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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재에게 보냄 與崔欽齋 丙寅 병인년(1926) 전에 들으니, 오진영이 스승의 손자를 고소하여 구류시키고 다시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 수락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가 어지럽힌 문집을 행하려 할 때에 그 기염은 두려울 만했으니 오진영이 오늘날 또 이렇게 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로부터 선사의 심사(心事)가 더욱 어두워지고 화도수정본이 더욱 어지럽혀질 것이 통탄스러워 편치가 않습니다. 오직 이 일은 그가 문집 간행을 앞두고 그 도당들의 무함하는 문자를 내어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키려는 것이고, 또한 문집 간행을 앞두고 그가 고친 원고를 내어 시비를 전도시키려는 것입니다.【오진영은 매번 내 원고가 한번 나오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 오진영이 지금이 알맞은 때라고 하면서 이런 이유로 인가도 받고 고소도 하여 그 예봉이 매우 날카로운데 누가 감히 감당하겠습니까? 우리의 입장에서는 비록 손수 편정하신 화도본이 진본임은 해와 달처럼 분명하고 변론하여 꾸짖는 엄한 말이 서릿발처럼 매서우나 때가 바뀌고 국면이 전환되기 전에는 결코 간행할 방법이 없으니, 생각이 이에 미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기운이 떨어집니다. 그래도 한 마디 한다면 단지 신포서(申包胥)의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이길 것"48)이라는 말을 뇌일 뿐입니다. 비록 그러나 염려와 근심하는 도리는 마땅히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은 다하여 천명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니, 이제 우리의 급선무는 오직 서로 힘써 현동본을 베껴 써서 여러 곳에 보관하여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하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또한 그간에 변론하여 꾸짖은 문자들을 합하여 정리해서 백세를 기다리는 일은 바로 늦출 수 없는 일인데, 여러 사람들의 뜻은 태만하고 미력한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일은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도 오히려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대단히 통탄스럽고 한탄스럽습니다. 向聞, 震訴師孫拘畱, 受諾復徵償金, 得遂所欲。 亂本將行, 其氣燄可畏, 震在今日, 宜其如此, 無足怪者。 但從茲以往, 先師之心事愈昧, 手本愈亂者, 爲可痛不寧。 惟是彼又將刊, 出其徒黨褠誣文字, 以眩人耳目矣。 又將刊, 出渠稿以顚是非矣。【震每言吾稿一出, 都無事】 蓋彼時乎時乎, 以認以訴, 其鋒甚銳, 誰敢當也? 在此則雖手本眞本, 日星如也, 辨斥嚴辭, 霜雪如也。 時移局換之前, 決無刊行之道, 念到于此, 不覺神鬱氣塞也。 無已, 則但誦申包胥"天定勝人"之語乎。 雖然, 慮患之道, 當盡吾力之所可及, 以待天命之處分。 今日吾輩急務, 惟在競相傳寫玄本, 各藏諸處, 以備不虞。 且合修前後辨斥文字, 以俟百世, 正不可緩, 而衆志漫漫, 瑣力不及, 只此不大難底事, 尚不能就, 極可痛歡。 하늘의……것 《사기(史記)》 권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역시 사람을 능히 이기는 법이다.[人衆者勝天 天定亦能勝人]"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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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校會所 卽拜抵兒也僉尊惠字。憑伏審此時。僉尊動止。一例益裕。竝賀種種。示意謹悉。今番薦剡。擬以賤名。在渠非不榮。奈非其倫何。僉君子愛德之地。至此過情之擧。得無近於不誠乎。前此擧百端懇止。而竟未免一鄕笑。園心每臲卼。不覺背汗面頳。豈意今日僉尊執事。復有此承襲耶。伏願僉尊執事。勿以例聽。更擬可堪之人。千萬伏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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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尹宗檜【壬辰】 累書逋答。深有愧於古人勤我之語也。嚮聞有西湖之行。而少涉不和云。想是薰敲餘證。能無闖肆也否。晬饌節箑。無非情饋。感則感矣。此豈是窮交間所宜施。令人還喫不安。哲周以服藥之意告歸。勢或然矣。奈作輟何。大抵工夫如鷄抱卵。常令煖氣相續不絶然後。乃得肧胎。時或間斷。則便成空殼。是爲可慮。庚友自經周甲。非但有窮廬枯落之歎而己。風樹之懷。益復如新。悲感何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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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姓名欠考】別紙 生庭祖父旣無後。則未立後之前。凡節出後孫似當主張。而朞年後。只以素服行之。三年後神主班祔如何。然出後於無服之親。則班祔似亦未妥。藏之別龕何如。更議于禮家行之也。禮經爲長子斬衰三年。有四種說。而父在爲長子不服三年。先儒氏巳著論辨矣。長子先死。長孫未成長而身死。則祝文當以孫兒名告。而衆子攝行。似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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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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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寓東塢。以一絶詩。寄江上諸友。 本石東岡正侈奢。如今最恨故人遐。他日相尋方丈下。竹林缺處是吾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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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次三淵金先生四絶韻 禍福有由世自紛。如今萬事出邱墳。偶然氣數相關處。輒道某山是贗眞。術亦多門不一端。眼師手法競何漫。翻非翻是終難定。體魄靡依奈此安。稟氣之初强弱知。寧須黃壤所能移。最是天翁反聽命。滔滔千載使人悲。地理若存天亦通。善人當吉惡人凶。擧世秪如風水說。肯誰屈首六經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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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睡雲亭重修韻 睡雲亭可夢蕉亭。堂構依然傍小汀。繞屋短墻新築地。滿床牙笏昔趨庭。手栽花木猶存澤。趾美家聲勿替零。名勝合求煙景外。逍遙一錄好開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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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辰冬至。陪蘆沙先生。留觀庵。 月窟天根互往來。群陰閉處一陽開。弱絲添線須工詣。寶襪呈祥占泰回。豆飯侈盤寧煮粥。密湯驚口勝含盃。如今進退皐比日。忘却山窓幾放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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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甥【丙戌】 月初始聞病報。自不覺驚慮者。以其宿痾。尙未祛根柢。而又添客證。勢如孤根之木微風自倒。雖有更跗。誠難下手也。幸賴刀圭之力。昔疾今瘳。可謂翻出鬼關。新年喜消息。孰有過於此哉。慰悅不可量。然尋常思之。亦有所大關慮者存焉。乃調護一款也。二竪雖退。而一身之元氣積虛。此後事。顧調護之如何耳。曷謂調病。第一謹房室。其次節飮食安居處等事耳。若曰吾病已瘳。苟或房室不謹。飮食失節。居處無常。病加於愈者。不在他矣。故四百四病。雖曰外感所致。而其實自致也。調病雖若待人。而其實在我也。然則纔出鬼關。而又一生死路頭。隔在眼前。爲君謀者。豈不大關慮處乎。爲君謀者猶然。況自爲謀乎。嘗聞君言。醫不在外。惟在吾心。常存此意。觸類以長之。則此足以康濟自家身矣。勉旃勉旃。更惟萱闈氣力。憂慮之餘。無或添損。令伯氏亦安衛傡溯不一。翁畏寒龜縮。日事擁衾。而家後親山。尙未省墳。衰甚可知。自憐自憐。餘惟益自保護。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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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甥【丁亥】 瞻戀中得見惠字。何慰如之。凭審餘力覃思。足見意趣。友以聳喜。疑義擾甚荒落。未能造次奉答。當竢日後。以書以面。諒恕如何。翁衰相轉甚。而所謂亭役。便是無事中生事。似近老妄。何足道哉。餘不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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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亥上元夜諸益來會 塊然久坐老陀頭。此日逢君滌我愁。爆竹四隣傳俗節。屠蘇一榼足風流。上元有約嘉賓席。中夜無眼好月樓。最是良辰兼勝友。何如騎鶴向楊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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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에게 답함 答鄭國振 乙亥 을해년(1935) 보내주신 편지를 받들어 읽고서 보존하고 있는 것의 독실함이 과연 들은 바와 같음을 알았습니다. 또 부쳐주신 시(詩)를 읽고서 중화를 지키는 의연한 절개와 무함을 분별하는 절연한 의리를 더욱 잘 알게 되었는데, 언어와 편지로 능히 다 알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만약 지난번에 전사견(田士狷)의 말로 인하여 제가 편지를 보내고 저의 편지로 인하여 성대한 좋은 시를 얻지 못했다면, 거의 노형을 잘 알지 못한 채 문득 몇 년이 지났을 것이니,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다행입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시세(時勢)는 비록 변할지라도 나는 어찌 감히 변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형은 진실로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능히 말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물리칠 수 있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122)라고 했으니, 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박문약례(博文約禮)의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도를 밝히는 책을 저술하기를 맹자의 7편과 정자의 《역전(易傳)》처럼 하여 백세가 넘어서도 앙모하는 것이 이미 수립된 것을 능가할 뿐만 아니게 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저는 크게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奉拜惠覆,有以見所存篤實,果如所聞。又讀所寄諸詩,益悉守華毅然之節、辨誣截然之義,有非言語書翰之所能悉者。如非向因狷友之言而致惡札,因惡札而獲盛詩,則幾乎淺知老兄而奄過幾年也,何幸何幸! 程子有言曰: "時勢雖變,某安敢變?" 兄實有焉。孟子有言曰: "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 兄即其人。願益加博約之工,著成明道之書,如孟子之七篇、程子之《易傳》,俾百世之景仰,不徒樹立之已然者。區區不勝其厚望焉. 능히……무리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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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金丈【孝源】 丈丈吾父黨。髫齔已拜筵。朱陳講世誼。白首劬簡編。少肄功令業。所向定無前。僅獲鄕解止。究竟寧非天。鬪飣非本志。昃嗟更幡然。不知老將至。昻藏志益堅。展墓躬克勤。少者不能先。宿春踰峻嶺。徒步年復年。往年入獘廬。扶筇繞林泉。徜徉不欲行。爲惜墻未連。此歲歲除日。遽爾凶音傳。享年八十翁。浮世有幾焉。山門不復掃。牢銷一壑煙。辭縮意無盡。涕泗空漣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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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敬浩【基舜◎丙子】 省禮言。日月迅駛。先夫人祥祀奄隔。孝子慨廓之情。益復靡逮。富以下辭仰慰。伏願寬譬節哀。以副區區之望焉。仄聞日者遇一仙眼。遷墓宅吉。靡財單幣。又復營地。大抵此世人家大事。孰逾於此。且慰且昻。千千萬萬。弟素昧風水。其於龍虎之來歷。格局之美惡。雖得目擊。如盲者之丹靑。猶不能辨其眞贗。況可遙憑流聞。豈得以妄評哉。然其中頗有大可惑者。葬必卜夜。壙不灰隔等數件事。推之以臆見。揆之以事理。俱無所據。哀見以爲如何。請爲哀兄說破。肯假辭色而賜覽否。盖夜葬之習。近世貧窮無辨者。忌其禁隻。而出於不獲已。則甚無謂也。豈意哀兄重惑於葬師之邪說而行此耶。雖於白晝光明之時。哀遑凡節。不能無憾於誠信之道。而況昏夜克葬。其能無悔於孝子之情耶。先儒有論以不擇日時。而事係甚重。且凡務經紀。自有期待。則不容無擇日耳。先儒之論。豈有它哉。譏其附會禍福之妖說也。今此葬必卜夜。有何所據。且壙內灰隔之用。其來久矣。先賢已有冠論。其法著在喪禮。有非後生容喙疊說也。但究竟以人情物理。則人子不忍使其親骸犯土。故內而棺槨。外而灰隔。久而成石。則以防蟻漏木根之患。而又無崩圮壞陷之慮矣。禮經所謂君子無一朝之患者此也。不然則日圮而歲陷。至於肌膚親土。髑髏嬰根。螻蚋蚯蚓。又從而嘬之。其在幽明相感之理。安乎否乎。程子所謂彼安則此安之論。職此由也。又嘗聞諸丈席。天理存然後地理在。余乃自語於心曰。至哉言乎。及其爲親永葬之日。凡附於棺者。必誠必信然後。情事可伸。而天理見存。天理見存。則地理亦不外乎此矣。不則反是。盖深喩今人往往惑於邪說。而亡其天理也。庸詎知有一線吉氣。不東不西不南不北。必湊合於此。而吹噓無息。柱其壤邊其根。令螻蚋自消。回風水自辟。經歲經年而無虞無慮乎。大率正理與邪術。如陰陽晝夜。每每相反。見其行險而私曲。則知其非正理也必矣。知其非正理。則地之吉凶。亦可以推之。且如今大饑之歲。人不能自保。而途殣相望。遷墓營費。尤非其時。豈必悍然不顧。傾囷倒廩。妄其僥倖哉。推以臆見。揆以事理。俱無所據。而大可惑者此也。況復一朝時異事變。家勢蕩盡而無餘。山理冥漠而不驗。火急足上。饑寒到骨。則雖悲嘆窮廬。將復何及。然事已旣往。宜庸勿說。而又復營地不已云。其惑也已甚。語復向益。但忝在通家之誼。義同休戚。其可含口而視秦瘠乎。所以裁書數行。貢愚如是。惟願哀兄深思而留意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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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奇立夫【宰◎丁亥】 省禮。謹拜覆送舊迎新。所懷伊誰。謂外獲奉心畵。滿紙覶縷。字字醒眼。如得天球。何感如之。況憑審重省餘制體。餞迓攴衛。豈勝仰慰。毅無所事業。而又失一歲。只增鬢上雪莖而已。外何奉塵。第年前一書。初不量力。自恃相愛。覓疵索痕。敢效苦口。僭妄極矣。雖賜呵斥。未爲不可。而寔能容之。不以菅蒯棄。又謙抑太過。其在君子自牧之道。固盛德事。而自顧賤陋。何以得此於左右。旋切悚汗。示諭崇鞱子孫百世反正之論。實如尊敎。而但在吾接人期物之地。恐不可如是嶄然矣。未知戱意以爲如何。故曰君子寧失於厚。不失於薄。又曰躬自厚而薄責於人。又曰犯而不校等語。此皆修其在我者而已。豈是點檢他人耶。惟願左右更加留意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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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화구에게 보냄 與靜齋田丈華九 ○甲子五月 갑자년(1924) 5월 김용승의 일은 매우 불행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이 일은 누가 시킨 것입니까? 하나는 선사가 일찍이 인의(認意)를 두었다고 말한 것이고 다음은 선사가 일찍이 인교(認敎)를 두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스스로 후사를 담당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왔고, '홀로 앉았을 때 남들과 다르게 들었다'고 한다면, 동문 수천 명이라도 감히 잘못됨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른바 오래도록 친자(親炙)180)를 받은 자들이 도리어 떼거리로 일어나 이 말을 옳다 여기고, 한두 사람 힘이 약한 졸필이 애써 분별하여 알리려고 해도 길이 없습니다. 김 씨처럼 직접 수학하길 오래도록 하지 않은 자가 어찌 오히려 선사의 심사에 의혹을 낳지 않겠습니까? 기개와 절개에 격분하여 나도 모르게 여기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의 이 일은 누가 시킨 것입니까? 가슴이 아프고 아플 뿐입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김 씨의 처신을 논해 본다면, 명분과 관련이 있으니 다만 망령되고 그릇되다 말할 수만은 없을 따름입니다. 선사가 절해(絶海)에서 스스로 바르게 한 절개와 호적에 올리지도 말고 죽거든 시신을 바다에 던지라던 의리181)는 진실로 천지신이 살펴본 것이고 부녀자와 아이들도 아는 것입니다. 비록 김 씨라 하더라도 또한 어찌 이를 모르겠습니까? 만약 선사의 절의와 바른 말에 확실히 근거하여 통렬하게 변론함이 가면 갈수록 더욱 힘 있어진다면, 선사와 함께하기를 자처함에 어찌 두 사람 모두 유감이 없지 않겠습니까? 어찌하여 한 사람의 속이는 말을 분별하는 것이 어렵다 해서 명분에 죄를 짓는 일을 하는 것입니까? 애석하고 애석합니다. 이것은 이미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원통하고 한스러운 것은, 선사가 인의(認意)를 두었다는 설이 나라 안에 가득하여 곳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의론과 공언에 이르기를, "인의를 둔 것은 모 어른이고, 인의에 대해들은 것은 모공이라고 합니다. 고제라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면, 선생이 반드시 일찍이 인의를 두었을 것이니, 이른바 후사를 의탁한다는 것은 일을 의탁한다"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고, 어리석게 앉아 있다가 서서 배척을 당하니 고가진신(故家搢紳)의 외롭고 맑은 충절과 유문(儒門) 장보(章甫)182)의 높은 행실과 탁월한 식견이 또한 마땅히 수시로 기록하고 논척(論斥)해야 하는데, 수천 명이 말하면 공론이 되고, 오래 전해지면 사실이 되니, 진실로 두렵고 염려스럽습니다. 이 속임수를 분변하지 못하면 선사께서 평생토록 지킨 절의가 없던 일이 될 것이니, 어찌 지하에서 원통하고 치욕스럽지 않겠습니까? 자손과 문인이 무슨 얼굴로 세상에 서겠습니까? 하물며 근래에 김 씨 일이 있은 후에 한층 더욱더 심해져서, 깨끗이 씻어 아무런 죄가 없게 되는 것은 거의 황하를 끌어당기고 태산을 흔드는 것과 같으니, 만약 죽을힘을 다하여 도모하지 않는다면 결코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건대 자손 중에는 오직 애장(哀丈)과 두 형 뿐이고, 문하에는 2,3명에 불과하니, 매우 외롭고 나약합니다. 장차 어찌해야 선사의 마음을 청천(靑天)의 밝은 해처럼 밝혀서 현혹된 전 국민을 크게 깨우치겠습니까. 흥분해서 말을 하다가 여기에 이르니 마음이 한심할 뿐입니다. 저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선사 발밑의 일원으로 한 푼의 은혜를 받았으니 두텁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선사의 무고함이 저를 통해 조금이라도 변론이 된다면 비록 수만 번 죽어 사라지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 보잘 것 없고 말이 가벼우며 문식이 천박하고 짧아서, 비록 이 일에 종사하고 싶더라도 그렇게 할 길이 없으니, 스스로 원통하고 한스러울 뿐입니다.군자가 논의를 세움은 공적이고 바르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또한 변척하는 도는 핵심을 요약하고 확실한 증거를 잡아내야 하며, 절대로 노여운 상태에서 기세를 부려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과중하게 가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변척이 성사되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불복할 것이니, 바라건대 상중에 계신 어른께서는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를 계기로 생각건대, 어른의 정신과 심력, 견식과 의리로 가학을 잇는 것을 큰 책임으로 삼지 않는다면 다시 누구를 기다리겠습니까? 하물며 어른의 창안백발은 다시 옛날 같지 않은데 구구하게 살 계획을 또한 어찌 구할 것이 있겠으며, 구하더라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경전과 문헌을 연구하여 관통함으로써 존양(存養)의 바탕으로 삼고, 후진을 수습하여 세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것이 지하에 계신 선사의 혼령을 위로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것이 선사께서 부탁하신 뒷일을 감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金容承事, 不幸甚矣。 然此人此事, 是誰之使? 一則曰先師曾有認意, 再則曰先師曾有認敎。 出自自擔後事人之口, 而謂'是獨坐異聞', 則擧同門千數, 莫敢矯其非。 所謂親炙日久者, 乃反朋興而是其言, 一二人孱力單筆, 戞戞乎欲爲之辨白而無其路。 若金之親炙未久者, 豈不反生疑惑於先師心事哉? 氣節所激, 自不覺至此, 蓋此人此事, 是誰之使? 痛矣痛矣。 雖然若論金之所處, 則有關名分, 不可但道妄錯而已。 先師絶海自靖之節, 不譜沈尸之義, 實神祗之所鑑, 婦孺之所知。 雖金亦豈不知此? 使其確據先師之節義正言, 痛辨愈往愈力, 則爲師與自處, 豈非兩無憾爲者乎? 奈之何, 只緣一人誣言之難辨, 而行此得罪名分之事? 惜哉惜哉。 此則旣然矣, 最所痛恨者, 先師有認意之說, 充滿國中, 在在群議, 處處公言 曰: "有是哉, 某丈也, 彼哉, 某公也。 高足人而曰有矣, 則先生必曾有矣, 所謂託後者, 託是事也。" 大驚小怪, 坐嗤立排, 故家搢紳之孤忠淸節, 儒門章甫之高行卓識, 亦應劄記之論斥之, 千口成公, 久傳成實, 誠可畏可慮也。 此誣不辨, 則先師平生獻靖, 歸於烏有, 豈不寃鬱憤, 恥於泉下乎? 子孫門人, 何顏立於人世乎? 而况近日金事之後, 一節深一節, 一層重一層, 淸洗白脫, 殆若挽河而撼山, 如不盡死力圖之, 決乎難矣。 而念在子孫, 惟哀丈與二哥, 在門下, 不過二三人, 孤弱甚矣。 將何以明先師之心, 如青天白日, 大破全國人眩惑? 興言至此, 心爲之寒。 如侍生之無似者, 亦先師脚下, 一分子受恩, 不可謂不厚矣。 使先師之誣, 由侍生而得粗辨, 雖滅死萬萬無恨。 但人微言輕, 文識淺短, 雖欲從之, 末由也已, 只自痛恨。君子立論, 務要公正審愼。 辨之之道, 又要要約精核捉得眞贜。 切戒乘怒動氣, 加人以些子過重, 如此則辨未及成, 而人先不服, 願哀丈之毋忽也。 因念以哀丈之精魄心力, 見識義理, 不以紹家學, 爲一大任, 而更待何人? 而况哀丈之蒼顏白髪, 非復昔日, 區區計活, 亦何足求, 求亦難得。 只有究貫經籍, 用資存養, 收拾後進, 少補世程, 是爲慰泉下之靈, 是爲擔後事之託也。 未審哀丈以爲如何。 친자(親炙) 스승이나 존경하는 분의 가까이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백세 위에서 떨쳐 일어남에 백세 아래에서 이를 듣고 흥기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만들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직접 배운 제자의 경우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奮乎百世之上, 百世之下 聞者莫不興起也, 非聖人而能若是乎. 而況於親炙之者乎〕"라는 말이 나온다. 선사가……절해 간재는 평생을 반일(反日)로 살았고 왜놈들이 싫어서 일본식 호적을 거부하고, 묻힐 곳이 없으면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리라(不籍之事, 沈尸之誓)고 하였다. 장보(章甫)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가 일찍이 공자를 뫼시고 앉았을 때, 공자가 이르기를 "평소에 너희들이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라고 하는데, 혹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居則曰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라고 하자, 맨 처음 자로가 대답하기를 "천승의 나라가 대국의 사이에 속박을 받아 전쟁이 가해지고 인하여 기근이 들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라고 하였고, 염유가 대답하기를 "사방 6, 7십 리나 혹은 5, 6십 리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은 풍족하게 할 수 있거니와 예악에 대해서는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라고 하였고, 공서화가 대답하기를 "제가 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 작은 집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에서 나온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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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 족숙에게 올림 上涵齋族叔 辛未 신미년(1931) 어제 들으니, 사인(士仁 간재 장손 전효일)이 문하에 와서 오진영을 편들고 호남을 배척한 잘못을 사죄하고, 또 제 동생을 찾아와 "그대의 맏형이 겨를이 없어 사죄하는 자리에 오지 않았으니, 이 뜻을 알려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개 이 사람은 본디 정견(定見)이 없어서 한쪽의 꾐을 받아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미 잘못을 알고 와서 사죄했으니, 마땅히 옛날의 잘못을 들춰내 그로 하여금 '선사의 사손(嗣孫)은 서로 관계를 끊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임동만(任動萬)이 이승욱(李承旭)143)과 친해져 혼인을 맺고자 하기까지 하자 선사께서 성심으로 편지를 보내 깨우쳐서 그가 깨닫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냥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이로 살펴볼 때 우리 쪽에서 사인이 의혹을 당했던 날에 일찍이 성심으로 고해주지 않았던 것은 도리어 극진하지 못한 것이 되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昨聞士仁來謝袒震排湖之過於門下。 又訪見舍弟言: "令伯氏未暇詣謝, 望告以此意"云。 蓋此人本無定見, 爲一邊誘引而然。 今旣知過來謝, 不當追念其舊, 使其不悟先師嗣孫無相絶之理。 昔任動萬親好李承旭, 至欲結昏, 先師誠心書喩, 不以其不悟而置之。 由此觀之, 此中之不曾誠告士仁見惑之日, 却爲未盡也。 如何如何。 임동만(任動萬)이 이승욱(李承旭) 임동만은 전우의 스승인 임헌회의 장남이며, 이승욱은 임헌회의 제자이다. 이 내용은 전우와 이승욱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전우와 이승욱은 임헌회가 죽기 전까지 매우 절친하게 지냈지만, 임헌회 사후 갈라서게 된다. 1876년 10월 29일 임헌회가 위중하자 전우와 이승욱은 연기(燕岐)의 죽안(竹岸)에 찾아뵙는데, 이승욱은 11월 4일 조고(祖考)의 기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귀가하였는데 11월 16일 결국 임헌회가 세상을 떠난다. 이때 전우는 집촉록(執燭錄)을 썼는데, 이에 대해 이승욱은 스승을 욕보인 것이라고 하여 고산학파 내에서 큰 논란이 일어나게 된다. 정윤영이 쓴 《뇌변(誄辨)》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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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보냄 與靜齋田丈 乙丑三月 을축년(1925) 3월 보내주신 편지의 숱한 내용이 오진영과 화해한다는 주장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삼가 제 생각으로는 화해〔和〕라는 한 글자를 글 첫머리에 제목으로 둘 것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그가 만약 흔쾌히 선사를 속인 죄를 자복한다면 수용하여 용서하는 것이 옳으나 그가 화해하자고 말한다면 불가합니다. 이에 우리 어른께서 저쪽의 자복을 기다리지 않고 화해를 허락하며 저쪽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가서 만난다면 원한을 푸는 것을 급히 하고 부모를 잊는 것을 쉽게 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우리 어른의 동빙한설〔冬氷雪〕같은 엄함으로 어찌 홀연 점진적이지 않은 따스한 바람과 단비를 지으신단 말입니까? 삼가 싹트고 자라는 공은 보지 못하고 도리어 재앙을 초래할까 두렵습니다. 아, 우리 어른의 이번 일은 이익에 유혹되어서도 아니고 재앙이 두려워서도도 아닙니다. 오로지 진실로 양쪽을 수습해서 뒷일을 도모하려는 데에서 나왔으니, 그 마음과 형세의 측은함을 어찌 모른다 하겠습니까? 다만 문집을 간행하고 비석을 세우는 등의 일은 후인들이 선사를 높이 받드는 것일 뿐이고, 도의와 지절은 선사를 선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선사의 뒷일을 도모하고자 하면서 먼저 그 선사가 되게 하는 도의와 지절을 깨뜨린다면 비록 문집이 천하를 두를 만큼 많고 큰 비석이 백 척 높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선사의 실상이 있고 없음에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일이 바른데서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 동쪽을 수습하려다가 서쪽이 흩어지고 처음을 도모하려다가 끝이 망가지는 꼴이 되어버리는 데이겠습니까? 우리 어른께서 만약 옛 덕을 간직하여 확고하게 지켜서 사당(邪黨)을 엄히 배척하고 시비를 밝게 판정한다면 반드시 인심이 모두 복종하고 후사가 이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나 만약 한번이라도 저들이 스승을 무함한 죄를 흔쾌히 자복하기 전에 저들과 화합한다면 선사를 아는 자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간옹의 도의는 이처럼 우뚝한데, 아들 아무개는 처음에는 음성의 속임수를 배척하다가 마침내는 음성 쪽에 붙어 아부하니, 삼패문(三悖文)186)이 아무개를 배척한 말이 전부 허언은 아니구나." 할 것이며, 선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오진영이 죄를 자복하지 않았는데 아무개가 먼저 그 그릇됨을 깨닫고 화해를 구걸했다. 그렇다면 은행나무 아래에서 홀로 명을 받았다는 것은 오진영이 속인 것이 아니라 간옹이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고, '심히 구애될 필요 없다'는 말도 오진영이 속인 것이 아니라 간옹을 실제로 그런 말을 했고, 신해년의 유서는 간옹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아무개가 위조한 것이다. 간옹의 의리 없음이 이와 같구나!" 할 것입니다. 우리 어른이 천추에 죄를 짓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입니다. 선사가 영원히 다른 사람의 의심을 면하지 못한다면 지하의 원혼이 그 억울함을 언제나 씻을수 있겠습니까? 우리 어른의 현명함으로 어찌 조금도 이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우리 어른께서 일찍이 조카 사인(士仁 전효일)에게 편지를 보내 정모(鄭某)의 화해설을 비난하시며 "오늘 선친을 배반하고 내일 천사만종(千駟萬鐘)187)을 얻을지라도 만약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이를 통하여 우리 어른이 이익에 유혹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일이 천사만종보다 그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전에 엄히 꾸짖었던 화합을 허락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연사(練祀)에 참여한 제공에게 올린 편지에서 "만약 의외의 일이 있다면 제가 마땅히 자임하고 제공들에게는 누를 끼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이것으로 어른이 재앙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오늘날 오진영이 고소한 재앙은 우리 어른만 홀로 당하고 여러 사람들이 감당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찌 갑자기 제공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뜻을 굽혀 홀로 당하지도 않은 화를 미리 염려하신단 말입니까? 우리 어른께서 보낸 그간의 문자가 산처럼 쌓여있고 백세의 공론이 우레처럼 매서운 데다가 또 이로운 바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으며 후사에 유익할 것도 없는데, 어찌 그리 고달프게 이전의 절개를 버리고 기꺼이 오늘날 사람들과 후세 사람들의 의롭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으려 하십니까? 절대로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호라, 제가 스스로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변론하고 성토하는 일에 종사하다가 마침내 저들 무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욕을 당했습니다만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속담에도 있으므로 한바탕 웃음거리로 치부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어른이 갑자가 태도를 바꿈에 이르러서는 스승의 무함을 씻느냐 마느냐가 크게 관련되어 있는 만큼 한번 고하고 두 번 고해서 들어주지 않으시면 마땅히 세 번을 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을 고하면 이미 자주 간하는 것이 되어 혹여 우리 어른께서 저를 소원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또한 훌쩍훌쩍 울고 싶을 뿐입니다. 비록 그러나 우리 어른은 친히 선사의 유서를 받은 사람이니 어찌 이 지경에 이를 리가 있겠습니까? 구구한 저의 근심이라 결국엔 지나친 염려가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다만 보내주신 편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어른이 저들에게 죄를 자복하도록 하신 것이 선사를 무함한 것으로 하지 않고 다만 선사께 누를 끼친 것으로 하고, 저들이 묘에 고하고자 하는 것도 무함한 것을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을 허물하는 것일 뿐인데, 우리 어른은 또한 시간이 지나면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께서 전날 힘을 다해 오진영을 성토한 것은 다만 선친에게 누를 끼쳤기 때문이고 선친을 무함했기 때문이 아니며, 다만 저들이 스스로 실수한 허물 때문이고 선사를 무함한 죄 때문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반복해서 생각해도 끝내 우리 어른의 의중을 알지 못하겠으니, 또한 망연하여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깊이 살펴 답장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下喩, 縷縷無非和震主意, 竊以爲和之一字, 劈頭已是不著題。 彼若快服誣師之罪, 則容而赦之, 可也, 其曰和之, 則未可也。 乃吾丈不待彼服而許和, 不待彼來而往會, 不幾乎急於解仇, 而易於忘親乎? 以若吾丈大冬氷雪之嚴, 何其忽作無漸之和風甘雨也? 竊恐不見生成之功, 而反致災戾也。 噫, 吾丈此擧, 非爲利誘也, 非爲禍怵也。 亶出於收拾兩邊, 用圖後事, 則其情勢之戚, 豈云不知? 但刊稿竪碑等事, 後人之尊奉先師也, 道義志節, 先師之所以爲先師也。 欲圖先師之後事, 而先破其所以爲先師者, 則雖文匝環海, 豐碑百尺, 其於先師之實之無有焉何哉? 而况事不出正, 人不見服, 將收之東而散之西, 圖之始而敗之終乎? 吾丈若能食舊而貞, 嚴斥邪黨, 明定是非, 則必見人心之翕服, 後事之利濟也。 若一與彼和於快服誣罪之前, 其知先師者則必曰: "艮翁道義, 若是其卓, 其子某, 始斥陰誣, 而終焉比附陰邊, 三悖文斥某之言, 不是全虛。", 其不知先師者則必曰: "震不服罪, 某先覺其非而乞和, 然則杏下獨命, 非震之誣, 艮翁實有之, 不必深拘, 亦非震誣, 艮翁實有之, 辛亥遺書, 非艮翁手筆, 某之僞造也, 若是乎艮翁之無義也。" 吾丈之得罪千秋, 猶是小事, 先師而永不免人疑, 則泉下之寃, 何時可雪? 以吾丈之明, 豈不少念乎此乎? 吾丈曾與令姪士仁書, 斥鄭某和好之說, 不曰: "今日背先人, 明日得千駟萬鐘, 苟有人心者, 何可爲也乎?" 吾以是知丈之不爲利誘也。 但未知今日之事, 有何大於千駟萬鐘者, 而許前日嚴斥之和乎? 又呈練祀諸公書, 不曰: "若有意外之事, 則某當自任而不累諸公"乎? 吾以是知丈之不爲禍怵也。 但今日震訴之禍, 未必吾丈之獨當。 而諸人之不擔, 何遽屈不累諸公之志, 預慮不獨當之禍乎? 吾丈前後文字, 山堆如也, 百世之公論, 雷厲如也。 且無所利也, 無所怵也, 無所益於後事也, 何苦而欲棄前節, 甘受今與後不義之斥乎? 絶不敢知也。 鳴呼, 生不自量度, 從事辨討, 竟遭罔測之辱於彼輩, 賊反荷杖, 諺或有之, 付之一笑者久矣。 至於今日吾丈之忽然改度, 師誣洗否之大關係焉, 一告再告而不見聽, 則當三告, 三告則已數, 而或遭吾丈之疎遠。 念到于此, 又欲啜其泣矣。 雖然吾丈是親受先師遺書之人, 豈有至此之理? 區區之憂, 知其終屬過慮也。 但細觀下喩, 吾丈所以敎彼服罪者, 不以誣師, 而止以累師; 彼之所欲告基者, 不以服誣, 而止以引咎, 而吾丈又望其時月見效。 然則吾丈前日盡力討震者, 但以累親, 而不以誣親, 但以彼自失之咎, 而不以誣師之罪乎? 反覆思惟, 終不識吾丈之意, 則又惘然無以爲懷也。 綂賜深鑑, 下答千萬。 삼패문(三悖文) 3인의 패륜적 문건으로 오진영의 주장에 동조하여 그의 우익을 자처한 최원(崔愿), 김세기(金世基), 정운한(鄭雲翰)의 서신을 말한다. 천사만종(千駟萬鍾) 사(駟)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뜻하며, 종(鍾)은 용량의 단위로 한 섬에 해당한다. 따라서 천사만종은 아주 많은 봉록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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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정재 전장에게 보냄 與靜齋田丈 乙丑四月 을축년(1925) 4월 지난 그믐에 답장을 올리며 온 정성을 다했고, 또 답장을 내려주시라고 청했는데 아직까지 잘잘못을 듣지 못했습니다. 삼가 생각할 때 오진영과의 화해가 서리 내리면 곧 얼음이 얼 듯 이미 굳어진 것 같습니다. 비루한 제가 따뜻한 봄볕이 아니니 어떻게 해빙시킬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의 입장에서는 도리를 다 할 뿐이고, 들어주고 말고는 기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두 번 보내 세 번에 이르고, 세 번을 보내 효과가 없다면 그만둘 뿐입니다. 아, 우리 어른은 피눈물을 뿌리며 부친의 무고함을 변론하고 의로운 깃발을 휘날리며 음성의 도적을 성토한 전정재(田靜齋)가 아니십니까? 어찌하여 성토하던 도끼를 돌려 폐백으로 만들고 광명을 잃어 안개 속을 헤매신단 말입니까? 천만 번 그 까닭을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진영이 죄줄 만한 것이 없어 앞에서 성토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여기십니까? 그렇다면 '문집 간행을 그대가 헤아려서 하라', '인가 받는 것을 구애하지 말라' 하셨다는 오진영의 글과 '나 자신을 욕보이는 것이다', '절대로 따르지 말라' 하신 유서의 내용은 끝내 얼음과 숯처럼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인데, 오진영이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어른의 선고(先考)요 선사(先師)를 어디에 두어야 한단 말입니까? 하물며 '일찍이 인가를 받을 뜻이 있으셨다.〔曾有認意〕'는 네 글자는 우리 어른이 직접 들은 것이 아닌 데이겠습니까? 고소를 당한 화가 헤아릴 수 없어서입니까? 그렇다면 군자는 의리에 있어서 진실로 사는 것을 버리고 의리를 취함이 있는데, 하물며 이 몸은 부모님이 남겨주신 몸을 돌려드리는 것이니 부친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또한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하물며 사림이 공적으로 다함께 받은 화이고 우리 어른이 홀로 담당할 일도 아닌 데이겠습니까? 저쪽을 수습하는 것이 뒷일을 도모하기에 이로워서입니까? 그렇다면 마땅히 의리를 바르게 하여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도를 밝혀 공을 계산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군자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하물며 부친을 모함에 빠뜨린 자의 힘을 이롭게 여겨 부친의 뒷일을 도모한다면 부친의 혼령이 어찌 기꺼이 편안해 하시겠습니까? 가족의 보호와 화합을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부자와 숙질은 본디 친속이니, 진실로 외부 사람인 오진영을 기다린 이후에 보호하고 화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오진영은 내 부친의 큰 절개를 파괴시킨 자이니, 오진영과 화해하여 가족을 보호하고 화합하는 것을 구한다면 가족을 화합한 방법이 곧 내 부친을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뿌리가 보존되지 못하는데 가지가 장차 어떻게 전해지겠습니까? 이로 보나 저로 보나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단 하나도 오진영과 화합할 의리가 있음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어른께서 마침내 이와 같이 하고자 하신다면 이것은 또한 운수 소관이지 인력으로 될 일은 아니겠지요. 오호라, 일신의 이기기 어려운 사욕은 천 길의 구덩이로 떨어지기 쉽고, 한때의 잘못된 견해는 영원한 공론의 성토가 두려우니, 한 사람과 구차히 화합하여 온 세상의 버림과 배척을 받을 것이 부끄럽습니다. 우리 어른께서 다시 십분 생각하여 후회하는 일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심정으로 말을 다하여 이렇게 까지 하였으니, 만약 그르다고 여기지 않으신다면 부디 속히 답장을 주시기 바랍니다. 去晦上覆, 旣罄衷悃, 又請賜答, 尙不聞皂白。 竊想和震之霜氷已堅矣。 鄙生之非陽春, 何足以解之? 但在我者, 有可以盡其道, 其聽與否, 有不可必。 故一之再之, 以至于三, 三而無效, 則可以已矣。 噫, 吾丈非灑血淚而辨親誣, 麾義旗而討陰賊之田靜齋乎? 胡爲乎回斧銊而作皮幣, 失光明而困霧霾乎? 千萬思量其故, 不可知也。 謂震無可罪, 而前討之誤也耶? 則'料量''不拘'之震筆, '自辱''勿從'之遺書, 終是氷炭之不相容。 謂震無罪, 則置尊先考先師於何地? 而况'曾有認意'四字, 非吾丈之親聞者乎? 爲訴禍之罔測也耶? 則君子之於義, 固有舍生而取之者, 而况此身還是親之遺體, 爲親而致死, 亦復何惜? 而况士林公共之禍, 而非吾丈之所獨當者乎? 爲收拾彼邊, 利圖後事也耶? 則正誼不謀利, 明道不計功, 固君子處事之方, 而况利陷親者之力, 圖親之後事, 則親之靈, 豈肯安乎? 爲家族之保合也耶? 則父子叔姪, 本是天屬, 固非待外人吳震泳而後, 可保合者。 而况震是破壞吾親之大節者? 和震而求保合, 則其所以合家族者, 乃所以破壞吾親也。 本之不存, 支將安傳乎? 以此以彼, 以東以西, 一不見其有和震之義, 吾丈乃欲如此, 是亦運氣攸關, 而非人力之致歟? 鳴呼, 一己之難克, 千仞之坑塹易陷, 一時之誤見, 千古之公討可畏, 一人之苟合, 擧世之棄斥, 是羞。 切乞吾丈更加十思, 勿致後悔焉。 情不自己, 極言至此, 如不爲非, 幸亟賜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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