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환병형에게 답함 答尹德煥炳馨 ○乙卯 을묘년(1915) 제가 처음에 족하를 만났을 때 앙연한 표정과 따뜻한 용모를 보고 사랑과 존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심중에 대해 여쭤보니 깊은 지식과 표연한 사상은 시류배에 비할바 아님을 알았습니다. 옥류동과 계화도 사이에 주선하면서 흡연한 정과 유연한 즐거움은 일찍이 오랜 친구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정이 바뀌어 영남의 구름과 호남의 달이 가고 머무름이 무상하니, 암연한 혼백과 유연한 감회는 또한 인정이 진실로 그러한 것인데, 고의(高義)와 중도(中道)를 삼가 낮추고서 편지를 홀연히 보내주시어 협연한 은혜와 충실한 감정을 마음끼리 서로 비춰주니, 이별하여 헤어진 고통을 느낄 수 없게 합니다. 이별한지 한 달이 지났으니 우러러 생각할 때 신의 도움으로 객수의 오랜 고달픔은 물에 씻은 듯하고, 대인의 여유로움을 살펴보건대 구도의 간절함은 또한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도가 세상에 오랜 시간 동안 길이 보존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터득하는 것이 매우 드무니 무엇 때문입니까? 옛날부터 지금까지 뜻이 있는 사람은 적고 뜻이 없는 사람은 많아서 천하의 공통된 근심이 됨으로서 함께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진실로 말할 꺼리도 안 됩니다. 저 간혹 그 뜻이 없지는 않은데 기질이 아름답지 못하여 변화의 효과를 보지 못한 자도 있고, 혹은 뜻도 있고 재주도 있는데 질병이 점점 깊어져서 연찬(硏鑽)의 공을 들일 겨를이 없는 자도 있으며, 이 세 가지를 모두 구비하고 있는데 가난하고 궁핍하여 홀로 떨어져 살아 고루하다는 한탄을 면하지 못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 몇 가지와 연좌된 자는 고금인물에 모두 존재하였지만 초목과 함께 썩어버렸으니 진실로 한탄할 만합니다. 이제 족하는 약관의 나이에 발원하여 천리의 먼 곳에 있는 사람까지 방문을 했으니 그 뜻은 돈독하지 않다 말할 수 없습니다. 견해는 민첩하고 총명하니 곤란에 빠진 뒤에 분발할 필요도 없고, 움직일 때마다 승척에 의지할 필요도 없으니, 재주는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강장한 몸은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고, 선대가 물려준 귀중한 유업은 유학을 도울 수 있으니, 가난과 질병에 대한 근심은 고려한 가치도 없습니다. 족하는 무량한 상복(上福)을 만났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사다리를 얻고도 오히려 용맹하게 나아가 극치에 이르러 이른바 도라는 것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상천(上天)이 베푼 지극한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족하는 두려워하며 생각하기 바랍니다. 제가 들었는데 군자가 도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취향이 올바른 것이라 하니, 취향이 바르면 언행과 사업은 하나도 바름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어서 끝내는 성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취향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잘 꾸며서 말마다 이치에 가깝고 미봉하여 일마다 사람을 기쁘게 할지라도 끝내는 도학의 진체와는 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표(嶺表)는 추노(鄒魯)의 고향이라 예부터 일컬었는데101), 근래에 와서 현인의 은택과 점점 멀어지고 도술이 점점 어두워져서 '심이 곧 리이다'는 설에 한 번 오염되자 전성(全省)에 두루 퍼졌습니다. 리라는 것은 지존지수하고 순선하여 악이 없는 것이고, 심이라는 것은 신령스럽고 지각이 있어서 공적인 것도 할 수 있고 사적인 것도 할 수 있습니다.102) 만약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심을 잡고서 순선하여 악이 없는 리라 부른다면, 심을 스승삼아 멋대로 쓰고 미친 듯이 멋대로 하는 것에 이르지 않는 자는 거의 드뭅니다.103) 족하의 현명함으로는 응당 취향(趣向)의 사정(邪正)에 대하여 훤히 알 것이니 제 말을 기다릴 것도 없이 어떻게 취사할 것을 알 것입니다. 풍기(風氣)에 휩싸이지 않는 것은 옛날부터 어려웠습니다. 저 하늘에 넘칠 듯한 풍조가 70개 주에 흘러넘치고 있으니, 노를 젓는 사공이 비록 잘 건너갈 수 있다 하더라도 언덕 위에 있는 사람이 본다면 어찌 근심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족하는 또한 성존덕성(聖尊德性)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오늘날의 급선무로 삼는다면 훗날에 맹자처럼 말을 잘 하여 이적을 물리친 공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두터이 돌봐주심에 감격하여 속마음을 쏟아내어 이에 이르렀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게 되었으니 간곡히 이해해주시고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僕之始遇足下也, 見其昂然之表溫然之容, 令人愛敬。 已而, 叩其中, 則淵然之識飄然之思, 知其非流輩比也。 得與周旋乎玉流繼華之閒, 而浹然之情逌然之樂, 曾不遜於舊要矣。 及其時移事嬗, 嶺雲湖月, 去留無常, 則黯然之魂悠然之懷, 亦人情之固然, 而枉屈高義中道, 赫蹏颺風來墜, 浹然之惠充然之感, 心心相照, 殊不覺分張之苦也。 啟旆踰月, 仰想神佑, 利稅宿憊如洗, 觀感大人之餘, 求道之切, 亦應大異前日也。 夫道之於世, 亘古長存, 而人之得之者, 甚鮮何也? 從前以來, 有志者少, 無志者多, 所以爲天下之通患, 而不可與共學者也。 如此者, 固無足道矣。 厥或有不無其志而氣質不美, 未見變化之效者, 厥或有志且才矣, 而疾病侵尋, 不暇研鑽之功者, 厥或有三者俱得, 而貧竆索居, 不免固陋之歎者。 坐此數者, 汨盡古今人物 而同腐草木, 良可歡也。 今足下發願於弱冠之餘, 訪道於千里之遠, 志不可謂不篤矣。 見解敏妙, 不待困衡趍步, 不茍動依繩尺, 才不可謂不美矣。 強壯之身足以勝重任, 青氊之業足以資遊學, 則貪病之憂, 又不足恤也。 足下所遇, 可謂無量上福, 得如此之梯, 而猶不勇進造極, 以得所謂一箇道者, 則真是靠負上天鐘愛之至恩也。 惟足下惕念焉。 竊聞君子所貴乎道者, 趍向是已, 趍向既正, 則言行事業, 無一不出於正, 而終可入聖賢之域。 趍向不正, 則雖粧撰, 得言言近理, 彌缝得事事悅人, 竟與道學真諦相去遠矣。 嶺之表, 古稱鄒魯之鄉, 而挽近以來, 賢澤漸遠, 道術浸晦, 心理一派, 殆遍全省。 盖理者至尊至粹純善而無惡者也, 心者能靈能覺, 可爲公可爲私者也。 若把或公或私之心, 呌做純善無惡之理, 則其不至於師心自用猖狂自恣者, 幾希矣。 以足下之明, 應已瞭然於趍向之邪正, 不待僕言而知所取舍矣。 不囿風氣, 從古爲難。 彼滔天風潮 震盪於七十之州, 副手梢工, 雖能利涉, 自岸上人觀之, 豈不爲慮? 請足下且將思聖尊德性之訓, 爲今日之急務, 則異時立孟氏能言距之功, 正自不難也。 感於厚眷, 傾蘊至此, 不覺觸人眼目, 幸曲諒而密秘也。 영표(嶺表)……일컫었는데 영남을 가리킨다. 영남은 원래 중국의 남쪽 지방인 대유령(大庾嶺) 등 오령(五嶺)의 남쪽에 있어서 붙인 명칭인데, 우리나라도 경상도가 조령(鳥嶺)ㆍ죽령(竹嶺)ㆍ추풍령(秋風嶺)ㆍ육십령(六十嶺) 등의 밖에 있다 하여 영남이라 칭한 것이다. 심이라는……있습니다 전우는 "심은 영각지물(靈覺之物)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믿어 大本으로 삼을 수는 없고, 반드시 성명에 근원하여 도심이 되어야 비로소 한 몸의 주재가 될 수 있다.〔心者, 不過是靈覺之物, 不可信之爲大本, 故必以原於性命者, 爲道心而始得爲一身之主矣〕"고 말하였다. 《간재집(艮齋集)後篇》 권2 〈답최자경(答崔佐卿)〉. 심을……드뭅니다 전우는 "'심'이 저절로 '리'됨을 알고 임의대로 행하면, 이것이 실제의 행동으로 '기'를 주재하고 거짓으로 '주리의 학'을 이름붙인 것이다〔心自認爲理, 而任意行之, 此爲實行主氣, 而假名主理之學也〕"라고 하였다. 《간재집(艮齋集)前篇》 권3 〈답전상무(答田相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