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암129)에 대한 제문 祭李惺菴文 유세차 신축년(1661, 현종2) 8월 정미삭(丁未朔) 정사(丁巳)에 후학 김만영은 삼가 집안 조카 문봉의(文鳳儀)를 보내 맑은 술과 과일의 제물을 받들어 성암(惺菴) 이 선생(李先生) 영좌 앞에 공경히 제사를 올립니다.아! 세상에 학문으로 이름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문파가 각기 다르고 학맥도 다양한데 호중(湖中)에서 정학(正學)을 마음에 두고 정주(程朱)의 학통에 가까운 사람은 천년 이래 한 분 존옹(存翁) 뿐입니다. 적막했던 백 년 동안 더는 창도한 자가 없었는데 선생이 나온 것이 다행히도 이 때를 맞았습니다. 선생은 깨끗하고 조용한 자질과 자상하고 온화한 기품으로 세상의 번잡한 일들을 일찍 사절하고 사학(斯學, 유학)에만 뜻을 기울였습니다. 모든 일이 반드시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아서 존심(存心)130)을 요체로 삼았고, 심체(心體)가 반드시 고요한 데에 편안함을 알아서 직내(直內)131)를 뿌리로 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주역》을 배워서 먼저 만수일본(萬殊一本)132)의 영역을 연구하고 【▣】 보존하여 사씨(謝氏)의 '경(敬)'을 논한 뜻133)에 가장 밝았습니다. 아! 선생의 학문은 근본이 있다 하겠습니다.간책에 이름을 올리고 과거에 급제하여 청요직(淸要職)을 거치고는 은혜로운 윤음(綸音)이 누차 내려오고 간절한 소명(召命)이 답지(畓至)했으나 한 번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리가 없는 것이다.134)'라는 가르침에 대해서 미리 듣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으나, '나는 아직 벼슬할 자신이 없다.'라는 도리에 대해서 독실하게 믿는 바가 있었습니다.135) 그러므로 홀로 성현이 남긴 경전을 안고서 반평생 깊은 골짜기에서 그대로 평생을 마칠 것처럼 하여136) 영달(榮達)에 대한 생각을 끊었던 것입니다. 아! 선생의 뜻은 독실하다 하겠습니다.비록 그렇지만 양묘(兩廟, 인조와 효종)가 승하한 날을 당해서는 병든 몸으로 수레를 타고 천리를 달려가 길가에서 곡(哭)을 하였고, 굶어죽은 시체가 길을 메운 때를 만나서는 자기 일처럼 근심하여 소장을 올려 사정을 진언하였습니다. 아! 선생은 세상에 대해 장차 큰 뜻이 있었다 하겠습니다.통탄스러운 것은 바야흐로 학문이 완성되고 공부가 성숙해 질 즈음에 거경궁리(居敬竆理)와 성기성물(成己成物)137)의 학문에 더욱 크게 힘을 쓸 수 있었다면, 학문의 조예가 지극해지고 실제의 덕이 완성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하늘이 재주를 주어 처음에는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하였다가 끝내는 이처럼 빠르게 빼앗아 갔단 말입니까?아! 선생은 독실하게 도를 믿으며 견고하게 뜻을 지키고 절실하게 시국을 근심하면서 궁벽한 시골에서 검약(儉約)을 지켰으나, 뜻을 아직 크게 이루지는 못하여 미처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어138) 이 만학(晩學)은 의지할 곳을 잃었으니, 어찌 저로 하여금 뼈에 사무치고 넋이 슬퍼하여 계속 대성통곡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아! 연전에 뵈었을 때 밝은 가르침이 간곡했고 계속 편지로 깨우치고 이끌어 주셨기에 약아(約我)139)의 희망이 바야흐로 커졌는데 어찌 안앙(安仰)140)의 통곡을 갑자기 하게 되었습니까? 지금 체백이 무덤에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는 부음을 듣고도 천한 병이 몸을 휘감은지라, 상여끈도 잡지 못하고 멀리 남쪽 구름만 쳐다보며 정신만 날아서 가고, 사람을 대신 보내 술을 올려 감히 애사(哀辭)을 고합니다. 어둡지 않은 영혼이 계시다면 부디 작은 정성에 임하시어 흠향하소서. 維歲次辛丑八月丁未朔丁巳。 後學金萬英。 謹遣家甥文鳳儀。 奉淸酌草果之奠。 敬祭于惺菴李先生靈座前。 嗚呼! 世之以學爲名者多矣。 然門庭各殊。 路脉多歧。 在湖中以正學爲心。 庶幾於程朱家法者。 千載之下。 一存翁而已。 寥寥百年間。 更無能倡之者。 先生之出。 幸當此時。 先生以潔素恬靜之姿。 安詳溫粹之氣。 早謝世宂。 專意斯學。 知庶事之必本於心則以存心爲要。 知心軆之必安於靜則以直內爲本。 是以學易而先究乎萬殊一本之域。【缺】存而最明於謝氏論敬之旨。 嗚呼! 先生之學。 可謂有本矣。 策名登第。 官歷淸要。 恩綸累降。 懇命畓至而一不出。 不仕無義之訓。 非不預聞。 而吾斯未信之道。 有所篤信。 故獨抱遺經。 半世竆谷。 若將終身。 念絶榮進。 嗚呼先生之志。 可謂篤實矣。 雖然當兩廟賓天之日。 輿疾千里。 奔哭路左。 値餓殍盈塗之時。 憂惶若己。 拜章言事。 嗚呼! 先生之於世。 可謂將有志矣。 所可痛者。 方學成功熟之際。 益將大肆力於居敬益將大肆力於居敬理成己成物之學。 則其造詣之至。 實德之成。 何可量哉? 而奈何天之稟賦。 始若可有爲者。 而終奪之速如此哉? 嗚呼! 以先生信道之篤守志之堅憂時之切。 而守約而守約巷。 志未大就。 人未有及詳知者。 而華簀遽易。 晩學失依。 則曷爲不使我骨怵而魂悲。 係之以長慟也? 嗚呼! 年前之拜。 明訓丁寧。 繼以牘。 警發提撕。 約我之望方篤。 安仰之痛遽作。 今聞體魄永斂窀穸。 而賤疾纏躬。 挽紼斯違。 瞻望南雲。 精爽蜚越。 替人奉酌。 敢告哀辭。 不昧者存。 庶假卑誠。 尙饗。 이성암(李惺菴) 이수인(李壽仁, 1601~1661)을 가리킨다. 성암(惺菴)은 그의 호.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안(幼安)이다. 1633년 과거에 급제하여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한 뒤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갔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존심(存心)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준말로,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고 본연의 성을 기른다는 뜻인데, 성리학에 있어 심성 수양론을 대표하는 말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性)을 아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름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하였다. 직내(直內) 내면을 경(敬)으로 곧게 하는 것으로 유가의 수양법이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군자는 경하여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워 외면을 바르게 한다.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하였다. 만수일본(萬殊一本) 만물이 서로 다르지만 근본 원리는 하나라는 뜻이다. 사씨(謝氏)의……뜻 사씨(謝氏)는 북송(北宋)의 학자인 사양좌(謝良佐)로, '경(敬)'에 대해 "경이란 항상 마음을 깨어있게 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 하였다. 《心經附註》 벼슬하지……것이다 자로(子路)가 세상을 버리고 은거하는 노인 하조장인(荷蓧丈人)에 대해서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리가 아니니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거늘 군신의 의리를 어떻게 폐할 수 있겠는가. 자기 일신을 깨끗이 하고자 큰 인륜을 없애는 짓이다.[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하였다. 《論語 微子》 나는……있었습니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하도록 권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아직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하니, 공자가 기뻐하였다.[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하였다. 여기서는 벼슬에 급급하지 않고, 학문과 도(道)에 둔 뜻이 독실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대로……하여 부귀빈천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순 임금이 마른 밥을 먹고 채소를 먹을 때에는 그대로 평생을 마칠 듯이 하더니, 천자가 되어서는 진의를 입고 거문고를 타며, 두 여자가 모시는 것을 본래 있었던 것처럼 여겼다.[舜之飯糗茹草也, 若將終身焉, 及其爲天子也, 被袗衣鼓琴, 二女果, 若固有之.]" 하였다. 거경궁리(居敬窮理)와 성기성물(成己成物) 정주학(程朱學)에서 말하는 학문을 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거경(居敬)은 내적(內的) 수양 방법을 말하는데, 이는 마음을 성찰하여 성실하게 기거동작(起居動作)을 절제하는 것을 말한다. 궁리(窮理)는 외적 수양 방법으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해서 정확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성기성물(成己成物)'은 자기의 덕을 완성하고 그 덕으로 남을 교화시킴을 뜻한다. 세상을 떠나시어 '화책(華簀)'은 화려하게 만든 자리인데, 화책을 바꾼다는 것은 죽음을 비유한다. 증자(曾子)가 임종 직전에, 깔고 누운 대자리가 너무 화려하여 예(禮)에 맞지 않음을 알고, 바꾸게 하였다는 역책(易簀)의 고사가 전한다. 《禮記 檀弓上》 약아(約我) 스승이 잘 이끌어 준 것을 비유한 것이다. 《논어》 〈자한(子罕)〉에 "부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문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 주시고 예로써 나의 행실을 요약하게 해 주셨다.[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하였다. 안앙(安仰) '안앙(安仰)'은 스승이나 훌륭한 인물의 죽음을 비유한다.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려 하는구나. 들보가 쓰러지려 하는구나. 철인이 시들려 하는구나."라고 읊조렸는데, 자공(子貢)이 이 소식을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는 장차 누구를 우러르며, 들보가 쓰러지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 하였다. 《禮記 檀弓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