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원에 대한 만사 林德源輓 당당하고 장대한 평생의 뜻구구한 책상물림이 아니어라고기 먹을 호랑이 머리270)인줄 일찍이 알았는데원숭이 팔뚝으로 제후에 봉해지지 못할 줄271) 뉘 알았으리늙어 외려 죽기 각오하니272) 장군은 건장하였고청렴함은 현어273)에 비교되니 태수는 뛰어났어라남긴 한은 방촌의 인끈 버리지 못한 것이니꿈속에서 금산으로 몇 번이나 돌아갔던가 昂昂落落平生志不是區區翰墨流早識虎頭當食肉誰知猿臂未封侯老猶裹革將軍健淸比懸魚太守優遺恨未抛方寸印幾回歸夢錦山秋 고기……머리 후한(後漢) 반초(班超)가 집이 가난해서 관청의 문서를 베껴 쓰며 모친을 봉양하던 중에, "그대는 제비의 턱에 범의 머리라서 날아다니며 고기를 먹는 상이니, 이는 곧 만리후가 될 상이다.[燕頷虎頭 飛而食肉 此萬里侯相也]"라는 관상가의 말을 듣고 분발한 결과, 서역(西域)에 나아가 큰 공을 세워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진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원숭이……줄 원비는 원숭이 처럼 팔이 길어서 무릎 아래로 내려온다는 뜻으로, 활을 잘 쏘는 위엄 있는 무부(武夫)를 지칭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한 문제(漢文帝) 때 이광(李廣)은 '원비장군(猿臂將軍)'으로 불렸는데 북평 태수(北平太守) 등 여러 변방의 태수를 지냈고, 특히 대장군(大將軍)으로서 흉노(匈奴)와 70여 차례의 전쟁을 하여 매우 큰 공훈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부하 장수들 모두가 제후로 봉해졌는데도 정작 그만은 끝내 높은 관작에 봉해지지 못했으므로, 운명의 탓으로 돌리며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는 '이광미봉(李廣未封)'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죽기 각오하니 원문의 '과혁(裹革)'은 가죽에 싼다는 뜻으로,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뒤 말가죽에 싸여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라면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가죽에 시체를 싸서 돌아와 묻혀야 하니, 어찌 아녀자의 손에 죽을소냐.[男兒當以馬革裹尸還葬, 安可死於兒女手乎?]"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현어 생선을 걸어 놓는다는 뜻으로, 관리의 청렴결백을 비유하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양속(羊續)이 남양 태수(南陽太守)로 있을 적에 요속(僚屬)이 생선을 바치자, 이 생선을 뜰에 걸어 놓아 다시는 바치지 말라는 뜻을 보인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後漢書 卷31 羊續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