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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陂儒生蔡弘運等謹齋沐再拜上書于御史道閤下伏以夫孝行人所當行而鮮能行之者以其出於天而人莫能行之故也然則一門一孝世罕其人而況於一家三世孝乎本邑故士人金鼎祐盖自齠齡事親之誠出於自然及其父母遘疾也六月之鳧自飛投懷九月之櫻宛結在手以適病中之滋味又其捐世也裂指以和藥嘗糞以驗症其外卓異之行以爲鄕隣之觀感故薦之於鄕賓之於州登聞於 天而尙未蒙㫌閭之典然道內以金孝子稱之是白遣其子故德鋼亦自幼年孝友之行出於天賦一動一靜脗合於古昔誠孝之人則隣里以孝童稱之年滿六旬先遭父艱葬以禮祭以禮此乃若人之䟽節至若哭泣之哀毁瘠之節終喪{深-氵}篤年至七旬又遭母艱哭踊之節一如前喪衰麻不釋於身菜果不接於口而其父母之塋距在十有餘里同崗晨夕奔哭不以風雨寒暑而廢是遣兄弟五人居雖異室源源相從敬兄如嚴父愛弟若嬰兒尺布斗粟相與縫養則玆豈非孝於親而友於弟乎公議不泯已爲薦鄕賓州四隣以孝友家目之是白遣其孫之璜非徒孝友純嘿事親之行見聞於家庭寒溫避暑扇枕此是伊人之末節也去丁亥春其父積月沈痼思食鯉魚煑而猝難氷得矣之璜持扈出浦則鯉魚躍於汪汪之波直入水中鯉魚圉圉焉浮出於水面捉以還家煑以供之王祥之誠古聞其語矣今見其人也病勢轉添泄痢則日三嘗糞涕泣訴天及其殞絶之日裂指出血久久垂口以延半日之命遭艱之後哀毁踰制令人感惻又於其秋其母臥病則餌藥之節靡不殫誠將殞之際嘗糞裂指一如前喪葬親於各所而朝哭於靈夕哭於墳未嘗一日間斷也非其至誠出於天至行傅於家而然歟壯哉奇哉金家之三世孝行也窮鄕遐陬有此卓節之行而 天門高邃莫能上達至於泯沒之歎是如乎生等雖同鄕貫焉敢阿私所好公議不泯故齊聲仰籲爲去乎金家三世實孝細細 洞燭後上以承聖朝㫌善之典下以從多士循公之議一一 啓達俾蒙㫌閭之澤千萬祈懇之至御史道 處分己丑十月 日後高尙柱 李碩基 李彦說 黃喜一 趙錫命 沈連漢 蔡光三 黃魯錫 趙得泰 黃龜一 黃大一 文 衡 梁直魯 梁得魯 蔡弼永 高壽喬 趙得文 蔡弘義 趙憲奎 梁九潤 崔致九 趙得淳 成雲中 高始泰 李在道 金基德 李鍾會 高光日 高相訥 盧厚德 申光烈 李煥弼 辛泰松暗行御史[着押][題辭]一家三孝可範薄俗聞來極爲嘉尙登徹珍重次當有量處向事卄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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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辛未十一月日 宋鎭澤 泰仁官 辛未十一月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泰仁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71년(고종 8) 11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1년(고종 8) 11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가 태인현 남면(南面) 반룡촌(盤龍村)에 있는데 작년 5월에 이태수(李泰壽)가 이곳에 투장(偸葬)을 하여 관에 정소(呈訴)하였더니 "이앙 이후에 다시 정소하라"는 제음(題音)을 내렸다. 다시 정소하려고 하자 이태수가 스스로 송진택에게 와서 10월 그믐 안에 굴거(掘去)하겠다고 수기로 약속하였으나 기한이 지났는데도 굴거를 하지 않았다. 이에 송진택은 이태수를 잡아 가두고 독굴(督掘)하여 달라고 관에 호소하였다. 태인현감은 이태수를 데려와 대변(對卞)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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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김응상(金膺相)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道光二十三年癸卯 幼學 金膺相 道光二十三年癸卯 扶安縣監 金膺相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6.5*6.5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3년(헌종 9)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부안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43년(헌종 9)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膺相)이 부안현(扶安縣)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68세였다. 그는 아내 남원양씨(南原梁氏, 49세) 및 3명의 아들과 2명의 며느리들, 1명의 손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은 큰아들 양묵(養黙, 39세) 큰며느리 개령심씨(開寧尋氏, 34세), 손자 기경(基慶, 10세), 둘째아들 천묵(天黙, 29세) 둘째며느리 전의이씨(全義李氏, 28세), 셋째아들 원묵(元黙, 20세) 셋째며느리 금성오씨(錦城吳氏, 21세) 등이다. 큰아들 양묵은 이전 관련 문서에 의하면 여러 차례 개명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데리고 살았던 노비가 4명이 있었다고 나와 있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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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김치휴(金致休)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申正月日 金致休 官 壬申正月日 金致休 泰仁縣監 전라북도 고창군 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72년(고종 9) 1월에 김치휴(金致休)가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72년(고종 9) 1월에 김치휴(金致休)가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이다. 태인현 남촌면(南村面) 하유촌(下鍮村)에 사는 김치휴는 작년 겨울 형수의 상을 당해 굴치(屈峙)에 산소를 쓰려고 역군(役軍)을 데리고 갔다가 남촌면 발룡촌(發龍村)에 사는 김정현(金正玄) 4형제와 정가(丁哥) 등 수십 명에게 몽둥이질을 당해 형과 역군들이 다치고 제기, 괭이 등을 훼손당하였다. 금장처(禁葬處)라면 이치로써 금지하면 되는 것인데, 하물며 김정현의 무덤은 있지도 않고 마을과도 가까운 곳이 아닌데 이런 행패를 부렸으니 김정현 4형제를 잡아다 법대로 징치(懲治)해달라고 김치휴는 관에 탄원하였다. 이에 태인현감은 사실을 조사한 뒤에 판결하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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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송진택(宋鎭澤) 의송(議送)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酉十月日 宋鎭澤 兼史 癸酉十月日 宋鎭澤 全羅道觀察使 전라북도 전주시 兼史[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73년(고종 10) 10월에 송진택(宋鎭澤)이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게 올린 의송(議送). 1873년(고종 10) 10월에 송진택(宋鎭澤)이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게 올린 의송(議送)이다. 문서가 훼손되어 소지를 올린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소장처와 그 내용으로 미루어 송진택으로 추정하였다.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가 태인현(泰仁縣) 반룡촌(盤龍村)에 있는데 기사년(1869)에 투장(偸葬)이 발생하여 관에 정소(呈訴)하여 굴거(掘去)하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시 이태한(李太漢)이 투장을 했으니 기한을 정해 독굴(督掘)해 달라고 송진택은 관에 호소하였다. 이에 전라도관찰사는 이태한이 이미 낙과(落科)했으니 날짜를 지정해 독굴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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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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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71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未至月十三日 安榏 辛未至月十三日 1871 安榏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1년(고종 8) 12월 13일에 안익이 모친상을 당한 부안 당북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 1871년(고종 8) 12월 13일에 한양(漢陽) 전동(磚洞)에 사는 안익(安榏)이 모친상(母親喪)을 당한 부안현(扶安縣) 당북리(棠北里)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북리는 부안 당북산 북쪽에 있었던 마을로, 지금의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수신자의 성명은 적혀져 있지 않다. 안익은 한겨울에 뜻하지 않게 어머니를 잃은 상대방을 위로하면서 아드님의 안부도 묻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근래 적기증(積氣症)으로 자주 고생을 하고 있으나 다행히도 요즘은 뜸해졌다고 말하면서, 자세한 사정은 운소(雲巢)에게 들으라고 하였다. 운소는 이번에 안익의 편지를 지니고 상대방을 찾아간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전에 상대방이 부탁한 선사(先事)는 계획대로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요즘 상황이 순조롭지 못해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사는 아마도 선대의 묘역 관리에 관한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리고 적기증은 오랜 체증으로 배 속에 덩어리가 생기는 병을 가리킨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신미년으로 나오는데, 안익이 작성한 다른 편지에 이재원(李載元, 1831-1891) 대감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미년을 1871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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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이 약을 보내온 데 대해 사례하다 謝敬山送藥 삼백 개의 환약이 하나하나 신묘하니 三百團丸箇箇神사랑해서 옛 벗의 몸을 죽지 않게 하였네 愛之勿死故人身그대의 후한 뜻 입었는데 어떻게 보답할까 荷君厚意何能報여생을 깨끗이 살아 일민이 되리라 歸潔餘生作逸民먹으니 상쾌하여 삼신산을 밟은 듯한데 喫來爽若躡三神곧 신선 되어 몸에 날개가 돋았다오 便作仙154)仙羽翰身곧장 날아올랐다가 금마로 내려가서 直欲奮飛金馬下옛 삼한 지역 사람과 쌓인 회포 풀리라 積懷相討舊韓民면목으로 사귀지 못하지만 정신으로 사귀니 不交面目以心神나의 방법 가져다 그대 몸 돕고 싶어라 欲把吾方補子身상달하는 하나의 길에 모쪼록 힘써 나아가 向上一途須勉進갈동 전장에서 좋이 갈천씨의 백성155) 되게 葛庄好作葛天民 三百團丸箇箇神, 愛之勿死故人身.荷君厚意何能報? 歸潔餘生作逸民.喫來爽若躡三神, 便作仙仙羽翰身.直欲奮飛金馬下, 積懷相討舊韓民.不交面目以心神, 欲把吾方補子身.向上一途須勉進, 葛庄好作葛天民. 仙 '神'자의 오자인 듯하다. 갈천씨(葛天氏)의 백성 전설상의 상고 시대 제왕인 갈천씨가 다스리던 백성으로, 당시에는 풍속이 순박하여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도잠(陶潛)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술을 실컷 마시고 시를 지어서 자신의 뜻을 즐기니, 무회씨의 백성인가, 갈천씨의 백성인가?[酣觴賦詩, 以樂其志, 無懷氏之民歟? 葛天氏之民歟?]"라고 하였다. 《陶淵明集 卷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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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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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백졸을 위로하다 慰百拙 장마 끝에 가물고 가뭄 끝에 장마 오듯 霖餘之旱旱餘霖치란이 서로 바뀌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오 治亂相禪此可斟주나라 시대에야 우는 봉황 날아왔다고 들었고303) 周代始聞鳴鳳至요임금 시대에도 짐승 발자국 찍힌 것을 보았네304) 堯時尙見獸蹄侵근심으로 몹시 야윔을 가엾게 여길 필요 없으니 不須戚戚憐皮骨또 스스로 만족하면서 심성을 기르면 된다오 且得囂囂養性心그대 나이 마흔인데 오히려 나보다 어리니 强仕君年猶少我앞으로 기쁜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前頭有喜那能禁 霖餘之旱旱餘霖, 治亂相禪此可斟.周代始聞鳴鳳至, 堯時尙見獸蹄侵.不須戚戚憐皮骨, 且得囂囂養性心.强仕君年猶少我, 前頭有喜那能禁? 주(周)나라……들었고 봉황은 어진 임금이 나오면 나타난다는 길조(吉鳥)로 어진 신하를 뜻한다. 《시경》 〈권아(卷阿)〉에 "봉황이 우네, 저 높은 산 위에서.[鳳凰鳴矣, 于彼高岡.]"라고 하였다. 《시경》은 주(周)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요(堯)임금……보았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요 임금의 시대에 세상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 홍수가 무질서하게 흘러 온 세상에 넘쳐 흘렀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짐승들이 번식하였으며 오곡이 자라지 않고 짐승들이 사람들을 핍박하였다. 짐승 발자국과 새 발자국이 나라 안에 가득하였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세상에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고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야만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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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해의 두 아들 철현과 청현에게 지어 주다 贈杏海二子澈顯淸顯 시운이 저강132)으로 들어가 서로 빠져듦을 개탄하나니 運入氐羌慨胥淪모두 다 한결같이 풍진 세상으로 휩쓸려 흘러가도다 滔滔一轍滾風塵새것을 추구하느라 옛것을 생각할 줄 전혀 모르고 趨新曾不知懷舊이익을 따르느라 몸을 잃는 경계를 전부 잊는다오 徇利都忘戒喪身농사와 독서를 아울러 다스림에 지금 아들이 있으니 耕讀兼治今有子행실과 문장으로 업을 삼는 게 어찌 가난 때문이랴 行文有業豈爲貧간두에서 더 나아가도록133) 한층 힘써야 하니 竿頭進步須加勉오늘날 시대에 으뜸가는 인물이 될지어다 要作今時第一人 運入氐羌慨胥淪, 滔滔一轍滾風塵.趨新曾不知懷舊, 徇利都忘戒喪身.耕讀兼治今有子, 行文有業豈爲貧?竿頭進步須加勉, 要作今時第一人. 저강(氐羌) 본디 서융(西戎) 즉 서방 오랑캐의 한 종족으로, 서강(西羌)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列强)을 비유하였다. 간두(竿頭)에서 더 나아가도록 간두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줄임말로, 《전등록(傳燈錄)》에 "백 척의 장대 끝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갈 수 있어야, 시방세계의 이치가 이 몸에 온전해지리라.[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是全身.]"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이미 일정한 경지에 올라 있더라도 보다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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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이직신(李直信)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경제-회계/금융-수기 咸豐柒年丁巳五月十八日 李直信 宋鎭澤 咸豐柒年丁巳五月十八日 李直信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2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01_001 1857년(철종 8) 5월 16일에 이직신(李直信)이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기로 반룡촌(盤龍村)에 있는 기간처(起墾處)를 1냥 7전을 받고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1857년(철종 8) 5월 16일에 이직신(李直信)이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기이다. 이직신은 반룡촌(盤龍村) 안산(案山) 고당산(姑堂山) 소갈록(小乫麓)에 있는 김씨 무덤의 용미에 있는 땅을 매득하였는데, 이곳은 안대천(安大川)이라는 자가 기간(起墾)한 곳이었다. 그런데 안대천이 다른 지역을 이사하자 이직신은 1냥 2전을 주고 매득하였다. 그런데 송진택이 이 개간한 곳 인근에 산소를 쓰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직신은 이곳을 1냥 2전을 받고 송진택에게 방매하면서 이 문서를 작성해 주었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감산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편입되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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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회봉225) 어른 제규 에 대한 만사 挽晦峯高丈【濟奎】 의젓한 관복은 속세의 시끄러움을 끊었고 儼然冠服絶塵喧연치와 덕으로 남쪽 고을에서 존숭받았네 齒德南鄕衆所尊제로226)의 집안에서 옛 문벌 전하였고 霽老家中傳舊閥구산227)의 문하에서 큰 은혜 받았네 臼山脚下受深恩몇 년이나 물 마시며228) 궁항에서 숨어 지냈나 幾年飮水潛窮巷이날 구름 타고 상제 곁으로 올라갔다오 此日乘雲陟帝門삼대가 동갑이어서 친분이 두터웠는데 三世同庚親契厚마점의 언덕에서 상여 끈 못 잡아 부끄럽네 愧違執紼馬粘原 儼然冠服絶塵喧, 齒德南鄕衆所尊.霽老家中傳舊閥, 臼山脚下受深恩.幾年飮水潛窮巷? 此日乘雲陟帝門.三世同庚親契厚, 愧違執紼馬粘原. 고회봉(高晦峯) 고제규(高濟奎)로, 전우(田愚)의 제자인 듯하다. 전우의 《간재집(艮齋集)》에 그와 주고받은 편지가 여럿 보인다. 제로(霽老)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을 가리키는 듯하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ㆍ태헌(苔軒)이다. 구산(臼山)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또 다른 호이다. 물 마시며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말한다. 《논어》 〈술이(述而)〉에 "나물밥에 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라고 한 공자(孔子)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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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으로 근심하며 公憂 천하 사람이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니101) 얼마나 심원한가 先憂天下一何深옛날의 범희문이 내 마음을 알았다고 하겠네102) 在昔希文獲我心나라가 빈 집과 같으니 그 누가 주인이 될까 國似空家誰作主사람이 금수로 전락하는데도 막을 수가 없도다 人歸走獸莫能禁이단은 정말로 분분하게 떼를 짓는 것을 좋아하고 異端正好紛成隊사도는 오히려 시원스레 음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네 師道猶難快脫陰억지로 말을 잊는 것도103) 무익한 일이니 强得忘言亦無益굳이 술 찾아 세밀히 나눠 따를 것 없다오 不須覓酒細分斟 先憂天下一何深? 在昔希文獲我心.國似空家誰作主? 人歸走獸莫能禁.異端正好紛成隊, 師道猶難快脫陰.强得忘言亦無益, 不須覓酒細分斟. 천하……근심하니 송(宋)나라의 명재상인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천하 사람이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범중엄의 자는 희문(希文),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내……하겠네 《시경》 〈패풍(邶風) 녹의(綠衣)〉에 "가는 갈포와 굵은 갈포여, 쌀쌀한 바람 불어오도다. 내 고인을 생각하니, 실로 내 마음을 아셨도다.[絺兮綌兮, 凄其以風. 我思古人, 實獲我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말을 잊는 것도 원문의 망언(忘言)은 뜻을 깨달으면 언어는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말이란 그 목적이 뜻에 있는 것이니,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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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257) 기일 先師諱辰 임술년 대화성이 흐르고 壬戌之年大火流초승달이 나온 뒤의 날이로다258) 日維是月朏餘頭열 아름 대들보가 어찌 부러졌단 말인가259) 十圍樑木胡然折하룻저녁에 유림이 홀연 가을에 놀라구나 一夕儒林忽爾秋천오백 제자 중에 그 누가 전통을 이을꼬 千五百人誰繼緖이십팔 년 지났어도 깊은 시름에 잠겨 있네 二旬八載尙纏愁오늘밤 하늘에서 끊임없이 비 내리는데 今宵天雨無已時이내 눈물도 함께 쏟아져 거두지 못하누나 我淚同傾亦未收 壬戌之年大火流, 日維是月朏餘頭.十圍樑木胡然折, 一夕儒林忽爾秋.千五百人誰繼緖? 二旬八載尙纏愁.今宵天雨無已時, 我淚同傾亦未收. 선사(先師) 선사는 돌아가신 스승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가리킨다. 임술년……날이로다 간재가 별세한 임술년 1922년 음력 7월 4일을 말한 것이다. '대화성(大火星)이 흐른다'는 것은 음력 7월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7월에 대화성이 서쪽으로 흐르거든, 9월에는 옷을 만들어 준다.[七月流火, 九月授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초승달[月朏]이 나오는 것은 초3일이므로, 그 나온 뒤의 날은 초4일이 된다. 열……말인가 '대들보가 부러지다'란 것은 선사(先師)의 죽음에 대한 비유로 쓴 말이다. 공자(孔子)가 어느 날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대들보가 부러지겠구나. 철인이 시들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병이 나서 7일 만에 작고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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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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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59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己未十月 宋鎭澤 泰仁官 己未十月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山在泰仁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59년(철종 10) 11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59년(철종 10) 11월에 전주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송진택의 친산(親山)은 태인 남촌면 굴치(屈峙)에 있는데, 산 아래에 사는 박인수(朴仁洙)가 갑자기 송진택의 묘소 가까운 곳에 진즉 치표를 해 두었으니 앞으로 산소로 쓰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송진택은, 박인수가 진작 치표를 해두었던 곳이라면 왜 자신이 산소를 쓸 때에는 한마디 말이 없다가 3년이 지난 후에야 치표를 해두었다고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이것은 치표를 핑계로 산을 팔아먹으려는 것이니 후일의 작폐를 없애기 위해서 관에 정소(呈訴)한다고 하였다. 이에 태인현감은, 처음 입장(入葬)할 때는 한마디 말이 없다가 갑자기 치표했다는 등의 말로 공연히 위협하는 곡절을 모르겠다며, 엄히 조사하여 금단(禁斷)하라고 면임(面任)에게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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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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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남파가 보내준 시에 차운하다 次南坡見贈 맑은 하늘에 우연히 경편389)이 와서 떨어지니 瓊篇來墜適天晴눈과 마음이 계발되어 상쾌한 기운 일어나네 眼豁心醒爽氣生근래 시 짓는 솜씨가 어찌 그리 빼어난가 近日詩工何絶勝노년에 서로 사귀는 정이 더욱 돈독해진다오 老年交誼更分明천태산390)에 속세의 일이 드물다고 말하지 마소 莫言台嶽稀塵事단지 봉산은 세속의 정이 아님을 믿을 뿐이라오 只信蓬山匪世情오는 봄에 있을 기수 가의 모임을 기다려 總俟來春沂上會쟁그랑 소리 내던 증점의 비파를 함께 타보세391) 共彈點瑟鏗然聲 瓊篇來墜適天晴, 眼豁心醒爽氣生.近日詩工何絶勝? 老年交誼更分明.莫言台嶽稀塵事, 只信蓬山匪世情.總俟來春沂上會, 共彈點瑟鏗然聲. 경편(瓊篇) 상대방이 보내준 아름다운 시를 뜻한다. 《시경》 〈위풍(衛風) 목과(木瓜)〉에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기에, 아름다운 옥으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천태산(天台山) 본디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명산으로, 신선이 산다고 하며, 도교에서 남악(南嶽)으로 삼은 곳이다. 여기서는 정읍 이평면 창동리에 있는 천태산을 가리킨다. 오는……타보세 공자가 제자들과 있다가 각자의 뜻을 묻자, 증점(曾點)이 쟁그랑 소리와 함께 타던 비파를 자리에 놓고 일어나서[鏗爾舍瑟而作] 대답하기를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고사를 원용하였다. 《論語 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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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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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73년 이태한(李太漢) 다짐(侤音) 고문서-증빙류-다짐 법제-소송/판결/공증-다짐 癸酉十月十九日 李太漢 官 癸酉十月十九日 李太漢 泰仁縣 전라북도 태인군 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09_001 1873년(고종 10) 10월에 이태한(李太漢)이 송진택(宋鎭澤)과의 산송에 낙과한 후에 관에 제출한 다짐(侤音)으로 이번 달 그믐날까지 투장한 무덤을 옮기겠다는 내용. 1873년(고종 10) 10월 19일에 이태한(李太漢)이 송진택(宋鎭澤)과의 산송에 낙과한 후에 관에 제출한 다짐(侤音)이다. 남촌에 사는 22살인 이태한은 자신의 어머니의 묘를 썼다가 전주에 사는 송진택으로부터 자신의 친산이라며 소송을 당하였다. 심문한 결과 이태한은 낙과하게 되었고, 결국 이번 달 그믐날까지 무덤을 이장하겠다는 뜻으로 관에 다짐을 제출하였다. 연결문서를 살펴보면, 송진택의 친산은 당시 태인군 감산면 반룡촌에 있었다. 이곳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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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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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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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객창에서 우연히 쓰다 旅窓偶題 풍문이 불렀던 협가188)는 부르지 않겠지만 鋏歌勿用唱馮門우두커니 앉아 열흘 넘게 공밥 먹어 부끄럽네 塊坐兼旬愧素飧영락한 유자도 오히려 업이 있으니 零落儒門猶有業아득한 세상사 말하고 싶지 않구나 蒼茫世事欲無言광음이 뜰의 명협(蓂莢)을 머물러 두지 않아189) 光陰不住庭蓂樹풍년의 즐거움이 들녘 벼 마을에 되려 생기누나 豊樂還生野稻村밤 들어 창가 바람이 맑아 더욱 좋으니 入夜窓風淸更好쓰러져 베개에 기대 희헌190)을 꿈꾼다오 頹然一枕夢羲軒 鋏歌勿用唱馮門, 塊坐兼旬愧素飧.零落儒門猶有業, 蒼茫世事欲無言.光陰不住庭蓂樹, 豊樂還生野稻村.入夜窓風淸更好, 頹然一枕夢羲軒. 풍문(馮門)이 불렀던 협가(鋏歌) 풍문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의 식객인 풍훤(馮諼)이고, 협가는 그가 불렀던 장협가(長鋏歌)를 말한다. 풍훤은 맹상군의 식객 중에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맹상군의 부하들이 그를 천대하였다. 그러자 풍훤이 기둥에 기대어 장검(長劍)을 두드리며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토로하였다고 한다. 《戰國策 齊策4》 광음(光陰)이……않아 세월이 머무르지 않고 흘러간다는 말이다. 명협(蓂莢)은 전설상의 상서로운 풀 이름으로, 초하루부터 매일 한 잎씩 나서 자라다가 16일부터는 매일 한 잎씩 져서 그믐에는 다 떨어지기 때문에 이것으로 날을 계산하여 달력을 만들었다는 고사가 있다. 《竹書紀年 卷上 帝堯陶唐氏》 희헌(羲軒) 상고 시대의 복희씨(伏羲氏)와 헌원씨(軒轅氏)를 가리키는 말로, 태곳적의 순수했던 시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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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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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58년 조개찬(趙介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二十二年戊寅十二月初二日 金壽福 趙介贊 乾隆二十二年戊寅十二月初二日 金壽福 趙介贊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758년(영조 34)에 김수복이 서십작에 있는 논을 조개찬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58년(영조 34) 12월 초2일에 김수복(金壽福)이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논을 조개찬(趙介贊)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수복은 이 논을 조상에게 물려받아 경작하여 오다가 살아가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한다. 거래된 토지는 송자답(悚字畓) 50락지이며, 부수로는 9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38냥이다. 거래 당시 문기 2장을 아울러 첨부하여 넘기고, 이후 만약에 자손들이 잡음을 일으키면 관에 알려서 증빙문기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김수복(金壽福)과 정인(訂人) 강재귀(腔才貴), 필집(筆執) 박수금(朴秀禁)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명문(明文) 작성년대를 '乾隆二十二年戊寅'이라고 적고 있으나, 건륭 22년에 해당하는 간지는 무인(戊寅)이 아니라 정축(丁丑)이다. 무인은 건륭 23년의 간지이다. 당시에는 보통은 간지보다는 수치를 오기(誤記)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乾隆二十三年戊寅'의 오기로 추정하여, 작성연대를 1758년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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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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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64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子八月初九 安榏 金碩士 炳憲 甲子八月初九 安榏 金炳憲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4년(고종 1) 안익이 부안의 김병헌에게 보낸 서간. 1864년(고종 1) 8월 초9일에 안익(安榏)이 부안(扶安)의 김병헌(金炳憲)에게 보낸 서간이다. 지난번에 작별하고나서 얼마 전에 덕유(德裕) 형제를 통해서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긴 여름을 지내면서 항상 몸이 건강하지 못해 고민이 많다고 하였다. 한편 김병헌이 부탁한 일은 이달 15일 능행(陵幸)을 담당한 이재원(李載元) 대감이 얼마 전 기꺼이 승낙하였으니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편지를 보는 즉시 한양으로 올라오라고 하였다. 한편 조정의 소식도 알려주고 있는데, 덕유백씨(德裕伯氏)의 정배(定配) 건으로 사람들이 다행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 아들이 초시(初試)에 합격했으니 기쁘다고 하였다. 편지에 등장하는 이재원은 흥완군 이정응(李晸應)의 아들로, 흥녕군 이창응(李昌應)에게 입양되었으며, 고종의 종형이다. 1853년(철종 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대원군이 집권한 뒤에 중용되어 공조와 예조, 형조, 이조, 병조의 판서를 지냈다. 갑신정변 때 개화파에 의하여 영의정에 추대되었으며, 정변이 실패한 뒤에도 이조판서로 등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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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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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873년 태인현감(泰仁縣監) 전령(傳令) 2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정치/행정-명령-전령 癸酉至月卄五日 官 首校 癸酉至月卄五日 泰仁縣監 首校 전라북도 태인군 官[着押] 5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19_001 1873년(고종 10) 11월 25일에 태인현감(泰仁縣監)이 수교(首校)에게 내린 전령(傳令). 1873년(고종 10) 11월 25일에 태인현감(泰仁縣監)이 수교(首校)에게 내린 전령이다. 이태한(李太漢)이 감영의 제음(題音)에도 여전히 도피하니 통탄스럽다며 지금 수교(首校)를 정해 출송(出送)하니 즉각 잡아 오라고 하였다. 독굴(督掘)하는 일에 대한 이태한의 답(答)은 관정에 들일 필요가 없이 즉각 가서 파내고 형지(形止)를 보고하라고 하였다. 한결같이 완강히 거부하면 관을 욕보이고 무고한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감영의 제음대로 즉각 굴거(掘去)하고, 만일 거행을 잘못한다면 수교도 태거(汰去)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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