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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夜宿寒山偶題 山門寂寂月如秋。倍覺寒溪入石流。問爾居僧眞界樂。老仙相對最高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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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南庵。奉別觀庵。留奇友晉錫。【宇蕃】 寒窓獨臥正無眼。竺嶺西南隔兩邊。雪裏鄕梅消息暮。逢期自是復明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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戲贈任致九 窮峽無人到。盡日深掩茨。茇涉一行路。行行過我籬。無門扣剝啄。直入猶習知。對顔始依然。聽音記某誰。不但衰眼力。物表異昔時。去黑黃冠着。刱見易生疑。雨暘不相關。行止任所之。今朝發岐舍。去夜宿草枝。因得聞寒暄。賴子暢心思。槖裏瓊琚滿。胸中山水奇。快爾絶俗累。許君眞我師。舊習尙未祛。纔面旋索詩。奈我羞三巴。爲子供一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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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蘆沙先生 小子齒志學。顚倒來及門。及門無所質。秪得問寒暄。稟氣本愚騃。無計祛蔽昏。深愧蒙養失。篤信師道尊。門墻未言窺。性道況復論。獎詡或過情。誘掖偏荷恩。去春來將命。意謂及歲翻。秋初病告歸。始悵旋贈言。敎云達理已。何必勞夢魂。珍重手賜筆。三度復源源。奄承摧梁報。奔走哭寢閽。嗚呼澹對上。夫子昔臨軒。今日澹對下。靡承謦欬溫。後生將安仰。只有堂封存。瑞石山獨立。回首傷古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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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辰五月十夜。夢見故友章一。向而哭。覺甚悵然。舊懷如新。成一絶詩記夢。 一別幽明十四年。淸儀夢接尙依然。對我不言旋向哭。山頹誰報到重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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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익해겸에게 보냄 與吳士益海謙 ○癸亥 계해년(1923) 저는 형과 20년이나 된 오랜 벗인데 제(齊)나라를 정벌하는 방식1)으로 인(仁)을 돕고 진(秦)나라를 보는 태도2)로 잘못을 바로잡는다면, 하늘이 싫어하고 하늘이 싫어할 것입니다. 처의 상중(喪中)에 재혼하지 않는 것은 《예(禮)》에 기록되어 있고 법률로 엄금하는 것이며 형도 일찍이 강론했던 것입니다. 가을의 어떤 곳의 모임에서 이미 간절히 말하여 영윤(令胤)으로 하여금 이것을 범하지 않도록 하였고, 존부장(尊府丈)이 왕림하셨을 때에도 감히 덕으로 사랑하는 구구한 저의 뜻을 거듭 말씀드렸습니다. 근래에 형 마을 사람을 만나서 들었는데. 영윤의 혼인이 이미 정해져 납폐(納幣) 날짜도 잡혔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혹 잘못 전한 것이겠지요.? 저는 형이 명달(明達)하여 대체(大體)를 아는 사람으로서 그릇되게 예를 잃고 법도를 범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렇지 못한다면 세상에는 이를 이어서 나올 자가 있을 것이니, 마땅히 지완(志完)의 말이 다시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아, 지금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예의가 분토에 떨어졌고 인류는 짐승으로 변하여 미친 풍조가 하늘까지 닿아서 서로 빠져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비록 천지를 되돌리고 물결을 돌려막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찌 차마 한 자루의 부채 바람으로 들판을 태우는 불을 부추길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은 또 어떤 날입니까? 화산(華山, 계화도의 산)을 바라보니 산이 이미 무너졌으니,3) 막막한 세도(世道)는 누가 그 책임을 맡겠습니까?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문하의 후생에게 그 뜻을 부탁하였으니, 우리들이 설령 우리의 군용(軍容)을 펼쳐서 사문(師門)를 빛나게 할 수는 없더라도, 어찌 차마 일시의 사적인 감정을 따라서 평소의 법문(法門)을 무너뜨릴 수가 있겠습니까?덕문(德門)이 구법을 지키고 의리를 행한 것은 우리 고향에서 으뜸이고, 여러 자질들이 선사를 따라 학업을 연마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예의 법도 한 조목을 덕문에서 중시하지 않고 경시하여, 희우(希友)가 앞에서 한 번 잘못을 하였고, 보형(寶兄)이 뒤에서 재차 잘못을 하였는데, 형이 또 세 번째로 잘못하여 숫자 하나를 더 보태고자 하니, 어찌 이리 깊이 생각지 않는단 말입니까? 형이 만약 불행하게도 일도양단할 수 없다면 덕문의 행의(行義)와 학문(學問)이 장차 식자들의 불만을 사게 될 것입니다. 다시 거듭 생각하여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깊은 마음속에서 나온 말이니, 형이 만약 기꺼이 듣지 않는다면 또한 하늘이 싫어하고 하늘이 싫어할 것입니다. 속히 회답을 주시기를 아울러 바랍니다. 弟於兄二十年舊要,輔仁之伐齊,規過之視秦,天厭之天厭之。妻喪中不再卺,禮之著也,律之嚴也,兄之所夙講也。菊秋某地之會,既恳恳言,勿令令胤犯此。尊府丈之枉駕也,又敢申白區區竊附德愛之意。近遇貴里人聞之,胤昏已定,采幣之納有日,豈或誤傳耶? 吾知兄明達識大體者,汙不至失禮犯律。萬之一未也,世有承君而在者,當絕志完之言復出於其口矣。噫! 今之世何世也? 禮義淪於糞壤,人類化爲禽獸,滔天狂潮,載胥及溺。爲吾人者縱不能旋天轉坤,回瀾障川,何忍以一席之風煽燎原之炎乎? 今之日又何日也? 顧瞻華山,山既頹矣,茫茫世道,誰任其責? 泉下不暝之目,未始不屬意於門下後生,則吾輩縱不能用張我軍,有光師門,何忍循一時之私情,壞却平日之法門乎?德門之守舊行義,可冠吾鄉,群從之聯業從師,人所艶稱者。柰之何禮律一款,爲不甚重,輕於德門,希友一失於前,寶兄再失於後,兄又欲三失之而益其數一,何不思之甚也? 兄若不幸而不能一刀勇斷,則德門之行義學問,其將爲識者所不滿矣。幸加再思而處之。言出肝腑,兄如不樂聞,亦天厭之天厭之。速賜回音并仰。 제(齊)나라를 정벌하는 방식 동중서(董仲舒)가 강도사(江都相)이 되었을 때에 역왕(易王)이 묻기를 "월왕(越王) 구천(句賤)이 그 대부(大夫) 설용(泄庸), 종려(種蠡)와 함께 오(吳)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 과인은 월(越)에 삼인(三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떠한가?"라고 묻자, 동중서가 대답하기를 "노군(魯君)이 유하혜(柳下惠)에게 제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묻자 유하혜가 근심하는 얼굴색으로 말하기를 '나는 나라를 정벌하는 것에 대해 인인(仁人)에게 묻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묻는 말을 듣기만 하는 것도 오히려 부끄러운데 더구나 속임수를 부려 행하는 것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인인은 그 의를 바르게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꾀하지 "습니다."라고 하였다. 《한서(漢書)》 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 진(秦)나라를 보는 태도 한유(韓愈)의 〈쟁신론(爭臣論)〉에 "마치 남쪽의 월(鉞)나라 사람이 북쪽 진(秦)나라 사람의 살지고 여윈 것을 보는 것처럼 무관심해서, 마음속에 기쁨이나 슬픈 느낌을 전혀 갖지 않는다."라는 하였다. 화산(華山)을……무너졌으니 전우가 1922년 계화도에서 세상을 떠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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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次奇司果【亮衍】一鑑亭蓮池韻三絶 眞知蓮可好。何待話頭成。請君休五恨。詩儘出於情。怕蓮不我好。去飾喜天成。淸心要一鑑。許子莫違情。盡室天香發。宛看久矣成。縱蓮不我欲。其奈兩關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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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張友榮汝【鉉三】餞春詩 郊原春晩綠初齊。水北遊筇復水西。芳草無情過戲蝶。流光莫住歎醯鷄。靑山近好簾長捲。白髮重傷日易低。盃酒如今那可戒。却嫌末路轉昏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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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姓名欠考○二首】 相知盡落邱山外。浮世幾人老白頭。慇懃寄語泉臺下。生順死寧八十秋。吾鄕隆耋罕年輩。送葬薤歌盡後生。如今存沒應無憾。其奈西風落葉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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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李斯文承鶴 愛若負笈最靑春。況復家庭陪訓辰。成就他時惟在我。如今共學更誰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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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宋致遠【暎◎丁亥】 山广歲新。政切故人之思。料襮阿戎遠委。兼帶其大人書來。奉讀屢回。慰感滿心。況憑審兄體迓新益寗。搬移整頓。尤爲仰賀。第念江湖之興煙霞之勝。足以忘饑。此豈非於魚得計者耶。旋切艶羨。令人頗有入海之想。可呵。何當有邱墓之行耶。幸勿戛過如何。弟長時漳濱。而尤苦頭風。齒眼交病。殆無完日。自憐自憐。顔髮之衰悴。吾兄鏡中。想見我髣髴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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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齋中讀書【二首】 書樓今日是當春。春若不耕奈穫人。須從勤力培根地。佇見嘉苗節葉新。三夏相從又小春。悠悠不是作閒人。如今未見前頭進。只怕山窓歲月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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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奇上舍【麒鎭】遊太白山黃池韻。 聞道黃池自動風。冷然仙馭到源窮。懸崖嗟未韓梯及。絶頂惜無謝屐同。一片靈湫明宿海。千尋鬼斧劚神功。却憐六十昻藏老。如踏通街瞥眼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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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石亭月夜追和李上舍【喬應】城樓題月 何夜不此月。對月幾人題。我屋方丈下。遙憶草堂西。孤城分遠友。賖峽携髫兒。臧穀同亡羊。何須枉卜鷄。失樓鳥夢柯。得計魚尋溪。物性固其然。無地埋我愁。安知戚戚日。不爲玉成秋。不敢出山外。白屋滿目憂。寄語錦江水。莫向世同流。謾興白石裏。所懷蒼葭洲。却憐今夜月。秪應兩邊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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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황장에게 올림 上小心黃丈 戊辰 무진년(1928) 지난겨울에 답해주신 편지를 얼굴을 씻고 세 번 거듭 읽음에 더욱더 정당한 의리와 명확한 의론에 감복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을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치는 책임을 보잘 것 없는 저에게 책임을 지우기까지 하신 것은 바로 맹자가 세 성인을 계승한 공과 같은 것이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사람마다 나서서 말할 수 있는〔人人能言〕' 대열에 참여해 있게 하고자 하신다면 감히 많이 사양하여 덕으로 사랑해주신 은혜를 저버리지는 않겠습니다.선사의 행장과 연보는 일찍이 임경소(林敬所) 어른을 믿고 있었으니, 일문(一門)이 부탁하는 뜻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스스로 맡은 바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어른이 불행히도 먼저 돌아가셨고, 지금 또한 변고가 생긴 이후로 노성한 분 가운데 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이러한 시기에 이러한 일은 오직 우리 어른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빠를 시일 내에 생각하고 의논하여 곧바로 초안하여 큰일을 마치기를 기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근래에 호남의 유림이 공자의 가르침이 사라졌다고 애통해 하면서 유교부식회(儒敎扶植會)를 세우고 시생에게 함께 일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이미 사라진 나머지에서 반이나마 구제하고자 하는 것은, 그 뜻이 이미 지극하고 마음도 서글픕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하는 일은 성공할 만한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저 일인(日人)에게 해악을 받음을 면치 못할 우려가 있으니, 도를 붙들어 지키는 방도가 도리어 먼저 도를 굽히는 꼴입니다. 그러므로 사양하고 참여하지 않았습니다만, 감히 이렇게 우러러 질정합니다. 부디 밝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客冬下覆, 盥讀三復, 益服正當之義, 明確之論, 而至以閑闢之任, 責之無似者, 則此正孟子所承三聖之功者, 何敢當何敢當? 但欲參在人人能言之列, 則不敢多讓, 以負德愛之惠也。先師行狀年譜, 曾侍敬所林丈, 非惟一門之屬意, 亦其所自任者, 而此丈不幸先沒, 今且變出之後, 老成中, 無人可爲, 此日此役, 惟吾丈可以當之。 幸早入思議, 隨得起草, 期卒大事之地, 如何?近日湖中儒林, 痛孔敎之亡, 立儒敎扶植會, 要侍生同事。 其欲捄一半分於已亡之餘者, 意旣至矣, 情亦戚矣。 然今日吾輩作事, 非惟無可成之望, 且有不免見累於彼人之慮, 則其所以扶道者, 乃先枉其道也。 故辭謝不參, 而敢此仰質, 幸明敎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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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황장종복에게 답함.【○현동 첨좌를 대신하여 지음】 答小心黃丈【鐘復 ○代 玄洞僉座作 ○】癸亥七月 계해년(1923) 7월 현산(玄山)1)에 풀이 무성하고, 화도2)에도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선사(先師)의 연사(練事)3)가 지나가 버렸으니 스승님을 잃은 슬픔4)은 더욱 간절하고 한결같습니다. 이즈음에 어르신의 편지5)를 받아 보니, 당당하고도 지극히 바른 의리와 분명하고도 이치가 극진한 말씀에서 선사의 도덕과 의절이 이로써 밝게 드러나 마치 해와 별을 모두가 보는 것과 같았으며, 한쪽 사람6)의 잘못되고 낭패한 일이 실정이 밝혀지고 벌이 마땅하여 거울처럼 선명하고 서릿발처럼 엄격할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아, 집사의 한마디 말이 아니었다면 간재 문하의 한 조각 의체(義諦)7)는 거의 사라졌을 것입니다.호남이 영남과 달리 하는 것은 총독부의 인가를 받지 않는다는 하나의 의리에 있으니 이것이 가장 큰 것이고, 이 외에도 또한 몇 가지 작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호남은 전편과 후편을 각각 편집하여 손수 편정(篇定)하신 고본(稿本)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영남은 합고(合稿)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한 가지이며, 호남은 감히 한 편도 첨가하지 않아 "썩은 시신을 지각이 없다며 속이는 것일 뿐이다." 하신 엄한 훈시8)를 따랐는데 영남은 사적인 것을 용납함을 면치 못한 것이 두 가지이며, 호남은 고인의 축장(築場)하는 뜻9)을 붙였는데 영남은 개의치 않은 것이 세 가지입니다.이 몇 가지 이유에 대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저들과 우리들 사이의 잘잘못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수레를 돌려 바른 데로 달려가는 것이 쉬울 것 같은데, 어찌하여 서로를 이기고자 하는 투쟁심으로 성을 마주 쌓고 깃발을 내걸어서 한결같이 버티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서울의 묵인이 났다고 속이고 원고를 판매하는 적도에게 넘겨서 선사께서 지킨 것을 깎아 없애고 온 나라의 욕을 실컷 얻어먹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오히려 잘못을 뉘우치고 훗날을 좋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시 강태걸(姜泰杰)의 일10)을 일으켜 어깃장을 놓았으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전체 원고를 발간하지 않고 절요본을 먼저 찍는 것을 의(義)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전체 원고를 사서 읽을 돈을 빼앗아 장사꾼의 전대를 채워주는 것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호남에서 발간하는 것을 깨뜨리고 싶어서 한 무리의 적을 내세워 막는 것을 예(禮)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장사꾼이 이를 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주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인가를 받았다는 이름을 피할 수 없고 스승에게 누를 끼치는 것을 면할 수 없으니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으로서 사체11)를 헤아리지 못하여 의리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더불어 보합12)을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나의 부끄럽지 않은 의리를 지키고 나의 마땅히 해야 할 직분을 닦을 뿐입니다. 玄山草宿, 華嶹秋入。 轉眄之頃, 奄經先師練事, 山樑之痛, 彌切惟均。 乃於此際, 獲拜尊函, 堂堂至正之義, 鑿鑿理到之言, 先師之道德義節, 以之昭著, 如日星之共睹。 一邊人之舛錯狼狽, 情得罰當, 不啻鑑明霜嚴。 噫, 靡執事者一言, 艮翁門下一副義諦, 幾乎熄矣。蓋湖之貳嶺, 在不認一義, 此其最大者, 外此而亦有種種非細故者。 湖主各稿, 用手定本, 而嶺主合稿者一也。 湖不敢添入一篇, 遵欺其朽骨無知之嚴訓, 而嶺不免容私者二也。 湖寓古人築場之意, 而嶺之不以為意者三也。於此數段, 平心究之, 彼我之是非不難知, 回車趍正, 似易易也, 柰之何爭心勝氣, 對壘揭幟, 一向抵賴? 至於誑出京, 默投稿販賊, 剝喪先師所守, 飽喫通國唾罵, 而猶不思悔過善後, 復惹出姜事, 以乖張之, 絶不可曉也。蓋全稿不刊, 而先印節要, 得爲義乎? 奪購讀全稿之金, 充賈人之槖, 可謂仁乎? 欲破湖刊, 出一對敵而抵之, 可謂禮乎? 雖曰賈人爲之, 其主之者誰也? 認名不得避, 累師不得免, 可謂智乎? 人而不揆事體義理, 乃至於此, 則何可與論保合哉? 只得守吾不愧之義, 修吾當爲之職已矣。 현산(玄山) 지명으로, 간재(艮齋)의 묘가 있는 익산 현동을 말한다. 화도(華島) 지명으로, 본래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계화도(界火島)인데, 전우가 이곳에 정착하여 강학을 하며 중화(中華)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계화도(繼華島)라고 고쳐 불렀다. 선사(先師)의 연사(練事) 선사는 돌아가신 스승을 일컫는 말로, 여기에서는 전우를 지칭한다. 연사는 연제(練祭)로, 본래 부모의 상을 치를 때 만 1주기에 지내는 제사를 뜻하며, 소상(小祥)이라고도 부른다. 간재는 1922년 7월 4일에 졸하였다. 스승님을 잃은 슬픔 원문의 '산량지통(山梁之痛)'은 스승이나 현인을 잃은 슬픔을 말한다. 공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태산이 무너지려나, 들보가 꺾이려나, 철인이 시들려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였는데, 과연 7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 어르신의 편지 원문의 '존함(尊函)'은 상대방의 편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쪽 사람 원문의 '일변인(一邊人)'은, 오진영(吳震泳)이 스승의 유지(遺旨)를 무시하고 총독부의 허가를 얻어 문집을 발간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꺼려해서 사용한 말이다. 의체(義諦) 사물의 바탕이 되는 뜻이나 이유를 말한다. 썩은……훈시 이 말은 《간재집(艮齋集)後編續)》 권5 〈시자손문인〔示子孫門人〕〉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고는 이미 정본을 대략 완성하였으니, 이 외에 한 편도 함부로 첨가하지 말라. 이러한 뜻을 자손과 문인은 삼가 어김없이 따르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훗날 사사로운 안면에 구애되어 다시 변통할 방도를 행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자신의 아버지와 스승을 차마 죽은 사람 취급하여 썩은 시신을 지각이 없다며 속이는 것일 뿐이니, 제자들은 그리 알라.〔私稿旣已略成定本, 此外無得妄添一篇. 此意子孫門人, 不可不恪遵無違. 若異日有拘於顔私, 復行通變之道者, 是忍死其父師。而欺其朽骨無知爾, 諸子識之〕" 고인의 축장(築場)하는 뜻 축장은 스승이 돌아가신 뒤에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거상(居喪)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3년이 지난 다음 문인들이 짐을 챙겨 돌아갔다.……자공(子貢)은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서 홀로 3년을 거처한 다음에 돌아갔다.〔昔者, 孔子沒, 三年之外, 門人治任將歸……子貢反, 築室於場, 獨居三年然後歸〕" 하였다. 강태걸(姜泰杰)의 일 강태걸은 오진영의 제자이다. 오진영의 지시를 받아 간재 사고(私稿)의 선집(選集)을 만들어 서울로 가서 인가를 받는 일을 도맡아 하였으며, 이를 반대하는 김택술(金澤述)과 최병심(崔秉心) 등을 진천서(鎭川署)에 고소하여 배일당(排日黨)으로 몰아세우는 데에 앞장섰다. 《사백록(俟百錄)》 권1 〈진걸화사(震杰禍士)〉 사체(事體) 사리와 체면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보합(保合) 《주역(周易)》 건괘(乾卦) 단사(彖辭)의 "하늘의 도가 변화함에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하여 큰 화기를 보전케 해 준다.〔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라는 말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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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황장에게 올림 上小心黃丈 乙丑二月 을축년(1925) 2월 매번 우리 어르신께서 정재(靜齋)에게 보낸 편지글을 읽어보면, 늠연하게 선사의 절의가 드러나고 환하게 음인(陰人)13)의 간담을 깨뜨려서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하게 공경심을 일으키게 하니, 직접 존장의 가르침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아, 저들이 스승을 무함하는 일이 날마다 불어나고 달마다 깊어지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홀로 명을 받은 것14)은 리(鯉)가 공자(孔子)를 독대하고15)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효종(孝宗)을 독대한 것이다." 하고【김세기】, "증자의 일관(一貫)이다."16) 하고【우형근】, "단전밀부(單傳密付)17)로, 간옹이 귓속말로 전한 것이다." 하며【조충현】, "경신년(1920)의 유서는 인가 받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별도로 가리키는 뜻이 있다." 하며【최원, 정운한, 김세기가 세 차례 어른에게 말한 것임】, "신해년(1911)의 유서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났다." 하고【정운한】, "크게 의심할 만하다." 하고【김세기】, "감히 가리켜 있다고 할 수 없다." 하니【조충현】, 사람들의 기탄없음이 어찌 이런 극심한 지경에 이른단 말입니까? 일이 이에 이르러 내버려두려고 하면 끝내 선사의 무함을 씻을 날이 없고,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하면 저쪽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여 결말이 날 기약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호중(湖中)은 선사께서 도를 제창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동문과 노성(老成)한 분들이 많으니, 오늘날의 변란에 큰 발길질로 치우친 말을 막고 지극한 정성으로 은혜에 보답하는 것18)은 또한 마땅히 호중에서 많이 나와야 하는데, 적막하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저쪽을 편들어 비호하는 자가 있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나라 사람들이, 음성의 오진영을 성토하는 것이 호남의 치우친 논의에서 나왔다고 의심하는 것에 혹 염려가 없지 않으니, 어찌 답답하고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이에 홀로 우리 어르신께서 사문의 선배요 호중의 두터운 명망으로 우뚝이 의리를 잡아 지키고 의연히 정도를 부지하여 남들이 밝히지 못한 것을 밝히신 스승의 의리를 천명하셨고 폐와 간을 보듯 훤한 저들의 실정을 알아내셔서 확실하게 각인시켜19) 조금도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후에야 사람들이 모두 음성의 오진영이 저지른 죄는 마땅히 성토해야 하고 호남의 의론이 치우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의심하던 자들도 일제히 따라서 안정되었습니다. 어르신 같은 분은 참으로 노성하고 명망이 두터운 실상에 부합하여 사문의 순정한 신하가 되시니, 세도의 다행스러움이 어찌 이보다 더함이 있겠습니까? 저 무리들이 점점 더 무함하여 거리낌이 없으니, 오직 우리 어르신께서는 거울 같은 마음을 더욱 밝히고 부월 같은 필치를 더욱 엄격하게 하여 시종 그들을 물리쳐 멈춤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每得吾丈與靜齋書, 讀之, 凜凜然先師節義著, 灼灼然陰人奸膽破, 令人肅肅然起敬, 宛若親承尊誨也。噫, 彼邊之誣師, 日滋月深。 謂杏下獨命, 爲鲤尤獨對【金世基】, 曾子一貫【禹烔根】, 單傳密付, 艮翁耳語【趙忠顯】。 謂庚申遺書, 謂非指勿認, 而別有所指【崔愿·鄭雲翰·金世基, 三次惇丈】。 謂辛亥遺書, 從天降從地出【鄭雲翰】, 可疑之大者【金世基】, 不敢指以爲有【趙忠顯】, 人之無忌憚, 胡至此極? 事到于此, 欲置之乎, 則終無洗誣之日, 不置之乎, 則彼強我弱, 出場無期, 未知如何則可乎? 竊念湖中, 先師倡道之地。 故多同門老成, 今日之變, 大踢距詖, 血誠報佛, 亦宜多出湖中, 不惟寥寥爲未聞, 反不免有護袒者。 故國人之疑討陰之出於湖南偏論者, 或不無慮, 寧不悶歎? 乃獨有吾丈, 以師門先進, 湖中重望, 卓然仗義, 毅然持正, 闡師義之發人未發, 得彼情之如見肺肝, 一棒一血, 不少假貸。 然後人皆知陰罪之當討, 湖論之非偏, 疑之者, 翕然隨定。 若丈者, 誠副老成重望之實, 而爲師門之純臣也, 世道之幸, 豈有加此哉? 彼輩之滋誣無憚, 惟願吾丈之心鏡愈明, 筆斧愈嚴, 始終闢之而無替也。 음인(陰人) 음성(陰城)에서 살고 있던 오진영을 가리킨다. 은행나무……것 원문의 '행하독명(杏下獨命)'은 오진영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홀로 간재에게 문집 발간의 명을 받았다는 말이다. 리(鯉)가 공자(孔子)를 독대하고 리는 공자의 아들로, 자는 백어(伯魚)이다. 공자가 뜰에 홀로 서 있을 적에, 백어가 종종걸음으로 그 옆을 지나가자, 공자가 시(詩)와 예(禮)를 배우라고 훈계한 고사를 말한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증자의 일관(一貫)이다 일관은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준말이다. 공자(孔子)가 제자 증삼(曾參)을 불러서 "나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 一以貫之〕"라고 하자, 증삼이 "예, 그렇습니다.〔唯〕" 하여 곧바로 깨닫고는 잘 모르는 다른 문인에게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설명해 준 것을 말하는데, 오진영이 문집간행에 대한 간재의 뜻을 홀로 알았음을 비유한 것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 단전밀부(單傳密付)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9 〈답왕숙경서(答汪叔耕書)〉에서 "〈태극도(太極圖)〉를 단전밀부(單傳密付)의 삼매(三昧)로 여기는 것은 또한 근세 학자들이 형체를 등지고 그림자를 쫓으며 거짓을 가리켜 진짜라고 하는 폐단입니다."라고 하였다. 단전밀부는 한 사람에게만 은밀하게 전수한다는 의미이고, 삼매는 흐트러짐 없이 한곳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모두 불교의 용어이다. 여기서는 전우가 오진영에게 은밀히 남긴 유언이라는 의미이다. 큰 발길질로……보답하는 것 《주자대전(朱子大全)》 권28 〈답진동보서(答陳同夫書)〉에, "공자가 어찌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성실하지 않았겠으며, 맹자가 어찌 거친 주먹을 휘두르고 큰 발길질을 하지 않았겠는가.〔仲尼豈不是至公血誠 孟子豈不是麤拳大踢〕"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여기서는 오진영의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을 반박하여 물리치고 스승의 은혜를 지성으로 갚는 것을 말한다. 확실하게 각인시켜 원문의 '일봉일혈(一棒一血)'은 《주자어류(朱子語類)》 권34에 "대개 성인이 하시는 일은 예를 들면 방망이로 내려쳐서 한 가닥 혈흔(血痕)이 생기게 하고 손바닥으로 때려서 혈인(血印)이 생기게 하는 바로 그런 것과 같은 것이다.〔大概聖人做事 如所謂一棒一條痕 一摑一掌血 直是恁地〕"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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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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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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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소심 황장에게 답함 答小心黃丈 丙寅九月 병인년(1926) 9월 "스승을 지키는 도는, 무함한 사람을 성토하는 것이 정도이고 유훈을 지키는 것은 그 다음이다."라고 편지에서 하신 말씀은 당연하신 말입니다. 다만 무함한 사람을 성토하는 일에 있어 우리들은 힘을 다하지 않았다 할 수 없으나 무함한 자들이 죄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세상에 이를 처벌할 국법이 없는 것 또한 어찌할 수가 없으니, 유훈을 지키는 일에 대해 우리가 할 도리를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용동의 간행이 유훈을 무시하고 마침내 인가를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스승을 욕보인 죄에 대해서는 작년 겨울에 진주의 간행을 성토한 글에서 이미 다하여 비록 다시 거론할 일이 없다 하더라도, 유훈을 지키는 사람이 평소에 받은 훈사와 편지 및 선대의 문자에 대해 침묵한 채 맡겨두어서 죄 짓는 데로 똑같이 돌아가서는 안 될 듯하였으므로 이미 동지들과 함께 연서(聯書)하여 인가를 받아 간행하는 속에서 빼주기를 청했으니, 이 일이 타당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일효(田鎰孝)가 오진영과 합의했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으나 그가 갈라선 것이 의리 때문이 아니고 이익 때문이라면, 다시 이익 때문에 합의했어도 이상할 일이 없습니다. '송의 신학은 할 만하다는 논〔宋之新學可爲之論〕'에 이른바 "치우친 말에서 가린 바를 안다."27)는 것은 오늘날의 낭패이고, 또 이른바 "마음에서 발동하여 일을 해친다."28)는 것은 우리 어르신께서 지적하신 것이니, 어찌 말을 아는 도가 되지 못하겠습니까? 근래에 또 여름 즈음에 호남의 첨좌에게 답한 편지를 얻어 읽어보니 올바른 의리와 확고한 의론이 조목조목 타당하고 글자마다 바꿀 수 없었는데, 중립에 선 자들을 배척하며 율곡을 인용하여 말한 것은 더욱 절실하고 들어맞았으니, 백번 엄숙히 받들어 읽음에 어찌 존경하여 감복하는 마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천의 일을 인용하여 숙질에 대해 논한 것은 아마도 인용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閑師之道, 討誣爲正, 守訓爲次, 下喩當矣。 但討誣之擧, 吾輩不可謂不盡力, 而誣者不服, 則世無王章, 亦無如之何矣。 其於守訓, 不可不盡在我之道也。 今龍刊不有遺訓, 竟至出認。 其辱師之罪, 昨冬討晉章已盡, 雖無事復擧, 然凡守訓人, 平日所受訓辭書牘, 及先世文字, 恐不可含嘿任他, 而同歸於罪。 故已與同志聯書, 請拔於認刊中, 未知此事爲得當否。 孝與震合, 未之曾聞。 然其離也, 不以義而以利, 則更以利合, 亦無怪矣。 宋之新學, 可爲之論, 所謂詖辭, 知其所蔽者, 今日之狠狽, 又所謂發於其心, 害於其事者, 吾丈之斥, 豈不得爲知言之道乎? 近又得夏間, 答湖南僉座書, 讀之, 正義確論, 條條得當, 字字不易, 其斥中立者之引栗翁爲說者, 尤爲切中, 百回莊讀, 曷勝敬服? 但其引伊川事, 以論叔姪者, 恐不如不引, 未知如何。 치우친 말에서 가린 바를 안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제2장의 "무엇을 말을 안다고 합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치우친 발에서 가린 바를 알며, 방탕한 말에 빠져 있는 바를 알며, 부정한 말에 괴리된 바를 알며, 도피하는 말에 궁함을 알 수 있다.〔何謂知言? 曰:詖辭, 知其所蔽;淫辭, 知其所陷;邪辭, 知其所離;遁辭, 知其所窮〕"라고 한 것에서 말의 네 가지 병통을 말한다. 마음이 발동하여 일을 해친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그릇된 학설은 "마음에 나타나 일을 해치고, 그 일에 나타나 정치를 해친다.〔作於其心 害於其事 作於其事 害於其政〕"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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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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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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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답함 答靜齋田丈 甲戌 갑술년(1934) 옛날에 한 위공(韓魏公 한기(韓琦))의 아들이 수도 낙양에 정자와 동산을 만들어, 한 위공이 노년을 편안하게 보낼 곳으로 만들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위공이 말하기를 "지금 내 나이가 이미 70으로 형해(形骸)조차 도외시하는데, 어찌 정원을 가지겠는가?"라 하고 드디어 그 일을 금지시켰습니다. 생각해보면, 정원은 심대하게 해로운 것은 없는데도 오히려 형해조차 도외시한다는 것으로 금지시켰습니다. 이제 우리 어른의 나이도 70이니 어찌 다시 연연해하는 것이 있어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행할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혹 자손 때문에 구애가 된다고 말씀하신다면, 자손이 내 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여 남겨주신다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을 남겨주는 데이겠습니까? 우리 어른에게 있어서 지금 해야 할 도리는 오직 못을 끊고 쇠를 자르듯 확실하게 행동하여 훗날에 후회가 없도록 하는 것이 있을 할 뿐입니다. 오진영의 무리가 올리는 제기를 어찌 차마 선친의 영정 앞에 진설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어른이 당일에 한 말이 엄하지 못한 것은 이미 흠결의 일이나 오늘에 이르러서 오히려 나재(懶齋)와 신헌(愼軒)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에게 받지 말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진영을 끊는다는 명백한 문장일 될 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昔韓魏公之子, 欲治亭園於京洛, 以爲魏公逸老地。 魏公曰: "吾今年已七十, 則形骸可外, 何有亭園?" 遂禁其事。 竊以爲亭園, 無甚大害者, 猶然以形骸可外禁之。 今吾丈之年, 亦已七十矣, 豈可復有所顧戀, 而不能行其所當行者哉? 若或以子孫爲拘云, 則子孫於我何加焉? 况以所當行者行而遺之, 遺爲莫大者乎? 在吾丈今日之道, 惟有斬釘截鐵, 可無他日之悔耳。 震黨所進祭器, 安忍陳列於先人影幀之前也? 吾丈當日言之不嚴, 已是欠事, 及今猶可致書於懶齋愼軒, 使之勿受, 可也。 此正爲絶震之明文耳。 若何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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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연심 전장희순에게 보냄 與鍊心田丈熙舜 ○乙亥 을해년(1935) 삼가 며칠간 살펴보니, 사견(士狷)189)을 거친 충고를 받아들일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돌아와 밝은 창가에 앉아서 다시 정밀히 생각해 보니 의리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이미 견고하니, 어른이 말씀하신 사견의 말에 이치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견고하다는 어른의 말은 어른이 전한 말이다.】 이 일의 시비는 처음에 알기 어려우니, 다만 약간의 사심에 가리어서, 나재(懶齋) 어른이 스승을 폄하한 자들을 용서한다는 것으로 저를 꾸짖는 편지를 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꾸지람을 당한 이후로부터 황공스러웠으니, 생각해보건대 이것은 부북첨좌(扶北僉座)가 한결같이 말한 공적인 성토입니다. 저번 편지에 당신께서 나재 어른의 편지가 비정한 꾸짖음이라 했고, 신재(愼齋) 어른도 그렇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이에 스스로 완전히 명교의 죄인이 되지 않음을 다행이라 여기고, 감격하여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만 크게 한스러운 것이 있으니, 당초에 음성을 성토하는 일은 신재 어른이 창의(倡義)하고 이 몸은 조수로서, 속임을 분별하고 원고를 고증하여 적을 목 베고 무리를 다스리는데 한 문장 한 의리도 그와 함께 하여 서로 상의하여 합치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맹세하기를 '살아서는 의리를 함께 하고 죽어서는 열전을 함께 한다.'190) 했습니다. 오늘날 영구(嬰臼)191)처럼 의론이 잘 맞던 우리(신재와 후창선생)들이 의론이 다르게 되었고, 순원(巡遠)192)처럼 의기투합하던 우리들이 화합을 잃어서, 의견이 달라지고 정의(情誼)193)가 이렇게 벌어져서 이 지경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연히 옛날 글상자를 열어서 신재 어른이 당시에 주었던 시 두편을 얻었습니다. 시에서 말하기를. "그대 오문(吾門)에 명성이 자자한데, 그리워하여 초강(楚江)194)길로 내방하였네. 속임을 변론하고 가르침을 밝혀 스승의 도를 신장시키고, 예를 익히고 경서를 논하여 후생을 창도했네. 춘추대의로 엄격함을 드러내었건만, 사악한 많은 말은 공평하지 않았네. 부끄럽게도 나는 한 일 없이 머리만 세었는데, 사귀는 정이 자상하여 상정에 지나치도록 경계하였네."라고 하였고, 또 시에 이르기를 "갑자기 스승이 돌아가시어 애통하며 통곡하니, 어찌 제자들이 다른 길을 걸었겠는가. 원수를 받아들여 원고를 발간하니 인심이 죽고, 인가를 성토하는 편지가 오니 사기가 살아났네. 자기가 벗어나기 위해 스승을 핑계 대니 음성의 죄가 크고, 사악함을 물리치고 바름을 부추기니 사람들의 의론은 공평하네. 시비는 절로 정해지니 한탄할 필요 없겠지만, 다만 나의 행실이 실정에 부합할까 두렵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그때에 당을 다스리는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같지 않음이 오늘날 본 바와 같았다면, 추중(推重)하는 말과 서로 믿는 정이 시편에 나타남이 어찌 이와 같았겠습니까? 대체로 제가 본 바로는 오늘날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종전에도 이와 같았습니다. 나만 홀로 이와 같았을 뿐만 아니라 신재 어른도 똑같이 공공의 문자를 만듦에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같이 문자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시에서 말한바 "어찌 제자들이 길을 달리할 것인가."라는 말은 음성의 당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까? 《시경》에서 말한 "아 슬프도다, 권여(權輿)195)를 잇지 못함이여"196)라는 말은 지금을 이르는 것입니다. 펼쳐서 서너 번 읽음에 큰 탄식을 이기지 못하고, 그 시에 차운하여 쓰기를 "그때에 우리 어른은 의로운 소리를 제창했으니, 눈앞에는 단지 다른 길이 없었네. 《춘추》197)로 무리를 다스리는 것이 어찌 심하다 하리오, 《서경·우전(虞典)》에는 완악한 사람도 썼으니 함께 살고 싶어서였네. 무릇 인을 행함에 끝까지 하기는 드무니, 언제나 공평하게 하기를 생각했기 때문이네. 벗에게 선을 권하는 은근한 말은, 속히 회복하여 옛정을 되살려 보자는 것이었네."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를 지어 말하기를, "공을 그리다 만나지 못한 채 가을이 되어서, 북쪽을 바라봄에 멀고멀어 삼십 리 길이네. 비록 주장하는 것은 오늘과 다르지만, 공론이 후생에게 있을까 두렵네. 곤란한 말로 항상 괴로워하니 다른 사람이 믿지 않고, 허물이 이와 같음을 보니 뜻이 평안하지 않네. 끝내는 깊은 속임을 씻어내기 어려울까 두려우니, 푸르고 푸른 미륵봉은 정이 있는 듯하네.'라고 했다. 오호라, 이를 보니 이놈의 정이란 게 또한 슬픕니다. 우리 어른은 매번 내가 고집스러운 것으로 독부(獨夫)198)가 될까 불쌍히 여겼고, 동문들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불쌍히 여겨주시는 뜻은 감동할 만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큰 재앙에 붙어있기보다는 의리상 독립하여 두려울 것이 없을 뿐입니다. 아, 내가 어찌 다른 사람과 절교하기를 좋아하며, 또 다른 사람 이기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 속에는 반드시 심히 그만두지 못할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만약 동시대에 나의 마음을 알아줄 종자기(鍾子期)가 없다면 마땅히 훗날 나의 글을 알아줄 양자운(揚子雲)이 있을 것입니다. 맹자가 말했습니다. "왕께서 고치시기를 내가 날마다 고대하고 있다."199)라고 했고, 또 말하기를, "열통의 편지는 한 번 만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으니, 거의 신재 어른과 한번 말을 다하여, 유감이 없도록 하려 했는데, 한번 이견(異見)이 있은 뒤로부터는 말과 소의 거마 소리가 서로 미침이 없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건대 스승을 폄하한 자를 용서해줬다는 죄목을 얻어서 진실로 사우간을 추종하기 어렵게 되어, 읍에서 바람이나 쐬고 있으니,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竊覸日者, 自經士狷忠告, 似有採納之意未知。 歸坐明牕, 更加精思, 知義理之不容已如堅, 丈所道, 狷言有理之悟否【堅丈語之所傳】。 蓋此事是非, 初不難知, 只爲些私所蔽。 以至有懶丈, 斥我以恕貶師之書矣。 自遭此斥, 惶惶恐恐, 意謂此是扶北僉座, 一辭公討者矣。 昨承, 吾丈以懶書爲非情之斥, 愼丈亦以爲然云。 於是乎, 自幸不全爲名敎罪人, 感之而繼泣也。 但有大可恨者, 當初討陰之役, 愼丈倡議, 此漢助手, 辨誣考稿 誅賊治黨, 一文一義, 無不與之, 互商合。 決誓'以生同義而死同傳'矣。 孰知今日, 嬰臼異論 巡遠失和, 意見之殊, 情誼之豁, 乃至於此乎? 偶閱舊篋得, 愼丈當日贈詩二首。 詩曰: "有子吾門籍籍聲, 相思來訪楚江程。 辨誣昭訓伸師道, 講禮論經倡後生。 大義春秋揭嚴截, 衆言邪詖不公平。 愧余無得空頭白, 交情偲偲戒過情。" 又曰: "遽見山頹痛失聲, 奈何諸子異蹊程? 納讐稿出人心死, 討認書來士氣生。 脫己諉師陰罪大, 斥邪扶正物論平。 是非自定未須嘆, 只恐我行孚實情。" 若於其時治黨與否之不同, 如今日所見者, 推重之辭, 交孚之情, 安得見於詩篇, 有如此者耶? 蓋此漢所見, 匪今斯今, 從前如茲。 非惟我獨如此, 愼丈同製公共文字亦然。 非惟同製文字, 此詩所云, "奈何諸子異蹊程"者, 非指陰黨乎? 詩云, "吁嗟乎不承權輿" 今之謂也。 披閱三四, 不勝太息, 而次其詩曰: "當日吾公倡義聲, 眼前只此無他程, 麟經治黨豈云甚, 虞典書頑欲幷生, 大抵爲仁鮮究竟, 總緣有意作公平, 偲偲籍籍殷勤語, 遄復耑希見舊情。" 又曰: "思公不見感秋聲, 北望迢迢一舍程, 縰然所主殊今日, 可畏公論在後生, 困言常苦人無信, 觀咎其如志未平, 終恐深誣難洗得, 蒼蒼彌峀若爲情。" 鳴呼 觀於此, 此漢之情, 其亦戚矣。 吾丈每以我之固執, 憫其爲獨夫而懼其不容於同門, 見憐之意可感。 然竊自附於大過之時, 義獨立而無所懼耳。 噫, 吾豈好絶人, 亦豈好勝人者哉? 其中必有甚不得已者存焉, 如無幷世之子期, 當有後世之子雲矣。 雖然孟子有云, "庶幾改之, 予日望之"諺。 又云, "十書不如一面。" 尙欲與愼丈一番盡言, 俾無餘憾, 而一自異見之後, 非惟馬牛之風不相及。 念此得恕貶師之目者, 誠難追從於士友間, 臨風於邑, 情不知裁。 사견(士狷) 《유재집(裕齋集)》 〈전사견(田士狷) 일중(鎰中)에게 답함〉 참고. 생사동전(生死同傳) 사마광(司馬光)이 범진(范鎭)과 의기투합하여, "나와 너는 살아서는 뜻을 같이하고 죽어서는 같이 열전에 오를 것이다.(吾與子生同志死當同傳)"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권5 영구(嬰臼) 영구(嬰臼)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 조삭(趙朔)의 문객(門客)인 공손저구(公孫杵臼)와 조삭의 친구 정영(程嬰)을 말한다. 진나라 대부(大夫) 도안가(屠岸賈)가 조삭의 일족(一族)을 살해하자 공손저구는 정영과 함께 조삭의 고아를 세울 일을 논의하였다. 그래서 정영에게는 조삭의 아들을 안고 산중으로 피하여 화를 면하게 하고, 자신은 다른 사람의 영아(嬰兒)를 데리고 달아나 산중에 숨어 있으면서, 정영에게 자신을 도안가에게 밀고하게 하였다. 결국 공손저구는 가짜 아이와 함께 도안가에게 살해되고, 조삭의 아들은 정영에 의해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다. 《사기(史記)》 권43 〈조세가(趙世家)〉 쓰러뜨리려 해도 넘어지지 않을 듯이 꼿꼿한 그림 속의 나무를 공손저구와 정영의 절개에 비유한 것이다. 순원(巡遠) 당나라의 명신(名臣)인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의 병칭이다. 강회(江淮)의 보장(保障)이라고 일컬어지는 수양성(睢陽城)에서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여 안녹산의 군대에 항거하다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구당서(舊唐書)》 권187 〈충의열전(忠義列傳) 장순(張巡)〉 정의(情誼) 서로 사귀어 친해진 정(情)을 말한다. 초강(楚江)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투신자살한 소상강(瀟湘江)을 가리킨다. 시국을 걱정하며 자결한 굴원의 충혼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김택술의 처지를 굴원에 빗대서 한 말이다. 권여(權輿) 사물 또는 일의 시작이나 시초를 뜻하는 말로, 저울을 만들 때는 저울대〔權〕를 먼저 만들고 수레를 만들 때는 수레의 판자〔輿〕부터 먼저 만드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 슬프도다 권여를 잇지 못함이여 《시경(詩經)》 〈진풍(秦風) 에 보인다. 인경(麟經) 《춘추(春秋)》의 별칭이다. 《춘추(春秋)》가 애공(哀公) 14년의 "서쪽 들판으로 사냥을 나가서 기린을 붙잡았다.〔西狩獲麟〕"라는 경문(經文)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독부(獨夫) 독부(獨夫)는 하늘도 버리고 백성도 버려 외롭게 된 통치자라는 뜻인데, 《서경(書經)》 〈태서 하(泰誓下)〉에 폭군 주(紂)를 독부로 명명하고 그의 죄악상을 나열한 내용이 나온다. 왕께서……있다 《맹자(孟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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