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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齊李先生 穎邁之姿端雅之儀恬靜澹泊致遠明志文學被薦官之主簿丙子虜變與安牛山倡義誓死時事日非解組而歸築一精舍扁以獨樂自勉勉人孝悌忠信士林矝式精禋是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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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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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由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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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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晦軒公事蹟 公諱之証字恩卿號晦軒興陽人生而穎悟早登佔畢齋金先生門力行學文登文科歷禮刑曹正郞陞司憲府掌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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錄宣武元從公事蹟 公諱永明觀察使諱壽生後以過人之勇龍蛇之亂赴忠武公李舜臣幕累捷閑山之役竟殉節錄宣原從二等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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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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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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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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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없는 탄식 3수 無鷄歎【三首】 요동의 풍속이 날마다 닭 훔치는 것이 잘못된 줄241) 어찌 알랴마을의 닭이 이미 매우 드물게 되었네수령이 노의 고을에 임하여 끝내 닭을 잡지 못하였고242)객으로 신문에 머물렀다가 다만 기롱만 당하였네243)조적은 무심하게 새벽에 일어나 춤을 추었고244)전문은 무슨 방법으로 밤에 도망쳐 돌아왔는가245)산중에 술이 익으면 내 마땅히 갈 터인데다만 가을바람에 기장 쪼아 살진 닭이 없어 아쉽네세상에 거백옥이 없다면 누가 잘못을 알랴246)도를 헤매니 원래 통달한 자가 드무네술동이 사이에 취해 묶여 있으니247) 참으로 가소롭고못가에서 깨어 읊조리니248) 또한 기롱을 받을 만하네유후로 봉해져 뜻을 마치자 장량은 병이 많았고249)월을 패자로 만들어 성공한 범려는 돌아갔네250)늙어 전원으로 돌아오니 나 또한 마음 좋으니구구하게 가벼운 갓옷과 살진 말을 부러워하겠는가세상에서 병이 많아 온갖 일이 글렀으니깊은 골목에 문을 닫아걸어 오가는 이 드무네한 자리만한 위나라 표주박은 끝내 어디에 쓰랴251)삼년 동안의 제나라 비파는 다만 기롱을 보았네252)당호를 오히려 '무주'라 하니약의 이름은 어찌 '당귀'를 취하지 않으랴옛사람은 나보다 먼저 강동으로 떠났으니순채국과 농어회는 가을바람에 충분히 맛나니253)-최노첨의 호가 '무주'이기에 시에서 이렇게 언급하였다.- 遼俗安知日攘非鷄兒村巷已全稀宰臨魯邑終難割客宿晨門但見譏祖逖無心晨起舞田文何術夜逃歸山中酒熟吾當去惟欠秋風啄黍肥世無蘧玉孰知非迷道從來達者稀醉縛甕間眞可笑醒吟澤畔亦堪譏封留志畢張良病覇越功成范蠡歸歸老田園吾亦決區區不必羨輕肥多病人間萬事非杜門深巷往來稀魏瓢一席終安用齊瑟三年秪見譏庵號猶能有無住藥名胡不取當歸古人先我江東去蓴膾秋風十分肥【崔魯詹號無住故及之】 닭……줄 《孟子》 〈등문공하(滕文公下)〉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지금 날마다 그 이웃의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누가 그에게 '이것은 군자의 도가 아니다.'라고 하자, '닭 마리 수를 줄여서 한 달에 한 마리만 훔치고, 내년에는 훔치는 것을 그만두겠다.'라고 했다. 그것이 잘못인 줄 알았으면 바로 그만두어야지, 어찌 내년을 기다리겠는가?[孟子曰 今有人 日攘其隣之鷄者 或告之曰 是非君子之道 曰請損之 月攘一鷄而 待來年然後已 如知其非矣 斯速已矣 何待來年]"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맹자의 이 말을 인용하여 도둑질하는 요동의 풍속을 말하고 있다. 수령이……못하였고 수령이 훌륭한 정치를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무성에 가서 현가(弦歌) 소리를 듣고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를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하니, 자유가 대답하기를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들으니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방금 한 말은 농담이다.'[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曰: 割雞焉用牛刀?, 子游對曰: 昔者偃也聞諸夫子曰,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 子曰: 二三子, 偃之言是也. 前言戱之耳.]"라고 하였다. 《論語 陽貨》 객으로……당하였네 '신문(晨門)'은 어진 덕을 가졌으면서도 아침에 성문 여는 미천한 일을 맡아보는 사람으로, 공자 당시의 은자(隱者)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공자에 대하여 말하기를 "세도를 고치는 것이 불가한 것을 알면서 하는 자인가?[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라고 하였다. 《論語 憲問》 《논어》에 은자로서 닭과 관련된 인물은 하조장인([荷蓧丈人)이 있다. 자로(子路)가 공자를 따르다가 뒤떨어졌을 때 그를 보고, 우리 선생님을 보았느냐고 묻자 그는 "사지(四肢)를 부려먹지도 않고 오곡(五穀)을 분간하지도 못하는데, 누가 선생인가."라고 하면서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만 매었다. 자로가 공수(拱手)하고 공경을 표하자 자로(子路)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였다.[殺鷄爲黍而食之] 그 이튿날 자로가 공자에게 말하자, 공자는 "은자(隱者)이다."라고 말하며 자로에게 다시 가 보라고 하였는데 다시 찾아갔을 때는 이미 노인이 떠난 뒤였다. 《論語 微子》 아마도 작자가 신문과 하조장인에 대해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조적은……추었고 진(晉)나라 때 강개한 지절(志節)로 명성이 높았던 조적(祖逖)이 일찍이 자기 친구 유곤(劉琨)과 함께 사주 주부(司州主簿)가 되었을 때, 유곤과 한 이불을 덮고 자다가 한밤중에 때 아닌 닭 우는 소리를 듣고는 유곤을 발로 차서 깨우며 말하기를 "이것은 나쁜 소리가 아니다.[此非惡聲也]" 하고, 인하여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닭 소리를 듣고는 일어나 춤춘다는 것은 장부가 큰 뜻을 품고 호장(豪壯)한 기개를 분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晉書 卷62 祖逖列傳》 전문은……돌아왔는가 전문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 공족(公族)인 맹상군(孟嘗君)을 가리킨다. 맹상군이 일찍이 진(秦)나라에 들어갔다가 혹인(或人)의 참설(讒說)에 의하여 갇혀 죽게 되었을 때, 진 소왕(秦昭王)의 총희(寵姬)를 통하여 풀려나려고 하였다. 총희가 원하는 것은 호백구(狐白裘)였는데, 호백구는 앞서 소왕에게 바친 것 한 벌 뿐이요 달리 구할 길이 없었다. 이에 그 문객 중에 개처럼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진나라의 궁중에 몰래 들어가서 앞서 소왕에게 바쳤던 호백구를 훔쳐다가 그 총희에게 다시 바침으로써 마침내 맹상군이 풀려났다. 맹상군은 풀려난 즉시 성명을 바꾸고 도망쳐서 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당도했으나, 관법(關法)에 닭이 울기 전에는 문을 열어주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한편 맹상군의 속임수를 알아차린 진 소왕은 사람을 시켜서 급히 맹상군을 쫓게 하여 그들이 바짝 뒤쫓아 오고 있는 터라, 상황이 몹시 다급하던 차에 마침 그 문객 중에 닭 울음소리의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이 닭 울음소리를 내자 인근의 닭들이 일제히 울어 댐으로써, 마침내 관문을 열어 주어 그곳을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었다. 《史記 卷75 孟嘗君列傳》 거백옥이……알랴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거백옥은 나이 오십에 사십구 년의 잘못을 알았다." 하였다. 《장자(莊子)》 〈칙양(則陽)〉에는 "육십 살에 오십구 년의 잘못을 알았다."고 하였다. 술동이……있으니 진(晉)나라 때의 문신으로 특히 술을 매우 즐겼던 필탁(畢卓)이 이부랑(吏部郞)으 로 있을 적에는 항상 술을 마시고 직무를 폐하기도 했다. 한번은 그가 이웃집에 술이 익은 것을 알고는 밤중에 그 항아리 곁으로 가서 술을 실컷 훔쳐 마시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 마침내 술 관장하는 사람에게 붙들려서 꽁꽁 묶여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야 풀려났다. 《晉書 卷49 畢卓列傳》 못……읊조리니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쫓겨나 강담에서 노닐고,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리매,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에 생기가 없었다.[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樵悴, 形容枯槁.]"라고 하였고, "온 세상이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뭇사람들은 모두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1》 유후로……많았고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유후(留侯)는 본래 병이 많아서 도인술을 하면서 곡식을 먹지 않았다.[留侯性多病 卽道引不食穀]."라고 하였다. 월을……돌아갔네 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일찍이 오왕(吳王) 부차(夫差)로부터 회계(會稽)의 치욕을 당한 뒤, 구천의 모신(謀臣)인 범려(范蠡)가 미인 서시(西施)를 오왕에게 바쳐 오왕의 마음을 현혹시켜 끝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러고 나서는 이내 월왕을 하직하고 다시 서시를 데리고 서호(西湖)에 배를 띄워 함께 떠났는데, 그 후 그는 제(齊)나라에 들어가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성명(姓名)을 바꾸고 도(陶) 땅에 살면서 주공(朱公)이라 칭하고 상업(商業)으로 치산(治産)을 잘하여 거부(巨富)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고사는 흔히 신하가 공을 이룬 뒤에는 미련 없이 은퇴하는 의미로 쓰인다. 한……쓰랴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위왕(魏王)이 내게 큰 표주박의 씨앗을 주기에 심었는데 그 열매가 5섬(石) 들이는 되었다. 지나치게 커서 사용할 곳이 없어 깨어 버렸노라."라고 하자, 장자가 "5섬 들이의 크기라면 대준(大樽)을 만들어 강호(江湖)에 띄워 볼 생각을 않고 쓰일 곳이 없다고만 하는가."라고 하였다. 《莊子 逍遙遊》 인물이 크게 쓰이지 못함을 비유하였다. 삼년……보았네 제왕(齊王)이 음률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객(客)이 비파[瑟]를 가지고 제왕에게 갔다. 3년을 궐문(闕門)에서 기다렸으나 제왕을 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제왕은 피리를 좋아하는데 그대가 비파를 가져왔으니 조화될 수 없다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韓非子 解老》 임금의 기호에 맞지 않아 등용되지 못함을 비유하였다. 옛사람은……맛나니 《진서》 〈장한열전(張翰列傳)〉에 장한의 자는 계응(季鷹)이다. 제나라 왕 경(冏)이 그를 불러 동조연(東曹掾)으로 삼았다. 장한은 같은 고을의 고영(顧榮)에게 "천하가 이렇게 어지러우니 화가 그치지 않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나는 본래 산림에서 지내던 사람으로 지금 명망도 없습니다."라고 하자, 고영이 그의 손을 맞잡고서 "저 또한 그대와 마찬가지로 남산의 고사리나 캐고 삼강의 물이나 마셨을 따름이오."라고 하였다. 장한이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서 고향 오중(吳中)의 고미나물, 순채국, 농어회 생각이 나서 말하기를 "인생은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삶을 귀하게 여기는데 어찌 고향을 떠나 수천 리 땅에서 벼슬에 얽매어 명예와 벼슬을 구하려 하는가."라고 하고는 마침내 수레에 멍에를 지고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冏)이 패하자 사람들은 모두 장한이 기미를 알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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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척에 대한 애사 申滌哀詞 천상에 누대가 완성되자 적선이 돌아가니279)시혼은 지금 옥황상제의 앞에 있어라양주의 학280)이 떠나자 구름은 부질없이 서늘하고오동나무 난새 외로워지자281) 달은 홀로 둥글구나안개 속에서 몇 해나 범의 가죽을 윤택하게 하였는가282)갑 속 세 척의 용천검은 울어대누나283)영여에 멍에를 매던 날 내 장차 보내려니젊어서 종유했던 이들 가련하게 여기는 세상을 부끄럽게 여기네 天上樓成返謫仙詩魂今在玉皇前楊州鶴去雲空冷梧樹鸞孤月獨圓霧裏幾年鞱豹炳匣中三尺吼龍泉靈輿駕日吾將送少小從遊辱世憐 천상의……돌아가니 진(晉)나라 때 소소(蘇韶)가 죽은 뒤에 넋이 돌아와 그의 아우에게 "저승에 갔더니 공자의 제자 안회와 복상(卜商)이 지금 지하 세계의 조정에서 수문랑을 맡고 있더라."한 고사와 당(唐)나라 이하(李賀)가 27세로 병들어 죽으려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붉은 용을 타고 내려와 "옥황상제가 지금 그대를 불러와 새로 지은 백옥루(白玉樓)의 기문을 짓게 하라 하였소." 하고서 천상으로 데리고 갔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흔히 문인 재사(才士)가 일찍 죽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뜻으로 쓰인다. 《太平廣記 卷319 鬼四 蘇韶》 《李義山文集箋註 卷10 李賀小傳》 양주의 학 인간이 바라는 여러 가지 것을 신척이 다 지닌 것을 말한다. 예전에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소원을 말하였는데, 한 사람은 많은 돈을 갖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고, 한 사람은 학(鶴)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고, 한 사람은 경치 좋은 양주의 자사(楊州刺史)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 하자, 이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많은 돈을 허리에 차고서 학을 타고 양주 고을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 소원이라 했던 데서 나온 말이다. 《淵鑑類函 鳥部三 鶴》 오동나무 난새 외로워지자 신척을 사별한 뒤 부인이 홀로 슬퍼하며 지냈다는 말이다. 옛날에 계빈왕(罽賓王)이 난새 한 마리를 잡았는데, 난새가 우는 소리를 매우 듣고 싶었으나 울게 할 방도가 없었다. 금으로 된 울타리를 쳐주고 진귀한 먹이를 주어도 시름시름 앓기만 하고 삼 년 동안을 울지를 않았다. 그러자 계빈왕의 부인이 말하기를 "새는 자기 무리를 본 뒤에 운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거울을 걸어서 비치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그 말에 따라 거울을 걸어 주었더니, 난새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하늘에 사무치도록 슬피 울다가 숨이 끊어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후에 이를 '난경(鸞鏡)' 또는 '고란조경(孤鸞照鏡)'이라 하여 금슬 좋던 부부가 배우자를 사별(死別)한 뒤 쓸쓸하게 지내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太平御覽 卷916 鸞鳥詩序》 안개……하였는가 한나라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 〈도답자처(陶答子妻)〉에 도답자가 도(陶) 지역을 다스린 지 3년이 되었는데, 명성은 들리지 않고 집안의 재산만 세 배로 늘었다. 그의 아내가 간하기를 "남산에 검은 표범이 사는데, 안개가 끼거나 비가 내리면 칠일 동안 먹이를 먹으러 내려오지 않으니, 그것은 그 털을 윤택하게 하여 표범의 무늬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개와 돼지는 음식을 고르지 않고 먹어서 그 몸을 살찌우지만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갑……울어대었네 용천검이 주인을 잃고 우는 것으로 신척의 죽음을 비유하였다. 진(晉)나라 때 장화(張華)가 일찍이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사이에 자기(紫氣)가 감도는 것을 보고 예장(豫章)의 점성가(占星家) 뇌환(雷煥)에게 물으니, 보검의 빛이라 하였다. 이에 풍성(豐城)의 감옥 터에서 춘추 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적인 보검인 용천검(龍泉劍)과 태아검(太阿劍)을 발굴했다고 한다. 《古文眞寶 後集 卷2 滕王閣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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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노첨에게 주다 2수 贈崔魯詹【二首】 노선의 붓 아래 옛날 한유의 문장 펼쳐지니그대는 또한 시에 능하여 리가 가르침을 들은 듯229)재주는 젊어서부터 명성이 자자하였는데운수 어긋나 흰 머리카락만 날로 어지럽구나하늘 저편 이별의 한은 봄풀에 슬퍼하고230)관새 너머에서 돌아갈 마음 흰 구름을 바라보네231)구중궁궐이 천리 멀다고 말하지 말라어진 이 대우하는 성명의 군주를 믿어보게나젊어서 약간 공맹의 경전 공부하였는데나이 오십에 명성 없어 부끄러워라벼슬은 낮다고 이르지 않지만 나의 졸렬함을 알고귀가 어두워도 어찌 슬퍼하랴만 어지러운 세상이 싫어라지금 내세울만한 것232)은 다만 백발뿐이오중년까지 오래 사귄 것은 푸른 구름이어라근래의 회포는 그다지 좋은 것 없는데관새의 길 봄바람에 또다시 그대 보내는구나 老仙筆下古韓文子又能詩鯉有聞才調少年名籍籍蹉跎衰鬢日紛紛天涯離恨傷春草關外歸心望白雲莫道九門千里遠急賢須恃聖明君少日稍爲鄒魯文行年五十恥無聞官非謂薄知吾拙聾亦何傷厭世紛長物此時惟白髮舊交中歲盡靑雲邇來懷抱無多好關路春風又送君 리가……듯 《논어》 〈계씨(季氏)〉에서 "공자가 홀로 서 있을 때 아들 리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니, 공자가 그에게 '시를 배웠느냐'라고 물으니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느니라.'라 하였다. 리는 물러나 시를 배웠다.[嘗獨立, 鯉趨而過庭, 曰學詩乎? 對曰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라고 하였다. 봄풀에 슬퍼하고 먼 타향에서 부모를 그리는 효심으로는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어려움을 뜻한다. 당나라 맹교(孟郊)의 〈유자음(游子吟)〉 에서 "한 치의 풀과 같은 자식의 마음으로, 봄날의 햇볕 같은 어머니의 사랑 보답하기 어려워라.[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라고 하였다. 흰 구름을 바라보네 당(唐)나라 적인걸(狄仁傑)이 병주(幷州)로 부임하여 태항산(太行山)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다가 백운(白雲)이 떠가는 것을 보고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부친이 계신 곳이 저 구름 밑이다." 하고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다가 구름이 옮겨가자 이에 자리를 떴다. 그 후로 이 일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고사로 쓰이고 있다. 《舊唐書 卷88 狄仁傑列傳》 내세울만한 것 장물(長物)은 원래 두 가지 이상 가지고 있는 물건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몸에 많이 지닌 것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공(王恭, ?~398)이 아버지를 따라 회계(會稽)에서 서울로 왔을 때 친한 벗 왕침(王忱)이 그를 찾아갔다가 그가 깔고 앉은 6자 너비의 대자리를 보고는 달라고 하였다. 왕공은 그가 떠난 뒤에 즉시 대자리를 거두어 보내주고 자신은 언치를 깔고 앉았다. 뒤에 왕침이 이를 알고 매우 놀라자 왕공이 "나는 평소에 남는 물건이 없네.[吾平生無長物]"라고 하였다. 《晉書 卷84 王恭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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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잃다 失題 검은 머리의 재상을 옛날에 영광이라 칭하였나니더구나 태평시절 제일가는 명성으로 손꼽힘에랴예전엔 은대를 맡아 북궐에 -원문 1자 결락-거듭 옥절 지니고서 영남을 다스렸네민풍은 일찍이 감당의 집을 노래하였고238)군무는 세류영239)을 겸하여 행하였네한번 형주를 알게 된 것240)도 지금 이미 늦었는데만약 헤어진다면 그 마음 더욱 아쉬우리 黑頭之相古稱榮況策淸時第一名舊掌銀臺【缺】北闕重携玉節按南溟民風曾詠甘棠舍軍務兼行細柳營一識荊州今已暮若爲離別更關情 감당의 집을 노래하였고 《시경·소남(召南)》 〈감당(甘棠)〉에 "무성한 팥배나무를, 자르고 베지 말라. 소백이 초막으로 삼으셨던 곳이니라.[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라고 하였다. 이는 주나라 소공(召公)이 남국(南國)을 순행하며 문왕의 정교(政敎)를 펼쳤는데, 그가 떠난 뒤에 백성들이 그를 사모하여 그가 자주 쉬던 감당 나무를 베지 말자며 읊은 노래이다. 흔히 지방장관의 치덕(治德)을 칭송할 때 '감당'이란 말을 사용한다. 세류영 한 문제(漢文帝)가 여러 군영(軍營)을 순찰하는 중, 다른 곳에서는 모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지만, 주 아부(周亞夫)의 세류영(細柳營)에 갔을 때는, 군문 도위(軍門都尉)가 장군의 영(令)이 없다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절(使節)을 보내어 주 아부에게 통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며, 군중(軍中)에서는 말을 달리지 못한다고 하여, 문제가 말고삐를 당겨 천천히 다녔고, 본영으로 가 주 아부와 군례로 서로 인사한 다음 돌아갔는데, 문제는 아부 군중의 이러한 일을 도리어 칭찬하였다는 것이다. 《십팔사략(十八史略)》ㆍ《서한기(西漢記)》. 한번……것 훌륭한 현인을 만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당(唐)나라 원종(元宗) 때 사람인 한조종(韓朝宗)이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이백(李白)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 "살아서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질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번 한 형주를 알기 원한다."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與韓荊州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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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北靑謁鼇城相公祠 丞相祠堂北海濆關山歸客駐征軒不堪瞻拜傷心處秋日凄凄映淚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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到家 塞關爲客鬢絲斑二月離家九月還情話可能辭大酌眼前松竹摠怡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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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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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夢亡妻奇氏 和顔靜志若平生雖隔玄泉抱至情夢覺開窓何所見楚天空闊曉星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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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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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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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소리 聲 내 듣건대, 무극이태극은천지가 개벽하는 처음이로다20)천기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지뢰도 잠잠하니적막하고 고요하여 모두 텅 비었네형체가 교접하고 기가 감응하여 비로소 소리 생겨나흩어져 만 가지가 되니 얼마나 분분한가새는 봄에 울고 벌레는 가을에 울며우레는 뒤흔들고 바람은 불어오네대소장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만하나를 들으면 나머지를 알 수 있도다사람이 사물 중 가장 영특하니비유하자면 모래 속의 보석과 같아라오성이 내면에 갖추어졌으니 체가 고요한데21)칠정이 밖에서 감응하여 말을 통해 펼쳐지네소리의 청탁은 형체에 따라 같지 않고소리의 선악은 마음에 따라 달라지네성인은 먼저 천지의 조화로움을 자득하여삼재(三才)에 참여해 천지에 가장 먼저 나왔으니금석과 사죽에서 기물을 빌리고예악과 시서에 법을 담았네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대소사가 이를 따랐으니22)시에서 흥기하고 예에서 서고 악에서 완성하네23)사람이 천지와 조화되어 또한 서로 응하니절주 있게 우는 봉황이 뜰에서 춤추었네순후한 풍속 사라지자 〈대아〉가 없어지고주나라 쇠하고 정나라 음악 음탕하자 탄식했네하늘이 낸 목탁은 때를 만나지 못했으니위나라에서 경쇠 치길 그만두고 돌아가길 생각했어라24)《시》와 《악》을 산정하여 잔결을 바로잡으니쟁쟁한 〈관저〉 장을 비로소 다시 듣게 되었네25)안회의 거문고와 증점의 비파도 훌륭하게 소리냈으니26)여음이 끊기지 않아 맹자에게 전해졌네천년 세월을 내려오며 점차 희미해지고뭇사람들 떠들어대자 날로 우리 도와 함께 사라졌네27)아, 사람들이 스스로 성정의 바름을 잃고부터사물과 조화를 이루려 해도 참으로 거칠도다번쇄하고 촉급한 음악에 기상 근심스럽고사슴 여우가 우니 종묘사직이 황폐하네진유가 뒤늦게 태어났는데 송나라 해 저물었으니천 년 전 아름다운 음악 오직 주소에 남았네진실로 음악 소리는 정치와 통하나니세도에 관계된 바이니 어찌 소홀히 하랴제나라 왕이 음악 좋아하니 또한 잘 다스려지고28)자하가 시를 논하자 오히려 공자를 일으켰지29)더구나 우리 성군께선 말소리가 음률이 되고30)큰 도를 행하시며 넓은 집에 거처하시네31)쟁쟁 울리는 소리 끝에 가서 종고 끊기니32)성리는 본래 연비어약의 이치 구하는 법지극히 화한 기운 널리 퍼져 조야가 같아지니내가 선창하면 네가 화답해 즐겁도다바라건대, 여항의 노래 채집해 궐에 바치고문 앞에서 비파를 잡고 벼슬 그만두었으면 吾聞無極而太極是爲乾坤開闢初天機未動地籟沈寂然寥然都一虛形交氣感始有聲散爲萬殊何紛如鳥以陽春蟲以秋雷能震擊風能噓洪纖長短何足數可以聞一知其餘人生最是物之靈比如沙石中璠璵五性具內爲體靜七情應外因言舒淸濁隨形不同調善惡由心歸異閭聖神先自得天和參三首出于堪輿借器於金石絲竹寓法於禮樂詩書斯爲美矣小大由興於立於而成於人和天地亦相應噦噦鳴鳳儀庭除淳風死去大雅亡周衰鄭淫堪噫歔天生木鐸不遇時衛磬擊罷歸思歟刪詩定樂正殘缺洋洋始復聞關雎回琴點瑟亦善鳴餘音不絶傳子車歸來千載漸微茫衆咻日與吾道疎嗟人自失性情正欲和於物眞蘧篨繁音急管氣象愁鹿泣狐鳴宗社墟眞儒生晩宋日暮千載芳聲惟註疏信是聲音與政通世道所關寧忽諸齊王好樂亦庶幾子夏論詩猶起予況我聖君聲爲律行大道兮居廣居鏗鏘是末斷鍾鼓性理爲本求鳶魚至和旁流朝野同唱予和汝其樂且願采衢謠獻天門門前操瑟休曳裾 무극이태극은……처음이로다 송나라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해지며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라고 하여, 우주 만물의 시초를 설명하였다. 오성이……고요한데 오성(五性)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가리킨다. 송나라 정이(程頤)가 "그 근본이 진(眞)하고 정(靜)하며 미발(未發)했을 때에 오성이 갖추어져 있으니, 이것을 인‧의‧예‧지‧신이라 하고, 진은 무극(無極)의 진리이고 정은 사람이 태어나 고요한 것이니, 하늘의 성(性)을 그대로 간직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二程文集 卷9 伊川文集 顔子所好何學論》 이것을……따랐으니 예의 용(用)에 대해 말한 것이다. 《논어》 〈학이(學而)〉에 "예가 행해지는 것은 화기(和氣)가 중요하니, 선왕의 도도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러므로 작은 일과 큰 일 모두 이것을 따랐다.[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라고 하였다. 시에서……완성하네 《논어》 〈태백(太白)〉에 공자가 "시에서 흥기하고 예에서 서고 음악에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하늘이……했어라 하늘이 낸 목탁은 공자를 가리키고, 위나라에서 경쇠를 친다는 것은 도를 행하려는 뜻이 있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위(衛)나라에서 경쇠를 쳤는데, 삼태기를 메고 문 앞을 지나던 은자가 그 소리를 듣고 "천하에 마음이 있구나, 경쇠소리여.[有心哉, 擊磬乎!]"라고 하였다. 《論語 憲問》 쟁쟁한……되었네 훌륭한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악사(樂師)인 지(摯)가 처음 벼슬할 때에 연주하던 《시경》 〈관저(關雎)〉 장의 마지막 악장이 아직도 쟁쟁하게 귀에 가득하구나.[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라고 하였다. 《論語 泰伯》 안회의……냈으니 공자가 안회(顔回)에게 벼슬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안회가 "저는 성곽 밖에 밭 50무(畝)가 있어 죽을 먹을 만하고, 성곽 안에 밭 10묘가 있어 명주와 삼베를 얻을 수 있으며, 거문고를 연주하여 스스로 즐길 만하고 배우는 선생님의 도로 스스로 즐길 만하니, 저는 벼슬하기를 원치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莊子 讓王》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각자의 뜻을 묻자, 증점(曾點)이 타던 비파를 놓고 일어서 "늦은 봄에 봄옷이 다 지어지면 대여섯 명의 어른과 예닐곱 명의 아이들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가 감탄했다. 《論語 先進》 뭇사람들……사라졌네 바르지 못한 설이 시끄럽게 성행하여 올바른 음악이 점차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제나라 사람 한 명이 가르치고 많은 초나라 사람이 떠들어대면[衆楚人咻之], 매일 매를 때리면서 제나라 말을 습득하게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제나라……다스려지고 제 선왕(齊宣王)이 자신은 선왕(先王)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세속의 음악을 좋아할 뿐이라고 하자, 맹자가 "왕께서 음악을 아주 좋아하시면,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입니다.[王之好樂甚, 則齊其庶幾乎!] 지금의 음악이 옛날의 음악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孟子 梁惠王下》 자하가……일으켰지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시경》에 나오는 시를 잘 해석하며 평하자, 공자가 "나를 흥기시키는 사람은 상이로구나.[起予者, 商也.] 이제 함께 시를 말할 만하구나."라고 칭찬하였다. 《論語 八佾》 말소리가……되고 임금의 행동거지가 법도에 맞음을 칭송한 말이다. 《사기》 〈하본기(夏本紀)〉에 "우 임금은 위인이 민첩하고 부지런하며, 덕은 정상을 벗어나지 않고 인은 친할 만하고 말은 믿음직하며, 소리는 율이 되고[聲爲律] 몸은 법도에 맞았다"라고 하였다. 큰……거처하시네 인(仁)과 의(義)를 행한다는 의미이다. 맹자가가 "천하의 넓은 집에 거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도리를 행하여……이러한 사람을 대장부라 하는 것이오."[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此之謂大丈夫.]"라고 하였는데, 송나라 주희(朱熹)의 주석에 "넓은 집은 인이요, 큰 도는 의이다."라고 하였다. 《孟子集註 滕文公下》 쟁쟁……끊기니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음악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행하는 사람이 인(仁)한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면 음악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이씨(李氏)가 "예악은 사람을 기다린 뒤에 행해지니, 만일 적당한 사람이 아니면 비록 옥과 비단이 서로 섞이고 종과 북이 울리더라도[鍾鼓鏗鏘] 또한 장차 예악을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論語集註 八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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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주 천사33)의 〈한강에서 고기잡이를 구경하다〉 시에 차운하다 次朱天使漢江觀魚韻 창랑34)에 마음 쏟는 홍진 속 객이라서울 벼슬살이는 옛 고향과 꽤 다르네어젯밤 꿈속에서 창랑으로 돌아가 보니강가 꽃이 강 비추고 낚시터에 이끼 꼈네꿈에서 깨자 이 몸은 도성 안에 있으니멀리 바라보며 한갓 수고로이 산등성이 오르네한창 살쪘을 농어를 탄식한 장한이요35)남쪽으로 날아온 기러기 근심한 소식이라36)오늘 아침 와서 흐르는 큰 강 굽어보고물고기 새와 함께 모래섬에서 노니네성사를 타고서 황홀히 천상의 신선 만나니37)어찌 원례와 함께 용문에 오를 뿐이랴38)맑고 고상한 이야기 나누며 정답게 함께 하니돛단배 물결 타고서 공중에 떠가네하늘 높이 올라 마치 세상 밖에서 노니는 듯하니인간 세상의 벼슬살이 벗어 던졌네중류에 다시 함께 지주석처럼 서 있으니우뚝하여 큰 물결 급히 흐르는 줄 어찌 알랴북두성 국자로 동해 바닷물을 떠서가슴 가득한 괜한 걱정 한번 씻어내고파라해가 진 줄도 모르고 즐겁게 노니니가는 은갈고리 같은 초승달 산에 떠오르네그물질 재촉하는 모습 시원스레 한 번 구경하니강물 쏟음에 어찌 숨어 있는 교룡 봐주랴술 마심에 가늘고 붉은 회 싫증나지 않고취기 무르익자 점점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가네인물은 성대한 등왕각에 자랑할 만하고39)음악 곡조는 또 난정의 모임40)보다 낫구나남아의 원대한 뜻 태어날 적부터 지녔으니41)돌아갈 길 산수 겹겹이라 말하지 말라단지 시 주머니 속 천 수의 시가우리 동방의 부질없는 풍월 전할까 꺼려지네 滄浪心事紅塵客洛下殊非舊鄕陌滄浪昨夜夢中歸江花照江苔生磯覺來此身在京國瞻望徒勞岡岵陟鱸魚正肥歎張翰鴻鵠南飛惱蘇軾今朝來瞰大江流且將魚鳥遊沙洲星槎怳接天上仙豈啻元禮同登舟淸談高讌好相與風帆駕浪空中擧憑虛怳若汗漫遊脫落人間簪與組中流還共砥柱立屹然那識洪流急欲將北斗酌東溟一洗閑愁滿胸臆留連不覺日西夕新月出嶺銀鉤纖促呼漁網快一觀倒江肯饒鮫龍潛點酒不厭紅縷膾醉興漸入佳景界人物堪誇滕閣盛管絃又勝蘭亭會男兒遠志自桑蓬莫道歸程山水重只嫌囊中千首詩輸了吾東風月空 주 천사 주지번(朱之蕃, 1548~1626)으로, 1606년(선조39)에 명나라 신종(神宗)이 황손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사신으로 와서 조선의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창랑 세속을 초월하여 고결한 지조를 지키고자 하는 뜻을 의미한다.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고 하였다. 한창……장한이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진(晉)나라의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하다가 천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晉書 張翰列傳》 남쪽으로……소식이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정혜원의 해당화定慧院海棠[定慧院海棠]〉 시에 "한 치의 뿌리도 천 리 멀리 오기 쉽지 않으니, 씨를 머금고 날아온 것 분명 기러기와 고니리라.[寸根千里不易到, 銜子飛來定鴻鵠.]"라고 하였다. 해당화는 소식의 고향인 서촉(西蜀)에서 나는 꽃으로 세간에선 보기 드문 꽃인데, 황주(黃州)로 좌천되어 정혜원에 우거하던 소식이 우연히 정혜원에 핀 해당화를 보고 고향을 떠올렸다. 성사를……만나니 명나라 사신인 주지번을 만난 것을 천상 세계에 오르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성사(星槎)는 은하수를 오가는 뗏목이라는 말로, 사신이나 사행을 비유하는데, 한(漢)나라 장건(張騫)이 한 무제(漢武帝) 때 장건(張騫)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서역(西域)에 갔다가 뗏목을 타고 황하(黃河)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은하수에 이르렀다고 한다. 《博物志 卷10》 어찌……뿐이랴 주지번에게 인정받는 것이 대단한 영광이라는 의미이다. 원례(元禮)는 한나라의 명사(名士) 이응(李膺)의 자이다. 이응의 명망이 매우 높아 그의 인정을 받은 선비들도 명망이 높아졌기에, 당시 사람들이 이응에게 인정을 받는 것을 "용문에 올랐다.[登龍門]"라고 하였다. 《後漢書 李膺列傳》 인물은……만하고 등왕각(滕王閣)은 당 고조(唐高祖)의 아들 이원영(李元嬰)이 홍주 자사(洪州刺史)로 있을 때 지은 누각이다. 홍주 목사 염백서(閻伯嶼)가 중양절에 등왕각에서 빈객을 초청해 큰 연회를 베풀고, 손님들에게 서문을 짓게 했는데, 이때 지은 왕발의 서문이 명문으로 전해진다. 《古文眞寶 後集 卷2 滕王閣序》 난정의 모임 난정(蘭亭)은 중국 회계(會稽) 산음(山陰)에 있던 정자의 이름으로, 왕희지(王羲之)가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 3월 상사일에 왕희지(王羲之), 사안(謝安) 등 42인의 명사들이 난정에서 모여 계제사(禊祭祀)를 행한 뒤에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성대한 모임을 했다. 《古文眞寶 後集 卷1 蘭亨記》 남아의……지녔으니 고대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만든 활[桑弧]에 쑥대로 만든 화살[蓬矢]을 메워서 천지 사방에 쏨으로써, 장차 천하에 원대한 일을 행하기를 기대하였다. 《禮記 內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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