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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0년 신규석(辛圭錫)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元月卄七日 辛圭錫 庚元月卄七日 1920 辛圭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20년 신규석이 보낸 서간 1920년 1월 27일에 신규석(辛圭錫)이 모인(某人)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그저께 보내신 답장을 보니 또 새롭게 청의(淸儀)를 대(對)하는 듯하다며 관직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가 만중(萬重)하다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상황은 공요(公擾)로 매우 괴롭고, 집안에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고 탄식하였다. 상대방이 부탁한 민적(民籍) 등본(謄本)을 올려보낸다며 담당 서기(書記)가 음력 1월 이후로 오래 결근을 하여 김정성(金正成)의 입가신고(入家申告)가 장부에 정리되지 못하였고, 입가신고와 경성부 민적 등본에 입가된 자와 호주(戶主) 사이의 소목(昭穆)이 자세하지 않아 자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민적에 등재된 것을 뒤에 베껴 보낸다고 하였다. 상세히 살펴본 뒤에 만일 잘못 기록된 곳이 있으면 즉시 지적하여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이미 처리하였다면, 경성 부윤(京州府尹)에게 통지(通知)하는 일은 담당 서기가 출근(出勤)하면 즉시 수속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신규석은 1919년에서 1922년 사이 부안군 동진면장(東津面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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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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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1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시장문기 道光拾㱏年辛卯四月初三日 朴羣坪金 幼學金載相 道光拾㱏年辛卯四月初三日 朴羣坪金 金載相 전라북도 부안군 [喪人],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31년(순조 31)에 박군평쇠가 서십작 송자에 있는 시장을 김재상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 1831년(순조 31) 4월 초3일에 박군평쇠(朴羣坪金)가 서십작(西十作) 송자(悚字)에 있는 시장(柴塲)을 김재상(金載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이다. 박군평쇠는 양부(養父)가 사망한 뒤에 세미(稅米)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시장(柴塲)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시장은 서십작 송자에 있는 진황지(陳荒地)로, 남쪽으로 길이 120척 동쪽으로 넓이 30척이며 거래가격은 30냥이다. 그리고 이후 만약에 사람들이 다른 말들을 하면 이 문서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서십작 송자 시장이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관련문서들에 의하면 부안현에 속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거래에는 시장주(柴塲主) 박군평쇠(朴羣坪金)와, 증인(訂人) 박양곤(朴良坤), 필집(筆執) 김상후(金相垕)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당시 시장주는 상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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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성 도중에 당형을 찾아뵙다 2수 ○을유년(1945) 往拜棠兄 碧城途中【二首○乙酉】 멀고 먼 길 혼자서 가며 遠遠隻行路흉중의 온갖 감정 쏟아내네 胸中百感斜백년하청은 소식이 없으니 淸河無信息늙어 이미 차질을 빚었구나 老將已蹉跎뭇 새는 다투어 벗을 부르고 群鳥爭呼友일천 숲은 다투어 꽃을 피우네 千林競發華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而余何事者육십에도 일가를 이루지 못하였나 六十未成家마저377)는 어찌 그리도 먼가 馬渚何迢遞용산378)은 구름 밖에 비껴있네 龍山雲外斜-마저(馬渚)와 용산(龍山)은 당형이 사는 곳이다.-공연히 준비하느라 얼마나 수고로웠나 幾勞空準擬이제야 차질을 빚지 않았구나 始得不蹉跎경물은 시 지을 재료를 제공하고 物態供詩料봄빛은 샌 귀밑머리를 질투하네 春光妬鬢華나그네 살이 누가 괴롭다 말하나 誰云行旅苦염려 잊어 집에 있는 것보다 낫다오 忘慮勝居家 遠遠隻行路, 胸中百感斜.淸河無信息, 老將已蹉跎.群鳥爭呼友, 千林競發華.而余何事者? 六十未成家.馬渚何迢遞? 龍山雲外斜.【馬渚龍山, 棠兄所居.】幾勞空準擬? 始得不蹉跎.物態供詩料, 春光妬鬢華.誰云行旅苦? 忘慮勝居家. 마저(馬渚)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을 말한다. 용산(龍山)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용산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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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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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용소의 모정에 제하다 題龍沼茅亭 한여름에 별안간 모정을 일으킨 건 炎天倉卒起茅亭창옹을 한번 올라보게 하기 위함이라오 爲是滄翁試一登이백은 어찌 애써 둥근 부채를 잡았는가164) 李白何勞團扇把파선은 마치 허공을 타고 나는 듯하였네165) 坡仙怳若太虛憑강산이 빼어난 곳엔 문장을 고양시키고 江山勝處文章助풍경이 아름다울 때엔 흥취를 돋우구나 風景佳時興趣增용마루가 다른 해에 완전히 갖추어지면 甍棟他年完美日응당 이내 늙은 몸을 전조로 삼으리라 應將老物作前徵 炎天倉卒起茅亭, 爲是滄翁試一登.李白何勞團扇把, 坡仙怳若太虛憑.江山勝處文章助, 風景佳時興趣增.甍棟他年完美日, 應將老物作前徵. 이백(李白)은……잡았는가 당(唐)나라 이백이 지은 〈여름날 산중에서[夏日山中]〉 시에 "흰 깃 부채를 게을리 흔들면서, 푸른 숲속에 맨몸으로 있다오.[嬾搖白羽扇, 躶體靑林中.]"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이를 원용하여, 모정에 올라와 보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굳이 부채를 쓸 필요가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李太白集 卷22》 파선(坡仙)은……듯하였네 파선은 송(宋)나라의 대문호인 소식(蘇軾)으로, 그의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ㆍ파공(坡公)ㆍ파선이다.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 불린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소식이 지은 〈전적벽부(前赤壁賦)〉에 "일엽편주의 가는 바를 따라 아득한 만경창파를 헤쳐 가니, 광대하기는 마치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아 가서 그칠 줄을 모르는 것 같고, 경쾌하기는 마치 속세를 버리고 우뚝 서서 깃을 달고 신선이 되어 등천하는 것과 같도다.[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憑虛御風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라고 하였는데, 이를 원용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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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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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마주하며 對月 좋은 밤 푸른 하늘에 달이 떠오르니 良宵有月上蒼空그대와 삼영302)을 함께함을 몹시 기뻐한다오 剛喜與君三影同온갖 계책으로 맛있는 술 도모할 것 없고 百計且休謀旨酒한 푼 돈으로도 맑은 바람 살 필요 없다네303) 一錢亦不買淸風문장은 그 누가 다시 사후에 전하리오 文章孰復傳身後부귀는 일찍이 꿈도 꾼 적이 없었다오 富貴曾無到夢中태백이 당년에 술잔 멈추고 물은 일을304) 太白當年停問事말을 잊은 이 창주 늙은이에게 넘겨주네 忘言輸與滄洲翁 良宵有月上蒼空, 剛喜與君三影同.百計且休謀旨酒, 一錢亦不買淸風.文章孰復傳身後? 富貴曾無到夢中.太白當年停問事, 忘言輸與滄洲翁. 삼영(三影) 당(唐)나라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잔 들어 밝은 달 맞으니, 그림자를 대하매 세 사람이 되었네.[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잔속에 비치는 모습과 달에 비치는 그림자에 자신을 합하여 셋이 됨을 말한 것이다. 한……없다네 당나라 이백의 〈양양가(襄陽歌)〉 시에 "맑은 바람 밝은 달은 한 푼 돈이라도 들여 살 것 없고, 옥산은 스스로 무너졌지 남이 민 게 아니로다.[淸風明月不用一錢買, 玉山自倒非人推.]"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李太白集 卷6》 태백(太白)이……일을 태백은 이백(李白)의 자이다. 이백의 〈파주문월(把酒問月)〉 시에 "푸른 하늘에 달이 뜬 지 그 몇 해이던고? 내 지금 술잔 멈추고 한번 너에게 묻노라.[靑天有月來幾時? 我今停杯一問之.]"라고 한 구절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李太白集 卷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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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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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73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酉十月 日 宋鎭澤 泰仁官 癸酉十月 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泰仁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73년(고종 10) 10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3년(고종 10) 10월에 전주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가 태인현 남면(南面) 반룡촌(盤龍村)에 있는데 중간에도 투장(偸葬)을 당한 일이 있었으나 산송(山訟)을 통해 모두 굴거(掘去)하였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남면 하유촌(下鍮村)에 사는 이정수(李正壽)가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 바로 가까운 곳에 투장을 하였다. 이곳은 이전에 박평중(朴平仲)의 투총(偸塚)을 파낸 곳이었다. 발견 즉시 송진택은 관에 정소(呈訴)하고 싶었으나 몸이 아파 이제야 정소한다며 이정수를 잡아다 가두고 독굴(督掘)하여 달라고 관에 호소하였다. 이에 태인현감은 조사를 하기 위해 이정수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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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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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6년 이재실(李載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五年丙寅五月初三日 李載實 同治五年丙寅五月初三日 李載實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6년(고종 3)에 이재실이 서도질 관인제 아래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6년(고종 3) 5월 초3일에 이재실(李載實)이 서도질(西道秩) 관인제(寬仁堤) 아래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재실은 이 논을 여러 해 동안 경작하며 먹고 살았지만 부득이한 형편으로 팔게 되었다. 그러나 논을 사는 사람이 누군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거래된 토지는 서도질 관인제 아래에 있는 황자답(惶字畓) 17두락지이며, 부수로는 38부(負)이다. 거래 가격은 145냥이다. 거래 당시 신구문기(新舊文記) 3장을 첨부하여 넘겨주면서 차후에 말썽이 생기면 관에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서도질 관인제가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관련문서에 의하면 부안현 하서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이재실(李載實)과 증인(證人) 이후재(李厚載), 필(筆) 김채삼(金彩三)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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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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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입춘에 立春日 오늘 아침은 입춘이라 今朝立春日집집마다 장수와 부를 축원하네 家家壽富祝아 나는 남들과 달리 嗟余異乎人잠들어 깨지 않기를370) 축원한다오 尙寐無訛祝밝은 하늘 오래 회복되지 않아371) 皓天久不復세도를 축원하는 희망 끊겼네 望絶世道祝되려 가련하네 굴삼려가 却憐屈三閭부질없이 장수를 축원한 일372)이 謾事長年祝 今朝立春日, 家家壽富祝.嗟余異乎人, 尙寐無訛祝.皓天久不復, 望絶世道祝.却憐屈三閭, 謾事長年祝. 잠들어 깨지 않기를 잠이 든 상태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근심 걱정이 많아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죽고 싶다는 말이다. 《시경》 〈왕풍(王風) 토원(兔爰)〉에 "온갖 근심 모여드니, 차라리 잠이 들어 깨어나지 말았으면.[逢此百罹, 尙寐無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밝은……않아 《순자(荀子)》 〈부(賦)〉에 "밝은 하늘이 회복되지 않아 근심이 끝도 없구나. 천년 이후에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이것이 도의 당연함이다. 제자들이여 힘써 공부하라, 하늘이 잊지 않으리라.[皓天不復, 憂無疆也. 千秋必反, 道之常也. 弟子勉學! 天不忘也.]"라고 하였다. 굴삼려(屈三閭)가……일 굴삼려는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낸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으로, 그의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헌원을 붙좇지 못함이여, 내 장차 왕교 따라 노닐리라. 육기를 먹고 항해를 마심이여, 정양으로 양치질하고 아침놀을 머금는다.[軒轅不可攀援兮, 吾將從王喬而娛戱. 餐六氣而飮沆瀣兮, 漱正陽而含朝霞.]"라고 하여, 신선을 기리며 장생을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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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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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71년 이태수(李泰壽) 수표(手標) 1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辛未七月二十二日 李泰壽 宋鎭澤 辛未七月二十二日 李泰壽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03_001 1871년(고종 8) 7월 20일에 이태수(李泰壽)가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표로 송진택 친산 근처에 쓴 무덤을 10월 그믐날까지 이장하겠다는 내용. 1871년(고종 8) 7월 20일에 만경(萬頃)에 사는 이태수(李泰壽)가 전주(全州)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이태수는 태인군 남면 반룡촌(泰仁郡 南面 盘龍村) 전록(前麓)에 무덤을 썼는데, 이곳은 송진택 친산(親山)의 백호(白虎) 지역이었다. 송진택이 즉각 관에 이태수를 고발하자, 이태수는 10월 그믐날까지 이장하겠다는 뜻으로 이 수표를 작성해 주었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감산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편입되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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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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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57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丁巳七月 宋鎭澤 泰仁城主 丁巳七月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4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57년(철종 8) 7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57년(철종 8) 7월에 전주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문서가 훼손되어 소지를 올린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소장처와 그 내용으로 미루어 송진택으로 추정하였다. 송진택은 고부(古阜)에 사는 한성호(韓性浩)와 산송(山訟)을 벌여 6월 그믐 안에 투총(偸塚)을 굴이(掘移)하라는 제음(題音)을 받았다. 그러나 한성호가 관의 제음을 준수하지 않고 시간을 끌며 굴이하지 않으려고 하자, 송진택은 투총(偸塚)을 즉각 굴이해 달라고 관에 다시 정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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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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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최도열 승현 의 선비인 이씨의 효행을 듣고 찬탄하여 쓰다 聞崔道悅【承鉉】先妣李氏孝行, 贊嘆而題 시부모가 오랜 병환에도 장수하고 평안하니 尊嫜積患禱而平최씨 집안에 부도가 이루어졌구나 崔氏家中婦道成원성은 세 단을 만들어 옛 법을 남기고558) 元聖三壇遺古法잔릉은 저녁마다 참된 정성을 쏟았다오559) 孱陵每夕用眞誠정화수 한 그릇에 마음이 천지신명과 통하고 井華一器心通祇콩알을 천 번 세며 절하여 북두성을 감동시켰네 豆粒千番拜感星쇠퇴한 풍속이 이처럼 도도한 날에 頹俗滔滔如許日이 일을 들으니 눈과 마음을 깨게 하누나 令人聞此眼心醒 尊嫜積患禱而平, 崔氏家中婦道成.元聖三壇遺古法, 孱陵每夕用眞誠.井華一器心通祇, 豆粒千番拜感星.頹俗滔滔如許日, 令人聞此眼心醒. 원성(元聖)은……남기고 원성은 대성인(大聖人)이란 뜻으로 주공(周公)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최승현의 선비(先妣)를 주공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일찍이 주 무왕(周武王)이 병들었을 때, 주공이 세 단〔三壇〕을 만들고 태왕(太王), 왕계(王季), 문왕(文王)에게 무왕 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한 다음, 세 거북에게 점을 쳐 보니 모두 길조(吉兆)가 나왔고, 서궤(書匱)의 자물쇠를 열고 점서(占書)를 꺼내어 보니 거기에도 길조가 나타났는데 바로 그다음 날에 무왕의 병이 과연 나았다는 고사를 원용에서 온 말이다. 《書經 周書 金縢》 잔릉(孱陵)은……쏟았다오 잔릉은 남제(南齊) 때 잔릉 현령(孱陵縣令)을 지낸 유검루(庾黔婁)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최승현의 선비를 유검루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유검루는 잔릉 현령으로 임소에 부임한 지 10일도 못되어 갑자기 놀라 온몸에 땀이 흐르므로 이상하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병에 걸려 위독하였는데, 이에 저녁이 되면 매양 북극성에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이 대신 죽기를 기원한 고사가 있다. 《南史 卷50 黔婁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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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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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연파의 〈누실〉 원운에 차운하다 주인은 기노백이다. 次蓮坡陋室原韻【主人奇老栢】 세 산이 정립하여 안양을 호위하는데 三山鼎立護安陽천 권 경서로 가득한 한 초당이 있도다 千卷經書一草堂천석과의 인연 있으니 원래 비속하지 않고 泉石有緣元不俗훌륭한 가업394)을 이으니 또한 광채를 더하누나 箕裘繼業亦增光어찌 진수성찬을 가득 차린 밥상395)을 구하랴 那求案食方成丈늘 향기를 보내주는 뜨락의 꽃을 사랑한다오 自愛庭葩每送香만년에 청복396)을 누리는 건 우연이 아니니 淸福晩年非偶爾참된 공부가 나날이 향상됨을 볼 수 있네 眞工看取日長長 三山鼎立護安陽, 千卷經書一草堂.泉石有緣元不俗, 箕裘繼業亦增光.那求案食方成丈? 自愛庭葩每送香.淸福晩年非偶爾, 眞工看取日長長. 훌륭한 가업(家業) 원문의 '기구(箕裘)'는 키와 가죽옷이라는 뜻으로, 가업(家業)을 비유하는 말이다. 《예기》 〈학기(學記)〉에 "《예기》 〈학기(學記)〉에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훌륭한 궁인의 아들은 반드시 키를 만드는 것을 배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진수성찬을……밥상 사방 열 자 가량의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밥상이라는 뜻의 '식전방장(食前方丈)'에서 온 표현으로,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밥상 앞에 음식이 사방 열 자나 차려놓은 것과 시첩이 수백 명이 모시는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는다.[食前方丈, 侍妾數百人, 我得志, 弗爲也.]"라고 하였다. 청복(淸福) 세속의 일에 얽매이지 않은 채 맑고 한가롭게 사는 복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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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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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48년 경상도(慶尙道) 김생원(金生員)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十二月初二日 金生員 盤龍村洞中 戊申十二月初二日 金生員 盤龍村洞中 경상남도 산청군 金生員[着名]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1848년(헌종 14) 12월 2일에 경상도(慶尙道)에 사는 김생원(金生員)이 반룡촌(盤龍村)의 동중(洞中)에 보낸 서간. 1848년(헌종 14) 12월 2일에 경상도(慶尙道)에 사는 김생원(金生員)이 반룡촌(盤龍村)의 동중(洞中)에 보낸 서간이다. 김생원은 산청(山淸) 사람으로 일찍이 반룡촌 사람에게 산소를 매득하였고, 그 사실이 적힌 문서가 분명하게 있는데도 반룡촌 사람인 권가(權哥)가 자기의 땅이라며 이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런데도 반룡촌 사람들은 이에 대해 전혀 공론(公論)이 없으니 전라도 인심은 그러냐고 김생원은 반문하면서, 자신이 한번 가서 추심(推尋)하려 하는데 권가가 이를 거부한다면 관청에 정소(呈訴)할 것이라고 하였다. 반용촌은 태인현 서촌면 고당산(姑當山)에 있었던 곳으로,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장명동 일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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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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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59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己未十一月日 宋鎭澤 山在泰仁官 己未十一月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泰仁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59년(철종 10) 10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59년(철종 10) 10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이다. 송진택은 태인현 남촌 반룡촌에 있는 친산(親山)의 투총(偸塚) 문제로 고부(古阜)에 사는 한성호(韓性浩)와 3년 동안 쟁송(爭訟)하였다. 한성호가 투총을 굴거하지 않으므로 송진택은 3월에 다시 정소(呈訴)하였고 8월 안에 굴거(掘去)하겠다는 한성호의 수기(手記)를 받았다. 그러나 10월이 되어도 굴거하지 않고 있으니 잡아 가두고 독굴해 달라고 송진택은 관에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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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 정운봉에게 주다 贈鄭秀才雲鳳 학문에는 예전부터 거짓과 참이 있으니 爲學從來有假眞의당 젊은 시절에 분별해야만 하네 判分宜在少年辰떨어진 꽃은 서리 속 국화로 인정키 어렵고 落英難許霜中菊타지 않아야 끝내 불 속의 구슬을 보리라 不燼終看火裏珍스스로 돌이켜 올곧을 때 대적할 사람 없고40) 自反縮時人莫敵자기의 사욕을 극복하면 세상이 인에 귀의하리41) 己私克處世歸仁밝은 식견은 글에서 얻음을 분명히 알았으니 懸知明見於書得다시 선현의 말로 나룻배42)를 만들어 보리라 更把前言作筏津 爲學從來有假眞, 判分宜在少年辰.落英難許霜中菊, 不燼終看火裏珍.自反縮時人莫敵, 己私克處世歸仁.懸知明見於書得, 更把前言作筏津. 스스로……없고 《맹자》 〈공손추 상〉에 증자가 자양(子襄)에게 용기를 설명하면서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고 하였다. 자기의……귀의하리 《논어》 〈안연(顔淵)〉에 보이는 말이다. 안연(顔淵)이 일찍이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라도 사욕을 이기고서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그 인을 허여할 것이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다. 어찌 남을 통해서 하는 것이겠는가.[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하였다. 나룻배 원문의 '筏津'은 보통 '津筏'로 많이 쓰이는데 여기서는 운자를 맞추기 위해 순서를 바꾼 것이다. 이는 강을 건너는 뗏목이라는 뜻으로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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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에 뜻을 쓰다 秋日書志 선비가 몸을 이룸은 바로 지금이니 士子成身正此時무위와 빈천이 어찌 뜻을 옮길 수 있겠는가 武威貧賤豈能移말세에는 고상하게 행동하기 어렵다 말 말라 莫言末劫難高蹈그저 참된 이치를 분명히 아는 데 달려 있으니 只在眞詮要的知양단과 웅어60)를 일찍 판단하지 못하였으니 兩段熊魚無早判오랑캐 금수 같은 일신은 끝내 어디로 돌아갈까 一身夷獸竟安歸백세 이전과 천년 뒤를 생각하며 百世在前千歲後가을바람에 홀로 서니 마음이 아득하네 西風獨立有悠思 士子成身正此時, 武威貧賤豈能移?莫言末劫難高蹈, 只在眞詮要的知.兩段熊魚無早判, 一身夷獸竟安歸?百世在前千歲後, 西風獨立有悠思. 양단(兩段)과 웅어(熊魚) 양단은 양쪽 끝으로, 중론(衆論)이 같지 않음의 극치(極致)를 이른다. 《중용장구》 제6장에 "순 임금은 큰 지혜이실 것이다. 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시고 천근한 말씀을 살피기 좋아하시되, 악을 숨겨 주고 선을 드날리시며, 양쪽 끝을 잡으시어 그 중도를 백성에게 쓰시니, 이 때문에 순 임금이 되신 것이다.[舜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라고 하였다. 웅어는 곰발바닥[熊掌]과 물고기 음식 중에 택일하라면 물고기보다는 웅장을 택한다는 말로서, 생사(生死)의 선택에 있어 구차히 살기보다 떳떳하게 의리(義理)를 따라 죽는 것을 택하는 비유로 쓰인다. 《孟子 告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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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에. 두 공부의 시에 차운하다112) 冬至日 次杜工部韻 동짓날이 되었다는 소식이 책상에 이르니 日南至報到芸牀이달 달력에는 제 몇째 줄에 있는가 是月蓂書第幾行여섯 대롱의 가회는 평지에 비동하고113) 六管葭灰平地動일천 집의 팥죽은 부엌 가득 향기롭네 千家豆粥滿廚香시구 짓고서 이윽고 붓을 휘두르고 題句俄然揮筆翰높은 곳에 올라 곧 다시 옷을 터네 登高旋復振衣裳천인이 이제부터 상관있게 되었으니 天人自此相關處군자의 도가 점점 자람을 응당 보리라 君子應看道漸長 日南至報到芸牀, 是月蓂書第幾行?六管葭灰平地動, 千家豆粥滿廚香.題句俄然揮筆翰, 登高旋復振衣裳.天人自此相關處, 君子應看道漸長. 두 공부(杜工部) 시에 차운하다 이 시는 《두시상주(杜詩詳註)》 권6에 〈지일견흥기북성구각로양원고인(至日遣興寄北省舊閣老兩院故人)〉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여섯……비동(飛動)하고 동짓날이 되었다는 말이다. 옛날에는 갈대 속의 엷은 막(膜)을 태운 가회(葭灰)라는 재를 율관(律管)에 넣어 기후를 측정했는데, 동지에 이르면 황종(黃鐘)의 율관에 든 재가 비동하였다고 한다. 《律呂新書 卷1》 두보의 시에 "다섯 무늬의 자수에 가느다란 실이 더 보태지고, 여섯 대롱의 갈대를 부니, 날리는 재가 비동하네.[刺繡五紋添弱線, 吹葭六管動飛灰.]' 하였다."라고 하였다. 《山堂肆考 卷14 時令 添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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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병을 앓다 久病 태어난 뒤로 아직 칠십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生來未滿七旬年무슨 일로 오랫동안 병 앓아 죽을 지경에 이르렀나 久病㱡㱡底事然젊어서 공부에 힘쓰지 않음은 이제 그만이거니와 少不勤工嗟已矣늙을수록 더욱 강인해져야 함은440) 전혀 능하지 못하네 老當益壯莫能焉집안사람들은 모두 다 적국의 사람 되었고441) 皆爲敵國家人輩옛 친구들은 전부 다 타향사람 되었다오 盡作殊方故舊緣비록 한 가닥 정신은 남아 있다고 해도 縱道神精餘一縷귀관이 지척이라 가련하기 그지없구나 鬼關咫尺却堪憐 生來未滿七旬年, 久病㱡㱡底事然?少不勤工嗟已矣, 老當益壯莫能焉.皆爲敵國家人輩, 盡作殊方故舊緣.縱道神精餘一縷, 鬼關咫尺却堪憐. 늙을수록……함은 후한(後漢)의 명장 마원(馬援)이 일찍이 농(隴), 한(漢) 지방을 전유(轉游)할 적에 항상 빈객들에게 말하기를 "장부는 뜻을 가짐에 있어 곤궁할수록 더욱 견고해져야 하고, 늙을수록 더욱 강인해져야 한다.[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집안사람들은……되었고 자신의 덕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국 시대 위(魏)나라 무후(武侯)가 배를 타고 서하(西河)의 중류(中流)를 내려가다가 오기(吳起)를 돌아보고는, 산천이 험고한 것이야말로 위나라의 보배라고 자랑하자, 오기가 "사람의 덕에 달려 있지, 산천의 험고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통치자가 덕을 닦지 않으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적국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在德不在險, 若君不修德, 舟中之人盡爲敵國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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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음집》 가운데 '시시를 지나다가 느낌이 일어' 시267)에 차운하다 次漢陰集中過柴市有感韻 오래도록 갇혔다가 결국 오랑캐에게 피살되었지만 久囚竟見被虜兵천추에 인을 이루었으니 부끄러움 없으리라 千秋無愧得仁成평생의 사업은 비록 이루지 못했지만 平生事業雖未遂한 줄기 인륜이 이분 덕분에 더욱 밝아졌네 一脈綱常賴益明〈정기가〉에서 일찍이 지절을 말하였고 正氣歌曾言志節하늘 떠받드는 꿈268)은 이미 충정과 합하였네 擎天夢已協忠貞당시에 느낌 이니 경앙하는 마음 더욱 어찌 그치랴 感時景仰尤何已한음의 시에 거듭 탄식하며 방성대곡한다오 重歎漢陰詩放聲 久囚竟見被虜兵, 千秋無愧得仁成.平生事業雖未遂, 一脈綱常賴益明.《正氣歌》曾言志節, 擎天夢已協忠貞.感時景仰尤何已? 重歎漢陰詩放聲. 한음집(漢陰集)……시 이 시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의 《한음문고(漢陰文稿)》 권2에 보인다. 시시(柴市)는 연경에 있는 거리로, 남송(南宋)의 충신 문천상(文天祥)이 끌려가 처형된 곳이다. 문천상은 원나라의 장수 장홍범(張弘範)에게 패하여 연옥(燕獄)에 3년 동안 구금되어 있었으나 끝내 절개를 굽히지 않고 시시(柴市)에서 피살되었는데, 형(刑)에 임하자 "아득히 밀려오는 나의 이 슬픔, 하늘에 표준이 어디 있는가.[悠悠我心悲, 蒼天曷有極.]"라는 내용의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뜻을 보였다. 이에 원나라 세조(世祖)는 참으로 남자라고 칭찬하였다. 《宋史 文天祥列傳》 하늘 떠받드는 꿈 송(宋)나라 말년에 어느 사람이 꿈을 꾸고 나서 "하늘이 무너지려는데 문천상(文天祥)이 하늘을 떠받들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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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 구용 에게 지어 주다 ○3수 贈成君【九鏞○三首】 병세가 깊은지라 몸이 황천에 들어간 듯한데 病深身若入重泉하늘이 고명한 벗을 보내 묵은 인연을 잇게 하네 天遣高朋續舊緣나를 흥기시키는 난초 같은 말205)을 기쁘게 들으니 喜聽蘭言能起我상쾌하기가 문득 하늘을 오르는 신선과 같구나 爽然却似陟神仙졸졸 흘러나오는 물이 쌓여 샘물을 이루니 涓涓一滴積成泉사반공배206)의 일을 찾아 첫 인연으로 삼아야 하네 事半功尋作始緣오래도록 용맹정진해야 성과를 이루나니 勇且久兮方結果옛사람의 밝은 비결은 신선과 같다네 古人明訣若神仙상천을 감격시키고 또 황천을 격동시키니 上天格又動重泉언행이 이루어질 때 묘한 인연을 본다오 言行成時見妙緣조화옹이 태양을 되돌리는 걸 보노라니 看取化權回奪日육신에 날개 돋아 홀연히 신선이 되누나 肉身羽翰忽成仙 病深身若入重泉, 天遣高朋續舊緣.喜聽蘭言能起我, 爽然却似陟神仙.涓涓一滴積成泉, 事半功尋作始緣.勇且久兮方結果, 古人明訣若神仙.上天格又動重泉, 言行成時見妙緣.看取化權回奪日, 肉身羽翰忽成仙. 난초 같은 말 원문의 난언(蘭言)은 의기투합하는 말을 뜻한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면 그 예리함이 쇠를 자를 만하고, 마음을 함께한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사반공배(事半功倍) 들인 공력은 적으나 이룬 공로는 많다는 말로,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일은 옛사람의 절반만 해도 공효가 배가 되는 것은 오직 지금이 그러할 것이다.[事半古之人, 功必倍之, 惟此時爲然.]"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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