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황남(黃楠)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庚子八月 日 見所谷化民黃楠 城主 庚子八月 日 黃楠 南原府使 전라북도 남원시 使[着押] 6개(적색, 정방형) 남원 대곡 장수황씨가 남원 무민공황진기념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황진 장군 가문의 고문서』, 흐름, 2016. HIKS_OD_F1012-01-000006 1840년(헌종 6) 8월에 남원 견소곡방(見所谷坊)에 사는 유생 황남(黃楠)이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소지. 1840년(헌종 6) 8월에 남원 견소곡방(見所谷坊)에 사는 유생 황남(黃楠)이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문서의 훼손이 심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황남의 선산에 투총을 한 유성태(柳成泰)와의 산송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유성태는 은밀히 관에 소지를 올려 도척(圖尺)을 하라는 처분을 받고는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이것이 분명 자신의 선산을 가로채려는 간교한 계책이라고 생각한 황남은 남원부사에게 유성태를 법정에 잡아들여 도척을 하게 하여 송사를 끝내게 해달라고 탄원하였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경자년으로 되어있는데, 그가 남원(南原)에 거주하던 유학(幼學) 황지수(黃智洙), 황재수(黃再洙) 등과 함께 1825년(순조 25년) 9월에 남원부사(南原府使)에게 올린 상서('1825년 황지수(黃智洙) 등 상서(上書)'를 통하여 경자년이 1840년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문서의 배면에도 제사가 이어지고 있으나 문서가 배접되어 판독하기 어려운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