(蕃臣)으로 대하고 대등한 예로 예우하지 않자 초 회왕이 크게 노하였다. 진나라가 초 회왕을 억류해 놓고 무(巫)ㆍ검(黔)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하자, 초 회왕이 맹약부터 체결하자고 하였다. 진나라가 먼저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하자 초 회왕이 노하여 말하기를, "진나라가 나에게 사기를 치고, 또 나에게 땅을 떼어 달라고 강요한단 말인가?"라고 하고, 다시금 허락하지 않았다. 그 뒤에 초 회왕이 돌아가려고 도망쳤으나 실패하자 병이 나서 죽었다. 《史記 卷40 楚世家》 임술년 소식(蘇軾)이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것은 임술년 7월 기망(旣望)이다. 관저편 《시경》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첫 번째 편인 〈관저(關雎)〉에 "관관히 우는 저구새, 하수의 모래섬에 있도다. 요조한 숙녀,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라고 하였다. 경치를 보면서 여러 시를 읊었다는 의미이다. 백이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지를 말한다. 옛날 진(秦)나라 땅이 험고(險固)하여 2만 인으로 제후의 백만 군대를 막을 수 있다[秦得百二焉]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史記 卷8 高祖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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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잃다 失題 조정과 옥당에 대해 말하지 말라세속의 정은 쉬이 염량세태로 변하느니구절양장은 이미 길을 가는 어려움이며달팽이 뿔도 도리어 전장이 될 수 있구나303)가소롭구나, 밤중에 소가 부질없이 달을 보고 헐떡거림이여304)만약 가을 기러기 된다면 억지로라도 해를 따라가리305)금구와 오화마306)를 어찌 아끼리오장차 봄 술로 바꿔서 백 잔에 취하리라 莫說金閨與玉堂世情容易變炎凉羊腸已是爲行路蝸角還能作戰場可笑夜牛虛喘月若爲秋鴈強隨陽金裘花馬何須惜且換春醪醉百觴 달팽이……있구나 《장자》 〈칙양(則陽)〉에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촉(觸)이라 하고, 달팽이의 오른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만(蠻)이라 하는데, 수시로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한다."라고 하였다. 밤중에……헐떡거림이여 세상의 작은 일에도 겁을 낸다는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서 "오나라 소가 달을 보고 헐떡인다.[吳牛見月而喘]"의 주(注)에 "지금의 물소는 오직 강회(江淮) 사이에 살기에 '오우(吳牛)'라 한다. 남쪽 땅은 더워서 이 소가 더위를 두려워하므로 달을 보고 태양인가 의심을 한다. 그래서 달을 보면 숨을 헐떡거린다."라고 하였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의미이다. 《서경》 〈우공(禹貢)〉의 "팽려에 물이 모여 흐르니, 양조(陽鳥)가 사는 곳이다.[彭蠡旣豬 陽鳥攸居]"에 대해 한(漢)나라 공안국(孔安國)은 전(傳)에서 "양기(陽氣)를 따르는 새로, 큰기러기ㆍ기러기 따위이다.[隨陽之鳥 鴻雁之屬]"라고 하였고, 공영달(孔穎達)은 소(疏)에서 "이 새는 태양의 위도에 따라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양기(陽氣)를 따르는 새이다. 이 때문에 양조(陽鳥)라고 한다.[此鳥南北與日進退 隨陽之鳥 故稱陽鳥]"라고 하였다. 오화마 오화마(五花馬)는 말의 털빛에 청색(靑色)이나 백색(白色) 등의 반문(斑文)이 있는 아주 좋은 말을 가리킨다. 《續博物志 卷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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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짓다 又 침상 베갯머리 대나무 아래 샘과 가까우니밤비 내린 뒤 졸졸 물 흐르는 소리 들리네은자 일어나자 새로운 흥취 일어작은 못가에 지팡이 짚고 거니네못에 무엇이 있는가, 마름과 연 있다네푸른 연 깨끗이 서 있어 천 줄기 튼튼하네잔잔한 물결 동하지 않아 푸른 연잎 고요하고밤이슬 둥글게 맺히고 선장50) 평평하네여룡이 보배를 토하여 천진을 드러내고노방51)이 진주를 옮겨오니 밝은 달인 듯하여라자욱한 연기와 안개가 잘 보호해 주고저물녘에 갑자기 맑은 바람 생겨나누나태을주는 가벼우니 절로 흔들리고수선의 걸음 경쾌하니 얼마나 사뿐사뿐한가오자마자 도로 가고 흩어졌다 도로 모이니마치 조물주와 권형을 다투는 듯하여라매우 둥근 것은 본래 멈춰 있지 않으니달리는 형세 소반의 물 기울인 것과 비교해 어떠한가처마 밑에 있던 처음엔 수천 금처럼 여기다가52)누대에서 떨어질 적엔 곧 투신한 녹주처럼 가벼이 여겼네53)강직한 신하 손에서 옥잔 부서지듯 분분하고54)교인의 눈에서 눈물 떨어지듯55) 찬란하네낭랑한 낙수 곧 텅 비고하나하나 더해져 투명한 수정이 되었네강비는 패옥을 누구에게 풀어서 줄거나56)망상은 강에 임해 무엇을 하려는가57)못에 숨어 비록 초복으로 돌아갔으나58)바다로 들어가 연성59)을 버린 것 안타깝도다사물의 이치 곰곰이 생각하며 앉아서 탄식하니번복되는 것이 참으로 덧없는 세상 물정 같구나초로인생에 잠시 사는 몸으로명리의 장에서 다투고 또 다투네집에 황금을 쌓아 놓고60) 말로 구슬 헤아렸으니61)풀 움직이고 풍진 일어날 줄 어찌 알았으랴삼천 구슬 신발과 삼천 개 후추알하루아침에 남김없이 다 흩어졌구나당시에 단지 연에 맺힌 이슬의 위태로움만 말했으니배 가르는 우매한 계책62) 끝내 어찌 이룰 수 있으랴아이 불러 구슬 팔아 술 사오게 하니연 구경은 모름지기 큰 술잔에 걸맞으리 床頭枕近竹下泉夜雨餘涓流有聲幽人起來有新趣小池塘邊扶杖行池塘何有有芰荷碧藕淨植强千莖微波不動翠蓋靜宿露成團仙掌平驪龍吐寶見天眞老蚌輸珍疑月明烟光霧色好護持向晩忽有淸風生太乙舟輕自搖搖水仙步促何盈盈纔來還去散還聚似與造物爭權衡至圓本自無定住走勢如何盤水傾垂堂初似累金重墮樓旋覺投珠輕紛如玉碎鯁臣手粲若泣下鮫人睛琅琅落水便成空一一添作玻瓈泓江妃爲珮爲誰解罔象臨水將何營藏淵雖是反初服入海可惜遺連城細思物理坐歎息翻覆眞如浮世情人生草露片時身名利場中爭又爭屋頹黃金斗量珠寧知草動風塵驚三千珠履三百椒一朝散盡無餘贏當時只道荷露危剖身愚計終何成呼兒賣珠買酒來賞荷仍須稱大觥 선장 선인장(仙人掌)과 같은 말로, 한 무제(漢武帝)가 신선술에 미혹되어 동(銅)으로 선인(仙人)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손바닥에다 승로반(承露盤)을 떠받치게 하여 천상의 감로(甘露)를 받게 하였다. 《漢書 郊祀志》 노방 진주를 품고 있다고 하는 늙은 조개이다. 한나라 공융(孔融)의 〈여위단서(與韋端書)〉에 "뜻밖에 근래에 두 진주가 늙은 조개에서 나왔다.[不意雙珠, 近出老蚌.]"라고 하였다. 처마……하다가 연잎 가장자리에 맺혀 있는 이슬의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누대에서……여겼네 연잎에서 이슬이 떨어지는 모습을 석숭의 애첩 녹주(綠珠)에 비유한 것이다. 강직한……분분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옥술잔이 부서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강직한 신하는 범증(范增)을 가리킨다.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범증이 항우(項羽)에게 유방(劉邦)을 죽일 것을 간하였으나 항우가 이를 듣지 않자, 연회가 끝난 뒤 범증이 항우에게 받은 옥술잔을 부수었다. 《史記 項羽本紀》 교인……떨어지듯 이슬을 형용한 것이다. 바닷속에 사는 교인이 물에서 나와 인가에 머물면서 비단을 짜서 팔았는데, 떠날 때 주인에게 그릇을 달라고 하여 눈물을 흘려 진주를 만들어 주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續集 卷25 鮫人泣珠》 강비는……줄거나 이슬을 강비의 패옥에 비유한 것이다. 옛날에 정교보(鄭交甫)가 강한(江漢) 사이에 놀러 나갔다가 신녀인 강비(江妃) 두 여인을 만났는데, 정교보는 두 여인이 차고 있는 패옥(佩玉) 마음에 들어 그들이 신녀인 줄 모르고 명주를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두 여인이 자신들이 차고 있는 패옥을 풀어 정교보에게 주었다. 《列仙傳 江妃二女》 망상은……하려는가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에서 현주(玄珠)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도 찾지 못하고 상망(象罔)이 찾아냈다는 고사가 있다. 상망이 바로 망상(罔象)이다. 《莊子 天地》 초복으로 돌아갔으나 초복(初服)은 벼슬하기 전에 입는 옷으로, 벼슬을 떠나 처음 은거하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연성 연성벽(連城璧)의 준말로, 화씨벽(和氏璧)을 가리킨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화씨벽을 15성(城)과 바꾸자고 청했기 때문에, 화씨벽을 연성이라 한다.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쌓아 놓고 대본에는 '頹'로 되어 있는데, 문맥에 의거하여 '頹'를 '堆'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집에……헤아렸으니 전당호(錢塘湖) 일대를 지배하던 전씨(錢氏) 가문이 번창할 때에는 황금을 집에 쌓아 놓았다고 하는데, 송나라 소식(蘇軾)의 〈영은사에서 노니는데[遊靈隱寺……]〉시에 "집에 황금 쌓아 놓고 말로 구슬을 되더니, 운이 다함에 쪽지를 보내 부를 필요도 없어졌다네.[屋堆黃金斗量珠, 運盡不勞折簡呼]"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연잎 위에 이슬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형용하였다. 배를……계책 당 태종(唐太宗)이 시신(侍臣)에게 "내가 듣건대 서역의 장사꾼은 아름다운 구슬을 얻으면 배를 갈라서 그 속에 숨긴다 하니[剖身以藏之], 그런 사실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資治通鑑 唐太宗 貞觀 元年》 여기서는 연잎의 이슬을 온전히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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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를 대신하여 이릉을 부르다75) 代蘇武招李陵 아, 나의 벗 이소경76)이여나라에 목숨 바치는 일 그대가 능한 바로다때가 불리하여 일이 이미 어그러졌으니지난 일은 어찌할 수 없으나 다가올 일은 징계할 수 있네부르고 부르는데 어찌하여 일찍 돌아오지 않는가전화위복이 되어 시의를 타게 되리라그대 집안 진농에 굳센 기운 넉넉하니하물며 비장군의 손자임에랴77)만 리에 창 휘두르며 호랑이 굴에 들어갔으니천상에 날아오르는 가을 매와 같았네오천의 천자 군대는 의용을 지녔고십만의 오랑캐 기병은 날쌤을 자랑했지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듯 대적할 수 없는 형세이니나라에 충성을 바치려는 초심에 괜스레 가슴 쳤네어찌 위율78)을 따라 목숨을 보존하랴조말79)과 명성 같아지길 맹세했다네형법에 연좌할지 말지는 어찌할 수 없으니성주께서 불쌍히 여겨주심은 얼마나 사사로운가음산80)은 본래 한나라 일광과 떨어져 있는데기인은 이미 하늘이 무너질까 곡을 했네81)임금께 충성하지도 어버이께 효도하지도 못했으니오랜 세월 흐르며 나그네 근심만 더하였네그대 아는 이 없는데 하물며 그대 마음을 알랴그대 알고 그대 마음 아는 이는 오직 이 벗 뿐남들은 모두 의심하나 나는 불러주니그대를 믿지 않으면 내가 누구에게 기대랴천 마디 말이 간절한 충고만 못하니어찌 굳이 임금님의 조서로 부를 것 있으랴그대가 오고 안 오는 건 다시 말하지 않겠으니그대에게 또한 내 일찍이 말했었지포로 되었으니 신하의 절개 지켰다 감히 말할 수 있으랴사명(使命)을 저버렸으니 국법으로 다스려야 마땅하네남은 목숨 아침이슬과 함께 사라지지 않아대뢰로 선황의 능에 와서 알현하네투항하도록 회유해 일찍이 육가의 공을 능멸했고82)관작과 포상은 미워하는 옹치에게 먼저 내렸네83)조정은 본래 공신에게 박하게 대하지 않나니그대 같은 이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을 어찌 의심하랴돌아와 한나라 신하가 되고 오랑캐 되지 말지니차마 전취를 걸치고 비단옷을 버릴 수 있으랴84)천산85)에는 자고로 세 길이나 눈이 쌓여 있고발해는 봄이 없이 천 척 얼음이 얼어 있네종남산과 위수를 꿈에서도 보지 못하리니지금 꽃과 버드나무의 봄 풍광 어려 있다오바람에 의지하는 말의 본성 진실로 빼앗을 수 없고해 향하는 해바라기 마음 오히려 늘 있다네사람 마음이 어찌 사물만 못해서야 되겠나그대 마음 생각하니 슬픔 가눌 수 없구나숫양 젖 않 나와도 또한 돌아올 수 있었으니86)그대 높은 누대에 올라 고향 바라볼 것 없다오올 적에 미리 편지로 내게 알려 주게나흰 기러기는 층층 관산에 막히지 않으리만나서 이별할 때의 옷 다시 잡으리니십구 년의 일이 등잔 아래로 돌아가네그대와 함께 태사공87)을 같이 위로하니술동이 안의 술 승수(澠水)88)처럼 깊네 吁嗟吾友李少卿許國忘身君所能時乎不利事已謬往者難追來可懲招招胡不早歸來轉禍爲福時宜乘君家秦隴勁氣饒況是飛將之雲仍橫戈萬里入虎穴有如雲路揚秋鷹天兵五千負義勇虜騎十萬誇驍騰强呑弱肉勢不敵報國初心空撫膺寧從衛律保軀命誓與曺沫同名稱常刑無奈毋隨坐聖主何私應見矜陰山自隔漢日光杞人已哭皇天崩忠君孝親兩孤負歲月坐與羈憂增無人知子況知心知子知心惟爾朋人皆見疑我見招子如不信吾誰憑千言不如忠告切十行何須恩詔徵君來不來言不再爲君聊亦陳吾曾爲俘敢言臣節全辱命宜將王法繩殘生不與朝露晞大牢來謁先皇陵招降曾蔑陸賈功爵賞先於雍齒憎朝廷本非薄功臣如子何疑雲路登歸爲漢臣否爲夷忍荷氈毳遺紈繒天山自古三丈雪瀚海無春千尺氷終南渭水夢見未只今花柳韶光凝依風馬性固莫奪向日葵心猶有恒人情豈可不如物想子心懷悲不勝羝羊不乳亦可歸望鄕高臺君莫升來時豫將書報我白鴈不阻關山層相迎重把別時衣十九年事歸挑燈與君同慰太史公尊中有酒深如澠 소무를……부르다 한나라 장군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가서 억류되어 있다가 1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갈 때, 흉노에 항복하여 그곳에 살고 있던 한나라 장군 이릉(李陵)과 시를 주고 받았다. 《前漢書 李廣傳》 이소경 소경(少卿)은 이릉의 자이다. 이릉은 한 무제(漢武帝) 때 흉노와의 전쟁에 기도위(騎都尉)로 출전해서 5000명의 보병으로 흉노의 8만 기병과 8일 동안 싸웠는데, 결국 중과부적인 데다 무기와 식량도 떨어져서 흉노의 선우에게 투항하여 오랑캐 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前漢書 李廣傳》 그대……손자임에랴 이릉이 농서(隴西) 출신이므로, 진농이라 한 것이다. 이릉의 조부인 이광(李廣)도 한나라의 명장으로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불렸다. 위율(衛律) 위율은 소무의 벗으로, 흉노에 투항하여 부귀를 누렸다. 소무가 흉노에 사신으로 갔을 때, 위율이 소무에게 흉노에 투항하여 안락하게 살자고 회유하자, 소무는 회유를 거절하고 위율을 꾸짖었다. 《前漢書 蘇建傳》 조말(曹沫) 조말은 춘추 시대 노나라 장수이다. 제 환공(齊桓公)이 노나라를 침공했을 때, 조말이 제나라 군대와 세 차례 싸워 모두 패배하자, 노 장공(魯莊公)이 수읍(遂邑)을 바치는 조건으로 화해를 청하였다. 제 환공이 그 뜻을 받아들여 규구(葵丘)에 모여 맹약을 막 체결하려 할 때, 조말이 단상(壇上)에서 제 환공에게 비수를 들이대며 협박하여 빼앗긴 노나라 땅을 돌려받았다. 《史記 曹沫列傳》 음산(陰山) 흉노족의 땅에 있던 산으로, 현재 내몽고(內蒙古)의 자치구(自治區) 남쪽으로부터 동북쪽으로 내흥안령(內興安嶺)까지 뻗어 있는 음산산맥(陰山山脈)을 가리킨다. 기인은……했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의미이다. 기(杞)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여 침식(寢食)을 전폐했다는 고사가 있다. 《列子 天瑞》 투항을……능멸했고 흉노의 선우가 이릉에게 항복을 종용하여, 이릉이 사신으로 온 것을 능멸했다는 뜻이다. 육가(陸賈)의 공은 사신의 임무를 완수했음을 뜻하는 말로, 사신으로 남월(南越)에 가서 남월의 왕 위타(尉他)로 하여금 칭신(稱臣)하도록 한 일이 있다. 《史記 李將軍列傳》 《史記 陸賈列傳》 관작……내렸네 소무가 자신을 옹치(雍齒)에게 빗대어 자신이 먼저 한 소제(漢昭帝)의 부름을 받아 한나라로 돌아가게 된 것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옹치(雍齒)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직 제후로 봉해지지 못한 여러 장수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장량(張良)의 계책에 따라 그를 먼저 십방후(什方侯)에 봉하였다. 《史記 留侯世家》 차마……있으랴 오랑캐가 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전취(氈毳)는 모전(毛氈)으로 지은 털옷으로, 중국 북방의 융적(戎狄)이 입었던 옷이다. 천산 기련산(祈連山)으로, 흉노족이 주로 살던 북쪽 변방에 있는데 흉노족은 이 산을 천산(天山)이라 하였다. 여름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숫양……있었으니 소무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구금되어 있을 때, 선우가 소무를 북해(北海)로 옮기고 양을 기르게 하며 "숫양[羝羊]의 젖이 나오면 돌려보내 주겠다."라고 했다. 그 뒤 소무는 갖은 고생을 하며 19년 동안 머물러 있다가 한 소제 때 고국으로 돌아왔다. 《漢書 蘇建傳》 태사공 사마천(司馬遷)을 말한다. 이릉이 흉노에게 항복하자 모든 사람이 이릉을 비난하였는데, 오직 사마천만 그의 신의를 인정하여 변호하다가 한 무제(漢武帝)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宮刑)을 당했다. 승수(澠水) 술이 많음을 형용한 말이다. 춘추 시대에 진후(晉侯)가 제후(齊侯)에게 연회를 베풀었을 때 투호(投壺)를 하면서 서로 응답하며 제후가 "술은 승수와 같고 고기는 언덕과 같다.[有酒如澠 有肉如陵]" 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 12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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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석67) 叱石 금화산 속 양 치는 소년바로 금화산 아래 집에 있네하루아침에 양을 치러 산속으로 떠나금광초 잘못 먹고 넋을 단련했지형이 말하길 "아, 우리 아우 돌아오지 않고날 저무는데 양 또한 어디 갔는가?" 하였네찾아가자 아우만 보일 뿐 양은 보이지 않고아지68)에 봄풀은 절로 푸르네형은 아우가 이미 신선이 된 줄 몰랐으니양이 지금 돌로 변했을 줄 어찌 알았으랴산 동쪽에 드러누워 있는 것 내 양이니내 양을 내가 부르고 이어 채찍 휘두르네잠깐 사이에 우뚝한 돌부리 긴 수염으로 변하니더 이상 예전의 가지런한 흰 돌 아니어라삼백 마리 양 떼가 한꺼번에 일어나니소와 바꿀만한 양 없다고 누가 말하랴69)양이 처음에 돌로 변했을 적엔 이끼만 꼈었는데돌이 도리어 양이 되자 다시 털과 가죽 생겼네선가에선 양과 돌로 형체와 정신 뒤바뀌고이 세상에선 해와 달이 고금을 이루네천년 전 자취 양은 없어지고 말았으니돌인지 양인지 끝내 어떻게 가려내랴이교의 사람70)과 북평의 호랑이71)이 같은 괴이한 설은 풀기 어려울 듯하도다 金華山中牧羊兒乃在金華山下宅一朝牧羊山中去誤飡金光草鍊魄兄曰嗟余季不歸羊亦何之日之夕尋惟見季未見羊春草阿池自在碧阿兄不料弟已仙那識羊今化爲石山東僵臥是我羊我羊我叱仍揮策須臾犖角變長髥非復從前齒齒白三百維羣一時起誰謂無羊牛可易羊初化石但莓笞石反爲羊更毛革仙家羊石幻形神世界日月成今昔千年遺跡歸亡羊石耶羊耶竟何擇圮橋爲人北平虎一般怪說疑難釋 질석 돌을 꾸짖어 양을 만들었다는 '질석성양(叱石成羊)'의 고사를 말한다. 황초평(黃初平)이 15세에 양을 치다가 신선술을 닦으러 도사(道士)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 속에서 수도하였는데, 40년 뒤에 형이 찾아와서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황초평이 백석(白石)을 향해 "양들아, 일어나라![羊起]"라고 소리치니, 그 돌들이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 後集卷39 初平叱羊》 아지 가축을 기르는 곳을 의미한다. 《시경》 〈소아(小雅) 무양(無羊)〉에 "혹은 언덕에서 내려오고 혹은 못에서 물을 마시며[或降于阿, 或飮于池], 혹은 자고 혹은 움직이도다. 네 목동이 오매 도롱이를 메고 삿갓을 썼도다."라고 하였다. 삼백……말하랴 《시경》 구절과 《맹자》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시경》 〈소아(小雅) 무양(無羊)〉에 "누가 너더러 양이 없다 하리오? 삼백으로 떼를 지었도다.[誰謂爾無羊? 三百維群.]"라고 하였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선왕(齊宣王)이 흔종(釁鍾)에 끌려가는 소를 보고 측은히 여겨 양으로 바꾸라고 한 고사가 있다. 이교의 사람 장량(張良)이 하비(下邳)의 이교(圮橋)에서 한 노인을 만나 태공(太公)의 병법을 전수 받았다는 고사가 있다. 북평의 호랑이 한나라 이광(李廣)이 어느 날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우북평(右北平)의 바위를 범으로 보고서 활을 쏘았더니, 화살이 돌에 박혀 버렸다고 한다. 《史記 李將軍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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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밝고 꽃 지는데 또 황혼이 드네72) 14세에 승보시(陞補試)에서 장원을 한 시이다. 月明花落又黃昏【十四歲陞補壯元】 금옥에 주렴 드리우니 제비가 춤 멈추고사창에 해지니 이제 막 문을 닫네미인이 눈썹 찡그리며 황혼을 근심하니홀로 난간에 기대 눈물 머금은 흔적 있네임 그리워 차마 밝은 달 보지 못하는데낙화는 어째서 다시 황혼에 흩날리는가꽃이 오래된 가지에서 떨어짐은 첩의 신세 같고달이 찼다가 이지러짐은 임금 은혜와 같아라둥근 달 한번 이지러졌으니 언제나 차오를거나가지에서 떨어진 꽃 도와주기 어려워라이별한 마음 사물을 보고는 긴 생각에 잠기니묵묵히 그리워하는 마음 남모르게 녹이누나창 앞에 오랫동안 임금님의 왕래 끊겼으니궐의 뜰 적막하고 푸른 이끼만 가득하네오늘 밤에 어젯밤 뜬 달 다시 마주하고지난해 피었던 꽃 올해의 정원에 피었구나꽃 끝없이 피고 달빛 매우 밝은데몇 번이나 외로운 방에서 짝 잃은 원앙 슬퍼했나누가 새끼줄 끊어진 뒤 은병을 끌어올려 주려나73)한스럽게도 남은 목숨 한낮의 촛불처럼 꺼져 가누나74)앞뜰에선 노래하고 뒤뜰에선 춤추는데따로 그 누가 있어 임금님을 따르는가달 밝을 때 꽃 구경하며 즐거움 그지없으니깊은 궁전 외로운 첩의 원통함 누가 알랴문밖에 어가 지나가는 소리 어이 견딜꼬부질없이 왕림하신 임금님 서글피 바라보노라요금 소리 그치자 밤 더욱 깊어가고지는 달 희미하고 꽃은 말이 없구나 簾垂金屋燕舞罷日落紗窓初掩門佳人眉斂薄暮愁獨倚雕欄含淚痕思君不忍見明月落花何更飄黃昏花辭故條似妾身月有盈虧同主恩圓光一虧幾時盈落紅辭條難可援離心觸物結長想脈脈暗銷相思魂窓前久斷鳳輦來玉階寥落靑苔繁今宵還對昨夜月去年花發今年園花開無限月明多幾度孤房悲隻䲶銀甁誰引斷繩後晝燭恨殺殘生存前庭歌吹後庭舞別有何人隨至尊看花趁月樂未央深院誰知孤妾冤那堪門外度金輿悵望空自臨高軒瑤琴彈罷夜又深落月依依花不言 달……드네 당나라 두목(杜牧)의 〈궁원(宮怨)〉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새끼줄……주려나 임에게 버림받은 신세를 비유한 말이다.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우물 밑 은병을 끌어올리다[井底引銀甁)]〉 시에 "우물 밑에서 은병을 끌어 올리는데, 은병이 올라오려 하나 줄이 그만 끊어졌네.[井底引銀甁, 銀甁欲上絲繩絶.]"라고 하였다. 남은……가누나 한낮에 촛불을 켜도 그 불빛이 희미하듯 인생의 의미가 전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당나라 장적(張籍)의 〈남편이 전장에 나간 부인의 원통함[征婦怨]〉 시에 "남편은 전장에서 죽고 자식은 배 속에 있으니, 첩의 몸이 살아 있은들 대낮의 촛불 같구나.[夫死戰塲子在腹, 妾身雖存如晝燭.]"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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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5) 右文爲通諭事環湖南五十州一節一行之士不知其幾許而有如 貴縣故判書松溪陳公之貞忠純孝一身兼備千古炳朗者乎蓋 公之實蹟著於 國史載於邑誌不必疊床而略擧其槩泣血三年廬於墓下子職盡矣壬丁之亂二度起義俱捷水陸臣節極矣名載勳錄加 贈顯秩千載之下實無餘憾而士林尊奉之誠惟在於俎豆一款杖屨之鄕濡染興感想必不後於人而尙此寥寥 生等其在秉彝之地不勝慨恨玆以發告惟願 僉君子同聲相應亟擧褥儀一以樹百世之風一以慰多士之望千萬幸甚 右敬通于興陽鄕校丁亥五月初一日南原發文幼學 安思訥崔綱範金仁達韓百祚尹致永許 晟黃處洙李興錫盧 圭黃龜河吳達謙李 鍰金希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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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6) 右文爲通諭事伏以松溪陳先生之貞忠懿行 朝家之崇報雖極 贈秩之典士林之尊奉尙闕祭祀之儀玆或雲仍之零替而然歟抑又公議之泯滅而然歟以若先生之實行實節泯而無聞則豈不爲曠世之感也耶又況 貴邑乃先生杕〖杖〗履之鄕則惟願僉君子廣絢公議亟擧縟儀千萬幸甚右敬通于興陽鄕校丁亥五月初四日發文順天幼學申義源柳文煥許 璉柳彦鎭趙喆淳梁聖海李厚永鄭致義梁贊永申大祿朴亮源金緩煥李 埴張 濈南漢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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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儒林及書院通文 右通諭事人有偉忠而幽隱未顯者闡發祭社昭代之恩典也人有卓節而湮鬱抛散者褒揚聞 朝儒林之美事也竊惟故判書松溪陳公當壬辰艱危之時盡心竭力周旋內外倡義東南義旅雲集到處斬賊勳業趈群與轟〖矗〗石樓立節諸賢一體同功而偶未參把盃指水之席死生則易地皆然又況晉陽是陳公樹勳之鄕當時倡義諸賢建享於忠烈祠本道士林公議各院通文次第俱發豈非忠蹟之不泯士林之盛議乎玆以忠院追享之意發文伏願 僉君子同聲齊應使此巍切卓節亟擧本所聯享之儀毋至遷稽之地幸甚焉晉州士林柳之粲許 述姜匡正金星耆李相晉具 潤柳 曣趙義植張世璜朴東貞等忠烈書院鄭德善尹台權李八善權用夏慶林書院柳 旭許 杠李景憲南圭喆河弼龍新塘書院鄭昌善梁圭五成致彦朴進源柳光植殷烈書院尹弼大鄭匡八成鼎夏鄭赫善姜道俊梁山士林李守皝崔南弼鄭理權尹東說辛錫珍金夢魯安景祿羅相祿白思喆李寅祥鄭 絢柳碩奎尹東斗鄭士鶴李汶見等 六百四十余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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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通文(3) 右文爲通諭事人有偉忠而幽德未顯者闡發祭祀昭代之恩典也人有卓節而湮鬱抛散者褒揚聞朝儒林之美事也故驪陽陳公稟賦河岳之資薀蓄經偉之才時當壬丁之亂誓死圖報特樹屹砥之嵬勳千載之事蹟昭著百世之公議自在以若忠節尙未薦藻非但子孫之零替也實是儒林之慨惜者也立祠之通章已發湖南士林則今我嶺南寧不同聲贊揚乎又況晉陽是陳公樹勳之鄕則尤有別焉玆以通告校中伏願 僉尊一齊合議以成腏食之儀千萬幸甚右文通鄕校庚寅十二月十八日殷烈書院院任 尹弼大鄭匡八成鼎夏柳 嚥趙義植張世璜朴東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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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通文(4) 右文爲通諭事崇節褒功 朝家之盛典慕賢揚虔士林之公議故判書松溪陳公當龍蛇之亂豊功偉烈昭載史誌尙欠俎豆故湖南道通與四長通文來到本邑亦是先生樹勳之所當時倡儀諸賢建享於忠烈祠故本道士林公議同聲合議各院通文次第俱發豈非忠蹟之不泯士林之盛議乎伏願 僉君子特加公議以爲忠烈祠竝享之地千萬幸甚右通文鄕校庚寅十二月二十日新塘書院院任幼學 鄭昌善梁圭五成致彦朴進源柳光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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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通文(1) 右文爲通諭事闡發偉忠是朝家崇報之盛典也揄揚卓節是士林尊尙之美事竊惟故判書松溪陳公以不世之異才襲古家之流韻負抱有素忠孝兼備適値壬丁之亂一心圖報不有其身其偉忠卓節塗人耳目殊勳異行播諸野史以若忠節尙欠薦藻者非徒聖世之幽隱也實是儒林之欠事今幸詳究其事蹟細翫其通章則湖南之士論已爲齊發何況晉陽是陳公樹勳之地則以晉之士林亦豈無公議乎玆以發文通喩於校中伏願 僉尊同聲合議以成祭祀之儀千萬幸甚右文通鄕校庚寅十二月十五日 忠烈書院發文幼學 鄭德善尹台權權用夏鄭匡八張世璜鄭匡學尹弼大鄭赫善鄭重轍李八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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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通文(2) 右文爲通諭事旌忠褒節 國家之盛典尊賢扶義儒宮之美事故判書松溪陳公當壬辰艱危之時盡心竭力周旋內外倡義東南義旅雲集到處斬賊勳業超群與矗石樓立節諸賢一體同功而偶未參把盃指水之席死生則易地皆然尙未蒙本州建祠褒揚之典士林之抑欝尤當如何陳公之事實旣如彼忠院之文字又如此百世之後公論不泯玆以忠院追亭之儀發文於 首所伏願 僉君子同聲齊應使此巍功卓節亟圖本所聯享之擧無至遷稽之地干萬幸甚右敬通于鄕校庚寅十二月十七日慶林書院院任幼學 柳 旭許 杠李景憲南圭喆河弼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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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終獻禮 謁者引終獻官詣盥洗位 北向立 盥手 帨手引詣尊所 北向立 執尊者擧羃酌酒 引詣神位前 跪 執事者以爵授終獻官 終獻官執爵獻爵 以爵授執事者 奠于神位前 俯 伏興 引降復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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飮福受胙 祝詣尊所以爵酌福酒 祝持俎及刀進减神位前胙內肉 謁者引初獻官詣飮福位 北向跪 執事進獻官之左東向跪 以爵授獻官 獻官受爵飮卒爵 執事者受虛爵 復于坫 執事者東向以胙授獻官 獻官受胙 以胙授執事者受胙降自東階出門 俯 伏 興 引降復位 獻官及諸生皆再拜 鞠躬 拜 興 拜 興 平身出祝入徹籩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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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望瘞禮 祝奉幣及祝文就燎所 謁者引初獻官就燎所北向立 祝焚幣帛及祝文 謁者引初獻官復位獻官及諸生皆再拜 鞠躬 拜 興 拜 興平身 謁者進初獻官之左白禮畢 獻官以下出謁者還入與祝及諸執事俱復階間拜位再拜出祝闔櫝 掌饌率其屬掇饌 闔戶以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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