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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封〉明呂○侍丌○奉見別後月改 心常瞻悵 卽詢殘炎侍中起居 一衛安重 大小諸節 亦得均吉否 遠慮懂懂族叔姑依前狀 是外何煩 第▣(所)托石炉 適因舊交之商賈下來石炉 而一雙自當 折價五兩文 負送其商 然而論其價 則價亦平歇 自當處之 勿負舊約 如何 此便南草幾許間 負送爲好 而勿聽泛然焉 餘日後面叙 不具式庚辰七月初四日 族叔 景漸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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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前洛中拜別後 承○候無路 下懷伏悵 謹未審此辰令政體候萬安 ○鄕候種種承安耶 伏溯區區 無任下忱 族孫今正月 赴任于光州司直狀姑依 而親候長時欠和云 遠外焦煎之狀 難以形喩就此去士人李應薰 素所親切間 而以璿譜修單事 適入○貴郡 故玆以書告 卽爲邀接賜顔 隨事曲護之地 伏望伏望 正月分山東里再從叔母喪事 或可入燭耶三月分灵光大父 亦爲喪事云耳 餘爲此探候 不備 上候禮庚子五月卄九日 族孫 太馥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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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炳朝)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炳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상대방의 편지를 받은 날에 어버이 상중인 병조가 내형에게 이척이 삼베를 사기 위해 가져간 돈 100냥에 대한 내용과 상대방이 부탁한 옹기는 이 마을의 장사꾼이 한 굴의 옹기를 모두 사갔기 때문에 부탁을 들어줄 수 없지만 급하다면 사서 보내겠다는 내용 및 화예 최상품이 있어서 보내겠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상대방의 편지를 받은 날에 어버이 상중인 병조가 내형(內兄)에게 이척(李戚)이 삼베를 사기 위해 가져간 돈 100냥에 대한 내용과 상대방이 부탁한 옹기(甕器)는 이 마을의 장사꾼이 한 굴(窟)의 옹기를 모두 사갔기 때문에 부탁을 들어줄 수 없지만 급하다면 사서 보내겠다는 내용 및 화예(花醴) 최상품이 있어서 보내겠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받고 참으로 감사했다는 내용, 편지를 통해 요즈음 숙모님의 기력이 안녕하시고 숙모를 모시고 사는 여러 형제분들도 건강하시며 여러 식구들도 모두 편안하다고 하니 매우 축하드린다는 내용, 어버이 상중인 자신의 모진 목숨은 근근이 지탱하고 있다는 내용, 이씨 친척이 삼베를 사려고 이미 100냥을 가지고 갔는데 그가 '값을 흥정하는 마당에 몇 필로 값을 정할 때에 100냥 안쪽이면 무방하지만 100냥을 넘는다면 초면인 자리에서 나에게 편지를 쓰라고 청하기 어렵다'고 말한 까닭에 자신이 지난번 상대방에게 보낸 편지에 '남는 수가 있으면 정한 날짜에 내주겠다'고 아뢰었다는 내용, 지금 들으니 근 50민이 남았다고 하는데 자신에게 우연히 크게 힘을 소모해야 할 단서가 생긴 탓에 미리 염려가 되지만 이씨 친척이 식언(食言)해서 자신을 잘못 지체하게 해서는 안 되므로 그 사이에 때를 틈 타서 마무리 지을 계획이니 염리하지 말라는 내용, 그가 비록 허랑하게 다 썼더라도 자신에게는 감히 약속을 어길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초5일 안으로 모조리 바치겠다는 뜻으로 기한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이 말일에 찾아뵈려고 확실히 정하였으니 초5일에 마련하는 것에 구애가 있더라도 상대방을 찾아뵐 계획이라는 내용, 상대방이 말한 옹기는 점옥(店沃)을 불러 물었더니 이 마을의 장사꾼이 한 요굴(窯窟)의 그릇을 통째로 사갔다고 해서 상대방의 부탁에 부응하지 못하는데 만약 급하다면 그릇을 사서 보내겠다는 내용, 최상품인 화예가 있어서 상대방에게 보내며, 이 그릇은 2되의 꿀을 봉해 둔 것이니 가격은 그 때 말씀드리겠다는 내용, 혹시 부리는 수족이 있다면 말일에 꿀을 보내고 그가 돌아가는 길에 옹기를 짊어지고 가게 하면 되겠지만 만약 부릴 수족이 없다면 자신이 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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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이홍식(李鴻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昌平縣監 李鴻植 行縣令<押> □…□(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856 1888년에 창평현에 사는 호주 이홍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88년(고종 25)에 창평현에 사는 호주 이홍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홀아비 이홍식의 거주지는 창평현(昌平縣)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행정리(杏亭里) 오가작통 순번은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6세 임인생(壬寅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홍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통덕랑(通德郞) 낙승(洛承), 할아버지 학생 규현(奎鉉), 증조(曾祖)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 재원(在元), 외조(外祖) 학생 김상선(金商璇)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이홍식의 아내 김씨는 사망하였고, 가족으로 아들인 홀아비 유학 응용(應容) 나이 24세 갑자생(甲子生)이 있으며, 소유하고 있는 여종은 장례(長禮)이고 나이 21세 정묘생(丁卯生)이다. 문서에 '호적단자(戶籍單子)'와 작성년인 '무자식(戊子式)'이 적혀 있고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창평현령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기존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해호구상준인(丁亥戶口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이홍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정해호구상준인(丁亥戶口相凖印)'의 정해년은 1887년으로 호적개정 식년(式年)이 아니므로 1885년인 을유년(乙酉年)'의 오자(誤字)로 추정되며, 문서에 '정해(丁亥)'가 주묵으로 묵멸(墨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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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최석형(崔錫衡)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寶城郡守 崔錫衡 行郡守<押> 寶城郡守之印(6.5x6.5), 周挾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972 1876년에 보성군(寶城郡)에서 최석형(崔錫衡, 4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주소: 龍門面 第 里斗谷村第 統第 戶 *가족사항: 妻 耽津崔氏(48세), 弟 鍚嵂(46세), 嫂 金氏(46세), 弟 應龍(21세), 弟 應權(11세), 子 敬淳(23세), 貴出(21세), 善出(18세), 侄 富出(21세), 甲出(12세) *소유노비: 奴婢 5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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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최석형(崔錫衡)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寶城郡守 崔錫衡 行郡守<押> 寶城郡守之印(6.5x6.5), 周挾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972 1879년에 보성군(寶城郡)에서 최석형(崔錫衡, 5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주소: 龍門面 第 里釜谷村第 統第 戶 *가족사항: 妻 耽津崔氏(52세), 弟 鍚嵂(50세), 嫂 金氏(50세), 弟 應龍(25세), 弟 應權(15세), 子 敬淳(27세), 貴出(25세), 善出(22세), 侄 富出(25세), 甲出(16세) *소유노비: 奴婢 5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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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聖采 牧使<押> □…□(7.0×7.0),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814 1834년(순조34)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성채(羅聖采, 54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34년(순조34)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내영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삼영동)에 사는 나성채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성채는 54세이고, 신축년(1781)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언회(羅彦晦)이고, 조부는 나종유(羅宗有)이며, 증조부는 나윤명(羅允命)이다. 외조부는 정익성(鄭益成)이고,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내는 김씨(金氏)로, 나이는 56세이고, 기해년(1779)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김운흥(金運興)이고, 조부는 김윤상(金胤商)이며, 증조부는 통덕랑(通德郎) 김시규(金始圭)이다. 외조부는 김이서(金履瑞)이고, 본관은 면성(綿城, 현 전라남도 무안)이다. 아들은 나시화(羅時化)으로 나이는 27세이고, 무진년(1808)생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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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별지(簡札別紙)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당나라의 한유가 사문박사로 있던 803년에 지은 「송하견서」를 베껴서 보낸 간찰 협지로, 한유의 오랜 벗으로 원한 것을 얻지 못하고 고향인 도주로 돌아가는 하견을 전송하면서 지은 글 당나라의 한유(韓愈, 768~824)가 사문박사(四門博士)로 있던 803년(貞元 19)에 지은 「송하견서(送何堅序)」를 베껴서 보낸 간찰 협지로, 한유의 오랜 벗으로 원한 것을 얻지 못하고 고향인 도주(道州)로 돌아가는 하견(何堅)을 전송하면서 지은 글이다. '하(何)는 한(韓)과 성이 같으니 친근하고, 하견은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나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자로, 그가 태학(太學)에 있을 때에 나는 박사였고 하견은 학생이었으니 학생과 박사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며, 내가 하견과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니 오랜 벗이다. 동성(同姓)이라 서로 친근하고, 같은 일에 종사하며, 같은 길을 가고, 오랜 벗이므로 원한 바를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어찌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견은 도주 사람인데 도주자사(道州刺史) 양성(陽城)은 어진 자이며, 도주는 호남(湖南)의 속주(屬州)로,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 양빙(楊憑) 또한 어진 자이다. 하견은 그곳의 백성인데 하견 또한 어진자이다. 호남은 도주를 속주로 삼고, 도주는 하견을 백성으로 삼았으니 하견이 돌아가서 그 고을의 부로(父老)와 자제들을 이끌고 양공(陽公)의 명령에 복종하게 할 것이요, 도주 또한 그 속현과 관할하는 주들에게 양공의 명령에 복종하게 할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새 중에 봉황이란 새가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고 한다. 한나라 때에 황패(黃霸)가 다스리던 영천(穎川)에 이 새가 모여 울었다고 하니, 역사책의 기록을 믿을만 하다면 돌아가는 하견에게 나는 앞으로 그가 봉황을 보게 되고 그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을 필사한 뒤에 여기에 베껴놓은 제해(題解) 중에 양공(陽公)이라고 쓰기도 하고 양공(楊公)이라고 쓰기도 했는데 양(陽) 글자와 양(楊) 글자를 분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을 추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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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舍兄)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舍兄 舍弟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2월 9일에 서울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형이 고향에 있는 동생에게 식년시는 다음해 가을로 미뤄져서 낭패라는 내용과 바로 내려가고 싶지만 엄동설한에 길을 떠나기 어려워 초봄에 있을 정시를 치른 뒤에 내려갈 계획이라는 내용 및 보종에 대한 소송과 사당 건립에 대한 내용 등을 전한 편지 12월 9일에 서울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형이 고향에 있는 동생에게 식년시(式年試)는 다음해 가을로 미뤄져서 낭패라는 내용과 바로 내려가고 싶지만 엄동설한에 길을 떠나기 어려워 초봄에 있을 정시(庭試)를 치른 뒤에 내려갈 계획이라는 내용 및 보종(保宗)에 대한 소송과 사당(祠堂) 건립에 대한 내용 등을 전한 편지이다. 지난달에 쓴 답장은 바로 고을 수령에게 전하여 집의 심부름꾼에게 빠르게 전하게 하였는데 그 뒤에 알아보니 내려가는 인편이 지체되어 이달 2일에 부친다고 하였으므로 답장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내용, 그 뒤로 며칠이 지나 머지않아 섣달 그믐인데 어머님의 기력과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동생 및 가족들 모두 건강히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평소보다 갑절이나 간절히 그립다는 내용, 객지 생활 중인 자신은 여전하다는 내용, 식년시는 다음해 가을로 미뤄져서 낭패라는 내용, 여름을 보낼 때에는 가을에 시험을 치를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을이 되니 시험이 다음해 봄으로 미뤄졌고, 겨울을 보낼 때에는 봄에 시험을 치를 것으로 여겼는데 지금 또 다음해 가을로 미뤄졌으니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엄동설한에 길을 떠나기가 어려워 초봄의 정시를 치른 뒤에 길을 떠날 계획이라는 내용, 종문(宗門)을 보존하기 위한 소송은 나루를 건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순영(巡營)의 부탁으로 감히 이치 밖의 송사를 일으켰으니 저들은 송사를 좋아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내용, 그러나 지금 세상의 일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굽은 것을 곧다고 하고 허위로 사실을 얽어 버리면 사람들은 혹 곧이듣기도 하는데 하물며 순영에서 부탁한 자이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자신이 지금 서울에 있으면서 온갖 걱정은 바로 그가 송사를 올렸을 때 어떻게 판결나느냐는 것으로, 아마 패소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대로 돌아간다는 내용, 파주(坡州)의 종손이 도착했는지, 사당을 세우는 일은 확실히 논의해서 돈을 거뒀는지 묻는 내용, 영식(永植)이 일과로 독서하는 일을 힘쓰도록 하여 흥청망청 놀게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 지난번 편지를 보낸 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해 답답하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추신으로 이 편지를 본 뒤에 바로 답장을 써서 관편(官便)에 부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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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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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7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장택기(葬擇記). 葬山 형국, 下棺 시간, 墓穴, 開土 시간, 破墓 일짜, 發引, 停喪 및 取土 방향, 啓殯, 周堂, 呼冲 등 기록 *亡人: 乾仙命辛丑土 *安葬日: 戊午二月二十七日癸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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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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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道光十四年 月 日 羅州牧考甲午成籍戶口帳內 新村面內永里住第四統第一戶幼學羅聖采年五十四辛丑 本羅州父學生彦晦祖學生宗有曾祖學生允命外祖學生鄭益成 本晉州妻金氏齡五十六己亥 本金海父學生運興祖學生胤商曾祖通德郞始圭外祖學生金履瑞 本綿城率子時化年二十七戊辰仰役秩 婢永德年甲寅等 甲午戶口相準者牧使[署押][周挾字改印]○ 연결문서1816년 나성채(羅成采) 준호구(准戶口)1819년 나성채(羅成采) 준호구(準戶口)1825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28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31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34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40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43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46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55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61년 나시완(羅時完) 준호구(準戶口)1872년 나도일(羅燾溢) 준호구(準戶口)1876년 나도일(羅燾溢) 준호구(準戶口)1879년 나도일(羅燾溢) 준호구(準戶口)1885년 나도식(羅燾植) 준호구(準戶口)1888년 나도운(羅燾雲) 준호구(準戶口)1894년 나도신(羅燾臣)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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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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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상서(上書) 초(草)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금께 전라도 담양부에 살았던 고 학생 이진민의 탁월한 효행에 대해 정려를 내리고 증직해 줄 것을 청원한 상서의 초본 임금께 전라도 담양부(潭陽府)에 살았던 고(故) 학생 이진민(李鎭玟)의 탁월한 효행에 대해 정려를 내리고 증직해 줄 것을 청원한 상서의 초본이다. 문서의 도입부에 '효성을 옮겨 충성을 하므로 선비가 힘써야 할 것은 오직 효(孝)가 가장 크고, 반드시 효자를 충신으로 구하므로 왕도 정치에서 먼저 장려하는 것도 효이다. "효가 인(仁)의 근본이 된다"는 것은 『논어』에 드러나 있고, "임금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우하면 백성들이 효도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은 『대학』에 설명되어 있다. 보고 느껴서 추천하는 것은 선비와 벼슬아치가 사모하는 데에서 비롯되지만 정려(旌閭)해서 포상하고 권장하는 것은 제왕의 후한 은전'이라고 효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포상을 청원하는 대상인 이진민의 효성의 실행과 그의 집안에 대해 '전라도 담양부에 살았던 고 이진민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봉양함에 문안드리는 일과 맛있는 음식을 바치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늙어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을 때에는 아침저녁으로 똥과 약을 직접 맛보고 하늘에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빌었다. 모친상을 당하여 곡하며 슬퍼하는 이진민의 모습을 보고 모두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장례부터 탈상까지 3년동안 한결같이 『가례(家禮)』를 따랐으니 불시에 손가락을 자르고 허벅지 살을 베어 내는 것과는 같이 놓고 말할 수 없다. 이진민은 늙은 어머니가 평소 유일하게 좋아한 산꿩을 아침 저녁으로 바치면서 늘 부족함이 있을까 염려했는데, 시전(侍奠) 때에도 이와 같이 하였다. 모친의 소상(小祥) 날에 뜻밖에 꿩 한 마리가 공연히 날아 들어와 궤석(几席) 사이에 엎드렸으니 이것은 잉어가 얼음 위로 뛰어 나오고 참새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뛰어난 감응이다. 이진민의 효성은 그 유래가 있으니 그의 8대조 학생 형(蘅)은 타고난 효성으로 이미 조정에서 정려를 명하였고, 그의 6대조 인경(寅卿)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끝으로, '전하께서는 효로써 나라를 다스리시고 이진민의 탁월한 효성과 자신들이 말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살펴서 유사(有司)에게 정각(旌閣)을 빨리 명하여 국가에서 효를 권장하는 교화를 드러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일 효자 한 사람이 있다면 먼 지방이라 하더라도 정려하고 증직하여야 하니 자신들은 지극한 효성이 사라질까 매우 두렵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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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乾仙命甲辰火 孫子辛丑 曾孫戊辰 玄孫丙戌癸卯坤仙命辛丑土 婦辛巳 婦甲申女己丑癸巳 丙申五代孫丁未葬山庚兌龍起頭未一節細來庚兌剝換酉坐卯向 丙破 艮甲得三運 正丙辰土洪癸丑木 泊到前貴宮龍辛酉木天氣丙火司令寅午戊生旺墓丹天金精三爻丙暗金華初一至初五六氣己酉丑申卯未辰分金己酉地 丁酉丁卯 秋分上七雷澤歸妹穴頑石沙土休九安葬戊申十一月十九日己丑下棺巳時開土安金 十一月十八日未時穴深從生土取土壬丙方啓殯前一日未時西先破發引隨便停柩立伏 丙壬方周堂釣宮 無忌呼冲丁未乙未己未等生人下棺時小避歲押無拘四課 戊申五十壬庚四二十九年病減二十九年 太陽星到坐甲子四九 癸柱八十一年胎定主壹百 天罡星坐己丑二七己辛癸六六十四年養興旺八十 紫氣星向己丑三八丙戊庚合四十一年官主大發六年旺係 金水星向命忌戊辛乙乙戊午未壬戌亥子卯卯酉午酉戌癸未向忌辰戌申未四吉在酉乙奇在艮丙奇在正彔 午丁奇貴人在北馬在乾貴人在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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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得堅爲民解 暫爲謄送 如何何於韓■同姓爲近 堅以進士擧 於吾爲同業 其在太學也 吾爲博士 堅爲生 與博士爲同道 其識堅也十年 爲故人 同姓近也 同業也 同道也 故人也 於其不得願而歸其可以無言耶 堅道州人 道之守陽公賢也道於湖南爲屬州 湖南楊公又賢也 堅爲民堅又賢也 湖南得道爲屬 道得堅爲民堅歸唱其州之父老子弟服陽公之令 道亦唱其縣與其比州服楊公之令 吾聞鳥有鳳者 恒出於有道之國 當漢時 黃霸爲穎川 是鳥實集而鳴焉 若史可信 堅歸 吾將賀其見鳳而聞其鳴也此亦中 所騰題解 或書陽公 或書楊公 陽字與楊字分別 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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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최민정(崔旻正)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寶城郡守 崔旻正 行郡守<押> 寶城郡守之印(6.5x6.5), 周挾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972 1849년에 보성군(寶城郡)에서 최민정(崔旻正, 4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주소: 龍門面 第 里松山村第 統第 戶 *가족사항: 奉母 蔡氏(53세), 弟 時正(39세), 嫂 光山金氏, 弟 壽正(36세), 嫂 尙州周氏(32세), 子 鍚衡(23세), 子 鍚嵂(20세) *소유노비: 奴婢 4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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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門面第 里松山村第 統第 戶鰥夫幼學崔旻正 年四十二戊辰 本朗州父學生 鳳球祖學生 至孝曾祖學生 運華外祖學生 蔡世玉本平康奉母蔡氏 齡六十三丁未故妻金氏籍光山父學生 在鉉祖學生 仁泳曾祖學生 重鍊外祖學生 金兌政本義城率弟時正 年三十九辛未嫂金氏 故籍光山弟壽正 年三十六甲戌嫂周氏 齡三十二戊寅籍尙州率子鍚衡 年二十三丁亥婦崔氏 齡二十二戊子籍耽津子鍚嵂 年二十庚寅賤口秩婢水德年五十六 一所生奴千年金年二十四 二所生婢哲今年二十一 三所生奴萬年金年十九己酉式行郡守[署押][準][관인] 1[周挾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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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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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76년 김승록(金昇祿)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昇祿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周俠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승록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76년(고종 13)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승록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호주 김명학이 작고하여 아들 김승록이 호주가 되었다. 김승록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2호이다. 올해 나이는 51세 병술생(丙戌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승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명학(明學), 할아버지 한량 성광(聖光), 증조(曾祖) 한량 필봉(弼奉), 외조(外祖) 한량 박고울(朴高兀)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승록의 아내 김씨는 나이 42세 을미생(乙未生)이고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독몽(秃蒙), 할아버지 한량 진언(眞言), 증조(曾祖) 한량 수봉(守封), 외조 한량 이인후(李仁厚)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중석(重碩)이 있으며, 나이 20세 정사생(丁巳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무개인(周俠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7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유호구상준(癸酉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88년 나도운(羅燾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羅燾雲 牧使<押> □…□(7.0×7.0),周挾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814 1888년(고종25)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도운(羅燾雲, 4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1888년(고종25)에 나주목(羅州牧)에서 나주목 신촌면 용두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에 사는 나도일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나도운(羅燾雲)은 42세이고, 정미년(1847)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후집(羅厚集)이고, 조부는 나시완(羅時完)이며, 증조부는 나성채(羅聖采)이다. 외조부는 이현빈(李顯彬)이고, 본관은 함풍(咸豊)이다. 아내는 정씨(鄭氏)로, 42세이고, 정미년(1847)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정씨의 아버지는 정인혁(鄭仁赫)이고, 조부는 정기표(鄭基杓)이며, 증조부는 정인운(鄭麟運)이다. 외조부는 양석포(梁錫圃)이고, 본관은 제주이다. 어머니는 이씨(李氏)로, 나이는 65세이고, 갑신년(1824)생이며, 본관은 함풍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신유년 박계성(朴桂聖)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朴桂聖 全羅道觀察使 巡使道<押> 全羅道觀察使之印(8.0x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948 신유년 9월에 박계성이 전라도관찰사에게 자신이 매득하여 계장을 한 산지를 김가 등이 침탈하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징계를 요청하는 내용의 소지 신유년 9월에 박계성(朴桂聖)이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박계성의 부친 생전인 신묘년에 본래 강가(姜哥)의 선영이었던 보성군 정곡면(井谷面) 옥천촌(玉泉村) 뒤 절터 아래에 있는 목자(牧字) 밭 2두락지 및 앞뒤의 산지를 초목과 함께 강가의 자손인 강필량과 강필룡으로 부터 57냥 5전을 주고 매득하여 문기를 작성한 뒤에 할머니를 안장(安葬)하였고, 이후 3년이 채 되지 않은 계축년에 강귀삼과 강만삼 등이 강가의 자손이라고 내세우며 금단했을 때 또 다시 20냥을 주고 매득하여 문기를 작성하였다. 이후 박계성의 부친이 정미년에 사망하였을 때 할머니 묘소 아래 계장(繼葬)을 했을 때에도 아무 말이 없었는데, 무신년에 염종봉(廉宗鳳)이 갑자기 찾아와서 강가의 외손이라며 뇌물을 요구하였으므로 선산을 위해 3냥 5전을 주고 매매문기를 작성하였다. 그런데 작년 12월에 본읍(本邑) 능묵리(能墨里)에 사는 김가(金哥) 두 놈이 또다시 강가의 외손이라며 선산을 이장하라고 겁박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박계성은 그가 진실로 외손이라면 김가가 사는 곳이 불과 10리도 채 안되는데 그간 20여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벌초를 하거나 성묘를 한 일이 없었으므로 그가 외손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리고 설령 외손일지라도 이미 산주인이 팔아먹은 산지이고 또 방매한 문기가 분명하므로 타인의 산지를 침탈하려고 하는 김가 등에 대해 엄히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전라도관찰사는 보성군수에게 김가의 의도가 돈을 뺏어내려는 데 있지 금산(禁山)에 있지 않다며 즉시 상세히 조사하여 엄히 다스리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白也面居罪民安命㷜右謹言所志情由段伏以罪民亡父山改葬經營之時本面玉泉村居朴白孫其矣父塚許山地以有放賣之意而累次自請是去乙果給準價六十五兩買得是乎所去四月二十日已爲移窆於右處是在果右山地及山下牧字田二斗落只果反畓五升落只庫幷以折價六十五兩錢而卽地準給是乎矣同白孫右山地與田畓渠亦買得於他人而有互相賣買之三丈本文記是乎所新文記中本文幷以永永放賣之說丁寧論理而尙今不給其本文者有何奸計是乎喩玆敢新文記帖連仰訴爲去乎伏乞參商敎是後上項朴白孫之處推給其本文而日後如或有奸謀是良置立案成給事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丙寅十月日〈題辭〉賣買之時本文記與受自是規例■是去乙有何意而尙今不給耶(背面)此必是日後奸謀之致本文記斯速出給俾無紛拏之弊事卄八日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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