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쓰다 偶題 일만 권의 서책이 쌓여 있는 그윽한 방 안에서 萬卷書中一室深홀로 세속 밖에 거하니 또한 이 무슨 마음인고 獨居物外亦何心마른밥과 채소 먹는 건106) 내가 즐길 수 있거니와 飯糇茹草吾能樂풍월을 읊조리는 건 세상이 막을 수 없고말고 弄月吟風世莫禁오늘날 뜻이 같은 벗님을 만나지 못하였으니 此日未逢同志友훗날엔 그 누가 어두운 구천 향해 애통해할까 他年誰慟九泉陰그저 위로 아래로 부끄러움 없기를107) 구할 뿐이니 但求俯仰無慙怍모쪼록 영대108)에 나아가 스스로 헤아려야 하리라 須就靈臺自揣斟 萬卷書中一室深, 獨居物外亦何心?飯糇茹草吾能樂, 弄月吟風世莫禁.此日未逢同志友, 他年誰慟九泉陰?但求俯仰無慙怍, 須就靈臺自揣斟. 마른밥……건 마른밥과 채소는 빈천한 자가 먹는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비유하는 말로,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순 임금이 마른 밥을 먹고 채소를 먹을 때에는 장차 그대로 인생을 마칠 듯하더니, 천자가 되어서는 그림 그린 옷을 입고 거문고를 타며 두 여자가 모시는 것을 본디 가지고 있던 듯했다.[舜之飯糗茹草也, 若將終身焉; 及其爲天子也, 被袗衣鼓琴, 二女果, 若固有之.]"라고 한 데서 보인다. 위로……없기를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영대(靈臺)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경상초(庚桑楚)〉에 "영대를 침입하지 못한다.[不可內於靈臺.]"라고 하였는데, 곽상(郭象)의 주(注)에 "영대는 마음이다.[靈臺者, 心也.]"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