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일에게 답함 答吳允一 辛巳 신사년(1941) 사람이 학문하지 않아서 흑백을 분별할 수 없다는 것으로 근심을 삼고, 마땅히 학문에 힘써서 기질을 변화시키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표준으로 삼고, 자기 견해를 스스로 옳다 여겨서 좌정관천을 면하지 못한 것을 경계로 삼으며, 책을 읽어 분발하여 훌륭한 사람에게 올바름을 취하는 것으로 힘씀을 삼고, 몸이 시세에 얽매인 까닭으로 제 집에 놀러오지 못한 것을 근심으로 삼는다는 편지 내용을 받아보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학문은 기회를 놓칠 것처럼 생각하여 서둘러함으로써 날마다 정심함에 나아간다는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저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잘못입니다. 세간에 고명한 사람들은 적지 않으니 나에게 진실로 터득한 것 있다면 어찌 나아가 질정(質正)할 곳이 없음을 근심하겠습니까. 진실로 질정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천 리가 떨어져 있어도 종이 한 장의 편지로 지척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할 수 있으니, 또한 어찌 몸이 얽매임을 근심하겠습니까. 저는 비록 그런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만둘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당신의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하는 것은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윽이 당신의 자질을 살펴볼 때, 겉모습은 약하고 둔한 듯하나 내면은 실로 밝고 강하니, 어찌 감히 본 것이 없어서 구차스럽게 말을 많이 하겠습니까. 제가 더불어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공자가 학문하는 큰 방법인 다섯 가지 놓지 않는 법을 자세히 논하였는데, '명강(明剛)' 두 글자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것이 도학의 철두철미한 곳이니, 원컨대 격물·치지·성의·정심에 더욱 노력하여 만리를 모두 통달하고 백행을 다 선하게 하여 지대한 명강의 경지에 나가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말씀하신 음성의 오진영이 스승의 의리를 속여 배반하고 사문의 큰 변란을 일으킨 죄는 사람들이 모두 비난할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만약 용암선생(김시묵)이 살아계셨다면 반드시 의리를 들어 성토할 것이라는 말은 대단히 옳습니다. 이제 용암선생의 문집을 음성의 오진영에게 교정과 서문을 부탁했다하니, 어찌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마는 다만 문장의 기교를 취하고 성세를 좇아가서 그리 한 것입니다. 이는 도도한 속된 작태로서 어찌 말거리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현자의 도로는 한 번 바르게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편지로 주인에게 깨우쳐주었는데 듣지 않았다고 하여 그만둘 수 있겠습니다. 구해서 볼 수 있는 여부는 당신이 이미 마음에 편안치 않다 했으니 맹자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 뜻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으니, 어찌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묻겠습니까. 承以人不學問, 無別黑白爲懼, 當勉學問, 變氣反本爲準, 自是己見, 不免坐井爲戒, 讀書憤悱, 就正高明爲務, 終之以身縻勢故, 未遊弊廬爲憂。即此可見學如不及, 日造精深之意。然必以鄙人爲說, 則誤矣。世間高明自不乏人, 我茍有所得, 何患就正無所? 茍有可正, 千里一紙, 咫尺面談, 又何憂身縻哉? 鄙人雖非其人, 無已, 則自茲以往, 書尺往復, 如惠書所云, 亦吾之願。竊覵貴座資質, 外似柔鈍, 內實明剛, 豈敢無所見, 而茍然謾說乎? 吾之所以樂與之交者也。蓋孔子備論爲學大方, 五不措之法, 而終之以明剛二字。是爲道學築底處, 願益加努力於格致誠正之功, 使萬理皆通, 百行盡善, 以進於明剛之大且至焉者如何? 所喩陰吳誣背師義, 作師門大變之罪, 人皆可斥, 況使勇菴而在者, 必舉義聲討, 極是極是。今以勇集託陰校弁, 豈不知其不是哉? 特以取文技, 趨聲勢而然。此滔滔俗態, 何足道哉? 然在賢之道, 不可不一番正言, 書喩於主人, 不見聽, 則亦可已矣。購見與否, 賢既云於心不親帖, 則孟子所謂無欲其所不欲者。此可以斷之, 何復問於別人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