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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答書 兩賢圖訣如此。咀嚼出意味固善。但朱子頭緖入路四字。欲以此當之。則恐不襯著。蓋頭緖云者。如云端緖開端初下手之謂也。入路之意亦然。是必有至簡約至親切。若翻覆手開闔戶的光景。若以十圖十訣當之。則反浩浩茫茫。如入市觀寶。吾意如此。更思之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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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李心齋【崑壽】 向於衆中得拜下書。伏審起居有不安節。伏悶。伊來喜得妄五之喜。克復天和否。當時忽遽。未上答書罪也。前後多多少少事。不須煩瀆稟問。而大抵近來氣力若何。家計又若何。令胤令抱皆作何狀。區區伏渡。無任下忱。下生慈幃自十年來。長在欠寧。五日一損攝。十日一添劇。一年之內復饍。通計不過十數日矣。家貧親老四字。乃知古人骨髓中語。而晨昏之間。不能無傷哉之歎。自家身勢。常作兩樣人。食人之食。事已之事。已事人食兩不稱停。日復一日。忽忙度了。無片刻寧靜時節。喘喘若望月之牛。未知究竟作何等人也。兒豚去去春。成娶于本里李氏家。氣骨則頎然。所學蔑如。頭角頑憎。不惟才質之下愚。救不得鼻下一寸橫。常分半力塡塞捱過。是以坐在半上落下。於耕於讀。兩無所當可歎。老先生喪事安仰之痛。去而益甚。蓋先生以上智之資。得不傳之緖。通天人之妙。達聖賢之蘊。內蘊經濟。外自韜晦。養深積厚。德邵道尊。若遊聖人之門。則當在顔曾之亞矣。若生洛閩之時。則當與程朱幷鑣齊驅。而進不得施用於當時。退而不得其傳。門人弟子朱有能形容其德美者。遽然隔絶。如黃卷中千古上人。其爲斯文後生之不幸爲何如哉。此可與知者道。而難與不知者言也。先生之於先生。素所敬仰不淺。故略此仰布。如下生者。摳衣親炙。不爲不久。而朽木非時雨之所能化。故實無所得。而遽當今日。如嬰兒之失母。長時痛哭而已。惟先生每因風垂誨。則此生庶有卒業之地。不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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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경에게 답함 答林子敬 辛巳 신사년(1941) 《역설혹문(易說或問)》을 만약에 읽어서 완성을 한다면 어찌 세상에 보탬이 되는 문자가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눈앞에 오대양이 들끓고 수많은 나라가 호시탐탐 노려보는 것에 대해 도움 되는 것이 없는 것으로 겸연쩍 하게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니 어찌 공자가 계사(繫辭)를 저술할 때 노나라가 쇠약하고 제후들이 다투어 혼란한 것이 옛날처럼 여전했음을 보지 못하였겠습니까? 다만 내가 지은 책이 혹여 진선진미 하지 않은 점이 있음을 근심할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책에 대하여 젊었을 때 날마다 예에 따라 한두 번 읽은 이후엔 일찍이 하루도 힘을 쓰지 않았으니 진실로 《역》의 도리에 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자(정이)의 "수시로 변하고 바꾸어서 도를 따른다"는 뜻을 취한다면 오늘날 학자는 64괘에서 다만 마땅히 대과괘(大過卦)58)의 "홀로 우뚝 서 두려워하지 않고 곤란함을 당하면 목숨을 버리고 뜻을 이룬다."는 말로 당면한 간절한 일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금화사현(金華四賢)59)이 똑같은 데로 돌아가서 천지의 잘못을 억눌렸다는 비유는 저처럼 못난 사람이 어찌 그런 지경을 꿈에서라도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금화(金華)가 아닐 뿐만 아니라 땅이 또한 금화(金華)가 아니고 때 또한 금화(金華)가 아니니 어찌하겠습니까? 다만 머리를 쳐들어 지붕을 보며 깊이 탄식할 뿐입니다.편지에서 《역학계몽(易學啓蒙)》의 책을 논하면서, "한결같이 소강절을 따르고 괘를 그린 순서와 시초를 끼는 방법이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음이 없어서 절대로 인위적인 안배가 없으니 비록 복희, 문왕, 주공,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이 말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괘사전(繋辭傳)〉에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생(四象)을 낳고 사생은 팔괘(八卦)를 낳는다"는 문장에 근거하여, "소강절을 따르지 않는다면 주자를 따르지 않을 것이고 주자를 따르지 않는다면 공자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니 이 말은 대단히 옳습니다. 누가 감히 다른 말을 하겠습니까? 선사가 일찍이 황동발이 소강절의 가배법(加倍法)60)을 따르지 않으므로 편지를 보내어서 옛사람은 이와 같은 의론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함에 이르렀으니 일찍이 이것으로 믿을만하다 여긴 것입니다.편지에서 영남사람 이규준이 경전에 주석을 고쳤다고 언급을 했는데 그 책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참으로 만약 주자를 공격하는데 여력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설의 득실이 어떠한지 논하지는 않고 다만 한 가지 일어날 일은 사람마다 그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남보다 뛰어난 재주와 하늘에 통할 만큼 학문이 있다 하더라도 단지 그 의견을 서술하여 책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선현의 의론에 대해서 의심나는 것을 기록하더라도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감히 조금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누가 그에게 죄를 주겠습니까? 이제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고 멋대로 공격하는 것으로 일삼는다면 마음이 바르지 않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강희장은 공자, 기독교, 회교, 노자, 불가를 다섯 성인이라 여긴 자이고 똑같이 공자, 묵자, 석가모니, 예수를 존경한 사람은 양계초입니다. 우리들은 다만 마땅히 잘 분별하여 사양하고 물리치는 일을 하는 것 이외에 다시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중동 학문의 폐단을 답습하여 멸망을 재촉한 자라고 한 것은 어른이 참으로 옳습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학술에 폐단이 있는 것은 형세 상 반드시 이르는 것이니 비록 천하에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경관일지라도 말단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폐단이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다만 국권을 잡고 문맹을 주관하는 사람은 수시로 거문고 줄을 바꾸어 알맞게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중국은 주자 이후와 우리나라는 우암 이후에 일찍이 한 명의 군상과 종사가 출현하여 폐단을 구한 적이 없으니 그 점점 쌓여가는 형세가 어찌 지루하며 번잡하지 않겠습니까? 구속받아 박절한 것과 고루하여 천근한 것과 시비를 공격하는 것이 당신의 편지의 말과 같습니다. 사문의 흥망은 시운의 성쇠와 관련이 되어 있으니 인력으로 미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은 스스로 학문의 폐단을 구할 뿐이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편지에서 이미 근세학자가 천하국가에 뜻을 두지 않고 쓸데없는 말거리로 경쟁거리를 삼고 붕당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학문이 반드시 망할 것이라 한탄했고 또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표준을 세우지 않으면 백성 중에 음붕(淫朋)이 참특해지고 사람의 비덕(比德)61)이 멋대로 행해지는 것은 이치상 괴상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탄한 것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괴상할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진실로 그러하다고 여깁니다. 세상에 만약 표준을 세운 군주가 있다면 이른바 경쟁거리로 삼고 붕당을 세운 자는 모두 교화되어 천하국가의 진정한 학문을 위해 쓰여 질 수 있습니다. 이전에 조선에서 동인과 서인, 소론과 노론이 다툰 것이 어찌 모두 쓸데없는 말이겠습니까? 간혹 정사의 득실과 국례의 시비와 윤리의 정패 같은 큰 제목을 가지고 변설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표준을 세우지 못한 군주가 조기에 그 가부를 정했기 때문에 경쟁과 붕당의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아! 어찌 우리나라만 그렇겠습니까? 한나라 때 응방과 절보, 당나라 때 덕유(이덕유)와 승유(우승유), 송나라 때 낙촉천삭(洛蜀川朔)62)이 모두 이런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후대 선비들이 자리나 권력을 위하지 않고 다툰 것이 또한 어찌 모두 쓸데없는 말이겠습니까? 처음에는 성설(性說), 경의(經義), 예론(禮論), 천과 인의 원두(源頭)63), 성현의 종지(宗旨), 인간과 금수의 관계를 분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시작을 했지만 끝내는 서로를 공격하기에 이르렀고 쓸데없는 말을 마구하는데 귀착이 되었으니 이 또한 표준을 세운 군주가 도의와 예의를 나라 가운데에 밝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미 그렇습니다. 만약 사람을 논한다면 마땅히 그 가운데 나아가서 공격으로 마음을 삼지 않는 것을 간별해서 오직 큰 의리를 분별하는 것으로 일을 삼아 함께 해야 하니, 택당(이식)이 논한 '사계(김장생)는 진정한 학문을 했으나 그 나머지는 당여이다'라고 한 것과 같이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마음의 공사(公私)와 일의 당부(當否)를 묻지 않고 일체 지금과 옛적의 선비를 쓸데없는 것을 쟁론하여 반드시 학문을 망하게 한다는 구덩이로 몰아넣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일찍이 우리나라 당쟁이 끝난 이후에 태어나서 초연하게 한 터럭만큼의 당심(黨心)도 없고 또한 출중하게 천하국가에 유용한 진짜 학문을 한 사람은 오직 편지에서 거론하고 있는 유반계(유형원) 선생이 유일무이한 대군자라 생각했습니다. 《반계수록》 한권은 즉 왕을 돕는 도구이니 어찌 다만 경제 범위만 대략 통달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집안이 대대로 남인이었는데 율곡(이이)과 중봉(조헌)을 존경하여 믿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꺼이 복종토록 하는 곳입니다. 《대동경제》를 편집한 뜻은 세도를 보충할 덕으로 존경할만합니다. 그러나 《반계수록》을 정말로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근세의 이른바 공화라는 이름은 비록 중국과 우리나라에 사용하기는 좋아도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취할 수 없습니다. 헌법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삼대 전례 중에 이미 이런 뜻이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까? 어찌 반드시 저들의 이름을 취하겠습니까? 《대전통편》64)은 다만 명목(名目)과 도수(度數), 응행(應行)의 절목(節目)만 들고 본말을 두루 논하지는 않았으니 아마도 대문자를 편집하는 예로 삼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람되게 논함이 이에 미쳤는데 당신께서 너그러이 생각해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易說或問》, 若能見成, 豈不是補世文字? 如以目前無補於五洋鼎沸萬邦虎食爲歉, 則有不然者, 豈不見夫子著繋辭之日, 魯國之削弱, 諸侯之爭亂, 依舊自若乎? 只恐吾所著之書, 或有未盡善者耳。 未知如何。 澤述於此書, 幼少日, 循例一二讀後來, 未嘗一日致力, 固不足與語《易》道者。 然竊取程子隨時變易以從道之意, 則今日學者, 於六十四卦象中, 只當以大過之"獨立不懼, 困之致命遂志", 爲時下切務, 又以爲如何?金華四賢, 同歸拗過天地之喩, 若此無似, 何能夢見此境? 且非惟人非金華, 地亦非金華, 時尤非金華, 如之何哉? 只有仰屋, 長吁而已。尊喩論《啓蒙》之書而曰: "一從康節, 而畫卦之序, 揲蓍之法, 無一非自然, 絶無人爲之安排, 雖使羲文周孔復起, 不易其言。" 又據「繋辭傳」"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之文而曰: "不從康節, 卽不從朱子, 不從朱子, 卽不從夫子。" 此言極是。 誰敢異辭? 先師之曾以黃東發不從康節加倍法, 至有下書, 蓋言古人有如此之論云爾, 豈以是爲可信也。喩及嶺人李圭晙改註經傳之云, 未見其書。 誠若攻斥朱子不遺餘力, 則未論其說之得失何如, 只此一事, 可人人得而攻之者。 渠雖有絶人之才通天之學, 只可述其意見爲成書而已。 先賢之論, 雖不免記疑, 尊畏之心, 不敢少忘, 則夫誰有罪之? 今不出此, 以肆然攻斥爲事, 則其心不之正可知。 至於中國江希張之以孔基回老佛爲五聖人者, 卽又一并尊孔墨佛穌之梁啟超也。 爲吾輩者, 只當辨明, 辭闢之外, 更無他道耳。 夫此二人者, 襲中東學術之獘, 而促其亡者, 尊喩是矣。 雖然, 學術之有獘, 亦勢之所必至, 雖天下之良法美規, 及其末也, 末嘗無獘。 只在秉國成主文盟者, 隨時改絃而救之耳。 要之, 中國之朱子後, 我東之尤菴後, 未曾有一君相宗師出而救獘者, 其積漸之勢, 安得不支離煩鎖? 拘刻迫切, 固陋淺近, 是非攻撃, 如尊喩乎。 大抵斯文之與喪, 關時運之盛衰, 又非人力之所能及。 但在吾輩自救吾學之獘而已, 未知如何。尊喩旣以近世學者, 不用志於天下國家, 以無用說話資爭競樹朋黨, 爲東國學問之必亡而歡之。 又謂居君位而無建極者, 則民之滛朋僭忒, 人之比德頗僻, 理無足怪。 澤述竊以爲所歎者, 非曰不然, 而所不怪者, 乃誠然矣。 世苟有建極之君, 則所謂資競樹黨者, 皆化而爲可用於天下國家之眞學問也。 向也我國東西老少之爭也, 豈皆無用說話? 或因政事之得失, 邦禮之是非, 倫理之正悖, 大題目不容不辨者, 而以無建極之君, 爲之早定其可否, 故馴致乎爭競朋黨矣。 噫! 豈獨東國然也? 如漢之膺滂節甫, 唐之德裕僧孺, 宋之洛蜀川朔, 皆坐此也。 其後士子無位權而爭者, 亦豈皆無用說話? 始因性說經義禮論天人源頭聖賢宗旨人獸關係之不可不辨者, 而終而至於互相攻撃, 則歸於無用之說話, 亦以無建極之君明道學禮義於國中故也。 此則旣然矣。 若論人, 則當就其中而揀別得不以攻撃爲心, 惟大義理是辨爲事而與之, 如澤堂所論沙溪學也。 其餘黨也之云可也。 恐不可以不問心之公私事之當否而一切將今昔之士歸之爭說無用必亡學問之科, 未知如何。 蓋鄙則嘗以爲生於我東黨爭之後, 超然無一毫黨心, 而又卓然爲有用於天下國家之眞學問者, 惟來喩所擧柳磻溪先生, 爲獨一無二之大君子也。 其《隨錄》一書, 卽王佐之具, 豈但謂之略通經濟範圍? 家世南人, 而尊信栗谷重峰者, 令人悅服處也。 《大東經濟》編輯之意, 可仰爲補世道之德。 然未敢知果能過於《隨錄》之書也。 且近世所謂共和者名, 則雖好用於中東, 則獘不勝言, 不可取也。 憲法則可矣。 然三代典禮中, 不已具此意乎? 何必取於彼名也? 至於《大典通編》, 只擧名目度數應行節目, 而不備論本末, 恐不足爲大文字編輯之例。 僭易及此, 未知尊意更加善恕否。 대과괘(大過卦) 육십사괘 중 28번째 괘로서 태(兌)가 상(上)에 있고 손(巽)이 하(下)에 있는 괘로서 택풍대과(澤風大過)라고도 한다. 금화사현(金華四賢) 왕백(王伯), 하기(何基), 허겸(許謙), 김이상(金履祥)를 가리킨다. 금화주학(金華朱學)의 중요한 전인(傳人)으로, 금화산(金華山) 북쪽에 은거하여 강학과 저술에 전념하며 주자학을 널리 전파하였기에 금화사선생(金華四先生)이라고 불렸다. 가배법(加倍法) 1인 태극(太極)에서 음(陰)과 양(陽)인 양의(兩儀)가 생기고 양의에서 사상이 생기고 사상에서 팔괘가 생겨 각기 2배씩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음붕(淫朋)이……행해지는 《서경(書經)》〈홍범(洪範)〉에 "무릇 서민들이 사악한 당을 만들지 않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무리를 짓는 일이 없는 것은 임금이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凡厥庶民, 無有淫朋, 人無有比德, 惟皇作極.〕"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낙촉천삭(洛蜀川朔) 송나라 철종(宋哲宗) 시기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는 수구파(守舊派) 조신(朝臣) 가운데에, 정이(程頤)를 우두머리로 하는 낙당(洛黨)과 소식(蘇軾)을 영수로 하는 촉당(蜀黨)과 유안세(劉安世)의 삭당(朔黨)을 가리킨다. 천당(川黨)은 사천(四川) 출신인 소식의 촉당을 말한다. 따라서 천당과 촉당은 같은 당이다. 원두(源頭) 핵심, 근원이라는 의미로 조선시대 학자들은 무엇을 특히 강조할 때 원두(源頭)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다. 김장생이 쓴 〈행장(行狀)〉에 "선생은 심(心)ㆍ성(性)ㆍ이(理)ㆍ기(氣)의 근원에 대해 끝까지 연구하여 투철하고 시원스러웠다.[先生於心性情理氣源頭。極深研幾。通透灑落]"라는 말이 있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35 〈행장(行狀)〉 대전통편(大典通編) 1785년에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속대전(續大典)》 및 그 후에 간행된 법령집을 통합하여 편찬한 법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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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윤명영환에게 보냄 與鞠潤明瑛煥 ○甲戌 갑술년(1934) 오늘날 인심은 망극하고 의리는 꽉 막혀 음성의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하고 원고를 고치는 변고에 대해 같은 목소리로 변론하고 성토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록 이전에 이미 변론하고 성토했던 사람 중에서도 점차 지키던 것을 바꾸어 처음에는 한 명의 괴수만 제거하고 나머지 무리들과는 소통하자는 의론이 있다가 얼마 후에는 한 명의 괴수까지도 소통하자는 의론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다면 선사의 억울함은 끝내 설욕되어 밝혀질 날이 없을 것입니다. 이를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오직 존형만이 우뚝 변하지 않고 변론하고 성토하기를 더욱 엄하게 하셨으며, 잠깐 만나 말을 나누는 사이에도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견해를 바꿔주니 진실로 높이 우러르는 바입니다. 지난겨울에 처신하신 바는 의리가 곧고 말이 씩씩하여 다른 부류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강직하게 확립된 것을 알아 억지로 구속할 수 없게 하셨으니, 비록 옛사람의 완전한 절개라 해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항상 벗들을 대해 존형의 일을 말하며 동문의 빛이라고 스스로 축하했습니다. 절개를 지키고 무함을 변론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리이나 무함을 변론하는 것은 다시 식견이 밝은 것에 관계됩니다. 매번 절개를 지키는 자를 보면 식견이 밝지 못해 오점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컨대 이미 능한 것으로 스스로 만족해하지 마시고 반드시 명확하게 분별하는 공부에 더욱 힘을 써서 원만하고 아름다운 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見今人心罔極, 義理晦塞, 陰人誣師改稿之變, 不惟不肯齊聲辨討, 雖前日已行辨討者之中, 稍稍變其所守, 初有除一魁而通餘黨之論, 旋復作并通一魁之論, 如此則先師之冤枉, 終無雪白之日矣。 此將柰何? 惟尊兄卓然不變, 辨討愈嚴, 至於立談之間, 使人發蒙而改見, 誠所景仰。 昨冬所處, 又義直辭壯, 使異類, 知其剛立, 不可強勒, 雖古人全節, 何以加此? 常對知舊, 道尊兄事, 自賀同門生光。 蓋守節辨誣, 同是一義, 而辨誣更係識明。 每見守節者, 以識不明, 以致玷累者多。 願勿以已能而自足, 必須加勉於明辨之功, 以成圓美之德, 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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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윤명에게 보냄 與鞠潤明 丙子 병자년(1936) 요즘 세상 풍조의 위급함이 날마다 더욱 긴박해지고 있어서 사방에서 들리는 소식에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놀라니, 요컨대 목숨과 머리카락을 보전할 날이 얼마 되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이 얼마 안 되는 날이 비록 지극히 짧고 촉박하더라도 일찍이 채허재(蔡虛齋 채청)의 말을 들으니, "철인은 하루로도 만세의 공업을 이룰 수 있다." 했는데, 하물며 지금 남은 날이 또한 하루보다는 거의 많을 뿐만이 아님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만약 그럭저럭 목숨이나 부지하며 지낸다고 한다면 비록 3만 6천 날이 있더라도 또한 거북이나 뱀처럼 수명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니 어찌 귀하겠습니까? 우리들은 남은 날이 많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다만 본사(本事)가 허술한데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며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아 이 생을 잘못 사는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음성 오진영의 무리는 때를 타고서 나날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우리 당은 세를 잃고서 시시각각 더욱 쇠잔해지고 있으니, 전에 스스로 정정당당하다 했던 자들이 이제는 문득 모두 얼굴을 바꾸고 자취를 더럽히며 기꺼이 저들과 영합하고 있습니다. 이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선사의 도가 박멸되고 잠식되어 다 없어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일각이라도 허술하게 그럭저럭 세월을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 일을 끝내 처리하여 결론짓지 못한다면 비록 세상을 덮을만한 공업과 세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행적일지라도 다만 지류와 말단일 뿐입니다. 도리의 근원과 본령이 잘못되어 이미 멀리 와버려서 거리로 계산할 수도 없으니, 항상 벗을 잃고 홀로 고루하게 지내 아무런 계책을 세울 수 없음을 한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동지를 얻어 이 도를 강론하여 밝힐 것을 생각하지만 막막한 천지에 누가 그런 사람이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집사일 것입니다. 집사는 뜻이 깨끗하고 행실이 후덕하여 오래도록 다른 사람의 흠모를 받아왔습니다. 매번 부는 바람을 맞으며 집사를 그리워하였으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거니, 어느 날인들 잊으리오![何日忘之]"라는 시구65)가 바로 제 마음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금일 이후로 더욱 재주 없고 무능하고 졸렬하여 큰일을 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 왜이겠습니까? 평생 오랜 친지들로 은혜와 예로써 서로 교제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모두 반기를 들고 원수가 되었으니, 만약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에 이를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본래가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히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일이 사문과 관련이 되어 처음부터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허물하여 물러나서는 안 되었을 뿐이니, 이는 스승에게 받은 은혜66)가 벗어날 수 없는 고충67)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오호라, 그 고충이 이와 같은 줄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 이것을 스스로 말하자니 비록 집사의 넓은 아량이 수용해주고 높은 지혜가 살펴주어 드러내주실 것을 믿지만 스스로 용렬함을 돌아봄에 부끄러움을 느낄 따름입니다. 가만히 들으니 군자는 덕으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저는 비록 군자는 아니지만 집사는 진실로 아름다움을 증진시킬 수 있는 분이니, 제가 진실로 조금이나마 아는 것이 있어 집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또한 장차 남에게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루가 만 년 같다는 말로 받들어 올리니 이미 잘 알고 있는 일이라고 하지 마시고 다시 마음을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도리의 근원과 본령이 더욱 드러나 밝혀지고 일처리가 결론이 나는 효험도 장차 차례대로 드러난다면, 이것은 다만 집사에게만 다행이 아니라 참으로 사문의 다행일 것입니다. 見今世風之急, 日復日迫。 四方所聞, 朝暮驚心。 要知命與髪保知有幾日。 此有幾日, 雖極短促, 而嘗聞蔡虛齋之言曰: "哲人能以一日, 作萬世之業。" 況今有日, 又不止幾多一日者乎? 若曰"悠悠泛泛", 雖有日三萬六千, 亦不過龜蛇之引年耳, 曷足貴哉? 吾儕不患餘日無多, 只患本事之虛踈, 悠悠泛泛漫無主張, 以失此生耳。 陰徒乘時, 日以益熾, 吾黨失勢, 時以愈殘。 蓋向之自謂行行堂堂者, 而今輒皆換面汙跡, 樂與之合, 若此不已, 先師之道, 幾何不撲滅晦蝕而且盡乎? 此正吾輩片刻不可虛踈悠泛者也。 若使此事而終無區處著落, 則雖蓋世功業絶代懿行, 只是支流餘裔耳。 道理源頭本領, 失之已遠, 不可以道里計也。 常恨索處孤陋無以爲計, 思得同志講明是道, 茫茫天地, 誰歟其人? 如有其人, 則必執事也。 執事志潔行厚, 久爲人欽, 每臨風想望, '中心藏之, 何日忘之'者, 是也。 如澤述者, 今以後, 益以自知不才無能鄙劣不足以有爲也。 何者? 平生久要恩禮相接者, 輒皆反旗, 便成仇讐, 若非無狀, 豈意致此? 本合甘受, 不敢爲尤, 但以事關師門, 初不當以無狀自引而已者。 是庸葛虆甚於沐漆而求解也? 鳴呼! 孰知其苦衷有如此者乎? 今此自言, 雖恃執事之弘量有以容之高明有以察之而發, 自顧劣下, 旋覺慚愧耳。 竊聞"君子愛人以德", 澤述雖非君子乎, 而執事則實有可增美者。 澤述苟有一知半解之可以有助於執事者, 則愛德之心, 亦將不後於人。 所以以一日萬世之說奉獻, 勿謂已見之昭陵, 而更加之意焉。 源頭本領之道理, 益以著明, 而區處著落之效, 亦將次第而見矣。 此非獨爲執事之幸, 實師門之幸也。 마음속에 … 시구 《시경(詩經)》 〈습상(隰桑)〉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구절로, 이 시는 군자를 만난 즐거움을 노래한 시이다. 스승에게 받은 은혜 원문의 '갈류(葛虆)'는 칡덩굴로, 은혜 받음을 의미한다.《시경(詩經)》 〈주남(周南) 규목(樛木)〉은 후비의 은덕에 감복한 후궁들이 지은 시로, "남산 아래로 굽어 늘어진 나뭇가지 있으니, 칡덩굴이 얽히었네. 즐거우신 군자는 복록에 편안하도다.[南有樛木 葛虆纍之 樂只君子 福履綏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벗어날 수 없는 고충 원문의 '목출이구해(沐漆而求解)'는 '옻으로 머리를 감으면서 펴려고 한다'는 뜻으로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송진소장서(送秦少章序)〉에 나오는 말이다. 어딘가에 매어 있어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말할 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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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오남두에게 답함 答白光五南斗 ○乙丑 을축년(1925) 형이 보낸 편지에서 '월사 이정구(李廷龜)의 변론이 없었다면 정응태(丁應泰)가 우리나라를 무함한 것1)은 무함 당한 채 끝났을 것이고, 여러 군자의 변론이 없었다면 오진영(吳震泳)이 선사를 무함한 것2)도 무함 당한 채 끝났을 것이다.' 라고 했으니, 이것은 참으로 명확한 의론입니다. 오호라! 사람들이 모두 나라가 무함을 당한 것은 통분할 줄 알면서 스승이 무함을 당한 것은 통분할 줄 모르니, 무엇 때문입니까? 어찌 스승을 부모나 임금과 다르게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세 분의 은혜로 살기 때문에 똑같이 섬겨야 한다는 의리3)를 알지 못하는 것이니 사람으로서 이러한 의리를 모르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정응태가 우리나라를 무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임금과 스승을 잊고서 난신적자를 허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兄喻: "無李月沙之辨,則丁應泰之誣國也,誣而已矣; 無數君子之辨,則吳震泳之誣師也,誣而已矣。" 此眞確論也。鳴呼! 人皆知國誣之爲痛憤,而不知師誣之爲痛憤,何也? 豈以師與君父差殊觀故耶。此不知生三事一之義者,人而不知生三事一之義,則烏得謂人乎哉。若謂吳不誣師,則是謂丁爲不誣國者也,非忘君師與亂賊者乎? 정응태(丁應泰)가……것 선조(宣祖) 31년(1598) 명나라 병부주사(兵部主事)인 정응태가 조선에서 왜군(倭軍)을 끌어들여 중국을 침범하려 한다고 자기 나라에 무함한 사건이다. 이때 월사가 조선국변무주문(朝鮮國辨誣奏文)을 지은 뒤 진주 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무함 사실을 밝힌 결과 정응태가 파직되고 마침내는 옥에 갇혀 죽게 하였다. 오진영(吳震泳)……것 오진영이 일본 총독부에게 문집 출판 인가를 받아 일제치하에서 간재가 자신의 문집을 출판하라 명했다고 간재 문인들을 속인 것을 말한다. 세분의……의리 부모와 스승과 임금 세 분을 똑같이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국어(國語)》 〈진어(晉語) 1〉에 "사람은 세 분의 은혜로 살게 마련이니, 그분들을 똑같이 섬겨야 한다는 성인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버이는 낳아 주신 분이고, 스승은 가르쳐 주시는 분이고, 임금은 먹여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民生于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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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복지환영에게 답함 答房福之煥永 ○丙寅 병인년(1926) 방장산(方丈山)에서 바람 쐬고 시를 읊자는 편지의 말씀은 저도 오랫동안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일입니다. 그 말을 들은 이래로 마음이 상쾌해지며 산들산들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오히려 한편으로는 예전에 선사를 모실 적에 함께 구경 가자고 이끌었을 때 병공(炳公, 김준영)을 따라 나서지 못했던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이제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마음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은 한번 기회를 놓치면 뒤에는 이와 같이 쉽게 도모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생각건대 형과 저는 모두 노쇠하였으니 어찌 늙기 전에 나란히 한번 천왕봉(天王峰)과 반야봉(般若峰)의 정상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方丈風咏之喻,是積營而未得者。聞來心爽,習習欲風,却恨曾被先師待時同賞之挽而不得追炳公之躅也。至今二十年餘,未嘗不往來於心。凡事一失機會,後不易圖有如此者。念兄我俱衰矣。安得迨未老前聯袂,一上天王、般若之頂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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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奇友章一【宇夔】文 嗚呼。人生于世。壽之多者。不過百歲間存沒。以百歲間較之。則固有壽夭長短之不齊。而以千百歲觀之。則彭咸不足爲壽。冥靈亦不爲長。故達人夭不爲慽。壽不爲多。夫士之處世。苟能盡吾之道。可使令名不朽。流芳傳遠。則雖朝聞夕死。有何憾焉。然豈易言哉。抑不能修其道。而老而不死。長壽亦何益。嗚呼。余友奇君。幼而穎悟長而高邁容姿淸秀。氣宇端潔。旣親炙於平日家庭之訓。又文學兼之遠近人士一見。而語酬酌之贍敏。言論之淸快。孰不湊情服心。且廉而喜施。剛而不阿。平生足跡。不入於富豪之門。性癖頗在山水間。至於末藝。製述文字。透獲眞格。君時年二十有九。士友之所期待者。豈淺淺哉。嗚呼。斯人而止于斯。不可知者命也。不可信者天也。況上奉七耋重堂。下無三尺孤哀。德門洪。福胡至於斯。毅坤年自十七八。忝在末契。鶼蟨門屛。幾二十年于玆。當時君年於余少七歲尙髫齡。知覺所見。則已不可同日而語也。自近年來。相期日深。見勵彌切。話心內事如親戚。責善誘掖若嚴師。情之深義之重。不足以紙墨形諸君。嘗語余曰。吾與君以屯質相合。在君則謙辭。而在吾則格言也。若非知我之深。豈如是說來也。嗚呼。痛哉病未聞報。終未面訣。孰謂此友永作此別。第念君之精明堅剛。猶不能存。以余之昏弱孱憒。至此寄世。亦是異事。安知樗櫟未落。芝蘭先萎。駑駘尙在。驥騏前躓耶。仁者壽之。栽者培之。天之理固然。而顔淵之夭。冉牛之疾。古人亦有之。命矣夫。奈何。幸有賢諸季。在襟裾連床。於夫君抑其次。門戶之責。今焉在玆。而朋友之相從者。亦將有所依靠。余以是自慰。凄風一奠。情溢辭縮。靈若無知。哭之何爲。靈若有知。此心必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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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黃叔度。汝南稱顔子。顔子亞聖也。而以叔度之賢引擬者。不己重乎。否不然也。十室之邑。尙有忠信如夫子。氣味志尙。殆庶於顔子。容或有焉。學其所學。雖不及而不失爲賢。此引擬之不以爲嫌也。以吾所知。東塢先生曺公。殆其人歟。昔吾先子。講道南服。公以淸粹之姿。得時雨之化。造到淺深。有非末學所易窺測。而其見於行事者。或有符合於一二。若曰實若虛。有若無。犯而不校。若曰見其進。未見其止也。若曰得一善。則拳拳服膺而不失之。以此三言者求公。則顔何人。余何人。有爲者亦者是。公盖自詐而不讓矣。及其居陋巷。簞瓢屢空。而其樂不改。不知所樂者何事。而又何校似之也。所以鄕人稱之爲顔子。如汝南之稱於黃生。非一日矣。是以吾先子之門。敎育英材。不爲不多。而公在德行之科。爲高足而尤傑然矣。第其被詡於師門者。若曰士弘孝於親。故事我如此。若曰千萬人中。常知有已。吾見士弘。若曰士弘自知不足。安分竢命。又以此三言者求公。則所造之深。許可之重。後百世可以想像。而上所證嚮者。不爲空言矣。然則公之文章大略在此。區區於篇章之末。則抑末矣。雖然咳唾攸及。後人珍之。不啻珠玉。剞剛之議。族戚知舊。爭先致力。以致紙騰。而不止爲一人一家之藏。播布之日。今與後。知吾言非阿好矣。卷帙旣整。胤子錫休。謂知公深莫余若。俾書其卷端。歲己亥人日。幸州奇宇萬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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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錄 序(奇宇萬 1899)卷 1詩 : 新寓東塢以一絶詩寄江上諸友, 謹次三淵金先生四絶韻, 次睡雲亭重修韻, 戊辰冬至陪蘆沙先生留觀庵, 題南庵石泉, 東塢原韻, 春夜宿寒山偶題, 讀書南庵奉別觀庵留奇友晉錫宇蕃, 呈江上奇友晉錫, 四十除夕韻 附先師次韻, 辛未冬自沙上將歸覲爲雪所魔更留一日以詩贈諸益三首, 挽奇友章一宇虁, 次鄕人飮酒韻, 寄謝講會諸生, 奇閔都事致完匪所, 次北山朴丈鍾浩新居韻, 東塢諸景二十五首, 敬次桃核盃韻二首, 安君行五達三十年久要瀛海送別不能無贐以一絶詩奉呈聊寄紵縞之義, 謹次醉山朴丈福林新居, 奇晉士會一宇萬甫以長篇二十六句見贈步韻以寄, 奉次奇司果亮衍一鑑亭蓮池韻三絶, 次張友榮汝鉉三餞春詩, 挽姓名欠攷◎二首, 贈李斯文承鶴, 贈別李友日端升煥, 贈姜斯文馨秀, 挽柳丈桐庵志驥, 挽姜丈春坡寅會, 贈金禹範咸子潤遊山行, 追次丁斯文錦齋夜韻, 挽奇友晉錫, 戱呈族人羽瑞三絶, 謹次蘆沙先生回甲除夕韻, 贈柳甥允錫讀書, 步韻答金生峻黙, 贈讀書諸兒, 戱次月皐松沙次柳河東八十韻, 觀庵奉別李丈鳳燮, 送李慶運啓徵歸耽羅, 挽李上舍最善, 挽蘆沙先生, 庚辰五月十夜夢見故友章一相向而哭覺甚悵然舊懷如新成一絶詩記夢, 戱贈任致九, 挽金君穉奎, 庚辰歲除卽余五十除夕也孤露之生奄又哭寢此往四十時其感懷復如何用朱文公四十五十無聞韻續吟一絶以寓自警, 惺惺翁示以原韻請余賡和忘拙謹步以供一粲, 挽金友仲翼采衡, 辛巳暮春扶寧金君伯存鍾順講會于竺山佛宇歸路見訪以二絶詩示之彈指相別步韻追謝, 鄭友國彦在弼與同門諸友修契于文殊寺次四十除夕詩寄示而繼聞諸友有韻因其韻賡和奉呈聊發一笑, 送崔卿五宗衡歸茂山, 辛巳十二月二十九日先師二祥奄過與同門諸益守歲于月松臨別奉呈南坡李丈僖錫, 次琴書齋韻, 乙酉冬至宿黃龍奇友弘衍家主翁與櫟梅諸翁和杜工部至日韻囑余賡之忘拙走次, 悼安達三行五, 華南老人趙胤秀逢環當歸留與信宿臨別贈言, 次華南詞宗, 丙戌除夕與族人友生守歲于儉巖三從叔炫五第, 丁亥上元夜諸益來會, 挽金丈孝源, 贈齋中讀書二首, 次奇上舍麒鎭遊太白山黃池韻, 三石亭月夜追和李上舍喬應城樓題月, 追次喜懼堂韻, 寄奇上舍麒鎭匪所三首, 次鄭翁八狂詩, 追步奇上舍回甲韻, 沙上耕叟奇亮衍以古琴一與唐人所編譜六烏遺之蓋有意也然余素昧音律雖甚愛之奈手疎何三首, 贈宗人三隱翁, 謹次繼春園朴性弘韻, 戱題雙女, 溪隱翁柳樂淵以詩見贈步韻賡和, 採菊, 觀魚, 持月, 初雪, 題對月軒, 鷲棲彦會, 與月皐趙性家龍岡奇弘衍諸名勝留對月軒, 與月皐龍岡留鷲棲旬浹還到東岡, 自鷲棲抵東岡信宿還別, 挽卞丈文華卷 2書 : 上蘆沙先生書二, 與族弟子厚載坤二, 與族人羽瑞尹承, 答宗人都事斗煥, 與柳甥允錫與三答二, 答趙月皐性家, 與李南坡僖錫書, 答李太守東奭書, 上李太守載哲書二, 答安上舍重燮書答一與一, 與金莘湖祿休, 與奇松沙宇萬與六答二, 答奇上舍麒鎭答二與二, 答韓寢郞晉錫答二與一, 與奇沃溝亮衍二, 與安敬浩基舜, 答奇立夫宰, 答宋致遠暎, 答朴元淑升陽四, 與奇之日益얼, 與金文兼相晙, 答李慶運啓徵, 答金在璿基衡二, 與安行五達三, 與金大壽命鉉, 答羅儀伯壽宜, 答李士文奎魯, 與金禹範在錫, 與金仲心在沃, 答李日瑞升煥, 答柳悅卿志普, 答梁子克疇黙, 與金仲翼采衡, 與潭陽田氏刊所, 與鄭正言奎三喪側, 答校會所, 答尹宗檜, 答姓名欠攷, 家狀, 行狀(奇宇萬 撰, 1896년), 墓碣銘幷序(崔益鉉 撰)跋(曺錫一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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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奇沃溝 山門嚮別。月盈朒者三矣。纔隔一嶺。漠然如天涯地角。何悵如之。只得日夜神馳夢想而已。伏問歲暮兄候震艮勞攘中。無或愆損。先達渾家搬移。凡務整頓耶。百口團聚。山中滋味。想復津津。但從此村落意思滋多。而山林氣味漸尠。是則可恨。弟自那歸後。還處舊廊。蛛網鼠突。凝塵滿室。膝不堪容。亦莫非命物者處分。奈何。近得南冥集。日與卷中人爲得友。其氣岸之魁梧。文法之遒勁。足可想來於三百年後。但恨月皐不在傍同討也。校理與石蕉諸兄。間或相聚耶。願聞願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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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기성에게 보냄 與鄭國振基聲 ○乙亥 을해년(1935) 때때로 친구 전사견(田士狷)을 만나 좌하(座下)의 소식을 들었는데, 법도에 지킴이 있고 절조가 더욱 굳세어 맹세코 치흑(薙黑)119)의 욕됨을 받지 않으며 더욱더 위벽(衛闢)120)의 책임을 다하여 우뚝하게 퇴파(頹波)121)의 기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전사견은 눈이 높고 입이 곧아서 구차하게 다른 사람을 칭찬할 사람이 아니니, 나는 이 말을 통해서 좌하가 진실로 이런 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사의 영혼이 어찌 "그 바름을 잃지 않은 사람은 정씨의 아들이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흠모하여 우러를 뿐만 아니라 우리 당(黨)에 믿을 분이 있음이 매우 기뻤습니다. 좌하가 수립한 것이 이미 이와 같으니, 학문(學問)과 사변(思辨)을 통해 정미(精微)의 것까지 철저히 연구하는 공부에 매진하여 말을 세우고 책을 써서 오묘함을 발휘하여 선사가 전한 도를 광대하게 하기를 더욱 바랍니다. 그리하실 수 있는지요? 時逢田友士狷,聞座下繩尺有守,節操彌厲,誓不受薙黑之辱,益盡分衛闢之責,卓然爲頹波之柱。狷友眼高口直,非茍譽人者,吾以是知座下之實有是德也。先師之靈,豈不曰"不失其正者鄭氏子"乎? 欽仰之餘,充然喜吾黨之有所恃也。座下樹立旣如此,更願益加意於學問思辨窮研精微之功,立言著書,發揮奧妙,使先師所傳之道,有以弘大之,如何? 치흑(薙黑) 머리 깎고 얼굴에 먹칠하는 것을 말한다. 위벽(衛闢) 정도(正道)를 보호하고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 여기서는 사문(斯文)을 호위하고, 이단을 물리치겠다는 것을 말한다. 퇴파(頹波) 퇴파는 거세게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물살을 말하는데, 무너져 가는 세상의 풍속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황하의 중류에 거센 물결을 막고 있는 지주(砥柱)라는 바위산이 있는데, 이 지주와 함께 '퇴파지주(頹波砥柱)'라고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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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익부사익에게 보냄 與吳翼夫士益 乙酉 을유년(1945) 밝은 하늘이 재앙을 내린 것을 후회하여 조국이 광복을 맞았으니, 만백성이 똑같이 경하하는 마음을 어찌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큰 경사를 함께 하는 것은 피차간에 현재 상황이니, 길함과 흉함, 고통과 즐거움은 물을 것도 못 됩니다. 국가의 정책은 본디 책임자가 있으니, 산림의 서생은 다만 좋게 시작하고 좋게 끝마쳐서 태평시대가 길이 지속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문(斯文)과 관련된 일로서 여러 가지 계책도 이때에 미쳐서 시원하게 시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문하에서는 선사의 문함을 완전히 변론하지 못하였으니, 수고(手稿)를 간행하는 일과 난본(亂本)을 거두어 없애는 일을 마땅히 차례로 해야 할 것인데, 뜻을 같이 할 사람이 몇 사람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이 일을 우러러 물을 수 있는 자는 형배(兄輩) 가 아니면 누구이겠습니까?아, 저 음성(陰城 오진영)은 내리 비춰주던 일월(日月)이 깨져 떨어졌으니, 장차 어디에 의지하고 우러르겠습니까? 진실로 가련합니다. 그가 무함한 말 가운데 이른바 '세상이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으니 헤아려 하라.'는 것은 어찌 가장 핵심적인 대목으로서 통탄할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 원수 오랑캐가 탐하고 포학하여 약소국을 삼키고 교만하고 패려궂어 강대국을 침략하는 것을 보고서는 비록 아녀자와 어린애라도 모두 반드시 망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선사의 명철함으로 일찍이 망할 것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앞날을 알 수 없다."고 했겠습니까? 선사가 일찍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왜가 망한다면 내일 죽더라도 절대 유한이 없으리라.[倭亡明日死,萬萬無所恨]"라고 하였고, 또 육검남(陸劔南)113)의 "왕의 군대가 북쪽으로 중원을 평정하는 날에, 가제(家祭)를 지낼 적에 아버지께 고할 것을 잊지 말아라.[王師北定中原日,家祭無忘告乃翁]"는 시를 외우며 말하기를 "이는 먼저 내 마음을 안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왜가 반드시 망할 것을 아시고 기다린 것이 어찌 분명하지 않겠습니까?대개 "오늘 이후에 세상이 어찌 될 수 알 수가 없다."고 한 것은 더욱더 그가 무함한 것임을 드러내어 분별할 것도 없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다행입니까. 우리들은 이미 만백성과 함께 경축하는 것 외에도 별도로 경축할 것이 있게 되었으니, 어찌 선사의 무함이 절로 명쾌하게 설욕되지 않겠습니까? 두 형의 고명한 견해는 어떠합니까? 회신하여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皓天悔禍,祖國興復,萬姓普慶,何可形喻? 大慶所同,彼此現境,休咎苦樂,不足問也。國家政策,自有任者,林下書生,但願善始克終,永奏太平而已。惟是事關斯文種種猷爲, 及此可以霈然行去,而在吾門,則辨誣之未盡,手稿之刊行,亂本之收洗,當次第有事,而未知同志者幾人。今日可以仰問此事者,非兄輩而誰也?噫! 彼陰照臨之日月破落矣, 將於何而依仰? 誠可哀也。蓋彼誣中所謂"世不可知,料量爲之",豈非最爲眼目而可痛者乎? 觀夫讐夷之貪虐而吞弱小、 驕悖而侵強大,則雖婦孺皆知其必亡,以先師之明,曾不知其亡,而曰"世不可知"也乎? 先師嘗有詩曰: "倭亡明日死,萬萬無所恨。" 又誦陸劔南"王師北定中原日,家祭無忘告乃翁"之詩曰: "此先獲我心。" 其知倭之必亡而待之者,豈不較然乎?蓋"當今日而後,世不可知"之云,益見其爲誣而無待乎辨矣,何幸何幸! 吾輩旣與萬姓同慶之外,別有可慶者,豈非師誣之自底快雪乎? 未知二兄雅見以爲如何? 幸回教之也. 육검남(陸劔南) 검남은 육유(陸游)의 호이다. 검남은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일대로 검각(劒閣)의 남쪽 지역인데, 육유는 이곳에서 벼슬하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후에 자신의 시집을《검남시고(劍南詩稿)》라고 이름하였다. 시는 육유가 임종 때 남긴 〈시아(示兒)〉로 《검남시고》권85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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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景有【準基】 春信載半。安得與君看花題鳥。評品造物。做至樂於擧面東風耶。侍餘湛樂。益復茂祉。溯仰底懷。夙夜憧憧。劣狀脫不得舊時庸懦。然自從粗知天地間有爲己之學一條路以後。雖做不得。而此心則未嘗不念念也。君才器豪邁。志氣偉然。何不妙歲發軔。使吾黨有人耶。世間事無非學問中事。何必遷延日月。姑待後日耶。望須發憤勇躍。以副我區區之懷。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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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金秋槎序 古之人多不得焉者。余謂秋槎翁。今世之古人也。於保身之道。處世之方。非知不周。而行不愼也。以其古。故亦不得於世者久矣。雪山千里。旅館三載。經浩劫於雪雨翻覆之中。而自家古態常依舊。雖能使之不得於今。不能使之不獲於古也。今旣天定命駕故山。過故黃石之鄕。顧疏梧子於梧川草廬。爲致別意信宿。而僕夫整駕。驪駒在路。疏梧子爲之遠送于野曰。嗚乎。人之生世。千古在前。萬古在後。中間百年。不過夢一場也。今日分合。又是夢中之夢故山。他日閒俯仰於天光陰影【天雲亭號】之中。追念過境。則脫然如大寐之得醒。疏梧影子未必不依依於夢一邊也。且吾聞之。嶺之南。古多有有道者。今之君子。亦皆古之人。如有問外湖亦有好古之人爲言。天德之陰。甕牖之室。有所謂疏梧子者。愚且陋於世間甚事。一無所可。但其平生欽仰有道者。常嘐嘐然曰。古之人古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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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 崔琡民 沙上一再面。熲熲在心曲。資稟儘厚深。天然去邊幅。隱几工夫大。承緖早有的。皓首遙相望。詎意歸駕促。人生故如許。衰老盡同浴。生芻爲君采。願言置一束。雞絮隔關山。嗟晩薤歌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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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錄 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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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府君諱毅坤。字士弘。號東塢。曺氏系出昌寧。始祖諱繼龍。尙新羅眞平王公主。封昌城君。因籍昌寧。在麗朝八平章五小監。代有偉人。至諱庶號淸澗。野隱田先生門人。當我太祖更化之初。承命書洪範以進。太宗朝奉使天朝。高皇帝嘉其知禮。賜桃核盃。名揚上國。詩登箕雅。累官至直提學禮曹參議。歷直長諱潤。司直諱碩。生生員諱承祖。至部將諱琛。遯于牟陽。子孫家焉。生諱仁俊參奉。生諱憲副護軍。生諱汝欽贈掌樂院正。生諱沆贈工曹參議。生諱漢明贈刑曹參判。無嗣。取季諱漢翊子彦徵子之。孝友根天。自號三吾堂。蓋昆季三人。卽吾一身。呼爲兄弟。嫌有彼此也。以壽階嘉善行同樞。於府君五世也。高祖諱守亮階通德郞。曾祖諱永華。祖諱啓聖。考諱炫瑋。皆篤厚克家。妣竹山安氏。諱光暎女。閨範備至。有貞靜之行。以純祖三十二年壬辰五月六日壬子。生府君於儉巖里第。生而姿質淸粹。稟氣聰明。孝愛天植。未嘗須臾離於父母。年纔出宿。受學于鰲川高公。喜讀書不煩督課。不命之止不止。言笑以時。動止自重。不曾渾諸兒嬉娛。屹然有大人之象。公嘗愛重之曰。羣兒石也。石也玉也。石乃府君小字也。幼有至性。親側怡愉。便身畢給。以至菜果新味。不先入口。進飯燃突不委於人。値天寒風猛。突燃不入。府君引被先臥。人問其故。曰衾褥欲以身溫之。年未成童。孝奉已如此。旣冠贄謁于蘆沙先生。時年十六矣。自此謝絶公車。專修爲己。博攷經子。深玩極繹。篤信聖賢。講其義理。凡先生訓誨談古及看書會心語句。皆爲箚記曰。聰明不如鈍筆。積成卷帙。府君見義之精深。析理之分明。淸淡攻苦。博雅微密。皆載此書。而其剛健正大。諄謹和厚之體。亦可得以傍覰矣。先生著詩以勸勉。記楣而獎許。其於師生知遇至矣。丁丑祖考疾篤證在痢。憂形於色行不能正履。藥餌煎粥。厠牏澣濯。必躬親之。不使家人代勞。至四五朔不交睫。日夜扶持。靡不用盡其誠。祖考病中作賦曰。以吾子之至誠。未假父之逝日。及丁憂。躄踊幾絶。三日不飮水漿。三年不解絰帶。終三年如一日。嘗營兆宿於峽店。店人供諸客以魚肉。進蔬菜於府君。諸客奇其事而問其故。曰見其欒灓。知其不御肉矣。哀慕積中。孚于人有如此者。服闋每月朔望。必謁廟省墳。臨忌祭。悲號哽咽。涕淚沾襟。與祭者莫不盡哀。有庶弟河坤漢坤安護接濟。罔不用極。至若一味一縷。必分喫着然後。安於心。盡其友道。推及族戚鄕黨。罔不敬服。所居峽俗。漸變有禮讓之風。以至婢僕。恩先於威。莫不悅服。亦莫之敢欺誕焉。丙子冬。府君侍先生於澹對軒。夜間先生起歌夢詞。府君曰。厭世之意。發於宵歌。先生殆將病矣。趨而人。先生曰。疇昔之夜夢得歌謠。此吾命詞。足成一闋。子其識之。府君出而悲痛曰。哲人其萎。吾將安放。己卯先生易簀。府君自殯斂至窀穸。誠愼將事。著詞述哀。操文告靈。環絰朞服。値忌必齊。素自治任而歸。卜築東岡之上。以簞瓢自樂。不求聞達于世。時有請學者。輒辭以非己任。不甚拒之。見爲人子弟者。勸之以孝弟。見讀書者。勸之以窮理正心。見農桑者。勸之以勤業勿惰。敎誨之方。無所不適。各因其地以遂其業。守宰要相見。非道義相孚者。輒稱疾不見。鄕人累應剡薦。必致書以尼之。府君雖在田畝。終不有忘斯世之心。至於水旱饑饉民命札瘥。則爲之憫惻。若恫在己。往往丙戌。寇攘大熾。都鄙甚擾。特著止盜論。以見施措之方。逮于辛卯。邪說恣行。晝宵隱憂。對人語到。先布扶正之義。家素淸寒。服食菲惡。人所不堪。而處之晏如。凡日用什物。取其完樸曰。此吾雅好。才涉奇玩。不經於目。裁衣必軟衷而梗表曰。外美有何益於身乎。人以學問來者。開顔賜欸。誨諭誾誾。與其不義。則逡巡相見。秖敍寒暄。以故門外無雜賓。而所從遊者。皆同門宿德。同志友生。每値風淸月白之辰。徜徉於山深林密之間。不知老之將至。而世間芬華爵祿。不入於心。有逈出塵曰氣像。嘗獨處書室。書策器用安頓有常。終日端坐。未嘗有傾倚。夜分就寢。亦不至於昏倒。居家務正。倫理篤恩。誼吉凶之需。稱家有無。不以贍貧介意。而隨事應當。綽綽有餘裕矣。府君受氣淸弱。自少愼護。年邁耳順。肌膚愈盎。氣力益健焉。當宁二十九年壬辰之臘。與同門諸勝。過除于先生古宅。同月二十九日。乃先生夫日也。因寢患候。不肖聞報而至請還。府君曰。以吾則死於先生之宅無憾矣。以汝則理宜舁還。任汝也。精神愈勵。扶坐談古昔無遺忘。沈昏讝語。不越乎經傳史家。旣歸疾甚。言語精神。自同平日曰。吾行忙矣。義不絶婦人之手。令婦女不得近。戒內外安靜。於是門族諸生侍坐。諸生請賜言。曰。吾何言。堯舜之道。孝悌而已。夫子之道。忠恕而已。捨此何求。命不肖曰。斂用時服。古人有行之者。無或過度。以重吾累也。因曰庾黔婁之斂。只有四隅衾。怡然顧諸生曰。諸君在座。死亦策矣。侍者進藥。儼然曰。死生有常理。飮此可延年乎。更無進也。命正枕而臥。考終于石汀之正寢。乃癸巳正月二十二日寅時也。享年六十二。嗚呼痛矣。昊天罔極。士林悼惜。鄕里戚嗟。于時老先生之孫松沙徵君。臨而哭之。銘于旌曰。東塢處士。知舊門人加麻致祭者數十人。同年三月十五日。克葬于長城府北北一面金良洞先塋左坐壬之原。配光山金氏諱文珣女。先府君三年而生。後府君一年而沒。生一男一女。男不肖錫休。女適高興柳允錫。不肖有一男三女。男悳承。女長適河東鄭淳榮。次幼。柳壻男濟學。餘幼。嗚呼。府君儀形端正。神彩精明。望之溫仁。自然近道。性度眞率。祛其邊福。早承師訓。門路得正。以淸潔雅粹之質。加勤敏確實之工。的知實踐。不爲貧窮所奪。消聲落華。不爲富貴所移。見人好學。親愛之不已。聞人善行。取之若不及。看書切忌放過。而必要精熟。以求踐履之方。著文不尙剽竊。而止於辭達。自無華藻之飾。嘗語學者曰。今人讀書。都不理會。專務記誦。雖讀萬卷。何益於吾身。又曰。多乎哉。一號文人。餘不足觀。先師嘗稱之。又曰。早寐晏起。人事廢矣。且恒居與妻孥混處。則雖有粹質。因循汨溺。世間萬事。一無可做矣。又曰。人於出處不得其當。則雖有細行。不足論也。士於毁譽以動其心。則雖有操守。不能堅也。是以老先生嘗許以質實君子。鄕人有言曰。入東塢之堂。對其儀形。聽其言論。則放逸之心。偸惰之氣。自不敢萌于中。府君平日至行卓操。於此可見其梗槪矣。嗚呼。以府君孝友之純篤。仁愛之資質。克享遐壽。以施措於時。有足作程於後世。而隱淪巖穴。抱道而終。是不能無所憾於天地之大也。嗚呼痛矣。藐玆不肖。無聞于學。府君之道之德。無以形容。秖收趨庭間若干見聞。揜涕謹構。以供立言君子採擇之一二云爾。不肖孤錫休。泣血謹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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