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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에서 열재 어른을 모시고 속마음을 얘기하다 弊廬, 陪悅丈話心 천하가 맑아지길 기다리며 노년 보내고 싶어 待淸我欲度長年세상의 밖에 가서 신선의 인연을 찾네 物外往尋仙子緣도학은 회복하는 운수가 어찌 그리 늦는가 道術何遲來復運친구 간에는 끝까지 보존하기가 어렵네 交朋難得始終全이치를 볼 때는 거울처럼 밝아야 하니 要當見理明如鏡사익을 도모해 권도 가탁하는 건 가증스럽네 可惡營私托用權이런 심정을 말할 분은 영수525)뿐인데 說與此情惟潁叟마침 늦봄에 바람을 쐬고 읊게 되었네 適玆風詠暮春天 待淸我欲度長年, 物外往尋仙子緣.道術何遲來復運? 交朋難得始終全.要當見理明如鏡, 可惡營私托用權.說與此情惟潁叟, 適玆風詠暮春天. 영수(穎叟) 소학규(蘇學奎)의 다른 호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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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큰 눈이 내리다 九月大雪 늦가을에 문득 한겨울 날씨가 되어 晩秋忽作大冬天이처럼 눈이 쌓여 앞을 볼 수 없네 積雪如斯未見前들판의 농사를 망친 것을 어찌할까 其柰田原傷稼穡부질없이 경옥으로 산천을 꾸몄네 徒然瓊玉飾山川문득 사계절이 추위와 더위 잃었나 却疑四序寒溫失또 사흘 연이은 비 안개에 탄식하네 更歎三朝雨霧連운기57)가 지금 응당 이런 일 있으니 運氣而今應有此어느 때에나 태평한 세월을 만날까 何時得遇太平年 晩秋忽作大冬天, 積雪如斯未見前.其柰田原傷稼穡? 徒然瓊玉飾山川.却疑四序寒溫失, 更歎三朝雨霧連.運氣而今應有此, 何時得遇太平年? 운기(運氣) 운은 오운(五運)으로, 갑기년(甲己年)은 토운(土運)ㆍ을경년(乙庚年)은 금운(金運)ㆍ병신년(丙辛年)은 수운(水運)ㆍ정임년(丁壬年)은 목운(木運)ㆍ무계년(戊癸年)은 화운(火運)이 되는 것을 말하고, 기는 육기(六氣)로, 천지(天地) 사이의 음(陰)ㆍ양(陽)ㆍ풍(風)ㆍ우(雨)ㆍ회(晦)ㆍ명(明)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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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산을 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觀盡頭流歸路 백두산에서 흐른 줄기 남쪽 고을의 진산이요 白頭流脈鎭南州중국의 형산201)과 더불어 짝할 만하네 中國衡山可與儔일만 골짝은 모두 은하수의 폭포 매달은 듯 萬壑皆懸銀漢瀑일천 봉우리는 높아 옥경의 누대에 닿을 듯 千峯高逼玉京樓정령을 몇 번이나 드리우면 현인들이 나올까 精靈幾旒群賢出깊고 넓은 곳에 오곡의 밭을 많이 경작하네 深廣多治五穀疇올라 보고 어짊과 지혜를 알고자 했으나 登覽要知仁智術보아도 보지 않은 것 같았으니 또한 부끄럽구나 看如不看也堪羞 白頭流脈鎭南州, 中國衡山可與儔.萬壑皆懸銀漢瀑, 千峯高逼玉京樓.精靈幾旒群賢出? 深廣多治五穀疇.登覽要知仁智術, 看如不看也堪羞 형산(衡山) 오악(五嶽)의 하나인 남악(南嶽)이며, 동악(東嶽)은 태산(泰山), 서악(西嶽)은 화산(華山), 북악(北嶽)은 항산(恒山)과 함께 중국의 오악으로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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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일99)에 현광이 때마침 와서 重九日玄狂適到 뜨락에 핀 국화꽃 참으로 곱고 싱그러운데 花開庭菊正鮮新그대가 중구일에 딱 맞춰 찾아왔구려 君到重陽不後先좋은 절기의 풍광이 기다리는 듯한데 佳節風光如有待기인은 슬픈 감회는 절로 끝이 없구나 畸人感傷自無邊사람들이 일으킨 소란 누구인들 꿈이 아니랴 群生擾攘誰非夢하루라도 맑고 한가하면 오히려 신선이라네 一日淸閑却是仙흠뻑 취해 떨어진 모자100) 보길 사양치 말게 盡醉莫辭看落帽또 내년에 이런 유람을 어디에서 하겠는가 玆遊何處又明年 花開庭菊正鮮新, 君到重陽不後先.佳節風光如有待, 畸人感傷自無邊.群生擾攘誰非夢? 一日淸閑却是仙.盡醉莫辭看落帽, 玆遊何處又明年? 중구일(重九日)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의 별칭이다. 떨어진 모자 원문의 '낙모(落帽)'는 모자에 바람이 불어 모자를 떨어뜨린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맹가(孟嘉)가 중구일(重九日)에 환온(桓溫)이 베푼 용산(龍山)의 주연(酒宴)에 참석했다가, 술에 흠뻑 취한 나머지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고사가 있다.《世說新語 識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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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안에게 화답하다 和汝安 대설이 꽃잎처럼 날려 온 누리 아름다우니 大雪颺花滿地佳옆 사람아 또한 이 생애를 묻지 마오 傍人且莫問生涯그 누가 좋은 일을 그림으로 그렸을까 誰歟好事作圖畵천고토록 원안112)과 함께 누워 있으리라 千古袁安臥與偕 大雪颺花滿地佳, 傍人且莫問生涯.誰歟好事作圖畵? 千古袁安臥與偕. 원안(袁安) 후한(後漢) 때 사람이다. 그는 눈이 내리면 쓸지 않고 문을 닫은 채 누워 있었다고 한다. 《後漢書 袁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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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하는 서양 사람의 집에 들러 過西洋人避暑室 천 겹의 깊이와 만 길이 높이 千疊之深萬仞崇언뜻 보니 붉고 푸른빛이 하늘에 빛나네 忽看丹碧耀中空샘물은 영험이 있어 쌓인 담증을 없애고 泉脈有靈消痰積바다 어귀가 눈에 들어오니 가슴이 트이네 海門入望豁衿胸다른 종족인데도 도리어 지리를 잘 알고 異類還能知地理마음은 절로 조물주와 같음이 있네 有心似若自天公산골 백성들 서글프게 고용살이를 하여 峽氓哀爾爲傭雇적은 돈이 생기면 기쁨이 얼굴에 가득할 뿐 但得些錢喜滿容 千疊之深萬仞崇, 忽看丹碧耀中空.泉脈有靈消痰積, 海門入望豁衿胸.異類還能知地理, 有心似若自天公.峽氓哀爾爲傭雇, 但得些錢喜滿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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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유266) 한응 에게 화답하다 和李士裕【漢膺】 십 년간 문을 닫고 강호에 누우니 十年閉戶臥江村소식을 알 수 없어 귀가 가려웠네 音信難憑癢耳根이 학문은 평생의 일임을 알지니 應知此學平生事사욕은 반점의 흔적도 끊어야 하네 要絶間私半點痕지금 보니 이미 백옥의 그릇 이뤘고 今看已成白玉器만나 얘기함에 진한 술에 취한 듯하네267) 對談如醉醇醪樽심진동을 지나는 길에 나란히 걸으니 聯笻路出尋眞洞마음에 간직한 게 같아서 더욱 기쁘네 更喜衿期一樣存 十年閉戶臥江村, 音信難憑癢耳根.應知此學平生事, 要絶間私半點痕.今看已成白玉器, 對談如醉醇醪樽.聯笻路出尋眞洞, 更喜衿期一樣存. 이사유(李士裕) 사유는 이한응(李漢膺, 1902~1949)의 자이다.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시당(時堂)이다.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마평에서 출생하여 이병은(李炳殷)ㆍ김택술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저서에 《시당유고》 2권 1책이 있다. 진한……듯하네 이한응의 뛰어난 인품에 자기도 모르게 도취되었다는 말이다. 삼국 시대 오(吳)나라 정보(程普)가 일찍이 주유(周瑜)의 너그러운 인품에 감복하여 말하기를 "주공근과 사귀다 보면 마치 진한 술을 마신 것과도 같아 나도 모르게 절로 취한다.〔與周公瑾交, 若飮醇醪, 不覺自醉.〕"라고 한 고사가 전한다. '공근(公瑾)'은 주유의 자이다. 《資治通鑑 卷66 漢紀 建安 15年 12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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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에서 대설 중에 홀로 앉다 山堂 大雪中獨坐 새벽에 일어나 창 밀치매 눈이 산에 가득하니 晨起推窓雪滿山옥빛 같은 세계 그림으로도 그리기 어렵다오 玉瓊世界畵猶難높고 낮은 도로를 누가 변별할 수 있을까 高低道路誰能辨왕래하는 사람 발자국 하나도 보이지 않네 來往人蹤總未看집에 돌아감은 바다를 넘는 것 같으니 어이 하랴 歸舍其如同隔海굶주림 면했으니 감히 전찬127)을 바랄쏘냐 療飢不敢望傳餐이불 껴안고 종일토록 되려 복록 자랑하니 擁衾盡日還誇福원안이 누워 춥다고 외친 것128)보다 낫구나 勝似袁安臥叫寒 晨起推窓雪滿山, 玉瓊世界畵猶難.高低道路誰能辨? 來往人蹤總未看.歸舍其如同隔海, 療飢不敢望傳餐.擁衾盡日還誇福, 勝似袁安臥叫寒. 전찬(傳餐) 정무에 바빠서 잠시도 쉴 틈이 없다는 말이다. 수 문제(隋文帝)가 5품 이상의 관원을 인견(引見)하여 정사를 논하기 시작하면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까지 계속하곤 하였으므로, 숙위(宿衛)하는 사람들을 시켜 식사를 날라다 먹었다〔傳餐而食〕는 고사가 있다. 《舊唐書 卷3 太宗 本紀下》 원안(袁安)이……것 후한(後漢)의 명상(名相) 원안이 미천(微賤)했을 때, 한번은 낙양(洛陽)에 대설(大雪)이 내려서 낙양 영(洛陽令)이 몸소 나가 민가(民家)를 순행할 적에, 다른 집들은 다 눈을 치웠는데, 원안의 집 문밖에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으므로, 그 집에는 사람이 이미 굶어 죽은 줄 알고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문을 열어 살펴보게 하니, 원안이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는 '원안고와(袁安高臥)'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袁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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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보고 느낀 것을 읊다 道中卽事 아침에 하늘 가득 비 기운 드리운 탓에 朝來雨意滿天垂약을 찾는 내 걸음 삼십 리나 지체하였네 問藥吾行一舍遲도중에 어지럽게 내린 옥 새끼 같은 비로 中道紛紜來玉索잠깐 사이에 온몸에 걸친 솜옷이 젖었네 渾身頃刻濕綿衣노년에 무슨 일로 고생을 하는가 老年底事當艱苦어려서 앓던 병이 갈수록 위태로워짐을 어이 하랴 幼抱其如轉劇危우선 마음 너그럽게 해 어딜 가든 편안하다면 且可寬懷安所遇바람 부는 정자에서도 한나절 추위와 굶주림 견뎌내리 風亭半日耐寒飢 朝來雨意滿天垂, 問藥吾行一舍遲.中道紛紜來玉索, 渾身頃刻濕綿衣.老年底事當艱苦? 幼抱其如轉劇危.且可寬懷安所遇, 風亭半日耐寒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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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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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22년 김응상(金應相)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幼學 金應相 1822 扶安縣監 金膺相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6.5*6.5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22년(순조 22)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부안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22년(순조 22)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應相)이 부안현(扶安縣)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47세였다. 그는 아내 남원양씨(南原梁氏, 28세)와 아들 귀묵(貴黙, 18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기재된 문서에 의하면 외조가 2명인 것으로 보아 양씨는 후처(後妻)로 추정되며, 귀묵은 나이로 미루어 볼 때 전처(前妻) 소생으로 보이며 이때까지 전처의 부(父)는 살아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문서에는 호구단자 작성연대가 나와 있지 않았으나 김응상이 44세 때 작성한 문서에 의거하여 12년 후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데리고 살았던 노비가 1명이 있었으나 도망갔다고 나와 있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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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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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9년 송진택(宋鎭澤)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玖年己未五月初九日 朴日壽 宋鎭澤 咸豐玖年己未五月初九日 朴日壽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2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9년(철종 10) 5월 초 9일에 송진택(宋鎭澤)이 박일수(朴日壽)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진전(陳田)을 전문 4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9년(철종 10) 5월 초9일에 유학 송진택(宋鎭澤)이 유학 박일수(朴日壽)에게 진전(陳田)을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대상토지는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전록(前麓)에 있는 진전이며, 위로는 석대(石隊)에서 아래는 길까지, 오른쪽으로 구가(具哥)의 무덤 7보 밖에서 왼쪽으로 등척(嶝尺)까지였다. 송진택은 이곳을 송추를 금양하기 위해 매득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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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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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69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己巳十一月日 宋鎭澤 泰仁官 己巳十一月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泰仁官[着押] 5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69년(고종 6) 11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69년(고종 6) 11월에 전주(全州)에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송진택의 어머니 산소가 태인현 남면(南面) 반룡촌(盤龍村)에 있는데 송진택이 타향에 살다 보니 간혹 투장을 당해 여러 해 송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병인년(1866)에도 투장을 당하여 수년 동안 투총주를 찾다가 고부(古阜)에 사는 박가(朴哥)를 찾아냈고, 올해 봄에도 투장을 당해 투총주를 찾으니 고부에 사는 김가(朴哥)였다. 투매(偸埋)한 박가와 김가를 즉각 잡아 가두고, 투총을 파내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태인현감은 두 사람을 엄중히 징계하기 위해 빨리 잡아오라고 차사(差使)에게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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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 태우에게 보여 주다 示李君泰雨 칠 척의 키로 천지 사이에 우뚝 서 있으니 七尺亭亭立兩間이 몸을 그대는 등한하게 보지 말지어다 此身君莫等閒看인의예지신 다섯 가지 덕을 타고 났고 稟來義禮智仁信심비폐신간344) 다섯 가지 장도 갖추었지 具得心脾肺腎肝밝은 거울 속에서 이치의 정추를 궁구해야 하고 理究精粗明鏡裡가는 터럭 끝까지 기미의 선악을 나누어야 하네345) 幾分善惡細毫端경 공부에 만일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敬功如有微差失불과 얼음이 없을 때라도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리라346) 不火氷時亦熱寒 七尺亭亭立兩間, 此身君莫等閒看.稟來義禮智仁信, 具得心脾肺腎肝.理究精粗明鏡裡, 幾分善惡細毫端.敬功如有微差失, 不火氷時亦熱寒. 심비폐신간(心脾肺腎肝) 심장, 비장, 폐장, 신장, 간장의 오장(五臟)을 이른다 기미의……하네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에 "성에는 작위가 없으나 기미에는 선과 악이 있다.[誠無爲, 幾善惡.]"라고 하였는데, 이 대목에 대해 주희(朱熹)는 "기미라는 것은 처음 동할 때의 미세한 움직임이니, 선과 악이 이로 말미암아 나누어지게 된다.[幾者動之微, 善惡之所由分也.]"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1 道體類》 불과……차가워지리라 남송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 "여기에 종사함을 지경이라 한다.……잠시라도 끊어짐이 있으면 사욕이 만 가지로 일어나, 불이 아니어도 뜨거워지고 얼음이 아니어도 차가워진다.[從事於斯, 是曰持敬.……須臾有間, 私慾萬端. 不火而熱, 不冰而寒.]"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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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에 七月旣望 칠월 16일이 좋은 때임은 七月旣望爲良辰옛날 동파 신선이 이날 저녁 놀았기 때문이지341) 爲昔坡仙遊此夕나는 사람들의 말이 되려 우습다고 생각하니 我謂人言還可笑이날이 동파 신선과 어찌 조금이라도 상관있으랴 坡仙何曾關寸尺문장은 본래 남을 흠모할 것이 아니요 文章本非可慕物학술은 하물며 자양의 배척을 당했음에랴342) 學術矧遭紫陽斥어찌하여 천년 동안 풍속을 답습하여 如何千載相沿俗분분하게 모방하면서 적벽의 놀이를 이었던가 紛紛效嚬續赤璧그저 친한 벗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但得親朋同娛樂좋은 때가 어느 날인들 이 자리가 아닐까 良辰何日非此席다시 마음속으로 항상 스스로 즐긴다면 更得心中常自樂좋은 때가 어느 때인들 마음에서 멀어질까 良辰何時離胸隔그대 동파 신선에게 끌려다니지 말고 請君莫爲坡仙掣높이 보고 크게 걸으며 유유자적하게 지내게 高視闊步任自適 七月旣望爲良辰, 爲昔坡仙遊此夕.我謂人言還可笑, 坡仙何曾關寸尺?文章本非可慕物, 學術矧遭紫陽斥?如何千載相沿俗, 紛紛效嚬續赤璧.但得親朋同娛樂, 良辰何日非此席?更得心中席自樂, 良辰何時離胸隔?請君莫爲坡仙掣, 高視闊步任自適. 칠월……때문이지 북송의 대문장가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신종(神宗) 원풍(元豐) 5년인 임술년(1082) 7월 16일 황주(黃州)에 있는 적벽강(赤壁江)에서 뱃놀이하고 천하의 명문으로 알려진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는데, 이후 임술년 7월 16일이 되면 문인들이 강에서 뱃놀이하는 풍습이 있게 되었다. 《古文眞寶後集 卷8》 학술은……당했음에랴 자양(紫陽)은 주희(朱熹)의 별호이다. 소식(蘇軾)은 학문적으로는 선학(禪學)을 좋아한 까닭에 주희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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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여중213)에게 부치다 4수 病中寄汝重【四首】 지척 거리에 서신 왕래도 반년이나 막혔으니 尺地書顔阻半年붕우 사이의 인륜이 어찌 그리도 변한 것인가 友倫變處此胡然비록 피차간에 벌어진 틈이 없다 하더라도 縱言彼此無間隙스스로 돌아보면 제각기 하늘에 부끄러우리 自反還應各愧天오십 일의 호서 여행이 일년처럼 긴 듯했는데 五旬湖旅久如年돌아온 뒤 또 동으로 감은 본디 그럴 뜻이었네 歸後東行意則然쌍교 가의 진흙땅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니 漂去雙橋泥淖地쇠약한 몸이 장마철을 어찌 버틸 수 있으랴 衰軀其柰潦霖天삼십 일 동안 몸져누운 게 삼년 같았으니 三旬臥病若三年생사를 순순하게 자연의 이치에 맡긴다오 生死無何付自然일생 중에 오늘날이 가장 외롭고 쓸쓸하니 孤踽平生今日極박덕한 이 몸이 하늘에 버려짐을 알겠어라 可知薄德棄蒼天기쁜 만남이 평년에 있었다 말을 해도 喜逢雖道在平年병든 처지로 그리워하매 갑절이나 암담하네 衰病相思倍黯然일만 겹의 수심을 하소연할 데 없으니 萬疊心懷無與訴몸을 어루만지며 하늘만 바라볼 뿐일세 撫躬只自仰蒼天 尺地書顔阻半年, 友倫變處此胡然?縱言彼此無間隙, 自反還應各愧天.五旬湖旅久如年, 歸後東行意則然.漂去雙橋泥淖地, 衰軀其柰潦霖天?三旬臥病若三年, 生死無何付自然.孤踽平生今日極, 可知薄德棄蒼天.喜逢雖道在平年, 衰病相思倍黯然.萬疊心懷無與訴, 撫躬只自仰蒼天. 여중(汝重) 최태일(崔泰鎰, 1899~?)로, 여중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백졸(百拙)이다. 고부(高阜)에서 출생하여 간재(艮齋) 전우(田愚)와 후창을 사사하였다. 저서로 《백졸사고(百拙私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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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김요흠(金堯欽) 등 수표(手標) 2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甲子十月初七日 金堯欽 宋鎭澤 甲子十月初七日 金堯欽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2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03_001 1864년(고종 1) 10월에 김요흠(金堯欽) 등이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표로 송진택 친산 근처에 쓴 무덤을 내년 2월 그믐날까지 이장하겠다는 내용. 1864년(고종 1) 10월 초7일에 김요흠(金堯欽) 등이 송진택(宋鎭澤)에게 작성해 준 수표이다. 연결문서를 살펴보면, 김요흠 등은 송진택 친산(親山)의 지척 거리에 무덤을 썼다가 누차 송진택으로부터 소송을 당하였다. 결국 김순흠 등은 낙과(落果, 패소)하여 지난 2월 18일에 올해 9월 그믐날까지 이장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 문서를 작성해 주었다. 그런데 산운(山運, 묏자리 길흉의 운수)이 좋지 않아 지금까지 이장을 하지 못하였다. 이에 김요흠 등은 내년 2월 달까지 이장하겠다는 뜻으로 이 수표를 작성해 주었다. 연결문서를 살펴보면, 송진택의 친산은 당시 태인군 감산면 반룡촌에 있었다. 이곳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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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홀로 외로이 살다 孤棲 늙은이의 심사는 끝없이 아득하니 老夫心思渺無窮깊은 밤에 깜박이는 붉은 촛불만 짝하누나 耿耿深宵伴燭紅팔조목을 남긴 증씨 학문251)에 뜻을 두었고 有志八條曾氏學백세의 스승인 백이의 풍도252)도 들었다오 亦聞百世伯夷風자신을 성찰함에 사술을 제거하기 몹시 어렵고 省身難得除私術가르침을 베풂에 세상 깨우친 공이 애당초 없었네 施敎初無牖世功육십육 년 세월 동안 무슨 일을 하였던고 六十六年何所事적막한 푸른 산중에 홀로 외로이 살고 있네 孤棲寂寂碧山中 老夫心思渺無窮, 耿耿深宵伴燭紅.有志八條曾氏學, 亦聞百世伯夷風.省身難得除私術, 施敎初無牖世功.六十六年何所事? 孤棲寂寂碧山中. 팔조목(八條目)을……학문 증씨(曾氏)는 공자(孔子)의 종통을 이어받은 증자(曾子)를 가리킨다. 팔조목은 증자가 지었다는 《대학(大學)》의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가리킨다. 백세(百世)의……풍도(風度) 백이(伯夷)는 은(殷)나라 말기의 고사(高士)이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의 맑은 자이다.[伯夷, 聖之淸者也.]"라고 하고, 〈진심 하(盡心下)〉에 "성인은 백세의 스승이니, 백이와 유하혜가 이런 분이다.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를 들은 자는 완악한 지아비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지아비가 뜻을 세우게 된다.[聖人, 百世之師也, 伯夷ㆍ柳下惠是也. 故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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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전의 이씨의 〈관경재〉 시에 차운하다 次全義李氏《觀敬齋》韻 묵로534)의 남쪽 고을에 궁벽함을 깨뜨리니 墨老南鄕破僻幽월산535)의 정기가 천추에 비춘다오 月山精氣照千秋점필재(佔畢齋 김종직) 아래로 연원이 중하고 畢齋脚下淵源重《기묘록》536) 가운데 이름이 남아 있네 己卯錄中名字留엄숙한 묘소는 무탈하게 보존되고 肅肅佳城無恙在찾아드는 복록은 끝없이 흐르누나 來來福澤不窮流성경을 대대로 계승한 뜻을 알고자 한다면 欲知誠敬雲仍意재실 머리에 아름다운 편액을 취해 볼지어다 觀取華扁丙舍頭 墨老南鄕破僻幽, 月山精氣照千秋.畢齋脚下淵源重, 《己卯錄》中名字留.肅肅佳城無恙在, 來來福澤不窮流.欲知誠敬雲仍意, 觀取華扁丙舍頭. 묵로(墨老) 이계맹(李繼孟, 1458~1523)으로,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 또는 묵암(墨巖), 문평(文平)이다. 무오사화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라는 죄목으로 영광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1519년 기묘사화 후에 찬성(贊成)의 자리에 올랐으나 사류(士類)들에 대한 처리가 지나치자, 논의에 맞지 않다고 여겨 김제(金堤)에 있는 농막으로 물러났다. 월산(月山) 전라북도 김제시 제월동에 있는 전의 이씨(全義李氏)의 선영이 있는 산으로, 이계맹의 묘소도 여기에 있다. 기묘록(己卯錄) 기묘사화에 관련된 인물들의 행적을 정리한 책으로, 김육(金堉)이 1638년(인조16)에 간행하였는데 일명 《기묘제현전(己卯諸賢傳)》이라고도 한다. 김정국(金正國)의 《기묘당적(己卯黨籍)》과 안로(安璐)의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를 바탕으로 하고 일부 인사들을 추가한 것으로, 218명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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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57년 송진택(宋鎭澤) 소지(所志) 3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丁巳 九月日 宋鎭澤 泰仁城主 丁巳 九月日 宋鎭澤 泰仁縣監 전라북도 태인군 泰仁官[着押] 3개(적색, 정방형)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22_001 1857년(철종 11) 9월에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1857년(철종 11) 9월에 전주 사는 송진택(宋鎭澤)이 태인현감(泰仁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문서가 훼손되어 소지를 올린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소장처와 그 내용으로 미루어 송진택으로 추정하였다. 지난 7월, 투총(偸塚)을 굴이(掘移)하는 일로 양측이 대질하여 8월 내에 굴이하기로 한 것을 다시 9월로 기한을 늦춰 굴이하라고 관에서 제교(題敎)를 내렸었다. 그러나 아직도 무덤을 옮기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미루다가 결국에는 굴이를 하지 않으려는 속셈이라며 관에서 굴이해 줄 것을 송진택은 태인현감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태인현감은 9월로 기한을 정했으니 그믐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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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44년 김재상(金載相)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四年甲辰六月初一日 幼學金載相 道光二十四年甲辰六月初一日 金載相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4년(헌종 10)에 고춘성이 처가 쪽 산 아래 묘답에 붙어 있는 토지를 유학 김재상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44년(헌종 10) 6월 초1일에 고춘성(高春成)이 처가(妻家) 쪽 산 아래 묘답(墓畓)에 붙어 있는 토지를 유학 김재상(金載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고춘성은 가난하여 생활이 곤궁하게 되자 처가 쪽 산 아래 묘답의 북쪽에 붙어 있는 토지를 팔게 되었다. 거래된 토지는 중방리(中方里) 서십작(西十作) 황자(惶字) 정태(丁太) 논 3두 5승락지이며, 부수로는 6부 5속이다. 그리고 그 토지에 붙어 있는 시장(柴塲) 25동락지(同落只) 등 두 곳을 합해서 5냥에 팔기로 하였다. 거래에 관련된 본문기(本文記) 1장을 첨부하여 나중에 만약 자손들 가운데 말썽이 생기면 증거로 관에 제시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전시장주(田柴塲主)인 고춘성(高春成)과 증필(訂筆)로 유학 송형주(宋亨柱)가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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