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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역적 허균이 복주된 것을 하례하는 전문 昌原賀逆筠伏誅箋 나라의 법은 상도(常道)가 있으니역적의 죄인을 어찌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리오.이에 왕업의 큰 토대가길이 반석같이 편안한 곳에 올리어질 것이라.무릇 보고 듣는 이들은모두 발을 구르며 춤을 출 것이라.삼가 생각건대, 덕이 견고한 상성께서중흥의 운을 만났어라.11)총애하는 은전이 자주 명에서 내려와스물네 글자의 휘호를 크게 받았어라.훌륭한 업적은 선대왕보다 많아서천만 대의 크나큰 계책을 성대하게 열었네.누가 감히 그 사이에 모반의 싹을 지녀서스스로 부월의 죽임으로 나아가랴.뜻밖에도 집안의 적자가또한 나라에 난신이 되었어라.모친이 돌아가셔도 상을 지내지 않으니이것이 차마 하는 것이요.자신은 죽음을 당해도 죄는 남거늘무엇이 괴로워 배반하는가.정상은 자술서에 이미 드러났으니대중들이 버림에 처형을 어찌 늦추리오.12)《춘추》의 군친을 해하려는 마음과 한법의 대역무도13)는너에게서 나왔으니 너에게로 돌아간다14)는 것이니 처벌해야 하네.오형을 두루 논하여 삼족을 아울러 멸해야 하니꾀를 냄에 공교로우면 그 꾀에 넘어간다15)는 경우의 밝은 증험이라.비록 그의 목숨이 여우 쥐처럼 미약하다고 해도나라에 있어서 그 경사 승냥이 이리를 없앤 듯하여라.삼가 생각건대 남쪽 고을의 백수 늙은이북궐 향하여 일편단심이라네.천세 부르며 축원하는데16)원로의 반열17)에 달려가지 못하지만해는 멀리 있고 하늘은 높으니해바라기의 정성은 시들지 않아라. 邦刑有常逆竪豈容乎網漏罪人斯得丕基永措於磐安凡在瞻聆無非蹈舞恭惟德固上聖運値中興寵典屢自天朝誕膺卄四字之徽號嘉績多于先烈蔚啓千萬歲之洪圖誰敢孽芽其間自就鈇鉞之戮不意家之賊子又於國爲亂臣母歿不臨喪是可忍也身死有餘罪何苦叛乎情狀旣露於自供誅討寧緩於衆棄春秋無將漢法不道出乎爾反乎爾之通辭五刑具論三族幷夷工於謀敗於謀之明驗雖渠命本微狐鼠在國慶若除豺狼伏念白首南州丹心北闕嵩呼華祝鴛鷺之班未趨日遠天高葵藿之傾不替 중흥의 운을 만났어라 중흥은 반정(反正)을 가리키니, 여기서는 인조의 반정을 이른다. 대중들이……늦추리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사람을 시장에서 처형하여 대중들과 함께 그를 버린다.[刑人於市 與衆棄之]"라고 하였다. 춘추의……대역무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장공(莊公) 32년조에 "장래에 군주나 부모에 대하여서는 배반하겠다고 생각만 하고 아직 실천에 옮기지 아니하였다고 하여도 용서받지 못하고 주살한다.[君親無將, 將而誅焉]'라고 하였으며, 같은 책 소공(昭公) 원년 조에 "군친(君親)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는 반드시 복주시켜야 한다.[君親無將 將而必誅焉]"라고 하였다. 한 고조(漢高祖)가, 항우(項羽)가 의제(義帝)를 강남(江南)에서 시해하자 대역부도라고 하였다. 《史記 高祖本紀》 너에게서……돌아간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증자가 말하기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선과 악은 자신이 남에게 베푼 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꾀를……넘어간다 《고문진보》 〈서오대곽숭도전후(書五代郭崇韜傳後)〉에서 "모략을 좋아하는 선비는 모략에 패망하고 변론을 좋아하는 선비는 변론에 패망한다.[好謀之士, 敗於謀, 好辯之士, 敗於辯.]"라고 하였다. 축원하는데 '화축(華祝)'은 화봉인(華封人)의 삼축(三祝)을 줄인 말로,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말이다. 화 땅을 지키는 사람[華封人]이 요 임금에게 수(壽)와 부(富)와 다남(多男)을 축원했다는 《장자(莊子)》 〈천지(天地)〉의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는 다만 축원하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원로의 반열 '원로(鴛鷺)' 원추새와 백로인데, 이 두 새는 모습이 한아(閑雅)하고 질서가 있다 하여 조정 반열에 늘어선 백관을 비유하는 말로 곧잘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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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왕이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하는 내용으로 상정하여 지은 제서 擬漢王拜韓信大將制 먼저 관중에 들어와 차지하게 되면우리가 왕이 되어 다스릴 땅을 잃게 되네.반드시 천하를 취하려고 한다면그대를 장수 삼지 않고 그 누구리오.이에 총융으로 명하여장차 분곤의 책무18)를 맡기노라.다만 그대는 허리에 검 한 자루 찼으나가슴에는 《육도》19)가 서려 있어라.백정의 소년들이바지 아래로 나올 용기20)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성 아래의 빨래하는 유모는낚시 드리운 풍모를 일찍 알았어라. 21)군웅이 일어날 때 진에서 도망하여칠 척의 몸을 일으켜 초나라로 찾아갔네.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이에 그만두었으니어린 애와는 어찌 함께 일을 꾀하랴.22)멀리서 찾아왔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과인은 원컨대 마음을 차분히 하고 가르침을 받들겠노라.지난번 항우가 맹약을 저버린 까닭에이렇게 한나라 땅이 봉지를 옮기게 되었네.남정23) 가는 길은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니진나라 변새 천 겹의 숲을 바라보누나.서쪽의 풍토는 절로 달라탕산의 오채색 구름24)을 꿈꾸누나.전사들 대부분 동으로 돌아갈 생각하고그대 또한 뒤에 있다가 서로 헤어졌구나.나를 뒤좇지 않은 탄식이 바야흐로 깊은데다행이도 왕을 위해 머문 사람들이 있구나.재상이 둘도 없는 인재25)라고 천거하니경감26)을 통해 나아간 것이 아니어라.장군의 재주를 제일로 발탁하니염파의 앞에 있는 것이 합당하네.생각건대 지금은 처음 의례를 만드는데더구나 나는 본래 거만하여 무례하지만다행이도 장인의 점괘라 길하리니27)어찌 어린아이라고 부름28)과 같게 하랴.깊이 계합하니어찌 다만 간(諫)을 들어주고 계책을 따를 뿐이겠는가.예우의 성대함은마땅히 비를 들고29) 바퀴를 밀어주는 자와 같게 하리.이에 길일로써단을 만들고 예의를 갖춰그대를 제수하여 대장군으로 삼노니그대는 답답하게 오래 머무르는 나를 불쌍하게 여겨그대의 다다익선의 능력을 바치도록 하라.풍운의 용호30)라인걸로써 귀신의 조화를 운용하였고전사와 말의 군수와 군량은천부를 이용하고 지리를 따랐어라.때를 기다려 움직이고날을 지적하여 기약하여옥루31)의 겹겹 관문을 열고서금우의 옛길32)로 나왔어라.함곡관을 다시 수리하여만전을 기하여 조룡33)의 터를 차지했으며곧바로 팽성을 공격하여목후34)의 소굴을 일거에 소탕하였어라.강중에서의 원통35)을 씻을 수 있다면천하의 바람이 돌아올 것이니그런 뒤에 조나라를 정복하고 연나라를 으르며위나라를 사로자고 제나라로 내려가서 신하라고 칭하게 할 것이며장강을 따라 내려 낙을 넘어회수를 배를 띄워 황하에 이르기까지 조공을 바치게 할 것이니그렇다면 벼슬과 상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부귀를 마땅히 그대와 나눌 것이라.억만 년 한나라 왕업천자는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같고육백 리 초나라 땅장부가 곧 남면하여 고라고 칭하리라.나 한 사람을 보필함36)을힘쓰시라 그대여.오호라 하늘이 준 바이니군중에서 한 명의 한신을 얻었어라.감히 나를 대적할 이 없으니삼진37)도 눈 아래 없어라.이에 볼 것이니 오늘 장수로 임명하매영원토록 그 공에 의지할 것을. 先入定關中失吾當王之地必欲取天下非爾爲將而誰肆命摠戎且與分閫惟爾腰帶一釰胸蟠六鞱屠中少年豈知出桍之勇城下漂母早識垂釣之風當羣雄起而亡秦挺七尺薄言歸楚莫己知斯可已矣竪子何足與謀自遠來不亦樂乎寡人願安承敎頃緣項氏之背約有此漢地之移封南鄭之道途漸遙秦塞望千重之樹西蜀之風土自別碭山夢五彩之雲士多思歸于東爾亦相失在後方深不予追之歎賴有爲王留之人相臣薦其無雙非因景監而進將才擢爲第一合在廉頗之先念今草創之儀矧予素慢無禮幸卜丈人其吉寧若小兒之呼契合之深豈但言聽計從而已禮遇之盛當如擁篲推轂者然玆以吉日設壇具禮拜爾爲大將軍爾其悶予鬱鬱久居效爾多多益辦風雲龍虎以人傑而運神機士馬財粮用天府而因地利待時而動指日爲期開玉壘之重關出金牛之故道重修函谷萬全據祖龍之墟直擣彭城一擧蕩沐猴之窟江中之冤可雪天下之望攸歸然後仆趙愶燕擒魏下齊而稱臣沿江逾洛浮淮達河而來貢則爵賞非所惜也富貴當與共之漢業億萬年天子譬北辰之居所楚地六千里丈夫卽南面而稱孤弼予一人勖哉夫子嗚呼殆天所授得一韓於軍中莫我敢承無三秦於眼底試看今日之拜將可使永世而賴功 분곤 고대에 임금이 출정하는 장수를 보낼 때 꿇어앉아 수레바퀴를 밀며 "궐문 안은 과인이 다스리고 궐문 밖은 장군이 다스린다."라고 하였다. 《漢書 卷50 馮唐傳》 육도 중국 주(周)나라 때 태공망(太公望)이 지은 여섯 종류의 병서(兵書)라고 한다. 바지……용기 한신(韓信)이 젊어서 가난할 때 회음(淮陰) 도중(屠中)의 소년들이 그를 모멸하여 "비록 허우대는 크고 그럴듯하게 도검(刀劍)을 찼지만 마음속은 겁이 많다." 하면서 "한신아, 능히 죽일 수 있거든 나를 찌르고 죽일 수 없거든 내 가랑이 아래로 지나가라." 하니, 한신이 그들을 죽일 수 있음에도 모욕을 참고 가랑이 아래로 기어갔고, 저자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한다. 《史記 卷92 淮陰候列傳》 빨래하는……알았어라 한신이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굶주린 채 회음성(淮陰城) 밑에서 고기를 낚고 있었는데, 빨래하는 부인[漂母]이 그를 동정(同情)하여 여러 날 밥을 주었다. 한신이 감사하여 "내가 성공하면 부인에게 후히 갚겠습니다."라고 하니, 부인이 "내가 왕손(王孫)인 그대를 동정한 것이지, 어찌 뒷날에 보답을 받기를 바란 것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 뒤에 한신이 초왕(楚王)이 되어 빨래하던 부인을 찾아서 금 천 근을 주었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어린……꾀하랴 원래 항우의 책사인 범증(范增)이 항우한테 한 말이다. 남정 유방이 관중에 먼저 들어갔으나, 항우는 먼저 들어간 자를 왕으로 삼는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파와 촉, 한중도 관중(關中) 땅이라고 하면서 유방을 한왕(漢王)으로 삼아 그곳의 왕이 되게 하고서 남정에 도읍하게 하였다. 탕산의 오채색 구름 한 고조(漢高祖)가 미천하였을 때 망탕산(芒碭山)에 은거하였었는데 은거한 산 위에 항상 구름 기운이 있어, 여후(呂后)가 그 구름 기운을 보고 찾았다 한다. 《史記 高祖本紀》 둘도 없는 인재 한나라 승상 소하(蕭何)가 한 고조(漢高祖)에게 한신(韓信)을 천거할 때 했던 말 가운데 "여러 장수는 얻기가 쉽지만, 한신 같은 사람은 둘도 없는 국사입니다.[諸將易得耳, 至如信者, 國士無雙.]"라고 하였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경감 상앙(商鞅) 이 처음 진(秦) 나라에 들어가서 환관(宦官) 경감(景監) 의 소개로 진왕을 만나니, 조량(趙良) 이 그의 소개자가 부정함을 비난하였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장인의 점괘라 길하리니 《주역》 〈사괘(師卦)〉에 "사(師)는 바르니, 장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師貞, 丈人吉, 無咎.]" 하였다. 사(師)는 군대를 거느리는 자를 말하며, 장인은 존엄한 어른을 말한다. 전(傳)에 말하기를, "사(師)의 도는 정도(正道)를 근본으로 삼는다. 군대를 통솔하고 무리를 거느림은 사람들이 존신(尊信)하고 외복(畏服)하는 자가 아니면 어찌 인심의 따름을 얻겠는가."라고 하였다. 어린아이라고 부름 한(漢)나라 소하(蕭何)가 유방(劉邦)에게 "왕께서는 평소에 거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계시는데, 지금 대장을 임명하면서도 마치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하고 있기 때문에 한신(韓信)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떠나간 것이다.[王素慢無禮, 今拜大將如呼小兒耳, 此乃信所以去也.]"라고 충고하여 다시 예우하게 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비를 들고 맹자가 연(燕)나라로 가자 소왕(昭王)이 빗자루를 들고 앞에서 달리며 제자의 자리에 앉아서 수업 받기를 청하였다. 《史記 卷74 孟子列傳》 풍운의 용호라 용호(龍虎)가 풍운(風雲)을 만나서 세력을 떨치듯, 명군(明君)과 현신(賢臣)이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고 하였다. 옥루 중국의 촉(蜀) 나라 수도인 성도(成都)의 서북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금우의 옛길 전국 시대 진 혜왕(秦惠王)은 촉(蜀)을 치려 했으나 길을 알지 못하므로 돌을 깎아 다섯 마리의 소를 만들어 뒤에 금을 넣어 놓고는 이것을 촉도에 갖다 놓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는 돌소가 금똥을 눈다고 하자, 이 소문을 들은 촉왕(蜀王)은 천여 명의 군사와 다섯 명의 역사(力士)를 동원하여 성도(成都)로 운반해 갔다. 이 때문에 길이 뚫려, 진 나라는 마침내 이 길을 따라 촉을 공격하여 탈취했으므로 이 길을 금우도(金牛道)라 하였다. 조룡 조룡(祖龍)에서 조(祖)는 시(始)의 뜻이고, 용(龍)은 임금을 상징하는 말로, 시황제를 가리킨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진시황 36년 가을에 사자(使者)가 화음(華陰)의 평서도(平舒道)를 지날 때 손에 벽(璧)을 쥔 사람이 사자의 길을 막으면서 "나 대신 이것을 호지군(滈池君)에게 전해 주오. 금년에 조룡이 죽을 것이오."라고 하였는데, 다음 해에 진 시황이 죽었다고 한다. 목후 항우(項羽)가 진나라 궁궐을 모두 불태우고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부귀해지고 나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라고 하자, 유세하는 자가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를 목욕시키고 갓을 씌워 놓은 것과 같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로구나.[人言楚人沐猴而冠耳, 果然.]"라고 하였는데, 항우가 이 말을 듣고는 그를 삶아 죽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7 項羽本紀》 강중에서의 원통 당시 초나라 왕인 의제를 죽인 것을 이른다. 《역대사선(歷代史選)》 〈초한기(楚漢紀)〉에서 "10월에 서초 패왕(西楚霸王) 항적(項籍)이 사람을 보내어 의제(義帝)를 재촉하여 떠나가게 하니, 그 대신(大臣)들이 점차 배반하였다. 항적은 마침내 몰래 형산왕(衡山王) 오예(吳芮), 구강왕(九江王) 경포(黥布), 임강왕(臨江王) 공오(共敖)를 시켜서 의제를 공격하여 장강(長江) 한가운데서 살해하였다."라고 하였다. 나……보필함 《서경》 〈주서(周書) 주관(周官)〉에 "소사ㆍ소부ㆍ소보를 삼고라 하니, 삼공의 다음이 되어 조화를 넓혀 천지를 공경하고 밝혀 나 한 사람을 보필한다.[少師少傅少保 曰三孤 貳公弘化 寅亮天地 弼予一人]"라고 하였다. 삼진 진나라를 가리킨다. 진나라가 망한 뒤에 항우가 관중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각기 옹왕(雍王)ㆍ새왕(塞王)ㆍ적왕(翟王)을 봉해 주었기 때문에 삼진(三秦)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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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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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에 과감하게 물러난다'348)는 부 急流勇退賦 아득하여 육지와 바다가 끝이 없으니바로 벼슬길이요.거센 물결이 출렁이니강물 중앙에 있는 것 같아라.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건대그 물러남이 과감한가.뜻은 이미 기미를 보고 결정하였으니349)내 어찌 임금의 총애를 탐하랴.일찍이 신선의 풍모 속세를 벗어나그리운 사람은 화산에 있도다.350)나날이 계속 찾아갔는데진귀한 비결을 어찌 그리 아끼는가.속세 인연이 다하지 않음이 안타까워하니부질없이 도원에서 도끼자루 썩어 가누나.송나라 다스리는 하늘 아래로 돌아와서금문351)에 숨었어라.적송자를 따라간 유후를 존모하고352)녹야당의 진공을 사모하였네.353)돌아보건대 벼슬길은 큰 강을 건너다가중류의 떠서 풍파를 만난 것과 같아라.-이하 빠짐- 浩浩乎陸海無垠名宦之場滔滔者是在水中央彼何人斯其退也勇志已決於色擧吾何貪夫天寵夙仙風之超世所懷人兮華之山日復日兮再往何寶訣之是慳悵俗緣之未磨空爛柯於桃源歸來宋日之中天于以隱乎金門慕赤松之留侯思綠野之晉公顧宦遊若涉大水浮中流而遇風波【以下缺】 급류에 과감하게 물러난다 전약수(錢若水)는 북송(北宋)의 저명한 문신이다. 소년 시절 거자(擧子)일 당시에 화산(華山)에서 진단(陳摶)을 만나 관상을 부탁했더니, "급류 속에서 용감하게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평하였는데, 과연 그가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을 때 갓 40세 된 젊은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났다는 일화가 송나라 소백온(邵伯溫)이 지은 《문견전록(聞見前錄)》 권7에 나온다. 이 고사에서 유래하여 벼슬자리에서 과감히 물러나는 것을 급류용퇴(急流勇退)라고 칭하기도 한다. 기미를 보고 결정하였으니 '색거(色擧)'는 색사거의(色斯擧矣)의 준말로, 사람이 어떤 기미를 보고서 신속하게 행동을 취해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향당(鄕黨)〉의 "새가 사람의 기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날아올라 빙빙 돌며 살펴보고 나서 내려앉는다.[色斯擧矣, 翔而後集.]"라고 하였다. 그리운……있도다 전약수가 그리는 사람은 화산의 진단임을 말한다. 바로 앞의 각주 참조. 금문에 숨었어라 궁궐에서 벼슬하며 이은(吏隱)한다는 말이다. 금마문(金馬門)은 한대(漢代)의 궁문으로 학사(學士)들이 대조(待詔)하던 곳인데 궁문 옆에 동마(銅馬)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낭관(郞官)으로 있던 동방삭(東方朔)이 술이 거나할 때면 "속세에 숨어도 지내고, 금마문에서 세상을 피하기도 하네. 궁전 안에서도 세상 피하고 몸을 온전히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깊은 산속의 띳집 아래에 숨어 살겠는가?[陸沈於俗, 避世金馬門. 宮殿中可以避世全身, 何必深山之中蒿廬之下?]"라고 노래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적송자를……존모하고 유후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장량(張良)을 가리킨다. 장량(張良)이 진(秦)나라를 멸망시켜 고국의 원수를 갚으려던 소원을 이루자 공명(功名)을 버리고 신선인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속세를 멀리 떠났다고 한다. 녹야당의 진공을 사모하였네 진공은 당나라 헌종(憲宗) 때의 현상(賢相)인 배도(裴度)로 녹야당(綠野堂)은 그가 만년을 보낸 곳이다. 배도는 헌종 연간에 도원수(都元帥)로서 오원제(五元濟)가 일으킨 회서(淮西)의 난(亂)을 평정하여 그 공으로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지고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는데, 여러 번 물러나려 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만년에 은퇴하여 낙양(洛陽)에 녹야당을 지어 놓고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등과 함께 밤낮으로 시주(詩酒)를 즐기면서 세상의 일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新唐書 卷173 裴度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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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 卷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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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종정경인 사뇨38)가 자신의 온 가족을 걸고 악비를 보호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상정하여 지은 제서 열여섯 살에 장난삼아 짓다. 宋宗正卿士褭請以百口保岳飛無他【十六歲作】 업적은 항상 기록되어야 하니네 글자39)에서 이미 가상하게 여김이 부족함이 없어라.감옥에 묶여 있는 것 그의 죄가 아니니온갖 방법으로 보호하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어라.죽음에 처해진 충신이 온전하기를 바라며감히 피를 토하는 충간을 아뢰었네.삼가 살펴보니 원수의 분곤에적신이 공을 방해함을 면키는 드물어라.다섯 달 의양에서감숙은 한나라를 끼고 돈다는 의논에 곤욕을 당하였고40)삼년 즉묵에서악의는 제나라 왕이 되려 한다는 참소에 걸려들었네.41)참으로 간혹 참소를 믿고 무고를 받아끝내 반드시 장수를 죽이고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네.삼가 생각건대 황제 폐하께서는한나라42)가 위태로울 때 태어나셔서쇠퇴한 주나라를 부흥시키는데 뜻을 두었어라.구묘가 비린내 나는 오랑캐에게 엎어진 것을 애통하게 여기고얼음을 안고 불을 안고서43) 게으르지 않았네.두 황제가 사막으로 파천함을 분을 내어거적 위에서 자고 창을 베는 것44)을 감히 잊으랴.이에 북 소리 듣고서 장수의 생각45) 간절하였으니부월을 하사할 적임자를 고심해서 골랐어라.돌아보고 다만 악비를 장수로 삼았으니실로 둘도 없는 국사라네.마음의 《육도》는 치밀하여귀신도 간담이 놀라고흉중의 십만 갑병은 웅건하여오랑캐도 벌벌 떠누나.어찌 다만 재략만 매우 뛰어나랴아니 또한 충절도 우뚝하여라.한과 적이 둘이 서니살아서 같은 하늘 이고 사는 게 부끄럽고쉽거나 어려움에 한 마음이니죽어서 가죽에 쌓여도46) 한스러움이 없어라.이에 〈유월장〉의 잠깐 오랑캐 친 것47)을 좇아군후를 모아서 정벌에 나섰네.깨끗하고 빛나는 정신이여큰 성공은 이윽고 파죽지세처럼 거두었고정정당당한 깃발이여진의 형세는 동이의 물을 쏟듯이 굳건하네.48)회복할 기약을짧은 시간에 기다릴 수 있어라.어찌 생각이나 했으리, 나라를 팔아먹은 매우 사악한 이가몸을 아끼지 않은 외로운 충신을 얽을 줄을.진을 함락하고 예봉을 꺾으니악야49)라고 부르기를 그치지 않거늘베틀을 내려놓고 북을 던지니증자 모친의 의혹은 더욱 깊어졌어라.50)천문에서 척적51)의 조서가 내려와감옥에서 충신이 원통한 마음 지녔네.대의는 적개심에 늠름하니신명에 질정하여도 부끄럽지 않아라.정성은 근왕에 빛나니해, 별과 함께 환하리라.이에 여러 사람의 눈을 가리기는 어려운데더구나 감히 임금의 총명52)을 속이랴.그러므로 미천한 신하가 속이지 않는 것으로 임금을 섬기니53)의리는 마땅히 그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하였지만참으로 성상께서 나는 믿지 못하니삼족 모두 죄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였네.이에 종족을 이삼하는 형벌54)을 받게 되었으니충정하여 두 마음을 지니지 않은 이를 보호하려 하였어라.한 마디 말로 임금을 깨우치지 못하여구설로 다투기 어려운 것을 참으로 알았누나.지성이면 하늘도 돌릴 수 있으니감히 골육이 연좌됨을 피하랴.더구나 이 어진 장수의 생사는실로 종사의 안위와 관련됨에랴.노련한 장군의 예봉을 꺾어정군이 날랜 용기를 가로막고55)편안함을 찾아 싸움을 잊어버리니한나라 의례가 좌임56)의 풍습으로 바뀌었네.충성을 하는데 어찌 자신을 도모하랴애석하도다! 어진이 나라를 지키려고 한 것이.신이 삼가 살피건대 강화하여 원망을 그만 두는데어진이가 죽으니 나라가 병든다는 말57)을 생각하게 되누나.특별히 십대는 용서한다58)는 공훈을 기록하여온 집안 식구의 목숨을 걸고 보존해달라는 청을 곡진히 따라 주십시오.그렇다면 만리장성이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니어찌 국경이 쪼그라드는 근심이 있으리오.다섯 길의 요성59)이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으니영토를 회복할 업적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신은 삼가 마땅히 사사로움을 잊고 나라에 몸을 바치리니사람을 천거하여 임금을 섬깁니다.60)죽은 이를 살려주고 뼈에 살이 붙게 하는 은혜를 받았으니목숨을 바쳐서 보답할 것을 삼가 기약합니다.적을 토벌하고 원수를 갚는 의리에 의거하여괴수의 목을 바쳐서 위엄을 떨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成績紀于常四字旣勤於嘉乃在絏非其罪百口願保其無他冀全喪元之忠敢進瀝肝之說竊觀元帥之分閫罕免賊臣之妨功五月宜陽甘茂困挾韓之議三年卽墨樂毅罹王齊之讒苟或信譖而受誣終必殺將而覆國欽惟皇帝陛下生當漢厄志興周衰痛九廟覆沒腥膻抱氷握火之匪懈憤二聖播越沙漠寢苫枕戈之敢忘肆切聽鼓之思益擇授鉞之任顧惟岳飛爲將實是國士無雙密勿心上之六鞱鬼神膽破磊落胸中之萬甲戎虜心寒豈但才略之敻超抑亦忠節之卓冠漢賊兩立生有愧於戴天夷險一心死無憾於裹革爰追六月之薄伐式總羣后而徂征濯濯靈赫赫聲功已收於破竹井井旗堂堂陣勢有同於建瓴恢復之期日月可待何圖賣國之巨慝竟搆匪躬之孤忠陷陣摧鋒岳爺之呼未訖下機投杼曾母之惑滋深尺籍飛詔於天門寸忱抱冤於牢獄犬羊2)凜凜於敵愾質神明而無羞精誠耿耿於勤王與日星而同炳兹難掩乎十目矧敢誣於四聰故微臣事君勿欺義當伸其見枉苟聖上謂余不信罪罔赦於惟均肆冒宗族之夷三庸保忠貞之不二一言不能悟主固知口舌之難爭至誠庶幾回天敢避骨肉之隨坐況此良將之存沒實關宗社之安危挫銳老師鄭軍沮右抽之勇偸安忘戰漢儀易左袵之風爲忠寧自謀身惜賢所以衛國臣伏望察講和之釋怨念云亡之殄邦特錄十世宥之勳曲從百口保之請則萬里之長城不毀何有縮境之憂五丈之妖星未隳可期復疆之績臣謹當忘私徇國以人事君荷生死肉骨之恩竊期隕首而圖報仗討賊復讐之義佇見獻馘而伸威 사뇨 제안군왕(齊安郡王) 조사뇨(趙士褭)이다. 그는 악비가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온 가족을 걸고서 악비를 구하려고 하다가 고종의 미움을 받아 건주(建州)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었다. 네 글자 악비(岳飛)는 국문(鞫問)을 받을 당시에 자신의 옷을 찢어서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새긴 문신을 보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宋史 卷365 岳飛列傳》 다섯……당하였고 전국 시대 진(秦)나라 무왕(武王)이 장군 감무(甘茂)를 시켜서 한(韓)나라 의양(宜陽)을 치게 할 때, 감무가 다른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 끝까지 신뢰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며 출정하려 하지 않자, 무왕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다. 그대와 맹세를 하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식양(息壤)에서 무왕이 감무와 맹세를 하였다. 감무가 의양을 공격했는데 5개월이 지나도록 함락하지 못하자, 무왕이 공손연(公孫衍) 등의 말을 듣고는 감무를 소환하니, 감무가 말하기를 "식양이 저기에 있습니다.[息壤在彼]" 하니, 무왕이 "맹세한 적이 있다."라 하였다. 《史記 卷71 甘茂列傳》 삼년……걸려들었네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장수이다. 소왕(昭王)에게 등용되어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조(趙), 초(楚), 한(韓), 위(魏), 연(燕) 다섯 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제(齊)의 70여 성(城)을 항복받았고 거(莒), 즉묵(卽墨) 두 성만이 남았다. 마침 소왕이 죽고 평소에 악의를 언짢게 여기던 혜왕(惠王)이 즉위하자 제(齊)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이 "악의가 제나라의 왕이 되려 한다."라고 반간(反間)을 놓았는데, 혜왕이 이 말을 믿고 악의를 의심하여 기겁(騎劫)을 악의 대신 장군으로 삼고 악의를 불러들였으나, 주벌(誅罰)될 것을 염려하여 조(趙)나라로 갔다. 《史記 卷80 樂毅列傳》 한나라 여기서는 송나라를 가리킨다. 얼음을……안고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항복한 후 그 원수를 갚으려고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뜻에서 겨울이면 얼음을 안고 여름이면 불을 잡았다고 한다. 거적……것 자식이 부모의 원수를 갚을 일념으로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항상 원수를 칠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禮記集說 卷8》 북……생각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군자가 고비의 소리를 들으면 장수의 신하를 생각한다.[君子聽鼓鼙之聲, 則思將帥之臣.]"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죽어서 가죽에 쌓여도 '과혁(裹革)'은 가죽에 싼다는 뜻으로, 전장에서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뒤 말가죽에 싸여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라면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 말가죽에 시체를 싸서 돌아와 묻혀야 하니, 어찌 아녀자의 손에 죽을소냐.[男兒當以馬革裹尸還葬, 安可死於兒女手乎?]"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유월장……것 유월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북벌을 찬미하였다. 동이의……굳건하네 병의 물을 집 위에서 쏟듯이 형세가 강하다는 비유한다. 악야 《치평요람》 〈송 고종〉에 홍호(洪皓)가 금나라에 있을 때 납서(蠟書)를 보내어 아뢰기를, "금나라 사람들이 두려워서 복종한 자는 오직 악비뿐이었고, 심지어 악야(岳爺)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에 악비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여러 추장들이 술을 마시며 서로 경하하였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유준(李有駿)의 《몽유연행록(夢遊燕行錄)》에서 "북방의 풍속은 존귀한 자를 칭하여 '대인(大人)'이라 하고, 그 다음을 '노야(老爺)'라고 한다. 예컨대 금(金)나라 사람들이 '악야(岳爺)'나 '종야(宗爺)'라고 칭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베틀을……깊어졌어라 어떤 사람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와서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라고 말하자, 증자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하고 태연히 베를 짰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해도 믿지 않았으나, 다시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자 증자의 어머니가 북[杼]을 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한다. 즉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도 참소하는 말이 반복되면 의심하게 된다는 뜻의 고사이다. 《全國策 秦》 척적 군령(軍令)을 기록하는 문서로 병적(兵籍)을 가리킨다. 한 자[尺] 정도의 판(板)에 적었으므로 척적이라 하였다. 임금의 총명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순 임금을 칭송하면서 "사방의 문을 여시고, 사방으로 눈을 밝히시고, 사방으로부터 잘 들리도록 하셨다.[闢四門 明四目 達四聰]"라고 하였다. 속이지……섬기니 임금에게 진실을 가지고 직간한다는 뜻.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것을 묻자, 공자가 "속이지 말고 범하여야 된다.[子曰: 勿欺也而犯之.]" 하였다. 종족을 이삼하는 형벌 죄를 범한 본인과 함께 삼족을 멸하는 형벌. 삼족은 친계(親系)ㆍ모계(母系)ㆍ처계(妻系)이다. 정군이……가로막고 《시경》 〈정풍(鄭風) 청인(淸人)〉에 "청읍 사람이 축 땅에 있으니, 네 마리 갑옷 입힌 말이 유유자적하도다. 왼쪽 사람은 수레를 돌리고 오른쪽 사람은 칼을 뽑거늘, 중군은 아름답게 있도다.[淸人在軸 四介陶陶 左旋右抽 中軍作好]"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이 편은 춘추(春秋) 시대 정 문공(鄭文公)이 신하인 고극(高克)을 미워한 나머지 그를 장수로 임명하여 군사를 주어 하수(河水) 위에 가서 적(賊)을 방어하라고 내친 뒤, 종시 그를 불러들이지 않으므로, 그에 따른 군사들이 오랜 세월에 지쳐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것을 읊은 시이다. 좌임 오랑캐의 풍속을 가리킨다.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있는 "관중(管仲)이 없었으면 내가 오랑캐처럼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을[左袵] 것이다."고 하였다. 어진이가……말 《시경》 〈첨앙(瞻卬)〉에서 "현인이 죽으니, 나라가 병들었네.[人之云亡 邦國殄瘁]"라고 하였다. 십대는 용서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1년조를 보면,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기해(祁奚)가 선자(宣子)를 만나 숙향(叔向)의 공과(功過)를 논하면서 "오히려 10대의 자손이라도 용서해 줄 수 있다.[猶將十世宥之]"라고 하였다. 다섯 길의 요성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에서 요성은 길이가 길면 재앙도 크고 오래간다고 하였는데, 다섯 길의 요성은 재앙이 5년은 간다고 하였다. 사람을……섬깁니다 《서경(書經)》 〈주관(周官)〉의 주(註)에 "대신은 인재를 발탁하여 임금을 섬긴다.[大臣以人事君]"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저본에는 '犬羊'으로 되어 있으나, 고전번역원DB에는 '大義'로 되어 있는데, 후자가 내용상 옳기에 이에 의거하여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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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집현전에서 올린 팔준도에 대한 전문 集賢殿進八駿圖箋 하늘에 비룡이 있으니성조가 국운을 연 것을 우러르네.응당 팔준마를 그려신물이 충성 바친 것을 생각하여야 하네.감히 새 그림을 그려전하께서 보게 하누나.삼가 생각건대, 천록(天祿)이 여말에 떠나하늘이 성인을 태어나게 하였네.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니참된 군주를 오랫동안 기다렸는데집안을 나라로 만들어마침내 큰 공훈 있는 이들을 모았네.이에 예지로 임하였으며또한 사람과 사물들의 도움에 힘입었어라.어찌 다만 용의 비늘 잡고 봉황 날개에 붙은61) 선비만앞 다퉈 전쟁터에서 공을 세웠으랴.귀한 것은 귀신처럼 내달리며 번개처럼 빠르던 말도능히 사슴을 좇는 위업을 도운 것이지.62)크고 작은 수백 번의 전투에서천만의 중군 사이로 드나들면서험지를 평지처럼 내달리니어찌 번거롭게 조보63)가 말을 몰게 하리오.오직 마음먹은 대로 향하니왕량64)이 채찍 잡을 수고가 필요 없어라.이는 사람과 한 마음이 되어서니그러므로 세 번 이기는65) 공을 거두었네.금옥의 체구는위태로운 길에서 만전을 보장하였고봉의 가슴과 용의 갈기는어찌 평범한 말과 함께 죽어 썩어가겠는가.다만 당대에 훌륭함을 칭송하였을 뿐 아니라후대에도 밝게 드러내 보여야 하네.더구나 땅의 쓰임으로 가장 뛰어나며66)또한 하늘의 운수와 관련되어 나옴에랴.그렇다면 말 위에서 세운 공업으로한나라가 사백 년 전해진 것을 알 것이니마굿간에서 비범하여67)능연각의 스물여덟 장군과 나란한 것이 마땅하도다.아름다워라, 세상에 드러낸 행위여이 계술의 나라에서 행해야 하네.이를 늦출 수 있는가대개 기다려 때가 되었어라.삼가 생각건대, 몸소 크나큰 명에 응하여커다란 계책 이룰 것을 생각하였네.가득한 것을 들고 이룬 것을 지켜68)썩은 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모는 듯하였네.69)공덕을 숭상하여죽은 뼈를 사면서 천금을 버렸어라.70)창업의 어려움을 깊이 생각하고훌륭한 근신(近臣)을 더욱 생각하네.드디어 기린마를 그리는 날에또한 개와 말에게 수레 덮개와 휘장으로 덮는 은혜를 미뤘어라.71)이에 유신에게 명하여그림을 그리게 하였네.삼가 생각건대 신은 활과 말 타는 솜씨가 부족하고몸은 문한의 관직에 있으니전장에서 말을 타고 내달릴 때비록 사람을 쏠 때 먼저 말을 쏘는 법72)엔 어두우나성열을 그려내면서살은 그리고 뼈는 그리지 않았다는 기롱은 면할 수 있어라.외람되건대 용광은그 준마의 덕에 걸맞으니그림은 비록 화가의 손을 빌리지만기리는 노래는 큰 공을 빠트리지 않으리.혹여 한가롭게 지내실 때때로 을람73)을 주십시오.복희가 괘를 그린 것74)과 많이 들어맞으리니길이 상서로운 세상의 보배가 될 것이어라.무제가 지은 노래75)에 보태어공적을 벌여놓은 뜻을 더욱 밝히누나. 在天飛龍仰聖祖之啓運應圖駿馬思神物之效勞敢作新圖庸徹睿鑑竊惟祿去麗季天生聖人濟世安民久有待於眞主化家爲國終能集乎大勳玆因睿智之有臨亦賴人物之恊力豈但攀鱗附翼之士爭輸汗馬之功所貴神行電邁之駒能贊逐鹿之業大小數百餘戰出入千萬中軍履險若平何煩造父之爲御惟意所向不勞王良之執鞭是與人爲一心故收功於三捷金軀玉體保萬全於危途鳳臆龍鬐豈同腐於凡馬不但稱美於當世可使昭示於來今矧惟地用之良亦關天數而出則知馬上功業爲漢家四百年之傳宜乎櫪下權奇與烟閣卄八將爲列猗歟顯揚之擧屬兹繼述之朝斯可緩乎蓋有待矣恭惟躬膺駿命思纂鴻圖持盈守成用朽索而馭六馬尙功崇德買死骨而捐千金深惟創始之艱益思股肱之美遂於麒麟圖畵之日亦推犬馬蓋帷之恩爰命儒臣俾擧繪事伏念臣手乏弓馬之技身忝文翰之官馳騁戰場縱昧射人先射馬之法鋪張聖烈庶免畵肉不畵骨之譏叨此龍光稱其驥德丹靑雖倩於畵手贊咏不遺於膚公倘在燕閒時賜乙覽數叶羲皇之畫卦永爲瑞世之珍光增武帝之作歌益昭序績之意 용의……붙은 영주(英主)를 섬겨 공명(功名)을 세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나라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 〈연건(淵騫)〉의 "용의 비늘을 그러잡고 봉의 날개에 달라붙는다.[攀龍鱗附鳳翼]"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사슴을 좇는 위업 사슴을 쫓는다[逐鹿]는 말은 제왕의 자리를 다툼을 말한다.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候傳)〉에서 "진(秦)나라가 그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다 함께 쫓는다."라고 하였다. 조보 조보는 주(周)나라 목왕(繆王) 때 사람으로 말을 잘 몰았다. 왕이 서쪽으로 가서 수렵에 빠져 돌아오길 잊었는데, 서언왕(徐偃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가 왕의 말을 몰아 하루에 천 리를 달려가 서언왕을 공격하여 대파시켰다. 그 공으로 조성(趙城)을 받았다고 한다. 《史記 卷43 趙世家》 왕량 《맹자》에 보이는 말을 잘 모는 인물이다. 세 번 이기는 삼첩(三捷)은 삼전삼첩(三戰三捷)의 준말로서 《송사(宋史)》 〈우고전(牛皐傳)〉에서 "우고가 극악한 적 양진(揚進)을 노산(魯山)에서 토벌하였는데 세 번 싸워 세 번 이기자 적당이 무너져 흩어졌다."라 하였다. 땅의……뛰어나며 《사기(史記)》 권30 〈평준서(平準書)〉에 "하늘에 쓰이는 것은 용만 한 것이 없고, 땅에 쓰이는 것은 말만 한 것이 없으며, 사람에게 쓰이는 것은 거북만 한 것이 없다.[天用莫如龍 地用莫如馬 人用莫如龜]"라고 하였다. 비범하여 '권기(權奇)'는 훌륭한 말이 잘 달림을 형용한 말이다. 《한서》 권22 〈예악지(禮樂志) 천마가(天馬歌)〉에, "뜻이 호방하고 정신이 권기하다.[志俶儻精權奇]" 하였다. 가득한……지켜 《시경》 〈대아(大雅) 부예((鳧鷖)〉의 서(序)에서 "〈부예편〉은 이룬 것을 지킨 것을 말하고 있다. 태평한 군자가 능히 가득찬 것을 간직하고 이룬 것을 지킴으로써 천지신명과 조고의 영령이 그것을 안락하게 여기는 것이다.[鳧鷖 守成也 太平之君子 能持盈守成 神祇祖考安樂之也]"라고 하였다. 썩은……듯하였네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내가 억조의 백성 위에 임하는 것이 마치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의 말을 모는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하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로서 어떻게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予臨兆民 凜乎若朽索之馭六馬 爲人上者 奈何不敬]"라는 말이 나온다. 죽은……버렸어라 인재를 불러 모은 것을 이른다. 전국 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에게 곽외(郭隗)가 "죽은 말 한 마리의 뼈를 500금(金)에 사들였더니, 1년도 채 안 되어서 살아 있는 천리마 세 마리가 찾아왔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기부터 우선 대우를 잘해 주면 천하의 현사들이 저절로 모여들 것이라고 말하자, 소왕이 연경(燕京)에 황금대를 세우고 인재를 초빙하니, 악의(樂毅)와 극신(劇辛) 등의 명사가 대거 찾아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燕策》 개와……미뤘어라 견마(犬馬)도 사람에게 공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자가 옛말을 인용하여 " '해진 휘장[敝帷]'을 버리지 않는 것은 말[馬]을 묻기 위함이요, '해진 수레 덮개[敝蓋]'를 버리지 않는 것은 개[犬]를 묻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데서 온 말로, 은혜가 하찮은 미물에까지 미침을 뜻한다. 《禮記 檀弓下》 사람을……법 두보의 〈전출새(前出塞)〉에서 "사람을 쏘려면 먼저 말을 쏘고, 적병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임금을 사로잡는다.[射人先射馬, 擒賊必擒王.]"라고 하였다. 을람 제왕이 을야(乙夜, 22시 전후)에 하는 독서를 가리킨다. 당(唐)나라 문종황제(文宗皇帝)가 "만약 갑야(甲夜)에 정사를 살피지 않고, 을야(乙夜)에 책을 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임금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杜陽雜編 卷中》 복희가……들어맞으리니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하도를 지고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복희씨에 의해 《주역》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었다. 무제가 지은 노래 《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에 "태초(太初) 4년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가 대완왕(大宛王)의 머리를 베고 한혈마를 획득하여 돌아오니, 〈서극천마가(西極天馬歌)〉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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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호안국76)이 《춘추집전》을 올린 것에 대한 전문 胡安國進春秋集傳箋 총명한 임금께서 번거로운 만기에 임하니경전 주석은 반드시 안사고에게 도움을 받았네.《춘추》는 백왕의 법이 되었는데강학은 은미함을 밝히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어라.이에 제가 들은 것을 드러내어감히 《집전》을 바치네.삼가 보건대 주나라의 수레가 돌아오지 않은 후로77)왕의 기강이 점차로 무너진 상태로 되었네.〈서리〉가 〈국풍〉으로 떨어지니오호라! 송성은 이윽고 끊어졌어라.78)전쟁으로 제향이 변하였으니다하였구나, 왕의 자취가 사라져버렸네.하늘이 그 사이에 성인을 낳아서이윽고 당대에 사문을 맡게 하였어라.무도함을 내가 바꿀 것이니사방의 법이 되길 바라네.행해지 않음을 내 아나니이에 만대에 모범을 드리우고 싶노라.이에 조화공의 붓을 휘둘러이에 사씨의 책을 정리하네.그 군주를 높이고 그 신하를 억누르니상하의 분수가 어지럽지 않게 되었고,오랑캐에 간략하고 중하에 자세하니내외의 구분이 엄격하였어라.그 서술 체제를 밝히면 기원으로 '년'을 삼았고대일통은 곧 달에 왕을 더하였네.재변을 기록하니 하늘과 사람의 이치가 다르지 않고봉함79)을 기롱하니 적처와 첩의 명분이 질서가 있어라.규구와 소릉80)을 칭송하니세상이 쇠한 것에 아파한 성인의 뜻에 근본 하였고,조돈과 허지81)를 단죄하였으니신하의 숨겨진 악을 처벌함에 엄격하였네.원수는 어찌 차마 하늘을 함께 이리오시해하면 반드시 토벌하기 전에는 장사 지내지 않음을 드러냈네.천자 이백 년 남면의 일을 대신 행하였으니애공 십사 년 서쪽으로 사냥할 때까지 이르렀네.성인의 마음으로 판단하였으니쓸 것을 쓰고 뺄 것은 빼었어라.한결같이 공의를 따랐으니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였네.간사한 자들은 심장이 서늘하였고난신적자들은 담이 오그라들었네.어찌 다만 죄를 토벌하는 부월 같을 뿐이랴아니 또한 의심을 결정하는 시귀라네.이 《춘추》에 어두우면 반드시 가장 나쁘다는 이름을 얻을 것이니82)신하된 자들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며,그 말을 아는 자는 대사를 처리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더구나 임금으로서 감히 소홀할 것인가.이는 참으로 백대의 스승과 같으니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용납하랴.지난번 잘못된 견해를 고집한 까닭으로드디어 세상과 관련된 대경을 배척하게 되었어라.경연에서 진독의 법을 폐하니위에서 옛날을 고찰할 토대가 없어지고,지공거가 선비 취하는 법에서 빼버리니아래에서 정도로 돌아갈 논의가 사라졌어라.세도가 어둡게 되어버려끝내 오랑캐가 침입하는 변란을 보게 되었네.생각이 이에 이르니저에 대해 다만 마음이 어찌하겠는가.삼가 생각건대, 상성의 자질로 중흥의 책임을 맡아옛날 왕실이 적천에 있다가 성주로 들어간 것83)을 생각하고지금 조정의 계책이 연운84)을 쓸어서 한업을 회복하려 하네.생각하시기를, 적을 이겨 영토 회복이 비록 무를 쓰는데 달렸지만경륜은 반드시 문을 높임을 먼저 해야 한다고.이에 적을 토벌하고 원수에 보복하는 시기에난을 다스려서 올바름으로 돌아가는 이 법을 중하게 여겼네.그러나 나를 알고 나를 죄준다는 깊은 뜻85)을실로 어리석은 선비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반드시 자신의 마음으로 그 마음을 헤아려서 그 뜻을 드러냄은모름지기 석유를 기다린 뒤에 성취할 수 있누나.신의 경우는 천 번 생각해야한마디 말을 놓을 수 있네.삼가 생각건대, 받은 품성이 다만 용렬하여도를 보아야 실천하는 정도라네.내가 가르침을 받은 바 있어공손홍의 곡학아세는 비록 부끄럽게 여기지만,네86)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동중서의 재이론87)으로 흘러갈까 두려워라.외람되이 주석을 찬집하라는 명을 받들었는데저술의 능치 못해 부끄러워라.선택이 정밀치 않고 말이 자세하지 않으니비록 말 너머에서 뜻을 얻지는 못하지만,그 말을 인하여 그 뜻을 구한다면역사 너머 전하는 마음을 거의 잃지 않을 것이라.연석을 보관한 것88)과 절로 같으며곧 요동 돼지를 바친 것89)을 본 뜬 것이라.혹여 전하께서 들어봐 주신다면초동 같은 말을 굽어 재택해주소서.학문은 반드시 강론해야 밝혀지니어찌 다만 궁리정심의 중요한 도뿐이랴.일은 마땅히 의로써 판단해야 하니실로 경세안민의 큰 기틀과 관련되누나. 四聰莅萬機之煩制治必資於師古一經爲百王所法講學莫要於明微玆效孤聞敢進集傳竊觀姬轍之不返馴致王綱之漸頹黍離降國風嗟呼頌聲之旣絶干戈變俎豆已矣王迹之云亡天生將聖於其間已任斯文於當世無道吾易也冀可爲法於四方不行我知之乃欲垂範於萬代爰揮化工之筆載修史氏之書尊其君抑其臣上下之分不紊略於夷詳於夏內外之辨式嚴明其用則紀元爲年大一統則加王於月記灾變而天人之理無間譏賵含而嫡妾之名有倫善葵丘善召陵本聖人衰世之意罪趙盾罪許止嚴臣子隱惡之誅讐豈忍於共天弑必著於不地行天子二百載南面之事至哀公十四年西狩之時斷自聖心筆則筆而削則削一徇公義是曰是而非曰非奸究寒心亂賊破膽豈但討罪之鈇鉞抑亦決疑之蓍龜昧是經則必蒙首惡之名在人臣猶必學也知其說者於處大事何有況國君其敢忽諸是固百世同師可容一毫異議頃緣執拗之謬見遂斥關世之大經經筵廢進讀之規上無稽古之地貢擧祛取士之式下蔑歸正之論馴致世道之昏終見胡塵之變言念至此彼獨何心欽惟以上聖資任中興責念昔王室居狄泉而入成周在今廟謨掃燕雲而恢漢業謂克復雖在於用武而經綸必先於崇文乃於討賊復讐之秋重此撥亂反正之典然知我罪我之蘊奧實非蒙士之可通必以心度心而發揮須待碩儒而能就如臣千慮可措一辭伏念賦性惟庸見道實淺曰吾有受雖恥公孫弘之曲阿非爾所知恐流蕫仲舒之灾異叨承纂集之命愧之著述之能擇不精語不詳縱未能言表得意因其辭究其旨庶不失史外傳心自同燕石之藏輒效遼豕之獻倘垂荃聽俯擇蕘言學必講而明豈特躬理正心之要道事當斷以義實關經世安民之大機 호안국 자는 강후(康侯),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왕안석(王安石)이 《춘추(春秋)》를 폐하여 학관(學官)의 대열에 끼지 못한 데서 《춘추》의 학문이 쇠퇴한 것을 탄식했다. 이 책을 연구하는 데 20여 년을 보내며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 30권을 저술하였다. 주나라의……후로 주(周)나라 평왕(平王)이 견융(犬戎)을 피해 동쪽 낙읍(洛邑)으로 수도를 옮긴 동천(東遷)을 말한다. 이후를 동주(東周) 혹은 성주(成周)라고 하며, 이를 기점으로 춘추 시대(春秋時代)가 전개되다가, 위열왕(威烈王) 23년에 한(韓), 위(魏), 조(趙)를 제후로 임명하면서 전국 시대(戰國時代)로 돌입한다. 서리가……끊어졌어라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왕도 정치의 자취가 종식됨에 시가 없어졌으니 시가 없어진 후에 춘추가 나왔다.[王者之迹熄而詩亡, 詩亡然後春秋作.]"라고 하였다. '왕도 정치의 자취가 종식되었다'는 것은 주(周)나라 평왕(平王) 때 동쪽으로 천도한 후 주나라의 정교(政敎)와 호령(號令)이 천하에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을 이르고, '시가 없어졌다'는 것은 《시경(詩經)》의 〈서리(黍離)〉가 강등되어 국풍(國風)이 되면서 아송(雅頌)이 없어진 것을 이른다. 봉함 봉부증함(賵賻贈含)을 가리킨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상가(喪家)에 물품을 보내는 것인데, 봉은 거마(車馬)를 보내는 것이고, 부는 재화(財貨)를 보내는 것이고, 증은 의복(衣服)을 보내는 것이고, 함은 주옥(珠玉)을 보내는 것이다. 상례에 임금이 내린 물품을 기록하여 적첩의 대우가 어긋난 것에 대해 기롱함을 의미한다. 규구와 소릉 규구의 회맹은 주(周)나라 양왕(襄王) 원년에 있었던 일로,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제후(諸侯)를 규구에 모아서 수호(修好)하고 왕실(王室)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다. 《孟子 告子下》 소릉의 맹약은, 제 환공이 초(楚) 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의 사자 굴완(屈完)과 소릉에서 맺은 맹약이다. 이때 환공은 초 나라가 주(周) 나라 왕실에 공물(貢物)을 바치지 않고 남쪽으로 정벌을 계속하는 죄를 물었다. 《春秋左氏傳 僖公4年》 조돈과 허지 춘추 시대 진(晉)나라 선공(宣公) 2년에 조돈(趙盾)의 사촌인 조천(趙穿)이 영공(靈公)을 도원(桃園)에서 시해하였는데, 조돈은 아직 국경인 산을 넘지 않았을 때 되돌아왔더니, 태사(太史) 동호(董狐)가 '조돈이 그 임금을 시해하였다.'고 쓰고 그것을 조정(朝廷)에 내보였기 때문에 조돈은 "그렇지 않다."고 하였으나, 동호는 "당신은 한 나라의 정경(正卿)이면서 달아났으나 미처 국경을 넘지 못했고, 돌아와서도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으니,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이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춘추》 소공(昭公) 19년 조에, 허(許) 나라 도공(悼公)이 학질을 앓아서 그 아들 지(止)가 약을 지어 드렸더니 도공이 죽었다. 그 사건에 대해 공자가 《춘추》에, "허(許) 세자 지가 그 임금을 죽였다."라고 쓴 것은, 아들이 어버이의 병에 약을 먼저 맛보고 드리는 법인데 허지가 약맛을 보지 않고 드렸으므로 이 도공이 죽었다고 본 것이다. 춘추에……것이니 《사기》 〈태사공자서〉에 "남의 군부(君父)가 되어 《춘추》의 의리에 통달하지 못하면 반드시 최악의 이름을 얻을 것이요. 남의 신자(臣子)가 되어 《춘추》의 의리에 통달하지 못하면 반드시 찬역과 시해의 죄에 빠진다."라고 하였다. 왕실이……것 노(魯)나라 소공(昭公) 22년에 주나라 경왕(景王)이 죽자 왕자 조(朝)가 변란을 일으켰고, 이에 경왕의 적자(嫡子)인 왕자 맹(猛)이 황(皇) 땅으로 파천하였다가 죽었다. 《춘추(春秋)》에서는 이에 대해 기록하기를 "왕실에 변란이 일어나자 유자(劉子)와 선자(單子)가 왕자 맹을 모시고 황(皇)에서 거주하였다. 가을에 유자와 선자가 왕자 맹을 모시고 왕성으로 들어갔는데, 10월에 왕자 맹이 졸하였다.[王室亂, 劉子單子以王猛居于皇. 秋劉子單子以王猛入于王城. 冬十月王子猛卒.]"라고 하였다. 이듬해에 경왕(敬王)이 즉위하였다가 쫓겨나 적천(狄泉)에 나가 있게 되었고, 그 틈을 타 윤씨(尹氏)가 왕자 조를 왕으로 세웠다. 《춘추》에서는 이에 대해 기록하기를 "천왕이 적천(狄泉)에 거주하였다. 윤씨가 왕자 조를 세웠다.[天王居于狄泉. 尹氏立王子朝.]"라고 하였다. 그 뒤 26년에 진(晉)나라 군대가 경왕을 복귀시키자 왕자 조와 윤씨 일족이 초(楚)나라로 도망쳤다. 《춘추》에서는 이에 대해 "겨울 10월에 천왕이 성주(成周)로 들어가고 윤씨와 소백(召伯), 모백(毛伯)이 왕자 조와 함께 초(楚)나라로 도망쳤다.[冬十月天王入于成周, 尹氏召伯毛伯以王子朝奔楚.]"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서는 왕실의 중흥을 말한다. 연운 연운(燕雲) 16주를 가리킨다. 이는 10세기에 요(遼)가 후진(後晋)에서 할양받아 지배한 곳으로 연(燕)은 연경을 중심으로 한 하북(河北) 북부, 운(雲)은 운주(雲州)를 중심으로 한 산서(山西) 북부를 말하는데 연운은 이 두 주(州)를 중심으로 한 만리장성 주변 지역에 해당한다. 휘종은 금(金)나라와 맹약을 맺고 남북으로 요(遼)나라를 협공하여 빼앗겼던 연운(燕雲) 16주를 수복하고자 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군사력의 약체를 드러내고 만다. 이를 간파한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킨 후, 전쟁 배상금 지불을 미루고 금나라에 대한 도발과 견제를 지속하던 송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남하하였다. 나를……뜻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춘추(春秋)》는 천자가 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공자가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이며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이다.' 하였다.[春秋天子之事也 是故孔子曰 知我者 其惟春秋乎 罪我者 其惟春秋乎]"라고 하였다. 네 여기서는 자신을 가리킨다. 동중서의 재이론 동중서는 한나라 초기의 학자이다. 그가 주장한 재이론의 요지는 '하늘이 재이를 내려서 군주를 경계시키되, 재이를 여러 차례 내려서 경고해도 태도를 뉘우치지 않으면 덕 있는 사람에게 개명(改命)하도록 한다.'라는 것이다. 《資治通鑑綱目 卷37中》 연석을 보관하는 것 비슷하지만 가짜인 것, 즉 사이비(似而非)라는 뜻이다. 연석(燕石)은 연산(燕山)에서 나오는 돌인데, 옥과 비슷하지만 옥이 아니다. 옛날 송(宋)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이 이 돌을 오대(梧臺)의 동쪽에서 얻고는 큰 보물이라 여겨 비단으로 몇십 겹을 싸서 잘 보관하였으나 결국 돌멩이로 밝혀져 비웃음을 샀다고 한다. 《琅琊代醉編 燕石》 요동……것 식견이 천박해서 부끄럽다는 뜻의 겸사이다. 요동(遼東)의 돼지가 머리가 흰 새끼를 낳자, 주인이 기이하게 여겨 조정에 바치려고 길을 떠났다가, 하동(河東)에 와서 돼지가 모두 흰 것을 보고는 부끄럽게 여겨 돌아갔다는 요동시(遼東豕)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33 朱浮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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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맹가가 질병을 물어보고 의원이 찾아온 것90)을 사절하는 전문 孟軻謝問疾醫來箋 참으로 장차 조회하려다가조제한 약이 작은 체구에 갑자기 탈이 났어라.'거의 질병이 나았습니까.'하고살펴봐주시니 남다른 보살핌에 큰 은혜 받았네.임금에게서 명이 내려오니몸 둘 곳이 없어라.삼가 생각건대, 신의 모친이 이사하며 가르쳐스승이 되어 학업을 전하였네.이에 원하는 바는 공자를 배우는 것이니장차 성인의 무리가 될 것이라.만일 혹 꿈에서 주공을 본다면전국시대에 어떻게 처할까.사람들은 다만 공리만을 숭상하고선비들은 대부분 양주, 묵적의 부류로다.어찌 맞이하는 폐백을 받을까비록 전야에서 빈천을 편안히 여긴다고 하여서.또한 인의가 있을 따름이니이에 그 임금과 백성을 요순의 임금과 백성으로 만들고자하네.등공이 정전법을 물음이 한갓 부지런하였고91)위왕의 흉년을 탓하는 것을 어찌 책망하리오.92)임금의 마음은 충분히 천하의 왕 노릇 할 수 있으며제나라는 거의 잘 다스려질 것이라네.지금의 음악과 옛날의 음악이 같다는 말은백성들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누라고 깊이 권하는 것이라.작은 용기와 큰 용기라는 말은실제로 삼왕과 아름다움을 짝하라는 것이네.밤에 안부가 어떠한가 자주 물으며바야흐로 조정에 대신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네.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쓸모없는 자질이이에 채신의 근심93)에 걸릴 줄을.공이 불러 가는데감히 멍에 매는 것을 천천히 하랴.오늘 병이 났으니느즈막이 들어가 인사를 올릴 것이라.명을 집에 하루 묵혔다는 벌이 스스로 두려우니도리어 살고픈 마음이 생겼어라.특사를 보내 위문하여 번거롭게 하였으니능히 임금의 존귀함을 잊을까.양의에게 진찰을 맡겨삼 대의 의술94)을 펼치도록 하였네.옥음이 한번 내려지자임금의 은총이 배나 더하였어라.어찌 다만 자제와 문생만 놀랐으랴실로 대부국 백성들의 본보기가 됨이랴.더구나 이미 병이 나았으니다만 집에서 받들 수가 없어라.귀수가 고황을 들어가지 않았으니감히 의원을 물리쳐 병을 속이랴.임금의 명이 초개처럼 헛되이 버려졌으니참으로 분수에 지나쳐 허물을 부를까 두려워라.이는 대개 대왕께서부모가 자식의 병을 걱정하는 마음으로천지가 살려주기 좋아하는 덕을 체득한 것이네.임금과 고갱의 신하가 한 몸이 되니내 몸에 병이 든 것처럼 여겼어라.작위와 나이와 덕은 모두들 삼존이라 여기니오직 서로 만날 즈음에 반드시 공경해야 하네.약을 쓰지 않고 낫는 가벼운 병인데세상에 없는 특별한 은혜를 그릇 내렸어라.신이 감히 아랫사람이 되어 충성을 바치고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지 않으랴.그 주군을 공경하여 그 사신과 함께 앉은 것95)은공자를 본받지 못하였지만,사람이 항심이 없으면 의원이 될 수 없어96) 모욕을 받는 것은항상 《역》의 괘사에서 경계하였네.97) 固將朝也調劑遽失於微軀庶無疾歟問視兼荷於殊眷自天有命無地措躬伏念臣母遷敎成師傳業就3)乃所願學孔子將爲聖人之徒如或夢見周公奈處戰國之世人惟功利是尙士皆楊墨之流何以聘幣爲哉雖安貧賤於畎畝亦惟仁義而已乃欲堯舜其君民滕公之問井徒勤魏王之罪歲何責君心足以王矣齊國其庶幾乎今樂古樂之言深勸同好於百姓小勇大勇之說實欲匹休於三王數問夜如何其方待朝旣盈矣詎意散樗之質載罹采薪之憂自公召之行敢緩於俟駕今日病矣入莫遂於鞠躬自懼宿命之誅反紆欲生之愛煩訊問於專价能忘一人之尊委診視於良醫俾效三世之術玉音一下龍光倍增豈惟弟子門生之驚惶實爲大夫國人之矜式矧惟已瘳之疾不得祗承于家鬼竪不入膏肓非敢忌醫而諱疾君命虛委草芥正恐逾分而招尤玆盖伏遇大王以父母憂疾之心體天地好生之德元首股肱爲一體若痌癏于乃身爵位齒德通三尊惟交際之必敬至於勿藥喜之微恙謬加不世有之異恩臣敢不爲下克忠事君盡禮敬其主以及其使與坐未效於宣尼人無恒不可作醫承羞常戒於易卦 맹가가……것 《맹자》 〈고자하(告子下)〉에 맹자가 제나라 왕에게 조회하러 가려다가 제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자신이 맹자를 찾아보려하였는데 감기에 걸려서 갈 수 없으니 조회에 나오시면 어떻겠냐고 하자, 맹자도 자신도 감기에 걸려서 갈 수 없다고 대답한 내용이 보인다. 등공이……부지런하였고 《맹자》 〈등문공상(滕文公上)에 보인다. 위왕의……책망하리오 《맹자》 〈양혜왕상(梁惠王上)〉에 보인다. 채신의 근심 몸에 병이 난 것을 말한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어제는 왕명이 있었지만 채신의 근심이 있어 조회에 나가지 못하였는데, 오늘은 병이 조금 나아 조정에 달려 나갔습니다.[昔者有王命, 有采薪之憂, 不能造朝. 今病小愈, 趨造於朝.]"라고 하였다. 병이 나면 땔나무를 하지 못하여 근심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병을 겸손하게 지칭하는 표현이다. 삼 대의 의술 《예기(禮記)》 〈곡례하(曲禮下)〉에 "3대에 걸쳐서 치료해 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한 의원이 아니면 그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醫不三世, 不服其藥.]"라고 하였다. 그……것 《논어》 〈헌문(憲問)〉에 "거백옥(蘧伯玉)이 공자에게 사람을 보냈는데, 공자가 그 사람과 함께 앉아서[與之坐]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였는데, 그 주에서 주자는 "공자가 사람과 앉아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 주인을 공경하여 그 사람에게도 공경이 미친 것이다.[敬其主以及其使]"라고 하였다. 사람이……없어 《논어》 〈자로(子路)〉에 "남쪽 사람이 하는 말에 '사람이 항심이 없으면 무당이나 의원도 될 수 없다.' 하였다.[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라고 하였다. 모욕을……경계하였네 《주역(周易)》 〈항괘(恒卦) 구삼(九三)〉에 "그 덕이 일정하지 못한지라, 혹 수욕을 당할 수도 있다.[不恒其德, 或承之羞.]"라고 하였다. '就'자는 변려문의 형식으로 내용으로 보아 연문(衍文)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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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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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제나라 조정의 여러 신하들이 지름 한 자나 되는 구슬을 보배로 여기지 않음98)을 하례한 것에 대한 전문 齊朝羣臣賀不寶徑寸珠 두 임금이 연회 벌이는 우호를 마련하니규벽의 의식이 빛났어라.열 개의 연성의 보물99)을 천하게 여기니위대하구나! 금과옥조 같은 말이여.빛이 자리에 더하니그 광채는 이웃나라까지 비추도다.삼가 살펴보건대 국가가 흥성하고 쇠퇴하는 이유는실로 인물들이 훌륭하고 못남에 달려 있어라.요임금이 팔개100)를 등용하니능히 구슬을 내던지는 정치101)를 도왔으며,주가 삼인102)을 내쫓으니끝내 옥이 타는 화103)를 자초하였네.오직 공은 왕의 덕에 걸맞으니104)그 거울은 은나라에 있어라.삼가 생각건대, 보위에 날마다 임하니요도105)를 하늘이 열어주었네.재물을 길하게 여기지 않으니106)초나라 조정에서 박옥을 바치는 신하가 없으며,107)보배로 삼은 것은 다만 어진 이뿐이니상나라의 부열은 쇠를 다룰 때의 숫돌108)이 되리라.사용하는 물건의 귀함과 특이한 물건의 천함을 구별하면먼 곳의 사람이 이르고 가까운 곳의 사람이 편안하게109) 될 것이라.이에 의를 사모하는 임금과친목을 도모하는 예를 거행하였으니,어찌 명옥의 모임을 도모하여갑자기 구슬을 지녔다고 자랑하리오.앞뒤로 열 대의 수레를 비추는 광채는밝은 달에 뒤지지 않고,크고 작은 지름 한 치의 아름다운 모습은또한 야광주보다 뛰어나도다.어찌 진나라 사람을 포로로 삼으리오이것이 바로 위나라의 보배로다.110)그러나 대왕이 좋아하는 것은 이와 다르니저 하찮은 물건을 어찌 보물로 삼으랴.내 어느 겨를에 이런 것을 지니랴삼품 보기를 초개처럼 가볍게 여기네.나는 비난함이 없으니쌍남금111)보다 중한 네 신하가 있어라.112)이 사람들을 사방의 변경에 기용하니능히 천리를 비출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네.그 장단을 비교해보면빛으로 덮는 효과가 이미 현격하고,저가 사물로 하거든 나는 사람으로서 하니진심으로 숭상하는 실상을 볼 수 있으리라.장차 강직한 선비가 있거든그 조정에 서기를 원하리라.누가 경계시키랴, 발뒤꿈치 잘린 사람이깊이 숨어서 팔지 못하게 함을.오색의 곤룡포를 앞 다퉈 기우니환하게 한 나라의 빛이 되누나.이는 실로 왕도나 패도가 되는 큰 기틀이니어찌 사직의 큰 복이 아니리오.삼가 생각건대, 신들은 모두 하찮은데다행이도 밝고 밝은 임금을 만났으니옥섬돌에서 가슴을 열어서비록 낭간113)을 바칠 수는 없지만구슬 면류관에 절을 올리면서강릉의 축원114)을 펼치누나. 修兩君反坫之好粲然奎璧之儀賤十枚連城之珍大哉金玉之語光增一座彩動隣邦竊觀國家隆替之由實係人物輕重之分堯登八凱能贊投珠之治紂斥三仁終招焚玉之禍惟王恊帝厥鑑在殷恭惟寶位日臨瑤圖天啓非貨其吉楚庭無獻璞之臣所寶惟賢商弼效若金之礪別用物異物之貴賤致遠人邇人之格安玆與慕義之君誕擧修睦之禮何圖鳴玉之會遽以有珠爲誇前後照十車異彩不減於明月大小徑一寸奇形亦超於夜光何用晉人之俘斯乃魏國之寶然大王所好之異是彼小物豈足以爲珍我遑有哉視三品輕若一芥吾無間矣有四臣重於雙南是用于藩四方可謂能照千里量其長較其短光被之效旣懸彼以物我以人心尙之實可見將使有脛之士願立於朝誰戒刖足之人深藏不市爭補五色之袞蔚爲一國之光玆實王覇之大機豈非社稷之宏福伏念臣等俱以瑣瑣幸遭明明披腹瑤墀縱乏琅玕之獻拜手珠冕庶申崗陵之呼 제나라……않음 전국 시대에 제 위왕(齊威王)과 위 혜왕(魏惠王)이 회동했을 때, 위 혜왕이 제 위왕에게 말하기를, "과인(寡人)의 나라는 비록 작으나, 차량(車輛)을 앞뒤로 각각 12승(乘)을 환히 비출 수 있는 경촌(徑寸)의 구슬이 10매(枚)나 있습니다." 하니, 제 위왕이 자신은 훌륭한 신하들을 보배로 여길 뿐, 구슬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연성의 보물 화씨벽(和氏璧)의 이칭이다. 화씨벽을 연성이라고 한 것은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15성(城)과 바꾸자고 청했기 때문이다.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팔개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보이는 인물로 옛날에 고양씨(高陽氏)가 재주 있는 아들 여덟이 있었으니, 8개(凱)라 하였다. 구슬을 내던지는 정치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紀)10〉 정관(貞觀) 10년에 "요순이 벽옥을 산에 버리고 구슬을 골짜기에 던졌다.[堯舜抵璧於山 投珠於谷]"라고 하였다. 이는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이 벽옥(璧玉)을 산에 던지고 진주를 골짝에 던져서 진귀한 보물을 좋아하는 음탕하고 간사한 욕심을 막았던 고사를 말한다. 삼인 《논어》 〈미자(微子)〉에 "미자는 떠나가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는데, 공자가 '은나라에 세 사람의 인자(仁者)가 있었다.'라고 하였다.[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라고 하였다. 옥이 타는 화 《서경(書經)》 〈윤정(胤征)〉에 "곤륜산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다 타고 만다."라고 하였으니, 나라에 난리가 나면 착한 사람이고 악한 사람이고 모두 화를 당한다는 말이다. 공은……걸맞으니 《서경》 〈순전(舜典)〉에 "옛날 순 임금을 상고해 보니 중화가 요 임금에 합치하였다.[曰若稽古帝舜 曰重華協于帝]"라고 하였다. 제나라 후작(侯爵)인 위왕이 천하의 왕이 될 만한 덕을 지녔다는 말이다. 요도 제왕의 세계(世系)를 이른다. 재물을……않으니 《서경》 〈주서 경명(冏明)〉에서 "사람을 길하다고 아니하고 재화를 길하다고 하면[非人其吉, 惟貨其吉.] 그 관직을 병들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의 의미를 반대로 구사하였다. 초나라……없으며 제나라 조정에서는 옥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초(楚)나라 변화(卞和)가 산중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두 차례에 걸쳐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두 번 다 옥인(玉人)에 의해 박옥이 아닌 돌로 감정되어, 두 번에 걸쳐 좌ㆍ우측 발꿈치를 다 잘리었다가, 문왕(文王)이 즉위한 뒤에야 진짜 박옥임이 밝혀졌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韓非子 和氏》 쇠를……숫돌 《서경》 〈열명 상(說命上)〉에 "쇠를 다룰 때라면 너를 써서 숫돌을 만들고 큰 냇물을 건널 때라면 너를 써서 배와 노를 만들고 큰 가뭄이 든 때라면 너를 써서 비를 만들리라.[若金, 用汝作礪, 若濟巨川, 用汝作舟楫, 若歲大旱, 用汝作霖雨.]"라 하였다. 사용하는……편안하게 《서경》 〈여오(旅獒)〉에서 "무익한 일을 하여 유익한 일을 해치지 않으면 공이 이에 이루어지며, 특이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고 사용하는 물건을 천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이에 풍족하며, 개와 말이 지방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면 기르지 말며, 진기한 새와 짐승을 나라에 기르지 마소서. 먼 지방의 물건을 보배로 여기지 않으면 멀리 있는 사람이 오고, 오직 현자만을 보배로 여기면 가까운 사람이 편안할 것입니다.[不作無益, 害有益, 功乃成; 不貴異物, 賤用物, 民乃足. 犬馬非其土性, 不畜, 珍禽奇獸, 不育于國. 不寶遠物, 則遠人格; 所寶惟賢, 則邇人安.]"라고 하였다. 위나라의 보배로다 위무후(魏武侯)가 배를 타고 서하(西河)를 따라 내려가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오기(吳起)에게 "아름답구나, 산하의 견고함이여! 이것은 위(魏)나라의 보배다.[美哉乎山河之固 此魏國之寶也]"라고 말하였다. 쌍남금 보통 금보다 두 배의 값이 나가는 중국 남방에서 생산된 금을 이른다. 네 신하가 있어라 제위왕이 말한 네 신하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단자(檀子)라는 자에게 남성(南城)을 지키게 하면 초(楚) 나라 사람이 노략질하지 못하고, 반자(盼子)라는 자에게 고당(高唐)을 지키게 하면 조(趙) 나라 사람이 황하에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검부(黔夫)라는 자에게 서주(徐州)를 지키게 하면 제 나라가 쳐들어올까 두려워 연(嚥) 나라 사람은 북문에서 제사 지내고 조 나라 사람은 서문에서 제사 지내며, 종수(種首)라는 자에게 도적을 방비하게 하면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습니다. 이 네 신하는 장차 천 리를 비출 것이니 어찌 다만 12승뿐이겠습니까." 《通鑑節要 卷1》 낭간 옥(玉) 비슷한 일종의 아름다운 돌을 말하는데, 전하여 훌륭한 문사(文詞)나 또는 좋은 간언(諫言)을 비유한 것으로, 한유(韓愈)의 착착(齪齪) 시에, "구름을 헤치고 천문에 호소하여, 뱃속을 열어서 낭간을 바치련다.[排雲叫閶闔, 披腹呈琅玕.]" 한 데서 온 말이다. 강릉의 축원 《시경》 〈소아 천보(天保)〉에서 아홉 가지의 예를 들어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이른바 '구여지축(九如之祝)'이 나오는데, 그 중 "산마루와 같고 구릉과 같으며[如岡如陵]"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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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장이 왕봉의 파직을 청하면서 궁에 나아가 일식의 변고에 답한 것115)에 대한 전문 王章請罷王鳳就第以答日食之變 외척이 나라를 천단함을 이미 독차지하였으니태아검의 자루가 거꾸로 된 것을 바야흐로 걱정하네.상천이 견책을 보임이 참람되지 않으니큰 악당이 어찌 권력을 장악함이 마땅하랴.의심하지 말고116) 듣는 것을 감히 더럽히랴하늘이 실제로써 하면 응한다117)는 것을 돕기를 바라네.삼가 보건대, 여후와 곽황후118)가 바야흐로 성할 때둘 다 재이가 거듭 이르게 하였네.여산과 여록119)이 군대의 위엄을 나눠 담당하니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쳤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나라 역사책에 실려 있고곽우와 곽산120)이 함께 나라의 정권을 잡으니일식과 지진이 춘추시대보다 배나 일어났어라.이전 거울에 이에 있으니뒤의 수레는 마땅히 경계해야 하네.삼가 생각건대, 천자는 천지와 도가 합하고일월과 밝음을 짝하네.기자 〈홍범〉의 휴구의 징조121)를 고찰하여서순의 선기를 살펴 칠정을 가지런히 하고122)복희 《주역》의 소장의 이치를 살펴보아서요의 밝음을 잡아 뭇 간사한 이들을 비춰보네.어진 신하들이 도울 것을 바야흐로 기약하니높다란 하늘이 거듭 내린 명을 힘써 맞이하여라.다만 왕봉은 간특하여성상의 총명을 오히려 가리는데처음에는 황태후의 지친으로써높이 오른 것은 외람되이 사랑하는 태자를 세운 덕을 본 것이며마침내는 대장군의 중임을 맡았으니임금의 돌아봄은 실로 은혜를 넓히는 것에서 나왔어라.당시 임금의 총애함이 남다름은 생각하면비록 온 집안이 목숨을 바치더라도 어찌 보답하리오.걸맞는 충성을 바칠 것을 도모하지 않고도리어 방자하게 교만하고 사치하였네.한 집안 다섯 제후의 붉고 화려한 수레가 서로 이어지고사방 제군의 진귀한 뇌물이 다투어 이르네.많은 관리가 그 문에서 나오니한 사람 임금이 헛된 임명권만 잡고 있어라.말단이 커지면 근본은 꺾어지니삼자가 노나라를 전횡123)함에 헤아릴 수 있으며과일이 너무 많으면 뿌리가 다치니육경이 진나라를 쪼갬124)이 이미 그 조짐이라.참으로 마땅하여라,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에게서 시작하여125)일식이 나를 경계하게 하는 것이.기와 지가 교감함을 속일 수 없으니모양은 그림자를 살펴보면 헤아릴 수 있고하늘과 사람이 서로 어울림은 두려워해야 하니얼음은 반드시 서리를 밟을 때 조심해야 하네.저 간사한 사람이 이미 재앙을 불렀으니상헌에 반드시 용서 받을 수 없어라.문제의 관후함을 본받아비록 박소에게 차마 드러내놓고 죽이진 못하였지만126)소제의 영명함을 체득하여어찌 상관걸에게 가벼운 견책이 없겠는가.127)마땅히 자신의 집에서 자취를 숨기고공조에서 일을 맡게 하지 않아야 하네.이것이 결단하여서 성공한 것128)에 해당하니누가 두터이 대할 자에게 박하게 대한다129)고 하겠는가.몸에 돌이켜 실상을 자책함이비록 하늘에 응하는 일상적인 법이지만어진 이를 등용하고 간사한 자들을 물리치는 것은이 또한 재앙을 막는 중요한 방법이라네.분별은 반드시 빨리 하는 게 귀하니뻗어나가면 끝을 잘 마치기가 어려워라.삼가 바라건대, 음이 양을 위협하는 조짐을 깊이 궁구하고신하가 임금을 좌우지 하는 형상을 통찰하여하늘이 미워하는 악을 특별히 배척하고상제가 주신 어진 이130)를 다시 선발하시길.그렇다면 안팎의 의심하는 실마리가 없어질 것이며두 성씨가 큰 복을 받을 것이고종사가 공고해지는 경사가 이어질 것이며훌륭함을 짝할 이에게 만세토록 길이 힘입을 것이라.이것이 바로 재앙을 바꿔서 복으로 만든 것이니어찌 다만 상으로 보이는데 응하지 않으리오.삼가 마땅히 마음은 나라를 걱정하고뜻은 국가를 안정시킴131)이 간절하네.왕릉이 청포에 엎드려 간쟁하는 것132)을 본받으니비록 백마의 맹세133)를 지키지 못하지만,서복의 땔나무를 옮기자는 청134)을 배운다면적제의 기반을 거의 안정시킬 것이네. 外戚之擅國旣專太阿方患於倒柄上天之示譴不僭巨奸豈宜於典權敢瀆勿疑之聽冀贊以實之應竊觀呂霍之方盛咸致災異之荐臻産祿分掌軍威山崩水溢之昭載國乘禹山共秉邦政日食地震之動倍春秋前鑑斯存後車當戒欽惟乾坤合度日月配明稽箕範休咎之徵在舜璣而齊七政察羲易消長之理秉堯哲而照羣邪方期良弼之恊恭懋迓穹昊之申命第惟王鳳之奸慝尙蔽聖上之明聰始以皇太后至親登崇濫荷於立愛終居大將軍重任倚眷實出於廣恩念當宁寵數之非常雖擧族糜捐而曷報莫圖稱效反肆驕奢一姓五侯朱輪華軸之相接四方諸郡寶賂珍幣之爭輸庶官皆出于其門一人徒擁乎虛器末大則本折三子之專魯可虞實煩者根傷六卿之分晉已兆固宜天視之自我而致日變之警予氣志之交感難誣形可占於察影天人之相與可畏氷必謹於履霜彼憸人旣已召灾於常憲必在罔赦法文帝之寬厚縱不忍顯戮於薄昭體昭廟之英明豈可無薄譴於官傑宜使屛跡於私第無俾典事於公朝是所謂惟斷乃成夫孰云所厚者薄反躬責實雖是應天之常經進賢退邪斯亦弭灾之要道辨必貴早蔓難善終伏望深究陰脅陽之徵洞察臣擅君之象特斥天厭之惡更選帝賚之良則絶內外疑逼之端兩姓誕膺乎遐福綿宗社鞏固之慶萬世永賴於匹休斯乃轉灾而爲祥豈但有象而無應謹當心存憂國志切安劉效王陵伏蒲之爭縱未保白馬之盟學徐福徙薪之請庶幾妥赤帝之基 왕장이……것 《역대사선(歷代史選)》 〈한기(漢紀) 효성황제(孝成皇帝)〉에서 "경조윤 왕장이 평소 강직하여 감히 말하였는데, 비록 (그를) 왕봉이 천거하였으나, 왕봉의 전권을 비난하여 왕봉을 친하게 따르지 않더니, 마침내 봉사(봉함 상소)로 아뢰어 말하기를, "일식의 허물(재앙)은 모두 왕봉의 전권으로 군주를 가리운 잘못입니다." 하고, 이에 왕장이 풍야왕이 충신하고 질박하며 정직하다고 추천하였는데, 상이 태자였을 때부터 여러 번 풍야왕의 명성을 들었으므로 바야흐로 (그 말에) 의지하여 왕봉을 대신하고자 하더니, 왕봉이 듣고서 상서로 하여금 왕장을 탄핵하게 하여, 그를 대역죄에 이르게 하여 마침내 옥중에서 죽게 하니, 이로부터 공경들이 왕봉을 볼 적에 곁눈으로 보았다."라고 하였다. 의심하지 말고 《서경》 〈대우모(大禹謨)〉에서 익(益)이 순(舜) 임금에게 아뢴 "간사한 자를 제거하되 의심하지 마소서.[去邪勿疑]"라는 말에서 나왔다. 하늘이……응한다 한(漢)나라 때 왕가(王嘉)가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백성을 감동시킬 때는 행동으로 해야지 말로 하지 않으며, 하늘에 응대하는 것은 실지로 해야지 꾸밈만으로 해서는 안 된다.[臣聞:動民以行, 不以言, 應天以實, 不以文.]"라고 하였다. 《漢書 卷45 蒯伍江息夫傳》 여후와 곽황후 '여(呂)'는 한 고조의 황후 여후(呂后)와 '곽(霍)'은 선제(宣帝)의 황후 곽황후(霍皇后)를 가리킨다. 여후는 척부인(戚夫人)을 인체(人彘)로 만들고 소제(少帝)를 살해하는 등 악명을 떨쳤다. 곽황후는 곽광(霍光)의 딸로 곽광의 후처 현(顯)이 선제의 황후 허씨(許氏)를 독살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들였는데, 곽황후 또한 온갖 악행을 자행하다가 폐위되었다. 《史記 卷9 呂后本紀》 《漢書 卷68 霍光傳》 《史略 卷2 西漢》 여산과 여록 한(漢) 나라 여 태후(呂太后)의 지친으로 여산은 양왕(梁王), 여녹은 조왕(趙王)에 각각 봉해졌다가 태후가 죽자 주발(周勃) 등에게 죽임을 당했다. 곽우와 곽산 한나라 때 곽우(霍禹)와 곽산(霍山)을 말한다. 곽우는 곽광(霍光)의 아들로 선제(宣帝) 때 우장군에 임명되고, 곽광 사후에 대사마에 올랐다. 곽산은 곽광의 증손자로 곽광의 공으로 낙평후(樂平侯)에 봉해졌다. 이들은 뒤에 모반을 꾀하다가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漢書 卷68 霍光傳》 기자……징조 임금이 정치를 하는 데에 있어 다섯 가지의 요건, 즉 첫째 외모[貌], 둘째 말[言], 셋째 보는 것[視], 넷째 듣는 것[聽], 다섯째 생각하는 것[思]이 있다. 휴구(休咎)는 화복(禍福)과 같은 말로, 정치를 하는 데에 있어 이 다섯 가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화복이 정해진다는 뜻이다.《書經 洪範》 순의……하고 '칠정(七政)'은 일(日)ㆍ월(月)과 수(水)ㆍ화(火)ㆍ금(金)ㆍ목(木)ㆍ토(土)의 오성(五星)을 말한 것이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살펴서 칠정(七政)을 가지런히 한다[在璿璣玉衡齊七政]."라고 하였다. 삼자가 노나라를 전횡 노나라를 전횡한 자들은 대부인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를 가리킨다. 육경이 진나라를 쪼갬 춘추 말기 진나라의 범씨(范氏), 중행씨(中行氏), 지씨(知氏), 한씨(韓氏), 조씨(趙氏), 위씨(魏氏)의 육경을 말하는데, 이들 육경이 국정을 잡고 부국 강병을 도모하다가 서로 겸병(兼竝)하여 진나라를 와해시켰다. 《春秋左氏傳》 하늘이……시작하여 《서경(書經)》 태서 중(泰誓中)에 "하늘은 우리 백성의 눈을 통해 내려다보시고, 하늘은 우리 백성의 귀를 통해 들으신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는 말이 나온다. 문제의……못하겠지만 박소(薄昭)는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후궁인 박희(薄姬)의 남동생으로 한문제(漢文帝)에게는 외숙이 된다. 박소는 대왕(代王)으로 있던 문제를 맞이하여 황제에 즉위시키는 데에 큰 공을 세웠지만, 외척임을 믿고 교만 방자하게 굴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보낸 사자를 죽이자, 문제가 백관을 거느리고 가서 조문하고 자살하도록 하였다. 《資治通鑑綱目 卷3下 文帝10年》 소제의……없겠는가 연왕(燕王) 유단(劉旦)은 한 무제(漢武帝) 셋째 아들로, 태자 유거(劉據)가 무고(巫蠱)의 화에 자결하고 제 회왕(齊懷王) 유굉(劉閎)이 또 죽자 서열상 자기가 즉위하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무제는 곽광(霍光)만이 충심이 있음을 알고 주공(周公)이 어린 성왕(成王)을 업고 제후들의 조회를 받는 그림을 곽광에게 그려주며 소제(昭帝)를 지켜달라고 부탁하였다. 소제가 즉위하자 연왕은 좌장군(左將軍) 상관 걸(上官桀)과 모의하여 "대장군(大將軍) 곽광(霍光)이 교위(校尉)를 뽑아 늘리고 권세를 독차지하니 딴 뜻을 품었다."라고 모함하는 상소를 소제에게 올렸다. 이에 곽광이 공신각에 들어가 대죄하자, 소제가 곽광을 불러 이 상소가 거짓임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하면서 안심시켰는데, 이때 황제의 나이가 14세였으므로 좌우가 모두 놀랐다고 한다. 연왕과 상관걸은 또 황제를 시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비밀이 누설되어 모두 삼족이 멸족되었다. 《漢書 卷68 霍光傳》 결단하여서 성공한 것 한유의 〈평회서비(平淮西碑)〉에서 "이 채주(蔡州)의 난을 평정한 공은 오직 결단을 해서 이룰 수 있었다.[凡此蔡功, 惟斷乃成.]"라는 말에서 나왔다. 두터이……대한다 《대학》 〈경일장〉에서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서 지엽이 다스려지는 자는 없으며, 후하게 해야 할 것에 박하게 하고서 박하게 할 것에 후하게 하는 자는 없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라고 하였다. 상제가……이 《서경》 〈열명편(說命篇)〉에서 "공경하고 침묵하며 도를 생각하고 있으니, 꿈에 상제께서 나에게 훌륭한 보필을 주었다. [恭默思道, 夢帝賚良弼.]"라고 하였다. 국가를 안정시킴 '안유(安劉)'는 한(漢)나라 주발(周勃)이 여씨(呂氏) 일족을 무찌르고 유씨(劉氏), 즉 한(漢)나라의 왕실을 평안하게 하였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청포에……것 한 원제(漢元帝) 때에 황제가 병이 난 것을 기화로 태자(太子)를 폐하려 하였는데, 이때 사단(史丹)이란 신하가 청포 위에 엎드려 간함으로써 그 일을 막았다. 이로부터 올바르게 간하는 것을 "복포(伏蒲)"라 부르게 되었다. 《漢書 卷82 史丹列傳》 백마의 맹세 한 고조(漢高祖)는 재위 12년(기원전 195) 삼월 중순경 중병에 걸린 몸을 이끌고 조정의 신하들과 그의 부인 여후(呂后)를 한 곳에 모이게 하여 백마를 죽이고 그 피로 하늘에 맹세하는데, 이것이 바로 한나라 때의 백마지맹(白馬之盟)이다. 백마지맹은 두 가지 내용인데, 첫째는 한나라를 영원히 존속하며 후예들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것으로 한나라가 존속하는 한 신하들 및 그의 자손은 영원히 먹고 마실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고, 둘째는 유씨(劉氏)가 아닌 자가 왕이 되면 천하가 함께 그를 공격하고, 만일 공로가 없이 제후(諸侯)에 오르게 되면 천하가 모두 그를 죽인다는 내용이다. 서복의……청 '사신(徙薪)'은 곡돌사신(曲突徙薪)의 줄인 말로,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아궁이 근처의 나무를 딴 곳으로 옮겨서 화재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뜻이다. 서복(徐福)은 한 선제(漢宣帝) 때 곽씨(霍氏)의 세력을 억제하여 화를 미연에 방지하자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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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金郡守世淵 雨餘凉生伏惟侍履起居萬相炎暑已退簡編可親竊想高明之地日有新㦖得而未能承聆徒覺鄙吝之積膽詠景仰不敢自弛弟逢秋多感家信又阻而冗務乍繁應接少暇疲劣益甚憐奈何適有所得生梨十箇玆以奉呈少助玩理之工無或爲傅會之歸耶還切愧 餘姑不備伏惟下照謹拜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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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 태수가 도원도를 올린 것에 대한 전문 武陵太守進桃源圖 광포한 진나라 세상을 피하여호리병속의 천지135)를 오랫동안 차지했어라.성인의 백성이 되어문득 그림속의 산수로 들어갔네.일지지에 비의하면구천의 문에 도달한 듯하여라.삼가 생각건대 칠국이 한창 전쟁을 한 뒤에시황제의 지극히 표독한 정치가 뒤를 이었네.만리장성을 쌓고 왕릉을 만들며바다로 들어간 동자들은 돌아오지 않았어라.선비를 파묻고 시서를 불태우며약초 캐러간 노인을 멀리 갔어라.이르기를 우리들도 또한 떠날 것이니장차 어디로 가야 그 장소를 얻을까 하네.저 무릉 시내의 원천을 바라보니세상에 숨은 사람들이 거처하기에 합당하여라.지역은 오와 초로 나뉘니천 산과 만 강의 고을이며사람은 신선과 속인으로 나뉘니구름 갈고 달을 낚는 즐거움이라.복숭아 심어서 꽃과 열매 얻으니달력이 없어도 봄과 가을을 알 수 있네.육백 년 동안 갑자가 자주 돌고해와 달이 머리 위에서 길이 한가로워라.영씨와 유씨의 흥망이 몇 번이나 변하였나그 풍진은 눈앞에 걸리지 않누나.우연히 어부가 나루를 헤매다가드디어 속세로 통하는 선경에 이르렀네.돌아오니 꿈과 같아그 골짜기 비록 다시 찾아가기 어렵지만지척으로 옮겨올 수 있으니단청을 실로 찾아가서 보는 것보다 편하네.만약 여도에 실리게 된다면이 또한 성세의 빛나는 일이 될 수 있네.더구나 국가 안위의 기미를사람의 거취에서 볼 수 있음에랴.도가 있으면 나오고 도가 없으면 숨는 것은동물의 영장도 오히려 그러하며,난세가 지나고 치세가 오니지각의 영물이라 마땅히 그러하네.참으로 한번 세상에 나오고 한번 숨는 즈음이토지와 백성을 소유한 사람의 경계가 되네.삼가 생각건대 오마가 강을 건너서 136)육룡이 왕의 자리에 올랐네.137)만리를 통하여 밝게 보니깊은 산과 골짜기가 모두 황제 교화 안에 있고사해를 어루만져 광림하니천지간 아주 조금이라도 모두 나의 문 안에 있어라.자지의 노래는 상안령에서 불려지기138) 그치고반도는 요지에서 올려지기를 기다리누나.신선을 조석으로 기약할 수 없지만하필 방외의 멀리서 구할 것인가.승경이 이목이 미치는 바에 있으니절로 가까이 그림 속에서 취할 수 있으리.그러나 한 사람이 순의 궁에서 깊이 팔짱을 끼고 앉았으니139)4년을 우의 발자취처럼 두루 돌아다니기 어려워라.마땅히 중당에 살아 있는 그림을 그려방악140)을 때로 순수(巡狩)하는 것을 대신하네.삼가 생각건대, 명승지에서 원님을 하면마음이 호사 누릴 것에 매이리라.하양의 도리에서반악이 심어 꽃핀 것을 우러르고,141)영가의 산천에서사령운이 나막신 신을 것을 부러워하네.142)감히 이르네, 인자와 지자의 좋아함143)으로에오라지 어부, 초동과 함께 노닌다고.청산과 백운은담소하면서 그 풍경을 십분 즐길 수 있고,떨어진 잎이 물에 흘러가는 것은그림 위 봄 경치의 한 편린이라네.어찌 다만 소인과 묵객으로 하여금 품평하게 하리오실로 따뜻한 햇빛과 미나리를 바치는 정성144)을 본받은 것이라.혹시 좌우에 두고서 감상하신다면\산천을 그렸다고 범범하게 보지 마시기를.이 백성들이 먼 변방에 숨어든다면진나라가 사슴145) 잃은 것을 경계할 것이라.지금 시대 중흥의 업적을 빛나게 하여서도림에 비의하여 소를 방목하시기를.146) 避狂秦世久占壺裏之乾坤爲聖人氓忽入圖中之山水擬一地誌達九天門竊惟七國戰爭之餘繼以始皇毒痡之極築長城營丘墓入海之童不還坑儒士焚詩書採藥之翁長往謂吾屬亦可去矣將安適得其所哉睠彼武陵之源合爲逸民所止地分吳楚千山萬水之鄕人隔仙凡耕雲釣月之樂種桃而得花與實無曆而知春復秋六百年甲子屢回日月長閒於頭上嬴劉氏興亡幾變風塵不掛於眼前偶因漁父之迷津遂致眞境之通俗歸來如夢洞壑雖難於再尋咫尺可移丹靑實便於歷覽苟爲輿圖所載是亦聖世之光矧國家安危之機于人物去就而見有道見無道隱毛羽之長猶然亂世去治世來知覺之靈宜爾信乎一顯一晦之際可爲有土有人所監欽惟五馬渡江六龍御極洞萬里而明見深山窮谷咸囿皇風奄四海而光臨寸地尺天皆在我闥紫芝休歌於商嶺蟠桃待獻於瑤池眞仙非朝夕可期何必遠求於方外佳境在耳目所及自可近取於圖中然一人深拱乎舜宮奈四載難遍於禹跡宜作中堂之活畵庸代方岳之時巡伏念作宰名區嬰情好事河陽桃李慕潘岳之裁花永嘉山川思靈運之着屐敢云仁智者之樂聊與漁樵子而遊靑山白雲談笑間十分風景落花流水畵圖上一片春光豈但使騷人墨客而品題實可效獻曝進芹之誠悃倘置左右而宸覽勿以山水而汎觀使斯民遐遯于荒戒秦家之失鹿彰今代中興之烈比桃林而放牛 호리병속의 천지 《후한서》 〈비장방열전(費長房列傳)〉에 비장방이 저자의 아전이 되었다. 저자에서는 어떤 노인이 약을 팔았는데, 가게에 병 하나를 매달아놓고서 저자가 파하면 문득 병 안으로 뛰어들었다. 비장방이 누대 위에서 그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가서 두 번 절하였다. 이에 노인이 그를 데리고 병속으로 들어가니, 옥당(玉堂)에 화려하고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가 그득하여 함께 술을 실컷 마셨다. 함께 술을 마시고서 나온 뒤에 노인이 이르기를 "나는 신선 가운데 사람인데, 허물을 지어 견책을 받았다. 이제 지금 그 일이 다 끝났으니 마땅히 마을을 떠나겠다."라고 하였다. 오마가 강을 건너서 서진(西晉) 이 망하고 황족(皇族) 사마씨(司馬氏) 들이 양자강을 건너갔는데, 그 중의 낭랑왕이 동진(東晉) 의 황제가 되었다. 그 당시에, "다섯 말이 강을 건너서 한 말이 용이 된다."는 동요의 예언이 있었다. 육룡이……올랐네 《주역》에 〈건괘(乾卦)〉의 육효(六爻)를 6용(龍)으로 상징하였는데, 6용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것은 왕의 즉위를 상징한 것이다. 자지의……불려지기 진(秦)나라 말기 상산사호(商山四皓)의 〈채지가(採芝歌)〉에 "높고도 높은 산에, 깊은 골짜기 구불구불하구나. 빛나고 빛나는 붉은 지초는, 굶주림을 달랠 수 있다네. 요순의 시대는 멀어졌으니, 나는 장차 어디로 돌아갈까.[莫莫高山, 深谷逶迤. 曄曄紫芝, 可以療飢. 唐虞世遠, 吾將何歸?]"라고 하였다. 상산사호는 상안산에서 은거하였다. 한……앉았으니 순(舜) 임금은 대궐에 깊이 앉아 팔짱을 끼고 있기만 해도 천하가 태평하게 다스려졌다는 의미로, 통치자의 훌륭한 통치력을 표현한 말이다.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킨다. 방악 사방의 진산(鎭山)을 가리킨다. 동악은 대종(岱宗), 남악은 형산(衡山), 서악은 화산(華山), 북악은 항산(恒山)이다. 하양의……우러르고 진(晉)나라 때의 반악(潘岳)이 하양 영(河陽令)이 되었을 때 그 고을에 도리(桃李)를 많이 심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하양은 온 고을이 꽃이다.[河陽一縣花]"라고 칭했다는 말에서 온 것이다. 《白氏六帖 卷21》 영가의……부러워하네 사령운은 영가 태수를 지냈다. 영가는 경치가 좋은 고장으로 그곳의 산수를 좋아하여 앞뒤의 굽이 다른 나막신을 신고 등산하였다고 한다. 인자와 지자의 좋아함 《논어》 〈옹야(雍也)〉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인한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인한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 知者樂, 仁者壽.]"라고 하였다. 따뜻한……정성 '헌폭(獻曝)'은 햇볕을 바친다는 뜻인데 송나라의 농부가 따뜻한 봄 햇볕을 쪼이며 그 아내에게 "햇볕의 따뜻함을 사람들이 모르니 이 햇볕을 가져다가 임금께 바치면 반드시 상을 내릴 것이다." 했다고 한다. '진근(進芹)'은 미나리를 바친다는 뜻인데 옛날에 미나리를 즐겨 먹던 가난한 농부가 그 지방 부호에게 미나리가 맛이 좋다고 자랑하여 그 부호가 맛을 보았는데 입만 쏘고 배만 아팠다고 한다. 《列子 楊朱》 사슴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候傳)〉에서 "진(秦)나라가 그 사슴을 잃으니 천하가 다 함께 쫓는다."라고 하였다. 즉 천하를 가리킨다. 도림에……방목하시기를 주 무왕(周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다가 풍(豐)에 이르러 "말을 화산의 남쪽에 돌려보내고 소를 도림의 들판에 풀어놓아, 천하에 무력을 쓰지 않을 것임을 보였다.[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 示天下弗服.]"라는 말이 《서경》 〈무성(武成)〉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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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 南崖執事入納 李牧使羲平彼此阻閡積有年所膽想之懷無時不耿耿卽因京裭獲承手翰始審上洛有日而旅履連勝慰瀉交摯書發已久仰惟啓處益祉春府安候近可承聞耶馳溯無已平家親接䉒寔出特恩感激無地來此以後京洛渺然且舍兄邈在東嶺消息無以擬承不堪愴鬱又聞座下之入城而未得卽奉攄穩回想城南舊遊依依若一夢境座下失居停之舊主獨處旅館能無轉悽然之思耶科期已定來初當上去可以奉敍略此不宣統希照亮甲寅正月 日弟羲平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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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同上 積歲阻信恒切耿悵意外獲承春間所發華翰披閱再三無異面討矧審伊時侍履安勝者乎信後節已換矣此時侍學更何如旋切溯仰羲平省事姑安是幸而年前得一男子矣旋卽夭折數也奈何聘丈日前除高城守泰仁丈又甄復今年注洞之數可謂大通矣累次付書之示無奈例語耶比年來一未承見而來示如此可訝可菀紙末所示如有周旋之道則豈待勤托之如是耶二梳之惠可感而無物件呈二筆一墨送呈雖少領之也餘客擾艱草止此不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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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渭水自縈秦地曲韻 金城千里壯山河高閣遙連北斗斜和氣已消池上雪韶光先着苑中花天敎好雨隨仙仗風引祥煙繞帝家共樂太平歌聖德一時佳景屬繁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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雁池 洛城東畔水成陂自古流傳是雁池睿算豈殫民力造壯觀還似鬼工爲樓臺倒影滄波闊島嶼浮空落日遲多少遊人行不絶仙舟何處鳳笙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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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帝子遠借丹鳳闕韻 花萼樓頭畏日烘皇恩特許借離宮飛甍斜壓靑山上複道橫分碧澗中松桂涼陰凝枕席雲嵐爽氣透簾櫳灑然不受人間暑月夜歌聲落半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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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漢主離宮接露臺韻 蒼蒼麗景在樓臺春晩鳳城花正開俠客紫騮嘶雨去王孫玉笛逐風來通衢向夕香塵靜高樹連雲暝色回借問紛紛冠蓋裡不知誰是賈生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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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修巖【柳公袗】 習池携手醉同車山郭秋深木葉疏月滿草堂連被宿良宵勝讀十年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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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李察訪【升亨】次李提督韻 萬樹秋聲昨夜回客心孤迥大江隈懸知別後黃花發縱有淸樽誰與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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