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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헌에게 답함 신미년(1931) 答李愼軒 辛未 학술의 오류는 그 지극한 폐단을 말하면 맹자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에 대해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다12)고 말하기까지 하였으니, 허무와 선학은 그 궁극에 어느 곳인들 이르지 않겠습니까? 어른의 편지에서 이른바 "다만 대의와 관계된 바가 아닌가?" 하신 것은 참으로 지당하니, 다만 그 실마리가 처음부터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근세 리학(理學)의 근원처럼 견해 차이일 뿐 일반적으로 행패를 부리고 폐를 끼치는 등의 미워할 만한 점이 없다면 어찌 미리 그 사람을 대의로 판단하여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양주와 묵적의 오류를 정자가 오히려 보통사람을 뛰어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노자의 청수(淸修)와 육상산의 독실함은 현인을 업신여긴 자와 같은 사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비교적 분명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어른이 자신하는 데에 독실하여 현인을 업신여긴 자도 공경할 만하다고 말함에 이르렀으니, 지나칩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성인을 비난하는 자는 법도가 없다."13)했습니다. 현인은 성인의 형체를 미세하게 갖추고 있으니, 현인을 업신여기는 것은 또한 어찌 법도가 없는 것의 다음을 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가지고 헤아려보면 공경할 만하다는 의론은 진실로 바꿀 수 없는 정론이 되지 못하고, 일반적인 예를 지나치게 따르는 것도 또한 베푸는 것이 타당한지 모르겠습니다. 學術差繆, 言其極獘, 則孟子至謂楊墨爲無父無君, 虛無禪學, 其究也, 亦何所不至? 尊喩所謂"獨非大義所關乎"者, 誠爲至當, 但其端之始異也.只如近世理學源頭之差見而已, 未見有一般行悖貽獘之可惡也, 則惡得以預斷其人以大義而斥之乎? 楊墨之差, 程子尚謂過人之行, 況於老氏之清修, 象山之篤實也, 其不可與侮賢者同科也, 較明矣, 而丈篤於自信, 至發侮賢者亦可敬之言, 則過矣.孔子曰: "非聖者, 無法." 賢者, 聖之體微也, 侮賢者, 亦豈不得爲無法之次犯乎? 執此而揆之, 可敬之論, 固未爲不可易者, 而過從常禮, 亦未知施得其當也. 맹자가……없다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양씨(楊氏)는 자신만을 위하니 이는 군주가 없는 것이요, 묵씨(墨氏)는 똑같이 사랑하니 이는 아버지가 없는 것이니, 아버지가 없고 군주가 없으면 이는 금수(禽獸)이다.[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是禽獸也]"라고 하였다. 성인을……없다 《효경(孝經)》 〈오형장(五刑章)〉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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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헌에게 답함 갑술년(1934) 答李愼軒 甲戌 천지의 그물망이 참으로 오늘의 형세이니 통곡하며 상심하는 것 또한 피차 똑같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인정이 크게 상심한 뒤라도 반드시 할 일이 있으니 만약 크게 하지 않으면 또한 반드시 크게 패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격동되어 지나친 감정을 스스로 억누르지 못한다면 크게 뒤흔들고 은밀히 박해할 근심이 생겨서 형세 상 반드시 멋대로 잡아 던진 뒤에 통쾌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칠정이 발동하는 것은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옛날에 가의가 입언하면서 통곡하고 눈물을 흘려 마침내는 크게 실망하여 목숨을 해침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비록 큰 실패는 아니더라도 또한 실패입니다. 이것 외에 다시 무엇을 논하겠습니까? 천지의 그물망을 다시 벗어날 수 없더라도 스스로 그 자리에 편안하게 있을 수는 없으니 실험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크게 멀리하더라도 형세 상 반드시 이르는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기분은 이미 반절 정도 좋지 않습니다. 아래 문장을 보면 편당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러하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 한 구절에서 더욱 절반 이상 기쁘지 않고 영남은 가까우니 몸소 가고 먼 곳은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일찍이 스스로 오래도록 한탄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어른 때문만이 아닙니다. 옛사람이 "지난번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아첨에 대하여 묻지만 내가 어찌 사악한 덕이 있으리오."라고 하였는데, 오늘의 일이 불행히도 이와 같으니 참으로 통곡할 일이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영당의 일은 작은 것이고 스승을 속인 일은 큰 것이니 갑자기 이전에 성토를 제창한 일을 잊고 도둑놈에게 손해 볼 일을 열었으니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당신은 큰일을 했다고 여깁니까? 큰 실패를 했다고 여깁니까? 이것은 지난 일일 뿐입니다. 앞으로의 낭패를 또한 어찌 이루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과연 또 듣건대, 음성의 괴수에게 편지를 보내어 화친을 강화하자고 청하였다고 하니, 또한 한 사람만 제거한다는 설과 다르거늘 반복하여 변설하여 불쌍함을 구걸하여 항복을 한 것은 일상적인 일이고 뜻을 받들어서 올바른 사람들을 죽이고 적으로 삼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니 당신 자신이 결단코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공자가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15)라고 말하였으니 또한 각각 자신의 뜻을 행할 뿐입니다. 이제 누누이 말한 것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무언가를 구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자는 거의 드물 것입니다. 나의 입장에서 논한다면 아직도 다소 직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서운함이 있습니다. 그대와 나는 참으로 음성 사람들에게 똑같이 그물에 잡히는 재앙이 있었으니 비록 부자의 성스러움으로도 오히려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나를 따를 자를 생각하는 것을 그칠 수 없었으니 중인의 정으로 어찌 난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간절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당신의 진퇴는 참으로 사문의 영욕과 관련되어 있으니 평소의 한 마디 말이 합치하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바로 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도하다는 혐의를 피하지 않고 이렇게 말을 다하여 피하지 않았으니 장차 해로움으로 여기겠습니까? 이 말을 따르기를 청합니다. 아니면 또 생각할 만한 단서로 여기겠습니까? 원컨대 밝은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라니 침묵만 해서는 안 될 따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天羅地網, 固今日之形勢, 而痛哭傷心, 亦彼此之同情.然凡人之情, 大傷之餘, 必有事在, 若不大做, 亦必大敗, 何者? 激觸過越之情, 不自按住, 則震擾陰剝之之患生, 勢必縱橫挐擲, 而後快是知.凡厥七情之越發者, 必當加察也.昔賈生痛苦流涕於立談之間, 遂見卒至失望而戕生, 此雖不大敗, 而亦敗者也.外復何論? 蓋天羅地網, 則無復可脫矣, 而不能自安其位, 欲有所試, 則大做遠矣, 勢之所必至, 不言可知矣.吾意已自五分不佳.及觀下文, 有未知偏於黨而然歟.一節更覺七分不悅, 至有曰嶺欲近則躳往, 遠則書間, 不欲再看, 而未嘗不自歎久之, 非爲丈也.古人有言曰: "向來某問佞於我, 我豈有邪德耶?" 今日之事, 不幸近之, 眞可痛哭而傷心者.蓋影堂小, 誣師大, 遽忘前日之倡討, 遂開損盜之門, 事之至此, 丈自以爲大做歟? 以爲大敗歟? 此乃過往一事耳.前塗良貝, 又何可勝數? 果然又聞, 欲致書陰魁, 請與媾和, 則又異於除一人之說, 反覆變舌, 乞憐納降, 乃其常事, 承望風肯戕賊正類, 亦是次第事, 不可謂我決不爲此也.孔子曰: "道不同, 不相謀." 亦各行其志也.今此縷縷, 自他人觀之, 其不謂我何求者, 蓋將鮮矣.由我論之, 尚有多少不盡分之憾.蓋丈之與我, 實有同遭網打之禍於陰人者, 雖以夫子之聖焉, 猶思從我於陳蔡者, 不能已已, 中人之情, 安得不惓惓於同難之地乎? 且也丈之進退, 實關師門之榮辱, 又不可以尋常一言之不合而便可相忘也.故不避過度之嫌, 茲盡言不諱, 將以爲害已耶? 請從此辭矣.抑以爲亦有可思之端? 願賜明敎, 不可但於默默而已也.如何如何? 도가……않는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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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헌에게 답함 갑술년(1934) 答李愼軒 甲戌 앞서 올린 편지는, 비록 스스로 실로 마음을 다해 고하고 덕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뜻에서 나왔다고 여기지만 귀에 거슬리는 말과 마음에 어긋나는 말을 듣기 좋아하며 즐거이 취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게 여깁니다. 이런 까닭으로 마음에 전전긍긍함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번에 어른께서 노기를 내리고 마음을 평정시켜 기꺼이 그 의론을 서서히 살펴 반복하시고 편지를 보내주셨으며 또 충심어린 가르침이라고 말씀해 주셨으니, 이것은 비록 어른에게 바라는 바였으나 크게 기쁨이 넘쳐서 뜻밖의 보물을 얻은 것 같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천하의 의리가 비록 정미하여 보기 어렵고 피차의 소견이 비록 어긋나서 합치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어찌 끝내 규명하지 못하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자축하며 실로 한줄기 양맥이 많은 음속에서 발현된 것이라 여겼습니다. 더욱 마땅히 서로 십분 힘을 쓰고 실효를 거두기를 기약해야지 그럭저럭 범범하게 흘려보내 이미 드러난 양광으로 하여금 장차 식어서 얼마 후에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감히 다시 진술하니 삼가 재가해주기를 바랍니다.호서에서 시행된 단발의 변고를 듣고 온 천지가 그물망에 걸릴 것을 생각하여 통곡하고 상심하였으니, 이것은 단발의 변고에 격분되어 온 천지가 그물망에 걸린 것을 상심해 통곡하는 지경에 이르면서도 실정에 지나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처음부터 없었다고 말씀하십니까? 이미 통곡하고 상심하였습니다. 영남은, 가까우면 직접 가고 멀면 편지로 물어서 영당의 건립에 힘을 얻기를 바라고자 하였으니, 이것은 그 위치를 편안히 여기지 못하여 시험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와 같은 처신에 대해서는 마음을 보존한 것이 이미 은미하고 일을 시행한 것도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재 속의 뱀과 그림 속의 용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눈동자를 찍지 않으면 또한 스스로 그러한 줄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소는 보고 양은 보지 못했다는 이유가 있는데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 간파되는 자가 많으니, 이것이 맹자가 본심을 잃었다고 논한 까닭입니다. 제발 유념하여 자세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애초부터 마음이 중립인 자는 진실로 논할 것이 없으나 권순명·유영선·김용승 세 사람에 이르러서는 서로 절교할 의리도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에 이미 두루 방문하셨으니 어찌 오늘날에 와서 이상하겠습니까? 어찌 적을 다스림에 먼저 그 당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까? 권순명·유영선·김용승은 바로 조조의 순욱 같은 무리입니다. 더군다나 을축년 11월의 통문은 오진영의 지휘와 사주를 받아서 전후로 분주히 뛰어다닌 자들입니다. 어찌 먼저 다스려야 할 난적의 당으로 어른께서 함께 지어 연명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이전에 비록 방문한 일이 있으나 지금 분명한 글을 드러내 밝히시니 어찌 이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중립하는 자들은 말해도 고치지 않으니 치지도외하면 되지만 반드시 그들과 더불어 서로 좇으며 사이가 없고자 한다면 우리도 그들과 더불어 모두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분명하게 입언할 수 있는 자이겠습니까?오진영을 위하는 자는 오진영의 당이 아닙니까? 어찌 그들을 한결같이 서로 절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큰 과실 작은 과실을 운운하는 것은 주제를 잃었으니 논할 필요도 없습니다. 절교당한 자가 과실을 고쳤다고 말하니 과실이 있다고 어찌 절교하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절교를 했다면 반드시 그 과실에 고치지 못하여 죄가 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미 죄를 지었다면 그 죄를 자복한 이후에 비로소 다시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 무리들도 또한 그렇습니다. 지금 모두 자복하지 않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미 다시 용서하고 한편으로는 편지를 통하고자 하니, 무슨 근거로 그렇게 합니까? 을축년에 스스로 지은 통문의 내용과 상반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선사의 뜻은 영남당 수백 사람에 대해서 반드시 그 이름을 다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어느 곳에서 이와 같음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진작부터 이와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무함하는 말이니 놀라울 뿐입니다. 내 뜻은 선사가 만약 다시 일어나면 오진영의 당 수백 명을 한결같이 죄를 줄 것이니 해로움은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문의 화가 컸으니 어찌 숫자가 많다 하여 그 이름을 다 삭제하지 못하겠습니까? 정자가 "천하의 적도를 주벌함에 살육이 비록 많더라도 무슨 해로움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저 또한 "사문의 적도를 성토함에 이름을 삭제하고 절교하는 것이 비록 많더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라고 하겠습니다."비위를 맞춘다"16) 운운 하신 것은, 조목에서 논한 것이 본문의 뜻과 서로 너무 차이가 나니, 다시 자세히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나와 그대가 도가 같지 않음이 없는 것은 진실로 바라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도모할 뿐입니다. 그러나 도모가 행해지지 않으면 비록 억지로 같게 하려 해도 분명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과연 믿음이 미쳐서 서로 뜻이 맞은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진영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에 이른바 "인가를 내면서 선사에게 미뤄 핑계를 댔다."는 것과 "원고를 교정하여 문자를 변개했다."는 두 가지 일을 보고 어른께서는 용서할 만한 죄라고 여기십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전날의 성토가 있었습니까? 이미 성토했으니 힘써 주벌할 수 있으면 주벌하고 주벌할 수 없으면 마땅히 삼가 오진영을 피하는 것을 또한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제 어찌 편지를 보내 서로 통하여 도리어 오진영의 적도들에게 비웃음을 당한단 말입니까? 우습기도 하고 한스럽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도 오히려 구제하여 그칠 수 있으니, 그러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제발 다시 생각하고 다시 힘써 경계하기 바랍니다. 前書之呈, 雖自謂"實出忠告, 而愛人以德之意", 然逆耳之言, 拂心之辭, 喜聞而樂取者, 古今以爲難.是以不免有兢兢於心.乃者丈降氣平心, 肯與徐審反覆其論, 而賜之書, 且謂"忠誨", 此雖所望於丈者, 然喜溢之極, 如獲望外之寶.苟如是也, 天下義理, 雖曰精微而難見, 彼此所見, 雖曰參差而難合, 豈有終不得究終不得一之理? 心竊自賀, 以爲"此實一線陽脈之發見於群陰之中者".更宜十分著力, 期收實效, 不可悠悠泛泛, 使已見之陽光, 將息而旋消也, 明矣.敢復陳之, 伏惟取裁.聞湖西薙變, 而想及天羅地網, 而痛哭傷心, 則是激觸於薙變, 而傷心於網羅, 至於痛哭, 而不覺情之過越者也, 何謂初無云耶? 旣已痛哭矣傷心矣.嶺, 欲近則躳往, 遠則書問, 以冀得力於影堂之建, 則此非不自安其位而欲有所試而何? 凡於此等去處, 存心旣微, 行事未著, 有同灰蛇畫龍, 非迫視点睛, 亦不自知其然.所以有見牛未見羊之故, 而不自覺知, 反爲他人忖度者多, 此孟子所以有失其本心之論者也.千萬留念而致詳焉.從初之心中立者, 固勿論, 至權柳金三人, 思之無相絶之義, 故未有此事.前已有歷訪, 何怪於今日乎? 豈不聞治賊先治其黨與? 權柳金, 乃曹操之彧群也.何況乙丑復月通文, 承震指嗾, 奔走先後者, 詎不爲亂賊之黨先治, 丈之同製聯名者乎? 前雖有訪, 今露明文, 安得不怪也? 其中立者, 喩之不改, 置之度外則可, 必欲與之相從而無間, 則吾亦與之俱化矣, 此豈可以明明立言者乎?爲吳者, 非吳黨乎? 何可謂之不可一向相絶也? 大過小過之云, 失題矣, 不須論.絶者, 改過之云, 過, 豈有絶之之理? 絶之, 則必其過有不可改而成罪者矣.旣罪矣, 則服罪而後, 始可復容矣.其黨亦然.今皆不服, 而一則已爲復容, 一則欲爲書通, 何所據而然耶? 其柰與乙丑自製通文中語相反何?先師之意, 其於嶺黨數百人, 必不盡割其名, 何處得見其如是, 而曰旣如是也.此又一誣說, 可駭也.吾意使先師復起, 而震黨數百人, 一向遂罪, 則勿問害已.其始斯文之禍爲大, 豈可以多數, 而不盡割其名乎? 程子曰: "誅天下之賊, 殺戮雖多, 亦何害?" 吾亦曰: "討斯文之賊, 割絶雖多, 亦何害?"承望風旨云云條所論, 與本文之意, 相燕越, 更爲看詳, 如何?吾與子無不同之道, 固所望也.是以有謀耳, 謀之不行, 雖欲強同, 必不可得矣.第未知果能信及而脗然相合矣乎? 觀其擬與吳書中, 所謂"出認而推托先師", "校稿而變改文字", 兩件事, 丈以爲可容之罪乎? 則何以有前日之討也? 旣討矣, 則力能誅之則誅, 不能誅則亦當謹避震也, 亦能云爾.今何與書相通, 反貽震賊所竊笑也? 可笑又可恨也.及今猶可捄止, 則幸莫大矣.千萬更思, 復厲之戒焉. 비위를 맞춘다 원문의 '승망풍지(承望風旨)'는 풍지를 승망한다는 뜻으로, '승망'은 의중을 살피고 엿본다는 뜻이고, '풍지'는 풍도(風度)와 지의(旨意)로 상대방의 표정과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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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헌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李愼軒 乙亥 자사는 "자세히 묻고 밝게 분별한다."17) 하였고, 맹자는 "상세히 말하는 것은 돌이켜 요점을 말하고자 해서이다."18)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일을 논한다면 편지를 빈번하게 주고받는 것은 자세히 묻고 상세히 말하는 것이며, 한마디 말로 결단하는 것은 밝게 분별하고 돌이켜 요약하는 것입니다. 제가 앞뒤로 누누이 말한 것은 어른의 '음성의 오진영과 통해야 한다'는 견해를 바꾸는 것을 끝내 순조롭게 이루기 위함인데, 멋대로 생각한 결단하는 말을 하여 지금 마침내 "요컨대 한마디 말로 결단할 수 있어서 반드시 편지왕복을 빈번하게 할 필요가 없다." 하시니, 열매를 먹으며 뿌리를 보지 않고 효험을 말하며 약을 알지 못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공자는 "벗이 곧고 신실하면 유익하다."19) 하였고, 맹자는 "도가 바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20) 하였습니다. 제가 곧고 신실함에 있어서는 많이 사양하지 않는 만큼 어른께서 견해를 바꾼다면 도가 드러나는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다만 이른바 바꾸는 것을 다 바꾸지 못하고 드러나는 것이 다 드러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곧고 신실함이 지극하지 못하고 편지왕복을 다하지 못해서이겠지요? 청컨대 다시 충고를 진술하겠습니다. 이제 "오진영의 무리와 서로 화합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다만 처치를 마땅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한다면, 맹자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전에 자기 몸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았다가 이제 궁실과 처첩과 알고 있는 자의 고마워함을 위해서는 받으니, 이를 또한 그만둘 수 없는가? 이것을 두고 본심을 잃었다고 한다."21) 하였습니다. 어른이 전에 음성 오진영의 재앙이 치성하여 일망타진할 때에는 오히려 떨치고 일어나 몸을 돌아보지 않고 입을 크게 열어서 그 당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 것【을축년 통문】은 어찌 인가를 지시하셨다는 무함을 변척하지 않을 수 없고 원고를 고친 것을 꾸짖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겨서 스스로 생선요리를 버리고 곰발바닥요리를 취하는 의리22)에 붙이신 것이 아니십니까? 이제 마침내 거두지 않을 수 없는 푼돈과 받지 않을 수 없는 뙈기밭 때문에 갑자기 이전의 처치를 마땅하게 한다는 생각을 뒤집어 바꾸었습니다. 본심을 잃었다는 것을 비록 감히 어른에게 문득 비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만둘 수 있는데도 그만두지 않아 저들과 서로 화합하는 것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아마도 텅 비고 밝은 마음의 본체가 그 기능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군자가 돌이켜 구하고 내면으로 반성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어른이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이 여기에 있지 않고 도리어 저들의 과오를 공격하는데 있으니 어찌 이리도 전도되었단 말입니까? 난적이니 적당이니 하는 글자를 일찍이 어른과 함께 지어 연명한 을축년의 통문 안에 넣어 전국에 배포한 것을 지금 마치 제 글에서 처음 본 것처럼 하여 "지나치다[過當]" 하시니, 어른의 정신없음이 어찌 이와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주자가 "자신의 사적인 뜻을 제거하는 어려움이 중원의 오랑캐를 쫓는 것보다 어렵다."23) 했습니다. 어른이 비록 현명하더라도 또한 사적인 뜻이 있음을 면하지 못하니, 공을 위한다는 사심이 그대로 유소(有所)의 병통24)을 이루어 마음이 있지 않으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어른께서 가리고 막힌다고 겸손히 하신 말25)은 비록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 가리고 막히는 것이 만약 있다면 저는 감히 그것이 타고난 바탕이 아니라 바로 사적인 뜻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적인 뜻을 제거하면 이에 통명하게 될 것이니, 오직 어른은 힘쓰십시오. "인을 해치는 것을 적이라 한다.", "향원(鄕原)은 덕을 해치는 것이다.",26) "하나를 고집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은 도를 해치기 때문이다.",27) "믿음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해치게 된다.",28)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바로 해치는 것이다."29) 하였으니, 이와 같은 부류는 다 거론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 오진영이 하고 있는 짓은 이러한 것들과 나란할 뿐만이 아니니, 만약 그 죄를 바르게 이름 짓는다면, 맹자는 '우리 군주는 불가능하다'라고 하는 것도 오히려 해치는 것30)이라고 말했으니, 오진영이 선사를 무함하여 의리가 없는 것을 해친다고 말할 수 없단 말입니까? 우옹(尤翁 송시열)이, 스스로 집주를 지어 선현이 정해 놓은 뜻을 따르지 않는 것도 오히려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말했으니, 오진영이 스스로 자기의 뜻으로 선사의 본문을 고친 것을 난적이라고 말할 수 없단 말입니까? 또한 어른은 갑자년 여름에 홀로 만든 통문 안에 "선사가 있으면 오진영이 없고 오진영이 있으면 선사가 없다."라고 하신 말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세상에 어찌 스승을 무시한 죄를 범하고도 난적이란 이름을 면하는 자가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원고를 고치고 선비들에게 재앙을 끼치기 이전에 이미 스승을 무시한 것으로 그를 성토했던 것입니다. 이제 세 가지 큰 죄가 모두 드러난 뒤에 마침내 그를 위해서 난적의 이름이 억울함을 다투어주고, 그의 무리로 오진영과 줄곧 함께 하여 몸은 다르나 한 마음인 자들도 적당(賊黨)이라고 명명해서는 안 된다고 하니, 오호라, "시작이 없는 경우는 없지만 끝까지 제대로 마치는 경우는 드물다."31)라고 한 말이 옛날에도 있었거니와 어찌 어른께서 오늘날 하시는 일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여기에는 분명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니, 어른께서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선사가 다시 일어나더라도 영남 수백 사람에 대하여 마땅히 그 이름을 다 잘라내지는 않을 것이니 선사의 뜻이 이미 이와 같았다." 하신 말은 어른의 뜻에서 나왔으나 근거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편지에서 "어디에서 이와 같음을 보고 선사의 뜻이 이미 이와 같다고 하는가?" 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어른의 말이 무함하는 말이 되는 까닭입니다. "선사께서 다시 살아나시면 오진영의 무리 수백 사람에 대해 한결같이 죄를 이루실 것이니, 자신을 해친 것은 묻지도 않으실 것이다. 사문에 끼친 재앙이 크니, 어찌 수가 많다는 이유로 그 이름을 다 베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은 제가 정자의 "천하의 적을 죽이는데 살육이 비록 많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해롭겠는가?"라는 말을 근거한 것인 만큼 "사문의 적을 성토함에 있어 베어내고 끊어버리는 것이 비록 많을지라도 또한 어찌 해롭겠는가?"라고 말하겠습니다. 성인이 서로 전수한 것은 동일한 심법이니, 정자가 전한 '살육이 많다'는 심법은 즉 선사가 받은 '베고 끊는 것이 많다'는 심법이니, 제가 근거로 삼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것을 무함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결단코 사군자가 이치를 논하고 의리를 강하는 말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장사치와 골목아이들이 보복하겠다고 큰소리치는 말이 되려 해도 될 수가 없을 것이니, 어찌 족히 들을 것도 못 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의리는 정해져 있지만 사람의 견해는 같지 않으니, 제가 또한 어찌 감히 매사에 자기 견해만 옳다고 여겨서 반드시 다른 사람도 같아야 한다고 하겠습니까? 다만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한 날에 맹자의 '막을 것을 말하는 의리'32)에 근거하여 뜻 있는 선비들의 동의하는 견해를 모아 막아 물리치는 데에 마음을 다하고 처치하는 데에 마땅함을 얻는 것일 뿐입니다. 어른은 1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에 그가 원고를 고친 것이 더욱 많다는 것과 사림에 재앙을 가한 사실과 스승의 손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다 아신 뒤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길을 고쳐서 당초 스스로 성토하는 의론을 제창하고 스스로 통문을 지어 "오진영이 있으면 스승이 없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러 엄절함을 극도로 해서 오진영의 이른바 두려워할만한 사람으로서 번복하여 그를 위해 난적과 적당이라는 호칭을 벗게 해주며, 말이 오진영의 죄에 미치면 "권하여 허물을 사죄하게 하고자 한다." 하고, 말이 그 무리를 성토함에 미치면 "한 번 제재하고 억제하였다." 하여 대충 말하고 가볍게 처리해서 오직 그가 중하게 다칠까를 염려하시니, 어른의 뜻이 있는 곳을 진실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니 또한 나이가 많고 덕이 높으며 의리가 더욱 정밀하고 인이 더욱 익어서 남들이 미쳐 알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또 혈기는 쇠하고 마음은 나약한데 세상은 또 더욱 혼란하니, 평일에 곧고 올발랐던 기개가 가라앉고 사그라드는 데다 아울러 군자의 세 가지 경계 가운데 마지막 경계33)를 면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중에 반드시 해당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오직 이에 대한 의론은 우리들이 종신토록 크게 완수해야할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실로 사문의 영원한 후세에 공신이 되느냐 죄인이 되느냐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양쪽의 시비는 자연 정론이 있어서 그 사이에 사적인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진실로 어른의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비록 갑자기 하나로 귀결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마땅히 편지를 자주 왕복하여 모두 거두어 써놓아 후세의 공정한 눈과 바른 견해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일입니다. 반드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의 일반 학자들처럼 질문이 있어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 남이 대들어도 따지지 않는34) 성덕인 냥 자처하는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子思子曰: "審問之, 明辨之." 孟子曰: "詳說之, 所以反說約也." 以今日事論之, 往復頻煩, 審問詳說也, 一言斷之, 明辨反約也.所以鄙之前後縷縷, 終得馴致丈之改通陰之見, 而爲妄想之斷辭, 今乃曰: "要可一言而斷之, 不須往復頻煩", 無乃近於食實而不見其根, 奏效而不知其藥者乎? 孔子曰: "友直諒, 益矣." 孟子曰: "道不直, 則不見." 區區竊不多讓於直諒, 而丈之改見, 爲道見之益也.但所謂改者, 不盡改, 見者, 不盡見.意者, 直諒之有未至, 而往復之有未盡者乎? 請得以更陳忠告.今曰: "與陰徒相合, 於我何有? 但欲其處置得宜." 孟子不云乎? "向爲身, 死而不受, 今爲宮室妻妾所識而受之, 是亦不可以已乎? 此之謂失其本心." 丈於向日陰禍方熾一網打盡之際, 猶能奮不顧其身, 大開口說, 其黨當先治【乙丑通文者】, 豈非以認誣不可不辨, 改稿不可不斥, 而自附於舍魚取熊之義乎? 今乃爲零金些錢之不可不收, 畸田片土之不可不受, 而忽翻前日處置得宜之案, 而變易之, 失其本心, 雖不敢遽擬於丈, 然可已不已, 而不自知其與彼相合者, 何爲而然, 則恐虛明之軆, 有不能守其官也.此君子所以貴反求內省也.丈之所當兢兢者, 不在於此, 而反在於攻彼之或過, 何其顛也? 亂賊賊黨等字, 早已加之於丈之同製聯名乙丑通文中, 而布之全國者, 今若創見於鄙文者然, 而謂之過當, 未知丈之昏忘, 何若是也? 朱子謂"一己私意之難除, 甚於逐中原之戎虜." 丈雖賢矣, 亦不免有意, 爲公之私, 因致有所之病, 而心之不在歟? 然則丈之自道以蔽塞者, 雖不可謂有, 是如有之, 區區敢曰: "非其質也, 乃其意也." 去其意, 則斯通明矣, 惟丈勉之, "害仁者謂之賊", "鄕原德之賊", "所惡執一者, 爲其賊道",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老而不死, 是爲賊", 諸如此類, 不可悉擧.今震之所爲, 非但此等比而已.若正名其罪, 則孟子以吾君不能者, 猶謂之賊, 震之誣先師以無義者, 不可謂之賊乎? 尤翁以自作集註, 不遵先賢所定者, 猶謂之賊, 震之自以己意改先師本文者, 不可謂之賊乎? 且丈不記甲子夏獨製通文中"有先師無震泳, 有震泳無先師"之語乎? 世豈有犯無師之罪, 而免夫賊名者乎? 此在改稿禍士之前, 旣討之以無師.今於三大罪俱著之後, 乃爲之訟冤亂賊之名, 其從之諸與震始終異身一心者, 亦謂不可名以賊黨, 鳴呼! "靡不有初, 鮮克有終", 古亦有之, 豈至如丈今日之爲者乎? 是必有其故矣, 惟丈思之."先師復起, 其於嶺黨數百人, 不應盡割其名, 先師之意, 旣如是"云者, 出自尊意, 而無所憑據.故鄙書曰: "何處得見其如是, 而先師之意, 旣如是也?"云矣.此丈之言所以爲誣說也."先師復起, 而震黨數百人, 一向遂罪, 則勿問害己, 其貽斯文之禍爲大, 豈可以多數而不盡割其名云者?" 鄙據程子"誅天下之賊, 殺戮雖多, 亦何害"之說, 而曰: "討斯文之賊, 割絶雖多, 亦何害?" 蓋聖人之相傳受, 同一心法, 程子所傳殺戮多之心法, 卽先師所受割絶多之心法, 吾之所據者, 此也.謂"此爲誣說", 則非惟決非士君子論理講義之言, 欲爲賈豎巷童報復聲口, 而亦不可得, 豈非不足聽聞者乎? 蓋義理有定, 人見不同, 吾亦何敢每事自是己見而必人之同也? 但於陰震誣師之日, 據孟子言距之義, 集多士同然之見, 盡心於閑闢, 而得當於處置者.丈乃於十年之久, 知其改稿益多, 加以禍士林, 押師孫之後, 忽然改度易轍, 以當初自倡討議, 自製通文, 至有'有震無師'之語, 而極其嚴截, 震所謂可畏之人, 反復爲之免脫亂賊賊黨之稱, 語及震罪, 則曰: "欲勸謝過", 語及討黨, 則曰: "一番裁抑", 略略說去, 輕輕勘來, 惟恐其重傷, 尊意所在, 誠不可測.其亦年高德邵, 義益精仁益熟, 而人不及知歟? 抑亦血衰心弱, 世且愈亂, 平日直方之氣, 潛銷暗鑠, 并不免君子三戒之末, 而不自覺知歟? 二者, 必有所處矣.惟此議論, 不但爲吾輩之終身大致, 實關師門之百世功罪.二者是非, 自有定論, 不可得以容私於其間者, 誠如尊喩.然則今雖未得遽然歸一, 亦當往往復復, 俱收并書, 以俟後世之公眼正見, 亦是一事.定不可學, 今世一般學者, 有問無答, 而自處以不校之盛德也, 如何如何? 자세히……분별한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1장에 나오는 말이다. 상세히……해서이다 《맹자(孟子)》〈이루 하(離婁下)〉에 나오는 말이다. 벗이……유익하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의 "유익한 벗이 셋이고 해로운 벗이 셋이다.[益者三友, 損者三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도가…… 않는다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오는 말이다. 전에……한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말이다. 궁실은 좋은 집을 말하고 처첩은 처첩의 봉양을 말한다. 원문의 '소식(所識)'은 '소식궁핍자득아(所識窮乏者得我)를 줄여 쓴 것으로, 알고 있는 궁핍한 자가 나의 은덕을 입어 고마워한다는 뜻이다. 생선요리……의리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내용으로, 더 좋고 가치 있는 것을 취한다는 요지로, 사는 것과 의를 둘 다 취할 수 없을 때에는 의리를 취함을 비유한 것이다. 자신의……어렵다 이 말은 《주자대전(朱子大全)》 〈무신봉사(戊申封事)〉에 나오는 글이다. 본래 문장은 "중원의 오랑캐를 쫓아내는 것은 쉽지만, 자신의 사적인 뜻은 제거하기 어렵다.[中原之戎虜, 易逐 而一己之私意, 難除也]"이다. 유소(有所)의 병통 《대학장구(大學章句)》 전7장에 나오는 네 가지 마음의 병통인 사유소(四有所)로,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心有所忿,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라고 한 것을 말한다. 겸손히 하신 말 원문의 '자도(自道)는《논어(論語)》〈헌문(憲問)〉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군자의 도 세 가지인 인자불우(仁者不憂), 지자불혹(知者不惑), 용자불구(勇者不懼)를 잘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자공이 "선생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다.[夫子自道也]" 하였는데, 주에 "자도는 겸손히 한 말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自道 猶云謙辭]" 하였다. 향원(鄕原)은……것이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나오는 말이다. '향원(鄕原)'은 동네(鄕)에서 신실하다(愿=原)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덕과 비슷하지만 덕이 아니므로 덕의 적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를……때문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말이다. 믿음을……된다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나오는 말이다. 늙어서도……것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것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우리 임금은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다.' 하는 것을 해친다고 한다.[吾君不能謂之賊]"라고 한 것을 말한다. 시작이……드물다 《시경(詩經)》 〈탕(蕩)〉에 나오는 말이다. 막을……의리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군자의……경계 《논어(論語)》〈계씨(季氏)〉에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으니, 젊을 때에는 혈기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경계함이 여색에 있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강성하게 되므로 경계함이 다툼에 있고, 늙어서는 혈기가 쇠하므로 경계함이 얻음에 있다.[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라고 한 것의 마지막 경계인 늙어서 얻는 것에 치중함을 말한다. 남이……않는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안연(顔淵)을 묘사한 말 중에 하나인 '범이불교(犯而不校)'를 말한 것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신헌에게 답함 병자년(1936) 答李愼軒 丙子 용동본35)의 고이(考異)에 대한 것은 저 또한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겨를이 없었는데, 우리 어른이 먼저 제 마음을 알았습니다. 용동본의 전고(前稿)36)는 원본에 의거하여 발간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후고는 조금도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여 다시 원본의 모습이 아닌 것은 당일에 일을 함께 한 전정재(田靜齋 전화구), 임자경(林子敬 임장우), 이경순(李敬循 이인구)도 모두 숨기지 않고 공공연히 말한 사실이라고 들었으니, 이에 그 내용을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후고로 사용한 것이 어떤 본인지 모르겠으나 정재가 화도수정본 한질을 가지고 갔고 또 입석(立石)37)이 베낀 현동본을 빌려갔으니 이것이 용동본에서 사용한 것입니까? 또 들으니 전순형(田舜衡 전기진)이 진주본을 많이 답습하여 광주에 보내 발간했다 하니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박진호가 백천재(百千齋)38)에서 김용승을 맞이하여 20년 강학을 기대했다 하니 어른은 이 소식을 들었습니까? 그의 말에 "간재 문하의 제공들이 이전에 음성의 오진영을 성토함은 얼마나 엄했습니까? 이제 제공 중에서 음성의 오진영과 내통하여 서원의 일을 같이 하는 자가 많이 있으니 나는 그 전후의 내막을 모르겠습니다.【이것은 연재와 말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김 진사는 분명히 간재 문하를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나간 것은 스승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고 질문하여 곧 대답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동을 보면 그 뜻을 탐색할 수 있고 그 견해를 알 수 있습니다. 어른이 이 말을 들음에 또한 어떤 마음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박인규 등의 연명서(聯名書)와 전사견의 논변이 있어 모두 적어서 보시도록 드리니 후에 가까운 사람과 김복교 등 여러 공에게 주어 어떤 말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龍本考異, 鄙亦尋常有意而未暇, 今丈先獲我心矣.蓋聞龍洞前稿, 可謂依本面刊出, 而後稿則都不成樣, 非復本面者.當日同事, 如田靜齋·林子敬·李敬循, 亦皆不諱而公言, 則此可以槩悉其內容矣.但其後稿所用, 未知何本, 而靜齋持去華本一匣, 又借去立石所鈔玄洞本, 此爲其所用耶? 又聞田舜衡多襲晉本, 送刊光州, 未知是否.朴震鎬之迎金容承于百千齋, 期以二十年講學, 丈已聞之否? 其言曰: "艮門諸公, 前日之討陰震, 何其嚴也? 今諸公中, 多有通陰而同院事者, 吾不知其前後裡許.【此與鍊心言者.】" 又曰: "金進士分明是出去艮門, 有人質之以出去非倍師乎? 則不答." 聽其言, 觀其爲, 則可以探其意, 而知其見矣.丈聞此言, 又未知何以爲心.此有朴仁圭等聯名書, 及田士狷置辨者, 俱錄呈覽, 後轉及於貴近與金復交諸公, 看有何語, 如何? 용동본 1927년경 논산(論山) 용동(龍洞)의 봉양정사(鳳陽精舍)에서 간행된 목판본을 가리킨다. 용동본의 전고(前稿) 전우가 고부(古阜) 백천재(百千齋)에 머무르던 1906년 3월에 김준영(金駿榮)으로 하여금 초고(草稿)를 수습하게 하여 문고(文稿) 36책(冊)으로 산정(刪定)해 두었고, 1912년 11월에는 1906년에 산정해 두었던 문고(文稿) 36책에, 성기운(成璣運)이 1906년 이후 수집해 둔 글을 합하여 성기운, 권순명(權純命), 유영선(柳永善) 등이 편집하고 전우가 직접 25책으로 산정한 것으로 '전고(前稿)'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용동본의 전고는 이것을 가리킨다. 입석(立石) 지명인데, 취오(聚五) 김석규(金錫奎)가 살았던 곳으로, 간재가 김석규에게 지어준 〈우석잠(友石箴)〉이 《간재집(艮齋集)》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김석규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백천재(百千齋) 전라북도 고부(지금의 정읍)에 있었던 학습장소를 가리킨다. 《간재집(艮齋集)》 해제에 보면 1906년(66세)에 "3월, 古阜 百千齋에서 文稿 36冊을 刪定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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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신헌에게 보냄 병자년(1936) 與李愼軒 丙子 제가 백면서생으로 어른과 동문으로 사십년 동안 오래 했고 게다가 오진영의 속임수를 함께 성토하며 대의를 지킨 것이 또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성토의 의론을 먼저 말함에 변론의 문장이 많고 엄함은 어른이 실로 다 써서 저는 미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매번 스스로 오늘 세상에서 아는 사람으로 친히 하여 믿으며 경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른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른은 근래에 점점 옛 덕을 바꾸어 마침내 전철과는 다르게 처음으로 오진영당을 방문하여 오진영당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오진영당을 다스린 이전의 의리는 버리고 조금 지나서는 '한 사람만 제거하면 된다.'는 설을 제창하여 중도로 자처하는 것처럼 하는 것입니까? 끝내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오진영이 오는 날에 한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론을 반대하고 계화도 제사의 주축이 되도록 하고 반대로 제가 제사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죄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친히 하여 믿기 어렵고 경복하기 어려운 것은 또한 어른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전 날 나를 사랑하여 나를 부축해주고 내가 성취하도록 해준 사람은 어른 같은 사람이 없었고 이제 저를 버리고 저를 쓰러뜨리고 저를 멸망시키는 사람 또한 어른 같은 사람이 없으니 《수호전》에 나오는 "은혜와 원망이 서로 이어지고 변방의 화복이 무상하다."는 말을 끝내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어른의 이 일로 알 수 있습니다. 동중서가 "인자(仁者)는 그 의를 바로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로를 따지지 않는다."39)라고 말했으니 이것은 본원을 끝까지 궁구한 의론입니다. 인자한 사람은 곧 최고의 성인입니다. 어른은 마음속으로 반드시 '나는 진실로 성인이 아니다. 만약 성취한 큰 공이 있다면 옛날 사람이라도 조금 도의를 어김으로써 하지 않은 자가 없으니 내가 무엇 때문에 고집을 피운단 말인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비록 자리를 얻어 다스려 태평한 공업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사림을 이끌어 유문의 공을 세울 수 없겠는가? 나는 지금 늙었다. 이런 일을 지체할 수 없으니 빨리 조금 오진영을 성토하는 의리를 어겨서 이를 통해 그 당과 화친하여 함께 스승의 사당을 창건할 따름이다.'라고 말할 것이니 이것이 지금 어른의 심사(心思)가 아닙니까? 비록 스스로 의리를 조금 어긴다고 말하더라도 끝내는 큰 죄에 빠짐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이 때문에 어른이 사당을 세우는 데 힘을 쓰는 것은 스승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단지 일의 공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와 같음을 알았다면 저는 마땅히 다시 충고를 일삼아서 한갓 실언을 했다는 비웃음을 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봄에 일을 들은 이후부터는 5개월이 지나도록 절대로 편지 한통이라도 보내 진언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연심(전희순) 어른이 왕림했을 때 이 일을 들어 논하고 제가 하는 말을 듣고서 "오호라, 이것이 무슨 말인가. 신헌이 사당을 세우는 것은 결단코 스승을 높이기 위해서 한 것이다."말했으니 저 또한 연심(전희순) 어른이 어른과 함께 기거하며 음식을 먹어서 날마다 서로 접함에 어른의 근래의 심사를 아는 것이 어쩌면 저보다 더 자세하다 여겼으니 어찌 감히 그 말을 믿고 어른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았겠습니까? 비록 과실과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면 스승을 존중하는 경중과 대소 사이에서 나란히 비교하여 어김으로부터 바르게 고치는 것이 가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끝내 다시 한마디 하여 가부를 기다림으로써 깊이 살펴주시기 바랐습니다. 그윽이 생각할 때 성현의 학문은 지인용(智仁勇) 세 가지가 이것일 뿐입니다. 이른바 성현을 배운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배우는 것이니 배우는 것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리를 보면 즉시 함으로써 용을 하고 선(善)을 선택하여 꼭 잡음으로써 인(仁)을 하며 과실이 있으면 반드시 고침으로써 지(知)를 하니 이 세 가지를 버린다면 배운다고 이를 수 없고 또한 선비라 일컬을 수 없습니다. 만약 어른을 가지고 말한다면 이전에 속임수를 만들어 스승을 해치는 자를 보면 송골매가 참새를 좇아가듯이 꾸짖었으니 이것은 의리를 보면 즉시 하는 용기였고 이 의리를 지켜서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선을 택하여 끝까지 잡는 인입니다. 이제 옛것을 버리고 음성의 오진영과 내통하여 화친했으니 이것은 과실의 큰 것으로 마땅히 고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또한 그윽이 생각할 때 학자는 진실로 과실과 잘못이 많으니 과실 고치는 한 가지 일은 의리를 하여 선을 잡는 것에 비하여 더욱 급한 일이고 긴요한 도입니다. 그러므로 정자(정이)가 "학문의 도는 그 잘못을 알았다면 마땅히 빨리 고쳐 선을 따르는 것뿐이다."라고 말했으니 정자(정이)의 말이 비록 과실을 고치기 위해 말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지인용 세 가지가 모두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 불선을 아는 것이 지이고 선을 따르는 것이 인이고 빨리 고치는 것이 용입니다. 이를 통해 말한다면 과실을 고치는 한 가지 일은 또 지인용의 총회처라고 말하더라도 불가한 것은 아닙니다. 어른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이 학문을 한 것이 60년이나 되어 늙어 장차 죽으려 해도 그치지 않는 것이 어찌 지인용을 이루는 군자가 아니겠습니까? 이미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여기에 대하여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도대체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사당을 세우는 것이 스승을 존중하는 큰 것이라면 형세 상 마땅히 오진영에게 통보한 연후에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의 의리는 돌아볼 겨를도 없었으니 어른이 고윤거(고재붕)에게 답장한 편지에서 "만약 선사로 하여금 오욕의 이름을 받게 한다면 제사가 풍성하고 비석이 크며 당사가 헌창하더라도 어찌 귀할 것인가."라는 말은 이미 둘 사이의 대소경중을 분명하게 분별한 것이니 또한 오늘에 나란히 비교함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이와 같을 것인데 다시 그 사이에 말할 것이 있다 한다면 비록 피해 달아나는 말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이 믿겠습니까? 어른이 앞뒤로 다르게 처신하는 것은 마치 한 사람의 행동에서 나온 것 같지 않으니 이와 같은 비상한 큰 변란에 어찌 한마디 말로 반드시 고칠 것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누누이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연심 어른이 스승을 존경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믿을만하다 여겨서 뿐만 아니라 또한 어른이 일찍이 제 충고를 받음으로써 오진영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만둔 것이 오히려 과실을 기꺼이 듣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거늘 이제는 섬에 들어가 오진영을 피하지 않고 함께 제사를 지내니 오히려 꺼림직 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큰 병이 든 사람이라도 오히려 한 줄기 생맥이 있어서 잘 기르면 회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귀에 거슬리는 말을 진언하여 잘 보양할 수 있는 약재로 삼아야 하는데, 입에 쓰게 만들지 말라 한다면 시험 삼아 복용하더라도 효과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용렬한 짓을 하지 말라. 휘어진 나무를 바로잡은 것은 습기를 만나면 바로 굽어지니 신헌은 원래 오진영당의 사람인데 도중에 일절은 비록 좋을지라도 오늘의 변심은 바로 그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른바 세 번 의지를 바꾼 사람(三截人)이 이것일 뿐이다. 그대는 용렬한 짓을 하지 말라."하여 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무가 줄곧 먹줄을 받아 곧게 되면 중간의 일절은 비록 구불어졌다 하더라도 집을 만드는 용도가 될 수 있으니 신헌의 처음 일은 오진영의 죄가 나타나지 않은 날에 있었고 또 그를 오진영의 당이라 이른다면 사실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땅히 쫓아서 논의할 것이 없습니다. 저는 신헌의 일은 마땅히 속임수를 성토한 것으로 시작을 삼아야 하니 오늘의 변신은 중간의 일이라 봅니다. 만약 다시 마음을 고쳐 바른 데로 돌아온다면 이것은 삼절이 바름을 얻고 줄곧 먹줄로 인하여 바르게 된 자이니 무슨 해로움이 있겠습니까? 주자는 대현으로 경서를 해석하는데 으뜸이었습니다. 중화의 설에 대해서는 여러 번 고친 이후에 바름을 얻었고 《대학》의 그침을 아는 것은 일정함이 있다는 것과 《중용》의 "성이라는 것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는 말은 이미 고쳐서 구설을 따랐습니다. 대현이 경을 해석하는 것도 오히려 이와 같다면 학자의 처사가 어찌 홀로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다만 도가 있는 곳을 얻었다면 삼절(三截)은 말할 것이 없으니 비록 십절(十截)이라도 자주 반복되는 것으로 꺼리기는 했지만 끝내 바르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선배들이 비웃은 삼절인(三截人)은 그가 끝까지 바름을 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헌을 위한 계획은 저쪽의 바르지 않은 삼절인이 되지 말고 이쪽의 바름을 얻은 삼절인이 된다면 허다한 허물은 조금도 없고 저절로 무한하게 좋은 일만 있을 것입니다. 어른은 제가 한 말에 대하여 이치를 깨달은 명언이라 여겨 긴요하게 살펴 취할 것인지 아니면 조소하면서 나를 업신여긴 사람이라 주벌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세력이 비록 두려울지라도 천년의 공론은 더욱 두려우니 틈을 엿보아 일어나는 사적인 생각은 비록 제거하기 어려울지라도 지극히 밝은 본심은 더욱 속이기 어렵습니다. 옛날에 조조가 천자를 끼고서 제후를 호령하다가 끝내 한나라를 찬탈함에 이르렀습니다. 천하가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쏠리듯이 따르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른바 일세의 명사라도 모두 똑같이 달려가서 그를 위해 지모와 생각을 내어 천하를 앉아서 안정을 시켰으니 당시에 적(賊)이라고 성토하고 힘을 다해 막은 자는 오직 소열 유비가 애썼습니다. 파촉(巴蜀)은 형세로 봤을 때 그 존재가 비록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역대의 사관들은 모두 조조를 존중하여 위무제(魏武帝)라 하고 그 통치를 무시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송나라 군자 온국공(사마광)에 이르러서도 그러했는데 최후에 주자의 《자치강목》이 출연한 이후에 촉나라가 주인이 되고 조조가 도적이 되어 의리가 밝아지고 포상과 주벌이 행해지니, 명사들로서 조조에게 아부한 자들은 모두 적당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문하의 일은 이것을 가지고 비교하여 비유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어른이 정말로 이 점을 살필 수 있어서 맑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돌이켜 반성한다면 본심이 드러나고 의리가 밝게 나타나서 혹 그 번복함을 자책하고 혹 그 망령됨을 스스로 후회하고 혹 그 비겁함을 스스로 비웃고서 맹렬하게 깨달아서 번연히 고치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후일의 공론을 기다릴 것 없이 곧 존장이 오진영을 성토한 문장에 '오진영이 있으면 선사가 없다는 등의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사이에 털끝도 용납하지 않는 엄한 말'로써 도리어 존장의 죄를 다스린다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엄한 말로 뭇사람에게 소리쳐 말하기를, "무릇 이전의 사소한 일은 나는 이미 모두 버렸노라. 장차 그것을 겁화(劫火)40) 속에 태우고 오진영 문하에 가서 사과하겠노라."한다면 어른은 이 점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듣고 싶습니다. 아! 전주와 진주에서 검찰에 고소한 재앙이 있은 뒤로부터 태도를 바꾸고 반론을 하는 자들이 굉장히 많은데 오직 어른에게 연연하며 그만두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어른이 몸소 일찍이 성토를 제창한 사람이 되어서 뭇사람 마음의 향배와 스승을 속인 것을 분별하는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하는 것은 어른뿐만 아니라 동지 전체의 수치이며 동지 전체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스승을 속인 것이 이 때문에 더욱 깊어집니다. 어른이여, 어찌 조금도 생각지 않으십니까? 일신의 명예와 절개는 비록 돌아볼 것이 못된다하더라도 전체의 수치는 어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전체의 수치는 비록 돌아볼 것이 못된다하더라도 스승을 속인 것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어찌 생각지 않습니까? 어른이여, 어찌 조금도 생각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대는 용렬한 짓을 하지 말라. 듣자하니 신헌이 벽에다 걸어놓고 맹세하기를 '사문의 일로 편지를 보내오면 일체 답장하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그가 요즘 오진영이 주관하는 뒤에서 사당의 일에 부지런히 힘쓴다면, 사당에 돈 모으는 일로 온 편지에 대하여는 분명 답장을 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인데 오히려 즉시 맹세를 했다 하니 이것은 반드시 오진영과 화답하는 편지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조짐이 이미 드러났으니 그대는 용렬한 짓을 하지 말라."하여, 내가 또 "아니다. 그렇지 않다. 신헌이 사당을 세움에 만약 일의 공적을 위해 시작한 것이 나의 견해와 같다면 즉시 맹세한 뜻은 진실로 그대 말과 같지만 연심이 이른바 결단코 스승을 존중하기 위하여 시작했다는 말을 나는 감히 믿지 않을 수 없으니 만약 어찌 반드시 오진영과 화친할 조짐이 이미 드러났다 말할 수 있겠는가. 아,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쓰면서도 반복적으로 생각하여 감히 문득 반드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른의 마음을 알지 못함으로써 반대로 원수 됨이 깊어진 것입니다. 그만둬 버리면 사후에 큰 윤리에 대하여 다소 분수를 다하지 못한 점이 있을 것 같아 홀로 앉아 눈을 반쯤 감고 붓을 세 번 잡았다 세 번 던지고 끝내 연심의 말을 믿고 이 편지를 썼으니 만약에 편지에 답장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 혹자의 설과 같다면 저는 진실로 답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답장을 해도 또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연심이 말한 것과 같다면 답장하여 이 미혹함을 풀어주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김종희가 "호남 사람은 이미 과실을 고쳤다."말하니 이것은 연심이 전한 말입니다. 어른이 이미 이 말을 들었는데도 이상하다 여기지 않으니 오호라! 그 끝내 오진영을 위해 과실을 고치는 것을 편하게 여기고 선사를 위해서는 과실을 고치지 않는 것입니까? 어른은 깊이 살펴주십시오. 澤述白生之於尊爲同門, 四十年之久, 重以同討震誣, 同守大義者, 又爲十年之久矣.而討議之先發, 辨文之多且嚴, 丈實有之, 而非生之可及者.故每自以爲并世所知, 可親信敬服者, 無有加於愼丈矣.夫何丈於近年以來, 漸改舊德, 竟反前轍, 始而訪問震黨中, 而同祀震黨, 旣棄治黨之前義, 旋唱單除一人之說, 似若自處以中道矣? 終又隱避不見, 於震來之日, 并反除一人之論, 而致其爲華祀之主祝, 反以生之不同祠事爲罪.然則難於親信, 難於敬服, 又無如丈矣.蓋前日之愛我扶我, 成就我者, 莫如丈, 今日之棄我顛我, 敗滅我者, 亦莫如丈, 《水滸》之"恩怨相尋, 塞上之禍福無常", 竟惡乎定? 丈之此事, 其可知也.董子曰: "仁人者, 正其義,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 此極本竆源之論.此仁人者, 卽無上之聖人也.丈之心必曰, '我固非聖人矣.苟有大功可就, 則古之人, 亦有不以少達道義而不爲者, 我何以固執爲哉? 我生斯世, 雖不得位以成治平之業, 顧不可以倡率士林建儒門之功乎? 我今老矣.事不容遟, 亟宜少達討震之義, 因以和同其黨, 共剏師祠爾.' 此非丈今日心事乎? 蓋其雖自謂少違於義, 而不知其終陷於大罪也.吾故曰丈之宣力立祠, 非爲尊師起見, 只爲事功起見也.旣知其如此, 則不宜復事忠告, 從取失言之譏.故自聞今春事後, 迄茲五朔, 絶無一書之陳矣.向見鋉心丈委訪, 提論此事, 及聞生言曰: "惡! 是何言也? 愼軒之立祠, 斷然爲尊師起見." 生又念鍊心之於丈起居飲食, 日相接也, 則知丈近日心事, 容有加悉於生者, 何敢不信其言而疑丈之心乎? 雖有過錯, 誠出於尊師之心, 則自應比并較量於尊師輕重大小之間, 知所從違而改正, 亦有可望.是故卒復一言, 以俟可否, 幸深察焉.竊惟聖賢之學, 知仁勇三者是已.所謂學聖賢者, 學此三者, 學之當如何? 見義卽爲以爲勇, 擇善固執以爲仁, 有過必改以爲知, 捨此三者, 不可謂之學, 亦不可稱之以士矣.若以丈言之, 前日之見造誣害師者, 斥之若鷹鸇之逐烏雀者, 是爲見義卽爲之勇, 守此義而終身不變, 則是爲擇善固執之仁也.今日之棄其舊, 而通和陰震, 則是過之大, 而當改而爲知者也.生又竊念, 學者固多過錯, 改過一事, 比爲義執善, 尤爲急務要道.故程子曰: "學問之道, 知其不善, 則當速改而從善而已." 程子之言, 雖爲改過而發, 實則知仁勇三者, 皆在其中.知其不善知也, 從善仁也, 速改勇也.由此言之, 改過一事, 又謂之知仁勇總會處, 亦無不可矣.丈生此世, 又此輟學六十年, 老將死而不輟者, 豈非欲成得知仁勇之君子人乎? 旣然矣, 而猶於此不以爲然, 則吾不可得以知之.如曰立祠尊師之大者, 勢當通震, 然後可成.故前日之義, 有不暇顧, 則丈答高允擧書"若使先師受汙辱之名, 則豊祭大碑, 堂舍軒敞, 奚貴之"說, 早已明辨二者之大小輕重, 而亦不待比并較量於今日也如此, 而更有可說於其間者云, 則雖曰非遁辭, 人誰信諸? 蓋丈之前後二轍, 若不出一人之爲者, 似此非常大變, 何可以一言期其必改? 而吾所以縷縷若此者, 非惟以鍊心尊師起見之說爲可信, 亦以丈之曾得鄙告, 罷止書震之, 猶爲喜聞過, 今不入島避震, 同祀之, 猶有所忌憚者.譬如大病之人, 猶有一線生脈, 善養可以回春.故茲進逆耳之言, 以當善養之劑, 勿以爲苦口, 試服而收效否? 有謂生者曰: "子母庸爲也.夫木矯楺而直者, 遇濕而復枉, 愼軒本是震黨, 中間一節雖好, 今日之變, 正所以返其本.所謂三截人者是已.子毋庸爲也." 生曰: "否, 不然." 夫木始終繩直, 則中間一節雖枉, 亦可爲作室之用, 軒初事在震罪未著日, 且謂之其黨則非實也.此不當追論.吾則以爲愼軒之事, 當以討誣爲始, 今日之變, 爲中間事.若復改而歸正, 則是爲三截得正, 而始終繩直者, 又何害焉? 朱子答大賢而聖於釋經者也.於中和之說, 屢改而後得正, 《大學》知止有定, 《中庸》誠者自成, 旣改而還從舊說.大賢之釋經, 猶如此, 則學者之處事, 何獨不然? 故吾則以爲但得道在, 莫說三截, 雖十截, 不可以頻復爲嫌, 而不思終正也, 審矣.前輩所譏三截人, 以其終之不得其正故也.今爲愼軒計, 勿爲彼邊不正之三截人, 而爲此中得正之三截人, 則都無許多累戾, 而自有無限好事矣.未知丈於此, 爲理到名言, 而喫緊省取乎, 抑以爲弄出譏嘲, 而誅侮慢乎.夫當世之勢力, 雖可畏, 千載之公論, 更可懼, 闖發之私念, 雖難除, 至明之本心, 更難欺.昔曹操之, 挾天子以令諸侯, 而終至篡漢也.天下畏其威勢, 莫不靡然從之, 所謂一世之名士, 亦皆齊進彙征, 爲之出謀發慮, 以致坐定天下, 當時討之以賊, 盡力拒之者, 惟昭烈之區區.巴蜀以勢觀之, 雖謂之無有焉可也.故歷代史官, 皆尊操爲魏武帝, 而無有奪其統者.以至宋朝君子溫國公, 而亦然, 最後乃得朱子《網目》之書出, 然後蜀爲主, 而操爲賊, 義理以明, 褒誅以行, 凡其名士之附操者, 皆爲賊黨.生以爲今日吾門之事, 擧此比準, 可以相喩也.丈誠能見到于此, 而清夜無寐之時, 反以自省, 則本心呈露, 義理昭著, 或自責其反覆, 或自悔其私妄, 或自笑其㤼懦猛然悟, 而幡然改之不暇也.如曰不然, 亦不待後日公論, 卽以丈討震文, 有震泳無先師等八字打開間, 不容髪之嚴辭, 還治丈罪, 無辭可供矣.凡此等嚴辭, 其將呼於衆曰: "凡前日之薄物細故, 吾旣捐之矣乎.其將焚之於劫火之中, 負荊於震門乎." 未知丈於此何以處之.願一聞之也.噫! 一自全晉訴禍之後, 改度反論者, 不啻多矣, 而獨於丈眷眷不置者, 何也? 以丈之身曾作倡討之人, 而衆心向背師誣辨否之所係也.今之云者, 非獨爲丈, 乃爲同志全體羞耻也, 非獨爲同志之羞恥, 乃爲師誣之, 因此益深也.丈乎丈乎, 盍少思之? 一身之名節, 雖不足顧, 全體之羞恥, 獨不念乎? 全體之羞恥, 雖不足顧, 師誣之益深, 寧獨不念? 丈乎丈乎, 盍少思之? 有謂生者曰: "子毋庸爲也.聞愼揭誓于壁曰, '凡以師門事來書, 一切不答', 愼方勤務祠事於震主之後, 則其以祠金事來者, 必無不答, 而猶且立誓, 是必但指貴其和震書者.蓋其水已堅矣, 子毋庸爲也." 生又曰: "否, 不然.愼軒立祠, 若爲事功起見, 如吾之見, 則立誓之意, 誠如子言, 鍊心所謂斷然爲尊師起見者, 吾不敢不信, 則豈可必謂氷已堅於和震乎? 噫! 其然乎? 否乎?" 生於此書之作, 蓋反覆思量, 未敢遽定欲爲之乎, 則丈之心有不可知, 恐見仇之反深矣.欲已之乎, 則於師友之大倫, 恐有多少不盡分, 獨坐半目, 三操筆而三投之, 終於只信鍊心之言而爲之, 如使誓不答書, 如或者之說, 則吾固知其無答, 而答亦不願見也.如其不然, 而誠有如鍊心所道者, 則幸賜回敎俾鮮此惑千萬.金鐘熙言, "湖南人, 已改過", 此鍊心所傳也.丈已聞此, 而不以爲異, 鳴呼! 其終安於爲震改過, 而不爲先師改過也耶? 惟丈深諒之. 동중서가……않는다 《소학(小學)》 권5 〈가언(嘉言)〉에 "동중서가 말하였다. 인자(仁者)는 그 의를 바로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로를 따지지 않는다.[董仲舒曰:仁人者, 正其義,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라고 하였다. 겁화(劫火) 불가(佛家)의 용어로, 재앙을 뜻한다. 하나의 세계가 끝날 즈음에 겁화가 일어나 온 세상을 다 불태운다고 하는데, 한 무제(漢武帝) 때 곤명지(昆明池) 밑바닥에서 검은 재가 나오자, 인도 승려 축법란(竺法蘭)이 "바로 그것이 겁화를 당한 재[劫灰]"라고 대답하였다. 《고승전(高僧傳)》 권1 〈한낙양백마사축법난(漢洛陽白馬寺竺法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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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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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최금재병심에게 답함 을묘년(1915) 答崔欽齋秉心 ○乙卯 《논어》와 《역경》에서 인(仁)과 지(知)의 뜻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이렇게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셨으니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이 어찌 그치겠습니까? 《논어》에서 "지는 움직이고 인은 고요하다.[知動仁靜]"41) 한 것은 참으로 마땅히 체단(體段)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주에 지자(知者)에 대해서 "사리를 통달하여 두루 흘러 막힘이 없다." 하고, 인자(仁者)에 대해서 "의리에 편안하여 후중해서 옮기지 않는다." 한 것은 그 모범과 의사를 형용한 것에 불과하고 본체가 아니니, 이것은 마땅히 인과 지가 발현되어 작용한 것으로 봐야만 《역경》의 "인은 양이고 지는 음이다.[仁陽知陰]" 한 것이 참으로 마땅히 발현되어 작용한 것으로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과 지에 대한 이견은 기품이 편중됨으로 인하여 단지 한쪽만 본 것에 불과하니, 그 본 것이 어찌 도의 전체 중의 한 귀퉁이가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본다면 피차 막힘이 없어서 완비될듯합니다.주자가 "적연부동은 뭇사람이 모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되 감이수통에 이르러선 오직 성인이 능히 하고 뭇사람은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한다."42)라고 말했으니 이천(정이)의 이른바 '적연부동(寂然不動), 감이수통(感而遂通)'은 마음의 체용을 범론한 것으로 성인과 범인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연부동과 감이수통을 이룰 수 있는 자는 오직 성인이 그렇게 할 수 있고 중인은 아마도 참여할 수 없는데 주자가 이르기를 "적연부동은 보통사람이 모두 이 마음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의심스럽습니다. 이 말이 만약 보통사람이 잠시 미발한 상태를 가지고 말했다면 보통사람의 한 가지 일이 중절(中節) 〈절도에 맞는〉한 것을 어찌 감이수통이라 말할 수 없겠습니까?천(天)의 성정은 굳셈[乾]이고 화(火)의 성정은 뜨거움[熱]이고 수(水)의 성정은 차가움[寒]입니다. 그렇다면 인(人)의 성정은 무슨 글자를 놓고, 물(物)의 성정은 무슨 글자를 놓아야 딱 맞겠습니까? 아니면 잘 모르겠습니다만 인물(人物)의 성정은 반드시 한 글자로 개괄할 필요 없이 다만 마땅히 나누어서 남자의 성정은 강(剛)하고 여자의 성정은 부드럽고[柔] 말의 성정은 달리고[走] 소의 성정은 밭가는[耕] 것이고 말하면 맞겠습니까? 주자가 "건(健)의 본체는 천의 성(性)이고 건(健)의 작용은 천의 정(情)이다."43)라고 말했습니다. 의심해보건대 정자의 "굳세어 쉼이 없는 것은 작용이고 정이며, 굳세어 쉼이 없게 하는 이치는 본체이고 성이다."라는 말입니까? 또한 차가움, 뜨거움, 강함, 부드러움의 발현되어 작용하는 측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작용이고 정이며, 차가움, 뜨거움, 강함, 부드러움의 이치는 본체이고 성인 것과 같습니까? 이와 같이 보면 어떠하겠습니까? 《論語》·《易經》, 仁知之異, 荷此發蒙, 感幸何已? 蓋《論語》之知動仁靜, 固當以體段言.然其曰: "達於事理, 周流無滯, 安於義理, 厚重不遷", 不過形容其模範意思, 非本體, 則此當於仁知者之發用處看取, 乃可見《易經》之仁陽知陰, 固當以發用言.然其仁知之異見, 不過因氣稟偏重而只見一隅, 則其所見者, 豈非道之全體中一隅乎? 如此看, 則彼此無礙, 恐爲完備.朱子曰: "寂然不動, 衆人皆有是心, 而至感而遂通, 惟聖人能之, 衆人却不然." 蓋伊川所謂"寂然不動, 感而遂通", 是泛論心之體用, 不及聖凡也.然能致寂然感通者, 惟聖人爲然, 衆人恐不能與也, 而朱子乃謂 "寂然不動, 衆人皆有是心, 可疑", 此若以衆人雯時未發言之, 則衆人一事中節, 獨不可言感通耶?天之性情是乾, 火之性情是熱, 水之性情是寒, 人之性情下得何字, 物之性情下得何字, 乃爲襯貼乎? 抑未知人物之性情, 不必一槩說, 只當分說.男之性情剛, 女之性情柔, 馬之性情走, 牛之性情耕, 亦得耶? 朱子曰: "健之體, 天之性, 健之用, 天之情." 竊疑, 程子以健而無息者, 是用也情也, 健而無息之理, 是體也性也耶? 且如寒熱剛柔之就發用上可見者, 是用也情也, 寒熱剛柔之理, 是體也性也.如此看如何? 지는……고요하다 원문의 '지동인정(知動仁靜)'은《논어(論語)》〈옹야(雍也)〉의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하니, 지자는 움직이고 인자는 고요하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적연부동은……못한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역은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어서,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하나니, 천하의 지극한 신령스러움이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라는 말이 나온다. 건(健)의……정(情)이다 《근사록(近思錄)》 제1권 〈도체(道體)〉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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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재에게 답함 병진년(1916) 答崔欽齋 丙辰 지난번 조문을 오셔서 제가 거듭 재앙을 만나 정신과 혼백이 나가 있는 것을 보시고 이 때문에 학업을 느슨히 할 것을 염려하여 임창계(林滄溪 임영)가 김농암(金農巖 김창협)을 면려한 고사를 인용하여 위로하고 풀어주셨는데, 계속하여 두 통의 편지를 보내주어 지나치게 몸을 훼손하지 말라는 말과 능하지 못한 것을 더 노력하여 옥과 같은 훌륭함을 이루라는 말로 가르침을 주시니 제가 비록 못났다 하더라도 어찌 감격하여 울면서 저를 사랑하는 은혜에 보답하려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생각하니, 저는 어렸을 때 《효경》의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드러나게 한다"44)는 말을 읽고 문득 기뻐하여 펄쩍 뛰면서 "이것이야말로 자식의 일이니 힘쓸만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본 것은 단지 이른바 입신양명이라는 것이 학문이 넉넉하여 조정에 올라가 뜻이 군주와 부합하고 은택이 천하에 미쳐서 좋은 음식과 넉넉한 생활을 누리고 높은 벼슬자리를 갖는 영광이 부모에게 미치면 충분하다는 것만 알았으니, 바라며 힘쓴 것이 오직 이것뿐이었습니다. 나이가 17살이 되었을 때 선친이 저를 가르쳐 말하기를, "학문에는 도학과 문학의 다름이 있으니 도학의 학문은 근본이고 문학의 학문은 말단이다. 선비가 학문을 할 때에는 마땅히 근본을 먼저 하고 말단을 뒤로 해야 한다. 내가 간재 전우 선생이 당대의 도학의 스승이라는 것을 들었으니 너는 가서 인사를 드려라." 하셨습니다. 이에 제가 선친의 명을 받들어 명함을 들고 봉래산의 월명암에서 간옹을 뵈었는데, 매우 다행스럽게도 선생이 가르칠만하다 하시고, 곽임종(郭林宗)이 모용(茅容)을 방문한 고사45)를 인용하시고 외람되게도 저의 집을 방문하여 입도의 방법을 알려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선친이 매우 기뻐하며 말하기를, "간옹이 태산북두와 같은 명망과 상서로운 봉황과 같은 의용으로 네가 조금 문자를 안다 해서 누추한 곳을 왕림해주셨으니 그 영광됨은 네가 과거에 급제한 것보다 낫다. 이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니, 네가 만약 몸을 깨끗이 하여 덕을 이루고 후세에 이름을 세워서 아름다운 호칭이 너를 낳아준 나에게 미친다면 다시 어떠하겠는가?" 하시고 마침내 폐백을 갖추어 영산으로 보내셨습니다. 제가 비로소 부귀영달 외에 입신양명하여 부모를 드러내는 진체(眞諦)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것으로 선친을 섬기고 선친은 이것으로 저를 격려하여 거의 하늘이 돌봐 주고 보호해 주어 우리의 바람을 이룰 것 같았습니다. 집안의 운수가 쇠락하고 박하여 26세에 갑자기 부친을 잃으니 재앙은 뜻밖이어서 억장이 무너지고 원망스러움과 슬픔 속에서 홀연히 삼년이 지났습니다. 그리하여 이전에 날렵하게 전진하려 한 기개는 일시에 사라지고 눈앞에 빚 문서는 벗어날 길이 없어서 스스로 마음속으로 "선친이 평소에 불초에게 바란 것은 몸을 이루는 한 가지인데 불초의 학업은 진전이 없고 선인의 타고난 수명은 기다려 주지 않았으니 지금 비록 하루에 백번 천번 사력을 다하여 이룬들 어찌 구천에 계신 선친을 일어나게 하여 친히 보시게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이 일은 한때 억지로 힘쓴다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랴! 오직 제사를 받듦과 후손을 부탁한 것은 참으로 조종이 서로 전한 큰 계획이니 마땅히 보수하고 유지할 도를 생각해야 할 것이고 또한 노인 봉양을 잘 마치지 못한 한스러움은 선친이 지하에서도 잊지 못해 걱정하시는 일로 불초에게 맡기셨으나 맛있는 음식은 떨어지고 가볍고 따뜻한 옷은 항상 부족하니, 이것은 선친의 뜻을 잘 잇지 못하는 것이다." 하고는, 이에 책 읽는 공부를 줄여 농사에 힘을 써서 노심초사하여 손과 발이 부르텄으니, 제 생각에, 이것은 노인을 봉양하고 집안을 보전하는 도에 있어 그만둘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와 같이 했지만 수십 년 동안 기근의 재앙이 거듭 이르고 질병의 재앙도 끊이지 않아 대대로 이어온 가업이 쓰러지고 망가져서 물이 더욱 깊어져 구할 수 없는 것과 같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크게 깨달아서 말하기를, "《맹자(孟子)》에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으니, 이것을 구하는 것은 얻는 데에 유익함이 있으니, 내게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구하는 데에 도가 있고 얻는 데에 명이 있으니, 이것을 구하는 것은 얻는 데에 무익하니, 밖에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마침내 빈부는 하늘에 정해져 있어 바꿀 수 없는 것이고 도의는 내 몸에서 구하여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하늘에 달려있는 것을 구하는 데에 급히 하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구하는 데에 천천히 하였으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젊은 시절의 실수를 후회하고 늙어서나마 공효를 거둘 것을 맹세하여 마음에 새기고 뜻을 떨쳐 공부를 통렬히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정력이 다시 옛날만 못함을 느꼈고 명리(名理)를 파고들어 연구할 때는 암흑처럼 깜깜하여 통달하기 어려웠으니, 이것이 진실로 가련한 일입니다. 일에 임하여 의리의 득실이 있는 데에 이르면 이미 실수하여 고통 받는 것46)에 깊이 징계가 되고 나서야 조금은 취사하는데 힘이 덜 들었습니다. 십 수 년의 수명을 빌려주어 아무 일 없이 이 일에 전심하도록 해준다면 거의 사도(斯道)에 거칠게나마 터득함이 있을지 알 수는 없습니다. 죄악이 쌓여서 하늘이 용서하지 않아 거듭 큰 재앙을 내리니 오관은 그 기능을 못하고 온몸은 일을 할 수 없어서 고통과 독함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게다가 안으로 가난하고 밖으로 금지 당함이 일시에 몰려들어 장황스럽고 구차스러워서 예모를 갖추지 못하니 거듭 끝없이 한스럽습니다. 살아계실 때 섬기는 일이 막막하고 것은 산 사람의 근심이고 배고픔과 추위로 나뒹구는 것은 진실로 존자께서 염려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죽어서 시신이 구학에 나뒹굴게 될 것을 잊지 말라'는 교훈47)에 뜻을 두어 백 번 꺾여도 뜻을 바꾸지 않기를 맹세하고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고자 하니, 이런 것들이 흉중을 어지럽히는 것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슬픈 것은 상위(喪威)를 겪은 이래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근골이 마비되어 사색의 구멍이 전부 닫히고 떨쳐 일어날 힘이 완전히 끊어졌으니, 비유하자면 서리를 맞은 약한 풀이 쓸쓸히 생기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 이 몸은 젊었을 때는 노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고 중년에는 세상사에 뜻을 빼앗겨 허다한 세월을 먹어버렸습니다. 5, 6년만 지날 것 같으면 옛사람이 덕을 이룬 나이에 꽉 차게 되건만 돌이켜보면 흉중이 텅텅 비어 하나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 쓰러지고 무너지게 된 것이 이와 같으니 절대 스스로를 강하게 하여 끝을 잘 마칠 희망은 없습니다. 줄곧 휩쓸려 가는 세속 속에서 보잘 것 없이 지내다가 아무 이름도 없이 죽어 부친과 스승의 기대를 저버리고 천고의 죄인이 될까 두렵습니다. 昔蒙枉吊, 見澤述之荐罹喪禍隕神遞魄, 慮因此而廢弛學業, 引林滄溪勉金農巖故事, 慰釋之.繼投兩函, 以勿過毀損, 增益玉成見敎, 鄙雖無似, 豈不感泣圖副愛我之恩乎? 仍念澤述幼時, 讀《孝經》"立身揚名以顯父母"之語, 輒欣躍曰: "此眞人子事, 可勉之矣." 然當日所見, 但知所謂立揚者, 學優而登于王庭, 志孚君上, 澤被天下, 鼎茵之享, 爵秩之榮, 及於親則足矣.希慕勉力者, 惟此而已.年十七, 先人訓不肖曰: "夫學有道學文學之異, 道學之學本也, 文學之學末也.士之於學, 宜先本而後末.吾聞艮齋田先生, 當今道學之師也, 汝往拜之." 不肖銜先人之命納刺, 謁艮翁於蓬山僧寺, 何幸先生以爲可敎.至引郭林宗訪茅容故事, 枉屈獘廬, 告以入道之方, 先人喜甚曰: "艮翁山斗之望, 瑞鳳之儀, 因汝稍觧文字, 光臨陋地, 其爲榮耀, 勝汝捷得巍科比, 猶可喜.汝若淑身成德, 名立後世, 稱美及於所生, 倘復如何哉?" 遂具贄送于寧山.不肖始知榮貴外, 自有立揚顯親之眞諦也.不肖以是事先人, 先人以是勖不肖, 庶冀天眷, 獲遂吾願矣.門祚衰薄, 弱冠有六, 奄棄先人, 禍出不意, 崩心塞臆, 寃酷痛悼, 倏經三霜.前日銳進之氣, 一時銷鑠, 目下之債帳, 無計可脫, 乃自語於心曰: "先人平日, 所望於不肖者, 成身一事是也, 而不肖之學業未進, 先人之天年不待, 今雖一日百千盡死力而成之, 安得起先人於九原而親見之? 況此事固非一時強力之所至者乎? 惟是祭祀之奉, 後昆之託, 實祖宗來相傳大計, 宜思所以保守維持之道, 且養老未終之恨, 是先人之耿結泉下, 而委諸不肖者, 而甘旨告罄, 輕煖恒闕, 此非所以善繼志也." 於是分功於簡冊, 用力於稼穡, 焦思勞心, 胼手胝足, 意謂"此在奉老保家之道, 不獲已也." 如是者數年, 饑饉之災荐至, 疢疾之厄不絶, 世顚之顛頓, 如水益深而不可拯也.因憬然大悟曰: " 《孟子》有云: '求則得之, 舍則失之.是求, 有益於得也, 求在我者也.求之有道, 得之有命, 是求, 無益於得也, 求在外者也.' 乃知貧富一定於天而不易者, 道義求之於身而可得者, 急於求其在天者, 緩於求其在已者也, 豈不誤哉?" 乃悔東隅之失, 誓桑榆之收, 欲刻意奮志, 痛加工夫, 則已覺精力非復舊日, 鑽研名理之際, 窣窣乎其難通, 時固可憫.至於臨事而有義理之得失, 則深懲旣折之肱, 而稍易力於取舍之間也.假之以十數年, 無事得以專心此事, 則庶有粗聞於斯道, 未可知也.罪惡攸積, 天不見容, 荐降大禍, 五官離其職, 百軆無所措, 痛苦荼毒, 已不忍言, 加以內窶外禁, 一時湊洽, 蒼黃苟簡, 不成禮貌, 重爲罔涯之恨也.若乃生事之廓落, 是生者之憂, 飢寒顚連, 誠有如尊慮者.然竊有志於不忘溝壑之訓, 誓百折而不回, 欲九死而靡悔, 此不足爲胸中氷炭.但所可悲者, 自經喪威以來, 精魄迷奪, 筋骨痿薾, 思索之實全閉, 振發之力頓絶, 譬如受霜之弱草, 索然無生意.自念此身少而嬉戯浪度, 中爲世故所奪, 喫得許多歲月.若過五六年, 恰滿古人成德之期, 反顧胸中空空無一得.今被靡頹墮, 又如此, 絶無自強克終之望, 深恐一向碌碌于流俗中, 而沒身無名, 辜負父師之望, 而成千古之罪也.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한다 《효경(孝經)》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나오는 말로, 효의 완성을 말한다. 곽림종(郭林宗)이……고사 임종은 곽태(郭泰)의 자이다. 곽태가 모용의 집에 유숙한 다음 날 아침에 모용이 닭을 잡자 곽태는 자기를 대접하기 위한 것인 줄 알았다. 이윽고 모용이 그것을 모친에게 올린 뒤에 자신은 객과 함께 허술하게 식사를 하자, 곽태가 일어나서 절하며 "경은 훌륭하다.[卿賢乎哉]"라고 칭찬하고는 그에게 학문을 권하여 마침내 덕을 이루게 했다. 《후한서(後漢書)》, 권68 〈곽태열전(郭泰列傳)〉 《후한기(後漢紀)》 권23 〈효령황제기(孝靈皇帝紀)〉에는 "'경이 이와 같으니 바로 나의 벗이다.[卿如此 乃我友也]'라고 하고는 일어나서 마주 대하고 읍(揖)한 뒤에 학문을 권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실수하여 고통 받는 것 원문의 '절지굉(折之肱)'은 팔이 부러진다는 뜻으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13년에 "팔뚝을 세 차례쯤 부러뜨린 다음에야 그 방면의 명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三折肱 知爲良醫]"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는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극복하는 힘이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죽어서……교훈 뜻을 세운 선비가 가난 때문에 지조를 굽히지 않음을 뜻하는 말로,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지사는 죽어서 시신이 도랑이나 골짜기에 있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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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유고의 발문 【무인년(1938)】 學山遺稿跋 【戊寅】 아아! 이 학산(學山)의 원고는 소재준(蘇在準) 군이 남기고 간 문장이다. 군은 총명하고 기억 잘하는 재주와 꿋꿋하고 우뚝한 지기가 있었다. 열여덟의 나이에 300리 길을 걸어 서해(西海)의 상정(上定)에 이르러서 구산(臼山)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에 크게 힘썼는데, 대개 하루에 천리길을 달리는 듯하였으니 그 진취를 헤아릴 수 없었다. 내가 그 이름을 듣고 만나보기를 원하였는데, 얼마 후 군이 옛 도리의 편지를 부쳐와 을축년(1925)의 화184)를 당한 나를 위로하며, 화와 복을 돌아보지 말고 더욱 스승의 의리를 밝히고 만년의 절의를 성취하라고 격려해주었다. 이는 군자가 덕으로써 사람을 아끼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베푸는 것이었다. 이제 장차 학당에서 함께 공부하며 경책(警責)과 보도(輔導)를 다하려고 하였는데, 하늘이 갑자기 군을 빼앗아갔다. 슬프다!어느날 그의 부친 성장(聖章) 씨가 백발에 더위를 무릅쓰고 멀리 와서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말하기를 "제가 슬퍼하는 바는 제 아들이 못 다한 뜻을 품고 일찍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 시문이 몇 편 있으니, 비록 매우 졸렬한 글일지라도 인쇄 보관해서 세상에 살았던 흔적을 남겨주고 싶은데, 선생께서 한 말씀 해 주실 수 없으신지요?" 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제가 어찌 차마 거절하겠습니까?" 하고는 받아서 읽어보았다. 그가 찬술한 바는 심성(心性)ㆍ이기(理氣)의 논설, 학문(學問)ㆍ지행(知行)의 설명, 도(道)와 술(術)의 정사(正邪) 논변, 그리고 역사적 성공과 실패의 발자취 등 이었는데, 능히 그 같고 다른 점을 엄밀히 살펴서 그 허여와 박탈을 정하였다. 그래서 많은 글이 신구(新舊)의 중화와 변방, 그리고 유가(儒家)의 시비에 관해 특히 뜻을 두어서 사색의 근거를 내보이려 한 것이었으며, 어쩌다 남의 말을 듣고 얻은 것이 아니었다. 시(詩) 작품 또한 빼어나고 시원하게 자신의 감정을 곧장 쏟아냈으며, 이따금 현실 세태를 아파하며 지은 강개한 이야기들을 하였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약관의 나이를 전후하여 지은 글이지만 노숙한 작가도 못 따라잡을 바를 지녔으니, 이것은 그의 재능과 지기를 증험하는데 보탬이 되는 실물이다. 수명을 다 채우도록 허용되었다면 장차 대성하여 세상의 나아갈 길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하늘이 사문(斯文)에 끝내 뜻을 두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평범(平凡)ㆍ용렬(庸劣)한 이들은 수명을 누리는 자가 많고, 유독 현철(賢哲)ㆍ영준(英俊)한 사람들은 복이 없겠는가?아아! 수명을 사람의 꾀로 간여할 수 없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니, 어찌 유독 군에게만 이러한 것이랴? 그런데 성인도 세상을 떠나면서는 이름이 전해져 일컬어지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군의 이름은 이 원고로 인하여 후세에 전해지기에 족하다. 그러면 세상에 와 머문 것은 이십 년 하고 육년에 그쳤지만, 그 죽지 않는 이름은 유구히 전할 것이다. 그 수명이 이제 얼마나 오래겠는가! 나는 이것으로 그 부친을 위로하며, 또 한편으로 세상의 사내들, 저 세워 이룩한 바 없이 한갓 장수할 것만을 바라는 자들을 경계하고자 한다. 嗚呼! 此學山稿者, 蘇君在準之遺文也。 君有聰明强博之才, 剛毅特立之志。 年十八徒步走十舍, 至西海之上定, 師于臼山先生之門, 大肆力於爲學, 蓋一日千里, 其進不可量也。 余聞其名, 而願見其面, 旣而君寄古道之書, 慰余乙丑之禍, 勉以不顧禍福, 益明師義, 成就晩節。 此君子以德之愛, 而以己所欲施諸人者。 行將同堂麗澤, 胥盡責輔, 而天遽奪君。 悲夫! 日其大人聖章氏白首遠程冒熱而來, 泣謂余曰: 吾悲吾兒齎志夭逝, 其詩文幾篇在者, 雖甚鹵莽, 欲印而藏之, 庶作生世之痕, 子可以助一言否? 余曰: 唯吾何忍辭諸? 乃受而而閱之, 其所述心性理氣之論、學問知行之說、道術正邪之辨、古今得失之跡, 能覈其同異, 定其與奪, 而多所發明於新舊夷夏, 儒門是非之間尤致意焉, 要出思索考據之餘, 而非一時口耳之得。 詩又俊逸滂沛, 直寫己情, 而往往有傷時慷慨之辭。 是皆弱冠前後之作, 而亦有老宿所不能及者, 之才之志, 於是乎益以驗其實矣。 使假之年而充之, 則將大有禆於世程, 而顧乃不然, 豈天於斯文終無意也耶? 不然, 何凡庸之多壽考, 而獨賢儁之無福也? 嗚呼! 命之不與人謀也久矣, 亦奚獨君哉? 雖然聖人疾沒世而名不稱焉, 君之名因斯稿而足以傳世, 則住乎世者, 止二十有六年, 肄不死者將悠久矣。 其爲壽也, 又何如? 余以是旣慰其大人, 且以警世之夫, 夫無所樹立而徒尙年壽者云爾。 을축년(1925)의 화 오진영 등이 스승 전우의 유지(遺志)를 저버리고 일제의 허가를 얻어 문집을 발간한 일을 성토하다가, 소재준이 도리어 영업방해죄의 명목으로 진천경찰서와 전주검사국에 고발당해 수차례의 호출과 고문을 당했던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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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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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벽봉 부군께서 손수 베끼신 《고문진보》 전집 뒤에 삼가 쓰다 敬題先考碧峯府君手鈔古文前集後 이 《고문진보전집(古文眞寶前集)》한 책은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벽봉(碧峯) 부군께서 베끼신 것이다. 처음부터 〈애강남(哀江南)〉190)까지는 14세에, 〈유소사(有所思)〉191)부터 〈취가행(醉歌行)〉192)까지는 15세에, 〈초서가행(草書歌行)〉193)부터 끝까지는 17세에 하셨는데, 그 속에 당시 스승이었던 이공이 쓴 것이 한두 판 끼어 있다. 전에는 각각 나누어 3책으로 하였는데, 지금 하나로 합하였다. 아아! 부군은 문장 성취가 이르셔서, 14세에 창평의 감시(監試, 생원진사 과거)에 나아가 스스로 글을 지어 서사(書寫)하셨고, 또 다른 사람의 시권(試卷) 한 통을 대필하기도 하셨으니 범상한 글씨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만년에 매번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본래 글씨 재주가 없는데 또 그동안 제쳐둔 지가 오래되어 억지로 하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서사해야 할 책이 있으면 반드시 나더러 쓰게 하셨고, 정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친히 쓰지 않으셨다. 그래서 집안에 남아있는 필적이 아주 드물고, 친히 서사하여 온전히 한 부를 이룬 책은 오직 이것만 남아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베끼신 것이라서 더욱 귀중하다. 그래서 나는 개조하고 장황(粧黃)194)하여 보물로 간수한다. 또 후세 자손들이 알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책으로 알까 두려워서 이처럼 삼가 적는다. 경진년(1940, 대한민국22) 유두일에 불초한 아들 김택술 삼가 쓰다. 此古文前集一冊, 我先子碧峯府君所鈔。 自初頭至哀江南載十四歲, 有所思至醉歌行十五歲, 草書歌行至終末十七歲, 而間雜當時塾師李公筆一二板。 舊分各爲三冊, 今合爲一。 嗚呼! 府君詞翰夙就, 年十四赴昌平監試, 自作自筆, 又代筆他人試卷一度, 其優於凡筆可知也。 然而晩年每自言: 吾本無筆才, 且間久廢置, 難可强作。 有所當書, 必使代寫, 非萬不獲已, 不親書。 故家中罕有筆蹟, 其親書而成全部者, 惟此冊見存。 而少日所鈔尤可貴, 故不肖乃改造粧黃而寶藏之。 又恐後世子孫不知而視同尋常冊子, 故謹識之如此。 歲在庚辰流頭日, 不肖子澤述謹書。 애강남(哀江南)까지는 고문진보 전집에 〈애강남〉은 없다. 〈애강남〉은 유신의 작품인데, 고문진보 전집에는 두보의 〈애강두〉가 실려 있다. 김택술이 〈애강두를 〈애강남〉으로 잘못 쓴 듯하다. 유소사(有所思)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에는 송지문(宋之問)과 노동(盧仝)의 〈유소사〉가 각각 실려 있다. 둘 중 어느 부분부터인지 분명하지 않다. 취가행(醉歌行) 두보의 시가 작품이다. 초서가행(草書歌行) 이백의 시가 작품이다. 장황(粧黃) 서책이나 서화첩(書畫帖) 등을 기름종이나 비단 등으로 표지를 대고 꾸며 만드는 것으로 표구(表具)와 거의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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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에게 보냄 寄炯泰 네가 요사이 당한 일은 필시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오로지 횡역(橫逆)으로 지목하기에는 마땅하지 않다. 횡역의 재앙이 오면 맹자도 오히려 망령된 사람[妄人]으로 치부하고138) 따지지 않았는데 하물며 자기에게 화근이 있어서 그리된 것에는 어떠하겠느냐. 이번 기회로 인하여 분노를 징계하고 성질을 참으며 뜻을 분발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덕을 높여서 저들로 하여금 경외하여 복종하게 하는 것이 참으로 좋을 것이다. 이것이 이른 바 "어려움을 겪으면 지혜가 밝아지고 근심으로 인해 몸이 편안해 지는 것"이니 하늘이 큰 임무를 내리는 것 또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이에 계책이 여기에 미치지 못해 사소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반드시 갚아주려는 서원(誓願)을 내면, 이[蝨]를 원망하여 이를 갈며 분노하고 모기를 보고서 검을 뽑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만약 이런 일단(一團)의 참되고 간절한 서원(誓願)이 있다면, 어찌하여 공분(公憤)할 데로 옮겨서 금수 같은 오랑캐를 쓸어내고 우리 강토를 회복할 방도를 생각지 않는 것이냐. 모든 것은 단지 이 사이에서 상량하여 모두 내려놓아라.너는 타고난 성품이 실로 자애롭고 착하고 유순한 사람이다. 다만 간간이 사납게 성질을 부려 아내와 아우에게 성을 내곤 하니, 속담에 이른 바 "순한 사람이 성질을 내면 무섭다."는 게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아내와 아우에게 화를 낸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냈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려 하겠느냐? 무릇 남에게 화를 잘 내면, 부귀한 사람도 반드시 실패할 것인데 하물며 너 같이 지위나 권세도 없고 지혜와 힘도 없이 가장 아래 있는 사람은 어떻겠느냐. 아름답도다! 옛사람이 시에 이르기를,용이 변화에 능하지만 금시조(金翅鳥)139)를 근심하고 龍能變化愁金翅호랑이도 맹수의 영웅이나 화사(火獅)를 겁낸다네 虎亦猛雄㤼火獅꾀와 힘은 세상에서 다 꺾일 데가 있는 법 智力世間皆有屈낮추고 공손하면 결국 만인의 스승이 되리라140) 卑恭終作萬人師라고 하였으니, 이 시를 매일 세 번씩 외워야 한다. 이에 〈징분잠(懲忿箴)〉 한 편을 지었으니 적어서 보여주마.《주역》에서는 "분노를 경계하라."141)하고 易著懲忿공자는 "어려움을 생각하라."142)고 하였다 孔曰思難몸을 잊는 것이 미혹이니 忘身是惑마음에 치우치는 바가 있으면 有所心偏이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處此有術오묘하도다, 정자의 말이여 妙哉程言"화가 나면 화를 잊고 當怒忘怒오직 이치로 살펴야 한다."고 하였다 惟理之觀자신이 진실로 스스로를 다했다면 我苟自盡저들은 망령된 사람이 될 것이다 彼爲妄人스스로 돌아보아 정직하지 못하면 自反不縮어찌 갈관박(褐寬博)이라도 두렵게 하겠느냐143) 盍惴褐寬대용(大勇)이 무엇이더냐 大勇維何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있는 것이지 有氣浩然어떻게 기르는 것이더냐 何以養成부지런히 의(義)를 축적하여 集義之勤본체에 채워서 充得本體천하에 가득 차야 한다144) 塞乎乾坤저 잘못을 범하는 무리를 視彼群犯이[蝨]나 모기처럼 여겨라 有若蝨蚊너는 이 말을 공경하여 爾其欽此종신토록 부적으로 삼도록 하여라 作符終身 汝之近日所遭, 未必自反無愧, 則不宜專以橫逆目之.橫逆之來, 孟子尙以妄人置之不較, 而況由己有苗脈而致之乎? 正好因此機會, 懲忿忍性, 奮志賈勇, 用崇其德, 而使彼畏服.是則所謂"涉難智明, 因患身安.", 而天降大任, 亦非別人也.乃計不出此, 不勝區區之忿, 至發必報之誓, 是何異於怨蝨而切齒見蚊而拔劒也? 苟有此一團眞切誓願, 胡不移之於公憤, 思所以掃除夷獸, 而復我疆土乎? 總只是間商量, 一切放下也.汝之資性, 實慈善柔順人也.但間有暴發性, 施於妻與弟, 可見諺所謂 "柔人暴性可畏者.", 此耶! 以施於妻弟者, 施他人, 人肯受之乎? 夫尙氣加人, 雖富貴者必敗, 況如汝之無位勢, 無智力, 最出人下者乎! 旨哉! 古人詩曰:"龍能變化愁金翅, 虎亦猛雄㤼火獅.智力世間皆有屈, 卑恭終作萬人師.", 此當日三復也.玆作懲忿箴一篇寫示.《易》著"懲忿.", 孔曰"思難." 忘身是惑, 有所心偏, 處此有術, 妙哉, 程言! "當怒忘怒, 惟理之觀." 我苟自盡, 彼爲妄人.自反不縮, 盍惴褐寬.大勇維何? 有氣浩然.何以養成? 集義之勤, 充得本體, 塞乎乾坤.視彼群犯, 有若蝨蚊.爾其欽此, 作符終身. 망령된……치부하고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어떤 사람이 횡역으로 대할 때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여 '내가 어질지 못하였거나 예가 없었나보다. 일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는가.' 한다. 스스로 반성하여 어질며 또 예가 있었는데도 그 횡역함이 전과 같으면 군자는 다시 반성하여 '내가 충실치 못하였나보다.' 한다. 또다시 반성하여 충실하였는데도 그 횡역함이 전과 같으면 군자는 '저 사람은 망녕된 사람일 뿐이다.' 한다. 그런 사람은 금수와 무엇이 다르랴. 금수와 무엇을 힐난하겠는가?[有人於此, 其待我以橫逆, 則君子必自反也, 我必不仁也, 必無禮也. 此物奚宜至哉? 其自反而仁矣, 自反而有禮矣, 其橫逆由(猶)是也, 君子必自反也, 我必不忠. 自反而忠矣, 其橫逆由是也, 君子曰 : 此亦妄人也已矣. 如此則與禽獸奚擇哉? 於禽獸, 又何難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금시조(金翅鳥) 일명 '가루라(迦樓羅)'라고 하는 인도 전설상의 새인데 조류(鳥類)의 괴수로서 용을 잡아먹고는 다시 되새김질을 한다고 한다. 용이……되리라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권16 〈見寺樓樑上畵 金翅鳥劈海噉龍〉. "龍能變化愁金翅.虎亦雄獰怯火獅.天下易窮惟智力.卑謙終作萬人師."이다. 3, 4구의 몇몇 글자가 차이를 보인다. 주역에서는……하라 《주역(周易)》 손괘(損卦) 상(象)에 "산 아래 못이 있음이 손(損)이니, 군자는 이것을 보고 분노를 징계하고 욕망을 막는다."라고 하였고, 주자(朱子)는 이것을 풀이하기를, "산의 형상을 보고 분노를 징계하고 못의 형상을 보고 욕망을 막는다." 하고, 또 "분노를 징계하기를 산을 누르듯이 하고 욕망을 막기를 골짜기를 메우듯이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어려움을 생각하라 《논어》 〈계씨(季氏)〉에 나오는 구사(九思) 가운데에, "분할 때에는 나중에 곤란하게 될 것을 생각하라.[忿思難]"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하겠느냐 증자(曾子)가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큰 용맹을 부자께 들었는데, 스스로 반성해 보아 정직하지 못했으면 아무리 천인이라도 내가 그를 두렵게 하지 않거니와 스스로 반성해 보아 정직했으면 아무리 천만인이 앞에 있더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부지런히……한다 맹자가 공손추(公孫丑)에게 호연지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말하기를 "호연지기는 의를 축적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의가 갑자기 엄습해서 취해지는 것은 아니다.[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하였고, 또 맹자가 공손추와 부동심(不動心)을 논하는 대목에서 말하기를 "의지는 기운을 부리는 장수이고, 기운은 몸을 채우고 있는 것이니, 의지가 첫째요 기운이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그 의지를 확고히 세우고도 또 그 기를 거칠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夫志氣之帥也, 氣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故曰 : "持其志, 無暴其氣."]"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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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관에게 부침 아울러 사위 박진호에게 보임 계유년(1933) 寄炯觀 兼示朴甥珍浩 癸酉 면재(勉齋)146)는 회옹(晦翁 주자)의 도를 계승했으나 야(埜)와 재(在)147)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신재(愼齋)148)는 사계(沙溪)149)의 학문을 이었으나 서경수(徐景需)와 한덕급(韓德及)150)은 알려지지 않았다. 고금을 살펴보아도 아버지와 아들, 사위와 장인이 모두 훌륭한 덕으로 드러난 경우는 전혀 없다. 문장가에 있어 오직 동파(東坡)와 산곡(山谷)151)만이 노천(老泉)152)의 아름다움을 아울러 이루어 천고토록 부러움을 받았다. 그러나 큰 데 뜻을 둔 자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늘날 나와 너희는 부자간이거나 사위와 장인 사이가 되어 그 뜻을 묻는다면 모두 이 학문이다.나는 이를 행하는 데 힘을 쏟지 않아 늙도록 이룬 게 없구나. 옛날 현자인 회옹이나 사계 같은 덕업은 이미 바랄 수 없지만, 남은 날을 부지런히 하면 고니를 깎으려다 집오리를 깎는153) 정도는 될 것이다. 너희들은 나이가 아직 젊고 재주 또한 둔하지 않으며 독서도 적지 않으니 진실로 심혈을 다하여 노력한다면 어찌 문득 옛 현인을 스스로 기약할 수 없겠느냐.나는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너희들이 보기에 받아들일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형관아! 너는 가학을 계승할 바를 생각하여라. 진호(珍浩)야! 너는 스승의 가르침에 복종할 것을 생각하여라. 능히 그 끝을 삼가고 큰 성공을 더하여 아버지와 장인을 빛나게 하라. 이것이 바로 주자의 사위154)와 김문(金門)의 아들155)을 아울러 함께 갖추는 것이니 사람들이 혹 학문하는 집안의 노천과 파곡(坡谷)156)에 비긴다면 어찌 다행이 아니겠느냐.안연이 말하기를 "순 임금은 어떤 사람인가? 순 임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또한 순 임금같이 될 것이다."157)라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나와 너희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고, 재주와 힘은 한계가 있기에 기필(期必)할 수 없으니, 주자(周子)가 이르지 않았더냐! "선비는 현인이 되길 희망해야 한다.158) 그러면 만약 현인이 못되더라도 아름다운 이름은 잃지 않을 것이다."159) 고 하였으니 이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는 오늘날 나와 너희들이 평생토록 맹세를 세운 말이다. 이와 같이 안 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각기 힘쓸지어다. 勉齋繼晦翁之道, 而埜在不與.愼齋紹沙溪之學, 而徐韓無聞.歷考今古, 父子甥舅, 俱以賢著者, 絶無矣.在文章家, 惟東坡山谷, 幷濟老泉之美, 而千古艶之.然志乎大者, 則不屑焉.今吾與汝輩, 得爲父子甥舅, 而問其志, 則皆此學也.余則行之不力, 到老無成.古之賢者, 如晦沙德業, 雖已無望, 猶欲勉勉餘日爲刻鵠之鶩.汝輩年甚富, 而才不甚魯, 讀書不少, 苟能卓然用力, 何遽不可以古賢自期?吾雖無似, 自汝輩視之, 不可謂無所受.觀乎! 汝思所以紹家學.珍乎! 汝思所以服師敎.克謹其終, 增益成大, 用光父舅.是則朱子之甥, 金門之子, 幷聚俱備, 人或擬之於學問家老泉坡谷 豈非幸哉! 顏淵曰:"舜何人也? 有爲者亦若是." 是固吾與汝輩之願也.然年歲不待, 才力有限, 有不可必, 則周子不云乎! "士希賢", "不及, 亦不失令名." 此尙可以不勉乎! 此今日吾與汝輩, 生平立誓之言.所不若此者, 有如蒼天, 其各勖哉! 면재(勉齋) 송(宋)나라 황간(黃榦, 1152~1221)의 호이다. 자(字)는 직경(直卿)이며 주희(朱熹)의 문인이자 사위로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야(埜)와 재(在) 주희(朱熹)의 두 아들이다. 신재(愼齋)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이다. 자는 사강(士剛), 본관은 광산이다.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본관이 광산이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선조 때 서인(西人) 김계휘(金繼輝)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효종 때의 예학으로 주목받았던 김집(金集)의 아버지이다. 서경수(徐景需)와 한덕급(韓德及) 김장생(金長生)의 사위이다. 동파(東坡)와 산곡(山谷) 동파는 소식(蘇軾)을 말한다. 산곡(山谷)은 보통 황정견(黃庭堅)을 지칭하지만 문맥의 흐름상 소식의 동생 소철(蘇轍)로 추정된다. 둘은 소순(蘇洵)의 아들이다. 노천(老泉) 소순(蘇洵)의 호이다. 자는 명윤(明允), 소식(蘇軾)과 소철(蘇轍)의 아버지다. 고니를……깎는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조카 마돈(馬敦)에게 글을 보내어, "용술(龍述)은 신중하고 위엄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를 본받으면 행검(行檢) 있는 선비는 될 수 있으니, 이른바 '고니를 새기다가 못 이루더라도 집오리처럼 될 수는 있다.[刻鵠不成 尙類鶩]'는 것이다. 하지만 두보(杜保)는 호협(豪俠)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를 본받다가는 천하의 경박(輕薄)한 사람이 될 것이니, 이른바 '범을 그리다가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같이 되어 버린다.[畫虎不成 反類狗]'는 것이다."라고 경계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東觀漢記 馬援傳》 주자의 사위 면재(勉齋) 황간(黃榦)을 이른다. 김문(金門)의 아들 김장생의 아들 즉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이른다. 파곡(坡谷) 동파(東坡)와 산곡(山谷)을 이른다. 안연이……것이다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 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순 임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또한 순 임금같이 될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선비는……한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지학편(志學篇)에, "성인은 하늘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선비는 현인처럼 되기를 희망한다.[聖希天, 賢希聖, 士希賢.]"고 하였다. 그러면……것이다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가 말하기를 "이윤이 뜻을 두었던 바에 뜻을 두고 안연이 배웠던 바를 배워 이들을 능가하면 바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제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현인이 될 수 있을 것이요, 비록 따라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명성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志伊尹之所志, 學顔子之所學, 過則聖, 及則賢, 不及則亦不失於令名.]" 하였다. 《近思錄 卷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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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관에게 답함 을해년(1935) 答炯觀 乙亥 네가 집을 떠나고부터 오직 질병에 대한 근심 외에 언제나 가난을 상심하여 뜻을 바꾸고, 세상살이 때문에 학업을 그만둘까 염려하였다. 지금 너의 편지를 보면 "어린 나이의 재지(才志)를 다하여 중간에 변고가 있더라도, 결국 백 번 단련시킨 금과 거센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는 지주(砥柱)로서 스스로 훗날을 기약한다."고 하였다. 네가 진실로 이를 할 수 있다면 내 오늘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다. 편지를 반복하여 읽다보니 희비가 교차하여 눈물과 웃음이 함께 나오는구나. 이는 곧 너의 생사(生死)의 관건이다. 내가 평생토록 한 학문을 되돌아보니 스스로 얻은 게 없어 몹시 부끄럽구나. 만약 아들이나 조카 가운데 뒤를 이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끝내 적막하게 된다면 거듭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율곡(栗谷) 선생이 과거공부와 학문을 논하였는데 둘을 병행할 수 있다며 말하기를 "옛사람들은 몸소 밭을 갈고 품팔이를 하면서도 학문을 하였다. 하물며 과거공부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하였고, 끝에 가서는 정자(程子)가 말한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근심할 것이 아니라 뜻을 잃을까를 근심해야한다."160)는 말을 인용하여 끝맺음하였다. 지금 너의 현재 일이 복잡하고 바쁘다고는 해도 궁구해보면 밭 갈고 품 파는 것 보다 심하지는 않다. 내 그렇기 때문에 너의 오늘 일에 대해 또 이르기를 "공부에 방해된다고 근심할 것이 아니라, 오직 뜻을 잃을까 걱정하라."고 하겠다. 아, "뜻을 가진 자는 일이 마침내 이루어진다."161)는 말은 천고의 격언이니 너는 유념하여라. 自汝離家, 惟疾憂外, 恒以傷貧變志涉世廢業爲慮.今見汝書 "說盡幼齡才志, 中間變故, 終以百鍊金頹波柱, 自期於後." 汝苟能此, 吾雖今日死, 可以瞑目.執書反復, 悲喜交集, 淚笑幷發.此旣爲汝生死機關.復念我生平爲學, 自無所得, 已極可恥.若加以子姪中, 無一人繼其後, 而終致寂寞, 則重爲人笑.栗谷先生論科業學問, 可以幷行而曰:"古人有躬耕行傭, 而爲學問者.況科業乎!", 終引程子 "不患妨工, 惟患奪志"之說, 而結焉.今汝現務, 雖云紛忙, 究不甚於耕傭.吾故, 於汝今日事, 亦曰:"不患妨功, 惟患奪志." 嗚呼! "有志者事竟成.", 千古格言, 汝其念哉! 과거공부와……근심해야한다 《격몽요결(擊蒙要訣)》〈處世章〉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뜻을……이루어진다 후한(後漢)의 대장군 경엄(耿弇)이 축아(祝阿)를 공격하여 성공을 거두자, 광무제(光武帝)가 그에게 이르기를 "장군이 앞서 남양에서 이 대책을 세운 데 대하여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뜻이 맞지 않으리라고 여겼었는데,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을 끝내 이루는구려.[將軍前在南陽建此大策, 常以爲落落難合, 有志者事竟成也.]"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49 耿弇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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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숙 의재 낙청에게 보냄 을축년(1925) 與毅齋族叔洛清 ○乙丑 조카 인(麟)은 뜻이 이미 학문을 지향하고 재주 역시 우둔하지 않은데다 부지런히 책을 읽는 것에 있어서는 사원 전체의 많은 인원 중에서 최고입니다. 돌아보건대 지금 청년들이 금수와 같은 때에 이와 같은 인재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잘 가르치면 훌륭한 그릇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며칠 만에 자못 문리가 진전되어 처음 타오르기 시작한 불과 같고 막 솟아 흐르기 시작한 샘과 같음을 보았습니다. 부채질하여 잘 타오르게 하고 깊이 파서 이끌어 준다면 들판을 태우고 바다에 도달하는 것을 끝내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교육이 비록 의리가 엄하다 할지라도 문을 닫고 홀로 배운다면 끝내 벗을 떠나 홀로 지내는 근심3)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졸졸 흐르고 토닥토닥 타오른들 어떻게 성대해지고 장구해지는 것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소년의 학문은 야인이 농사짓는 것과 같으니 한번 때를 잃으면 다시 따라갈 수 없습니다. 지금 조카의 학문이 이른 단계는 농부가 씨를 뿌리고 김을 매는 단계입니다. 야인이 씨를 뿌리고 김을 매는데 있어 비용이 넉넉하지 않으면 동서로 달려가 빌려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해야 가을의 수확하는 시기에 그 이익이 열 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현명한 자손이 학문을 많이 한 이익은 백 배가 되는 데이겠습니까? 부디 한때의 얽매임 때문에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반드시 복과 이익을 장구하게 한다고 생각하여 빨리 행장을 꾸려 보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처럼 학문이 얕고 누추한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을 성취시켜주는 지혜가 있지 않으니, 번거롭게도 이렇게 누누이 말하는 것이 진실로 매우 염치가 없습니다만 족친 간에는 틈이 없기 때문에 혐의로 여기지 않습니다. 또 스스로 생각할 때 조카의 스승이 되는 것은 혹여 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일가는 국초(國初) 이래로부터 대대로 문학으로 행세하여 그 훌륭함이 나라에 알려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은 명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성한 몇 분이 세상을 떠난 후로 그 뒤를 잇는 젊은 사람이 없으니, 어찌 쓸쓸하고 적막하지 않겠습니까? 조카와 같은 자는 가망이 있는 자입니다. 그런 적임자를 잘 길러서 성취시키지 않는다면 한 집안에게만 복과 이익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온 친족에게도 빛과 윤택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니, 깊이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麟姪, 志旣向學, 才亦不鈍, 至於勤讀一節, 全社衆員之最.顧今靑年禽犢之日, 得如此材, 亦非易事.善敎之, 可成好箇器物.來此幾日, 頗見文理進就, 若火始然泉始達, 噓煽之浚導之, 燎原放海之, 終可期也.家庭之敎, 雖云義嚴, 杜門獨學, 終不免離索之憂, 則涓涓燄燄, 何以保其盛且長也? 夫少年之學, 若野人之於農, 一失其時, 更不可追.今此姪所至, 乃農家種耘之際也.野人之於種耘, 費用不給, 則東借西貸, 無所不至, 以有秋之日其利十倍也, 況賢子孫富學之利, 乃百倍者乎? 幸勿以一時拘掣爲難, 須以永長福益爲念, 速爲治裝起送, 如何? 顧茲淺陋, 旣未有成物之智, 則煩此縷縷, 誠甚沒廉, 但在族親無間也, 故不以爲嫌.且自念爲渠師, 則或可能焉爾.吾宗自國初來, 世世以文行, 彬彬聞邦國, 迄于今餘韻未已.然老成幾箇人去後, 無年少者繼之, 則豈不落莫? 若此姪, 則可望者, 其人焉, 不有以培養成就之, 非惟一家之非福益, 亦全族之沒色澤, 并有以深諒千萬. 벗을……근심 원문의 '이삭(離索)'은 '이군삭거(離群索居)'를 줄여서 한 말로, 자하(子夏)가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지낸 지가 오래이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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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재에게 보냄 병인년(1926) 與崔欽齋 丙寅 전에 들으니, 오진영이 스승의 손자를 고소하여 구류시키고 다시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 수락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가 어지럽힌 문집을 행하려 할 때에 그 기염은 두려울 만했으니 오진영이 오늘날 또 이렇게 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로부터 선사의 심사(心事)가 더욱 어두워지고 화도수정본이 더욱 어지럽혀질 것이 통탄스러워 편치가 않습니다. 오직 이 일은 그가 문집 간행을 앞두고 그 도당들의 무함하는 문자를 내어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키려는 것이고, 또한 문집 간행을 앞두고 그가 고친 원고를 내어 시비를 전도시키려는 것입니다.【오진영은 매번 내 원고가 한번 나오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 오진영이 지금이 알맞은 때라고 하면서 이런 이유로 인가도 받고 고소도 하여 그 예봉이 매우 날카로운데 누가 감히 감당하겠습니까? 우리의 입장에서는 비록 손수 편정하신 화도본이 진본임은 해와 달처럼 분명하고 변론하여 꾸짖는 엄한 말이 서릿발처럼 매서우나 때가 바뀌고 국면이 전환되기 전에는 결코 간행할 방법이 없으니, 생각이 이에 미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기운이 떨어집니다. 그래도 한 마디 한다면 단지 신포서(申包胥)의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이길 것"48)이라는 말을 뇌일 뿐입니다. 비록 그러나 염려와 근심하는 도리는 마땅히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은 다하여 천명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니, 이제 우리의 급선무는 오직 서로 힘써 현동본을 베껴 써서 여러 곳에 보관하여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하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또한 그간에 변론하여 꾸짖은 문자들을 합하여 정리해서 백세를 기다리는 일은 바로 늦출 수 없는 일인데, 여러 사람들의 뜻은 태만하고 미력한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일은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도 오히려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대단히 통탄스럽고 한탄스럽습니다. 向聞, 震訴師孫拘畱, 受諾復徵償金, 得遂所欲.亂本將行, 其氣燄可畏, 震在今日, 宜其如此, 無足怪者.但從茲以往, 先師之心事愈昧, 手本愈亂者, 爲可痛不寧.惟是彼又將刊, 出其徒黨褠誣文字, 以眩人耳目矣.又將刊, 出渠稿以顚是非矣.【震每言吾稿一出, 都無事】 蓋彼時乎時乎, 以認以訴, 其鋒甚銳, 誰敢當也? 在此則雖手本眞本, 日星如也, 辨斥嚴辭, 霜雪如也.時移局換之前, 決無刊行之道, 念到于此, 不覺神鬱氣塞也.無已, 則但誦申包胥"天定勝人"之語乎.雖然, 慮患之道, 當盡吾力之所可及, 以待天命之處分.今日吾輩急務, 惟在競相傳寫玄本, 各藏諸處, 以備不虞.且合修前後辨斥文字, 以俟百世, 正不可緩, 而衆志漫漫, 瑣力不及, 只此不大難底事, 尚不能就, 極可痛歡. 하늘의……것 《사기(史記)》 권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역시 사람을 능히 이기는 법이다.[人衆者勝天 天定亦能勝人]"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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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재에게 보냄 병술년(1946) 與崔欽齋 丙戌 상천이 재앙을 내린 것을 후회하여 섬의 오랑캐를 쫓아 버려 조국을 회복하니 이에 우리들이 숨을 쉬고 몸을 운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시 그대 집에 가서 술을 따라 마시며 축하하고 싶었으나 질병이 근래에 심해지고 풍사(風邪)로 인한 현기증이 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올봄에 동생 두 명이 목숨을 잃고 딸 아이 하나가 죽어서 세 번의 겹친 초상을 당하여 병세가 더욱 참혹해졌습니다. 이에 중대한 일이 아니면 전혀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진실로 떨치고 일어나기 어려워 다만 혼자 슬퍼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이제 다행히 세상의 운수가 이와 같고 정치의 책임은 자연 담당한 제공이 있는데, 사문의 일에 이르러서는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아, 지난날 음성 오진영의 재앙은 말하자니 치가 떨립니다. 저들이 우러러 떠받들었던 왜정(倭政)49)이 지금 이미 산산이 부서졌으니, 그가 스승을 무함한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을 알 수 없으니, 스스로 헤아려서 하라."는 말은 변론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밝혀질 것이고, 이로부터 우리들은 다소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오직 화도수정본의 원고를 발간하여 배포할 기회는 지금이 바로 그 때인데 당신과 나는 모두 가난하고 현재 동지도 없으니 이를 장차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깊이 근심하고 길이 한탄하여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삼가 생각할 때 존자도 똑같을 것입니다. 옛 사람이 "뜻이 있는 자는 일을 끝내 이룬다."라고 말했으니, 이 일을 이룰 날이 끝내 없겠습니까? 한 말씀 가르쳐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은 선사의 생신입니다. 스승의 죽음을 간절히 통탄하다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토로함이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헤아려 주시시라 믿습니다.오진영이 이미 강경하게 선사가 지산(志山 김복한)과 절교했다고 말하면서 존자가 홍성 전재(全齋 임헌회)의 문인 정윤영(鄭胤永)을 찾아가 뵌 것을 가지고 한 쌍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홍성파의 한 기둥으로 지산을 추대하고 또 대대로 좋게 지낸다는 것을 말하면서 "성구(聖九 김노동으로 김복한의 아들)는 초상을 만나 달려와 조문하지 않았으니, 부당하게 사람을 끊는 것이 이처럼 근거가 없다."【오진영이 김성장(김병헌)에게 답한 편지에 보인다.】하더니, 후에 다시 임경선(林敬善 임호철)에게 편지를 보내 손녀딸을 성구의 큰 아들과 혼인 맺기를 청하며 오 충정공의 후손과 선청(仙淸) 후손이 통혼하여 길한 일이 많았다는 것을 두루 들어 증명하다가 성구의 동생인 김명동의 꾸지람을 받고 물러났습니다. 그가 전후로 한 짓을 따져보면 어린아이요 제멋대로 휘두르는 맹인의 지팡이요 대낮에 출몰하는 도깨비라 터럭만큼도 선비의 기상이 없다고 말할 만하니, 본디 그와 더불어 말할 것도 못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공교롭게도 이런 사람을 만나서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이 또한 우습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운기(運氣)와 관련이 있는지요? 上天悔禍, 屏逐島奴, 興復祖國, 於是乎吾輩可以吐氣容身.卽欲詣門酌酒相賀, 而疾病此甚, 風眩作崇, 忽於今春二弟并命, 一女化去, 三遭重制, 病加逆慘, 非事係重大, 萬不得已外, 誠難振作, 只自悲憐.第今幸世運如此, 政治之責, 自有當局諸公, 至於斯文之事, 其責在誰? 噫! 往日之陰禍, 言之齒酸, 彼所仰戴之誰家日月, 今旣破碎, 則其所誣師'命世不可知, 料量爲之'者, 可不辨而自明, 從此吾輩, 省得多少事矣.惟是華本手定稿刊布之機, 此正其時, 而尊與我皆赤貧, 現無同志者, 此將柰何? 深憂永歡, 夜不能寐.竊意尊亦一般也.古人云: "有志者, 事竟成." 此事之成, 竟無日乎? 願聞一言之敎也.今朝先師諱辰也.痛切山樑, 不覺吐衷至此.想垂諒也.震旣硬謂先師絶志山, 而斥尊以伏謁洪城全門鄭胤永一對矣.渠則乃以洪流一柱推志山, 又言世好, 而曰: "聖九, 遭喪不赴, 絶人不當, 若是無據."【見震答金聖章書】 後又致書林敬善, 請以孫女結昏於聖九長子, 歷擧吳忠貞公後與仙清後通婚而多吉者證之, 遭聖九弟明東之叱退, 究厥前後所爲, 可謂小兒盲杖晝出魍魎, 無一毫士子氣像, 本不足與言.而吾輩之巧值此人, 與之上下, 還可笑也.然是亦運氣攸關歟? 왜정(倭政) 원문의 '수가일월(誰家日月)'은 오진영이 김용승에게 답한 편지에서 한 말로, 일본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문집을 간행하는 것이 문제가 없음을 말하면서 "자기 주머니 속의 지폐나 경향을 오가는 차표나 주고받는 편지에 찍힌 인장이 누구 집에나 비추는 해와 달 같은 것이다." 하였는데, '누구 집에나 비추는 해와 달'이 일본 총독부의 승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더 넓은 의미의 왜정으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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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호철에게 답함 정해년(1947) 答林敬善浩喆 ○丁亥 삼가 우리가 서로 허여함에 있어 귀하게 여기는 것은 진실된 마음으로 권하고 경계하는 데 있지 편지를 주고받으며 예의나 갖추고 마는 것을 숭상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옛날에 성인이 학문의 도를 설명할 때에는 반드시 명(明)과 강(剛)을 말했으니, 이 두 글자는 공부하는 과정의 두 날개와 두 바퀴로 서로 필요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집사를 살펴보면 강은 넉넉히 할 수 있는데 명이 혹 부족하니, 밝게 분별하는 측면에 마음을 더 쓰셔서 혹 조금이라도 치우침이 없게 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의 시비와 의리의 당부는 모두 마땅히 분별해야 하는 것인 만큼 먼저 내가 접촉하는 곳에서부터 신중히 생각하고 정밀히 살펴 눈앞의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구해야 하니, 몇 년 전에 선조를 받드는 일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던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사가 무함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어찌 힘써 변론하기를 선조의 일과 같이 하지 않으십니까? 생각건대 그 속의 지극한 이치를 깊이 알지 못하여 그런 것인가 봅니다. 그러므로 명이 혹 부족하여 마음을 더 쓰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선사는 임종하기 전 며칠까지도 오히려 김씨의 뇌문에 대한 변론50)에 힘을 다했으니, 이것이 어찌 마땅히 법으로 삼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터이 돌봐주시고 인정해 주심에 감사하여 삼가 간절하고 자상하게 권면하는 의리를 붙여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이 더욱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라니, 존자께서 용서하고 양해하여 꾸짖지는 않으시겠지요? 竊惟吾人相與, 貴在實心勸戒, 不在尚往復備禮數而止焉.故敢呈一言.古之聖人說學問之道, 必曰"明剛", 其爲二字, 工程輪翼, 相須可知也.以澤述觀於執事, 剛則優能, 而明或不足, 幸於明辨上加意, 毋或少偏, 如何? 事之是非, 義之當否, 皆所當辨, 而先自我所接處, 愼思精覈, 以求目下當行之路, 若於年前尊先祖事, 不得以已者也.今於先師之受誣也, 則胡不力爲辨理, 若先祖事乎? 想以不深知裡許極致而然? 故曰: "明或不足, 而不可不加意也." 先師臨終前數日, 猶努力於金誄之辨, 此豈非所當法者耶? 感眷與之厚, 竊附切偲之義, 欲以少報.願遂觀善之益之, 尊意可恕諒, 不讁否. 김씨의 뇌문에 대한 변론 김씨는 김평묵을 말하고, 뇌문은 김평묵이 쓴 전재 임헌회의 제문을 말하는 듯하다. 김평묵은 화서학파로, 제문이 겉으로는 임헌회를 칭송하면서도 성리설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으므로 간재가 제문을 물리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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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경에게 보냄 경진년(1940) 與林子敬 庚辰 지난번에 존자의 뜻을 엿보니, "음성의 오진영이 비록 무함한 것이 있더라도 선사의 덕이 성대하여 사람들이 그 무함을 믿지 않아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니, 힘써 변론할 필요가 없다."라고 여기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요 임금과 고수(瞽瞍)가 북면하여 순 임금에게 조회했다."54)라는 말이나 "공자가 옹저와 척환을 주인으로 삼았다."55)라는 말은 제나라 동쪽 야인의 말입니다. 순 임금과 공자 같은 성인으로서 군부(君父)의 조회를 받고 소인의 집을 주인으로 삼았다고 말한 것이고, 이런 말을 한 사람도 무식한 야인에 불과하였으니, 누가 그들의 말을 믿겠습니까? 그러나 맹자는 오히려 거듭 말하여 한 번만 말하지 않아서 명백하게 변론하였습니다. 이제 선사의 성대한 덕은 순 임금과 공자에게 미치지 못하고 무함한 자는 무식한 야인이 아니라 명망 있는 문하의 제자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느슨한 의론과 단순한 말로써 소략하게 하여 변론한다면 스스로 그 사람을 믿고 무함을 믿지 않은들 스승의 덕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또 저 백리혜(百里奚)는 패자를 보좌하였는데, 어찌하여 맹자가 존경하여 우러러 봤겠습니까? 그렇지만 마침내 그를 위하여 애써 말해서 스스로를 팔아 진 목공에게 벼슬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변론하였고 또한 명백한 증거와 정확한 근거가 없자 곧 이치상 그럴 리가 없다는 것으로 곧장 결단하여 반복해서 말하고 깊이 배척했으니 어찌 지극히 정밀한 인의가 아닌데 맹자가 그것을 했겠습니까? 옛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원망을 변론하고 비방을 밝혀 주는 것이 제일의 덕과 의리이다." 하였으니, 이 말을 한 사람은 맹자의 마음을 체득한 모양입니다. 이제 일세의 유현으로 우리의 부모요 스승이 되신 분에 대해 만약 크게 마음과 힘을 써서 명확한 유서에 근거하여 억울함을 변론하고 비방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선사 보기를 오히려 맹자가 백리혜에 대한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장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向覸尊意, 似以爲"陰雖有誣, 先師德盛, 人不之信, 而不爲損, 則不必力辨者." 然此決不然.夫謂"堯與瞽瞍北面朝舜", "孔子主癰疽瘠環"者, 齊東野人也.以舜孔之聖, 受君父之朝, 主小人之家云者, 而爲其說者, 不過無識之野人, 則人誰信諸? 然孟子猶重言複言, 不一言而明辨之.今先師德之盛, 不及舜孔, 誣之者, 非無識之野人, 而有名之門弟, 乃以緩論單辭, 略略置辨, 而自信其人, 不信誣, 無損師德, 豈不難哉? 且夫百里奚, 伯者之佐, 豈孟子之所尊仰哉? 然而乃爲之苦口, 辨不自鬻以要穆公, 而亦無明證的據, 則直斷以理之所無, 而反覆深斥, 豈其非仁義之至精, 而孟子爲之哉? 昔人以"爲人辨寃白謗, 是第一德義", 爲此言者, 其體孟子之心乎? 今於一世儒賢, 爲吾親師之地, 如不大用心力, 據明的之遺書, 而辨寃白謗, 是吾之視先師, 尚不若孟子之於百里奚也.其將謂何? 요 임금과……조회했다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에 나오는 말로, 순 임금의 의리를 의심하여 훼손하는 말이다. 공자가……삼았다 《맹자(孟子》 〈만장 상(萬章上)〉에 나오는 말로, 옹저와 척환은 임금 가까이에서 비위를 맞추어 주는 소인인데, 공자가 이들을 통해 벼슬을 구하려고 주인을 삼았다는 말이다. 이 역시 공자의 의리를 훼손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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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승에게 답함 갑자년(1924) 答金允升 甲子 천하의 이치는 하나이듯 천하의 마음과 천하의 문장도 하나로 똑같습니다. 이 마음으로 이 문장을 보고 이 이치를 궁구하여 똑같이 극치로 돌아간다면 마침내 서로 합치하지 못할 이치가 어찌 있겠습니까? 오직 이와 같을 뿐이기 때문에 "청원하여 발간 배포하는 것은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힘을 헤아려 하라", "구애받지 말라"는 것과 형세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서찰 중에서 가장 긴요한 대목이며, 음성(陰城)의 죄를 감단한 것이 못을 끊고 쇠를 자르듯 하여 끝까지 남김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 답장에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는가."라고 답해주셨습니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는가."라는 것은 천 명이 그렇게 여기고 만 명이 그렇게 여기어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진영(吳震泳)을 두터이 엄호하는 형의 입장으로는 당연히 "반드시 그렇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라고 하거나, 설령 조금 평가를 바꾼다 해도 또한 마땅히 "아마 혹 그럴 것 같다."고 말해야 했는데, 그 명쾌하게 결단함이 한결같이 이런 수준에 이르러 이전 편지에 "선사를 무함한 죄를 억지로 자복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한 것과는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을 줄은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이에 천하의 이치와 문장이 동일하고 시비의 공평함이 사람들 마음속의 똑같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지 아니하여 이와 같지 않으면 절로 안 된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말이 사리에 맞는 것이 이미 이와 같았으니 여기서 그칠 수 있었는데, 마침내 다시 "그 마음에 다른 뜻이 없음을 보장한다.", "선사를 무함한 것으로 굴레를 씌울 수 없다."는 등의 설로 화사첨족(畫蛇添足)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여기서 또한 편사(偏私)를 극복하기 어려움과 앞서의 소견을 버리기 어려움이 이와 같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성을 엄호한다.'는 '호음(護陰)' 두 글자가 우리 형의 평생 고질병이 되어 곳곳에서 기회를 타고 일어남을 적이 한탄하는 바입니다.대저 말은 심성(心聲)이고, 글씨는 심획(心畫)입니다. 그러므로 고금 사람들의 성광(聖狂)과 선악(善惡)을 보고자 할 때는 오직 말과 글씨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만약 말과 글씨가 이와 같지만 마음은 이와 같지 않다고 한다면, "그 말을 들어보면 사람이 어떻게 숨기리오."35)라는 가르침이 그릇된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책에서 나타나고 조물주의 솜씨는 만물에 나타난다."는 설은 망령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가 있는 것은 음성(陰城)의 글이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음성의 마음은 이미 궁구하여 말할 수 없으니, 우선 비록 마음을 따져서 죄를 용서하자고 말하더라도 혹 무의식인 잘못이었다고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로 정재(靜齋 이석용(李錫庸))에게 말하기를 "선사가 일찍이 인의(認意)가 있었다." 하였고, 두 번째로 송병진(宋秉眞)에게 말하기를 "우리 선사가 일찍이 인의가 있었다."라고 하였고, 세 번째로 함재(涵齋 김낙두(金洛斗))에게 답하기를 "선사가 혼자 앉아계실 때 내게 명하여 힘을 헤아려 하라고 하였다."라고 하였고, 네 번째로 자승(子乘 이병은(李炳殷))에게 답하기를 "선사가 일찍이 깊이 구애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매우 간절히 바른 말로 꾸짖고 정성으로 회유하여 그로 하여금 빨리 잘못을 고쳐 속히 돌아오도록 네 번이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오만하게 높은 자세로 앉아서 혹은 듣지 못한 척하며 한 해가 다하도록 답을 하지 않았고, 혹은 경쟁하는 습관이 있다고 꾸짖었으며, 혹은 내시의 불알이니 중의 상투니 하는 말로 조소하였고, 혹은 광천(狂泉)36)을 여럿이 마셨다고 욕을 해대었습니다. 선사를 무함한 설을 거듭 반복하고 자신이 옳다는 것에 더욱 힘을 썼으니, 천하의 고의적인 일이 끝내 이보다 심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데도 음성을 죄주어야 한다고 한 것에 대해 억지로 죄를 자복하게 한 것이라고 한다면, 음성을 엄호하는 고질병이 될 뿐만 아니라 혹 선사를 잊어버리는 큰일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은행나무 아래에 홀로 앉아계실 때 명했다."고 한 것에 대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하고, "왜의 달력을 함부로 비웃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발언을 너무 명쾌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형의 식견과 언론이 한때의 잘못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을 갉아 먹힌 것이 그 유래가 매우 깊이니, 또한 괴이하게 여깁니다.근래에 조충현(趙忠顯)37)이 글을 지어 뭇사람들에게 호소하기를 "석농(石農)의 '선사가 혼자 앉아계실 때 명했다.'고 하는 것은 가리켜서 감히 없다고 할 수 없고, 정재(靜齋)의 '유서(遺書)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가리켜서 감히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바야흐로 여론의 분통과 공의(公議)의 성토를 받고 있습니다. 형의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과 조충현의 "감히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비록 의심과 결론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멋대로 지어낸 것으로 성토하는 중론에 반대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입니다. 만약 불행히도 형의 편지가 먼저 나왔고 조충현의 글이 뒤에 나왔다면, 혼자 앉아있었을 때에 명했다는 것은 진실이고 유서는 거짓이라는 흉악한 설을 우리 형의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계도하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사람들은 장차 믿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이 이에 이르매 이미 두렵습니다. "발언이 너무 명쾌하다."고 한 것은, 말은 이치에 어긋나지 않지만 말투 속에 억양이 너무 지나친 것을 말함이 아니겠습니까? 오랑캐의 정삭(正朔)을 사용한 김수홍(金壽弘)38)에 대해 꾸짖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친족의 정을 끊게 한 것은 우암(尤菴)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김수홍이 우암을 기롱하여 "남이 오랑캐의 정삭을 쓰는 것에 대해 조심하여 함부로 경멸하지 말라."고 했는데, 김수홍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는 자가 "발언이 너무 명쾌하다."고 한다면, 과연 말이 되겠습니까? 말이 이에 이르매 또한 놀라게 됩니다.대체로 보내준 편지의 전말을 모두 들어서 반복해 살펴보면,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는가."라는 한 구절 이외에는 모두 영남을 돕고 음성을 엄호한 것으로서 점점 자신도 모르게 의리를 상실하고 무함을 사실화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육체와 정신을 갉아 먹힌 장본이 있을 것입니다. 편지에 "당인(黨人)을 논함에 있어서는 먼저 그 우두머리가 어떠하고 쟁단의 일어나게 된 이유가 어떠한가를 말해야 한다."는 것과 "음성은 치우쳐서 주장한 바가 없었고, 순재(舜在 성기운(成璣運))는 일의 기미를 두루 움켜쥐었고, 경존(敬存 최병심(崔秉心))은 암암리에 그의 사적인 이익을 취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호남과 영남의 시비를 우선 놔두고서 다만 무함 여부만 논했던 것은 문도와 관련된 것이냐 선사와 관련된 것이냐는 차이가 있고, 그만둘 수 있느냐 그만둘 수 없느냐는 같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형이 호남은 그르고 영남은 옳다 하여 무함한 죄까지 아울러 묻지 않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 감히 대략 사실을 진술하여 고명(高明)의 취사를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대저 처음에 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에 참가하지 않았고, 두 번째는 청간(清刊)하는 곳에서 인가를 힐난하였고, 세 번째는 음성을 성토하는 일에 의리를 제창했으니, 그 의리가 맑고 맑으며 말이 정당하고 정당한 자는 함재(涵齋) 김장(金丈)이니 진실로 호남 의론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경존(敬存)과 같은 자는 호남의 침묵으로 인하여 멀리 가지 않고 되돌아온 자에 불과하니, 진실로 문망(文望)의 우열을 가지고 그 수석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쟁단이 일어나게 된 이유 같은 것은 무슨 일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음성이 저에게 답한 편지에 상빈(傷貧)의 마음이 첫째이고, 뇌비(賂碑)의 유감이 둘째라고 하였는데, 형이 지적한 것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책을 간행하는 곳은 돈이 생겨나는 숲이 아니고, 정재(靜齋)도 평소 탐욕하다고 칭해지는 자가 아니니, 부자가 되고 싶어서 간행 장소를 다퉜다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경존(敬存)이 뇌물을 주어 비문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뇌물을 받고서 비문을 지은 자는 누구입니까? 앞서 제창한 자가 있자 다시 이에 화답한 자가 있어 말하기를 "이 글은 마땅히 삭제하고 다만 비(碑)를 강등하여 갈(碣)을 하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를 통해 최경존을 성토한 것이 아니라 실로 백대 뒤에도 우리 선사의 씻기 어려운 허물을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어찌 문하의 제자가 감히 할 것이겠습니까? 스승의 문장을 돌아가신 뒤에 고치는 것은 변괴 중에 큰 것인데, 고칠 수 있고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법에 그 증거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법을 미처 보지 못하였지만 아무렇지 않게 멋대로 고쳤으니, 이것이 어찌 조금이라도 선사를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또한 문하의 제자라면 감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뇌비와 관련한 두 번째 유감은 최경존 한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그렇게 여기는 것입니다. 유감을 갖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사에게 허물을 끼치고 선사를 경시했기 때문입니다. 경존의 잘못은 갈(碣)로 고치는 것을 경솔하게 허락한 날에 있었고, 예전의 비(碑)로 회복하고자 한 날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동(玄洞)에서 발간한 것에 대해 "그의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시행한 것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호남의 침묵은 경존의 수중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고, 현동에서 발간하는 일도 경존이 혼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완청(完廳)의 해각(亥角)39)과 온 도의 동문들이 어찌 모두 경존이 사적인 이익을 암암리에 취하도록 해주었겠습니까? 만약 경존이 사적인 이익을 취하고 쟁단을 일으키는 혐의를 피하였다면, 외부의 방애가 없는 현동에서 발간하는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인가를 구걸한 영남의 일은 스승을 의리로 섬기며 허물을 고치는데 기탄이 없는 도리가 결단코 아니었으니, 큰 죄가 되지 않겠습니까?쟁단의 뿌리를 암암리에 양성한 것은 원래 영남에 있었습니다. 3000원짜리 집을 주겠다는 감언에 원고가 갑자기 영남으로 넘어갔고, 600원 발간 비용을 마련한 의록(義錄)은 그 재물을 관장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에 일곱 성인은 모두 길을 잃었고40) 일만 대중은 눈이 없어서 스스로 여기기를 '병졸이 사적인 이익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장수의 원대한 계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원고를 출판하도록 유혹했다는 힐난이 전사인(田士仁)의 영남 편지에서 나왔고, 장재(掌財)를 가짜로 꾸몄다는 것이 탄로 나서 김정호(金楨鎬)가 그 액(厄)을 대신하였습니다. 처음에 쟁단의 뿌리를 암암리에 양성하였기 때문에 결국에는 다툼의 보루가 선명하게 솟아오른 것이니, 형세로 볼 때 반드시 닥치게 될 일이었습니다.완청(完廳)의 해각(亥角)은 "우리 인본(印本)만 유독 없겠는가. 인본이 없다면 경성에는 어찌 끝내 없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침묵한 것이다."라는 것은 오진영의 글에서 확고하게 말하였고, "하공(荷公 민영휘(閔泳徽))이 침묵하였다."는 것은 성기운(成璣運)의 편지에서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어쩌지 못하고 꼭두각시의 본모습이 가리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침묵해서 허락할 수 없었다."고 송병휘(宋秉徽)의 편지에서 드러나자 "분명히 침묵한 것이다."는 말은 깨짐을 면치 못하였고, "민장은 말이 없었다."고 조충현(趙忠顯)의 글이 나오자 "하공은 침묵하였다."는 것은 날조한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우리 형께서 "석농(石農)의 마음은 치우쳐서 주장한 바가 없었다.'고 한 것은 과연 맑은 하늘의 백일과 같은 것이었으며, "순재(舜在)는 일의 기미를 두루 움켜쥐었다."고 한 것은 과연 빽빽한 그물을 사방에 둘러친 것이었으니, 정확한 말씀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형이 이에 대해 오히려 다시 말하기를 "다툼의 실마리는 호남에 있으니 선사를 무함했다고 성토하는 것은 결단코 옳지 않다."라고 했으니 또한 무슨 까닭입니까? "나는 우선 할 말이 없네만 인가와 침묵은 오십보백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인허(認許)'에 대해 '묵허(黙許)'라고 한 것은 저쪽에서 지어낸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일을 하는데 저들은 알고서도 금지하지 않았으니, 나의 입장에서 말할 것 같으면 다만 침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진실로 인가와 침묵을 동일하게 허락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신청의 유무와 왜(倭)의 달력을 썼는지 여부는 똑같이 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찌 오십보백보로 개괄할 수 있겠습니까?당일에 허물의 있고 없음은 알 수가 없습니다만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선사의 장례를 지낼 때에 그의 성모(誠慕)와 우리의 청초(淸楚)함에 대해서는 이미 들을 만한 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원고를 인쇄하는 것은 곧 전날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고, 지금의 도지사(道知事)는 곧 전날의 성모했던 해각(亥角)입니다. 그러니 장례를 지낼 때 방애가 없는 것과 함께 똑같이 일례로 삼아서 일찍이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또한 임술년(1922) 겨울에 몸소 완청에 질문했던 자는 영백씨가 아니었습니까? 과연 하자가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영백씨가 먼저 알았을 것인데, 어찌하여 금지하여 당일에 쓰지 말라고 한 마디 말도 없었으며, 형이 마침내 오늘에 뒤미처 비판을 한단 말입니까? 또한 하나의 의아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형의 형제는 세상에서 원방(元方)과 계방(季方)41)처럼 우열을 다투기 어렵다고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힘써서 첫 번째 의리로 삼는 것은, 정성을 다하여 형에게 고하지 않은 것을 아우가 반드시 감히 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뜻을 강행하여 어진 아우가 정성을 다해 한 말을 듣지 않는 것을 형이 또한 하지 않을 것입니다.대저 선사를 무함한 것과 김용승(金容承)을 당(黨)으로 여긴 것은 그 죄에 경중이 있습니다. 만약 함장(涵丈)에게 진실로 김용승을 당으로 여긴 자취가 있다면 의당 무거운 것을 버리고 가벼운 것을 살펴서는 안 되며, 하물며 김용승을 따라서 사우(師友)간으로 선사를 대하던 것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때였으니 더욱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김용승과 절교한 것은 7월 4일 대상(大喪)을 지낸 이후입니다. 날짜가 분명하고 마음의 자취도 선명한데, 영백씨는 어찌하여 선사를 무함한 음성 사람을 모두가 곡진하고 맹렬히 성토할 때 마음을 허여한단 말입니까? 김용승과 절교한 함재가 머리가 새하얗게 센 백수(白首)의 나이로 30살이나 아래인 정운한(鄭雲翰)의 부장(副將)이 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니, 형이 영백씨게 고한 것에 정성을 다함이 있지 않아서입니까? 성토한 김모(金某) 무리의 중제(中弟)도 또한 그 중의 하나입니다. 비록 스스로 말한 혐의가 있지만 의견을 다 펴서 말하지 않으면 도가 드러나지 않는 자리인지라 또한 감히 침묵하면서 도외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 번 언급했을 뿐입니다. 天下之理一也,天下之心,天下之文,亦一同也.以此心見此文究此理,通歸于極致也,豈有終不相合之理乎? 惟其如是也,故請願自辱、料量不拘之勢不兩立,惡札中最緊節眼,而所以勘斷陰罪者,可謂斬釘截鐵,到頭無餘.而今承盛教,乃以"夫誰曰不然"答之."夫誰曰不然"者,豈非千人然之,萬人然之,無人不然之謂乎? 以兄護震之厚,宜其曰"未知其必然",雖使稍改品藻,且應曰"似或然矣".孰圖其明快斷決,一至於此,與前教"不可強服誣師之罪"者,若不出一人之口哉? 於是益信天下之理與文之一同,是非之公不外乎人心之所同然,而不如此自不得也.言之中倫,旣已若此,則斯可以止矣.乃復以"其心保無他意"、"不可勒以誣師"等說,添畫蛇之足,何哉? 於是又以知偏私之難克,已見之難舍,有如是矣.竊歎夫護陰二字,爲吾兄平生貞祟,而隨處闖發也.夫言者心聲也,筆者心畫也.故欲觀古今人之聖狂善惡,惟言與書是準.茍曰言書之如此,而心之不如此,"聽其言也,人焉廋哉"之訓謬矣,"人心著書,化工著物"之說妄矣.然則有罪者陰書而無他者,陰心旣是究說不得,且雖曰原心而恕罪,其或出於眚災也則哿矣.陰也則不然,一之而對靜齋言: "先師曾有認意." 再之而對宋氏秉眞言: "吾師曾有認意." 三之而答涵齋曰: "先師獨命料量爲之." 四之而答子乘曰: "先師嘗教不必深拘." 及夫正責誠喻,恳恳切切,俾改之速遄復者,累牘之四至也.則終是傲然高坐,或如不聞而終歲不答,或喝之以兢爭之習,或嘲之以宦睾僧髻,或罵之以狂泉衆飲.據其誣說之重複,自是之愈力,天下之怙,終未有加於此者.如此而謂罪陰者謂勒,則非獨爲護陰之貞祟,無或近於忘師之大故乎? 至以杏下之獨命,謂有無之未可知; 愼勿妄罵倭朔,謂勿發得太快.又怪夫兄之見識言論,非一時之差,其狐惑蠱食,所由來者深矣.近日趙忠顯爲文,呼於衆曰: "石農之獨命,不敢指以爲無; 靜齋之遺書者,不敢指以爲有." 方被輿情之駭痛,公議之討駁矣.兄之不知有無,趙之不敢謂無,雖有疑決之有間,其爲反對乎討以撰造之衆論,則一也.若使不幸而兄書先而趙文後,眞獨命僞遺書之凶說,謂非吾兄不知有無之語有以啟之,人將不信.念之到此,旣爲之凜然."發得太快"者,豈非言不悖理,而詞氣之間,抑揚太過之謂乎? 用虜朔之金壽弘,不但罵之,而教人滅親者,尤翁也.使壽弘而譏尤翁曰"愼勿妄滅人之虜朔",而恕壽弘者謂之"發得太快",則其果成說乎? 言之至此,又爲之駭然.蓋統舉來書首末而反覆之,"夫誰曰不然"一句外,無非右嶺護陰,而駸駸不覺喪義而實誣,此必有狐惑蠱食之本也.盛喻所謂"論黨人,先言其爲首者如何,爭端之所由起如何"及"陰城無所偏主,舜在周羅事機,敬存陰濟其私"者,果非此耶? 弟之姑閣湖嶺是非,但論其誣不誣者,以關門從關先師之有異,可已不可已之不同也.今見兄之非湖是嶺,而并與誣罪而不問,則安敢不略與陳質而俟明者之采棄乎?夫初不參於認議之席,再詰認於清刊之所,三倡義於討陰之役,其義之清乎清,其辭之正乎正者,涵齋金丈是已,實爲湖論之首也.如敬存者,不過因湖黙而不遠復者也,固不可以文望之優劣而易其首席.若爭端之所由起,則未知其何事.然陰城答鄙人書,傷貧之心一也,賂碑之憾二也,兄之所指,想亦不外乎此也.然刊所非生金之藪,靜丈非素號貪饕者,則欲求富而爭刊所,尺童之非可信,更不須說.至於謂敬存爲納賂而得文,則其受賂而作文者,誰也? 旣有唱之者,復有和之者,乃曰: "此文當拔,而但降碑爲碣." 此非以討崔,實所以證成先師難洗之累於百世也.是豈門弟之敢爲乎? 改師文於身後,變之大者,可改而不爲罪者,爲其證於國典也.國典未及目覩,而擅改無難,是豈有一分尊畏之心乎? 此又門弟之所不敢也.賂碑二憾,非獨崔之一人,乃千百人之所同然者,憾者何爲? 其累師輕師也.敬存之失,在於輕許改碣之日,不在欲復碑舊之日也.乃以玄刊,謂陰濟其私而設,湖之黙非出敬存之掌中,玄之刊非敬存之所獨也.完廳之亥角,一省之同門,豈皆陰濟敬存之私者歟? 若使敬存避濟私起爭之嫌,自外無礙之玄刊,同心乞認之嶺役,決非事師以義、改過勿憚之道也,有不爲罪之大者乎? 乃若潛釀爭端之根,元在乎嶺.三千圓家庄之甘言,稿忽踰嶺; 六百圓刊費之義錄,掌財有人.于斯時也,七聖皆迷,萬衆無目,自以爲兵不厭私將家之長算也.孰料其居無何,誑誘出稿之詰,出於田士仁之嶺書,假粧掌財之綻露,金楨鎬代其厄? 惟其始之潛釀爭根,故終之顯峙爭壘,勢所必至爾.完之亥角我印獨無! 印則未有,京豈終無? "分明是黙",據確於吳筆: "荷公(閔泳徽)擔黙",光增於成書.終無奈傀儡之本狀難掩.黙許不得,著於宋秉徽之書,而"分明是黙"不免見破; 閔丈無言,出於趙忠顯之筆,而"荷公擔默"歸於白撰.信乎吾兄所云"石農之心無偏主",果青天之白日也; "舜在之周羅事機",果密網之四匝也.吾兄於此尚復云"爭端之在湖,并不韙其討誣." 則亦復何哉? "我且忘言, 認與黙, 百步五十步之間",此又未然.對認許而曰黙許,自彼之所命名也.吾爲吾事而彼知之不禁,則自我言之,但可謂之黙,固不可謂認與黙同一許也.且申請之有無,彼朔之書否,不可同日而語也.烏得以百步五十步槩之哉? 若其當日瑕累之有無,雖不可知,然弟則以爲襄禮之時,彼之誠慕, 吾之清楚,旣有言足聽聞者.則今日之印稿,即前日之襄奉也; 今日之知事,即前日誠慕之亥角也.宜其與襄奉之無礙,同爲一例,而曾不致疑矣.且壬冬之躳質完廳者,非令伯氏乎? 果有瑕累乎? 則令伯氏當先知之,胡無一言禁止,使勿用於當日,而兄乃追譏於今日乎? 亦一可訝也.吾兄兄弟,世所稱元季方之難爲者.所自勉以爲第一義者,不以盡誠告其兄, 弟必不敢也; 硬行已志, 不聽賢弟盡誠之言,兄亦不爲也.夫誣師與黨金,罪有輕重,使涵丈實有黨金之跡,固不當舍重而察輕,况其從金師友處師未著之日也.絕金, 七月四日行祥之後也.月日斑斑,心跡昭昭,柰之何令伯氏之許心於誣師之陰人爾我相繾綣猛討? 夫絕金之涵齋, 以皓然白首, 不憚爲三十年少鄭雲翰之副將,無乃兄之所以告之者有未盡誠者歟? 所討金某輩中弟亦其一也.雖有自鳴之嫌, 不直不見之地,亦不敢隱黙而自外, 故此一及耳. 그 말을……숨기리오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 上)〉에 "상대방의 말을 들어 보고 눈동자를 살펴본다면 그들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聽其言也, 觀其眸子, 人焉廋哉]"라고 하였다. 광천(狂泉) 옛날 어느 나라에 광천(狂泉)이 있어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은 미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남사(南史)》 조충현(趙忠顯) 자는 경서(景恕), 고종 병인년(1866)에 태어났다. 본관은 평양으로 주사를 지냈으며 평간공의 조견의 후손이며 청양에 거주하였다. 김수홍(金壽弘) 1601~1681. 자의 대비(慈懿大妃) 복상 문제와 청나라와 명나라 연호 사용 문제로 송시열과 반목하였다. 해각(亥角) 일본인 해각중장(亥角仲藏)으로, 1921년 8월 5일 ~ 1925년 8월 11일까지 2대 전라북도 도지사를 지냈다. 일곱……잃었고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의 "양성의 들판에 이르자 황제(黃帝)를 모시는 일곱 성인이 모두 길을 잃었다.[至於襄城之野, 七聖皆迷]"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길을 잃어 갈 곳을 모르는 것을 뜻한다. 원방(元方)과 계방(季方) 진원방(陳元方)과 진계방(陳季方)은 형제인데, 둘 다 재주가 뛰어났다. 그래서 "원방은 형 노릇 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노릇 하기에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는 말이 나왔다. 이때부터 난형난제(難兄難弟)는 누가 더 낫고 못함을 구별할 수 없는 경우를 이르게 되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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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김윤승에게 답함 갑자년(1924) 答金允升 甲子 대저 음성(陰城)을 엄호하는 여러 사람들은 "언어와 문자로 사람을 죄주는 것은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이후 저들은 눈으로 유서(遺書)를 보고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서 강태걸(姜泰杰)이 인가를 받아 출간하는 것에 급급하여 인의(認意)와 인교(認敎)의 실제 근거를 만들었으니,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마음을 헤아려야 하겠습니까? 진천(鎭川) 경찰서에 선사의 무함을 성토한 사람을 고소하여 창암(蒼巖)과 신헌(慎軒)이 다시 조사를 당하게 되어 재앙의 기미를 예측할 수 없으니,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마음을 헤아려야 하겠습니까? 만약 그 인가와 그 고소가 음성(陰城)의 저 강태걸이 작성한 고소장 중의 오선생(吳先生)이 허락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처음에 오씨의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가 마지막에는 아무에게도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한 것이니, 어떻게 처리해야겠습니까? 비록 네가 아니라고 말하나 이미 너의 노래를 지었다42)고 하겠습니다.함재장(涵齋丈 김낙두金洛斗)이 인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지극히 맑고 지극히 바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능히 스스로 자립하여 별도로 하나의 의론을 만들지 못하고 도리어 경존(敬存 최병심(崔秉心))에게 의지하여 석농(石農 오진영(吳震泳))을 위협하고 강제하여 선사를 무함하게 하였습니다.영백씨(令伯氏)가 완청(完廳)에 가서 질문했음에도 침묵한 것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오진영과 성기운(成璣運)이 보루를 만들어 경존(敬存)을 기다린 것으로 또한 그 잘못을 잡아낼 수가 없었지만, 장소를 옮겨 간행하자는 의론을 먼저 제창한 것에 대해. 함재장이 어떻게 잘못을 억지로 지적하며 배척하여 쓰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음성의 죄가 위협의 여부라면 음성의 편지가 그대로 있으니 나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경존이 그 문도(門徒)을 시켜 침묵하게 만들어 문제를 일으켰고 사람들이 모두 그가 그랬다는 알고 있기 때문에 호당(湖黨)의 수죄(首罪)를 말할 경우에는 반드시 경존이라 말한다. 지금 우리 형이 경존을 엄호하고자 하여 그 사실을 바른대로 말하지 않고 도리어 함재장을 수석이라 하고, 경존은 처음부터 침묵을 도모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형이 비록 이와 같이 말하더라도 사람들이 믿겠습니까.호남 사람들의 주장은 '인가를 구걸하지 않고 선사의 무함을 변론한다.[不乞認辨師誣]'는 여섯 글자일 뿐입니다. 함재장이 이 여섯 글자에 약간의 흠결이 있어서 수석이 될 수 없는 것입니까? 경존이 죄가 없다는 것은 내가 영백씨에게 증명하여 알 것입니다. 비록 이를 면하지 못하여 경존이 스스로 죄를 인정한다고 해도 어찌 뒤집어씌워 호당의 수죄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우리 형이 반드시 침묵을 도모한 계획에서 경존을 빼내려고 하는 것은 경존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존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를 빼낸다면 경존을 대신하여 들어갈 자를 어느 자리에 놓고자 하는 것입니까? 형은 옛 친구에게 돈독히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종장(宗丈)을 생각지 않고 모두가 미워하는 자리에 빠뜨리고자 한단 말입니까?함재장이 보여준 그동안의 한결같은 절의는 순수하여 하자가 없었으니, 원래부터 절로 호남 사람의 수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대개 형은 경존의 문망(文望)이 오래도록 전 호남에 드러났다는 것으로 호남의 수석이라고 잘못 인식하였고, 또 침묵을 도모한 것이 경존의 중죄라고 여겼기 때문에 함재장이 경존을 대신하여 들어갔다고 말하였고, 모두가 미워하는 자리에 그를 빠뜨렸다고 말하였습니다. 원래 수석이었던 함재장에 대해 침묵을 도모한 경존을 대신하여 들어갔다고 억지로 말하고 그가 모두가 미워하는 자리에 빠진 것을 우려하였으니, 그렇다면 영백씨가 실로 추종하여 침묵을 도모한 뒤에 몸소 완청에 질문하고서 다른 말이 없었던 것은 어찌 더욱 모두가 미워하는 자리에 빠뜨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함재장에 대해 간절히 근심하면서 영백씨에 대해서는 무심하단 말입니까?우리 형은 오늘의 전쟁을 천하의 의전(義戰)라 여기십니까? 그렇다면 그 수석이 된 자는 천추의 영광이라 말할 수 있으니, 반드시 종장으로 그 수석을 바꾸고자 한다면 이것은 옛 친구는 박대하고 종장에게는 은혜를 파는 것이 됩니다. 옛 친구가 유독 유감이 없겠습니까?원수의 인간(認刊)을 배척하고 선사의 무함을 변론하는 것이 의전이 아니겠습니까? 수석이란 이름은 사실에 근거하여 정해지는 것이니, 무슨 은혜와 유감이 있겠습니까?선사는 애당초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하고 정재장(靜齋丈)과 경존의 간절한 청을 고달프게 받아서 다만 경존이 스스로 지은 글에 잠시 착함(着銜)을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선사에게 또한 무엇을 손상될 것이 있겠습니까?선사의 글에는 본디 《춘추》가 의리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 '정재와 경존의 간청을 괴롭게 받아서 허락했다.'고 말한다면, 자신의 《춘추》의리에 따르지 않고 다만 자손과 문인의 안면과 인정을 보고서 허락한 것이 될 뿐이니, 흡사 그 일을 알고 있었던 것 같지 않겠습니까? 위태롭고 위태롭습니다. 형의 말은 선사를 핍박하여 손상한다고 하겠습니다.영남 사람이 설령 이런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만약 경존이 중간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면 일이 이런 지극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단지 인간(認刊)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여겨서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해 통렬히 문죄하는 것은 또한 우리가 선사를 존경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금은 음성의 강태걸이 인가를 받아 출간하는 일이 장차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깊이 유감으로 여기지 말기 바랍니다.절절하게 인가를 받을 때를 살펴서 비루하게 그 실정을 슬피 호소하여 곤욕스럽게 경우 허락을 받았습니다.영백씨가 완청에 가서 질문한 뒤에 만약 절절하고 비루하고 곤욕스러운 상황을 말했다면 함재 등 여러 어른의 맑고도 바른 의리로 어찌 기꺼이 침묵했겠습니까? 또 당시에 만약 절절하고 비루하고 곤욕스러운 실상이 있었다면 영백씨가 어찌 가리고 숨겨서 말하지 않았을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이 말이 영백씨가 완청에 가서 질문한 날에 나오지 않았다가 마침내 오늘 잘못을 찾은 이후에 있었으니, 또한 괴이합니다.침묵이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고 감히 선사의 장례 일로 비겨 의론을 하였는데, 이것은 하자가 없는 일이 또한 하자가 있는 일이 된 것이니 옳겠습니까? 공자가 말씀한 '말재주 있는 사람[佞人]'43)이 바로 이런 부류인데, 우리 형이 마침내 이런 것을 배웠단 말입니까?음성 사람들은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방도가 있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이미 김경부(金敬父)를 시켜 완산을 한번 가라고 한 것과 영백씨가 당일에 말하지 않았던 비루하고 곤욕스러운 말 등에 대해 지금 우리 형은 잘못이 있다고 여기었습니다. 그렇다면 일찍이 잘못이 있는 것을 잘못이 없는 것으로 만든 것은 음성 사람과 영백씨였고, 일찍이 말재주를 배운 자도 음성 사람과 영백씨였습니다. 어찌 이것을 가지고 먼저 배척하지 않으십니까? 【후에 음성 사람이 서모(徐某)에게 답한 편지를 보니, "선사의 성대한 덕은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기 때문에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도가 있으니, 장례를 지낼 때에 잘못이 없었던 것과 같다. ……"고 하였다. 〇정묘년(1927) 6월에 추가로 기록한다.】함재장은 선사의 대상(大喪) 이후에 김용승(金容承)과 절교했는지를 모르겠습니다.저의 편지를 우선 놔두고 영백씨가 급히 음성에 편지를 보냈던 망령된 것이었습니까? 오히려 다시 함재장이 김용승과 절교했는지 여부를 모르겠다고 말씀하십니까? 함재장도 믿을 만 못하고 저도 믿을 만 못하고 영백씨도 믿을 만하지 못합니까? 夫護陰諸人之言,不曰"以言語文字罪人, 非所以原心"乎? 今焉以後,彼目見遺書,而曾不爲意,汲汲乎姜認之刊,結成認意、認教之實據,如此而尚可以原心乎? 訴討誣人於鎭川署,蒼巖、愼軒再當調査 禍機不測,如此而尚可以原心乎? 如曰其認其訴,非陰伊姜告文中吳先生諾之,何以區處始之受吳諾,終之承誰諾? 雖曰非汝, 旣作爾歌.涵齋丈之不欲認, 可謂至清至正.然不能自立別爲一論, 反倚敬存而脅勒石農以誣師.令伯氏之探質完廳而不言黙之疵累也,故雖以吳、成之設壘以待敬存者,亦不得執其疵累,而先倡移刊之議,涵丈何得以強摘疵累而斥之不用哉? 陰罪之脅勒與否,自有陰書在,吾不須言.敬存使其門徒圖黙以生梗,人莫不知其然,故語湖黨之首罪者,必以敬存爲言.今吾兄欲護敬存而不正言其實, 反以涵齋丈爲首席,以敬存爲初不知圖黙者.兄雖如此言之,人其信諸?湖人主義,"不乞認辨師誣"六字是已.涵丈於此六字,有些子欠點,而不得爲首席乎? 敬存之無罪,吾證於令伯氏而知之,雖或不免是,敬存自罪,烏得以冒作湖黨之首罪乎?吾兄必欲拔敬存於圖黙之計者,以其欲護敬存也.然護敬存而拔之,則代敬存而入者,欲置之何地? 兄可謂篤厚於故舊,然獨不念宗丈而欲陷於衆惡之地哉?涵丈之前後一節,粹然無瑕,元來自在之湖人首席也.蓋兄以敬存之文望久著全湖 錯認爲湖人首席,而又以圖黙爲敬存之重罪,故謂涵丈代敬存而入,而謂陷之於衆惡之地.夫以元來首席之涵丈,強謂代圖黙之敬存而入,而憂其陷於衆惡之地,然則令伯氏之實從圖黙之後而躳質於完廳而無異辭者,豈不尤陷於衆惡之地乎? 何其憂切於涵丈,而恝然於令伯氏也?吾兄以爲今日之戰,天下之義戰歟? 則其爲首席者,可謂千秋之榮光,必欲以宗丈易其首席,則是薄於故舊 而市恩於宗丈也,其爲故舊者獨無憾乎?斥讐認辨師誣,非義戰乎? 首席之名, 依實而定, 恩憾何有?先師則初不知其如此,而苦被靜丈與敬存之懇請,只假銜於敬存自撰之文也.先師乎亦何傷?先師秉筆,自有《春秋》.今曰苦被靜敬之懇而許之,夫不由自家《春秋》,只看子孫門人顏情而許之者,無乃疑若知其事者乎? 殆而殆而.兄言之逼傷先師乎?嶺人設有此失,若無敬存之中道生梗,則事不至此極.只恨認刊之不順就而痛罪生梗,亦異乎吾尊師也.今則陰之姜認刊將成,願勿深恨也.切切然瞷其納約之時,卑卑焉哀鳴其情,戛戛乎僅得其許.令伯氏探質完廳之後,若言切切卑卑戛戛之狀,如涵齋諸丈清正之義,豈肯用其黙? 且當時若有切切卑卑戛戛之實,令伯氏豈有掩諱不言之理? 此言不出於令伯氏探質之日,乃在今日覔疵之後,亦可異也.欲言黙之無累,敢將襄奉以擬議,是無瑕之事亦爲有瑕之事也, 其可乎? 夫子所謂侫人即此類, 而吾兄乃學此耶?陰人之謂有脫絆之道,故已令金敬父完山一行,令伯氏之所不言卑卑戛戛等說於當日者,今兄以爲有瑕.然則早已把有瑕作無瑕者,陰人與令伯氏也; 早已學侫人者,陰人與令伯氏也.何不以此而先斥之也?【後見陰人答徐某書曰: "先師盛德,人所共尊,故有脫絆之道,如葵時無累云云."○丁卯六月追識.】涵齋丈自祥以後,未知其絕金與否.鄙書姑置,令伯氏之馳書陰城,亦是妄歟? 尚復曰未知涵丈絕金與否乎? 涵丈不足信,此漢不足信,令伯氏亦不足信歟? 비록……지었다 《시경(詩經)》 〈상유(桑柔)〉의 "비록 내가 아니라고 말하나 이미 너의 노래를 지었도다.[雖曰匪予, 旣作爾歌]"라는 구절을 원용한 것인데, 비록 스스로 잘못을 꾸며대며 말하지만 이미 사실을 밝혀 말하였다는 뜻이다. 말재주 있는 사람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보인다. 자로가 자를 비읍의 수령을 삼자, 공자가 "남의 아들을 해치는구나!" 하였다. 이에 자로가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으니, 하필 글을 읽은 뒤에야 학문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그러므로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하였다.[子路使子羔爲費宰. 子曰賊夫人之子. 子路曰有民人焉, 有社禝焉, 何必讀書, 然後爲學. 子曰是故惡夫佞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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