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주에서 객관 벽에 걸린 시에 차운하다 2수 吉州 次客館壁上韻【二首】 용사의 해128)라 나랏일 비통했으니남쪽에서 온 병화가 곤륜산을 녹였네129)못과 누대 황폐해져 묵은 자취 되어버렸고비단 쇠잔해졌으니 옛 향기 추억하네난세에 장차 도연명처럼 취하려 하고130)막다른 길에서 완생의 창광함을 배우고자 하노라131)곁에 있는 사람들 우리 유자 썩었다 비웃지 말라그래도 몇 자 되는 추련을 차고 있다오132)하늘 끝에 떠도는 이 슬퍼할 만하거늘하물며 좋은 날 민둥산에 오름133)에 있어서랴형제를 어디서 만날지 알 수 없고고향의 수유 향기 멀리서 그리워라우연히 돌아가는 꿈 꾸어 근심 이내 그쳤는데이제 막 편지 받아 보니 미칠 듯이 반갑구나변방 기러기 다 보냈으나 사람은 가지 못하니뜰 안 나무의 긴 잎새 소리 어이 견딜거나 歲在龍蛇事可傷南來兵火爍崑岡池臺蕪沒成陳迹羅綺銷沈憶舊香亂世且爲陶令醉窮途欲學阮生狂傍人莫笑吾儒腐猶帶秋蓮尺許長天涯遊子足悲傷況乃佳辰陟岵岡不識弟兄何處會遙憐茱菊故園香偶成歸夢愁仍罷纔得來書喜欲狂送盡邊鴻人未去可堪庭樹葉聲長 용사의 해 해의 지지(地支)가 용인 진(辰)과 뱀인 사(巳)가 든 해로, 용사년에는 흉사(凶事)가 일어난다고 여겨졌다. 《後漢書 鄭玄列傳》 여기서는 왜란(倭亂)이 일어난 임진년(壬辰年)과 계사년(癸巳年)을 가리킨다. 곤륜산을 녹였네 참혹한 병화(兵火)를 비유하는 말이다. 《서경》 〈윤정(胤征)〉에 "곤륜산에 화염이 치솟아 옥석이 모두 탄다.[火炎崑岡, 玉石俱焚.]"라고 하였다. 난세에……하고 도령(陶令)은 진(晉)나라 도연명을 가리킨다. 진나라가 쇠망의 길로 들어서자, 도연명은 팽택 영(彭澤令)의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세속과 인연을 끊은 채 시주(詩酒)를 즐기면서 지냈다. 《晉書 陶潛列傳》 막다른……하노라 완생(阮生)은 진(晉)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을 가리킨다. 완적은 천성이 방달불기(放達不羈)하여, 마음속에 답답한 일이 있으면 수시로 혼자 수레를 타고 나갔다가 막다른 길을 만나면 매양 통곡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晉書 阮籍列傳》 몇……있다오 추련(秋蓮)은 칼집에 연꽃이 아로새겨진 보검으로, 추련을 차고 있다는 것은 전쟁을 앞둔 군사의 기개를 비유한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호무인(胡無人)〉 tl에 "유성처럼 빠른 화살 허리춤에 꽂고, 번쩍이는 보검을 상자에서 꺼내도다.[流星白羽腰間揷, 劍花秋蓮光出匣.]"라고 하였다. 민둥산에 오름 어버이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시경》 〈위풍(魏風) 척호(陟岵)〉에 "저 민둥산에 올라가서,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네.[陟彼岵兮, 瞻望父兮.]"라고 하였다. 이는 효자가 부역을 나가서 어버이를 잊지 못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