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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팔은동 삼형제를 위로하며 慰金聖八殷東三兄弟 ○甲子 갑자년(1924) 예서(禮書) 이외에 다시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산천이 달라지며 삼강이 끊어지고 문란해진 것이 아! 오래 되었습니다. 절개와 행실이 우뚝하고 돈독한 선비와 덕이 훌륭한 이들이 죽어서 이미 다 사라졌으니, 신령한 빛이 드높고 지주(砥柱)처럼 우뚝한 사람으로는 오직 선영감(先令監)이 계실 뿐입니다. 병환이 비록 점점 깊어진다 하더라도 정신은 날마다 또렷하고 얼굴빛은 옥처럼 깨끗하니 생각건대 8,90세까지 수를 누리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세도(世道)가 의지할 것이 있어 마침내 하늘이 되돌아오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루 저녁에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아마 하늘이 끝내 이 세상에 뜻을 두지 않은 듯합니다. 크게 놀라고 대단히 애달프니 천하를 위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말할 겨를이 없었습니다.삼가 생각할 때, 여러 상주들의 효성스런 마음은 천성으로 타고났으니, 어버이를 잃은 슬픔과 국가를 위한 고통으로 어린 아이처럼 울어 간과 폐가 타들어 가는 상황을 마치 눈으로 목격한듯하여 말하자니 슬프고 슬픕니다. 삼가 듣자니, 몸을 해칠 정도로 슬퍼하는 것을 경계하고 가업을 잘 잇는 것이 효라고 합니다. 여러 상주들은 충의에 힘써 세상을 바로잡거나 학문을 궁구하여 도를 제창함으로써 선영감의 뜻과 사업을 빛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른과 아이들의 큰일이니 전도가 이미 아득하고 책임이 또한 무겁습니다. 얼굴이 시커멓고 수척하여 뼈만 앙상함으로써 목숨을 먼저 상하게 하여 일생의 큰 성취를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간절한 소망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禮書之外 夫復何言? 山異河改, 綱絕維紊, 吁亦久矣! 卓節敦履, 搢紳長德, 喪逝已盡, 巋其靈光, 矻其砥柱, 惟先監在爾。 患節雖云侵尋, 神精日朗, 顏彩玉潔, 意其克享耄期。 既今世道之有賴, 終得天返之復覩, 忽焉一夕箕騎遽啟, 豈天終無意乎斯世也耶? 大驚深怛, 實爲天下公私不暇道也。 伏想僉哀執孝思根天, 風樹之悲, 家國之痛, 嬰哭孺泣, 肝乾肺焦, 如在目撃, 言之慽慽。 竊聞毀瘠是戒, 繼述爲孝, 惟僉哀執, 或勵忠義而匡世, 或究學問而倡道, 用光先令監志事。 是大小大事, 而前途既遠, 其任且重。 勿以靣墨骨立, 先傷厥生, 有妨一生大就。 區區不勝懇望之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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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성훈에게 보냄 與田思誠壎○ 庚申 경신년(1920) 인도공의소(人道公議所)의 취지서(趣旨書) 중에 제 이름이 기재된 것은 좌하의 엄호로부터 나왔다 합니다. 저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은 이미 이 일에 대해 영향을 줄만 하지 않으니, 좌하가 사람을 잘못 추천하여 공의에 누를 끼친 것은 진실로 사람을 똑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고, 여러 사람이 당사자를 승낙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을 억지로 기재해 넣은 것은 아마도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궁핍하게 살면서 농사일을 하여 골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떻게 멀리 여러 사람들의 뒤를 좇아서 미력한 힘을 바치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형세상 미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그 이름만 넣고 그 일을 친히 하지 않더라도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면 명실이 부합하지 않으니 저는 부끄러운 짓이라 생각합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좌하께서 여러 사람들에게 고하여 그 단체의 문서를 발간할 때 제 이름을 삭제하여 천한 사람의 분수를 편안히 해주십시오. 그것이 시종 저를 사랑하는 은혜일 것입니다. 人道公議趣旨書中, 賤名見錄出, 自座下所保云。 鄙之無似, 既不足爲輕重於此事, 則座下之謬薦人而累公議, 固失藻鑑之明, 諸公之不承諾於當人, 而冒錄其名, 恐亦未爲妥當。 且澤述竆居服田, 滾汩自遣, 何能遠追諸公之後, 庸效微力? 此又勢所不及也。 如曰存其名而不親其務, 亦無傷云爾, 則名實之不副, 竊有恥焉。 切乞座下爲告諸公, 凡干社中文字, 刪出賤名, 以安賤分, 始終相愛之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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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신사태(申師泰)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辛卯二月日 申師泰 等 雲院 辛卯二月日 申師泰 雲院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신묘년에 신사태(申師泰) 등 15인이 운원(雲院)에 보낸 통문(通文). 신묘년 2일에 신사태(申師泰), 신진록(申震祿), 송욱겸(宋旭謙) 등 15인이 운원(雲院)에 보낸 통문이다. 이 문서는 배접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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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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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정해년 김두(金枓)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丁亥四月二十四日 發文 羅州 幼學 金枓 興陽鄕校 丁亥四月二十四日 金枓 興陽鄕校 1顆(흑색, 7.0×5.0)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정해년에 김두(金枓) 등 17인이 흥양향교(興陽鄕校)에 보낸 통문(通文). 정해년 4월 24일에 나주(羅州) 유학(幼學) 김두(金枓), 이수함(李壽咸), 나성오(羅性五) 등 17인이 흥양향교(興陽鄕校)에 보낸 통문이다. 이 문서는 배접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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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진두성(陳斗星)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丙子式 行府使 幼學 陳斗星 丙子式 河東都護府 陳斗星 行府使[着押] 1顆(7.3×7.4), 周挾無改印, 河東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HIKS_OD_F1030-01-200038 1876년(고종 13)에 하동도호부(河東都護府)에서 발급한 진두성(陳斗星)의 준호구(準戶口). 1876년(고종 13)에 하동도호부(河東都護府)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진두성(陳斗星)의 준호구(準戶口)이다. 진두성은 하동도호부 마전면(馬田面) 전도촌(錢島村)에 거주하였고, 나이는 44세 계사생이며, 본관은 여양(驪陽)이다. 처(妻) 서씨(徐氏)는 본관이 달성(達城)이고 나이는 42세이다. 진두성과 처의 부(父)·조(祖)·증조(曾祖)·외조(外祖) 4조의 직역과 이름을 기재하였다. 이외에 노비의 명단 '천구질(賤口秩)'이 기재되었다. 이 문서에는 하동부사의 인장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引)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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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류재홍(柳在洪)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丁亥四月二十六日 光州 發文 幼學 柳在洪 興陽鄕校 丁亥四月二十六日 柳在洪 興陽鄕校 1顆(흑색, 4.5×3.0)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정해년에 류재홍(柳在洪) 등 9인이 흥양향교(興陽鄕校)에 보낸 통문(通文). 정해년 4월 26일에 광주(光州) 유학(幼學) 류재홍(柳在洪), 박성태(朴聖泰), 이현복(李鉉復) 등 9인이 흥양향교(興陽鄕校)에 보낸 통문이다. 이 문서는 배접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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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안사눌(安思訥)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丁亥午月一日 南原 發文 幼學 安思訥 興陽鄕校 丁亥午月一日 安思訥 興陽鄕校 고흥 무열사 고흥 무열사 정해년에 안사눌(安思訥) 등 13인이 흥양향교(興陽鄕校)에 보낸 통문(通文). 정해년 5월 1일에 남원(南原) 유학(幼學) 안사눌(安思訥), 최강범(崔綱範), 김인달(金仁達) 등 13인이 흥양향교(興陽鄕校)에 보낸 통문이다. 이 문서는 배접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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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임장에게 답함 答讓村林丈 乙亥 을해년(1935) 삼가 답장을 받고, 음성의 오진영을 배척하는 의리가 이전처럼 변하지 않음을 잘 알았으니 노성(老成)의 정견은 진실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합니다. 다만 김씨의 일176)에 대해서는 치밀하게 살피지 못하여 관계되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보아서 법으로 삼아야 할 것은 간옹 선사가 아닙니까? 가평의 김평묵(金平黙)이 매옹(梅翁)의 제문177)을 씀에 분명히 '문인소자'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간덩이를 내놓고 입을 멋대로 놀려서 기롱하고 폄하하며 업신여기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선사께서 그를 인식하기를 매옹 문하의 배반한 졸개로 여겼습니다. 하물며 이제 여흥의 김용승이 선사에 대하여 살아계실 때는 순전히 스승으로 섬겼으나 돌아가신 뒤에는 사우(師友) 관계에 끼어넣었으며, 살아계실 때는 '문인소자'로 일컬었으나 돌아가신 이후에는 문인소자라 일컫지 않고 자칭 '문하의 한광〔門下韓狂〕'178)이라고 하였으며, 살아계실 때는 "망극한 은혜를 받았다." 하더니 돌아가신 뒤에는 "학업을 받아 제자가 된 적이 없다." 하였으니, 가평의 김평묵과 비교할 때 경중이 어떠하겠습니까? 종합하면, 〈백천재기(百千齋記)〉 의 내용 중에 있는 "도의를 보존하지 못하면 선생도 바꿀 수 있다."와 "그대의 조부가 우암이 된다면 내가 윤증이 될 수 있다."는 말들이 그의 주된 견해입니다. 삼가 자세하게 살피시고 정밀하게 처리하셔서 師生(사생)의 윤리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伏承下覆, 仰認斥陰之義, 無替如前, 老成定見, 固應如是。 但於金事, 未甚致察, 關係不小。 蓋吾輩所視以爲法者, 非艮翁先師乎? 嘉金之祭梅翁文, 明明稱'門人小子' 然以其有放膽肆口, 譏貶嘲侮之詞, 故先師認以爲梅門叛卒。 矧今驪金之於先師, 生前純師之, 沒後師友間之; 生前稱'門人小子,' 沒後不稱而自稱'門下韓狂'; 生前謂'受罔極之恩', 而沒後謂'未嘗受業爲弟子', 其視嘉金輕重爲何如也? 總之百千齋記言中, "道義不存, 先生可易。", "君祖爲尤菴, 然後吾爲尼尹。"之說, 爲其主見矣。 伏乞細審精勘, 以明師生之倫焉。 김씨의 일 김씨는 김용승(金容承)을 말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오진영을 성토하는 쪽에 가담했으나 뒤에 배반한 자이다. 김씨의 일이란 김용승이 간재 묘소에 올린 〈망고현천문(望告玄阡文)〉의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을 말하는데, 전일중(田鎰中)이 쓴 이에 대한 변척과 김택술(金澤述)이 그 내용을 조목조목 나누어 문제를 지적한 글이 《사백록(俟百錄)》권2 〈승문변척(承文辨斥)〉에 실려 있다. 매옹(梅翁)의 제문 매옹은 호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을 말한다. 김평묵의 《중암집(重菴集)》에 〈제홍여장문(祭洪汝章文)〉이 실려 있는데, 간재가 이 제문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문하의 한광(韓狂) 한광의 김용승의 호이다. 〈망고현천문〉에 "문하인 한광 김용승은"이라고 쓴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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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암 김장태희에게 보냄 與堅菴金丈泰熙 ○壬午 임오년(1942) 선사의 원고 중에 〈박사암의 만김지재시에 대한 발문〔跋朴思菴挽金止齋詩〕〉179)는 어른의 선조를 위해 지은 것이고 어른의 청에 부응한 것입니다. 그러나 박공이 선조 기축년(1589)에 죽고, 김공이 임진왜란을 겪은 것으로 질정해 보면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 분명하니 마땅히 삭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그렇지만 저 음성의 오진영이 어른께서 스승을 속여 글을 얻었다고 하면서 죄인 취급 하는 것은 그가 험악한 마음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사의 명철하고 박식함으로도 오히려 미처 살피지 못하시고 지었으니, 어른께서 집안에 전해온 만시(挽詩)를 인하여 글을 청하신 것을 또한 어느 겨를에 논하겠습니까? 어른을 두고 '선사를 속인 사기꾼'이라고 기필코 말을 한다면 이것은 선사를 두고 '사기를 당한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잔인한 마음으로 스승을 폄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많이 변척할 것도 못 됩니다. 가만히 그 사실과 어긋난 까닭을 생각해보았는데, 근래에 황이재(黃頤齋 황윤석(黃胤錫))의 문집을 보니 박사암과 성명이 같은 자가 있는데, 일찍이 부안현감을 지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재공은 부안 사람이니, 만시를 지은 사람이 부안현감인데 사암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先師稿中, 跋朴思菴挽金止齊詩, 是爲尊先祖作, 而副丈之請者也。 然考以朴公卒於宣廟已丑, 金公經壬辰亂者, 而質之, 則爽實明矣, 在所當剛。 是則然矣, 而彼陰震之謂丈欺師得文, 而罪之者, 可見其險心擠人。 以先師之明博, 尙未及察而作之, 則丈之因家傳挽詩而請文, 又何暇論? 必謂丈爲欺師之詐, 則是謂師爲見欺之暗也。 又見其忍心貶師也, 不足多辨。 竊思其所以爽實之故, 則近見黃頤齊集, 有與朴思菴, 同姓名者, 嘗宰扶安之語, 止齋公, 是扶安人, 則作挽詩者, 無乃扶宰, 而誤認爲思菴歟? 박사암의 만김지재시에 대한 발문〔跋朴思菴挽金止齋詩〕 《간재집(艮齋集)前篇》 제16권 〈제발(題跋)〉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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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甲寅 갑인년(1914) 제가 근래에 한희녕(韓希甯 한유(韓愉))의 유문(遺文)을 읽고 그의 지취(旨趣)와 언론(言論)이 호방(豪放)하고 굉박(宏博)하여 족히 들을 만한 말임을 보았습니다. 그의 리기(理氣)와 심성(心性)에 관한 학설의 경우도 본래 설명한 것이 대체로 좋았지만, 심과 리를 하나로 보는 무리29)의 학설을 물리친 점은 얻어 보기 가장 쉽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그가 선생께서 주장한 '심은 비천하고 성은 존귀하다[心卑性尊]30)'는 학설을 의심한 것은 어쩌면 그리도 사색이 정밀하지 못한 것입니까? 대개 심성 두 글자를 한덩어리로 섞어서 말하면 애초에 존귀함과 비천함 두 가지로 나눌 수 없으니 이를테면 성인의 마음은 혼연(渾然)히 천리(天理)라는 것31)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심(心)과 성(性) 둘의 개념과 외연을 가지고 말하면, 자사(子思)는 존덕성(尊德性)의 가르침을 제시하였고, 정자(程子)는 성인은 하늘에 근본을 둔다는 말씀32)을 하였는데, 높여짐을 받아 근본이 되는 본체는 성(性)이고, 높이고 근본을 두는 주체는 어찌 심(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심이 비천하고 성이 존귀하다는 설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심과 리를 하나로 보는 무리를 물리친 이러한 안목을 가지고 도리어 이 '심은 비천하고 성은 존귀하다'는 주장을 의심하였으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주자대전》 〈답정자상서(答鄭子上書)〉의 의목(疑目)33)은 지금 이미 결론이 난 것입니까? 대개 정자상(鄭子上)의 문목(問目)의 요지(要旨)로 살펴보면 당시 유행하였던 학설에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만, 주자가 답한 편지의 문세(文勢)로 살펴보면 본체에 관한 학설은 더욱 바꿀 수 없습니다. 일전에 가르쳐주신 말씀에서 정자상의 문목은 태극(太極)의 동정(動靜)만을 가리키지 않고 음양(陰陽)도 함께 거론한 것이므로 주자가 그것에 대하여 답할 때 리기의 측면에서 리가 기의 근저(根柢)가 된다고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등등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이 가장 분명하고 적절하여 이 안건을 판정할 만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다시 주자가 "인(仁)은 바로 움직이는 것이고, 의(義)는 바로 고요한 것이니 이것이 또 기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仁便是動 義便是靜 此又何關於氣]"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태극의 동정에 관한 설인 듯합니다. 이 세 구절이 가장 처리하기 어려우니 삼가 분석해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선생께서 다음과 같이 답장하셨다. "한유(韓愉) 문집의 설들에 대해 그대가 논한 것은 모두 맞는 말이다. 정자상의 문답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견해가 없다." 小子近得韓希甯遺文讀之, 見其風旨言論豪爽宏博, 言足聽聞。 至於理氣心性之說, 亦自說得大體好了。 其闢心理一派, 最不易得。 但其疑先生心卑性尊之說, 何其思之不精也? 蓋'心性'二字渾淪說, 則初不可以尊卑二之, 如聖人之心渾然天理是也。 若以二者之名位界分言之, 子思有尊德性之訓, 程子有聖人本天之語, 所尊所本者是性也, 尊之本之者, 豈非心乎? 則心卑性尊之說, 不其然乎? 以若闢心理之眼目, 乃有此疑, 是不可曉也。《大全》〈答鄭子上書〉疑目, 今已斷案否? 蓋從子上問目主意上看來, 則流行之說不爲無理, 從朱子答書文勢上看來, 則本體之說又不可易。 日前下敎子上問目, 不單指太極動靜, 而兼擧陰陽。 故朱子答之, 不容不就理氣上說出理爲氣之根柢云云, 最爲明切可斷此案。 而其下又曰: "仁便是動, 義便是靜," 此又何關於氣? 此則似是太極動靜之說也。 蓋此三句, 最難區處, 伏俟剖示。○ 先生答書曰: "所論韓集諸說皆得之, 子上問答尙未有定見。" 심과 리를 하나로 보는 무리 心과 理를 하나로 본다는 것은 바로 心卽理를 말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송 대의 육구연과 명 대의 왕양명을 대표적인 心學者라고 하지만, 심학의 근원은 맹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가 성리학의 두 줄기인 리학과 심학을 이해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은 리학자들은 오로지 性卽理만을 긍정할 뿐 心卽理는 부정한 반면, 심학자들은 性卽理와 心卽理 그리고 性卽心을 동시에 긍정한다는 것이다. 단지 심학자들은 心의 자율성을 크게 강조하였기 때문에 性보다는 心을 보편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심은 비천하고 성은 존귀하다 간재의 心性論의 핵심은 '心本性'ㆍ'心是氣'ㆍ'性師心弟'ㆍ'性尊心卑'ㆍ'明德心說'로 종합할 수 있다. 간재가 비록 주자와 달리 明德을 性으로 규정하지 않고 心으로 규정하였지만, 간재철학에서 오로지 性만이 형이상의 至善한 존재이고, 心은 형이하의 범주에 속한 氣이다. 따라서 性師心弟 혹은 性尊心卑로 心과 性의 관계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卑'를 결코 절대적인 의미로서의 낮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간재에 의하면, 性尊心卑에서 卑는 性의 尊과 상대적 의미에서의 卑일 뿐이다. 다른 氣에 비하여 心은 尊의 성격의 가진 존재이다. 성인의……것 《논어집주(論語集註)》 〈술이(述而)〉15장의 집주(集註)에 나오는 말이다. 정자(程子)는……말씀 《이정유서(二程遺書)》 권21에 "성인은 하늘에 근본을 두고, 석씨는 마음에 근본을 둔다.〔聖人本天 釋氏本心〕"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의목(疑目) 의목은 질문하기 위해 의심나는 부분들을 조항별로 나열한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1191년 주자가 62세 때 정자상에게 답한 편지를 가리킨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6 〈답정자상(答鄭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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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甲寅 갑인년(1914) 근래에 《가례증해(家禮增解)》를 보다가 〈성복(成服)〉의 '참최(斬衰)' 조목에 이르러서 경호(鏡湖 이의조(李宜朝))의 안설(按說)을 보니 논의할 만한 곳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는 부친이 상중(喪中)에 돌아가신 경우라면, 그 자식이 (부친이 치르던 상에) 대신 복상(服喪)하지 않는다는 설을 주장하였고, 부친의 후사(後嗣)가 된 양자(養子)에 대해서는 참최복(斬衰服)을 입지 않는다는 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손(玄孫)48)으로 승중(承重)49)한 자가 그 모친이나 조모(祖母)를 위해 입는 상복에 대해서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가 말한 4대(代)에 대해 모두 삼년복을 입는다는 의론을 어기고, 그녀들의 남편이 승중을 했느냐의 여부를 살펴서 삼년복을 입기도 하고 본복을 입기도 한다는 설을 주장했습니다. 대개 부친이 상중에 돌아가셨는데 그 자식이 대신 복상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부친이 미처 마치지 못한 효를 이룰 수 없어 아버지로 하여금 지하에서 한을 품도록 하는 것이니, 이는 효성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부친의 후사가 된 양자로서 참최복을 입지 않는다면 저 사람은 이미 그 천륜(天倫)을 옮겨 나를 마치 낳아주신 것처럼 대하는데 나는 도리어 저 사람을 친자식과 차이 나게 대하는 꼴이니, 이 어찌 천지간에 커다란 원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자애롭지 못한 것입니다. 현손이 승중했는데 손자의 아내와 증손자의 아내가 삼년복을 입지 못한다면 중간에 세대(世代)가 끊기고 이어지지 못하여 위로는 이어올 바가 없게 되고 아래로는 전해 줄 바가 없게 되니 이는 더욱 자애롭지 못하고 효성스럽지 못한 데 비할 수 있습니다. 무릇 예(禮)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윤상(倫常)의 도리를 밝히고자 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를 논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자애롭지 못하게 하고 효도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른바 윤상(倫常)을 밝힌다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대저 예를 논하는 자들이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에 나아가 몸소 체험하여 말하지 않고 한갓 주소(註疏)에만 천착하면서 시비를 말하기 때문에 정의(正義)를 보지 못하고서 결국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예설(禮說)을 논변하는 일은 성리설처럼 쉽게 잘못되는 데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지금 살펴보니 진실로 두 가지 가운데 쉽고 어려움을 따질 수가 없습니다. 성리(性理)의 큰 근원은 한 번 어긋나면 곧바로 이단(異端)과 사설(邪說)에 빠지게 되고, 변례(變禮)50)의 큰 원칙은 한 번 어긋나면51) 마침내 윤상을 어그러뜨리는 데 이르게 되니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比看《家禮增解》, 至成服斬衰條, 見鏡湖按說, 往往有可議處。 其於父在喪中而死者, 則主其子不代服之說, 其於爲所後子, 則主不服斬之說, 其於玄孫承重者, 其母及祖母之服, 則違沙翁四世皆服三年之論, 而主視其夫之承重與否, 而或三年或本服之說焉。 蓋父死喪中而子不代服, 則無以遂亡父未終之孝, 而使父抱恨於地下, 是爲不孝也。 爲所後子而不服斬, 則彼已移其天倫, 而視我如所生, 我乃視彼有間於己子, 豈非天地間一大冤枉乎? 是爲不慈也。 玄孫承重, 而孫妻曾孫妻不服三年, 則中間代序斷而不續, 上無所繼, 下無所傳, 此又可比之於不慈不孝也。 夫所貴乎禮者, 欲其講明倫常也。 若論禮而至於使人不慈不孝, 則烏在其所謂明倫哉? 大抵論禮者, 不就天理人情上體驗說出, 徒屑屑於註疏腳下, 說是說非, 所以未見得正義, 而終至於如此也。 小子昔嘗謂講辨禮說, 不至如性理說之易差, 以今觀之, 誠不可較難易於二者之間也。 性理大源頭, 一差則便陷異端邪說, 變禮大節, 日一差則竟至於悖倫乖常, 可不愼哉? 可不戒哉? 현손(玄孫) 증손의 아들이니, 손자의 손자로서 고손에 해당한다. 승중(承重) 장손으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조부모의 상을 당하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상제 노릇을 한다. 변례(變禮) 經禮가 불변의 예법이라면, 變禮의 비상시에 응변할 수 있는 예법을 지칭한다. 한 번 어긋나면 원문은 '日一差'로 되어 있는데 '日'은 연문으로 보아 번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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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려 박창현의 편지를 논함 上艮齊先生論朴昌鉉書 乙卯 을묘년(1915) 박창현의 편지에 성현(聖賢)이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발명했다고 운운한 것에 대하여-1기질지성이라는 명칭은 장자(張子 장재(張載))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는 "잘 돌이키면 천지지성(天地之性)이 있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53) 이미 잘 돌이키라고 말했다면 이미 기(氣)와 섞인 좋지 않은 사물인 것인데, 지금 애당초 이른바 잘 돌이키는 공부 없이 곧바로 그 섞이지 않은 체(體)를 보라고 하니, 그 섞이지 않은 체가 바로 천지지성입니다. 잘 돌이키는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천지지성이 저절로 있게 된다면 역시 순선(純善)한 성이니 어찌 굳이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박창현의 편지에 총명예지(聰明睿知)를 운운한 것에 대하여-2기질은 비록 청명(淸明)하고 순수(純粹)하더라도 도리어 지각(知覺)과 정의(情意)가 없는 것입니다. 무릇 지각과 정의가 있는 것은 바로 심(心)의 능력입니다. 대개 총명예지는 지각, 정의가 있는 것과 관계되니 심이라고 할 수 있지 기질이라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다만 성인(聖人)의 기질은 청명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그 심이 이로 인해 총명예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대학》의 서문에서 기품(氣稟)이 같지 않음에 대하여 말하고,《중용장구》에서는 나면서부터 아는[生知] 자질로 말하였던 것입니다.박창현의 편지에 품부받은 곳에 통함과 가려짐, 열림과 막힘[通蔽開塞]이 있다고 운운한 것에 대하여-3통함과 가려짐, 열림과 막힘은 바로 발용(發用)한 뒤의 일인데, 지금 이것을 가지고 품부받은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품부받은 곳에서 이 성(性)이 이미 기(氣)를 따라서 통함과 가려짐, 열림과 막힘이 있다면 이른바 모든 선의 근본이 되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은 어느 곳에다 안배한단 말입니까? 만약 '단독으로 가리키면 본연지성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저는 이미 가리고 막힌 성이 어떻게 갑자기 형체를 바꾸어 순선(純善)하게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인용한 농암(農巖)의 설 운운한 것은 '생지위성(生之謂性)'장에서, 성을 말하는 순간 바로 이미 성이 아니라고 한 말을 풀이한 듯합니다. 그리고 '리(理)는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다[理固無不善]'는 한 구절로 맨앞에 문장을 만든 것은 아마도 기질지성으로 간주한 듯합니다. 그리고 기질에 부여되는 순간 바로 형기(形氣)를 겸한다고 한 것은 문제가 있는 설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저의 얕은 견해로는 기질을 품부받고 형기를 겸했다는 것을 가지고 대번에 문제가 있는 설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박창현의 편지에 정자(程子)가 '성(性)은 서로 비슷하다[性相近]'는 말을 논한 데 대해 운운한 것에 대하여-4정자가 '성은 서로 비슷하다'는 말을 논할 때 개와 소 그리고 사람의 성이 어찌 각각 서로 다른 성을 품수(稟受)하였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대개 상지(上知)와 하우(下愚), 개와 소 그리고 사람은 서로 다른 기질(氣質)을 품수하였기 때문에 그 성이 운용(運用)하는 데에 드러나는 모습이 그 기질에 따라 각각 다르게 되니, 이것이 이른바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는 것입니다.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을 통괄하여 말한 것인 천명(天命)의 성과 성선(性善)의 성의 경우에는 또 기질에 있는 이 리(理)로 말한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이 편지의 뜻처럼 기품(氣稟)에 따라 리가 다르게 나타나는 측면에 입각하여 본연지성 하나만 가리킨 것이겠습니까?박창현의 편지에 '오행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五行各一其性]'라고 운운한 것에 대하여-5오행(五行)이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는 말은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기 이전 천지의 조화(造化)가 만물을 생육(生育)하는 도구로써 말한 것입니다. 그 기질에 따라 품수받았다고 말한 것은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ㆍ토(土) 본연(本然)의 기질에 따라 각각 하나의 성을 갖춘 것을 말한 것으로, 이것이 이른바 리(理)의 분수(分殊)라는 것이니 선악(善惡)과 편전(偏全)이 있는 사람과 사물의 기질지성을 논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이를 인용하여 기품에 따라 리가 같지 않다는 설을 증명하니 이상하지 않습니까?박창현의 편지에 단지 기질지성만 논했다고 운운한 것에 대하여-6기질지성을 품수한 곳으로부터 말하자면, 저 또한 어찌 그렇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품수한 자가 기질이 같지 않으므로 성이 발현하는 것이 또한 기질에 따라 같지 않게 됩니다. 다만 이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최초에 서로 같지 않은 리를 품수하였다고 곧바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쟁론(爭論)하는 부분은 품수와 발용의 측면이 같지 않다는 데 있지 않고, 바로 서로 다른 리를 품수하고 서로 다른 기를 품수하는 차이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리가 기질 속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이유로 기질지성이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대개 하늘에 있는 리가 사람의 기질 속에 있으면서 애초에 말할 만한 편전(偏全)과 선악(善惡)이 있은 적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이른바 본연지성이고, 그 기질에 따라 자체로 편전과 선악이 있는 하나의 성이 되는 데 이르른 뒤에야 기질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체로 하나의 성이 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기질에 막 떨어진 것을 가지고 곧바로 기질지성이라고 한다면 이른바 본연지성이라는 것은 그저 하늘에 있는 리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고 사람의 측면에서는 영원히 말할 때가 없을 것입니다. 朴書聖賢發明氣質之性云云氣質性之名, 肇自張子而其言曰: "善反之則天地之性存焉。" 旣曰善反之, 則已是雜氣不好底物事, 而今初無所謂善反之功, 而直曰見其不雜之體, 不雜之體, 卽天地之性也。 不加善反之功, 而天地之性自存, 則亦是純善之性, 何必曰'氣質之性, 君子有不性者'乎?朴書聰明睿知云云氣質雖淸粹, 却無知覺情意者也。 凡有知覺情意者, 乃心之能也。 蓋聰明睿知, 係是有知覺情意者, 則可謂之心, 而不可謂之氣質也明矣。 特以聖人之氣質, 淸明純粹, 而其心因此而能聰明睿知。 故《大學》序對氣稟不齊而言,《中庸章句》以生知之質言歟!朴書稟受處, 有通蔽開塞云云通蔽開塞, 正是發用以後事, 而今以之言於稟受處。 若於稟受處, 此性已隨氣而有通蔽開塞, 則所謂萬善一源之本然性, 何所安頓乎? 若曰單指則本然性云, 則吾未知旣蔽旣塞之性, 安能驀地幻形純善乎?【所引農巌說云云, 似是解'生之謂性'章'纔說性時便已不是性'之語。 而其以理固無不善一句, 劈頭立文者, 似以氣質性看做。 而其曰'纔賦於氣質, 便兼形氣'之云, 是病痛說。 然淺見恐未可以賦氣質兼形氣, 遽做病痛說也。 未知如何?】朴書程子論性相近云云程子論性相近, 犬牛人性, 何嘗言禀受各異之性耶? 蓋曰上知下愚犬牛人之氣質禀受各異, 故其性之發於運用者, 隨其氣質而各異, 此所謂氣質性云爾。 至於天命性性善, 通聖凡而言者, 則又以此理之在氣質者言, 而此所謂本然性云爾。 何嘗就隨氣禀異理之中, 單指本然性, 如此書之意乎?朴書五行各一其性云云'五行各一其性', 此以人物未生前, 造化發育之具言。 其曰'隨其氣質所禀'云者, 謂隨其金木水火土本然之氣質, 而各具一性, 此卽所謂理之分殊也, 非所以論有善惡偏全底人物氣質性也。 今引此以證隨氣稟理不同之說, 不亦異乎?朴書但論氣質性云云氣質性之從稟受處說, 吾亦何嘗謂之不然? 然其所禀受者, 氣質之不同也。 故性之發見者, 亦隨氣質而不同。 但不直謂原初禀得不同之理, 如此書之說也。 然則今此所爭, 不在於從禀受從發用之不同, 正在於禀異理禀異氣之不同也。 且詳其意, 以此理墮在氣質中者, 認做氣質之性。 蓋在天之理, 在人氣質之中, 初未嘗有偏全善惡之可言, 則此卽所謂本然性也。 至於隨其氣質, 而自爲偏全善惡之一性, 然後乃可謂氣質性也。 若不待自爲一性, 而直以才墮氣質者, 做氣質性, 則所謂本然性者, 只可言於在天之理, 而永無就人上說時矣。 기질지성이라는……하였습니다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형체가 있게 된 뒤에 기질지성이 있으니, 이를 잘 돌이키면 천지지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形而後, 有氣質之性, 善反之, 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2 〈위학(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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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丙辰 병진년(1916) 저는 바람 불고 눈 내리는 길을 힘들게 걸어 집으로 돌아왔는데 옛 병이 아직 사라지지 않던 차에 새로운 근심이 함께 일어납니다. 노인은 병상에 누워 있고 어린 자식들은 괴로이 울어대어 온 집안에 근심이 밀려들어 아득히 끝이 없습니다. 이에 더하여 사나운 호랑이는 밖에서 잡아먹으려 하고, 궁핍한 귀신은 안에서 멋대로 구니, 우환(憂患)이 극에 달해 유소(有所)의 병55)이 날 지경입니다. 늘 기쁜 정신을 기르고 즐거운 곳을 홀로 찾는다는 말[常養喜神, 獨尋樂處]56)을 외울 때마다 기를 만한 때가 없고, 찾을 만한 곳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그저 스스로 마음속으로 번뇌하였습니다. 이에 한 걸음 내딛어 천천히 생각하고서야 비로소 명수(命數)는 피할 수 없고 겪는 일을 편안히 여길 것과 밖에서 온 것이 매우 가볍고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귀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심지(心地)가 청정해지고 일이 없어 유소의 병이 족히 근심거리가 되지 않아서 기쁜 정신을 비로소 기를 수 있고, 즐거운 곳을 비로소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요사이 힘쓰면서 터득한 것이기 때문에 공손히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찌 제가 스스로 이룩한 것이겠습니까? 그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 예전부터 줄곧 문하에서 친히 가르침을 받은 덕분이니 얼마나 감사하며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율곡(이이) 선생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중에 선한 것은 청기(淸氣)가 발한 것이고, 악한 것은 탁기(濁氣)가 발한 것57)이라는 두 구절의 말은 정확한 의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암선생의 사단칠정(四端七情說) 논변은 의심이 드는 곳이 있어 논해보았지만, 진실로 깨우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의 기품에는 비록 청탁의 같지 않음이 있지만, 그 근본은 본래 맑았습니다.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천지는 음양이라는 두 기의 순환이니, 처음에는 약간의 혼탁함도 있지 않았습니다. 떠도는 기가 분란해지자 어둠과 밝음이 일정하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이 이 떠도는 기(氣)를 받아서 태어났기 때문에 품수 받은 기도 청탁이 같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떠도는 기의 본원은 음양이라는 두 기의 지극히 맑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가 기의 처음엔 맑은 것만 있고 흐린 것은 없다는 질문을 인정했습니다.《맹자혹문》에서 또 "사람이 저녁에 휴식을 하면 그 기가 다시 청명해진다"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추론해보면, 사람의 기질은 본디 맑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맑았다고 할지라도 구르고 막히며 뒤집어지게 되어 운행이 뒤섞여 버리면 청탁이 발하는 것이 각각 다르게 되어 선과 악의 구분이 생기게 됩니다. 선한 것은 청기(淸氣)가 리(理)를 따라서 발한 것이고, 악한 것은 탁기(濁氣)가 리(理)를 따르지 않고 발한 것입니다. 성인의 기(氣)는 지극히 맑아 탁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발한 것이 모두 선하여 처음부터 한 터럭의 악한 것도 없습니다. 중인(中人) 이상의 기(氣)는 맑은 것이 많고 탁한 것이 적습니다. 그러므로 청기(淸氣)로부터 발한 선정(善情)이 항상 많고, 탁기(濁氣)로부터 발한 악정(惡情)이 항상 적습니다. 중인 이하의 기는 탁기가 많고 청기가 적습니다. 그러므로 청기(淸氣)로부터 발한 선정(善情)이 항상 적고, 탁기(濁氣)로부터 발한 악정(惡情)이 항상 많습니다. 매우 완고한 자는 간혹 한 점의 선정을 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지극히 탁한 기운도 삽시간에 맑아져서 본원을 회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58)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저 탁한 것을 바꾸어 저 맑은 것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 마음을 한결같이 선에 두고서 악함을 없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기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곡의 뜻이기도 합니다. 만약 보통사람이라도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을 때가 없으니, 청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천리(天理)가 성(性)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느낌에 따라 바로 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완고한 사람이라도 남이 자기 아버지를 해치는 것을 보면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데, 이때 탁기가 가득 차게 되지만 이는 천성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이 발출되면, 탁기가 발한 것이라도 또한 선정이 있다고 말합니다.59) 그렇다면 비록 발한 기가 탁하다고 할지라도 타고 있는 리는 곧바로 나올 수 있습니다. 걸어가고 있는 말이 갑자기 달린다고 하더라도 타고 있는 사람은 홀로 편안하게 앉자 있을 수 있습니다. 천하(天下)의 리(理)가 어찌 이와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생각건대, 농암은 다만 선악의 정을 모두 기에 돌리고서 리의 실체를 보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리가 공허히 주재함이 없는 적이 없고, 기(氣) 또한 리(理)에게 명을 듣는다는 등의 설을 끝까지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혹 확대되어 크게 잘못된 학설이 후대에 한 번 전해져 리가 참으로 주재할 수 있고 리가 그 기를 관섭(管攝 관할하고 통섭함) 할 수 있다는 설이 있게 되면 이를 어찌하겠습니까?60) 율옹(이이)은 "정(情)의 선한 것은 청명의 기를 타서 천리를 따라 곧바로 나왔고, 정(情)의 악한 것은 비록 또한 리에 근본하고 있다 하더라도 더럽고 혼탁한 기에 가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농암처럼 악의 정을 리에 두지 않고 모두 기에 돌리는 것입니까?농암(農巖)은 북계(北溪) 진순(陳淳)의 능연(能然), 필연(必然), 당연(當然), 자연(自然)의 말을 인용하여 리(理)가 주재(主宰)함이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61) 그러나 '필(必)' 자, '당(當)' 자, '자(自)' 자에는 애초에 주재한다는 뜻이 있음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능(能)' 자가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데, 그 본문에 '안에 이 리(理)가 있은 뒤에 밖으로 드러나 이 일을 할 수 있다'62)는 말을 살펴보면 '능' 자는 마땅히 구체적인 일에 소속시켜야 할 듯합니다.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각각 하나의 성을 갖는다[各一其性]'는 말은 다만 천지의 조화(造化)가 만물을 생육(生育)하는 도구와 오행(五行)의 순선(純善)한 성(性)을 말한 것일 뿐이지, 사람과 동물의 기질지성을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자는 〈서자융에게 답한 편지[答徐子融書]〉에서 도리어 이 설을 인용하여 사람과 동물은 기질에 따라 자체로 하나의 성(性)을 이루는 증거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정씨(鄭氏 정세영)와 박씨(朴氏 박창현) 등의 사람들이 인용하여 그들의 증거로 삼는 일을 초래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삼가 제가 〈서자융에게 답한 편지〉의 본뜻을 살펴보니, 서자융은 동물에는 단지 기질지성만 있고 본연지성은 없다고 의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자가 "사람과 동물의 기질지성이 비록 같지 않은 점이 있지만 이렇게 같지 않은 점은 바로 본연지성이 그 기질에 따라 자체로 하나의 성(性)이 된 것이지 본연지성 밖에 별도로 기질지성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대개 이 기질지성은 아마도 물은 차갑고 불은 뜨거우며,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부드러우며, 말은 달리고 소는 밭을 가는 것이 본연(本然)을 해치지 않음을 가리켜 말한 것일 뿐이지 돌연히 사람의 혼명(昏明)과 동물의 순악(馴惡)을 언급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므로 주자(周子)의 이 설을 인용하여 단지 '각일(各一)'의 뜻을 증명했을 뿐입니다. 읽는 자들은 글을 가지고 본뜻을 곡해(曲解)하지 않으면 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小子風天雪程, 閒關歸家, 而舊患未消, 新憂幷興。 老人委牀, 稚子呌苦, 滿室澒洞, 渺無際涯。 加之以猛虎食其外, 窮鬼肆乎內, 憂患之極, 幾成有所之病。 每誦'常養喜神, 獨尋樂處'之語, 歎其無時可養, 無處可尋, 徒自懊惱乎方寸也。 於是放下一步, 緩緩地思量, 乃知命數之莫逃, 而所過之可安, 外至者之甚輕, 而固有者之甚重, 便覺心地淸淨無事, 有所之病, 不足爲慮, 而喜神於是乎可養, 樂處於是乎可尋矣。 此小子近日用力而有得者, 故拜上逹。 然此豈小子之所自致者哉? 原其所自, 莫非向來親炙門下之力也, 何感何幸?栗谷先生, 人心道心說中, 善者淸氣之發, 惡者濁氣之發二句, 竊以爲的確之論。 農嚴四七辨, 不免疑而論之, 誠所未喻也。 人之氣禀, 雖有淸濁之不一, 卽其本淸而已。 何以知其然也? 天地二氣之循環, 初未嘗有一半分濁。 及其游氣之紛擾也, 乃有晦明之不常, 而人得是游氣而生, 故所禀之氣, 亦有淸濁之不齊。 然游氣之本, 又是二氣之至淸者也。 故朱子旣許氣之始有淸無濁之問。 孟子或問, 又曰: "人暮夜休息, 則其氣復淸明。" 以此推之, 人之氣質, 本淸可知也。 雖然滾汨騰倒, 運行交錯, 則淸濁之發, 各殊而善惡之分生焉。 善者淸氣之循理而發者也, 惡者濁氣之不循理而發者也。 聖人之氣, 至淸無濁, 故其發皆善, 而初無一毫之惡。 中人以上之氣, 多淸少濁。 故善情之發乎淸氣者常多, 而惡情之發乎濁氣者常少。 中人以下之氣, 多濁少淸。 故善情之發乎淸氣者常少, 而惡情之發乎濁氣者常多。 至於冥頑之甚者, 或有一點善情之發者。 其至濁之氣, 亦霎時淸而復其本也。 是故人之爲學, 所以易其濁而反其淸。 使吾心之發一於善而無惡。 是所謂變化氣質也。 此乃栗翁之意然也。 若曰常人之見孺子入井, 無不惻隱之際, 不待淸氣, 而天理根性者, 隨感辄發。 冥頑之人見人害其親, 思欲仇之之時, 濁氣充塞而天性最重故。 眞心發出則是濁氣之發, 亦有善情之謂也。 然則雖謂之所發之氣, 雖濁而所乗之理, 直出可也。 雖謂之所行之馬雖逸, 而所乗之人, 獨安亦可也。 天下之理, 安有如此哉? 竊念農巖之意, 直恐以善惡之情, 一歸之氣, 而無以見理之實體。 故乃以理未嘗漫無主宰, 氣亦聽命於理等說, 到底發明。 然若或推之, 大過一傳, 而有理能眞有主宰, 理能管攝其氣之說, 則如之奈何? 且栗翁固亦曰: "情之善者, 乘淸明之氣, 循天理而直出, 情之惡者雖亦本乎理, 而爲汙濁之氣所掩。" 此何嘗以善惡之情, 不本之理, 而一歸之氣, 如農巖之所慮乎?農巖引陳北溪能然必然當然自然之語, 爲理有主宰之語。 然'必'字'當'字'自'字, 初未見有主宰底意。 惟'能'字最難區處, 而詳其本文'中有是理然後, 能形諸外, 爲是事'之語, 則'能'字似當屬事上看。周子'各一其性', 只言造化發育之具五行純善之性, 未及乎人物氣質之性。 朱子〈答徐子融書〉, 乃引此說, 以爲人物隨氣質而自爲一性之證。 此所以來鄭朴諸人之引爲渠援也。 然竊詳徐書本意, 子融方以物只有氣質性, 而無本然性爲疑。 故朱子答謂人物氣質之性, 雖有不同, 然此不同者, 卽本然性之隨其氣質, 而自爲一性者, 非外本然之性而別爲氣質之性也。 蓋此氣質性, 恐只指如水寒火熱ㆍ男剛女柔ㆍ馬馳牛耕之不害本然者言, 不遽及於人之昏明ㆍ物之馴惡也。 故借引周子此說, 只證其各一之義也。 讀者不以辭害意可也。 未知如何? 유소(有所)의 병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7장에 "마음에 분치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공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우환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마음에 분치(忿懥), 공구(恐懼), 호요(好樂), 우환(憂患)이 있어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늘……말 《명유학안(明儒學案)》 권61 〈동림학안(東林學案)4〉에서 명나라 말엽 오종만(吳鍾巒)이 망국의 선비가 지닐 처세에 대해 답하면서 한 말이다. 율곡……발한 것 이이는 "선한 것은 청기(淸氣)가 발한 것이고 악한 것은 탁기(濁氣)가 발한 것이나 그 근본은 다만 천리일 뿐이다〔善者, 淸氣之發也, 惡者, 濁氣之發也, 其本則只天理而已〕"라고 말하였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4 〈인심도심도설(人心道心圖說)〉 지극히……있습니다 기질이 아무리 탁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일념 간에 경책하면 선한 기질의 본원을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비록 완고한……있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타인에게 해를 입을 때 부모를 위하여 복수심이 드는데, 이때 비록 그 기는 매우 탁하지만, 부모에 대한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선정(善情)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가 참으로……이를 어찌하겠습나까 율곡의 기호학에서는 理無爲(性無爲)를 주장하기 때문에 理(性)의 능동성을 긍정할 수 없다. 북계(北溪)……했습니다 《농암속집(農巖續集)》 권하(卷下)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에 나온다. 안에……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7 〈답진안경(答陳安卿)〉에서 북계 진순이 주자에게 올린 문목(問目)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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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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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간재선생에게 올린 편지 上艮齋先生 丙辰 병진년(1916) 저 택술(澤述)은 죄악이 너무 커서 거듭 부모상을 당했으니 무릇 사우(師友)들 사이에서 물리치고 용납하지 않음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선생께서는 거듭 조문하는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 말씀이 간곡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니 어느 날인들 감히 잊겠습니까? 여막(廬幕)에 칩거하면서 사문(師門)에 발길을 끊은 것은 감히 상례(喪禮)를 행하느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단지 상화(喪禍)로 인하여 부모를 여의고 남은 생이 실로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을 보기가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날씨가 점점 뜨거워지는 시절에 선생님의 근력은 도(道)를 호위하며 만강하십니까? 저는 지금 이후로 문득 부모 잃은 외로운 사람이 되어 사일(事一)의 정성63)은 오직 선생께만 올릴 수 있으니 섬길 날이 부족함을 애석해하는 간절히 마음이 어찌 단지 부모님만을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오호라! 사람이면 누군들 부친을 잃지 않겠는가마는 누가 저만큼 원통하겠습니까? 또한 사람이면 누군들 세상을 떠나지 않겠는가마는 누가 저의 모친만큼 박절하겠습니까? 모친께서 효로써 시어머니를 봉양한 일은 참으로 친족들과 마을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 대강은 이미 선친(先親)의 행장에 대략 기술하였으니 다 살펴보시기도 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모친은 평생 동안 엄한 시어머니의 뜻에 한결같이 순종하고 백발이 될 때까지 음식 봉양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하루도 자식들의 봉양을 앉아 누리신 적이 없으셨다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또 갑자기 뒤따라 돌아가셨습니다. 비록 모친께서는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살아서는 인간세상에서 마음을 다하고 죽어서도 지하에서 끝까지 봉양을 하시겠지만, 저의 애통하고 절박한 심정에 있어서는 하늘에 닿고 땅에 사무친들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이 생의 이 한을 호소할 곳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이렇게까지 외람되이 말씀드렸는데 곧이어 몹시 죄송스러운 마음이 깊어졌습니다.제가 여묘살이를 하는 것은 감히 구차하게 어려운 일을 행하여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선친이 세상에 살아계실 때 늘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선친의 상례(喪禮)를 행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평생의 한이다. 모친이 오래 사시고 돌아가신 뒤에 묘 아래에 여묘살이하면서 주자(朱子)의 한천(寒泉)의 규범64)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불행히도 정성을 품은 채 먼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승중(承重)하는 날에 마땅히 선친이 미처 이루지 못한 뜻을 계승해야 하는데 더구나 소자가 거듭 망극한 변고(모친상)를 당했으니, 조금이나마 어버이께 보답하는 길은 오직 집상(執喪)이라는 한 절목에 있을 뿐입니다. 예경(禮經)에서 말한 (상중(喪中)의) 네 가지 경계할 일 가운데 치아를 드러내 웃지 않는 일이 가장 쉽지 않은데, 사람 만나는 것을 줄이지 않으면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에 이렇게 예방하여 범하지 않으려는 계책을 세웠으니 두 분의 묘가 같은 언덕에 있기 때문입니다.요경(腰經)을 풀고 꼬는 일은 진실로 영구(靈柩)가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의 구분에 달려 있으니 장사가 끝난 뒤에는 마땅히 그 끝을 꼬아야 합니다.《가례편람》에는 졸곡(卒哭)한 뒤에 꼬아야 한다는 문장이 기록되어 있으니 마땅히 따라야 하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보내온 편지의 말이 맞다."삼년복(三年服)을 입고 있는데 다시 조모(祖母)의 기년복(期年服)을 입는 자는 조모의 제사를 지낼 때 기년복을 입어야 하는데, 기년복을 벗은 뒤엔 평량자(平凉子)65)와 포직령(布直領)66)을 착용하고 지냅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보내온 편지의 말이 맞다."《가례》에 궤전(饋奠)과 고증(告贈) 등을 할 때에는 재배(再拜)하고 곡하여 슬픔을 다하거나 곡하여 슬픔을 다 하고 재배한다고 했으니, 이것들이 모두 각각 정밀한 뜻이 있습니까? 성묘하는 경우에는 절과 곡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합니까?○ 선생이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가례》의 글은 그 뜻이 성묘하는 데 있는 듯하니 절을 먼저 해야 한다. 왕부(王裒)가 성묘할 때 역시 절하고서 무릎을 꿇었다67)고 하니, 이것이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겠다."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은 "연제(練祭) 때 요질(腰絰)은 하얀 칡베를 구하기 어려우면 숙마(熟麻)로 대신한다."라고 하였고, 이소산(李素山 이응진(李應辰))은 "요질을 마(麻)로 만들 때는 두 가닥을 서로 합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견해로는 숙마(熟麻)로 이미 칡베를 대신했다면 또한 마땅히 세 겹으로 꼬는 제도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비록 숙마를 사용하더라도 역시 세 겹으로 꼬아야 한다."칡으로 만든 대를 세 겹으로 꼬는 것에 대하여 선현들은 길제(吉祭)를 향하여 조금씩 꾸미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자의 요질(腰絰)이든 부인의 수질(首絰)이든 그 예가 같습니다. 부인의 수질의 경우 역시 칡베를 쓰면서도 세 겹으로 꼬는 제도를 쓰지 않는 정밀한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알 수 없다."담제(禫祭)68) 때의 곡(哭)에 대하여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는 평상시의 곡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고,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는 평상시의 곡하는 식과 상중(喪中)의 곡하는 식 둘 다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견해로는 담제뿐만 아니라 비록 기일(期日)일지라도 또한 상중의 곡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애통(哀痛)한 마음의 지극한 소리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법이니 어찌 가릴 겨를이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맞다."출가(出嫁)한 여자가 조모와 모친의 상을 함께 당하여 궤연(几筵)69)에 와서 곡할 때 지극한 정의 애통함은 모친이 중하지만 존비의 구분은 조모가 우선이니, 이때 누구를 먼저 하고 누구를 뒤에 해야 합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모친의 상을 먼저 해야 한다."부친이 먼저 돌아가시고 모친상을 당했을 때 대상(大祥)70) 전에 선대(先代)의 신주(神主)를 뒤미쳐 만들어 놓고 제주(題主)하여 봉안하는 것은 길제(吉祭)71)까지 기다려야만 합니까? 이것은 개제(改題)72)와 체천(遞遷)73)이 아닌지라 자기의 속칭(屬稱)74)으로 제주해야 하니, 대상 전이라도 행할 수 있습니까? 만약 길제를 기다린다면 모친상의 대상 이후에 신주를 부위(祔位)할 곳이 없으니 이것이 매우 불편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비록 대상 이전이라도 행하지 않을 수 없다."저의 선친(先親)의 생일은 2월이고, 선비(先妣)의 생일은 9월입니다. 선친의 생일에 사대(四代)의 시제(時祭)75)를 행하고 선비의 생일에 예제(禰祭)76)를 행하고자 하는데, 이는 정(情)이 지나쳐 윗사람을 끌어오는 혐의77)가 없지는 않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윗사람을 끌어오는 혐의는 없다."부친이 먼저 돌아가시고 모친상 중에 선대(先代)의 신주를 뒤미쳐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이미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만 부제(祔祭)78)를 뒤미쳐 행할 때 세 번 술잔을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중에 선조를 제사 지내며 세 번 술잔을 올리는 것이 비록 편치 않은 점이 있더라도 선조의 신주에 부제를 지내는 데 중점이 있으니 혐의할 것이 없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상중에 선대의 신주를 뒤미쳐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부제를 지내며 세 번 술잔 올리는 것을 혐의로 여겨서는 안 될 듯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현들의 정론(定論)이 없으므로 감히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요약하자면 길제까지 기다리는 것도 괜찮다."《가례》에는 오직 조문을 받고 폐백을 줄[受吊贈幣] 때에만 이마를 조아린다고 기록하였으니 이 밖에는 어떤 일이 있든 궤연에 절을 하고 이마를 조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증(贈)하는 것은 큰 절차이니 이마를 조아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문을 받는 것은 손님께 절하는 것이니 손님이 어찌 궤연보다 높아서 궤연에서 행하지 않는 중한 예를 행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반드시 정밀한 뜻이 있을 것이니 듣고 싶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조문을 받을 때 이마를 조아리는 것은 손님이 궤연보다 높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조문을 왔기 때문에 스스로 애통한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궤연에서 이마를 조아리지 않는 것은 늘 모시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군모(君母)79)의 뒤를 이은 자는 군모가 죽으면 군모의 친족을 위하여 상복을 입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예기》 〈상복소기(喪服小記)〉의 문장입니다. 그러나 서자(庶子)가 이미 적자의 지위를 이어받았다면 군모는 바로 친모(親母)이고 낳아준 부모는 서모(庶母)이니 어찌 친모가 죽었는데 그 친족을 위해 상복을 입지 않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치로 말한다면 분명히 이와 같은데 이것은《예기》의〈상복소기(喪服小記)〉의 본문으로 주소(註疏)에 비할 것이 아니니, 또한 쉽게 논파(論破)하기 어렵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시남(市南 유계(兪棨))도〈상복소기(喪服小記)〉의 이 설을 따랐다. 그러나 〈상복소기(喪服小記)〉의 문장은 끝내 의심스러운 점이 있기 때문에 매옹(梅翁)이 〈조완진(趙完鎭)에게 답한 편지〉에서 시남의 이 설을 정론(定論)이 아닌 것으로 여겼다." 凙述罪重惡極, 荐遭大禍。 凡在師友之閒, 宜其擯絶不容, 而先生再施唁狀, 辭意懇惻, 感勒骨髓, 何日敢忘? 蟄伏廬次, 絶蹤師門者, 非敢爲執禮而然。 衹緣喪禍, 餘生實愧, 擧頭見人也。 伏不審榴炎漸熾, 先生筋力衛道萬康? 小子今而後, 遽作弧露之人, 事一之誠, 惟在於先生, 則愛日之切, 豈獨爲親地也? 鳴呼! 人孰不喪親, 孰若小子之冤? 抑人孰不違世, 孰若先慈之迫切? 先慈之孝養皇姑, 實族戚鄕黨之無異辭者也。 其槩曾已略述於先人狀, 想或鑑悉於尊覽。 而但恨先慈平生一順嚴姑之志, 甘毳之役白首未懈, 未嘗一日坐享諸子之奉, 姑歿之後, 又遽從而歸, 雖先慈誠孝極至, 生旣盡心於人世, 沒又終養於地下, 然其在小子慟迫之情, 窮天極地, 而豈有盡哉? 此生此恨, 無處控訴, 不覺猥逹至此, 旋切罪悚之至。小子之廬墓, 非敢行苟難而異人也。 特以先人在世時, 常語小子曰: "吾幼未執禮於先考之喪, 是爲終身恨。 母氏百歲後, 廬于墓下, 用遵朱子寒泉之規。" 不幸齎誠而先歸。 今在小子承重之日, 宜繼先人未遂之志, 而况小子重遭罔極之變, 則報親之萬一, 惟在執喪一節。 禮經四戒中, 不啓齒一事, 最爲不易, 而非罕接人事, 難乎免矣。 故乃爲此豫防不犯之計, 蓋以兩位墓, 在同岡故也。腰經散絞, 誠在尸柩見不見之分, 則報葬後當絞之。 而《便覽》旣著卒哭後絞之之文, 則當從之乎?○ 先生答書曰: "來示得之。"持三年服, 而又有祖母期服者, 參祖母祭奠, 當服期服, 而期服除後, 以平凉子布直領參之耶?○ 先生答書曰: "來示得之。"《家禮》饋奠ㆍ告贈等時, 或再拜哭盡哀, 或哭盡哀再拜, 此皆各有精義耶? 至於上墓, 則拜哭當何先何後?○ 先生答書曰: "《家禮》立文, 似有義在上墓, 當先拜。 王裒上墓, 亦拜跪云云, 此可爲一據耶!"遂菴曰練時, 腰絰葛白難辦, 熟麻代之, 李素山謂腰絰治麻兩股相合。 然淺見熟麻旣是代葛者, 則亦當用三重之制。○ 先生答書曰: "雖用熟麻, 亦當三重。"葛帶三重, 先賢以爲向吉彌飾之意。 男子腰絰, 婦人首絰, 其例一也。 婦人首絰, 亦用葛而其不用三重之制者, 精義何居?○ 先生答書曰: "未詳。"禫時哭, 近齋謂當以常時哭, 老洲則常時哭ㆍ喪中哭, 兩可之。 然淺見非惟禫時, 雖忌日亦當用喪中哭, 哀痛之至聲, 出自然, 何暇擇之?○ 先生答書曰: "是。"出嫁女, 遭祖母與母偕喪, 來哭几筵時, 至情哀痛, 母爲重, 尊卑之分, 祖母爲先, 當何先何後?○ 先生答書曰: "當先母喪。"父先亡母喪, 大祥前, 追造先世神主, 而題主奉安, 當待吉祭耶? 此非改題遞遷, 當以自己屬稱題主, 大祥前亦可行之耶? 若待吉祭, 則母喪祥後, 神主無所祔處, 此甚難便。○ 先生答書曰: "雖大祥前, 不得不行。"小子先考生日在二月, 先妣生日在九月, 欲以先考生日, 行四代時祭, 先妣生日, 行禰祭, 不無情勝援尊之嫌耶?○ 先生答書曰: "無援尊之嫌。"父先亡母喪中, 追立先世神主, 曾已聞命矣。 但追行祔祭時, 不得不三獻, 喪中祭先三獻, 雖所未安, 重在祔先主, 無所嫌耶?○ 先生答書曰: "喪中追造先主, 似不可以祔祭三獻爲嫌。 然此無先賢定論, 不敢質言。 要之, 待吉祭亦可。"《家禮》惟受吊贈幣, 特著稽顙, 外此, 凡有事几筵拜, 不稽顙, 可知也。 贈是大節, 稽顙固也。 受吊是拜賓, 賓豈尊於几筵, 而行几筵所不行之重禮耶? 此必有精義, 願聞焉。○ 先生答書曰: "受吊稽顙, 非賓尊於几筵而然, 蓋因其來吊而自致其哀也。 几筵之不稽顙, 以其常侍故歟!"爲君母後者, 君母卒, 則不爲君母之黨服, 此〈喪服小記〉文。 然庶子旣已承嫡, 則君母卽親母也, 所生母卽庶母也, 焉有以親母卒, 而不服其黨之理乎? 以理言之, 則分明如是, 而此係〈小記〉本文 非注疏之比, 則亦難容易辨破也。○ 先生答書曰: "市南亦從〈小記〉此說。 然〈小記〉文, 終是有疑, 故梅翁〈答趙完鎭書〉, 以市南此說, 爲未定論。" 사일(事一)의 정성 부모ㆍ스승ㆍ임금을 한결같이 섬기는 정성으로, 부모를 잃고 임금도 없어 스승만 남았다는 말이다. 진(晉)나라 대부 난공자(欒共子)가 말하기를, "백성은 부모ㆍ스승ㆍ임금 밑에서 사는지라 섬기기를 한결같이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국어(國語)》 〈진어(晉語)〉 주자(朱子)의 한천(寒泉)의 규범 주희는 40세 무렵에 모친인 축 부인(祝夫人)의 상을 당하여 장사를 치른 뒤에 무덤 가까이에 정사(精舍)를 세우고 그 이름을 한천정사(寒泉精舍)라 하고는 이곳에 머물면서 《가례(嘉禮)》를 편찬한 일이 있다. 평량자(平凉子) 패랭이. 즉 댓개비로 엮어 만든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상제가 쓰던 갓이다. 유사어로 평량립(平凉笠)이 있다. 포직령(布直領) 상복의 일종이다. 왕부(王裒)가……꿇었다 진(晉)나라의 왕부(王裒)는 부친 왕의(王儀)가 죄 없이 사마소(司馬昭)에게 죽음을 당하자, 은거하면서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아침과 저녁으로 묘소에 가서 절하고 무릎 꿇은 채 측백나무를 부여잡고 슬피 울부짖었다고 한다. 《진서(晉書)》 권88 〈효우열전(孝友列傳)〉 담제(禫祭) 3년의 상기(喪期)가 끝난 뒤 상주가 평상으로 되돌아감을 고하는 제례의식이다. 일반적으로 부모상일 경우 대상(大祥) 후 3개월째, 즉 상 후 27개월이 되는 달의 정일(丁日) 또는 해일(亥日)에 지낸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지내는 담제는 상 후 15개월 만에 지내는데, 즉 소상(小祥) 후 2개월째가 된다. 궤연(几筵) 죽은 사람의 혼백이나 신주를 놓는 의자나 상과 그에 딸린 물건들 또는 그것들을 갖추어 차려 놓는 곳으로 영실(靈室)을 말한다. 대상(大祥) '대상'은 부모의 상(喪) 및 삼년상 등을 치를 때 그 대상이 죽은 후 만 2년 만에 탈상을 하며 지내는 제사이다. 길제(吉祭) '길제'는 상례(喪禮)의 단계를 뜻한다. 우제(虞祭)를 지낸 뒤, 졸곡(卒哭)을 하며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 단계부터 지내는 제사를 '길제'라고 부른다. 상(喪)은 흉사(凶事)에 해당하는데, 그 이전까지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흉제(凶祭) 또는 상제(喪祭)라고 부르며, 이 단계부터는 평상시처럼 길(吉)한 때로 접어들기 때문에 '길제'라고 부른다.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편에는 "是月也, 以虞易奠, 卒哭曰成事. 是日也, 以吉祭易喪祭."라는 기록이 있다. 또 삼년상을 마치게 되면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안치하고 길례(吉禮)에 따라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러한 제사를 '길제'라고 부른다. 또한 평상시 정규적으로 지내는 제사를 '길제'라고도 부른다. 개제(改題) 신주의 글자를 고쳐 쓰는 것을 개제주(改題主)라고 한다. 모든 상례 절차를 마치고 돌아간 이의 신주를 사당에 모실 때, 5대조가 넘어가는 조상의 신주는 묻고, 신주의 글자를 고쳐 쓰는데 이를 개제주(改題主)라고 한다. 이 때에 개제주고사를 지낸다. 체천(遞遷) 제사를 맡아 지낼 자손이 끊긴 조상의 신주를 4대 이내의 자손 가운데 항렬이 가장 높은 사람이 대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자기집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속칭(屬稱) 선조에 대한 호칭을 뜻하는 말로, 속은 고조(高祖)ㆍ증조(曾祖)ㆍ조(祖)ㆍ고(考) 따위를 말하고, 칭은 벼슬이나 호ㆍ항렬로서, 처사(處士), 수재(秀才), 몇째 낭(郞), 몇째 공(公) 따위를 말한다. 《이정문집(二程文集)》 권11 〈작주식(作主式)〉 시제(時祭) 한식 또는 10월에 5대조 이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관행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한식 또는 10월에 정기적으로 묘제를 지낸다고 하여 시사(時祀) 혹은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이는 5대 이상의 조상을 모시는 묘제(墓祭)를 가리키며, 4대친(四代親)에 대한 묘제를 사산제(私山祭)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래서 묘사(墓祀), 묘전제사(墓前祭祀)라고 하며,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신다고 하여 세일제(歲一祭), 세일사(歲一祀)라고도 한다. 예제(禰祭) 9월 중의 어느 날을 택일하여 부모에게 올리는 제사. '예(禰)'는 부묘(父廟)를 뜻하며, 한편으로는 '가깝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실제의 관행에서는 이행되지 않고, 예서에만 나타나는 제례의 한 종류이다. 윗사람을……혐의 《예기(禮記)》 〈잡기(雜記)〉에 "남자가 조부에게 부제할 때에는 조모를 함께 제사하지만, 여자가 조모에게 부제할 때에는 함께 제사하지 않는다.〔男子附於王父則配 女子附於王母則不配〕"라고 하였고, 그것에 대한 주(注)에 "높은 사람에게 일이 있으면 낮은 사람에게까지 미치지만, 낮은 사람에게 일이 있으면 감히 높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다.〔有事於尊者 可以及卑 有事於卑者 不敢援尊也〕"라고 하였다. 이것에 의거하면, 선고(先考)의 제사 때에는 선비(先妣)를 함께 제사할 수 있지만, 선비의 제사 때에는 선고를 함께 제사할 수 없는 것이다. 부제(祔祭) '부(祔)'는 조상의 사당에 새 신주를 모시는 것이다. 또한, 부제는 "사당에 모신 조상에게 마땅히 다른 사당으로 옮길 것을 고하고, 새로 죽은 자에게는 이 사당에 들인다"고 하는 뜻이다. 졸곡 다음 부제를 지내고 새로운 신주를 다시 정침(正寢) 혹은 궤연(几筵)으로 되돌려 보낸 뒤, 삼년상이 끝나면 최종적으로 사당에 봉안한다. 군모(君母) 부친의 嫡妻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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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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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丁巳 정사년(1917) 선비(先妣)의 가장(家狀)에 제발(題跋)을 지어 주신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은혜를 베푸신 것이니 제 목숨을 다하여도 갚을 수 없습니다. 이는 선비(先妣)의 아름다운 행실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선생님의 성대한 덕이 남의 선행을 즐겨 말하셔서일 것입니다. 아! 저의 어버이는 효경(孝敬)과 인선(仁善)의 덕이 있으셨지만 불행히도 장수와 복록(福祿)을 누리지 못하고 궁핍한 삶에 고생하다가 돌아가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씀과 아름다운 행적이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의 글을 얻어 영원토록 불후하게 되었으니 비록 한이 없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이 있고 없는 사이에서 저는 장차 어떤 마음을 품어야겠는지요? 오직 도를 밝히고 몸을 깨끗이 하여, 안으로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실질을 갖추고 밖으로는 성현(聖賢)의 학문을 계승한다면 어찌 스승과 어버이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이제 이후로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더욱 궁구하고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더욱 힘써서 도가 밝아지고 몸이 깨끗해지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감히 태만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이 때문에 근년 들어 추위와 굶주림이 몸에 사무칠수록 구렁에 시체로 뒹굴겠다는 조수(操守)는 더욱 굳건해지고 분서갱유(焚書坑儒) 같은 재앙이 박두할수록 머리를 잃겠다는 지조(志操)는 더욱 굳세집니다.81) 이는 감히 말만 잘하여 선생님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차마 더없이 소중한 유체(遺體 어버이가 남긴 몸)를 더럽고 욕된 지경에 빠뜨리지 못해서입니다. 이런 의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만날 일을 기다렸다가 대처할 뿐입니다. 다만 일상에서 말하고 행할 때에 마땅히 강구(講究)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은 눈만 뜨면 바로 잘못 보고 걸음만 옮기면 번번이 발을 헛디뎌서 심중(心中)에 위태롭고 불안한 생각이 많고 안정되고 여유로운 의취(意趣)가 적음을 느낍니다. 무릇 이렇게 쉽게 알 수 있고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상 생활의 엉성한 일들조차도 이와 같으니, 장차 어떻게 천하의 지극한 이치를 궁구하고 천하의 위대한 사업(事業)을 세우겠습니까?아! 만약 이 일에 뜻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더욱 마음을 기울이려고 하면서도 더욱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저는 이 문제를 가지고 심력(心力)을 열심히 써서 분비(憤悱)82)를 이기지 못하는데 끝내 스승을 받들고 어버이를 드러내지 못할까 두려워서 감히 스승님께 숨기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일로 여겨 살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긴요하지 않은 외람된 말로 여겨 버리시겠습니까? 선비(先妣)의 행록에 '집안의 부녀(婦女)를 가르친다[敎內眷]'는 교훈이 있는 데 이르러서는 더욱 매우 감격스럽습니다. 이에 언해(諺解)를 올립니다만, 말이 비속(卑俗)하고 전아(典雅)하지 않아 부끄럽고 송구할 뿐입니다. 先妣家狀蒙賜題跋, 恩出不圖, 隕首莫報。 此蓋先妣之懿行, 有以感夫人心, 而先生之盛德, 有以樂道人善也。 鳴呼! 小子之二親有孝敬仁善之德, 不幸而不壽祿, 窮約困瘁而終, 此固可恨矣。 然嘉言美蹟, 幸而得先生筆, 而不朽千載, 雖謂之無恨, 可也。 然則有恨無恨之間, 小子將何以爲心? 惟有明道淑身, 內有立揚之實, 外紹賢聖之學, 豈非少報師親之恩者乎? 從玆以往, 益究其所未知, 益勉其所未能, 誓到明淑之地, 而不敢怠也。 是故比年來凍餓切膚, 而溝壑之操愈堅, 焚坑迫頭而喪元之志愈勵, 非敢能言以欺先生。 實不忍以莫重之遺體, 置諸汙辱之地也。 此箇義諦, 旣已知之, 第俟前頭所值而處之。 但日間云爲之際, 所當講究而踐行者, 開眼便錯見, 擧步輒失足, 覺得心中杌楻不安之意多, 妥帖自在之趣少。 凡此日用粗跡易知易行者, 尙如此, 將何以窮天下之至理, 建天下之大業乎? 噫! 苟無志於此事則已, 其欲益加意, 而益不能者, 何也? 小子以此, 煞用心力, 而不勝憤悱, 懼終無以承師而顯親, 敢以不隱乎皐比之下, 不審先生以爲由中之出而察之乎? 抑以爲不緊猥言而棄之乎? 先妣行錄, 至有'敎內眷'之訓, 尤切感激, 茲諺翻呈上, 而但詞語俚俗不雅是爲愧悚。 추위와……굳세집니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공자가 이르기를 '의지가 굳은 선비는 곤궁하여 자기 시체가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언제라도 자기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하였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분비(憤悱) 분(憤)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통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고, 비(悱)는 입으로 말을 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논어(論語)》〈술이(述而)〉에서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입으로 말해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거니와,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이로써 세 귀퉁이를 유추해서 알지 못하면 다시 더 말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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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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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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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丁巳 정사년(1917) 요즘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는데, 근래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바다 가운데는 추위가 더욱 심한데 잠자리와 음식 및 제반의 일들은 손실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집 뒤의 작은 언덕에 올라가서 계화도를 바라 볼 때 마다 마치 책상을 대하고 있는듯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종기로 인한 고통과 저의 혹독한 재앙을 생각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립니다. 진흙을 바른 조그만 여막집에 칩거하면서 하는 일은 없는데 다만 몸이 상중에 있어 실상이 없을까 두려워 항상 마음속으로 반성하면서 "네가 슬픔이 마르고 격식이 모자라서 예(禮)가 부족한 것인가? 이것은 부친을 생각하는 마음에 태만한 것이니, 진실하지 못한 죄 중에서 큰 것에 해당합니다. 네가 진정을 숨기고 형식을 갖추어 명예를 구하는가? 이것은 부친을 속이는 것이니, 진실하지 못한 죄 중에서 더욱 큰 것에 해당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스스로 노력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니, 다소 득력처(得力處)가 있는 듯 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거상(居喪) 한 가지 일을 이렇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에서 마음을 보존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기분을 따르고 욕심에 이끌려서 의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위천(違天)이라 부르고, 구차하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여 명예를 구하는 것은 기천(欺天)이라고 부르니, 위천과 기천의 죄는 모두 이 몸을 성실히 하지 않는데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단지 하나의 성(誠)을 세울 수 있다면, 어렵지 않고 우활(迂闊)하지 않은 길이 눈앞에 있어 따라갈 수 있고, 마음 편히 날마다 쉴 수 있는 효과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대학》에서 말한 성의(誠意)이고,《맹자》가 말한 사성(思誠)입니다. 이것은 이전에 익혀서 암송한 것이지만, 일찍이 하루도 여기에 대해 실제로 힘을 쓴 적이 없어서 구체적인 일로써 행동하는 공력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이후로는 성(誠)이라는 한 글자를 공부하는 칼자루로 삼고서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지만, 이미 아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에 따라서 노력한다면 거의 위천과 기천으로 귀착되는 것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가 선생께서 제가 마음을 보존하고 행실을 다스리는 것을 세심하게 살펴 어긋난 점이 있으면 지적하여 통렬하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근래에 《주례(周禮)》한 부(部)를 읽다가 그 육관(六官)의 소속 직책들이 〈주관(周官)〉의 치(治)·교(敎)·예(禮)·정(政)·금(禁)·토(土)83)의 관장(管掌)으로 기준해 보면 대부분 혼란스러워 차서(次序)를 잃어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선유(先儒)들이 혹 주공(周公)의 경(經)이 아니라고 의심하거나 혹 아직 완성되지 못한 책이라고 여긴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손지(方遜志)가 이른바 제후들이 자신들에게 해가 됨을 미워하여 그 전적을 없애버리고 난 나머지에서 나와 한대(漢代)의 유자(儒者)가 보충한 데서 완성되었다는 것이 아마도 정확한 의론인 듯합니다. 그가 편차(編次)를 고증한 목록은〈주관(周官)〉에 증험해 보면 딱딱 맞아서 믿을 만합니다. 다만 서문(序文)에서 그 대략만 논했을 뿐 미처 모든 직책을 다 열거하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분직(分職)하고 분류한 것에도 간혹 의심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간에 제가 그 범례를 신중히 따라 육관(六官)의 모든 직책을 다 들어 다시 편차를 고증하여 한 두 가지 의심스러운 것을 고쳐 이미 편목(篇目)을 완성하였기에 고친 차례의 편목에 의거하여 한 본을 필사하고 다시 그 뒤에 논설(論說)을 붙여 동지들에게 질정(質正)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천박한 견해와 망령된 의론이 한갓 경서를 어지럽혔다는 비난만 받을까 두려운 데다 눈앞에 닥친 시급한 일도 아니기 때문에 감히 경솔하게 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比天大雪, 近年所無。 海中寒冱益劇, 不審寢膳諸節無或見損否。 每陟廬後小堆, 遙望華嶹, 若對案然。 念先生之癃疾, 痛小子之酷禍, 時有泣下而不覺也。 蟄伏堊廬, 無所猷業, 但身在執喪, 懼其無實, 常自省于中曰: "爾有歇哀缺文, 以闕禮矣乎? 是則怠親也, 不誠之大者也爾。 有矯情飾文, 以要名矣乎? 是則欺親也, 不誠之尤者也。" 以此二者自勉, 庶求無愧於心, 覺有多少得力處。 因思非但居憂一事爲然也, 凡吾人之日間, 存心處事, 任氣牽欲, 不循義理者, 其名曰違天, 苟難悅人, 以干名譽者, 其名曰欺天, 違天欺天之罪, 均在不誠其身。 但能立得一箇誠, 則自有不艱不迂之途在前可由, 而見心逸日休之效, 此則大學之誠意, 孟子之思誠是也。 是固前日之所講誦, 而未嘗一日實用力於此者, 以未曾有因事省發之功也。 竊欲從茲以往, 將一誠字作用工之欛柄, 若其識所未逮者, 固無如之何, 而但於已知處, 隨事努力, 庶免違天欺天之歸也。 伏乞先生細察於宅心制行之間, 指摘其慝, 而痛加糾正也。近讀《周禮》一部, 而見其六官諸屬之職, 凖之以〈周官〉治敎禮政禁土之掌, 多紛紜失序。 先儒之或疑非周公之經, 或以爲未成之書, 良以是也。 而方遜志所謂'出於諸侯惡去之餘, 而成於漢儒之所補'者, 恐確論也。 其所考次目錄, 證之〈周官〉, 鑿鑿可信。 但論其大略於序文, 而未及悉擧諸職。 且分職從類之閒, 猶或有可疑者。 故間嘗謹遵其例, 悉擧六官諸職, 更爲考次, 而改動其一二可疑者, 已成篇目, 欲依更次篇目, 寫去一本, 復着論說於其後, 以質同志。 但恐陋見妄論, 徒取亂經之譏, 且非目下之急務, 故不敢率爾耳。 치(治)·교(敎)·예(禮)·정(政)·금(禁)·토(土) 《주례(周禮)》의 여러 주석서를 보면 '금(禁)·토(土)'는 '형(刑)·사(事)'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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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戊午 무오년(1918) 일전에 올린 〈노화동이고(蘆華同異考)〉는 간간이 보셨는지요? 대체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 두 어른이 이처럼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데 두 문하의 문인들이 반드시 억지로 모아다 같게 하려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이후로 도체(道體)는 형체(形體)가 없고 작위(作爲)가 없으며 리(理)는 정의(情意)와 조작(造作)이 없다는 취지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밝혀져 학문(學問)하는 사람들의 다반사로 하는 상담(常談) 같이 되었습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은 일상적인 것은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남쪽(기정진)에서는 리(理)에는 조종(操縱)과 적막(適莫)84)이 있다는 의론이 나왔고, 북쪽(이항로)에서는 태극(太極), 성정(性情), 공효(功效)의 설이 나와 당시 세상의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의 이목을 자극시켰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그쪽으로 휩쓸려 기뻐 따르면서 두 어른이 성학이 전해오지 않던 비밀을 터득하여 남현(南賢 기정진)과 북현(北賢 이항로)이 천 리나 떨어져 있어도 그 논조(論調)가 똑같다고 하면서 두 어른의 명덕(明德), 심성(心性) 등에 관한 설이 연(燕)나라와 월(越)나라의 거리만큼 서로 어긋나 있음을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두 어른의 평소의 의론을 총괄하여 논해 보면, 노사의 이른바 리와 태극이라는 것은 외려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잃지는 않았지만 리가 기의 주재가 된다고 보는 것이 너무 심하여 〈외필(猥筆)〉85)의 실수를 빚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화서의 이른바 리와 태극이라는 것은 실로 심(心)이고 기(氣)이지 다시는 본래면목이 아닙니다. 대개 노사의 재주는 화서보다 뛰어나지만 공부는 화서에 미치지 못하고 화서의 의론은 노사보다 자세하지만 그 견해는 노사에 미치지 못합니다. 노사가 호도(糊塗)함은 얕아서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가 적고 화서가 호도함은 깊어서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가 크니 높고 낮음(高下), 크고 작음(大小), 얕고 깊음(淺深) 사이에서 또 두 어른을 알 수 있습니다. 망령된 의론이 이에 이르니 참으로 세인(世人)들에게 꺼려지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선생님 앞에 드러내 고하여 질정(質正)받지 않을 수 없으니 부디 헤아려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日前所上〈蘆華同異攷〉, 間垂下覧否? 大抵二丈之相異, 有如此者, 而兩門門徒, 必欲牽合而同之者, 何也? 是必有其故也。 栗尤以降, 道體無形無爲, 理無情意造作之旨, 大明於我東。 有同學問家茶飯常談。 夫人之情, 常則厭之, 而思其新者矣。 迨是時也, 南有理有操縱適莫之論, 北有太極性情功效之說, 以砭起一世思新之耳目。 於是衆皆靡然喜而從之, 以爲二丈得聖學不傳之秘, 而南賢北賢, 相距千里, 其揆一也, 而不及細察其明德心性等說, 燕越相左也。 雖然, 總括二丈平生議論而論之, 蘆沙之所謂理與太極者, 却不失本來面目, 但看得理爲氣主太重, 而至有〈猥筆〉之失。 華西之所謂理與太極者, 實心也氣也, 而非復本來面目矣。 蓋蘆沙之才, 過於華西, 而用功不及華西, 華西之論, 詳於蘆沙, 而其見不及蘆沙。 蘆沙之惑淺, 而害之被人者小, 華西之惑深, 而害之被人者大, 高下大小淺深之間, 又可以知二丈矣。 妄論及此, 固知爲世所諱。 然先生之前, 不容不暴白取正, 幸賜裁敎。 적막(適莫) 적(適)은 어느 사물에 열중하는 것을 말하고 막(莫)은 그 반대로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논어(論語)》〈이인(里仁)〉에 다음과 같은 말이 수록되어 있다. "군자는 반드시 하려고 하는 것도 없고, 반드시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없다. 오로지 합리적인 것만을 따를 뿐이다〔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외필(猥筆) 율곡의 이기론(理氣論)을 비판한 기정진의 글로,《노사집(蘆沙集)》卷16〈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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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戊午 무오년(1918) 리(理)는 무위(無爲)의 물(物)이고 기(氣)는 유위(有爲)의 물이니, 유위와 무위의 사이에서 하나는 취산(聚散)이 있고 하나는 취산이 없음86)을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대개 리기(理氣)를 하나의 물(物)이라고 하는 것은 리와 기 두 가지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 묘함 때문이지만 그 본색(本色)과 능소(能所)87)의 구분은 끝내 뒤섞을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논하면, 문청(文淸 설선(薛瑄)이 이른바 '기는 취산이 있지만 리는 취산이 없다[氣有聚散 理無聚散]'라고 한 것88)은 본색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리기가 서로 떨어지는 병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암(整菴 나흠순(羅欽順))이 이른바 '기의 모임은 바로 모임의 리이고, 기의 흩어짐은 바로 흩어짐의 리이다[氣之聚便是聚之理 氣之散便是散之理]'라고 한 것89)은 도리어 도(道)와 기(器)의 분별에 있어 뒤섞이고 흐리멍텅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만약 기가 모일 수 있고 흩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모이고 흩어지는 소이(所以)로서의 리가 있기 때문에 기의 취산이 곧 리의 취산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근원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곧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태극(太極)의 동정(動靜)과 회옹(晦翁 주희(朱熹))의 리(理)는 동정(動靜)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주장을 세운다면 아마도 이치를 해치지는 않을 듯한데, 삼가 헤아려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理者無爲之物, 氣者有爲之物也, 有爲無爲之閒, 聚散之一有一無, 可知已矣。 蓋理氣一物云者, 以其二者不相離之妙也, 其本色能所之分, 終有不可得而混之者也。 以此論之, 文淸所謂'氣有聚散, 理無聚散'者, 是從本色上說, 而不爲理氣相離之病。 整菴所謂'氣之聚便是聚之理, 氣之散便是散之理'者, 反不免混淪儱侗於道器之辨也。 若曰氣之能聚能散者, 以其有所以聚, 所以散之理也, 故曰氣之聚散, 便是理之聚散, 則此乃從源頭上說, 而卽濂溪之太極動靜, 晦翁之理有動靜之意也。 如此立言, 則恐不害理, 伏惟裁敎。 하나는……없음 취산이 있는 것은 기(氣)이고 취산이 없는 것은 리(理)라는 말이다. 《회암집(晦菴集)》 권45 〈답요자회서(答廖子晦書)〉에서, 주희가 생사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며 이(理)와 기(氣)의 차이를 논한 대목에 "성은 단지 리일 뿐이니,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모이면 태어났다가 흩어지면 죽는 것은 기일 뿐이니, 이른바 정신과 혼백에 아는 것이 있고 느끼는 것이 있는 것은 모두 기의 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이면 있게 되고 흩어지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리의 경우는 당초 모이고 흩어지는 데에 따라서 있게 되고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性只是理 不可以聚散言, 其聚而生, 散而死者, 氣而已矣. 所謂精神魂魄有知有覺者, 皆氣之所爲也. 故聚則有, 散則無, 若理則初不爲聚散而有無也〕"라고 하였고, 나흠순(羅欽順)의 《곤지기(困知記)》 권하(卷下)에서, "설문청(薛文淸)의 《독서록(讀書錄)》에 '리기는 틈이 없으므로 기(器) 역시 도(道)이고 도 역시 기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이 합당하지만, 기는 취산이 있고 리는 취산이 없다는 설을 반복하여 증명한 일로 말하자면 나는 의심이 없을 수 없다. 무릇 하나는 취산이 있고 하나는 취산이 없으면 매우 틈이 있는 것이니 어찌 기 역시 도이고 도 역시 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문청(文淸)이 리기에 대하여 또한 시종 두 물(物)로 인식하였으므로 그 말이 때때로 막힘이 있음을 면치 못한 것이다.〔錄中有云理氣無縫隙故曰器亦道道亦器, 其言當矣. 至於反復證明, 氣有聚散, 理無聚散之說, 愚則不能無疑. 夫一有一無, 其爲罅縫也大矣. 安得謂之器亦道道亦器耶? 蓋文清之於理氣, 亦始終認為二物, 故其言未免時有窒礙也〕"라고 하였다. 능(能)과 소(所) 能과 所의 관계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원래 能은 주체를 의미하고, 所는 객체를 의미한다. 理氣論에서는 能과 所를 구별하여 말하기 어렵지만, 심성론에서는 心과 性을 能과 所로 구별할 수 있다. 즉 心은 性理를 알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能이고, 性理는 心에 인식당하기 때문에 所인 것이다. 心은 氣에 속하기 때문에 氣 역시 能이고, 理는 性이기 때문에 역시 所인 것이다. 문청(文淸)이……것 설선(薛瑄)은 그의 《독서록(讀書錄)》에서 리를 달에 비유하고 기를 물에 비유하며, 리를 햇빛[日光]에 비유하고 기를 나는 새[飛鳥]에 비유하며, 리를 온열량한(温熱凉寒)하는 소이(所以)에 비유하고 기를 온열량한(温熱凉寒)에 비유하는 것을 통해 기는 취산이 있지만 리는 취산이 없음을 증명하였다. 정암(整菴)……것 《곤지기(困知記)》 〈권하(卷下)〉에서 기는 취산이 있고 리는 취산이 없다는 설선(薛瑄)의 설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나흠순(羅欽順) 주장한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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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선생에게 올리는 《어류》 문목 上艮齋先生語類問目 戊午 무오년(1918) 근래 한가할 때 《주자어류(朱子語類)》한 부만 몰입해 보았습니다. 정당(精當)한 의론과 지극한 교훈이 사람의 마음과 눈을 경계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당시 선생의 정신(精神)과 풍채(風彩)까지 드러나 있어 자양(紫陽)과 운곡(雲谷)90) 사이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과 방불하여 천 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사람을 쉽게 감발(感發)시킴은 손수 지으신 《주자전서》에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습니다. 다만 《어류》가 당시의 방언(方言)에서 나온 것이기에 껄끄럽고 난삽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91)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혹 정밀한 의리가 관계되지 않은 경우에는 거의 대의(大意)를 묵회(默會)하면 되거니와, 강론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의리로써 문견이 좁은 이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것은 어찌 감히 의심을 쌓아두고 묻지 않으면서 종신토록 번뇌를 품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의심나는 대로 기록하고서 연속하여 선생님의 비평을 구하고자 하니 노년에 응답하시는 것이 매우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선생님은 《주자어류》에 대해 세인(世人)들이 이른바 마치 자기 말 외우듯 한다는 분이니 그 가운데 어렵고 쉬운 부분들에 대해 필시 오래도록 연구한 바가 있으실 터라 대가(大家)의 정신을 소비하는 데 이르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경솔하게 외람되이 편지를 올리오니 비평하신 답장은 시기에 구애받지 말고 보내주시면 됩니다.서자융(徐子融)이 "부자(附子)는 뜨겁고 대황(大黃)은 차가운 것은 기질지성(氣質之性)입니까?"라고 묻자, 진재경(陳才卿)은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하였다. 선생께서 "자융은 지각(知覺)이 성(性)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기질지성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당본(唐本) 권4의 5판, 〈보광록(輔廣錄)〉】두 약물(부자와 대황)의 차고 뜨거운 성질은 원기(元氣)가 처음 온 데서 비롯된 것이지 미악(美惡)과 편전(偏全)을 구분한 것이 아니니 어찌 성으로 여기지 않는 기질지성[氣質不性之性]92)으로 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자는 이것에 대하여 기질지성으로 여기지 않고 본연지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곧장 이를 가지고 천하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성[一性]인 성93)으로 여긴다면 또 어찌 차갑고 뜨거운 성질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명확히 분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부자는 뜨겁고 대황은 차가운 것은 천지의 본연(本然)의 리이니 성으로 여기지 않는[弗性] 기질지성으로 여겨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약물은 써서 질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이롭게 하니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은 인(仁)이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의(義)이다. 그러하니 인의가 어찌 천하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성인 성이 아니겠는가? 차갑고 뜨거운 성질의 차이는 양건(陽健)과 음순(陰順)을 예로 들어보면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그것들은 원래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稟受)한 적이 없고 오로지 사람만이 그 온전함을 얻었다."【출전은 앞과 같다.】이 단락은 사람과 생물의 성이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가 있다[人物性偏全]고 주장하는 호론(湖論)의 증거가 될 듯합니다. 그러나 아래 문장에서 인용한 '생물에는 사람에 가까운 성이 있고 사람에게는 생물에 가까운 성이 있다'는 여씨(呂氏)의 말을 가지고 살펴보면,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은 대체로 생물은 오상(五常)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리를 품수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사람만이 그 온전함을 얻었다'고 한 것은 대체로 사람만이 오상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리를 홀로 얻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만약 사람과 생물이 본연지성을 품부할 때의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를 말한다면 치우친 것은 원래부터 치우친 것이고 온전한 것은 원래부터 온전한 것일 테니 어찌 사람에 가깝고 사물에 가까운 뒤섞인 성의 모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원래 일찍이 이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다'는 이 말은 아래 문장에서 '생물에는 사람에 가까운 성이 있고 사람에게는 생물에 가까운 성이 있다'는 말을 가지고 살펴보면 운용(運用)하는 곳에 나아가 그 온전히 할 수 없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 분명하다. 《통서해(通書解)》에서 '성대로 한다는 것은 성인이 홀로 하늘에서 얻은 것이다[性焉者聖人獨得於天]'94)라고 말하였으니, 중인(衆人)은 일찍이 이 성대로 한다는 도리를 품수한 적이 없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보내온 편지는 대체로 옳다."물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고 어떤 생물의 성은 어떠하며 어떤 사물의 성은 뜨겁고 어떤 사물의 성은 차갑다고 늘상 말하는데 이것은 기질과 품수받은 리(理)를 겸하여 말한 것입니까?" 말씀하셨다. "그렇다."【권4의 20판, 〈심한록(沈僩錄)〉】'부자는 뜨겁고 대황은 차갑다'는 것은 바로 5판 〈보광록(輔廣錄)〉에서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인데 지금 여기서 물성(物性)의 뜨겁고 차가움은 기질과 품수받은 리(理)를 겸하여 말한 것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다시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간주한 듯하면서도 품수받은 리(理)라고 말한 것은 또 본성(本性)을 이르는 듯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고 한 경우는 분명히 기질지성이고 함께 대비하여 거론하였으니 기질지성으로 간주하고 본연지성으로 간주하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품수받은 리는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보광록(輔廣錄)〉과 〈심한록(沈僩錄)〉 둘 가운데 과연 어디를 따라야 합니까? 게다가 의심컨대,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는 말은 완급(緩急), 강유(剛柔), 미악(美惡) 같은 온갖 것들이고 물성이 뜨겁고 차가움은 원래 이러하고 미악(美惡)을 구분하는 데 미치지 않은 것인데 하나의 예로 동일하게 여기니 혹은 적절한 분류가 아닌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선생이 일찍이 '천지가 건순(健順)한 것은 사람의 기질【성(性) 자를 붙여 보아야 한다】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 조목에서 어떤 사람의 성은 어떠하다고 말한 것은 어떤 사람의 성은 효성스럽고 어떤 사람의 성은 충후하다는 것으로, 이는 기질과 품수받은 리를 겸하여 함께 말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통할 수 있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리(理)는 심(心) 속에 있는데 심은 리를 가두어 두지 못하고 일에 따라서 발현한다. 흡사 저 상자와 비슷하니 책상자[經函]를 제거하고 안에서 등불을 밝히면[點燈] 사면팔방이 모두 이처럼 광명함이 찬란하다.[光明燦爛]"【권5의 4판, 〈보광록(輔廣錄)〉】무릇 주자의 설 중에 리에 대해 광명(光明)을 말한 곳 가운데 다른 곳들은 모두 말할 만한 점이 있지만 이 단락에서는 경함(經函)으로 심을 비유하고 점등(點燈)으로 리를 비유하여 광명으로 리(理)를 곧장 말한 듯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아야 통달하여 막힘이 없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선생이 일찍이 명덕(明德)을 논하여 '도리(道理)는 심 속에 있으면서 광명함이 비추어 관통하여 조금도 밝지 않음이 없다[道理在心裹光明照徹 無一毫不明]'고 하셨다.【인용은 여기에서 그침】 도리는 지극히 고요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는 것이니 어떻게 광명함이 있겠는가? 다만 심의 측면에 나아가 지적하였기 때문에 또한 이러한 설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단락에서는 먼저 심과 리가 하나임을 말하고 이어서 리가 심 속에 있음을 다시 말하고 광명함이 찬란하다는 말로 끝을 맺었으니, 아마 막힘이 없는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수많은 도리가 밝디밝은 것은 성(性)에 속한다."【권5의 13판】성분(性分)에 대해 밝디밝음을 말하는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만약 만리(萬理)가 찬란하게 구비되었다는 뜻으로 본다면 문제가 없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부분들을 만약 융통성 있게 보지 않으면 밝디밝고 신령스러운 것을 인식해 성(性)과 태극(太極)으로 여기는 이단의 학문으로 쉽게 빠져들까 두렵다. 이 단락의 문장의 의의(意義)는 명료하지 않다."물었다. "명덕(明德)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입니까?" 대답하셨다. "그렇다.[便是]"【권14의 12판, 〈유경중록(游敬仲錄)〉】성이 만약 정말로 명덕 전체(全體)의 본색(本色)이라면 단지 '그렇다[便是]'고만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바로 그렇다[卽是]'라고 해야 합니다. 이는 성이 단지 명덕 중에 갖추어져 있는 것일 뿐이고 전체의 본색이 아니기 때문에 곧바로 '바로 그렇다[卽是]'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그렇다[便是]'라고만 말한 것입니다. 뒤의 권16의 1판(板) 〈황순록(黃㽦錄)〉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는 것이다[便是天之所命謂性者]' 및 4판 〈양도부록(楊道夫錄)〉에 '명덕이다[便是明德]'라고 한 것이 이 예와 동일하게 보아야 할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보내온 편지의 내용처럼 보아야 할 듯하다.""이 도리(道理)는 심 속에 있으면서 광명(光明)함이 비추어 관통한다"【출전은 앞과 같다.】도리가 심 속에 있기 때문에 심도 아울러서 '광명함이 비추어 관통한다'고 말한 것이지, (도리와 심을) 분리하여 단지 도리에서만 광명함을 말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미 앞에 보인다. 옛날에 약재(約齊 송병화(宋炳華))가 시(詩)를 지어 '심이 광명한 곳에 리가 광명하다.[心光明處理光明]'라고 하였는데, 이와 같이 말하면 좋다.""광명(光明)한 성은 본래 그대로 있다."【권15의 25판, 〈여대아록(余大雅錄)〉】이 단락의 문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심(心)의 본체(本體)를 밝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가지고 설명하고 다시 명덕(明德)이 성(性)이라는 말은 없는데, 이 심의 본체가 바로 명덕입니다. 그렇다면 광명한 성의 '성' 자는 성리(性理)의 성으로 풀이하지 않고 단지 체(體) 자의 뜻으로만 풀이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그러한 듯하지만 단정지어 말하지는 못하겠다.""이 도리는 광명(光明)하여 어둡지 않다. 이 리는 담연(湛然)하게 맑고 밝다."【권16의 2판, 〈심한록(沈僩錄)〉】광명과 담연은 심에 들어맞는 말인데 지금 이 말들을 가지고 리(理)를 말하면 참으로 의심할 만할 듯합니다. 그러나 이 두 구의 윗글에 이미 '이 심을 길이 보존한다[長存此心]'는 한 구가 있으니 이 리는 바로 심에 갖추어진 리입니다. 그러므로 광명과 담연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단지 리 하나만 말한다면 응당 이러한 글자들을 써서는 안 됩니다.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위와 같다.""이 물사(物事)95)가 곧 기(氣)이다."【권16의 13판, 〈임기손록(林夔孫錄)〉】선생께서 일찍이 문제를 제기하여 이 물사(物事)를 혹은 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이라고도 하고 혹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氣)라고도 하고 혹은 허령(虛靈)한 심(心)이라고도 하는데 의당 자세하게 궁구하고 따져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삼가 제가 이 단락의 어맥(語脈)을 자세히 살펴보건대, 이 물사는 바로 밝은 명령[明命]을 가리키니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은 곧 사람의 밝은 덕[人之明德]이고 하늘이 명령하고 사람이 얻은 것은 바로 허령(虛靈)하고 신명(神明)한 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물사가 곧 기이다'라고 말한 것이니 이렇게 본다면 전체 문단의 어맥은 절마다 모두 통하게 됩니다. 만약 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으로 본다면 성은 곧 리이니[性卽理] 어찌 다시 허다한 도리를 이 속에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음양오행의 기로 본다면 불가(佛家)가 이해하는 것과 노자(老子)가 파악하는 것은 정말로 모두 자신의 심신에서 찾지 않고 멀리 천지의 음양오행에서 구한단 말입니까? 이와 같이 본다면 절마다 구애되어 아마 끝내 통하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각기 성명을 바룬다[各正性命]'는 구절 이하96)는 의문이 시원하게 풀리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어쩌면 성명(性命)은 심(心)이 갖추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섞어서 말해도 서로 구애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 말씀하셨다[又曰]' 이하에서 주장하는 관점이 앞 문단과 달라서입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 물사를 곧바로 성으로 인식하였다면 불가와 노자가 어찌 일찍이 이렇게까지 볼 수 있었겠는가? 옛날에 영남(嶺南)의 유원중(柳遠重)ㆍ송호곤(宋鎬坤)ㆍ송호완(宋鎬完)ㆍ송재락(宋在洛) 등의 여러 사람이 스스로 이 구절을 잘못 보고 문득 논쟁하면서 서로 헐뜯었는데 나는 기(氣)를 밝히는 학문의 언론(言論)과 기상(氣象)이 서생(書生)과 전혀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두려울 만하다. 지금 그대가 보내온 편지가 타당한 듯하지만 이러한 무리들과 맞부딪쳐서 한 바탕 이상한 짓을 당하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또 말씀하셨다[又曰]' 이하에 대해서는 나 또한 명료하지 않다. 다만 아래 문단의 내용으로 살펴보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은 모두 하늘의 밝은 명령이니 선생의 뜻은 결코 유씨(柳氏)나 송씨(宋氏) 등 여러 사람의 견해가 아니다.""아는 것이 미진하면 스스로 속임을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권16의 1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스스로 속이는 것은 반절은 알고 반절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출전은 앞과 같다, 〈양도부록(楊道夫錄)〉】"스스로 속이지 않으려면 반드시 아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출전은 앞과 같다, 증조도록〈(曾祖道錄)〉】'스스로 속인다(自欺)'는 말을 《대학장구》를 근거로 해석하면, 이미 안 이후에 실제적인 힘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른바 '속인다'는 것은 '실제적이지 않다'는 뜻으로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령되게도 스스로 속이는 것은 앎의 과실이 아니고, 의지의 죄이며, 무심(無心)의 과실이 아니라 유심(有心)의 사사로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주자어류》의 문단을 보니, 결국은 앎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이렇게 된다면 '스스로 속인다'는 것은 격물치지가 정밀하지 않은 것이지 힘을 쓰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구구한 의심을 다할 수 없지만, 이것뿐 만이 아닙니다. 이를 《대학혹문》에 고증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대학장구》에서 '선을 실천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되 마음의 발하는 바가 진실하지 못함이 있다'는 것을 정론으로 삼는다면, 《어류》와 《혹문》의 내용은 억지로 서로 합치하게 하지 않아도 합치하게 됩니다. 장하주(章下註)의 '심체(心體)의 밝음이 미진(未盡)한 바가 있다'고 운운한 데에 이르러서는, 성의(誠意)가 별도의 단독적인 전(傳)로 성립되어(別立單傳) 치지(致知)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 사람들이 위의 장(上章)을 이어서 통괄적으로 고증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설(原說)을 미루어나가면, 아는 것이 미진하면 뜻이 성실하지 않게 되어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불성(不誠)의 큰 관건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말하면, 아마도 앎이 미진하다는 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실제적 병통이라고 여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병통으로 말하면 하문에 이미 밝혔으니, '불근호차(不謹乎此)'97)라는 한 구절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극히 옳고 옳다. 《주자어류》와 《대학혹문》의 설명은 별도로 하나의 의리로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 단락의 뒷문장은 의리가 있지만 또한 조금 작위적인 말이 있으니 이 구절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논어집주(論語集註)》의 도체(道體)는 무위하다는 말98)과 서로 걸리는 듯하다."물었다.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에서 어디에 속합니까?" 말씀하셨다.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권17의 5판, 〈호영록(胡泳錄)〉】하늘의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사람의 건순오상(健順五常)은 그 이치가 하나입니다. 하늘에 있는 오행(五行) 가운데 목(木)과 화(火)는 양에 속하고 금(金)과 수(水)는 음에 속하니, 오행은 하나의 음양(陰陽)입니다. 이를 가지고 예시하면, 사람에 있는 오상(五常) 가운데 인(仁)과 예(禮)는 건(健)에 속해야 하고 의(義)와 지(智)는 순(順)에 속해야 하니, 오상도 하나의 건순(健順)입니다. 그런데 지금 건순의 사성(四性)에의 분속(分屬)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단지 사성(四性)의 음양(陰陽)에의 분속(分屬)으로만 답하고 건순 2자를 빠뜨린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음양을 말하면 건순은 그 안에 있다. 그러므로 다시 자세히 논하지 않았을 것이다.""사람과 생물은 모두 건순오상(健順五常)의 성(性)을 품수(稟受)하였다. 그리고 이를테면 개가 사람을 물 수 있는 것은 곧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사람을 물지 않는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다. 또 이를테면 초목이 곧고 딱딱한 것은 강한 성질을 품수한 것이고 연하고 약한 것은 저 순한 성질을 품수한 것이다."【출전은 앞과 같다, 〈심한록(沈僩錄)〉】건순(健順)과 오상(五常)은 바로 본연지성(本然之性)인데 지금 이 개[狗子]와 초목(草木) 두 조목에서 운운한 것은 오히려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말한 듯합니다. 만약 '인(人)' 자를 가지고 '구자(狗子)'나 '초목(草木)' 자와 바꾸고서, 사람이 강하고 사나워 남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자애롭고 착해서 사람을 해칠 수 없는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라고 말하고 또 사람이 곧고 딱딱한 것은 저 굳센 본성[健性]을 품수한 것이고 연하고 약한 것은 저 순한 본성[順性]을 품수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본연지성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이 문단은 아마도 기록이 잘못된 듯하다. 또 앞 문장에 양(陽)의 기(氣)와 음(陰)의 기라는 두 '기(氣)' 자는 뒷구의 오행(五行)의 리(理)로 추론해 본다면99) 리(理)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천지의 중(中)은 미발(未發)의 중(中)이고 천연적으로 본래 존재하는 중(中)은 시중(時中)이다."【권18의 22판, 〈증조도록(曾祖道錄)〉100)】상단(上段)의 〈심한록(沈僩錄)〉에서는 "천지의 중(中)은 단지 하늘이 내린 것으로만 말할 수 있을 뿐이지 사람이 받은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101)고 하였지만 이 단락에서는 오히려 "천지의 중(中)은 미발(未發)의 중(中)이다."라고 하였으니, 미발의 중이 어찌 사람에게 있는 대본(大本)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상단에서는 하늘이 내린 것과 사람이 받은 것을 가지고 상대하여 들어서 나누어 말하였고 이 단락에서는 미발(未發)의 시중(時中)102)을 가지고 대비하여 들고 나누어 말했으니 주장하는 관점이 이미 다르므로 가르키는 바도 조금 다릅니다. 이와 같이 보면 되겠습니까?○ 선생께서 답서에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논한 내용이 맞다.""《중용(中庸)》에서는 오로지 지(智)만 말하였다.[中庸專言智]"103)103) 중용에서는……말하였다 :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9 제5조에는 "《논어(論語)》에서는 단지 인(仁)만 말하고, 《중용(中庸)》에서는 단지 지(智)만 말하였다.〔論語只說仁, 中庸只說智〕"라고 하였다.【권19의 1판, 〈탕영록(湯泳錄)〉】지(智)ㆍ인(仁)ㆍ용(勇)은 《중용》의 대지(大旨)인데 오로지 지(智)만 말하였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도를 밝히는 책이기 때문에 지(智)로 말한 것입니까?물었다.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그만둔 것은 인(仁)이 되지 않는데104) 관중에게는 오히려 인(仁)이라 일컬은 것은105) 어떠합니까?" 말씀하셨다.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그만둔 것은 독자적으로 한 것이고 관중은 출사하여 필경 인(仁)하다고 할 만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권20의 22판, 〈정남승록(鄭南升錄)〉】공자(孔子)의 본뜻과 주자의 《논어집주》에 근거하면, 자문(子文)이 인하기까지는 않았던 것은 그가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관중(管仲)을 인하다고 인정한 것은 그가 천하를 한 번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은 인정해 주고 한 사람의 인은 부정한 것은 그 가리키는 바가 각각 달랐으니 애초에 독자적으로 하여 훌륭한 일을 못했다고 자문(子文)을 폄하한 것이 아니고 출사하여 훌륭한 일을 하였다고 관중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자어류》에서 이와 같이 말했으니 후학들이 만약 이 설을 주장한다면 아마도 자수(自修)를 경시하고 공리(功利)를 중시하는 폐단에 이를 듯합니다.물었다. "비록 어떤 이가 그를 배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할 것입니다."106) 말씀하셨다. "필경 일찍이 배운 것이겠는가? 아직 배우지 않은 것이겠는가?" 물었다. "선생께서 이른바 그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힘쓴 것이 지극해서일 것입니다.[非其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말씀하셨다. "옳게 보았다."【권21 18판, 정남승록(鄭南升錄)】자하(子夏)의 말은 폐단이 있음을 면치 못한다.[不免有弊] 하지만 오늘날 이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경우, 만약 그가 학문한 것이 아니고 또 타고난 자질이 높은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若不是他學問來, 又不是天資高, 安能如此]【19판, 〈임기손록(林夔孫錄)〉】자하의 본래 말은 도리어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다는 뜻인데 오재로(吳才老 오역(吳棫))는 그 폐단이 학문을 그만두는 데 이른다[至於廢學]고 하였다.【앞과 같은 판, 〈황간록(黃榦錄)〉】자하의 이런 말은 교왕과직(矯枉過直)한 것이다.107)【앞과 같은 판, 〈섭하손록(葉賀孫錄)〉】'불면유폐(不免有弊)', '지어폐학(至於廢學)', '교왕과직(矯枉過直)' 등의 설에 근거하면,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하겠다[吾必謂之學]'에서의 '학(學)' 자는 단지 명륜(明倫 인륜을 밝힘)으로만 본 것이고 이 사람은 정말로 아직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만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 '약불시학문래 안능여차(若不是學問來 安能如此)' 등의 설에 근거하면, 다시 이 '학(學)' 자는 학문(學問)으로 본 것이고 이 사람은 이미 일찍이 학문을 한 사람입니다.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또 곧장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라는 한 구절로 단안(斷案)을 삼은 경우로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일찍이 병암(炳菴 김준영(金駿榮))이 《논어집주》의 '필기무학지지(必其務學之至)'라는 말을 주장하여 '이미 일찍이 학문을 한 사람'으로 보고서 자하(子夏)의 말이 폐단이 없다고 하여 오씨(吳氏)가 자하의 본뜻을 잘못 이해하였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는데 이 설은 매우 이치가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이 본다면, 자하의 말은 너무 골자가 없어 근본을 중시하고 말단을 억제하는 데 힘이 되기에 부족하니, 이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물었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에 대하여 이천(伊川 정이(程頤))은 성(誠)이라고 하였는데 옳습니까?" 말씀하셨다. "성(誠)은 생각에서 나오고 시인(詩人)의 생각은 모두 정성(情性)이다. 정성(情性)은 본래 바름[正]에서 나오니 어찌 거짓으로 할 수 있겠는가? 생각은 바로 정성(情性)이고 사특함이 없음은 바름[正]이다. 이로써 본다면 《시경》 삼백 편은 모두 정성(情性)의 바름에서 나온 것이다."【권23의 12판, 〈황탁록(黄卓錄)〉】《논어집주》와 《주자어류》의 여러 단락에서 모두 '사무사(思無邪)'는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성(情性)의 바름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단락에서만 시인의 정(情)이 거짓으로 한 게 아니라는 것으로 '사무사(思無邪)'를 해당시키고 《시경》 삼백 편은 모두 정성(情性)의 바름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테면 음녀(淫女)와 탕자(蕩子)의 노래 같은 것이 어찌 거짓으로 한 게 아니고 곧바로 정(情)을 쏟아내었다는 이유로 바름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발한 정(情)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을 따지지도 않고 그저 그 정(情)이 거짓으로 한 게 아니라는 이유로 성(誠)이라고 한다면, 이천(伊川)의 본뜻이 아닙니다. 이 단락은 아마도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어야 할 듯합니다."'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는 것은 굳이 시인의 생각과 시를 읽는 사람의 생각이라고 말할 것이 없다. 무릇 사람은 모두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한다."【13판, 〈만인걸록(萬人傑錄)〉】이 단락에서는 사람들이 '사무사(思無邪)'를 단지 시를 짓고 시를 읽는 사람의 일로만 보고 뭇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일로 보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므로 이를 말하여 그 폐단을 바로잡았습니다. 만약 '사무사(思無邪)'는 천하 만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단지 자기 자신의 정성(情性)에 나아가 그 바름을 찾아 얻어야 할 뿐이지 굳이 부질없이 이 시인의 생각과 시를 읽는 사람의 생각을 말하여 무익한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물었다. "맑음[淸], 조화로움[和], 자임[任]108) 역시 단지 그릇[器]일 뿐입니까?" 말씀하셨다. "이것은 한편으로 치우쳐[偏] 성취(成就)한 것이지만 도리어 그릇은 아니다."【권24의 13판, 〈황간록(黃榦錄)〉】이미 '치우쳤다[偏]'고 말하고 다시 '그릇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상판(上板)의 〈주명작록(周明作錄)〉과 하판(下板)의 〈임일지록(林一之錄)〉에 근거하면, 이 단락에서 그릇이 아니라고 운운한 것은 정론(定論)이 아닌 듯합니다.'충신(忠信)이 주(周)이다'109)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충신이 주(周)인 것은 단지《좌전》의 '두루 자문한다[周爰咨詢]'의 주(周)를 가리켜 충신이라고 한 데110)서 연유했을 뿐이니, 후세 사람들이 마침내 이를 가져다 함부로 풀이하는 것은 가장 이치가 없다."【권24의 17판, 〈임각록(林恪錄)〉】'충신(忠信)이 주(周)이다'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충신하므로 두루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면전에서나 등뒤에서 성실하지 않으면 두루 하는 것이 아니다."【앞과 같은 판, 〈임일지록(林一之錄)〉】'공평하게 대하다[周]'와 '편당을 짓다[比]'는 것은 단지 공(公)과 사(私)라는 두 글자로 대비하여 설파한 후에야 딱 들어맞아 바꾸지 못한다. 충신(忠信)은 공(公) 자의 뜻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임각록(林恪錄)〉에서 '이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충신(忠信)하지 않으면 하는 일이 다 실질이 없을 것이니 비록 공평하게 하여 두루 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임일지록(林一之錄)〉에서 도리어 '성실하지 않으면 두루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두 기록은 같이 놓아도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물었다. "인을 이롭게 여기는[利仁]111) 자는 본래 이미 발한 곳에서 살피기는 합니다만 다시 미발(未發)의 때에 삼가지는 않습니까?" 말씀하셨다. "미발의 때에는 본래 공부를 붙일 곳이 없다. 미발의 때에는 요순에서 보통 사람까지 모두 똑같다."【권26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요순(堯舜)의 자연스러운 미발(未發)과 보통 사람의 우연한 미발은 본래 공부를 붙일 곳이 없는데 인을 이롭게 여기는[利仁] 자 이하의 미발은 위로는 자연스러움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우연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고요할 때 본래 치중(致中)이라는 일단의 공부가 있으니 그런 뒤에 체(體)가 세워지고 용(用)이 행해지게 됩니다. 지금 미발의 때에는 공부를 붙일 곳이 없다고 뭉뚱그려 말하면 (중이라는) 대본(大本)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학문의 방법이 혹 거의 치우쳐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선생(朱先生)의 가르침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후학(後學)의 망녕된 의심이 그러할 뿐입니다."'자기로써 한다[以己]'와 '자기를 미룬다[推己]'112)는 말의 분변(分辨)"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자기로써 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자기를 미룬다'는 것은 꺾어 돌리는 뜻이 있으니 이를테면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을 통달하게 해준다는 것과 같다."【권27의 21판, 〈서우록(徐㝢錄)〉】'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울 통달하게 해준다'는 것은 《논어집주》및 아래 〈진순록(陳淳錄)〉과 〈황의강록(黃義剛錄)〉 둘을 가지고 살펴보면 바로 '자기로써 하는[以己]' 일인데 여기서 '자기를 미루는[推己]' 일로 본 것은 아마도 의당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물었다. "비록 전체(全體)는 아직 인(仁)이 아닐지라도 만일 한 가지 일에서 이치에 맞고 또 사심(私心)이 없을 수 있다면 또한 한 가지 일의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인(仁) 자를 말하기만 하면 곧 전체(全體)로 말한 것이다. 만약 한 가지 일에서 인(仁)을 다할 수 있다면 곧 그의 전체가 인(仁)하게 된다. 만약 전체에 흠결이 있으면 이 한 가지 일에서도 틀림없이 인을 다할 수 없으니 인(仁) 자를 말하기만 하면 수많은 일을 다 포함하여 모두 다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게 된다."【권28의 10판, 〈심한록(沈僩錄)〉】이미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을 인으로 여긴다면 전체(全體)가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은 본래 전체의 인이거니와 한 가지 일이 이치에 맞고 사심이 없음도 한 가지 일의 인이 되는 데 문제가 없는데, 선생께서 금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전체를 상정한 이후에 인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면, 안자(顔子 안회(顔回))가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은 것도 석 달의 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까? 안자가 진실로 전체에 흠결이 없는 자는 아니지만 한 가지 일에서 반드시 인을 다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3권 19판 〈정가학록(鄭可學錄)〉의 경우에는 "한 가지 일이 인에 있어 순수하므로 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一事純於仁 可謂之仁]113) 은(殷)나라에 세 인자가 있었는데 이들 역시 그 전체를 보지 못하였고 단지 거취(去就)의 문제에서 천리(天理)에 순수하였으므로 공자께서 인정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이 말이 의당 바꿀 수 없는 의론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호문정공(胡文定公 호안국(胡安國))의 춘추설(春秋說)에 '출공(出公) 첩(輒)이 자리에서 떠나 아버지를 따르면 위(衛)나라 신하들은 첩을 도와 아버지 괴외를 막아야 한다.'114)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권34의 27판, 〈여도록(呂燾錄)〉】《주자대전(朱子大全)》 〈범백숭에게 답한 편지(答范伯崇書)〉에서 "첩(輒)이 만약 아버지를 피할 마음이 있었다면 위나라 신하들은 마땅히 그의 아버지 괴외(蒯聵)를 막고서 첩을 도와야 한다."라고 하여 이 조목과 같지 않습니다. 대체로 첩이 진실로 아버지를 피할 마음이 있었다면 위나라 신하들은 마땅히 다른 공자(公子)를 세우고서 괴외를 막아야 하니, 바로 첩이 아버지를 따르는 마음과 일에 처하는 의리를 이루어주는 방법이 진실로 이러합니다. 게다가 비록 첩을 도와 그의 아버지 괴외를 막고자 하였더라도 첩이 어찌 자기를 돕고 아버지를 막는 일에 기꺼이 편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반드시 도망간 뒤에 그만두었을 것이니 이것이 또 사세(事勢)로 보아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의당 《주자어류》의 이 조목을 정론(定論)으로 삼아야 할 듯합니다."태왕(太王)은 상(商)나라의 정치가 날로 쇠하는 것을 보고 상나라가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상나라를 치려는 뜻을 두었으니 또한 지극히 공정한 마음이다."【권35의 3판, 〈이장조록(李壯祖錄)〉】주(紂) 임금이 백성을 학대할 때 그를 치려는 마음을 둔 경우라면 지극히 공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왕은 이미 주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을 만나지 않았으니 주자가 지극히 공정하다고 말한 것은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나의 재주를 다하니 선생님의 도가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는[不思而得]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고, '비록 (공자를)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雖欲從之, 末由也已]'는 것은 힘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는[不勉而中]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115)【권36의 21판, 〈황순록(黃㽦錄)〉】'여유소립탁이(如有所立卓爾)'는 본 것이 더욱 친근해진 경지이고 '수욕종지말유야이(雖欲從之末由也已)'는 (성인의 경지까지) 아직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니,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는 경지, 힘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의당 모두 (성인의 경지까지) 아직 한 칸을 도달하지 못한 수준에 있는 것일 듯합니다."자로(子路)와 염구(冉求) 및 공서화(公西華)가 하고자 한 일들은 증점(曾點)이라면 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들이다."116)【권40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증점의 소견을 끝까지 미루어 가면, 세 사람(자로, 염구, 공서화)이 말한 일들은 우선 말할 것도 없고 요순(堯舜)의 사업도 해낼 수 있습니다. 다만 증점의 평소 간이하고 우활한 성품과 방탄(放誕)한 행동으로 어찌 제후국의 군정(軍政)을 다스리거나 한 나라의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거나 나라의 큰 예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자도 참으로 "증점으로 하여금 세 사람의 일을 하게 한다면, 꼭 해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극기복례는 그 틈이 머리카락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사심이 없어야 인(仁)이라고 할 수 있다."【권41의 1판, 〈양도부록(楊道夫錄)〉】극기하면 예는 스스로 회복되니, 극기 이외에 별도로 복례가 있는 것은 아니다.【앞과 같은 판, 〈섭하손록(葉賀孫錄)〉】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하면, 이곳에서 정밀하고 세밀한 공부를 착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를 회복해야만 仁이 되는 것이다. 성인은 극기가 곧 仁이라고 말하지 않고, 극기복례가 仁이라고 말씀하셨다.【3판, 〈김거위록(金去僞錄)〉】자기를 극복한 이후에 반드시 예에 돌아가고, 그런 연후에 仁을 한다. 만약에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하면서 한 가지 일도 하는 것이 없다면, 극복한 이후에 반드시 공허함에 떨어진다.【5판, 〈반시거록(潘時擧錄)〉】'극기하면 곧 복례한다'는 것은 극기를 하고서 복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두 개로 끊어진 공부도 아니다.【8판, 〈진식록(陳植錄)〉】주선생(주희)은 한 사람인데, 두 개 설의 다름이 이와 같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어느 설을 따라야 합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에게는 단지 천리와 인욕 두 길만이 있으니, 천리가 아니면 인욕이고, 천리에 속하지 않으면서 또 인욕에 속하지 않은 때는 없습니다. 진실로 자기의 사심을 극복해 가면 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강을 말한 것이고, 자세하게 논하면, 사람은 사욕을 스스로 제거할 수 있지만 이치에 맞게 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좌의 방법을 통하여 마음을 밝게 하려고 하지만, 도체의 공심(公心)을 보존하지 못하여 사물에 응대함에 있어 간혹 마땅함을 잃는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하물며 예는 천리의 절문(節文)으로, 절문은 지나침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매우 합당한 것입니다. 매우 타당한 데에 합치하기 때문에 지극히 어려운 仁이라는 이름을 감당할 수 있고, 하루의 잠깐 사이에 천하의 큼을 얻어서 인(仁)에 돌아가는 것으로 말하자면 어찌 한번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여 곧 절로 매우 타당한 데에 합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논어집주》에서 "사욕을 이기고 禮에 돌아간다"에서 아래 이(而)라는 한 글자를 살펴보면 극기복례에서 공부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물었다. "(공자께서) '나는 그 나라를 동방의 주(周)나라로 만들 것이다.[吾其爲東周乎]'117)라고 하셨는데 만약 성인(聖人 공자)으로 하여금 그 뜻을 행할 수 있게 하면 단지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의 동방에서만 하는 것입니까?" 말씀하셨다. "역시 다만 거기에서만 할 수 있다." 다시 물었다. "주나라는 어떻게 합니까?" 말씀하셨다. "이 점은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때에 임하여 일의 형세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향응(響應)하여 모이는 곳이 있다면 또한 저절로 성인을 통하지 않을 것이니, 만약 주나라 왕조로 하여금 그 예물(禮物)을 갖추어 (새로 일어나는) 왕가(王家)의 손님이 되게 한다면, 어찌 난왕(赧王)이 주나라의 읍을 스스로 헌납하여 멸망한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권47의 3판, 〈심한록(沈僩錄)〉】'나는 동방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라는 말은 아마도 단지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의 도를 동방의 노나라에 행하겠다고 말한 것일 뿐 애초에 천명(天命)을 받아 주나라를 대신하겠다는 뜻은 없는 듯합니다.《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는 단지 '동방에 주나라의 도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라고만 말했으니 또한 이와 같은 뜻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주자어류》에서 '주나라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물음에 '단지 그 일의 형세를 봐야 한다'고 답한 것은 모두 성인(聖人)의 심사(心事)의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미리 말해서는 안 됨을 말한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주자께서 무슨 까닭으로 질문에 따라 대답하면서 난왕의 멸망을 운운하기까지 한 것입니까? 삼가 저는 변변찮은 의심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물었다.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는 일로, 여기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灑掃應對, 是其然, 必有所以然.]'118)라고 하였는데, 소이연(所以然)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말씀하셨다. "만약 진실한 뜻[誠意]이 없다면 어떻게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대하겠는가?"【권49의 11판, 〈감절록(甘節錄)〉】성의(誠意)를 소이연으로 삼고 있으니, 만일 기록을 잘못한 게 아니라면 주자의 한때의 설입니다."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에도 절도에 맞음과 절도에 맞지 않음[中節不中節]이 있다. 이를테면 측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고 수오하지 않아야 하는데 수오하는 것이 바로 절도에 맞지 않는 것이다.[若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 便是不中節]"【권53의 9판, 〈진순록(陳淳錄)〉】"측은하게 여겨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수오해야 하는데 수오하지 않고, 사양해야 하는데 사양하지 않으며, 그른 것을 옳다고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은 모두 그 본심을 잃어버린 것이다."【16판, 〈보광록(輔廣錄)〉】측은하게 여겨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지 않고 수오해야 하는데 수오하지 않는 것이 이미 본심을 잃어버린 것이라면, 측은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는데 측은하게 여기고 수오하지 않아야 하는데 수오하는 것 또한 본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본심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불인(不仁)이고 불의(不義)일 따름입니다. 측은하게 여겨야 해서 측은하게 여길 때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고, 수오해야 해서 수오할 때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는 데 이르른 뒤에야 비로소 절도에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말한다면, 제때 제자리에 맞게 발하면서 지나침과 부족함이 있는 측은과 수오는 사단(四端)이 되는 데 문제가 없거니와 제때 제자리에 맞지 않게 발하는 측은과 수오는 아마도 사단으로 논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그렇다면 〈진순록(陳淳錄)〉에서 이른바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에도 절도에 맞음과 절도에 맞지 않음이 있다.'는 말은 참으로 의당 정론이 되어야 하거니와 '약불(若不)' 이하 20자는 토론해야 할 점이 있는 듯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어떠하신지요?"사단(四端)은 바르고 바르지 못함이 있다. 이를테면 모질고 사납고 어리석고 강퍅함[暴戾愚狠]은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고 모호하여 분명하지 않음[含糊不分曉]은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불손(不遜)한 행위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잘못 발한 것이다. 하루 사이에 한 번 바르고 한번 반(反)하는 것이 언제나 사단의 발함 아닌 것이 없다."【16판, 〈이방자록(李方子錄)〉】폭려(暴戾)와 우한(愚狠), 불손(不遜)과 모호함[含糊]은 바로 불인(不仁), 불의(不義), 무례(無禮), 부지(不智)이니 애초에 사단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으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사단의 발함이라고 한 것은 측은이 반대로 폭려가 되고 수오가 받대로 우한이 되며 사양이 반대로 불손이 되고 시비가 반대로 모호함이 되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는 바로 이른바 '선은 본래 성이지만 악 역시 성이라고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善固性也, 惡亦不可不謂之性也]'119)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주자가 이 말을 한 것은 대체로 학자들로 하여금 하루 사이에 생각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을 잘 살펴서 반드시 저 바르지 않은 것을 다스려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려고 한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문제가 없겠습니까?"사단(四端)은 리(理)의 발함이고 칠정(七情)은 기(氣)의 발함이다." 물었다. "보건대 이를테면 기쁨ㆍ성냄ㆍ사랑함ㆍ미워함ㆍ바람[喜怒愛惡欲] 같은 것은 도리어 인의에 가까운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참으로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20판, 〈보광록(輔廣錄)〉】이미 칠정은 기의 발함이라 하고서 다시 칠정을 인의(仁義)로 여긴다면, 칠정 또한 리의 발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칠정을 리의 발함이라고도 해도 된다면 사단을 일러 기의 발함이라고 하는 것도 의당 가능합니다. 대체로 이는 사단이 선(善)만 있는 쪽이기 때문에 리의 발함에 소속시키고 칠정은 선악(善惡)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기의 발함에 소속시킨 데 불과하지, 사단과 칠정이 리에서 발하고 기에서 발하는 것이 각자 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의 이동(異同)이 비롯되어 나온 곳인데, 모르겠습니다만 정밀하고 자상하신 퇴계(退溪 이황)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두 선생이 이 단락에 대해 일찍이 어떻게 보셨습니까?"자로(子路)는 말 모는 것을 법대로 해서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고, 관중(管仲)은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잡았을 뿐이다.120)" 【권55의 9판, 〈여도록(呂燾錄)〉】공자(孔子)가 이미 자로의 재주가 천승(千乘)의 제후국의 군정(軍政)을 다스릴 수 있다고 칭찬하였고121) 자로도 일찍이 "천승의 제후국이 대국(大國)의 사이에 속박을 받아 전쟁이 가해지고 인하여 기근이 들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직접 말하였습니다.122) 3년만 다스려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관중이 40년이나 되는 오랫동안 제나라를 도왔던 것처럼 했다면 그 공렬(功烈)이 어찌 관중의 아래였겠습니까? 이 뜻은 김인산(金仁山 김이상(金履祥))이 이미 말하고 우리 선생님이 일찍이 주자가 양씨(楊氏)의 설123)을《맹자집주(孟子集註)》에 기록한 것을 놓고 타당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자어록》을 살펴보건대, 《맹자집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자가 직접 말씀한 것도 이러하니, 양씨의 설이 바로 주자의 말입니다. 더욱 감히 단정지어 말하지 못할 점이 있을 듯합니다."'원칙을 고집하면서 권도가 없는[執中無權]'124) 권(權)은 비교적 가벼운 것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잡아 구원해 주는[嫂溺援之以手]'125) 권은 비교적 중한 것이니 권에도 깊고 얕은 차이가 있다."【권56의 8판, 〈심한록(沈僩錄)〉】일에는 본래 대소(大小)가 있지만 똑같이 권도(權道)를 행하여 중(中)을 얻으니 중이라는 것은 리(理)가 딱 맞는 곳입니다. 큰일에도 딱 맞는 곳이 있고 작은 일에도 딱 맞는 곳이 있는데 딱 맞는 곳이라는 점은 똑같습니다. 일의 대소를 가지고 권의 경중(輕重)을 나누어서는 안 될 듯한데 주자의 설이 이러하니 의심스럽습니다.물었다. "'동네 이웃에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비록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鄕隣有鬪者, 雖閉戶, 可也]'126) 만약 동네 이웃의 싸움에 친척이나 형제가 그 가운데 있다면 어찌 똑같이 간주하여 말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셨다. "형제가 있다면 참으로 마땅히 말려야 하지만 일은 또한 반드시 대소(大小)를 헤아려야 한다. 만약 단지 작은 일로 치고박는 싸움이면 말리더라도 무방하지만 만약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면 또한 단지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을 따름이다." 【권57의 17판, 〈심한록(沈僩錄)〉】한방에 같이 있는 사람 중에 싸우는 자가 있으면 맹자(孟子)가 "머리를 풀어 흩뜨리고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린다."라고 했으니 형제가 어찌 한방에 같이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만, 어찌하여 이런 문답(問答)을 하게 된 것입니까? 게다가 형제가 바야흐로 전쟁과 재난에 빠져있는데 내가 도리어 문을 닫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어찌 의리를 크게 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곳들은 아마도 기록을 잘못한 듯합니다.물었다. "요순(堯舜)의 왕위 선양(禪讓)은 비록 성대한 덕이지만 부득이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까?" 말씀하셨다. "그렇다."【권50의 8판, 〈무명록(無名錄)〉】하늘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낳아서 진실로 백성의 임금과 스승을 삼고자 합니다. 고금(古今)에 천하를 소유한 사람이 현자(賢者)에게 전하지 않고 자식에게 전한 것은 하늘의 뜻을 체행(體行)하는 방도가 아닙니다. 요순이 왕위를 선양한 것은 참으로 공공(公共)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하늘이 현자에게 주게 하면 현자에게 주고 자식에게 주게 하면 자식에게 준다.[天與賢則與賢, 與子則與子.]"127)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득이해서'라고 한 것은 그 의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데도 주자가 옳게 여겼으니 의심스럽습니다."개와 소 및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은 일찍이 같지 아니함이 없었는데, 오로지 사람만이 리의 온전함을 얻었고, 사물은 단지 치우친 한 쪽만을 얻었을 뿐이다. 이제 개와 소에서 仁義의 온전함을 얻으려고 하여도 이른바 '성즉리'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이 리의 온전함을 얻었고, 사물은 이 리의 치우친 한쪽만을 얻었음을 볼 수 있다. 고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것을 성이라고 하였을 뿐 리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반면 맹자는 '리로써 사람과 생물의 차이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권59의 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사람이 만물과 다른 까닭은 사람은 정기(正氣)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도리를 모두 얻어 갖출 수 있다. 사물의 경우는 기가 혼탁하면 리 또한 혼탁해진다."【앞과 같은 판, 〈여도록(呂燾錄)〉】"사물도 이 성을 갖추고 있지만, 단지 기의 품수가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에 이 성도 기에 따라서 전환한다."【3판, 〈황의강록(黃義剛錄)〉】'타고난 것을 성이라 한다'는 장은 호론(湖論)의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이 나온 곳입니다. 《주자어류》의 제반 내용은 그 설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이것으로써 '성이 다르다'는 이론을 삼았습니다. 고자는 사람과 생물의 태어남은 대체로 같다고 생각하여 '성이 동일하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기를 성으로 인식한 것으로, 도를 크게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분별하여 "이른바 성이라고 하는 것은 지각운동하는 기가 아니고, 인의예지의 리입니다. 지각운동의 기는 사람과 생물이 비록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의예지의 리를 어찌 사물이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사람과 생물이 지각운동은 비록 동일하게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바르고(正) 통하며(通) 치우치고(偏) 막힘(塞)의 차이가 있는 것은 정히 동일한 흰색일지라도 깃털과 눈의 흰색은 경중(輕重)이 이미 차이가 나고, 눈과 옥의 흰색은 허실(虛實)이 또한 다른 것과 같습니다. 치우치고 막혔기 때문에 사물은 인의예지의 리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없고, 바르게 통하기 때문에 사람은 인의예지의 리를 온전하게 할 수 있으니, 온전함과 온전하지 않음의 사이에 성이 같지 않음이 판가름 납니다. 사람과 생물은 태어난 이후 기질의 발용처에서 말한 다름이지 사람과 생물이 태어나면서 본성을 품수 받을 때에 이미 다름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고자가 단지 기의 발용이 서로 같지 않음을 보고서 사람과 생물의 본성이 다르다고 주장을 하였다면, 맹자는 이것에 대하여 반드시 '성이 같다'는 주장으로써 변론할 것입니다. (맹자는) "기에는 통함과 막힘이 있고, 리에 비록 치우침과 온전함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리의 지선(至善)함은 기에 의하여 구속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늘이 부여한 본성은 사람과 생물의 한 근원이니 처음부터 기 때문에 다름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섭하손록(葉賀孫錄)〉의 "사물은 이 리의 치우침을 얻었다"는 것과 〈황의강록(黃義剛錄)〉에서 "사물은 이 성(性)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다만 품수 받은 것이 치우쳤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설들은 다만 《맹자집주》의 '인의예지의 본성을 받음이 어찌 동물이 얻어 온전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한 구절을 정론으로 삼고서 융통성 있게 이해한다면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 문사(文辭)만을 근거로 삼아 사물은 치우친 것을 얻었기 때문에 품수 받은 것도 치우쳤다고 생각한다면, 《맹자집주》에서는 마땅히 "어찌 동물이 온전히 얻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해야지, "어찌 동물이 얻어서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사물은 기의 치우침을 얻었기 때문에 이 성을 발현함에 있어서도 치우침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가 치우쳐 발한 것을 근거로 억지로 이름을 지어서 "사물은 리의 치우침과 성의 치우침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율옹(이이)이 말한 "기가 치우치면 리 또한 치우치지만, 치우친 것은 리가 아니고 기이다"라는 이 한마디는 이미 팔자타개(八字打開)한 것입니다. 호론가(湖論家)가 비록 이것을 인용하여 성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해도 가능하겠습니까? 게다가 이른바 개와 소에서 인의의 온전함을 얻으려고 해도 얻을 수 없고, 기가 혼탁하기 때문에 리 또한 혼탁하다는 것, 이 성은 기에 따라서 전환한다는 등의 말은 분명 기품의 용처에서 말한 것입니까? 《맹자》의 본문과 《주자어류》의 여러 문단의 뜻을 이렇게 보아도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도록(呂燾錄)〉 중에 사람이 사물과 다른 것은 수많은 도리를 모두 얻어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구(具) 자를 어찌 전(全) 자로 쓰지 않았습니까? 이점은 오히려 의심이 갑니다.○ 개와 소 및 사람의 성은 이미 기(氣)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주자대전》 및 《주자어류》11판의 〈주모록(周謨錄)〉에서 다시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질지성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편전지성(偏全之性)과 불성지성(不性之性)이 이것이다. 편전지성은 선(善) 한 쪽을 주로 하여 말한 것이고, 불성지성은 선악(善惡)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여기서 말한 기질지성은 아마도 단지 편전지성으로 볼 수는 있어도 불성지성으로 보아서는 안 될 듯하다.○ 이 성의 차이에 대해 맹자는 단지 개와 소 및 사람 세 가지를 들었을 뿐이고 주자는 다시 단지 사람과 생물이라는 두 층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미루어 확장하면 사람과 사람, 생물과 생물에 대해 사람마다 생물마다 개체마다 층층마다 모두 똑같이 보아야 한다. 모르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는가?"심(心)과 성(性)은 단지 한가지일 뿐이고 지(知)와 진(盡)이 같지 않으니 이른바 지(知)는 곧 심이다."128) 물었다. "지(知)는 심의 신명(神明)이니 사단(四端) 중의 이른바 지(智)와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이 지(知) 자가 뜻이 더 크다.[知字義又大] 그러나 공자(孔子)는 인(仁)과 지(智)를 많이 말씀하셨다. 이를테면 원형리정(元亨利貞)에서 원(元)이 곧 인(仁)이고 정(貞)이 곧 지(智)이다. 사단(四端)에서 인(仁)과 지(智)가 가장 큰데[仁智最大] 정(貞)이 없으면 원(元)은 일어날 곳이 없으니 지(智)가 없으면 어떻게 인(仁)이 될 수 있겠는가? 《주역》에서 '처음과 끝을 크게 밝힌다[大明終始]'129)라고 했는데,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것이다. 지(智)가 크게 되는 까닭은 지(知)가 있기 때문이다.[智之所以爲大者, 以其有知也.]"【권60의 2판, 〈보광록(輔廣錄)〉】이 단락의 위아래 문장에서 '지(知)' 자와 '대(大)' 자의 차이에 대해 우리 선생님께서 일찍이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삼가 제가 생각해 보니, 위의 네 '지(知)' 자는 심(心)의 지각(知覺)의 지(知)이니 기(氣)에 속합니다. 아래의 '유지(有知)'의 지(知)는 성(性)의 분별하는 지(知)이니 리에 속합니다. '지(知) 자가 뜻이 크다[知字義大]'의 대(大)는 뭇 이치를 묘하게 운용하여 만물을 주재하기[妙衆理應萬事] 때문이니 분별하는 지(知)가 단지 성(性)의 일단(一端)이 되는 데 그치는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최대(最大)'와 '위대(爲大)'의 두 대(大) 자는 그것이 형(亨)과 리(利)보다 큼을 말합니다. 선생님의 견해에 어긋나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지(知)와 진(盡)이 같지 않다는 말은 아마도 마음을 다해서 힘써 행한다는 것으로, 뒤의 〈섭하손록(葉賀孫錄)〉 이하 여러 기록의 뜻과 같은 듯하다. 그러나 만약 단지 진심(盡心)과 지성(知性) 한 단락만 있을 뿐이라면 의당 이처럼 말할 수 있겠지만, 아래 문장에 이미 다시 존심(存心)과 양성(養性) 한 단락이 있으니 지(知) 하나 행(行) 하나를 주재하는 바는 자유자재하다. 이것이 《주자어류》의 '마음을 다하여 힘써 행한다'는 설이 끝내 《맹자집주》에서 버려지게 된 까닭이다.물었다. "'명(命) 아닌 것이 없다[莫非命也]'130)는 이 한 구는 기품(氣稟)의 명(命)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니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고 한다[天命謂性]'의 명(命)과 같습니까?" 말씀하셨다. "맹자의 뜻으로는 기품을 말하지는 않았으니 이 구는 단지 '사람과 생물이 살아감에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모두 하늘이 명한 것임을 말했을 뿐이다."【7판, 〈심한록(沈僩錄)〉】성(性)과 화복(禍福)은 모두 명이니 하늘로부터 사람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性)이 사람마다 똑같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품수한 것은 리(理)인데 리는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화복(禍福)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품수한 것은 기수(氣數)인데 기는 만 가지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길흉화복의 명에 대해 (맹자가) 기품을 말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아래 12판의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는 "의(義)가 아닌 일로 죽은 것은 본래 스스로 취한 것이니 이 또한 미리 정해진 것으로, 대체로 품수한 악기(惡氣)가 이를 초래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기품을 말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이 의당 정론(定論)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기화(氣化)에 연유하여 도(道)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由氣化有道之名]'131) 이를테면 하늘의 도, 땅의 도, 사람의 도, 부자지간의 도, 군신간의 도, 성을 따름을 이르는 도[率性之謂道]' 같은 것이 이것이다."【10판, 〈임기손록(林夔孫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率性之謂道]'고 하였는데 성(性)은 단지 리(理)일 뿐으로, 성을 따라야만 이 도를 볼 수 있으니 이는 사물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테면 군신과 부자의 도 같은 경우는 군신과 부자가 있어야만 이 도리를 볼 수 있다."【앞과 같은 판, 〈반식록(潘植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率性之謂道]'는 말이 이 한 구와 관계된다."【앞과 같은 판, 〈임사록(林賜錄)〉】'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천도(天道)의 유행(流行)을 말하는 듯합니다. 바로 《주역》에서 이른바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게 함을 일러 도라고 한다'132)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를 잇는 선[繼善]'의 일을 말하고 '도를 이루는 성[成性]'의 일은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도를 이루는 성조차 언급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성을 따르는 도[率性之道]'를 말하면 혹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심(心)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있는 전체(全體)이고, 성(性)은 천리의 전체이다."【12판, 〈진순록(陳淳錄)〉】삼가 제가 생각하기에, 성은 천리가 사람에게 있는 전체이고 심은 일신(一身)을 주재하면서 천리를 갖추고 있는 전체라고 하면 더욱 온당하고 주밀할 듯한데 어떠하십니까?"하늘의 측면에서 말하면 모두 바른 명[皆是正命]이다."【앞과 같은 판, 〈임각록(林恪錄)〉】아래 문장의 '하늘에 있는 명이 도리어 저절로 어긋남이 있다' 및 하판(下板)의 섭하손록(葉賀孫錄)에서 '하늘이 스스로 그 바른 명[正命]을 잃었다'는 말에 근거하면, '모두 바른 명이다[皆是正命]'라는 주장은 아마도 정설(定說)이 되지 못할 듯합니다."'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133)에서 '성(性)' 자는 기품(氣稟)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권61의 4판, 〈동백우록(童伯羽錄)〉】"이 '성(性)' 자는 물욕(物欲)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5판, 〈여도록(呂燾錄)〉】이 '성(性)' 자는 바로 기품(氣稟)과 물욕(物欲)을 주가 되는 것이니 마땅히 "바로 기욕(氣欲)을 가리켜서 말하였다."라고 해야 하는데 반드시 아래에 '겸(兼)' 자를 쓴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대체로 이 성이 비록 기욕(氣欲)이 주가 될지라도 이미 성이라고 했다면 성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은 그것이 리(理)가 되기 때문이므로 자연의 리가 이와 같이 기에 붙은 것을 가리켜 그 명칭을 정한 것입니다. 그 기욕(氣欲)의 활동을 가리켜 '겸한다'고 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리(理)가 성(性)이 되는 명칭은 바꿀 수 없음을 가리킨 것이니 바로 이를테면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비록 도의(道義)가 주가 되지만 기(氣)라는 명목은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주가 되는 도의를 취하여 명명하지 않고 반드시 짝하고 있는 기를 가리켜서 명칭을 정한 것입니다. 《논어집주》의 "여기에서 말한 성은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134)라고 한 것도 이 예와 같은 경우로 보아야 합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떠하십니까?"'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에서 이 '명(命)' 자는 도리어 리(理)와 기(氣)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6판, 〈동수록(董銖錄)〉】빈천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은 기수(氣數)의 명(命)을 편히 따라서이고 부귀한 사람도 제한이 있는 것은 의리(義理)의 명(命)을 편히 따라서입니다. 이 '명(命)' 자를 리(理)와 기(氣)를 합한 것으로 보는 것은 완비(完備)된 주장입니다. 앞의 4판 〈섭하손록(葉賀孫錄)〉에서 리의 측면에서 말하고 뒤의 7판 〈황의강록(黃義剛錄)〉에서 리를 가리켜 말한 것은 아마도 모두 미비함이 있는 듯합니다."'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는다[操則存舍則亡]'135)라고 하는데 마음이 어찌 보존과 잃음이 있겠는가? 이것은 바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경계짓는 구별이다. 인심은 이 몸에 지각(知覺)이 있고 기욕(嗜慾)이 있는 것이니 이를테면 이른바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한다[我欲仁]'136),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른다[從心所欲]'137),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은) 성의 욕구[性之欲也]'138)라는 말 같은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한결같이 그 아들을 모질게 대하면 자식도 반드시 사나워져서 그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르게 되니 이것이 인심이 위태로운 까닭이다."【권62의 9~10판, 〈여대아록(余大雅錄)〉】천하에는 인심(人心)이 없는 상지(上知)가 없고 또 그 마음을 잃어버린 성인(聖人)도 없으니 잡고 놓으며 보존하고 잃는다[操舍存亡]는 말로 인심과 도심을 말한 것은 분명히 아직 확정하지 않은 설입니다.○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명(性命)에 근원하는 것이니 원래 인심이 아니거니와 사나워져서 그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것 또한 어찌 인심의 위태로움에 그치겠는가? 아마도 모두 잘못된 기록인 듯하다."지(知)ㆍ인(仁)ㆍ용(勇)처럼139) 허다한 학문하는 도리(道理)이다."【11판, 〈심한록(沈僩錄)〉】여기서 도리(道理)는 아마도 방법이라는 뜻으로, '대학지도(大學之道)'의 '도(道)' 자와 같고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의 '도(道)' 자와 같지 않을 듯합니다."소의 성질은 순하고 말의 성질은 굳세니 바로 굳세고 순한[健順]의 성(性)이고, 범과 이리의 인(仁)과 개미의 의(義)는 바로 오상(五常)의 성이다. 하지만 단지 품수한 것이 적어서 사람이 온전하게 품수한 것과 같지 않을 뿐이다."【12판, 〈증조도록(曾祖道錄)〉】이 단락은 생물이 온전하게 오상(五常)을 품수하지 못한 것을 말하여 주자(朱子)가 평소 말한 사람과 생물의 성(性)이 같다는 주장과 같지 않은 듯한데 어째서입니까?물었다. "목(木)의 신(神)은 인(仁)이 되고 화(火)의 신은 예(禮)가 됩니다." 말씀하셨다. "'신(神)' 자는 '의사(意思)'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앞과 같은 판, 〈심한록(沈僩錄)〉】인의예지(仁義禮智)는 리(理)이니 목(木)의 리는 인(仁)이고, 화(火)의 리는 예(禮)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신(神)을 인(仁)과 예(禮)로 여긴 것은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의사(意思)'라고 말한 것도 정의(情意)가 없는 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이천(伊川 정이(程頤))의 뜻에 근거하면, 사람과 생물의 본성(本性)은 같지만 (성을) 품부함에 이르러서는 다르다. 대체로 본성은 리(理)이지만 본래 품부받은 성(性)은 기(氣)이다. 성(性)은 본래 자연한 것인데 태어날 때 품부받음에 이르러 기가 없으면 타고 갈 수가 없으므로 반드시 이 성을 기 위에 둔 뒤에 태어날 수 있다. 이미 태어남에 이르러서는 생물은 저대로 생물의 성을 품수하고 사람은 저대로 사람의 기를 품수한다."【14판, 〈정가학록(鄭可學錄)〉】이 단락에서 논한 것은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말한 듯하지만 이천은 이미 '성을 따르는 도[率性之道]'를 가지고 사람과 생물을 통괄하여 말했으니 어찌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따를 만한 것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본연지성(本然之性)으로 본다면 '사람과 생물의 성은 같지만 (성을) 품수함이 다르다'와 '생물은 생물의 성을 품수하고 사람은 사람의 기를 품수한다'는 등의 설이 또 통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하늘이 명한 성[天命之性]은 사람이 온전하게 받고 생물이 치우치게 받는다."【15판, 〈양지록(楊至錄)〉】이것은 또한 아마도 앞의 12판 〈여도록(呂燾錄)〉의 뜻과 같은 듯합니다."보지 않고 듣지 않는[不睹不聞]140) 때에는 본래 마음을 잡아 지켜야[持守] 하지만 살피지 않아서도 안 되고, 홀로 있는 자리를 조심할[謹獨]141) 때에는 본래 잘 살펴야[致察] 하지만 마음을 잡아 지키지 않아서도 안 된다."【23판, 〈보광록(輔廣錄)〉】보지 않고 듣지 않는 때에는 형체도 조짐도 없으니 무슨 일을 살필 수 있겠습니까? 잘못된 기록이 아니라면 이는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입니다."이천(伊川)이 '(미발(未發)의) 중(中)일 때 귀로 듣는 것이 없고 눈으로 보는 것이 없지만 듣고 보는 리(理)가 있어야 비로소 된다.'142)라고 하셨다."【32판, 〈진순록(陳淳錄)〉】여기서 듣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마음을 둔 들음과 봄이 없다고 말한 것이지 자연스러운 들음과 봄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앞 29판의 〈진순록(陳淳錄)〉143)에서 주자(朱子)가 본래 "고요할 때 귀와 눈도 반드시 자연스러운 들음과 봄이 있다."라고 하셨고 《중용혹문(中庸或問)》에서도 "미발(未發)의 때 귀와 눈은 의당 또한 정명(精明)하여 어지럽힐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이발(已發)과 미발(未發)은 굳이 크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 다만 이미 함양(涵養)하고 또 성찰(省察)하여 언제나 함양하고 성찰할 뿐이다."【34판 〈황순록(黃㽦錄)〉. 뒤에 같은 제자의 기록에도 이 설이 있다.】"미발 때에는 본래 존양(存養)해야 하지만 이발 때에도 존양해야 한다. 미발 때에는 본래 성찰(省察)해야 하지만 이발 때에도 성찰해야 한다."【35판, 〈오필대록(吳必大錄)〉】함양과 존양은 본래 미발과 이발에 통괄하여 말할 수 있지만 성찰은 미발과 이발에 통괄하여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도 아마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의론인 듯합니다."존양(存養)은 고요할 때의 공부이다. 고요할 때는 중(中)이니 지나침이나 모자람[過不及]이 없고, 치우치거나 기울어진 것도 없어서이다."【38판, 〈증조도록(曾祖道錄)〉】지나침이나 모자람은 움직일 때[動時]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요할 때[靜時]도 말해야 하니 주자가 이 단락에서 이미 분명하게 게시하셨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중용기의(中庸記疑)〉144)에서 이른바 "보통 사람의 고요함은 모자람[不及]이고 선사(禪師) 허발(許渤)의 고요함은 지나침[過]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참으로 실제의 명확한 의론인데 만약 이 단락을 인용하여 증거로 삼는다면 더욱 완비될 것입니다.물었다. "귀신(鬼神)의 덕(德)145)은 어떻습니까?" 말씀하셨다. "이것은 귀신의 실제로 그러한 리(理)를 말한 것이다."【권63의 22판, 〈왕역행록(王力行錄)〉】삼가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이는 곧바로 리(理)를 가지고 덕(德)을 풀이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을 말하여 귀신의 덕을 논한 것은 귀신의 실제로 그러한 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떻겠습니까?"'체물(體物)'은 물(物)로 체(體)를 삼음을 말한다. 이 물이 있으면, 이 성(誠)이 있다."【앞과 같은 판, 〈정단몽록(程端蒙錄)〉】'물(物)로 체(體)를 삼는다'는 말은 《중용장구(中庸章句)》의 '물의 체가 된다'는 말과 어세(語勢)가 주객(主客)이 딱 상반됩니다. 《중용장구》에서 말한 '물의 체가 된다'는 것은 음양(陰陽)의 두 기(氣)를 가리켜 말한 것이지 실리(實理)를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단락은 아마도 잘못된 기록인 듯합니다."'천하의 대본(大本)을 세운다'는 것은 고요하지만 한 순간도 중도(中道)에 맞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화육(化育)을 안다면 천리(天理)의 유행을 안다."【권64의 12판, 〈섭하손록(葉賀孫錄)〉】《중용장구》 32장의 대본(大本)은 성(性)의 전체(全體)를 말한 것이니 1장의 고요함의 측면에서만 말한 대본(大本)과 같지 않기에 여기에서 '고요하지만 한 순간도 중도에 맞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 역시 아직 확정하지 않은 의론이 되어야 합니다.곡(曲)은 기품(氣稟)의 치우침[偏]이다.【앞과 같은 판, 〈황승경록(黃升卿錄)〉】《중용장구》에서는 곡(曲)을 선(善)한 단서의 발현의 치우침[偏]이라고 풀이하였으니 발현의 치우침은 발현의 한 단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병폐를 띠고 있다는 뜻이 아니니 곡(曲)을 기품(氣稟)으로 여긴 것은 논의가 있어야 할 듯합니다. 대체로 치우침[偏]이라는 것은 온전함[全]의 반대이니 체(體)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은 그 지성(至誠)이고 그 다음은 치우친 것을 지극히 하여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뒤의 13판 〈요겸록(廖謙錄)〉에서 '곡(曲)은 일을 따라 힘을 쓰는 것으로 일마다 그 극치까지 미루어 다한다[曲是逐事上著力 事事上推致其極]'고 한 풀이가 이미 매우 명백합니다. 그리고 14판 〈심한록(沈僩錄)〉에서는 주자가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품수한 후박(厚薄)으로 곡(曲)을 풀이했던 것을 놓고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이 말했던가'라고 하셨고 15판 〈정가학록(鄭可學錄)〉에서는 정자(程子)의 '치우침이 넘치는 곳에서 발현한다[偏勝處發]'는 설을 타당하지 않다고 여겼으니, 여기에서 더욱 알 수 있습니다.'명(明)과 동(動)'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한갓 밝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밝음이 쓸 데가 없고 한갓 행하기만 하고 밝지 않다면 행함이 지향하는 바가 없게 된다."【16판, 〈동백우록(童伯羽錄)〉】동(動)을 행(行)으로 보는 것 또한 《중용장구》의 본뜻이 아닙니다."성(誠)은 자연스럽게 이루는 도리이다." 또 말씀하셨다.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것은 이를테면 저 초목(草木)이 수많은 뿌리와 그루, 가지와 잎, 줄기가 있는 까닭은 곧 그것이 실제로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수많은 뿌리와 그루, 가지와 잎, 줄기가 있게 된 것이니 이것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당신에게 본래부터 실제로 있는 것이다."【16판, 〈심한록(沈僩錄)〉】"대체로 이 실리(實理)가 있으니 이 하늘이 있고 이 실리가 있으니 이 땅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실리가 없다면 곧 이 하늘이 없고 이 땅도 없다. 만물이 모두 이와 같으므로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고 하였으니 이는 본래 스스로 이 사물을 이룬다는 것이다."【17판, 〈섭하손록(葉賀孫錄)〉】"'성(誠)은 사물의 시작과 끝이다[誠者物之終始]'라는 말은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한 구를 해석한 것이다."【앞과 같음】《주자어류》의 여러 기록에는 모두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라는 말을 리(理)를 주로 한 말로 여겼으니, 심(心)으로 말한 《중용장구》와는 같지 않다."내가 예전에 성(誠)을 말한 것은 병폐가 있다. 대체로 성(誠)과 도(道)는 모두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는 데 머문다.146) 만약 구설(舊說)대로라면 성과 도는 두 물(物)이 된다."【17판, 〈황의강록(黃義剛錄)〉】성(誠)과 도(道)가 두 물(物)이라는 구설(舊說)은 심(心)으로 성(誠)을 말하고 리(理)로 도(道)를 말한 《중용장구》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대개 성과 도가 비록 심과 리의 구분이 있지만 실심(實心)은 도를 행하는 근본이 되고, 도리는 반드시 실심을 기다린 뒤에 행해집니다. 그래서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과 도가 어찌 일찍이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之爲貴]'는 데 머물지 않은 적이 있어 기어코 병폐로 보고자 하겠습니까?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는 매양 이 문단에 근거하여 정론(定論)을 삼고서 《중용장구》를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주자가 구설에 병폐가 있다고 말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병폐가 있다고 말하셨지만 끝까지 《중용장구》를 고치지 않으셨으니 주자가 도로 구설을 주장했음을 또한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 뜻은 우리 선생님의 〈중용기의(中庸記疑)〉에서 이미 자세히 변론하였는데, 아마도 정확한 의론인 듯합니다."'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誠者自成也]' 뒷문장에 '성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는 이 두 구는 앞의 한 구를 풀이하였다. 실제로 이 리(理)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있고 실제로 이 리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다."【앞과 같은 판, 〈임기손록(林夔孫錄)〉】이 역시 리(理)를 주로 하여 말하였으니 앞의 〈심한록(沈僩錄)〉, 〈섭하손록(葉賀孫錄)〉과 같습니다.물었다.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不誠無物]'는 것은 아마도 인심(人心)이 이 리(理)를 실(實)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말한 듯합니다." 말씀하셨다. "아니다. 뒷문장에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君子誠之爲貴]'고 말한 것은 사람이 마땅히 이 리를 실하게 해야 함을 바야흐로 말한 것이다. 만약 '실리(實理)가 사물의 끝과 시작이 된다고 한다면, 이 리가 없으면 이 사물도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이 리를 실하게 해야 한다."【20판, 〈동수록(董銖錄)〉】'성하지 않음[不誠]'을 이 리(理)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중용장구》와 다릅니다. 대개 '무(無)' 자와 '불(不)' 자는 자연스러움과 작위(作爲)의 구분이 있으니 일괄적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앞 판의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 "'불(不)' 자는 누가 그것을 못한다는 말인가? 반드시 어떤 사람이 있어 그것을 못해야 비로소 된다."147)라고 하신 데에 이미 매우 분명합니다."근본은 예의(禮儀) 삼백(三百)이고, 말단은 위의(威儀) 삼천(三千)이니, 삼백은 대덕돈화(大德敦化)이고 삼천은 즉 소덕천류(小德川流)이다."148)【28판, 〈오수창록(吳壽昌錄)〉】《주자어류》 앞뒤의 여러 기록 및 《중용장구》에 근거하면 삼백(三百)과 삼천(三千)은 마땅히 말단이 되고 소덕이 되어야 하니 이는 아마도 잘못된 기록인 듯합니다.물었다.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지(智)와 총명예지(聰明睿知)는 두 종류라고 생각됩니다. 예지(禮智)는 자연스러운 성으로 시비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고 예지(叡智)는 성인의 총명한 덕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말씀하셨다. "단지 이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34판, 〈황의강록(黃義剛錄)〉】예지(禮智)의 지(智)는 사람마다 똑같이 품수한 것이고 예지(睿知)의 지(知)는 성인이 홀로 타고난 것이니 어찌 하나의 사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였으므로 그 심(心)과 리(理)가 혼연히 일치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의 사물이라고 말한 것일 뿐인 듯합니다. 近日閒中, 專看《語類》一部, 非惟格論至訓, 警人心目, 幷與當日先生之精神風彩而呈露, 宛若親承謦欬於紫陽ㆍ雲谷之閒, 而不知千載之爲遠, 其感發易入, 殆不遜《全書》之出於手筆者也。 顧其出於當時之方言者, 詰屈䵝澀, 有難曉通。 然此則容有非精義攸繫, 庶可默會大意, 至若肯綮之不容不講, 而未逹於窽啓者, 安敢蓄疑不問, 抱終身之氷炭哉? 茲欲隨疑隨錄, 連續求批, 固知耄年酬答, 極涉難安。 但先生之於《語類》, 世所稱如誦己言者, 就中若難若易, 必有所宿究, 而不至大家費神者。 故敢率爾冒進, 至於批送之早晚, 非所拘也。徐子融問: "附子熱, 大黃寒, 是氣質之性。" 陳才卿謂 : "本然之性。" 先生曰: "子融認知覺爲性故, 以此, 爲氣質之性。【唐本 四之五板。 廣錄】二物寒熱之性, 是元氣初來地底, 不是區分美惡偏全, 則烏可貶作氣質不性之性? 故朱子, 於此不以爲氣質性, 而做本然性。 然若直以爲通天下一性之性, 則又安得有寒熱之相殊也? 願賜明剖○ 先生答書曰: "附子熱, 大黃寒, 是天地本然之理, 非可以弗性而反之者也。 二物用以療疾, 而利人, 利人仁也, 療疾義也, 仁義豈非通天下一性之性乎? 其寒熱之相殊, 以陽健陰順例之, 無可疑矣。"他元不曾稟得此道理, 惟人則得其全 上同此段似爲湖邊人物性偏全之證。 然以下文引呂氏物有近人之性人有近物之性之語觀之, 不曾禀得此道理, 蓋謂物未禀能全五常之理, 惟人得其全, 蓋謂人獨得能全五常之理也。 此若謂人物本然性禀賦偏全之異, 則偏者元自是偏, 全者元自是全, 何得有近人近物之駁雜哉?○ 先生答書曰: "元不曾禀得此道理, 此以下文物有近人之性人有近物之性觀之, 分明是就發用處, 指其不能全者言。《通書解》言性焉者聖人獨得於天, 則衆人不曾稟得此性焉之道理, 可推而知也。 來示槩得之。"問: "人有常言, 某人性如何, 某物性如何, 某物性熱, 某物性冷, 此是兼氣質與所稟之理而言否?" 曰: "然。"【四之二十板僩錄】附子熟, 大黃寒, 卽五板廣錄, 所謂本然性者, 而今謂物性熱冷, 兼氣質與所禀之理而言, 則又似看做氣質性, 而其云所禀之理者, 又若本性之謂。 然至於某人性如何, 明是氣質性, 而幷擧對言, 則其看做氣質性, 而不做本然性也, 明矣。 然則所禀之理, 果何所指也? 廣僩二錄, 果何所適從? 且疑人性如何, 是緩急剛柔美惡萬般者也, 物性熱冷, 是元來如此, 不及區分美惡者也, 一例比同, 或非其類。○ 先生答書曰: "先生嘗云'天地健順, 如人氣質【帶著性字看】', 此條之言某人性如何者, 以某人性孝, 某人性忠厚, 此是兼氣質與所稟之理而言。 如此看, 則似可通, 未知如何。"理在心中, 心包蓄不住, 隨事而發。 恰似那藏相似, 除了經函, 裹靣點燈, 四方八面皆如此光明燦爛。【五之四板廣錄】凡朱子說中, 言光明於理處, 他皆有可說者, 此段則以經函喩心, 點燈喩理, 似直以光明言理者。 然不審如何看, 可以活絡無礙耶?○ 先生答書曰: "先生嘗論明德云 '道理在心裹光明照徹, 無一毫不明【此止】。' 道理是沖漠無眹底, 如何有光明? 但就心上指點, 故亦可爲此說。 今此段首言心與理一, 繼而又言理在心中, 終之以光明燦爛, 恐無礙, 如何?"許多道理, 昭昭然者屬性【五之十三板】言昭昭於性分, 可疑。 然若以萬理燦然備具之意看, 則無害否?○ 先生答書曰: "此等若不活化看, 恐易流於異學之認昭昭靈底, 以爲性與太極矣。 此段文意義未瑩。"問: "明德便是仁義禮智之性否?" 曰: "便是"【十四之十二板敬仲錄】性若果是明德之全體本色, 則不但曰便是, 而必當曰卽是。 蓋以性只是明德中所具者, 而非全體本色, 故不直曰卽是, 而但曰便是。 下十六之一板㽦錄便是天之所命謂性者, 及四板道夫錄性便是明德, 似當同此例看。○ 先生答書曰: "恐當如來示。"這个道理, 在心裏光明照徹【同上】以其道理之在心裏也, 故和心而曰光明照徹, 恐非單言光照於道理也。○ 先生答書曰: "已見上。 昔年約齊有詩云'心光明處理光明', 說如是則善矣。"光明之性 依舊自在【十五之二十五板大雅錄】詳此段問答, 以此心之體不可不明說下來, 更無明德是性之語, 此心之體, 卽明德也。 然則光明之性性字, 不作性理之性, 而只作體字義看, 如何?○ 先生答書曰: "似然, 而不能質言。"這道理光明不昧, 此理湛然淸明【十六之二板僩錄】光明湛然, 心上著題語, 今以之語理, 誠若可疑。 然此兩句上文, 旣有長存此心一句, 則此理乃具於心之理也, 故可以言光明湛然。 若單言理, 則應不下此等字矣。 未知如何。○ 先生答書曰: "同上。"這箇物事, 卽是氣【十六之十三板夔孫錄】先生曾有設問這个物事, 或云天命之性, 或云二五之氣, 或云虛靈之心, 宜子細究核。 竊詳此段語脈, 這个物事, 正指明命也, 天之明命, 卽人之明德也, 天之所命, 人之所得者, 乃虛靈神明之心也。 故曰'這个物事卽是氣。' 如此看, 則全段語脈, 節節皆通。 如作天命之性, 則性卽理也, 安容復有許多道理, 藏在這裏? 如作二五之氣, 則佛氏之所理會, 老子之所把住, 果皆不就自身上討得 而遠求諸天地之陰陽五行耶? 如此看, 則節節見礙, 恐終不通。 但各正性命以下, 有難渙釋者, 豈以性命心之所具者故混淪說去, 不相礙乎? 抑又曰以下立言地頭, 稍與上段異否?○ 先生答書曰: "這箇物事, 直認做性, 則佛老何曾見得到此? 昔年嶺南柳遠重ㆍ宋鎬坤ㆍ宋鎬完ㆍ宋在洛諸人, 自錯看了此句, 便爭相詬, 余爲明氣之學, 言論氣象, 絶不類書生, 甚可怕也。 今來示似得之, 但恐撞著此輩人, 喫得一場怪擧也。 又曰以下, 愚亦未瑩。 但以下段觀之, 會說話行動人心道心皆是天之明命, 則先生之意, 決非如柳宋諸人之見也。"知之有未盡, 必至於自欺。【十六之十二板賀孫錄】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上同道夫錄】所以不自欺, 須是見得分曉。【上同祖道錄】自欺, 據《大學章句》, 是旣知之後, 不實用其力者。 所謂欺者, 不實之意, 欺已明之知也。 故妄竊以爲自欺者非知之過, 乃意之罪, 非無心之失, 乃有心之私矣。 今觀《語類》諸段, 終是重知一邊, 如此, 則自欺云者, 乃格致未精, 非用力不實也。 不勝區區之疑, 非惟此也。 考之或問, 亦然。 然若以章句知爲善而去惡, 而心之所發有未實, 爲定論, 則《語類》ㆍ《或問》, 不相强合也。 至於章下註心體之明, 有所未盡云云, 正以誠意之別立單傳, 而不連致知。 恐人不承上章而通考之。 故推原說, 知有未盡, 則意不可得以誠而自欺, 乃不誠之大關。 故自然連帶說去, 恐非以知未盡說自欺之實病也。 若其實病, 則下文已明。 而不謹乎此一句, 可以當之矣, 如此看如何?○ 先生答書曰: "極是極是。《語類》《或問》別作一義看如何? 此段下文有義, 亦略有作爲語, 此句當如何看? 與《論語註》'道體無爲'之云, 似相礙。問: "健順在四端何屬,"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十七之五板胡泳錄】天之陰陽五行, 人之健順五常, 其理一也。 在天之五行, 木火屬陽, 金水屬陰, 五行一陰陽也。 以此例之, 在人之五常, 仁禮當屬健, 義智當屬順, 而五常一健順也。 今於健順四性分屬之問, 只以四性陰陽之分屬答之, 而遺却健順二字何義?○ 先生答書曰: "說陰陽, 則健順在其中。 故不復細論歟。"人物皆禀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禀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禀得那順底性。 又如草木直底硬底是禀得剛底, 軟底弱底是禀得那順底。【上同僩錄】健順五常定是本然, 今此狗子草木1)二欵云云, 却似說氣質性。 如以人字換却狗子草木字, 而曰人之剛悍會害人底是禀得那健底性, 慈善不會害人底是禀得那順底性, 又曰人之直硬底是禀得那健底, 軟弱底是禀得那順底, 果可以本然性看否?○ 先生答書曰: "此段恐記錄失眞。 又上文陽之氣陰之氣二氣字, 以下句五行之理推之, 無乃當作理歟。"天地之中是未發之中, 天然自有之中是時中。【十八之二十二板祖道錄】上段僩錄言"天地之中, 只可以天所降言, 不可以人所受言。" 此段却言"天地之中是未發之中。" 未發之中, 豈非在人之大本乎? 然上段以天人之所降所受對擧而分言, 此段以未發之時中對擧而分言, 立言地頭旣異, 故所指亦差殊。 如此看, 可乎?○ 先生答書曰: "所論是。"《中庸》專言智。【十九之一板泳錄】知仁勇,《中庸》之大旨而其曰專言智者, 何也? 以明道之書故, 以智言歟?問: "三仕三已不爲仁, 管仲又却稱仁是如何," 曰: "三仕三已是獨自底, 管仲出來, 畢竟是做得仁之功。"【二十之二十二板南升錄】據孔子本意ㆍ朱子《集註》, 子文之未仁, 以其不能當理無私也, 管仲之許仁, 以其能一匡天下也。 一許一否所指各異, 初非以獨自無爲貶子文, 出做有爲褒管仲也, 而《語類》之云如此, 後學若主此說, 則恐至於輕自修重事功之弊也。問: "雖或以爲未學, 我必以爲已學。" 曰: "畢竟是曾學未學?" 曰: "先生所謂非其生質之美, 必其務學之至。" 曰: "看得是。"【二十一之十八板南升錄】子夏之言, 不免有弊。 然今有這樣人, 若不是他學問來, 又不是天資高, 安能如此。【十九板夔孫錄】子夏本言, 却作不須學底意思, 吳才老謂其弊至於廢學。【同板榦錄】子夏此說話得矯枉過直。【同板賀孫錄】據不免有弊, 至於廢學, 矯枉過直等說, 其以吾必謂之學學字, 只作明倫看, 而斯人也, 果是未曾學問之人也。 但據必其務學之至, 若不是學問來, 安能如此等說, 則又以此學字作學問看, 而斯人也, 已曾學問者也。 至於《論語集註》, 又直以必其務學之至之一句爲斷案, 則尤較然矣。 曾見炳菴主集註必其務學之至語, 作已曾學問人看, 而以子夏之言爲無弊, 至謂吳氏錯認子夏本意, 此說甚有理。 但如此, 則子夏之言太無骨子, 不足爲力於重本抑末之地。 是又如何?問: "思無邪, 伊川說作誠是否?" 曰: "誠是在思上發出, 詩人之思, 皆情性也。 情性本出於正, 豈有假僞得來底? 思便是情性, 無邪便是正。 以此觀之, 三百篇皆出於情性之正。"【二十三之十二板卓錄】《論語集註》《語類》諸段, 皆謂'思無邪'是使讀詩者得其情性之正。 惟此段, 獨以詩人之情不假僞者當之, 而謂三百篇皆出於情性之正。 如淫女蕩子之詩, 安得以其不假僞而直寫情, 謂之出於正耶? 且不問所發之正與不正, 但以其情不假僞, 謂之誠, 非伊川本意。 此段恐當爲未定論。思無邪, 不必說詩人之思及讀詩者之思, 大凡人皆當思無邪。【十三板傑錄】此段, 恐人以思無邪, 但作作詩讀詩者事, 而不作衆人所共由之事, 故言此以救其弊。 如曰思無邪是天下萬人所當做底事, 只要就自己情性上, 求得其正, 不必徒說是詩人之思及讀詩者之思, 以爭無益之辨也。問: "淸和任, 也只是器否?" 曰: "這是成就得偏, 却不是器。"【二十四之十三板榦錄】旣曰偏而又云不是器者, 可疑。 然據上板明作錄下板一之錄, 則此段不是器云云 似非定論。問: "忠信爲周。" 曰: "忠信爲周, 只縁《左傳》周爰咨詢, 指作忠信, 後人遂將來妄解, 最無道理。"【二十四之十七板恪錄】問: "忠信2)爲周。" 曰: "忠信所以周也。 若面前背後, 不誠實, 則不周矣。"【同板一之錄】'周比', 只以公私二字, 兩下說破然後, 恰恰襯點, 移易不得。 忠信覺不合公字之義, 故恪錄云: "無道理。" 然人不忠信, 則事皆無實, 雖欲公而爲周, 得乎? 故一之錄, 却云"不誠實則不周。" 如此看, 則二錄可幷行而不相悖歟。問: "利仁固是審於旣發, 莫更著謹於未發否?" 曰: "若未發時自著不得工夫, 未發之時, 自堯舜至於塗人, 一也。"【二十六之四板賀孫錄】堯舜之自然未發, 塗人之偶然未發, 固自著不得工夫, 自利仁以下之未發, 上之不及自然, 下之不可謂偶然。 必其靜時, 自有致中一段工夫, 然後有以體立而用行。 今槩曰未發時著不得工夫, 則大本無由得立, 而學問之道, 或幾乎偏而不全。 然朱先生之訓, 而豈有是耶? 後學妄疑則然爾。問: "以己推己之辨。" 曰: "以己是自然流出。 推己便有折轉意, 如己欲立而立人, 己欲逹而逹人。"【二十七之二十一板㝢錄】己立立人, 己逹逹人, 以《論語集註》及下淳義剛二錄觀之, 定是以己之事, 而此作推己事者, 恐當爲未定論。問: "雖全體未是仁, 苟於一事上, 能當理而無私心, 亦可謂一事之仁否?" 曰: "不然。 纔說箇仁字, 便以全體言。 若一事上能盡仁, 便是他全體是仁了。 若全體有虧, 這一事上, 必不能盡仁, 纔說箇仁字, 便包盡許多事, 無不當理無私了。【二十八之十板僩錄】旣以當理無私爲仁, 則全體之當理無私, 固是全體之仁, 一事之當理無私, 亦不害爲一事之仁, 先生之禁之, 何也? 必待全體而後, 得仁之名, 則顏子之三月不違仁, 亦不可謂三月之仁歟? 顏子固非全體無虧者, 謂之一事上, 必不能盡仁, 則恐不然, 未知若何? 至於卅三卷十九板可學錄, 則曰"一事純於仁, 可謂之仁。 殷有三仁, 亦未見其全體, 只是於去就之際, 純乎天理。 故夫子許之。" 恐此當爲不易之論。胡文定春秋說云: "輒去而從父, 則衛之臣子輔輒以拒蒯聵。", 是錯了。【卅四之卄七板燾錄】《大全》〈答范伯崇書〉, 曰: "輒若有避父之心, 則衛之臣子, 當拒蒯聵而輔輒, 與此條不同。 蓋輒誠有避父之心, 則衛之臣子, 當立他公子, 而拒蒯聵, 乃所以遂輒順父之心, 處事之義, 固如是矣。 且雖欲輔輒而拒蒯聵, 輒豈肯安於輔己而拒父乎? 必將逃去而後已, 此又勢之所不行也。 然則恐當以《語類》此條爲定論。太王見商政日衰, 知其不久。 是以有剪商之意, 亦至公之心也。【卅五之三板壯祖錄】至如紂之虐民而有剪之之心, 則可謂至公。 太王旣不當紂之時, 則其謂至公者, 不無疑。'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便是未到不思而得處, '雖欲從之, 末由也已', 便是未到不勉而中處。【卅六之卄一板㽦錄】'如有所立卓爾', 是所見益親處, '雖欲從之末由也已', 是未逹一間處, 未能不思而得, 不勉而中, 恐當俱在未逹一間中。若子路ㆍ冉求ㆍ公西華之所爲, 曾點爲之有餘。【四十之四板賀孫錄】充曾點之所見, 三子且休說, 堯舜事業亦可爲之。 但以其平日簡迂之性, 放誕之行, 安能治千乘之賦, 足一邦國之民, 贊邦國大禮乎? 朱子固亦曰: "使曾點做三子事, 未必做得。"克己復禮, 閒不容髪無私便是仁。【四十一之一板道夫錄】克己則禮自復, 非克己之外 別有夫禮。【同板賀孫錄】克去己私了, 致這裏恰好著精細底工夫。 故必又復禮方是仁。 聖人却不只說克己爲仁, 須說克己復禮爲仁。【三板去僞錄】克去己後必復於禮, 然後爲仁。 若克去己私, 便無一事, 則克之後須落空去了。【五板時擧錄】克己便是復禮, 不是克己了方待復禮, 不是做兩截工夫。【八板植錄】朱先生一人, 而二說之不同若是, 學者何所適從? 竊以爲人只有天理人欲兩途, 不是天理便是人欲, 無不屬天理, 又不屬人欲底時節。 固可曰'克去己私, 便是復禮。' 然此是大綱說也, 若細論之, 則人自有除私欲, 而不能當理底時節。 如明心靜坐, 而不能保守道體公心, 應事而或失其宜者是也。 況禮者, 天理之節文, 節文者, 無過不及, 而十分恰當者也。 惟其合於十分恰當也, 故可以當至難之仁名, 至於以一日之暫, 而得天下之大, 而歸仁焉。 豈容一克己而便自合十分恰當乎? 故《集註》曰: "勝私欲而復於禮," 觀於下一而字, 可以知用工於克復之閒矣。問: "'吾其爲東周乎!', 使聖人得行其志, 只是就齊魯東方做起否?" 曰: "也只得就這裏做。" 又問: "其如周何?" 曰: "這般處難說, 只看挨到臨時事勢如何。 若使天命人心有箇響合處, 也自不由聖人了, 使周家修其禮物, 作賓于王家, 豈不賢於赧王之自獻其邑, 以滅亡乎?"【四十七之三板僩錄】'吾其爲東周', 恐但謂行文武周公之道於東魯。 初未有受命代周之意也。《集註》只言'興周道於東方', 意亦如此。 如此看而止, 則都無事矣。《語類》'其如周何'之問, '只看事勢'之答, 似皆不當豫言於聖人心事之外者, 未知朱子何故隨問隨答, 至於赧王滅亡云云乎? 竊不勝區區之疑。問: "'灑掃應對是其然, 必有所以然', 所以然者, 是如何?" 曰: "若無誠意, 如何灑掃應對?"【四十九之十一板節錄】以誠意爲所以然, 如非記誤, 則是一時說。惻隱羞惡, 也有中節不中節。 若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 便是不中節。【五十三之九板淳錄】當惻隱而不惻隱, 當羞惡而不羞惡, 當辭遜而不辭遜, 是其所非, 非其所是者, 是皆失其本心。【十六板廣錄】當惻隱而不惻隱, 當羞惡而不羞惡者, 旣是失其本心, 則不當惻隱而惻隱, 不當羞惡而羞惡者, 亦是失其本心。 失其本心者, 直是不仁不義已矣。 至於當惻隱而惻隱之時, 有過與不及, 當羞惡而羞惡之時, 有過與不及者, 然後乃可謂之不中節也。 由此言之, 發當其地而有過不及之惻隱羞惡, 不害爲四端也, 發非其地之惻隱羞惡, 恐不當以四端論也。 然則淳錄所謂'惻隱羞惡, 也有中節不中節'者, 固當爲定論, 其若不以下二十字, 恐有合商量者, 未知如何?四端有正不正, 如暴戾愚狠, 便是發錯了惻隱羞惡之心, 含糊不分曉, 便是發錯了是非之心。 如一種不遜, 便是發錯了辭遜之心。 日間一正一反, 無往而非四端之發。【十六板方子錄】暴戾愚狠, 不遜含糊, 正是不仁不義無禮不智者, 初非可以四端之正不正論者, 而猶謂之四端之發者, 以其惻隱之反爲暴戾, 羞惡之反爲愚狠, 辭讓之反爲不遜, 是非之反爲含糊故耳。 正如所謂'善固性也, 惡亦不可不謂之性也'。 朱子之爲此言也, 蓋欲使學者, 審察於日間念慮之正與不正, 必治其不正者, 而反之正焉爾。 如此看, 無害否?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 問: "看得來, 如喜怒愛惡欲, 却似近仁義。" 曰: "固有相似處。"【二十板廣錄】旣云七情是氣之發, 又以七情爲仁義, 則七情亦可曰理之發。 謂七情理發而可, 則謂四端而曰氣發 宜亦可也。 蓋此不過以四端善一邊, 故屬於理之發, 七情兼善惡, 故屬於氣之發, 非謂四端七情之發於理發於氣, 各自不同也。 此乃我東四七說異同之所自出處, 未知以退農二先生之精詳, 於此段, 曾如何看會也?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五十五之九板燾錄】孔子旣稱子路之才, 可治千乘之賦, 子路又嘗自言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閒,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3), 且知方也。 三年爲之, 猶且如此, 況四十年之久, 如管仲之於齊國, 則其功烈, 豈下於管仲哉? 斯義也, 金仁山已言之, 而我先生嘗以朱子之載楊氏說於《孟子集註》, 爲未安者也。 今考《語類》, 非惟孟註爲然, 朱子之所自言者, 亦如是, 則楊氏之說, 卽朱子之言也, 恐又有不敢質言者。執中無權之權稍輕, 嫂溺援之以手之權較重, 亦有淺深也。【五十六之八板僩錄】事固有大小, 均之爲權而得中也, 中者, 理之恰好處。 大事也有恰好處, 小事也有恰好處, 其恰好處則一也, 似不可以事之大小, 分權之輕重, 而朱子說如此, 可疑。問: "'鄕隣有鬪者, 雖閉戶, 可也。' 若鄕隣之鬪, 有親戚兄弟在其中, 豈可一例不救?" 曰: "有兄弟固當救, 然事也須量大小。 若只是小小敺鬪, 救之亦無妨, 若是有兵戈殺人之事, 也只得閉戶不管而已。"【五十七之十七板僩錄】同室有鬪, 孟子固曰"被髮纓冠而救之。" 兄弟豈非同室之人乎? 胡爲而有此問答也? 且兄弟方在兵戈禍難之中, 而我乃閉戶不管, 豈不大害義理? 此等處恐是記錄之誤。問: "堯舜揖遜, 雖是盛德, 亦不得已否?" 曰: "然。"【五十之八板無名錄】天生聰明睿知, 固欲以作民君師也。 古今有天下者, 不傳賢而傳子, 非所以體天意。 堯舜之揖遜, 實公共當然之事。 故孟子曰"天與賢則與賢, 與子則與子。" 此謂之不得已者, 未知其義何居, 而朱子然之, 可疑。犬牛人得於天者, 未嘗不同, 惟人得是理之全, 至於物, 止得其偏。 今欲去犬牛身上, 全討仁義, 便不得所以謂性卽理。 便見得惟人, 得是理之全, 物得是理之偏。 告子止把生爲性, 更不說及理。 孟子却以理言所以見人物之辨。 【五十九之二板賀孫錄】人之所以異於物者, 以其得正氣。 故具得許多道理, 如物則氣昏而理亦昏了。【同板燾錄】物也有這性, 只是稟得來偏了, 這性便也隨氣轉了。【三板 義剛錄】生之謂性一章, 是湖論人物性異之所自出處。 凡此《語類》諸段, 若可謂其說之證左者。 然孟子之爲此性異之論也, 蓋以告子以人物之生槩同者, 遂謂之同一性也, 則是認氣爲性, 而害道大矣。 故辨之曰"所謂性者, 非知覺運動之氣也, 乃仁義禮智之理也。 知覺運動之氣, 人與物雖若不異也, 仁義禮智之理, 豈物之所能全哉?" 其意蓋曰'人物之知覺運動, 雖同一生也, 而其正通偏塞之不同, 正如同一白也, 而羽雪之白, 輕重旣差, 雪玉之白, 虛實亦殊, 偏且塞也。' 故物不能全, 仁義禮智之理。 正且通也, 故人則全仁義禮智之理。 全與不全之閒, 性之不同判焉。 此就人物有生之後, 氣質發用處而謂之異也, 非謂人物有生之初, 本性稟受時, 已自不同也。 如使告子, 只見氣之發用不同, 而爲人物性異之說, 則孟子又必立性同之論而辨之。 曰: "氣之有通塞, 理雖有偏全, 理之至善, 非氣之所囿。" 天命之性, 人物一源, 初未嘗因氣而有異矣。 然則賀孫錄物得是理之偏, 義剛錄物也有這性, 只是稟得來偏了。 諸說只以《集註》仁義禮智之稟, 豈物之所得而全一句, 看定而活絡之, 則無礙矣。 苟以辭而已, 而眞以爲物得其偏, 禀得來偏, 則《集註》當曰"豈物之所全得", 而不當曰"豈物之所得而全矣。" 正以物得氣之偏者, 而其發得此性者亦偏。 故現據理之偏發者, 強名之曰: "物得理偏性偏也。" 栗翁所謂氣之偏, 則理亦偏, 所偏非理也, 氣也一語, 已是八字打開。 湖家雖欲引以爲性異之證, 得乎? 況其所謂犬牛身上, 全討仁義不得, 及氣昏而理亦昏, 這性隨氣轉了等語, 分明就氣稟用處言者乎? 未知《孟子》本文《語類》諸段之義, 如此看, 則無害耶? 但燾錄中人之異於物者, 具得許多道理, 具字胡不作全字? 此却可疑。○ 犬牛人性, 旣是因氣而異者, 故《大全》及十一板謨錄, 又以爲氣質性。 然氣質性有兩股, 偏全之性, 不性之性是已。 偏全之性, 主善一邊而言, 不性之性, 兼善惡而言。 此所謂氣質性, 恐只可作偏全之性, 不可作不性之性也。○ 此性之異, 孟子只擧犬牛人三箇, 朱子又只分人物二層。 然推而廣之, 則人之與人, 物之與物, 人人物物箇箇層層, 皆當一樣看, 未知如何?心與性, 只一般, 知與盡不同。 所謂知便是心了。 問: "知是心之神明, 似與四端所謂智不同。" 曰: "此知字義又大。 然孔子多說仁智, 如元亨利貞, 元便是仁, 貞便是智。 四端仁智最大, 無貞則元無起處。 無智則如何是仁?《易》曰: '大明終始', 有終便有始。 智之所以爲大者, 以其有知也。"【六十之二板廣錄】此段上下文知字與大字, 同不同, 我先生曾有設問。 竊意上四知字, 心之知覺之知, 屬乎氣也。 下'有知'之知, 性之分別之知, 屬乎理也。 '知字義大'之大, 以其妙衆理應萬事, 非但如分別之知之止爲性之一端也。 '最大''爲大'二大字, 謂其大於亨利也, 未知不戾於尊見否。○ 知與盡不同之云, 恐是以盡心做力行, 如下賀孫以下諸錄之意。 然若使只有盡心知性一段而已, 則宜可如此說, 下文旣復有存心養性一段, 則一知一行之所主自在。 此所以《語類》盡心力行之說, 終爲集註之所棄也。問: "'莫非命也'此一句是總說氣稟之命, 與'天命謂性'之命同否?" 曰: "以孟子之意, 未說到氣稟, 此句只是說人物之生, 吉凶禍福, 皆天所命。" 【七板僩錄】性與禍福均是命, 自天而禀於人。 然性者, 人人之所同, 何也? 天之所命, 人之所禀者, 是理也, 理則一本故也。 禍福者, 人人之所異, 何也? 天之所命, 人之所禀者, 是氣數也, 氣則萬殊故也。 今以吉凶禍福之命, 未說到氣稟者, 可疑。 下十二板人傑錄曰: "以非義而死者, 固所自取, 是亦前定, 蓋其所稟之惡氣, 有以致之也。" 此則又是說氣禀, 恐此當爲定論。'由氣化有道之名'。 如天道ㆍ地道ㆍ人道ㆍ父子之道ㆍ君臣之道ㆍ率性之謂道, 是也。【十板夔孫錄】'由氣化有道之名'。 如率性之謂道, 性只是理, 率性方見得是道, 這說著事物上。 且如君臣父子之道, 有君臣父子方見得這箇道理。【同板植錄】'由氣化有道之名', 率性之謂道, 管此一句。【同板賜錄】'由氣化有道之名', 恐是言天道之流行。 正《易》所謂'一陰一陽之謂道'也。 此是說繼善之事, 不及說成性之事。 成性且不及說, 況說率性之道, 無或太早乎?心者天理在人之全體, 性者天理之全體。【十二板淳錄】竊以爲性者天理在人之全體, 心者主人身而具天理之全體, 則似益穩備如何?在天言之, 皆是正命。【同板恪錄】據下文在天之命却自有差, 及下板賀孫錄天自失其正命之語, 皆是正命之論, 恐未爲定說。'性也有命焉', 性字兼氣稟而言。【六十一之四板伯羽錄】此性字, 兼物欲而言。【五板燾錄】此性字, 正是氣稟物欲爲主者, 當曰"卽指氣欲而言", 而必下兼字, 何也? 蓋此性雖是氣欲爲主, 而旣謂之性, 則性之得名, 以其爲理也, 故指其自然之理附氣如此者, 而定其名。 指其氣欲之用事者, 而謂之兼, 何也? 指理爲性之名, 不可易也, 正如浩然之氣, 雖是道義爲主, 而氣之名目不可易也, 故不直取爲主之道義而名之, 必指其爲配之氣, 而定其名也。《論語集註》"此所謂性, 兼氣質而言", 亦當同此例看, 未知如何?'性也有命焉', 此命字却合理與氣而言。【六板銖錄】貧賤者之不能如願, 安於氣數之命, 富貴者之亦有限制, 安於理義之命。 此命字之合理氣看, 說得完備。 上四板賀孫錄之就理上說, 下七板義剛錄之指理而言者, 恐皆有未備。'操則存舍則亡', 心安有存亡? 此正人心道心交界之辨。 人心是此身有知覺有嗜欲者, 如所謂'我欲仁''從心所欲''性之欲也'。 苟父一虐其子, 則子必狠然以悖其父, 此人心4)之所以危也。【六十二之九板十板大雅錄】天下無無人心之上知, 又無亡其心之聖人, 則以操舍存亡, 語人道心, 明是未定說。○ 我欲仁之心, 是原於性命者, 則元非人心, 狠然以悖其父, 亦豈止於人心之危? 恐俱屬記誤。知仁勇, 許多爲學底道理。【十一板僩錄】此道理, 恐是方法之意, 與大學之道之道字同, 與率性之謂道之道字不同。牛之性順, 馬之性健, 卽健順之性, 虎狼之仁, 螻蟻之義, 卽五常之性。 但只稟得來少, 不似人稟得來全。【十二板燾錄】此段似是說物不得全稟五常, 與朱子平日人物性同之論不同, 何也?問: "木之神爲仁, 火之神爲禮。" 曰: "神字猶云意思也。" 【同板僩錄】仁義禮智理也, 當曰木之理仁, 火之理禮, 而今以神爲仁禮者, 可疑。 且其云意思者, 亦恐非可言於理之無情意者。據伊川之意, 人與物之本性同, 及至稟賦異。 蓋本性理也, 而本賦之性, 則氣也。 性本自然, 及至生賦, 無氣則乘載不去, 故必頓此性於氣上, 而後可以生。 及至已生, 則物自稟物之性, 人自稟人之氣。 【十四板可學錄】此段所論, 似是說氣質之性, 然伊川旣以率性之道, 通人物而言, 則安得以氣質性爲可率者耶? 若做本然性看, 則'人與物之性同禀異', 及'物禀物性人禀人氣'等說, 又不通。 未知當如何看?天命之性, 人受其全, 物受其偏。 【十五板至錄】此亦恐與上十二板燾錄之意同。不睹不聞時, 固當持守, 然不可不察, 謹獨時, 固當致察, 然不可不持守。【二十三板廣錄】不睹不聞之時, 無形無眹, 何事可察? 若非記誤, 是未定之論。伊川謂當中時, 耳無聞目無見, 然聞見之理在始得。【三十二板淳錄】此無聞無見, 謂無有心之聞見, 非謂無自然之聞見也。 上二十九板淳錄, 朱子固曰"靜時, 耳目亦必有自然之聞見," 中庸或問又曰"未發時。 耳目當亦精明而不可亂。"已發未發, 不必太泥。 只是旣涵養, 又省察, 無時不涵養省察。 【卅四板○營錄。 下同人錄亦有此說】未發時, 固要存養, 已發時, 亦要存養。 未發時, 固要省察, 已發時, 亦要省察。【卅五板必大錄】涵養存養, 固可通言於未發已發, 省察則不可通言於已發未發。 此恐亦爲未定論。存養是靜工夫。 靜時是中, 以其無過不及, 無所偏倚也。 【卅八板祖道錄】過不及, 不但言於動時, 亦當言於靜時, 朱子於此段, 已明揭矣。 我先生〈中庸記疑〉所謂衆人之靜是不及, 禪子許渤之靜是過者, 誠實際篤論, 若引此段爲正據, 則尤爲完備。問: "鬼神之德, 如何?" 曰: "此言鬼神實然之理。"【六十三之卄二板力行錄】竊詳此非直以理訓德也。 但言此, 論鬼神之德者, 所以著鬼神實然之理也。 如此看如何?'體物', 言以物爲體。 有是物, 有是誠。【同板端蒙錄】'以物爲體'與《中庸章句》'爲物之體', 語勢賓主正相反。《章句》所謂'爲物之體'者, 指二氣而言, 亦非指實理也。 此段恐誤錄。立天下之大本, 是靜而無一息之不中。 知化育則知天理之流行。 【六十四之十二板賀孫錄】三十二章大本, 是所性之全體, 則與首章靜一邊之大本不同, 而此云靜而無一息之不中, 亦當爲未定說。曲是氣稟之偏【同板升卿錄】《中庸章句》, 訓曲以善端發見之偏, 發見之偏, 猶云發見之一端也。 是非帶病之意, 則以曲爲氣稟者, 恐有商量。 蓋偏者全之對也, 能全體者, 其至誠也, 其次則致其偏而就其全也。 下十三板謙5)錄, 曲是逐事上著力事事上推致其極之訓, 旣甚明白。 且十四板僩錄, 以或問所稟厚薄之訓, 爲何故如此說? 十五板可學錄, 以程子偏勝處發之說, 爲未安, 則尤可見矣。問: '明動' 曰: "徒明不行, 則明無所用, 徒行不明, 則行無所向。"【十六板伯羽錄】以動做行, 亦非章句本旨。誠者, 是箇自然成就底道理。 又曰: "'誠者自成', 如這箇草樹所以有許多根株枝葉條幹者, 便是他實有。 所以有許多根株枝葉條幹, 這箇便是自成, 是你自實有底。"【十六板僩錄】蓋有是實理, 則有是天, 有是實理, 則有是地。 如無是實理, 則便沒這天, 也沒這地, 凡物都是如此。 故云'誠者自成', 蓋本來自成此物。【十七板賀孫錄】'誠者物之終始', 是解'誠者自成'一句。【上同】諸錄皆以'誠者自成', 爲主理言, 與章句以心言者, 不同。某舊說誠有病。 蓋誠與道皆泊在'誠之爲貴'上。 若如舊說, 則誠與道成兩物也。【十七板義剛錄】誠道兩物之舊說, 似指以心言誠, 以理言道之章句也。 蓋誠與道, 雖有心理之分, 然實心爲行道之本, 而道理必待實心而後行。 故曰'誠之爲貴。' 如是看則誠與道, 亦何嘗不泊在誠之爲貴, 而必欲做病看也? 三山齋每據此段爲定論, 而不從章句, 蓋以其云舊說有病也。 雖云有病, 而終不改定章句, 則其還主舊說, 亦可知已。 斯義也, 我先生〈中庸記疑〉已詳辨, 恐爲確論。'誠者自成也'下文云: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此二句便解上一6)句。 實有是理, 故有是人, 實有是理, 故有是事。'【同板虁遜錄】此亦主理言, 與上僩賀孫二錄同問: "不誠無物, 恐是就人心之實此理而言。" 曰: "非也。 下文言'君子誠之爲貴', 方說人當實乎此理。 若曰: '實理爲物之始終, 無是理, 則無是物, 故君子必當實乎此理也。'"【二十板銖錄】不誠作無是理看, 與《章句》不同。 蓋無字與不字, 有自然有爲之分, 不可一槩論。 上板人傑錄: "不字, 是誰不他? 須是有箇人不他方得。" 已大煞分明。本所謂禮儀三百, 末所謂威儀三千, 三百旣大德敦化, 三千卽小德川流。【卄八板壽昌錄】據上下諸錄及《中庸章句》, 三百三千當爲末爲小德, 此恐記誤。問: "仁義禮智之智與聰明睿知, 想是兩樣, 禮智是自然之性, 所以辨是非者, 睿智是說聖人聰明之德, 無所不能者。" 曰: "便只是這一箇物事。"【卅四板義剛錄】禮智之智, 人人所同禀者, 睿知之知, 聖人所獨得者, 烏得爲一箇物事? 此恐在聖人分上言, 故指其心理渾然一致處, 而謂之一箇物事耳。 자양(紫陽)과 운곡(雲谷) 모두 주자가 서원을 세우고 한가로이 지내며 강학하던 곳이다. 다만……있습니다 고문(古文)을 읽었던 당대 사람들에게 어류체의 문장이 더 어렵게 느껴졌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성으로……기질지성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형체가 있게 된 뒤에 기질지성이 있으니, 이를 잘 돌이키면 천지지성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기질지성은 군자가 성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다.[形而後, 有氣質之性, 善反之, 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2 〈위학(爲學)〉 하나밖에……성 주자가 〈답서자융[答徐子融]〉에서 "또 말라죽은 사물에는 기질지성만 있고 본연지성은 없다고 하는데 이 말은 더욱 웃음을 자아냅니다. 만약 과연 이 말대로라면 사물에는 단지 하나의 성만 있고 사람에게는 도리어 두 개의 성이 있다는 것이니 이 말은 너무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기질지성은 단지 이 성이 기질 가운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기질에 따라서 자체로 하나의 성이 되는데 바로 주자(周子)가 이른바 '각각 그 하나의 성을 가진다'고 한 것이라는 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원래 본연지성이 없다고 한다면 이 기질지성이 또 어디에서 왔겠습니까?〔又謂枯槁之物只有氣質之性而無本然之性, 此語尤可笑. 若果如此, 則是物只有一性, 而人却有兩性矣, 此語非常醜差. 蓋由不知氣質之性只是此性墮在氣質之中, 故隨氣質而自爲一性, 正周子所謂各一其性者. 向使元無本然之性, 則此氣質之性又從何處得來耶?〕"라고 한 일성(一性)을 가리킨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8 〈답서자융(答徐子融)〉 성대로……것이다 《통서해(通書解)》에는 주돈이(周敦頤)가 '性焉安焉之謂聖'이라고 한 데 대해 주자(朱子)의 해(解)에 '性者獨得於天'이라고 되어 있다. 물사(物事)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각기……이하 뒤의 '또 말씀하셨다 이하[又曰]'와 같은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늘의 밝은 명령[天之明命]에 대해 설명한 단락이 끝나고 주자가 다시 말하는 내용인바, "각기 성명을 바루어 대화를 보합한다는 말은 성인이 건괘에서 이 두 구를 말씀하셨으니 가장 좋다. 사람이 사람이 되는 까닭과 사물이 사물이 되는 까닭은 모두 그 성명을 바루어서이고 보합은 그 화기를 얻어서이다. 성명은 곧 당초에 즉시 분부받은 것이고 보합은 곧 그 가죽으로 꾸려 싼 것이 안에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칼로 그 배를 가르면 이 사물이 곧 흩어져 바로 죽게 된다.〔各正性命, 保合太和, 聖人於乾卦發此兩句, 最好. 人之所以爲人, 物之所以爲物, 都是正箇性命. 保合得箇和氣 性命便是當初合下分付底. 保合便是有箇皮殼包裹在裏. 如人以刀破其腹, 此箇物事便散, 卻便死〕"라고 한 부분과 바로 이어지는 제14조에서 "지금 사람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다'라는 것도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而今人會說話行動, 凡百皆是天之明命. 人心惟危, 道心惟微, 也是天之明命〕"라고 한 것이다. 불근호차(不謹乎此) 《대학집주(大學集注)》 〈성의장(誠意章)〉에 나오는 구절로, 심체(心體)의 밝음이 미진(未盡)한 바가 있으면 그 발(發)하는 바가 반드시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구차하게 스스로 속임이 있는 것이다. '此'는 발하는 바를 삼가는 것을 말한다. 논어집주의……말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28장에서 "공자는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요,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라 했고, 이 문장에 대한 주자의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는 "사람 밖에 도가 없고, 도 밖에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지각이 있고 도체는 행위함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도를 크게 할 수 있고, 도는 사람을 크게 할 수 없다〔人外無道, 道外無人. 然人心有覺, 而道體無爲, 故人能大其道, 道不能大其人也〕"라 했다. 앞 문장에……본다면 주자가 바로 앞에서 "건은 양의 기를 품수한 것이고 순은 음의 기를 품수한 것이며 오상은 오행의 리를 품수한 것이다.[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증조도록(曾祖道錄) 이 부분은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8 제86조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이굉조록(李閎祖錄)으로 되어 있다. 천지의……된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8 제82조에 "이를테면 강충(降衷)의 충(衷)이 똑같이 이 리(理)이다. 그렇지만 이 자는 단지 하늘이 내린 것에 적용하여 말할 수 있을 뿐이고 사람이 받은 것에 적용하여 말해서는 안 된다.〔如降衷之衷同是此理. 然此字但可施於天之所降而言, 不可施於人之所受而言也〕"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미발(未發)의 시중(時中) 문맥으로 볼 때 '미발(未發)의 중과 시중(時中)'이 되어야 할 듯하다. 세……않는데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자장이 물었다. '영윤인 자문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었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 그만두면서도 서운해 하는 기색이 없으면서 옛날에 자기가 하던 영윤의 정사를 새로 부임한 영윤에게 잘 알려주었는데,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진실하다.' 말하였다. '仁이 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잘 모르겠지만 어찌 仁이 될 수 있겠는가?'〔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관중에게는……것은 《논어(論語)》 〈헌문(憲問)〉, "자로가 말하였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규를) 따라서 죽었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환공은 아홉 차례나 제후를 규합하였는데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관중의 힘이니 仁이라고 할 수 있다. 仁이라고 할 수 있다.'〔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비록……것입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1 제95조에 "'현현역색(賢賢易色)'장. 학문하는 방법은 인륜상에서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 지금 이미 이와 같이 한다면 어떤 이가 비록 그를 배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할 것입니다.〔賢賢易色章. 爲學之道, 只要就人倫上做得是當. 今旣能如此, 雖或以爲未學, 我必以爲已學〕"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자하의……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21 제99조에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이르겠다.' 자하의 이 말은 과격하니, 교왕과직한 것이다.〔吾必謂之學矣, 子夏此話說得激, 有矯枉過直意思〕"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교왕과직(矯枉過直)은 구부러진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곧게 하는 것으로서 곧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어 오히려 나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맑음……자임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 가운데 맑은 분이고, 이윤은 성인 가운데 도를 자임한 분이고, 유하혜는 성인 가운데 조화로운 분이고, 공자는 성인 가운데 때에 맞게 하신 분이다.〔伯夷聖之淸者也, 伊尹聖之任者也, 柳下惠聖之和者也, 孔子聖之時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백이, 유하혜, 이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충(忠)과……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의 '주이불비(周而不比)'장의 해석에 대한 문답이다. 좌전의……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4년조에서는 "군주께서 사신인 나에게 반드시 두루 자문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君敎使臣, 曰, 必諮於周〕"라 했고, 이에 대한 두예의 주에서는 "충신(忠信)한 사람에게 자문하여 자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한다. 충신(忠信)이 주(周)이다.〔當諮于忠信, 以補己不及, 忠信爲周〕"라 했다. 인을……것 《논어(論語)》 〈이인(里仁)〉의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仁者安仁, 知者利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자기로써……미룬다 《논어집주(論語集註)》 〈이인(里仁)〉 15장의 주석에 정호(程顥)가 말하기를 "자기로써 외물에 미쳐 가는 것은 인이고,〔以己及物仁也〕자기를 미루어 외물에 미쳐 가는 것은 서이다.〔推己及物恕也〕"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한……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33에는 '此一事純於仁, 故可謂之仁.'로 되어 있다. 출공(出公)……한다 당시에 위(衛) 나라 임금은 출공(出公) 첩(輒)인데, 그보다 먼저 그의 아버지 괴외(蒯聵)가 태자 때에 그의 아버지 영공(靈公)에게 죄를 얻어 망명하고, 영공이 죽은 뒤에 출공이 유명(遺命)으로 즉위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괴외가 국내로 들어오므로 출공이 이를 막았다. 나의……것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서 안자(顔子)가 공자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도를 깊이 감탄하여 말한 장을 논한 것이다. 참고로 '불사이득(不思而得)', '불면이중(不勉而中)'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나오는 말이다. 자로(子路)와……일들이다 이 조목은 《논어(論語)》 〈선진(先進)〉에서 네 사람이 공자 앞에서 각자의 포부를 말하는 대목에 대해 논한 것이다. 나는……것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의 "나를 제대로 써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방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물……것이다 정이(程頤)가 한 말로,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 〈입관어록(入關語錄)〉에 보인다. 선은……된다 정호(程顥)가 한 말로,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보인다. 자로는……뿐이다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 "어떤 사람이 증서에게 그대와 자로를 비교하면 누가 더 훌륭한지 묻자 자로는 우리 선자인 증자도 두려워한 분이라고 추존하였고, 관중과 비교하면 누가 더 훌륭한지 묻자 패도를 행한 관중을 자신과 비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或問乎曾西曰: 吾子與子路孰賢? 曾西蹴然曰: 吾先子之所畏也. 曰: 然則吾子與管仲孰賢? 曾西艴然不悅曰: 爾何曾比予於管仲〕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주에 양씨(楊氏)가 자로와 관중을 말 모는 사람에 비교하자 "자로는 자신이 말 모는 것을 법대로 해서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요, 관중은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잡았을 뿐이다〔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 管仲之功, 詭遇而獲禽耳〕"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칭찬하였고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는 유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정을 다스리게 할 수 있거니와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하겠다〔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에서 나온 말이다. 자로(子路)도……말하였습니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서 "자로가 경솔히 대답하며, 천승의 제후국이 대국의 사이에서 속박을 받아 전란이 가해지고 따라서 기근이 들어도 제가 다스릴 경우, 3년에 이르면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子路率爾而對曰,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에서 나온 말이다. 양씨(楊氏)의 설 《맹자집주(孟子集註)》 〈공손추 상(公孫丑上)〉 9장에 주자가 양씨의 설을 수록하였는바, 양씨는 자로가 관중이 천하를 한 번 규합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하면서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이 조목을 말하였다. 따라서 이 조목의 주자 말씀은 양씨의 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원칙을……없는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자막(子莫)은 이 중간을 잡았으니, 중간을 잡는 것이 도에 가까우나 중간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는 것은 한쪽을 잡는 것과 같다.〔子莫執中.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에서 나온 말이다. 형수가……주는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서 "순우곤이 '남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는 것이 예입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예이다.'라 대답하였다. '형수가 우물에 빠지면 손으로써 구원하여야 합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길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구원하지 않는다면, 이는 승냥이이니, 남녀간에 주고받기를 친히 하지 않음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으면 손으로써 구원함은 권도(權道)이다.'라 했다.〔淳于髡曰, '男女授受不親, 禮與?' 孟子曰, '禮也.' 曰, '嫂溺, 則援之以手乎?' 曰, '嫂溺不援, 是豺狼也. 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 援之以手者, 權也.'〕"에서 나온 말이다. 동네……된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서 "향리(鄕里)와 이웃에 싸우는 자가 있으면 머리를 풀어 흩뜨리고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린다면 혹(惑)한 것이니, 비록 문을 닫더라도 가한 것이다.〔鄕鄰有鬪者, 被髮纓冠而往救之, 則惑也, 雖閉戶可也〕"에서 나온 말이다. 맹자가……준다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에서 "만장(萬章)이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되 우왕(禹王)에 이르러 덕이 쇠하여, 현자(賢者)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길,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늘이 현자(賢者)에게 주게 하면 현자(賢者)에게 주고, 하늘이 자식에게 주게 하면 자식에게 주는 것이다. 옛적에 순(舜)이 우(禹)를 하늘에 천거한 지 17년만에 순(舜)이 붕어 하시거늘, 3년상을 마치고 우(禹)가 순(舜)의 아들을 피하여 양성(陽城)으로 가 계셨는데, 천하의 백성들이 따라오기를 요(堯)가 붕어한 뒤에 요(堯)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순(舜)을 따르듯이 하였다. 우(禹)가 익(益)을 하늘에 천거한 지 7년만에 우(禹)가 붕어 하시거늘, 3년상을 마치고 익(益)이 우(禹)의 아들을 피하여 기산(箕山)의 북쪽으로 가 있었는데, 조회하고 옥사를 송사 하는 자들이 익(益)에게 가지 않고, 계(啓)에게 가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며, 덕(德)을 구가(謳歌)하는 자들이 익(益)을 구가(謳歌)하지 않고, 계(啓)를 구가(謳歌)하며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아들이라 하였다.'〔萬章問曰, '人有言, 至於禹而德衰, 不傳於賢, 而傳於子. 有諸?' 孟子曰, '否, 不然也, 天與賢, 則與賢, 天與子, 則與子. 昔者, 舜薦禹於天, 十有七年, 舜崩, 三年之喪畢, 禹避舜之子於陽城, 天下之民從之, 若堯崩之後不從堯之子而從舜也. 禹薦益於天, 七年, 禹崩, 三年之喪畢, 益避禹之子於箕山之陰. 朝覲訟獄者不之益而之啓, 曰, 吾君之子也. 謳歌者不謳歌益而謳歌啓, 曰, 吾君之子也.'〕"에서 나온 말이다. 심(心)과……심이다 이 조목은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을 알아서이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라고 한 말을 논한 것이다. 처음과……밝힌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시작과 끝을 크게 밝히면 육위가 때로 이루어지나니, 때로 여섯 용을 타고서 하늘을 날아다닌다.〔大明終始, 六位時成, 時乘六龍, 以御天〕" 《주역본의(周易本義)》에서는 "시작은 곧 원이요 끝은 정을 말한 것이다. 마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고 정하지 않으면 원이 될 수 없다. 이는 성인이 건도의 끝과 시작을 크게 밝히면 괘의 육위가 각기 때에 맞게 이루어져서 여섯 양을 타고 천도를 행함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니, 이는 곧 성인의 원, 형이다.〔始卽元也, 終謂貞也. 不終則无始, 不貞則无以爲元也. 此言聖人 大明乾道之終始, 則見卦之六位, 各以時成, 而乘此六陽, 以行天道, 是乃聖人之元亨也〕"라고 하였다. 명(命)……없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맹자는 '명(命) 아님이 없으나 그 정명(正命)을 순히 받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정명(正命)을 아는 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에 서지 않는다. 그 도(道)를 다하고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요, 질곡(桎梏)으로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 아니다.〔孟子曰, 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不立乎巖牆之下. 盡其道而死者, 正命也, 桎梏死者, 非正命也〕"에서 나온 말이다. 기화(氣化)에……되었다 이 조목은 장재(張載)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태허에 연유하여 천이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고 기화에 연유하여 도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라는 말을 논한 것이다. 주역에서……한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게 함을 일러 도라고 하니, 도를 잇는 것은 선이고 도를 이루는 것은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라고 하였다. 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다 《맹자(孟子)》 〈진심 하(盡心下)〉에 "입이 맛에 있어서, 눈이 색깔에 있어서, 귀가 음악에 있어서, 코가 냄새에 있어서, 사지가 안일에 있어서는 성(性)이지만 명(命)이 있는지라 군자는 이것을 성이라 이르지 않는다.〔口之於味也 目之於色也 耳之於聲也 鼻之於臭也 四肢之於安佚也 性也 有命焉 君子不謂性也〕"라고 하였다. 여기에서……것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공자(孔子)가 "성품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習慣)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性相近也, 習相遠也〕"라고 한 데 대한 주자의 주석이다. 잡으면……잃는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공자가 말하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서, 나가고 들어옴이 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다' 하였다.〔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내가……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공자가 말했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인이 당장 이른다.〔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마음이……따른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대로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사물에……욕구 《예기(禮記)》 〈악기(樂記)〉, "사람이 태어나면서 고요한 것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고, 사물에 느껴서 움직이는 것이 본성의 욕구이다〔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 지(智)ㆍ인(仁)ㆍ용(勇)처럼 《주자어류(朱子語類)》에는 '知仁勇' 앞에 '如'자가 있다. 보지……않는 《중용장구(中庸章句)》 1장(章)에 "군자는 보지 않는 바에서도 계신하며 듣지 않는 바에서도 공구한다.〔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하였는데, 눈으로 아직 사물을 보지 않고 귀로 아직 소리를 듣지 않는 것으로, 마음이 미발(未發)한 상태이다. 홀로……조심할 앞의 《중용장구(中庸章句)》 1장(章)의 '부도불문(不睹不聞)' 바로 뒤에 "은미한 것보다 더 확연히 드러날 수가 없는지라,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있는 자리를 조심한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고 하였다. 이천(伊川)이……된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8에 보인다. 29판의 〈진순록(陳淳錄)〉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2의 제116조목을 가리킨다. 〈중용기의(中庸記疑)〉 《간재집(艮齋集)後篇》 권20에 수록되어 있다. 귀신(鬼神)의 덕(德)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6장에 "귀신의 덕이 성대하도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지만, 물의 체를 이루어 결코 빠뜨릴 수 없다.〔鬼神之爲德, 其盛矣. 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體物而不可遺〕"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성(誠)과……머문다 이 부분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5장에서 "성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도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성은 사물의 끝과 시작이니 성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라고 한 말을 논한 것이다. 만인걸록(萬人傑錄)에서……된다 바로 앞 조목인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4 제96조목에 나오는 주자의 말이다. 근본은……이다 《중용(中庸)》 30장에 "공자는 멀리 요순의 도리를 받들어 전술하고, 가깝게는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받들어 지킨다. 위로는 천시에 따라 자연스럽게 운행하고, 아래로는 물과 땅의 생성 원리에 합치한다. 이는 마치 천지가 실어 주지 않음이 없고, 덮어 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마치 사계절이 서로 바뀌어 운행하고 해와 달이 서로 빛을 교체하여 밝히는 것과 같다. 만물은 함께 생육하지만 서로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으며, 도리는 병행하지만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작은 덕성은 끊임없이 흐르는 냇물과 같고, 큰 덕성은 화육을 돈후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천지의 도리가 위대한 근본 원인이다.〔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 辟如天地之無不持載, 無不覆幬. 辟如四時之錯行, 如日月之代明, 萬物並育而不相害, 道並行而不相悖. 小德川流, 大德敦化. 此天地之所以爲大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木 원문은 '本'인데 문맥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忠信 원문은 '忠'인데《주자어류》권24를 참고하여 보충하였다。 勇 원문은 '用'인데《논어집주》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人心 원문은 '人'인데,《주자어류》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謙 원문은 '兼信'인데,《주자어류》를 참고하여 수정하였다. 一 원문은 '二'인데,《주자어류》를 참고하여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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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간재선생에게 올림 上艮齋先生 已未 기미년(1919) 삼가 선생께서 창암(蒼巖, 김낙규)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난 뒤, 〈면암연보(勉菴年譜)〉중에서 면암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선생께 편지를 보내 일을 함께하자 했는데 선생께서 응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충직한 기풍을 지닌 면옹(勉翁)이 죽은 지 10년이 채 안 되어 실상과 어긋나는 문장이 돌연 그의 문하에서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면암 어른이 편지를 쓰려고 했던 당시에 임씨가 그것을 막고 좨주(祭酒)를 도모했다는 설에 대해서는 이상래(李相來)가 직접 들은 것과 송정용(宋楨鏞), 김교윤(金教潤)이 전한 말이 뚜렷하여 차이가 없으니 참으로 창암이 편지에서 한 말과 같습니다. 또한 선생께서는 전일건(田鎰健)과 저(김택술(金澤述)를 보내 진중(陣中)에 있는 면암 어른에게 편지를 전하면서 했던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내용 중에 "면암 대감이 나이 80세에 군대를 이끌고 나라에 보답하기 위해 죽으려고 하니, 내가 비록 그 일을 함께할 재주는 없지만, 가까운 곳에 머문 것을 보고도 편지 한 장 써서 위문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대단히 편치 못할 것입니다."1)라고 어찌 말하지 않았던가요. 창의소(倡義所)에 갔는데 만약 《명의록(名義錄)》에 이름을 올린다면, 저는 조부모님도 살아 계시니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전일건은 허락하지 않았겠습니까.정말로 면암 어른이 먼저 편지를 보냈다면 선생의 답서에서 어찌 한 글자도 물음에 답하는 말이 없겠습니까. 사랑하는 손자로 하여금 《명의록》에 이름을 올리게 하였다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한 얼마나 깊을까요. 면암 편지의 존재 여부와 선생의 마음을 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선생께서 실제로 면암의 편지를 보고도 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응하지 않은 것은 또한 재주와 형세를 헤아렸기 때문이며 한편으로 지키는 의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병을 일으킨 것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며 의리를 지키는 것[守義]2)이 전적으로 그른 것이 아닙니다.처음부터 자신에 호응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지적하여 나의 스승만이 홀로 어진 것을 드러낸 것도 옳지 않은데, 더구나 애당초 선생에게 일을 함께 하자는 편지도 보낸 적이 없으니, 어찌 응답한 여부에 대해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인데 반드시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하며 거짓된 것을 사실이라고 우겨서 후대에 공적으로 전하려고 한다면 매우 괴이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伏見先生抵蒼巖書, 知〈勉菴年譜〉中, 有起義時, 貽書先生共事不應之語。 不圖斯翁忠直之風, 不待身後十年而爽實之文, 遽出於其門下也。 當日勉丈之欲作書也, 林氏之沮之以方圖祭酒之說, 李相來之親聞, 宋楨鏞金教潤之所傳, 歷歷不差, 信有如蒼書中所云者。 且先生不記送鎰健與澤述致書勉丈陣中時訓辭乎? 豈不曰"勉台八耋, 從戎以死報國, 吾雖才之不能共事, 見留近地, 拜闕一書相問, 心甚未安"? 往至義所, 若使參名義錄, 則澤述有重堂在, 不可擅爲, 鎰健則許之也乎? 果勉丈有先施者, 書中胡無一句辭答之語乎? 而必令愛孫而參名, 則其欽祝冀成之意, 又何如也? 勉書有無先生心事, 此可知矣。 借使先生實見勉書而不應, 其不應者, 亦各有所度之材勢, 又不無所守之義理, 未必舉義之專美, 守義之全非。 初不宜表出別人之不應, 用彰吾師之獨賢, 况於先生初無共事之書, 又何應不應之可論也? 乃必欲以無有爲, 馮虛作實, 公傳道之於後世, 不亦異乎? 면암 대감이……것입니다 《추담별집(秋潭別集)》 권1 〈여최면암(與崔勉菴)〉의 편지를 요약한 내용이다. 의리를 지키는 것[守義] 여기서는 의병을 일으키는 것과 상대되는 의미로 거병하지 않고 개인적인 의리를 지킨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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