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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구와 이관의 자에 대한 설 【1925년】 崔以求以貫字說 【乙丑】 공자가 말하기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하였다.171)"라고 하였으니, 민렬(敏烈)로 이름을, 이구(以求)로 자(字)를 지은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말하기를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理)로써 만 가지 일을 관통한다.172)"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일섭(一燮)으로 이름을, 이구(以貫)로 자를 지은 것이다.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하여도 법도를 넘지 않게 된173) 공이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마음과 이치에 간격이 없는 묘함이다.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체(體)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용(用)이며,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성(誠)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경(敬)이며,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한 것은 돈화(敦化)174)이고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천류(川流)175)이다.그러나 부지런히 구하면 상하로 통하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면 지극한 곳에 나아가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구하는 데 노력하여 점차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는 데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지런히 구하는 것은 시작하는 일이고 한 가지 이치로 관통하는 것은 마치는 일이니, 시작과 끝이 서로 돕는 것이 사람 중에 형제가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제 형을 이구로, 동생을 이관으로 한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느냐. 서로 의지하는 형제로서 서로 도움을 주는 학문을 익힌다면 마땅히 이르지 못할 이(理)가 없을 것이니, 두 최군이여 힘써 노력하라! 孔子曰: "好古敏以求之.", 名敏烈而字以求者此也. 又曰: "吾道一以貫之.", 此一燮名而以貫字也. 蓋敏求者心不踰矩之功也, 一貫者心理無間之妙也, 一貫體, 敏求用也, 一貫誠, 敏求敬也, 一貫敦化, 敏求川流也. 然敏求通乎上下, 一貫造其極至, 學者當用力乎敏求而馴致乎一貫也. 然則敏求始之事, 一貫終之事, 始終相資, 有如人之兄弟相須, 今兄以以求, 弟以以貫者, 不亦宜乎? 以相須之兄弟講相資之學, 宜無不至之理, 二崔君勖哉! 옛것을 …… 구하였다 《논어》 〈술이(述而)〉에서 공자가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안 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하였다. 우리의 …… 관통한다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삼아!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理)로써 만 가지 일을 관통한다.[參乎! 吾道一以貫之.]"라고 하였다. 마음이 …… 된 공자가 《논어》 〈위정)〉에서 "70세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돈화(敦化) 《중용장구》 제30장에 "큰 덕은 화를 돈후하게 한다.[大德敦化]"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천류(川流) 《중용장구》 제30장에 "작은 덕은 냇물의 흐름이다.[小德川流]"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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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사람들에게 보임 【1939년】 示家衆 【己卯】 이러한 큰 흉년을 당하여 구학(溝壑)335)의 걱정은 사람들의 관심이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참상은 곳곳에서 눈에 가득하니 죽고 사는 것은 큰 문제이다. 보통 사람의 마음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자가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있거니와, 백성은 신의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336)"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신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도이니, 한 집안으로 말하면 자식은 효도하고 어버이는 인자하며, 부부는 의롭고 형제는 우애하는 것이다. 지금 보건대 마을의 무지한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먼저 그 마음이 흔들려 부모, 형제, 처자를 버리고 스스로 생계의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설령 먹을 것을 구하여 살더라도 이미 사람답게 되는 도를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세상에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는가. 신의가 없이 산다면 살아도 죽은 것과 같고, 신의를 지켜 죽으면 죽어도 살아 있는 것과 같다.원하건대 우리 집안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굳건히 정하여 효자(孝慈)와 우의(友義)를 명맥(命脈)으로 삼고, 한 방에 모여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뿌리, 줄기, 껍질, 잎사귀[根莖皮葉]로 식품[食料]을 만들어라. 그래서 차라리 신의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신의가 없이 사는 것을 구하지 말라. 게다가 죽고 사는 것에는 명이 있으니, 모여 산다고 하여 반드시 모두 죽는 것도 아니고, 나뉘어 흩어진다고 반드시 모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찌 괴롭게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신의가 없는 것을 범하여 끝내 신의를 지켜 사는 두 가지 얻음[兩得]을 잃어버리겠는가. 그 또한 두려워하고 유념해야 할 것이다. 値此大無, 溝壑之憂, 人人關心, 流離之慘, 在在滿目, 死生大矣. 常情, 安得不然? 然孔子不云乎?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信者何? 人所以爲人之道, 以一家而言, 則子孝父慈夫婦義兄弟友是也. 今觀鄕里無知之人, 先動其心於死生之際, 棄父母兄弟妻子, 自求就食之方, 政使得食而生, 已失所以爲人之道, 何以立於世乎? 蓋無信而生則生而猶死, 有信而死則死而猶生. 願我家衆, 深究此理, 堅定其心, 以孝慈友義爲命脈, 聚首一室, 同心協力, 以根莖皮葉作食料, 寧可有信而死, 毋求無信而生也. 且死生有命, 聚居而未必皆死, 分散而未必皆生, 則何苦而先犯生而猶死之無信, 而竟失有信而生之兩得矣乎? 其亦惕念乎哉! 구학(溝壑) 흉년과 기근 때문에 굶어서 도랑에 뒹굴어 죽는다는 말이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흉년과 기근에 군주의 백성 가운데 노약자들은 시신이 구렁에 뒹굴고 장성한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간 자들이 몇천 명이나 된다.[凶年饑歲, 君之民老弱, 轉于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라고 맹자가 말한 데에서 나왔다. 예로부터 …… 없다 《논어》 〈안연(顔淵)〉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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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당 이 충숙공337)이 지은 매죽당338) 부군의 묘갈명을 읽고 【1942년】 讀雙柏堂李忠肅公所撰梅竹堂府君墓碣銘 【壬午】 삼가 생각건대 정릉(靖陵 중종)의 시대에 정암(靜菴) 조 선생(趙先生 [조광조(趙光祖)])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현인(賢人)들이 무리지어 나와 지치(至治 지극한 정치)를 일으킬 것을 기대하였다. 당시에 노천(老泉) 김공(金公 김식(金湜)) 같은 사람이 실로 정암과 덕과 공이 같았는데, 부군(府君)이 그들에게 천거를 받았으니, 함께 무리지어 나간 현인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화(禍)가 일어나자 김공이 또 제일 먼저 정암과 함께 걸렸는데, 부군은 애초에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암, 노천과 함께 화를 입지 않았으니, 이에 기미를 보고 편안히 물러난 한 가지 일이 도리어 혹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부군은 처음부터 한결같이 은자(隱者)였으니, 가첩(家牒)에서 '기묘사화(己卯士禍) 뒤에 은거하여 자폐(自廢)했다.'라고 기록한 것은, 이때부터 속세의 생각을 영원히 끊고 아울러 교유(交遊)를 그만둔 것으로써 말한 것이다. 묘갈명(墓碣銘) 서(序)에서 김공이 천거한 것만 말하고 기묘사화를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초연히 홀로 면했다는 뜻을 드러내려고 한 것임을 말할 필요가 없으니, 보는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竊惟靖陵之世, 靜菴趙先生之當朝也, 群賢彙征, 期興至治. 時則有若老泉金公, 實與靜菴同德同功, 而府君爲其所薦, 則其爲可與同一彙征之賢審矣. 及其禍作, 金公又首與靜菴同嬰, 而府君初不出仕. 故不與靜泉同禍, 于以見見機恬退一著, 反或優焉. 蓋府君從初一隱者, 家牒所記己卯士禍後, 隱居自廢者, 以其從此永斷世念, 幷息交遊而言也. 銘序只言金公薦, 而不言己卯者, 所以著超然獨免之意, 不待於言也, 覽者詳之. 쌍백당 이 충숙공 이세화(李世華, 1630~1701)이다. 쌍백당(雙柏堂)은 그의 호이다. 충숙(忠肅)은 시호이고 자는 군실(君實)이다.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후창집(後滄集)》 권12 〈분재 문중에 보냄[與粉齋門中]〉에서 후창은 "매죽당공의 묘갈은 외손인 명현 쌍백당의 손에서 나왔다."라고 말하였다. 매죽당 김종(金宗, 1471~1538)이다. 매죽당은 그의 호이고 자는 사앙(士仰),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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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의 음과 뜻 【1944년】 告字音義 【甲申】 선사(先師 간재)는 평소에 《논어》 곡삭장(告朔章) 대문(大文)339) 아래 소주(小註)의 고고독반(告古篤反)340)에 근거하여 말하기를 "곡삭은 사당에 고유(告由)하는 예이니, 제사 지낼 때 축문에서 감히 밝게 고한다[敢昭告]의 '고(告)'자의 음도 마땅히 이처럼 읽어야 한다. 무릇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고할 때의 고는 모두 마땅히 이처럼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하에 들어온 선비들이 이를 똑같이 준행(遵行)하였다.내가 일찍이 요왈장(堯曰章)의 '감히 거룩한 상제께 밝게 아룁니다.341)'의 '고'자를 들어서 질문하기를 "이는 다만 축사(祝辭)를 가리킬 뿐이니 예를 행할 것을 청하는[請行禮] 것과 비교되지 않고, 고독반의 주도 없으니 아마도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곡삭장에 이미 이러한 주(註)가 있으니 무릇 높이는 대상에 대해서 알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이를 본받은 것이니, 어찌 반드시 다시 주를 달아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렇다면 붕우는 동료인데, 충곡선도장(忠告善道章)342)에서 '공독반(工毒反)'으로 주를 단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붕우는 마땅히 서로 공경해야 하니, 어찌 높이는 대상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답하기를 "붕우가 높이는 대상이라면 곡삭장에 이미 이러한 주가 있어 알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이를 본받았는데, 다시 '공독반'으로 주를 단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하니, 선사가 다시 답하지 않았고, 그때의 분위기가 엄해서 감히 다시 묻지 못하였다.물러 나와 여러 《자서(字書)》와 경전을 조사해보았는데 알지 못하여 의혹만 많아졌고, 이 때문에 의심을 쌓은 지가 30년이 되었다. 《규장전운(奎章全韻)》343)에서는 '고'자에 대해 '알리다[報], 아뢰다[啓]는 고도절(古到切)로, 청하다[請], 보이다[示]는 고옥절(古沃切)'로 주를 달았다. 《옥편(玉篇)》과 《자전(字典)》에서는 '보(報)'와 '계(啓)'는 같고, 말미나 휴가를 청하다[請告]는 또한 거성(去聲)이고 배알하기를 청하다[謁請]는 입성(入聲)인데, 〈곡례(曲禮)〉 출필곡(出必告)344)의 글을 인용하여 이를 증명하였으니, 이는 높이는 대상에게 고하여 입성이 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보'와 '계'에 이르러서는 《자전(字典)》에서 이미 '위에 고하는 것은 곡이라 하고 (위에서 아래로) 아랫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고(誥)이다.'라고 한 《광운(廣韻)》345)의 설을 인용하고, 또 《서경》의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346)'와 《시경》의 '사씨에게 여쭈었다.347)'라는 것을 인용하여 이를 증명하였으니, 이는 또한 높이는 대상이 아닌가. 그런데도 거성이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가령 《시경》 〈남산(南山)〉에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 이미 부모에게 아뢰었는데348)……'라고 한 것의 입성은 진실로 높이는 대상이다. 그러나 간모(干旄)〉에 '무엇을 말해 주려는가.349)'라고 한 것은 오히려 대부에게 적용한 것이라고 이를 수 있고, 그 나머지 가령 〈고반(考槃)〉에 '(남에게) 말하지 않기로 길이 맹세하네.350)'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은 어찌 높이는 대상이겠는가?또 예컨대 〈기취(旣醉)〉에 '공시(公尸)가 좋은 말로 고하였다.351)'와 《주역》 〈몽괘(蒙卦〉)에 '처음 묻거든 알려 주지만, 번독하면 일러 주지 않는다.352)'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신이 인간에게 알리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러주는 경우인데도 입성이 되었다. 〈갈담(葛覃)〉에 '사씨에게 여쭈었다.353)'와 〈강한(江漢)〉에 '문인(文人)에게 아뢰었다.354)'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아뢰는 경우인데도 거성이 되었으니, 무엇 때문인가?《서경》 〈우공(禹貢)〉의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355)', 〈탕고(湯誥)〉의 '모두 죄가 없음을 상하의 신기에게 하소연하였다.356)'와 '상천과 신후에게 밝게 아뢰었다.357)', 〈반경(盤庚)〉의 '너희들은 어찌 나에게 고하지 않는가.358)'와 '그대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크게 우리 고후에게 고한다.359)', 〈서백감려(西伯戡黎)〉의 '조이가 두려워하여 왕에게 달아나 아뢰었다.360)', 〈무성(武成)〉의 '황천과 후토에 고유한다.361)', 〈금등(金縢)〉의 '태왕, 왕계, 문왕에게 고유하였다.362)'와 '내가 우리 선왕에게 고할 말이 없을 것이다.363)', 〈입정(立政)〉의 '천자의 자리를 이은 임금께 고합니다.364)'와 '마침내 감히 그 임금에게 고하고 가르쳤다.365)'와 '모두 유자인 왕에게 아뢰었습니다.366)', 〈강왕지고(康王之誥)〉의 '감히 천자께 공경히 아룁니다.367)', 《주역》 〈익괘(益卦)〉의 '공에게 아뢸 때 규를 쓰듯 하리라.368)'와 '공에게 고함에 따를 것이다.369)', 《논어》의 '애공(哀公)에게 고하였다.370)'와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다.371)', 《맹자》의 '자로가 이 말을 고하였다.372)'와 '유사 가운데에 아뢴 자가 없었다.373)'와 '제가 인군께 아뢰었습니다.374)'와 '공도자가 이 말을 아뢰었다.375)'와 '진자가 시자의 말을 아뢰었다.376)'와 '고자가 이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377)'와 '서자가 이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378)'와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아뢰었다.379)'라고 한 등속은, 어떤 경우에는 임금과 스승에게 고하고, 어떤 경우에는 부조(父祖)와 천지에 고하여 그 높이는 대상이 이보다 막중함이 없는데, 아울러 모두 거성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이 또한 마땅히 '곡삭장의 주를 예로 삼아 반드시 주를 달 필요가 없다.'라고 말해야 하겠는가. 아마 이러한 이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구구한 내가 주제넘게 생각하기를 "'고'자의 거성과 입성은 원래 상하에 구분이 없으나, 다만 경전에서 이를 찾는다면 일삼을 것이 없는 것을 하는 것이다. '곡삭', '출곡', '충곡'은 '청하다', '보이다'의 뜻이고, 《시경》과 《주역》에서의 입성은 같은 운(韻)을 취하고 다른 뜻은 없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원래 상하에 구분이 없다."라고 여긴다. 그러니 축문에서 반드시 입성이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삼가 의심스러운 것을 기록하여 뒷날 다시 더욱 사색하여 마침내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을 자료로 삼노라. 先師平日據《論語》告朔章大文下小註告古篤反謂: "告朔是告廟之禮, 則祭祀祝文敢昭告之告字音, 當如此讀之, 凡下告上之告, 皆當如此也". 故及門之士, 遵行無異. 澤述嘗擧堯曰章敢昭告于皇皇后帝之告字以質之曰: "此爲直指祝辭, 非但請行禮之比, 而無古篤反之註, 恐不必然.". 先師曰: "告朔章旣有此註, 凡於所尊可知, 餘皆倣此, 豈必再註?". 對曰: "然則朋友是同儕也, 而忠告善道章註, 以工毒反, 何也?", 先師曰: "朋友當相敬, 豈非所尊乎?". 對曰: "朋友是所尊, 則告朔章旣有此註可知, 餘皆倣此, 而復以工毒反註之, 何也?", 先師不復答, 于時嚴不敢再問. 退而考諸《字書》經傳之間, 則有未達而滋惑者, 庸是蓄疑爲三十年矣. 《奎章全韻》告字, 註報也啓也古到切, 請也示也古沃切. 《玉篇》, 《字典》, 報也啓也同, 而請告也亦去聲, 謁請也則入聲, 而引〈曲禮〉出必告之文而證之, 此爲告所尊而入聲則然矣. 至於報也啓也, 《字典》旣引《廣韻》告上曰告, 發下則誥之說, 又引《書》之告厥成功, 《詩》之言告師氏而證之, 此亦非所尊乎? 而去聲何也? 若乃《詩》 〈南山〉之必告父母, 旣曰告之之入聲, 固爲所尊, 〈干旄〉之何以告之, 尙可謂用於大夫之尊, 其餘若〈考槃〉之永矢不告, 何所尊乎? 又如〈旣醉〉之公尸嘉告, 《易》 〈蒙〉之初筮告, 瀆則不告, 是神告於人, 則上之告下者而爲入聲. 〈葛覃〉之言告師氏, 〈江漢〉之告于文人, 是下之告上者而爲去聲, 何也? 《書》 〈禹貢〉之告厥成功, 〈湯誥〉之幷告無辜于上下神祇, 敢昭告于上天神后, 〈盤庚〉之汝曷不告朕, 乃祖乃父, 告我高后, 〈西伯戡黎〉之祖伊奔告于王, 〈武成〉之告于皇天后土, 〈金縢〉之乃告太王王季文王, 我無以告我先王, 〈立政〉之告嗣天子王, 乃敢告敎厥后, 咸告孺子王, 〈康王之誥〉之敢敬告天子, 《易》 〈益〉之告公用圭, 告公從, 《論語》之告於哀公, 不敢不告, 子路以告, 《孟子》之有司莫以告, 克告於君, 公都子以告, 陳子以時子之言告, 高子以告, 徐子以告, 告齊宣王之類, 或爲告君告師, 或爲告父祖告天地, 其爲所尊莫重於此, 而幷皆爲去聲, 何也? 凡此亦當曰以告朔章註爲例, 而不必再註乎? 竊恐無是理矣. 故區區妄意以爲"告字去入, 元無分於上下, 但以經傳求之, 則行其所無事矣. 告朔出告忠告, 請也示也之義, 《詩》, 《易》之入聲者, 取其同韻而無他意, 其餘皆元無分於上下者也.". 然則祝文之必作入聲讀, 吾斯之未能信者, 謹記所疑, 爲異日更加思索, 卒悟師敎之資焉. 《논어》 …… 대문(大文) 《논어》 〈팔일(八佾)〉에 "자공이 초하룻날 (사당에) 고유하면서 바치는 희생 양을 없애고자 하였다.[子貢欲去告朔之餼羊.]"라는 말이 나오는데, 대문은 이 부분을 말한다. 고고독반(告古篤反) '고(告)'는 '고(古)'와 '독(篤)'의 반절음(反切音)으로, '곡'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 감히 …… 아룁니다 《논어》 〈요왈(堯曰)〉에 "나 소자 이는 검은 희생을 써서 감히 거룩한 상제께 밝게 아룁니다.[予小子履, 敢用玄牡, 敢昭告于皇皇后帝.]"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충곡선도장(忠告善道章) 《논어》 〈안연(顔淵)〉에서 공자가 "충심으로 말해주고 잘 인도하되 불가능하면 그만두어서 스스로 욕되지 말게 해야 한다.[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無自辱焉.]"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규장전운(奎章全韻)》 1796(정조 20)년에 왕명에 따라 이덕무(李德懋) 등이 규장각에서 펴낸 운서(韻書)이다. 〈곡례(曲禮)〉 출필곡(出必告)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무릇 남의 자식된 자는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뵙는다.[夫爲人子者, 出必告, 反必面.]"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광운(廣韻)》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고대 운서이다. 원명은 《대송중수광운(大宋重修廣韻)》으로, 송대(宋代:960~1279)의 진팽년(陳彭年)과 구옹(邱雍) 등이 당시에 유행하던 운서와 자서를 종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의 …… 아뢰었다 《서경》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임금에게) 그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禹錫玄圭, 告厥成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사씨에게 여쭈었다 《시경》 〈주남(周南) 갈담(葛覃)〉에 "사씨에게 여쭈어, 친정에 갈 것을 말하라고 했노라.[言告師氏, 言告言歸.]"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반드시 …… 아뢰었는데 《시경》 〈제풍(齊風) 남산(南山)〉에 "아내를 취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 이미 부모에게 아뢰었는데 어찌하여 또 (욕심을) 극에 달하게 하는가.[取妻如之何? 必告父母. 旣曰告止, 曷又鞠止?]"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무엇을 …… 주려는가 《시경》 〈용풍(鄘風) 간모(干旄)〉에 "저 아름다운 그대여, 무엇을 말해 주려는가.[彼姝者子, 何以告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말하지 …… 맹세하네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에 "홀로 자다 잠 깨어 누워, 즐거움 남에게 말 않기로 길이 맹세하네.[獨寐寤宿, 永矢不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시(公尸)가 …… 고하였다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마침을 잘함이 시작이 있으니, 공시가 좋은 말로 고하였다.[令終有俶, 公尸嘉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처음 …… 않는다 《주역》 〈몽괘(蒙卦) 괘사(卦辭)〉에 "처음 묻거든 알려 주지만, 두 번 세 번 거듭 물으면 번독하니, 번독하면 일러 주지 않는다.[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사씨에게 …… 여쭈었다 《시경》 〈주남 갈담〉에 "사씨에게 여쭈어, 친정에 갈 것을 말하라고 했노라.[言告師氏, 言告言歸.]"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문인(文人)에게 아뢰었다 《시경》 〈대아 강한(江漢)〉에 "너에게 규찬과 검은 기장술 한 동이를 내려주며 문인(文人 문왕)에게 아뢰어 산천과 토지를 하사한다.[釐爾圭瓚, 秬鬯一卣. 告于文人, 錫山土田.]"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그의 …… 아뢰었다 《서경》 〈하서(夏書) 우공(禹貢)〉에 "우가 검은 규를 폐백으로 올리면서 (순임금에게) 그의 일이 완성되었다고 아뢰었다.[禹錫玄圭, 告厥成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모두 …… 하소연하였다 《서경》 〈상서(商書) 탕고(湯誥)〉에 "하나라 왕이 덕을 멸하고 위세를 부려 모두 죄가 없음을 상하의 신기에게 하소연하였다.[夏王滅德作威, 并告無辜于上下神祇.]"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상천과 …… 아뢰었다 《서경》 〈상서 탕고(湯誥)〉에 "상천과 신후에게 밝게 아뢰어 하나라에 죄를 내릴 것을 청하였다.[敢昭告于上天神后, 請罪有夏.]"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너희들은 …… 않는가 《서경》 〈상서 반경 상(盤庚上)〉에 "너희들은 어찌 나에게 고하지 않고, 서로 부언으로 선동하여 사람들을 공동(恐動)시키고 빠지게 하는가.[汝曷弗告朕, 而胥動以浮言, 恐沈于衆?]"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서경》 〈상서 반경 중(盤庚中)〉에 나온다. 조이가 …… 아뢰었다 《서경》 〈상서 서백감려(西伯戡黎)〉에 "서백이 여 나라를 이기자, 조이가 두려워하여 왕에게 달아나 아뢰었다.[西伯旣戡黎, 祖伊恐奔告于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황천과 …… 고유한다 《서경》 〈주서(周書) 무성(武成)〉에 "상나라의 죄를 지극히 하여 황천과 후토와 지나가는 곳의 명산, 대천에 고유한다.[底商之罪, 告于皇天后土所過名山大川.]"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태왕 …… 고유하였다 《서경》 〈주서 금등(金縢)〉에 "주공이 여기에 서서 벽을 놓고 규를 잡으며 태왕, 왕계, 문왕에게 고유하였다.[周公立焉, 植璧秉珪, 乃告太王王季文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내가 …… 것이다 《서경》 〈주서 금등〉에서 주공(周公)이 "내가 이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우리 선왕에게 고할 말이 없을 것이다.[我之弗辟, 我無以告我先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천자의 …… 고합니다 《서경》 〈주서 입정(立政)〉에서 주공(周公)이 "손을 이마에 대고 머리를 조아려 천자의 자리를 이은 임금님께 고합니다.[拜手稽首, 告嗣天子王矣.]"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마침내 …… 가르쳤다 《서경》 〈주서 입정〉에서 주공이 "옛사람들은 이 도를 잘 행하였으니 ...... 마침내 감히 그 임금에게 고하고 가르쳤다.[古之人迪 ...... 乃敢告敎厥后.]"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모두 …… 아뢰었습니다 《서경》 〈주서 입정〉에 "나 단은 이미 남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말을 모두 유자인 왕에게 아뢰었습니다.[予旦已受人之徽言, 咸告孺子王矣.]"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감히 …… 아룁니다 《서경》 〈주서 강왕지고(康王之誥)〉에 "태보와 예백이 함께 나아가 서로 읍하고 모두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하기를 '감히 천자께 공경히 아룁니다.'라고 하였다.[太保曁芮伯, 咸進相揖, 皆再拜稽首曰: '敢敬告天子.'.]"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에게 …… 하리라 《주역》 〈익괘(益卦)〉 육삼효(六三爻)의 효사에 "진실한 정성이 있고 중도로 해야 공에게 아뢸 때에 규를 쓰듯 하리라.[有孚中行, 告公用圭.]"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에게 …… 것이다 《주역》 〈익괘〉 육사효(六三爻)의 효사에 "중도로 하면 공에게 고함에 따를 것이다.[中行, 告公從.]"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애공에게 …… 고하였다 《논어》 〈헌문〉에 "공자가 목욕을 하고 조정에 나아가 애공에게 고하였다.[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감히 …… 없다 《논어》 〈헌문〉에서 공자가 "내가 대부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다.[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자로가 …… 고하였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자로가 이 말을 고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명이 있다.'라고 말씀하였다.[子路以告, 孔子曰: '有命.'.]"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유사 …… 없었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유사 가운데에 아뢴 자가 없었으니, 이는 윗사람들이 태만하여 아래 백성들을 해친 것입니다.[有司莫以告, 是上慢而殘下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제가 …… 아뢰었습니다 《맹자》 〈양혜왕 하〉에 "악정자가 맹자를 뵙고 말하기를 '제가 인군께 아뢰니, 인군께서 와서 뵈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樂正子見孟子曰: '克告於君, 君爲來見也.'.]"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공도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나온다. 진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에 "진자가 시자의 말을 맹자에게 아뢰었다.[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고자가 …… 아뢰었다 《맹자》 〈공손추 하〉에 나온다. 서자가 …… 아뢰었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온다. 제(齊)나라 …… 아뢰었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맹자가 제나라 선왕(宣王)에게 아뢰었다.[孟子告齊宣王.]"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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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정에게 답함 무인년(1938) 答趙子貞 戊寅 지난번 위재(危齋)가 지은 귀보(貴譜)의 발문(跋文)에 미진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빌려서 뒤미처 윤색을 하려고 한다고 논했는데, 적이 불가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자(程子)〈역전서(易傳序)〉의 '연(沿)' 자는 문리로 따져보면 비록 분명히 '소(遡)' 자의 잘못이라고 말해도 되었지만 주자(朱子)는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남헌(南軒)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하면서도 엄하게 말씀하였습니다.61) 다만 이것이 오늘의 일을 단정할 수 있습니다.금석문자는 그 소중함이 자별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대등한 자 이하의 생존한 자에게 글을 받아도 오히려 감히 사사로이 고쳐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위재장은 선배이고 또한 이미 작고를 했으니, 어찌 후인이 감히 경솔하게 손을 댈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글이 의리를 이루지 못하고 내용도 말이 되지 않는다면 당일에 반드시 고치지 않을 이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당시에 그러함을 알지 못하고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다고 한다면 차라리 그 글을 사용하지 않고 본가로 돌려보내고 그 연유를 말해주면 될 것입니다.또한 지난번 그대가 외운 위재가 쓴 발문의 내용을 들었더니, 또한 절로 의리를 이루었고 내용도 인가의 금석문이 되기에 해롭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대가 완전히 좋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이런 습속은 길러서는 안 되며 이런 풍속은 매우 두려워 할 만합니다. 습속이 자라나고 기풍이 행해져서 한층 진일보하게 되면 멋대로 선사의 글을 고친 음성의 오진영 같은 자가 또한 어찌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주자는 남헌에게 보낸 편지는 진실로 후인들이 경솔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열어주는 폐단을 우려한 것이었습니다. 昨論危齋所作貴譜跋語有未盡者,故欲借人追加修潤者,竊以爲不可也.程子《易傳序》"沿"字, 以文理求之,雖謂明是"遡"字之誤可矣, 而朱子謂不當改, 與書南軒不啻詳且嚴矣.只此可以斷今日事也.金石文字所重自別, 受文於人於敵以下之生存者,猶不敢私改,況於危丈先進而亦已作故之地,何許後人敢爾下手耶? 若文不成義理不成說辭,則當日必無不改之理; 若云當時不知其然,而今始知之,則寧不用其文,還送本家而語其故可也.且昨聞貴所誦危跋語云云,則亦自成義理, 說辭不害爲人家金石文.今之爲貴言未盡善者,吾不知其何義也.此習不可長,此風甚可畏.習之所長,風之所行,其進一層,而擅改師文如陰震者,亦豈無之? 故朱子與南軒書固以啟後人輕肆之獘爲憂矣. 정자……말씀하였습니다 〈역전서(易傳序)〉의 '흐름을 따라 올라가서 근원을 찾는다.[沿流而求源]'라는 구절의 '沿' 자에 대해 남헌(南軒) 장식(張栻)은 '연(沿)' 자를 '소(泝)' 자로 고치는 것이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는데, 주자는 '연(沿)' 자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연(沿) 자는 뜻이 자못 관서(寬舒)하고 소(泝) 자는 기상이 박급(迫急)하다"고 하였다. 《朱子大全(주자대전)》 권30 〈여장흠부론정집개자(與張欽夫論程集改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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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선생의 차운시 附 先生次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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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시를 본떠 20수 擬古【二十首】 내 남전산101)에 가서 我往藍田山아름다운 옥을 캤었지 採採得美玉붉은 기운102)이 하늘과 땅에 미쳤고 虹氣達天地윤기 나는 빛은 산과 계곡을 아름답게 하지 潤光媚山谷쓰다듬으며 나를 사랑하고 摩挲以自愛궤짝에 온축한 뜻을 취하려했네103) 擬取韞之櫝주변 사람들은 내가 잘못 했다 하며 傍人道我錯일찍이 숙맥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하지 曾不辨麥菽누가 이 사람 보배라고 말하는가 誰言此爲寶기왓장 조약돌 같은 부류인 것을 瓦礫可與族나는 초나라 화씨벽이 아니기에 而我非楚和세상 사람에게 팔리지 못했네 不向世人鬻슬프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여 哀哉擧世人몽롱하여 보물 보는 안목 없으니 矇然無雙目산속 사람 작은 삽 짊어지고 山人荷小鍤산에 올라 약을 캐러 갔다네 上山去採藥캐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采采抵日昏하산하니 자루엔 약이 가득 下山藥滿槖이는 신령스런 특이한 품종으로 是爲靈異種널리 중생의 병을 낫게 하리 廣濟衆生瘼서울 시장에 가서 내다 팔려 했더니 往賣長安市보는 자들은 서로 조롱만 하며 見者相嘲謔맛 쓰고 좋지 않아 뿌리도 쓸 데 없어 苦惡無用根부질없이 너의 손발만 고생했다 하네 空勞爾手脚신농씨가 부활하지 않으니 神農不復起진위를 누가 알게 해줄까 眞僞誰知灼홀로 내가 먹는 것만 못하니 不如獨自餌단지 내 병약함에 써야겠구나 只可扶吾弱텅 빈 계곡 가득 찬 난초 空谷滋崇蘭화려하고도 향기 가득하다 郁郁正芬芳말을 탄 채 해가 저물고 於馬歲云暮온 골짝 찬 서리 떨어지네 萬壑墮寒霜그윽한 향기 아는 이 없지만 無人識幽香아름다운 봄빛 기다리네 葆芳待春光다음 해 봄빛 이르면 明歲春光至누가 다시 기운 광주리 채울까 誰復采傾筐남산 아래 콩을 심었더니 種豆南山下잡풀이 어찌나 무성하던지 穢艸何桀桀장맛비 오래도록 그치지 않아 滛雨久不止뿌리와 마디 얼키고설켰네 盤錯根與節가난한 농부 종들마저 없어 貧農乏僮僕풀 제거하고 싹 주을 힘도 없네 無力可除掇추수는 더이상 희망 없어 西成無復望다만 마음만 슬프고 북받칠 뿐 中心只忉怛세간에 농사에 힘쓰는 사람들 世間力田人이를 보고 전철의 경계 삼으라 視此戒前轍남쪽 밭두둑엔 작약이 열렸고 南陌芍藥開동쪽 이웃 마을엔 복사꽃 배꽃 가득 東隣桃李繁아리따운 천만 꽃송이에 夭嬌千萬朶미소 머금은 아름다운 동군104) 含笑媚東君수많은 정원의 국화는 數叢園中菊빙그레 봄인 줄도 모르네 笑爾不識春어찌 고고함만 추구하는가 胡爲尙高孤이를 놓으면 하늘이 향기롭고 예쁠텐데 失此芳菲天온 꽃에 감사의 말 전해주오 寄語謝百花영화로움도 각기 좋은 시절 있다고 榮華各有辰세월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歲華猶未闌중양절 머물러 기다리리라 留待重陽晨오랜 오동나무 구름 위 우뚝 속아 老桐聳雲霄봉황이 왔다갔다 날아다닌다 鸑鷟來彷徨우순은 옛날 어느 때인가 虞舜昔何時천년 동안 아득히 바라보았네 千載遙相望올빼미와 솔개 발톱 내세우고 鴟鳶肆趾爪매섭게 그 주변 핍박하네 嚇然逼其傍그 죄악을 개념치 마시고 不念渠罪惡도리어 나의 선량함 화내시오 反怒我善良붉은 산이 높고 깎인 저곳에 丹山高截彼표연히 나아가 빙빙 날아다니며 飄然卽回翔티끌 세상을 굽어보면 俯視塵寰界누가 나를 해칠 수 있을까 誰能向我戕늙은 용 의지할 물을 잃어버려 老龍偶失水발라당 전원 사이 쓰러지니 頹臥田原間까마귀와 솔개 기뻐하며 서로 지저귀고 烏鳶喜相噪개미와 땅강아지 용쓰고 건드리네 蟻螻苦相干태양이 한 번 내리비추니 太陽一以曝빛나는 비늘 반쯤 말라버렸네 彩鱗半欲乾신비한 술법도 끝내 무용하여 神術竟無用하늘 우러러 길게 탄식하네 仰天長嗟嘆다만 동해의 짝을 만나길 바랐으나 但願東海侶이 어려움 만났으니 애석하기만 하다 憫我遭此艱조속히 천 리에 비를 뿌리셔서 急施千里雨흔쾌히 만 곡의 물을 보내소서 快送萬斛瀾서울의 아리땁고 젊은 부인 長安美少婦한 번 웃음에 온갖 자태 생기네 一笑生百態남편은 가난하고 몸도 약해 阿郞貧且弱다시 시집가 다른 사람 짝이 되었지 改作他人配고운 비단에 눈 같은 피부 綺羅暎雪肌분과 연지에 짙은 눈썹 粉脂濃翠黛도리어 전 남편의 집을 원수로 여겨 反讎前郞家모든 단서가 재앙이 되었네 百端貽禍害선조의 제사 이미 끊어졌고 先祀旣殄絶후손 역시도 끊어지고 망하였네 後昆亦殞敗메추라기도 오히려 말할 게 있다 한들 鶉行猶可說이 지경 이르러 어찌 기쁠 수 있던가 至此何太快하늘의 도는 끝내 좋게 돌아갈 것이나 天道終好還스스로 지은 잘못은 마침내 용서받기 어려우니 自孼竟難貸모든 재앙이 제몸에 이르는 날 百殃及身日어찌 배꼽을 물어뜯는 후회105)를 할까 曷追噬臍悔어여쁜 규수의 여인 娟娟閨中姝방년 스무 살이라네 芳年己二十길쌈은 대강 방법을 알았고 女紅粗知方집안 가르침 곁눈으로 읽힐 수 있었네 內訓頞能習동산의 매화 떨어지려 하니 園梅欲飄零사람들은 혼인 급하다 말하네 人言佳期急좋은 시절 기대할 것 아니지만 佳期非所待길한 사람 만나기 부끄럽고 어려워하네 愧難吉士合저 동쪽 이웃 여인을 봐라 瞻彼東家女사람 만남이 얼마나 급급한가 適人何汲汲중매쟁이 번거롭게 하지 말고 不須煩媒妁조석으로 고을을 두루 다녀라 晨夕遍鄕邑뻔뻔하게 부끄러워한 적 없으면서 靦然不曾羞나에게 도리어 고집스럽다 말하네 謂我還固執외로운 조그만 아이 孑孑六尺童떠돌며 마을을 전전하는구나 飄泊轉鄕里재상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云是卿相子세 살에 부모를 잃었네 三歲失怙恃가산도 이미 사라지고 産業旣澌盡친척들 모두 이사 갔네 族戚亦轉徙마을의 부호놈들은 閭閻豪富漢능멸하고 핍박하며 너를 부르네 陵迫呼汝爾억지로 선봉이 되어 强作馬前卒길을 가며 채찍질 하네 行路執鞭箠당당한 사대부의 후손이여 堂堂士夫裔모욕당하니 어찌 부끄럼 없겠는가 受辱寧莫恥내 머리에 너의 빗돌을 놓고 吾頭任汝砟내 무릎에 너를 꿇리지 않으리 吾膝不汝跪미친놈이 이마에 관 벗어놓고 狂夫脫頂冠발을 감싸 신을 만들었구나 著足倒作屨모든 미친놈들 아취 높다 하고 衆狂謂高致쏠리듯이 다투며 서로 사모하네 靡然爭相慕누군가 잘못이라 말하면 有人指謂錯미친놈 도리어 성질내고 狂夫反齎怒너희들은 보고 다시 잘못되었다 하고 爾見還是謬우리들은 잘못한 게 없다 하지 我行無所誤시비가 어찌도 뒤바뀌었던가 是非一何顚천지도 끝내 자리를 바꾸었거늘 天壤竟易處불쌍하구나 저 미친놈들 可憐彼狂夫죽어도 끝내 깨닫지 못하네 至死終不悟삼산은 아득히 어디에 있나 三山渺何在바다 중앙에 있다 들었네 聞在海之中망령되이 진경을 찾고자 하여 妄欲尋眞境둥둥 조각배 띄어 탔네 泛泛駕扁蓬중류에 풍랑을 만나면 中流過風濤천지가 흐릿하게 들어갈 것이네 乾坤入夢夢이 몸 정할 곳 없어 此身無定所아득히 동서를 잃네 蒼茫迷西東어떻게 하면 화창한 날을 얻어 安得天日朗초연히 신선 발자취 밟을까 超然躡仙蹤연단하는 신묘한 기술을 煉丹神妙術조용히 우뚝한 소나무에게 묻네 從容問喬松남산은 높고도 커서 南山高且大그 위에 기이한 풍관 많다네 其上多奇觀숨어 지내는 이 산수를 좋아하니 幽人愛山水어찌 가서 보지 않겠는가 豈不欲往看가시덩쿨 하늘에서 꽂은 듯하고 荊棘參天揷사나운 짐승 응당 길에 가득하네 虎豹當路亂아쉬움에 한 번 크게 탄식하노니 喟然一太息다만 한스러운 건 날개가 없다는 것 只恨無羽翰용을 타고 구천에 올라 駕龍上九天구름 밀쳐 황왕에게 하소연하리라 批雲訴王皇항아는 내 등불 잡고 姮娥秉我燭비렴이 내 고삐 정리했네106) 飛廉整我韁바라건대 은하수 물결 터서 願決銀漢水패연히 사방에 쏟아낸다면 沛然滌四方교외에 봉황과 기린 나와107) 郊藪麟鳳出마을은 해와 달처럼 무궁하리 閭閻日月長손짓해서 벗들 손 불러 모아 招招携卬友천 리 길을 함께 출발했네 千里共發軔주나라 도는 숫돌처럼 평평하니 周道平如砥좋든 궂든 물을 필요 없어라 夷險不須問누가 중도에 바뀔 것이라 생각했으랴 孰謂改中途나로 하여금 홀로 전진하게 하였네 使我獨前進다만 그대 잘못 들어갈까 두려우니 但恐君誤入그대를 믿지 못한다 말하지 말게나 不言君無信바라건대 빨리 수레를 돌려 請君遄回車가시덩굴의 어려움을 겪지 마소서 無爲荊棘困산촌의 밤은 어두컴컴하기만 하여 山村夜昏墨귀신 땅 분연히 사람 놀라게 하네 鬼域紛螫人문 닫고서 방구석 깊은 곳에 누워 閉戶臥深室눈감고 밝은 새벽 오길 기다린다 着眠待明晨취한 사내는 눈을 몽롱하게 뜨고 醉夫眼朦矓분주하게 움직이다 다시 넋을 잃었네 奔走却迷魂도리어 편히 자는 사람 조롱하며 反嘲安眠者하나의 꿈으로 밤을 보낸다고 하네 一夢終夜昏어부는 긴 끈을 정리하더니 漁人理長繩긴 강에 던져 흐르게 하네 投之長江流놀던 물고기 먹이 탐내더니 游魚貪芳餌한 놈 한 놈 낚싯바늘 삼켰네 箇箇呑釣鉤온종일 낚시질 끝이 없으니 竟日釣未已어종을 모두 죽일텐가 水族將盡劉오직 천년의 용이 있어 惟有千歲龍만 길 깊은 못에 잠겨 있지 深藏萬尋湫신명한 덕을 길러 이뤄주며 養成神明德외물에 어찌 얽매이리오 外物豈拘留백마와 현금108) 같은 나라도 있으니 白馬與玄禽그대 역시 잠시 아름다운 덕을 닦게나 請君亦且休우뚝 솟은 세 그루 소나무 丸丸三株松비와 이슬에 수백 년 길러졌지 雨露養百年가지와 잎은 어찌 그리 무성한가 枝葉何峻茂짙은 그늘로 백성 덮어주었네 厚蔭庇下民어젯밤 바람과 비 거세더니 昨夜風雨急두 용이 홀연 뿌리 뽑혔네 雙龍忽見顚백성들 의지할 곳 잃어 下民失所依눈물 흘리고 슬퍼하네 抆淚爲悲憐그래도 한 뿌리 남아 있어 猶有一根在창창하게 홀로 보전하리라 蒼蒼獨自全더욱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愈爲人愛惜곧장 세한의 뜻에 이르렀네 直到歲寒天넓은 집은 오랜 시간 지나 廣厦經歲久태반이 무너져 버렸구나 太半就頹傾장맛비에 옛벽엔 물 흐르고 淫雨滲古壁모진 바람에 남은 기와는 떨어지네 獰風捲殘甍재주 없는 장인은 임무를 다하지 못해 庸匠不勝任공적을 시험하니 끝내 이룬 것 없네 試績竟無成어찌 공수109)를 다시 태어나게 하여 焉得起工倕큰 재주를 펼치게 하지 않았는가 大手施經營세상 사람들 가난한 선비라 부르니 天下號寒士농담하며 기쁜 마음 넘치네 笑語洽歡情허리 굽은 팔순의 노인네 傴僂八耋翁머리도 빠지고 이도 빠졌다네 禿髮又落齒그래도 원대한 계획 있어 猶圖久遠計바위 앞에 소나무 심었구나 巖前種松子인간사 며칠 남지 않았는데 人間無幾日소나무 심고 무엇을 하고자 하나 種松欲何以소나무 심음을 그대 의심 마소 種松君莫疑드리운 가지는 본받을 만하니 偃蓋卽可擬두 손으로 손주 아이 잡고 雙手提兒孫소나무 그늘에서 누웠다 일어났다 淸陰間臥起 我往藍田山,採採得美玉.虹氣達天地,潤光媚山谷.摩挲以自愛,擬取韞之櫝.傍人道我錯,曾不辨麥菽.誰言此爲寶,瓦礫可與族.而我非楚和,不向世人鬻.哀哉擧世人,矇然無雙目.山人荷小鍤,上山去採藥.采采抵日昏,下山藥滿槖.是爲靈異種,廣濟衆生瘼.往賣長安市,見者相嘲謔.苦惡無用根,空勞爾手脚.神農不復起,眞僞誰知灼.不如獨自餌,只可扶吾弱.空谷滋崇蘭,郁郁正芬芳.於馬歲云暮,萬壑墮寒霜.無人識幽香,葆芳待春光.明歲春光至,誰復采傾筐.種豆南山下,穢艸何桀桀?滛雨久不止,盤錯根與節.貧農乏僮僕,無力可除掇.西成無復望,中心只忉怛.世間力田人,視此戒前轍.南陌芍藥開,東隣桃李繁.夭嬌千萬朶,含笑媚東君.數叢園中菊,笑爾不識春.胡爲尙高孤,失此芳菲天.寄語謝百花,榮華各有辰.歲華猶未闌,留待重陽晨.老桐聳雲霄,鸑鷟來彷徨.虞舜昔何時?千載遙相望.鴟鳶肆趾爪,嚇然逼其傍.不念渠罪惡,反怒我善良.丹山高截彼,飄然卽回翔.俯視塵寰界,誰能向我戕.老龍偶失水,頹臥田原間.烏鳶喜相噪,蟻螻苦相干.太陽一以曝,彩鱗半欲乾.神術竟無用,仰天長嗟嘆.但願東海侶,憫我遭此艱.急施千里雨,快送萬斛瀾.長安美少婦,一笑生百態.阿郞貧且弱,改作他人配.綺羅暎雪肌,粉脂濃翠黛.反讎前郞家,百端貽禍害.先祀旣殄絶,後昆亦殞敗.鶉行猶可說,至此何太快?天道終好還,自孼竟難貸.百殃及身日,曷追噬臍悔.娟娟閨中姝,芳年己二十.女紅粗知方,內訓頞能習.園梅欲飄零,人言佳期急.佳期非所待,愧難吉士合.瞻彼東家女,適人何汲汲?不須煩媒妁,晨夕遍鄕邑.靦然不曾羞,謂我還固執.孑孑六尺童,飄泊轉鄕里.云是卿相子,三歲失怙恃.産業旣澌盡,族戚亦轉徙.閭閻豪富漢,陵迫呼汝爾.强作馬前卒,行路執鞭箠.堂堂士夫裔,受辱寧莫恥.吾頭任汝砟,吾膝不汝跪.狂夫脫頂冠,著足倒作屨.衆狂謂高致,靡然爭相慕.有人指謂錯,狂夫反齎怒.爾見還是謬,我行無所誤.是非一何顚?天壤竟易處.可憐彼狂夫,至死終不悟.三山渺何在?聞在海之中.妄欲尋眞境,泛泛駕扁蓬.中流過風濤,乾坤入夢夢.此身無定所,蒼茫迷西東.安得天日朗,超然躡仙蹤.煉丹神妙術,從容問喬松.南山高且大,其上多奇觀.幽人愛山水,豈不欲往看.荊棘參天揷,虎豹當路亂.喟然一太息,只恨無羽翰.駕龍上九天,批雲訴王皇.姮娥秉我燭,飛廉整我韁.願決銀漢水,沛然滌四方.郊藪麟鳳出,閭閻日月長.招招携卬友,千里共發軔.周道平如砥,夷險不須問.孰謂改中途,使我獨前進.但恐君誤入,不言君無信.請君遄回車,無爲荊棘困.山村夜昏墨,鬼域紛螫人.閉戶臥深室,着眠待明晨.醉夫眼朦矓,奔走却迷魂.反嘲安眠者,一夢終夜昏.漁人理長繩,投之長江流.游魚貪芳餌,箇箇呑釣鉤.竟日釣未已,水族將盡劉.惟有千歲龍,深藏萬尋湫.養成神明德,外物豈拘留.白馬與玄禽,請君亦且休.丸丸三株松,雨露養百年.枝葉何峻茂?厚蔭庇下民.昨夜風雨急,雙龍忽見顚.下民失所依,抆淚爲悲憐.猶有一根在,蒼蒼獨自全.愈爲人愛惜,直到歲寒天.廣厦經歲久,太半就頹傾.淫雨滲古壁,獰風捲殘甍.庸匠不勝任,試績竟無成.焉得起工倕,大手施經營.天下號寒士,笑語洽歡情.傴僂八耋翁,禿髮又落齒.猶圖久遠計,巖前種松子.人間無幾日,種松欲何以?種松君莫疑,偃蓋卽可擬.雙手提兒孫,淸陰間臥起. 남전산 진(秦)나라 말기 상산사호(商山四皓)가 난리를 피하여 간 곳이다. 붉은 기운 하늘과 땅의 정기를 말한다. 궤짝에……취하려했네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여기에 좋은 옥이 있으면 상자에 넣어 감추어 두시겠습니까?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하였다. 《論語 子罕》 동군 봄을 관장하는 신, 또는 태양을 가리킨다. 배꼽을……후회 사향 노루가 사람에게 잡히게 될 궁지에 이르면 제 배꼽을 물어뜯는다. 그것은 배꼽에 사향(麝香)이 들어 있기 때문에 제가 사람에게 잡힌다고 후회하는 것이다. 일이 잘못된 뒤에는 후회하여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항아는……정리했네 원문 '항아(姮娥)'는 하나라 때 유궁 후예(有窮后羿)의 부인으로 선녀 서왕모(西王母)의 불사약을 먼저 훔쳐 먹고 신선이 되어 달 속으로 달아나서 달의 정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비렴(飛廉)'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신선을 말한다. 교외에……나와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태평성대의 상서(祥瑞)를 일러 "봉황과 기린은 모두 교외의 숲에서 노닐고, 거북과 용은 왕궁의 못에 있다.〔鳳凰麒麟 皆在郊藪 龜龍在宮沼〕"라고 한 것을 전용한 것이다. 백마와 현금 본디 백마와 현금은 각각 주나라와 은나라를 상징하는 용어다. 두 나라는 모두 오래전에 생긴 나라였으나, 탕과 문ㆍ무왕이 각각 덕을 닦아서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혼란한 시기이므로 덕을 닦아서 훗날을 기약하라는 말이다. 공수 수(倕)는 고대 교장(巧匠)의 이름이다. 요(堯) 임금의 부름을 받고 백공(百工)의 우두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공수라 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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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부쳐 준 칠언 절구에 화답함 和子貞所寄七絶 물가에 살랑바람이 두 옷깃을 파고드니 湖上微風披兩襟고상한 분은 나를 위해 맑은 시 부쳤구나 高人爲我寄淸吟천년의 끝없는 일을 서로 기약했으니 相期千載無窮事곁에서 보길 허락치 않아도 이 마음 알리라 未許傍觀識此心평생 따뜻하고 배불러도 더는 구하지 않아 一生溫飽不求餘일어나 뜬구름이 태허를 지나가듯 보네 起視浮雲過太虛그대의 맑은 지조를 누가 따를수나 있을까 而子淸標誰復及책 안의 사우들이 함께 지낼 만하도다 卷中師友可同居세월이 점점 흘러 율관에서 재가 날리더니110) 年華冉冉管飛灰또다시 새봄이 한 번 돌아서 왔구나 又是新春一度回나의 엉성한 공부 조금의 진전 없어 愧我疎工無寸進지금까지 엿볼 뿐 아직 온전히 깨치지 않음이 부끄럽네 至今窾見未全開짚신 신고 눈 밟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踏雪芒鞋抵日昏시산111)에서 돌아오는 길에 황량한 마을 들렀네 詩山歸路訪荒村기뻐할 만한 건 섣달그믐 푸른 바닷가 집에서 可欣除夕滄洲屋마음 터놓고 얘기하며 술동이 마주하는 것 心話從容對柏樽평소 뜻은 광활하여 끝이 없어 所志平生浩不窮벼랑도 없고 동서의 경계조차 없구나 除涯無復限西東천년 간 성인의 공부는 서로 비결 전하는데 聖門千載相傳訣어느 때 활용관통할련지는 알 수가 없구나 不識何時到貫通지금 세상의 혼란 큰불로 언덕을 태우는 듯하니 世亂如今火燎原그 이유를 나는 근원까지 거슬러 파헤치려 하네 厥由我欲溯窮源충정의 마음으로 푸른 하늘에 하소연하는데 衷情仰訴蒼天下어찌하여 저 푸른 하늘은 도리어 말이 없는가 胡彼蒼天却不言남아의 앞길이란 정히 아득하기만 한데 男兒前路正悠悠비린내 나는 먼지 다 쓸지 못함이 한스럽다 恨未腥塵掃不留음이 다하면 응당 양이 다시 생기는 날 보리니 陰盡應看陽復日하늘 가득한 바람과 눈에 근심하지 않으리라 滿天風雪不須愁 湖上微風披兩襟,高人爲我寄淸吟.相期千載無窮事,未許傍觀識此心.一生溫飽不求餘,起視浮雲過太虛.而子淸標誰復及,卷中師友可同居.年華冉冉管飛灰,又是新春一度回.愧我疎工無寸進,至今窾見未全開.踏雪芒鞋抵日昏,詩山歸路訪荒村.可欣除夕滄洲屋,心話從容對柏樽.所志平生浩不窮,除涯無復限西東.聖門千載相傳訣,不識何時到貫通?世亂如今火燎原,厥由我欲溯窮源.衷情仰訴蒼天下,胡彼蒼天却不言.男兒前路正悠悠,恨未腥塵掃不留.陰盡應看陽復日,滿天風雪不須愁. 세월이……날리더니 예전에 갈대 태운 재를 율관 속에 넣어 밀실에 두고 기후(氣候)를 조사하였는데, 추위가 닥치면 재가 날린다고 하였다. 시산 전북 정읍시 태인면의 옛 이름이다. 혹은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있는 산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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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김형태255) 혼서 【병인년(1926, 대한민국8)】 次子炯泰昏書 【丙寅】 호해(湖海)의 서남방에서 여러 차례 입설(立雪)256)의 동문 수학을 하였더니, 이제 지척의 봉래(蓬萊)257)와 영주(瀛洲)258)에서 대를 이은 진진(秦晉)259)의 혼인을 맺으려 합니다. 이는 모두 기질이 서로 맞음에 따른 것이니, 정직하고 신실한 말씀으로 아룁니다.생각건대 귀 댁 네째 따님은 아름다운 용모와 덕행을 지녀, 지금은 포랑(鮑郞)260) 같은 신랑을 택해 시집 보내고자 하시겠지요. 저의 차남 김형태(金炯泰)는 선비도 농부도 아니지만, 동생(董生)261)을 잘못 배우기에는 안 맞는데, 이 아이에게 아내를 얻어 주고자 합니다.아비 된 마음에 반드시 알맞은 제 짝을 구하고 싶어, 옛 현인의 가르침을 어기고 분수에 넘치는 제안을 드렸었는데, 뜻밖에도 천금 같은 허락을 하여 주시었습니다. 이제 가정 경제의 형편에 맞추어서 예단을 풍년 때보다 줄이고, 의례는 정식과 변통을 참고하여 이웃집에서 가관(假館)262)의 예를 행하십시다. 《주역》에서 함괘(咸卦)와 항괘(恒卦)263)를 점치고, 복희(伏羲) 팔괘의 가르침을 삼가 준수하여, 기린과 메뚜기의 《모시(毛詩)》 노래하며 주(周)나라의 경사를 기다려 보십시다.264) 湖海西南幾同謝楊之立雪, 蓬灜咫尺聿成秦晉之連楣, 蓋因聲氣之求, 玆敷直信之吿。 伏惟令季女有容有德, 端擬鮑郞之擇歸。 澤述次子炯泰非士非農, 不合董生之誤學, 願爲之室。 縱有乃父之心, 必求其材, 奈違前哲之訓, 乃有薪議之發, 遽見金諾之承。 家稱有無, 用煞禮於豊歲, 儀參經變, 行假館於同隣。 占咸恒於大易, 謹遵羲經之規, 詠螽麟於毛詩, 佇見周家之慶。 김형태 1909~1968, 자는 극성(克成), 호는 소주(小洲)이다. 부인 담양전씨는 1910년생이며, 그 부친은 전희순(田熙舜), 조부는 전제풍(田濟豊, 松菴)이다. 입설(立雪) 북송의 성리학자 양시(楊時)가 배움을 청하러 정이(程頤)를 찾아갔다가 눈이 한 자 쌓이도록 시립(侍立)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봉래(蓬萊) 전라북도 변산면 중계리의 산이다. 영주(瀛州)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의 옛 이름이다. 진진(秦晉) 춘추시대의 진(秦)과 진(晉) 두 나라를 말한다. 인근의 두 나라가 대대로 혼인을 하여, 두 가문 사이의 혼인을 '진진지호(秦晉之好)'라 일컬었다. 포랑(鮑郞) 전한(前漢) 말기의 발해(渤海) 사람 포선(鮑宣)을 말한다. 그의 어린 시절에 맑고 고상한 모습을 본 스승이 중매를 거치지 않고 딸 환소군(桓少君)을 주어 사위를 삼았고, 아내 환소군도 훌륭한 부덕(婦德)을 보여 명성이 높았다 한다. 《後漢書.列女傳.鮑宣妻》 동생(董生) 여기서는 고운 용모와 언사로 아첨하는 간사한 짓을 말한다. 동생(董生)은 전한(前漢) 말기의 발해(渤海) 사람 동현(董賢)인데, 고운 용모로 아첨에 능하여 애제(哀帝)의 총애를 얻어 친족들을 황궁에 끌어들였고, 나중에는 왕망(王莽)의 탄핵을 당해 자살하였다. 《漢書.佞幸傳》 가관(假館)의 예 신랑이 처가 가까이에 집을 빌려 신부를 맞이하는 친영(親迎)의 예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家禮.婚禮.親迎》 함괘(咸卦)와 항괘(恒卦) 화합과 항구의 점괘이다. 함괘의 괘상(卦象)은 음양(陰陽)이 서로 잘 교감(交感)함이고, 항괘(恒卦)의 괘상은 강유(剛柔)가 정연하여 항구불변(恒久不變)함이다. 기린……보십시다 《시경》의 기린과 메뚜기 노래에서 말하는 주(周) 문왕(文王) 부부의 인후(仁厚)와 번창을 신혼 부부에게 기대한다는 뜻이다. 《시경》〈모씨전(毛氏傳)〉에 의하면, 〈주남(周南)〉편의 시 〈기린의 발[麟之趾]〉은 문왕과 후비의 덕이 기린 발걸음처럼 인후(仁厚)함을, 〈메뚜기[螽斯]〉는 메뚜기 떼처럼 번성함을 찬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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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자사 字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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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계일 건익의 자사 【갑신년(1944)】 黃啓一【鍵翼】字辭 【甲申】 방에는 문이 있으니 室有門戶,열쇠로 잠긴 쇠를 풀고 啓鍵以鑰,공부에도 문이 있으니 學亦有門,전일(專一)함으로 잠긴 문을 여네. 啓鍵以一.전일한 것은 경(敬)이니 一者敬也,지켜 머물며 옮기지 않네 有主無適,사람들 응접하는 온갖 일이 人應衆務,이 마음 공부 아닌 것 없으니 罔非是學,반드시 평소의 생활 속에서 其必平居,단정히 앉아 독송하라. 端坐誦讀.맨 처음 첫 손을 대면서부터 始之下手,전일함이 그 확고한 규칙이고 一固其則,이루어 끝마침에 이르러서도 及其成終,그 어떤 다른 것 없네. 亦非他物.우리 황건익(黃鍵翼) 군 黃君鍵翼,덕을 표현할 자가 아직 없어 尙闕表德,삼가 계일(啓一)이라 지어주니 余欽啓一,그 뜻은 매우 참되고 절실하네. 意甚眞切.조상 받들며 가정에서 모범 보여 奉先刑家,이웃을 돕고 가족을 돈독히 하소. 恤隣敦族.그대 이것을 평소에 실행하여 是君庸行,백 갈래 천 갈래를 頭緖千百,이미 능히 애써 행할 수 있는데 已能加勉,전일함을 어찌 내려놓겠는가? 一豈捨得.마치 배 저으며 키 잡고 如舟有柁,활 쏘며 과녁 향하듯이 射則惟的,무르익혀 완성하면 熟而成之,군자의 반열에 서리니, 君子之列,하늘이 군자를 도와 天祐君子,행운 복록 열어주어 啓以運福,현철하고 효성스런 자손으로 子姓賢孝,집의 문이 크게 빛나리라. 家門奕舃.이로써 마음에 새길 말 지어주어 庸作銘辭,빈객의 축문을 뒤미쳐 채우네. 追補賓祝.아, 전일함으로 열지니 吁嗟啓一,계일(啓一)은 끝까지 힘쓰시라. 是究是勖. 室有門戶, 啓鍵以鑰, 學亦有門, 啓鍵以一。 一者敬也, 有主無適, 人應衆務, 罔非是學。 其必平居, 端坐誦讀, 始之下手, 一固其則。 及其成終, 亦非他物, 黃君鍵翼, 尙闕表德。 余欽啓一, 意甚眞切, 奉先刑家, 恤隣敦族。 是君庸行, 頭緖千百, 已能加勉, 一豈捨得。 如舟有柁, 射則惟的, 熟而成之, 君子之列。 天祐君子, 啓以運福, 子姓賢孝, 家門奕舃。 庸作銘辭, 追補賓祝, 吁嗟啓一, 是究是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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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존 선범의 자사 【을축년(1925)】 李性尊【善範】字辭 【乙丑】 함평의 이씨는 維咸豊氏,샘이 멀고 뿌리가 깊어 源遠根深,선대에 쌓은 경사가 후대로 흘러내려 積慶流後,후손의 난초와 옥이 숲을 이루었네. 蘭玉林林.빼어난 수재 선범(善範) 있어 有秀善範,우뚝이 두각 드러나는데 頭角其嶄,관례할 날짜 잡혔으니 突弁有日,때는 활짝 핀 춘 삼월이네. 時維春三.바람 부드럽고 하늘 온화하며 風暢天和,술은 맑고 안주는 향기로운데 薦芳酒淸,빈객 섬돌 위에서 굽어보면서 有賓臨階,삼가 그에게 자를 붙여주네. 乃欽厥名.무엇을 삼가 계신(戒愼)할까 欽之維何,본성을 보존함이 매우 가상하니 性存孔嘉,하늘이 내린 성품 維天降性,순수하고 착하네. 純粹其善.온갖 세세한 많은 이치 細而衆理,크게 살피면 오륜이고 大則五典,큰 강령과 잔 조목 있어 有綱有條,한 치 가슴 속에 갖춰졌네. 具方寸間.순리로 보존하면 順而存之,이가 바로 성현인데 伊聖伊賢,어이하여 기(氣)와 욕(欲)은 云胡氣欲,앞을 막고 뒤를 잡아끌까? 前障後牽.뜨거운 불과 찬 얼음을 반복하면 火熱氷寒,법도와 기강 무너지고 매몰되니 法斁綱淪,옛 사람 맹자를 보라 相昔孟氏,짐승과 사람으로 구분하였는데, 分厥獸人.가엾다 하민들 그것을 버리네 哀民去之,기쁘다 군자들 그것을 지니네 嘉君子存,나 그 보존을 도모하니 我圖其存,아, 길은 전일한 경(敬)이네. 嗚呼一敬.전일한 경(敬)이 바로 서면 一敬之立,온몸이 그 명을 따르고 百體從令,백 개의 지체기관이 순종하면 百體之從,만 개의 선업길상이 무성하리. 萬善之盛.찬 얼음 비춘 가을밤 달에서 寒氷秋月,바로 그 본성이 보이니 乃見厥性,힘써 본성을 보존하여 勖哉性存,마음 경건히 귀기울여 들으라. 虔心諦聽.천명에 짝하여 복을 구하라283) 配命求福,옛 성인의 가르침이네. 訓自前聖,자를 내린 이 뜻 유념하여 念玆肇錫,하늘의 경복(慶福) 받으시라. 受天之慶. 維咸豊氏, 源遠根深, 積慶流後, 蘭玉林林。 有秀善範, 頭角其嶄, 突弁有日, 時維春三。 風暢天和, 薦芳酒淸, 有賓臨階, 乃欽厥名。 欽之維何, 性存孔嘉, 維天降性, 純粹其善。 細而衆理, 大則五典, 有綱有條, 具方寸間。 順而存之, 伊聖伊賢, 云胡氣欲, 前障後牽。 火熱氷寒, 法斁綱淪, 相昔孟氏, 分厥獸人。 哀民去之, 嘉君子存, 我圖其存, 嗚呼一敬。 一敬之立, 百體從令, 百體之從, 萬善之盛。 寒氷秋月, 乃見厥性, 勖哉性存, 虔心諦聽。 配命求福, 訓自前聖, 念玆肇錫, 受天之慶。 천명에……구하라 《시경》〈문왕(文王)〉편에 "길이 천명에 짝하여,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라.[永言配命, 自求多福。]"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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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로 이중의 명과 자에 대한 설 【1927년】 許正老而中名字說 【丁卯】 허군(許君)은 그 이름이 정로(正老)인데 그의 부친이 처음 지어준 뒤에 스스로 '명갑(明甲)' 혹은 '원서(元瑞)'로 고쳐서 불렀으니, 모두 뜻을 취하지 않았다. 어느 날 허군이 초명(初名)을 회복하고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부친이 명명해주신 것이다."라고 하고, 사실을 들어 나에게 질문하였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훌륭하다! 아버지를 여의고 이름을 고치는 것은 또 예가 아니니176), 어버이가 살아있는데도 그 지어준 이름을 버린다면 장차 어떤 자식이 불효를 면한다고 이르겠는가. 내가 '이중(而中)'으로 공경하게 했는데 괜찮은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하여 그를 위해 말하기를 "정(正)이란 천하의 직도(直道)이고 중(中)이란 천하의 지선(至善)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정직이다.177)'라고 하였고, 유자(劉子 유강공(劉康公))가 말하기를 '사람은 중을 받아 태어난다.178)'라고 하였으니, 똑같이 인생의 명맥(命脈)이고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은 선악 두 길로 나아가 사(邪)에 상대하여 말하지만, 중은 선[善] 한 길에 나아가 과불급(過不及)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하면서 중하지 않은 자는 간혹 있지만, 중하면서 정하지 않은 자는 있지 않으니, 이러한 뜻은 옛 현인이 이미 말하였다.내가 원하건대 그대는 혹시라도 중하지 않으면서 정하지 말고 반드시 정하면서 중해야 한다. 정하면서 중하고자 하려면, 의(義)를 정밀하게 하고 인(仁)을 익히지 않으면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 내가 원하건대 이중은 부지런히 글을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아! 부친이 정으로 지어주고 스승이 중으로 공경하게 하였으니, 힘써 노력하라, 이중이여!"라고 하였다. 許君正老其名, 其大人肇錫之後, 自改呼以明甲, 或元瑞, 幷非有取義也. 日許君復其初名而曰: "是吾親之命.", 擧實質於余. 余曰: "善哉! 已孤更名且非禮, 親在而棄其錫名, 其將謂何子其免矣夫? 吾則欽之以而中, 其可乎?". 因爲之說曰: "正者天下之直道, 中者天下之至善. 孔子曰: '人之生也直.', 劉子曰: '人受中而生.', 均之爲人生命脈, 而非有二焉. 然正就淑慝兩塗, 對邪而言, 中就善一路上, 對過不及說. 故正而不中者容有之, 未有中而不正者也, 斯義也, 昔賢已言之矣. 吾願君之毋或有不中之正, 而必正而中也, 欲正而中, 非義之精, 仁之熟, 不能與此. 吾願而中之自劇讀實踐而始也. 嗚呼! 父錫之正, 師欽之中, 勖哉而中!". 이미 …… 아니니 《예기(禮記)》 〈곡례 하(曲禮下)〉에 "군자가 이미 고가 되었으면 이름을 고치지 않고, 이미 고가 되어 갑자기 귀하게 되었더라도 아버지를 위해 시호를 짓지 않는다.[已孤不更名, 已孤暴貴, 不爲父作謚.]"라고 하였다. 사람이 …… 정직이니 《논어》 〈옹야(雍也)〉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정직이니,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사는 것은 죽음을 요행히 벗어난 것이다.[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라고 하였다. 사람은 …… 태어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성공(成公) 13년 조에서 유강공이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백성은 천지의 중을 받아 태어나니, 명이라는 것이다.[吾聞之, 民受天地之中以生, 所謂命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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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국화를 보고 감회을 기록함 見冬菊識感 내가 갑자년(1924) 겨울에 (고부(古阜)) 우일면(雨日面) 남산재(南山齋)에 머물고 있었다. 때가 10월 상순이라 산에 달이 휘영청 밝고 북풍의 찬바람이 사람에게 불었으므로 뜰 가를 배회하면서 세모(歲暮 연말)의 감회를 견디기 어려웠다. 이때 마침 김군 장환(長煥)이 나에게 한 떨기 노란 국화를 주었는데, 찬란한 황금빛 꽃이 중양(重陽 음력 9월 9일)의 자태에 손색이 없었다. 이에 내가 한숨 쉬며 탄식하고 말하기를 "가을바람이 한번 불어오면 향기로운 많은 꽃이 다 시들어 서리 맞은 국화가 너무 귀할 만한데, 하물며 눈 속의 국화에 있어서이겠는가. 오늘날의 선비는 눈 내리는 날의 국화이니, 누가 능히 거듭된 변란을 두루 다 겪으면서도 절조를 더욱 엄하게 하여 너와 함께 돌아가겠는가. 무릇 국화에 대한 사랑은 정절(靖節)380)의 뒤에 생겼으니, 우리가 어찌 감히 말하겠는가. 다만 오늘날 인류가 짐승처럼 되고 윤리가 식은 재처럼 사라져버렸으니, 어찌 다만 참절(僭竊)한 재앙 속에 얹혀사는 노비381)일 뿐이겠는가. 내가 원하건대 많은 국내 지사들은 향기를 품고 절개를 지켜서 아홉 번 죽어도 변치 않으며, 지금 세상의 겨울 국화가 되어 이에 정절의 가을 국화보다 빛남이 있기를 맹세하라."라고 하였다. 甲子冬, 余留雨日之南山齋. 時値十月上旬, 山月皎皎, 朔風射人, 彷徨庭際, 叵耐歲暮之感. 適金君長煥贈余以一朶黃菊, 金葩粲粲, 不減重陽色態. 余喟然而嘆曰: "秋風一起, 群芳摧盡, 霜菊已爲可貴, 況雪菊乎? 士之今日, 菊之雪天, 疇能歷盡層層變難, 而節操彌厲, 與爾同歸? 夫菊之愛, 靖節之後, 我何敢言? 顧今人類翔走, 倫理灰盡, 豈但寄奴僭竊之禍? 吾願海內志士, 抱香持節, 九死不變, 誓作今天下冬菊, 于以有光靖節之秋菊.". 국화에 …… 정절(靖節) 정절은 도잠(陶潛, 365~427)의 시호이다.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다. 도연명은 국화를 매우 좋아하였다. 국화는 그의 많은 작품에 보이는데, 《도연명집(陶淵明集)》 권2 〈화곽주부(和郭主簿)〉에서는 "우뚝 서리 아래 걸물이 되었다.[卓爲霜下傑]"라고 국화를 칭송하기도 하였다. 참절(僭竊)한 …… 노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처참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말한다. 후창이 이 글을 쓴 때가 갑자년(1924)인데, 이미 1910년에 한일합방이 이루어져 온 나라의 백성이 일제의 가혹한 통치 아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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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서 문자의 호칭을 오용하는 것에 대한 변론 世俗文字稱號誤用辨 공자가 '인(仁)하지만 말재주가 없다.'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어찌 말재주를 쓰겠는가. 넉넉한 말재주로 남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받을 뿐이다.382)"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말재주가 없는 것은 바로 미덕(美德)이다. 고금에 문인들이 대부분 말재주가 없다는 것으로 자칭(自稱)하는데 이는 미덕으로 자처하는 것이니, 어찌 겸사(謙辭)이겠는가. 문인뿐만 아니라 중세 이후 현유(賢儒)도 대부분 이와 같았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결코 그대로 따라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남의 조카를 일컬어 '함씨(咸氏)', '영함(令咸)', '종함(從咸)', '당함(堂咸)'이라 하니, 이는 무슨 의의(義意)가 되는가. 완함(阮咸)383)은 본래 완적(阮籍)384)의 조카이니, 다른 사람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게다가 완적과 완함은 숙질(叔姪)간으로, 예법의 밖에서 스스로 거리낌 없이 행동하였으니, 본래 사모할 만한 현자가 아닌데, 차용하여 체면을 세워주는 자가 어떻게 이로써 남을 일컬어 해를 끼치는가. 심지어 그 조카를 '함씨', 그 숙부를 '완장(阮丈)', '종완장(從阮丈)', '당완장(堂阮丈)'으로 일컫는데 이르러서는, 한번은 그 이름을 들고, 한번은 그 성을 들었으니 더욱 지극히 가소롭다.증자가 자리를 바꾼 것은385) 비록 바름을 얻었다고 하지만, 결국 그가 자리를 바꾸기 전에는 스스로 살피지 못한 일이니, 촛불을 잡고 있던 동자(童子)가 아니었다면 혹 거의 바름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다만 마땅히 그가 바름을 얻은 것을 사모하여 배우고, 그 전에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결국 이는 증자가 홀로 행한 일일 뿐인데, 어찌하여 후대에 유현(儒賢)이 몰(沒)했을 때, 이러한 일이 있지 않은데도 관례로 역책을 일컫는가.상례의 형식[易]과 슬퍼하는 마음[戚]은386) 모두 중도(中道)를 잃은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거상(居喪)을 잘한 사람을 일컬어 바로 '이척(易戚)이 모두 지극하다.'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마땅히 '감정과 형식이 모두 지극하다.[情文備至]'라고 해야 한다.아들의 죽음에 곡하다가 실명(失明)한 것은387) 자하(子夏)의 지나친 부분인데, 요즘 사람들은 자식을 잃은 사람을 일컬어 바로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 하니, 이러한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내를 잃고 동이를 두들기면서 노래를 부른 것은 장자(莊子)의 방탕함이니388), 또 아내를 잃은 사람을 일컬어 '고분지통(叩盆之痛)'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마씨(馬氏)의 5형제 가운데 마량(馬良)389)의 자는 계상(季常)인데, 자라면서 눈썹이 하얗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씨의 오상(五常) 가운데 흰 눈썹[白眉 마량]이 가장 뛰어나다.390)"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남의 백형(伯兄)을 '백미(白眉)'로 일컫고 '가장 뛰어나다.'는 뜻을 취했으니, 아름다운 호칭인 듯하다. 그러나 '백미'는 결국 사람의 모습이 변이(變異)한 것이니, 이러한 호칭은 남의 형을 공경하는 도리가 아니다.상고시대에 푸른 매화[靑梅], 풀명자나무[査上] 위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자녀의 혼사를 정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이 어떤 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세속에서 신랑과 신부의 부모가 서로 '사돈(査頓)'으로 부른다고 하니, 이는 무의미한 말이다. 그렇다면 만일 풀명자나무 위가 아닌 꽃 아래[花下]에서 머리를 조아렸다면 마땅히 '화돈(花頓)'으로 일컬어야 하는가.'윤(胤)'은 《자서(字書)》에 '계통을 잇다[繼]', '잇다[嗣]'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윤'은 장자(長子)를 일컫는 것이니, 지금 세속의 서찰과 언어에서 남의 아들을 일컬을 때 장자와 차자(次子)를 묻지 않고 공통으로 '윤우(胤友)', '윤군(胤君)'이라고 하는 것은 오류이다. 10년 전에 내가 사는 고을의 임 박사(林博士)가 박모(朴某)에게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 차자에 대해 언급하면서 "윤군이 와서 배웠다. ……"라고 말하였다.이때 마침 박모의 장자가 죄를 범해 밖에 피해있었는데, 일본 사람이 집 안의 문서를 탐색하다가 임 박사의 편지를 찾고는 와서 따져 물었다. 이에 임 박사가 말하기를 "내가 그의 차자를 가리켰고, 그의 장자는 애초에 무관하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일본 사람이 말하기를 "《자서(字書)》에서 '윤'은 장자의 칭호이고 공은 박사인데, 어찌 글자의 뜻을 모를 리가 있는가. 이는 임시로 말을 바꾼 것이니,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 뒤에 박모의 장자를 잡고 난 뒤에야 임 박사가 무사할 수 있었다. 그가 비록 오랑캐이지만 오히려 자학(字學)에 정밀함이 이와 같았다.내구(內舅)의 아들이 내종(內從)이고 고(姑)의 아들이 외종(外從)인데, 지금 통속적으로 대부분 바꾸어 부르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세속에서 내구를 외숙(外叔)으로 부르기에 그 아들을 외종으로 부른다. 이미 이를 외종으로 불렀으니, 절로 마땅히 고의 아들을 내종으로 불러야 한다. 비록 그렇지만 이는 크게 옳지 않다. 모(母)의 형제가 구(舅)가 되는 것은 예경(禮經)에 드러나 있고, 그 '내구'라고 이른 것은 외구(外舅)와 구별한 것이다. 이미 '내구'라고 하였으니, 그 아들 되는 자가 어찌 내종이 되지 않겠는가. 이 아들이 이미 내종이 되었다면, 출가외인인 고의 아들이 어찌 외종이 되지 않겠는가.부(父)의 처를 '모(母)'라 하고 부의 자매(姊妹)를 '고(姑)'라 한다. 따라서 고는 다만 마땅히 '고'로 일컬을 뿐이니, 만일 '고모(姑母)'라고 일컬으면 온당치 않다.세속에서는 처의 형제를 '처남(處娚)'으로 부르는데, 남(娚)이 《자서(字書)》에 보이지 않으니 마땅히 '처형(妻兄)', '처제(妻弟)'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처의 자매(姊妹)를 '처형', '처제'라고 일컫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것은 마땅히 '처자(妻姊)', '처매(妻妹)'라고 해야 한다.여자 가운데 나보다 먼저 태어난 자를 손윗누이[姊]라 하고, 나보다 뒤에 태어난 자를 누이[妹]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세속에서 그다지 분별하지 않고 손윗누이의 남편을 '매부(妹夫)', '매형(妹兄)'이라 하고, 손윗누이의 집을 '매가(妹家)'라 한다. 부녀자와 아이들뿐만 아니라 장부로서 장년에 이른 자도 그렇게 부르니 이는 큰 망발이고, 매형이라고 이른 것은 더욱 우습다. 이미 '매(妹)'라고 하였는데 또 어찌 '형(兄)'이라고 하는가. 마땅히 '자부(姊夫)'라고 해야 한다. 만일 '자형(姊兄)', '매제(妹弟)'라고 이른다면 겨우 말이 된다.'수(嫂)'는 형의 아내이니, 세속에서 '제수(弟嫂)'라고 일컫는 것은 터무니없다. 마땅히 '제부(弟婦)'라고 해야 한다.시문(詩文) 사이에 세속 사람들이 '경성(京城)'을 '장안(長安)', '낙양(洛陽)'으로 일컫는 것은 잘못이다. 장안과 낙양은 본래 그 지역이 있는데 어느 곳에 해당되는가. 사실을 기록하는 글 및 장문(狀文)이나 갈문(碣文)을 지을 때 더욱 사용해서는 안 된다.'하(芐)'는 지황(地黃)이니, 지황은 가라앉아 내려가는 성질이 있기에 풀 초(艸)를 좇고 아래 하(下)를 좇는다.391) 그런데 요즘에는 '변[苄]'이 되었으니392), 예를 들어 '생변[生苄 생지황]', '숙변[熟苄 숙지황]', '변개(卞介)'라고 하는 것은 약성(藥性)에 있어서 어느 것에 해당하는가.노(魯)나라와 위(衛)나라의 합장(合葬)은 〈단궁(檀弓)〉에서 무덤 안의 관(棺 속 널)과 곽(槨 겉 널)의 이합(離合)으로써 말하였다.393)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분묘(墳墓)의 합봉(合封)과 각봉(各封)으로써 말하니, 인가(人家)의 묘도 문자(墓道文字)에 사용하는 것은 사실에 근본한 것이 아니다.옛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다만 그 자손만 보았을 경우, 그 아들을 평범한 사람이나 용렬한 사람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문 위에 '봉(鳳)'자를 써서 붙이고 돌아갔다.394) 그러나 글자가 비록 겉보기에 좋지만 실제로는 범조(凡鳥)395)이기에 당나라 시에 '문에 이르러 감히 범조(凡鳥)라고 쓰지 못한다.396)[到門不敢題凡鳥]'라고 이른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서찰에 '봉'자를 쓰고 돌아오는 것을 무난하게 사용하니, 이는 범조로 남의 자손을 대우하는 것이다.양자로 나아가 과방(過房)397)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경전에는 보이지 않고, 조조(曹操)398)가 하후승(夏侯嵩)399)의 후사가 된 데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생각건대 그것(과방)은 이성(異姓)의 후사가 된 경우에만 사용하고, 동성(同姓)의 후사가 된 경우에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진 강공(秦康公)이 그 외삼촌을 전송하여 위양(渭陽)에 이르렀기에400) 다른 사람의 외삼촌을 '위양장(渭陽丈)'이라고 일컫는다. 주자가 사자(獅子)를 그려 외손(外孫)에게 주었기에401) 외손을 '사손(獅孫)'으로 일컫는데, 모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만일 외삼촌을 전송하여 낙양(洛陽)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낙양장(洛陽丈)'이라고 해야 하고, 외손에게 호랑이를 그려주었다면 마땅히 '호손(虎孫)'이라고 해야 하는가.좌태충(左太冲)이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는데, 황보밀(皇甫謐)402)의 서문(序文)을 얻은 뒤에 문장의 명성이 더욱 성대해졌다.403) 세상에서는 황보밀을 '현안 선생(玄晏先生)'으로 일컫기 때문에 문집의 서문을 '현안지탁(玄晏之託)', '현안지역(玄晏之役)'이라고 하니, 요즘 사람들이 묘도 문자(墓道文字)에 이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공자가 옛날에 머물렀던 관사(館舍) 주인의 상(喪)을 만나 참마(驂馬)404)를 벗겨 부의(賻儀)하게 하자, 문인이 너무 중하다고 의아해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한 번 (관사의 주인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으니, 나는 이유 없이 눈물 흘리는 자를 싫어한다. 소자들아, 부의를 행하라.405)"고 하였다.이것은 '내가 이미 곡을 하고 나와서 눈물을 흘렸는데, 만일 부의를 하지 않으면 이 눈물은 내력(來歷) 없이 다만 흘리는 것이니, 이 어찌 인정(人情)에 마땅한 것이겠는가.'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의의 예를 행한 뒤에라야 바로 인정에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남의 만사(挽詞)406)에 바로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린다.[涕無從]'라는 말을 쓰고 말하기를 "눈물이 갑자기 나오기에 '무종(無從)'이라 한다."라고 하니, 그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근심스러워할 만하다. 무릇 이유 없이 눈물 흘리는 것은 공자가 미워한 것이니, 어찌 다른 사람을 애도하는 말에 사용할 수 있겠는가. 孔子答仁而不侫之問曰: "焉用侫?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則不侫乃美德也. 古今文人多以不侫自稱, 是以美德自居也, 烏在其爲謙辭也? 非惟文人, 中世以降, 賢儒亦多如此, 然後之人決不可襲用.稱人之姪曰咸氏令咸從咸堂咸, 是爲何等義意? 阮咸自是阮籍之姪, 他人何關? 且籍咸叔姪, 自放禮法之外, 則本非可慕之賢, 借用生光者, 何以是稱人而累之也? 至於稱其姪爲咸氏, 稱其叔爲阮丈從阮丈堂阮丈, 一擧其名, 一擧其姓, 尤極可笑.曾子易簀, 雖云得正, 而終其未易之前, 自是未察之事, 若非執燭童子, 或幾乎不得正矣. 後之人只當慕其得正而學之, 不必論其前之未察. 然終是曾子獨行之事而已, 胡爲乎後世儒賢之沒也, 非有此事而例稱易簀也?喪之易戚, 皆失中者也, 今人稱人之善居喪也, 乃曰易戚備至, 此何謂也? 當曰情文備至.哭子喪明, 子夏之過處, 今人稱人之喪子, 乃曰喪明之痛, 此不可用. 喪妻叩盆而歌, 莊子之放狂也, 亦不可稱人喪妻, 曰叩盆之痛.馬氏五兄弟, 良字季常3), 居長而眉白. 時人語曰: "馬氏五常, 白眉最良.". 以是今人稱人之伯兄曰白眉, 取其最良之義, 則似爲美稱. 然白眉終是人形之變異者, 則是稱非敬人兄之道也.上古之有頓首於靑梅査上, 而定子女婚者, 此未知出於何書, 而今俗壻婦之父母, 相稱曰査頓云, 此無意味之說. 若頓首不於査上而於花下, 則當稱花頓乎?胤《字書》繼也嗣也. 然則胤是長子之稱, 今俗書札言語間, 稱人之子, 不問長次, 通謂胤友胤君誤也. 十年前, 吾鄕林博士書于朴某, 語及其次子曰: "胤君來學云云.". 適朴之長子, 有犯避外, 日人探索家中文書, 得林札來詰, 林曰: "吾指其次子, 其長子初無關.". 日人曰: "《字書》胤長子之稱, 公爲博士, 豈有不知字義之理乎? 此是臨時易辭, 吾不信.". 其後得朴之長子, 然後林得無事, 彼雖夷虜, 猶精於字學如此.內舅之子爲內從, 姑之子爲外從, 今俗擧多換稱, 此何以故? 俗呼內舅爲外叔, 故呼其子爲外從. 旣呼此爲外從, 則自當呼姑之子爲內從矣. 雖然, 此大不然. 母之兄弟爲舅, 著於禮經, 而其云內舅者, 別於外舅也. 旣云內舅, 則爲其子者, 豈不爲內從乎? 此旣爲內從, 則嫁外之姑之子, 豈不爲外從乎?父之妻曰母, 父之姊妹曰姑, 姑只當稱姑, 若稱姑母, 未安.俗呼妻之兄弟曰處娚, 娚《字書》無見, 當曰妻兄妻弟, 而今乃稱妻之姊妹曰妻兄妻弟, 何也? 此則當曰妻姊妻妹.女子之先己而生者爲姊, 後己而生者爲妹, 今俗不甚分別, 稱姊之夫曰妹夫妹兄, 姊家曰妹家. 非惟婦孺, 丈夫而壯者亦然, 大是妄發, 妹兄之云, 尤可笑. 旣云妹, 又何兄? 當曰姊夫矣. 若姊兄妹弟之云, 僅成說.嫂兄妻也, 俗稱弟嫂者妄也. 當云弟婦.詩文間, 俗稱京城爲長安洛陽者非也. 長安洛陽自有其地, 何所當乎? 至於記實之文及狀碣之作, 則尤不可用.芐地黃也, 地黃性沈下, 故從艸從下. 今作苄, 例曰生苄, 熟苄, 卞介也, 於藥性, 何所當乎?魯祔衛祔, 〈檀弓〉以壙內棺槨離合而言, 今人以墳墓之合封各封而言, 用於人家墓道文字, 非本實也.古人有訪人不遇, 只見其子, 其子凡庸, 故題鳳字於門上而歸者. 字雖外好, 而其實凡鳥也. 故唐詩云到門不敢題凡鳥. 今人書札題鳳而歸, 無難用之, 是以凡鳥, 待人之子也.謂出後爲過房, 經傳無見, 而始見於曹操爲夏侯嵩之後, 意其但用於爲後異姓, 而不可用於爲後同姓也.秦康公送其舅, 至渭陽, 故稱人之舅曰渭陽丈. 朱子畵獅子, 贈外孫, 故稱外孫曰獅孫, 皆不可用也. 若使送舅至洛陽, 則當曰洛陽丈, 畵贈外孫以虎子, 則當曰虎孫乎?左太冲作〈三都賦〉, 得皇甫謐序文, 然後文章之名益盛. 皇甫謐世稱玄晏先生, 故稱文集序爲玄晏之託, 玄晏之役, 今人於墓道文字, 亦用之此誤也.孔子遇舊館人之喪, 脫驂而賻之, 門人疑其已重. 孔子曰: "吾遇於一哀而出涕4), 吾惡夫涕之無從者, 小子行之!" 此言吾旣哭之而出涕, 若不賻則此涕爲無來歷而徒出, 是豈人情之當然乎? 故必行賻禮, 然後乃當於人情也. 今人挽人之詞, 乃用涕無從之語而曰: "涕淚忽然而出, 故曰無從.", 其錯解誤用可㦖. 大抵涕之無從, 孔子之所惡者, 烏可用於悼人之詞乎? 인(仁)하지만 …… 뿐이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완함(阮咸) ?~?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문인으로, 자는 중용(仲容)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이다. 죽림칠현의 다른 한 사람인 완적의 조카이다. 술을 잘 마셨으며 종종 완적과 함께 음주를 즐겼다. 이 때문에 당대의 선비들에게 질시를 받았다. 완적(阮籍) 210~263. 자는 사종(嗣宗)이다. 위나라 진류(陳留) 사람이다. 아버지는 후한(後漢) 말의 명사이자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완우(阮瑀)이다. 성격이 호방하고 예법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다. 증자가 …… 것은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증자가 병으로 누워 위독했다. 그런데 구석에 앉아 촛불을 잡고 있던 동자가 '빛나고 화려하니 대부(大夫)가 사용하는 자리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증자가 듣고 두려운 기색을 띠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자가 반복하여 말하자, 증자가 '바른 것을 얻고서 죽으면 그뿐이다.'라고 붙들어 일으키고 자리를 바꾸었는데, 다시 자리에 누워 안정되기도 전에 몰(沒)했다."라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상례의 …… 마음[戚]은 《논어》 〈팔일(八佾)〉에서 공자가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은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라고 말한 데서 나왔다. 아들의 …… 것은 《예기》 〈단궁 상〉에 "자하가 아들을 잃고 실명하였다.[子夏喪其子, 而喪其明.]"라고 한 데서 나왔다. 아내를 …… 방탕함이니 《장자(莊子)》 〈외편(外篇) 지락(至樂)〉에 "장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惠子)가 문상을 갔는데, 장자가 마침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동이를 두들기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莊子妻死, 惠子弔之, 莊子則方箕踞, 鼓盆而歌.]"라고 말한 데서 나왔다. 마량(馬良) 187~222. 자는 계상(季常), 백미(白眉)이다.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이고, 마씨의 5형제 가운데 장남이다. 눈썹이 흰색이라 백미(白眉)라고도 불렸다. 당시 …… 뛰어나다 《삼국지(三國志)》 권39 〈촉서(蜀書) 마량전(馬良傳)〉에 "마량은 자가 계상으로 양양 의성 사람이다. 그의 집에 5형제가 있었는데 모두 재주가 출중했다. 고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씨의 오상 가운데 흰 눈썹이 가장 뛰어나다.'라고 하였다. 마량이 눈썹에 흰 털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컬어졌다.[馬良字季常, 襄陽宜城人也. 兄弟五人, 並有才名, 鄉里爲之諺曰:'馬氏五常, 白眉最良.'. 良眉中有白毛, 故以稱之.]"라고 말한 데서 나왔다. 풀 …… 좇는다 '芐'자가 풀 초와 아래 하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변(卞)'이 되었으니 '芐'는 '지황 하'인데, '下'자가 '卞'자로 잘못 읽히면서 '변[苄]'이라는 한국식 한자가 생긴 듯하다. 따라서 '숙하(熟芐)'가 맞고 '숙변[熟苄]'은 잘못이지만, '숙변'을 '숙하'의 변한 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전에서도 '숙변'과 '숙하'를 모두 인정하여 이 두 단어를 서로 유의어로 보았다. 노(魯)나라와 …… 말하였다 춘추 시대에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합장하였는데, 그 방식이 달랐다는 것을 말한다. 《예기》 〈단궁 하〉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위나라 사람들의 합장은 분리하였고, 노나라 사람들의 합장은 합하였는데, 노나라 방식이 더 좋다."라고 하였고, 소(疏)에 "부는 합장이다. 분리한다는 것은 겉 널 속에 어떤 물건으로 두 속 널의 사이를 격리시키는 것이다. 노나라 사람들은 합하였으니, 이는 두 속 널을 함께 겉 널 속에 두고 다른 물건으로 격리시키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옛사람들은 …… 돌아갔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간오(簡傲)〉에 "(진(晉)나라) 여안(呂安)이 (절친) 혜강(嵇康)을 찾아갔는데, 마침 혜강은 없고 그의 형 희(喜)가 나와서 맞이하였다. 그러자 여안은 방 안에 들어가지 않고 문 위에 '봉'자를 써서 붙이고 떠났다.[安後來, 值康不在, 喜出戶延之. 不入, 題門上作鳳字而去.]"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손이 찾아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는 뜻이다. 글자가 …… 범조(凡鳥) '봉'자를 파자(破字)하면 범조가 된다. 이는 시원찮은 새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이나 용렬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 못한다 왕유(王維)의 〈춘일여배적과신창리방여일인불우(春日與裴迪過新昌里訪呂逸人不遇)〉라는 시에 나온다. 과방(過房) 아들이 없을 경우 형제 또는 일가의 친척을 양자로 삼는 일, 또는 그 사람을 말한다. 조조(曹操) 155~220. 중국(中國) 후한(後漢) 말기(末期)의 무장(武將)이다. 본성은 하후(夏侯)이고 자는 맹덕(孟德)이다. 황건(黃巾)의 난(亂)을 다스려 군공(軍功)을 세웠다. 원소(袁紹)와 같이 도적과 흉노(匈奴)를 토벌하면서 세력을 확장하여, 동탁(董卓)의 사후 정권을 장악하였다. 하후승(夏侯嵩) 본래 조조의 아버지 조숭(曹嵩 ?~194)이다. 자는 거고(巨高)다. 성은 본래 하후씨(夏侯氏)였는데, 환관 조등(曹騰)의 수양아들이 되었다. 진 강공(秦康公)이 …… 이르렀기에 춘추 시대 진 강공이 망명 생활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삼촌 중이(重耳), 즉 진 문공(晉文公)을 전송할 때에 "내 외삼촌을 전송하여 위양에 이르렀노라.[我送舅氏, 曰至渭陽.]"라고 노래한 내용이 《시경》 〈진풍(秦風) 위양(渭陽)〉에 나온다. 주자가 …… 주었기에 주희가 사위 황간(黃榦)에게 한 폭의 사자 그림을 보내면서, '외손 황로(黃輅)가 떨쳐 일어나 포효하는 사자를 닮기 바란다.'라고 하는 내용이 《주자대전 속집(朱子大全 續集)》 권1 〈답황직경(答黃直卿)〉에 보인다. 또 《서산문집(西山文集)》 권35 〈화사첩(畫師帖)〉에 "주 문공이 육탐미가 그린 사자상을 그 외손 황로에게 보내 주었다. 황로의 자는 자목이니, 면재의 장자이다.[朱文公以陸探微所畫師子像, 遺其外孫黄輅. 輅字子木, 勉齋長子也.]"라는 내용이 나온다. 육탐미는 육조(六朝) 시대 송(宋)나라의 유명한 화가이다. 황보밀(皇甫謐) 215~282. 위(魏)나라와 진(晋)나라 사이의 의사이자 문학가이다. 자는 사안(士安)이고 어릴 때 이름은 정(靜)이며, 현안 선생(玄晏先生)이라 자호(自號)하였다. 좌태충(左太冲)이 …… 성대해졌다 태충은 좌사(左思, ?~?)의 자이다. 서진(西晉)의 시인이다. 좌사가 10년 동안 구상하여 〈삼도부(三都賦)〉, 즉 〈촉도부(蜀都賦)〉, 〈오도부(吳都賦)〉, 〈위도부(魏都賦)〉를 지었는데, 황보밀이 서문을 써주어 칭찬하자 부귀한 자들이 서로 다투어 베껴서 낙양의 종이값이 폭등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晋書)》 권92 〈문원전(文苑傳) 좌사(左思)〉 참마(驂馬) 《예기》 〈단궁 상〉의 주에 "수레에 멍에를 멜 때, 가운데 두 마리는 복마(服馬), 양쪽 바깥의 각각 한 마리는 참마가 된다.[駕車者, 中兩馬爲服馬, 兩旁各一馬爲驂馬.]"라고 하였다. 공자가 …… 행하라 《예기》 〈단궁 상〉에 나온다. 만사(挽詞)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이다. 良字季常 대본에는 '謖字幼常'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을 살펴 수정하였다. 遇於一哀而出涕 대본에는 '一於遇哀而哭之'로 되어 있는데, 《예기》 〈단궁 상〉의 원문에 근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남산재에서 제군을 깨우쳐줌 【1924년】 南山齋喩諸君 【甲子】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받은 것 가운데에 순수한 성(性), 신령스럽고 밝은 마음, 바르고 준수한 몸이 있고, 자기에게 속한 윤리 가운데에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가 있다. 성은 마땅히 길러야 하고 마음은 마땅히 보존해야 하며, 몸은 닦아야 하고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도하며, 임금은 인자하고 신하는 공경하며, 부부는 분별이 있고 장유는 차례가 있으며, 붕우는 신의가 있어야 하니, 이는 모두 우리 몸에 절실한 직무이기 때문에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나 본래 태나면서부터 아는 뛰어난 성인의 자질이 아니면 반드시 선각자에게 배워야 하고 사우(師友)에게 물은 뒤에야 본분을 다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니, 이는 학문의 이름이 세워진 이유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학문의 본의(本意)를 모르고, 이는 문달(聞達)407)을 구하는 것이고 이록(利祿)을 구하는 것이며, 현묘(玄妙)함을 바라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에 겨우 몇 부의 경전을 읽고 조금의 수고로움을 하고는 이름과 봉록이 창성하지 않고 기이한 효과가 이르지 않으면 갑자기 학문을 포기하고 권모술수와 공명의 길로 좇아가니, 천년의 실학(實學)의 폐해짐이 모두 이 때문인데, 하물며 지금의 세상에 있어서이겠는가.큰 성인[大聖]에게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덮어씌우고, 윤리와 강상은 사람을 죽이는 짐독(鴆毒)408)으로 돌리는데, 넓고 넓은 천지에서 한 자 되는 주름진 소매가 달린 도포를 입은 그대들이 이러한 때에 적막한 물가에 모여 부지런히 글을 읽으니, 직분을 다하면서도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것을 깊이 아는 자가 아니면 이처럼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서로 장점을 관찰하여 본받는 선(善)409)이 없고, 쓸쓸한 처지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기뻐하기만 하니, 어찌 거들어줄 한마디 말이 없겠는가.내가 듣건대 군자의 학문은 처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잘 마치는 것이 어렵고, 예기(銳氣)를 떨쳐 일으키는 것이 다만 귀한 것이 아니고 지성(至誠)으로 투철하게 하는 것이 참으로 두려울 만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성(性)과 심(心)과 신(身)이 없으면 바야흐로 이를 기르고 보존하며 닦는 공이 없고,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가 없으면 바야흐로 자애[慈], 효(孝), 인자[仁], 공경[敬], 분별[別], 차례[序], 신의[信]의 도가 없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천하에 신심(身心)과 윤속(倫屬)410) 없는 사람이 없으니, 도와 공을 마땅히 배우고 물어서 잠시도 버릴 수 없음이 분명하다.주자가 이르지 않았던가. "한 숨이 남아있는 순간까지 이 뜻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짐을 용납하지 않는다.411)"라고 하였다. 이는 그대들과 생사를 함께 하는 영부(靈符)와 진결(眞訣)412)이니, 보배롭게 간직하고 또 유념하라. 이를 비유하면 오곡이 풍년일 때에 많은 곡식을 갈무리하는 일은 오히려 쉽게 할 수 있지만, 흉년이 들어 굶주린 해에 많은 곡식의 종자를 저장하여 다가오는 해의 파종에 대비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것과 같다.앞으로 그대들의 성취가 어떨지는 오직 재능의 고하(高下)와 노력의 심천(淺深)에 달려 있으니, 내가 감히 예언하지 않겠다. 가령 크게 성취하지 못하여 공자가 말한 삼사중품(三士中品)413)과 맹자가 말한 이중사하(二中四下)414)에 그치더라도, 그 세도(世道)에 도움 되는 공이 어찌 갑자기 다스림과 교화가 아름답고 밝은 때의 한 대군자(大君子)보다 못하겠는가. 이 때문에 내가 "오늘 그대들 몇 사람이 뒷날 온 백성의 생활종자(生活種子)이다."라고 말하겠다. 이러한 데까지 생각이 이르렀으니, 어찌 매우 중요하지 않겠으며, 어찌 감히 잠시라도 머뭇거리겠는가.오직 학문의 실제는 신심(身心)과 윤리에 있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415)"라고 하였고, 맹자가 말하기를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416)"라고 하였으니, 이는 성현(聖賢)이 세운 만대의 표준이다. 그런데 근래 이후로 밖을 중시하고 안을 경시하여 실제적인 것을 버리고 공허한 것을 숭상하며, 몇 조항의 명리(名理)417)로 화로의양(畵蘆依樣)418)하고, 몇 편의 사장(辭章)으로 작은 기교를 부린다. 그리고 곧바로 우뚝 선각(先覺)으로 자처하고 사람들도 우뚝한 선각으로 대우하여 더이상 그의 심술과 덕행이 어떠한가를 묻지 않으니, 아! 이는 학문의 적(賊)이다.원컨대 그대들은 학문의 적을 몹시 미워하고, 성인의 표준에 정성과 노력을 다하여 효제충신(孝弟忠信)에 종사하라. 그리고 성찰하여 극기복례를 하는 데 실제로 체행하라. 게으름 없이 부지런히 하여 참되게 쌓고 오랫동안 노력한다면 하학(下學)이 이름에 어찌 상달(上達)할 날이 없겠는가. 하물며 여사(餘事)419)인 이른바 문사(文辭)에 있어서이겠는가.붕우(朋友)는 덕업(德業)에 있어 필요로 하여 이루는 자이기 때문에 오륜(五倫)의 한 조목에 해당되는데, 후대에 우도(友道)가 모두 없어져 서로 필요로 하여 이루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간혹 배척하여 실패하니, 너무나 통탄스럽다. 지금 그대들은 동당(同堂)에서 도와 뜻과 업을 함께 하니, 그 정의가 두텁지 않겠는가. 오직 원하건대 서로 권면하고 각자 채찍질하여 성찰하며, 학문을 믿고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지 말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며, 과실을 보고도 바로잡아주지 않지 말며 선을 보고도 싫어하거나 꺼리지 말라. 연이은 산봉우리는 양쪽으로 솟아나 더욱 높고, 두 개의 못이 붙어 있는 것은 서로 도움을 주어 더욱 깊어지니, 말세의 나쁜 풍습을 한번 깨끗하게 씻고 각자 그대들의 아름다운 덕을 공경하라.법복(法服)을 언행보다 우선시 한 자는 공자(孔子)이고420), 의관(衣冠)을 첨시(瞻視)보다 우선시 한 자는 주자(朱子)이니421), 이는 진실로 학문의 수제(首題 표제(標題))이다. 이는 태평한 세상에서도 오히려 삼가는데 이 오랑캐를 만난 날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한가하게 지낼 때에도 내팽개치지 않는데 경전을 대독(對讀)할 때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청컨대 그대들은 항상 폭이 넓은 소매의 상의(上衣)를 입고, 한편으로는 옛것을 본받고 지금의 것을 끊는 뜻을 확고히 하며, 한편으로는 밖을 제어하여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삼되, 표방한다고 하여 이를 꺼리거나 외면을 꾸민다고 하여 이를 경시하지 말라. 내가 장차 의복을 삼가는지 않는지를 가지고 그대들의 진수(進修)422)를 시험할 것이다.한 번 예를 잃으면 이적(夷狄)에 들어가고, 두 번 잃으면 금수(禽獸)에 들어가니, 이것은 금일 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가 원하건대 그대들은 몸단속 할 때 시동처럼 앉고 재계하는 것처럼 서며, 발은 무겁게 하고 손은 공손하게 하는 곡례(曲禮)423)를 삼가며, 집에서 지낼 때 관례(冠禮), 영상(迎相)424), 초상(初喪)을 삼가고 멀리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네 가지 예를 다하라. 그래서 점점 훗날에 행동거지와 주선(周旋)이 예에 맞게 되면 나라의 예법을 주창해 밝히고, 더러운 이 세상을 깨끗이 씻어서 태평성대에 올려놓는 것이 그대들에게서 나오지 않을 줄을 어찌 알겠는가. 힘써 노력하라!학문하는 방도는 진실로 생각을 성실히 하여 실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또 조용히 심신을 수양하는 공부가 본원(本源)이 된 뒤에야 행동할 때 품절(品節 절도(節度))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그 지극한 것을 논하면 진실로 갑자기 말할 수 없지만, 분수에 따라 공을 베풀어 점차 효험을 보는 것에 이르러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색하고 번뇌하며 강송(講誦)하고 근로(勤勞)한 뒤에, 눈을 감고 바르게 앉아 이 마음을 맑게 보존하고, 긴장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으며,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야 하니, 이것이 그 공부이다. 이렇게 해나가서 익숙해지면 마치 달이 하늘에 떠 있어 사방이 모두 환하게 밝고, 물결 없는 연못에 한 웅덩이가 자재(自在)한 것 같은 기상(氣象)을 거의 볼 것이니, 어찌 쾌활하지 않겠는가.글자의 모양은 천지의 이상(理象)에 근본하고, 글자의 소리는 음양의 성률(聲律)에 맞는다. 따라서 만일 하나의 점획(點畫)과 발음의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바로 다른 글자와 소리가 되니, 문의(文義)의 횡결(橫決 단절)과 인사(人事)의 오패(誤敗 오판하여 그르침)는 오히려 작은 일이다. 심한 경우 혹 천지가 뒤집히고 윤리가 뒤바뀌어 거꾸로 되는 지경에 이른다. 예를 들면 동쪽과 서쪽, 통함과 막힘이 바뀌면 해와 달의 출입하는 길이 바뀌고, 부(夫)와 부(婦), 평성과 거성이 섞이면 남녀의 명칭이 자리가 다르게 되니, 어찌 크게 걱정하고 두려워할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천지가 만물을 내는 것과 성인이 만사에 응하는 것은 모두 정성[誠]이니, 천지와 성인도 그러한데 배우는 자가 정성스럽지 않고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정성은 사물의 시작이며 끝이니, 정성스럽지 못하면 사물이 없게 된다.425)"라고 하였다. 이상 고한 내용이 비록 잡다하지만 과연 그대들이 정성으로 행한다면 또한 족히 수신하고 법을 행하여426) 학문하는 실제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말한 것은 무의미하게 되고 들은 것은 잊어버린 것 같아, 피차에 도움 될 것이 없고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사게 될 것이니, 유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夫人之生稟乎天者, 有純粹之性, 靈昭之心, 正秀之身焉, 倫屬乎己者, 有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焉. 性之當養, 心之當存, 身之當修, 父子君臣之慈孝仁敬, 夫婦長幼朋友之別序信, 皆吾切身之職務, 而不容不盡者也. 然自非生知上聖之資, 必學之於先覺, 問之於師友, 然後 乃能知盡分之方, 此學問之名, 所以立也. 世之人不知學問之本意, 以爲是求聞達也, 干利祿也, 希覬玄妙也. 纔讀得幾部經傳, 喫得些少勤苦, 而名祿不昌, 奇效不至, 輒抛棄之, 趨而之權術功名之途, 千載實學之廢, 皆坐乎此, 而況乎今之世乎? 大聖之加罔赦罪科, 倫綱之歸殺人鴆毒, 廣天地之恢恢, 一尺袖之蹙蹙諸君, 乃以此時, 聚首劇讀於寂寞之濱, 非深知職分之當盡而無所希求者, 能若是乎? 顧未有相觀之善, 喜在空谷之跫, 豈闕一辭之贊? 吾聞君子之學, 有其始之非難, 克其終之爲難, 奮發銳氣之非徒貴, 至誠透徹之眞可畏, 須知無此性無此心無此身, 方可無養之存之修之之功, 無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方可無慈孝仁敬別序信之道, 天下無無身心無倫屬之人, 則道與功之當學當問, 而不得暫捨也決矣. 朱子不云乎? "一息尙存, 此志不容少懈.". 此爲諸君與生俱死之靈符眞訣, 其寶藏之, 抑又念之. 譬之五穀樂歲之多藏厚蓄, 尙可易力也, 至於凶年饑歲, 能儲得多少穀種, 以待來歲布播, 其功爲尤難. 諸君前頭成就之多少, 惟在材之高下, 功之淺深, 吾不敢預言. 雖使未能大就, 止於孔子所稱三士中品, 孟子所稱二中四下, 其裨益世道之功, 豈遽下於治敎休明之時一大君子哉? 余故曰: "今日諸君幾箇人, 異時萬姓生活種子.". 念到于此, 豈不十分關重? 豈敢一晷虛徐?惟其學問之實之在身心倫理也. 故孔子曰: "行有餘力, 則以學文.", 孟子曰: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 此聖賢之萬世準的也. 挽近以來, 重外而輕內, 棄實而尙虛, 幾款名理之畵蘆依樣, 幾篇辭章之雕蟲施巧, 便巍然自處以先覺, 人亦以巍然先覺待之, 更不問其心術德行之如何, 嗚呼! 此學問之賊也. 願諸君痛心疾首於學賊, 竭誠盡力於聖的, 從事乎孝弟忠信之上, 實體乎省察克復之際, 孜孜無怠, 眞積力久, 則下學之至, 豈無上達之日? 而況所謂文辭, 又其餘事哉!朋友德業之所須而成者, 故居五倫之一, 後世友道喪盡, 不惟不相須而成, 反或相擠而敗, 可勝痛哉? 今諸君以同道同志同業于同堂之中, 其誼顧不重歟? 惟願互相勸勉, 各自策省, 勿恃學而矜人, 勿愧恥於下問, 勿見過而不規, 勿見善而厭忌. 連峯對起而增高, 麗澤互資而益深, 一洗末俗之惡習, 各敬爾身之美德也.法服之先於言行, 孔子也, 衣冠之先於瞻視, 朱子也, 此固學問之首題也. 平世之猶謹, 値此卉氊之日乎! 燕處之不放, 對讀經傳之時乎! 請諸君恒著廣袖上衣, 一以確師古絶今之志, 一以爲制外養中之方, 勿以標榜而忌之, 外飭而輕之. 吾將以衣服之謹不謹, 驗諸君之進修也.禮一失則入於夷狄, 再失則入於禽獸, 今日之謂也. 吾願諸君撿身而謹坐尸立齊足重手恭之曲禮, 居家而盡冠首迎相愼終追遠之四禮, 馴致異日動容周旋之中禮, 倡明邦國之經禮, 洗斯世之汚而升之隆, 安知不出諸君乎? 勉之哉!爲學之道, 固在乎誠思實踐. 然前此又有靜養工夫爲之本源, 然後動而得以品節不差. 若論其極, 固不可驟語, 至於隨分施功, 漸次見效, 則不可已者. 思索煩惱之餘, 講誦勤勞之後, 閉目端坐, 澄存此心, 不緊不歇, 勿忘勿助, 是其功也. 此而到熟, 庶見如月當空, 四面皆徹, 如淵無波, 一泓自在底氣象, 好不快活?字形本諸天地之理象, 字音協諸陰陽之聲律, 若其小差一點畫一脣舌之間, 便成別字異音, 文義之橫決, 人事之誤敗, 猶是小事. 甚或至於天地之翻覆, 倫理之倒錯, 如卯酉通塞之換, 日月之出入易路, 夫與婦平去之混, 男女之名稱異位, 豈非大可憂懼者乎?天地之所以生萬物, 聖人之所以應萬事, 皆誠也, 天地聖人亦然, 而學者可不誠而成哉? 故曰: "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 以上所告, 雖甚粗淺, 果諸君之以誠行之, 亦足以修身行法, 無愧學問之實. 如其未也, 言者歸虛, 聽者如遺, 彼此無補, 反貽人譏, 可不念哉! 문달(聞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말한다. 짐독(鴆毒) 짐새의 깃에 있다는 맹독(猛毒)이다. 서로 …… 선(善) 대본의 '相觀之善'은 《예기》 〈학기(學記)〉에 "서로 장점을 보고 배워 착한 길로 이끌어가는 것을 마라고 한다.[相觀而善之謂摩.]"라고 한 데서 나왔다. 윤속(倫屬) 천륜(天倫)의 친속(親屬)을 말한다. 한 …… 않는다 《논어집주》 〈태백(泰伯)〉에서 주자가 "인이란 인심의 온전한 덕이니, 반드시 몸으로써 체행하여 힘써 행하려고 한다면 책임이 중하다고 이를 만하고, 한 숨이 남아있는 순간까지 이 뜻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짐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멀다고 이를 만하다.[仁者人心之全德, 而必欲以身體而力行之, 可謂重矣, 一息尙存, 此志不容少懈, 可謂遠矣.]"라고 하였다. 진결(眞訣) 진법(眞法) 또는 비결(秘訣)이란 뜻으로, 도를 전하는 정수(精粹)를 말한다. 삼사중품(三士中品) 《논어》 〈옹야(雍也)〉에 "중등 인물[中人] 이상의 사람에게는 높은 것을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으나, 그 이하의 사람에게는 이를 말해 줄 수 없다.[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라고 공자가 말한 내용이 나온다. 이중사하(二中四下)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서 맹자가 자신의 제자 악정자(樂正子)를 평하여 "악정자는 두 가지의 중간이요, 네 가지의 아래이다.[樂正子, 二之中, 四之下也.]"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선인(善人)과 신인(信人)의 사이에 위치하고, 미인(美人), 대인(大人), 성인(聖人), 신인(神人)의 아래에 위치하는 것을 말한다. 행하고 …… 한다 《논어》 〈학이(學而)〉에 나온다. 학문의 …… 뿐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온다. 명리(名理) 위진(魏晉) 시대의 청담가(淸談家)들이 사물의 명(名)과 이(理)를 분석하며 시비(是非)와 동이(同異)를 따지던 것을 가리킨다. 화로의양(畵蘆依樣) 호로(葫蘆 조롱박) 모양만을 본떠서 그려 낸다는 뜻으로, 참신함이 없이 단순히 남을 모방하는 것을 말한다. 《유설(類說)》 권17 〈동헌필록(東軒筆錄)〉에 나온다. 여사(餘事)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말한다. 법복(法服)을 …… 공자이고 《효경(孝經)》 〈경대부장(卿大夫章)〉에 "선왕의 법도에 맞는 옷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않으며, 선왕의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않으며, 선왕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는다.[非先王之法服, 不敢服, 非先王之法言, 不敢道, 非先王之徳行, 不敢行.]"라는 말이 나온다. 의관(衣冠)을 …… 주자이니 주자의 〈경재잠(敬齋箴)〉에 "그 의관을 바르게 하고 그 시선을 존엄하게 하며, 잠심하여 거처하고 상제를 대하듯이 하라.[正其衣冠, 尊其瞻視, 潛心以居, 對越上帝.]"고 하였다. 진수(進修) 진덕수업(進德修業)의 줄임말로, 덕을 쌓고 학업을 닦는 것을 말한다. 곡례(曲禮) 구체적인 소절목(小節目)의 위의(威儀)로, 《예기》 〈예기(禮器)〉에 "곡례가 3천 가지이다.[曲禮三千]"라고 하였다. 영상(迎相) 도와줄 아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친영을 의미한다. 《의례(儀禮)》 〈사혼례(士婚禮)〉 성은 …… 끝이다 《중용장구》 〈제25장〉에 보인다. 법을 행하여 《맹자》 〈진심 하〉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법을 행하여 명을 기다길 뿐이다.[君子行法以俟命而已矣.]"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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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덕천서사 규약 【1925년】 德川書社規約 【乙丑】 거처'거(居)'는 내 몸을 두는 것이고, '처(處)'는 내 몸을 처하는 것이다. 내 몸은 천지가 낳고 부모가 물려주신 것이니, 난잡하고 더러운 데 처하여 정숙(整肅)하고 정결(淨潔)한 도를 버린다면, 자신의 몸을 게으르게 하여 상제와 어버이의 명을 더럽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의 몸을 병들게 하여 상제와 어버이의 은혜를 끊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거처를 장엄하게 하지 않는 것을 불효427)라 하였고, 율옹(栗翁 이이(李珥))은 거처는 병들지 않을 정도면 된다428)는 것으로 문인(門人)을 가르쳤으니, 학문에 뜻을 두고 수신(修身)하는 자가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매일 일찍 일어나 실당(室堂)을 쓸고 닦으며, 창과 벽의 먼지를 털고 뜰과 계단에 물을 뿌려 깨끗이 하되 모두 힘써 정결 하게 하라.사람마다 정해진 위치가 있으니, 업무에 종사할 때나 한가하게 지낼 때나 손님을 접대할 때, 항상 그곳에서 머물러 있던 자리를 떠나거나 위치를 바꾸지 않는다.궤안(几案), 서책(書冊), 지연(紙硯), 의건(衣巾)과 기타 집물(什物)은 가지런히 정돈해서 거두어 두되 각각 부류에 따라 각각 일정한 곳에 둔다.각각의 사람들이 신발을 벗을 때에는 반드시 정해진 곳에 두되 1렬로 가지런히 늘어놓고【동쪽을 위로 한다.】, 잘못하여 타인의 신발을 신지 말며, 신발 없이는 계단이나 섬돌을 다니지 말라.종이는 한 조각 남은 것과 문드러진 작은 것일지라도 삼가 땅에 버리지 말라.【글자가 적혀 있는 종이는 더욱 삼가라.】 떨어뜨린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수습하고, 사용할 수 없으면 이를 소각하라.붓과 먹으로 창과 벽을 더럽히거나 침과 콧물로 계단과 섬돌을 오염시키는 등속은 절대로 경계해야 한다.위의공경으로 몸을 간직하면 위엄이 있어 남들이 절로 두려워하고, 예의가 있어 남들이 절로 본받으니 이를 '위의(威儀)'라 이르고, 긍장(矝莊 조심스럽고 엄숙함)하고 수식(修飾 외면을 꾸밈)하여 반드시 남들이 두려워 본받게 하려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밖을 제재(制裁)하여 중심(中心)을 기르는 것이니, 용모와 말투는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덕(實德)에 힘쓰는 자는 반드시 위의를 삼가야 하니, 볼만한 위의가 없으면 반드시 덕이 없는 자이다.이 때문에 공자는 후중(厚重)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는 것을 학문이 견고하지 못한 것으로 여겼으니429),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덕과 학문의 부험(符驗)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화(禍), 복(福), 수(壽), 요(夭)가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례(儀禮)》에 "너의 위의를 공경하면 영원히 큰 복을 받을 것이다.430)"라고 하는 것을 관례(冠禮)를 올리는 자에게 빌고, 북궁문자(北宮文子)는 영윤(令尹)이 위의가 없기에 되돌릴 수 없음을 알았다고 했으니431), 더욱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매일 일찍 기상하여 세수하고 머리를 빗으며 의관을 갖추고, 응당 행해야 할 예를 행하며 각자 자리에 나아가 업무에 종사하라.제생(諸生 여러 유생)은 반드시 폭이 넓고 소매가 있는 상의(上衣)를 입되, 질병, 복역 및 취침할 때가 아니면 벗지 말라.앉을 때 무릎을 꿇고 앉거나 반좌(盤坐)【반좌는 바로 편히 앉는 것이니, 두 발을 무릎 아래로 거둬들여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외에 다른 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깨와 등을 세워 곧게 하고 기대거나 구부정한 자세를 없게 한다. 서 있을 때는 바르고 곧게 하며 두 손을 맞잡고 발을 나란히 하여 짝다리 짚는 습관을 없게 한다. 다닐 때는 가볍게 하지 말고 느릿느릿하지 말며, 아울러 팔을 흔들고 뒷짐을 지며 좌우를 돌아보지 말라.말을 할 때는 차분하고 세심하게 분명히 하고, 빠르거나 고음으로 하지 말며, 또한 저음이나 분명하지 않게 하지 말라. 동료들 사이에 섞여 장난치거나 웃지 말며, 속어[俚語]와 패담(悖談)432)을 하게 되면 결코 선비의 부류가 아니다.남초(南草 담배)의 폐해는 선배들이 자세히 논하였으니, 독서하는 자는 더욱 통렬하게 끊어야 한다. 거만한 습관으로 성현을 대하고, 악취를 사장(師長)에게 맡게 하며, 불사르는 것을 서책에 이르게 하는 것은 모두 잠시라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여기서는 우선 바로 지금 급한 것을 가지고 말하였으니, 그 자세한 것은 《예기》 〈곡례(曲禮)〉, 〈소의(少儀)〉, 〈옥조(玉藻)〉, 《관자(管子)》 〈제자직(弟子職)〉 등의 편을 스스로 일일이 준행(遵行)해야 한다.예수예(禮)라는 것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확립된 것이니, 예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잠시도 몸에서 버릴 수 없으니, 조정에는 조정의 예가 있고 향당에는 향당의 예가 있으며, 가정에는 가정의 예가 있으니, 학사(學舍)에 어찌 학사의 예가 없겠는가. 사장(師長), 생도(生徒), 장유(長幼), 관동(冠童)433)이 서로 함께 하는 예가 있어야 한다.또 생각건대 "배우는 것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인데 오래도록 부모를 찾아뵙지 않았다.434)"라고 한 것은 양원종(陽元宗 양성(陽城))이 경계한 것이고,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어른을 능멸하고 홀대한다.435)"라고 한 것은 안지추(顔之推)436)가 미워한 것이니, 이른바 예라는 것을 학사에서 부지런히 하고 가정과 향당에서 소홀히 한다면 옳겠는가. 경건한 마음으로 경계하고 힘써 노력하라!매일 일찍 일어나 제생(諸生)은 사장(社長)에게 읍례(揖禮)를 행하고, 또 반을 나누어 서로 마주하여 읍하되 저녁에도 이처럼 한다.【의식은 홀기에 보인다.】 하룻밤 이상 묵으면서 학사(學舍)에 이르지 않으면 진퇴할 때 모두 사장에 절을 하고 단일(單日)이면 읍을 한다. 사장이 일이 있어 출입할 때는 제생이 절을 하거나 읍을 하는데, 또한 하룻밤 이상 묵을 때와 단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학업을 함께 하는 사람이 하룻밤 이상 묵어 서로 보지 못하면 모였을 때와 헤어질 때 모두 서로 읍을 한다.사장에게 절하거나 읍할 때 1렬로 질서 있게 동쪽 가에 서서【사람이 많으면 겹줄로 선다.】 일제히 공경을 다하여 혹시라도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라.【존장(尊長) 앞에서도 그러하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10년 이상 차이가 나면 특별히 공경의 예를 행하되 언어는 동등하게 한다. 동자(童子)는 관자(冠者)와 나이가 서로 비슷할지라도 감히 호명하여 벗으로 교제하지 못한다.학사에서 묵은 자는 다음 날 아침에 귀가하여 반드시 부모에게 절을 해야 하니, 혹여 전에 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미적거리면서 실제로 하지 않은 일이 없게 하라.존장(尊長)을 뵈면 학사와 다른 곳을 가리지 않고 공경과 겸손을 다하되 조금도 거만한 태도가 없게 하며, 평소에 절을 드리는 곳이 길 위일지라도 절을 한다. 【세속에서 간혹 도로 위라고 하여 예를 생략하는데 이는 매우 옳지 않다.】빈객이 오면 공손히 삼가 절하고 읍하며, 맞이하고 보내는 절차는 따뜻하고 관대하게 인사를 하며, 말을 주고받을 때 학문이 있어 예의바른 사람이면 강론하고 질문하여 유익함을 취하고, 심지어 평범하게 여관을 하는 사람과 상공(商工)인이 들러 주더라도 감히 조금도 오만한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된다.교도붕우(朋友)가 오륜(五倫)에 있는 것은 오행(五行)의 토(土)와 같아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의 인륜이 이를 기다려 펴지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는 인도(人道)의 중요함이 되는 이유이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벗에 의지하지 않고 이룬 자가 없으니, 이러한 뜻을 안다면 지금 사람들이 너무 가볍게 벗을 취하여 이를 의지하여 자기를 이루지 못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공자가 말하기를 "유익한 벗이 셋이 있다.437)"고 하였고, 증자가 말하기를 "벗으로써 인을 돕는다.438)"고 하였으며, 맹자가 말하기를 "책선은 붕우의 도이다.439)"고 하였으니, 이러한 뜻을 안다면 지금 사람들이 서로 사귀는 것이 바른 방도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대들이 뜻을 둔 바는 도(道)이고 구하는 바는 인(仁)이니, 성기(聲氣)가 감응하고 풍운(風雲)이 모여 따르듯이 서로 의지하는 것이 가볍다고 이를 수 없다. 안물(顔勿)440), 증성(曾省)441), 녹법(鹿法)442), 남약(藍約)443)을 아침에 본받아 따르고 저녁에 익혀 성대하게 외우면 그 도가 없다고 이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어려운 것은 서로 겸손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오랫동안 공경하는 것인데, 요점은 '성실[誠]' 한 글자에 달려 있기에 조금이라도 성실하지 못함이 있으면 하는 일이 없는 것과 같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나이가 많으면서 학문이 높은 자와 나이가 적으면서 학문이 낮은 자 및 나이가 서로 비슷하면서 학문에 고하(高下)가 있는 자는 서로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아야 하니, 그러면 서로 발전하여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혹여 나이는 많으나 학문이 낮은 자와 나이는 적으나 학문이 높은 자가 서로 함께하면 매번 어긋나서 서로 받아들이지 않음을 근심하니, 반드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삼고, 배운 것을 믿고 스스로 높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벗하는 것은 그 덕을 벗하는 것이고 알아주는 것은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니, 반드시 마음속에 쌓은 담을 툭 터놓고 가식(假飾)하지 않아야 한다. 남에게 선행이 있으면 내면으로 진실로 사모하고 기뻐하여 다만 면전에서 지나치게 칭찬하지 말고, 잘못이 있으면 성심(誠心)으로 면전에서 깨우쳐주고 물러나서 남에게 말하지 말라. 자기에게 선행이 있어 남들이 칭찬해주면 지나치게 겸손하여 남의 호의를 저지하지 말고, 잘못이 있어 남이 이를 바로잡아주면 겉으로 따르면서 속으로 싫어하여 남의 덕의(德意)를 저버리지 말라.모이면 이미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의 성품이 어떻게 다 똑같겠는가. 항상 자신의 일에 때때로 불만이 있다면, 남의 일에 어찌 마음을 다 할 수 있겠는가. 협심(協心)해야 하니, 이른바 "아름다워 포용하는 것이 있다.444)"라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과정445)여사인(呂舍人)446)이 말하기를 "학업은 반드시 엄격히 과정을 세워야 한다.447)"고 하였고, 한문공(韓文公 한유(韓愈))이 말하기를 "학업은 근면함에서 정진(精進)되고 노는 데서 황폐해진다.448)"고 하였으며, 공자가 말하기를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을 대업(大業)이라고 이른다.449)"고 했으니, 오직 엄격하고 근면해야 풍부하게 소유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다.천지는 쉼 없이 지극히 성실하기에 조화(造化)가 운행되고, 성인은 쉼 없이 부지런히 힘써 노력하기에 대덕(大德)이 확립되거늘, 하물며 우리들에 있어서이겠는가. 아, 《주역》에 "힘쓰고 힘쓴다.450)"고 하였고, 《중용》에 "독실하다.451)"고 하였으며, 《서경》에 "부지런히 한다.452)"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들은 본받을 만하다. 강송(講誦)과 기사(記寫 기록하여 씀)의 종류는 수업에 없어서는 안 되기에 아래와 같이 방식을 정했다.매일 인정(寅正 오전 4시)에 기상하여 의관을 갖추고 묘시에 글을 배우며, 진초(辰初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한다. 진정(辰正 오전 8시)에 글자를 쓰고 사시에 독서하며, 오초(午初 오전 11시)에 휴식하면서 토론하고 오정(午正 낮 12시)에 독서하며, 미초(未初 오후 1시)에 점심을 먹는다. 미정(未正 오후 2시)에 글자를 쓰고 신시에 독서하며, 유초(酉初 오후 5시)에 휴식하면서 토론하고 유정(酉正 오후 6시)에 독서하며, 술초(戌初 오후 7시)에 저녁 식사를 한다. 술정(戌正 오후 8시)과 해초(亥初 오후 9시)에 혹은 글을 논하고 혹은 예를 익히며, 혹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혹은 시문을 짓되 각자 편의대로 하며, 해정(亥正 오후 10시)에 독서하고 취침한다.【가을과 겨울에는 신시에 저녁 식사를 하고, 유시에 글을 논하고 예를 익히며,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문을 지으며, 술시에 독서하고 해시에 취침한다.】매일 각자 독서하는 곳으로 나아가 과정 세우는 것을 빠뜨리지 말고, 적어도 여러 번 읽어서【적어도는 백번 이하가 아니다.】 반드시 외워야 한다.매달 보름과 그믐에 강을 행하는 사장(社長)은 보름 동안의 과정 가운데서 각각 1장(章)을 뽑아 통(通), 약(略), 조(粗), 불(不)453)을 정하여, 음(音)과 의(義)를 모두 통한 자는 상(上)으로, 의를 통한 자를 그다음, 음을 통한 자를 그다음으로 한다.【강규에 별도로 보인다.】 매달 7일에 6일 치의 과정을 연속해서 읽고 14일, 22일, 29일에도 모두 이처럼 하고, 작은달에는 28일에 5일 치의 과정을 연속해서 읽는다.한 책을 모두 읽을 때마다 며칠 동안 복습하여 읽고 사장 앞에서 외운다.관자(冠者)는 7일 안에 장문(長文) 1편을 짓고, 매달 4차례 숙과(宿課)를 연속해서 읽으며, 날마다 사장 앞에서 근정(斤正)454)한다. 동자(童子)는 매일 몇 줄의 일기를 쓰되 하지 뒤 처서 앞에까지 이른다. 한창 더위가 심할 때 관자는 송독(誦讀)을 줄이고 저술을 더하며 3일 안에 장문 1편을 짓고, 동자는 이전대로 한다.독서할 때는 반드시 바르게 앉아 몸을 흔들지 말고 천천히 뜻을 생각하면서 읽으며, 높지도 낮지도 않게 명백하게 소리를 내어 읽되 반드시 본음대로 해야 한다. 글자를 쓸 때는 반드시 해서체로 바르고 전중(典重 전아하고 장중함)하게 하며, 가볍고 뾰족하거나 거칠고 조잡하게 하지 말며, 반드시 육서의 본형(本形)을 준수해야 한다. 작문할 때는 반드시 의리가 통창(通暢)하고 의취(意趣)가 심장해야 하며, 기발한 것을 숭상하거나 화려하게 하지 말라.휴양《중용》에 "중(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다.455)"고 하였고, 《논어》에 "시(詩)에서 흥기시키고 악(樂)에서 완성한다.456)"고 하였으니, 담일(湛一)457)하여 밝게 깨어있어 고요한 것은 본체의 중이 고요할 때 확립된 것이고, 감발(感發)하여 화순(和順)한 것은 시와 악의 효과가 덕성(德性)에 드러난 것이다.그러나 후대에 시와 악을 폐지한 때로부터 속사(俗士)가 정(靜) 공부에 어두워 힘은 분변하고 질의하며 차자(箚子)를 베끼는 데 지치고, 마음은 혼매하고 어지러운 데로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이 새도록 끊임없이 애쓰지만 전혀 본원(本原)을 맑게 하고 온갖 변화에 수응하며 우유함영(優遊涵泳)458)하여 그 지극한 공효에 나아감을 보지 못하니, 너무나 한탄스럽다.이제 원하건대 제군이 부지런히 학문을 닦다가 힘들고 불안한 여가와 오랫동안 틀어박혀 답답하고 괴로운 뒤에, 간혹 고요한 곳에서 눈을 감고 마음을 편안하고 깨끗이 하여 허명(虛明)하고 순일(純一)한 본체를 세우며, 혹은 높은 곳에 올라가 바람을 쐬고 시가를 창화(唱和)하여 시원하게 씻어 없애는 공효를 찾아보아라.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독서 후에 각자 정좌(靜坐)와 징심(澄心) 공부를 익혀야 하니, 그 방법은 가볍게 비춰보고 돌아보며459) 마음을 화평하게 하는460) 것이 바로 이것이다.【정자는 "한나절은 정좌하고, 한나절은 독서 하라.461)"고 가르쳤으니, 정 공부에 뜻을 둔 자가 어찌 다만 두 차례 뿐이겠는가.】매달 보름과 그믐에 강(講)에 응한 뒤나, 7일, 14일, 22일, 29일에 연속해서 숙과(宿課)를 읽은 뒤나, 매일 저녁 식사를 한 뒤에 간혹 산에 올라 바람을 쐬기도 하고, 뜰앞에서 달을 보며 걷기도 하면서 아울러 〈관저(關雎)〉와 〈녹명(鹿鳴)〉462), 주자의 〈초은조(招隱操)〉463), 퇴계의 〈도산육곡(陶山六曲)〉464), 율곡의 〈석담구곡(石潭九曲)〉465) 등을 읊으며, 또 각자 시를 짓고 그중에서 매우 맑은 것을 읊는 것도 좋다.강규강생(講生)은 일제히 모여 도포나 넓은 소매가 있는 두루마기를 입는다. 당(堂)의 북쪽 벽 아래에 남향으로 강장(講長)의 자리를 설치하고, 동쪽 벽 아래와 서쪽 벽 아래에 북쪽을 윗자리로 하여 강생의 자리를 설치한다. 강생은 뜰 안에서 서로 읍례를 행하고 예를 마치면 강장은 자리에 올라서 앉고, 강생도 당에 올라 차례대로 나누어 동쪽과 서쪽으로 나아가 자리에 올라앉는다. 숙직하는 날에는 강장의 오른쪽 구석에 앉아서 강록(講錄)을 쓰고 책상과 책자를 강장 앞에 둔다.강생은 차례대로 강장 앞으로 나아가 읍을 하고, 옷매무새 가다듬으며 바르게 앉는다. 강장은 보름의 과정(課程) 가운데서 1장(章)을 뽑고 배강(背講)466)을 명한다. 강생은 얼굴에 부끄러움, 마음에 두려움, 목소리에 떠듬거림, 몸에 흔들림이 없이 편안히 낭랑하게 외우되, 반드시 명백하고 맑게 해야 한다. 강장이 듣는 것을 마치고 문의(文義)를 물으면 강생은 아는 대로 대답한다. 또 의심스럽거나 모르는 곳에 대해 질문하면【곁에 있는 자도 참여하여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는 것이 허용된다.】, 강장은 자세히 깨우쳐주고 바로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을 정한다.음(音)과 의(義)에 모두 통한 자는 통으로 하고, 의에만 통한 자는 그다음으로, 음에만 통한 자는 그다음으로 하되, 모두 략으로 하며, 어렵게 외워 많이 틀린 자는 조로 하고, 외우지 못한 자는 불로 한다. 강생이 또 읍하고 물러난다. 숙직하는 날에은 각각의 사람들이 외웠던 장을 강록에 기록하되 통, 약, 조, 불을 함께 기록하고, 매번의 강록을 수렴하여 훗날의 평가를 대비하며, 각각의 사람들의 참여와 불참, 통, 약, 조, 불의 많고 적음으로 학업의 근만(勤慢)과 진퇴(進退)를 징험한다. 居處居者居吾身也, 處者處吾身也. 吾身乃天地之所生, 父母之所遺, 若處乎難亂塵穢之中, 而棄其整肅潔淨之道, 非惟慢其身而褻帝親之命, 亦病其身而絶帝親之恩也. 故孔子以居處不莊爲不孝, 栗翁以居處不病訓門人, 凡志學修身者, 可不戒哉?每日早起, 掃拭室堂, 揮拂牕壁, 灑除庭階, 皆務令淨潔.每人各有定位, 凡於執業, 燕居, 對賓, 恒於其處, 不得離次易位.几案, 書冊, 紙硯, 衣巾, 其他什物, 整齊收置, 各從部類, 各有常處.各人脫履, 必有定處, 一列齊排【東上.】, 毋得誤穿他人屨, 毋得無屨行階砌.紙物雖零片爛寸, 愼勿棄地.【字紙尤愼.】 如有遺落, 隨輒收拾, 不可用則焚之.墨筆点牕壁唾洟汚階砌之類, 切宜戒之.威儀敬以持身, 則有威而人自畏, 有儀而人自象, 是之謂威儀, 非謂莊矝, 修飾, 必欲人之畏象也. 蓋制乎外, 養其中也, 容貌辭氣, 德之符也. 故務實德者必愼威儀, 威儀無觀, 必其無德者也. 是以孔子以不重不威爲學不堅固, 可不謹乎? 不惟爲德學之符驗, 亦禍福壽夭之所以分也. 故《儀禮》以"敬爾威儀, 永受胡福"祝冠者, 北宮文子以令尹之無儀, 知其不返, 可不尤謹乎?每日早起, 盥櫛衣冠, 行應行禮數, 各就座執業.諸生必著廣袖上衣, 非有疾病, 服役及就寢時, 勿脫.坐則跪坐盤坐【盤坐卽便坐, 兩足斂入膝下, 使不見.】外, 不許他法. 肩背竦直, 去倚俯之態. 立則平正端直, 拱手比足, 絶倚跛之習. 行則勿輕遽勿緩慢, 幷勿掉臂負手, 左右顧瞻.言語要安詳分明, 勿疾高, 亦勿低迷. 儕輩間, 勿雜以戱笑, 至於俚語悖談, 決非士類.南草之害, 前輩論之詳矣, 至於讀書者, 尤當痛絶. 慢習之對聖賢, 惡臭之觸師長, 焚爇之及書冊, 皆不可頃刻之近者.凡此姑以目下所急者言, 其詳則〈曲禮〉, 〈少儀〉, 〈玉藻〉, 〈弟子職〉等篇, 自當一一遵行.禮數禮者, 出乎天而立乎人者也, 無禮則非人. 故不可須臾去身, 在朝廷 有朝廷之禮, 在鄕黨有鄕黨之禮, 在家庭有家庭之禮, 在學舍, 豈無學舍之禮乎? 宜其有師長, 生徒, 長幼, 冠童, 相與之禮矣. 且念"學爲忠孝, 久不省親", 陽元宗所戒, "讀數5)十卷書, 凌忽長者.", 顔之推所惡, 所謂禮者, 若謹於學舍而忽於家庭鄕黨, 其可乎哉? 宜虔心戒勉.每日早起, 諸生行揖禮于社長, 又分班對揖, 夕亦如之.【儀見笏記.】 經宿以上未至學舍, 則進退時, 皆拜于社長, 單日則揖之. 社長有事出入, 或拜, 或揖, 亦以經宿, 單日爲準. 同業人經宿以上不相見, 會別時, 皆相揖.凡拜揖于社長, 一列序立東上,【人多則重行.】 一齊致敬, 無或錯亂後先.【尊長前亦然.】 同業人十年以上, 特加敬禮, 言語有等. 童之於冠, 雖齒相敵, 不敢呼名通朋.宿于學舍者, 翌朝歸家, 必拜其父母, 無以前或不行, 因循不果.凡見尊長, 不分學舍與他所, 極其敬遜, 毫無慢態, 平日納拜處, 雖路上亦拜之.【俗或以道路上除禮, 甚不可也.】賓客之來, 恭勤6)乎拜揖, 迎送之節, 溫款乎寒暄, 酬酌之際, 若是學問文雅人, 則又講論問質以取其益, 至於尋常逆旅工商之見過者, 亦不敢少存慢想.交道朋友之在五倫, 如五行之土, 父子, 君臣, 夫婦, 長幼之倫, 無不待是而敍, 此所以爲人道之重, 而自天子至於庶人, 未有不須友而成者也, 知此義, 則知今人取友之太輕, 而不以資之而成己也. 孔子曰: "益者三友.", 曾子曰: "以友輔仁.", 孟子曰: "責善, 明友之道.", 知此義, 則知今人相交之非其道矣. 諸君所志者道, 所求者仁, 聲氣感應, 風雲聚從, 相取者不可謂不重也. 顔勿, 曾省, 鹿法, 藍約, 朝規夕講, 諷誦洋洋, 不可謂無其道矣. 但所難者, 相下不倦久而敬之, 而要在乎誠之一字, 一有不誠, 所爲如無, 可不戒哉?年長而學高者, 年少而學下者及年相敵而學有高下者, 宜其相視無間, 相長有得也. 其或年長而學下, 年少而學高者之相與, 每患牴牾不相入, 要當以不恥下問爲心, 恃學自高爲戒.友者友其德也, 知者知其心也, 要當洞通城府, 不飾邊幅. 人有善, 內實慕悅而勿徒當面溢贊, 其有過, 誠心面喩, 勿退而語人. 己有善而人奬之, 勿過爲謙退以沮人好意, 有過而人規之, 勿外從而厭以負人德意.會旣衆矣, 性何盡齊? 常以吾事有時不滿, 人事豈能盡? 協爲心可也, 所謂休休有容者如此.課程呂舍人7)曰: "學業須是嚴立課程.", 韓文公曰: "業精于勤, 荒于嬉.", 孔子曰: "富有之謂大業.", 惟其惟嚴, 惟勤, 所以致富有之大業也. 天地之至誠不已而造化以行, 聖人之勤勵無息而大德以立, 況在於吾人乎? 嗚呼! 《易》曰"乾乾", 《庸》曰"慥慥", 《書》8)曰"孜孜", 斯可以爲法矣. 講誦記寫之類, 修業之不可闕者, 故定式如左.每日寅正, 起寢衣冠, 卯時受課, 辰初朝飯. 辰正寫字, 巳時讀書, 午初休息討論, 午正讀書, 未初點心. 未正寫字, 申時讀書, 酉初休息討論, 酉正讀書, 戌初夕飯. 戌正亥初, 或論文, 或講禮, 或談史, 或賦詩文, 各隨宜, 亥正讀書就寢.【秋冬, 申時夕飯, 酉時論文, 講禮, 談史, 賦詩文, 戌時讀書, 亥時就寢.】每日各就所讀書, 立課毋闕, 少行多讀,【少不下百遍.】 須要成誦.每月望晦, 設講社長, 各抽一章於一望課中, 定通略粗不, 音義俱通者爲上, 義通者次之, 音通者又次之.【講規別見.】 每月初七日, 連讀六日課, 十四, 二十二, 二十九日, 皆如之, 小月則二十八日, 連讀五日課.每一冊讀畢, 數日溫讀, 誦于社長前.冠者限七日內, 作長文一篇, 每月四次, 連讀宿課, 日斤正社長前. 童子每日作日記數行, 至於夏至後處暑前. 盛暑時, 冠者減誦讀, 加著述, 限三日內, 作長文一篇, 童子則依前.讀書要正坐勿搖身, 徐讀思義, 勿高, 勿低, 明白音讀, 必從本音. 寫字要楷正典重, 勿輕尖潦草, 必遵六書本形. 作文要義理通暢, 意趣深長, 勿尙奇, 勿麗華.休養《中庸》曰: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論語》曰: "興於詩, 成於樂.", 湛一惺寂, 本體之中, 立於靜時也, 感發和順, 詩樂之效, 著於德性也. 自後世之廢詩樂, 俗士之昧靜功, 力疲於辨質鈔箚, 心汨於昏昧紛擾, 矻矻滾滾, 終晷通夕, 絶不見澄淸本原, 酬酌萬變, 優遊涵泳以造其極之功, 可勝歎哉! 今欲諸君勤攻困搖之暇, 久蟄鬱惱之餘, 或閉目靜處, 安淨方寸以立虛明純一之體, 或登高迎風, 唱和詩歌以求蕩滌消融之效.每日午前午後兩次讀書後, 各習靜坐, 澄心之功, 其方則輕輕照顧, 平平存在者是也.【程子有半日靜坐, 半日讀書之訓, 有意靜功者, 豈但兩次而已?】.每月望晦應講後, 初七, 十四, 卄二, 卄九, 連讀宿課後, 每日夕飯後, 或上山灑風, 或庭前步月, 幷唱〈關雎〉, 〈鹿鳴〉, 朱子〈招隱操〉, 退溪〈陶山六曲〉, 栗谷〈石潭九曲〉等歌, 又各賦詩, 擇其淸絶者, 唱之亦好.講規講生齋會, 着道袍, 或廣袖周衣. 設講長席于堂北壁下南向, 講生席于東西壁下北上. 講生行相揖禮于庭中, 禮畢, 講長升席坐, 講生亦上堂以次分詣東西, 升席坐. 直日, 於講長之右隅, 坐書講錄, 置案冊子于講長前. 講生以次就講長前, 作揖斂袵端坐. 講長抽一章於一望課中, 命背講. 講生容無怍, 心無恐, 聲無澁, 身無搖, 舒心朗誦, 須要明白淸徹. 講長聽畢, 問文義, 講生隨所知奉對. 又問質疑晦處, 講長詳喩之,【在傍者, 亦許參同問討.】乃定通略粗不. 音義俱通者通, 義通者次之, 音通者又次之, 而俱爲略, 艱誦多錯粗, 不成誦者不. 講生又揖而退. 直日, 錄各人所誦章於講錄, 幷錄通略粗不, 收斂每次講錄, 用備後考, 以各人參與不參, 通略粗不之多寡, 驗學業之勤慢進退. 공자는 …… 불효 이는 공자의 말이 아니고 증자(曾子)가 말한 것으로, 《예기》 〈제의(祭義)〉에 "이 몸은 부모의 유체(遺體)이니, 부모가 남겨주신 몸으로 행하되 감히 공경하지 않겠는가. 거처를 장엄하게 하지 않는 것은 효가 아니다.[身也者, 父母之遺體也. 行父母之遺體, 敢不敬乎? 居處不莊, 非孝也.]라고 하였다. 거처는 …… 된다 이이가 《격몽요결(擊蒙要訣)》 권3 〈지신장(持身章)〉에서 "거처는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안 되고 병들지 않을 정도면 그만이다.[居處不可安泰, 不病而已.]"라고 하였다. 공자가 …… 여겼으니 《논어》 〈학이〉에서 공자가 "군자가 후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학문도 견고하지 못하다.[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라고 하였다. 너의 …… 것이다 《의례》 〈사관례(士冠禮)〉에 "좋은 달 좋은 날에 너의 옷을 거듭 입히니, 너의 위의를 공경하고 너의 덕을 맑게 하고 삼가면 만년토록 장수하고 영원히 큰복을 받을 것이다.[吉月令辰, 乃申爾服, 敬爾威儀, 淑愼爾德, 眉壽萬年, 永受胡福.]"라고 하였다. 북궁문자(北宮文子)는 …… 했으니 북궁문자는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타(佗)이다. 그가 초나라에 있을 때 위나라 군주인 양공(襄公)에게 "초나라 영윤위(令尹圍)가 위의(威儀)가 없어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내용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31년 조에 보인다. 패담(悖談) 사리에 그릇되게 말하는 것, 또는 그런 말이다. 관동(冠童) 관례를 한 사람과 관례를 하지 않은 아이라는 뜻으로, 남자 어른과 남자아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학문하는 …… 않았다 당나라의 양성(陽城)이 국자사업이 되어 학생들을 불러서 "모든 학문하는 자들이 배우는 까닭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다. 제군 중에 오랫동안 부모를 찾아뵙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라고 한 말이 《소학》 〈선행(善行)〉에 나온다. 수십 권 …… 홀대한다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勉學)〉에서 안지추(顔之推)가 "어떤 사람이 수십 권의 책을 읽고는 곧 스스로 높고 큰 체하여 어른을 능멸하고 홀대하며 동료들을 경시하고 오만하니,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기를 원수나 적과 같이 대하고, 그를 싫어하기를 부엉이나 올빼미처럼 여기는 것을 본 적이 있다."라고 하였다. 안지추(顔之推) 531~602. 북제(北齊) 사람으로 자는 개(介)이다. 그가 《안씨가훈(顔氏家訓)》을 지었다. 유익한 …… 있다 《논어》 〈계씨(季氏)〉에 보인다. 벗으로써 …… 돕는다 《논어》 〈안연(顏淵)〉에 보인다. 책선은 …… 도리이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보인다. 안물(顔勿) 《논어》 〈안연〉에서 공자가 안연에게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동하지 마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한 것을 말한다. 증성(曾省) 《논어》 〈학이〉에서 증자가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吾日三省吾身.]"라고 한 것을 말한다. 녹법(鹿法) 백록동서원 학규(白鹿洞書院學規)의 준말로, 당(唐) 나라 초기에 이발(李潑)에 의해서 세워진 백록동서원이 송(宋) 나라 때에 이르러 이미 황폐해졌는데, 주희가 백록동서원을 복구하고 학생을 가르치면서 만든 규약을 말한다. 남약(藍約) 남전(藍田) 여씨향약(呂氏鄕約)의 줄인 말로, 남전은 중국 섬서성(陝西省)의 고을 이름이고, 여씨향약은 송나라 때 남전에 살던 여대충(呂大忠), 여대방(呂大防), 여대균(呂大鈞), 여대림(呂大臨) 등 형제 네 사람이 그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이다. 《소학》 〈선행(善行)〉 아름다워 …… 있다 《서경》 〈진서(秦誓)〉에 "그 마음씨가 아름다워 남을 포용하는 것과 같은 점이 있다.[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라는 말이 나온다. 과정(課程) 일정 기간 중에 교육하거나 학습해야 할 과목의 내용과 분량을 말한다. 여사인(呂舍人) 여본중(呂本中, 1084~1145)이다. 남송 수주(壽州) 사람이다. 학업은 …… 한다 《소학집주(小學集註)》 〈가언(嘉言)〉에 나오는 말이다. 학업은 …… 황폐해진다 《창려문집(昌黎文集)》 권12 〈진학해(進學解)〉에 나온다. 풍부하게 …… 이른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나오는 말이다. 힘쓰고 힘쓴다 《주역》 〈건괘(乾卦)〉 구삼(九三)에 "군자가 종일토록 힘쓰고 힘쓴다.[君子終日乾乾.]"라고 하였다. 독실하다 《중용장구》 제13장에 "군자가 어찌 독실하지 않겠는가.[君子胡不慥慥爾!]"라고 하였다. 부지런히 한다 《서경》 〈익직(益稷)〉에서 우(禹)가 "나는 날마다 부지런히 할 것을 생각한다.[予日思孜孜.]"라고 하였다. 통(通) …… 불(不) 강생(講生)의 성적을 평가하는 4가지 등급이다. 근정(斤正) 시문(詩文)을 다듬어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중용》에……근본이다:《중용장구》 제1장에 나오는 말이다. 《논어》에……완성한다:《논어》 〈태백(泰伯)〉에 나오는 말이다. 담일(湛一) 장재(張載)가 "담일은 기(氣)의 근본이고, 공취(攻取)는 기의 욕구이다.[湛一氣之本, 攻取氣之欲.]"라고 하였고, 주희가 해석하여 "담일이란 외물에 감촉하지 않았을 때의 담연(湛然)하고 순일(純一)한 상태이니, 이것이 기의 근본이다.[湛一是未感物之時, 湛然純一, 此是氣之本.]"라고 하였다. 《정몽(正蒙)》 〈성명(誠明)〉 우유함영(優遊涵泳)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한가로이 오래도록 탐구하여 깊이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가볍게 …… 돌아보고 율곡은 정 공부를 할 때 미발(未發) 시의 기상을 경경조고(輕輕照顧)하면 진학(進學)과 양심(養心)에 반드시 유익함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21 〈성학집요(聖學輯要) 3〉 마음을 …… 하는 《퇴계문집(退溪文集)》 권24 〈답정자중(答鄭子中)〉 에 이러한 말이 보인다. 정자는 …… 하라 이는 정자가 한 말이 아니라 주자가 제자인 곽득원에게 한 말로,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16 〈주자 십삼(朱子十三) 훈문인 사(訓門人四)〉에 이러한 말이 나온다. 〈관저(關雎)〉와 〈녹명(鹿鳴)〉 모두 《시경》의 편명이다. 초은조(招隱操)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에서 온 말이다. 원래 초은(招隱)의 곡조는 회남(淮南)의 소산(小山)이 지었다고 하는데, 그 뒤에 주자도 초은의 곡조로 지었다고 한다. 〈초은사〉의 본래 의미는 은자를 세상으로 부르는 노래였는데, 후대에는 은거를 지향하는 의미로 쓰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1 〈초은조〉 도산육곡(陶山六曲) 퇴계 이황이 지은 12수의 연시조(聯詩調)를 〈도산십이곡〉이라고 하는데, 이별(李鼈)의 육가(六歌)를 모방하여, 〈육곡〉 한 편에서는 '지(志)'를, 다른 한 편에서는 '학(學)'을 노래하였다. 석담구곡(石潭九曲歌) 《율곡전서》 권2에 실려 있는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를 이른다. 구곡담(九曲潭)은 황해도 해주에 있는 아홉 개의 승경(勝景)이다. 이이가 일찍이 이곳에서 강학하면서 주희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모방하여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배강(背講) 책을 보지 않고 뒤돌아 앉아서 외우는 것을 말한다. 數 대본에는 없는데 《안씨가훈》의 원문에 근거하여 보충했다. 謹 대본에는 '勤'으로 되어 있는데 문맥으로 살펴 수정하였다. 呂舍人 대본에는 '張橫渠'로 되어 있는데 원문을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書 대본에는 '孟'으로 되어 있는데 원문을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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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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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춘우정22) 김공께 올리는 제문 【기미년(1919)】 祭春雨亭金公文【辛亥】 아아, 김공께서는 嗚呼惟公,인산(仁山)23) 문하의 고족 제자로서 仁門高足,호서의 으뜸가는 인재였으니 湖右巨擘,그 효성은 순수하였고 有純其孝,그 학문은 실다웠으니 有實其學,일에는 순(舜)과 도척(盜跖)을 구분하고24) 功分舜跖,마음은 헌원(軒轅)과 제곡(帝嚳)을 좇았습니다. 心追軒嚳.저기 바라뵈는 시산(詩山)의 남쪽25) 瞻彼詩南,그 집의 이름을 춘우(春雨)라 하였는데 春雨其室,벗들이 멀리서도 찾아오니 有朋自遠,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도 말하였네26) 宣聖攸樂,아름다운 갓과 옥패가 숲을 이루고 林林冠佩,선비들 도포 자락이 펄펄 날리며 濟濟縫掖,넉넉히 자신을 채운 후 남에게 끼쳐주니 裕己及人,그 베푼 혜택은 넓고 넓었습니다. 厥施斯博.그런데 어찌하여 나라의 운세가 夫何邦運,하늘의 복록을 받지 못하고 遭天不祿,섬나라 오랑캐가 크게 일어나 島奴孔熾,이리저리 멋대로 날뛰더니 肆其猖獗,우리의 영토를 빼앗고 旣奪我疆,장차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면서 將食我肉.인의를 가장한 간사한 무리들 大奸若仁,덕 훌륭한 노인들을 도와준다며 恤我耆德,억지로 금전을 보내주었는데 勒餽以金,공 또한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公亦其一,모욕의 물건 거절한 不受嗟來,제나라 사람의 높은 절기27)와 齊人高節,도적의 음식을 토해낸 反哇盜食,원정목을 가상히 여기셨는데28) 亦嘉旌目,하물며 일제의 구제금(救濟金)을 矧玆周金,어찌 다시 여기에 견주겠습니까? 又何同日?대의(大義)를 지닌 공께서 以公大義,준엄한 말씀으로 물리치시니 嚴辭退斥,저들이 처음에는 회유하다가 彼初遜誘,마침내는 협박을 가했습니다. 竟加脅迫.의리도 지키고 목숨도 유지한 사람은 熊魚兼全,상고 이래로 드물었으니29) 邃古難得,취할 것과 버릴 것을 결단함에 取舍一決,하늘에도 땅에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俯仰無怍.초나라의 굴원은 維荊有屈,상수에 몸을 던졌고30) 身沈湘澤,명나라의 유종주는 維明有劉,20일 동안 단식하였습니다.31) 兩旬絶粒,온 나라의 사람들 凡在邦人,모두가 슬퍼하고 罔不悲怛,어리석은 저 오랑캐들도 蠢彼頑夷,그 의리에 감복하였습니다. 亦知感服.아, 보잘것없는 저는 嗟余無狀,외람되게도 공에게 인정받아 猥遂荊識,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았으니 久承謦欬,공은 저의 본보기셨습니다. 作我矜式,저는 게다가 공의 손자와 况與賢抱,간절한 벗의 정의가 있습니다.32) 情在偲切.거친 글과 소박한 제물로 蕪文菲奠,감히 한 차례 곡하오며 敢展一哭,지난날을 떠올리고 지금에 상심하여 念昔傷今,두 손 가득 눈물이 흐릅니다. 有淚盈掬.아, 공의 혼령께서는 嗚呼公靈,천제의 곁을 오르고 내리면서도 陟降帝側,세상사에 분노하는 한 마음은 憤世一念,생사가 갈렸다고 어찌 다르겠습니까 死生豈別,저들의 죄가 세상에 가득 찼으니 彼罪貫盈,하늘이 반드시 벌주어 죽일 것입니다 天必誅殛,눈물로 천궁에 하소연하고 泣訴閶闔,여러 번 반복하여 진달하면 反覆陳達,천제도 공의 정성에 감동하고 帝感公誠,번쩍 큰 노여움 발하여서 一怒斯赫,저들의 종자를 다 없애고 殲厥種類,저들의 소굴을 쓸어버리며 擣厥巢穴,우리 생민을 도우면서 佑我民生,우리 영토를 광복하리니 復我疆域,저승과 이승의 큰 기쁨이 幽明一快,끝이 없지 않겠습니까? 曷有其極?높으신 밝은 혼령께서는 尊靈不昧,저의 이 마음을 살펴주소서! 鑑玆衷赤. 嗚呼惟公, 仁門高足, 湖右巨擘, 有純其孝, 有實其學, 功分舜跖, 心追軒嚳。 瞻彼詩南, 春雨其室, 有朋2)自遠, 宣聖攸樂, 林林冠佩, 濟濟縫掖, 裕己及人, 厥施斯博。 夫何邦運, 遭天不祿, 島奴孔熾, 肆其猖獗, 旣奪我疆, 將食我肉。 大奸若仁, 恤我耆德, 勒餽以金, 公亦其一, 不受嗟來, 齊人高節, 反哇盜食, 亦嘉旌目, 矧玆周金, 又何同日? 以公大義, 嚴辭退斥, 彼初遜誘, 竟加脅迫, 熊魚兼全, 邃古難得, 取舍一決, 俯仰無怍。 維荊有屈, 身沈湘澤, 維明有劉, 兩旬絶粒, 凡在邦人, 罔不悲怛, 蠢彼頑夷, 亦知感服。 嗟余無狀, 猥遂荊識, 久承謦欬, 作我矜式, 况與賢抱, 情在偲切, 蕪文菲奠, 敢展一哭, 念昔傷今, 有淚盈掬。 嗚呼公靈, 陟降帝側, 憤世一念, 死生豈別, 彼罪貫盈, 天必誅殛, 泣訴閶闔, 反覆陳達, 帝感公誠, 一怒斯赫, 殲厥種類, 擣厥巢穴, 佑我民生, 復我疆域, 幽明一快, 曷有其極? 尊靈不昧, 鑑玆衷赤。 춘우정 김영상(金永相)을 말하며, 1836∼1911, 본관은 도강(道康), 자는 승여(昇如), 호는 춘우정(春雨亭)‧오계(鰲溪)이고, 초명은 김영조(金永朝)이다. 전라북도 정읍 출신으로 인산 소휘면(仁山蘇輝冕)의 제자였고, 최익현(崔益鉉)의 항일의병에 참여하고, 일제의 은사금을 거부하였으며, 군산감옥(群山監獄)에서 단식하다 별세하였다. 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을 말하며, 1814~1889,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순여(純汝), 호는 인산(仁山)이다. 익산 출신으로, 조부 소수구(蘇洙榘)의 학업을 이었고, 홍직필(洪直弼)께 사사하였다. 일에는……구분하고 선(善)과 이(利)의 구분을 알았다는 말이다. 순척(舜跖)은 순 임금과 도척(盜跖)을 가리킨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순 임금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 싶은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단지 이익을 탐하고 선행을 좋아하는 그 사이에 있을 뿐이다.[欲知舜與跖之分, 無他, 利與善之間也。]"라고 하였다. 시산(詩山)의 남쪽 현재의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를 말한다. 벗들이……말하였네 김영상의 학덕(學德)에 감복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는 말이다. 공자가 "벗이 먼 데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고 하였다. 《論語 學而》 제나라……절기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크게 기근이 들어 길 가는 사람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던 이가 한 굶주린 사람에게 "불쌍도 해라, 와서 먹어라.[嗟來食]"라고 하자, 그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면서 "나는 불쌍하다면서 무례하게 주는 음식을 받아먹지 않았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予唯不食嗟來之食, 以至於斯也。]" 하며 음식을 거부하고 굶어 죽었다고 한다.《禮記 檀弓》 도적의……여기셨는데 무심코 일제가 제공한 것을 받았다가 사태를 깨달은 후에는 되돌려 보낸 것을 말한다. 옛날에 원정목(爰旌目)이 굶주려 길에 쓰러졌다가 먹여주는 음식을 먹고 정신을 차린 후 상대가 악독한 도적임을 알고는 먹은 음식을 게워냈다는 이야기가 있다.《列子 說符》 의리도……드물었으니 맹자가 "물고기도 먹고 싶고 곰 발바닥도 먹고 싶지만 모두 먹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며, 생명도 보전하고 싶고 의리도 취하고 싶지만 두 가지를 겸할 수 없을 경우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하였는데, 웅어(熊魚)는 이 말을 원용하였다. 여기서는 김영상이 절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을 말한 것이다. 초나라……투신하였고 김영상이 만경강에 투신하였던 것을 비유하였다. 굴원(屈原)은 초나라의 정치가이다. 근상(靳尙)의 모함을 받아 쫓겨난 뒤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하였다. 명나라……단식하였습니다 김영상이 군산 감옥에서 단식한 것을 비유하였다. 유종주(劉宗周, 1578〜1645)는 명나라 말기의 충신으로, 자는 기동(起東), 호는 염대(念臺)ㆍ극념자(克念子)이다. 남명(南明)의 도읍이 함락된 뒤 단식하다가 23일 만에 죽었다. 간절한……있습니다 김영상의 손자 김환각(金煥珏)와 사우의 관계임을 말한 듯하다. 김환각은 김복한(金福漢)에게도 조부의 비문을 청하기도 하였다.(《志山集 春雨亭金公永相墓碣銘》) 원문의 '시절(偲切)'은 '절절시시(切切偲偲): 간절하게 권면하다'의 줄임말인데, 공자가 "붕우 간에는 간절하게 책선하고 형제간에는 화기애애해야 한다.[朋友切切偲偲, 兄弟怡怡。]" 한 것을 인용하였다. 《論語 子路》 朋 원문은 明인데 '朋'의 오자로 보아 고쳐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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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지산 김공께 올리는 제문 祭志山金公文 유세차 을축년(1925) 8월 을사삭(乙巳朔) 29일 계유날에 시생 부안 사람 김택술은 삼가 소박한 제수를 준비하여 돌아가신 국자선생(國子先生) 지산 김복한(志山金福漢)33) 공의 영령께 곡하며 아룁니다.중화(中華)를 높이고 이적(夷狄)을 물리침은 尊華攘夷,천지간의 변치 않는 법도이고, 天經地緯,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함은 竭忠報國,신하된 자의 큰 의리입니다. 人臣大義,살펴보건대 지난날의 위대한 인물들은 相古偉人,모두 이 두 가지를 지켰습니다. 疇不由玆?장릉(長陵)34)의 인조 임금 때 粤在長陵병자년과 정축년의 변란35)에서 丙丁之時,선원 김상용36)과 청음 김상헌37) 공의 惟仙淸翁,극진한 도의와 빛나는 충절은 盡道華忠,오늘까지 모범으로 남아 전하여 式至于今,백성들이 의지하는 큰 공훈입니다. 民賴鉅功.아아, 김공께서는 嗚呼惟公,조상들의 자취를 따르시어 繩祖之迹,왜놈들이 침입해 능욕하고 夷虜侵陵,복식 두발의 문화 전통을 허물자 毁我衣髮,정의의 기치로 군사를 일으키니 仗義起旅,공렬이 혁혁하게 빛나셨습니다. 有赫其烈.조선 조정이 이미 기울었지만 漢鼎旣顚,한결같은 마음으로 일으켜 회복하고자 一心興復,멀리 파리에 긴 서신을 보내고 遠書巴里,옥에 갇혀서도 후회하지 않으셨습니다.38) 靡悔燕獄,나라에 충성이 지극한 위에다 忠旣至矣,존화양이의 정신 또한 그러하여 尊攘亦然.산하가 비록 다 불탔지만 山河雖燼,신령한 광휘는 여전히 높았는데39) 靈光猶尊,어찌 알았겠습니까 하루아침에 孰謂一曙,하늘이 공을 앗아갈 줄을40) 天不憖賢,혈기 있는 사람들 모두 다 凡有血氣,어버이를 여읜 것처럼 애통해합니다. 痛若懿親.아, 우리 사림들은 嗟我士林,사도(斯道)를 위해 슬퍼하니 重爲道悲,공맹(孔孟)의 유풍(儒風)을 부지하고 扶鄒魯風,호원(胡瑗)의 규모(規模)를 엄격히 지켜41) 嚴蘇湖規,한 가닥 남은 양기(陽氣)를 면면히 잇고 綿延線陽,붉은 등불이 어두운 거리를 비추었는데 昏衢燭紅,지금 이후로는 今焉以後,누구를 따라야 한단 말입니까? 于誰之從?아하 오호! 嗚呼!보잘것없는 저를 以我無狀,공께서는 버리지 않으셨으니 荷公不捨,명(銘)을 새긴 비석에서 빛이 나고42) 光生銘螭,말을 돌아보시자 값이 올랐습니다.43) 價增顧馬,먼저 바탕을 마련한 뒤에 채색하고44) 先素後繪,뿌리를 북돋운 뒤에 열매를 먹는다며 培根食實,덕(德)을 권면해 주시었고 勉之以德,저는 가르침에 감복하여 따랐습니다. 余所服述.늠름하게 척사(斥邪)를 주장하고 凜凜斥邪,겸손하게 선비들에게 자신을 낮추시어 謙謙下士,그 풍모와 의론이 사람들을 움직였고 風議動人,저는 그 모습에 감격하고 기뻤습니다. 余所感喜.이 세상 어디를 찾아봐도 環求此世,다시 볼 수 없는 분이니 無處更覿,눈물이 강물처럼 쏟아지고 淚之傾河,애통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慟之彌臆.사문(斯文)이 장차 망해가는데 文之將喪,덕 크신 공이 함께 운명하시고 長德幷亡,세상의 변란이 극심한 지경에 世變之極,유가 선비들 또한 미쳐가니 儒流亦狂,깜깜한 밤에 비바람 몰아치듯 風晦雨冥,온 우주가 아득하기만 합니다 宇內茫茫.현철한 만큼 준수하고 호매하였지만 賢似俊邁,실은 오직 학문을 좋아하셨을 뿐이라 實惟好學,간재 선생님께 존경과 신앙으로 尊信艮翁,마음의 삼년 상복 입은 후에는 心喪三朔[期]학우들 함께 모여 강습하며 誓將麗澤,서로 나눠 보태주기를 서약하셨지요.45) 交收其益.인재를 육성하여 선으로 인도하는 것은 育材式穀,이승과 저승에 간격이 있지 않으니 無間幽明,바라건대 가만히 저희를 도우시어 庶垂冥佑,좋은 성취 있게 해주십시오. 俾克有成.아, 슬픕니다. 嗚呼哀哉.흠향하소서 尙饗! 維歲次乙丑八月乙巳朔二十九日癸酉, 侍生扶安金澤述謹具菲奠, 哭告于故國子先生志山金公之靈, 曰: 尊華攘夷, 天經地緯, 竭忠報國, 人臣大義, 相古偉人, 疇不由玆? 粤在○長陵丙丁之時, 惟仙淸翁盡道華忠, 式至于今, 民賴鉅功。 嗚呼惟公, 繩祖之迹, 夷虜侵陵, 毁我衣髮, 仗義起旅, 有赫其烈。 漢鼎旣顚, 一心興復, 遠書巴里, 靡悔燕獄, 忠旣至矣。 尊攘亦然, 山河雖燼, 靈光猶尊, 孰謂一曙, 天不憖賢, 凡有血氣, 痛若懿親。 嗟我士林, 重爲道悲, 扶鄒魯風, 嚴蘇湖規, 綿延線陽, 昏衢燭紅, 今焉以後, 于誰之從? 嗚呼! 以我無狀, 荷公不捨, 光生銘螭, 價增顧馬, 先素後繪, 培根食實, 勉之以德, 余所服述, 凜凜斥邪, 謙謙下士, 風議動人, 余所感喜, 環求此世, 無處更覿, 淚之傾河, 慟之彌臆。 文之將喪, 長德幷亡, 世變之極, 儒流亦狂, 風晦雨冥, 宇內茫茫, 賢似俊邁, 實惟好學, 尊信艮翁, 心喪三朔3), 誓將麗澤, 交收其益, 育材式穀, 無間幽明, 庶垂冥佑, 俾克有成。 嗚呼哀哉! 尙饗! 김복한(金福漢) 1860~1924, 본관은 안동, 자는 원오(元五), 호는 지산(志山)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을 하였으며, 충남 홍주에서 1895년과 1906년에 항일의병을 일으키고, 1905년에는 을사오적 참소의 상소를 올리고,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서 서명을 지휘하였다. 장릉(長陵) 인조(仁祖)와 비(妃) 한씨(韓氏)의 합장릉(合葬陵)으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다. 병자년……변란 1636년(인조14) 12월에서 1637년 1월 사이에 후금의 홍태극(洪太極)이 침략해와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굴욕적 항복을 하였던 병자호란을 말한다. 선원 김상용(仙源金尙容) 1561〜1637.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ㆍ풍계(楓溪)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묘사(廟社)의 신주를 받들고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이듬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南門樓)에 있던 화약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청음 김상헌(淸陰金尙憲) 1570〜1652) :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이다. 김상용의 아우이다. 병자호란 당시 예조 판서로서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하였다.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후 풀려 귀국하였다. 파리에……않으셨습니다 김복한은 영남의 곽종석(郭鍾錫)과 함께 호서 유림을 대표해 전국 유림 137명의 서명을 받아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巴里長書)를 발송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병이 심하여 석방되었다. 산하가……높았는데 나라는 망했지만 김복한의 충절은 빛난다는 말이다. 원문의 영광(靈光)은 영광전(靈光殿)을 가리키는데, 여러 차례나 전란을 겪었어도 이 궁전만은 완전하게 보존되었다는 내용이, 한나라 왕연수(王延壽)의 〈노영광전부(魯靈光殿賦)〉 서문에 나온다. 하늘이……줄을 김복한이 운명했다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 시월지교(十月之交)〉에 "원로 한 분을 아껴 남겨 두어서 우리 임금을 지키게 하지 않는구나.[不憖遺一老, 俾守我王。]"라고 하였다. 호원(胡瑗)의 지켜 소호(蘇湖)는 소주(蘇州)와 호주(湖州)의 교수를 지낸 송(宋)나라 호원(胡瑗)을 가리킨다. 호원이 교육을 관장하면서 경의(經義)와 사무(事務) 두 과(科)로 나누어 가르쳤는데 그 제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기 때문에 당시에 호학(湖學)이라고 일컬었다. 송나라 장자(張鎡)가 지은 《사학규범(仕學規範)》의 〈호안정언행록(胡安定言行錄)〉에 "안정(安定) 선생이 경력(慶曆) 연간부터 소주와 호주에서 20여년 간 교육하였는데, 제자의 예를 갖춘 자가 전후로 수천 명이었다. 당시에 모두들 사부(辭賦)를 숭상했는데, 호학만은 경의와 사무를 우선으로 하였다. 학교 안에 경의재(經義齋)와 치사재(治事齋)를 두었는데, 경의재에는 경학에 소통하고 기국(器局)이 있는 자가 기거하였고, 치사재에서는 사람마다 각각 한 가지 일을 전공하고 또 한 가지 일을 겸하였다.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천하에서 호학에 인재가 많다고 하였고, 실제로 과거에서 높은 점수를 많이 맞았으며 정치에 기용된 자가 많았다." 하였다. 명(銘)을……나고 김택술의 십대조 죽계 김횡(竹溪金鋐)을 위한 비문을 김복한이 지어준 덕분에 조상과 가문이 빛나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志山集 參奉竹溪公鈜遺墟碑》참조. 말을……올랐습니다 김복한이 인정해준 덕분에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백락은 춘추 시대 진(秦)나라 사람으로 말을 잘 알아보았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어떤 사람이 말을 팔려고 하였으나 3일을 저자에 갖다 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백락이 가서 한 번 쳐다보니, 그 말의 값이 10배로 뛰었다.[伯樂乃環而視之, 去而顧之, 一旦而馬價十倍。]"라고 하였다. 먼저……채색하고 공자(孔子)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 바탕보다 뒤에 하는 것이니라.[繪事後素]"라고 한 것을 원용한 표현이다. 마음의……서약하셨지요 스승 전우의 탈상 후 사우(士友)들과 다시 모여 강학하기로 다짐하였었다는 말로 해석된다. 원문의 이택(麗澤)은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줌을 뜻한다. 《주역(周易)》〈태괘(兌卦)〉에 "두 못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태(兌)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강습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간재선생을 위한 마음의 복상 기간은 3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원문 '三朔'을 '三期'로 고쳐 해석하였다. 전우는 1922년, 김복한은 1924년에 별세하였다. 朔 문자의 의미 관계상 '期'의 오자인가 의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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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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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창암 박공께 올리는 제문 祭蒼巖朴公文 유세차 정묘년(1927) 4월 을미삭(乙未朔) 17일 신해날은 창암 박만환(蒼巖朴晩煥)46) 공의 소상(小祥) 날입니다. 하루 전인 경술날에 부안 사람 김택술은 삼가 소박한 제수를 준비하여 궤연(几筵)에 곡하며 아룁니다.소나무와 잣나무처럼 굳세고 松柏之勁,쇠와 바위처럼 단단한 것은 鐵石之堅.공의 의지와 자질이었고, 公之志質,바다처럼 깊고 넓은 식견과 淵海之識,맹분(孟賁) 하육(夏育)47)처럼 용맹함은 賁育之勇,공의 재주와 힘이었습니다. 公之才力,어려서 글을 익혀 少日詞翰,과거시험장에서 재능을 떨쳤지만 蜚英場屋,운수가 나빠 좋은 승승장구 못 하고 數奇不捷,하찮은 남반(南班)48) 자리에 앉았으니 薄試南班,능력에 걸맞지 않는 낮은 직위였습니다. 位屈其才,세상이 점차 흉흉해지자 世且窣窣,영동(瀛東)49)으로 돌아왔으니 歸來瀛東,그곳에 선대의 초가집 있어 先人有廬,영원히 은거하기로50) 마음먹고 永矢邁軸,창주(滄洲)의 정사(精舍)와 滄洲之舍,백석(白石)의 장서(藏書)로 白石之藏,학생들을 가르치시니51) 惠嘉來學,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高山之仰,치의(緇衣)를 읊조림에52) 緇衣之咏,우뚝이 높은 덕이 널리 전하였습니다. 卓乎知德.산하의 색깔이 바뀌고 나니 山河改色,돌아가 기댈 땅도 없어졌는데 適歸無地,다시 또 무슨 더러운 물건53)인가? 又何穢物,일찌기 대한제국의 은혜 받았는데 旣受韓恩,다른 나라의 은혜를 다시 받지 않을 줄은 不受他恩,저 푸른 하늘도 알았을 것입니다. 彼蒼可質.눈 내리는 북쪽과 장기(瘴氣)의 남쪽으로 朔雪南瘴,고생스런 천 리 머나먼 길을 間關千里,아득히 기러기처럼 오가셨는데 鴻擧漠漠,평생에 마음을 알아준 이는 平生知心,저 우뚝한 구산(臼山 田愚)이었으니 有屹臼山,공의 덕을 서리 속 국화에 견주었습니다. 比德霜菊.공과 같은 현인이 若公之賢,선류(善類)의 주인으로 善類之主,우뚝이 만년의 절기 지키셨는데 晩節之特,마침내 외로운 꽃 시들고 孤芳竟萎,새벽 별처럼 떨어졌으니 晨星亦墜,너무나 아깝고 아쉽습니다. 云誰之貴.아, 재주 부족한 저는 嗟余不敏,공의 넘치는 지우와 칭찬을 猥蒙知獎,30년 가까이 받았는데 垂三十曆.저를 가상히 여기시어 公曰嘉乃,사도(斯道)가 이처럼 쇠퇴하는데 道喪如許,자네는 사업을 힘써 마치라 하셨습니다. 勉卒爾業.저는 그럴 능력 없는 사람이었지만54) 余雖蚊山,공께서 실로 이렇게 저를 아껴주시어 公實愛我,그 두터운 정의에 감복하였습니다. 厚意則服,그런데 오늘 이제부터는 今焉以後,누가 있어 저를 사랑해 주실지 疇能愛我,제 마음은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我懷忉怛.아, 박공께서는 嗚呼惟公,선악(善惡)을 매우 엄격하게 구분하고 最嚴淑慝,음험한 무함을 가려내어 물리치고 辨斥陰誣,시비(是非)를 분명히 밝히셨는데 是非昭晳,저는 공의 뒤를 따르며 余趨下風,화복(禍福)을 함께 하였습니다. 同厥禍福.완주(完州)에 어떤 일 있어 가면서는55) 完行何事,백 리 먼 길에 무더위를 무릅썼는데 百里冒熱,돌아오는 길에는 강물 다리 밑에서 歸路江橋,물고기를 잡아 술자리를 펼쳤습니다. 穿魚呼酌,즐거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怡然談笑,외물이 어떻게 이를 욕되게 할까보냐 外至何辱.이에 저는 공의 흉금을 보았으니 我視公衿,여덟 창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56) 八窓通豁.그러고는 몇 달도 채 되지 않아서 曾未幾月,공은 갑자기 앓아누우셨습니다. 公淹床簀,"돌은 거칠고 옥은 온윤(溫潤)하여 石粗玉溫,하나는 아름답고 하나는 거칠지만 雖別美惡,옥으로 좋은 그릇 만들기 위해서는 玉之成器,도리어 돌에 갈아야만 한다네. 反磨乎石.그러니 저 음(陰)의 재앙이 彼陰之禍,이로움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安知非益,더욱 조심하고 강인해져서57) 益加動忍,훌륭한 인재가 되도록 하게" 汝庸成玉.제가 문병할 때 이와 같이 逮余問疾,남겨주신 간절한 부촉 丁寧遺囑,그 말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니 言猶在耳,어찌 감히 잊고 소홀히 하겠습니까. 豈敢忘忽?아하, 오호! 嗚呼!눈물이 강물처럼 이어 흐릅니다. 傾長河之淚,백번이라도 제 몸을 대신 바치려 한다58) 願百身之贖,일찍이 옛사람 이런 말 하였는데 曾聞諸古人,제 마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我心其先獲.공의 밝으신 영령이여 公惟不昧,강림하여 살피소서! 庶幾鑑格. 維歲次丁卯四月乙未朔十七日辛亥, 蒼巖朴公常事之期也。 前一日庚戌, 扶寧金澤述謹具薄奠, 哭告于象生之筵, 曰: 松柏之勁, 鐵石之堅。 公之志質, 淵海之識, 賁育之勇, 公之才力, 少日詞翰, 蜚英場屋, 數奇不捷, 薄試南班, 位屈其才, 世且窣窣, 歸來瀛東, 先人有廬, 永矢邁4)軸, 滄洲之舍, 白石之藏, 惠嘉來學, 高山之仰, 緇衣之咏, 卓乎知德。 山河改色, 適歸無地, 又何穢物, 旣受韓恩, 不受他恩, 彼蒼可質, 朔雪南瘴, 間關千里, 鴻擧漠漠, 平生知心, 有屹臼山, 比德霜菊。 若公之賢, 善類之主, 晩節之特, 孤芳竟萎, 晨星亦墜, 云誰之貴。 嗟余不敏, 猥蒙知獎, 垂三十曆。 公曰嘉乃, 道喪如許, 勉卒爾業。 余雖蚊山, 公實愛我, 厚意則服, 今焉以後, 疇能愛我, 我懷忉怛。 嗚呼惟公, 最嚴淑慝, 辨斥陰誣, 是非昭晳, 余趨下風, 同厥禍福, 完行何事, 百里冒熱, 歸路江橋, 穿魚呼酌, 怡然談笑, 外至何辱。 我視公衿, 八窓通豁, 曾未幾月, 公淹床簀, 石粗玉溫, 雖別美惡, 玉之成器, 反磨乎石。 彼陰之禍, 安知非益, 益加動忍, 汝庸成玉。 逮余問疾, 丁寧遺囑, 言猶在耳, 豈敢忘忽? 嗚呼! 傾長河之淚, 願百身之贖。 曾聞諸古人, 我心其先獲。 公惟不昧, 庶幾鑑格。 박만환(朴晩煥) 1849~1926, 자는 경서(景瑞), 호는 창암(蒼巖)이며, 정읍 출신이다. 임헌회(任憲晦)의 제자로, 금부도사와 삼례찰방을 하였고, 동학농민군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정읍에 영주정사(瀛州精舍)를 지어 후생을 교육하였다. 맹분(孟賁) 하육(夏育)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의 유명한 역사(力士)들로서, 맹분은 맨손으로 쇠뿔을 뽑았고, 하육은 천균(千鈞 : 삼천 근)의 무게를 들어 올렸다고 한다. 남반(南班) 여기서는 별로 높고 무겁지 않은 미관말직을 말하는데, 박만환은 종육품직인 금부도사와 삼례찰방 등을 하였다. 남반은 원래 고려 때의 제도로, 동반(東班: 문신)과 서반(西班: 무신) 아래의 반열인데, 주로 왕명을 출납하는 내료직(內僚職)이나 음사(蔭仕)의 벼슬을 가리킨다. 영동(瀛東) 전라북도 고부(古阜) 영주산(瀛州山)의 동쪽, 지금의 정읍시 고부면 흑암리를 말한다. 영주(瀛州)는 고부의 옛 이름이다. 은거하기로 저본의 원문은 '邁軸'인데, 이는 '薖軸'의 오기이다. 《시경》〈위풍(衛風) 고반(考槃)〉에 "숨어 살 집이 언덕에 있으니, 큰 선비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라는 말과 "숨어 살 집이 고원에 있으니, 큰 선비가 소요하는 곳이로다.[考槃在陸, 碩人之軸。]"라는 말을 합한 것으로, 선비가 산림에 은거함을 말한다. 창주(滄洲)……가르치시니 창암(蒼巖 박만환)이 1903년에 고부면 흑암리에 영주정사(瀛州精舍)를 세우고 많은 서적을 수장하여 후학을 양성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송나라의 주희(朱熹)는 무이산(武夷山)에 창주정사(滄洲精舍)를 세워 강학하였고, 이상(李常)은 여산(廬山)의 백석승사(白石僧舍)에 일만 권의 책을 수장하였다. 높은 산을……읊조리며 사람들이 창암의 고상한 덕행을 우러러보며 찬탄하였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경》〈거할(車舝)〉편에서는 "높은 산을 우러르며 큰길을 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고 하며 높은 산을 고상한 덕행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치의(緇衣)〉편에서는 "검은 옷 참 잘 어울리네요, 해지면 내가 다시 지어드릴게요.[緇衣之宜兮, 敝予又改爲兮。]" 등으로 노래하였는데, 공자는 "현인 좋아하기를 치의편처럼 하라.[好賢如緇衣。《禮記》]"라고 하며 현인에 대한 흠모로 해석하였다. 더러운 물건 일제가 각 지역의 명사들에게 !준 은사금을 가리킨다. 저는……사람이었지만 원문의 '문산(蚊山)'은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응제왕(應帝王)〉에 "그렇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바다를 건너뛰고 강을 뚫고 모기를 시켜 산을 짊어지게 하는 것과 같다.[其於治天下也, 猶涉海鑿河, 而使蚊負山也。]"고 한 데서 온 말로, 곧 힘이 아주 약해서 중임(重任)을 감당하기 어려움을 비유한다. 완주(完州)……가면서는 오진영(吳震泳)의 사건으로 김택술과 박사의(朴士毅, 창암의 족제)가 검찰국에 체도되어 조사받을 때(1925년 6월 2일) 창암이 그들을 위해 찾아갔던 일을 말하는 듯하다. 여덟 창이……있었습니다 사리에 통달하여 식견이 명철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20에 "허정해도 이 물건을 알아야 하고, 안 허정해도 이 물건을 알아야 한다. 이 물건을 알아 얻지 못하였다면, 이른바 허정하다는 것도 어두운 허정이지 밝은 허정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저 어두운 허정을 깨뜨리고 밝은 허정으로 바꿔야만 한다. 그러면 여덟 창의 영롱한 빛이 모두 어울려 통해 비출 것이며, 그러지 않으면 저 검은 허정을 굳게 지키며 종신토록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무 것도 통해 알지 못할 것이다.[虛靜也要識得這物事, 不虛靜也要識得這物事。 如未識得這物事時, 則所謂虛靜亦是箇黑底虛靜, 不是白底虛靜。 而今須是要打破那黑底虛靜, 換做箇白底虛靜, 則八窓玲瓏, 無不融通。 不然則守定那裏底虛靜, 終身黑淬淬地莫之通曉也。]"라고 하였다. 조심하고 강인해져서 동인(動忍)은 동심인성(動心忍性)의 준말로, 항상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져 조심하고 성품을 강인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백 번……바치려 한다 《시경》〈황조(黃鳥)〉에 "저 푸른 하늘이. 우리 좋은 사람을 죽이는구나. 대신 갚을 수 있다면 사람들 제 몸을 백번이라도 바치리라.[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라고 하였다. 邁 원문은 '邁'(갈 매)인데 '薖'(풀이름 과)의 오기이다. 과축(薖軸)은 《시경》〈위풍(衛風) 고반(考槃)〉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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