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무에게 보냄 與崔性武 丁巳 정사년(1917) 제가 젊었을 때에 학자들 사이에 나아가 놀면서 성 안의 준수한 사람들과 사귐이 많았습니다. 얼마 후에 시대가 변하여, 빈부가 기세를 달리하니 발걸음이 멀어지고, 신구(新舊)가 길을 달리하니 희망97)은 연나라와 월나라처럼 멀어져 세상의 버림을 받은 채 혼자 스스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형이 옛 사귐을 변하지 않고 샘물이 끊임없이 뒤를 잇듯이 계속해서 달마다 시간마다 이런 은혜를 두터이 베풀어주니,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이런 은혜는 세인들의 비당(比黨)98)이 하는 짓과는 같지 않으니 참으로 추구하는 도(道)가 같고, 지닌 뜻이 같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단지 이전에 왕래한 것에 대하여, 애써 보답하려고 변폭99)하는 허례를 꾸미겠습니까? 간을 뽑고 적심(赤心)100)을 이끌어내어 서로 이택101)의 바탕으로 삼아서, 지니고 추구하는 것을 더욱 굳건하고 더욱 바르게 하기를 구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에 청사년간(青蛇年間)102)에 태잠(台岑)에서 풍욕하며, 창강에서 눈 밟고 달구경 하자던 우리 두 사람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 이후로부터 나는 초상(初喪)의 재앙에 정신을 빼앗기고 근심과 가난이 피부를 찔러서 여러 해 동안 심난하게 이룬 것이 없었습니다. 형 또한 병에 핍박을 받아 이전의 공부와 인사를 익힐 겨를이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마음먹었던 일에 부합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어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며 크게 개탄하였다. 여기에 집을 짓고 산 이후로, 온갖 생각이 다 사라지고, 일찍이 겪었던 염병과, 근심스럽고 고통스러운 것들은 혼연히 전생의 일처럼 잊혀지고, 미래의 경영과 도모로 바라거나 즐거운 것들 또한 모두 가슴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몸을 단속하며 이치를 연구하여 선인의 유체(遺體)103)를 완성하고, 옛사람의 실마리를 궁구하여 찾으니, 비유하자면 겨울을 겪은 나무가 눈서리에 온갖 타격을 받았지만 오직 생의(生意)가 있음에 잘 배양하여 해치지만 않는다면 거의 꽃과 잎이 피어나고 가지와 줄기가 번성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대의 뛰어남과 민첩함은 말세에 드물게 보는 것이니, 하늘이 내려준 상서로움을 얻어서 묵은 병을 점점 제거하고 날마다 기를 따른다면 다소 막힌 뜻이 장차 반드시 강하고 굳세게 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재주와 뜻으로 처음에 발원(發願)을 생각하고 조금 쉬었던 발걸음을 일으켜서 상스러운 세속의 정을 끊어버리고 고명한 곳에 마음을 두어 명교(名教)104)로써 즐거움을 삼고, 성인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감히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105), 삼가 한 삼태기가 부족함106)도 없게 한다면, 우뚝한 성취는 옛사람과 우열을 다툴 것입니다. 그래서 저 같이 졸렬하고 누추한 사람도 이 아래에서 바람을 쐬고 마지막 불빛을 더할 것이니107) 어찌 일찍이 도모하지 않습니까? 만약 다시 헛되이 천천히 가면서 지체한다면 눈 깜빡할 사이조차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겨우 몇 년만 지나면 강사(强仕)108)의 나이가 되고, 형 또한 이모(二毛)109)의 나이가 될 것입니다. 성인의 이른바 '40세가 되어도 알려지는 것이 없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110)는 것으로 논해보면 마땅히 이렇게 끝날 것만 같습니다. 다만 위 무공(衛武公)의 억계시(抑戒詩)111)와 거백옥(蘧伯玉)의 지비(知非)112)는 군자에게 칭도되고 현자가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우리들이 여기에서 종사할 바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이 한번 하면 나는 백 번 하고, 다른 사람이 열 번하면 나는 천 번 한다.'는 것은 비록 애써 힘쓰는 자를 위해서 말한 것이지만, 나이가 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욱더 힘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컨대 더불어 사귐에 서로 힘써 수양하고 서로를 경계하여 이 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澤述少日,出遊翰墨間,獲交省內雋秀者,多矣。旣而,時移世變,或貧富異勢,足跡齊蜀,或新舊殊塗,襟期燕越,見棄于世,踽涼自遣。惟兄不渝舊交,源源過從,以月以時,此惠諒厚,不省所以效報也。然故人此惠,非若細人之比黨爲也。實以所趨者同道,所執者同志也。區區豈敢徒爲尚往來,務報施以餙邊幅之虛禮? 將抽肝輸赤,互資麗澤,以求所執 所趨之 愈堅愈正焉,可也。仍念往在青蛇年間,台岑風浴滄江雪月,吾兩人所期者。顧何事自是厥後,我則喪禍奪魄,憂貧剝膚 攸攸數載 憒憒無成。兄亦爲二竪子所逼,未暇溫理前功人事之多。故夙心之難副。蓋有如此者,而俯仰穹壤,堪可浩慨,廬此以來,百念俱灰,曾經之疢疾,凡可憂可苦者,渾忘若前生事,來頭之營謀,凡可欲可樂者,亦舉不入於胷中。惟欲飾身研理,用成先人之遺體,究見古人之緒意,譬如經冬之樹,飽喫霜雪打撲而,惟有生意者,存善培養,而不戕賊,則庶見敷花葉,而達枝幹矣。吾兄之俊敏,固叔季之罕覯,而獲天降祥,宿祟漸袪,向日隨氣,少沮之志,將必日以強堅矣。以若之才之志,念初發之願,起少歇之脚,絕情於猥俗,玩心於高明,以名教爲樂地,將聖訓作佩服,不敢半塗而廢,愼無一簣之虧,則多就之卓,將伯仲古人。而如拙陋者,風斯下而附末光也,何不早早圖之? 如復虛徐而稽緩,則轉眄之間,日月不待矣。今弟纔過數歲,是強仕之齡; 兄亦洽滿二毛矣。以聖人所謂 '四十無聞,不足畏.'者,論之,宜若終於斯而已者。但衞武之抑戒,伯玉之知非,見稱於君子,而不害爲賢者,則吾輩於此,可以知所從事矣。蓋'人一己百,人十己千',雖爲困勉者設,年紀遲大如吾輩者,尤不可以不勉。願與交修胥勖,庶不枉度此生也. 금기(襟期) 가슴으로 품는 기대, 희망, 뜻을 가리킨다. 비당(比黨) 이익을 위하여 어울려 지내는 무리. 변폭(邊幅) 변폭(邊幅) 또는 표폭(表幅)이라고도 쓴다. 이는 겉을 휘갑쳐서 꾸미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간을 뽑고 피를 보내어 상대방에 충심(忠心)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택(麗澤)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줌을 뜻한다.《주역(周易)》태괘(兌卦)에 "두 못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태(兌)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강습한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청사년간(靑蛇年間) 1905년 을사년(乙巳年)을 말한다. 유체(遺體) 부모가 남겨준 몸이라는 뜻으로, 자기 몸을 일컫는 말이다. 명교(名敎) 유가(儒家)가 정한 명분(名分)과 교훈을 준칙(準則)으로 하는 도덕관념. 중도에 그만두다 《중용(中庸)》 제11장의 "군자들은 도(道)를 따라 행하다가 중도에 그만두지만, 나는 그만두지 못한다.[君子遵道而行, 半塗而廢, 吾弗能已矣]"라는 말을 원용한 표현이다. '자포자기한다'는 말은《논어(論語)》〈양화(陽貨)〉의 집주(集註)에 "이른바 하등(下等)의 어리석은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자포(自暴)하는 자와 자기(自棄)하는 자이다……자포하는 자는 학문을 거부하여 믿지 않고, 자기하는 자는 학문을 끊고 배우지 않으니 성인이 함께 살더라도 이런 사람을 변화시켜 선(善)으로 들어오게 할 수는 없다."라고 한 정자(程子)의 말을 원용한 표현이다. 한 삼태기(一簣) 《논어(論語)》 〈자한(子罕)〉의 "비유하자면, 산을 만들 적에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을 붓지 않아 산을 못 이루고서 중지하는 것도 내 자신이 중지하는 것과 같으며, 평지에 흙 한 삼태기를 부어 산을 만들기 시작해서 점점 만들어 나가는 것도 내가 해 나가는 것과 같다.[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말광(末光) 해와 달이 지면서 내뿜는 희미한 빛. 미력(微力)을 비유한 말로,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구자시표(求自試表)〉에, "반딧불 촛불은 하찮은 빛이지만, 해와 달에 광휘를 더하리이다.[螢燭末光 增輝日月]" 한 데서 온 말이다. 강사(强仕)의 나이 40세를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 上)〉에 "나이 사십을 강이라고 하니, 이때에 벼슬길에 나선다.(四十曰强而仕)"라는 말이 나온다. 이모(二毛) 이모지년(二毛之年)의 줄임말. 흰 머리카락 두 올이 나는 나이 곧 백발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로 32세를 말함. 서진(西晉)의 학자 반악(潘岳)이 산기성(散騎省)에서 숙직하며 '추흥부(秋興賦)'를 지어 읊기를 "서른두 살에 처음 흰 머리카락 두 올을 보았네."라 읊은 데서 유래하는 말임. 최장렬은 1887년생으로 1917년에 31세였다. 40세가……없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후생을 두렵게 여겨야 할 것이니, 앞으로 후생들이 지금의 나보다 못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40세나 50세가 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억계(抑戒) 시 《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위 무공(衛武公)의〈억계(抑戒)〉 시이다. 위 무공은 늙어서도 〈억계〉 시 12장을 지어 항상 곁에서 외우게 해서 마음을 깨우치고 신하들로 하여금 늙었다고 멀리하지 말 것을 경계하였다 거백옥(蘧伯玉) 지비(伯玉知非)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현대부(賢大夫) 거백옥(蘧伯玉)이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그동안의 잘못을 깨닫고 고쳤다는 고사를 말한다.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는 동안 육십 번이나 잘못된 점을 고쳤다.[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는 말이 나온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는 "나이 오십에 사십구 년 동안의 잘못을 깨달았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