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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장 한두 군의 집에 이르러 지어 주다 到金君君章【漢斗】家 有贈 작은 마을 땅이 비옥하고 샘물도 달아 小洞土肥泉復甘이가의 반곡87)이 또 종남88)에 있네 李家盤谷又鍾南소산의 상쾌한 기는 물 같이 청량하고 蘇山爽氣涼如水정택의 명징한 빛은 쪽빛처럼 푸르구나 定澤澄光碧似藍장년 시절은 원래 다시 올 수 없으니 壯歲從來難得再큰 재주는 응당 함께 삼재89)가 되어야지 大才端合共爲三그대에게 기대하니 사람과 땅이 서로 걸맞는 곳에서 期君人地相稱處위로 수사90)로 오르고 아래로 석담91)에 이르게 上溯洙源下石潭 小洞土肥泉復甘, 李家盤谷又鍾南.蘇山爽氣涼如水, 定澤澄光碧似藍.壯歲從來難得再, 大才端合共爲三.期君人地相稱處, 上溯洙源下石潭. 이가의 반곡 은자가 살기 좋은 곳을 비유한 것이다. 원문의 '이가(李家)'는 당나라 때 이원(李愿)을 말하고, '반곡(盤谷)'은 지명으로 이원이 은거한 곳이다. 이원이 벼슬을 사직하고 물러나 이곳에 은거할 때 한유(韓愈)가 그를 송별하는 뜻으로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를 지어 그곳의 경관과 부귀 공명의 무상함 등을 자세히 설파하여 그를 극구 칭찬했는데, 그 글 가운데 "태항산 남쪽에 반곡이 있으니, 반곡 안에는 샘물이 맛 좋고 땅이 비옥하여, 초목이 무성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太行之陽, 有盤谷, 盤谷之間, 泉甘而土肥, 草木叢茂, 居民鮮少.]"라고 하였다. 종남(鐘南) '종(鐘)'자가 들어가는 곳의 남쪽으로 김군이 사는 곳을 말한다. 삼재(三才) 천(天)ㆍ지(地)ㆍ인(人)을 말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하늘의 도(道)를 세움은 음(陰)과 양(陽)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柔)와 강(剛)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仁)과 의(義)이니, 삼재를 겸하여 두 번 하였기 때문에 역(易)이 여섯 번 그어서 괘(卦)가 이루어진다.[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 故易六畫而成卦.]"라고 보인다. 수사 원문의 '수(洙)'는 흔히 '수사(洙泗)'로 쓰인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 수도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과 가깝고 또 그 사이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孔子)나 유학을 가리킨다. 석담(石潭) 황해도 해주(海州)에 있는 지명이다. 이이(李珥)가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였기에 이이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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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의 시우담을 지나며 過雲巖時雨潭 강의 흐름을 끊어 막고 큰 저수지 만드니 截防江流作巨浸창상161)의 천지의 변화 기다릴 것도 없네 滄桑不待天地變한 번 보라 동쪽 나루 드넓은 평야를 試看東津平野闊이렇게 관개하는데 얼마나 준비했는가 爲此灌漑幾磨鍊돌을 깨니 우레소리가 산악을 흔들고 伐石轟雷撼山岳철교가 허공에 솟아 귀신을 놀래키네 橋鐵跨空驚鬼神큰일을 별안간 마친 건 우연이 아닌데 浩役倏竣非偶爾물결은 파랗고 맑디 맑아 보기 좋구나 好看波濤碧粼粼하백과 해약162)은 이사해 집을 정하고 河伯海若移奠宅독룡과 큰 악어도 달려 서로 모이리라 毒龍巨鼉奔相聚바람이 한발163)을 몰아 땅 밖에 빠뜨리니 風驅旱魃地外淪멋진 이름을 시우라고 지어줌이 합당하네 嘉號端合錫時雨산을 파고 구멍 뚫어 거꾸로 흐르게 하니 鑿山通竅逆流之크고 작은 도랑이 여섯 고을 고르게 하네 小溝大洫均六州공적이 우임금 못지않다164) 다투어 말하고 爭道功不在禹下해마다 내 밭에는 큰 풍년이 들었다네 年年我田大有秋풍년 들면 또 이보다 큰 기쁨이 없는네 有秋且莫大歡喜근년에 농사 이익이 얼마나 많던가 比年農利問幾多이익 적고 식구 많아 수세를 못 내자 利少食衆沒水稅토지를 압수해가니 어찌 할 것인가 其如押收土地何먼저 살펴보라 저들이 내놓은 소견을 先觀彼人所起見진실로 백성 위한다며 되레 자기 위했네 亶在爲民還爲己칼을 거꾸로 쥐었으니165) 또 어찌 하리오 倒持太阿亦何爲그칠 때가 없이 상해를 당할 뿐이라네 只見傷害無時已어찌하여 종전부터 나라 경영하는 자들은 如何從前經國者애초에 백성의 생업 힘써 만들지 않았나 初不盡力制民生남겨진 부의 자원을 엉뚱한 사람이 취하니 留與富源別人取귀와 눈이 어찌 귀머거리 소경을 면하리오 耳目何曾免聾盲아마도 산하를 예전대로 회복하는 날에야 倘是山河復舊日이 물건은 도로 우리의 소유가 되리라 此物還爲吾家有둘러보고 서성대며 마음 가누기 어려운데 周覽徊徨難爲情다함 없는 물줄기는 수문 입구에 쏟아지네 不盡流水瀉閘口 截防江流作巨浸, 滄桑不待天地變.試看東津平野闊, 爲此灌漑幾磨鍊.伐石轟雷撼山岳, 橋鐵跨空驚鬼神.浩役倏竣非偶爾, 好看波濤碧粼粼.河伯海若移奠宅, 毒龍巨鼉奔相聚.風驅旱魃地外淪, 嘉號端合錫時雨.鑿山通竅逆流之, 小溝大洫均六州.爭道功不在禹下, 年年我田大有秋.有秋且莫大歡喜, 比年農利問幾多.利少食衆沒水稅, 其如押收土地何.先觀彼人所起見, 亶在爲民還爲己.倒持太阿亦何爲, 只見傷害無時已.如何從前經國者, 初不盡力制民生.留與富源別人取, 耳目何曾免聾盲.倘是山河復舊日, 此物還爲吾家有.周覽徊徨難爲情, 不盡流水瀉閘口. 창상 '창상(滄桑)'은 창해상전(滄海桑田)의 준말이다. 큰 바다가 뽕밭으로 변하고 뽕밭이 큰 바다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사의 변화가 매우 큰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하백과 해약 '하백(河伯)'은 전설 속의 황하(黃河)의 신이고, '해약(海若)'은 바다의 신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서, 평소에 자만에 차 있던 하수(河水)의 신 하백(河伯)이 북해(北海)를 바라본 뒤에 북해의 신 북해약(北海若)에게 "내가 당신이 사는 여기에 와보지 않았더라면 매우 잘못될 뻔하였습니다. 나는 분명 영원히 대방가의 비웃음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한발(旱魃) 가뭄의 신이다. 《시경》 〈운한(雲漢)〉에 "한발이 사나워 속이 타는 듯하며 불을 놓은 듯하도다.[旱魃爲虐, 如惔如焚.]"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注)에 "가뭄의 신이다." 하였다. 공적이 우임금 못지않다 치수의 공적이 크다는 말이다. 우임금은 "사는 궁실은 낮게 지으면서 백성을 위한 치수(治水) 사업에는 힘을 다하였다.[卑宮室而盡力乎溝洫.]"고 한다. 《論語 泰伯》 칼을 거꾸로 쥐었으니 원문의 '도지태아(倒持太阿)'로, 권한을 남에게 넘겨주고 도리어 그의 해를 받는다는 말이다. 《한서(漢書)》 권67 〈매복전(梅福傳)〉에, 진(秦)나라가 "태아를 거꾸로 잡고서, 초나라에게 칼자루를 넘겨주었다.[倒持太阿 授楚其柄]"라는 말이 나온다. 태아(太阿)는 고대 명검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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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백형을 방문하고 訪省菴白兄 멀리서 온 속인에게 맑은 빛을 접하게 해주시니 遠敎塵跡接淸輝단심이 있어 둘 다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네 爲有丹心兩不違유유한 세월에 귀밑머리 새로운데 歲月悠悠新鬢髮고달픈 풍상에 의관은 옛 것이네 風霜弊弊舊冠衣어느 곳 초당166)에서 봄 꿈을 깨었던고 草堂何處春醒夢당년에 율리167)에서 일찍 귀거래사 읊었지168) 栗里當年早賦歸대화를 하자 양격산169)을 기울인 듯하니 對話如傾涼膈散처마 너머 날리는 붉은 구름170) 걱정 않하네 未愁簷外火雲飛 遠敎塵跡接淸輝, 爲有丹心兩不違.歲月悠悠新鬢髮, 風霜弊弊舊冠衣.草堂何處春醒夢, 粟里當年早賦歸.對話如傾涼膈散, 未愁簷外火雲飛. 초당(草堂)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이 머물던 곳이다. 유비(劉備)가 남양(南陽)의 초당(草堂)으로 제갈량을 방문했을 때 "큰 꿈 누가 먼저 깨어났나, 평소에 나 스스로 아노라. 초당에 봄잠이 넉넉하고, 창밖의 해는 더디더디 기운다.[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고 하였다. 율리(栗里) 동진(東晉)의 도연명(陶淵明)이 은거한 곳이다. 그는 팽택 현령(彭澤縣令)이 된 지 겨우 80여 일만에 그만 두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율리(栗里)로 돌아갔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陶潛》 당년에……읋었지 성암이 벼슬하다가 그만 두고 귀향한 것을 비유한 듯하다. 양격산(凉膈散) 머리가 어둡고 어지러운 두혼(頭昏), 입술이 타서 까맣게 되는 순초(脣焦), 표리(表裏)에 모두 열이 있는 열번(熱煩), 속이 답답하면서 갈증이 많은 번조다갈(煩躁多渴)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붉은 구름[火雲] 더운 기운을 머금은 여름철 붉은 구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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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에서 이우와 함께 읊다 酒川 同李友吟 더위를 식히는 데 청포181)를 쓸 필요 없으니 納涼不待用靑蒲살랑살랑 가을바람이 호수 밖에 일어나네 颯颯秋風動外湖흰 눈 같은 천 가닥 머리에 경사는 한스럽고 白雪千莖經士恨누런 구름 같은 백 가지 곡식에 야인은 즐겁네 黃雲百穀野人娛옛 거문고로 연주하는 유수곡을 들을만하니182) 古琴聊可聽流水암실에 진주를 던진다고 어찌 노여워하리183) 暗室何曾怒擲珠진솔한 한 번 유람으로 세속을 벗어나니 眞率一遊還脫俗신선을 찾으며 쓸데 없이 부르지 않는다네 不尋仙侶費相呼 納涼不待用靑蒲, 颯颯秋風動外湖.白雪千莖經士恨, 黃雲百穀野人娛.古琴聊可聽流水, 暗室何曾怒擲珠.眞率一遊還脫俗, 不尋仙侶費相呼. 청포(靑蒲) 푸른 부들로 만든 시원한 자리를 말한다. 유수곡을 들을만하니 서로의 뜻을 잘 안다는 뜻이다. 원문의 '유수(流水)'는 흔히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을 가리킨다.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거문고 곡조이다. 거문고의 명인인 백아가 높은 산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친구인 종자기가 "태산처럼 높고 높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평하였고, 흐르는 물[流水]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강하처럼 양양하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평했다는 고사가 있다. 《列子 湯問》 암실에……노여워하리 서로 잘 알아서 오해하지 않는 사이라는 것이다. '명주암투(明珠暗投)'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한(漢)나라 때 추양(鄒陽)이 양왕(梁王)에게 올린 글에, "명월주나 야광벽 같은 보배라도 무작정 길 가는 사람에게 던져주면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그 까닭은 이유 없이 보배가 자기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다.[明月之珠、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 何則? 無因而至前也.]"라고 하였다. 《史記 卷83 鄒陽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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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일에 현광과 함께 천태산에 올라 2수 三月三日 同玄狂 上天台山【二首】 병 끝에 기력은 가을 매미 같은데 病餘氣力若秋蟬애써 봄바람에 고운 물색을 찾아갔네 强覓春風物色姸낯익은 청산이 손 모아 인사하고 慣面靑山來拱揖다정한 강물은 휘감아 도는구나 多情流水作回旋시는 본성을 쓰는 것이니 어찌 못난 솜씨 부끄러워하리 詩題本性寧羞拙꽃은 천연의 향을 취하는 것이니 문지르지 말라 花取天香莫遣撋멀리 난정410)을 생각하니 노쇠함만 더 절실해지니 曠感蘭亭衰益切한갓 옛일을 배워 따라서 할 뿐만 아니라오411) 非徒故事學相沿막다른 길이라도 호기가 가벼이 솟아서 窮途豪氣尙輕騫고상한 벗을 다시 얻어 돌 돈대에 오르네 更得高朋上石墩우군의 영화첩412)을 다투어 말하고 爭道右軍永和帖동로에서 늦봄에 옷차려 입은 일413) 따르려 하네 願從東魯暮春袢연기 먼지 이는 북쪽 변방 하늘이 얼마나 먼가 煙塵北塞天何渺꽃과 버들 핀 앞 시내엔 해가 정히 따사롭구나 花柳前川日正膃414)이번 만남도 잠시면 옛 흔적이 될 것이니 此會俄然成舊迹그대는 부를 지었던 손작의 자취415)를 따라야하리 之君儻踵賦台孫 病餘氣力若秋蟬, 强覓春風物色姸.慣面靑山來拱揖, 多情流水作回旋.詩題本性寧羞拙, 花取天香莫遣撋.曠感蘭亭衰益切, 非徒故事學相沿.窮途豪氣尙輕騫, 更得高朋上石墩.爭道右軍永和帖, 願從東魯暮春袢.煙塵北塞天何渺, 花柳前川日正膃.2)此會俄然成舊迹, 之君儻踵賦台孫. 난정(蘭亭)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3월 3일 당대의 명사 40여 인과 함께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에 모여서 재앙을 쫓는 계사(禊事)를 행하고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워 돌려 마시며 시를 지으며 놀았다. 한갓……아니라오 단순히 난정에서의 놀이만을 흉내내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우군의 영화첩[右軍永和帖]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첩(蘭亭帖)을 말한다. '우군(右軍)'은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353) 3월 3일에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왕희지가 당대의 명사(名士)가 풍류를 즐긴 이야기가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에 나온다. 동로에서……일 봄에 초연히 산수에서 노니는 것을 말한다. '동로(東魯)'는 중국의 동쪽에 자리한 노(魯) 나라를 이른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해 보라는 공자의 명에 따라 "모춘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사람과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였다. 《論語 先進》 膃 '溫'의 오기인 듯하다. 부를……자취 손작처럼 시를 짓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문인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은 뒤, 벗이었던 범영기(范榮期)에게 "그대가 이 글을 땅에 던져 본다면 금석의 소리가 나리라.[卿試擲地, 當作金石聲也.]"라고 한 고사가 유명하다. 《晉書 孫綽傳》 膃 '溫'의 오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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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단비가 내리다 2수 翌日喜雨【二首】 어제 가뭄 걱정한 시 지었더니 하늘이 알아주어 昨題憫旱獲天知한바탕 비가 쏟아져 나를 위해주는 듯하네 一雨還如爲我爲양맥426)은 소동파의 기문427)에 오른 것 기뻐하고 兩麥喜登蘇子記삼농428)은 한퇴지의 시에 들어간 것 위로하네 三農慰入韓公詩운수가 장차 길하게 될지 알기 어렵지만 運將回吉雖難識백성들 부디 굶주림 없길 또한 기대하네 民庶無飢亦可期내일 아침 꽃구경 늦어진다 한탄하지 말게 莫歎明朝花事晩우리네 인생 다시 멋진 유람할 때가 아니니 吾生非復勝遊時비 올 줄 아침에도 감히 알지 못했으니 雨勢朝來未敢知홀연히 신묘하게 조물주가 만들었으리라 忽然神妙化工爲먼 길손은 돌아갈 길 더디다 근심하지 않고 不愁遠客遲歸路무슨 일인지 은자도 기쁘게 시를 짓누나 底事幽人喜賦詩다시 봄보리를 적셔주니 좋은 징조 많아 更沾春麥多休兆가을밭에 풍년이 미리 기대되는 듯하네 豐在秋田似豫期솥 안의 물고기429) 살린 것 뜻한 바 있으니 活此釜魚應有意그대도 이제는 천시를 알 수 있으리라 請君迄可識天時 昨題憫旱獲天知, 一雨還如爲我爲.兩麥喜登蘇子記, 三農慰入韓公詩.運將回吉雖難識, 民庶無飢亦可期.莫歎明朝花事晩, 吾生非復勝遊時.雨勢朝來未敢知, 忽然神妙化工爲.不愁遠客遲歸路, 底事幽人喜賦詩?更沾春麥多休兆, 豐在秋田似豫期.活此釜魚應有意, 請君迄可識天時. 양맥(兩麥) 보리와 밀을 말한다. 소동파(蘇東坡)의 기문(記文) 소식(蘇軾)이 부풍(扶風)에 부임한 이듬해 관아에 정자를 만들었는데, 이해 한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될 무렵 정자가 완성되자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으로 짓고, "닷새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닷새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보리농사가 안 될 것이다. 열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열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농사가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東坡全集 卷35 喜雨亭記》 삼농(三農) 평지농(平地農)ㆍ산농(山農)ㆍ택농(澤農)을 일컫기도 하고, 춘경(春耕)ㆍ하운(夏耘)ㆍ추수(秋收)를 일컫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농사를 범칭한다. 솥 안의 물고기 곧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말하는데, 생명에 위험이 닥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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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고모179)께 올리는 제문 祭伯姑文 유세차 을축년(1925) 4월 정축삭(丁丑朔) 23일 기해날, 유인 김씨의 영연(靈筵)을 철거하는 날입니다. 그 하루 앞에 조카 김택술(金澤述)이 삼가 과일과 포를 갖추고 글을 지어 고모님을 곡하며 말합니다.아아, 우리 고모님의 단정한 행실, 정결한 용모, 깨끗한 지조로써 검소하게 가난을 견디며 예순 해를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타고난 성정은 그리도 넉넉하였건만, 받은 복록은 어찌 그리 인색하였단 말입니까?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근심걱정 않는 것은 관 쓴 남자도 어려운데, 하물며 여자이겠습니까? 공경과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봉양하여 비록 나물국의 일상 식사 때도 반드시 따로 차려서 올리셨습니다. 이따금 손님은 구름처럼 찾아오고 곳간은 텅 비어 있었는데, 그래도 온갖 방법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시아버지의 뜻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늘 친정어머니를 뵈러 오며 계절의 안부를 여쭈었고, 반드시 음식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선친의 제삿날이면 미리 보관해 둔 밤과 감을 보내셨는데, 정해진 임무로 여기셨습니다. 모든 이런 일은 몹시 가난한 형편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부인의 도리와 자식의 직분 두 가지를 다 해냈습니다. 옛일에 견주자면 참으로 여사(女士)의 유풍(流風)입니다.아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늘 형제가 드문 것을 한스러워하시며 나의 고모님을 큰형님처럼 섬기셨고, 고모님도 또한 나의 아버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셨으니, 아마도 남의 오누이 사이와는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족한 나 또한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음을 몸받아 나의 고모님을 큰아버지처럼 존경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살림 형편이 매우 나빠져서, 탈 없으신 날에 한번도 정성스런 음식을 올려드리지 못하였고, 멀리 나가 객지 생활을 한 까닭에 장례를 치를 적에도 달려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이른바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을 몸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아아! 콩죽과 지게미를 먹으며, 고모님은 평생을 고생만 실컷 하셨습니다. 아, 그런데도 저 망극한 궁귀(窮鬼)는 무슨 심보로 길이 떠나신 고모님의 처량한 영위를 백리 타향에 있게 하였습니다. 하늘의 보답이 어찌하여 이렇게 너무도 잘못 되었단 말입니까! 이제 다만 아들이 현명하고 효성스러워 손자와 증손까지 이제 번성하여, 줄지 않는 보응(報應)180)이 장차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아아, 슬프도다. 부디 흠향하소서! 維歲次乙丑四月丁丑朔二十三日己亥, 孺人金氏撤靈之期也。 前一日, 姪澤述謹具果脯操文而哭之, 曰: 嗚呼! 我姑以端一之行、潔靜之容、廉介之操, 食貧處約六十年所而沒。 稟之性者何豊, 而賦之祿者何嗇? 安其分而不戚戚, 冠珮者之猶難, 而况於巾幗中乎? 奉尊章以誠敬, 雖菜醬常饌, 必別設而進之。 有時賓客如雲, 室若懸磬, 而百方供具以悅舅志。 每歸寧于母, 及時節侯問, 必以食物隨之。 値先忌, 豫儲柿栗而送之, 課以爲常。 此又皆貧窶之所難能, 而婦道子職之兩盡也。 求之於古, 信其爲女士之流也。 嗚呼! 先君常以終鮮爲恨, 事我姑如伯兄, 我姑之於先君, 亦愛重之至, 蓋有異乎人之姊弟矣。 不肖亦體先君之心, 視我姑有若世父之尊, 而自失怙以來, 調度殘敗, 未嘗進一味之誠於無恙之日, 旅食遠方, 又未奔趨於斂葬之時, 安在其所謂體先君者哉! 自分咎罪, 措躬無地。 嗚呼! 啜菽厭糠, 我姑之飽喫困艱於生平者, 而噫彼窮鬼, 猶甘心於永逝之後, 百里他鄕靈幃凄凉, 天之報施何如是之舛也! 惟是胤子賢孝, 孫曾且蕃, 不食之報, 其將在斯也歟! 嗚呼, 哀哉! 尙饗! 큰고모 족보에 의하면 큰고모의 남편은 광산김씨 김재호(金在浩)이며, 시아버지는 김기태(金箕台)이다. 줄지 않는 보응(報應)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이 대대로 다 잘 되며 대를 거듭해도 줄지 않는 보응(報應)을 말하는데, 원문은 '불식지보(不食之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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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누님182)께 올리는 제문 祭長姊文 유세차 신묘년(1951) 11월 계유삭(癸酉朔) 2일 갑술날, 아우 김택술은 삼가 술과 과일로 제사 지내며 큰누님의 영령께 글을 지어 곡하며 아룁니다.아아, 우리 큰 누님 嗚呼我姊,타고난 성품 선하고 어질었으며 天質善仁.집에서 크면서 효성스러웠고 在家而孝,시집가서 화목한 가정 이루었지. 歸宜其人.평소에 말수 적고 平生寡言,사람 대함이 진실하였네. 待人以眞.비록 나를 극진히 아꼈으나, 愛我雖切,일찍이 사사로운 말 없었지. 曾無私言.그 부인의 덕과 규방 법도는 婦德閫範,세상에 드문 것이었네. 世界罕焉.어찌하여 아들 단 하나 두었고, 一子胡單,두 딸은 오래 살지 못하였으니, 二女無年,이것만을 아쉬워 하였고, 用是爲欠,곁에서 보면서도 그러했네. 傍觀亦然.늘그막에 이르러서 逮乎晩境,손자 증손 가득하였지. 孫曾滿前,칠순 해로하며 七旬偕老,인간의 책임 다하였으니, 了債人間,세속에 말하는 번영과 쇠망은 俗說榮喪,지나간 다른 날의 말들일 뿐이네. 他日輿論.그 어찌된 큰 난리에 夫何大亂,동쪽 서쪽으로 숨고 달려갔다가 東竄西奔,객지 인척 집에서 병이 나더니 旅病姻家,혼령이 되어 돌아왔네. 因復其魂,창황함에 힘없는 고아가 倉皇孤弱,초라하게 염하여 묻으니, 草草殮窀,끝없이 아득한 이 한스러움 此恨茫茫,어디쯤에서 다할 수 있을까. 曷有涯津.작년 시월 이래로 自昨十月,몸이 병에 휘감겼는데 病纏于身,정월 길일 아침에 正吉之朝,흉한 소식 처음 들었지. 凶報始聞,상복은 이미 지었지만 服雖已成,곡하러 가기 실로 어렵네. 奔哭實難.일년 내내 마음 먹다가 終歲經營,이제 소상날이 되었구나 始達練辰,울어도 소리 안 나오고, 哭不成聲,눈물만 샘처럼 솟는구나. 有淚湧泉.높으신 영령이 앎이 있다면, 尊靈有知,아우 얼굴 알아보시려나. 倘記弟顔.아아. 슬프도다! 嗚呼哀哉!흠향하소서! 尙饗! 維歲次辛卯十一月癸酉朔二日甲戌, 弟澤述謹以酒果之奠, 爲文哭告于長姊氏之靈, 曰: 嗚呼我姊, 天質善仁, 在家而孝, 歸宜其人, 平生寡言, 待人以眞, 愛我雖切, 曾無私言, 婦德閫範, 世界罕焉, 一子胡單, 二女無年, 用是爲欠, 傍觀亦然, 逮乎晩境, 孫曾滿前, 七旬偕老, 了債人間, 俗說榮喪, 他日輿論, 夫何大亂, 東竄西奔, 旅病姻家, 因復其魂, 倉皇孤弱, 草草殮窀, 此恨茫茫, 曷有涯津, 自昨十月, 病纏于身, 正吉之朝, 凶報始聞, 服雖已成, 奔哭實難, 終歲經營, 始達練辰, 哭不成聲, 有淚湧泉, 尊靈有知, 倘記弟顔。 嗚呼哀哉! 尙饗! 큰누님 큰 누님의 남편은 광산김씨 김재봉(金在鳳)이며, 시아버지는 김기열(金箕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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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누님183)께 올리는 제문 祭次姊文 유세차 신묘년(1951) 2월 28일, 작은 누이가 전주부(全州府) 검암리(儉巖里)의 살던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우 김택술(金澤述)은 4월 2일 부고를 듣고 나흘 뒤에 상복을 갖춰 입었으나 중풍이 들어 곡하러 달려가지 못하였습니다. 임진년(1952) 2월 대상(大祥) 하루 전날, 멀리서 무덤을 바라보며 제문을 올립니다.아아, 우리 둘째 누님 嗚呼姊氏,어려서 집에 살 때에 幼而在家,추위와 굶주림 안 보았고, 不見寒飢,자라서 시집가서도 長而適人,먹고 살기 풍족했으며, 亦饒生資,자녀들 잘 자라나 子女善茁,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지요. 人皆羡之.어쩌다가 중년의 나이에 夫何中身,가업이 쇠미해져 家業衰微,고향 초산(楚山)184)에서 楚山故土,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고 受人侮欺,완산(完山)에 흘러 와서 完山流寓,다시 또 처량해지셨습니다. 亦云凄其.나 또한 맨몸인지라 余亦赤立,곡식 한 톨도 돕지 못했고, 莫助絲糜,틈나면 자주 안부 물으며 間多探侯,그저 한숨 쉬고 탄식했지만, 徒爾歔欷,누님은 슬퍼하지 않고 姊不戚戚,너그러이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니, 以寬自怡,이런 큰 폭의 아량은 一副雅量,남자들도 드문 것이었습니다. 罕見巾帔.신사년(1941)에 이르러 于歲之辛,만주로 이주하시니 于滿之移,한 배에서 난 칠순의 혈육 七耋同胞,만리 먼 곳에 이별하며 萬里遠離,칼로 베인 듯 아파서 有傷若割,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有淚如絲.서신 전하고 돈 보내어 致書投金,제수 준비 보태시고 俾助祭犧,길 끊어진 먼 이역에서도 窮途絶域,오직 효성을 생각하셨지요. 維孝之思.하늘이 효심을 도와준 듯 天佑孝思,얼마 안 지나 무사히 돌아와서 生還不遲,곧장 우리 집에 달려오시어 亟來我宅,누님과 남동생이 대화 나누는데 姊弟接辭,끝없이 이어지고 흐르는 이야기들 瀜瀜洩洩,너무나 화락하고 즐거웠습니다. 其樂可知.천운은 순환하고 天運循還,이치는 진실한 것이라 理固諶斯,옛 가업을 새로 일으키자 舊業重新,크게 일어나 번창하여 熾而昌而,잘 갖춘 아름다운 집과 방을 宅室完美,검암리(儉巖里)에 마련하시니 于儉之里,나란히 머리 흰 부부가 白首偕老,뜰에는 후손들이 가득하였고, 滿庭孫枝,늘그막에 누리는 복 너무 아름다워 晩福孔嘉,전날의 풍진은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前塵烟飛.그런데 내가 길이 막혀 余因路梗,안부를 길게 빠뜨리고 있었는데 闕侯多時,누가 알았으랴 하루 저녁에 誰知一夕,갑자기 떠나가실 줄을. 遽爾騎箕.평생토록 병이 많았지만 平生多病,오래 사시다 돌아가셨으니 遐壽以歸,덕과 선을 행한 보답이 있어 德善之報,끝내 이치에는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理竟無差,죽은 사람에게 한 없으니 死者無憾,산 사람이 무엇을 슬퍼하리까. 生者何悲,내가 몇 해 전부터 余自往年,사지에 병이 감겨있습니다. 病纏四支,높으신 영령께서 들어 아신다면 尊靈有知,나의 이런 근심을 가엾이 여겨 憫我若玆,황천(皇天) 염라대왕께 말씀 올려 訴皇請閻,저승사자 명부(命符) 빨리 보내서 符令遄施,오래 고생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無久苦楚.나에게 그 은혜가 내리거든 我惠旣垂,얼른 일찍 황천에 들어가 早入泉坮,높으신 영령을 따르겠습니다. 尊靈相隨.아아, 누님이시여, 嗚呼姊氏,흠향하소서. 尙饗! 維辛卯二月二十八日, 我次姊氏卒于全州府之儉巖里寓舍。 弟澤述以四月二日聞訃, 越四日成服, 中風病重, 未由奔哭, 以壬辰二月大祥前一日, 文以望祭, 曰: 嗚呼姊氏, 幼而在家, 不見寒飢, 長而適人, 亦饒生資, 子女善茁, 人皆羡之, 夫何中身, 家業衰微, 楚山故土, 受人侮欺, 完山流寓, 亦云凄其, 余亦赤立, 莫助絲糜, 間多探侯, 徒爾歔欷, 姊不戚戚, 以寬自怡, 一副雅量, 罕見巾帔, 于歲之辛, 于滿之移, 七耋同胞, 萬里遠離, 有傷若割, 有淚如絲, 致書投金, 俾助祭犧, 窮途絶域, 維孝之思, 天佑孝思, 生還不遲, 亟來我宅, 姊弟接辭, 瀜瀜洩洩, 其樂可知, 天運循還, 理固諶斯, 舊業重新, 熾而昌而, 宅室完美, 于儉之里, 白首偕老, 滿庭孫枝, 晩福孔嘉, 前塵烟飛, 余因路梗, 闕侯多時, 誰知一夕, 遽爾騎箕, 平生多病, 遐壽以歸, 德善之報, 理竟無差, 死者無憾, 生者何悲, 余自往年, 病纏四支, 尊靈有知, 憫我若玆, 訴皇請閻, 符令遄施, 無久苦楚, 我惠旣垂, 早入泉坮, 尊靈相隨。 嗚呼姊氏, 尙饗! 둘째누님 둘째누님의 남편은 고흥류씨 류동기(柳東起)이고 시아버지는 류연호(柳然灝)이다. 초산(楚山) 전라북도 정읍시 시기동에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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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제 여호185)에게 올리는 제문 祭仲弟汝昊文 유세차 병술년(1946) 6월 6일 신사날, 나의 둘째 아우가 세상을 떠난지 38일이 되었으니, 오늘이 바로 그가 태어난 날이다. 늙은 이 형 후창(後滄)은 아우보다 3년 일찍 태어났는데 달과 날이 같아서 이날 이면 서로 술잔을 주고받았었다. 이제 그 술 한 잔을 영연(靈筵) 앞에 붓고 곡하며 말한다.오호! 사람의 형제로서 우리 둘 같은 기이한 인연은 보기 어렵고, 형제간의 아픔 중에 아우가 거꾸로 먼저 죽으면 더욱 견디기 어려운 법인데, 나는 얻기 어려운 인연에서 견디기 어려운 아픔까지 당하였으니, 이 때문에 너무나도 애통하여 죽고만 싶다. 아, 우리 형제는 비록 오래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지만, 형제 자매 여섯 명이 이미 노인이 되었고, 모두가 해로하며 자손을 두었다. 이 또한 드물게 있는 복이라, 늘 이것을 두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올봄에 셋째 아우 여직(汝直)이 먼저 세상을 뜨고, 군(君)의 부부가 뒤를 이어 떠났다. 접때는 드문 복을 자랑하는 몸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급한 화를 당한 집안이라 하니, 사람이 일이란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것인가! 군은 골격이 튼튼하고 실하며, 심성이 순박하고 곧아서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장수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겨우 육십 세에 이르러 나 같은 허약한 사람보다 먼저 떠나 가며, 도리어 끝없는 슬픔과 함께 죽은 뒤의 일을 남겨놓고 떠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으랴? 이것 또한 더더욱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비록 그렇지만, 사람이 이미 나이 예순에 이르렀으니, 칠팔십 세의 장수 누리는 것을 어찌 꼭 기약하겠는가? 다만 원통하고 한스러운 것은, 우리 집안이 아버님 벽봉(碧峰)께서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의리를 세우신 이래로 일본을 배척한다는 지목을 받아 온 가족의 생계가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이 이제 40년이 되었다. 지금은 다행히 큰 원수가 이미 물러가고 나라를 다시 세워 해마다 풍요롭고, 태평한 시기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하여 죽지 말고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 함께 늘그막에 소강(小康)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고, 이렇게 갑작스레 돌아간단 말이냐? 아아! 이 일은 이미 어쩔 수 없다면, 다 누리지 못한 복이 자손에게라도 남아야 마땅한데, 군의 아들 하나, 손자 하나는 그야말로 돌봐주는 사람 없이 외롭고 약하구나. 옛적에 한 문공(韓文公)은 요절한 조카를 위해 제문(祭文)을 쓰면서 후사(後嗣)의 성립을 근심하고 연연해 돌아보기를 마지 않았다. 지금 내 마음이 어찌 그와 다르겠는가?186) 만약 어둡지 않은 영령이 저승에서 암암리에 도우며 지키고 보전해준다면, 이제 점차 번창할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군이 남긴 음덕의 보답이 여기에 있게 된다면, 그 어찌 이승과 저승의 다행이 아니겠는가? 아아, 슬프도다! 흠향하소서! 維歲次丙戌之六月六日辛巳, 我仲弟觀化之第三十有八日, 卽其懸弧之辰也。 伯兄後滄老夫生先三歲, 月日則同, 乃以平昔此日迭相分飮之酒, 酹一酌于靈筵而哭告, 曰: 嗚呼! 人家兄弟難得吾兩人之奇綠, 同氣之痛尤難堪於倒喪逆慘, 以難得之緣遭難堪之痛, 此余絶慟而欲死也。 嗟吾兄弟, 雖不久侍父母, 兄弟姊妹六人年已耆艾, 皆偕老有子孫, 亦是稀有之福, 常以此自多矣。 忽於今春叔弟汝直先逝, 君之夫妻繼之。 向也自多稀福之身, 今焉人謂暴禍之家, 人事之不測乃如是乎! 君之骨相完實, 心性淳直, 人皆謂當得上壽, 孰料其僅至六旬, 先我虛弱者而去, 反貽以無涯之慟, 後事之勞乎? 此又不測之尤者也。 雖然, 人旣得耆年, 則耄耋遐齡亦豈可必? 但所痛恨者, 吾家自碧峰先子尊攘義立以來, 受排日之目, 全家計活指溝壑爲歸者, 四十年于玆矣。 今幸巨讐旣去, 國家復立, 連歲登豐, 昇平在前, 胡不少須臾無死, 與我享暮年小康之樂, 而遽歸乎? 嗚呼! 此旣不得, 則惟當留不盡之福, 以遺子孫, 而君之一子一孫可謂孤弱矣。 昔韓文公祭從子文, 慮後嗣之成立, 而眷眷不已。 今之余懷亦豈有他? 惟不昧之靈冥佑陰騭, 俾得保持, 漸至熾昌。 談者稱君不食之報, 其在於斯, 則豈非幽明之幸歟? 嗚呼哀哉! 尙饗! 여호 둘째아우 김봉술(金鳳述, 1887~1946)의 자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부인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생몰년은 1885~1945이며, 그 부친은 임긍호(林兢鎬), 조부는 임응순(林應淳)이다. 한문공은……다르겠는가 한 문공은 중국 당나라 때의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를 말하는데, 그 큰형님의 아들인 한노성(韓老成)이 죽자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을 지어 조카에 대한 애절한 정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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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강계일에 여러 벗들과 함께 읊다 신미년(1931). 아래도 같다. 瀛洲講契日 同諸益吟【辛未下同】 추억하니 계를 만든 것이 선천의 일 같아 憶曾設契似先天강신264)을 해 온 지 삼십 년이 되었구나 講信由來三十年고국 서리265)를 얼마나 노래했던가 故國黍離歌幾疊중도에 대들보 꺾여266) 끝없이 한스럽구나 中途樑折恨無邊길이 멀다고 천근의 짐을 어찌 포기하리오 道賖寧棄千斤擔새벽 오면 응당 잠자는 만백성 깨워야하리 晨曙應醒萬衆眠난초와 국화 기약함은 승사를 이루려함이 아니요267) 蘭菊爲期非濟勝한 마음으로 단지 월과 연이 함께 하길 바라서네268) 一心只欲越同燕 憶曾設契似先天, 講信由來三十年.故國黍離歌幾疊, 中途樑折恨無邊.道賖寧棄千斤擔, 晨曙應醒萬衆眠.蘭菊爲期非濟勝, 一心只欲越同燕. 강신(講信) 조직체의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우의와 신의를 새롭게 다짐하는 일을 말한다. 서리 '서리(黍離)'는 《시경》 왕풍(王風)의 편명인데, 망한 나라를 슬퍼하는 내용이다. 동주(東周)의 대부가 행역(行役)을 나가는 길에 이미 멸망한 서주(西周)의 구도(舊都)인 호경(鎬京)을 지나가다가, 옛 궁실과 종묘가 폐허로 변한 채 메기장과 잡초만이 우거진 것을 보고 비감에 젖어 탄식하며 부른 노래이다. 대들보 꺾여 원문의 '양절(樑折)'은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공자(孔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철인(哲人)이 죽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난초와……아니요 난초 피는 봄과 국화 피는 가을에 만나는 것은 멋진 놀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월과……바라서네 난초가 피고 국화가 필 때 강계(講契)를 여는 것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한 마음으로 모이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월(越)'과 '연(燕)' 모두 춘추 시대의 나라 이름이다. 연나라는 북쪽, 월나라는 남쪽에 있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간에 거리가 아주 먼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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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묘년(1927) 與季弟汝安 丁卯 눈 쌓인 궁벽한 시골 방안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으니 의연히 교량을 끊어버린 스님70) 같구나. 마땅히 성성적적(惺惺寂寂)하여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건만,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네가 그리워 봉래산(蓬萊山)과 영해(瀛海)71)로 두루 유랑하니 골육지간이 무엇이란 말이냐?이 엄동설한에 사방 벽만 있는 집에서 한 표주박 물만 마시는72) 신세는 피차일반이니 천륜(天倫)의 지친(至親)이 어찌 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옛사람 중 천하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자기가 그를 굶주리게 한 듯이 생각한 이도 있었고, 큰 집을 지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를 덮어주기를 원한 이도 있었다. 천하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골육에 있어서는 어떻겠느냐! 우리가 비록 힘은 서로 보탤 수 없지만 늘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옳다. 자신이 살아갈 계책은 오직 자신이 힘을 쓰는 데 달려있으니 절대로 친속(親屬)에게 의지하거나 기대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참으로 학문하는 자는 모름지기 자기 힘으로 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는 어렵다. 이 또한 지당한 이치이다.살아갈 계책은 다만 논밭에 종사하는 하나의 일에 있을 뿐 그밖에 좋은 방책은 없다. 옛날 방공(龐公)73)은 몸소 쟁기와 보습을 잡고 처자(妻子)는 앞에서 김을 매었다. 이때 천하가 비록 어지러웠으나 한(漢) 나라는 아직 있었다. 선비가 먹을 것을 취하는 데에 다른 길이 없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이 하였거늘, 지금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없어 인류가 멸절된 때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다만 아득히 큰 이 세상에 밭 갈 땅이 없다면 또한 호연히 지사(志士) 불망(不忘)74)의 자리를 따르는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뜻은 기(氣)를 제어하는 장수이고 배움은 업을 보전하는[居業] 집이다. 장수가 아니면 군대는 반드시 무너지고 집이 아니면 사람이 살지 못한다. 곤란을 당하였다고 변한다면 어찌 장수가 될 수 있으며, 잠깐이라도 버릴 수 있으면 집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예부터 누구나 다 죽지만,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서지 못한다."75)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곧 금수에 가깝다."76)라는 말을 경계로 삼아라.우리 형제가 태어나 이때를 당하여 궁액(窮厄)이 지극하다만, 신학문을 힘써 배척하고 단발(斷髮)에 죽음을 맹세하신 벽봉(碧峯)77) 선자(先子)께서 남겨주신 몸을 받았고, "저 사람들에 청원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구산(臼山)78) 선사(先師)가 남긴 가르침을 지키고 있다. 비록 아홉 번 죽고 열 번 살며, 천 번 맵고 만 번 쓰라려도, 세속을 따르고 더러운 데 부합하여 누린내 나는 고기를 주워 먹으며 구차히 입과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오직 이 한 생각은 피차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족이 떨어져 지낸 지가 4년째다.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근심하거나 즐거워하는 것을 비록 열흘이나 한 달 만에 서로 듣지만, 상을 나란히 하고 이불을 함께 덮는 것은 갑자기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구름을 보는 눈에 어찌 해가 뚫고 비추지 않겠느냐.한 해가 끝나가는 이때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구나. 이 편지를 쓴 이후 큰 요지는 〈소완(小宛)〉 시의 "나는 해로 너는 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되게 함이 없기를."79) 이라는 뜻이다. 마음으로 깨우쳐 주의하길 바란다. 積雪窮巷, 塊坐一室, 依然若斷橋和尙.宜其惺惺寂寂, 不動一念, 而不覺憧憧爾思, 周流蓬山瀛海.骨肉之間, 何也? 當此窮冬祈寒, 四壁一瓢, 彼此一般, 天倫之親, 安得不發一體之念也.古之人, 有思天下有飢者, 若己飢之者, 有願庇天下寒士者.天下猶然, 而況於骨肉乎.吾輩雖力不能相資, 常存此心, 可也.至於自身活計, 只在自身用力, 切勿生依賴親屬之心.正如爲學者之須用其力, 難仰他人.此又至當之理也.活計只有服田一事, 外無良策.昔龐公, 親執耒耟, 妻子耘前.是時天下雖亂, 漢室尙在.士之取食, 不無他道而猶如此, 而在今日國破君亡、人類殄滅之秋乎? 但廣漠大界, 無田可耕, 則又有浩然從志士不忘處一道耳.志是御氣之帥, 學乃居業之宅.非帥, 軍必僨;非宅, 人不活.顚沛而可變, 豈得爲帥;造次而可棄, 非所謂宅.要當以"自古皆有死, 人無信, 不立."、"人不學, 卽近禽獸"爲戒.吾兄弟生丁此辰, 窮厄極矣.然受遺體於力排新學、誓死薙變之碧峯先子, 守遺訓於"請願彼人, 決是自辱."之臼山先師.雖九死十生、千辛萬苦, 其不可隨俗合汚、拾腥吃羶, 以苟充口腹也, 明矣.惟此一念, 彼此無他者.而但一舍分居, 于玆四霜.病健憂樂, 雖旬朔相聞, 聯床共被, 似猝未易遂.看雲之眼, 何日不穿? 當此歲窮, 益切孔懷.聊書此以往, 大要〈小宛〉詩"我日而月, 夙夜無忝."之義也.想會心加意也. 교량을……스님 송시열의 8대손인 송근수(宋根洙)가 지은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 권4 〈권지41 서(書)〉의 단교승 주(註)에 "옛날에 어떤 승려가 다리[橋]를 끊고 참선하였기에 단교 화상(和尙)이라 칭하였다.[古有僧斷橋而修禪, 謂之斷橋和尙.]"라고 보인다. 봉래산(蓬萊山)과 영해(瀛海) 영해는 동쪽 바다, 봉래산은 동쪽 바다에 있는 신선이 사는 산으로 삼신산의 하나이다. 대개는 전설상의 공간이며, 간혹 금강산과 동해의 이칭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비유인지 실제인지 분명치 않다. 표주박……마시는 《논어》 〈옹야(雍也)〉에 "한 대광주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먹으며 궁벽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았다.[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라고 하였다. 방공(龐公) 후한(後漢) 때의 인물인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서로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였으며,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초빙하자 나아가지 않고 가솔을 모두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지사(志士) 불망(不忘) 공자가 이르기를 "의지가 굳은 선비는 곤궁하여 자기 시체가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언제라도 자기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예부터……못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사(政事)에 대해 묻자 양식과 무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답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다 죽지만 믿음이 없으면 살더라도 제대로 설 수가 없다고 한 데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論語 顔淵》 사람이……가깝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다. 그런데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으면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으면 금수와 가깝게 되고 말 것이다.[人之有道也.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라는 말이 보인다. 벽봉(碧峯) 김택술의 부친 김락진(金洛進, 1859~1909)의 호이다. 구산(臼山) 김택술의 스승 전우(田愚, 1841~1922)의 호 중 하나이다. 소완(小宛)……없기를 《시경》 〈소완(小宛)〉에 "題彼脊令, 載飛載鳴. 我日斯邁, 而月斯征. 夙興夜寐, 無忝爾所生."라는 구절이 있다. 이에 대해서 주희는, "저 할미새를 보건대, 날며 지저귀도다. 나는 날마다 나아가고, 너는 달마다 나아가,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들며, 부모님을 욕되게 말자."라고 풀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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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사년(1917) 與季弟汝安 丁巳 일찍이 《안씨가훈(顔氏家訓)》 한 부를 구입한 것은 몸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에서 나왔을 것이니 심히 훌륭하다. 형복(炯復)이가 가지고 왔기에 전부 열람하였다. 그 말이 모두 몸소 직접 경험한 데서 나와 비유가 상세하고 경책(警策)이 엄절(嚴切)하여 족히 집안을 지키는 귀감이 될 수 있겠더구나. 멋대로 이렇게 구두를 표시하여 보내니 부디 다시 처음부터 한번 이해해 보아라.그러나 이 사람57)은 육조의 혼란한 시대에 태어나 사승 관계가 없기에 학문이 순정하지 않다. 그가 자식을 훈계한 것은 좋기는 좋지만 정밀한 의리로써 검토해보면 하자가 숱하게 많이 나온다. 보고 열람할 적에는 마땅히 요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귀심(歸心)〉58) 한 편은 불교를 내전(內典)으로, 유교를 외전(外傳)으로 삼고서 불도(佛道)의 위대함은 요순(堯舜)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가 미칠 바가 아니라고 이른다. 여기에서 이 사람의 식견과 학문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편(篇)들은 다만 빼놓고 보지 말아야 한다. 초학자는 아는 것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저런 설들에 의해 혼란이 생길까 두렵구나. 曾購《顔氏家訓》一部, 認出飭躬御家之意, 甚善矣.復兒持來, 得以繙閱全部.其言皆從身親經歷中來, 指喩詳盡, 警策嚴切, 足爲保家龜鑑.謾此標定句讀以送, 幸更從頭一番理會也.然此人生於六朝壞亂之世, 無所師承, 學不純正.其所以訓子者, 美則美矣, 律之以精義, 疵纇百出.觀覽之際, 當有斟量者存.若乃《歸心》一篇, 以佛敎爲內典, 儒敎爲外典, 謂佛道之大, 非堯舜、周、孔所及.於是乎, 此人之見識學問, 不足多說也.如此等篇, 只宜闕之勿觀.初學識旣未定, 恐爲彼說所亂也. 이 사람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기의 안지추(顔之推, 531~602)를 말한다. 자는 개(介)이다. 양(梁)에서 산기시랑(散騎侍郞), 제(齊)에서 봉조청(奉朝請)ㆍ중서사인(中書舍人), 주(周)에서 어사상사(御史上史), 수(隋)의 개황(開皇) 중에 학사(學士)를 삼았다. 저서에 문집(文集)과 가훈(家訓)이 전한다. 《北齊書 卷45》 《南史 卷83》 귀심(歸心) 《안씨가훈(顔氏家訓)》 〈귀심(歸心) 제16편〉이다. 590년경 안지추(顔之推)가 지은 책으로, 동란 속을 살아가던 한 지식인이 자손에게 남긴 인생과 생활의 지침서이다. 책 제목은 '안씨(顔氏) 집안의 가훈(家訓)'이라는 뜻이다. 구성은 〈서(序〉에서 〈유언〉까지 모두 20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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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화구에게 보냄 갑자년(1924) 5월 與靜齋田丈華九 ○甲子五月 김용승의 일은 매우 불행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이 일은 누가 시킨 것입니까? 하나는 선사가 일찍이 인의(認意)를 두었다고 말한 것이고 다음은 선사가 일찍이 인교(認敎)를 두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스스로 후사를 담당한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왔고, '홀로 앉았을 때 남들과 다르게 들었다'고 한다면, 동문 수천 명이라도 감히 잘못됨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른바 오래도록 친자(親炙)180)를 받은 자들이 도리어 떼거리로 일어나 이 말을 옳다 여기고, 한두 사람 힘이 약한 졸필이 애써 분별하여 알리려고 해도 길이 없습니다. 김 씨처럼 직접 수학하길 오래도록 하지 않은 자가 어찌 오히려 선사의 심사에 의혹을 낳지 않겠습니까? 기개와 절개에 격분하여 나도 모르게 여기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의 이 일은 누가 시킨 것입니까? 가슴이 아프고 아플 뿐입니다. 비록 그러할지라도 김 씨의 처신을 논해 본다면, 명분과 관련이 있으니 다만 망령되고 그릇되다 말할 수만은 없을 따름입니다. 선사가 절해(絶海)에서 스스로 바르게 한 절개와 호적에 올리지도 말고 죽거든 시신을 바다에 던지라던 의리181)는 진실로 천지신이 살펴본 것이고 부녀자와 아이들도 아는 것입니다. 비록 김 씨라 하더라도 또한 어찌 이를 모르겠습니까? 만약 선사의 절의와 바른 말에 확실히 근거하여 통렬하게 변론함이 가면 갈수록 더욱 힘 있어진다면, 선사와 함께하기를 자처함에 어찌 두 사람 모두 유감이 없지 않겠습니까? 어찌하여 한 사람의 속이는 말을 분별하는 것이 어렵다 해서 명분에 죄를 짓는 일을 하는 것입니까? 애석하고 애석합니다. 이것은 이미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원통하고 한스러운 것은, 선사가 인의(認意)를 두었다는 설이 나라 안에 가득하여 곳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의론과 공언에 이르기를, "인의를 둔 것은 모 어른이고, 인의에 대해들은 것은 모공이라고 합니다. 고제라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면, 선생이 반드시 일찍이 인의를 두었을 것이니, 이른바 후사를 의탁한다는 것은 일을 의탁한다"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고, 어리석게 앉아 있다가 서서 배척을 당하니 고가진신(故家搢紳)의 외롭고 맑은 충절과 유문(儒門) 장보(章甫)182)의 높은 행실과 탁월한 식견이 또한 마땅히 수시로 기록하고 논척(論斥)해야 하는데, 수천 명이 말하면 공론이 되고, 오래 전해지면 사실이 되니, 진실로 두렵고 염려스럽습니다. 이 속임수를 분변하지 못하면 선사께서 평생토록 지킨 절의가 없던 일이 될 것이니, 어찌 지하에서 원통하고 치욕스럽지 않겠습니까? 자손과 문인이 무슨 얼굴로 세상에 서겠습니까? 하물며 근래에 김 씨 일이 있은 후에 한층 더욱더 심해져서, 깨끗이 씻어 아무런 죄가 없게 되는 것은 거의 황하를 끌어당기고 태산을 흔드는 것과 같으니, 만약 죽을힘을 다하여 도모하지 않는다면 결코 어려울 것입니다. 생각건대 자손 중에는 오직 애장(哀丈)과 두 형 뿐이고, 문하에는 2,3명에 불과하니, 매우 외롭고 나약합니다. 장차 어찌해야 선사의 마음을 청천(靑天)의 밝은 해처럼 밝혀서 현혹된 전 국민을 크게 깨우치겠습니까. 흥분해서 말을 하다가 여기에 이르니 마음이 한심할 뿐입니다. 저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선사 발밑의 일원으로 한 푼의 은혜를 받았으니 두텁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선사의 무고함이 저를 통해 조금이라도 변론이 된다면 비록 수만 번 죽어 사라지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 보잘 것 없고 말이 가벼우며 문식이 천박하고 짧아서, 비록 이 일에 종사하고 싶더라도 그렇게 할 길이 없으니, 스스로 원통하고 한스러울 뿐입니다.군자가 논의를 세움은 공적이고 바르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또한 변척하는 도는 핵심을 요약하고 확실한 증거를 잡아내야 하며, 절대로 노여운 상태에서 기세를 부려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과중하게 가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변척이 성사되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불복할 것이니, 바라건대 상중에 계신 어른께서는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를 계기로 생각건대, 어른의 정신과 심력, 견식과 의리로 가학을 잇는 것을 큰 책임으로 삼지 않는다면 다시 누구를 기다리겠습니까? 하물며 어른의 창안백발은 다시 옛날 같지 않은데 구구하게 살 계획을 또한 어찌 구할 것이 있겠으며, 구하더라도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경전과 문헌을 연구하여 관통함으로써 존양(存養)의 바탕으로 삼고, 후진을 수습하여 세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것이 지하에 계신 선사의 혼령을 위로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것이 선사께서 부탁하신 뒷일을 감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金容承事, 不幸甚矣.然此人此事, 是誰之使? 一則曰先師曾有認意, 再則曰先師曾有認敎.出自自擔後事人之口, 而謂'是獨坐異聞', 則擧同門千數, 莫敢矯其非.所謂親炙日久者, 乃反朋興而是其言, 一二人孱力單筆, 戞戞乎欲爲之辨白而無其路.若金之親炙未久者, 豈不反生疑惑於先師心事哉? 氣節所激, 自不覺至此, 蓋此人此事, 是誰之使? 痛矣痛矣.雖然若論金之所處, 則有關名分, 不可但道妄錯而已.先師絶海自靖之節, 不譜沈尸之義, 實神祗之所鑑, 婦孺之所知.雖金亦豈不知此? 使其確據先師之節義正言, 痛辨愈往愈力, 則爲師與自處, 豈非兩無憾爲者乎? 奈之何, 只緣一人誣言之難辨, 而行此得罪名分之事? 惜哉惜哉.此則旣然矣, 最所痛恨者, 先師有認意之說, 充滿國中, 在在群議, 處處公言 曰: "有是哉, 某丈也, 彼哉, 某公也.高足人而曰有矣, 則先生必曾有矣, 所謂託後者, 託是事也." 大驚小怪, 坐嗤立排, 故家搢紳之孤忠淸節, 儒門章甫之高行卓識, 亦應劄記之論斥之, 千口成公, 久傳成實, 誠可畏可慮也.此誣不辨, 則先師平生獻靖, 歸於烏有, 豈不寃鬱憤, 恥於泉下乎? 子孫門人, 何顏立於人世乎? 而况近日金事之後, 一節深一節, 一層重一層, 淸洗白脫, 殆若挽河而撼山, 如不盡死力圖之, 決乎難矣.而念在子孫, 惟哀丈與二哥, 在門下, 不過二三人, 孤弱甚矣.將何以明先師之心, 如青天白日, 大破全國人眩惑? 興言至此, 心爲之寒.如侍生之無似者, 亦先師脚下, 一分子受恩, 不可謂不厚矣.使先師之誣, 由侍生而得粗辨, 雖滅死萬萬無恨.但人微言輕, 文識淺短, 雖欲從之, 末由也已, 只自痛恨.君子立論, 務要公正審愼.辨之之道, 又要要約精核捉得眞贜.切戒乘怒動氣, 加人以些子過重, 如此則辨未及成, 而人先不服, 願哀丈之毋忽也.因念以哀丈之精魄心力, 見識義理, 不以紹家學, 爲一大任, 而更待何人? 而况哀丈之蒼顏白髪, 非復昔日, 區區計活, 亦何足求, 求亦難得.只有究貫經籍, 用資存養, 收拾後進, 少補世程, 是爲慰泉下之靈, 是爲擔後事之託也.未審哀丈以爲如何. 친자(親炙) 스승이나 존경하는 분의 가까이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백세 위에서 떨쳐 일어남에 백세 아래에서 이를 듣고 흥기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만들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직접 배운 제자의 경우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奮乎百世之上, 百世之下 聞者莫不興起也, 非聖人而能若是乎. 而況於親炙之者乎〕"라는 말이 나온다. 선사가……절해 간재는 평생을 반일(反日)로 살았고 왜놈들이 싫어서 일본식 호적을 거부하고, 묻힐 곳이 없으면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리라(不籍之事, 沈尸之誓)고 하였다. 장보(章甫)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가 일찍이 공자를 뫼시고 앉았을 때, 공자가 이르기를 "평소에 너희들이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라고 하는데, 혹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居則曰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라고 하자, 맨 처음 자로가 대답하기를 "천승의 나라가 대국의 사이에 속박을 받아 전쟁이 가해지고 인하여 기근이 들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맹하게 할 수 있고, 또 의리로 향할 줄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라고 하였고, 염유가 대답하기를 "사방 6, 7십 리나 혹은 5, 6십 리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은 풍족하게 할 수 있거니와 예악에 대해서는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라고 하였고, 공서화가 대답하기를 "제가 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 작은 집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에서 나온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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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전장에게 답함 을축년(1925) 1월 答靜齋田丈 乙丑元月 옛날에 주자는 적과 강화하는 것은 나라를 그르친다고 여겨 극언하며 매우 한탄했습니다. 나라와 유문(儒門)의 일에 토벌하여 회복하고 변론하여 성토하는 의리가 어찌 다름이 있겠습니까? 우리 어른께서 평소에 음성 오진영이 부친을 무함한 것을 엄하게 배척하신 것이 돌아보건대 어떠했습니까? 이 화합하자는 말이 갑자기 우리 어른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 사람이 과연 위로 선사의 묘184)에 고하고 아래로 사우(士友)에게 사죄하여 흔쾌히 스승을 무함한 죄를 자복한다면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옳습니다. 이제 그가 자복하여 사죄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화해하여 만난다는 말이 있게 되면 이전에 선친을 위하여 무함을 변척한 의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듣건대 우리 어른께서 공론을 묻지 않고 먼저 배편으로 편지를 보내 저들과 만나는 것을 서두르셨다고 하니, 우리 어른의 마음이 이미 처음 먹은 마음을 바꾸면 인가를 지시하셨다는 무함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옛 덕을 간직하여 견고하게 지키면 길하다."185) 하였습니다. 원컨대 우리 어른께서 한가로운 생각을 버리고 옛 의리를 확고하게 지켜서 선친의 도의를 천추에 영원히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昔朱夫子以講和誤國, 蓋嘗極言而深歎.國家儒門之事, 討復辨討之義, 何嘗有異? 吾丈平日斥陰誣親之嚴, 顧何如也? 不圖此言忽出於吾丈之口也.彼果上告斧堂, 下謝士友, 快服誣罪, 則容而受之可也.今不待彼之服謝, 而先有和會之說, 則前日爲親辨誣之義, 安在哉? 聞吾丈不詢公議, 先從船便, 急於會彼, 則吾丈之心, 已變初服, 而認誣之益深也.念到于此惘然若失.易曰: "食舊德, 貞吉", 願吾丈除却閒想, 確守舊義, 永光先人道義於千秋也. 선사의 묘 원문의 '부당(斧堂)'은 봉분(封墳)을 이르는 말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봉분이 당같은 것도 보았고……도끼같은 것도 보았다.〔見封之若堂者矣……見若斧者矣〕"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옛 덕을……길하다 《주역(周易》 〈송괘(訟卦)〉 육삼효의 효사이다. '옛 덕을 간직한다〔食舊德〕'는 것은 전(傳)에 "자신의 본래 분수에 처함을 말한다.〔謂處其素分〕" 하였고, '정(貞)은 "견고하게 스스로 지키는 것을 말한다.〔謂堅固自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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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헌 익유에게 보냄 무인년(1938) 與洪韋軒翼裕 ○戊寅 옛날 을묘년(1915) 겨울 계화도(繼華島)에 있던 날에 존안(尊顔)을 뵈어 세상의 의리를 강론하고 이별하며 글을 지어 주신 일이 어제 일처럼 뚜렷한데, 손가락을 꼽아 세어보니 세월이 벌써 24년이 되었습니다. 존자의 선친 겸와옹(謙窩翁) 어른이 임인년(1902)에 교남(嶠南 영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선친 벽봉공(碧峰公)을 방문하여 한 번 만남에 오랜 친구 같아서 선장(先丈)과 선친이 대화 중에 교분을 맺는 맹세가 있었습니다. 선친이 선장에게 준 시(詩)에 '지기(知己)'라는 글귀가 있었으니, 이를 보면 두 분이 흉금으로 기약한 감개가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계화도에 있었을 때에 이미 집사와 나눈 말인데 집사께서 지금 기억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벗들과 함께 지내는 날부터 평소에 한 생각이 일찍이 집사에게 있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집사는 겸옹의 아들이고 겸옹은 선친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크게 변한 끝에 도로가 많이 막히고 스승이 돌아가신 뒤로4)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은 형세라 어찌할 수 없으나 아울러 편지마저도 통하지 못하여 아프다고 하더라도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실로 저의 허물입니다. 근래에 사문 천하운(千河運)이 방문하여 집사께서 지난 몇 해 모든 것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으로 위로되는 마음 이길 수 없었습니다. 또 경소(敬所 임경소(林敬所))의 문집을 간행하여 길이 전해지도록 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의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더욱 우러르게 되었습니다. 다만 경소의 문집을 나누어 배송하여 온 나라에 두루 했는데 유독 저만 빠졌으니, 전날 강론했던 우의는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시는가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이 요즘 사문의 일로 음성 오진영 무리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성인이 "반드시 살펴야 한다." 하신 교훈5)을 소홀히 하셔서 갑자기 절교 당함을 면하지 못한 것일까요? 이로 보나 저로 보나 부끄러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우러러 여쭐 것은 오직 겸와옹과 벽봉공 두 분의 당시의 친분을 생각하시는가 일 뿐입니다. 만일 끝까지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부디 답장을 해 주시겠는지요? 昔在乙卯冬, 華島之日, 得拜尊顏, 講世誼, 贈別章, 歷歷如昨日事, 而屈指星霜, 忽忽爲二十四周.尊先丈謙窩翁, 壬寅歲, 嶠南歸路, 訪鄙先人碧峰公, 一靣如舊, 先丈與先人語有定交之誓.先人贈先丈詩, 有知己之句, 觀此, 可以知兩翁襟期之所感者深矣.此在華島日, 已說與執事者, 而未知執事今能記存否.鄙生則自盍簪以後, 居常一念, 未嘗不在於執事者, 以執事之爲謙翁子, 而謙翁之爲先人友故也.然滄桑之餘, 道路多梗, 山頹之後, 會合無梯, 勢也無柰.而并與魚鴈而不通, 痛痒而無關者, 實澤述之咎也.近得千斯文河運委訪, 以知執事年來諸節之安, 則固已慰不自勝.又聞印敬所稿而壽傳, 則好義之心, 尤可仰也.但敬稿分送, 殆遍國中, 而獨漏鄙生, 則前日所講之誼, 意其不能記存矣.不然, 此漢方以師門事, 爲陰衆所惡, 故不免忽於聖人必察之訓, 而遽爾絶之耶? 以此以彼, 慙無以爲言, 猶一仰問者, 亦惟以謙碧兩翁當日之故爾, 如終不棄, 幸賜巍覆否? 스승이 돌아가신 뒤로 원문의 '산퇴(山頹)'는 태산(泰山)이 무너졌다는 뜻으로 스승이나 철인의 죽음을 이른다. 공자가 자신이 별세할 꿈을 꾸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짚은 채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쓰러지니 철인도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였는데, 그 후 7일 동안 병들어 누웠다가 돌아가신 데서 유래하였다. 성인이……교훈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뭇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 뭇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피라.[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라고 한 것을 가리키는데, 이를 인용하여 상대가 혹시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말만 듣고 절교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뜻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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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족제 병재 와 벗 전현광 일중 과 함께 벗 손당촌 두선 의 별장을 방문하고 4수 同藕堂族弟【柄梓】玄狂田友【鎰中】 訪堂村孫友【斗宣】庄【四首】 가을날 여관에서 온갖 감회가 생겨서 秋天逆旅百懷生새 시에 흩어 넣으니 초성172)이 되네 散入新詩作楚聲언뜻 이는 바람에 마른 연꽃 붉게 시들고 紅謝敗蓮風乍動막 개인 비에 이른 벼는 노랗게 익었네 黃登早稻雨初晴돌아서 찾은 반곡엔 샘이 여전히 맑고 轉尋盤谷泉猶洌멀리 바라본 화산엔 달이 유독 밝구나 遙望華山月獨明초라한 신과 두건을 그대는 비웃지 마소 草草舃巾君莫笑세속을 벗어나 다시 자유롭게 다닌다오 脫塵還是自由行십순을 더위에 시달려 창계에 누웠는데 十旬病暑臥滄溪청풍이 홀연 서쪽에서 불어 나를 일으키네 起我淸風忽自西매미 울음소리 들리는데 구름 산이 높고 蟬一聲邊雲嶂屹갈매기 높이 오르니 바다 하늘이 낮구나 ?千翔外海天低시재는 꾸민 치랍173)이라 끝내 부끄러운데 詩才終愧粧梔蠟예를 어찌 더 높여서 서계를 대접하는가174) 禮數何增供黍鷄느지막에 돌아가려 했으나 가지 못하고 向晩欲歸還未得이미 풀 길을 보니 이슬이 촉촉하구나 已看草路露凄凄큰 돼지의 탐욕이 산골짜기 같으니175) 封豕貪婪似壑溪맑기를 기다리기 적합한 곳176)은 서쪽 바다네 待淸合處海之西크게 펴는 것은 굽힌 데서 비롯됨을 알지니 大伸須識曾由屈높은 솜씨는 되레 낮은 듯함을 누가 알리오 高手誰知反若低낙심하여 흰 머리 재촉하지 말지니 莫遣灰心催雪鬢또 술잔177) 기울이고 누런 닭을 잡으리라 且傾綠蟻剝黃鷄긴 세월 세상을 사는 게 삼려178)의 원이니 長年度世三閭願가을 바람에 칡베옷 썰렁해도 상관 없다네 不妨秋風綌袖凄만곡179)을 담은 인호는 물이 쌓여 흐르지 않는데 萬斛仁湖積不流주인이 집을 지어 맑고 그윽함 독차지했네 主人卜築擅淸幽해가 지는 풀 언덕에 누런 송아지 돌아가고 日斜草岸歸黃犢비가 그친 이끼 바위에 흰 물새 내려 앉네 雨歇苔機180)下白鷗땅이 외져 문고리를 두드리는 객이 드물고 地僻客稀敲戶鑰산이 낮아 달이 주렴고리에 쉽게 떠오르네 山低月易上簾鉤만년에 도리어 다시 시율이 공교로워지니 暮年轉復工詩律스스로 즐기고 이 밖엔 구하는 게 없구나 自樂應無此外求 秋天逆旅百懷生, 散入新詩作楚聲.紅謝敗蓮風乍動, 黃登早稻雨初晴.轉尋盤谷泉猶洌, 遙望華山月獨明.草草舃巾君莫笑, 脫塵還是自由行.十旬病暑臥滄溪, 起我淸風忽自西.蟬一聲邊雲嶂屹, 鷗千翔外海天低.詩才終愧粧梔蠟, 禮數何增供黍鷄.向晩欲歸還未得, 已看草路露凄凄.封豕貪婪似壑溪, 待淸合處海之西.大伸須識曾由屈, 高手誰知反若低.莫遣灰心催雪鬢, 且傾綠蟻剝黃鷄.長年度世三閭願, 不妨秋風綌袖凄.萬斛仁湖積不流, 主人卜築擅淸幽.日斜草岸歸黃犢, 雨歇苔機1)下白鷗.地僻客稀敲戶鑰, 山低月易上簾鉤.暮年轉復工詩律, 自樂應無此外求. 초성(楚聲) 초사(楚辭)와 같은 말인데, 전국 시대 말년에 초(楚) 나라 지방에서 일어난 문학은 비애(悲哀)와 청신(淸新)한 것을 주로 하였다. 치랍(梔蠟) '치모랍언(梔貌蠟言)'의 줄임말로, 실상은 없이 겉만 꾸민 것을 말한다. 유종원(柳宗元)의 〈편고(鞭賈)〉에 "옛날 어떤 부자가 노랗고 윤이 나는 채찍을 좋아하여 많은 돈을 주고 샀는데, 뒤에 끓는 물에 닿게 되자 형편없는 본색이 드러났다. 그제야 가짜임을 알았는데 노란 것은 치자(梔子) 물을 들인 것이고, 윤이 난 것은 밀납을 칠한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서계를 대접하는가 융숭하게 손님을 대접한다는 뜻이다. '서계(黍鷄)'는 기장밥과 닭고기로, 《논어》 〈미자(微子)〉에 "삼태기를 멘 장인(丈人)이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를 자기 집에 초청하여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였다.[殺鷄爲黍而食之.]"라고 하였다. 큰……같으니 일제의 탐욕이 끝이 없다는 뜻이다. 원문의 '봉시(封豕)'는 식욕(食慾)이 왕성한 큰 돼지로 탐욕스러운 일본을 비유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4년조에 "오(吳)나라가 큰 돼지와 긴 뱀처럼 상국을 잠식해 가는데, 그 잔인함이 초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다.[吳爲封豕長蛇, 以荐食上國, 虐始於楚.]"라고 하였다. '학계(壑溪)'는 산속의 골짜기인데, 채워지지 않는 것으로 탐욕을 비유한다. 《남제서(南齊書)》 권25 〈원숭조열전(垣崇祖列傳)〉에 "빈번히 발탁되어 올라가면서도, 계학처럼 만족할 줄 몰랐다.[頻煩升擢, 谿壑靡厭.]"라는 말이 나온다. 맑기를……곳 태평시대가 되기를 기다리기에 합당한 곳은 일제를 피해 있기 좋은 곳을 말한다. 술잔 원문의 '녹의(綠蟻)'는 술 표면에 떠오른 개미 형상의 녹색의 거품으로, 술을 비유한 것이다. 삼려(三閭)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을 말한다. 조정에서 삼려대부(三閭大夫)로 있다가 모함을 받고 쫓겨난 뒤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다. 만곡(萬斛) '곡(斛)'은 용량의 단위로, 만곡은 많은 물을 가리킨 것이다. 機 磯의 잘못인 듯하다. 機 磯의 잘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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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옥산정사184) 광산 김씨 묘재 의 시에 차운하다 次玉山精舍【光山金氏墓齋】韻 새 건물을 거듭 옛 터를 따라 완성했으니 新築重因舊址成당일에 높은 이름 의촌185)을 생각하네 義村當日憶高名헌루는 지상에 솟아 보는 눈을 놀래키고 軒樓聳地驚瞻視호악은 광채를 더해 뜻과 정을 보내오네 湖岳增光送意情효자의 정려문엔 삼강의 행실이 높고186) 風樹烏頭三行卓묘소187)에 진설한 오제188)의 술이 맑구나 酒陳馬鬣五齊淸옥산189)이란 훌륭한 액호에 감흥 많아지니 玉山嘉號多興感유문에 강송하는 소리가 응당 이어지리라 應繼儒門講誦聲 新築重因舊址成, 義村當日憶高名.軒樓聳地驚聸視, 湖岳增光送意情.風樹烏頭三行卓, 酒陳馬鬣五齊淸.玉山嘉號多興感, 應繼儒門講誦聲. 옥산정사 1661년(현종2)에 의촌(義村) 김남식(金南式)이 짓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모촌에 있다. 의촌(義村) 김남식(金南式, 1617~1681)의 호이다. 자는 군언(君彦),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淸州)에서 적병을 격파하고 남한산성으로 가려다,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와 고부 계령산 아래 집을 짓고 옥산정사라 편액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증직되고 충신의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효자의……높고 효성으로 정려가 세워진 것을 말한 것이다. 원문의 '풍수(風樹)'는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 다시는 봉양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한다. 여기서는 효성을 뜻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오두(烏頭)'는 흔히 오두적각(烏頭赤脚)으로 쓰이는데, 윗부분은 검고 기둥은 붉은색으로 된 정려문을 말한다. '삼행(三行)'은 삼강의 행실을 가리키는 듯한데, 옥산정사에는 1828년에 나라에서 내린 삼강문(三綱門)이 있다. 묘소 원문의 '마렵(馬鬣)'은 본래 말갈기 모양으로 만든 봉분(封墳)의 모양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무덤을 지칭한다. 《예기》 〈단궁(檀弓)〉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예전에 공자께서 '내가 보건대, 봉분을 당처럼 쌓은 것이 있고, 제방처럼 쌓은 것이 있으며, 하나라 때의 가옥처럼 쌓은 것이 있고, 도끼처럼 쌓은 것이 있다. 나는 도끼처럼 쌓는 것을 따르겠다.'라고 하셨는데, 바로 세속에서 이른바 말갈기 봉분이라고 하는 것이다.[昔者, 夫子言之曰, 吾見封之若堂者矣, 見若坊者矣, 見若覆夏屋者矣, 見若斧者矣, 從若斧者焉, 馬鬣封之謂也.]"라고 하였다. 오제(五齊) 술을 말한다. 본래 고대에 술의 맑은 정도에 따라서 구분한 다섯 등급으로, 종묘(宗廟) 등의 대제(大祭)에 사용하였다. 옥산(玉山) 중국 강서성(江西省) 신주(信州)에 있는 산 이름인데, 주희(朱熹)가 옥산(玉山)에 머물 때 이곳의 승사(僧舍)에서 주자가 제자들과 강론한 적이 있었다. 《朱熹集 卷74 玉山講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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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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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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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중추에 내린 산 비 2수 仲秋 山雨【二首】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많지는 않으니 颯颯蕭蕭下不多주렴 사이로 우뚝한 푸른 산이 보이네 簾間猶見碧山峨게 잡는 계곡 늙은이는 망을 더디 걷고 捉螯溪老遲收網참새 쫓는 밭 아이는 도롱이도 아니 썼네 驅雀田童不用蓑콩 열매는 장차 돌처럼 단단해지고 豆實將成堅似石무 줄기는 곧 창처럼 억세진 않겠네 葑莖乍免勁如戈숲 창가엔 가을 슬퍼하는 객이 있어 林牕猶有悲秋客저물녘에 들으니 마음이 어떠하겠나 入暮聽來意若何가랑비 내려 가을색 더 짙어지는데 秋色還因小雨多강남의 만목들은 높은 산에 푸르네 江南萬木碧嵯峨성긴 빗소리가 높이 읊는 책상에 들리고 疏聲乍動高吟榻가는 빗발이 홀로 낚시하는 도롱이 적시네 細脚輕沾獨釣蓑늙은 제비의 마음193)은 나그네와 같고 老鷰情懷同寄旅쇠잔한 매미 신세는 전란에 병이 든 듯 殘蟬身勢病干戈저물녘 창 밖에는 밝은 석양이 비치니 晩來牕外明夕照서산의 삽상한 기운이 다시 어떠한가194) 爽氣西山復若何 颯颯蕭蕭下不多, 簾間猶見碧山峨.捉螯溪老遲收網, 驅雀田童不用蓑.豆實將成堅似石, 葑莖乍免勁如戈.林牕猶有悲秋客, 入暮聽來意若何.秋色還因小雨多, 江南萬木碧嵯峨.疏聲乍動高吟榻, 細脚輕沾獨釣蓑.老鷰情懷同寄旅, 殘蟬身勢病干戈.晩來牕外明夕照, 爽氣西山復若何. 늙은 제비의 마음 가을이 되어 제비가 남쪽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말한다. 서산의……어떠한가 한가한 흥취가 참으로 좋다는 뜻이다. 진(晉) 나라 왕자유(王子猷)가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때, 환온이 "경은 부(府)에 오래도록 있었으니 일을 잘 처리할 줄로 믿는다."고 하니, 자유가 업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홀(笏)을 턱에 괴고는 "서산이 아침이 되면 상쾌한 기운을 보낸다.[西山朝來, 致有爽氣.]"라고 응대한 고사가 있다. 《世說新語 簡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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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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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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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먹을 것을 도모하는 세상 사람들을 한탄하며 歎世人謀食 일이 크든 작든 걱정 근심하는 것은 大焉惙惙小焉愁예나 지금이나 잠시도 그치지 않네 古往今來不暫休모두가 당시의 한 치 살갗을 기르니 總爲當時寸膚養어찌 군자처럼 종신토록 걱정하겠는가432) 豈如君子終身憂집안에 오래 전할 재부는 원래 없는 거고 元無積富傳家久세상에 길이 남길 좋은 명성은 조금 있다네 差可芳名永世留공자433)의 신성한 비결434)을 간파해 보면 看取宣尼神聖訣도와 식을 나누어 도모할 바를 제시했지 分將道食示攸謀 大焉惙惙小焉愁, 古往今來不暫休總爲當時寸膚養, 豈如君子終身憂?元無積富傳家久, 差可芳名永世留.看取宣尼神聖訣, 分將道食示攸謀. 군자처럼 종신토록 걱정하겠는가 《맹자》 〈이루하〉에,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군자는 종신토록 근심하는 것이 있고, 일시적인 걱정은 없다. 종신토록 근심할 것은 있으니, 순 임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순 임금은 천하에 법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하거늘, 나는 아직도 향인을 면치 못하니, 이것이 곧 근심스러운 것이다. 근심스러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순 임금과 같이 할 뿐이다.[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 乃若所憂則有之. 舜人也. 我亦人也.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 憂之如何? 如舜而已矣.]"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孔子) 원문의 "선니(宣尼)"는 공자의 별칭으로, 한 평제(漢平帝) 원시(元始) 원년에 공자를 추시(追諡)하여 포성선니공(褒成宣尼公)이라 하였다. 신성한 비결(祕訣)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도를 행하려고 꾀할 뿐 먹을 것을 꾀하지는 않는다. 농사를 지어도 굶주림이 그 속에 있고, 학문을 해도 녹이 그 속에 있는 법이다. 그래서 군자는 도가 행해지지 않을까 걱정할 뿐이요, 가난할까 걱정하지는 않는 것이다.[君子謀道不謀食, 耕也餒在其中矣, 學也祿在其中矣, 君子憂道不憂貧.]"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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